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49재] 9월 29일 49재 법문 2022-09-29

금일 영가 

至心諦聽 至心諦受

지심제청 제심제수

 

四大五蘊生老病死

사대오온 생로병사

睡中作夢種種夢事

수중작몽 종종몽사

眞如佛性法性實際

진여불성 법성실제

究竟清淨하야 常放光明하니

구경청정 상방광명

今日靈駕本來面目이로다

금일영가 본래면목

나무아미타불

 

        불교에서 먼저 깨닫고, 뒷사람을 깨우치는 이들을 삼세제불이라, 역대 조사라, 천하 선지식이라 이렇게 부르는데, 그분들이 깨달은 바, 가르치는 바가 무엇이냐. 일체 중생에게 자성청정심이 있다. 자성청정. 자체 본성이 하늘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고, 하늘이 사라진 뒤에까지 있고, 무엇에도 변하지 않고 물들지 않는 자성청정심이 있다.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인연 따라서, 인연 따라서 몸도 생기고, 생멸도 생기고, 생각도 생기는데, 몸이라고 하는 것은 지수화풍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땅과 같은 뼈, 물과 같은 혈액, 불과 같은 체온, 바람과 같은 호흡, 이런 네 가지 몸의 요소와 수상행식이라고 해서 생각인데, 생각은 받을 수자, 항상 느낌을 받는다. 하늘을 보면 하늘의 감수성을 느끼고, 땅을 보면 땅의 감수성을 느끼고, 사람을 보면 사랑을 느끼고. 느끼는 작용, 인식하고 상상하는 작용, 수상, 행동하는 작용. 기억하고 식별하고 온갖 것을 기획하는 작용. 과거 걸 기억하고, 현재를 식별하고, 미래를 기획하고 하는 것을 인식이라는 식자, 식이라고 그러는데, 자성청정심은 다 가지고 있는데, 이 수상행식이라고 하는 의식 작용이 사람마다 다 생활에 따라서, 경험에 따라서 틀린다 이렇게 가르쳐요.

         사람이 산다는 건 뭐냐. 명이라고 그러는데, 명은 목숨이다, 목에 숨이 있는 게 명이다. 목숨은 호흡이에요. 숨을 안 쉬면 생명이 없다고. 그다음에 몸에 따뜻한 기운이 있어야 되는데, 그건 맥박이다. 맥박이 끊어지면 체온이 떨어져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숨을 쉬고, 맥박이 뛰고, 그다음에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 숨을 내쉬어도 의식이 없으면 살았다고 안 한다고 하죠. 산다는 기준이 호흡, 맥박, 의식이 있는거예요. 이것은 자성청정심에서 비롯해요. 한순간 꿈과 같다 이렇게 가르쳐요. 꿈이라는 게 꿀 때는 분명하지만, 깨고 나면 없는 것이, 하늘보다 먼저 있고 하늘보다 뒤에까지 있는 자성청정심이 있어서, 숨 쉬고 맥박 뛰고 생각하는 이런 사대 수상행식이 꿈꾸고 꿈에서 깨어난 이유와 같다. 이게 이제 여러 부처님이, 깨달은 분이 뒤에 사람들을 깨우치는 내용이거든요. 그래서 사대오온(四大五蘊)생로병사(生老病死) 수중작몽(睡中作夢), 잠잘수, 가운데 중, 수면 위에, 작몽, 꿈을 꿨는데 거기에 종종몽사(種種夢事)가 있다. 꿈속의 꿈. 산에 올라가는 꿈도 있고 사람 만나는 꿈도 있고. 그래서 자성청정심에서 보면 한평생 인생살이가 하루 저녁 꿈과 같아요. 그런데 꿈이라는 게 꿈을 깨고 나야 꿈인 줄 알아요. 근데 진여불성(眞如佛性)이 있다. 참 그대로 아는 성격, 참 진, 같을 여, 참 그대로, 불성, 불은 깨달을 각자인데, 아는 성격이 있다. 법성실제(法性實際), 온갖 법의 진실성, 그 진실의 경지, 제라는 국제라는 제자인데, 경계지, 법성실제는 구경청정(究竟清淨)하여, 끝내 분별력이 없어서, 상방광명(常放光明)이라. 항상 광명을 비춘다. 그럼 이 불성이 광명하고, 현상 광명하고, 현상 광명은 햇빛도 있고 달빛도 있고 등불 빛도 있고, 그래서 일광, 월광, 등광, 또 별빛도 있고, 섬광, 다 현상 광명인데, 불성 광명이 그럼 어디 있느냐. 이 불성 광명을 알고 나면, 불성 광명이 없으면 햇빛을 볼 수가 없어요. 불성 광명이 있기때문에 그 햇빛을 바라보는 능력이 있다. 햇빛만 있으면 뭐 하나. 햇빛을 알 수 있는 능력은 불성 광명인데, 범부는 미혹해서 햇빛인 줄만 알지, 상방광명, 항상 광명을 비추는 자성 청정 불성 광명이 있는 줄 모른다. 이렇게 가르쳐요. 그릇이 있다. 그러면 이게 현상 광명인데 나타나는 광명이다. 그릇이 있어도 이 그릇을 모르면 이거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 우리 일상 생각 속에서만 살면 그릇인 줄은 알지, 그릇인 줄을 아는 자기 불성 광명을 모른다. 이걸 미혹이라고 하거든요. 알고 보면 햇빛도 불성 광명이고, 달빛도 불성 광명이고, 별빛, 등불빛도 다 그런데, 이게 몸인 줄 알지 이걸 아는 것이 불성 광명이라는 걸 꿈에도 모른다 그거예요. 이걸 미혹과 정각이라고 해요. 몸과 몸인 줄 아는 불성, 그 불성을 발견한 걸 바를 정자, 깨달을 각자, 정각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 사후의 극락세계라는 것은 정각의 세계로 돌아가는 거예요. 미혹의 세계에서 정각의 세계로 돌아간다. 다 자성청정 자기불성인데, 그 자성청정 자기불성인 줄 꿈에도 모르고, 어두운 것이 나타나면 어두운 것에만 매달리고, 밝은 것이 나타나면 밝은 것에만 매달려서 경계에 속박이 되어, -경계는 눈에 보이는 대상인데,- 대상에 얽히고 묶여, 대상만 쫓아다니다가 한평생 다 가고 말아요. 대상만, 대상만. 사람이 나타나면 사람에 쫓아가고, 물건이 나타나면 물건에 쫓아가고, 허공이 나타나면 허공에 쫓아가고. 땅을 보면 땅을 쫓아가고. 그게 다 비었단 말이에요. 욕망이라는 건 대상을 쫓아가는 거야. 어떤 대상을 소유해도 만족할 수가 없어요. 그게 사라지기 때문에. 소유하면 사라지고, 소유하면 사라지고, 쫓아가면 없어지고, 쫓아가면 없어지고. 그래서 그렇게 소유하고 소유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고 심리를 딱 표현한 말이, 배고플 아자, 귀신 귀자, 아귀(餓鬼)라고 그래요. 아귀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안 부르다 이 말이에요. 그 말은 욕망이 쫓아가서 만족하려해도 채워도 채워도 채워도 채워 도 채워지지 않은 빈 마음이 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빈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채워서 만족하려고 그러면 안 되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알아야 거기에 만족이 있어요. 충족은 안 되고 자족이라야 된다. 자족. 자식들에게 많이 해주면 행복하겠지, 전혀 아니에요. 자식들한테 해주려고 할 생각은 전혀 하지 말아요. 왜냐하면 아무리 해줘도 만족하지 않아요. 받은 놈이 더 달라고 그래요, 안 받는 놈은 아예 받을 생각도 없어. 이 말은 자식이 없는 사람이 이런 말 해요. 자식 있는 사람은 그게 안 되거든. 해주고 싶은 또 욕망이 있어서 해주고 싶은 욕망을 누를 수가 없어요. 그게 인생살이에요.

        그래서 자성청정심으로 돌아가면 그게 극락세계다. 거기에는 불만이 하나도 없어요. 자성청정심을 깨달아서. 하늘에 머물면 하늘에서 만족하고, 땅에 돌아가면 땅에서 만족하고. 삶은 삶으로 만족하고, 죽으면 죽음으로 만족하고. 이 대상에 의지해서 만족을 느끼는 게 아니라 자기 자성청정심에서 자족자재하니까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행동하니까 그 세계를 극락세계라고 한다.

        그리고 극락세계로 가는 길은 깨달아서 가는 길이 있는데 보살들이 가는 길인데요, 그걸 반야바라밀이라고 그래요. 보살이 극락세계 가는 길을. 반야는 지혜인데, 바라밀은 저 극락세계 저쪽 세상으로 간다는 소리예요. 피안에 도달한다.

       그러면 어떻게 가냐. 조견(照見). 비출 조, 볼 견. 딱 비춰보면 그 대상을 쫓아가는 망상 집착이 없어져요, 딱 조견을 하면. 그러면서 일체의 하늘이고 땅이고 사람이고 간에 모든 게 공적함이 보여요. 망상집착은 없어지고 공적실상이 보인다. 그러니까 딱 바라보고 있으면 이것에 집착하는 생각은 싹 없어지고, 이것이 생긴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비고, 비고, 고요하고, 고요한 진실상이 여기 있다. 공공적적(空空寂寂) 진실자상. 진실한 자체상(自體相)이다 이 말이죠. 태어나고 죽는데도 공공적적 진실자상이다.

 

       이게 이제 깊어지고 깊어지면 경계에 집착하는 이 수상행식 생각 작용은 점점 줄어들고, 이걸 깊이 보는 그 반야조견이 점점 넓어지면, 그다음에 이제 무상 정각을 이루게 되는데, 보고 보고 보고 보면 보는 능력이 아주 지족에 도달해요. 그러면 볼 필요도 없이 그냥 탁 열리는데 그걸 보리라고 그래요. 반야는 보는 거고, 광명이 진실, 자상광명, 자상청정심, 광명이 확 열리는 거를 반야라고 하고 보리라고 한다. 반야는 보살이 하는 거고, 보리는 일체 부처님이 이룬 건데, 그러면 보리는 뭐냐 하면 일부러 볼 필요가 없어요. 그냥 항상 고요해. 항상 고요하고 항상 보여. 이걸 적조라고, 고요할 적자, 비칠 조자. 그리고 적조는 끝이 없어요. 둥글 원자를 써요. 항상 밝아. 빛 광자를 써요. 원광. 적조원광(寂照圓光). 적조원광에는 전부 극락세계뿐이에요. 고통이 있고 즐거움이 있는 거는 생각이 만들어낸 거고, 생각이 적조원광으로 돌아가면 거기는 즐거움 뿐이다. 그래서 불국토를 극락세계라고 그래요. 불국토. 거기에는 생로병사도 없고, 우비고뇌, 근심걱정도 없고, 무량수복, 무량한 수명과 무량한 복덕. 무량한, 한량없는. 무량자재,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 그거 뿐이다.

        그러면 이 49재라는 거는 그 부처님의 세계에 모셔 드리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모셔드리냐. 부처님의 원력과 부처님의 신통력과 부처님의 자비력을 힘입어서, 그쪽으로 가게 된, 승불실력, 승자비력, 승불원력, 승이라는 건 이을 승자, 이어받아서. 내가 고른 목표로 차 타고 가면 되듯이, 내가 그 세계를 깨닫지 못했으면, 부처님이 일체중생을 다 극락세계로 인도하겠다는 원를 세운 일이 있어요. 그걸 불원력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 불원력을 내가 이어받아서 승용차라는 승자를 써서 그 원력을 내가 타고 오른다. 이을 승자, 승불원력이라, 탈 승자. 위에 올라 타고 간다. 부처님이 하는 일이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일밖에 없어요. 그걸 불사라고해요. 부처님의 일이라고, 부처님의 사업종류에요. 부처님의 업종은 일체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사업밖에 없다. 불사한다 이러거든. 이렇게 자비력을 내가 이어받아서, 부처님의 신통력을 이어받아, 신통력이라고 하는 것은 이 자리를 움직이지 않고 저쪽 자리에 가는 걸 신통이라 그래요. 차 타고 가고, 걸어가고 이거는 신통이 아니고, 털끝 하나도 안 움직이고 목적지에 가는 거, 그걸 신통이라고 그러는데, 부처님의 신통력을 이어받아서, 부처님의 자비력을 이어받아서, 중생을 다 극락세계로 인도하겠다는 부처님의 그 서원의 힘을 이어받아서, 오늘 영가가 극락세계에 가시게 된다, 이런 뜻이죠.

 

不生不滅(영가의)本來命根이요 湛寂圓明(영가의)本來身相이요

불생불멸 본래명근 담적원명 본래신상

極樂世界(영가의)本來寶宮이요 常放光明(영가의)本來性光이로다

극락세계 본래보궁 상방광명 본래성광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보살 중에서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보살이고, 아미타불은 일체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부처님이거든요. 그러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거예요.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부처님이 아미타불이고요,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보살이 관세음보살이니까, 불교가 뭔지 아무것도 몰라도, 힘들 때는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는 돌아가 의지한다는 말이거든요.

       그리고 거기에 길이 있어요. 왜 길이 있냐. 부처님의 원력이 있으니까. 일체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겠다는 원을 세우셨으니까. 나무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화가 아무리 나도 이 두 가지만 하면 진정이 돼요. 그래서 큰 사고 치기 전에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그럼 사고 안 쳐요. 어두울 때 불 하나 탁 키면,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게 있듯이, 이게 생각이 격해서 그런 건데, 생각이 맑아지면 돼요.

       행복이 어디 있느냐. 감정 조절에 있는 거예요. 감정만 잘 조절하는 사람은 절대 불행이 없어요. 모든 불행은 감정이 격해졌을 때 사고처럼 생기는 거거든요. 내가 내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은 불행 없어요. 능력만 키우면 행복한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능력 아무리 있어 봐야 감정 조절 못해서 격한 사고 한번 일으키면 평생 괴로워요. 그래서 이 격해지고 끊임없이 막 구하고 끊임없이 만족할 줄 모르는 이 감정을 잘 가라앉힐 수 있는 능력을 자꾸 쌓으면, 감정 조절이 잘 돼서, 수신제가, 닦을 수자, 몸 신자, 어릴 때 서당에 다니면서 대학이라는 책에 수신제가라고 나와 있었는데, 몸을 닦고, 집안을 정리하고, 이게 수신제가인데, 집안을 정리한다는 말은 알겠는데, 몸을 잘 닦아야 한다는 말은 알 수가 없어요. 몸을 닦는다는 건 목욕을 하면 되나. 어떻게 하면 된다는 말인가. 선생님께 여쭤보니까 참 기가 막혀요. ‘몸을 잘 닦아야 하느니라몸을 닦는다는 그 의미, 개념은 설명을 안 해 주셔. 몸을 닦는 게 뭐냐고 물으니까 몸을 잘 닦아야 하느니라. 그래서 글을 잘 아는 선생님한테 여쭤봤어요. ‘수신제가, 수신이 뭡니까?’ 그분은 워낙 한문에 조예가 아주 깊어서 그거는 할 일 없다 하고, 안 할 일 없다 안 하는 거, 행동을 구분해서 하는 거다.’ 이렇게 딱 가르쳐 주시더라고. 천지차이인 거에요. 한문을 가르치는 분들도. , 닦을 수자는 구분하는 거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하고 안 해야 할 일은 안 하는 게 그게 수신이다. 그럼 안 해야 할 일을 왜 하게 됐냐. 감정 조절을 못해서 그래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기본 자격은 내 감정을 내가 얼마나 조절할 수 있느냐 여기에 달린 거예요. 100% 조정할 수 있다면 100% 행복해요. 90% 감정 조절할 능력이 있다면 90% 행복한 거예요. 근데 감정조절 능력이 0%다 그러면 없어요. 행복 없어요. 만드는 거, 불행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거예요. 아주 괴롭고 힘들 때,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요말만 해도 그 격한 감정이 한 단계 내려가요. 다운이 돼요. 참 대단해요.

 

      그래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은 오늘 영가의 본래명근(本來命根)이다. 생명의 뿌리다. 담적원명(湛寂圓明)하고, 담담하고 고요하고 둥글고 밝은 것은 오늘 영가의 본래신상(本來身相)이다. 본래 모습이 둥글고 밝다 이 말이죠. 극락세계(極樂世界)는 오늘 영가의 본래보궁(本來寶宮)이다, 보배 보, 집 궁. 보배궁전이다. 상방광명(常放光明)이다. 항상 비추는 것은 오늘 영가의 본래성광(本來性光)이다. 본래 본성광명이다.

 

諸佛方便不思議 隨衆生心悉現前

제불방편부사의 수중생심실현전

普住種種莊嚴刹 一切國土皆周遍

보주종종장엄찰 일체국토개주변이로다

(華嚴經 世界成就品)(화엄경 세계성취품)

나무아미타불

 

        -혼자 할 때 이렇게 길게 빼서 할 필요 없어요. 이거는 의식화해서 하는 거고 그냥 하기 좋은 대로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하면 돼요. 하기좋게 하면 돼요.-

        아플 때도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그럼 짜증도 한순간 멈춰지고 두려움도 한순간 멈춰지거든요. 얼마나 좋은 노래에요. 부처님의 세계인데 부처님의 세계가 부사의라(諸佛方便不思議). 중생의 수상행식으로 헤아릴 수가 없다 이 말이죠.

        수중생심실현전(隨衆生心悉現前)이라, 중생의 마음에 따라서 다 나타난다. 왜냐하면 적조원광이기 때문에. 고요히 비추고 둥근 광명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거는 해가 한 개, 하나 있으면 물이 있는 곳에 해가 다 비쳐져요. 해가 거기에 빠져서 비춰지는 게 아니라 그냥 비쳐져요. 그게 부처님의 신통력이고, 부처님의 광명의 힘이다. 보주종종장엄찰(普住種種莊嚴刹), 일체 그 극락세계에 다 머물러서, 일체국토개주변(一切國土皆周遍)이라, 일체국토에 다 부처님이 중생을 극락세계로 이끌어주신다. 그런 말씀인데, 이건 화엄경이라는 경이 있는데 세계성취품이라고 있어요.

今日靈駕 承佛願力하야

금일영가 승불원력

華藏刹海 常樂寶宮하야

화장찰해 상락보궁

西方淨土 極樂世界

서방정토 극락세계

一念直往하고 一步往生하여

일념직왕 일보왕생

無盡福樂無盡受用하십시오

무진복락과 무진안락을 무진수용 나무아미타불

        금일영가께서는 승불원력(承佛願力)하야, 부처님의 원력을 이어받아서, 화장찰해 상락보궁(華藏刹海 常樂寶宮), 화장이라는 건 온갖 공덕이 많은 걸 화장이라고 해요. 꽃 화자, 감출 장자, 찰해라고 하는 건 여러 가지 세계에요. 세계라는 찰자고, 바다 해자. 화장찰해. 또 상락보궁이라. 항상 즐거움으로 가득한 보배궁전이라. 서방정토 극락세계(西方淨土 極樂世界). 동방을 청방이라 그러고, 남방을 적방이라 그러고, 북방을 흑방이라 그러고, 서방을 백방이라고 그래요. 희다고. 동방은 푸르름이 있다. 남방은 붉다. 남쪽으로는 벌겋게 보이거든요. 북방은 검다. 서방은 희다. 희다라는 건 뭐냐. 청정하다. 청정. 그래서 서방정토라고 그래요. 백방정토. 서방은 백방이라고. 번뇌망상도 없고, 생로병사도 없고, 근심걱정도 없고, 나쁜 게 하나도 없는 서방정토 극락세계, 거기에 일념직왕(一念直往)하시고, 한 생각으로 바로 가시고, 곧 직자, 갈 왕자, 직이란 건 직행에서 나온 거예요. 일념직왕하시고. 일보왕생(一步往生)하셔서, 한걸음에 가서 나셔서, 무진복락(無盡福樂), 한량없는 복락을, 무진하다, 끝이 없다. 복락을 무진수용(無盡受用)하십시오. 끝이 없이 받아쓰시고. 끝이 없이 받아쓰십시오.

       이렇게 해서, 오늘 극락세계 가시는 법문 모두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