스님 법문

[수륙재] 9월19일 국행수륙대재 4재 법문 2021-09-19

 

     오늘 진관사 신축년 국행수륙대재 법문은 <예불의식과 찬불게송>,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禮佛讚佛 解脫妙門 作法儀式 奉行禮佛

예불찬불 해탈묘문 작법의식 봉행예불

安立三法壇 莊嚴悉圓滿

안립삼법단 장엄실원만

普法普供養 共證無生身

보법보공양 공증무생신

 

     불교는 성불하는 게 불교인데, 성불을 하려면 부처님에 의지에서 성불을 한다, 의불성불(依佛成佛)이라. 처음에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나중에는 스스로 성불하고, 이게 불교거든요.

     그런데 초의불을 어떻게 하냐. 처음 부처님에 의지하는 걸 어떻게 하냐. 첫 번째는 신불(信佛)이에요. 부처님을 믿는 거예요. 다음에는 염불(念佛)인데, 신불, 염불. 염불은 공불(供佛)염불이 있고, 부처님께 공양하는 염불, 그다음에 예경(禮敬)염불, 부처님께 예경하는 염불, 그다음에는 찬탄염불, 부처님을 찬탄하는 염불, 그래서 공불, 예경, 찬불(讚佛)이 전부가 다 염불이거든요. 이렇게 염불이 깊어지면 견불(見佛)을 해요. 볼 견자, 부처님 불자, 견불을 보살 수행의 초지보살(初地菩薩)이라 그러는데, 초지보살이 되면 견불을 해요. 그래서 이제 견불이 점점 익숙해지면 보살도가 성숙해서 그다음에 성불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신불, 염불, 견불, 성불. 그런데 염불은 공불염불, 부처님께 공양하는 염불, 예불연불, 부처님께 예경하는 염불, 찬불염불,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염불, 이래서 흔히 그냥 염불이다, 이렇게만 말을 해요, 염불.

     그런데 염불을 굉장히 깊이 있게 하고 대중이 다 함께하기 위해서 작법 의식을 만들었어요, 작법 의식. 이 작법이라는 것은 순서, 방법을 정하는 게 작법이에요. 그 법이라는 건 순서법, 방법법 그게 법이거든요. 그걸 이제 세운다, 만든다. 이게 작()자란 말이죠. 작법, 거기에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고 가만히 있기도 하고 창도 하고 하니까 그런 걸 의식이라고 한다 이거죠. 예불은 의식이 있다. 이렇게 돼서 예불, 찬불은 뭐 하는 거냐. 해탈묘문(解脫妙門)이다, 해탈묘문.

     그러면 이제 불교가 표현하는 언어 중에 해탈, 열반, 극락, 성불 이런데, 해탈은 장애를 여의는 게 해탈이에요. 이장해탈이라고 그래요. 장애는 무명 삼장이 있고, 수행 삼장이 있는데, 무명 삼장은 혹업고(惑業苦), 미혹과 망업과 고통과, 이게 무명 삼장이고, 수행 3장은 번뇌장(煩惱障), 번뇌가 장애를 일으키는 거, 알아야 할 걸 모르는 소지장(所知障), 또 그다음에는 몸에 쓸데없는 무명 장애가 꽉 끼어서 이 습기가 완전히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요. 그걸 습기장(習氣障)이라고 그래요. 습기장은 등각 이후에까지 있어요. 이게 수행 삼장이에요. 무명 삼장, 수행 삼장을 다 여의면 그게 이장 해탈이에요. 장애를 다 여의어서 해탈한다.

     그 다음에 열반은 증입열반인데, 열반으로 증득해 들어가는 거에요. 장애를 여의는 열반이 아니에요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구족 열반이에요, 본래 구족. 그럼 본래 구족 열반은 어떻게 되냐. 증득해 들어가는 거예요. 붙어 있는 장애를 여의는 게 아니고 증득해 들어가는, 그래서 증입열반이라고 그러지요. 이장 해탈, 장애를 여읜다고 안 하거든요.

     그리고 극락이라는 것은 자수용정토에요. 스스로 지혜를 이루면 국토가 좋아지는데 지혜 청정, 국토청정을 극락세계라고 한단 말이죠. 그걸 수용하는 거예요. 받아 쓰는 거라고요. 그게 극락세계에요. 그래서 극락은 수용정토고.

     성불은 각지성취인데, 성불은 으레 삼신을 구족하는데요. 법신여래, 보신여래, 화신여래인데, 법신여래는 그냥 청정법신, 진여법신, 청정, 진여. 그 몸을 깨달으면 깨닫기 전부터 있었고, 깨달은 후에도 있었고, 이게 진여법신이거든요. 그러면 그 진여법신을 깨달으면, 진여법신을 깨달은 공덕으로 지혜가 나와요. 이거를 화엄경여래출현품 제일 첫 게송에서 <정각 공덕으로 대지출이라>, 정각의 공덕으로 대지가 출연했다. 깨달으면 중생의 업식이 전부 지혜가 돼요. 이게 정각 공덕 대지출이에요. 이거를 보신여래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법신은 진여신이고, 보신은 지혜신이고, 화신은 자비 원력의 몸이니까 비원신이다. 그렇게 지혜를 갖추면 자비심이 쫙 일어나고, 자비심이 일어나면 원력이 행해져서 천백억 화신으로 자비원력을 실행하니까 그걸 화신이라고 한다 이거죠. 이게 성불이에요.

     그래서 해탈, 열반, 정토, 성불, 이건데, 다 이게 처음에는 부처님께 의지해야 돼요. 의불이에요. 그러면 점점 다 이루어져서 성불 한단 말이죠. 그 과정에 신불, 염불, 견불, 성불, 이렇게 나오는데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여럿이 같이 해야 되니까 작법 의식으로 이걸 하게 됐다.

     그럼 첫째 작법이 뭐냐. 3단을 설치하는 건데, 상단 설치, 중단 설치, 하단 설치. 상단은 불보살을 모신 단이 상단이고, 중단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을 모신 단이 중단인데, 신중단이라고 그러죠. 상단은 불보살단이고, 하단은 시식단인데, 중단에는 진공이라고 그러고 공양을 올린다, 하단은 시식이라 그래요. 이게 전부 작법이에요. 그리고 상단은 헌공이라 그러고, 헌공, 진공, 시식. 이렇게 시식단에는 영가를 모시는 단이라 영단이라고도 하고, 늘 향공양을 올리기 때문에 향단이라고도 하고, 늘 시식을 하니까 시식단이라고도 하고, 또 상단, 중단보다 한 단계 낮으니까 하단이라고도 하고. 이렇게 삼단을 딱 설치를 해서 모든 게 삼단에서 작법 의식이 이루어져요. 이게 불교 의식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예외가 하나 있어요. 조선시대 서산 스님께서는 조사 선법으로 조사선을 이야기하는 의식이 있는데 그걸 설선의라, 선을 말하는 의식이다. 조사선법으로 시식하는 단을 운수단(雲水壇)이라고 그래요. 구름 운자, 물 수자. 이게 의식에 들어와 있어요. 청법 의식에도 보면 그런 게 들어와 있고. 근데 그거는 하나의 법식이고, 기본은 3단이에요. 이렇게 단을 설치를 해서 공양을 하는데, 이 공양은 상단 헌공이나 중단 진공이나 하단 시식이나 똑같이 보공양(普供養)을 해요. 보공양, 보공양 진언이 없는 데가 없어요. 보공양, 넓게 다 공양을 하는 거예요. 넓을 보자, 보 공양이죠. 그 모든 의식에 보공양, 보회향이 안 들어가는 데가 없어요. 이게 불교 의식이에요.

     그럼 보공양은 어때서 보공양이 되냐. 보법보공양(普法普供養), 넓을 보, 법 법, 보법보공양인데, 이 보법이라고 하는 것은 일승법이고, 일승은 불성이다, 부처님 깨달은 그 경지를 보법이라고 그래요. 그게 일승법이라고. 일승 보법, 불승 보법, 불과 보법, 부처님 결과의 보법이다. 그걸로써 공양을 한단 말이죠. 그래서 보법으로 보공양해요. 그래가지고 불교 의식은 안립삼법단(安立三法壇)하고, 삼법단을 안립을 하고, 안치 건립한다고 그래서 안립인데, 안치해서 건립을 하고, 장엄실원만(莊嚴悉圓滿)이라, 장엄을 다 원만하게 한다. 보법보공양(普法普供養)으로, 넓은 부처님 법으로 넓게 공양하는 공덕으로, 공증무생신(共證無生身)이라, 우리가 느끼고 있는 중생 업식의 몸은 생멸이 있는 몸인데, 지혜로 얻은 몸은 생멸 없는 몸을 지혜로 얻는다 이거지요. 그게 무생신이에요. 생멸 없는 몸이라고. 생멸 없는 몸을 얻으면 그걸 깨달음이라고 그러고, 그걸 성불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함께 생멸 없는 몸을, 증이라는 건 얻을 득자와 마찬가지인데, 증득하는 것이 불교 의식의 중심이다 이거에요. 이게 기본이고.

 

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金剛經 應化非眞分32)

운하위인연설고 불취어상하야 여여부동이니라(금강경 응화비진분32)

 

     그다음에는 이런 부처님의 찬불과 예불, 또 부처님의 경전 송경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걸 경에서 얘기를 하는데, 금강경에 보면 이 경을 연설을 하는데 <운화위인연설고(云何爲人演說)> 이랬어요. ‘어떻게 사람을 위해서 연설해야 합니까.’ 아 이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불취어상하야 여여부동이니라(不取於相 如如不動)> 이랬거든. 그게 경전을 설할 때는 불취어상 여여부동으로 살아라’, 이 말인데, 그럼 불취어상이라는 건 뭐냐. 이 염불을 해서 견불해서 성불하고자 하는 보살은 세상 사물을 취하지 마라. 이걸 제상(諸相)이라 그래요. 모든 제자, 상이라는 상자, 제상. 제상은 세간상인데, 이 세간의 모든 것들을 취하지 마라. 불취제상이 불취어상이지요.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되냐. 여여부동이라. 여여부동이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그러면은, 여여부동, 주어무주(住於無住)하라. 머물며 없는데 머물러라. 이게 성불이에요. 주어무주. 무주에 머문다. 왜 그러냐 하면 이 부처님 법의 세계는 만법에 무주상이오, 만법에 상광명이라. 만법에 머무는 상이 없고 만법에 항상 광명을 비추는 게 부처님 법이기 때문에 무주에 머무른다, 큰 데도 머무르지 않고, 작은 데도 머무르지 않고, 보이는 데도 머무르지 않고, 보이지 않는 데도 머무르지 않고. 이게 여여부동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이 경을 설해야 합니까.’ 이렇게 물으니까 불취어상하여 여여부동이니라.’ 그게 무슨 얘기냐. 불취세간상하고, 세간상을 취하지 말고, 주어무주하라, 머뭄이 없는 곳에 머물러라. 그럼 바로 성불하는 거예요. 불취제상, 불취제상하고. 제상은 세간상이니까 주어무주하라. 바로 성불이에요. 머뭄이 없는데 머물면 그게 바로 해탈이고 그게 바로 극락이고 그게 바로 열반이고 그게 바로 성불이에요. 그렇게 가르쳐 놨어.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현재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원력을 가지고 하면 금방 되거든요. 그러니까 현재 안 된다고 비관할 거 절대 없어요. 애가 커서 어른 되지 무슨 뭐 어른이 커서 어른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불경말학(不輕末學)하라, 말학을 가벼이 여기지 마라. 말학이라는 건 제일 끝에 출발한 학인을 말학이라고 그러잖아요. 말학이 구참이 되는 거지, 말학 없이 어떻게 구참이 되냐 이거예요.

 

入如來室 著如來衣 坐如來座 廣說斯經 如來室者 大慈

입여래실 착여래의 좌여래좌 광설사경 여래실자 대자

悲心是 如來衣者 柔和忍辱心是 如來座者 一切法空是

비심시 여래의자 유화인욕심시 여래좌자 일체법공시

大慈悲爲室 柔和忍辱衣 諸法空爲座 處此爲說法

대자비위실 유화인욕의 제법공위좌 처차위설법

(法華經法師品10)

(법화경법사품 제10)

     그리고 법화경에서는 법화경을 강설하는 법사는 <여래 방에 들어가고 여래 옷을 입고 여래 자리에 앉아서 이 법화경을 널리 널리 말할지니라(入如來室 著如來衣 坐如來座 廣說斯經)> 이렇게 했어요. 여래실 여래의 여래좌. 이게 참 겁주는 거 같아요, 완전히. 여래실에 어떻게 들어가냐. 여래옷을 어떻게 입냐. 여래 자리에 어떻게 앉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거기서 설명을 하기를, 여래실자는, 여래의 방이라고 하는 것은 대자비심이시오(如來室者 大慈悲心是). 큰 자비심이 그게 여래의 방이다. 그러니까 이런 염불법사는 첫째 자비심을 가져야 된다. 그게 여래의 실이다 이거지요. 두 번째는 <여래의자는 유화인욕심이 이것이다(如來衣者 柔和忍辱心是).> 유화인욕심이시다. 유화하고, 부드럽고 화합하고, 인욕하고, 어려운 걸 있으면 참는 게 그게 경을 설하는 사람의 자세다 이거죠. 유화인욕심이 여래의 옷이고. <여래의 좌자는, 여래의 자리라는 것은 일체법공이시니라(如來座者 一切法空是).> 일체법이 다 공한 것이 그게 여래의 자리다. 색도 공하고 공도 공하고 유체 만법계가 다 불생불멸이다. 공이란 불생불멸인데, 그걸 여래의 자리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여래는 항상 불생불멸의 자리에 딱 앉아 계시니까 여래경을 설하는 사람도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여래의 경을 설하라. 이거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냐. 지극 정성으로 염불을 다 하면 자기도 모르게 그 자비심이 생기고 인욕심이 생기고 불생불멸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거에요. 일부러 마음 먹어서 되는 게 아니라 정성 일심으로 정성 한 마음이 그렇게 돼요. 그래서 염불 정진, 염불 공덕이 참으로 무량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거든요. 근데 이제 모든 것은 불에 의지해서 성불하는 거기 때문에 부처님을 잘 믿고 염불하고 그러면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고 그러면 부처님을 성불하게 된단 말이죠.

그래서 모든 의식에는 부처님을 제일 먼저 모셔야 돼요. 그걸 거불(擧佛)이라 그래요, 거불. 들 거자, 부처 불자 쓰는데, 거불 없는 불교 의식은 없어요. 거불이 뭐냐. 거자는 움직일 거자가 되고, 또 받들 거자가 되고 그러는데, 움직인다는 말은 부처님을 청해서 잘 받들어서 헌좌진언으로 딱 부처님을 모시는 게 그게 거불이거든요. 이 거불을 소홀히 하는 불교 의식은 없어요. 그래서 시간 없다고 막 거불을 후딱 하고 그러면 그거는 불교 예경에 조금 어긋나는 거예요. 다른 걸 생략을 해도 거불은 아주 잘 하고. 또 범패도 어디서 범패 법사의 급수가 결정되냐. 거불 범패 하나 딱 하는 거 보면 알아요. <~> 이거 쉬운 일이 아니에요. 거불범패를 그러니까 연습을 자꾸 하셔요, 하고 또 하고. 서예원에 가서 붓글씨 배울 때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게 영자팔법이라고, 길 영자 이 팔법이 있는데 이것만 가르쳐요. 그게 기본이에요. 그러니까 이 범패는, 이 거불 범패가 제일 중요해요. 그래서 이 거불 창법 이거 잘 하고, 아주 자신이 있고 공경이 푹 배면 다른 거는 다 잘 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 <~> 하는 그 나무 거불범패 이것들을 아주 몸에 꽉 배게, 자신이 만만하게 그렇게 하시면 염불이 겁나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환희심도 주고 나에게 큰 법력이 성장하고 그런 거예요. 자기 성장 없이 절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없어요. 내가 성장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자리가 이타지 자리 없는 이타는 없다. 이게 보살도거든요. 그래 하라 그랬고.

 

   讚佛頌 찬불송

蟭螟眼睫起州 玉帛諸侯次第投

초명안첩기황주 옥백제후차제투

天子臨軒論土廣 太虛猶是一浮漚(華嚴大禮文 第1禮文)

천자임헌논토광 태허유시일부구(화엄대예문 제1예문)

佛身普遍十方中 三世如來一切同

불신보변시방중 삼세여래일체동

廣大願雲恒不盡 汪洋覺海渺難窮(華嚴大禮文 第14禮文)

광대원운항부진 왕양각해묘란궁(화엄대예문 제14예문)

佛身充滿於法界 普現一切衆生前

불신충만어법계 보현일체중생전

隨緣赴感靡不周 而恒處此菩提座(華嚴經如來現相品2)

수연부감미부주 이항처차보리좌(화엄경여래현상품제2)

剎塵心念可數知 大海中水可飲盡

찰진심념가수지 대해중수가음진

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佛功德(華嚴經入法界品39)

허공가량풍가계 무능진설불공덕(화엄경입법계품제39)

 

     그다음에 화엄경에 보면 견불하기 전에는 찬불이 그렇게 많아요. 화엄경에 보면 게찬품이 세 군데 있는데, 수미정상게찬품, 야마궁중게찬품도솔궁중게찬품이 있는데, 이게 전부 찬불송이에요. 게찬이라는 거는 게로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거거든요. 왜 그렇게 찬불이 많냐. 아직까지 견불을 못한 보살들은 찬불을 통해서 부처님을 아주 가까이 믿게 돼요. 근데 십지품에 올라가면 찬불송이 없어요. 바로 본문으로 돌아가버려. 그거는 왜냐하면 이제 견불을 했기 때문에, 환희지에서 부처님을 봤기 때문에 더이상 찬불이 필요가 없어 그렇게 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 찬불을 잘하면 바로 견불을 하게 되고, 견불하게 되면 성불하게 돼요. 그런데 우리 의식문에 보면 찬불송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많은데 그중에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거 참 의문 덩어리였는데, 오늘은 화엄경을 안 가져오고 이걸 가져왔는데, 제목이 화엄대예문이에요. 화엄대예문. 화엄대예문인데 여기에 예경 의식이 쭉 나온단 말이에요. 근데 여기 첫 번째 제1배 예경문에 송이 나오는데, 이 비로자나불 송인데, 그 비로자나불송에 무슨 말씀이 있냐.

     이 첫 번째 화엄 대예참 제1배 찬불송인데, 아 나 이것 때문에 참 애 먹었어요. 이것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되나. <초명안첩기황주(蟭螟眼睫起皇州)>, 그거 외우는 사람 있어요? 요새 이 대예참을 안 하면 몰라요. <옥백제후차제투(玉帛諸侯次第投) 천자임헌론토광(天子臨軒論土廣) 태허유시일부구(太虛猶是一浮漚)> 이게 화엄대예참 첫 번째 절할 때 나오는 찬불송이거든요. 초명이라는 것은, 이게 뭔 말이냐. 파리인데 파리 중에도 제일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파리를 초명이라 그래요. 파리 초, 파리 명. 근데 그 파리에 안첩, 눈 안 자, 눈썹 첩자, 그 파리 눈썹, 그렇게 작은 파리 눈썹이 얼마나 작겠어요. 근데 거기다가 황제의 나라를 세워, 초명안첩에다가 기황주라, 임금 황자, 고을 주자, 고을 주자는 국토라는 말이거든. 임금의 국토를 툭 세워서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옥백 제후가 차제투라. 구슬 옥자, 비단 백자인데, 옥백이라는 것은 황제가 있으면 그 산하의 제후 국가의 왕들이 전부 조공물을 가지고 오는 그 조공을 옥백이라고 그래요. 조공을 들고 오는 제후의 왕들이 차제투라, 차례차례로 온다. 던질 투자는 온다는 말이거든요. 기가 막혀. 그런데 천자가 임헌해서 논토광하니, 천자 황제가 궁전에 떡 앉아서 자기 국토가 넓고도 넓다 하는 걸 논하니, 얼마나 그게 넓으냐, 태허유시일부구라. 태허공이 오히려 한 바다에 물거품과 같다. 뜰 부자하고 물거품 구자가 있거든요. 이런 게송을 해요. 그래서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 아주 참 애를 먹었는데, 이게 왜 그런고 하니까, 불경계는 작아도 작은 상이 없고, 커도 큰 상이 없어요. 크다 작다 하는 것은 의식 경계요, 불경계는 일미진중에 함시방이고 또 일념 즉시 무량검이고 해서 일찰라가 또 일찰라에 자체가 없고, 무량겁에도 무량겁에 자체가 없어서, 크고 작은데 전혀 장벽 장애가 없는 게 불경계에요. 그래서 뭘 안 해도 안 한 장애가 없고, 해도 한 장애가 없고 이게 불경계이기 때문에 초명안첩의 황제 국가를 세웠는데 거기에 모든 제후들이 다 조공을 들고 와서 조공을 바친다, 차지했더라. 근데 그 국토가 얼마나 넓으냐 하면 이 세상에 그렇게 넓은 국토는 없다. 천자가 임원논토광 하니까 얼마나 넓으냐. 태허공이 오히려 한 물거품과 같다. 이게 화엄경 법신송 아주 중요한데 이건 경전에는 없어요. 화엄 예경에만 있는 거에요.

     그리고 우리가 많이 아는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 삼세여래일체동(三世如來一切同) 광대원운항부진(廣大願雲恒不盡) 왕양각해묘란궁(汪洋覺海渺難窮), 이것도 경전에는 없어요. 예경에만 있어요. 그리고 불신송으로 삼신불이 다 포함된 불신송인데,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 이거는 여래현상품에 있는데 이것은 불신, 보통 삼신불이 기본인데 여기에 더하면 이제 십신불이거든요. 십신불 전체를 다 찬탄하는 게 이런 불신충만어법계고. 이 진여불 또 각지불, 비원불, 일체 원불, 주지불, 선정불, 이런 불공덕이 얼마나 무량하고 무궁하냐 하는 거를 80화엄경 제일 마지막에서 두 번째 찬불송인데, 찰진심념을가수지(剎塵心念可數知)하고, 일체 중생의 마음을 다 헤아려서 알고, 대해중수를 가음진(大海中水可飲盡)하며, 온 바닷물을 한 입으로 다 들어마셔,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라도, 허공이 얼마나 되는지 전부 헤아려서 다 측량을 하고, 바람을 오도가도 못하게 얽어맬 수 있다 하더라도, 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이라, 불공덕은 다 말할 수가 없다. 화엄경은 이래서 불경계 불공덕이에요. 불경계. 불경계 불공덕이 이렇다 이 말이죠. 그래서 이런 찬불송을 일심으로 딱 하면 그 순간 성불이에요 그게. 거기에는 자비심도 생기고 인욕심도 생기고 아무 분별 집착이 없으니까 불생불멸 법공좌에 딱 앉게 된단 말이죠. 그래서 이런 공덕으로 일체 수륙공계명양무주고혼영가들이 다 이 부처님의 가피로 불경계 공덕으로 이고득락하고 필경 성불하는 것이 불교 의식 작법의 법칙이거든요. 법문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