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백중기도] 6월 25일 백중기도 입재 법문 2022-06-25

 

마하반야바라밀.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한 번도 안 맞춰봤는데 이 정도 맞으면 엄청난 겁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오늘은 하안거 입재하고나면 늘 기도 입재하게 되는 백중입재일입니다오늘 백중을 입재하면서, 늘 이때만 되면 우리 불자들은 백중을 입재하게 되는데, 백중은 말 그대로 불교 5대 명절이기도 하고, 다른 말로는 우란분재 이렇게 얘기를 하죠. 백중이라는 말은 100가지 음식을 마련해서 100명의 대중을 모셔서 정성을 다해서 부모님을, 선망한 조상들을 추모하는 걸 의미하기는 하죠. 그래서 100가지 음식과 100명의 대중이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첫 번째로 인연을 갖춰야 된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백중을 기도 입재 하면서 첫 번째로 준비해야 될 것이 <내 마음에 인연을 갖춰야 된다.> 근데 <그 인연을 어떻게 갖추느냐?> 라는 거잖아요. 마치 농번기는 한참 지나서 지금은 들녘들이 모도 많이 자라고, 밭에 곡식들도 많이 자라 있지만, 농사를 짓기 전에 이렇게 밭을 갈고 씨를 뿌리듯이, 그런 마음의 준비가 입재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입재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죠. 마음의 결을 다듬는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근데 그 마음의 결이라고 하는 것은 기존에 내가 절에 오기 전에 마음과 달라야 되겠죠. 우리 마음의 결을 다듬는 첫 번째가 인연을 갖춰라.

 

        어떤 인연을 갖출 거냐. 우리가 누구를 만나면 <참 좋은 인연입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좋은 인연이라는 걸 내 마음에 갖춰놔야 그다음에 결과가 따라 오겠죠.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원인과 결과지만, 어떻게 보면 원인적인, 인과적인 것보다는 인연이라는 말은 어떤 씨앗을 우리의 마음속에 뿌릴 거냐가 더 무게 중심에 와 있죠. 여러분이 지금 이 백중을 입재하면서 마음에 어떤 씨앗을 뿌릴 거냐. 그 인연을 갖추는 거거든요. 어떤 씨앗을 뿌릴 겁니까. 백중천도재를 하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마음속에 발원들을 하죠. 그게 발원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씨앗을 뿌리는 건데, 아마도 여기 100명이 있으면 100명의 씨앗이 다 다를 겁니다. 그런 여러 가지 백중을 통해서 조상을 추모하고 기리고 또 천도해서 내가 뭔가를 얻을 거라는 것도 있겠지만, 저는 첫 번째로 인연을 갖춰야 되는 것은, 이 백중 49일 동안의 첫 번째 인연은 뭐냐 그러면, <밖에서 구하지 마라>. 이게 제가 입재를 하면서 첫 번째 여러분에게 드리는 화두 같은 이야기입니다. 밖에서 구하지 마라. 우리는 밖에서 너무 많은 것을 구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게 인지상정이죠. 그런데 밖에서 구하면 한 번도 만족한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밖에서 하는 건 항상 내 안에 들어오면 갈등 내지는 갈증, 이 두 가지로 됩니다. 갈등과 갈증. 그래서 이번 49일 동안에는 밖에서 구하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 있던 시선들을 끌어들여서 내 안에서 뭔가를 구해야 되겠다. 좀 전에 우리 주지스님께서 49일 동안에 뭐 염송하라고 그랬습니까? 지장보살. 금세 까먹었어요? 지장보살를 염송하라고 했죠. 지장보살 염송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밖에서 지장보살를 염송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지장보살를 염송해야 하는 거 이게 마음의 결이에요. 결의 변화입니다. 무심코 그냥 밖에서 우리가 기존 하던 대로 지장보살님을 염송하던 것들을 끌어와서 내 마음의 심중에 지장보살을 모시고 지장정근을 해야 된다. 이 차이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49일 동안의 첫 번째 인연을 갖추는 것은 밖에서 구하지 마라. 그 밖에서 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망령된 인연을 버려야 된다, 놔야 한다, 망령된 인연을. 망령된 인연이라는 것은 허망한 인연입니다. 허망한 인연을 내가 놓지 않으면 밖에서 자꾸 구하게 돼요. 지금 이 말씀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 지눌스님께서 쓰신 수심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중생이 허덕거리는 것은 밖에서 구하기 때문이다. 이 안에 다 모든 보물이 들어가 있는데, 이미 갖춰져 있는데, 그거를 다른 말로 법장이라 하고 다른 말로 연화장이라고 하죠. 근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밖에 자꾸 찾다 보니까, 그 구한 것이 나에게 갈증이 되고, 구한 것이 나에게 나의 삶 속에 갈등으로 점철돼 간다. 그래서 밖에서 구하지 마라.

 

       두 번째로는, 한여름에, 좀 있으면 여름 휴가 가면 해수욕들 가시죠. 해수욕. 바닷가에 가서 가족들하고. 진관사 쭉 오다 보니까 북한산 자락에 물놀이 하는 데가 있대요. 보니까 거기 이미 차가 만석이야. 차가 엄청나게 많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물놀이를 가면 우리는, 물놀이가 핵심이 아니라, 물놀이를 가면, 여름 되면 우리는 선글라스를 끼죠. 선글라스 다 있으시죠. 선글라스를 왜 껴요. 눈부시니까. 물론 패션으로 끼시는 분도 있어요. 보니까 패션이 아니라 자외선을 차단해서 눈을 보호하기 위한 거잖아요. 근데 그 선글라스에 따라서 보이는 게 어떤 빨간 선글라스를 끼면 빨갛게 보일 거고, 또 약간 누런 선글라스면 누렇게 보이겠죠. 그 선글라스라고 하는 것 자체가 내 눈을 보호하는 것도 있지만, 세상이 그 선글라스에 의해서 다르게 보여지는 거예요. 그래서 인연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 자외선으로 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선글라스를 끼는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그런 결을 다듬는 것이 그런 역할을 하는 거다라는 겁니다. 아주 쉬운 일이에요. 마음 결을 다듬는 거. 그래서 순간순간에 밖에 향해 있던 마음들을 자꾸 내 안으로 끌어들이면 그것 자체가 이 백중 49일 동안에 가장 큰 준비이면서도 꼭 필요한 그러한 인연을 갖추는 거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절에 살 때 절에 항상 틀어놓는, 언젠가부터인지 몰라도 아주 어렸을 때는 아닌 것 같고 초등학교 그 당시에는 국민학교였죠. 국민학교 다닐 때에 절에서 틀어놨던 염불이 하나 있어요. 근데 그 염불이 너무 좋아서 어렸을 때 들었는데 그 스님의 염불 소리도 참 구성지고 좋았지만 그 내용이 너무너무 가슴에 와닿았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면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데 그때 한글로, 그전에는 다 한문으로 이런 경전을 읽고 그랬는데, 유일하게 한글로 염불한 염송, 염불이었어요. 그게 뭐냐면 부모은중경입니다. 부모은중경. 비구니 원정이라는 스님이 음반을 내신 건데, 옛날에는 테이프였어요. 테이프를 사와가지고 법당에 트는데 이게 옛날에 자동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니까 돌려야 되잖아요. 그래서 법당 가서 테이프를 계속 돌리게 하는 소임이 저였어요. 염불이 안 끊어지게, 그래서 그 염불이 어떤 거냐. 한번 들려드릴까요.

 

.....서 되의 피를 흘리고 여덟 섬 너 말의 젖을 먹여야 하므로 뼈가 검고 또 가벼우니라. 아난이 이 말을 듣자 가슴을 오리는 듯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오면 어머니의 은혜를 갚사오리까?" .......

 

음성이 좋으시죠. 이걸 계속 들을까요 그냥, 법문 하지 말고. 근데 어렸을 때도 이걸 들으면, 아주 철이 없을 때인데도 어머니의 은혜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새삼 생각하게 되고 그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백중이라고 하는 것이 선망 부모의 은혜를 갚는 건데 그중에서도 어머니의 은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거죠. 부모은중경은 한 번씩은 읽어보셨겠지만, 부처님하고 아난하고 나누는 대화란 말이죠. 어느 날 부처님하고 아난하고 길을 가다가 뼈 무덤을 보고 부처님이 예를 하잖아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예를 하니까 아난이 물어봅니다. “부처님은 삼계의 대도사이시고 사생의 자부신데 어떻게 뼈 무덤에다가 예를 하십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 뼈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있겠느냐?” 그러니까 아난이 살아 생전에는 모습이 있으니까 남자인지 여자인 줄 아는데 뼈만 보고 어떻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때 부처님께서 이 뼈가 남자의 뼈라면 희고 무거울 것이며, 여자의 뼈는 검고도 가벼울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 이유가 뭐냐. 그것 때문에 쭉 얘기를 하는 거예요. 조금 전에 경전에 나왔듯이 아기를 낳을 때 서말 서되나 되는 피를 흘리고~”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그리고 양육할 때 젖을 먹이면서 본인의 몸에 있는 진액을 다 아이에게 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나이 80이 되더라도 60대 아들이 소식이 없으면 노심초사하는 게 부모님의 마음이다.”까지 쭉 얘기가 나온단 말이에요.

 

        부모님이 은혜라고 하는 건 그만큼 지중하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이제 그런 지중함을 살아 생전에 갚으면 좋은데 살아 생전 못 갚고 꼭 인연이 다 하고 나서 그런 마음들이 돌아가죠. 그게 왜 그럴까요? 알 수가 없어요. 꼭 지나고 나면 후회하죠. 왜 그러냐 그러면, 우리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미혹. 미혹하기 때문에 그런 인연들을 그때그때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고 나면 늘 후회하게 된다. 오늘 이 백중기도라고 하는 것은 그런 미혹한 마음들을 내려놓고 부모님의 은혜를 아주 진중하게 되뇌이는 그런 49일을 준비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부모은중경에 보면 부모의 은혜 10가지가 나오잖아요. 10가지가. 내가 오늘 10가지를 적어왔는데 이걸 한번 잘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으로.

       첫 번째로는 잉태하여 지켜주신 은혜. 아기를 잉태하여 품어 주고 지켜주는 은혜. 여기는 주석을 달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다 뜻을 알잖아요. 10가지만 새겨보자라는 거예요, 마음속에두 번째로는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을 감내해 주신 은혜. 셋째는 아이를 낳으시고 근심을 잊으시는 은혜. 넷째는 입에 쓴 것 삼키시고 단 것은 먹이시는 은혜. 다섯째는 마른 자리 내어주고 젖은 자리 뉘시는 은혜. 여섯째는 젖을 먹여 키워주신 은혜. 일곱째는 더러운 것 깨끗하게 씻어주신 은혜. 여덟째는 먼 길 가는 자식을 걱정하는 은혜. 아홉째는 자식 위해 궂은 일도 자청하신 은혜. 열 번째 끝까지 사랑하고 염려하는 은혜. 이렇게 10가지인데, 10가지 마음으로 우리는 자식을 키우고, 또 우리 자식들은 그런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죠. 근데 이제 문제는 이러한 마음들을 서로 간에 알면 좋은데 자식은 잘 몰라요, 그 마음을. 근데 본인이 이제 부모가 돼 보면 그걸 좀 알죠. 근데 이미 그때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돌이키기가 어렵죠. 우리가 그런 마음들을 자식에게 잘 물려주려면 우리 스스로가 이런 마음들을 잘 잊지 말고 이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막상 일상에 돌아가면, 아까 이야기했듯이 마음을 안으로 들여야 되는데, 마음을 바깥으로 자꾸 돌리다 보니까 어떤 경계나 아니면 현상에 빠져서 화를 내기도 하고 험한 말을 하기도 하고 상처되는 말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지나고 보면 내가 부모에게 정말 잘해야 할 것 중에서 맛있는 걸 사드리고 좋은 옷을 해 드리고 이런 것보다도, 공통적으로 많은 분들이 하는 얘기가 뭐냐면 따뜻한 말 한마디 해드릴 걸, 따뜻한 소식 한 번 전해드릴 걸,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거는 돈이 드는 게 아니에요. 물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거는 마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거를 못한다는 건 그만큼 우리 마음이 뒤바뀌어 있기 때문에, 거꾸로 매달려 있기 때문에, 바뀌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백중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도 다른 의미로 우란분이라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 우란분이라고 하는 게 목련 존자가 자기 어머니를 보니까 이생에 인연을 잘못 맺어서 어떤 과보를 갖고 있냐면 거꾸로 매달려 있는 인연을 과보로 갖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란분,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걸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힘듭니까. 생각만 해도 힘들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이 우리 몸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도 뒤바뀐 생각을 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 뒤바뀐 생각을 바로 세우는 것, 바로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 백중 49일 동안에 우리가 해야 될 일이고요.

       뒤바뀐 생각이 뭐예요. 몽상이잖아요. 몽상, 전도몽상이라 그러잖아요. 뒤바뀐 생각 그 뒤바뀐 생각을 접어야 되는데, 그 뒤바뀐 생각을 하는 게 바로 미혹, 아까 말씀드린 미혹하다. 근데 중생 그러면 따라오는 게 미혹이란 말이에요. 부처님 그러면 지혜 광명이고, 중생 그러면 미혹인데, 그 미혹함이라고 하는 건 두 가지 줄기로 우리가 거기에 빠져듭니다. 그 미혹함 첫 번째가 뭐냐. 이 몸에 대한 잘못된 뒤바뀐 생각이에요. 이 몸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지는 이 몸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경계에 대한 미혹인데, 이 경계라고 하는 건 다른 말로 하면 마음 경계예요. 어떤 마음에 어떻게 빠져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미혹이라는 게 두 가지죠. 몸에 대한 미혹과 경계에 대한 미혹. 이거를 이제 바꾸는 건데 어떻게 바꾸느냐. 몸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몸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몸은 무상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무상하다. 목련 존자 어머님이 그 거꾸로 매달린 과보를 받는 것은 첫 번째는 몸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무상하다는 건 뭐야. 항상함이 없다는 거잖아요. 항상함이 없다. 여러분 지금까지 오시면서 몸이 항상 했던 거예요? 계속 변하고 있잖아요. 경계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이 무상하다는 것 중에 무상하다고 그래서 그냥 기대를 져버리면, 그걸 기대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이게 아이러니한 겁니다. 무상이 몸을 기대야지 참을 얻을 수가 있어요. 그 무상함 속에 참이 있는 거예요. 무상이라는 것은 가화합된 거지만 그 가화합된 속에서 의지하고 뭔가 마음을 결을 바꾸고, 마음을 변화시켜야지만이 참으로 갈 수가 있어요. 근데 이 무상이라고 하는 것이 다 덧없다 놔버리면 참으로 가는 진여문 자체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거기까지 못 가더라도, 이 몸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못하고 순간순간 계속 까먹어요. 까먹어서 이 몸에 집착을 하죠. 이 몸의 느낌에 집착을 하고, 이 몸의 편안함에 집착을 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 감각적인 것이 채워지지 않고, 느낌적인 것이 편하지 않고 그러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그렇단 말이에요. 불만이 생기고 그 불만이 커지면 불행해지고. 아주 단순한 겁니다. 단순한 이치인데 그 경로를 잘 이해하면 체득이 되는데, 그게 아니라 그 순간순간에 마음의 경계에 빠지고 몸의 경계에 빠지니까 그 한 단계도 가지 못하는 거예요. 몸이 허망한 것 맞아요. 이 몸이. 그런데 이 몸을 의지하지 않고는 부처님전에 예경할 수가 없잖아요. 허망하다고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라는 게 아니라, 이 허망한 몸을 굴려서, 움직여서 내가 지혜의 마음으로 바꾸고 자비한 마음으로 바꾸는 거다. 근데 마음의 근본은 항상 . 이 몸은 항상 무상한 거다.” 라는 생각을 가져야지만이 뒤바뀐 생각에 빠지지 않는다, 아시겠죠.

 

       나중에 아난존자가 묻습니다, 부처님에게. “부모님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됩니까?” 부모은중경에 아주 명징하게 나와 있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갚는 여섯 가지 방법이 명징하게 나와 있어요.

      그 부모의 은혜를 갚는 여섯 가지 방법은 축약된 본 말고, 핸드폰으로 이렇게 부모은중경을 찾으면 원문도 나오고 해석된 것도 나오고 다 나와요. 그거를 읽어보시면 아주 명확하게 해설된 거 있으니까 거기서 부모의 은혜를 갚는 여섯 가지 방법을 꼭 숙지하시고, 다음 백중 회향 전에 와가지고, 올 수 있는 인연이 또 된다면 꼭 물어볼 거예요. 꼭 물어볼 거니까 숙제니까 그렇게 알아주시고.

 

      백종 입재하면서 오늘 말씀드린 두 가지, 뭐예요?

하나는 밖에서 구하지 마라. 밖에서 구하지 마라. 두 번째로는 마음을 바로 하자. 뒤바뀐 마음을 바로 하자. 이 두 가지가 오늘 입재 법문의 핵심이니까, 49일 동안 이 두 가지를 명심해서 49일 동안에 늘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요즘에 추앙이라는 말을 많이 쓰대요.- 부모님을 추모하고 추앙해서 부처님 가피가 늘 함께하는 불자가 되시기를 축원 올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