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49재] 1월 27일 49재 법문 2022-01-27

금일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緣生緣滅 五蘊緣身

연생연멸은 오온연신이요

無生無滅 眞如法身

무생무멸은 진여법신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극락세계 청정묘국, 극락세계는 청정한 묘한 국토이다. 극락세계 청정묘토를 가는데 어떻게 가느냐. 우리 몸에 생로병사신이 있고 불생불멸신이 있는데, 그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그 몸으로 극락세계에 간다. 그 법문이거든요.

 

       연생연멸(緣生緣滅), 인연으로 나서 인연으로 사라지는 것은, 오온연신(五蘊緣身)이요, 다섯 가지가 뭉쳐서 이루어진 인연의 몸이요. 무생무멸(無生無滅), 낳음도 없고 사라짐도 없는 진여, 무생무멸은 진여법의 몸(眞如法身)이다. 진여법,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에도 여여상여(如如常如)하고, 그러하고 그러해서 항상 그러하고, 하늘과 땅이 사라진 뒤에도 여여상여라, 그러하고 그러해서 항상 그러하다. 그 몸을 진여법신이라, 진여법의 몸이다. 이 진여법은 일체 범부는 모르고, 일체제불, 깨달은 사람이 뭘 깨달았냐. 이 진여법을 깨달은 거예요. 진여법을 깨달으면 그 순간에 일체의 세계가 극락세계가 돼요. 진여법신은 극락 세계다. 진여법신으로 돌아가면 극락세계를 마주하는 거죠.

 

勿形一念 靈明性覺

물형일념이 영명성각이니

先天後地 圓明常照

선천후지하야 원명상조로다

不可思議 解脫境界

불가사의 해탈경계가

無相無礙 寂滅寶宮

무상무애하여 적멸보궁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그러면 불생불멸하고 극락세계인 것을 도대체 누가 아느냐. 불생불멸은 누가 알고 극락세계는 누가 아는가. 이게 참 중요한 문제인데요. 중생이 미혹하는 게 대상만 알고 마음을 모른다. 집경미심(執境迷心)을 한다. 집경, 경계에만 집착하고 마음을 미혹한다. 그걸 미혹범부라고 그래요. 경계, 경계가 뭐냐. 감각 대상인데, 눈의 대상, 귀의 대상, 생각의 대상, 감촉의 대상인데요. 그 경계에만 집착하고 그 경계를 아는 마음은 모른다. 그걸 미혹이라고 하죠. 그 마음은 경계를 떠나서 찾아보니 없더라. 마음은 몸에 찾아봐도 없더라. 그래서 마음은 분명히 대상을 느끼는데, 찾아보면 몸에도 없고, 허공에도 없고, 어떠한 장소에도 없더라 이거에요. 그래서 마음을 알아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이 찾아봐도 없는 마음을 알 수가 있는가. 멱심불가득(覓心不可得), 찾을 멱자가 있는데요. 마음 심자, 멱심. 불가득, 얻을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 정심활연명(靜心豁然明), 고요할 정자, 마음을 고요히 한 활연이라, 활연이라는 건 걸리는 게 하나도 없다, 이 말인데요. 걸리는 게 하나도 없이 밝다. 그래서 마음은 대상에서 찾으면 안 되고, 마음은 고요히 하면 나타난다 이거예요. 이게 아주 불가사의 비법이에요. 마음은 찾지 마라. 마음을 고요히 하라. 정심이면 활연명인데, 멱심이면 불가득이라. 삼초입정이, 마음을 삼초만 딱 그치면, 정이라는 건 그칠 정자인데요. 그친다는 말이에요. 정에, 그치는 데 든다, 입정. 3초만 딱 이렇게 멈추면 보이는 걸 알아요. 그냥 보면 모르는데, 보는지 안 보는지도 모르는데, 딱 그치고 보면 내가 보고 있구나이걸 알게 돼요. 딱 그쳐서 들으면 내가 듣고 있구나이걸 알게 되거든요. 그래서 지금 현재 눈으로 보는 그게 마음이고, 귀로 듣는 그게 마음인데, 만날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들으면서 그 마음이 뭔지 전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평소에는 보는 줄도 모르고 보고, 듣는 줄도 모르고 듣는단 말이지요. 딱 그쳐보면 내가 보는 걸 알아요. 보는 것까지는 알아요. 딱 그치고 들으면 듣는 것까지는 알아요. 근데 삼초입정으로 보고 들으면, 노래를 들을 때도, 그냥 들으면 노래 듣는 줄도 모르고 들어요. 딱 그쳤을 때 내가 노래 듣고 있구나뭘 보고 있구나그런데 이 마음이 이게 너무 불가사의해서, 노래 들을 때는 노래 들어도 하나도 이게 뭐 순서도 없고 무슨 조작도 없고, 바람 소리 들을 때는 바람 소리 들어도 아무런 뭐 하는 일 없이 그냥 들어요. 이걸 부동성용(不動性用)이라고 해요. 이걸 부동, 움직임이 없이 본성이 작용을 한다. 마음이라는 게. 뭐를 시작하고 계획해서 하는 게 아니라, 부동성용으로 본성 작용이요, 그냥. 부동이라는 건 조작 없이, 동의 없이. 그냥 하늘 볼 때는 부동성용으로 그냥 하늘을 봐요. 땅 볼 때는 움직임이 없는 본성 작용으로 그냥 땅을 보고. 화날 때는 그냥 화내고. 좋아할 때는 그냥 좋아해서. 이게 하늘로 고정되어 있으면 땅을 못 볼 텐데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사람도 보고 못 보는 게 없어요. 이걸 불가사의 본성, 본심이라고 하거든요. 생각할 수 없는 본성심, 본래심이다. 뜨거울 때는 뜨거운 거 알고, 차가울 때는 차가운 거 알아서, 이게 마음이 뜨거운 걸로 고정돼 있다면 차가운 걸 못 느낄 텐데, 자꾸 또 느끼고. 못 느끼는 게 없는데 무슨 조작해서 느끼는 게 아니라 아무런 순서도 없이 조작도 없이. 평생을 보고 들었어도 그 본성, 본심은 털끝만큼도 동요가 안 됐어요. 이걸 부동현용이라고, 동의 없이 작용을 나타냈다. 그게 마치 해인삼매라고 그러는데, 바다에 여러 가지 모양이 비춰졌지만 바다는 그냥 가만히 있는 거예요. 바다가 움직여서 바다의 그림자가 비춰진 게 전혀 아니다. 이 말이요. 부동현용 해인 삼매. 이 마음을 고요히 하고 고요히 하고 있다. 어떤 것도 아니지만, 어떤 것도 다 해당되는 그 본성심이 다 나타나더라. 마음은 모든 것이 아닌데 모든 것을 다 해요. 그럼 거기가 극락세계에요. 마음은 모든 것이 아닌데 모든 것을 다 한다. 그럼 마음은 생로병사가 아닌데 생로병사를 다 하고, 마음은 불생불멸이 아닌데 불생불멸을 다 하고, 마음은 천지 만물이 아닌데 천지 만물을 다 하고, 모든 것이 아니면서 모든 것을 다 한다. 그게 진여법신이고 그게 극락세계거든요. 그리 가시는 거예요.

 

       그걸 이제 글자로 표현하면 물형일념(勿形一念), 말라는 아니다, 말 물자가 있고 형상 물자가 있는데, 형상 아닌 일념이, 한 생각이, 한 생각이라는 건 이 생각 저 생각이 아니라, 생각 일으키기 이전의 생각도 한 생각이라고 하고, 요걸 딱 보는 그 감각의 생각도 한 생각이라고 그러는데, 이거는 생각을 일으키기 이전에 그 본래심도 한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형상이 아닌 본래 한 생각이 영명성각(靈明性覺)이라, 신령스럽게 밝고 본성이 스스로 안다, 이걸 성각이라고 하거든요. 본성이라는 성자, 느낄 각자, 영명성각이라고 깨달은 분들의 가르침인데요. 영명성각. 영명성각이 신령스럽게 밝아요. 찾아보면 없어, 근데 별별거 다 보고 다 들어요.

 

       그런데 이것이 불가사의 해탈경계(不可思議 解脫境界). 생각할 수 없는, 해탈이라는 것은 이장(雉障)이라고 장애에서 벗어나는 거. 벗어날 이자, 장애 장자, 이장. 열반은 본래 불생불멸을 열반이라고 하고, 해탈은 생로병사의 모든 근심 걱정에 장애가 있었는데 거기서 벗어나는 걸 해탈이라고 그래요. 본래열반, 이장해탈(雉障解脫) 처음에는 깨닫기 전에는 근심 걱정이 많고 무슨 여러 가지 속박과 장애가 많았는데, 이걸 깨닫고 나니까 근심 걱정 속박 장애에서 다 벗어났다, 그걸 해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영명성각의 본래 신성이 불가사의 해탈경계라, 생각할 수 없는 해탈경계다.

 

       그럼 그 경계가 어떠하냐. 무상무애 적멸보궁(無相無礙 寂滅寶宮)이라. 적멸이라는 것은 생멸이 없다는 소리예요. 생멸이 없다는. 고요 적자, 멸할 멸자. 생멸 없는 그 세계에 무한한 공덕이 있다. 그걸 보궁이라고 하거든요. 적멸보궁. 적멸보궁이 왜 적멸보궁이냐면 무상무애, 이게 불가사의 해탈경계인데, 일체제불이 깨달은 경지를 가르침으로 표현하자면 무상무애라. 무상이라고 하는 건 없을 무자, 상이라고 하는 형상 상, 서로 상자, 그 상자를 써서 무상이라고 그러는데, 깨닫기 전에는 상에 상이 있었는데 깨닫고 보니까 상에 상이 없다. 이게 깨닫기 전에는 상을 상으로 보고, 상에 집착을 했어요. 딱 본래 영명성각이 열리는 순간에 상에 상이 없다는 걸 깨달아요. 왜 그러냐. 이게 다 인연으로 생겼기 때문에 자상이 없다는 거예요. 이게 자상이. 자체상이 없다는 거예요, 인연상이기 때문에. 일체상은 인연상이요, 자체상이 없다. 이 마음이 탁 고요에서 열리는 순간에 모든 상은 인연상이요, 자체상이 없다, 이걸 보게 돼요. 시계는 시계의 자체상이 없고, 여러 가지 부품이 모여서 이제 인연상이란 말이죠. 이 상에 비해서 근심 걱정이 있는 거예요. 이 몸도 자체상이 없어요. 인연상이에요. 여러 가지 모여서 몸이 된 거지 이거 자체 상이 없어요. 무상. 그래서 모든 상에서 벗어나게 돼요. 하늘에도 하늘 자체상이 없고요, 땅에도 땅 자체상이 없어요. 이걸 통달무상이라고 그러는데, 무상을 통달해요. 그게 깨달음이에요. 지옥에도 지옥 자체상이 없고 세간에도 세간 자체상이 없어서 인연 따라 생겼다, 인연따라 사라져요. 그래서 형상에 집착하는 건 다 어리석은 고통이에요.

 

       요즘 방송에서도 그런 얘기하데요. 재미있는 얘기. 좋아한다, 사랑한다, 집착한다, 원수 됐다, 이게 딱 돌아가는 과정이에요. 좋아하고 사랑하고 집착하고 원수되고. 세상사가 다 이렇게 돌아가요. 지금 원수 된 사람이 다 좋아하던 사람이지, 안 좋아한 사람이 누가 원수가 돼요. 그럼 그 이유는 뭐냐. 상에 자체상이 없다는 걸 모르고 다 이 형상에 집착하는 미혹으로 생긴 거거든요. 이게 통달무상을 하면 상에 상이 없어요. 그러니까 무애가 돼요. 큰 것도 자체상이 없고 작은 것도 자체상이 없으니까 이게 하나도 장애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고, 저 가는 티끌에 시방을 다 포함한다고 그러잖아요. 그게 왜 가능하냐면 무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가는 티끌에도 자체상이 없고, 시방 허공도 자체상이 없어서, 상 없는 것이 상 없는 데 들어가는 게 장애가 없단 말이죠. 그러니까 일 찰나가 무량겁이고 무량겁이 일 찰나고, 일 찰나도 자체상이 없고 무량겁도 자체상이 없어요. 이거 장애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이걸 깨달은 분을 삼세제불이라고 그래요.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님들이다. 그분들이 머무는 곳이 극락세계에요.

 

      그래서 무상무애 적멸보궁이라. 적멸이라는 건 무상무애란 말이에요. 무상무애. 무상무애한데 없는 게 없어요. 무진장 보배궁전이에요. 그걸 적멸보궁이라고 하거든요.

 

佛放光明遍世間 照耀十方諸國土

불방광명변세간하니 조요시방제국토라

演不思議廣大法 永破衆生凝惑暗

연부사의광대법하야 영파중생치혹암이로다

(華嚴經2, 世主妙嚴品)(화엄경제2, 세주묘엄품)

나무아미타불

 

       이 법문은 화엄경 제2권 세주묘엄품에 수록된 법문인데, 부처님이 뭐 하는 분이냐. 영명성각 적멸보궁, 이 대광명을 항상 비춰서, 상에 상이 없는 줄 모르고 상에 집착해서 근심 걱정하는 중생들을 깨우치는 게 부처님이다. 부처님이 할 일은 크게 없어요. 상에 상이 없는 줄을 모르고 상에 집착해서 좋아하고 사랑하고 집착하고 원수 되고 만날 이 모양을 되풀이하는 거를 생사유래라고 하거든요. 그런 치혹암, 그런 치혹암을 비춘다. 불방광명변세간하니(佛放光明遍世間), 부처님이 광명을 비추는 것이 세간에 두루하니, 시방제국토(十方諸國土)에 항상 밝게 비춘다. 연부사의광대법하야(演不思議廣大法), 불가사이한 광대법을 연설해서, 영파중생치혹암(永破衆生凝惑暗)이라, 중생의 어리석고 미혹한 어둠을 영원히 없애주신다, 이런 법문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생로병사가 전부 상에 상이 없는 줄 모르고 상에 집착하는 고통이에요. 그러면 상에 상이 없는 줄을 알아, 무상법을 통달해서, 상에 자재하게 되면 그것이 적멸보궁이요, 그것이 극락세계라, 이걸 깨우치는 게 부처님이다. 이런 법문이거든요.

 

百福莊嚴 常樂淨土

백복장엄의 상락정토여

壽光無量 極樂世界

수광무량의 극락세계라

若人一念 願生樂刹

약인일념 원생낙찰하면

剎那往生 受用無窮

찰나에 왕생하여 수용이 무궁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백복이 장엄(百福莊嚴)이라, 백복. 백복이라는 게 온갖 복덕을 백복이라고, 장엄이라는 건 다 갖춰져있다. 그러면 이 복이라는 게 뭐냐. 유가에서는 오복을 가르치고 불가에서는 만복을 가르치는데요. 오복, 만복. 그런데 만복이라는 게 뭔가 개념이 전혀 달라요. 유가에서는 수(), (),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서경에 나오는 말씀인데, 불교는 만 가지 복덕이 있거든요. 불교는 선정을 복덕이라고 그래요, 선정을. 선정 복덕이라고. 왜 선정 복덕이냐. 뭐든지 마음이 딱 안정되면 그게 거기에요. 마음이 딱 집착하면 그게 화에요. 그러니까 하늘을 봐도 마음이 딱 안 잡히고. 땅을 봐도 마음이 딱 안 잡히고, 그게 하늘 보면 하늘 복이고 땅 보면 땅 복이요, 사람 보면 사람 복이고, 보는 것마다 복덕이란 말이죠, 선정이 되면. 그러니까 극락세계는 백복장엄이라, 모든 복덕으로 다 장엄이 돼 있다, 꾸며졌다 이거죠. 그래서 상락정토(常樂淨土). 항상 즐거운 청정토다. 수광무량(壽光無量)이라. 수명과 광명이 한량이 없다. 어둠이 없고 죽음이 없다는 거지요. 상에 집착하면 항상 공포가 따르는데 그 공포가 죽음에 대한 공포예요. 암흑에 대한 공포예요. 어두움을 싫어해요. 죽음을 싫어해요. 근데 상에 상이 없는 줄을 알면 죽음의 죽음이 없고 어두움의 어두움이 없기 때문에, 극락세계에요. 죽는 게 극락세계고, 어두운 게 극락세계인데, 상에 미혹하니까 공포를 느끼죠. 공포를 느끼면 고통이에요. 그래서 수광무량, 수명과 광명이 무량한 극락세계라.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 약인이 일념이(若人一念) 원생낙찰하니(願生樂刹), 낙찰은 즐거울 락자, 불찰이라는 찰자, 국토라는 말인데 즐거운 국토 극락세계에, 어떤 사람이 한 생각으로 극락세계에 나기를 원하면, 찰나왕생(剎那往生)하여 수용이 무궁이라(受用無窮), 찰나 순간에 극락세계에 왕생해서 그 극락세계에 백복장엄 상락정토의 낙을 수용하는 것이 한량이 없다. 이런 법문이거든요.

 

       삼세제불은 뭘 봐도 상에 상이 없는 걸 보는데 상에 상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래서 깨달은 마음을 불심이라고 하고, 또 부처님을 공경한다 하는 것도 불심이고, 부처님을 공경하는 것도 불심이고, 깨달은 마음도 불심이에요. 그래서 깨달은 마음을 불심이라고 하는데 뭘 깨달은 마음이냐. 이 상에 상이 없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뭘 보든지 상에 상이 없는 걸 보기 때문에 염념 불심(念念佛心)이라고 그래요. 생각 생각이 다 깨달은 바다. 그게 부처님 마음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 진진(塵塵)이 불국이라, 티끌 티끌이 다 부처님 나라다, 이게 극락세계에요. 티끌 진자, 진진. 부처님 불자, 나라 국자. 염념이 불심이니 진진이 불국이라. 범부 입장에서 보면 염념이 불심이면, 생각 생각이 깨달은 마음이면 진진이 불국이라, 티끌티끌이 부처님나라다. 부처님 입장에서는 염념이 불심이니, 생각 생각이 깨달은 마음이니 뭐든지 상에 상이 없어요. 그래서 어떤 걸 봐도 항상 정심현용이라, 고요한 마음이 나타나요.

 

       어상에 무상하니, 상에 상이 없으니 정심이 현용이라, 고요한 마음이 나타난다. 진진이 불국이요. 하나하나 다 부처님 나라에요, 극락세계란 말이죠. 딱 한 마음으로 원생낙찰하면, 극락세계에 가기를 원하면, 마음으로 가는 거니까 차표 살 일도 없고 승용차 시동 걸 일도 없고 다리 움직일 일도 없고 한 털 끝도 움직이지 않고 바로 간다. 이거예요. 이걸 불가사의 왕생법이라고, 생각할 수 없이 극락세계 왕생하는 법이다.

 

금일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今日靈駕 一念信心

금일영가 일념신심으로

面見彌陀 往生樂刹

면견미타하야 왕생낙찰하소서

나무아미타불

 

       두 마음은 근심 걱정의 마음이고 한 마음은 해탈경계의 마음인데, 근심 걱정은 해탈 경계, 근심 걱정은 한자로 쓰면 우비고뇌(憂悲苦惱)라고 그래요. 근심 우, 슬플 비. 괴로울 고, 번거로울 뇌, 우비고뇌. 근데 근심 걱정 없는 건 해탈경계다. 일념신심(一念信心)으로, 두 가지 생각 갖지 마시고, 세상도 좋으니까 집착하는 재미도 있거든요. 집착을 더 해 볼까. 또 극락세계가 있다 하니 극락세계도 가볼까, 이런 건 이게 두 가지 마음이에요. 집착은 끝이 없어요. 집착할 때는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고통이에요. 이게 참 문제에요. 집착할 때는 재미가 있거든요. 그래서 집착해요. 근데 지나고 보면 괴로움이 와요. 집착하고 괴로워하고 집착하고 괴로워하고, 그냥 한 마음으로 딱 되면 바로 극락세계인데, 두 마음이 계속 산란하게 되면 이게 괴로움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마지막 법문이 금일 영가께서는 일념신심으로 한 생각 믿는 마음으로 면견미타하야(面見彌陀), 바로 면전에서 아미타불을 딱 친견을 해서 왕생 낙찰(往生樂刹)하소서. 극락세계에 왕생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