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다라니기도] 11월 13일-15일 천독다라니기도 회향법문 2020-11-15

마하반야바라밀

따라해보세요.

마하반야바라밀

. 반갑습니다.

 

     오늘 다라니기도 열심히 하셔서인지 몰라도 얼굴이 다 밝고 맑아요. 진관사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늘 같은 느낌인 거 같아요. 정갈하다. 이 느낌은 올 때마다 느끼는 거 같습니다.

 

      올 초에 한 번 뵙고, 코로나가 창궐해서 1년이 다 되도록 끝나지 않고 있어요. 요즘에는 코로나 종식 발원을 많이 하지요, 절에서도. 종식이라는 말이 경전에서 많이 나오는 말 중 하나입니다. 끝내 마친다, 쉰다는 말이거든요. 종식이라는 말을 언제 쓰냐 하면 우리 마음이, 마음의 번뇌가 끝나서 쉬는 것, 그때 종식이라는 말을 많이 써요. 그래서 우리가 코로나를 조속하게 종식하려면 사실은 마음의 번뇌를 놓으셔야 합니다. 코로나가 창궐하게 된 원인을 죽 따라가 보면 거기에는 인간의 욕망이 있어요. 그 욕망이 촉발돼서 코로나가 온 거란 말이에요. 코로나가 와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좀 적어지니까 대번에 온 효과가 아이러니하게도 바다 수질이 좋아져요. 그리고 환경이 좋아진다고 해요. 바다 수질이 좋아지니까 없던, 사라졌던 물고기들이나 동물들도 많이 보이게 되고. 인간의 움직임이 주니까 자연이 회복된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서 그동안 환경이 많이 파괴되었고, 천년에 한 번씩 올라가는 온도가 100년 만에 올라갔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지금의 온도보다 1.4도가 올라가면 엄청난 위기가, -지금의 코로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더 큰 위기가 온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게 바로 기후 위기인데, 결국은 이 코로나를 종식하려면 여러 가지, 마스크도 열심히 해야 하고 하겠지만, 우리 마음을 쉬어야 해요. 불자들부터 자기 마음을 내려놓아서 마음의 번뇌를 쉬는데, 번뇌만 쉬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정생활에서 그 마음의 욕망을 내려놓으면서 조금 적게 사는 방법들은 실천해야 합니다. 다라니를 열심히 해서 원하는 게 있겠지만, 그 원하는 것은 기도한 만큼 이루어지기 때문에 걱정들 마시고, 그건 다 불보살님이 가피를 주시니까, 이제는 우리가 정말로 생명을 연장하는 실천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것은 우리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 내가 사랑하는 아들, , 손자, 손녀를 위해서 이제 마음의 번뇌를 쉬는데, 그 번뇌를 쉬는데 있어서 우리의 일상생활에 조금 적게 사는 방법, 그걸 스몰 라이프(small life)라고 하는데, 적게 사는 방법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게 보살도에요. 이 시대의 보살도가 뭐냐. 그건 바로 환경을 살리는 일입니다. 단언컨대 부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면 아마 첫 말씀으로 이 말씀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뭐냐 하면 환경을 지켜라.” 이건 굉장히 큰 위기가 와있다. 그래서 코로나를 빨리 종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환경을 되살릴 수 있는 실천 방법들을 좀 한가지라도 실천해야 합니다. 그건 조금 나중에 뒤에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환경 안에 존재하는데, 존재라는 거 자체를 바르게 이해해야 되는데, 우리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거냐.’라는 의미에서 말씀을 드리고, 또 존재를 잘 이해한 다음에 우리가 기도한 다라니의 공덕이 어떤 것인지 좀 알아보도록 할게요.

 

      다라니의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여러분도 이름이 다 있지요. 보살님은 법명이 어떻게 되세요. 진여행입니다. 본명도 있지요. 누구 엄마라고도 불리죠. 누구 딸이라고도 불리죠. 그런 것처럼,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거든요. 다라니도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이름을 잘 이해하면 다라니라는 게 이렇게 수승한 공덕이 있구나를 알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을 좀 소개하고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 마무리를 질까 합니다.

 

      우선 존재라는 것은 왜 이해해야 되느냐 하면 이 존재를 바르게 이해하는 게 불교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과 맞닿아 있기 떄문입니다. 우리가 절에 10, 20, 30, 40, 제가 조금 있으면 출가한 지 30년이 되는데, 저보다 절랍이 오래된 분들이 있잖아요. 절랍은 절에 다닌 햇수. 우리는 법랍이라고 하는데, 절랍이 40년 돼도 자기의 신앙에 변화가 없어요. 늘 바라는 게 같기 때문에 늘 고민거리가 같아요. 걱정거리가 같아요. 존재라는 것은 바르게 이해하면 근심이 떨어져 버려요. 우리가 근심을 털어버렸잖아요. 걱정거리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부처님은 존재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를 바르게 이해함을 통해서 근심을 여윈 분이에요. 근심에서 승리하신 분입니다. 부처님이 10가지 이름이 있지만, 10가지 이름 중 우리가 잘 쓰진 않지만, 많이 나오는 이름 중의 하나가 <승리자>란 이름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부처님을 부를 때 <승리자여>라고 부릅니다. 그 승리자란 번뇌에서 이긴 자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일상을 들여다보면 번뇌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번뇌에 질 때가 많아요. 마음이 괴로울 때 마음의 괴로움을 이겨내기보다는 굴복되거나 내지는 잊는다는 마음으로, 좀 더 있게 말하면 마음을 비운다는 표현으로 툭 하고 넘겨놓지요. 넘겨놓는 건 쌓아놓는 거예요. 그러면 그 괴로움의 실체는 같은 환경이나 같은 대상이 나타나거나 같은 인연을 만나면 또 올라옵니다. 더 강하게, 그전보다 더 괴로워요. 그래서 이 존재라는 것을 바르게 이해해서 번뇌를 맞닥트리면 이겨야 됩니다.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다라니를 열심히 독송하는 것도 원하는 마음, 바라는 것을 이루는 것도 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승리하는 마음을 얻는 거예요. 여러분 번뇌에 승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번뇌에 지고 말아요. 내지는 넘겨놓고 쌓아놓기 바쁘죠. 그리고 잊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잊는 게 아니죠. 부처님처럼 번뇌에 승리자로서 살아가려면 존재를 바르게 이해해야 하는데, 존재라는 말은 이게 번역이 잘못돼서 그렇게 쓰고 있지만, 원래는 <있다>라는 뜻이잖아요. <있다>. 존재는 한자로 있을 재, . 이것을 <있다>라고 해요. 뭐뭐가 있다. 근데 옛날 한글에 보면 <있다><>이 아니라 <> <읻다>에요. 그 어원을 보니 나무 목()이었어요. 있다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걸 말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걸 다 있다라고 하잖아요. 여기에 컵이 있고, 부처님이 앉아계시고, 다 있는 거죠.

 

      그런데 그 있는 거의 실체, 원리가 뭐냐 하면 변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변한다는 거 자체가 어디서 변하냐 하면 시간 속에서, 공간 속에서 변해가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은 존재의 그런 이치가 있는데, 공간과 시간속에서 변하는 거에 대해 자꾸 거부해요. 그러다 보니 괴롭죠. ‘, 변하는 거야.’ 변하는 건데 그 변화 속에서 변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다음에 존재를 안고 있죠. 진관사 도량에 가을이 내려앉아있죠. 지금은 초겨울에 들어가려하죠. 그런데 이 가을에 봄이 들어있고, 여름이 들어있고, 겨울이 들어있는 거죠. 가을 안에서 봄도 보고, 여름도 보고, 겨울도 볼 줄 아는 게 수행자의 관점이에요, 시간에 대한. 우리는 지금 가을에 저 낙엽이 떨어지는데, 떨어지면 영양분이 되어 썩잖아요. 그런데 그 장면을 그대로. 예를 들면 우리의 마음 상태가 그렇다는 거예요. 우리 마음은 늘 그렇게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변화해가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해요. ‘나는 변하는 존재다라는 것을 인지해야 해요. 내가 변할 때 상대도 변하죠. 남편도 변하고 자식도 변하고, 변한다는 것만 제대로 한 번만 기억해도 마음이 굉장히 편해집니다. 우리가 괴롭다고 할 때, 마음이 번뇌가 가득하다고 할 때 가만히 들여다보면, 뭔가 잡혀있어요. 아니면 뭔가 끄달려 있어요. 재물에, 명예에, 내지는 관계 속에서 끄달립니다. 그걸 다 내려놓으면 굉장히 편해지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마음들을 자꾸 안보고 형상적인 것에 자꾸 매여서 거기에 자기 행복의 관점을 두고 찾다보니까 허전해요. 우리나라사람들은 행복지수가 낮다고 해요. 제가 적게나마 외국을 다녀보면,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언감생심이지만, 예전에 좀 다녀보면, 우리나라만큼 잘 사는 데도 없어요. 근데 행복지수가 낮다고 해요. 그 원인이 뭘까? 미디어를 통해 기대수치는 굉장히 높아져 있는데 자기생활은 거기에 비해서 떨어져 있는거죠. 그리고 계속 외관만 바라보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거에 마음이 딱 걸려서, 욕망에 마음이 걸려서 괴롭게 사는 거예요. 이제는 그 마음을 내려놓아야 해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 존재라는 실체를 알고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거예요. 외국 여행 안 가면 우울증 걸려서 괴로울 줄 알았는데 안 가도 살아지잖아요. 집에만 있으면 뭔가 큰 일이 날 거 같았는데, 막상 있어보니까 지낼만하죠.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서 이 마음 씀씀이를 이제 배워야 됩니다. 저 허공에 새가 암만 날개짓을 해도 허공을 벗어날 수 없듯이, 저 물속의 물고기가 암만 헤엄을 쳐도 물을 벗어날 수 없듯이, 중생은 마음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마음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고 공부해야된다. 고 말씀을 드립니다.

 

      요즘 드라마 중에 핫한 드라마가 있어요. <애로부부>라고, 왜 스님이 애로부부를 이야기하지? 당황스런 기색이 역력한데, 이 애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에로가 아니에요. 애로사항할 때 애로에요. 애자가 막힐 애자(隘路)에요. 길이 막혔다는 뜻입니다. 그걸 보면, 부부사이에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해결되는 걸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 좀 비효율적인 것이 많이 나와서 내용이 좀 그래. 그런데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했는가 하면 이 애로 때문입니다. 애로라는 건 길이 막힌다는 건데, 부부지간에 길이 막히는 것은 가장 첫 번째가 뭘까요? 맘이 멀어지는 겁니다. 마음이 멀어지면 길이 막히는 거예요. 한자로 길 로자와 길 도자가 있는데, 길 로자는 보통 현상적인 것에 많이 써요. 길 도자는 마음을 닦는다고 할 때 써요. 그런데 현상적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막힌 거잖아요. 부부만이 아니라 불자들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을 들여다 보지 않고 다라니기도하면서도, 물론 각자가 바라는 게 있겠죠. 그런데 저는 현상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구하는 것은 기도를 간절히 하면 이루어진다니까요. 우리는 뭘 해야 되느냐, 이 자리에서. 내 마음을 관하는 것을 연습해야 해요. 적어도 진관사 108, 천독 42수 기도할 동안만이라도 내 마음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되요. 밖에 나가면 안 되잖아요, 하고 싶어도. 이 순간에 내 마음의 막힌 길을 뚫으려면 내 마음을 자꾸 관조하는 마음을 갖고 다라니를 외워야 돼요. 그러면 마음이 뚫려요. 다라니 기도의 가장 큰 공덕은 막힌 마음의 길을 뚫는, 지금 내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바람이 장애가 생기고 하는 것은 막힌 거예요. 애로불자가 되면 안 돼요. 10, 20, 30년 다녀도 마음을 깨트리지 않으면 애로불자예요. 길이 막혀있는 불자라는 거지요. 그럼 뭐가 되어야 하나? 에코불자가 되어야 해요. 자동차에 에코기능이 있어요. 파란 불이 들어오는 곳을 누르면 기름이 덜 든대요. 주행이 안정적으로 된대요. 그런 것처럼 자기 마음을 관해서 들여다 본 불자가 되어야, 에코불자가 되어야 해요. 에코불자가 되자. 그러려면 마음을 관해야 한다.

  

     경전에 나와 있는 말씀을 적어왔는데, 잘 들어보세요. <불설 천수천안관세음보살 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이라는 경전이 있어요. 거기에 나와 있는 경전구절인데 한번 읽어볼테니 들어보세요.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다라니를 수지하면 그 사람이 강이나 바다에서 목욕을 하여, 이 사람이 목욕한 물이 물속에 있는 중생들 몸에 닿게 되면 저들 중생이 일체 악업과 중죄가 모두 소멸되고 곧 연화국토에 태어나서 다시는 태()의 몸이나 내지 습(), ()의 몸을 받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이 다라니를 수지 독송하는 자이랴.

 

또 이 다라니를 지송하는 사람이 길을 갈 때 큰 바람이 불어와 이 사람의 몸이나 옷에 스친 바람이 다른 중생들 몸에 스쳐 지나가면 이 중생은 일체 무거운 죄와 악한 업이 모두 소멸하고 다시는 삼악도에 떨어지는 과보를 받지 아니하며 항상 부처님 곁에 나게 되나니 마땅히 알아라.

 

     그러니까 다라니 독송기도를 하고 나가서 바람이 딱 불었어. 그 바람이 다라니기도한 사람의 옷깃을 스치고 그 바람이 다른 사람의 옷깃만 스쳐도 그 바람 맞은 사람은 일체 악업이 소멸된다. 여러분 오늘 가시면서 운전하고 오셨다면 창문 좀 열고 가세요. 그래서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여러분의 옷을 스치고 나가면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이 다 모든 악업이 소멸되는 거에요. 코로나도 다 멸균되어버리는. 다라니라는 게 그만큼 수승한 공덕입니다. 이것은 1, 2년에 이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천 년 동안 이루어진 거예요. 여러분의 선배들, 여러분의 조상들이 그 옛날에도 다라니를 외었어요. 그 다라니 공력은 이 안에 가득한 겁니다. 이 공간 안에. 이 홀 안에. 그런데 이 다라니의 공덕을 갖다 쓰는 것은 내가, 다라니를 외우는 사람이 가져다 쓸 수 있어요. 서울에서 BBS불교방송을 들으려면 몇 번을 맞춰야되요? 101.9를 맞춰야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 우주 안에 충만한 가득한 다라니 공덕은 여러분이 그 채널을 맞춰야 받아쓰는 거예요. 그게 다라니에요. 다라니는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지만 그 공덕을 가져다 쓸 수 있어요.

 

      다라니의 이름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러분이 잘 아는 것은 <신묘장구대다라니>. 그 다음에 <광대원만 다라니(廣大圓滿)>라고 해요. 광대원만이라는 것이 크고 원만하여 소원을 성취해주는 다라니. 그리고 <무애다라니(無礙大悲)>, 무애란 장애가 없다는 거예요. 삶에는 어떤 것이 잘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애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뭔가 하려고 하는데 딱딱 막히고, 훼방하는 자가 생기고 그렇게 되면 힘들어요. 다라니를 외우면 그런 게 다 사라진다고 해요. <무애다라니>. 그 다음에는 <구고다라니(救苦陀羅尼)>. 괴로움에서 건지는 다라니. 괴로움이 싹 사라진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연수다라니 (延數陀羅尼)>, 연수는 수명이 느는 것인데, 이것은 육체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법의 수명, 법의 생명이 늘어나는 거예요. 우리는 부처님을 만나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이 하나 있어요. 그게 법의 생명입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육신의 생명이라면 부처님 만나면서 새롭게 움트고 싹튼 생명이 하나 있는데 그게 법의 생명이고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해요. 또는 법장(法藏)이라고 해요. 법의 창고. 그래서 우리가 천수경할 때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하잖아요. 법장이 열려라. 법의 창고가 열려라. 연수란 다라니를 열심히 외우는 사람은 마음의 법의 생명이 무럭무럭 자라나요. 그래서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그 법의 생명이 나를 지켜주는 거예요. 그게 연수다라니, 연수의 공덕입니다. 그다음에는 <멸악취다라니(滅惡趣陀羅尼)>, 악취라는 것은 나쁜 갈래인데, 육도, 지옥, 아귀, 축생에 빠지는 걸 멸해준다. 그 다음에는 <파업장다라니(破業障陀羅尼)>, 업장이란 여래장의 반대말인데, 업장이란 신구의로 지은 업장들인데, 그런 악업들이 다 사라진다. 그리고 <만원다라니(滿願陀羅尼)>라고 합니다. 만원은 가득하다란 말이죠. 원을 가득채워준다. 그리고는 <수심자재다라니 (隨心自在陀羅尼)>라고 해요. 몸을 닦는데 있어서 장애가 없이, 처음 다라니기도 할 때 경험해 보셨겠지만, 다라니를 외우려고 하면 집에 초인종이 울리고, 다라니를 외우려고 앉으면 전화가 오고, 밥 먹자고 하고, 문자가 오고 하죠. 그런데 기도가 깊어지면 기도하려고 마음 먹은 순간에 탁 정리가 되요. 이런 경험들을 해봐야하는데. 내가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자꾸 장애가 생겨요. 그럼 더 열심히 해야해요. 어떤 분은 그런 분이 있어요. 어제 밤에 실컷 잤는데, 다라니만 읽으려고 하면 잠이 막 쏟아진다는 분이 있어요. 그런 경험 있으세요? 그런 것도 장애에요. 다라니기도 열심히 하면 이길 힘이 생겨요. 깊어지는 동시에 마음이 맑아지는 상태가 돼요. 마지막으로는 <속초상지자재다라니 (速超上地自在陀羅尼)>인데, 이건 좀 어려운데 단계가 올라가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자기의 수행지위가 올라가는 게 느껴져요. 이것은 스님들이 많이 성취하는, 수행을 열심히 하는 스님들이 수행의 단계가 올라가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다라니라는 것이 여러 가지 공덕이 있다. 우리가 지금 해냈다. 우리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줘야겠어요. 참 장하십니다. 다라니를 늘 지송해서 진관사 도량내에서, 마음의 정원이라고 그러죠? 마음의 정원에서 늘 승리하는 승리자, 산스크리트어로는 진아, 늘 마음의 승리자가 돼서, 성취하는 자가 돼서 늘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리면서 오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X2uruJQ_6Q&t=67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