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신중기도] 2월3일 음력 1월 정초신중기도 입재 법문 2022-02-03

       임자년 임인년, 임자년 지나갔네요. 임인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 법문은 새해맞이 삶의 이야기, 새해맞이 삶의 이야기, 이런 내용입니다. 한자로는 연초생활담론, 연초생활담론 그렇습니다.

 

       불교의 목표 목적은 현증수복(現增壽福), 현세에는 수명과 복덕을 증장시켜서 기르고, 당생정찰(當生淨刹), 당내의 내생에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고, 구경성불(究竟成佛), 마침내는 성불해서, 전법도생(傳法度生), 법을 전해서 중생을 제도한다. 이것이 불교의 목표이고 목적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 복을 닦기를 기원하는 축원을 계속합니다. 그래 가지고 축원문에 보면 무병장수 축복을 해요. 무병장수 복을 빌어요. 병 없이 오래오래 살기를 원하는 그런 축원. 그다음에 부귀공명 축원. 무병장수 부귀공명. 부자로 살고 귀하게 살고 좋은 이름 남기고. 그다음에 자손 창성, 창은 빛날 창자인데, 자손이 빛나고 왕성하고, 복덕구족, 지금 부모나 자손이나 다 복덕이 구족하고, 천재는 설소(千災雪消)하고, 천 가지 재앙은 눈처럼 녹고, 만복은 운흥이라(萬福雲興), 만가지 복덕은 구름처럼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이런 축원을 계속하거든요. 이것이 복덕축원이에요.

 

열심히 살다. 성공하다.

쪽팔리다. 부끄럽다.

창피猖披하다(: 옷 입고 띠 매지 않은 모양 창. 被義)

(猖披 衣不帶之貌 狂妄偏邪 漢韓大辭典9. 233)

(창피 의부대지모 광망편사 한한대사전9.233)

 

       그러기 위해서 우리 삶을 가만히 되돌아보면 잘 사는 삶이 어떤 삶인가. 열심히 살다, 열심히 성공하다, 열심히 살아서 성공하는 삶, 잘 사는 삶이라고 하거든요. 열심히 살아서 성공하다. 성공에는 여러 가지 좋은 거 다 성공이에요. 학업 성공도 성공이고, 사업 성공도 성공이고,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도 성공이고, 온갖 것이 다 성공이거든요.

 

       근데 요즘에는 열심히 살고 성공하고 이것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문제는 행복이다. 성공해도 행복하지 않더라. 열심히 살아도 내가 어디로 가는지 살다 보면 뭐 남는 게 없더라. 이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저 행복하고 싶다. 성공하고 싶지도 않고 열심히 살고 싶지도 않고 행복하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도 많거든요. 그러니까 열심히 살고 성공하고 행복하고 그게 좋은 거예요, 하여튼. 열심히 살고 성공하고 행복하고.

 

       근데 사람은 참 오묘한 것이 돼서 부끄러움도 알고요, 성공 속에는 부끄러움이 있어요. 그래서 이 부끄러움이 또 굉장히 나를 괴롭혀요.

 

       우리나라 근래에 보면 대한민국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라는 게 있는데, 고위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 그 사람을 등용할 때 청문회를 해보면, 거기에 지명돼서 나오는 사람들이 다 성공한 사람들이에요. 학벌 좋고 지금까지 경력 좋고, 업적 좋고 다 성공한 사람들이 고위공직자 후보자로 나와서 청문을 받는데, 전부가 다 부끄럽습니다.’라는 말을 해요. 부끄럽습니다. 그거 안 하는 사람 없어요. 또 한마디 더 해요. ‘그때는 그것이 관행이었습니다.’ 이 부끄럽다, 관행이다, 이 말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그래서 이 부끄러움이라는 게 사람에게 있다. 성공 그 속에는 부끄러움이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성공도 하고 부끄럽지도 않고 행복하기도 하고, 이게 가장 잘 사는 건데 그렇게 쉽게 될 수는 없는 일이거든요. 이 부끄러움이 쪽 팔린다는 말이 있어요 또. 쪽 팔린다. 그래서 그 쪽이라는 거는 얼굴을 좀 세속적으로 표현하는 말이에요, 그때는 쪽이. 저쪽 저쪽 그게 아니라 얼굴, 사람의 얼굴을 속되게 표현할 때 쪽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누구를 만나서 얼굴을 못 들 그런 처지가 되면 쪽을 못 쓴다. 그러니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이 말이거든요. 쪽을 못 썼다, 이 말이에요. 그 쪽 팔린다라는 건 팔려 버리면 없어져요. 그래서 그 말은 체면이 깎인다. 그걸 쪽 팔린다고 그래요. 체면이 깎인다.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니고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이게 얼굴이라는 게 뭔가 자기 자신을 얼굴로 표현하는데 그 얼굴 안 서는 일이 종종 있다. 체면 안 선다, 쪽 팔린다, 이런 거고요.

 

       또 창피스럽다(猖披)는 말이 있어요. 창피스럽다. 창피라는 거는 한자인데 그게 개 견변에 빛날 창자한 건데, 개처럼 움직이는 걸 창자라고 그러고, 피는 그게 이불 피자와 같은 건데. 그게 뭔 말이냐면 개가 옷 입듯이, 허리띠 매지 않고 옷 입는 걸 창피라고 그래요. 옷은 입었는데 허리띠를 안 맸어. 그럼 그 모습이 아주 이상하거든요. 그걸 창피라고 그래요. 그래서 창피라는 걸 한한대사전에 찾아보면 창피는 의부대지모(衣不帶之貌), 옷은 입었는데 허리띠를 매지 않은 모습이다. 한번 상상을 해봐요. 옷 입고 허리띠를 안 맸다. 그 아주 이상할 거 아니에요. 그런 모습을 느낄 때 창피스럽다.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창피라는 게 이게 뭐냐.

 

       근데 인터넷에서 이상한 사연을 하나 봤는데, 어떤 예비 시어머니 될 사람이 예비 며느리한테 며느리 자격 시험을 보겠다고 A4 용지로 한 세 장을 글을 만들어서 문항을 쭉 썼어요. 그런데 첫째 문항이 시어머니한테 전화하기 이건데 첫 번째 3일에 한 번, 두 번째 일주일에 한 번, 세 번째 한 달에 한 번,네 번째 두 달에 한 번 이런 문항이 있어요. 그래서 그걸 보고, 그다음에 아들한테 밥 차려주기. 매일같이 뭘 차려주고 뭘 차려주고. 그래서 그걸 보고 예비 며느리 될 사람이 말을 했대요. 여기 보기에 하나가 없다. 뭐냐. 한 번도 안 차려주기. 한 번도 전화 안 하기. 이게 있어야 되는데 이게 없어서 난 볼 수가 없다고. 그러고 하는 말이 전화 한 번도 안 하고 밥 한 번도 안 차려주고 이거 있으면 내가 볼지도 모르는데 이게 없어서 난 안 본다고. 그러니까 그 예비 시어머니 될 사람한테 예비 며느리 될 사람이 이거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도 돼요?’ 물었대요. 그러니까 딱 하는 말이 창피스럽게 그걸 왜 올려요.’ 그러더래요. 여기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며느리 자격시험 보는 건 욕심인데, 자기 욕심이 외부에 알려지는 건 싫어하는 거예요. 욕심이 알려지는 걸 창피스럽다고 그래요. 이게 인간이에요. 자기가 시험 본 답안지인데 그거 뭐 정당하고 떳떳하면 인터넷에 아무리 알려져도 상관없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근데 알려지는 건 창피스럽다고 그러고, 며느리 자격 시험은 보고 싶어 하고. 그래서 그 말 듣고 내가 생각한 게 있어요. 나 같으면 이거 자격시험 보기 전에 예비 시어머니 면접부터 보겠다고. 면접부터 보겠다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쫙 해서 뭐라고 대답하는지 보자고, 그래 나와야지, 그거를 그냥 안 본다고 그러는 건 너무 얌전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성공에는 욕망인데, 자기 욕망 속에는 창피스러워하고 쪽 팔려 하고, 부끄러워 하는 것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이런 것을 최대한 줄이면서, 성공도 하고 행복도 하고 또 복도 받고. 이것이 잘 사는 길이고 이것이 아주 복되게 사는 길이거든요.

 

세상살이 : 인생 없이 세상 살기

인생살이 : 인생으로 세상 살기

멋지게 살기!

 

 

      근데 어떤 큰 스님은 지금 행복하십시오이런 가르침을 주신 분이 계세요. 지금 행복하십시오. 행복은 오늘은 안 하고 내일은 하고 그게 아니라, 지금 행복한 것이 그게 기도고 그게 정진이거든요. 그리고 그 전에 경봉 큰스님, 통도사 경봉 큰스님은 늘 무슨 말씀을 했느냐면, ‘멋지게 살아라, 멋지게 살아라이런 말을 계속 하셨어요.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고 연극 한바탕 멋지게 하고 가거라. 지금 행복하다는 말도 참 중요한 말씀인데, 누구나 다 이루기 어렵고, 멋지게 살라는 말도 우리 이 느낌의 멋이라는 걸 느끼고 있거든요. ‘야 멋있다. 멋지다이런 말을 써요. 그런데 또 겉멋 들면 안 된다 이래요, 겉멋. 그래서 멋도 참 멋이 있고 겉멋이 있는데, 이게 분수에 맞고 능력에 맞고 자기 내면과 외면이 같이 맞을 때 그게 멋지고 멋있는 거거든요. 멋이 아주 매우 높을 때 그걸 멋지다라고 표현을 해요. 멋있다보다 더 강력한 말을 멋지다, 멋 중에 최상의 멋을 멋지다 이러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는가. 멋지게 살려면 구하는 것이 없이 살아야 돼요. 구하다 보면, 행복을 구해도 행복의 노예가 돼요. 재물을 구하다 보면 재물의 노예가 되고, 사람을 구하다 보면 사람의 노예가 되고, 구하는 건 전부 얽매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멋지게 살려면 아무 데도 구하는 거 없고 얽매임 없이 살 때 그게 멋진 거거든요.

 

釋尊掩關 達磨面壁

세존엄관 달마면벽

 

 

       그래서 누가 멋지게 살았나 석가세존이 마갈 엄관하시고, 부처님께서 마갈타국에서 엄관했다. 이 관이라는 거는 자기 안이비설신의, 보고 듣는 감각기관인데, 구하려면 감각기관을 항상 열어야 돼요. 뭐가 있나 눈으로 살피고, 뭐가 들리나 귀로 살펴야 돼요. 근데 딱 눈과 귀를 막아버리고 그리고 본래 자기를 관찰해요. 그러면 본래 자기와 세상의 자기가 딱 조화가 될 때 그게 멋진 거예요. 본래의 나와 세상의 나, 그리고 달마 대사가 소림 면벽이라, 달마 대사가 소림에서 벽을 바라봤다. 벽을 바라봤다는 건 구하는 마음을 막았다는 소리에요, 그게. 눈으로 구하는 거 막고 귀로 구하는 거 막고 그게 벽이에요. 구하는 마음이 전혀 없이 세상의 나는 앉아 있는 나고, 본래의 나는 그대로 항상 하는 나, 본아와 세아가 딱 조화를 이루어서 아무 데도 매임이 없으니 그걸 일러서 멋지게 사는 거라고 한다.

 

心如境亦如 無實亦無虛

심여경역여 무실역무허

有亦不管 無亦不拘

유역불관 무역불구

不是賢聖 了事凡夫

불시현성 요사범부

(龐居士語錄卷上) 

(방거사어록권상)

 

       법문할 때 많이 하는 말씀인데, 중국에 방거사라는 분이 있었는데요. 방거사, 당나라 때인데, 그분의 무슨 법문이 있느냐. 유역불관 무역불구(有亦不管 無亦不拘), 유는 사는 건데 사는 것에도 전혀 집착하지 않고. 관계한다는 말은 집착하지 않는다, 사는 것에도 전혀 집착이 없어요. 왜냐하면 본래의 나로 살기 때문에 그래요. 무역불구라 죽는 것에도 전혀 구애받지 않아요. 이게 멋지게 사는 거예요. 사는 데도 집착하지 않고 죽는데도 구애받지 않고, 유역불관 무역불구 그런데 그게 불시현성(不是賢聖)이라, 현인도 성인도 아니다. 현성이 아니다. 그럼 뭐냐 요사범부(了事凡夫). 세상 일에 아무 구하는 일이 없는 평범한 범부다, 이런 얘기예요. 요사범부, 마칠 요, 일 사.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난 평범한 사람이다. 이런 말을 했는데 이게 참 멋진 거예요. 사는데도 집착하지 않고 죽는데도 구애받지 않고 또 어느 격이 없어. 현인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고 요사범부라. 구하는 일이 없는 평범한 범부다. 그런 법문이 있고요.

 

浮雲富貴非留意 蝸角功名豈染情

부운부귀비유의 와각공명기염정

春日快晴春睡足 臥聽山鳥百般聲

춘일쾌청춘수족 와청산조백반성

(清虚堂集卷1)(청허당집권) 

評曰 鳥聲什麼 法界藏身 無生歌曲

평왈 조성십마 법계장신 무생가곡

聽而復聽 長聲空谷

청이부청 장성공곡

 

       조선시대 서산 스님은 부귀를 뭐라고 봤냐 그러면 뜬구름이라고 봤어요.부귀, 부하고 귀한 것이, 재산과 권력이 뜬구름이다. 왜냐하면 이슬같이 날라가는 게 재산이고 권력이거든요. 그래서 부운부귀에 비유의(浮雲富貴非留意)하니, 뜬구름과 같은 부귀에 생각을 두지 아니하니, 이게 서산스님 자기 인생관이죠. 부귀를 위해서 사는 게 아니다. 와각공명에 기염정(蝸角功名豈染情), 공명을 달팽이 뿔로 본 거예요. 달팽이를 보면 이렇게 뿔이 보이거든요. 그래서 좋은 이름 얻는 거는 달팽이 뿔과 같다. 달팽이 뿔과 같은 그런 공명에 기염정, 어찌 감정을 물들이겠는가. 거기에 감정을 두겠는가. 춘일이 쾌청춘수족하니(春日快晴春睡足), 봄날이 아주 쾌청해서 봄 잠이 만족하니, 와청산조 백반성이라(臥聽山鳥百般聲), 산새의 여러 가지 소리를 누워서 듣는다. 이게 서산스님 시인데요. 이게 멋지게 사는 거예요. 부귀도 공명도 아무 상관이 없고 따뜻한 봄날 봄 잠이 만족해. 이게 잠이라는 게 잠자리만 좋다고 잠이 오는 게 아니에요. 꿈자리가 편안해야 이게 잠이 만족해요. 그러니까 꿈자리도 좋고 잠자리도 좋아야 되지, 잠자리는 좋은데 꿈자리가 사나우면 좋은 그 침구를 만드나 마나예요. 근데 봄의 날씨도 좋고 봄 잠도 좋아서 경치도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고 잠도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뭐 하느냐. 여러 가지로 지저귀는 산새 소리를 편안히 듣는다. 이런 게 이제 멋지게 사는 겁니다. 이런 게 구함이 없이 즐거운 거. 구함 없이 즐거운 거, 지금 행복한 거 참 멋진 거거든요.

 

      그래서 종범이 거기다가 평을 하기를, 평왈 조성은 십마호(鳥聲什麼), 도대체 이 새 소리는 뭐냐. 법계장신에 무생가곡이라(法界藏身 無生歌曲), 이 법계의 온갖 몸에서 나오는, 장자는 감출 장자, 여러 가지라는 말인데요. 법계의 여러 몸에서 나오는 생멸 없는 가곡이다. 노래다. 불생불멸의 노래다. 청이 부청하면(聽而復聽), 듣고 또 들으면 장성공곡이라(長聲空谷), 빈 골짜기에 소리가 길게 들린다. 이 빈 골짜기에 소리가 길게 들린다는 말은 뭐냐, 이 빈 골짜기라는 공곡은 적멸보궁이라는 뜻이에요. 적멸보궁. 적멸보궁에 이게 뭐냐 적멸보궁에 원광원음이라. 장성이라는 건 둥근 광명 둥근 음성이다. 적멸보궁 원광, 둥글 원자 빛광자, 둥글 원자 소리 음자, 새 소리 하나 들으면 생사 없는 적멸보궁에서 들려오는 우주의 꽉 찬 광명이고 우주에 꽉 찬 소리다. 그렇게 종범이 평을 달아봤어요.

 

過去中未來 未來中現在

과거중미래 미래중현재

三世互相見 一一皆明了

삼세호상견 일일계명료

 (華嚴經 普賢行品)(화엄경 보현행원)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과거 현재 미래에 궁금한 게 전혀 없어요. 의심나는 거 전혀 없고 궁금한 거 없고 불안한 거 없고요. 이게 뭐 괴로운 거 없고. 화엄경 보현행원품에서 삼세호견(三世互相見)을 얘기를 했는데요. 삼세호상견, 삼세는 과거 현재 미래 아니에요. 상견이라는 거는 호상이라는 건 서로 호, 서로 상 서로서로 본다. 이게 호상견인데, 이게 뭔 소리냐. 이런 지혜가 있는 사람은 미래가 있는데 그 미래가 과거의 미래라는 거예요. 과거의 미래, 과거 중의 미래, 미래는 과거다, 그래서 과거 속의 미래다. 또 현재는 미래 중의 현재라는 거예요. 미래 가운데 현재라는 거예요. 그러면 경문은 과거 중의 미래요, 미래 중의 현재라 이렇게 돼 있는데, 과거 가운데 미래고 미래 가운데 현재다, 이거를 말로 이어서 생각해 보면, 현재의 미래, 현재는 바로 미래다. 그러니까 현재만 떡 보면 미래는 저절로 보이는 거예요. 이게 지혜로 세상을 보는 거예요. 또 미래는 과거예요. 과거 중의 미래니까 그 미래를 알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요. 과거를 가만히 돌아보면 그게 미래예요. 또 현재를 가만히 돌아보면 그게 미래예요. 현재의 미래고 미래의 과거다. 미래는 과거고 또 현재는 미래다. 그러니까 뭐 궁금할 게 하나 없어요. 무슨 이상할 거 하나 없고 어디 가서 물어볼 거 하나 없어요. 과거를 가만히 돌아보면 그게 미래요, 또 현재를 가만히 돌아보면 그게 미래에요. 이렇게 삼세가 서로서로, 삼세를 서로서로 보니 일일이 개명요라(一一皆明了), 하나하나가 다 분명하다, 또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하나를 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궁금한 거 하나 없죠. 미래는 바로 현재고 현재는 바로 미래인데, 미래는 바로 과거다. 과거 봐요 그러면 그게 현재예요. 현재 봐요 그러면 그게 미래에요. 그러니까 지나간 한 100년만을 가만히 연구를 해봐도 앞으로 무슨 일이 돌아올지 훤히 다 알거든요. 멋지게 사는 거예요.

 

       그래서 금년에 기도 잘해서, 처음이 1년이니까 시작이 한 해거든요. 시작을 아주 복되게 하면 1년 내내 복되거든요.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