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국행수륙재] 8월 22일 국행수륙재 입재 법문 2022-08-22

금차 국행무차수륙대재 입재

일체유주무주 애혼 고혼 각열위열명영가

일체열위열명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天地水月 三界空花 水月空花 施作佛事

천지수월은 삼계공화요 수월공화로 시작불사요

開方便門 示眞實相 諸佛菩薩 無盡願力

개방편문하야 시진실상이니 제불보살의 무진원력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진관사 국행수륙대재, 무차대재 오늘 입재인데, 오늘 제목을 주기를 수월공화(水月空花)라고, 물 수자, 달 월자, 빌 공자, 꽃 화자. 첫 번째 게송이 천지는 수월(天地水月)이요, 하늘과 땅은 물 속에 비친 달이요. 삼계는 공화(三界空花), 삼계는 허공에 핀 꽃이다. 우리가 보고 듣는 일체 만물이 물속 달, 허공의 꽃이다. 그렇게 수월공화로, 물속의 달과 허공의 꽃으로, 시작불사(施作佛事)하니, 중생을 제도하는 온갖 불사를 베풀어 지으니, 개방편문(開方便門)하야 시진실상(示眞實相)이라, 방편문을 열어, 진실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제불보살의 무진원력(諸佛菩薩 無盡願力)이다.

 

一切衆生 心意識心 天地三界 心外境界

일체중생은 심의식심이니 천지삼계가 심외경계요

一切菩薩 般若觀照 天地三界 寂滅實相

일체보살은 반야관조이니 천지삼계가 적멸실상이요

一切諸佛 一切種智 天地三界 水月空花 일체제불은 일체종지이니 천지삼계가 수월공화로다

나무아미타불

 

        일체중생(一切衆生), 일체보살(一切菩薩), 일체제불(一切諸佛) 이렇게 말씀을 하는데, 일체중생은 왜 일체중생이냐. 마음을 가지고 사는데 무슨 마음이냐. 심의식심(心意識心)이다. 마음 심자 심, 생각 의자 의, 알 식자 식. 심의식심을 가지고 산다. 식이라고 하는 것은 분별식인데, 보고 듣고 일체 느끼고 헤아리고 하는 분별식인데, 이걸 식별식이라고 한다. 식별을 해요. 중생은 먼저 식별을 해, 알아서 구별을 해요. 그다음에 의는 사량식(思量識)인데 생각할 사자, 헤아릴 량자, 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전부 자신이 재정리하고 재구상하고 재평가를 해요. 그게 의식이에요. 그 다음에 심식은 종자식인데, 자기가 본 거, 생각한 거, 경험한 게 전부 종자로 저장이 돼요. 종자. 그래서 이 종자식을 마음 심자를 써서 심이라고 하고, 8식이라고 하고, 이 사량식을 집착이라고 해서, 집착식이라고 하는데, 이 식을 제7식이라고 하고, 식별식을 안이비설신의 육군으로 헤아려서 식별하는 식인데 이 식을 분별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생은 분별하고 생각하고 저장하고, 한 번 경험한 건 다 저장이 돼요. 그러나 어디에 저장되는진 몰라요. 근데 종자로 다 남아. 그래서 그 종자가 볼 때, 들을 때 그 종자가 나타나야 비로소 알아요. 자기가 본 것이 저장돼 있어야 보면 알지, 본 것이 저장돼 있지 않으면 봐도 몰라요. 그래서 봐야 알지 그러는데, 저장 안 된 건 봐도 몰라요. 가령 이것(안경집을 들어보이시며)이 뭐냐. 어릴 때부터 애들이 이걸 보고 만져도 보고, 움직여도 보고, 이름도 듣고, 이게 경험이 있어야 이게 뭔지 알아요. ‘봐야 알지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종자로 저장이 된 것, 이걸 보면 내가 어릴 때 본 거, 이거지 알지생판 처음 보는 건 봐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식별식, 사량식, 종자식, 본 거는 다시 생각하고, 생각한 거는 종자로 저장되고, 그것이 경계에 부딪히면 다시 종자가 튀어나와서 그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줘서 알게 하고, 이렇게 뱅뱅 도는 거예요, 이게. 그래서 이 심의식심은 식별사량종자식인데, 이거는 특징이 밖에 것만 본다는 거예요. 안의 걸 못 봐. 전부 의경발식(依境發識)을 해요. 경계에 의지해서 그 식심을 일으켜요. 의경발식. 경계가 없으면 몰라. 그래서 일체중생은 심의식심이니, 천지삼계가 심외경계다(天地三界 心外境界). 마음 밖의 경계다. 그러니까 중생이 볼 때는 마음은 없고 경계뿐이에요. 전부 저게 뭐지, 저게 뭐지’, 그래서 경계 쫓아가다가 경계에 파묻혀서 죽는 게 중생이에요. 보통 사람은 구하다 죽고, 새는 날다 죽고, 벌레는 기다 죽고. 이게 경계 쫓아가다가 경계 속에 파묻히는 게 그게 중생인데, 이게 삼계육도 윤회중생이다. 삼계육도 윤회중생. 윤회중생, 이게 중생살이에요.  

 

        그다음에 일체보살은 어떻게 되냐. 보살은 경계가 허망하고 식심이 무상하고, 경계 없으면 식도 없으니까 경계가 나타나면 식도 나타나고, 경계가 사라지면 식도 사라지고 하니까, 이 식심이 무상해요. 금방 좋다가 금방 나빠지고, 그게 다 경계에 의지해서 식을 발동시키니까 그렇다 이 말이죠. 이런 걸 보고 깊은 이해를 하게 돼요. 이렇게 살아가는 게 이게 뭐냐. 삼계육도 윤회중생을 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발심을 하게 돼요. 이 중생을 깊이 관찰하면 발심이 나와요. 중생을 관찰하지 않으면 발심이 안 나와요. 중생이 살아가는 모습이 좋게 보이거든. 깊이 관찰하여 한번 이걸 깨달아봐야 되겠다.’ 이게 이제 보리심을 일으키는 건데, 중생에 대한 이 허망하고 무상한 것을 깊이 이해를 하고, 그다음에 깨닫고자 하는 서원을 일으켜서 이제 부처님이 깨달은 방법대로 해보는 거예요.

 

        그럼 부처님이 어떻게 해서 깨달았나. 먼저 대상을 딱 보는 거예요. 쫓아가는 게 아니라 봐요. 관조(觀照)를 해, 관조. 중생은 반연(攀緣)을 하는데, 얽을 반, 따라갈 연, 중생은 보기만 하면 반연을 하는데, 보살은 관조를 해요. 볼 관, 볼 조, 보는 거예요. 이렇게 보는 거에요. 딱 보면 형상에 형상이 없는 걸 알아요. 제상이 비상임을 본다. 왜 상이 상이 아니냐. 상은 전부 자성이 없고 상무자성(相無自性)하고, 상에는 자성이 없고, 이타의성이라, 다른 것으로 자성을 삼았다. 그러니까 이 그릇(물컵을 보이시며)도 이게 상인데, 여기 상의 상이 없다. 뭔 소리냐. 이거는 다 흙과 물과 여기 색깔, 또 만든 사람의 기술, 구상, 이런 걸로 이게 자성이 된 것이니까 이타의성이라, 다른 것으로서 자성을 삼았다. 그래서 반연하는 중생심을 잠시 멈추고, 일체상을 딱 바라보면 일체상에 일체의 자체성이 없는 거를 본다. 이것이 오온이 개공함을 본다이 말이고 제상이 비상임을 본다. 이게 반야 지혜의 관조행위거든요. 일체보살은 이걸 하는 거예요. 반야지혜 관조행위, 이걸 하는 게 보살이에요.  

 

       그러면 형상을 볼 때 형상의 형상이 없는 거를 보고 나면, 그다음에는 마음을 보게 돼요. 대상에 쫓아가는 이 마음이 뭐냐. 그래서 대상에는 이제 관심이 없고 마음을 보게 돼요. 그걸 가르칠 때, 어느 도둑이 어느 집 안에 들어갔는데 집에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 빈집이더라. 그러니까 빈집임을 안 도둑은 거기 더이상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도로 나온단 말이에요. 그 경지에요. 그러면 이 지금까지 대상에 쫓아다니던 이 반연심, 또 다른 말로 하면 연려심(緣慮心)이라고 그러는데 인연 년, 생각 려. 그 인연해서 생각하던 마음, 대상에 쫓아가던 마음, 이걸 가만히 또 관조를 하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생각도 공해서, 첫 번째는 대상이 불생불멸이고, 두 번째는 이 생각이, 심의식심이 불생불멸인 거예요. 그러고 나서 또 깊이 깊이 관조를 하면 대상과 생각이 갈라지기 전 최초 일념이 나와, 그걸 근본무명이라고 그래요. 대상과 생각이 갈라지기 전 최초 일념, 그걸 무명업상(無明業相)이라고도 하는데, 그 경지에 이제 딱 도달을 하게 돼요. 그럼 다시 또 깊이 깊이 보면 각심초기(覺心初起)하면 심무초상(心無初相)이라, 그 최초의 어리석은 한 생각이 일어난 것을 딱 깨달으면 심초기, 마음이 처음 일어난 거, 그게 미혹 최초 일념인데 그걸 깨닫는단 말이에요. ‘, 최초에 이렇게 일어났구나. ’그래서 각심초기하면, 마음이 처음 일어난 것을 깨달으면, 심무초상이라, 마음에는 처음 일어난 상이 없어. 그래서 마음은 심즉상주(心卽常住), 시위견성이라 이렇게 나오죠. 마음은 곧 상주하는 것이다. 항상 머무는 것이다. 항상 머무는 것을 보는 것이 견성이다. 이렇게 되는 거에요. 심즉상주 그게 바로 즉견심성이다. 그게 바로 심성을 보는 것이다. 이게 보살이에요. 그 보살은 반야관조지 심의식심이 아니에요. 그런데 일체중생은 심의식 그 마음 가지고 산다 그 말이죠.  

 

        근데 일체제불은 일체종지(一切諸佛 一切種智)이니, 일체제불은 삼계가 일심이오, 만법이 유심이라, 삼계가 오직 한 마음이오, 만법이 한 마음이다. 이걸 딱 아는 게 시성정각인데, 처음으로 정각을 이룬 건데,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면 지금까지 반야관조나 심의식심이 전부 지혜가 돼요. 이거를 각지출현이라고 그래요. 각지, 깨달은 지혜가 출현한다. 날 출, 나타날 현. 반야관조도 깨달은 지혜가 되고 심의식심도 깨달은 지혜가 된다. 이 말이죠. 그러면 뭐를 보든지, 저걸 세간 중생은 산이라고 보는데 저것이 유심소현이다. 오직 마음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세간법도 알고 유심법도 알고 이게 모든 종류가 다 그래요. 그래서 이거를 일체종지라고 그래요. 일체 종류의 지혜라고. 이거 이제 세간법으로 보면 안경집인데, 이게 각지로 보면 이것이 유심소현, 오직 마음이 나타나는 거예요. 뭐든지 다 그래요. 그래서 근본지와 방편지가 항상 구족하니까 일체 종류의 지혜를 다 갖춘다. 그것이 일체종지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일체제불은 일체종지이니, 천지삼계가 수월공화(天地三界 水月空花), 하늘, , 욕계, 색계, 무색계가 물속 달이요, 허공 꽃이다. 물속 달이요, 허공 꽃이라는 게, 이게 보이기는 보이는데 물속에 달이 완연히 있어요. 근데 물속에 들어가 보면 없어. 달이 물속에 빠지지도 않았고 물이 달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환히 보여요. 또 허공에 꽃이 폈는데 이게 공중발화라고 하거든요. 공중에 발화(發花), 꽃이 피었다. 필 발자. 반짝 폈는데 찾아가 보면 없어. 그럼 허공 꽃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냐. 예안소생이라, 눈에 안질이 딱 생기면 그 가릴 예자, 예안이라고 그러는데, 그 안질의 눈에 의해서 허공 꽃이 보인 거지, 예안소생이지, 공무자생이라 허공에는 스스로 난 것이 없다. 이거를 알게 돼요. 그래서 천지삼계가 물속 달이오, 허공 꽃이라고 아는 것은 일체제불 일체종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모든 게 무생청정, 원만구족, 대안정토다. 난 게 없어요. 물속에 달도 난 것이 없고, 허공의 꽃도 난 것이 없어요. 이걸 무생청정이라고 그래요. 난 것이 없는 청정세계다. 그대로 그게 화장세계예요. 화장세계라는 거는 공덕으로 저장됐다 이 말이거든요. 꽃은 공덕이니까, 모든 공덕으로 저장이 된 거고. 그리고 이게 원만구족해요. 하나도 모자라는 것도 없고, 하나도 남는 것도 없고, 그냥 원만하고 구족해 다 갖춰져 있어요. 대안정토에요. 항상 온전히 편안한, 큰 대자, 편안할 안자, 온전히 편안한 청정진토, 티끌 진, 흙 토, 청정진토다. 이제 이 세계가 각지출현 일체제불 일체종지 세계다 이 말이죠. 

        그러면 이런 게 도대체 뭐냐. 왜 중생은 심의식심을 가지고 마음 밖의 경계를 보고, 보살은 반야관조로 그 상이 아닌 모든 게 불생불멸이다, 그걸 적멸이라고 그러는데, -불생불멸을 두 자로 줄이면 적멸이에요. 그 적멸이 뭐냐 하면 진실할 실자, 형상 상자, 실상이다.- 이 일체보살은 반야관조로 적멸실상을 보고, 일체제불은 일체종지로 이 천지삼계가 수월공화로 보는데, 이게 도대체 뭐냐 이거에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법문이 60권 화엄경 야마천궁보살설게품에 있는데,

 

心如工畫師 畫種種五陰

심여공화사 화종종오음

一切世界中 無法而不造

일체세계중 무법이부조

若人欲求知 三世一切佛

약인욕구지 삼세일체불

應當如是觀 心造諸如來

응당여시관 심조제여래로다

(60華嚴經,夜摩宮偈品)

(60화엄경, 야마궁게품)

나무아미타불

 

        마음이라는 게 있는데, 이 마음이라는 거는 보통 생각하는 걸 마음이라는데, 생각하는 것도 아니에요. 마음이 아닌 마음. 그전에 법문할 때 입승스님이 나와서, 세 가지가 있는데, 불시심 불시불 불시물, ‘마음도 아니오, 부처도 아니오, 물건도 아니오.’ 이게 남전스님, 선종의 남전스님 법문인데, ‘불시심, -불시라는 건 아니다, 이 말이죠.- 마음도 아니에요. 불시불, 부처도 아니에요. 불시물, 물건도 아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그렇게 하고 죽비를 쳐요. ‘마음도 아니오, 부처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가.’ . 세 번 하는데 마음도 아니오, 부처도 아니오, 물건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가.’ . 그게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 그 말만 들으면 법문 더 들을 필요도 없어요. 그런 게 있어요. 부처라는 이름도 해당이 안 되고, 마음이라는 이름도 해당이 안 되고, 물건이라는 이름도 해당이 안 되는 그것이 있다.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뭐라고 그랬냐. 마음이라는 것은 공화사(心如工畫師)와 같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다 이거지요. 화가. 근데 화가가 모든 그림을 다 그려내는데, 화가 자신은 그림이 아니에요. 마음이 그와 같다는 거예요. 화가가 사람도 그리지만, 사람이 그려낸 사람이 그게 화가가 아니거든요. 하늘도 그리고 땅도 그리지만, 자기는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니에요. 그런데 온갖 걸 다 그려낸단 말이죠. 비유를 참 멋지게 잡았어요. 그래서 화종종오음(畫種種五陰)이라, 가지가지 오음 중생, 색수상행식 오음 중생을 다 만들어내요, 마음이라는 게. 중생도 만들어내고 또 일체세계중(一切世界中)에 이 마음이라는 게 무법이 부조(無法而不造). 어떤 법도 만들지 못하는 게 없다. 그러니까 세계도 만들어내고, 약인욕구지 삼세일체불(若人欲求知 三世一切佛), 어떤 사람이 삼세일체불을 이게 뭔가 이거 찾고 알고자 한다면, 부처를 한번 찾아보자, 구할 구자는 찾는단 말이거든요, 부처를 한번 알아보자, 찾아보고 알아보고자 한다면, 응당여시관(應當如是觀)하라, 응당히 딴짓 하지 말고 다음과 같이 살펴봐라. 심조제여래(心造諸如來)니라. 마음이 모든 여래를 만들었나니라, 이런 법문이 있어요. 그러니까 마음이 여래도 만들고, 마음이 세계도 만들고, 마음이 중생도 만든다. 그러니까 이 마음을 딱 찾아보면, 깊이 들어가면 최초 일념을 일으킨 것이 일으킨 자체가 없다. 더 들어가면 이 마음은 마음도 아닌 마음이오, 부처도 아닌 마음이요, 물건도 아닌 마음이다. 그거는 내가 보고 내가 참으로 얻을 뿐이지, 다른 길이 없어요. 자견자득, 내가 보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얻는 거예요. 여기에 생사니 세계니 범부 중생이니 전부 다 소용없는 거예요. 전부 다 이거는 망상이 만들어낸 허상이에요. 망상 허상. 그 허상은 어디서 나오느냐. 망상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허공 꽃이 어디서 나왔느냐. 눈병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일체의 근심 걱정이 망상 허상이다. 이렇게 인도하는 게 이게 수륙재예요. 일체 고혼 영가가 온갖 억울하고 분통 터지고 가슴 답답하고, 이게 전부 망상이 만들어낸 헛된 생각이에요. 그래서 이걸 깨우쳐서 바로 앉은 자리에서 대안정토로 가라고, 크게 편안한 청정국토로 가라고 이렇게 수륙재를 지냈는데, 징을 얼마나 크게 치고, 그냥 뭘 불어 제끼고, 법문하는데도 뭘 불어요. 소리를 질렀는데, 다 치우라고. 아니 법문 하는데 법문을 들어야지 무슨 뭘 불어 거기다가. 그러니까 이제 세상에서는 말을 해도 말에 자신감이 없으니까 그 말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서 전주곡을 울려요. 그러니까 하나를 울려도 만족하지 못하니까, 어떤 때는 조용한 조작된 침묵을 또 만들어내요. 이게 전부가 다 이 세상법으로 하는 거다 이 말이지요. 그래 가지고 그 귀가 기억을 잘 하도록 그 쉼표를 만들어 놓고, 큰 소리 작은 소리를 만들어 놓고 뭐 이래요. 그런데 소리라고 하는 것은 사람 생각에서 나오는 거기 때문에 생각이 기쁘면 기쁜 소리가 나오고, 생각이 슬프면 슬픈 소리가 나오는 거지, 그걸 음악으로 만들어 가지고 그걸 한단 말이에요. 그게 습관이 돼서 어떤 사람이 절에서 천수경을 주고 읽으라고 하니까, 이걸 어디서 소리를 내고 어디서 숨을 쉬는지 알 수가 없더래요. 그래서 물어요. ‘이거 어디에서 숨 쉬냐.’. 그래서 내가 얼굴을 또 쳐다보고 그랬어요. ‘여보시오, 숨 쉬다 숨 막히면 쉬는 거지, 어디 따로 그 책에 숨을 쉬고 안 쉬는 표시를 왜 해놓냐고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된다고 그래요. 내 마음이 중심이 돼야 해요. 그러면 일체중생이 세간법이 중심이 돼서 길이 들었기 때문에 그 세간법에 맞추어서 법도를 진행하는 게 이게 수월공화 수륙대재에요. 수월공화라는 건 세간법에 맞춘다 이 소리거든요. 어떻게 맞추냐.

 

建設香壇 六法陳供

건설향단 육법진공

香華燈燭 茶果珍羞

향화등촉 다과진수로다

威德自在王 勝妙變食力

위덕자재왕이 승묘변식력으로

世間種種物 解脱最上供

세간종종물이 해탈최상공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이제 수륙재를 봉행하는 데는 첫째 단을 건설을 해야 되는데, 그걸 설단이라고 그래요. 설단, 단을 여러 개 다 건설하고, 그다음에 진공(陳供)을 해야 돼요, 공양물을 진설해야 돼요. 펼칠 진, 진열한다고. 공양물을 다 진열해서 올린단 말이에요. 그러면 불교에서 올리는 공양물은 뭐냐. 육법공양물인데, 육법 공양물을 글자로 외울 때는 8자로 외워요. , 향은 향이죠. , 꽃이죠. 등을 말할 때 등이라고 한자로는 말하지 않고, 등촉이래요. 등촉. 촉이라는 건 촛불 촉자가 있고, 등이라는 건 등불 등자가 있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거 등이 두 자로 들어가요. 향화등촉(香華燈燭). 그다음에 다, 다는 차 다에요. 과는 과일이잖아요. 또 진수, 여러 가지 나물이라든지 온갖 밥이라든지 이런 걸 전부 진수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불교에서 울리는 공양물은 무조건 향화등촉 다과진수(茶果珍羞), 이렇게 6가지인데 8자로 발음을 해요. 읽기 좋으라고 그러는 거예요. 향화등촉 다과진수 이게 원래예요.  

       그러고 나서는 뭘 하느냐. 진언을 해요. 진언. 진언을 하는 게 이게 또 예식의 아주 근본이에요. 그다음에 명성이라고, 울릴 명, 소리 성, 소리를 울리는데, 여기는 대종, 대고, 큰북, 징도 있고 요잡도 있고, 목탁도 있고, 요령을 금탁이라고 그러는데, 나무로 만든 건 목탁이요, 쇠로 만든 건 금탁이에요. 입으로 불기도 하고 온갖 소리를 다 내요. 어린아이들이 여기에 오면은 그냥 까무러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요. 어떻게 소리가 많고 큰지. 진언, 명성 그다음에 독경, 경을 읽죠. 그다음에 또 설법도 하고 작관이라고 있어요. 지을 작자, 볼 관자. 작관, 관법을 짓는 게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관법을 짓는 게. 그래서 이게 전부 설단, 진공 또 진언, 명성, 독경, 또 축원, 설법, 작관, 이런 모든 것으로 법을 진행시키는 거예요. 그 하나하나가 전부가 뭐냐. 소리도 마음이오, 공양물도 마음이오, 경전도 마음이오, 설법도 마음이요, 작관도 마음이오. 일체물 일체행위 전부 마음법이라고 하는 걸로 이 의식이 구조화된 거예요. 전부가 다 이게 마음법이다.

 

        그래서 차를 한 잔 이렇게 공양을 올려도 이게 그냥 차가 아니라 위덕자재왕 승묘변식력(威德自在王 勝妙變食力) 으로 이 마음이라는 건 위덕자재왕이다. 이게 마음 밖에 경계도 되고, 또 진여 진실상도 되고 삼계 육도가 삼계 천지가 전부 이게 물속 달이요, 허공 꽃도 되고, 그 위덕이, 위엄스러운 공덕이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이게 자유 자재하는 근본 세력이다 이거죠. 위덕자재왕이. 그래서 위덕자재왕의 그 위신력으로 승묘변식력이 있다. 아주 훌륭하고 미묘해서 모든 그 음식을 변해버리게 하는 힘이 있다. 이 말이 우리가 사다라니 진언할 때 맨날 외우는 거예요. <무량위덕 자재광명 승묘력 변식진언> 그러고 끝나는 거예요.

        일체 세간물이 전부 해탈 공양이 돼요. 그게 불교 의식의 기본 구조예요. 그래 가지고 세간종종물(世間種種物)이 전부 해탈최상공(解脱最上供)이라. 세간에서 과일도 올리고 하잖아요. 이게 전부 다 해탈을 이루는 최상의 공양물이다. 이 말이 그러니까 어떤 소리를 내든, 어떤 경을 읽든 또 어떤 공양을 올리든 위덕자재왕 일심묘법력을 떠나지 않는다 이거거든요. 위덕자재왕 일심묘법력. 묘한 법의 힘. 그렇게 돼서 공양을 깊이 올리고 공양을 깊이 받으면 지금까지 온갖 고생을 하고 고통을 느꼈던 것도 전부 일심소현이다. 한 마음에서 나타난 바다. 올리는 것도 다 일심소현이다. 한 마음에서 나타난다. 이걸 알아가지고 대안정토에서 자재하게 되어, 크게 편안한 청정토에서 자유자재하게 된다 이 말이죠. 그래서 종종공양물이 즉시 자심법이라고 하는 게송이 있어요. 종종공약물 즉시자심법, 자기 마음법이다.

 

茶即是心心即茶 離茶無地露眞心

다즉시심이요 심즉시다이니 이다무지노진심이야

若向此中嘗一椀 了知無物不自心

약향다중하야 상일완하면 요지무물부자심

(水月道場夢中問答附錄)

(수월도량몽중문답부록)

나무아미타불

 

        이 게송은 조선시대의 큰 스님 허응당 보우스님이라고 계신데 그분이 이제 수월공화 수월도량몽중문답이라는 책을 지시고, 거기에 부록으로 제사 의식을 올리는 의식문이 있는데 거기 있는 게송이에요.  

        차 하나만 여기서 얘기를 한다면, 육법 공양 중에 차가 뭐냐. 다즉, 차라고 하는 것은 곧 시심이니(茶即是心), 이것은 마음이니. 차가 그게 마음이다 이 말이에요. 마음 없는 차가 어디 있어요. 일체제법은 유심소현이라, 오직 마음이 나타난 바다. 이거를 딱 깨달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심즉다(心即茶), 마음은 곧 차다. 이다(離茶)는 차를 여의고는 -다른 공양물을 여이고는 이 말이지요- 무지라는 거 없을 무자, 땅 지자인데요, 땅 지자는 안 새기는 어조사고, 노진심(露眞心)이라, 노라고 하는 건 이제 드러낸단 말이죠. 이슬 로자. 진심, 참 마음, 차를 떠나서는 참 마음을 드러낼 수가 없다. 그러니까 마음을 어떻게 드러낼까요. 그냥 차 한 잔으로 떡 올리고, 과일 하나를 올리고, 이렇단 말이지. 향 하나로 올리고 꽃 하나를 올리고. 이다무지노진심(離茶無地露眞心)이라, 차를 떠나서는 진심을 드러낼 수가 없다. 그래서 약향다중상일완하면(若向此中嘗一椀), 만약에 차 올리는 이 공양 속에서 한 잔의 차를 딱 감상을 해서 제대로 마시게 되면, 요지무물부자심(了知無物不自心)이라, 요지라는 말은 안다 이 말이죠. 알 료자, 알 지자, 무물, 어떤 물건도, 부자심, 자심이 아닌 것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요지는 안다. 뭘 아냐 무물부자심, 어떤 물건도 자기 마음 아닌 건 없다, 이걸 안다는 거에요.  

        그러면 태어나도 한 마음이오, 살아도 한 마음이오, 죽어도 한 마음이오, 살아도 한 마음이오, 영가가 돼도 한 마음이요, 다시 또 윤회를 해도 한 마음, 아무것도 없고, 거기는 뭐만 있느냐. 물속의 달이오, 허공의 꽃이다. 이렇게 재를 잘 모시면 그게 수륙무차대재가 되는 겁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