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백중기도] 8월 16일 백중기도 4재 법문 2025-08-16

안녕하십니까? 제가 막 떨고 있는 게 보이시나 봐요.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환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진관사 기획국장이면서 어린이법회 법사 소임을 보고 있는 동우라고 합니다. 2600년 전에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하신 진리의 말씀을 제가 이 자리에서 법문하게 된 인연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를 응원하러 아이들이 왔어요. 쟤네가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 눈앞에 우리 운산 법우님, 종민 법우님 다 이렇게 있습니다. 자 사분율장에 증일 비니라는 곳과 또 반니원경 유행경이라는 부처님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이제 입멸하시기, 돌아가시기 전에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제 열반에 드신다고 선언하신 것은 당신을 늘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또 귀의했던 많은 수행자들에겐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큰 소식이었는데요.

 

이 때문에 늘 부처님을 곁에서 시봉했던 부처님의 가장 가까이에서 시봉했던 아난 존자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늘 매일 슬퍼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매일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난 존자를 보고 지혜로운 장로 스님 한 분이 아난 존자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존자시여, 당신 지금 이렇게 울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제 마땅히 부처님께 여쭈어야 할 것, 물어야 할 것을 얼른 물어보십시오라고 지금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에 아난 존자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부처님께 다섯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부처님이 입멸하시면 저희는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내가 죽으면 그러니까 내가 입멸을 하면 너희들은 사념처(四念處)에 의지하여 머물고 수행하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념처라고 하면 신수심법(身受心法)에 대해서 관하고 의지해서 머물라는 뜻인데요. ()’이라는 것은 바로 몸을 이야기합니다. 이 몸의 호흡, 그리고 몸 내 안에 장기, 여러 가지 내 물질이라고 하는 이 몸을 관하고 거기에 머물러 수행하라는 말이 이제 신념처이고요. 더 나아가서는 몸의 부정함까지도 관하는 이런 수행법입니다. 이렇게 신수심법 가운데 신념처에 의지해 수행하라. 두 번째는 수념처. 수념처라고 하면 상대나 대상이나 어떤 경계에 당했을 때 내가 늘 좋다, 좋지 않다 싫다, 그저 그렇다, 또 좋지도 싫지도 않다라고 하는 그런 느낌을 받는 수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수념처이고요.

 

또 심념처라고 하는 것은 이제 오고 가는 마음의 인연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념처라고 하면 우주 만물, 그러니까 나라는 물질을 비롯한 이 우주 전체가 돌아가는 어떤 원리. 예를 들어서 생로병사하고 생주이멸하고 성주괴공한다는 우주 전체의 원리가 결국은 무상(無常(무아(無我)라는 사성제(四聖諦)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늘 그것이 항상하지 않다는 법을 여실히 보고 관찰하라는 이 사념처에 의지하라는 말을 하십니다.

 

첫 번째 질문이 이렇게 되고요. 두 번째 질문을 또 합니다. 중요한 5가지 질문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면 저희는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 수행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잘 아시겠지만 늘 1250인의 큰 아라한들을, 대단한 아라한들을 이렇게 거동하고 다니셨잖아요. 그래서 부처님 주변에는 부처님과 같이 깨달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난이 누구를 의지해서 스승 삼아 수행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는데 부처님께서는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고 너희들은 반드시 계율(戒律)을 의지하여 스승 삼아 살아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이계위사(以戒爲師)’라고 합니다. 그래서 계율을 스승 삼아 수행하라라고 말씀 합니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이제 세 번째 질문은 부처님께서 입멸을 하시면 저희가 부처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결집하고 또 만들어서 후대에 전해야 하는데 이런 경장이나 율장이나 논장과 같은 부처님 말씀은 저희들이 어떻게 시작해서 전해야 합니까?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합니까라는 뜻입니다. 이 말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고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즉 전문 용어로 이것도 뭐죠? ‘여시아문(如是我聞)’입니다. 그래서 아난이 내게 들은 말은 분명한 것이고 이것이 부처님 내가 직접 한 말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 어느 누구도 시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이 이제 세 번째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이제 네 번째 질문입니다. 네 번째 질문은 부처님 재세시에도 말을 안 듣는 비구들이 있었어요. 이제 말을 안 듣는 비구를 저희는 악성 비구라고 합니다. 악한 성품을 가진 비구예요. 여러분들 잘 알고 있는 악성 비구 중에 누구 있어요? 제바달다가 있어요. 그런데 제바달다 말고도 또 유명한 비구가 있는데 이름이 찬타비구입니다. 이 찬타비구는 부처님이 출가하시기 전부터 부처님을 모셨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왕자 시절부터 부처님을 모시고 부처님께서 이제 야쇼다라와 라홀라를 뒤로 하고 성을 넘어 말을 타고 깊은 산속의 수행처로 갔을 때 이 말을 끌었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찬타카라고도 알고 있고 한역해서 찬타라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찬타가 이제 부처님을 수행처에 안전히 모셔다 드리고 나서 부처님께서 이제 머리를 단번에 자르시고 당신이 갖고 있던 모든 금은 영락 보배에 걸치고 있던 것을 찬타에게 주고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찬타는 이것을 받고 돌아가서 부처님 출가하시는 것을 왕궁에 알리고 나자마자 바로 부처님을 따라 출가를 합니다. 그래서 이 찬타는 이제 비구가 그래서 됩니다. 수행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 찬타비구가 교만한 마음이 안에 있었어요. 어떤 교만한 마음이냐면 나는, 그러니까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시고 난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부처님께서 이제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난 다음에 찬타비구에게 이제 아주 교만한 마음이 생겼는데 그 마음이 뭐냐 하면 나 이 찬타는 정각을 이루신 부처님을 출가시킨 사람이다라는 교만한 마음이 안에 들었어요. 내가 모셨던 사람은 정각을 이룬 부처님이니 당신들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시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잘못을 해서 잘못을 꾸짖고 서로 모여서 대중이 함께 갈마를 할 때도 이 갈마를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마음대로 했습니다. 이런 악성 비구였어요. 그래서 부처님께 이제 묻습니다. 찬타라고 꼬집어서 얘기는 하지 않고 찬타 말고도 많은 악성 비구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악성 비구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자 부처님께서는 묵빈대처(黙賓對處)하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묵빈대처라고 하는 것은 뭐죠? ‘말을 하지 말라상대를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상대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 자숙해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생각을 본인이 분명히 할 것이니 절대로 상대에서 이야기하지 말라라고 네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셨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 중요한 질문입니다. 아난이 부처님께 드린 마지막 질문은 부처님께서 입멸하시면 저희는 어떻게 장례를 치러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나의 장례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장례에 준해서 치르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전륜성왕의 장래라는 것은 이제 돌아간 시신을 깨끗한 여러 겹의 천으로 싸서 그 위에 향유를 붓고요. 그다음에 전단향이라는 향으로 태워서 시신을 화장하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이 시신을 이제 화장하고 나면 사리가 나올 건데 이 사리를 분배하고 공양하는 것은 수행자가 하지 말고 재가자가 하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5가지 중요한 질문을 부처님께 드리고 또 답변을 받습니다.

 

경전에 이런 얘기 많이 나오죠. 시대가 흐리고 견해가 흐리고 생명이 흐리고 번뇌가 흐리고 또 중생이 흐린 시대를 오탁악세(五濁惡世)라고 하는데요. 이 오탁악세에서 요즘과 같이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서 진짜인가? 이거 거짓인가? 저 말 맞나?’라고 하는 이 정의가 흐려지는 이 세상에서 부처님께서 남기신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라라고 하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요즘 같아서는 정말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너무 초롱초롱하게 저를 보셔 가지고 제가 갑자기 어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자 이것은 이제 갑자기에요. 자 이것은 단어입니다. 선물이 여기 있습니다. 이 단어는 2025년도에 유행하는 단어이고요. 현재 진행형의 단어이고요. 굉장히 트렌디한 단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계율의 그것과도 맞닿아 있는 단어입니다. 자 힌트 나가겠습니다. 나에게 자극을 주거나 상처를 주지 않고 오히려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대표적으로 이제 에버랜드의 푸바오 루이바오 푸바오 중국 같지만 아이바오 루이바오 후이바오 같은 이런 팬더 귀여운 팬더, 그리고 집에서 기르고 있는 고양이 강아지 아니 햄스터 토끼 이런 반려동물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때 이 말을 씁니다. 순수하고 귀엽고 작고 소중한 것. 우리 여기 있는 법성 법우님에게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입니다. 이 단어 무엇일까요?

 

이거 못 맞출 줄 몰랐네요. 저 맞추실 줄 알아 가지고. 자 당황스러워요. 초성은 미음 히읗입니다. 미음 히읗. 제가 여기 손에 선물을 두 개나 가져왔는데. 아 모르시군요, 진짜. 아 정말 모르실 줄. , 이거는 이제. 아유 참. 어 그러니까 첫 자가 아니라 초성이 미음 히읗이라고요. 마하? 무흣 아닙니다. 갑자기 너무 당황스럽습니다. 자 이 말을요 어떨 때 쓰냐면 아 막 예쁜 아기가 막 이렇게 지나가잖아요. 우리 세준이 같은 이런 어린이들이 딱 지나가면 보기만 해도 너무 좋죠. 보기만 해도 너무 마음이 편안하고 지나가는 고양이나 강아지 이런 거 보면 작고 귀엽고 참 소중하다. 이럴 때 사람들은 무해한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어려워요? 자 그래서 아우 참 세상 무해하다이런 말 하시잖아요. 그죠? “세상 무해하다. 아우 참 무해하다. 내게 무해한 사람오죽하면 오늘 뭐해가 아니라 오늘 무해이런 말도 쓴(대요). 너무 스님이 트렌디한데 트렌디, 그래요. 자 그래요. 그래서 이 무해라는 단어가 없을 무해칠 해자를 씁니다. 해로움이 없다, 해침이 없다라는 뜻으로 TV 광고나 프로그램 SNS 등에 많이 썸네일로 쓰이고 있는 단어가 바로 없을 무자 해칠 해자의 무해입니다.

 

이런 무해한 것들이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유가 있는데요. 여기 진관사의 신도님들은 굳이 이 단어에 사로잡히지 않으신 것 같아요. 아무도. 자 어쨌든 이 무해한 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안정적이게 해주고 지친 마음을 회복시키거나 재충전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갖고 있습니다. 집에 가서 고양이 잠깐만 만져도 밖에서 있었던 많은 그런 것들이 없어지는 건 이 무해한 느낌을 이 반려동물에게 받기 때문인 거거든요. 그렇답니다. 그래서 해롭지 않은 사람 나를 해치지 않고 보기만 봐도 안정적이게 느끼게 하는 이런 무해한 사람의 원조 누구일까요? 석가모니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무해한 분의 원조라고 이야기 드릴 수 있는 한 일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늘 이런 악성 비구들에게 시달림을 당했는데 제가 아까 말씀드린 제바달다라는 비구가 늘 교단의 중심에 서서 본인이 부처님을 제끼고 이 위에 서서 리더가 되기를 늘 원했어요.

 

그래서 이 많은 부처님을 음해하는 행위들을 합니다. 지나가시는 길에 언덕에서 바위를 굴려서 부처님 몸에 흉터를 내기도 했던 그런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죄를 짓기도 했고요. 어느 날 이제 이 제바달다가 아사세왕이라는 왕을 시켜서 또 부처님을 음해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시켰냐면 아사세왕에게 큰 코끼리를 모집해서 그들에게 독한 술을 먹여라. 독한 술을 먹여가지고 그들이 취해서 부처님 가는 길에 풀어놓아라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가는 길에 이 술 취한 코끼리를 아사세왕으로 하여금 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저쪽에서 이제 술 취한 코끼리들이 막 다가오는데 부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전혀 미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부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다 숨죽여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는데 부처님만은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점차 코끼리는 다가오다가 점차 걸음을 느릿하게 걷고 마침내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또 부처님 발을 핥고 그 위에 있는 먼지를 털어내기까지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떠한 성난 그리고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이것을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자비의 힘으로, 무해한 힘으로, 무해하다는 건 생명을 존중하는 힘입니다. 이 힘으로 그 코끼리를 제압했다는 것이 이제 부처님께서 무해한 존재의 원조라고 제가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무해한 존재 저도 되고 싶죠. 제가 집에 가면 아이들이 방문을 이제 닫고 들어간다든가 혹은 집에 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든가 이것은 뭔가 나를 해로운 존재로 여겨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많은 가족 사이에서도 도반 사이에서도 사회에서도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럼 결국 그 답은 불교 안에 있고요. 그 무해한 존재의 원조인 부처님 가르침 안에 있다는 것을 저희는 꼭 알아야 합니다.

 

무해한 존재가 되는 첫 번째 방법. 자 생명을 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나에게 손만 올리고 잠깐 이렇게만 해도 위협을 느낍니다. 굉장히 긴장되고 뭔가 생명의 위협을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해치려는 마음의 에너지가 없으면 그런 마음이 들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에너지는 어떻게 쌓이냐면 작은 생명부터 하찮고 소홀히 여기면서 괜히 죽이지 않는 그런 마음에서부터 이 부드럽고 생명을 존엄하는 에너지는 나옵니다. 내가 어떤 생명을 존엄하는 에너지가 내 마음 깊이 쌓이면 사람들은 나를 해로운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뭐라고요? 생명을 해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다른 사람의 소유를 해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소유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근데 그 못된 마음이 있어요.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거이 마음 있죠.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거라는 그런 마음을 저는 도둑 마음이라고 늘 얘기합니다. 그리고 하열한 감정 가운데 가장 하열한 감정은 시기심, 질투심, 경쟁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지금 도둑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보면서 뺏으려는 에너지가 없으면 나를 안전한 존재로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혹시 아까 내가 맡아놨던 자리에 누군가 앉았더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세 번째 관계와 신뢰를 해치지 않습니다. 관계와 신뢰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경향이 있어요. 밖에서 좋은 사람인데 집에만 오면 막 쌩쌩하고 말과 몸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소중한 관계, 사소한 관계, 귀한 사람일수록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에서 사람들은 나를 믿을 수 있는 존재로 여깁니다.

 

네 번째 방법입니다. 말로 상대의 마음을 해치지 말라입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죠? 말에는 힘이 있어서 사람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합니다. 그래서 말로는 또 병을 치유할 수도 있습니다. 깊은 병을 치료할 수 있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말로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지금 내가 이거 할 말인지 안 할 말인지 잠깐만 생각해도 이 말로 사람을 해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과 대화를 할 때 이 생각만 잠깐 해도 사람들은 나와 대화하고 싶어 하고 나를 편안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는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을 해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술이나 마약, 게임 이런 중독성 있는 것들에 대해서 나를 보호하는 거예요. 특히 우리 어린이들 게임, 쇼츠, 유튜브 이런 것들에 내가 늘 중독되어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것은 나를 해칠 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도 불안하게 하는 그런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나를 소중히 생각하면 당연히 주변도 편안한 분위기로 바뀌고 나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그런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무해한 사람이 되는 다섯 가지 방법 어디 뭐 비슷하죠?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오계(五戒)를 현대적으로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계율은 부처님 재세시부터 또 부처님의 석가모니 부처님 그전부터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한결같이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이것을 5가지로 풀고, 10가지로 풀고, 8가지로 풀고 우리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240가지, 348개까지 여러 가지로 이렇게 방대하게 풀어놓았는데요. 결국은 과거의 부처님들이 말씀하셨던 모든 악한 짓을 짓지 말고 선하고 착한 것을 받들어 행하라.’ ‘그것을 꼭 지켜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와 진배없느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말로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라고 합니다.

 

이 칠불통계게, 어쨌든 오계, 이런 말들이 백중 4재와 무슨 상관이 있어야죠? 그죠. 지금 백중 4재와 무슨 상관이에요? 계를 지키는 것과 나의 부모님을, 나의 조상님을 천도시키는 것은 굉장히 큰 연관이 있습니다. 백중의 49, 1재부터 7재까지의 재. 그리고 진관사의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 그리고 여러분 많이 들어보셨던 천도재, 영산재, 예수, 생전예수 재. 이럴 때에 마지막에 붙는 재자는요. 유교에서 말하는 제사(祭事)의 제()자가 아닙니다. 이 재()자는 공손이 받들어 모신다는 뜻의 재자이고요. 첫 번째 의미 공손히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가 있고요. 두 번째 의미는 재계(齋戒)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재계하다의 이 재자는 가지런히, 계를 가지런히 반듯하게 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백중 49재나 천도재 할 때나 영산재, 수륙재, 모든 재가 들어가는. 하다못해 불교 달력에서 관음재일, 미타재일, 지장재일이라는 재자는 모두 이 재개의 재자를 씁니다.

 

육재일이 있어요. 지장보살 본원경에는 십재일이 나오는데 부처님 재세 시에는 육재일을 모든 수행자가 지켰습니다. 그 육재일은 매달 8141523일 그리고 그믐 날, 그믐 전날입니다. 이 육재일을 반듯하게 지켜서 계를 가지런히 하라는 뜻이 담겨 있거든요. 그래서 백중에서 계를 가지런히 한다는 것은 당연히 여기 오시는 분들께서 계를 지키셔야 하는 기간이라는 뜻입니다. 반듯하게 계를 지키는 것이, 지키는 그 공덕이 온전히 나의 조상과 나의 부모에게 전해져서 그 공덕으로 그들이 해탈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이 선택한 진관사는요. 1365일 가운데, 제가 아까 이제 들어오기 전에 샅샅이 따져 보니까 한 300일 정도는 계를 지켜야 되는 날이더라고요.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 학교. 수륙재 할 때 수륙재 학교. 그다음에 백중 있죠. 그리고 그 중간에 초하루 신중 삼일 기도 있죠. 지장기도 있죠. 수능 엄마들 수능 기도해야 되죠. 이거 다 따져보니까 300일 정도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마땅히 절에 오기 전에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 걸리는 날 아닌가? 오늘 뭐 먹어도 되나? 저녁에 뭐 마셔도 되나? 이러다가 그다음 날 생각하죠. 나 어제 그거 마셨는데 가도 될까, 안 될까? 고민하셔야 됩니다. 진관사가 365일 가운데 300일 동안이나 재계할 수 있는 날들을 여러분 알게 모르게 만들어 놨어요. 모르셨죠? 그래서 사실은 매일 지키셔야 합니다.

 

매일 지키는 공덕으로 저희가 이제 기도 삼고 또 그렇게 하는데, 사실은 이 계를 지키면요 내가 어디 양심에 걸리거나 찔리거나 신경 쓰는 사람이 있거나 후회되는 일이 없고, 또 늘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긴장되지 않기 때문에 내 스스로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진관사를 선택한 또 여러분들이 이 계율 도량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 오셔서 또 계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1977년에 자운율사라고 하는 큰 율사 스님께서 진관사에 입적하신 노스님인 진관스님과 함께 진관사에서 국행수륙재를 다시 복원해서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리고 작년에 2024년에 무봉 성우 큰스님께서는 저희 진관사의 회주스님께 또 전계를 하셨습니다. 계율 계맥을 전승하셨습니다. 이렇게 계율이 전승되어지는 도량도 있고요.

 

또 더 멀리 조금 가면 진관사 북한산 자락에 비봉이 있습니다. 이 비봉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시죠? 신라 진흥왕입니다. 이 비봉의 주인공은 신라 진흥왕인데 이 신라의 신라가 계를 이야기하는 산스크리트어인 실라(śīla)’에서 차용해서 신라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예전에 일타스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이 비봉 아래에 자리한 진관사는 계율 도량일 수밖에 없다. 조금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가벼우면서도 뭔가 이 도량은 계율을 지키는 도량이니까 불보살과 호법 선신이 늘 보호하시고 호념하시는 곳이지라는 안전한 생각을 갖고 다니시면 좋겠습니다.

 

자 그래서 이렇게 제가 계율을 지키는 것은, 내가 계율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내가 지키는 바르고 착한 에너지의 공덕으로 나의 부모님이 모든 그 계율의 공덕을 통해 천도 되고 좋은 곳에 왕생하신다라는 것으로 이런 의미를 전달할 수가 있겠습니다. 계율로 청정해진 마음으로 일심으로 정성을 들여서 그 일심으로 드린 정성으로 많은 분들이 또 조상님들께서 업장이 소멸되기를 발원합니다. 몸과 말과 생각으로 한량없이 지은 죄와 무수한 원결이 풀어져서 보리심으로 큰 서원을 세우시고 나쁜 짓 멀리하고 다시 짓지 아니한다는 생각을 하십시오. 또한 보살도를 항상 닦아서 물러남이 없는 정각을 이루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큰 서원을 함께 세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이 회향이 과거 모든 부처님들께서 하셨던 회향과 같기를 발원하며 오늘 4<계율, 공덕을 짓는 첫 마음>이라는 법문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