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장 풀고 편안히 앉아서 말씀을 잘 들어주십시오.
불교가 인도에서부터 시작이 됐는데, 초기 불교를 계속 이어오는 남방 불교가 있고, 이 동아시아는 대승불교를 계승하고 있는데요. 대승불교에서 신봉하는 내용은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대승 경전하고 조사어록이라고 하는 이 동아시아의 조사들이 나와서 말씀해 주신 조사어록을 신봉하고 있거든요. 대승 경전은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이 이제 중심이고, 조사어록은 육조단경, 마조어록, 임제어록,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원효 저서, 의상 저서, 나옹, 무학, 함허, 서산 이런 분들이 남긴 내용이 다 조사어록에 속하거든요.
그럼 거기서 뭘 가르치느냐. 불교는 여래를 믿는데, 여래가 어떤 분이냐.
如來云者 諸法如義
여래운자 제법여의
二行永絶 普見三世
이행영절 보견삼세
法無自性 因緣生滅
법무자성 인연생멸
無生示生 無滅示滅
무생시생 무멸시멸
여래운자(如來云者)는, 여래라고 하는 것은 제법여의(諸法如義)다. 일체의 모든 만물이 하나라는 거예요. 여여한 뜻이다. 나고 죽는 게 없고, 이것저것이 없고, 전부가 진여, 참 그와 같은 법이고, 실상법이고, 만물이 일법이다. 하나의 법이다. 우주 만물이 하나라는 것을 깨달은 분을 여래라고 그래요. 죽고 사는 것도 하나, 있고 없는 것도 하나, 나고 죽는 것도 하나, 제법이 여의다. 금강경의 말씀인데, 모든 법이 같다는 뜻이다. 같다. 그래서 올 때도 같은 뜻으로 오고, 그래서 여래라고 하고, 머물 때도 같은 뜻으로, 그래서 여주라고 하고, 갈 때도 같은 뜻으로 간다. 그래서 여거라.
그러면 그걸 깨달으면 어떻게 되냐. 이행이 영절(二行永絶)하고, 이행이라고 하는 것은 뭐 구하는 거, 둘로 보는 거, 두 이자, 행할 행자, 둘로 보는 생각이 전혀 없고 둘로 보는 행위가 전혀 없어요. 있는 거 싫어하고, 없는 거 구하고, 그 취사 선택이 전혀 없는 게 여래예요. 죽음을 피하고 삶을 구하고, 그거 없어요. 그래서 구하고 버리는 게 이행인데, 그 두 가지 행위가 영원히 끊어지고. 일이 없죠. 그래서 여래상을 보면 뭐 구하는 모습으로 조성돼 있지 않아요. 그냥 가만 하나를 보는 모습이에요. 부처님 상을 보면. 하나 버리고 하나 구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를 보는 모습으로 표현된 게 부처님의 불상이에요. 그래서 그걸 같다는 뜻이다. 구하고 버리는 행위가 영원히 끊어졌다.
보견삼세(普見三世)라. 일순간에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봐요. 그게 뭔 소리냐. 미래는 과거다. 미래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미래는 과거다. 또 현재는 미래다. 그래서 삼세가 눈앞에 다 있어요. 그걸 여래라 그래요. 앞으로 다가올 세상이 딴 세상이 아니라 과거 지나간 세상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세상이 현재인데 현재는 바로 또 미래가 된다는 거예요. 그 미래는 과거가 되고. 그걸 여래라고 한다.
법무자성(法無自性)이니, 그리고 여래가 깨달은 것은 하나하나 법에 자성이 없다. 자체 성격이 없다는 거예요. 그건 뭐냐. 이타위성(以他爲性)이라. 다른 걸로써 자기 자성이 됐다. 이 그릇도 그릇의 자체 성격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흙 같은 것이 모여서 다른 걸로 자체가 됐다. 그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뭐든지 구할 게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그 자체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집도 집에 자체가 있는 게 아니라 나무하고 뭐하고 건자재가 모여서 집이 됐기 때문에 집에 자체 성격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할 게 없다는 거지. 구해봐야 그것에 그것이 없으니까, 그릇을 조사해 보니까 그릇에 그릇이 없고, 나무를 조사해 보니까 나무에 나무가 없고. 이게 법에는 자성이 없다. 자체 성질. 무서운 얘기인데 그걸 깨달아요.
그러면 어째서 여러 가지 물건들이 생기느냐. 그거는 인연생멸(因緣生滅)이라. 인연으로. 이제 물과 찬 공기가 만나면 얼음 되고, 공기가 움직일 때 바람이 되고 하듯이, 인연으로 생기기도 하고 인연으로 없어지기도 한다. 인연이란 말은 인도에서 번역인데 말미암아서 생긴다 이런 소리예요. 말미암지 않으면 안 생긴다.
그래서 무생에 시생(無生示生)하고, 자체 성질로 보면 생긴 게 없는데 생긴 것처럼 모양을 보이고, 무멸에 시멸(無滅示滅)이라, 자체 성질로 보면 없어지는 게 없는데 없어지는 것을 보인다. 이걸 인연생멸이라 그래요. 법무자성하고 인연생멸이라, 어려운 말로. 법에는 자성이 없고 인연으로 생기고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냐. 생사가 본래 없다고 가르쳐요. 생사는 본무하고 일심은 청정하다. 한마음은 깨끗하다. 그래서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마음을 깨달았는데, 물질은 자체가 없고, 마음은 물드는 것이 없이 항상 깨끗하다는 거예요. 그걸 깨달았어요. 법무자성하고 일심청정이라.
生死如夢 無實虛妄
생사여몽하니 무실허망하고
一心如日 常放光明
일심여일하니 상방광명이라
一念當體 寂寂照照
일념당체가 적적조조하고
一念靈光 無時赫赫
일념영광이 무시혁혁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불교의 여러 가지 가르침 중에 이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거 최고예요, 그게. 나무는 돌아간다 돌아간다 이 뜻이에요. 공경한다 돌아간다 이 뜻이고요. 아미타불이라고 하는 것은 죽음이 없는 생명, 무량수예요. 한량없는 수명. 한량이 없다는 건 죽음이 없다 소리예요. 그 죽음이 없는 수명으로 돌아간다. 죽음이 없는 생명으로 돌아간다. 그거는 뭐 나무아미타불보다 더 깊은 가르침이 없어요. 참 대단한 말씀이죠. 죽음이 없는 데로 돌아간다니. 지금 한문으로 말한 게, 생사는 여몽(生死如夢)이라. 나고 죽는 건 꿈과 같다. 같을 여자, 꿈 몽자. 그래서 무실허망(無實虛妄)이라, 진실성도 없고 오래 가는 게 없다 그래요. 허망, 무실. 이 나고 죽는 게 꿈과 같다. 이 생사를 꿈으로 많이 가르쳐요. 경전에서. 그럼 꿈을 말할 때 화엄경 십인품이라고 하는 품이 있는데, 거기에 이 세상사를 꿈과 같이 관찰한다. 그런 말이 있어요. 세상사가 꿈과 같다. 그럼 꿈이라는 게 그럼 어떤 거냐? 꿈은 꿈을 꾸고 꿈을 깨고 하는 가운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요. 그럼 둘은 모르는 게 뭐냐. 꿈을 언제 꾸기 시작했는지 꿈의 시작을 몰라요. 꿈을 몇 분, 몇 초, 몇 각에 꾸기 시작했는지 그걸 몰라요. 그리고 꿈꿀 때는 꿈인 줄을 몰라요. 꿈꿀 때는. 이제 꿈을 깼을 때 ‘내가 꿈을 꿨었구나’ 알아요. 꿈을 시작할 때도 모르고, 꿈을 꿀 때도 모르고, 모르다가 꿈을 딱 깼을 때 ‘아 내가 꿈을 꿨구나’ 그때만 알아요. 그런데 ‘꿈을 꿨구나’ 하고 그 아는 생각이 언제 없어지는지 그 없어지는 것도 또 몰라요. 그래서 꿈에는 하나는 알고 셋은 모른다 이렇게 가르쳐요. 시작도 모르고, 꿀 때는 꿈인 줄도 모르고, 또 꿈을 깨고 나면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인 줄 알은 생각이 뭐 움직이다 보면 없어지거든요. 그 꿈 깬 생각이 어느 시간에 없어졌는지 전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아는 건 하나뿐이고 셋은 모른다. 그래서 꿈이라는 거는 무실허망하다. 진실성도 없고, 오래 가는 것도 없고, 허망하다. 생사가 그렇다는 거예요. 생사가 그렇게 꿈같이 무실하고 허망하다는 거지.
근데 일심은 여일(一心如日)이라. 한마음은 같을 여, 날 일, 날은 태양이란 말이죠. 해와 같다. 생사는 꿈과 같고 한마음은 태양과 같다. 그래서 한 마음은 상방광명(常放光明)이라, 항상 광명을 펼친다. 이렇게 가르치거든요. 이게 뭔 소리냐. 이제 마음을 말할 때 견문각지하는 마음이 있다고 가르쳐요. 눈으로 보는 마음, 귀로 듣는 마음, 몸으로 느끼는 마음, 생각으로 기억하는 마음, 견문각지 마음이 있는데, 이거는 바람과 같이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속에 청정일심이 있다. 아무리 봐도 보는 데 물들지 않고, 아무리 들어도 듣는 데 물들지 않고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에 물들지 않는. 물들지 않는 걸 청정이라고 그러는데, 맑을 청, 깨끗할 정, 그 맑고 깨끗한 마음이 있다 이렇게 가르쳐요.
그래서 이 보고 듣고 하는 마음을 인식이라는 식자, 마음 심자, 식심(識心)이라고 하고, 식심, 보아도 보는데 물들지 않고, 들어도 듣는데 물들지 않는 마음을 일심이라 한마음이다. 이 한마음은 신령스러워서, 없는 듯하지만 다 있어요. 그리고 화가 나는 속에도 있고, 즐거워하는 속에도 있고, 그 화가 막 날 때는 굉장하지만 그게 또 슬슬 사라져요. 또 본래 마음으로 돌아와. 즐거울 때는 막 정신을 못 차리지만 그것도 사라져. 그러면 본래 마음으로 돌아와요. 100년이 지나가도 100년 전을 생각하고, 또 딱 보면, 저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도 알고, 이렇게 견문각지 희로애락 하는 그런 세상의 식심과 견문각지 희로애락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한마음이 있다. 생사가 꿈과 같다면 일심은 태양과 같다. 태양은 이거는 뭐 밤낮도 없고 항상 밝단 말이에요. 일심은 여일하니 상방광명이라 항상 광명을 비춘다. 그래서 이 몸이 생길 때, 그 한마음 광명에 처음이 아니고, 이 몸이 사라질 때 한마음 광명에는 마지막이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에게는 생사가 없다. 견문각지도 없고 희로애락도 없고. 뭔 말이냐. 일심청정 상방광명, 항상 광명하는 마음이 있고 항상 청정한 마음이 있다. 그걸 안 걸 깨달음이라 그래요. 그걸 안 걸.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걸 아는 걸 그걸 깨달음이라 그러고, 물들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아는 걸 깨달음이라 그런다.
그럼 어찌 되냐. 마음을 알고 나면 모든 게 마음뿐이에요. 심외무법(心外無法)이라, 마음밖에 법이 없다. 이렇게 이런 물건을 보는 것도 여기에 마음이 있어요. 근데 보통 사람은 이 물건만 보지, 이 물건을 보는 마음이 있다는 건 꿈에도 몰라요. 산을 봐도 그게 마음이요. 산을 보는 마음이 보는 거예요. 물을 봐도 그게 마음이고, 사람을 봐도 그게 마음이고. 천지 만물이 오직 마음뿐이다. 유시일심(唯是一心)이다. 오직 마음 하나다. 그러니까 뭘 봐도 마음이에요. 이걸 봐도 이걸 보는 마음이 있는 거예요. 그걸 깨달은 거지. 죽는 것도 마음이고, 사는 것도 마음이고, 오고 가는 게 전부 한 마음이다. 그러니까 한마음으로 돌아가서 일체 것에 전혀 구애를 안 받는 걸 해탈이라 그래요. 한마음뿐이다. 일체 것에는 전혀 장애가 없다. 그래서 무장애 일심 해탈, 장애 없는 한마음 해탈이다.
근데 그 한마음이라는 게 실체가 뭐냐. 그걸 불교에서는 해당할 당자하고, 당직이라는 당자하고, 몸 체자 써서 당체(當體)라고 그러는데요. 마음의 당체, 그 마음의 그 본질, 그 당체가 뭐냐. 또 일심을 일념이라고도 하고요. 한생각, 일념당체(一念當體)는 찾아보면 없어요. 당체가 찾아보면 없는 걸 고요하다는 적자 두 번 써서 적적(寂寂)이라고 그러고. 이 마음은 이게 몸을 아무리 갈라봐도 마음이 안 보여요. 그런데 맨날 봐요. 맨날 들어. 이걸 조조라고 그래요. 조명이라는 조자. 적적조조(寂寂照照)라. 그래서 마음을 이렇게 들여다보면 한 물건도 없어요. 이게 적적이에요. 그런데 마음을 이렇게 펼쳐보면 온 우주에 꽉 차는 거예요. 펼치면 꽉 차고, 돌이켜보면 한 물건도 없고, 이걸 이제 아는 때가 와요. 그걸 불교의 수행이라고 하고, 깨달음이라 그래요. 돌아보면 한 물건도 없다. 무일물이라. 펼쳐보면 변법계라, 온 우주법계에 두루하다. 그래서 일념은 또 영광(一念靈光)인데 신령스러운 광명인데 이 신령스러운 광명은 무시혁혁(無時赫赫)이라. 시간이 없이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그냥 밝고 밝다. 그걸 비유로 말을 하는데,
江江水月來 一月印千江
강강수에 월래하니 일월이 인천강이로다
愚猿水中捉 孤輪不昇降
우원수중착이나 고륜은 불승강이로다
夢踏青山脚不勞 影入水中衣不濕
몽답 청산에 각불로 하고 영입수중에 의불습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강강수(江江水)에, 강마다 강마다 물이 있는데, 강마다 강마다 차 있는 그 물에, 달이 전부 하나씩 와 있어요. 그게 강강수에 월래(江江水月來)라. 강강수에 달이 오니, 이 강에 가 봐도 그 강 속에 달이 있고, 저 강에 가 봐도 강 속에 달이 있고, 그게 강강수월래예요. 강강수월래. 그런데 그 달을 건져볼려고 들어가면 달이 없어요. 그런데 밖에서 보면 달이 보여. 희한해요. 근데 그게 강 속에 강마다 달이 하나씩 따로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일월이, 한 달이 인천강(印千江)이라, 천강에 비춘 것이다, 이 소리예요. 그래서 그걸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고 하거든요. 월인천강, 달이 천강에 비췄다. 도장 인자인데, 백지에 도장 딱 찍으면 도장이 환히 보이듯이 물속에 달이 환히 보인다, 이 소리야. 근데 우원(愚猿)은 어리석은 원숭이는 수중착(水中捉)이나, 물속에서 달을 건지려고 막 찾아. 근데 물속에 들어가면 물에 빠지기만 하지 달은 못 찾아요. 그런데 고륜은 불승강(孤輪不昇降)이라, 이렇게 하늘에 딱 떠 있는 달 모양은 물속에 들어가지도 않고 하늘에 올라가지도 않고 항상 거기 있다 이거예요. 그럼 그 달은 뭐냐 그러면, 생사예요. 나고 죽는 거예요. 물속에 달이 보이나 안 보이나, 늘 하늘에 홀로 밝아 있다고 하는 거는 생사 없는 일심 한마음이다, 이거죠. 그걸 이제 비유로 말할 때 몽답청산에 각불로(夢踏青山脚不勞)요. 꿈에 높은 산을 막 헤매고 돌아다녔는데 꿈꾸는 몸은 다리가 멀쩡해요. 꿈에 청산을 밟았는데도, 다리 각자가 있고, 아니 불자가 있고, 피로할 노자가 있거든요. 다리는 피로하지 않아. 영입수중에 의불습(影入水中衣不濕)이라. 물가에 가서 이렇게 보면 자기 그림자가 물속에 있는데, 자기 옷을 만져보면 옷이 멀쩡해요. 그림자가 물속에 들어갔는데 옷은 젖지 않았다. 이 죽고 사는 속에 죽고 사는 것이 없는 한마음이 있다 이 소리거든요. 그래서 그 한마음이 극락 가는 거예요. 한마음으로 돌아가면 그 자리가 극락이요. 한마음에는 하나뿐이니까 나고 죽는 게 없어요. 무생사, 생사 없는 본극락, 본래 극락. 그리 돌아가시라고 지금 재 지내는 거예요.
일심으로 돌아가면 극락세계다. 환귀일심 극락세계. 환귀는 돌아간단 말이잖아요. 희로애락에 머물러 있으면 그걸 사바세계라고 그래요. 견문각지 희로애락은 사바세계고, 환귀일심 하면, 일심으로 돌아가면, 돌아갈 환자가 있고 돌아갈 귀자가 있거든, 그러면 극락세계다.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믿고 이렇게 의식을 진행하는 게 이런 재 지내는 의식이거든요. 원리가 간단해요, 아주. 인간의 고통은 희로애락에서 온다. 인간의 해탈, 인간의 영원한 즐거움은 일 심 광명에서 온다. 부처님은 일심광명을 깨달은 분이라는 거지. 그래 이렇게 표정이 희로애락에 막 시달리는 표정이 아니에요. 희로애락에 시달리는 표정이 아니에요. 희로애락에서 벗어난 그런 표정이에요.
佛身常顯現 法界悉充滿
불신상현현 법계실충만
恒演廣大音 普震十方國
항연광대음 보진시방국
如來普現身 遍入於世間
여래보현신 변입어세간
隨衆生樂欲 顯示神通力(華嚴經,如來現相品)
수중생낙욕하야 현시신통력(화엄경, 여래현상품)
나무아미타불
지금 읽은 이 내용은 화엄경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이라고 하는 품이 있는데, 거기서 말씀하시는 건데, 부처님은 마음을 딱 찾아서 일심을 딱 거두기도 하고, 거둘 때는 한 물건도 없는데, 일심을 딱 펼치면 온 우주에 꽉 차요. 그래서 부처님 몸이 항상 나타나니, 법계에 실충만(法界悉充滿)이라, 세계를 법계라고도 하거든요, 불교에서, 이 세계에 충만하다 가득하다. 한마음이 온 세계에 가득하다는 거예요. 찾아보면 한 물건도 없는데 펼치면 세계에 가득해요. 마음 공부라는 건 이제 이걸 체험하는 거예요. 딱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한 물건도 없어요. 근데 눈 딱 뜨고 보면 마음이 끝이 없어요. 그러면 이 즐겁고 괴롭고 막 그냥 갈팡질팡하는 게 꿈 같아. 작야몽중사(昨夜夢中事)라, 어제저녁에 꿈꾸던 일과 같다. 뭔 일이든지 그때는 모르는데 지나놓고 보면 꿈이거든요. 다 부질없어. 10년 전의 일 지금 생각하면 부질없어요. 근데 10년 전 그때는 전혀 그게 부질없는 일인 줄 몰랐어요. 지금 일도 마찬가지예요. 지난 일은 다 꿈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꿈인 줄 모른다.
항연광대음(恒演廣大音)하니, 항상 넓은 소리를 내니 널리 우주 법계를 다 진동시킨다. 여래가 보현신(如來普現身)하야. 여래가 널리 몸을 나타내서 변입어세간(遍入於世間)하니, 세간에 두루 다 들어간다. 수중생낙욕(隨衆生樂欲)하야. 중생들이 원하고 바라는 걸 따라서 현시신통력(顯示神通力)이라, 신통력을 나타낸다. 이 신통력이라는 건 뭐냐 하면, 이 마음으로 가면 몸을 전혀 안 움직이고 가요. 그걸 신통력이라고 그래요. 저 해가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온갖 것을 다 비추듯이 그걸 신통력이라고 움직여서 가는 게 아니라 안 움직여서 가는 거. 그거 희한해요. 가만히 있는데 가고자 하는 곳에 다 갔어. 아무리 빨라도 마음으로 가는 것보다 더 빠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인간은 이 몸을 움직이려고 온갖 기계를 만들었는데, 그건 너무 좋은 일이에요. 좋은 기계 만들어서 쓰는 게. 그런데 이 마음으로 움직이는 거는 털끝 하나 안 움직이고 가고자 하는 곳에 다 가는 게 그게 신통력이에요. 그래서 여래가 사람들을 인도할 때 가만히 한 곳에 앉아 있지만 온갖 중생들을 다 살핀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여래가 안 움직이지만, 오늘의 영가를 극락세계로 인도하신다. 이게 신통으로 인도한다 이 소리예요. 왔다 갔다 해서 막 땀 흘리고 하는 게 아니라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신통력으로 극락세계로 인도하신다. 이렇게 가르쳐요.
지심제청 지심제수
白蓮淨土 安養佛國 西方淨土 極樂世界
백련정토 안양불국 서방정토 극락세계이니
承佛神力 即得往生 無量福德 無盡受用
승불신력하야 즉득왕생하야 무량복덕을 무진수용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청정일심이 쫙 펼쳐질 때 그 세계는 이 진토세계가 아니라, 먼지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라, 불시진토요. 진토가 있고 정토가 있는데, 정토란 말은 깨끗할 정자, 흙 토자 그걸 정토라 그러고, 진토는 먼지 진자 흙 토자 진토라고 그러거든요. 희로애락으로 보면 진토인데, 청정 일심으로 보면 정토다. 그래서 백련정토(白蓮淨土), 흰 백자 연꽃 연자, 깨끗하다는 소리예요. 깨끗한 정토. 안양불국(安養佛國), 편안할 안자, 기를 양자인데, 그게 옛날에는 기를 양자를 즐거운 락자로 썼어요. 안양, 편안하고 즐겁다. 그래서 이 불교 용어로 따서 이제 안양이라는 우리 지명도 있거든요. 그게 불교 용어예요. 그 극락세계라는 소리에요. 그게 안양불국, 편안하고 즐거운 부처님 나라. 그것이 서방정토 극락세계다. 서방이라는 건 깨끗하다는 소리예요. 깨끗한 정토 바로 극락세계이니까 오늘 영감께서 승불실력(承佛神力)하여, 부처님의 신통력을 이어받아서 즉득왕생(即得往生)해서 바로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나서 무량복덕(無量福德)을 한량없는 복덕을 무진수용(無盡受用)이라. 끝이 없이, 한순간 두 순간이 아니라 아주 끝이 없이 받으소서. 받을 수자, 쓸 용자인데 그 용자는 받는다는 말을 도와주는 부사예요. 수용하다 그러면 받으소서. 이렇게 해서 오늘 극락세계 가시도록 하는 법문이 끝이 났고요. 다음 의식으로 극락세계에 가시면 되거든요.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