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백중기도] 7월 29일 백중기도 5재 법문 2022-07-29

금차 진관사 임인년 7월 백중 천혼간도재자 시회합원대중등 복위

천혼 소청 제위 열위 열명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금일 소청 건설법연 시회합원 전원 당년열위열명영가

今日靈駕 無始已來 至于今日

금일영가 무시이래 지우금일

無明緣行 行綠識 識緣名色 名色緣六入 六入緣觸 觸緣受

무명연행 행연식 식연명색 명색연육입 육입연촉 촉연수

受緣愛 愛緣取 取緣有 有緣生 生緣老死憂悲苦惱

수연애 애연취 취연유 유연생 생연노사우비고뇌로다

나무아미타불

 

        경전에서 가르치기를, 중생의 마음이 있고, 보살의 마음이 있고, 여래의 마음이 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중생의 마음은 범부라 그러는데, 범부심은 없을 무자, 밝을 명자, 무명심(無明心)이고, 보살의 마음은 반야심이고, 여래의 마음은 보리심이다. 무명 반야 보리. 무명이라고 하는 것은 온 천지 만물이 유심소현(唯心所現)인데, 오직 마음이 나타난 것인데, 천지 만물이 유심소현이라. 온 우주의 존재가 오직 마음이 나타난 것인데, 그 마음인 줄을 모르고 마음은 보지 못하고 물건을 본다. 심소견물이라 마음 장소에서 물건을 본다. 이렇게 보면(안경집을 들어보이시며) 이게 무명으로 보면 물건이거든요. 근데 이제 보리로 보면 이게 마음이에요. 무명견 보리견. 보리는 깨달음인데 그 마음을 깨달은 눈으로 보면 이거는 마음이다. 그래서 맨날 이렇게 물건을 들어 보이는 게 여기서 마음을 봐라이거거든요. 근데 범부는 심소에서, 마음 장소에서 물건을 봐요. 견물을 해. 심소견물. 그래서 어물탐애(於物貪愛), 자기가 본 그 물건에서 탐애를 해요. 탐하고 애착을 가져. 마음 장소에서 마음 보지 못하고 물건을 봤는데, 그 자기가 본 물건을 탐하고 애착을 가져요. 어물탐애라고 그래. 그걸로 살아가는 것이 범부의 행업이니, 행업은 하는 일이다 이 말이죠. 범부가 하는 일은 마음에서 물건을 보고 물건을 탐하고 애착하는 일인데, 그 일은 범부가 하는 일이다. 그걸 무명이라고 한다 이거예요. 이게 범부의 마음이죠. 이 범부의 마음을 그 전개 과정으로 설명한 게 12연기인데, 삼세인과가 12연기로 펼쳐진다. 삼세인과 십이연기. 그리고 삼세인과 십이연기의 핵심 본질이 무명이에요. 그래서 무명연행(無明緣行) 이런 말이 있는데 무명에서부터 12가지 항목으로 생로사까지 가거든요. 근데 무명이 있다. 그러면 그 무명이 행으로 간다. 그래서 그 무명과 행동하는 거, 그걸 연결하는 걸 인연 연자를 썼는데 그 인연 연자가 한자에서 연은 기하라, 인연이라고 하는 건 일으키는 거다. 연기. 연은 생야라, 연생.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만들어내는 거다. 또 연은 유야라, 말미암을 유, 시작할 류, 연유. 시작하는 것이 연이다, 이래요. 연기 연생 연유. 그래서 무명이 행을 일으키고, 또 행이 식을 일으키고 이래서 생로병사 우비고뇌를 무명이 다 일으키는데, 이걸 종합적으로 보면 삼세인과 12연기 이래요.

 

無明滅則行滅 行滅則識滅 識滅則名色滅 名色滅則六入滅

무명멸즉행멸 행멸즉식멸 식멸즉명색멸 명색멸즉육입멸

六入滅則觸滅 觸滅則受滅 受滅則愛滅 愛滅則取滅

육입멸즉촉멸 촉멸즉수멸 수멸즉애멸 애멸즉취멸

取滅則有滅 有滅則生滅 生滅則老死憂悲苦惱滅

취멸즉유멸 유멸즉생멸 생멸즉노사우비고뇌멸

 

        과거의 무명과 그 행업이, 행동한 업이, 활동이 이게 쌓여요. 근데 초기불교에서는 과거의 업이 어떻게 현세로 오는지 그걸 설명을 잘 못했어요. 근데 나중에 팔식 아뢰야식이 가르쳐지면서, 아뢰야라고 하는 것은 무몰(無沒)이라고, 없어지지 않는 생각이 있다는 거예요. 육십년 전의 일도 몸 어디엔가 있어요. 그렇듯이 전생에 노래 많이 불러본 사람은 노래 듣는 감이 틀려요, 벌써. 딱 들어보면 음을 알아채요. 그래서 아 이게 없어지지 않는 인식이 있구나이거를 발견한 거예요. 이걸 아뢰야식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과거 무명 행업이 아뢰야식을 통해서 현재로 오면 그게 과거 무명이죠. 그것이 행업을 일으키고 그러면 그게 또 태어나요. 그래서 또 현세에서 계속 감수성, 애착성을 가지면 내세에 태어날 또 힘이 돼요.

 

三界所有 唯是一心

삼계소유 유시일심

無邊虛空 覺所顯發

무변허공 각소현발

覺所見物 於物貪愛

각소견물 어물탐애

凡夫行業 是爲無明

범부행업 시위무명

 

        그래서 내세에 또 태어나고 이렇게 삼세인과 십이연기로 설명하는데 이게 범부가 살아가는 길이에요. 그래서 범부는 항상 무명, 깨달은 부처님들은 심외무법이라,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있는 게 없다. 유심소현이라, 오직 마음이 나타난 거다. 삼계소유(三界所有), 삼계라는 건 온 세상인데, 온 세상에 있는 바가 유시일심(唯是一心)이라, 오직 한 마음이다. 오직 유, 이 시, 한 일, 마음 심, 이게 보리심이에요. 무명심은 마음에서 물건 보고 자기가 본 물건 탐애하고, 그래가지고 생로병사 우비고뇌를 끊임없이 받는다, 이게 무명심이고요. 그래도 원각경 같은 데서는 무변허공(無邊虛空)이 각소현발(覺所顯發)이라, 끝없는 허공이, 각은 깨달을 각, 알 각, 마음 심자와 같은 건데, 이 무변, 끝없는 허공이 각심에서 나타난 곳이다. 장소라는 소자. 아는 마음에서 나타난 것이 무변허공인데 무변허공은 온 우주 법계라는 거죠. 허공 없는 곳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근데 보살은 뭐냐. 그 무명에서 오직 마음밖에 없다고 하는 보리심으로 가는 과정을 반야라고 그래요. 반야는 도피안이라. 피안에 간다. 무명은 이쪽이고 보리는 저쪽인데, 무명에서 보리로 간다. 그게 반야거든요. 그럼 무명은 뭐냐. 딱 한 생각 착각, 한 생각이 잘못 본 거다. 이렇게 보면(안경집을 보시며) 여기에 자기도 모르게 아 이거 뭐다요걸 대상으로 인식했다는 거예요. 그걸 무명이라 그래요. 대상 인식. 대상 인식을 하게 되면 인식하는 주체는 잃어버리고 인식의 대상에 빠져들게 돼요. 이거를 불교에서는 경계에 팔린다 그래요. 경계에 팔린다. 내가 팔려가면 어떻게 돼요. 내 마음대로 못하고, 나를 사간 사람이 알아서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경계에 팔린다는 말은 뭐냐 하면, 물건을 딱 보는 순간에 내 인식이 물건으로 가버려, 그래서 이 물건의 경계인데 경계에 팔려 갔다. 그래서 맨날 팔려 다니는 게 무명이에요. 사람 보면 사람에게 팔려 가고, 손자 보면 손자에게 팔려 가고, 아들 보면 아들에게 팔려 가고, 오늘은 이쪽에 팔려 가고, 내일은 저쪽에 팔려 가고. 한평생 팔려 다니고, 이게 경계에 팔린다,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이걸 대상으로 인식하기 전에 딱 보는 본 인식이 있어요. 이거 딱 보면 이게 뭐 안경집이다.’ 이거 생각하기 전에 그냥 딱 보여주는 게 있어요. 그걸 본 인식이라 그러고, ‘아 저거는 어떤 거다이렇게 하면은 이걸 후 인식이라고 그래요, , 뒤에 인식하는 거다. 본 인식에 머물러서 본 인식에 자재하면 팔려 가는 일이 없어요. 뭘 봐도 아 저건 나의 인식이다.’ 그냥 자재할 뿐이지 쫓아가는 일이 없어요. 쫓아간다는 말은 탐하고 애착한다 이 말이거든요. 탐애하는 일이 없어요. 그냥 인식은 하되 탐애는 않는다. 그러면 그걸 반야라고 그래요. 그냥 인식만 해요. 탐애는 안 해요. 탐애하다 보면 나중에 싫어져요. 또 버리게 돼요. 이걸 취사 무명이라고, 취하고 버리는 무명이다, 이렇게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선지식의 가르침을 듣고, 경전의 가르침을 듣고, 이 무명심이 한순간에 깨지는 수가 있는데 그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한순간에 확 무너질 때가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 대상 인식에 팔려 가는 마음이 없어요. 그래서 본 인식에 자재한단 말이에요. 후 인식에 안 팔려가면 그 본 인식에 자재하니까 그걸 무명이 없어졌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게 무명이 없어지면 생로병사 우비고뇌가 그냥 다 없어지는 거예요. 그냥. 예를 들면 수면 몽식이 있는데, 수면 몽식, 수면은 잠자는 거잖아요. 이렇게 잠이 들고 그냥 잠만 자면 그만인데, 꿈을 꿔. 그러면 꿈을 한참 꾸면 자기가 누군지 몰라요. 자기가. 그래서 꿈꾸는 동안에는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계속 뭘 보기도 하고, 뭘 하기도 하고 그래요. 근데 누가 문을 확 열어서 그래서 잠을 탁 깼어요. 꿈은 없어졌어요. 잠 깨서 꿈 없어지니까 꿈에서 봤던 건 하나도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무명으로 인식한 대상은 무명이 없어지면 아무것도 없다. 이게 천도에요. 삼세 인과로 계속 윤회를 하는데 그 삼세인과 윤회 생사는 무명 의식 고거 하나다. 그래서 꿈꾸는 사람이 잠 깨면 꿈도 잠도 없다. 잠을 깨면 그만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 무명인식을 딱 깨면 생사는 없고 뭐만 있냐. 마음뿐이다 이거지. 생사는 없고 마음뿐이다.

        뭘 보든지 본 인식이 있어요. 하늘을 보더라도 저 하늘인 걸 아는 본래 인식. 근데 저 하늘이 지금 넓다, 구름이 있다, 바람이 분다, 그렇게 인식하고 하늘이 수정같이 맑다. 이건 탐애예요. 저기를 훨훨 날아다녔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그래서 본 인식에서 후 인식을 하고 후 인식에서 그걸 탐하고 애착하고 요게 무명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무명이 딱 깨지는 순간에 천지 만물은 천지 만물이 아니고 유심소현이다. 천지 만물이 유심소현이다. 오직 마음이 나타난 거다, 이게 천도예요. 천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천지 만물 생로병사가 오직 마음이 나타난 거다, 고거 아는 게 천도예요. 그래서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구제하냐. 꿈 딱 깨게 하면 끝나는 거예요. 꿈 잘 꾸라고 찬물 갖다주고 바람 부쳐주고 그게 아니고, 막 땀 흘리면서 꿈꾸고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 구제하는 거는 잠에서 딱 깨게 하면 끝나는 거예요. 석가모니가 그걸 깨달았다는 거죠. 그래서

 

佛以大圓覺 充滿十方界

불이대원각으로 충만시방계어늘

我以轉倒想 出沒生死中

아이전도상으로 출몰생사중이로다

既從一念生 還從一念滅

기종일념생이니 환종일념멸이라

生滅滅盡處 則我與佛同

생멸이 멸진처에 즉아여불동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이 게송은 낙방문류(樂邦文類)라고 극락세계에 가는 모든 가르침을 적어 놓은 책이, 극락이라는 낙자, 나라 방자, 낙방, 문류, 글의 종류다, 이걸, 극락세계에 가는 문헌을 모아놓은 책을 낙방문류라고 그러는데, 거기에 있는 게송인데, 불이대원각(佛以大圓覺)으로서 크게 원만한 깨달음을 이룸으로서, 이제 무명에서 반야행을 통해서 대원각을 이룬 게 여래란 말이죠. 무명 없으면 깨달음도 없어요. 깨달음을 이루는 건 전부 무명 범부가 깨닫는 거지, 제불은 이미 깨달았는데 뭘 깨달아요. 그렇지 않아요? 부처님은 대원각으로서 크게 원만한 깨달음으로서, 충만시방계(充滿十方界)어늘, 이 시방 세계에 충만하다, 가득하다. 부처님은 그 깨달은 마음이 자기가 되는 거예요. 범부는 요 태어난 몸이 자기가 되요. 태생일신이 유아자기다, 오직 나의 자기다. 근데 요 태생일신이라는 거는 이거 진짜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아서, 이거 살아도 오래 가면 못 쓰는 물건이에요. 이 물건은. 어떤 사람은 속도 없이 늙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꿈 깨라고 그래요. 늙으면 아파 죽겠고,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데 행복은 무슨 놈의 행복이에요. 이 몸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살아 있어도 숨만 쉴 뿐이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어요. 난 젊을 때 노인들이 왜 저렇게 천천히 점잖게 움직이나 했더니, 점잖은 게 아니고 힘이 없어서, 몸이 둔해져가지고 그렇더라고, 그래 내가 깜빡 속았다니까요. 그러니까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에요. 그 노인의 그 애로와 노인의 고통은요, 노인이 안 되고서는 몰라요. 그냥 오래 살고 봐야 돼요, 여하튼. 70대가 어떻게 80대를 알 수 있으며, 80대가 어떻게 90대를 알겠어요. 그러니까 오래 살아봐야 알지. 이 몸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근데 그 범부가 알 수 있는 건 오직 몸뿐이에요.

        근데 깨달은 부처님은 그 자체가 없고 주소가 없고 막힘이 없는 해탈 광명 불성 실상, 이게 내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해탈 광명 불성 실상은 온 시방계에 가득하단 말이죠. 그래서 충만시방계(充滿十方界)라 그래요. 그런데 아이전도상(我以轉倒想)으로, 나는 전도상으로서, 전도상은 무명상인데 내 마음에 내 마음을 보지 못하고 물건을 보고, 그 자기가 본 물건에 또 탐하고 애착하고 그게 전도상이거든요. 자기 집에서 자기 집인 줄 모르고 남의 집으로 알고, 그 남의 집에 물건이 좋아 보인다고 자꾸 욕심내고. 그걸 전도상이라고 그래요. 나는 이 전도된 무명 생각으로 출몰생사중(出沒生死中)이라. 나고 죽는데 계속 출몰을 한다. 오르락 내리락 출하는 건 출생이요, 몰하는 건 죽음인데 자꾸 오르락 내리락 한단 말이죠.

       그런데 이 생사가 어디서 왔느냐. 기종일념생(既從一念生)이요, 이미 한 생각으로부터 나왔다. 한 생각이 그 본 인식에 머물지 못하고 후 인식으로 가고, 그 후 인식이 또 탐애을 해서 거기서부터 나왔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환종일념멸(還從一念滅)이라. 도리어 한 생각으로부터 그 후 인식 탐애가 사라진다. 그러니까 이걸 물건으로 봤던 걸 마음으로 딱 알아채면 이 물건으로 집착하는 건 싹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한 생각으로부터 생사가 생겼으니까 생사가 없어지는 것도 한 생각으로부터 없어진다. 그래서 생멸이 멸진처(生滅滅盡處), 나고 죽는 게 없다. 마음뿐이다. 그래서 오불견공(悟不見空)이라, 깨달을 오, 아니 불, 볼 견, 허공 공, 그 말이 있는데 깨달은 사람은 허공을 못 본다. 그럼 허공이 뭐냐. 일체 만물이 다 허공 안에 있는데 일체 만물을 허공이라고 그래요. 근데 깨달은 사람은 허공을 못 본다고 하니까, 깨달은 사람은 일체 만물을 못 본다, 이거예요. 그럼 뭘 보느냐. 오직 마음임을 본다 이 말이지. 오불견공이에요. 깨달은 사람은 허공을 못 본다. 왜냐. 허공은 없고 오직 마음뿐이다. 이렇게 훌륭한 법문을 어떻게 남겼는지 참 기가 막혀요. 오불견공이에요. 그러니까 깨닫고 나면 죽고 사는 게 다 마음이에요. 불취불사(不取不捨).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아요.

        그래서 생사가 멸진처에, 생사는 없고 오직 마음임이 드러나는 곳에, 즉아여불동(則我與佛同)이라, 곧 내가 즉 아가 여불, 불과 더불어 같다. 무명 때문에 제불과 다른 거지, 깨달음을 얻으면 불과 내가 똑같다. 이런 법문이거든요. 이런 법으로 천도를 하는 거예요. 이런 법으로.

 

在處爲西方 所遇皆極樂

재처가 위서방이요 소우가 개극락이니

人人無量壽 無去亦無來

인인이 무량수요 무거역무래로다

(樂邦文類5,大正藏47.215)(낙방문류 제5, 대정장47.215)

나무아미타불

 

        오직 마음밖에 없다고 하는 그걸 깨달으면, 이제 비유로 말할 때, ‘동방은 생사요, 서방은 극락이라이렇게 가르쳐요. 서방은 청정방이라, 동방은 생멸방이라 가르치는데, 그게 서방은 정토요 동방은 예토(穢土)다 이렇게 가르친단 말이죠. 서방은 극락세계요, 동방은 사바세계다. 그런데 이거는 무명심이 있을 때 얘기고, 보리심으로 싹 바뀌게 되면 재처가 위서방(在處爲西方)이라, 있는 곳이 자기가 어디 있던지 방석에 있던지 땅바닥에 있던지 방 안에 있던지 재처가 서방이 된다. 극락세계가 된다 이거예요. 재처가 위서방이라. 자기가 어디 있든지 있는 곳이 바로 서방정토 극락세계다. 소우가 개극락(所遇皆極樂)이라. 만나는 바가, 바 소, 만날 우, 만나는 그것이 개극락이라, 다 극락이다. 이게 이제 무명에서 마음을 깨달은 뒤에 이야기죠. 그곳으로 가는 게 천도를 하는 거예요. 인인이 무량수(人人無量壽), 사람 사람이 무량수다. 이거를 본 인식으로 보지 못하고 후 인식과 탐애 의식으로 보면, 그게 이제 태어난 날로부터 하루하루 늙어가다가 죽는데 이건 무량수가 아니고 유량수에요. 셀 수 있는 헤아릴 수 있는 수명이란 말이죠. 그런데 그 본인 식으로 딱 들어가면 마음 뿐이기 때문에 시종이 없어요. 이 실상광명은 무시무종이라 진실상, 그 광명은 생일 날이 없어요. 제삿날도 없어. 그러니까 뭐 언제 태어났다 연세가 얼마다, 언제 돌아가셨다 하는 건 전부 이건 무명 놀음이에요. 후 인식 놀음이라고요. 본 인식으로 딱 들어가면 실상광명뿐이니까 거기에는 시작이 없다. 그래서 사람 사람이 본인식 실상 광명으로 들어가면 전부가 무량수다. 한량없는 수명을 가지고 있는 거다 이거죠. 이 유한 생명에서 무량수로 돌아가는 게 이게 조상 천도거든요. 무량수. 그 무량수가 극락세계죠. 그래서 거기에는 무거역무래(無去亦無來).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또 어디서 오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돼서 무명심, 반야심 보리심인데, 온갖 공덕으로 이 생로병사에서 해탈 피안으로 가는 건 보살이고, 오직 마음 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건 여래인데, ‘일체 조상들을 떡 모셔서 바로 이 찰나에 그 청정심을 깨달으면 생로병사는 꿈 깨듯이 없어지고 무량 복락이 무진장으로 펼쳐지는데 그렇게 천도를 받으십시오.’ 하는 법회가 이런 천도법회입니다.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