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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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10월 9일 국행수륙재 회향 유명계 수계 및 법문
성우스님 2022-10-09
오늘은 영가 분들에게 수계를 하는 날입니다. 영가 분에게 수계를 한다고 하면 이해가 잘 안 되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본디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닙니다. 둘일 수가 없구요. 그렇다고 그러면 우리는 육신이 있는 형태로 살아갑니다만, 영가는 육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영가 분들에게 수계를 한다.’ 아마 처음 겪으신 분들은 ‘세상에 그런 일도 있나?’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저는 분명히 영가는 존재하고, 여러분들의 제일 소중한 인연, 업이 지극한 인연, 서로 공덕이 무거운 인연은 틀림없이 이 자리에 오시게 되어있습니다. 진관사 국행수륙무차평등대재가 그냥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눈을 조금만 뜨고 보신다면 틀림없이 영가가 와 계심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영가 분에게 계를 설한다.’ 그 자체는 영가 분에게 공덕을 지어서 영가에게 회향하는 일인 것입니다. 영가 스스로는 혼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공덕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소중한 인연이 공덕을 지어서 영가에게 회향한다고 한다면, 영가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환희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 받아들임이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음덕(蔭德)이라고 표현합니다. 음덕이라는 말은 거기서 나오는 말인데, 그래서 분명히 영가는 오는 진관사 국행수륙무차평등대재에서 유명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연이 없으면, 인연이 무거우면, 그 영가의 업이 무거우면 이 도량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거예요. 저 도량 밖에서 어물쩡거리다가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살아 생전에 선근을 조금 심어놓은 것이 있다 그러면 틀림없이 이 자리에 와서 이 법사 이야기를 잘 들을 겁니다.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들을 겁니다. 횐희롭게 들을 겁니다. 여러 영가분들이 자세히 들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범망경에 말씀하시되 만일 부처님 계를 받으면 국왕과 왕자와 백관, 재상과 비구와 비구니, 십팔범천과 육욕천자와 서민과 황문과 음남음녀와 노비와 팔부귀신과 금강신과 축생과 내지 변화한 사람으로서 다만 법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이는 계를 얻을 수 있으며 모두 이름하여 제일 청정자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부처님의 자비평등으로 널리 삼계 중생을 제도하여 계법을 널리 펴서 육도 중생을 두루 거두어 개도하여 깨달음을 얻지 아니함이 없으며, 반드시 깊은 신심을 갖추어 불법에 거두어 제도하는 것이니, 만일 깊은 신심이 아니면 또한 구제하기 어려우니라. 이 영가 역시 선근이 있어야 되고, 맑은 마음이 있어야 되고, 또 깊은 신심이 있어야 합니다. 신심이란 일체 중생의 본래 갖춘 심성의 근본이며 진상이 고요하며 원융하여 두루 불생불멸을 얻되 범부와 성인이 없으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조금 더 하거나 덜하지도 않느니라. 이제 육도가 쉼 없이 삼계에 오가는 것은 모두 한 생각 망령되게 움직여 참된 밝음을 덮은 탓이니라. 청정한 몸 가운데 업 따라 나타나니, 사랑과 탐욕과 훔치고 버리는 일이 생겨나니 이른바 눈 안에 티끌이 있어서 허공에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으니, 이런 까닭으로 천생만겁에 항상 생사를 오고 가는 것을 어찌 쉬리요. 진실로 어두움을 깨달아 잘 비추면 모든 인연이 일어남이 본래 자성이 없는 것이며, 이른바 방심이니, 만약 광심을 쉬면 쉬는 것이 곧 보리이니라. 광심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일어났다고 없어지고 일어나는 그런 망념, 망상을 말하는 겁니다. 그 광심을 쉬면 곧 보리입니다. 보리란 말은 지혜란 말입니다. 여러 영가분들이여. 본래 갖춘 진실로 밝고 둥글고 맑은 마음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 이 마음이 곧 금강광명보계의 근본이며, 이 근본이 곧 모든 보살의 본원이며 불성 종자이니, 일체 중심의 모두 있는 불성이며, 일체 의식색신이며, 이 정이며, 이 마음이니, 모두 불성의 가운데 들어가 있느니라. 지금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여러 영가분들이 이미 본래 갖춘 이와 같은 불성 종자가 이와 같은 까닭으로 내가 이제 그대의 이와 같은 불성 묘계를 주노니 마땅히 알라. 이 계는 받았어도 받은 것이 없으며, 자성을 일으켜 닦는 까닭으로 받은 것이 없어도 받은 것이며, 오로지 닦는 것은 곧 자성인 까닭으로 이미 법성이 더러움에 물듦이 없음을 알아 계 바라밀을 수순 수행해야 하는 까닭으로 대신하여 계를 받는 것이며, 영가를 대신하여 법명을 말하노라. 내가 이제 향을 사뤄 삼보께 수계를 증명하여 수계를 우러러 청할 것이니라. (대중들은 모두 일어선다.) 향 사루고 꽃을 올려 여러 영가는 일심으로 청합니다.사바교주 본사 석가모니불 과거각화정 자재왕불서방접인 아미타불 당래하생 미륵존불허공계가 다하도록 법계에 두루 하신 부처님들원하건대 본래 서원 어긋나지 않도록 자비광명 두루두루 비추시어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 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 향 사루고 꽃을 올려 여러 영가는 일심으로 청합니다.대소이승 비니율장 오편삼취 해탈목차 십이분경 권실교전탐욕여읜 청정진리 깊고 깊은 가르침에일심으로 귀명정례하옵니다.일심으로 귀명정례하옵니다.일심으로 귀명정례하옵니다. 향 사루고 꽃을 올려 여러 영가는 일심으로 청합니다.유명교주 지장보살 관음보살 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청정해중 보살님과 율장회상 우바리존자 전남산종 여러 율사중흥율조 혜운형공 대화상 유명정계 화상님은원하건대, 본래 서원 어긋나지 않도록 자비광명 두루두루 비추시어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 향 사루고 꽃을 올려 여러 영가는 일심으로 청합니다.광명회상 여러 천신 대범천왕 제석천왕 천룡팔부 신장님들호계하는 선신들과 금강역사 염라대왕 여러 지옥 대왕들과가람토지 보호하는 모든 여러 신장들은 원하건대본래 서원 어긋나지 않도록 이 계단을 보호하여 주옵소서.이 계단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이 계단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대중 스님들은 모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러러 삼보께 수계를 증명해 달라 청하여 삼보의 자비광명이 영가에게 비추어졌느니라. 영가는 마땅히 지옥 고통이 깊고 두려우니, 위없이 보리심을 발하여 삼보 앞에 간절하게 참회를 하는 참회의 말을 해야 하느니라. 영가가 스스로 진솔해야 할 것이나 영가가 이미 할 수 없으니, 내가 이제 영가의 수계를 대신하는 일을 가르쳐 합당하게 영가가 하는 듯이 하게 할 것이니라. 여러 영가는 비롯 없는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몸으로 지은 죄가 한량 없이 많았으며, 여러 영가는 비롯 없는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입으로 지은 죄가 한량없이 많았으며, 여러 영가는 비롯 없는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뜻으로 지은 죄가 한량없이 많았으니, 그러므로 오늘에야 간절참회 바라오니, 원하건대 삼보님은 자비로 거두소서. 청정광명 놓으시어 유명세계 사루시고, 여러 고통 지옥들이 극락으로 변화하며, 화탕지옥 노탕지역 청량제로 변화하고, 지은 죄업 소멸되어 해탈 얻게 하옵소서. 맹세코 두 번 세 번 악을 짓지 아니하고 착한 일들 닦고 닦아 중생들을 제도하여 윤회 고를 함께 벗어 모두 성불하여지이다. 나무보현왕보살마하살나무보현왕보살마하살나무보현왕보살마하살 여러 영가 분들이여. 이제 삼보 앞에 비롯함이 없는 죄업을 참회하였습니다. 신심은 깨끗하여 더욱 늘어나서 고통의 과보는 멀리 여읠 것입니다. 먼저 마땅히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란 모든 중생이 숨기거나 나타나며 가지고 있는 체성이니, 체성은 하나요, 다르지 아니하며, 하나의 체 가운데 갖추고 있는 불법승 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이라는 것은 깨달음이라는 뜻이니, 이르되 성체를 깨달아 모든 법을 비추며, 없는 것도 아니오, 있는 것도 아니니, 이것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불 보인 것입니다. 법은 가져야 할 규범이란 뜻이니, 이르되 법성이 적멸하여 항사성덕을 모두 갖추어야 이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법보라는 것입니다. 승이라는 것은 화합이라는 뜻이니 이르되 항사묘덕의 승상이 둘이 아니고, 이사가 화합하면 이것이 본래 갖추고 있는 승도인 것입니다. 계라는 것은 해탈이라는 뜻으로, 금강광명보계이니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본원이요, 모든 중생의 불성종자라. 이것이 본래 갖추고 있는 성계라는 것입니다. 여러 영가 분들은 이제부터 믿음을 얻었으니 자기 마음속의 불,법,승,계를 미래의 몸이 다하도록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기에 불괴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체에 진상을 갖추었으나, 닦아 증득하지 아니하면 없는 것이니, 이른바 이 마음으로 부처가 되고, 이 마음이 부처인 것입니다. 마땅히 주지삼보에 귀의하여 청정묘계를 받아 의지하여 수행해야 바야흐로 위 없는 불과를 원만성취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영가 분들이여, 이제 불보살 앞에서 대신 계를 받는 이가 낱낱이 대신 받을 것입니다. (대중 승들은 모두 장계 합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여러 영가는 이제부터 미래의 몸이 다 하도록 부처님께 귀의하겠습니다. 저 여러 영가는 이제부터 미래의 몸이 다 하도록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겠습니다. 저 여러 영가는 이제부터 미래의 몸이 다 하도록스님네께 귀의하겠습니다. 저 여러 영가는 이제부터 미래의 몸이 다 하도록부처님의 계율에 귀의하겠습니다.(대중들은 모두 장계 합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가분들이여 자세히 들으십시오. 이제 영가를 위하여 대승보살의 열 가지 다함이 없는 계를 대신 계를 받는 사람에게 낱낱이 대신 받게 하겠습니다. 이제 계목을 설 할텐데 여러분들이 인연있는 영가의 이름을 생각하시고 대신 대답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첫째. 짐짓 살생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둘째. 짐짓 훔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셋째. 짐짓 사음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넷째. 짐짓 거짓말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다섯째. 짐짓 술을 마시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여섯째. 짐짓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일곱째. 짐짓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 -잘 지키겠습니다.여덟째. 짐짓 간탐부리지 말고 욕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 -잘 지키겠습니다.아홉째. 짐짓 성을 내어 참회를 아니 받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 -잘 지키겠습니다.열째. 짐짓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 여러 영가분들이여. 영가는 이제 보살묘선계를 이미 받았으니 삼도의 업이 쉬고 육도의 정이 사라져 미도를 초월하여 바로 깨달음에 들어가 뜨거운 번뇌의 고통을 여의고 청량제를 얻으리라. 또 모름지기 신심과 뜻이 견고하여 행운이 물러나지 아니하고 보리가 원만해 지리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되, 중생이 불계를 받으면 곧 제불의 지위에 들고 지위가 같은 큰 깨달음을 이룬다 하셨느니라. (영가를 대신하여 세 번 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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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행수륙재] 10월 2일 국행수륙재 6재 법문
인묵스님 2022-10-02
반갑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진관사 수륙 보존회, 불기 2566년 금년 수륙대재를 봉행하는데, 오늘이 6재입니까? 정성 들여서 이렇게 모시는 모습이 느껴져서 굉장히 좋습니다. 올해가 9년째라고 그러는데, 내년이면 10주년인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올해는 또 특별하게 이렇게 진관사만이 우리 비구니 스님 중심으로 수륙재를 설행합니다. 대장이 어장입니다. 저도 어장인데요. 우리 동희 스님이 저한테는 또 선배시고, 또 소리를 많이 배우셔서 훌륭한 어장감인데, 그동안 못해 드려서 죄송했어요. 회주 계호스님하고 주지 법해스님이 나만 보면 그냥 졸라요. 근데 내가 해주는 건 아니에요. “좀 우리 동희 스님을 어장으로 모셨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하는데 ‘아, 이거 참 도와드려야 되겠다.’ 정말이에요. 그래서 1, 2년이 된 게 아니에요. 만날 때마다 그렇게 해야 된다고. 그래서 마침 총무원장 스님께서 또 협조를 해주시고 여러 의례위원 스님들이 또 동참해 주시고 협력을 해 주셔서 동희스님을 어장으로 추대하면서, 금년에 첫 수륙대재를 봉행하고, 내년에 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의식을 하는 사람으로서도 굉장히 기쁘고, 또 경하해 마지않습니다. 오늘 이렇게 진관사에 동참을 하게 됐는데요. 저는 이렇게 법문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염불을 하는 게 쉬운데 이렇게 올라왔습니다. 이제 몇 가지 말씀을 드리는데요. 수륙재에 관계되는 얘기를 좀 하다 내려갈까 합니다.수륙재는 다 아시다시피, 불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재의식 중에, -여러 가지 재가 많습니다.- 그중에 영가를 위한 천도재 중에서는 규모가 굉장히 큰 재에 속합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일개 사찰이나 어느 단체나 이런 데서 이렇게 설행할 그런 재가 아니고, 국가에서 주관했습니다. 국가에서 주관을 해서, 물량과 모든 준비하는 장엄, 또 향, 다 또 제물 이런 것이 단이 많고. 여러분도 해보셨죠? 거의 1년을 준비해야 됩니다. 그래야 원만하게 할 수 있는데, 규모가 가장 큰 천도재입니다. 삼화사 수륙재는 삼화사가 수륙재를 지낼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날 우리가 동시에 무형문화재로 가입을 했는데요, 등록이 됐는데요. 삼화사 수륙재는 조선 건국을 하면서, 여러분 역사 잘 아시죠, 여말선초라고 해서 이성계, 옛날 그 <용의 눈물>로 아주 유명했던, 태조 이성계하고 인연이 많은 그런 수륙재입니다. 고려가 많이 부패함으로 인해서 조선을 다시 건국하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합니다. 잘 아시죠. 그 태조 이성계 아들이 누구예요. 방원. 태종. 아버지가 조선 건국하는 과정에서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불필요하게 많은 생명들을 희생하고 또 희생을 감수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안 해도 되는데 걸리적거리니까. -이제 저도 이제 속가 연으로는 이가입니다. 이가. 살기는 전주에서 태어나고 살았는데 전주 이가가 아니고 목은 이색의 후손입니다. 한산 이가입니다. 그래서 양반은 양반인데 좀 원한 관계가 있어요.- 태종 그때 이제 방원이가 아버지를 도와준다고 상당히 많은 지식인들을, 당대 선비들을 많이 희생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목은의 희생이고.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 삼은도 죽이고, 많이 죽였어요. 또 제가 회암사에 있었는데요. 나옹 스님이 정치적인 이유로 왕명에 의해서 밀양으로 내려가실 때, ‘이제 내려가면 내가 여기 다시 회암사에 못 오는구나.’ 그래가지고 가시다가 다시 와서 안에 들러서 다시 문을 돌아서 나가셨다고 하는 역사적 기록도 있어요. 그래서 저 여주 이포 나루터, 요즘 신륵사에서 돌아가셨는데 이제 석연치 않은 죽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건국하는 과정에서 안 나가려고 해서 또 충돌이 일어나고, 죽게 되고 그래서 어쨌든 그런 큰 거사가 일어남으로 인해서 많은 희생이 따랐다. 그래서 왕의 입장에서도, 왕실의 입장에서도 이거는 참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다. 얼마 전에 <정도전>인가 뭐 했었잖아요. 드라마 안 보시나요? 거기서도 보면은 아버지 이성계가 태종을 은근히 속으로는 좋아하면서, 되게 또 미워하잖아요. “너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냐”고 막 뭐라고 그러잖아요. 그렇게 해서 부담을 많이 가졌는데, 이거를 어떻게든지 위로를 하고 해소를 해야 되는데, 이제 그것이 뭐냐. 부처님의 가피입니다. 그리고 불교 재 의식을 통해서 그때 많이 희생됐던, 우리 편이든 남의 편이든, 아군이든 적군이든 많이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수륙대재를 아주 성대하게 베풀어서 그런 모든 희생된 영령과 그런 생명들을 천도해줘라. 이렇게 왕이 명을 내려서 시작한 게 수륙대재가 되겠습니다. 그럴 때는 앞에 붙는 게 두 자가 있어요. 뭐냐 국행수륙대재가 되겠습니다. 국가에서 주관해서 행하는 수륙재. 그래서 모든 이 행사에 대한 준비와 물품은 국가에서 다 대는 겁니다. 그리고 스님들도 이렇게 잘하는 스님만 선발하는 게 아니라, 무차대법회니까 전국에 있는 난다 긴다, 잘한다, 나도 좀 한소리 한다하는 이 스님들은 다 모이는 거에요. 그리고 법문 잘하는 스님도 다 모이는 거에요. 그래서 보통은 길게는 한 보름 정도 하지만, 한 일주일 정도 하고, 주야로 일주일을 합니다. 그러면 큰 스님들이 계속 법화경을 중심으로 한 법화회상 법문도 하고, 또 전국에서 모였으니까 큰 어장 스님들이 모여서 저 전라도는 관욕 시련을 잘하니까 그걸 하고, 서울 경기는 뭐를 잘하니까 그걸 시키고, 경상도는 뭘 시키고, 이렇게 해서 다 역할을 줘 가지고, 그게 참 경쟁도 되고 잘해야 되잖아요. 또 어장 스님들은 의식을 안 해요. 저렇게 큰 높은 자리에 모셔서 누가 잘하나 못하나 이게 심사예요. 심사. 그래서 잘하면 칭찬도 하고, 보시도 좀 많이 주고, 승복감도 주고, 장삼감도 주고 그러는데, 잘 못하면 찍혀. 한 번 찍히면 어떻게 되느냐. 그건 이제 두고두고 회자 되는 거에요. 저 사람들 시켰더니 조금 빼먹고 형편 없고 그냥 대충 한다. 그 구역 의식하는 스님들의 명예가 걸리는 거죠. 한 번 찍히면 회복하기가 어려워요. 그렇게 해서 국가에서 주관하는 큰 재를 대략 보면, 한 일주일 정도 한다고 봅니다. 낮에는 영산재도 하고, 밤에는 수륙대재를 하고. 아마 우리 진관사도 그런 옛날 내려오는 전통 의례의 틀을 따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명에 의해서 삼화사가 그렇게 지내게 됐었는데 그동안 맥이 끊겼어요. 조선을 통해서 많이 끊겼던 것을 근대에 와서 이렇게 잘 또 우리가 노력을 해가지고 만들어낸 거죠. 옛날 거를 진관사도 만들어내고, 삼화사도 만들어내고. 왕실하고 굉장히 밀접한 우리 진관사이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어디 멀리 못 가요. 그리고 원찰이에요. 왕실 원찰. 궁중 원찰. 그래서 이제 가까우니까 물량을 보내서, 어떤 큰 의미의 수륙재도 하지만, 또 왕실에 보면 누가 이제 병 나서 죽고, 왕이 죽고, 왕의 권속이 죽고, 그러면은 가까우니까 원찰을 찾습니다. 그냥 49재를 지내도 되는데 그냥 49재는 좀 뭐랄까, 규모가 좀 낮아요. 대중소로 하면 소자야 소자. 근데 수륙재는 천도재 중에서도 대자에 속해요. 아주 최고로 하는 거니까. 아마 왕실에서도 이왕이면 잘 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보통은 수륙재를 해서 천도재를 합니다. 왜 수륙재로 천도재를 하느냐. 특정 영가가 있겠죠. 누가 돌아가셨으니까. 그런데 특정 영가만 하는 것은 의미가 좁아요. 특정 영가만 하기 때문에. 그런데 특정 영가를 천도하는데 거기다가 이제 뭘 더 보태는 거야. 다른 불쌍한 여러 고혼들을 다 불러서, 청해서, 그 사람들도 천도시켜주면 그 고마움이 어디로 가겠어요. 그 고마움이 그 영가한테로 가고, 또 그 수륙재를 설판한 재자들한테 가기 때문에 그냥 49재가 아니고, 진관사 49재는 반드시 수륙 천도재를 했다. 그런 것이 맞나요? 수륙재 중에서 최고, 최고, 최고로 이제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하다 보니까 이제 이게 전통이 돼버립니다. 수륙을 통해서 천도재를 하면 수륙 천도재가 되고, 또 이제 영산재를 통해서 천도재를 할 수가 있어요. 영산재 안에는 천도라는 의미도 내포돼 있지만, 영산은 부처님의 영산회상 법화경을 설한 그 법화회상을 그대로 재 현장에다가 이렇게 옮겨가지고, 거기서 이 부처님께 찬탄하고 공양 올리고 축원하고 이렇게 해서 누구를, 거기가 이제 무슨 영가가 있다면 그 영가를 위해서 부처님께 가장 성대하게 그렇게 공양을 올리고, 찬탄함으로 인해서, 천도재를 지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영산재를 통해서도 천도재를 지낼 수 있는데, 그거는 이미 지정이 됐기 때문에, 우리가 마침 머리를 잘 써가지고, 수륙 천도재로 해서 이렇게 오늘날 전승이 잘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면 뭐냐. 이게 왜 그러면 수륙을 이렇게 잘 해야 되고 이게 꼭 해야만 되는가. 천도재를 꼭 해야만 되는가. 이 천도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제가 이제 의식을 공부하다 보니까 어떤 주지스님들은 이제 영가를 많이 끄집어내가지고, 영가 49일 첫 기도를 매번 49재에 해서, 1천일, 3천일 이렇게 하는 절도 있는데, 이렇게 무주 고혼이 많은 것은 천도 되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그게 살아 생전에 무주고혼이 많으니까 수륙재를 할 거 아니에요. 업을 많이 져서 집착이 많으면 자기 갈 길을 못 놔요. 못 놓으면 못 가는 거야, 그렇죠. 그래서 안 보여서 그렇지, 보이면 참 무주고혼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란분절을 통해서, 또 그런 재를 통해서 많이 하는데, 어쨌든 수륙을 통해서 무주 고혼들을 이렇게 천도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천도를 함과 동시에 수륙재를 했기 때문에, 그 수륙재 의식 안에 그 내용을 살펴보면 소통입니다. 소통. 그래서 그 수륙재를 천지 명양 수륙 성범 이라고 합니다. 천지는 하늘과 땅, 명양은 양과 어두운 데, 또 물과, 육지 또 성현, 범부 이렇게 할 것 없이, 모든 이렇게 상대적인 걸 떠나서, 부처님이든 보살님이든, 불보살님의 가피로 천도를 받는 대상인 영가님이든 할 것 없이 다 모입니다. 차별 없는, 수륙이라고 그래서 꼭 물 밑에 있는 생명과 육지에 있는 생명이 아니라 다, 그날은 성현들이나 범부들이나, 육지 중생이나 수륙 중생이나 또 지옥에 있는 또 어두운 곳에 있는 생명이나 밝은 데 있는 생명이나, 하늘에 있는 생명이나 땅에 있는 생명들을 다 불러서 모인다고 해서무차평등이라고 그러는데, 처음에 다 불러 모십니다. 이렇게 처음에 다 부처님을 괘불이운을 통해서 모시고, 신중님을 신중작법을 통해서 모시고, 또 시련을 통해서 밖에 나가서 영가님들을 다 모셔서, 처음에는 이렇게 다 모셔서, 회우라고 해야 되나, 이렇게 조우, 만남을 갖습니다. 이렇게 무슨 생명, 성인이다 범부다 할 것 없이 일단은 다 모이는 축제의 장입니다. 부처님이든 성현이든 중생이든. 그렇게 해서 의식을 집전하는 모든 출연하는 스님들이 여기서 그동안 배운 기량을 발휘를 해서, 서로 서로 이렇게 각자의 역할을 맡아서 협연합니다. 소리하는 사람은 소리를 담당하고. 소리도 이게 여러 종류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 비구니 스님들이 있는데 짓소리도 있고, 홋소리도 있고, 안채비 소리도 있고, 또 소문도 있고 유치성도 있고, 여러 가지 소리가 있고. 또 이제 소리만 있는 게 아니라 작법도 있고, 소리와 작법을 통해서 각가지 정성을 들여서 서로 환희롭게 협연을 합니다. 서로 호흡을 잘 맞춰서. 이때 잘 해야 돼요. 이때 이제 환희스럽게 잘 해야, -하는 사람도 환희로와야, 내가 소리를 하더라도 내가 감동을 받아야 되잖아요.- 그래야 신중님들도 환희롭고, 부처님도 환희롭고, 영가도 환희롭고. 그래서 다 와가지고 그 의례를 통해서 무주 고혼들이 가지고 있는 집착, 이게 그 착으로 인해서 이걸 못 놓아서 그래요. 49일 되면 불교에서는 천도를 하면 다 간다고 하는데, 이게 49재를 넘겨버리면 못 가요. 기간을 넘기는 수가 있어요. 그래서 자꾸 이렇게 꿈에 나타나려고 그러는 거죠, 고혼들이. 근데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선행도 하고, 이제 악업을 짓기도 하고 하지만, 대개 보면 이렇게 업을 지어서 그걸 못 놓기 때문에, -제자리를 찾아서 가야 되는데,- 49일 지나면, 이 기간을 넘겨버리면은 못 가니까, 많은 고혼, 애혼 그리고 일체의 무주 고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륙재의 대상은 이제 중요한 영가들도 있지만, 그 주인공은 무주 고혼입니다. 무주 고혼. 그리고 제대로 살다가 어느 정도 수명이 다 해서 가면 고분고분하고 또 살아서 좋은 일도 했으니까 이렇게 심판을 받아서 나중에 명부 중에 가서 염라대왕과 함께 심판을 딱 받아서 갈 텐데, 그렇게 안 되면, 횡액으로 죽으면, 사고로 죽으면 내가 그걸 인정을 못해서 못 가는, 그래서 그 불쌍한 영혼들을 이렇게 달래주는 것이 이 수륙의 대상이 됩니다. 마침내는 그렇게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양 올리고 그렇게 환희롭게, 의식을 통해서, 부처님의 원력과 가피을 통해서, 결국에는 왕생 정토하는 것이 수륙의 큰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우리가 그 수륙재를 통해서 여러분들도 수시로 내면을 잘 살피셔서, 좀 들여다 보셔서, 집착, 착을 좀 내려놓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무주 고혼을 천도하는 것도 있지만, 잘못하면 우리도 무주 고혼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죽을 때는 절대 뭘 놓으세요. 놓으시라고. 잘 못 놔. 이걸 꼭 잡아야 되는 거 같아. 근데 업이 많을수록 이걸 못 놔. 지은 업이 악업을 많이 짓거나 업이 과중하면 이게 못 놓으니까 결국에는 이렇게 절차대로 잘 못 가는 거예요. 그래서 49일에서 이탈되면 어떻게 돼요. 그냥 떠도는 나그네의 영혼이 되는 거지요. 근데 나그네 영혼 되는 건 좋은데 불쌍하잖아요. 남의 제사 때 누가 뭘 챙겨주기를 하나. 또 배가 고프대요. 구병 시식을 보면, 밥 때가 돼서, 이제 사시가 돼도 어디 가서 누가 뭘 챙겨주지도 않으니까, 여기 기웃, 저기 기웃. 그리고 이제 절에 제사 지내는 데 가서 이렇게 기웃기웃 하는데 그 얼마나 불쌍해요. 그런 분들이 우리 조상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진관사 수륙재를 봉행하는 진관사 여러 불자님들은, 이 수륙재를 봉행한 공덕만 가지고도 절대로 잘못될 일은 없는데, 그래도 우리가 그것만 믿고 해서는 안 되고, 수륙재를 잘 복원함으로 해서 그 정신을 우리가 배우자. 그 정신은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착을 버리자. 우리가 공부하는 것도 결국에는 다 이렇게 뭘 꽉 쥐려고 하는, 못 놓는 그 착을 놓는 게 그게 공부예요, 사실은. 그래서 10년간 이렇게 잘 하시니까 아마 여러분들은 잘 놓으실 거에요. 살아계실 때 미리 좀 놓는 연습을 하세요. 법정 스님은 그래서 이제 하도 좋은 말이 있어서 내가 좀 적어봤는데요. 이렇게 지나가면 잊어버리니까 책을 읽다가 적어둬요.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런 생각을 해야 나를 좀 들여다봐야 내가 가지고 있는 업이라든가 내가 여러 생 동안 여러 시간을 통해서 쌓았던 업을 되돌아보고, 업이 지중하면, 업이 쌓이면, 안 좋은 업이 쌓이면은, 참회를 통해서 업을 맑히고 업을 맑혀야 나라는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염불을 좀 많이 하세요. 수륙재가 좋은 가장 큰 한 가지는 이걸 통해서 우리가 스님들 간의 화합, 회주스님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 대중들이 화합되고, 또 불자님들은 불자님들 간에 서로 협동심이 또 생기고, 화합심이 생기고, 또 스님과 불자들 간의 유대관계가 형성이 되고, 그래서 하나가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 앞으로도, 더욱더, 10년을 넘어서, 어장스님을 중심으로 해서 전통 수륙의례를 잘 전수하시고, 우리 스님들이 잘 배우셔서 자부심을 가지시고 또 이렇게 잘 전승되리라고 믿습니다. 뒤에서 미력하지만,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열심히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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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9월 29일 49재 법문
종범스님 2022-09-29
금일 영가 至心諦聽 至心諦受 지심제청 제심제수 四大五蘊이 生老病死는 사대오온 생로병사睡中作夢이 種種夢事요수중작몽 종종몽사眞如佛性이 法性實際라진여불성 법성실제究竟清淨하야 常放光明하니 구경청정 상방광명今日靈駕의 本來面目이로다금일영가 본래면목나무아미타불 불교에서 먼저 깨닫고, 뒷사람을 깨우치는 이들을 삼세제불이라, 역대 조사라, 천하 선지식이라 이렇게 부르는데, 그분들이 깨달은 바, 가르치는 바가 무엇이냐. 일체 중생에게 자성청정심이 있다. 자성청정. 자체 본성이 하늘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고, 하늘이 사라진 뒤에까지 있고, 무엇에도 변하지 않고 물들지 않는 자성청정심이 있다.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인연 따라서, 인연 따라서 몸도 생기고, 생멸도 생기고, 생각도 생기는데, 몸이라고 하는 것은 지수화풍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땅과 같은 뼈, 물과 같은 혈액, 불과 같은 체온, 바람과 같은 호흡, 이런 네 가지 몸의 요소와 수상행식이라고 해서 생각인데, 생각은 받을 수자, 항상 느낌을 받는다. 하늘을 보면 하늘의 감수성을 느끼고, 땅을 보면 땅의 감수성을 느끼고, 사람을 보면 사랑을 느끼고. 느끼는 작용, 인식하고 상상하는 작용, 수상, 행동하는 작용. 기억하고 식별하고 온갖 것을 기획하는 작용. 과거 걸 기억하고, 현재를 식별하고, 미래를 기획하고 하는 것을 인식이라는 식자, 식이라고 그러는데, 자성청정심은 다 가지고 있는데, 이 수상행식이라고 하는 의식 작용이 사람마다 다 생활에 따라서, 경험에 따라서 틀린다 이렇게 가르쳐요. 사람이 산다는 건 뭐냐. 명이라고 그러는데, 명은 목숨이다, 목에 숨이 있는 게 명이다. 목숨은 호흡이에요. 숨을 안 쉬면 생명이 없다고. 그다음에 몸에 따뜻한 기운이 있어야 되는데, 그건 맥박이다. 맥박이 끊어지면 체온이 떨어져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숨을 쉬고, 맥박이 뛰고, 그다음에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 숨을 내쉬어도 의식이 없으면 살았다고 안 한다고 하죠. 산다는 기준이 호흡, 맥박, 의식이 있는거예요. 이것은 자성청정심에서 비롯해요. 한순간 꿈과 같다 이렇게 가르쳐요. 꿈이라는 게 꿀 때는 분명하지만, 깨고 나면 없는 것이, 하늘보다 먼저 있고 하늘보다 뒤에까지 있는 자성청정심이 있어서, 숨 쉬고 맥박 뛰고 생각하는 이런 사대 수상행식이 꿈꾸고 꿈에서 깨어난 이유와 같다. 이게 이제 여러 부처님이, 깨달은 분이 뒤에 사람들을 깨우치는 내용이거든요. 그래서 사대오온(四大五蘊)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수중작몽(睡中作夢)에, 잠잘수, 가운데 중, 수면 위에, 작몽, 꿈을 꿨는데 거기에 종종몽사(種種夢事)가 있다. 꿈속의 꿈. 산에 올라가는 꿈도 있고 사람 만나는 꿈도 있고. 그래서 자성청정심에서 보면 한평생 인생살이가 하루 저녁 꿈과 같아요. 그런데 꿈이라는 게 꿈을 깨고 나야 꿈인 줄 알아요. 근데 진여불성(眞如佛性)이 있다. 참 그대로 아는 성격, 참 진, 같을 여, 참 그대로, 불성, 불은 깨달을 각자인데, 아는 성격이 있다. 또 법성실제(法性實際), 온갖 법의 진실성, 그 진실의 경지, 제라는 국제라는 제자인데, 경계지, 법성실제는 구경청정(究竟清淨)하여, 끝내 분별력이 없어서, 상방광명(常放光明)이라. 항상 광명을 비춘다. 그럼 이 불성이 광명하고, 현상 광명하고, 현상 광명은 햇빛도 있고 달빛도 있고 등불 빛도 있고, 그래서 일광, 월광, 등광, 또 별빛도 있고, 섬광, 다 현상 광명인데, 불성 광명이 그럼 어디 있느냐. 이 불성 광명을 알고 나면, 불성 광명이 없으면 햇빛을 볼 수가 없어요. 불성 광명이 있기때문에 그 햇빛을 바라보는 능력이 있다. 햇빛만 있으면 뭐 하나. 햇빛을 알 수 있는 능력은 불성 광명인데, 범부는 미혹해서 햇빛인 줄만 알지, 상방광명, 항상 광명을 비추는 자성 청정 불성 광명이 있는 줄 모른다. 이렇게 가르쳐요. 그릇이 있다. 그러면 이게 현상 광명인데 나타나는 광명이다. 그릇이 있어도 이 그릇을 모르면 이거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 우리 일상 생각 속에서만 살면 그릇인 줄은 알지, 그릇인 줄을 아는 자기 불성 광명을 모른다. 이걸 미혹이라고 하거든요. 알고 보면 햇빛도 불성 광명이고, 달빛도 불성 광명이고, 별빛, 등불빛도 다 그런데, 이게 몸인 줄 알지 이걸 아는 것이 불성 광명이라는 걸 꿈에도 모른다 그거예요. 이걸 미혹과 정각이라고 해요. 몸과 몸인 줄 아는 불성, 그 불성을 발견한 걸 바를 정자, 깨달을 각자, 정각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 사후의 극락세계라는 것은 정각의 세계로 돌아가는 거예요. 미혹의 세계에서 정각의 세계로 돌아간다. 다 자성청정 자기불성인데, 그 자성청정 자기불성인 줄 꿈에도 모르고, 어두운 것이 나타나면 어두운 것에만 매달리고, 밝은 것이 나타나면 밝은 것에만 매달려서 경계에 속박이 되어, -경계는 눈에 보이는 대상인데,- 대상에 얽히고 묶여, 대상만 쫓아다니다가 한평생 다 가고 말아요. 대상만, 대상만. 사람이 나타나면 사람에 쫓아가고, 물건이 나타나면 물건에 쫓아가고, 허공이 나타나면 허공에 쫓아가고. 땅을 보면 땅을 쫓아가고. 그게 다 비었단 말이에요. 욕망이라는 건 대상을 쫓아가는 거야. 어떤 대상을 소유해도 만족할 수가 없어요. 그게 사라지기 때문에. 소유하면 사라지고, 소유하면 사라지고, 쫓아가면 없어지고, 쫓아가면 없어지고. 그래서 그렇게 소유하고 소유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고 심리를 딱 표현한 말이, 배고플 아자, 귀신 귀자, 아귀(餓鬼)라고 그래요. 아귀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안 부르다 이 말이에요. 그 말은 욕망이 쫓아가서 만족하려해도 채워도 채워도 채워도 채워 도 채워지지 않은 빈 마음이 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빈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채워서 만족하려고 그러면 안 되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알아야 거기에 만족이 있어요. 충족은 안 되고 자족이라야 된다. 자족. 자식들에게 많이 해주면 행복하겠지, 전혀 아니에요. 자식들한테 해주려고 할 생각은 전혀 하지 말아요. 왜냐하면 아무리 해줘도 만족하지 않아요. 받은 놈이 더 달라고 그래요, 안 받는 놈은 아예 받을 생각도 없어. 이 말은 자식이 없는 사람이 이런 말 해요. 자식 있는 사람은 그게 안 되거든. 해주고 싶은 또 욕망이 있어서 해주고 싶은 욕망을 누를 수가 없어요. 그게 인생살이에요. 그래서 자성청정심으로 돌아가면 그게 극락세계다. 거기에는 불만이 하나도 없어요. 자성청정심을 깨달아서. 하늘에 머물면 하늘에서 만족하고, 땅에 돌아가면 땅에서 만족하고. 삶은 삶으로 만족하고, 죽으면 죽음으로 만족하고. 이 대상에 의지해서 만족을 느끼는 게 아니라 자기 자성청정심에서 자족자재하니까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행동하니까 그 세계를 극락세계라고 한다. 그리고 극락세계로 가는 길은 깨달아서 가는 길이 있는데 보살들이 가는 길인데요, 그걸 반야바라밀이라고 그래요. 보살이 극락세계 가는 길을. 반야는 지혜인데, 바라밀은 저 극락세계 저쪽 세상으로 간다는 소리예요. 피안에 도달한다. 그러면 어떻게 가냐. 조견(照見). 비출 조, 볼 견. 딱 비춰보면 그 대상을 쫓아가는 망상 집착이 없어져요, 딱 조견을 하면. 그러면서 일체의 하늘이고 땅이고 사람이고 간에 모든 게 공적함이 보여요. 망상집착은 없어지고 공적실상이 보인다. 그러니까 딱 바라보고 있으면 이것에 집착하는 생각은 싹 없어지고, 이것이 생긴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비고, 비고, 고요하고, 고요한 진실상이 여기 있다. 공공적적(空空寂寂) 진실자상. 진실한 자체상(自體相)이다 이 말이죠. 태어나고 죽는데도 공공적적 진실자상이다. 이게 이제 깊어지고 깊어지면 경계에 집착하는 이 수상행식 생각 작용은 점점 줄어들고, 이걸 깊이 보는 그 반야조견이 점점 넓어지면, 그다음에 이제 무상 정각을 이루게 되는데, 보고 보고 보고 보면 보는 능력이 아주 지족에 도달해요. 그러면 볼 필요도 없이 그냥 탁 열리는데 그걸 보리라고 그래요. 반야는 보는 거고, 광명이 진실, 자상광명, 자상청정심, 광명이 확 열리는 거를 반야라고 하고 보리라고 한다. 반야는 보살이 하는 거고, 보리는 일체 부처님이 이룬 건데, 그러면 보리는 뭐냐 하면 일부러 볼 필요가 없어요. 그냥 항상 고요해. 항상 고요하고 항상 보여. 이걸 적조라고, 고요할 적자, 비칠 조자. 그리고 적조는 끝이 없어요. 둥글 원자를 써요. 항상 밝아. 빛 광자를 써요. 원광. 적조원광(寂照圓光). 적조원광에는 전부 극락세계뿐이에요. 고통이 있고 즐거움이 있는 거는 생각이 만들어낸 거고, 생각이 적조원광으로 돌아가면 거기는 즐거움 뿐이다. 그래서 불국토를 극락세계라고 그래요. 불국토. 거기에는 생로병사도 없고, 우비고뇌, 근심걱정도 없고, 무량수복, 무량한 수명과 무량한 복덕. 무량한, 한량없는. 무량자재,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 그거 뿐이다. 그러면 이 49재라는 거는 그 부처님의 세계에 모셔 드리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모셔드리냐. 부처님의 원력과 부처님의 신통력과 부처님의 자비력을 힘입어서, 그쪽으로 가게 된, 승불실력, 승자비력, 승불원력, 승이라는 건 이을 승자, 이어받아서. 내가 고른 목표로 차 타고 가면 되듯이, 내가 그 세계를 깨닫지 못했으면, 부처님이 일체중생을 다 극락세계로 인도하겠다는 원를 세운 일이 있어요. 그걸 불원력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 불원력을 내가 이어받아서 승용차라는 승자를 써서 그 원력을 내가 타고 오른다. 이을 승자, 승불원력이라, 탈 승자. 위에 올라 타고 간다. 부처님이 하는 일이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일밖에 없어요. 그걸 불사라고해요. 부처님의 일이라고, 부처님의 사업종류에요. 부처님의 업종은 일체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사업밖에 없다. 불사한다 이러거든. 이렇게 자비력을 내가 이어받아서, 부처님의 신통력을 이어받아, 신통력이라고 하는 것은 이 자리를 움직이지 않고 저쪽 자리에 가는 걸 신통이라 그래요. 차 타고 가고, 걸어가고 이거는 신통이 아니고, 털끝 하나도 안 움직이고 목적지에 가는 거, 그걸 신통이라고 그러는데, 부처님의 신통력을 이어받아서, 부처님의 자비력을 이어받아서, 중생을 다 극락세계로 인도하겠다는 부처님의 그 서원의 힘을 이어받아서, 오늘 영가가 극락세계에 가시게 된다, 이런 뜻이죠. 不生不滅은 (영가의)本來命根이요 湛寂圓明은 (영가의)本來身相이요 불생불멸 본래명근 담적원명 본래신상極樂世界는 (영가의)本來寶宮이요 常放光明은 (영가의)本來性光이로다극락세계 본래보궁 상방광명 본래성광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보살 중에서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보살이고, 아미타불은 일체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부처님이거든요. 그러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거예요.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부처님이 아미타불이고요,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보살이 관세음보살이니까, 불교가 뭔지 아무것도 몰라도, 힘들 때는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는 돌아가 의지한다는 말이거든요. 그리고 거기에 길이 있어요. 왜 길이 있냐. 부처님의 원력이 있으니까. 일체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겠다는 원을 세우셨으니까. 나무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화가 아무리 나도 이 두 가지만 하면 진정이 돼요. 그래서 큰 사고 치기 전에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그럼 사고 안 쳐요. 어두울 때 불 하나 탁 키면,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게 있듯이, 이게 생각이 격해서 그런 건데, 생각이 맑아지면 돼요. 행복이 어디 있느냐. 감정 조절에 있는 거예요. 감정만 잘 조절하는 사람은 절대 불행이 없어요. 모든 불행은 감정이 격해졌을 때 사고처럼 생기는 거거든요. 내가 내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은 불행 없어요. 능력만 키우면 행복한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능력 아무리 있어 봐야 감정 조절 못해서 격한 사고 한번 일으키면 평생 괴로워요. 그래서 이 격해지고 끊임없이 막 구하고 끊임없이 만족할 줄 모르는 이 감정을 잘 가라앉힐 수 있는 능력을 자꾸 쌓으면, 감정 조절이 잘 돼서, 수신제가, 닦을 수자, 몸 신자, 어릴 때 서당에 다니면서 대학이라는 책에 수신제가라고 나와 있었는데, 몸을 닦고, 집안을 정리하고, 이게 수신제가인데, 집안을 정리한다는 말은 알겠는데, 몸을 잘 닦아야 한다는 말은 알 수가 없어요. 몸을 닦는다는 건 목욕을 하면 되나. 어떻게 하면 된다는 말인가. 선생님께 여쭤보니까 참 기가 막혀요. ‘몸을 잘 닦아야 하느니라’ 몸을 닦는다는 그 의미, 개념은 설명을 안 해 주셔. 몸을 닦는 게 뭐냐고 물으니까 몸을 잘 닦아야 하느니라. 그래서 글을 잘 아는 선생님한테 여쭤봤어요. ‘수신제가, 수신이 뭡니까?’ 그분은 워낙 한문에 조예가 아주 깊어서 ‘그거는 할 일 없다 하고, 안 할 일 없다 안 하는 거, 행동을 구분해서 하는 거다.’ 이렇게 딱 가르쳐 주시더라고. 천지차이인 거에요. 한문을 가르치는 분들도. 수, 닦을 수자는 구분하는 거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하고 안 해야 할 일은 안 하는 게 그게 수신이다. 그럼 안 해야 할 일을 왜 하게 됐냐. 감정 조절을 못해서 그래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기본 자격은 내 감정을 내가 얼마나 조절할 수 있느냐 여기에 달린 거예요. 100% 조정할 수 있다면 100% 행복해요. 90% 감정 조절할 능력이 있다면 90% 행복한 거예요. 근데 감정조절 능력이 0%다 그러면 없어요. 행복 없어요. 만드는 거, 불행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거예요. 아주 괴롭고 힘들 때,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요말만 해도 그 격한 감정이 한 단계 내려가요. 다운이 돼요. 참 대단해요. 그래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은 오늘 영가의 본래명근(本來命根)이다. 생명의 뿌리다. 담적원명(湛寂圓明)하고, 담담하고 고요하고 둥글고 밝은 것은 오늘 영가의 본래신상(本來身相)이다. 본래 모습이 둥글고 밝다 이 말이죠. 극락세계(極樂世界)는 오늘 영가의 본래보궁(本來寶宮)이다, 보배 보, 집 궁. 보배궁전이다. 상방광명(常放光明)이다. 항상 비추는 것은 오늘 영가의 본래성광(本來性光)이다. 본래 본성광명이다. 諸佛方便不思議 隨衆生心悉現前 제불방편부사의 수중생심실현전普住種種莊嚴刹 一切國土皆周遍보주종종장엄찰 일체국토개주변이로다 (華嚴經 世界成就品)(화엄경 세계성취품)나무아미타불 -혼자 할 때 이렇게 길게 빼서 할 필요 없어요. 이거는 의식화해서 하는 거고 그냥 하기 좋은 대로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하면 돼요. 하기좋게 하면 돼요.- 아플 때도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그럼 짜증도 한순간 멈춰지고 두려움도 한순간 멈춰지거든요. 얼마나 좋은 노래에요. 부처님의 세계인데 부처님의 세계가 부사의라(諸佛方便不思議). 중생의 수상행식으로 헤아릴 수가 없다 이 말이죠. 수중생심실현전(隨衆生心悉現前)이라, 중생의 마음에 따라서 다 나타난다. 왜냐하면 적조원광이기 때문에. 고요히 비추고 둥근 광명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거는 해가 한 개, 하나 있으면 물이 있는 곳에 해가 다 비쳐져요. 해가 거기에 빠져서 비춰지는 게 아니라 그냥 비쳐져요. 그게 부처님의 신통력이고, 부처님의 광명의 힘이다. 보주종종장엄찰(普住種種莊嚴刹)에, 일체 그 극락세계에 다 머물러서, 일체국토개주변(一切國土皆周遍)이라, 일체국토에 다 부처님이 중생을 극락세계로 이끌어주신다. 그런 말씀인데, 이건 화엄경이라는 경이 있는데 세계성취품이라고 있어요. 今日靈駕 承佛願力하야 금일영가 승불원력 華藏刹海 常樂寶宮하야화장찰해 상락보궁 西方淨土 極樂世界에서방정토 극락세계一念直往하고 一步往生하여일념직왕 일보왕생無盡福樂과 無盡受用하십시오무진복락과 무진안락을 무진수용 나무아미타불 금일영가께서는 승불원력(承佛願力)하야, 부처님의 원력을 이어받아서, 화장찰해 상락보궁(華藏刹海 常樂寶宮), 화장이라는 건 온갖 공덕이 많은 걸 화장이라고 해요. 꽃 화자, 감출 장자, 찰해라고 하는 건 여러 가지 세계에요. 세계라는 찰자고, 바다 해자. 화장찰해. 또 상락보궁이라. 항상 즐거움으로 가득한 보배궁전이라. 서방정토 극락세계(西方淨土 極樂世界). 동방을 청방이라 그러고, 남방을 적방이라 그러고, 북방을 흑방이라 그러고, 서방을 백방이라고 그래요. 희다고. 동방은 푸르름이 있다. 남방은 붉다. 남쪽으로는 벌겋게 보이거든요. 북방은 검다. 서방은 희다. 희다라는 건 뭐냐. 청정하다. 청정. 그래서 서방정토라고 그래요. 백방정토. 서방은 백방이라고. 번뇌망상도 없고, 생로병사도 없고, 근심걱정도 없고, 나쁜 게 하나도 없는 서방정토 극락세계, 거기에 일념직왕(一念直往)하시고, 한 생각으로 바로 가시고, 곧 직자, 갈 왕자, 직이란 건 직행에서 나온 거예요. 일념직왕하시고. 일보왕생(一步往生)하셔서, 한걸음에 가서 나셔서, 무진복락(無盡福樂)을, 한량없는 복락을, 무진하다, 끝이 없다. 복락을 무진수용(無盡受用)하십시오. 끝이 없이 받아쓰시고. 끝이 없이 받아쓰십시오. 이렇게 해서, 오늘 극락세계 가시는 법문 모두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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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 9월26일 음력9월 신중기도 입재 법문
종범스님 2022-09-26
임인년 9월 초하루 진관사 법문은 지송축원, 지송(持誦)이라는 것은 경전을 가질 지, 외울 송, 잘 받아서 간직해서 독송하고, 서사하고, 쓰고 해설하는 수지, 독송, 해설, 서사, 그게 경전의 수행인데, 그걸 지송이라고 하고, 그 지송을 할 때는 항상 축원문이에요, 지송이. 축원(祝願). 축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피, 가호를 청원한다, 청해서 원하는 걸 축이라고 하고, 원이라는 것은 지심발원, 자기의 지극한 마음으로 스스로 발원하는 걸 원이라 그래요. 그래서 가피를 청원하고, 자기의 의지를 발원하는 것을 합해서 축원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지송축원을 하게 되면 그것이 무량공덕이라, 대공덕행(大功德行)이라. 대공덕이라는 건 뭐냐 하면, 불교가 아주 근본이고 궁극이, 근본 궁극이 성불과 중생 제도인데, 이 지송축원는 자기 성불과 중생 제도가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그것을 성불하고 중생 제도가 함께 이루어지는 공덕을 대공덕행이라 이렇게 얘기를 해요. 오늘 법문 주제는 <지송축원 대공덕행> 이런 제목인데요. 成佛度生 諸佛大業 大業達成 一道行門 성불도생 제불대업 대업달성 일도행문經教持誦 如說修行 如理證得 願力行化경교지송 여설수행 여리증득 원력행화 그 제목 부제를 설명을 해보면, 성불도생(成佛度生)은 성불해서 중생 제도하는 것은 제불대업(諸佛大業)이라, 모든 부처님의 온전한 업이다. 큰 대자, 업이라는 업자는 다른 건 없고 하는 일이 그것뿐이다라고 할 때 대업이라고 하거든요. 대업달성을 하는데, 대업달성에 일도행문(大業達成 一道行門)은, 그 대업을 달성하는데 한 길로 행하는 문은, 일도행문, 첫 번째가 경교지송(經教持誦)이라, 경전에서 가르친 것을 수지독송하는 것이다. 두 번째가 여설수행(如說修行)이라, 경전에서 교설한 대로 따라서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세 번째가 여리증득(如理證得)이라, 이치와 같이, 이치는 뭐냐. 진실상. 가령 부처님이 깨달음을 말했다고 하면 그 깨달음의 진실상과 같이 깨달음으로, 부처님이 극락세계를 말했으면 부처님이 말한 극락세계의 진실상과 같이 왕생하는 거, 부처님이 해탈을 말하셨으면 부처님이 말한 해탈의 진실상과 같이 자기가 성취하는 거, 그걸 이치와 같이 증득한다 이래서 여리증득이라고 하고요. 그다음에 원력행화(願力行化), 원력으로, 원하는 힘으로, 실력과 원력이 있는데, 실력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익힌 대로 자기가 학습한 대로 힘을 나타내는 게 실력이고, 원력은 자기가 원하는 발원하는 걸 위해서 힘을 얻는 것을 원력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성불하는 건 원력으로 되는 거지, 지금까지 익혔던 중생업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원력이라고 그래요, 원력. 그래서 원력으로 행화를 한다. 실행할 행자, 교화 화자, 중생을 교화하고 중생을 고통에서 건진다. 그 고통은 알겠는데, 건지는 건 뭐냐. 그건 깨달음이에요. 깨달음이 아니고서는 고통에서 건질 수가 없어요. 비유해서 말하면, 꿈꾸는 사람이 꿈속에서 온갖 환경을 지금 맞이해가지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꿈에서 괴로워하는 환경에서 벗어나려면 길은 딱 하나뿐이에요. 그 꿈에서 깨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고 상담을 받는데 상담에 답이 없어요. 인생 문제, 사회 문제, 생활 문제, 여러 가지 문제를 들고 가서 자기 고뇌를 이야기를 하면 마지막은 답이 없어요. 근데 그 답은 오직 하나뿐이요. 깨달아야 돼요. 그게 성불이에요. 성불. 깨달아야 된다. 깨닫는 게 답이여. 깨닫지 못하고서는 모든 문제가 그냥 있어요. 그래서 인생의 해답은 깨닫는 거다. 그걸 해탈이라고 하고 그걸 성불이라고 하고 그래요. 그럼 깨달았으면 중생을 깨우치는 거죠. 그걸 제도라고 그래요. 그게 건지는 거예요. 나를 깨닫게 해야 내가 나를 제도하는 거지, 내가 나를 깨닫게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내가 나를 제도할 수가 있냐.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에요. 뭘 해서 이루면 해결될 줄 아는데, 전혀 무엇을 해도, 무엇을 이루어도 인생의 고통이 해결이 안 돼요. 못 가진 걸 가져오면 해결될까. 모르던 걸 알아보면 해결될까. 이루지 못한 걸 이뤄보면 해결될까. 전혀 안 돼요. 박사학위 하나 더 받아봤댔자 괴로움만 더 생겨요. 더 작은 부자가 큰 부자 돼 봐야 고통이 더 생겨요. 나이가 들면 좋은 줄 알고 어릴 때 막 나이를 올려서 속이고 그러는데, 나이 많아지면 좋은 것 같아요? 천만에. 나이 많으면 괴로움이 더 많아. 그러니까 인생 문제는 깨닫지 못하고는 항상 고통의 성격만 변할 뿐이지 근본은 그대로 있다. 그래서 중생제도라고 하고 성불 해탈이라고 하는 거예요. 성불 해탈, 중생제도. 근데 그 성불해탈하는 방법이 경전을 외우는 거, 이게 아주 근본이다 이거죠. 경전을 외우는 게 그게 왜 근본이냐 그러면, 아무리 땅이 좋아도 거기에 좋은 종자를 심지 않으면 그 땅이 힘을 못 써요. 그래서 내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 마음에다가 근심 걱정만 자꾸 채우면 근심 걱정만 성장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거기다가 깨달음의 종자를 하나 턱 심어 놓으면, 그 깨달음의 종자가 그 좋은 내 마음 땅에서 자라난단 말이에요. 그리고 번뇌망상이 일어나면, 그건 종자가 자라는데 옆에 잡초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데, 그 잡초는 뽑아요. 종자는 길러요. 그렇게 되면 성불을 하게 되고 자연히 중생 제도를 하게 된다. 근데 그렇게 종자를 심어서 기르고 잡초를 뽑아내는 그 행위가 첫째로 경교지송이라. 경교지송하는 거 이것만 계속해도 나머지가 다 이루어지고 여설수행이라, 그 말과 같이 수행만 계속해도 다른 것이 다 이루어지고. 또 중생교화만 계속 하는 게 있어요. 중생교화를 통해서 성불이 완성이 되고, 성불 완성을 통해서 중생교화가 완성되고. 보살행 중에도 관세음보살하고 지장 보살은 중생교화만 해요. 그러면 중생교화 하는 가운데 자기 성불은 다 이루어져요. 문수보살은 자기 성불에다 중점을 둬요. 자기 성불이 완성하게 되면 중생교화도 다 완성하게 되고 보현보살은 이걸 합치는 거예요. 자기성불 문수보살 수행, 중생교화 관세음보살 수행, 지장보살 수행, 합쳐서 하는 것이 보현보살 수행이거든요. 그러니까 경전을 자꾸 이렇게 수지독송하면 내 마음에서 불종자는 하루하루 자라고, 번뇌망상 하루하루 없어져서, 거기서 온몸이 공덕의 몸이 되고 온몸이 지혜의 몸이 된다, 이거거든요. ① 朝禮鍾頌(晨鍾頌) 조례종송(신종송)願此鍾聲遍法界 鐵圍幽暗悉皆明 원차종성변법계 청위유암실개명三途離苦破刀山 一切衆生成正覺삼도이고파도산 일체중생성정각南無 昆盧教主 華藏慈尊 나무 비로교주 화장자존演 寶偈之金文 布 琅函之玉軸 塵塵混入 刹刹圓融연 보게지금문 포 낭함지옥축 진진혼입 찰찰원융一乘圓教 大方廣佛華嚴經 第一偈 일승원교 대방광불화엄경 제1게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그런데 이제 절에서 하는 걸 보면, 아침에 종을 확 치면서 시작하는 것을 종송(鍾頌)이라고 그러는데, 보통 종성한다 이러는데, 소리 성자가 아니고, 종을 치면서 외우는 게송이에요. 종송. 조례종송(朝禮鍾頌)이라 이러는데, 이 조례종송이라고 하는 것은 -1935년에 간행이 된 석문의범(釋門儀範)이라고 합니다, 100년이 다 돼가는데,- 석문의범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자세히 되어 있고, 그보다 한 200년, 300년 전에 간행된 불교의식문에는 그냥 신종송(晨鍾頌)이라고만 되어있어요. 새벽 신자, 종이라는 종자, 게송이라는 송자, 신종송. 그런데 신종송 원 게송은 이 칠언사구 게송뿐이에요. 옛날 의식문에는 참 기가 막혀요. 대종을 한번 쾅 치면서 원~한단 말이에요. 원(願). 원한다, 발원하고 축원한다. 차종성(此鍾聲)이, 이 종소리가, 변법계(遍法界)하여, 온 법계에 두루 퍼져서, 이렇게 출발해요. 철위유암이 실개명(鐵圍幽暗悉皆明)하고, 쇠같이 두껍고 둘러싸이고 깊고 어두운 지옥들이 다 환하게 밝아지고, 그 둘러싸고 깊고 어두운 지옥들이 다 밝아지고, 철위유암실개명, 삼도는 이고하고(三途離苦), 파도산하고(破刀山), 삼도는 삼악도인데, 지옥, 아귀, 축생, 삼악도에서는 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온갖 고통이 극심한 지옥이 도산지옥인데, 칼 도자, 뫼 산자, 도산지옥은 또 다 없어지고, 일체중생은 성정각(一切衆生成正覺)이라, 일체중생은 바른 깨달음을 이루기를 원, 원하옵니다. 이게 한바탕 또 뻥 치면, 이 소리가 생각으로 들으면 소리인데, 지혜로 들으면 그대로 지혜본신이에요. 지혜 본래 몸이다. 이걸 이렇게 이제 보이는데, 의식과 지혜가 있는데, 이걸 의식으로 딱 보면은 그릇인데, 이게 지혜로 보면 나의 본래 몸이다, 이 말이에요. 이걸 청정법신이라고 그러고, 본래 신명이라고, 본래 몸이요 본래 목숨이다. 이게 깨달음이에요. 생각으로 보면 고통인데, 지혜로 보면 그 자기 본래 신명이다. 본래 신명. 근데 이걸 깨닫지 않고서는, 생각으로는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고통에서 고통을 또 만들기 때문에, 답답하네. 고통에서 고통을 또 만들어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부자 되면 행복할 것 같지, 천만에요. 부자는 부자의 고통이 있어요. 아들 나면 행복할 것 같지, 천만에, 아들 나면 아들 난 고통이 있어요. 경봉스님 법문, 어머니 시집 와서 고생하는 거 보면서도 저도 시집 가면 좋을 줄 알고 시집 가서 어머니하고 똑같이 고생한다고, 아버지 장가 가서 고생하는 거 보면서 저도 장가 가서 아버지보다 고생 더 한다고. 그러니까 이 말은 인생살이 세상살이가 뭘 해서 이루어 가지고는 고통이 끊어지지 않는다. 자기 본래 마음, 자기 본래 몸, 자기 본래 광명을 깨달을 때 그때 모든 세상사는 한바탕 꿈이었다. 그래서 깨달음으로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불교다 이거죠. 그러니까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지송축원이에요. 1935년에 간행한 석문의범에서는 밑에 거를 전부 더 추가를 해서 엄청나게 좋은 말씀을 여기 했는데, 나무 비로교주 화장자존(南無 昆盧教主 華藏慈尊), 비로교주 화장자존, 비로자나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연 보게지금문(演 寶偈之金文)하고, 비로자나 부처님께서 보게금문을 연설하시고, 보배게송, 금의 문장 게송하시고, 포 낭함지옥축(布 琅函之玉軸)하야, 낭함이라는 거는 옥 궤짝에 담은, 옥 궤짝을 말하는데, 옥 궤짝에는 보통 물건을 넣는 게 아니라 책 중에 제일 좋은 책을 집어넣는 그 궤짝 함이 낭함이에요. 옥축은 옥으로 만든 두루마리를 말하는데, 그중에 제일 훌륭한 글을 두루마리 하는 가운데 나무를 옥축이라고 한다 했거든요. 그래서 화엄경은 낭함옥축이다. 낭함옥축을 펼친다. 이거를 한자가 요새 다 어려워서, 읽을 때 <포> 띄어 읽어야 돼요. <연> 띄어 읽어야지, 이거 안 띄면 큰일 나요. 연보 게지금문 그러면 말이 안 돼요. 연보 게집으로 안 돼요. 연 보게집, 포, 펼칠 포자, 낭함지옥축, 이게 한문이에요. 포낭 그러면 지옥이 되는데 포낭 지옥, 지옥출 그러면 안 돼요. 참.. 이게 보게금문이요, 낭함옥축이라. 그리고 어째서 그러냐. 진진이 혼입(塵塵混入)하고, 찰찰이 원융刹刹圓融이라. 이게 화엄경 원융무애 교설인데요. 원융무애 교설. 원융이라는 것은 하나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요. 또 하나하나가 모든 것 속에 다 들어가, 이걸 원융무애라고 그래요. 하나가 모든 것 속에 다 들어가고, 모든 것이 하나 속에 다 들어가고, 이건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게 화엄삼매에 들어야 돼요. 진진이 혼입하고, 티끌티끌이 모든 우주 만물에 다 들어가요. 그거는 비유로 말하면, 하나라는 숫자가 있는데, 이 하나라는 숫자가 둘에도 들어가고, 셋에도 들어가고, 열에도 들어가고, 억만에도 들어가고. 아무리 많은 숫자도 거기서 하나 빼면 안 돼요. 하나가 모든 숫자가 되고, 모든 숫자가 하나가 된다. 이게 깨달음이에요. 그래서 깨달음은 하나를 봐도 하나에 만족해요. 열을 봐도 열에 만족해요. 이게 원융무애라고, 이걸 가르치는 게 화엄경이거든요. 근데 마지막에는 뭐냐. 마음이다. 그래서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일체불을 알려고 하면은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법계의 모든 진실성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일체가 다 오직 마음으로 만들었음을 알아라. 그러니까 이 말은 눈에 보이는 저 바깥 대상은 쫓아갈 일이 없고, 하나가 모든 것이기 때문에, 오직 모든 것을 관찰하는 그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었다. 이걸 가르치는 게 화엄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 일체유심조 게송을 화엄경 제일게(第一偈)라. 제일가는 게송이다. 이걸 떡 집어넣어서 아침종송에 이걸 만들었어요. ② 夕禮鍾頌(昏鍾頌) 석례종송(혼종송)聞鐘聲 煩惱斷 智慧長 菩提生 문종성 번뇌단 지혜장 보리생離地獄 出三界 願成佛 度衆生(釋門儀範,1935)이지옥 출삼계 원성불 도중생(석문의범,1935) 그리고 석례종송(夕禮鍾頌), 옛날에는 이걸 어두울 혼자를 써가지고 혼종송(昏鍾頌)이라 그랬어요. 어두울 때 하는 종 치는 게송이라고. 근데 석문에 보면은 석례종송, 저녁 석, 예불 예, 종 종, 게송 송, 저녁예불에 종을 치면서 하는 게송이다. 문종성(聞鐘聲), 종소리를 들을 때, 번뇌단(煩惱斷)하고, 번뇌는 다 끊어지고. 그럼 번뇌가 뭐냐. 나에게 고통을 주는 생각이 번뇌예요. 고통이 다 내 생각에서 일어난 거에요. 이게 참. 모든 고통이 내 생각이 만들어낸 거예요. 내 생각이 조용하면 고통도 조용해. 내 생각이 맑으면 내 행복이 맑아져요. 아니 이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근데 그 당시에는 그걸 몰라요. 자기를 괴롭히는 생각이라는 거를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에는 몰라요. 꿈꿀 때는 절대 꿈인 줄을 모른다 이거거든요. 지혜는 자라고(智慧長), 보리는 생겨나고(菩提生), 지옥은 멀리 떠나가고(離地獄), 삼계의 선을 벗어나고(出三界), 성불해서 중생 제도하기를 원합니다(願成佛 度衆生). 이런 걸 이제 저녁 종 치면서 외워요. 그러면 이걸 하루하루 외우다 보면 여기서 깨달음의 종자가 심어져 가지고, 점점 자라고 번뇌는 점점 없어져서, 이 몸이 지혜 몸이 되고, 이 몸이 공덕의 몸이 된다 이 말이죠. ③ 行禪祝願 (행선축원)願我世世生生處 常於般若不退轉 如彼本師勇猛志 원아세세생생처 상어반야불퇴전 여피본사용맹지如彼舍那大覺果 如是教化恒沙劫 畢竟無佛及衆生 여치사나대각과 여시교화항사겁 필경무불급중생 (懶翁發願文, 懶翁歌頌集)(나옹발원문, 나옹가송집) 그 다음에 행선축원(行禪祝願)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행선이라는 거는 행할 행, 참선 선자인데, 여기서 참선이라는 것도 행한다는 소리고 실천한다는 소리, 행할 행자도 실천한다는 건데, 예불하면서 기도하면서 그냥 하는 축원이에요. 절에 처음 와서 보면 예불하고 이 축원하고 반야심경하고 그러는데, 어느 절에는 이걸 잘 써서 보면서 하고, 어느 절에는 안 보면서 하는데, 나는 안 보면서 하는 게 더 좋은 건 줄 알았어요, 처음에는. 다 외우는데 그걸 왜 보면서 하라고 하나 그랬는데, 나중에 보니 보면서 하는 게 그게 더 훨씬 격이 높더라고요. 표구를 해서 딱 펼쳐서 보면서 하니까, 그게 훨씬 더 깊이 오고. 행선축원이야 이거는 그냥 수행하는 축원이다. 선도 수행이고 행도 수행인데 그냥 예불하면서 하는 축원이고. 근데 그거는 원아(願我), 원자가 하나밖에 없는 내용인데, 세세생생처(願我世世生生處)에, 세상세상 태어날 때마다, 상어반야불퇴전(常於般若不退轉), 반야에서 물러가지 않기를 원하옵니다. 이게 중생에게는 의식과 반야가 있는데, 의식은 대상을 쫓아가는 행위고, 대상을 쫓아가다 보면 대상은 없어져요. 뭘 쫓아가도 없어져요. 쫓아가는 건 다 없어진다. 등산할 때 상봉을 향해서 열심히 뛰어 올라갔는데, 올라가고 나면 바라보는 건 저 밑에 자기가 올라온 곳을 바라보고 있어요. 이거 너무 허망해. 아니 올라가는 거는 온 힘을 다해서 올라가는데, 올라가서 바라볼 때는 자기가 올라온 곳을 바라보고 있어. 그리고 또 얼마나 머무냐. 5분도 안 머물러요. 그냥 내려와 버려. 그래서 어디든지 쫓아가면 사라진다. 그래서 이 의식은 바쁘기만 바쁘지, 남는 건 하나도 없는 게 의식의 종말이에요. 의식의 종말은 바쁘기만 하지 남는 건 없다. 근데 반야는 대상이 대상이 아닌 진실을 보는 게 반야에요. 그릇은 그릇이 아니다. 이건 바로 진실상이다. 산은 산이 아니다. 산의 진실상이다.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죽음은 진실상이다. 그래서 그 진실상을 보지, 그 형태 껍데기를 절대로 쫓아가지 않는 게 반야거든요. 그 반야를 실행하는 걸 수행이라고 그래요. 생각을 쫓아가는 걸 윤회라 그러고. 윤회. 되풀이한다는 거죠. 쫓아가고 또 쫓아가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필경무불급중생(畢竟無佛及衆生)이라, 필경에 궁극적으로는 불과 중생이 없는 진실상에 도달하는 것을 원한다. 불도 없고 중생도 없고, 일광진실, 한 광명 진실상에 도달한 게 깨달음이에요. 무불무중생 일광명 진실상 이런 거에 대해서 외우는 게 축원이죠. ④ 頂戴頌(정대송)假使頂戴經塵劫 身爲床坐遍三千 가사정대경진겁 신위상좌변삼천若不傳法度衆生 畢竟無能報佛恩 (報恩者,釋門儀範)약불전법도중생 필경무능보불은 (보은자, 석문의범) (諸般儀式文.1694)(제반의식문,1694) 그다음에 우리가 늘 하는 게송 중에 정대송(頂戴頌)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부처님은 자기가 깨닫고 중생을 깨우친 분이 부처님인데, 그 중생을 깨우친 은혜가, 다른 사람은 다 물질을 준다든지, 일을 도와준다든지 이런 건데, 부처님은 깨달음을 줬다. 깨달음으로 인도한 은혜가 부처님 은혜인데, 그 깨달음으로 인도한 은혜는 무엇으로서 갚을 길이 없고 딱 한 길이 있다. 이걸 가르치고 있거든요. 가사, 설사, 정대(假使頂戴)를 하고, 정수리에 이고, 경진겁(經塵劫)한, 티끌같이 오랜 세월을 지내며, 신위상좌변삼천(身爲床坐遍三千)하더라도, 몸이 앉는 자리가 돼서, 앉는 평상이 돼 가지고, 삼천 대천 세계에 가득 차도록 두릇이 펼쳐놓는다 할지라도, 약불전법도중생(若不傳法度衆生)하면, 법을 전해서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면, 머리에 부처님을 이고, 또 내 몸이 평상이 돼서 온갖 곳에 다 펼쳐가지고 앉게 하고 하더라도, 전법도생, 부처님의 그 깨닫는 법을 전해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면, 필경무능보불은(畢竟無能報佛恩)이라, 필경에, 궁극적으로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수는 무능, 없다. 옛날 제반의식문이라고, 1694년에 간행한 의식문에는 ‘필경무능보불은’ 이렇게 되어 있는데, 1935년에 간행한 석문의범에서는 ‘필경무능보은자(畢竟無能報恩者)’라 이렇게 돼 있어요. 은혜를 보답할 일은 없다. 보은자도 틀린 건 아닌데 그 주어가 생략이 돼 있어요, 그렇게 되면. 부처님인데요, 주어가. 부처님을 머리에 이고, 부처님에게 평상이 되어 드려도, 전법도생, 법을 전해서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면,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수는 없다. 이 말이거든요. 그래서 뜻으로 보면 보불은이 맞는데, 필경무능보은자 이렇게 너무 익어져가지고 갑자기 바꾸기는 힘든 것 같아요. 그런데 뜻은 거기 목적 주어가 불은이에요. 목적어 주어가. 그런 게 좀 있어요. 그래서 이게 깨닫는 문제는 내가 나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일이고, 또 깨달음의 은혜를 받았으면 그 은혜는 결국 중생들을 깨우치는 일로만이 보답할 수 있지, 다른 것으로는 보답할 수가 없다. 이런 내용을 여기서 말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경전을 수지독송하는 일은 내가 나를 깨우치는 일이고, 또 이렇게 독송하게 하는 것은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대공덕을 이루는 길이다> 하는 것이 오늘 법문의 내용이었습니다.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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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행수륙재] 9월 25일 국행수륙재5재 법문
본각스님 2022-09-25
오늘 이 거룩한 삼각산 진관사에서 국행수륙대재 제5재를 봉행하시는 우리 스님들과 모든 불자님들께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도 오늘은 아침 일찍 진관사 도량에 와서, 이 청아한 기운을 쭉 함께 공유하면서 “참 거룩하다. 참 감사하다.”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다 여기 계신 분 ‘한 100년 살 거다.’ 이렇게 마음을 가져주시면 힘이 나시겠죠. ‘100년을 살면서,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하면 진정으로 거룩하고, 가치있고, 그리고 참답고 환희로울까?’ 이런 생각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함께하면 즐겁고 기쁠 수 있을까?’ 저는 부처님 제자로서 많은 거룩한 일, 감사한 일, 즐거운 일을 경험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진관사에서 국행수륙대재 오재 법사로서, 다시 제 삶에 기쁘고 환희로운 하나의 일을 더 보태고 있구나.’ 그런 마음이 듭니다. 법사의 이런 마음과 같이 우리 스님들은 물론이시고, 또 오늘 와보니까 우리 어린이, 청소년이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가족과 함께 이 거룩한 법당에 다 앉아 계셔요. 스님은 아까부터 ‘우리 어린이, 청소년들이 크면 이 대한민국에 큰 인물이 될 것이고, -스님 이야기 알아들으시나요?- 부모님께 효도하실 것이고, 나라의 인재로서 커나가실 것이다.’ 그렇게 되어 주시기를 스님은 지극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이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전통문화, 또 부처님께 기도 정진하는 이 착한 마음을 우리 온 가족이, 어린이, 청소년이 함께 지켜갈 지이다.”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스님이 너무 시간을 오래 가지면 어린이들한테 “도대체 뭔가” 이렇게 걱정이 될까 봐 저도 마음에 조바심이 처집니다. 또 뒤를 이은 많은 행사가 있으셔서 그렇게 넉넉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자료가 좀 무겁고 어렵습니다. 이것은 자료로서 집에 가지고 가셔서 또 꺼내 읽어보고, 또 꺼내 읽어보고, 국행수륙대재가 10월 9일날 회향할 때까지 한 30번만 꺼내 보시면은 이제 뜻을 아시게 됩니다. 우리 주지 스님, 또 회주스님 함께 자리해 주시는데 참 거룩한 분이고, 어산어장 스님께서 어장이 되시고 이번에 처음 수륙재를 이끌고 계십니다. 거기에 이으신 우리 대중스님들도 어려운 일이 많으실 텐데, 항상 웃는 얼굴로 이 도량을 지켜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주지 스님께서 오늘 이 법회의 내용을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주신 장본인이세요. 저한테 아마 그 주제를 물으셨던 것 같은데, 저는 너무 바쁘니까 그냥 지나갔어요. 그래 어느 날 거룩한 큰스님, 우리 회주스님 다 법문을 하시길래, 내 차례가 언젠가 떡 열어봤더니 <화엄경 탐현기>라고. 제가 그때부터 고민이 컸습니다. ○ 智儼(지엄)스님(602-668) 『搜玄記(수현기)』 3주 인과擧果勸樂生信分(거과권락생신분)----信(신) 修因契果生解分(수인계과생해분)----解(해)依緣修行成德分(의연수행성덕분)----行(행)과 證(증) ○ 法藏(법장)스님(643-712) 『探玄記(탐현기)』 5주 인과敎起因緣分(교기인연분)2. 擧果勸樂生信分(거과권락생신분)----信(신) 3. 修因契果生解分(수인계과생해분)----解(해) 4. 託法進修成行分(탁법진수성행분)----行(행)5. 依人入證成德分(의인입증성덕분)----證(증) 부처님의 거룩한 화엄경이 저 인도 땅에서 찬술이 되어서, 그리고 중국을 향해서 전래되고, 그리고 중국의 화엄오조, 두순, 지엄, 법장, 청량징관 그리고 규봉종밀, 그래서 화엄오조라고 하는데, 그분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분이 지엄 스님이시고, 법장 스님이십니다. 지엄스님은 신라 의상스님의 스승이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라 의상 스님이 중국에 유학하실 때, 그 지엄스님의 거룩한 제자이시고, 그 사제 격으로 법장 스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의상 스님은 신라로 돌아오셔서 해동 화엄 초조, 이 동쪽에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화엄의 초조가 되셨고, 그 사제 벌인 법장 스님은 중국의 화엄의 3조가 되셨습니다. 그런 거룩한 역사를 갖고 계시는데, 지엄스님은 두순 스님이 스승이시고, 그 스승의 거룩한 제자가 신라의 의상과 현수 법장이세요. 그래서 그 지엄스님(智儼, 602-668)은, -화엄경은 방대합니다.- 80권 그 방대한 화엄경의 주석서를 쓰셨어요. 그 주석서가 수현기(搜玄記)예요. -오늘 공부 많이 하셔야 됩니다.- 화엄경 수현기. 그다음에 그 제자 스님인 법장 스님(法藏, 643-712)이 또 주석서를 쓰셨어요. 그게 탐현기(探玄記)예요. 이렇게 거창한, 그리고 200여 년 뒤에 청량징관(淸凉澄觀)께서 또 화엄경 주석서를 지었는데, 그것이 화엄경소(華嚴經疏)예요. 거기에 아주 제일 핵심이 되는 것이 화엄경 탐현기. 왜 우리 주지 스님이 제 법문에 탐현기를 끄집어내셨는지, 그래서 이 뜻이 어디에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여기에는 무슨 뜻이 있냐 하면, 이 불법이라고 하는 건 사자상승(師資相承)입니다. 스승과 상좌, 스승과 제자가 잘 이어가는 거. 그래서 지엄스님의 수현기 주석서, 그 제자이신 법장스님의 탐현기 주석서. 그래서 그 탐현기를 법문 주제로 해 주신 거예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 돌아가신 무위당 진자, 관자, 노사가 생각이 났어요. 저한테도 무척 자비롭게 해주신 그 스승의 뜻을 이어서, 지금 의상, 법장처럼 회주스님과 우리 주지 스님이 -박수 치고 싶죠, 치세요.- “진관사 도량을 잘 지키고 계시는구나.” 그래서 그러한 사자상승의 대표적인 거, 그리고 법이 살아있는 것이 수현기와 탐현기입니다. 그래서 내용도 스승이신 지엄스님께서 화엄경을 세 분야로 구분하시고, 그 뜻을 신해행증(信解行證)으로 구분하셨어요. 그걸 이제 그대로 받들면서, 그 제자인 법장스님은 오주 인과(五周 因果)로 나누셨어요. 화엄경을 오주 인과로 나누시면서 스승이 조금 미흡하게 지목하신 것을, 신해행증을 정확하게 구분을 지으셨어요. 잘 지금 이해하고 계십니까? 이해 못하셔도 괜찮아요. 가지고 가셔서 또 읽으시면 됩니다. 오늘 시간도 30분만 저한테 주셨어요. 그래서 이제 시간을 지금 재고 말씀을 드리는데, ‘그 30분 동안 그냥 이렇게 이렇게 말씀을 드려야 되겠다,’ 그래서 이제 제가 썼어요. 저도 일이 많죠. 그래 어제 제가 막 쓴 걸 보니까, ‘내가 법문을 하고 와서도 쪽지를 남겨드려야 우리 진관사에서 잘 제작하시겠다,’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어제 일이 네 가지가 있었는데 두 가지만 겨우 하고, 또 이제 다시 썼어요. 다시 쓰는 중간에 우리 총무 선우 스님이 연락이 왔어요. “스님 걸 받아보니 너무 한문만 빼곡하고, 불자님들이 보시려면 한글이 있어야 되겠다.” “난 모르겠다.” 그랬더니 이 법문지에 한글을 다 집어넣으신 게 우리 총무 선우 스님이예요. 그래서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 어린이들부터 모든 어른들이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래서 이런 뜻이 있어요. 첫째는 스승이 기본을 잡으셨고, 거기에 제자인 법장 스님이 화엄경 전체를 다섯으로 나누어서 그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신해행증이다. 아셨죠. 그래서 이 화엄경 전체는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일생을 사느냐.” 이게 너무 중요해요. <우리는 믿음을 바로 갖자.> 그래서 “믿음이라는 게 무엇이 있을까”. 이거는 화엄경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본각스님이 뽑은, 그것도 오늘 진관사를 위해서 뽑은 믿음의 글이에요. 信(신) 『화엄경』賢首品(현수품)信爲道元功德母 長養一切諸善根 斷除疑網出愛流 開示涅槃無上道 신위도원공덕모 장양일체제선근 단제의망출애류 개시열반무상도대정장 10/72중信無垢濁心淸淨 滅除憍慢恭敬本 亦爲法藏第一財 爲淸淨手受衆行신무구탁심청정 멸제교만공경본 역위법장제일재 위청정수수중행 현수품입니다.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元功德母), 다 너무너무 잘하셨어요. 그 줄에 무상도(無上道)라고 이제 쓰셨고요. 그래서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국행수륙대재를 매년 이렇게 해도 여기 진관사 불자님, 많은 불자님들은 믿음을 가지고 죽 여기까지 오시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보이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 모든 세계에 우리 살아있는 사람은 육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보이고, 또 눈을 감고 있으면 보이지 않아요. 더군다나 마음이 없으면 더 안 보여요. 그래서 이 본다는 게 참 허무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님들은 맑은 눈으로, 그리고 청량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보려고 하시는 거. 저는 여기에서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또 영단에 우리가 헌공 공양을 올릴 때 여기 계신 영가님들은 참 행복하신 영가들이다. 자손께서, 스님들께서 이렇게 챙겨 드리니까요. 저는 요즘 제일 슬픈 영가가 저 지구 반대 쪽에서 그 무참한 전쟁으로 15만 명, 20만 명, 앞으로 몇십만 명이 될지. 제대로 먹기나 했을까요. 제대로 부모님 생각이나 했을까요. 그 포탄 속에, 한 사람의 탐욕으로 일으킨 이 무참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젊은이들을 15만 명, 20만 명을 그냥 죽어가게 해요. 저는 그래서 또 한편으로 “그 슬픈 영가와 외로운 영가가 다 이 진관사 수륙대재의 공양을 받으소서.” 아마 소통이 됩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커서 동양의 우리 인재가 될 것이고, 그 슬픈 영가가 이 법식, 이 수륙대재의 모든 공양을 함께 받고, 이고득락 고통을 여의고, 저 극락왕생을 하기를. 그러면 우리 수륙대재가 보이고 보이지 않는 우주 법계를 다 그냥 하나로 통해서 얼마나 거룩한 것이냐. 이 말씀을 믿으시나요? 우리 불자님들. 믿으시면 우리는 신이 성립이 된 거, 믿음이 성립된 거예요. 겨우 우리 눈에 보이는 거, 보잘것없는 거, 거기에 얽매이고 살던 우리가 부처님 법에 의해서 모든 걸 확 넓혀서, -이 탁 소리가 할입니다.- 이 제한된 공간을 확 벗어나는 것, 시간 공간을 벗어나는 그 소리입니다. 그래서 그 슬픈 영가, 외로운 영가가 다 함께 이고득락 해서 그 기쁨으로 대한민국을 편안하게 하오소서. 우리도 똑같은 위치예요. 북쪽에서 호시탐탐 우리를 바라고, 까딱 잘못하면 우리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라고 하는 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오는 9일까지 우리가 이 수륙대재에 임한다면, 우리의 조상님은 물론이고 그 모든 영가가 다 공양을 받을 것이다. 이 믿음이 모든 공덕을 만들어내는데 어머니가 돼요. 공덕은 항상 움직여요. 생명체예요. 그래서 그 공덕을 생명체로 자꾸 움직여가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선근(善根), 착한 뿌리를 다 만들어내는 게 우리의 마음이고 우리의 공덕이에요. 그리고 우리나라만, 우리나라만 하는 건 애류(愛流)예요. 그것을 벗어나는 것, 모두가 다 함께 이 거룩한 법에 다 인연 지어지이다. 좁은 우리 가족끼리 사랑하고, 이건 애류가 됩니다. 근데 모든 생명이 함께 대한민국이 전부, 온 우주 공간이 다 편안해진다. 애류를 벗어나시는 거예요, 아시죠? 우리는 사랑, 사랑, 사랑하는데 그 사랑은 아주 작아요. 그리고 좁아요. 그래서 우리 진관사 불자님들은 그 좁은 사랑, 제한된 사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애류를 벗어나서, 개시열반무상도(開示涅槃無上道)라, 부처님 제일 지위, 최고의 것을 우리가 다 얻을 것이다. 제가 이렇게 믿음이 확립되면, 우리 불자님들, 스님들도 믿음이 확립되셨지요. 네, 여쭙니다. 그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은 이것은 뭐 누구나 다 아시는 거예요. 모르시는 분은 오늘부터 ‘아, 이게 불교의 믿음이구나.’ 그러시면 되고, 이 믿음이 확립되면, 신이, 한 마음이 믿음으로써 청량하면 바로 청정의 세계에 들어간다. 그래서 다른 모든 것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내가 청정해지지 않으면은 그 믿음은 불교로서 의미가 없어요. 아셨죠.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신즉청정이라. 믿음이 확립되면은 내 마음도 함께 청정한 경지에 다 머물러 계세요. 그러면 그분이 나쁜 일 할 리가 없고, 그분이 거짓말할 리가 없고, 그분이 남에게 손해를 끼칠 일이 없습니다. 이제 그런 마음 말씀을 드리고요. 解(해)時間과 空間(시간과 공간), 1찰라와 1점, 全宇宙와 永劫(전우주와 영겁)을 분명히 알아차림.「如來出現品(여래출현품)」 대정장10/266중, 267하, 272하無信無解 邪命自活 無信眼故 不見諸佛智慧日輪 無信衆生不見佛무신무해 사명자활 무신안고 불견제불지혜일륜 무신중생불견불自於身中 得見如來廣大智慧與佛無異자어신중 득견여래광대지혜여불무이 믿음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일생을 무엇을 믿고 살 것이냐. 그래서 여래출연품(如來出現品)에 무신무해(無信無解), 신해행증이 여기 다 들어가 있죠. 이러한 바른 믿음도 없고, 바르게 아는 것도 없고, 믿으려고 하는 눈도 없어요. 내가 정확히 봐야, 여기에 국행수륙대재에 오시면 다 이 참석이 힘들고 그래도, ‘이런 전통이 이와 같이 지켜지고 있구나, 그리고 법사스님 말을 들으니까 우리가 이 공덕을 믿으면 유주무주고혼, 보이고 보이지 않는 모든 영가가 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서 즐거움을 얻는구나.’ 근데 그 믿음의 눈이 있어야 되는데 없으면 어떡하느냐. 불견제불지혜일륜(不見諸佛智慧日輪), 부처님의 이 거룩한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무신중생불견불(無信衆生不見佛)이라, 믿음이 없는 중생이 어떻게 부처님을 보겠느냐. 우리 여기 계신 분은 매 순간 부처님과 같이 계셔요. 저는 무슨 일을 하다 너무 뜻과 같이 되면 ‘부처님이 옆에 계셨구나.’ 또 무슨 일이 뜻대로 안 되면 ‘부처님이 이거는 내려놓으라고 하시는구나.’ 부처님이 함께 계심을 믿으면은, 막 잘 되는 일에만 우리가 들떠있는데, 잘 안 되는 일도 있어요, 지혜로운 사람은 잘 되는 일에는 끝없이 감사해요. ‘부처님이 함께해 주셨구나.’ 잘 안 되는 일에는 굉장히 겸손하고 겸허하면서 ‘다 내려놓으란 말씀이구나.’ 내려놓고 다음 일을 찾으시면 돼요. 이것이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과 함께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없으면 부처님을 보시고 ‘내가 그렇게 했는데 왜 이리 안 돼, 아유 진관사로 가기 싫어.’ 이러시면 이제 무신중생이에요. 그래서 득견여래광대지혜여불무이(得見如來廣大智慧與佛無異), 우리가 그러한 마음을 가지면 우리도 자꾸 지혜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부처님으로 더불어 내가 다르지 않거나, 여불무이, 우리가 부처님 마음의 순에서 행위하면은 바로 우리는 부처님 따라 하는 거예요. 부모님 마음, 말씀을 받들면은 부모님을 따라 사는 거예요. 우리 어린이들 오늘 가자 해서 와서 지금 우리 부모님처럼 따라 이렇게 있는 거예요. 여불무이. 우리가 사는 것이 부처님 그대로 사는 것이다. 한 개 더 해드리고 싶어요. 제가 이 이세간품(離世間品)에 이게 다 믿음으로 연결되는 건데, 신해로 너무 좋아서 불교 방송에 가서 하고, 금련사 일요법회에 가서, 또 법룡사 일요법회 하고, 오늘 진관사에서 해드리면 제가 이제 이 글귀를 마음에 담으려고 합니다. 거기 한글을 다 해주셨네요. 「離世間品(이세간품)」 <決定無疑(결정무의)> 대정장 10/285상菩薩又作是念 我當知一切法 莫不皆是出世間法 遠離一切妄想顚倒 보살우작시념 아당지일체법 막불개시출세간법 원리일체망상전도 以一莊嚴而自莊嚴而無所莊嚴 於此自了 不由他悟 發此心時 決定無疑이일장엄이자장엄이무소장엄 어차자요 불유타오 발차심시 결정무의 우리가 세간법, 출세간법을 아시나요? 그냥 일반적으로 밥 먹을 세간법이에요. 아이들 키우고 돈 버시고. 출세간법은 부처님이 보이지 않지만 부처님을 보려고 하고, 부처님이 하시는 걸 따라 하려 하고, 100년이 지나도 그 진리가 이어져 가는 걸 믿으시는 것이 출세간법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분명히 나눠지는데, 세간의 모든 가치로운 일을 하는 게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일이다. 따로 있지 않다 이 말씀이에요. 세간법이고 출세간법. 그러면 세간에 하시는 모든 일을 얼마나 진지하게 하시겠어요. 배고픈 사람한테 밥 한 그릇 줄 때도 정성을 다해 주시면 돼요. 저 사람 그냥 밥 얻어먹는 거 아니에요. 정말 지극한 마음으로 밥상을 차리고. 그래서 세간법이 곧 출세간법이다.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러다 보면 그다음, 이일장엄(以一莊嚴), 이게 요즘에 저희가 너무 좋아서 막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아요. 장엄 아시나요? 장엄이라는 단어. 오늘 절에 오시느라 본인들 다 장엄하시고 저도 막 장엄했어요. 부처님 앞에도 꽃으로 장엄, 과일, 촛불 다 장엄이에요. 방석이 비뚤게 놓이면 제가 똑바로 놓는 것, 그것도 장엄이에요. 우리가 모여서 이렇게 큰 조화로움을 이룩하는 게 다 장엄이에요. 아셨죠. 장엄이 바로 공덕인데, 이일장엄이에요. 집에서 “아, 오늘 오재 가야지” 이 마음이 이일장엄이에요. 그 마음 안 일어나시면 지금 뭐 하고 계실까요. 그래서 이 한 장엄이 그렇게, 제가 방석 조금 비뚤어진 걸 바로 하는 게 일장엄이에요. 어떻게 우리 진관사는 이렇게 장엄하고 계실까. 모두가 다 한 마음으로 일장엄. 전 이거 다 외웠어요. 일장엄을 하면은 그렇지만 그것은 바로 자장엄(而自莊嚴)이에요. 자기 자자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아 누가 하겠지, 누가 마당 쓸겠지.’ 그러면 타장엄이 돼요. 아셨죠.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 화엄경 이세간품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밤에 갑자기 이거를 화엄경 대장경 몇 페이지를 기록하려고 그거 찾느라고 또 죽을 뻔했네요. 왜냐하면 내가 보통은 탄허스님 책으로 하는데, 우리가 대외적으로 할 때는 대장경이 기본이 돼야 돼서, 대장경 페이지를 찾았어요. 이 대장경 표시는 어디든지 찾으시면 찾으실 수 있는 거예요. 요즘 검색의 시대에요. 사유는 없어지고 검색만 나오지요, 우리 불자님들은 검색과 사유를 같이 하실 수 있어야 해요. 아셨죠. 모르는 거 다 검색하셔요. 그리고 집어 던지지 마시고, 깊이 사유하시고. 그래서 저는 이 일장엄, 자장엄으로 사유를 해요. ‘내가 장엄해. 내가 선두에 서야 되겠다. 내가 해야 되겠다.’ 아셨죠. 그다음에 무소장엄(無所莊嚴)이에요. 했다는 마음 없이 해야지, ‘스님 제가 오늘 떡 했습니다. 제가 마당 쓸었습니다’ 하면 이 장엄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다음에 무소장엄, 장엄하는 바가 없다. 일장엄 자장엄 무소장엄 아셨죠. 그다음이 더 중요해요. 그다음에 보면 어차자요(於此自了), 요자는 잘 알아차리는. 어차자, ‘나 오늘 장엄했구나, 공덕의 마음을 가졌구나.’ 스스로 알아차리는 거, 그렇게 알아차리면 그 사람은 다음에 또 일장엄 할 거고, 자장엄 할 거고, 무소장엄 하실 거예요. 아셨죠. 그래 어차자요. 그다음이 뭐예요. 불유타오(不由他悟). 이건 누가 알려줘서 하는 거 아니다. 누구 말 들어서 하는 거 아니다. 아셨죠. 스스로 알아차리고 스스로 했다는 생각 없이, 그렇지만 모든 공덕 장엄을 끊임없이 하시는 거, 너무 좋지 않으셔요? 네, 정말 좋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를 신해, 잘 믿고. 그러면 신해행증을 누가 세웠냐. 스승이신 지엄이 세우셨고 그것을 다시 잘 정돈하신 분이 우리 주지 스님이 좋아하신 탐현기에서 법장 스님이 하신 거예요. 行(행) 「離世間品(이세간품)」 <魔所攝持(마소섭지)> 대정장 10/309상懈怠心, 志樂狹劣, 於少行生足, 受一非餘, 不發大願, 樂處寂滅 斷除煩惱 해태심, 지락협렬, 어소행생족, 수일비여, 불발대원, 낙처적멸 단제번뇌 永斷生死 捨菩薩行 不化衆生 疑謗正法 ...영단생사 사보살행 불화중생 의방정법 그래서 해, 정확히 알지 않으면 우리가 뭘 실천하겠습니까. 그래서 믿고, 해는 정확히 알고, 그 안 거 중에 오늘 핵심이 일장엄하고, 자장엄하고, 그리고 무소장엄하고, 자요하고, 불유타오 하는 거, 잘 아셨죠. 이렇게 잘 알아도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다 헛된 거예요. 여기까지 오셨으니까 우리가 같이 공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세간품(離世間品)이 너무 재밌어요. 마소섭지(魔所攝持)라고 지금 읽으십니까? 마구니에 포섭된 사람. 마구니가 누구예요. 아주 나쁜 이죠. 부처님 법이 아닌 나쁜 데, 우선 그냥 광신자, 그냥 남을 욕하는, 마소섭지는 뭘 실천할 것이냐. 마구니에 포섭된 행위를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절대 안 되죠. 근데 마구니에 포섭된 사람을 보면 해태심(懈怠心), 게으른 마음이 첫째. 그러니까 여기 계시는 모든 분이 게으른 마음이 나면 ‘이건 마구니에 내가 포섭돼 있구나’, ‘수륙재 좀 오늘은 안 가도 돼.’ 마구니에 포섭이 된 거예요.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모든 공덕을 다 짓지 않는 거. ‘다 귀찮고 내가 안 해도 돼.’가 마구니예요. 지락협렬(志樂狹劣)은 뭐예요. 지는 의지에요. 기상이 협렬해. ‘아유, 그냥 조그만 하고 말지.’ 좁아 터진 거, 열등한 그건 마구니. 소행생족(少行生足)은 뭐예요. 조금 해놓고 만족감을 갖는 거. ‘아유, 나 주지스님한테 할 만큼 했어.’ 이게 소행생족이에요. 수일비여(受一非餘) ‘하나, 뭐 좀 해주세요. 또 하나, 난 한 개 했어요.’ 수일비여예요. ‘하나 하면 됐지 뭘 더 해요.’ 근데 우리는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오직 할 뿐이에요. 했다는 생각이 그게 부처님의 세계예요. 그다음에 다 못 뽑았어요. 불발대원(不發大願)이에요. 대원을 일으키지 않아. ‘그냥 대충하고 말지.’ 그런 거. 낙처적멸(樂處寂滅)로, 우리 스님들 ‘저희 집에 일이 너무 많아서 산중에 좀 고요한데 가 앉았으면.’ 저도 가끔 그럽니다. 그러면 ‘마구니한테 포섭됐구나. 그러시면 돼요. 단제번뇌(斷除煩惱) 영단생사(永斷生死), 번뇌도 우리가 다 끊어버리면은, 중생하고 너무 동떨어지면 안되요. 번뇌있는 중생하고 조금 이웃해야 돼요.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 잡는다는 소리에요. 근데 내가 너무 청정하고 고고하면 다른 분이 접근도 못하죠. 아셨죠. 그래서 다 탈탈 다 털어버리고, -우리 삶이 생사예요.- 딱 끊어버리고 저 혼자 독불장군으로 그러면 안 된다, 이 대승보살은. 그래서 화엄경에는 뱃사공 비유가 있어요. 보살은 뱃사공이 되어서 이쪽에 힘든 중생을 잘 태워서 편안한 데로 데리고 가고, 거기 편안한 데 갔으면 나도 거기 있고 싶지만 거기 있으면 안 된다. 다시 물을 저어와서 힘든 중생을 다시 실어가야 한다. 그게 영단생사. 그런데 이게 마소섭지니까 그걸 딱 끊어버리면 어떻게 해요. 뱃사공 안 하는 거야. ‘힘들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고 나는 열반에 머물거야.’ 이런 마음이 나면, -이거 잘 이해하셔야 돼요.- 그러면은 마구니에 포섭된 거에요. 사보살행(捨菩薩行), 그러다 보면 나 혼자 편하면 끝나니까 보살행을 안 하게 돼요. 불화중생(不化衆生),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그리고 정법을 비방하게 된다. 내가 정말 보살도를 행하지 않고 “아유, 스님들 뭐 저런 걸 저렇게 해” 이러면 정법을 비방하는 거예요. 우리가 장엄이라는 건 ‘여기가 일이 많으시지만, 진관사는 이 전통을 지켜가시는구나.’ 이건 정법을 비방하는 게 아닌데, 우리 스님들 중에도 ‘힘들고 일 많고.’ 이러면 마구니에 포섭돼서 정법이 비방되는 겁니다. <佛所攝持(불소섭지)> 初始能發菩提心 於生生中持菩提心 覺諸魔事 悉能遠離 聞諸波羅密 如說修行초시능발보리심 어생생중지보리심 각제마사 실능원리 문제바라밀 여설수행知生死苦而不厭惡 觀甚深法 得無量果 ...지생사고이부염오 관심심법 득무량과 그다음에 그러면 부처님께 포섭된 사람은 어떠냐. 이걸 꼭 기억해 주세요. 불소섭지(佛所攝持). 부처님께 포섭된 사람은 어떠냐. 거기 보시면 초시능발보리심(初始能發菩提心). 처음에 보리심, ‘부처님을 따라가리’, 보리심, 발보리심이에요. 어디에서 어떻게 계시든지 딱 부처님 보면 ‘나도 부처님처럼’ 이 마음 한 번 일으키면 그 사람은 누구한테 포섭된 사람이에요? 부처님께, 부처님께 포섭된 사람이에요. 그래서 한 마음을 일으키는 거. 그다음에는 또 보세요. 어생생중지보리심(於生生中持菩提心). 그러한 마음을 일으켜 가지고, 보리심을, 금생의 보리심을 지켜가고, 다음 생애도 지켜가고, 다음 생에도. 저는 삼생의 원을 세웠어요. 아마 전생에도 본각은 스님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좀 괜찮은 스님. 금생에 이만큼 살았어. 다음 생엔 또 좀 괜찮은 스님으로 살아야지. 그다음 생에는 더 거룩한 스님. 우리 불자님들도 평생에는 요만큼 불자, 다음 생에는 더 거룩한 불자, 그래서 생생 가운데 지보리심, 그 부처님의 마음을 다 지속해서 가지고 있는 이게 부처님께 포섭된 사람. 그다음에는 마사(魔事), 마사는 ‘뭐 잘못돼,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이건 마구니 일이라,’ 이걸 알아차리시는 거예요. 매 순간 엉뚱한 일 하시면서 그게 마구니한테 포섭되는지도 모르고 끌려가면 그건 아니다. 그래서 각제마사(覺諸魔事)라. 그리고 멀리, 모든 것을 멀리하고, 문제바라밀(聞諸波羅蜜), 육바라밀 아시죠? 다 바라밀을 실천하려고 여설수행(如說修行)이 너무 좋아요. 우리가 일생을 부처님 말씀대로 실천하잖아요. 그래서 진관사처럼 잘 배우고 내 눈으로 정확히 보고 그것을 여설수행, 부처님 말씀대로 실천하자. 그러면은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 포섭된 사람이다. 좋으시죠. 읽으시면 돼요. 모르시면 우리 주지스님이나 우리 회주스님이 굉장히 박식하셔요. 다 우리 중앙승가대학교. 거룩하시니까 질문해 주세요. 그래서 이세간품은 200개의 질문을 하고 하나의 질문에 10가지씩 답을 해서 2천 가지 행문이 펼쳐져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골라서 하시면 돼요. 그래서 저도 이세간품에서 골라온 거예요. 불자님들도 골라서 하시면 돼요. 證(증) 「入法界品(입법계품)」 <보덕정광주야신게송> 대정장 10/372하若有信解心 盡見三世佛 彼人眼淸淨 能入諸佛海약유신해심 진견삼세불 피인안청정 능입제불해汝觀諸佛身 淸淨相莊嚴 一念神通力 法界悉充滿여관제불신 청정상장엄 일념신통력 법계실충만 그런데 입법계품(入法界品)은 증득 법계 진리의 세계에 들어갔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입법계품에서 제가 뽑은 거는 약유신해심 진견삼세불(若有信解心 盡見三世佛), 이제 믿음과 해가 정확히 서 있으면 그 사람이 부처님을 볼 것이다 이 말이에요. 아시죠. 요즘 제가 원력을 세워요. 우리 회관에 부처님을 모셨는데, 연꽃 봉우리가 여섯 개 있어요. 그래서 새벽에 기도할 때, 두 개, 앞에 튀어나온 두 개는 지혜의 눈을 갖게 해주세요. 중간에 두 개는 자비의 손을 갖게 해주세요. 자비의 손으로 모든 걸 자비롭게 하세요. 마지막에는 제일 안쪽에 있는 건 원력의 다리를 갖게 해주십시오. 눈과 손과 다리만 있으면 뭐든지 해요. 앉아 있으면은 손으로 하시고, 손이 힘들면은 눈으로 하시고, 세 가지가 다 있으면 눈으로 보고 손으로 하고 발로 움직이고. 여기 오신 분은 다 그래서 지혜와 자비와 원력을 하시는. 그 눈이 피인안청정(彼人眼淸淨), 그 눈이 청정하면, 능입제불해(能入諸佛海), 부처님의 바다에 바로 들어갈 것이다. 여관제불신 청정상장엄(汝觀諸佛身 淸淨相莊嚴), 네가 부처님을 봐라, 이제. 눈 뜨고. 부처님의 모습이 얼마나 장엄스러운가. 부처님의 모습이 얼마나 공덕인가. 한마음 일으키면 다 할 수 있잖아요. 일념신통력(一念神通力), 그러면은 그때부터 신통이 막 나오기 시작해요. 스님들도 신통 부리고, 불자님도 막 신통 부리지. 그러면 좋은 마음을 가지면 선신이 보호하기 때문에 좋은 일이 막 이루어지는 것에요. 그래서 신통력. 법계실충만(法界悉充滿), 온 우주 법계가 환희로서 충만할 것이다. 공덕으로 충만할 것이다. 자비와 지혜와 원력으로 충만할 것이다. 그래서 법장 스님이 신해행증, 화엄경은 신해행증이다. 이거 수없이 뽑을 수 있는데, 이것은 제가 본 화엄경이에요. 오늘 같이 실천해 주십시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