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백중기도] 7월7일 백중초재 법문 2024-07-07

 

         네. 반갑습니다. 저는 진관사를 좋아하고, 우리 법해 스님을 존경하는 가섭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백중 초재를 맞아서 백중기도의 공덕 세 가지를, 제일 낮은 단계의 공덕부터 해서 가장 상위의 공덕까지 세 가지로 분류해서 같이 법담을 나눠볼 건데요.

 

        그전에 이렇게 오다 보니까 우리 주지스님께서 이 더운 날 기도하니까 좋지요.” 이렇게 물어보시던데 진짜 좋아요? 진짜로? 그렇군요. . 이 더운 날 이제 땀 흘리면서 기도하는 것이 나도 모르는 그런 신심이 분발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제 지금부터 30년 좀 넘기 전에 통도사에서 계를 받았는데, 이제 우리 스님들은 계를 받기 전에, 전날에 삼보일배를 해요. 그래서 저는 통도사에서 이제 계를 받았는데, 통도사 일주문에서, 통도사는 이제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이잖아요. 거기까지 삼보일배를 해서 쭉 들어가는데, 그때가 8월 말이었어요. 8월 말이면 더워요? 추워요? 억수로 덥잖아요. 그러니까 땀이 나니까 절을 해서 이제 땅에다가 이마를 댈 때마다 이마에 흙이 붙는 건 당연한 거고 이 자갈이 붙어요. 이만한 돌들이 이렇게 붙어 있어요. 근데 그거를 자꾸 이제 하다 보면 신심이 동반해가지고 머리를 자꾸 찧게 돼, 땅에다가. 그거 희한하더구먼요. 제가 그때 느낀 게, 경전에 보면은, “부처님을 만난 재가자나 제자들이 땅에다 머리를 찧었다.” 이런 구절들이 나와요. 근데 그게 그때 제가 마음속으로 그전에는 이해가 잘 안 됐는데, 그게 이제 이해가 되는 거예요. 본인의 그런 업장을 이 자리에 다 녹여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더 힘을 줘서 머리에 땅을 대는 거예요. 그래서 하다 보니까 몇몇 이제 동료들은, 도반들은 머리에서 피가 나기도 하고, 그걸 보면서 또 같이 뭔가 가슴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면서 더 이제 신심을 내게 되고. 그런데 이게 이제 크라이막스 절정은 어디냐면은, 이 통도사 부처님 사리탑에 가면은 거기가 대리석으로 돼 있거든요. 8월 한 달 오후 내내 데펴진 데를 거기를 세 바퀴를 돌아야 돼요. 우요삼잡이니까. 이렇게 절을 내려가서 조금 쉬고 싶어도 뜨거워서 쉴 수가 없어요. 빨리 일어나야 돼. 손바닥 익어요. 근데 문제는 이제 절을 할 때마다 그 대리석이니까 이마는 괜찮은데 무릎이 이제 해지기 시작해요. 옷이 대리석이라서. 우리는 이제 대중들이 많았어요. 그때만 해도 200명 넘게 이제 대중들이 오니까, 같이 하니까, 이마가 까지고 발등이 이제 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한 바퀴 돌고 났는데, 앞에 붉은 자국들이 남기 시작해. 피가 나는 거예요. 왜 그러냐면 그전에 이제 한 20일간 계속 아침에 절을 해가지고 여름에,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아마 인권 침해로 다 고소할 건데, 우리 때는 방석을 안 줬어요. 이걸 니사단이라고 그러거든, 방석을, 깔게, 방석을 안 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맨데다가 아침마다 절을 하고 또 참회기도도 하고 그러니까 무릎이 까지고, 발등이 까져가지고, 발등이 까졌는데 염증이 생기잖아요. 이제. 그러니까 한여름이잖아요. 그러니까 좀 쉴 때 이 피가 난 게 양말하고 이렇게 붙어버려요. 그래도 참고 하는 거예요, 이제. 근데 그게 대리석에 올라가서 어떻게 되겠어요? 홀라당 벗겨질 거 아니에요. 근데 그게 아픈 게 아니라, 내가 그 순간에 느꼈던 건 뭐냐 하면 이게 신심이고, 이게 원력이고, 이게 이생에 내가 끝내야 되는 일을 하고 있구나그런 경험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우리 진관사 우리 마음의 정원에 오신 분들도, 혹시라도 평소에 마음이 괴롭고 일이 잘 안 풀리고 집안이 조금 뭔가 얼크렁 설크렁 해가지고 이제 큰소리가 나기도 하고 이런 분들은 절에 와서 법당에 절하지 말고, 제가 강추하는데, 마당에서 한번 해보세요. 땅에서 한번. 땅에서. 이 코에 땅의 냄새가 싹 들어오는 게 이게 법당에서 할 때하고 완전히 다릅니다. 일단 해보시라니까요. 자기도 모르게 울컥하는 게 올라옵니다. 여기는 이제 법당 안에는 스님들이 다 장엄을 아주 거룩하게 해놔가지고 그런데, 그냥 우리 여기 함월당이죠. 함월당 마당에서나, 아니면은 저기 대웅전 앞에서나, 그래도 좀 남들이 보는 게 조금 뭔가 이게 내가 연기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하는 분들은 저기 나가가지고 일주문 밖에서, 저기 일주문 밖에서 이 진관사를 바라보고 한번 삼배를 한번 지극하게 해보세요. 이게 가슴에서 이게 올라오는 게 다르다니까. 그렇게 하면은 이 주지스님께서 땀 흘리면서 기도하는 공덕을 제대로 느낄 거예요, 아마.

        요즘에는 이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게 자꾸 옆으로 새면 안 되는데, 나온 김에 더 얘기를 하면은 요즘에는 브레이크를 잘못 밟아가지고 사고가 많이 나요. 저도 이제 우리 같이 공부했던 스님이 아침에 문자가 왔는데 급발진 사고가 났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는 병원에 입원했대. 그런데 그거를 우리 도반 스님들이 있는데 단체 카톡방에 올렸는데, 왜 올렸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걸. 근데 하여간 이제 급발진이 나는데 급발진은 왜 나는 거예요? 브레이크를 밟아도 안 될 때 급발진이라고 그러잖아요. 근데 또 사고가 그런 것도, 그런 케이스도 있는가 하면은, 브레이크하고 엑셀하고 잘못 밟아 사고가 나죠. 또 하나는 이제 브레이크가 파열돼가지고 이제 고장 나도 사고가 나죠.

 

        저는 이제 이 백중 기도를 하는데 백중을 다른 말로 우란분재 그러죠. 그래서 우람바나 그럽니다. 이게 거꾸로 매달려 있다 그러거든요. 근데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게 왜 그러냐면, 그 나쁜 갈래에 가 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이제 명을 다하고 다음에 인연을 맺었는데, 나쁜 갈래에 갈 때 그때는 이제 나쁜 갈래에 가서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거예요. 똑바로 서 있어도 힘든데 거꾸로 되면 얼마나 힘들어요. 그런 나쁜 갈래를 우리가 인연을 맺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게 급발진이에요. 이거를 이제 경전에서는 분노라고 그래요. 분노. 우리가 살아있어서 나쁜 갈래로 가는 가장 큰 에너지원이 되는 게 분노, 급발진이에요.
        근데 이 자리에 이제 보니까, 대략 아까 우리 스님한테 물어보니까 300여 분 앉아 계신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분노하지 않는 분들은 있으면 손들어보세요. 살면서 분노를 하게 되죠. 저도 분노를 잘합니다. 잘하게 생겼잖아요, 저도 분노를. 근데 이 분노라는 게 사람이 화냄이잖아요. 화냄. 근데 분노는 제가 말씀드리듯이, 지금 말씀드린 거는 이 백중 우란분재라고 하는 이제 그런 나쁜 갈래로 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에너지를 내는 게 분노다. 근데 이 분노는 경전에 보면은 첫 번째는 자기 방어 기제로 발동을 합니다. 그냥 툭 나오는 게 아니라, 자기 에고, 자기를 보호하려고 하면 화를 내요. 근데 그 화가 한 단계 넘어가면서 자기 자신을 태워버리는 거예요. 이런 단계로 오는 게 분노입니다. 이 분노를 잡아야 돼요. 꺼야 돼요. 급발진을 꺼야 되는 거예요. 급발진을. 마음에 급발진을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브레이크를 잘 밟아야 되잖아요. 그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그런 마음의 브레이크를 잘 밟으려면 뭘 해야 되느냐. 진관사에 백중기도를 입재해야 된다. 웃긴 얘긴데 안 웃네. 백중기도 입재 다 하셨죠? . 본인이 입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 주위에도 권선을 많이 하셔야 됩니다. 권선을. 권선를 많이 하셔야 되는데, 그래서 이제 그러한 마음의 분노를 잡는 마음의 브레이크를 잘 잡으려면은 뭘 해야 되느냐. 진관사에 백중기도를 입재해야 되지만, 우리 일상에서는 숨길을 잡아야 돼요. 숨길. 숨길이 뭐예요? 들어가는 거, 나가는 숨이죠. 들숨 날숨이잖아요. 이 들숨 날숨을 잘 관찰해야 됩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는 이 들숨 날숨을 잃어버리고 살아요. 특히 분노할 때 보면은 들숨 날숨이 뭐야? 자기 자신도 없는데. 자기 자신만 잘 이렇게 분노를 조절하려면, 그때 숨만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어도 분노가 많이 가라앉죠. 제가 늘 하는 말 중에 <숨길을 잡으면 꽃길이 열린다.> 이런 말을 하는데 말 괜찮죠? 한번 따라 해보실래요? <숨길을 잡으면 꽃길이 열린다.> 그냥 마음에 이제 꽃이 피기 시작해요, 숨길를 잘 잡으면. 우리가 염불할 때도 그렇고, 정근할 때도 그렇고, 누워 자기. 잠자기 전에 직전에도 그렇고, 자기 숨길을 잘 살피는, 이게 이제 만약에 많이 연마가 되고 힘을 받으면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 숨길을 보는 습관이 생겨요. 그러면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놀라거나 분노하지 않는다라는 건데. 이 분노하면 안 되는 거예요. 분노하면 잘못하면 나쁜 갈래에 가는 겁니다. 나쁜 갈래에 가 있는 그런 혹시라도 모르는 나와 인연됐던 영가들을 스님들의 그런 법문과 또 스님들의 염불 그리고 우리 정성들이 다 모여가지고 좋은 갈래로 안내하는 게 바로 백중이잖아요.

        백중은 이제 매년 이맘때쯤 하는데, 신도분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작년 했는데 올해 또 해야 됩니까?” 이런 이제 질문들을 많이 하신단 말이에요. 근데 꼭 해야 되는 거예요. 매년 해야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한테 인연을 맺었던 선망 부모들이 나를 양육해가지고 나를 키우고 나를 어느 정도 성장케한 세월에 비하면, 지금 내게 남아 있는 세월을 보면 앞으로 이제 많이 해도 10번이에요. 조금 넉넉하면도 20번이고. 더 넉넉하게 봐도 30분 이상 여기 할 사람 없어요. 그죠? 30년 뒤에 백중기도 입재 할 수 있겠어요? 적어도 앞으로 30번 이상은 못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나를 양육하고 길러줬던 선망 부모들의 은혜에 비춰봤을 때, 300번 해도 모자라는 그러한 기도를 어느 해는 빼먹고 어느 해는 또 마음이 나서 하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매년 꾸준히 해야 된다.

 

        특히 저는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뭐냐 하면, 나와 인연을 맺어 왔던 나를 찾아왔던 인연들 중 나의 여러 가지 여건과 환경에 의해서 인연을 저버렸던 인연들이 있습니다. 태아 영가들이죠. 태아 영가들은 이 백중 때 꼭 입재를 하셔야 돼요. 그 인연들은 나한테 찾아왔던 인연들이기 때문에, 내가 인생을 마감하는, 그 숨을 끊는 그 순간까지 내가 그 영가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가야 되는 거예요.
저는 이제 어느 스님한테 들은 얘기인데, 이 스님도 이제 불교에 입문했어요, 거사님인데. 불교에 입문해가지고 공부를 해보니까 제일 첫 번째 중요한 게 불살생을 배운 거예요. 생명을 앗아가지 마라. 근데 가만히 보니까 결혼해가지고 자기 이제 안사람하고 인연을 맺고 살다가 어찌저찌 하다 보니까 두 번의 인연을 저버린 경험을 한 거예요. 그래서 마음으로 너무 이제 큰 게 와닿아서 이 거사님 100일 기도를 했답니다. 100일 기도를 하고 100일 기도를 성껏 하고 회향을 해가지고 회향 기도를 끝내고 내려오다, 큰 절에서 하고 내려오다가 조그만 암자가 보이더래요. 그래서 이제 보살님하고 저기 가 참배 좀 하고 갑시다.” 이렇게 해서 참배하고 딱 나오는데, 신발을 이렇게 툭 벗어놨는데, 신발 안에 참새 두 마리가 하나씩 들어가 죽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얼마나 놀랄 일이에요. 근데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가 죽어 있는데, 백일기도 회향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찝찝한 마음도 들고 그래서 이제 그 참새를 정성껏 잘 모셔서 주위 암자 곁에, 이제 나뭇가지로 땅을 파가지고 잘 모셔줬대요. 그리고 또 돌아서는데 이 참새 두 마리라는 게 참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그 거사님 마음에. ‘혹시라도 나하고 인연을 맺었던 그런 인연들이 이렇게 회향하는 걸까이런 이제 생각도 들은 거죠. 근데 그날 저녁에 잠을 자는데, 큰 광명이, 빛이 나는 거기에 동자 둘이 나타나가지고 거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거사님의 정성 덕분에 제가 좋은데, 좋은 갈래로 가게 됐습니다.’ 그러더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제 어떻게 보면 알게 모르게 그런 이제 인연들을 다 가슴속에 품고 있단 말이죠. 그거를 이생해서 풀고 가야 돼요. 백중 기도는 해원이라고 하는 걸 해야 돼요. 원망하는 마음, 서운한 마음들을 풀어내는 것도 이 백중 기도에도 하나의 목적이라고, 방향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백중 기도는 그런 이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첫 번째로 제일 낮은 단계로 하는 게 뭐냐면, 그렇게 나와 인연을 맺었던 선망 부모라든지 아니면은 내가 인연을 맺지 못했던, 저버렸던 그런 영가들을 위패 모셔서 스님들의 법문을 듣게 해주고, 공양을 베풀고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게 이제 가장 낮은 단계의 백중의 공덕이에요. 첫 번째가.

 

       두 번째는 백중은 음식을 베푸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제 목련존자가 부처님 말씀을 들어가지고 시작된 게 이제 백중인데, 그때 “100가지 음식을 차려서 100명이 대중을 모셔라. 이렇게 이제 공덕을 지어라.”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잖아요. 다 아시는 얘기죠. 다 아는 눈빛들이에요. 지금 눈빛들이 초롱초롱합니다. 그 얘기는 뭐냐 하면, 이 백중에 두 번째 공덕인데, 백중은 나보다 못 먹고, 그다음에 힘들게 살고, 아프고 어렵게 살아온 사람들을 도와줘야 되는 거예요. 그 공력을 키워서 그 공력으로 나의 선망부모와 내가 인연을 저버렸던 인연들의 영가들에 대해서 좋은 갈래로 갈 수 있는 공양이 되는 겁니다. 내가 지금 그 공덕을 지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제 와가지고 이제 백중기도를 열심히 동참하는 분도 되지만, 49일 동안에는 이제 오늘 초재니까 벌써 7일이, 7일 지났잖아요.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내가 그러한 마음의 에너지를 내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팁을 하나 드리면, 오늘부터 봉투를 이렇게 하나 마련을 하세요. 봉투를. 봉투를 마련해가지고 거기다가 <백중 회향 공양금> 이렇게 쓰세요. 백중 회향 공양금, 회향 공양금. 그리고 하루에 1천 원씩을 딱 넣어요. 그러니까 이제 일주일 지났으니까, 이제 7천 원을 딱 넣고, 그리고 오늘 가서 천원 더 넣고, 내일 또 진관사 바라보고 절 한 번 세 번 하고 또 천원 넣고, 이렇게 해가지고 쭉 49재 준비를 하는 거예요. 이건 얘기 듣고, 이제 스님이 말씀을 했기 때문에 마음에 좀 깨름칙해가지고 백중 전날 은행 가가지고 신권 찾아가지고 49, 49장 넣고 ,이거 하지 말라는 얘기예요. 그렇게 하면 안 되고, 매일 천 원씩을 모으는 거예요. 그리고 그 천 원 넣으면서 이 공덕으로 배를 곯거나, 아니면 끼니를 굶거나, 아니면 아프거나, 이런 사람들이 이 공덕으로 그런 업을 다 면하고, 그 공력으로 나의 선망부모가 잘 좋은 갈래로 가고 그 공력으로 살아있는 나의 가족들이 건강하고 막힘없이 일이 잘 풀려서 부처님 잘 모시기를 발원합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하고 천 원씩 모으는 거예요. 그리고는 이제 백중날 그거를 가져와가지고 부처님 전에 이렇게 딱 올려놓고 삼배를 하고 보시함에다 딱 넣어도 되고 아니면은 그거를 가까운 지역의 복지관이나 어려운 사람 돌보는 곳에 후원을 하는 거예요. 후원을. 그렇게 회향을 해야 두 번째로 가장 의미가 있는 백중의 공덕이 되는 겁니다.

        결국은 첫 번째는 영가를 위한 거고, 두 번째로는 우리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을 위한 거예요. 이웃들을. 영가를 위한 게 첫 번째 공덕이고, 두 번째가 우리의 이웃들을 위한 것이 두 번째 공덕이다.

        이 세 번째 공덕이 가장 중요하고 ,또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 있는데, 백중이라는 우란분, 거꾸로 매달려 있는 그런 나쁜 갈래로 가는 가장 큰 에너지가 되는 게 뭐라고 그랬어요? 분노라고 그랬죠? 분노. 분노. 이 백중기도를 하는 가장 큰 세 번째 공덕은 마음의 분노를 잠재우는 겁니다. 분노에서 해방되는 거예요. 본인ㅡ 자기 자신을 분노에서 해탈시키는 거, 해방시키는 거예요. 이게 백중 기도의 가장 마지막에 꼭 해야 되는 일입니다. 여름에 특히 이제 더우니까 짜증 나잖아요. 짜증 난다고. 짜증 나는 게 분노예요. 분노. 절에서 이제 제가 많이 보는 광경 중에 하나가 기도를 법당에서 열심히 하고, 철야 기도를 한다든가 하면은 기도하고, 법당문 딱 나가면서 본인 신발이 어디로 갔나 사라졌어. 없어. 그러면은 신발이 어디 갔냐고 짜증을 확 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럼 법당에서 공덕을 이만큼 쌓아놓고, 발 한 짝 딱 내밀면서 그냥 다 까먹는 거예요. 기도를 또 열심히 봉행하고 공양간 가가지고 나는 왜 과일 안 주냐고 짜증 내는 분들이 있어요. 또 나는 왜 오늘 떡 안느냐고 짜증 내는 분들 있어요. 그거는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요. 내가 평소에 그만큼 많이 분노했다는 반증입니다. 반증. 백중을 하면서는 자꾸 내 마음속에 분노라고 하는 화냄이라고 하는 것을 자꾸 가라앉힌다는 생각을 갖고, 이 백중 기도에 임해야 됩니다. 그 세 번째는 뭐예요? 나를 위한 거죠. 나를 위한 거.

 

        첫 번째는 조상을 위한 거고, 두 번째는 이웃을 위한 거고, 세 번째는 나를 위한 기도다, 백중은. 이 세 가지를 다 우리가 성취해야지만이 되는 거예요, 백중은. 나를 위한 기도, 분노를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라고 그랬어요? 숨길을 잡아야 된다. 숨길을. 숨길을 잡으면 꽃길이 열린다. 그 다른 말로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이 말하고 똑같은 말이에요. 글자만 다를 뿐이지. 숨길을 잡으면 꽃길이 열린 것이 당신은 부처님을 확인하는 것처럼, “당신은 부처님입니다.”라고 한 보살님이 한 분 계시잖아요. 법화경에 나오는 상불경보살이라는 분이 계세요. 그분은 누구 만나기만 하면 부처님이라고 한 거예요. 그런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결국은 참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니까, 그러려면 숨길을 잘 잡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쉽게 범할 수 있는 이 짜증 내고 화내고 분노하는, 결국은 그 분노가 조절이 되면 좋은데, 자꾸 내다보면 거기에 장애가 생겨버려요. 그게 어떤 장애냐. 조절하는 장애가 생기는 거예요. 그거를 이제 뭐라고 불러요? 이 심리학 용어로 <분노 조절 장애>라고 그러잖아요. 특히 우리 한국 사회가 이게 분노가 조절되는 게 장애가 있다는 거예요. 한국 사회를 <분노 조절 장애 사회>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바쁘게 산다는 거죠. 바쁘게. 바쁘게 사는 건 좋은데, 너무 그렇게 하다 보니까 그 분노를 주체를 못하고, 남을 해하기도 하고. 그죠? 그런단 말이에요. 남을 직접 가서 해 한단 말이에요, 잘못하면. 분명 스스로가. 그런 것들이 요즘에 간혹가다 나오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그것이 다 숨길을 우리가 놓쳤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이 백중 기도를 통해서 지극정성으로 선망부모를 위한 기도를 하시고, 그리고 우리 이웃을 위해서 남은 49일 동안에 단돈 천 원이라도 우리가 따로 모아서, 그리고 <백중 회향 공양금> 쓰고, 뒤에다가 본인 발원문을 쭉 쓰세요. 그리고 보시함에 딱 넣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회향할 때 우리 이제 스님이, 주지 스님께서 그 공양금을 다 보고, 거기다가 또 하나는 이거는 진관사 운영하는 복지관에 기탁해 주세요.” 이렇게 써놓으면은 주지스님이 그거를 복지관에 다 기탁해 줄 거 아니에요. 서비스를 다 해드린다고, 주지스님께서. 발원문을 다 써도 되고.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복지관을, 이웃을 위한 백중기도가 돼야 되고, 세 번째로는 분노를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숨길을 잘 찾아서 나를 위한 백중기도가 되기를 오늘 축원하면서 오늘 법담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