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49재] 6월 2일 49재 법문 2022-06-02

금일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人生如草露하니(인생여초로)

인생은 풀잎에 이슬 같으니

光陰夢一場이라(광음몽일장)

한평생이 하룻밤 꿈인 듯하다.

於中有靈心하니(어중유영심)

그중에 신령한 마음이 있으니

天終這不終이로다.(천종저부종)

하늘은 다해도 이것은 다함이 없다.

나무아미타불

        극락세계 극락세계 가셔야 되요. 극락세계가 어느 곳에 있으며, 극락세계에 누가 가며, 극락세계를 어떻게 가는가 그게 오늘 법문의 내용입니다.

        극락세계는 삼세 제불이 깨닫고 역대 조사가 깨닫고 천하 선지식이 깨달은 세계인데요. 어떻게 깨달았냐. 사람에게는 의식이 있고, 생각, 지혜가 있는데, 그 지혜로 얻은 세계를 극락세계라고 합니다. 지혜로 얻은 세계. 의식으로 얻은 세계를 생로병사 우비고뇌라고, 나고 죽고 근심 걱정하는 거. 나고 죽고 근심 걱정하는 것은 모두 생각에서 오는 거고, 극락세계는 지혜에서 온다. 그래서 생각으로 보면 한평생이 긴 것 같지만 지혜로 보면 한평생이 일순간이다.

        그래서 지혜로 한평생을 돌아볼 때, 인생이 여초로하니(人生如草露), 인생이 풀잎에 이슬과 같다. 생각으로 보면 한평생이 까마득하고 먼데요. 지혜로 딱 돌아보면 한평생이라는 게 풀잎에 맺은 이슬이 해가 뜨면 금방 사라지는 그런 이슬과 같다. 그래서 광음이 몽일장이라(光陰夢一場), 한평생 시간이 하룻저녁 꿈꾸고 깬 것과 같은 것이 우리 인생사다, 이렇게 느끼는 거거든요. 그럼 어중의 유영심(於中有靈心)만이, 그 가운데 그러면 한평생이 풀잎에 이슬과 같은 줄 알고 한평생이 한바탕 꿈꾸는 것과 같은 것을 아는 그건 뭐냐. 그걸 아는 거. 그걸 신령스러운 마음이라고 그러는데요. 신령 령자. 진짜 그 신령스러운 마음이 인생이 허망한 것도 알고 한평생이 순간이라는 것도 아는데 그 지혜의 신령스러운 마음이 극락세계를 간다. 이런 말씀이에요. 그래서 나고 죽는 그 사이에 신령스러운 마음이 있으니 그 신령스러운 마음은 천종하되 저부종이라(天終這不終), 하늘은 끝이 나도 그 신령스러운 마음은 끝이 없다. 그게 깨달은 지혜거든요.

        그래서 이 지혜라는 게 뭐냐. 낮에는 밝은 거 보고, 눈을 감으면 어두운 거 보고, 잠을 자면 꿈을 꾸고, 소리가 나면 소리 나는 거 듣고, 소리가 안 나면 그 조용한 것을 안다. 소리가 날 때는 소리 듣고, 소리가 안 날 때는 그 조용한 것을 들어서, 보일 때나 안 보일 때나 소리를 들을 때나 소리를 안 들을 때나 나고 죽음이 없이 항상 하는 마음, 그걸 깨달은 거예요. 생각은 우리 몸에 매여 있고, 생각은 우리 몸의 대상을 쫓아가는데, 이 생각은 몸 떠나서 있을 수가 없어요. 또 생각은 몸으로 접촉하는 대상을 떠나서 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근경에 머문다. 근이라는 건 육근, 우리 몸이고요. 경계라는 것은 보고 듣고 하는 대상인데, 몸과 대상에 머물러 있는 게 생각인데, 이 지혜는 몸이 있을 때는 몸을 느끼고 몸이 없을 때는 몸이 없는 걸 느끼고, 보일 때는 보는 걸 느끼고 안 보일 때는 안 보이는 걸 느끼는데 보고 듣고 느끼고 안 느끼고 해도 전혀 이게 지장을 받지 않아요. 그래서 그걸 비유하기를 거울에다가 비유를 하는데, 거울에 사람이 비칠 때나, 나무가 비칠 때나 해가 비칠 때나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거울에 안 비쳐도 아무런 지장이 없고 허공을 비칠 때나, 맨날 비쳐도 맨날 그대로예요. 그래서 이거는 수연불변(隨緣不變)이라, 인연 따라서 사람도 되고 인연 따라서 나무도 보고 인연 따라서 눈도 감고 인연 따라서 눈도 떠도 그 청정한 지혜는 거울에 물건 비치나 안 비치나 똑같듯이, 항상 청정한 상태로 항상 사물을 보고 듣고 느끼고 판단한다. 그래서 수연하되 불변이요, 인연을 따르되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되 인연을 따른다. 이걸 깨닫는 걸 정각(正覺)이라고 하거든요. 바를 정자, 깨달은 각자. 그래서 그걸 지혜로 돌아가면 그게 극락세계에요. 몸에 매이고 대상에 매이면 그게 생로병사 우비고뇌 사바세계고. 사바세계가 딴 게 아니고 몸에 매이고 대상에 매이는 게 사바세계고, 몸에 자유롭고 대상에 자유로운 것이 그게 지혜의 극락세계다. 그래서 생각으로 살면 몸 걱정, 뭘 보는 대로 구할 마음이 생겼어, 구할 걱정. 구하고 나면 그게 금방 또 심드렁해져서 버리게 되고, 버려야 되는데 안 버리게 되면 또 속상하고. 구해야 되는데 못 구하고 나면 또 속상하고. 맨날 근심 걱정, 그걸 어려운 말로 우비고뇌(憂悲苦惱)라고 하거든요. 근심 우, 슬픈 비, 괴로울 고, 걱정할 뇌. 이 생로병사 우비고뇌가 그게 사바세계 생각의 세계고, 수연불변, 항상 청정 인연 따르되 변하지 않은, 항상 청정한 지혜 광명 자재 세계는 그게 극락세계다. 극락 가기 얼마나 쉬운지 몰라요. 금방 가는 거예요. 금방. 사바세계와 극락세계 차이가 백지장 한 장 차이도 없어요. 바로 지혜로 돌아가면 바로 극락이고 생각에 머물면 사바세계다. 그런 지혜의 세계를

 

眞如佛性 菩提自性

진여불성 보리자성

無漏智性 無生法忍이니

무루지성 무생법인

釋迦世尊 始成正覺

석가세존 시성정각

寂滅場中 華藏刹海이니

적멸장중 화장찰해

壽福具足極樂世界로다

수복구족 극락세계

나무아미타불

       그 지혜의 마음을 가지가지로 이름을 붙이는데 첫 번째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 그런다. 진여, 참 진자, 같을 여자. 참 그대로 똑같은, 불성은 깨달을 각자, 성품 성자인데, 느껴요. 그 느끼는 성품 그게 불성이고. 보리자성(菩提自性)이라. 보리도 깨달음인데, 그 깨달은 본성, 생각은 본 걸 기억하고 대상을 쫓아가고 그게 생각인데, 이거는 보기 전에, 대상을 쫓아가기 전에 자체 본성이다. 그게 보리자성. 무루지성(無漏智性)이다. 없을 무자, 샐 루자인데, 없어지지 않는다. 없어지지 않아요. 없을 때는 없는 거 알고 있을 때는 있는 거 알고, 태어날 때는 태어난 거 알고 죽을 때는 죽는 거 알고, 그걸 깨달아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건 모든 걸 아는 걸 깨달음이라고 하거든요. 깨달음이라는 건 간단한 거예요. 모르던가 아는 거. 없는 거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모르던가 아는 거. 무루지성이라. 없어지지 않는 지혜의 본성.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나고 죽음이 없는 그 법의 지혜, 참을 인자는 지혜라는 뜻인데 나고 죽음이 없는 법의 지혜. 나고 죽음이 없단 말은 이게 항상 알고 항상 청정해서 뭘 보되 보는 거에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상태로 본단 말이에요. 뭘 알 때 불변 상태로 알고 그걸 인연 따른다고 수연이라고 하거든요. 막 화를 낼 때는 불같이 일어나는데 화를 내고 나면 또 그냥 그만이에요. 어디 갔는지 화가. 그러니까 화를 불같이 내도 그 지혜에는 변함이 없어요. 아주 미치는 일인데, 이게 무루지성이라는 거에요. 아주 슬플 때는 한없이 슬픈데, 그 슬픔 속에 그냥 지혜가 변함없이 있어요. 그게 불변 수연이라고. 그게 무생법 지혜라. 그렇게 석가세존이 처음으로 그걸 바르게 깨달았는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나고 죽음이 없는 적멸장에(寂滅場中), 생멸을 생로병사라 그러고, 적멸을 불생불멸이라고 그러는데요. 나고 죽음이 없다. 거울에 물건이 비칠 때 그 거울의 물건이 난 게 아니고 거울에 물건이 사라질 때 거울이 사라진 게 아니고. 그래서 그걸 적멸이라고 그래요. 고요할 적자, 없을 멸자. 나고 죽음이 없는 속에 적멸장에, 화장찰해(華藏刹海), 화장이라는 건 공덕이 많다 이 말인데 꽃 화자, 감출 장자. 감출 장자는 많다. 꽃 화자는 공덕이라. 그 생멸 없는 세계에 공덕이 한량없이 많아요. 그 한량 없이 많은 세계가 있는데 그걸 찰해라고, 찰이라는 말은 국토라는 말이고, 해는, 바다 해자는 복수, 무량수 많다 이 말이거든요. 적멸장중에 화장찰해라. 나고 죽음이 없는데 한량없는 공덕 세계가 있다. 거기가 어디냐 그러면 수복이 구족한, 수명과 복덕이 다 갖추어진 극락세계(壽福具足極樂世界).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극락세계라는 나의 생각에서 나의 지혜로 돌아가는 거지, 엉뚱한 데로 가는 게 아니다 이 말이죠. 나의 생각에서, 나의 생각은 사바세계, 나의 지혜는 극락세계. 그럼 극락세계에 가려면 어떻게 되냐. 생각이 지혜로 싹 바뀌면 되요. 생각이 지혜로 바뀌면 극락세계에요. 생각 일어나서, 몸 걱정, 구할 걱정, 버릴 걱정, 이런 거 하다 보면 거기에 이제 사바세계 생로병사 근심 걱정이고. 그리 되면 어떻게 되냐. 마음을 깨끗하게, 조용하게 하면 극락 가는 길이에요. 조용하고 깨끗하면 극락이다. 시끄럽고 쫓아가면 그거는 근심 걱정이다. 그래서 극락을 일순간이라도 체험할 수가 있어요. 몸을 딱 바르게 하고, 생각을 다 거두어서 그대로 조용히 하면 거기에 근심 걱정이 하나도 없는 세계를 내가 느낄 수가 있어요. 그런 근심 걱정이 없는데 들어가면 거기에 무한한 공덕이 나타나요. 근심 걱정 없는 속에 한없는 공덕을 극락세계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생각이 고요하고 고요하고 깨끗하고 깨끗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그 지혜 광명이 확 드러나요. 그 지혜 광명이 드러난 체험을 한 분들을 삼세 제불이라고 하고, 역대 조사라 그러고 천하 선지식이라 그래요. 생각을 고요하게 하는 데까지 수련하는 분들은 도를 닦는다 이래요. 그러면 그 생각을 고요하게 해서 지혜 광명이 드러난 분들을 도를 이룬다 이러는데요. 수도, 성도.

        생각을 깊게 가지면 그 생각이 깊어졌을 때 눈을 감았다가 눈을 딱 뜨면 보이는 게 환히 나타나듯이, 지혜 광명이 온 누리에 차는 경험을 하게 돼요. 그런데 전생에서부터 약간 인연이 있는 분들은 금방 되는 거예요. 그런 길이 있는 걸 모르고 또 그런 말을 들어도 믿음이 깊게 안 생겨서 그런 체험을 안 해서 그렇지, 살아서 극락세계 체험하는 거 금방 되는 건데, 이 몸에 이제 생각의 습관이 너무 깊이 들어가지고 그런 말을 들어도 잘 들어오지도 않고 안 들려요. 소리가 들려도 그걸 잘 익히지를 않고 익힌다고 하더라도 몸에 다른 게 너무 많이 익혀져서 잘 못 들어가서 그렇지, 그거 아무 것도 아닌 건데 못해요. 생각이 조용하면 거기서 지혜 광명이 확 드러나는데 그걸 도를 이룬다고 하고 그걸 극락세계에 간다고 한다 이거죠.

 

淨極光通達 맑음이 깊어 광명이 드러나면

정극광통달

寂照含虛空 고요하게 봄이 허공을 삼킨다.

적조함허공

却來觀世間 다시 세간을 보면

각래관세간

猶如夢中事 꿈속의 일과 같다.

유여몽중사

(능엄경제6)

 

        이걸 정극광통달(淨極光通達)이라고 하는데, 깨끗함이 깊어지면 광명이 온 누리에 나타난다. 통이라는 거는 온 누리고 달이라고 하는 건 나타난다 이 말이에요. 온 누리에 나타난다. 그러면 적조가 함허공(寂照含虛空)이라, 그 지혜는 첫째는 고요해요. 고요하다는 말은 형체도 없고 머물러 있는 주소가 없어요. 무주. 적정무주, 아주 희한한 거예요. 적정이라는 거는 있어도 그림자가 없어요. 또 머물러도 주소가 없어요. 그래서 이제 어렵다고 그러는 거예요. 있기는 있는데 그림자도 없고 머무를 주소도 없다. 적정(寂靜), 고요 적, 고요 정. 무주, 없을 무, 머물 주. 생각은 몸에 머물면 돼요, 생각은. 그래서 이거 몸이 탈 나면 생각이 탈 나요. 그걸 요새 정신 건강이라고 그래요. 정신 건강은 몸부터 탈 나거든요. 그런데 이 지혜라고 하는 것은 머무는 데가 없어서 몸 아무리 갈라봐도 지혜 안 보이거든요. 근데 이게 어디 있는지 그냥 시방세계에 꽉 찼는데 머무는 장소가 없어요. 참 희한한 거에요. 정극하면 광통달. 정극하면, 맑음이 깊으면 빛이 시방에 가득하나니, 적조가 함허공이라, 그 고요히 비치는 광명이 허공을 다 삼킨다. 들어오지 않는 게 하나도 없다 이 말이죠. 그런 상태에서 다시 세간을 보니, 각래관세간(却來觀世間)하니, 세간이라는 거는 생로병사 근심 걱정인데요. 이 생로병사 근심 걱정하는 이 세상만사를 보니 유여몽중사(猶如夢中事), 꿈속에 일과 같다. 극락세계에서 사바세계를 보면 꿈속에 일이에요, 이게. 그런데 생각으로 생로병사 근심 걱정할 때는 꿈속의 일인지 전혀 모르죠. 그걸 선지식들이 가르칠 때 꿈도 깨어나야 꿈인 줄 알지, 꿈꿀 때는 꿈인 줄 모른다 이래요. 인생도 다 살고 봐야 인생이 잠깐이다 알지, 한참 욕심에 부풀어서 세상을 다 얻으려고 그러는데 인생이 잠깐이다이런 말했다가는 얻어맞지 않으면 다행이에요. 어떻게 해요. 얻어맞지 않으면 다행이에요. 참 그거 희한한 게 생각과 지혜의 차이, 생각에 헤맬 때는 생각이 그게 허망하고 꿈 같은 줄 꿈에도 몰라요. 근데 이 지혜로 돌아가서 이 생각의 세계를 보니 유여몽중사라, 꿈속의 일과 같다 그런 거죠.

       그러니까 오늘 영가께서는 지혜를 깨달아서 갈 수는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가냐. 이 극락세계를 믿고 부처님의 인도를 받아서 그래서 부처님이 접인 도사(接引導師)가 되고,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영접해서 인도하는 접인 인도자가 되고, 지장보살 길을 인도하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되고 그래서 불보살의 안내를 받아서, 뭐 타고 가냐. 지혜의 배를 타고 간다. 그 지혜의 배를 반야용선이라고 그래요. 반야가 지혜 아니에요. 배가 용이 끄는 배다. 용이라고 하는 건 가기는 가는데 어디 있는지 잘 안 보이는 게 용이거든요. 접인도사 일로왕보살의 인도를 받아서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세계에 간다. 그러니까 다른 데 가지 마시고 극락세계에 가시라고요 하는 거예요.

 

금일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願生華藏蓮華界 원생화장연화계

화장연화 극락세계에 왕생하십시오!

願生華藏蓮華界 원생화장연화계

화장연화 극락세계에 왕생하십시오!

直往華藏極樂國 직왕화장극락국

바로 화장극락국에 왕생하여

無量壽福盡受容하십시오

무량수복진수용

무량한 수복을 다 받으십시오!

나무아미타불

       화장연화계 극락세계로 가는데, 극락세계는 청정한 공덕으로 가득한데 그걸 연꽃에 비유했어요. 연꽃이 꽃은 피는데 물들지 않는다. 화장이라는 건 많은 공덕으로 쌓인 극락세계. 원생 그러면 거기에 가서 나십시오 이런 뜻이에요. 다른 데 가지 마시고, 또 생각에 빠져서 몸에 매달리고 또 보이고 들리는 대상에 쫓아가서 다시 근심 걱정하는데 돌아가지 마시고 화장연화계, 공덕으로 가득 한 극락세계에 왕생하십시오. 원한다는 말은 그렇게 해라 이 말이거든요. 화장 연화 극락세계에 가십시오. 가서 거기에 나십시오. 원생화장연화계, 화장연화 극락세계에 가서 나십시오. 직왕화장극락국하야(直往華藏極樂國), 바로 공덕이 가득한 극락국에 가서 무량수복을, 한량없는 수명, 거울이 아무리 물건을 비춰도 그대로고, 물건이 떠나도 그대로라 수명이 한량이 없다 이 말이죠. 극락 수명은. 그러면 극락 복덕은 받아도 받아도 끝이 없으니까 복덕이 한량이 없다. 그래서 한량없는 수명과 복덕을 진수용하십시오. 다 받으십시오.

       그렇게 해서 오늘 법문을 다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