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신중기도] 음력 11월 신중기도 입재 법문 2021-12-04

      오늘 신축년 동짓달 초하루 진관사 법문은 예경공덕, 예경공덕, 이런 제목입니다. 예경은 예배 공경, 공경 예배, 이런 걸 합쳐서 부르는 용어고요. 거기에 따르는 결과, 성취 이런 거를 공덕이다. 그래서 예경 공덕이다.

 

普禮偈 보례게

我今一身中 卽現無盡身 遍在諸佛前 一一無數禮

아금일신중 즉현무진신 변재제불전 일일무수례

 

      우리나라에서 간행한 불교 서적 중에 1935년 을해년에 발간한 석문의범(釋門儀範)이라고 있는데, 그 석문의범 전에 불자필람(佛子必覽)이라고 하는 작은 책이 나왔고요. 그 이전에는 목판본, 또 각자 써서 하는 필사본 이런 걸로 의식문을 썼는데, 1935년에 간행한 석문의범이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석문의범에 보면 이 게송을 보례게(普禮偈)라고, 넓을 보자, 예배할 례자, 보례게라. 보례게가 어떻게 되냐. 나의 지금 한 몸속에서, 아금일신중(我今一身中), 즉현무진신(卽現無盡身)하야, 바로 한량없는 몸을 나타내서, 변재제불전(遍在諸佛前)하야, 모든 부처님들 앞에 안 나타나는 데가 없이 두루 다 나타나 있어서, 일일무수례(一一無數禮), 하나하나 무량수로 예경하기를 원하옵니다, 이런 말이거든요.

      보례진언도 그렇고, 천수경이나 이런 거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게 뭘 의미하느냐 하면, 한국불교의 구성과 운영을 보면, 구성은 법화경으로 돼 있어요. 불탑이나 불상을 모시는데 전부 영산회상도, 또 팔부신장, 이런 것이 다 법화경으로 가람 배치라든지 불상, 불탑을 배치를 해서 예경을 하는데, 형식은 그렇고, 예경하는 내용은 전부 화엄경이에요. 그래서 부처님 모실 때 형식은 법화경 형식으로 조성을 했는데, 점안은 화엄경으로 점안을 해요. 또 예불도 화엄경으로 하고. 그래서 석문의범에 보면 여러 가지 예불문이 나오는데 그게 전부 화엄경이에요, 전부가. 그래서 한국불교는 신앙 예경 의식은 화엄경이고, 가람, 불상봉안, 불탑안치, 이런 거는 전부 법화경이고, 수행은 다 무주상보시, 금강 선정, 금강경으로 해요. 그래서 한국불교의 근본은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이 세 가지 경전이 한국불교 중심 뜻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거거든요. 천수경 시작하기 전에 하는 이 보례게도 전부 이게 화엄경 뜻이에요. 일중일체(一中一切) 중중무진(重重無盡), 화엄이라는 것은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는 일체 속에 있고, 일체는 일체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전체 속에 있다. 그래서 일체와 하나가 또 하나와 전체가 전부 항상 있어요. 같이 있어요.

      그래서 나의 한 몸 속에 무한한 몸이 나타나서, 또 무한 부처님 앞에 전부 다 참여를 해서, 한 분 한 분에게 무한한 예경을 하기를 원하옵니다. 그렇게 출발을 하거든요.

 

普禮三寶 禮敬發願

보례삼보 예경발원

普禮十方無上尊 五智十身諸佛陀

보례시방무상존 오지십신제불타

普禮十方離欲尊 五教三乘諸達磨

보례시방이욕존 오교삼승제달마

普禮十方衆中尊 大乘小乘諸僧伽

보례시방중중존 대승소승제승가

唯願 無盡三寶 大慈大悲 受我頂禮 冥熏加被力

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아정례 명훈가피력

願共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釋門儀範)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석문의범)

 

      그리고 어느 예경이든지 보례삼보(普禮三寶), 일례일불이 아니라 보례요 보례, 널리 예를 해요. 내용은 내내 어디나 삼보죠. 불법승 삼보. 그리고 예경발원(禮敬發願)을 해요. 예불한 다음에는 발원을 하는데, 예불문이 길든 짧든 그 구성 요소는 불법승 삼보인데, 석문의범에 그런 삼보 제목이 있어요보례(普禮), 보례는 널리 예경 올린다 이 뜻이에요. 어떻게 하느냐. 시방무상존(十方無上尊), 시방에 있는 무상의 존상은 오지십신(五智十身)인데, 다섯 가지 지혜, 10가지 몸, 이런 분들은 오지 십신의 모든 부처님이 계신데, 그 부처님을 한꺼번에 부를 때 제불타(諸佛陀)라 이렇게 말한다는 거죠. 그래서 시방무상존의 오지십신인 제불타에게 보례하오이다. 널리 예경을 올립니다. 이런 뜻이고요.

      보례시방이욕존(普禮十方離欲尊), 시방의 모든 번뇌 욕구를 여의는 존귀한 불의 오교삼승(五教三乘), 오교 교리가 있고 삼승 교리가 있는데, 이런 모든 가르침을 제달마(諸達磨)라고 한다. 그래서 시방이욕존의 오교삼승인 모든 달마에게 보례합니다.

      보례시방중중존(普禮十方衆中尊), 시방의 모든 대중 가운데 가장 높은 대승소승제승가(大乘小乘諸僧伽), 모든 승가의 여러분들에게 보례합니다.

      이런 구조가 길고 짧은 내용만 있을 뿐이지 그 내용 자체는 똑같아요. 보례에요. 한국불교는 일승원교(一乘圓敎) 화엄경이기 때문에 원교는 모든 교리를 다 포함하면서 모든 교리의 내용들을 다 성취한다, 이게 원교거든요. 그래서 원교는 제교소류라, 모든 가르침이 원교에서, 소류(所流), 바 소자, 흐를 류자, 흘러나온 바다, 원교는 제교소목(所目)이라, 원교는 모든 가르침이 바 소자, 눈 목자, 돌아가는 바 목적지다. 소류라는 것은 흘러나온 근원이고 또 돌아가는 목적지다 이래가지고 화엄학에서 원교는 제교소류, 원교는 제교소목, 그래서 한마디로 화엄 원교는 제교의 소류 소목이다. 그렇게 화엄가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그게 이제 전부 보례라는 거죠. 보례. 다 화엄 원교에서 나온 것이 소류고 다 화엄 원교로 돌아가는 것이 소목이다, 이 말이죠. 목적지가 되고 근원지가 된다.

      그리고 어떤 예경이든지 예경을 하면 예경발원이 있어요. 예경발원. 우리가 칠정례 예불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유원 무진삼보(唯願 無盡三寶), 여기 무진삼보예요. 이게 화엄 원교예요. 대자대비로 수아정례하시고(大慈大悲 受我頂禮), 가장 존경스러운 예를 정례라고 그러는데, 이마 정자, 나의 정례를 받으시고, 명훈가피력(冥熏加被力), 명훈이라는 건 현훈(顯薰)과 반대되는 말인데, 화엄경이 아닌 다른 데서는 현훈을 많이 강조해요. 신통으로 나타나시는 거, 광명으로 나타나시는 거. 근데 이제 화엄은 원융무애(圓融無礙)이기 때문에 나타나든 안 나타나든 항상 가피를 받는 것을 명훈이라고, 명자는 표시 없이 향을 피우면 향 연기가 쏘이듯이 그렇게 가피력을 주셔서,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법계의 모든 중생들이,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나와 다른 이가 다 일시에 성불하기를 원, 원하옵니다. 이렇게 하고 있거든요. 이게 이제 화엄 예경이다 이 말이죠.

      그러면 이제 예경의 하나하나의 가르침을 많은 분에게 주는데, 제일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이구혜보살소문예불법경(離垢慧菩薩所問禮佛法經)이라. 이구혜보살이 묻고 부처님이 대답한 예불법을 이야기한 경전이 있는데, 이 경전을 제일 많이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보현행원품 십종행원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첫 번에 예경예불원이고, 칭찬여래원이고, 그 보현행원품이 그대로 예불법경이다, 이런 거죠. 근데 그 보현행원품 예경을 설명한 청량조사, 청량 화엄조사가 있고, 그 청량화엄조사가 행원품 소를 냈고, 또 규봉 종밀 화엄 조사가 그 행원품 소에다가 다시 해석을 붙여서 초를 냈는데, 이 규봉의 행원품 소를 해석한 초문이 얼마나 이게 자세하고 좋고 중요한지 행원품을 공부하려면 청량 소와 규봉 초를 떠나서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요한 게송의 저술이에요.

      청량조사가 십종례를 얘기했는데, 여기서는 그 가운데서 삼종례만 메모를 했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 중에 공경례(恭敬禮), 실상례(實相禮), 무진례(無盡禮), 십종례 중에 이런 것들이 아주 중요하게 기억될 내용이에요.

      공경례는 모든 교리에 다 해당되는 예경이에요. 대승시교든지 대승종교든지 초기불교든지 부파불교든지 화엄이든지 공경례는 아주 기본이에요. 공경례가 있고 실상례가 있어요. 형식 없는 예, 아무 형식이 없는데 그 예경이 있어요. 또 무진례가 있어요. 무진례, 끊임없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항상 하는 일에 내 속에 부처님이 예를 하고 내가 부처님께 예를 하고 이렇게 무진례가 있다.

 

恭敬禮 : 五輪著地 稱名讚歎 五輪作禮 爲斷五道 具足五眼

공경례 : 오륜착지 칭명찬탄 오륜작례 위단오도 구족오안

右膝著地 願得正覺 左膝著地 得安正覺 右手著地 證大菩提

우슬착지 원득정각 좌슬착지 득안정각 우수착지 증대보리

左手著地 令入正法 首頂著地 悉得成就 無見頂相

좌수착지 영입정법 수정착지 실득성취 무견정상

(離垢慧菩薩所問禮佛法經) (이구혜보살소문예불법경)

 

      이 공경례를 보면 공경례라는 게 뭐냐. 예불법경에 있는 말씀인데, 오륜착지(五輪著地), 첫째로 오륜이라는 거는 오체라고도 하고 오륜이라고도 하는데, 이유는, 바퀴 륜자인데, 사람 몸을 크게 구분해 보니까 5가지 바퀴가 있더라. 이게 이제 우슬륜, 좌슬륜, 우슬이라고 그러면 오른쪽 무릎 바퀴, 좌슬륜이라고 그러면 왼쪽 무릎 바퀴, 우수륜, 좌수련 또 오른손 무릎 팔꿈치, 왼손 무릎 팔꿈치, 그다음에 정수리 이마 이렇게 오륜을 땅에 붙인다. 이것이 몸으로 표현하는 공경이다 이거죠. 그리고는 칭명찬탄(稱名讚歎), 불보살님의 명칭을 부르고 찬탄을 하고 그런 칭명찬탄과 오륜착지로서 오륜으로 예를 하는 것은 뭘 하고자 하는 거냐. 중생이 미혹해서 생사를 거듭하는 광장을 육도라고도 하고, 육도를 약간 생략하면, 약간 압축하면 오도라고 그러는데,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를 줄여서 인천 아수라 이러면 5도가 돼요. 그게 내내 내용은 6도예요. 인도와 천도는 구분하면 6도고 인도와 천도를 합쳐서 부르면 5도다. 이게 이제 이 오도윤회를 끊고 중단하고(為斷五道), 구족오안(具足五眼)이라, 금강경에서 말하는 오안를 구족하기 위해서 오륜을 착지를 해서 예경을 올린다. 이를 가르치는 거예요. 그래서 오륜을, 이게 우리 말로 하면 오륜이라고 안 하고 요새는 다 오체투지라고 그러는데, 오체투지 예경을 올리는 것은 오도윤회를 중단하고 오안을 갖추기 위해서 오체투지 예경을 올린다. 이런 식으로 예불법경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첫 번째 우슬착지(右膝著地).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는 거는 왜냐. 원득정각(願得正覺)이라, 정각을 얻기 위해서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댄다.

      좌슬착지(左膝著地), 왼쪽 무릎을 땅에 대는 것은 뭐냐. 득안정각(得安正覺)이라, 정각에 늘 편안히 머물기 위해서 왼쪽 무릎을 땅에 댄다.

      그다음에 우수착지(右手著地), 오른손을 땅에 붙이는 것은 뭐냐. 증대보리(證大菩提), 대보리, 큰 깨달음을 증득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좌수착지(左手著地), 왼쪽 손을 땅에 대는 것은 영입전법(令入正法)이라, 일체중생이 다 정법에 들게 하기 위해서 왼손을 땅에 대는 것이다.

      또 수정착지(首頂著地), 머리 정수리를 땅에 대는 것은 실득성취 무견정상(悉得成就 無見頂相)이라, 볼 수 없는 정수리 모양을 다 성취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 무견정상이라는 것은 지혜가 아주 위 없이 무상 대지를 증득하면 그 무상대지혜의 끝나는 지점을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걸 부처님 정수리에다가 비유해서 부처님 정수리는 일체 중생이 보지 못한다 이렇게 가르치는 거죠. 그래서 볼 수 없는 정수리의 모양을 성취함을 얻기 위해서 머리 정수리를 땅에 대고 예배를 하는 것이다. 근데 이런 내용은 다 이구혜보살 소문, 묻는 바, 예불법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이고.

 

實相禮 : 不住於法 常冥法界 常禮諸佛 云實相禮

실상례 : 부주어법 상명법계 상례제불 운실상례

無盡禮 : 一微塵中 見一切諸佛 一一佛所 一一禮無盡

무진례 : 일미진중 견일체제불 일일불소 일일례무진

(澄觀述 普賢行願品疏)(징관술 보현행원품소)

 

      그다음에 여러 군데에서 가르치고 청량이 이야기하는 실상례라는 것은 실상이 뭐냐. 부주어법(不住於法)이라, 법에 머물지 않는 걸 실상이라고 그랬어요. 보이는 법에 머문다든지 보이지 않는 법에 머문다든지 그거는 실상이 아니고, 보이는 법에도 보이지 않는 법에도 머물지 않는다, 그걸 실상이라고. 그러면 그건 뭐냐. 상명법계(常冥法界), 항상 법계 법성에, 어두울 명자인데, 어두울 명자는 합한다는 뜻이거든요. 합하면 보이지 않으니까 보이지 않는 모습을 합한 모습으로 해석을 해서 명은 합이라 명하고 항상 법계에 명합을 해서, 그 실상례라는 것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늘 법계와 하나가 되는 거예요. 우주 법계 법성 실상과 하나가 되는 예경을 실상례라고 그래요. 그래서 상례제불(常禮諸佛)이라, 표시는 없는데 법계와 하나가 돼서 늘 법계불과 하나가 되고, 늘 법신불과 하나가 되고, 광명불과 하나가 되고, 그냥 항상 실상 법신 제불 광명과 항상 하나가 돼서, 표시 없이 항상 온전한 예경을 올리는 거를 실상례라 그런다. 그래서 그걸 운실상례(云實相禮).

      그다음에 무진례를 제일 마지막으로 청량이 설명을 했는데, 일미진중(一微塵中), 한 가는 티끌 가운데, 견일체제불(見一切諸佛)하고, 부처님의 법신 실상이 조그마한 티끌 가운데도 일체제불이 다 계신다 이거에요. 일체제불이. 그게 화엄이에요. 하나 속에 모든 게 다 들어 있고, 모든 것이 다 하나 속에 들어 있고, 하나가 또 모든 것 속에 들어서 일종의 일체라, 일즉일체다,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하나가 곧 일체다. 이걸 원융무애라고 그러는데, 하나와 모든 것이 전혀 다른 게 아니에요. 또 그렇다고 해서 하나 하나 자리를 버리는 게 아니에요. 하나 자리 그대로 있으면서 일체가 되고 일체 자리 그대로 있으면서 하나가 돼요. 이거는 이제 더 설명이 필요한데, 오늘은 이거 설명할 수가 없고. 한 가느다란 티클 속에서 일체 모든 부처님을 친견을 해요. 이게 무진례에요. 또 하나하나 부처님 처소에서 또 하나하나의 예경을 올리는 것이 끝이 없다(一一佛所 一一禮無盡). 아주 아주 완전한 예경을 무진례라고 그래요.

 

一切衆生 眞實悉有 緣身性身

일체중생 진실실유 연신성신

五體四大身 識心想念身 名爲緣身

오체사대신 식심상념신 명위연신

圓極佛性身 大寂光明身 名爲性身

원극불성신 대적광명신 명위성신

禮敬發願 緣身歸源 契合性身

예경발원 연신귀원 계합성신

 

      그래서 결론은 뭐냐. 예경이 딴 게 아니라 일체중생의 진실실유 연신성신(一切衆生 眞實悉有 緣身性身)하니, 일체 중생에게는 진실로 다 인연의 몸과 본성의 몸이 있다 이거에요. 인연의 몸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받은 몸,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해서 모든 음식과 환경과 토양을 통해서 인연으로 받은 몸을 연신이라고 한다. 연신을 하나 더 붙이면 연생신이라고 해요. 인연으로 생긴 몸이다. 연생신이 있는데 그 연생신이 나기까지는 인연으로 생기기 이전부터, 또 인연으로 된 몸이 사라진 이후까지 시작도 끝도 없이, 동서남북도 없이, 항상 상주하는, 항상 머물러 있는 법성신 자성신이 있다. 연생신은 의식과 판단으로 알아서 의식으로 식별을 하고 의식으로 판단을 하는데, 이 성신 법성신 자성신 불성신은 지혜로만 볼 수가 있어요. 지혜로만. 그래서 의식으로는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이제 연생신만 알고 사물 경계에만 집착하는 거를 미혹이라고 그래요, 미혹. 그다음에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정각인데, 미혹과 정각, 정각인데 뭘 깨달았냐. 이 자성신 법성신 불성신 이 성신을 아는 거를 그걸 깨달음이라고 해요. 식별이라고 하는 거, 인연 현상을 아는 거는 의식이라고 하는 식자, 구별한다는 별자, 식별이라고 그러는데 자성은 식별 대상이 아니에요. 정각 대상이에요. 정각. 그러면 예경이라고 하는 것은 연신에서 성신, 이 식별하는 의식 체계에서 정각하는 지혜를 얻은 것을 그거를 깨달음이라고 하는데, 예경은 바로 식별 의식으로 정각 지혜를 얻는 행위이다, 이런 말이죠.

       그러면 연신은 뭐냐. 오체사대신(五體四大身), 오체라는 건 우리가 말한 두 무릎, 두 팔꿈치, 정수리 오체, 그 오체를 나타내고 있는 몸 또 사대신, 지수화풍 사대로 이루어진 몸, 오체사대신과 식심상념신(識心想念身)이라, 식심으로, 인식하는 마음으로, 생각하는 몸이다. 상념, 생각 상 생각 념. 그래서 이 형체의 몸과 생각의 몸으로 나타나는 것은 다 명위연신(名爲緣身)이다. 그것은 이름하여 연신이라고 한다. 그 몸형태 생각 그게 인연의 몸이죠.

      그다음에 원극불성(圓極佛性身)이라고요. 둥글 원자, 궁극하다는 궁극의 극자. 이건 화엄가에서 쓰는 말인데, 원극이라는 말은 끝이 없어요, 원자는. 또 궁극이에요. 역시 끝이 없어요. 무변궁극. 원이라는 건 무변을 말해요. 둥글 원자는. 변방이 없어요. 또 마지막이 없어요. 그래서 이걸 원극이라고 그러는데, 이 불성은 변방도 없고 마지막도 없는 그런 아는 본성이 있다. 아는 본성 그건 원급 불성인데, 그 원급 불성의 몸이 우리 자성신이다, 그 말이죠. 대적광명신(大寂光明身), 광명은 광명인데 대적이요, 세간의 광명은 태양광 달빛광 촛불광 이게 형상광인데, 이 불성광명은 자취가 없어요. 그래서 그늘도 없고 시작된 것도 없고 끝나는 것도 없고 그래서 크게 고요한 광명이다. 불성광명은 햇빛이 아니에요. 불성광명은 촛불빛이 아니에요. 불성광명은 별빛도 아니고 달빛도 아니고 대적광명이여, 대적광명. 그림자도 없고 빛도 없는 대적광명. 이 대적광명신 이것을 이름하여 명위성신(名爲性身)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경과 발원(禮敬發願), 예경하고 발원하고 하는 것은 연신이 귀원(緣身歸源)하여, 연신이 근원으로 돌아가서, 계합성신(契合性身)이라. 계자도 이게 합한다는 뜻인데, 합할 합자도 합한다는 뜻이고. 성신과 계합하는 것이다. 합해지는 것이다. 예경발원은 연신이 귀원해서, 근원으로 돌아가서, 본래 우리 불성신 자성신과 합해지는 것을 예경이라고 그런다. 일체중생이 다 고통을 겪는데 문제는 이 자성신을 몰라서 고통을 겪는 거고. 죽음이라는 게 본래 없는데 식별로 죽음이 생겨요. 식별로. 그럼 삼매에 들어가면 식별이 가라앉아서 자성 광명이 드러나니까 삼매 속에는 죽음이 없고 식별로 나타날 때 죽음이 있다. 삼매 속에는 고통이 없고 식별로 나타날 때 고통이 있어요. 그래서 세상에서 많은 거를 구하게 되는데 그 구하게 되는 내용을 보면 몸에 좋은 걸 구하고 몸을 구하죠. 그다음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걸 구해요. 사람의 존중을 구하죠. 그다음에 복락을 구해요. 복락을 오욕락이라고 그러는데. 그 오욕복락, 인간존중, 신체복상 그래서 이제 신복과 인복과 재복을 구하게 되는데, 이걸 왜 구하냐. 두려움 때문에 그래요. 왜 두려우냐. 이 죽음이 없고 어두움이 없는 또 고통이 없고 끝이 없는 불성신 광명신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불교는 여러 가지 선근 공덕 인연 또 여러 가지 좋은 인연 다 짓지마는 점점 불신이 깊어지면 그 불성신 광명신으로 돌아가는, 그래서 절대 해탈을 성취하는 그것이 불교인데, 그렇게 인도하는 그 첫 번째 법이 예불이다 이거죠. 그래서 예불은 다른 게 아니라 인연의 몸이 불성의 몸과 합해지는 행위이다. 그래서 예불 한 번 딱 하면 바로 돌아가요. 오래 갈 것도 없는 거라. 한 번만 딱 해봐, 오체투지 해봐요, 그러면은 인연의 몸이 불성의 몸으로 딱 돌아간단 말이에요. 왜 안 되냐. 이 식별심이 안 사라져서 그래요. 식별심이. 그래서 이 광명심이 가라앉고 식별심이 위로 올라와서, 그런데 자꾸 예경을 하면 삼매가 점점 나타나서 식별심은 다 사라지고 광명심이 나타나서 정각을 이루게 되는데 그 정각을 이룬 것을 인연의 몸이 근원으로 들어가고 또 인연의 몸이 자성의 몸과 합해진다고 한다.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