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다라니천독기도] 11월14일 다라니천독기도 회향 법문 2021-11-14

 

      대단히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분들을 법의 자리에 모시고 함께 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찔끔 나려고 하네요.

      고맙습니다. 천독기도, 다라니 천독기도 회향하시죠. 제가 와서 이 잔에 차를 줘서 딱 여니까 김이 모락모락 나요. 김이 왜 날까요. 뜨거우니까 나죠. 다라니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신심을 끓이는 과정이에요. 여러분이 천독을 하고 나면 뜨거운 찻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듯이, 여러분의 신심에 향기가 모락모락 지금 이 법당 안에 가득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이 김이 나는 이유가 있어요. 뜨거워서도 있지만, 이 물보다 바깥이 더 차가워서예요. 우리의 신심이나 열정이나 부처님을 향한 열정이라고 하는 것은 내 주위의 환경들이 더 안 좋고 더 어렵고 더 어지러울 때, 그 빛은 더 깊이 나는 겁니다.

      천독기도라는 것은 뭐가 잘 돼서 하는 게 아니라 어려운 생활 속에서, 어지러운 마음속에서 그걸 바탕으로 하는 거죠. 또 다음 주면 수능시험이에요. 여기 보니까 고3 엄마들이 있어요. 3 엄마들이 눈빛이 간절하거든요. 달라요, 눈빛이. 3 엄마들이 자녀들의 합격을 위해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를 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천독기도를 했으니까 소원이 다 이루어지라고 하는 의미에서 우리 서로에게 큰 박수 한번 보내주십시오.

      진관사에서 대학 입시 합격 천독기도를 한 분들은 딱 붙어버릴 거예요. 그렇게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근데 이번에 천독기도는 덕원스님이 일독부터 천독을 했어요. 아까 진관사 유튜브에 잠깐 들어가 보니까 덕원스님, 덕원스님, 온통 칭찬이었어요. 그래서 덕원스님을 비롯해서 우리 주지스님, 총무스님, 또 같이 기도한 우리 대중 스님들에게도 박수 한번 보내주세요.

      고맙습니다. 이 천독기도라고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겁니다. 108독만 해도 어려운데, 그죠. 천독이라고 하는 것은 며칠간 정성을 들여서, 그 천독하는 그 사이사이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들이 있겠습니까. 아마 우리 진관사에 지금 유튜브를 보고 계신 분들이나 현장에 나와 계신 분들이나 이 천독의 그 마음 마음들을 다 모아놓으면, 그 모아놓은 마음 마음들이 경전으로 치면 8만대장경입니다. 그 마음 마음대로 다 이루어지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말씀을 설했고, 그게 경전으로 이루어지게 된 거죠. 결국은 여러분의 그 간절한 마음들이 경전이라는 겁니다. 근데 그 경전이 잘 쓰여져야 되는데, 경전이 잘못 쓰여지면 안 되잖아요. 그 경전들을, 우리 마음의 경전들을 줄여서 심경이라고 그러잖아요, 마음의 경전. 근데 심경할 때, 반야심경할 때도 심경인데 마음 심자 써가지고, 그 심은 핵심이라는 뜻이에요. 핵심. 심경은 마음의 경 이렇게 해석도 되지만 핵심된 가르침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는 게 맞죠. 우리가 천독기도를 하고 나서 어떻게 해야지만이 핵심된 가르침을 우리가 제대로 수지할 수 있는지, 받아 지닐 수 있는지 그러한 것들을 오늘 좀 나눠볼까 합니다.

      우리가 천수경 대다라니를 풀네임으로 뭐라고 하냐면, 잘 아시겠지만,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입니다. 이게 풀네임이에요. 여기에 다라니를 우리가 독송해야 할 이유가 다 담겨 있어요. 이것만 이해하면 다 끝나요. 더이상 뭐 논할 게 없어요. 논하면 다 군더더기에요. 이것만 이해해야 되고, 더 나아가서는 이 풀네임에 우리 불자들이 다라니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그러한 지향점일까 가치랄까가 다 그 안에 녹아 있어요. 이걸 이해해야 됩니다. 이 풀네임에 나와 있는 천수천안 관자재보살의 광대 원만한 무애한 대비심의 대다라니라는 것을 이해를 해야 해요. 그래야지만 다라니를 제대로 독송한 거예요.

      다라니를 독송하는 이유는 단순하게 우리가 일반사회에서 어떠한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것도 되지만, 궁극적으로 다라니를 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바르게 깨치기 위한 거예요. 이걸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 불자들이 다라니라고 하는 것을 의지하면서, 다른 말로는 진언이라고 하잖아요, 진언기도를 하면서 우리가 잘못하면 깜빡 놓칠 수 있는 게 뭐냐면, ‘이걸 통해서 내가 뭘 이뤄야지라는 생각만 하는 거예요. 그건 과정인 거예요. 결국은 다라니를 통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뭐냐. 깨닫기 위한 겁니다. ‘부처가 되기 위한 거다라는 거예요. 그 부처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다라니에 의지해서 장애 없이 그 길을 순탄하게 무장무애하게 가기 위한 하나의 수행 도구로 다라니를 독송하는 거죠.

      다라니를 독송하게 되면 제일 먼저 우리가 얻는 것이 있어요. 그거를 가피라고 그럽니다. 다라니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다 외워도 되고, 아니면 관세음보살 육자대명 <옴 마니 반메 훔>만 해도 되고, 더 나아가서는 <당신은 부처입니다.>, 우리 마음의 정원에서 하잖아요. 그게 다 같은 무게치예요. 같은 무게치인데, <우리가 당신의 부처입니다.>라는 걸 왜 하겠어요. 그걸 통해서 우리가 깨달음의 세계로 가기 위한 믿음의 도구로 쓰는 거거든요.

      다라니를 외우면 제일 먼저 우리가 얻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가피에요. 가피가 뭔지 아시죠. 부처님에게 내지는 불보살에게 다라니를 외우고 의지해서 나에게 오는 변화를 가피라고 그러지요. 근데 그 가피는 아주 큰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사에서 벌어진다는 거예요. 이 가피는 일상생활을 벗어나서 단 한 개도 일어나지 않아요. 형이상학적이거나 너무 본질적인 거나, 이런 것이 가피가 아니라, 우리가 늘 부딪히는 신구의에서, 말하고 또 부딪히고 마음 쓰고 하는 데서 일어난 일이고, 보고 듣고 느끼고 그런 색성향미촉법에서 육근을 근간으로 해서 다 일어난 일이 가피다라는 거에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가피를 명훈가피(冥薰加被)라고 그러잖아요. 법당에 이렇게 있으면 내 옷에 향이 배듯이, 어떤 향기가 몸에 은근히 배는 걸 명훈이라고 하는데 알게 모르게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까 내 삶이 변해 있어요. 나의 마음이 변해 있어요. 이걸 이제 명훈이라고 그래요, 명훈가피.

      또는 꿈속에서 가피를 주기도 하죠. 아픈 사람들이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 그 가피 얘기 중에 가장 많은 게 뭐냐 하면, 몸에 벌레가 막 끓다가 벌레가 하나씩 몸 밖으로 막 기어나오는 꿈, 이런 꿈들을 꿨다, 그건 가피에요. 어떻게 보면 이제 꿈에서 가피로 나타나는 거죠. 그러고 병원 갔는데 감쪽같이 병이 나았다, 이런 얘기들 많죠, 꿈속에서 그런 꿈을 꾸면.

그러나 선근(善根)이 아주 높은 사람, 선근이 아주 깊은 사람들은 그걸 뛰어넘어서 현증가피(顯證加被), 내 눈앞에 나투는 거예요, 불보살이. 그런데 이거는 굉장한 믿음이 있어야지 가능한 거죠. 마음속에 요만큼이라도 의심이라는 종자가 있으면 그건 나타나지 않습니다. 나타나도 믿지 않아요. 그래서 그렇게 우리가 우리 일상 속에서 언제나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 다라니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그런 가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선근이 깊은 사람들은 그것이 가피라고 하는 걸 아는데, 선근이 없이 업장이 두터운 사람들은 밀물처럼 밀려오는 가피도 가피인 줄 몰라요.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지요.

      저도 아침에 가피를 받았어요. 가피를 어떻게 받았냐면, 오다가 갑자기 위경련이 났어요, 운전하는데. 위경련, 아시죠. 경험해 본 분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아침에 제가 찬물을 좀 급하게 마셔요. 정신 차린다고. 근데 위가 이제 연식이 좀 되다 보니까, 기능이 좀 떨어지는지 위경련이 왔어요. 그다음에 식은 땀이 나고 운전하는데 막 사지에 힘이 쫙 풀려가지고. 그리고 이거 어떡하지, 약국을 가야 되나, 병원으로 가야 되나, 총무스님께 전화해서 오늘 법회 못 가요. 이렇게 얘기를 해야 되나오만 생각을 넘어서 오만 한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순간에 딱 떠오르는 게 몸이 아픈데 내가 왜 관세음을 안 찾고 있지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늘 다니면서 보살님들한테는 힘들고 어렵고 지치고 산란하고 장애가 있고 그러면 관세음보살님을 찾으라고 얘기해 놓고, 막상 내가 아프니까 약국부터 찾고 있는 거예요. 인지상정이죠. 제가 비정상적인 건 아니에요. 제가 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지. 그런데 거기서 신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관세음보살님을 찾아야지요. 관세음보살 외에 다른 보살, 본인이 의지하고 있는 대상들을 찾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탁 마음을 잡았어요. 운전하면서 계속 관세음보살님을,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 배를 만지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옛날에 우리 어머니가 했듯이 내 손은 약손이고. 그래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스무 번 딱 부르니까 통증이 쓱 가라앉았어요. 땀이 싹 잦아들어요. 그래서 아 이게 가피가 아닌가’, 우리가 가피라고 하는 걸 너무 크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 둘러보면 내가 다라니기도를 하는 동안에 내가 경험했던 그런 가피들은 광장히 많아요. 그거를 선근이 열려야지만이 알 수 있어요.

      여러분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은 이미 그런 관세음보살님의 가피 안에, 충만한 가피 안에 이미 함께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아까 제목에 나와 있듯이, 관세음보살님의 광대원만한 무애한 대비심의 대다라니를 내가 제대로 하려면 지금 얘기한 이 세 가지를 우리가 일상에서 잊지 말아야 됩니다. 꼭 지켜야 돼요.

      이 이야기는 내가 현재 발원한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이루는 것과 별개로, 이거는 오늘의 살림이나 내일의 살림이나 1년 살림이나 10년 살림이나 이생의 살림이 아니라, 여러분이 세세생생 법의 생명을 움트게 하는 가장 중요한 종자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다라니기도를 통해서 지금 현상적으로 현실에서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라든지 장애를 없애는 그런 가피도 있지만, 다라니기도의 원래의 뜻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숨어져 있는 법의 생명이다, 그 법의 생명을 깨워내야 한다는 겁니다. 법의 생명이 깨어나지 못하면 그냥 이 육신의 생명으로만 살다 보니까 너무 버거운 거예요. 그리고 너무 힘든 겁니다. 그리고 늘 순간순간 탁탁 걸리는 거예요. 내 마음에 법의 생명이 깨어나야 합니다. 이걸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합니다. 여래장 들어보셨어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 여래장을 깨워야 되는데, 여래의 성품을 내 안에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는, <본래 붓다,> 이렇게 표현을 해요. 본래 붓다, 다른 말로 심즉시불(心卽是佛)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심즉시불. <마음이 곧 부처다>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고, 또 다른 말로는 견성성불(見性成佛) 이런 표현도 써요. 우리 조계종에 종지라는 게 있는데, 종지에 보면 견성성불이 나와요. 성품을 보니까 부처님은 이러더라 이런 뜻이거든요. 성품을 본다. 성품을 보는 게 여래장을 보는 거예요. 그 여래장을 깨워내야 됩니다. 우리가 천수경을 들어가기 전에 개법장진언을 하죠. <옴 아라남 아라다> 이렇게 하죠. 개라는 게 열다란 뜻이에요. 법장은 법의 창고라, 이 법장은 다른 말로 하면 여래장입니다. 여래장이 열려야 그다음에 여러 가지 그 여래 창고 안에 들어있는 보물들을 갖다가 쓸 수가 있어요. 내가 이미 여래라고 하는 창고의 어마어마한 능력과 어마어마한 지혜와 어마어마한 자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창고는 꽉 닫아놓고 여기에 이생에 와서 알량하게 번, 알량하게라고 하면 좀 서운하겠지요, 열심히 피땀 흘려 번 그 몇 백, 몇 천, 몇 억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거예요. 이 마음의 여래장의 창고가 열려버리면 인생에 내 통장에 있는 거시기는 거시기가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야, 게임이 끝나요, 오징어 게임이 끝난단 말입니다. 우리는 오징어 게임 속에 살고 있잖아요. 그 오징어 게임을 끝내는 일이 뭐냐. 내 마음에 법의 생명을 움트게 하는 거, 법의 생명을 깨어나게 하는 거예요. 우리가 다라니 기도하는 것은 다라니를 의지하면서 내 안에 있는 법의 생명을 자꾸 길러내고 키워내고 또 성장시킬 이런 힘이 있다는 겁니다.

      오늘 이 법문을 듣는 모든 분들이 내 마음속에 여래장이라는 게 있대, 법장이 있대, 이거만 깨워내면 나의 허덕거림, 나의 조급함, 나의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이런 것들이 다 해결된대’, 이거 하나 아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입니다. 우린 늘 허덕대거든요. 허덕대니까 기대를 하게 돼요. 누구에게, 남편에게, 부인에게, 자녀에게, 또 나하고 인연이 제일 가까운 인연들에게 기대하고 의지하게 되고 그러다가 서운하게 되고 실망하게 되고, 그러다가 정 때문에 살지, 내가.’ 이런 얘기 하게 되는 거예요. 그놈의 정 때문에. 그런 걸 다 내려놓으려면 내 마음에 이런 법의 생명을 깨어내야 돼요.

      그 법의 생명이 깨어나는 데는 첫 번째로 이 관세음보살님이 어떤 분인가를 명확하게 알면 아주 쉬워져요. 우리가 큰 병이 났습니다. 큰 병이 났는데, 큰 병원에 가서 그 외과든 내과든 정형외과든 정신의학과든 그중에서 제일 잘하는 분 있잖아요. 그분의 뭘 봐요? 프로필을 보죠. 이분이 출신이 어디고, 어디서 수련의를 거치고 어디서 인턴을 거치고 이런 걸 쭉 보잖아요. 그래서 몇 년간 의사 생활을 했고 수술 경험이 몇 번이고 집도를 몇 번을 했고 그걸 알고 가면 그 의사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지듯이, 우리가 관세음보살님 이름은 알지만 관세음보살님이 어떤 공력으로서 우리를 이끌어주시는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 공력을 아는 순간 그 공력 하나하나가 내 법의 창고, 여래 창고가 잠겨져 있는데 그 잠겨있는 문을 여는 비밀번호를 하나씩 누르는 게 되고, 초인종을 누르는 효과를 갖게 됩니다. 자꾸 초인종을 누르던지 비밀번호를 해야지 문이 열리죠. 그 문 앞에 가서 문 열리겠지라고 서 있다고 문이 열리지 않거든요. 엘리베이터도 몇 층 갈 건지 눌러야지만이 거기 올라가죠. 물론 요즘에는 인공지능이라서 메타버스 시대가 되니까 내가 생각만 해도, 내가 9층 가야지 하면 9층까지 가는 그런 시대가 올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게 이룰 수가 없단 말이죠. 내가 노력을 해야 돼요. 내가 실천을 해야 돼요. 수행을 해야 돼요.

      그 첫 번째 관세음보살의 공력이 뭐냐 그러면, 관세음보살의 공력이 뭐예요, 대자대비잖아요. 대자대비. 이 불교의 출발과 끝은 지혜와 자비인데, 지혜와 자비 중에 선후를 나눌 수는 없지만, 그 총책, 핵심, 부처님의 체, 부처님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게 뭐냐. 자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시불공 할 때에 유치라는 걸 하는데, 청사 유치, 유치(由致), 청사(請詞)를 하는데, 법회가 열리게 된 연유라든지 그 연유를 말씀드린 다음에 청사들이 청하는 말씀을 드려요. 그게 유치 청사인데, 거기 보면 부처님이 자비를 체를 삼고’,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부처님은 자비가 체예요. 본체, 당체입니다. 그 부처님의 당체를 그대로 물려받은 분이 관세음보살님이다. 그래서 대자대비라 하는 겁니다. 줄여서 자비라고 그러죠. 그러니까 자비는 뭐예요. 자비는 아주 간단하게 따뜻하고 온화한 거, 어렵게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따뜻하고 온화한 거죠. 따뜻하고 온화한 거는 약간 결이 달라요. 따뜻한 것은 생명을 키워내는 힘을 갖는다면, 온화한 것은 생명을 품는 기운입니다. 같은 의미지만 약간 결이 달라요. 따뜻한 것과 온화한 것이 그대로 내 마음속에 있는 거, 내 마음 상태 그게 자비지요. 여기는 그 무엇도 걸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의 첫 번째 공력인 자비, 자비라는 걸 내가 일상사에서 얼마큼 확인하고 있느냐, 일상사라고 하는 것은 내가 가장 인연이 깊은 사람을 대할 때에, 대화에서 말할 때에, 그 사람들을 대하고 마음 쓸 때에, 내가 얼마큼 자비롭느냐라는 겁니다. 그거를 확인해야 되요. 내가 늘 온화하고 따뜻하게 대하면 손해 볼 것 같죠. 지금 보면 손해 볼 것 같죠.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하루의 살림이나 1년의 살림이나 이생의 살림이 아니라 여러분이 이 다겁생래(多劫生來), 다겁생 살림을 좀 더 넉넉하게, 좀 더 여유 있게, 차분하게 하려면 이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을 회복을 해야 됩니다.

      두 번째 관세음보살님의 공력이 있는데, 이분이 계신 집이 있어요. 이걸 전이라고 그러죠. 보통은 각이나 전이나 이렇게 표현하는데, 대웅전, 집 전자를 써요. 임금이 계신 곳을 전이라고 그러잖아요. 근데 이분이 계신 전각 이름이 원통전이에요. 원통전, 둥글 원자에 통할 통자를 써서 원통전. 그 원통은 원래의 풀네임이 뭐냐 그러면 이근원통(耳根圓通)이에요. 이근이 뭐냐. 듣는 기능, 이 뿌리 근자는 기능으로 번역을 해요. 듣는 기능, 여러분들 다 듣잖아요. 제 얘기가 잘 들리죠. 이 듣는 기능이 원통하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이 듣는 기능이 원통하냐. 원통하지 않아요. 듣는 게 잘 듣는 게 아니라 자기가 듣고 싶은 만큼 들어요. 듣고 싶은 대로 들어요. 듣고 싶은 것만 들어요. 이게 딱 조건이 있어요, 뭐뭐만. 이게 문제죠. 그래서 그거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돼요?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면서 막 화가 나기 시작하면서 이 단전에서 뭔가 뜨거운 불줄기가 확 올라오죠. 얼굴이 막 용광로처럼 달아오른단 말이에요. 화라고 하는 건 귀로 들어와요. 욕심은 어디로 들어옵니까. 눈으로 들어와요. . 견물생심이잖아요. 화는 귀로 들어옵니다. 내가 화나는 걸 보면 거의 90%가 다 귀로 들어와요.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화가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한다가 아니라 안 듣는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듣지 않는다. 이 유튜브를 보는 분 중에 저를 아는 분들은 저도 참 남 얘기 안 듣게 생겼다고 하겠죠. 눈썹이 시커멓게 그냥 남 얘기 참 안 듣게 생겼어요. 솔직히 저도 참 남 얘기 안 듣습니다. 늘 저도 그게 숙제인데, 법문하면서도 저한테 또 다짐을 하게 돼요. 잘 들어야지. 제가 복지관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 직원들 종사자가 43명 정도 돼요. 나만 나타나면 다 어디로 사라져요. 그래서 어느 날 불러 가지고 내가 무섭냐고 그러니까 편하지 않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을 참 잘 들어야 되겠구나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관세음보살님이 그렇게 뭔가를 듣는 능력이 원통하다, 둥글게 신통하다는 말입니다. 통자는 신통의 준말이에요. 신통방통.

      첫 번째 관세음보살 다라니 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을 얻어요. 그래야 내가 그동안 있던 장애가 녹아요. 그 온화하고 따뜻한 것 때문에 녹는 거예요. 옛날에 아주 재미난 이솝우화도 있지 않습니까. 햇살 바람 이야기. 햇살을 비치니까 옷을 벗지만, 비바람 불면 어떻게 돼요. 옷을 자꾸 입게 되잖아요. 내가 온화하고 따뜻해야지만이 내가 가지고 있는 그런 어지러움이라든지 역경이라든지 장애라든지 혼란함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사라지는 거예요.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내 마음이 온화한가 따뜻한가 10초만 잘 살피고, 거기다가 그 다음에, 내가 오늘은 누구 얘기를 잘 들어야 되겠다, 누가 뭐라 하든 간에 누구 얘기든 잘 듣고, 꼭 때리더라도 다 듣고 때려야 되겠다. 근데 우린 다 듣지 않고 듣는 중에 때려버리죠. 더 심각한 사람은 듣기 전에 때리는 사람도 있어요. 듣기 전에 때리는 사람도 아주 고약스러운 사람이죠. 근데 그게 아니라 다 듣고 한 다음에도 늦지 않는다는 거예요. 내가 이근원통이고, 잘 듣고 그다음에 행동을 해야 되겠다. 이게 두 번째 덕성입니다.

      세 번째로는 관세음보살님을 다른 말로는 무외보살(無畏)이라고 합니다. 외자는 두려움 외자, 두려움이 없는 보살이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살님이에요. 두려움이 왜 생깁니까? 겁나니까. 왜 겁납니까? 내일을 알 수가 없잖아요. 아침에 제가 출발하면서 위경련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려운 거거든요. 근데 그 두려움을 관세음보살님은 이렇게 어루만져주는 거예요. 우리가 이제 이생에 인연이 다 되어서 사직할 때쯤 되면, 제일 먼저, -기도를 열심히 한 분들을 전제로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여기 인로왕보살님이 길을 잘 안내하는 것이 먼저 보여요. 인로왕보살님이. 그다음에 내가 이제는 죽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니까 두렵잖아요. 그다음에 딱 보이는 분이 관세음보살님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이 와서 망자의 두려운 마음을 잘 위로해 줍니다. 마음이 이제 쫙 가라앉잖아요. 가라앉으면 그다음에 지장보살님이 오셔가지고 육바라밀로 마음을 탁 펴게 만들어요. 마지막 꼭지까지 딱 피게 만들어요. 그의 마음이, 그 망자가 확 열리면 그때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이 오색광명을 놓으셔서 인도를 하는 거예요. 이게 극락도에 나오는 모습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어쨌거나 어디서나 언제나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분이에요. 내가 인연을 하고 있는 아주 가까운 가족들에게 친족들에게 내지는 인연들에게 어렵고 까탈스럽고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항상 편안한 존재로 두려움을 없애주는 존재가 돼야 합니다.

      여러분들 아까 법문 하기 전에 입정을 했어요. 죽비를 드신 스님께서 입정하고 출정할 때 땅을 딱 딱 치죠. 왜 그렇겠어요. 놀랄까 봐. 어떤 분은 잘 법문 들어야지 우리 가섭스님’, 가섭스님 법문을 들어야지 하고 기대에 부풀어서 있는데, 그 순간에도 가스불을 잠그고 왔나’ ‘내일 세금 내야 되는데엄한 생각으로 그냥 딴 생각을 하고 일을 때 갑자기 딱 소리가 나면 놀라요. 놀라면 그게 마음에 흔적이 남아요, 흔적이. 마음은 항상 다 흔적이 남거든요. 흔적을 뭐라고 그래요? 그걸 업이라고 그래요. 그게 흔적이 많이 남아서 업이 되는데, 우리 순수 말로는 버릇이에요. 그 사람의 버릇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놀랄까 봐서 하는데, 그거는 굉장히 대중을 배려하는 거거든요. 여러분도 출정할 때의 그 마지막 터치, 대중을 위한 터치, 그 배려, 그 배려심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 관세음보살님의 공력이 세 가지입니다. 그래서 항상 온화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항상 잘 듣고, 그리고 항상 부드럽게 주위의 인연들을 맺어가면 관세음보살님의 공력을 그대로 받아서 다라니기도의 원성취는 걱정할 바가 없습니다. 이 관세음보살님이 알아서 해준다 이 말이에요. 애프터 서비스가 확실한 분입니다. 그걸 믿어야 돼요. 믿는 것이 선근이에요. 선근이 있다, 없다, 얘기하는데 믿음이 아주 간절한 사람은 선근이 스스로 나옵니다. 그 선근의 선자가 뭐예요. 착할 선자잖아요. 착할 선자. 법원주림(法苑珠林)이라고 하는 중국의 오래된 사전이 있어요. 불교 사전인데 거기 선즉 순리다이렇게 나와요, 순리, 이치를 따르는 거다. 절집에 선과 악이 있는데 근데 악이라고는 잘 안 해요. 선과 불선이라고 보통 얘기를 하죠. 그 절집에서 착한 선근공덕의 착한 선자는 이치에 얼마큼 부합하느냐예요. 이치에 얼마큼 부합하게, 부처님의 말씀을 내가 잘 따라서 실천하고 수행하느냐, 그게 선근공덕을 쌓는 핵심이다. 윤리적으로 착한 일을 하는 건 당연한 거고 불교적으로 말한 선근은 부처님 말씀을 잘 따라 실천하는 거예요.

      시간이 다 됐죠.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는 꼭, 그런 분 없겠지만 불자는 이 세 가지는 꼭 믿어야 됩니다. 그래야 선근이 생겨요. 이 세 가지가 뭐냐. 인연법, 인과법, 연기법입니다. 불교는 이 세 가지가 잘 꿰진 거예요. 인과법, 인연법, 연기법을 안 믿으면 수행자 일수도 없고, 부처님을 따르는 재가 신도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불교는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거에요. 인과법, 인연법, 연기법. 그래서 다음에 또 이렇게 여러분과 법담을 나눌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때는 인연법, 인과법, 연기법을 가지고 하겠습니다.

      대입시를 앞둔 자녀를 두신 분들은 기도 열심히 하시고, 그 자녀는 시험 당일날 일체 무장무애로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어서 합격하기를 바라고요. 천독기도 회향한 분들은 가지가지 소원들이 다 이루어져서 무장무애해서 가족들이 건강하고 늘 평화로운 그러한 삶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