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신묘장구대다라니천독기도]1월 8일 신묘장구대다라니천독기도 회향 법문 2023-01-08

         신묘장구대다라니 천독을 회향을 하는 날인데, 다 하셨죠, 천독? 천독이라고 하는 게 쉽지 않은 건데 능히 이렇게 잘 해내셨다는 자체가 신묘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 신묘한 제가 예언을 가끔씩 하는데, 이게 딱 딱 들어맞는 예언만 제가 하거든요. 우리 신도들은, 우리 절의 신도들은 깜짝깜짝 놀랍니다. 지나고 나면 딱 들어맞거든요. 제가 여름에, 한참 더운 백중기도 때 어떤 예언을 했냐 하면, “동지 때가 되면 날이 제일 짧아지고 제일 추울 거다고 그랬어요. 요번에 또 제가 동짓날 가서 제가 예언을 또 했잖아요. “3월이 되면 살랑살랑 푸근한 바람이 불고 꽃이 필 거다, 개나리부터 제일 먼저 필 거다.” 이런 예언을 했거든요. 딱 맞은 예언이지요. 중요한 거는 끝말에 제가 여기 앉아 계신 모든 동참한 사람들이 그 노란 꽃, 개나리 꽃을 다 볼 거다.” 이렇게 예언했어요. 그런데 그 무거움을 잘 모르더라고요. ‘우리 스님은 농담을, 조크를 잘 하셔.’ 이렇게 하시는데 그게 아니고 어마어마한 축원이 거기 안에 들어있는 겁니다.
        요즘은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 사회라고 그러잖아요. 어디서 어떤 사고를 당할지 모르는 그런 불안 사회라고 하는데, 이럴 때 스님이 내년 이제 겨울이, 삼동 겨울이 가면 개나리 꽃 필 때 다 같이 개나리 보고, 또 벚꽃 보고 할 거다.” 이거는 다 건강하게 잘 날 거라는 얘기잖아요.
         그런 이제 간절한 축원이 있고, 그런 간절한 축원은 아마도 우리 진관사 신도들이 간절하게 했던 다라니 소원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올해 토끼해잖아요. 토끼가 꾀가 많은데, 교토삼굴( 狡兎三窟)이라는 옛말이 있어요. 그래 이 토끼는 굴을 세 개 꼭 판대요. 나가는데, 들어가는데, 또 맹수가 왔을 때 유인하는데. 유인하는 데 제일 많이 자기의 채취를 붙여 놓는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제 교자가 교환하다 이런 뜻인데, 교환하다 보다는 약간 좀 꾀가 많다, 이렇게 좀 봐야 되겠죠. 우리도 이제 토끼처럼 꾀가 많게, 올해는 굴을 세 가지로 파자. 들어갈 데, 나갈 데 말고, 자기가 이렇게 피해 있을 굴 하나 또 파자.

 

        저는 이 교토삼굴의 세 가지 굴 중에 중생이 파는 굴이 세 가지가 있고, 또 대승보살이 파는 굴이 세 가지가 있다고 봐요. 여러분은 지금까지는 요 중생심에서 늘 이 굴 세 개를 파고 살았어요. 그런데 그게 이런 다라니 기도라든지 또 진관사의 마음이 정원의 경험을 통해 가지고, 이 대승보살의 세 가지 굴로 전환되고 있는 거예요. 전환. 바뀌고 있는 과정이라고 봐요. 보살도를 통해서. 그래서 중생심으로 파는 세 가지, 그게 뭐냐 그러면, 뭐겠어요? 탐진치잖아요. 탐진치. 탐 내고, 화내고 또 어리석은 건데, 그 굴을 끊임없이 자기의 근기대로 파고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그 굴에서 머물다 가는 사람도 있고, 시절인연이 좋아가지고,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가지고, 이생에 와가지고 그 굴에 있다가고. 그 굴만이 아니라 또 다른 대승보살이 그러한 또 다른 굴 세개를 파는데, 그건 계정혜라고 하는 굴이에요. 계정혜 삼학.
우리가 올해는 탐진치에서 계정혜로 전환되는 그런 경험들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드리는데, 탐진치는 많이 들어서 알겠지만, 일상적으로 우리가 하고 있기 때문에 잘 몰라요. 욕심이 나고 화를 내고 있죠. 그리고 어리석다고 얘기하는데, 그 어리석다는 말은 아주 쉬운 말로 표현하면 빠져든다고 표현합니다. 빠져드는 현상. 화가 나는데 화로 빠져들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욕심이 나는데, 욕심이 욕심으로 빠져들고 있는 그 상태 그거는 어리석음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어리석음이라는 게 더 광의적으로는, 큰 뜻으로는 무지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더 현실적으로는 빠져들고 있는 상태예요. 물들고 있는 상태. 그거를 어리석다고 얘기를 하죠. 그런데 내가 화내고 있는 거, 내가 욕심이 나고 있는 걸 아는 것도 그것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이제는 계정혜 삼학으로 좀 우리가 옮겨야 되겠는데, 계정혜 삼학이라는 굴을 파야 되는데, 왜 그래야 되느냐. 이거는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위해서예요. 여기 앉아계신 분들 얼굴을 뵈니까 연령대가 나를 위해 기도할 때에요, 이제. 이미 늦은 분도 계셔요. 지금 나를 위해서 기도해요. 우리 불자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다 남편 위해, 자식 위해 합니다. 물론 이제 간절한 서원이 있으면 해야 되겠지만, 저는 올해 첫 천독 다라이를 끝내고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라 .” 우리는 나를 위해 기도를 잘 안 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은 내 마음 상태를 점검하고 살피는 시간들을 가져라.’는 거지요. 그게 지금 현재 탐진치에서 계정혜로 가는 것도 나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의 말씀은, 요약하자면, 남을 위해서 법문하신 게 아니에요. 나를 위해서, 나의 변화를 위해서 한 거거든요.
        제가 출가를 했는데 제가 출가를 왜 했겠어요. 큰 뜻은 당위적으로 많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출가했겠지만, 첫째로는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거예요. 출가라고 하는 게 변화거든요. 근데 그걸 이제 다른 말로 하면 관점이 바뀌는 거고 시점이 바뀌는 거예요. 관점이라고 하면 보는 궤적이 바뀌는 거잖아요. 시점도 마찬가지고. 보는 게 바뀌는 거거든요. 보는 게 바뀐다는 얘기는 생각이 바뀐다는 얘기고, 생각이 바뀐다는 얘기는 행동이 바뀐다는 얘기잖아요. 연결이 쭉 되는 거니까.

        자, 그러면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되는데, 부처님께서는 내가 변하는 걸 원하는 거예요. 부처님께서 우르벨라로 많은 제자들에게 전법을 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많은 사람들의 안락과 행복과 이익을 위해서이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에요. 그 안락과 행복과 이익을 요즘 말로 바꾸면 뭐예요? 행복하고 건강하다는 말이에요. 저는 경전을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게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늘 얼마나 간곡하게 말씀하시냐면, “제발 행복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제발 건강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이 두 가지 외에는 다른 것들은 다 군더더기에요. 우리가 중생의 몸으로 이생에 와서 인연을 맺고 부처님하고 인연을 맺는데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는 간절한 말씀은 제발 행복하라는, 제발 건강하라는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 간절한 가르침을 우리가 받고 있는데, 늘 행복하지 못해요. 다른 말로 불안해요. 또 하나는 늘 아파.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몸이 아프기도 하고.

        그러면 행복해야 되고, 또 건강해야 되는데, 누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되느냐. 누가요? 내가.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주위가 다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어요. 제 스스로가 이렇게 돌이켜보면, 제가 출가해서 얻은 가장 큰 복은 마음이 늘 만족하다는 거 하나하고, 또 몸이 건강하다는 거예요. 물론 이제 감기도 걸리고 때로는 무릎도 까지고 합니다. 그런 걸 얘기하는 게 아니고, 마음이 병이 걸려 가지고 늘 불안증에 사는 사람이 있어요. 원망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행복할 수가 없죠.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행복한 방법, 또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말씀하시고 계신 거예요. 그러면 건강하고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요? 행복하지 않은 요소들을 내 삶 속에서 제거해 나가면 돼요. 아주 간단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내가 건강하게 사는 원인을 분석해서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 되요. 그게 이제 욕심을 덜어내는 거잖아요, 쉽게 말하면. 근데 행복하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늘 마음이 불안해. 쫓기고 있단 말이에요. 뭔가 늘 만족하지 못해서 뭘 맨날 허덕이고 있단 말이에요. 그거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건강하라고 했는데 건강한 행동을 안 해. 맨날 뭔지 아시죠, 이거 맨날 마셔. 그리고 맨날 먹어. 탄수화물을 줄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빵을 끊지를 못해. 그리고 살 뺀다고 맨날 고생을 해요. 다이어트를 작심을 하는데, 항상 내일부터야. 오늘 저녁까지는 실컷 먹고. 건강하려면 운동을 해야 하잖아요. 움직여야 되잖아요. 근데 그것도 규칙적으로 해야 돼요. 규칙적으로. 그냥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요 행복과 건강이라고 하는 것은 꾸준하게 해야 돼요.
        이번에 월드컵이 있었잖아요. 지난 얘기지만 월드컵 때 우리나라에서 응원 구호가 있었어요. 중꺽마, 요즘 젊은 사람들 말대로 줄여서 중꺽마, 이렇게 표현하는데, ‘중요한 거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이런 이제 응원 구호가 있었어요. 저는 그걸 보면서 저거는 누군가 불교적 정서를 가진 사람이 카피를 하는 모양이다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는 게 중요한 거예요. 다라니를 천독을 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뭐냐면 꺾이지 않는 마음이거든요. 그래야 회향할 수 있잖아요. 나를 위한 기도, 나를 위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고 꺽이지 않는 마음으로 행복과 건강을 하나하나 회복해 가는 게 중요한 거예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지금 얘기했듯이 행복하고 건강하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돼요. 내가 어떤 사람인가. 어떤 마음의 작용을 하고 있고, 어떤 언어적 습관을 가지고 있고, 어떤 행위적인 그런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해요. 여러분은 이제 우리 불교에서 얘기할 때, 물론 불교의 전통적인 사상은 아니지만, 윤회라는 게 있잖아요. 근데 우리 한국에서는 윤회를 불교 사상으로 이해하고 있죠. 출발점은 물론 그게 아닌데, 윤회라고 하는데 이제 내가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지금 살림살이를 다 정리해 보면 요 질문에 답을 어떻게 하냐가 달라지는 거예요. 여러분이 다시 그대로 태어난다면은 그대로 태어날 사람? 나는 태어나겠다. 태어나가지고 지금의 남편과 지금의 부인과, -지금 벌써 눈 돌리는 사람이 있어, 벌써 이미 돌아가는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여기까지 얘기했는데- 지금의 자식들을 만나가지고 그대로 또 한 생을 살겠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겠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죠. 여러분은 어떠세요? 한 번 그대로 한번 또 살아볼까요? 아니에요. 왜 아니에요? 이보다 좋을 수가 없는데. 윤회라는 것이, 이제 우리가 윤회사상을 왜 믿냐면, 지금 내 살림살이를 그대로 물려받는다면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느냐. 이거는 노후한 사람들은 뭐냐면 많이 힘든 거예요. 힘든 거. 힘들었던 거 힘들어 왔거나 현재 힘든 거죠. 근데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 종자가 언젠가 싹을 틔워요. 그러니까 나를 위한 기도를 하는 이유가 뭐냐면 여러분이 지금의 인연들을 그대로 내가 물려받는다 하더라도 내가 능히 그걸 물려받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어요? 내가 똑같이 물려받는데 나 정말 힘들어, 나 못할 것 같아, 이렇게 마음이 혹시라도 드는 사람은 그 마음을 전환시켜야 돼요. 그래야 소멸됩니다. 지겨워서 못살겠어, 아주 그냥. 지긋지긋해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만약에 그런 마음이 드는 사람은 마음 챙김을 해야해요. 그 마음 종자를 그냥 두고, 다라니를 천독을 하는 건 어떤 거냐면, 좋은 옷을 내가 오늘 사 입는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은 옷이 이쁘니까 달라지죠, 달라 보이죠, 사람이. 근데 그 옷이 해지고 낡아지고 때가 묻으면 어떻게 돼요. 그때로 돌아가는 거지. 그 마음을 정리를 해야 돼요.

 

        그래서 다라니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거는 나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기도를 해야 돼요. 지금의 인연들에 대해서. 그 전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의 인연들에 대해서 자비한 마음을 가져야 되요, 자비한 마음을. 지금의 인연들에 대해서 내가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되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연들에 대해서 내가 찬탄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 세 가지가 자기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에요.
        다라니 기도를 막 했는데 열심히 했어요. 다라니 기도할 때는 마음이 기쁘고 법열로 가득 찼는데, 마치고 집에 돌아가 면상을 보는 순간 마음에서 부글부글 올라와. 자기도 몰래 한숨이 나와. 이러면 비싼 옷 사 입고 구정물에 들어가는 꼴이 되는 거예요. 아무 소용 없는 거예요. 마음을 바꿔야 해요. 자비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찬탄의 마음으로 바꿔야 한다.

 

        자비한 마음이라고 하는 건 뭐예요. 자비는 항상 따뜻하고 온화하게 보는 거예요. 긍정적인 마음이에요. 쉽게 말하면 긍정적인 마음. 불안하고 힘들고 죽을 맛이고 이런 것이 아니고, 그 어떤 인연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자비심이에요. 다른 말로 감사한 마음일 수 있는데, 중요한 건 뭐냐면, 찬탄의 마음이라는 거죠. 여러분이 지금 여기 앞에 다라니가 있잖아요. 다라니를 해석해보면, 우리가 해석하고 있지 않지만, 해석해보면 관세음보살의 덕성을 찬탄하는 거예요. 이 관세음보살님은 이렇게 해서 훌륭하시고,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관세음보살님 이래서 내가 귀의를 하고,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관세음보살님은 이런 모습이기 때문에 내가 귀의할 수밖에 없고.. 찬탄 구조에요. 우리가 왜 찬탄을 하겠어요. 관세음을 찬탄하는 마음으로 나한테 주어진 모든 인연들을 찬탄하라는 얘깁니다. 관세음보살이니까 찬탄하는 거예요. 스님, 우리 집안 우리 집에 있는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봐왔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또 그렇게 왔다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부터 찬탄을 해야 됩니다. 찬탄을 해야 돼요. 그래야지 내가 편안해져요. 이 우주의 시작과 끝은 나부터 시작됐다는 거, 나부터 끝납니다. 뒤집어 볶고 많은 사연들이 있어도, 내가 사대 육신이 흩어져 버리면 끝나는 거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다라니도 할 수가 없고, 다라니를 통해서 자비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과 찬탄의 마음도 할 수 없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 인연 있을 때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인연들에 대해서 변화해야 됩니다. 그게 다라니기도의 최후의 목적지가 돼요.
        그래야지만이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고 자기 자신이 건강해질 수가 있어요. 그러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여러분은 다라니를 읽으면서, 앞으로는 다라니를 쭉 읽을 때 이렇게 눈을 지그시 감고, 천독할 때 단 한 독이라도, 999독은 남편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또 나와 함께 인연을 위해서 하고, 999독 외에 한독은 나를 위해서 하십시오. 눈을 지그시 감고, 자기 마음을 향해서 다라니를 하세요. 만약에 그게 진심으로 맞닥뜨린다면 여러분은 뜨거운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뜨거운 눈물이, 뜨거운 환희가 내 마음에서 올라오는 거예요. ? 내가 이생에 와서 내가 나 스스로에게 빚진 게 많거든요. 나한테 저질렀던 그 많은 인권 침해 사례들이 막 올라올 거예요. 내가 내자신에서 제일 많이 인권 침해하거든요. 인권이 뭔지 아시죠, 인권. 사람이 가져야 되는 천부의 권리에요. 그걸 인권이라고 하는데, 자기 인권을 잘 챙기지 않고 살아요. 자기 자신을 자기가 제일 괴롭히고 살거든요. 근데 저 다라니 천독을 통해 자기 자신을 딱 비춰보면, 자기 자신이 자기한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자기가 자기한테 얼마나 많은 흠집을 냈는지를 알 수가 있어요. 그러면서 그것이 메꿔지는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은 하면 좋겠지만, 하루에 한 번이 안 된다면 한 번이라도 집에 가셔가지고 혼자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반조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우리가 그동안에는 계속 밖을 향해서 보던 시각, 버릇들이 있어요. 다라니 할 때도 보면은 생각이 여기 가 있어요. 제가 경험해봐서 알아요. 저 다라니 천독 기도를 해보면 입에서는 다라니가 자동으로 나오는데 이제 자동으로 되잖아요. 그죠. 오토가 돼. 오토. 목탁 치면서 하다 보면 목탁도 오토에요. 목탁 오토로 가는데 다라니도 오토야. 근데 가끔씩 내가 깜짝 놀란 게 뭐냐면, 마음은 다른 데 가 있어요. 불사 생각을 한다든가, 저번에 왔던 그 보살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 줘야 되나 그런 생각도 하고, 여러 생각들이. 깜짝깜짝 놀라죠. 그때마다 당겨 오는데, 그 당겨오는 마음을 다른 말로 반조라고 해요. 반조. 반조 이러는데 집에서 이렇게 해보셔야 되고, 또 법당에 와서도 그런 시간들을 반드시 가져야 됩니다. 이렇게 시각을 관점을 자기 자신을 보고 이렇게 돌리는 연습을 해야 되는데, 이걸 열심히 하면은 이런 말할 때도 자기 자신을 보면서 말을 하게 되요. 이걸 일여라고 그래요, 한결 같다. 그런 힘이 생겨요. 빠져들지 않죠. 어떤 상황이라도 놀라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고. 두렵지 않고 겁나지 않고 걱정이 없으니까 어떻게 돼요. 전도될 생각이 올라오지 않는 거에요. 그런 과정인데, 그런 거 잘 안 된다 그러면은 이렇게 손을 엑스자로 이렇게 가슴에 놓고, 아니면 다라니를 할 때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도 집중이 안되면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숙여요. 왼쪽으로 숙이면 안 돼요. 오른쪽으로 이렇게 잘 숙여보세요. 그리고 생각하기에는 어머니의 품에 들어있다. 어머니 품이라는 거는 관세음보살님의 품에 안겨 있다. 살짝 안겨 있는 게 아니라 폭 안겨있다 생각하고, 그리고 그 다라니를 자신을 위해서 딱 일독만 하세요. 그렇게 한번 딱 하고 나면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자신을 아끼게 돼요. 이 사랑하고 아끼라는 말은 자기에게 집착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집착과 별개의 색깔이에요. 결이 달라요. 자기를 정말 아껴야, 소중하게 자기 자신을 바라봐야지만이, 타인을 안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우리가 왜 남편이나 자식이나 내지는 가까운 이웃에 여러 가지 갈등과 대립과 내지는 여러 가지 그런 서로간에 지청구를 하냐면 내 꿈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부처님이 우리한테 야단치는 거 보셨습니까. 부처님은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야단치신 적이 없죠. ? 늘 저렇게 앉아 계시니까. 늘 밝은 미소로 저기 앉아 계시니까 야단치지 않잖아요. 그 얘기는 그 부처님의 품이, 관세음보살님의 품이 광대무변하기 때문이에요. 어떠한 꼬라지를 봐도 그 꼬라지 다 봐주고 이해하고 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꼬라지를 못 보잖아요. 꼬라지 좀 낮춘 말인가요. 꼴을 보려고 꼴이 이 얼굴이잖아요. 얼굴이라는 말은 얼의 꼴, 이렇게 변형된 말이라고 그래요. 그 꼴을 좀 보고 살려면 내 자신의 품이 넓어야 되요. 내 자신의 품이 넓으려면은 내가 변화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계묘년에는 나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자. 그리고 아까 들으니까 6월에 천독 기도가 또 있다고 그러죠. 그러면 저랑 약속 하시는 거예요. 약속해줘. 약속해줘 해야 돼요. 999독은 가족을 위해서, 인연들을 위해서 하고, 그 한독은 누구를 위해서 한다? 나를 위해서 한다. 하다가 집중하려면 어떻게 한다. 이렇게 한다(가슴에 엑스자로 품고). 기도를 해가지고 올해는 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늘 최고로 여기는 명품 자아를 찾기를 바라면서, 제가 말 서두에 예언을 하나 했잖아요. ‘3월이면 꽃이 필 거다’, 이건 뭐 틀림없는 얘길 거예요. 안 맞으면 큰일 나는 거예요. 안 맞으면은 이게 지구가 이상해지는 거야. 꼭 맞아야 되는 건데요. 지금 올라오면서 보니까 우리 진관사 계곡 골짜기의 바람이 매서워요. 그렇죠. 차갑죠. 그런데 그 차가운 바람 사이로 봄 내음이 있어요. 혹시라도 확인하고 싶은 분들은 법회 끝나고 나가서 골짜기에 서서 가슴을 열고 심호흡을 크게 해보세요. 그럼 냉기가 확 들어올 거에요. 그런데 그 냉기 안에 봄 향기가 있다. 봄 내음이 있다. 이걸 잊으면 안 돼요. 다르게 표현하면 지금 힘들고 어렵고 벅차고 여러 가지 장애가 있지만, 그 어렵고 힘든 과정 속에 부처님의 가피가 내려오고 있다. 마치 이 엄동설한에 칼바람 사이에 봄 향기가 있듯이, 그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 그런 마음들이 중요하다. 올해는 계묘년에는 어느 해 보다도 나를 위한 그런 마음으로 지금 현재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그 안에 풋풋한 봄 내음이 있다는 걸 잊지 마시고 늘 자비하고 감사하고 찬탄한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