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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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행수륙재] 9월 18일 국행수륙재 4재 법문
지현스님 2022-09-18
국가무형문화재 126호 진관사 수륙재 보존회에서 수륙재를 봉행하는 중에 오늘 제 4재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묻겠습니다. 부처님을 많이 청하고, 또 보살들을 많이 청하고, 또 여러분들의 조상님들을 많이 청해 모셨는데요. 여기 와 계실까요? 부처님과 조상들이 여기 와 계실까요? 옛날 어떤 큰 스님이 자기 선사의 제사를 모시면서, 이제 제사 준비를 다 해놓고 대중들을 다 모아놓고, “내일이 큰스님 기일인데 큰스님이 오겠느냐?”라고 물으니까, 한 700명 대중 중에서 대답한 사람이 없었는데, 엊그제 온 행자가 앞으로 나와서 큰 절을 삼배 드리고 “돌아가신 큰 스님과 뜻을 같이 하는 분이 있으면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그 큰스님이 “이 아이가 나중에 큰 선지식이 되겠다.”고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과 뜻을 같이하고, 보살들과 뜻을 같이하고, 여러분들의 조상들과 뜻을 같이 함께한다면, 여러분들이 미래에 선지식이 되고 구경에 부처님이 될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미래 부처님이시고, 또 과거 어느 생에선가 윤회하는 과정 속에서 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였던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여러분들의 행복을 위해서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합장하십시오. 삼귀의계. 이번 생에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께 귀의한 나는 이 세상에서 빛과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진 길을 봅니다. 이해와 사랑의 길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한 나는 행복의 길로 통하는 갖가지 문을 여는 법을 배웁니다. 화합과 깨달음 속에 살아가는 공동체인 승가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한 나는 수행의 장애를 없애주는 그 환한 빛의 도움을 받습니다. 편안히 앉으십시오. 조상들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고마운 마음으로 조상들에게 인사합니다. 종소리를 들으면은 땅을 만지십시오. 그리고 들으십시오.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와 살과 생명력이 혈관에 흐르고 있음을 알고 내 몸을 사랑하고 아낍니다. 그들의 기대와 경험, 지혜가 전해져 옵니다. 내 마음 안에, 내 몸 안에 전 세대의 생명과 기대, 지혜, 행복, 슬픔 등이 전해 옵니다. 마음과 몸과 뼈를 열어 통찰력과 사랑의 에너지를 받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뿌리를 느낍니다. 내가 조상들의 연속임을 압니다. 그대의 에너지를 저에게 주시고 저를 보호해 주세요. 내 아이들과 손자, 손녀들이 어디에 있든 조상들이 거기에 있을 것임을 압니다. 또한 부모들이 자신들이 직면한 어려움 때문에 사랑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언제나 자녀들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조상들이 고마움과 즐거움, 자신감과 존경심의 바탕 위에 삶을 세우려 했음을 압니다. 나를 통해 그들의 에너지가 흐르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보호해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숨을 들여 쉬면서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쉬면서 내 성품이 아미타불.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손을 들고 편안히 앉으십시오. 내 몸의 호흡과 혈관에 흐르는 피, 그리고 모든 것이 아버지, 어머니의 것일 뿐만 아니라 과거 모든 조상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은, 모든 조상들은 우리 몸 속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혈연의 조상들이 언제나 자녀들의 행복을 기원했던 사실도 알게 됩니다. 가문을 빛내고 훌륭한 인물이 되어서 세상을 빛내게 할 수 있는 그런 기대감, 그런 원력들이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해야 됩니다. 몸에 대해서 조금만 더 말씀드릴게요. 숨 안 쉬고 사시는 분 있습니까? 없지요. 공기가 없으면 숨 쉴 수 있나요? 공기가 내 생명일까요? 아닐까요? 내 생명이죠. 공기가 내 생명이라면 공기를 숨 쉬는 모든 생명체가 내 생명일까요? 아닐까요? 그냥 물 안 마시고 사시나요? 물 안 마시고 사실 수 없죠. 물을 안 마시고 살 수 없다면 물이 내 생명이죠. 물을 마시는 모든 생명체가 내 생명이며, 땅 안 밟고 살 수 있나요? 못 살죠. 땅은 모든 조상들이 의지해 살던 곳이고, 우리도 의지에 살던 곳이고, 우리의 미래 자손들도 의지해 살 곳이잖아요. 그건 땅이 내 몸이니까,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나와 한 몸이죠. 지구를 한 덩어리라고 할 때 지구를 두 개, 세 개로 나누어서 싸우지는 않잖아요. 지구는 하나니까. 만약 외계인들이 지구를 공격한다면 지구 모든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막아낼 겁니다. 그렇겠죠. 태양 없이 살 수 있나요? 없죠. 태양의 빛이 없으면 살 수 있는 생명이 없어요. 그 태양의 따뜻함과 밝은 기운으로 우리가 살아가면 태양이 내 마음속에, 내 몸속에 나를 살리는 에너지가 되고 있습니다. 불과 물과 땅과 공기, 이 네 가지가 없으면 살 수 없죠. 이 네 가지가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지요. 이런 요소가 내 안에도 있고, 내 밖에도 있잖아요. 내 안에 있는 것은 육신의 몸이라면, 내 밖에 있는 것은 외신의 몸, 내 마음 밖에 내 몸 밖의 몸이라고. 근데 이 몸뚱이만 있으면 되나요? 마음도 있어야 되잖아요. 그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내 마음을 바르게 관리할 수 있도록 바른 정신, 밝은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스승님과 우리들의 관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2. 고마운 마음으로 스승들에게 인사합니다. 다시 종소리를 들으면서 대지를 만집니다. 내 안에 사랑과 이해의 길을 보여주는, 호흡하고, 미소 지으며, 용서하고, 현재를 충실히 살도록 길을 보여주는 스승이 있음을 압니다. 스승들을 통해 옛 세대와 전통을 보며, 몇천 년 전 나의 정신적 가족으로 나타난 스승에게로 돌아갑니다. 부처나 예수, 원로들을 내 정신적인 스승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의 에너지가 나에게 들어와서 평화와 이해, 사랑을 만들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러한 에너지가 세계를 바꾸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스승이 없었다면 평화와 행복을 내 삶에 가져올 길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열고 자각한 스승들로부터 사랑과 이해의 에너지를 받을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후손입니다. 이 정신적 스승들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사랑과 자비와 평화와 안정을 전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는 이 세계의 고통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을 할 것이며, 다가올 미래 세대에게 사랑과 에너지를 전하기 위한 실천도 할 것입니다. 스승들 역시 고난을 겪었을 것이고, 가르침을 항상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임을 압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다시 편안하게 앉으십시오. 나를 낳아주신 것은 부모님이고,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신 분은 스승님입니다. 나를 깨닫게 해주신 분들은 모두가 다 스승입니다. 조상도 스승일 수 있고, 부모도 스승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만나서 나를 깨우쳐준 모든 분들이 스승이고, 그런 스승들 역시 법연의 스승들을 통해서 법을 이어받았을 것입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뛰어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좀 모자라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어느 때는 활극을 연출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또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법을 향해서 정진하셨던 분들이고, 중생들을 위해서 그 법을 전해서 세계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애썼던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을 수행공동체 승가라고 합니다. 이 진관사는 제가 알기로, 이렇게 이제 말사 사찰로서는 가장 청정한 스님들이 가장 청정한 도량을 만들어가면서, 가장 청정하게 부처님의 정법을, 바르게 배우고, 익히고, 수행하면서 많은 불자들에게 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에 외교관들이나 또 세계에서 오시는 외국의 손님들이 서울에 오면 반드시 진관사를 참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도량을 만드신 것은 우리 진관사 회주스님과 주지스님의 공덕이니까, 이분들에게 박수 한번 보내드리죠. 우리는 혈연의 은혜도 저버리는 경우들이 더러 있습니다. 아버지를 내다 버리고, 어머니를 내다 버리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왜 그런가. 법의 인연을 소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법을 제대로 배운다면 가장 인간이 인간다운 인간의 삶을 살 수 있잖아요. 진관사에서 기도하고 명상하고 수행하신 분들은 분명 세상에서 모범이 될 수 있고, 훌륭한 가문을 이끌어 나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분명 훌륭한 사람으로서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가장 정직하고, 성실하고, 청렴하게 자기의 소임을 이루면서 가족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피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 뭔가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래서 진관사 모든 신도들, 또 진관사에 오실 미래의 모든 신도들을 위해서 박수 한 번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또 한 번 종소리를 들으면서 대지를 만집니다. 3. 고마운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이 땅과 조상들에게 인사합니다. 나는 건강하고 이 땅과 생명체로부터 보호받고 있음을 압니다. 또한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모든 것을 봅니다. 이 나라에 자신들의 사랑과 재능, 인내력으로 인종과 기원을 망라한 휴식처를 만든 사람들을 압니다. 그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길을 닦았으며, 인간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고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자유와 사회 정의를 위해 싸워왔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이 땅에서 살아오고 자연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이 땅의 모든 자원과 숲, 동물과 산을 보호하는 법을 알았던 조상들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이 땅의 에너지가 몸과 영혼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이 에너지를 유지하여 후세에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집단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폭력과 망상, 증오를 변화시켜서, 미래의 세대가 좀 더 안전하고, 즐겁고,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기도합니다.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혈연의 조상에게 인사를 드렸고, 법연의 조상들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혈연으로 법연으로 내가 나답게,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니 내가 살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지수화풍, 모든 자연의 현상들과 또 내 밖에 나인 다른 많은 훌륭하신 분들의 덕분에 내가 배울 수 있었고, 또 일을 할 수 있었고, 수행할 수 있었던 모든 인연들에게 고마워하고, 감사합니다. 학교를 짓고, 병원을 짓고, 복지시설을 짓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그 속에서 자기 욕심을 줄이고, 자기가 원하는 행복한 세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애썼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이 법계의 모든 중생들이 다 행복하기를 발원하면서 우리 박수 한번 칩시다. 이분들에게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돌아보면은 나 아닌 사람이 없고 또 은혜롭고 고마운 분 아닌 분이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은 내가 그분들에게 뭔가를 이바지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한번 우리가 또 명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종소리를 들으면서 대지를 만집니다. 4. 고마운 마음으로 절하고 내 에너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내가 받은 이 모든 에너지를 아버지, 어머니, 사랑하는 스승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고통받고 고뇌하는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아직도 고민에 쌓여 있음을 압니다. 그들은 불우한 환경을 타고 났습니다. 내 에너지를 어머니와 아버지, 내 형제자매들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합니다. 이제 그들의 고통은 옅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소 짓고 살아있음을 즐거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건강하고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나 또한 행복할 것입니다. 그들이 행복할 때 나 역시 행복하다는 것을 압니다. 더 이상 그들을 향해 원망하지 않습니다. 내 혈육과 정신적인 스승들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기를 기원합니다. 나와 그들이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압니다. 나는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하나입니다.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상품이 아미타불 여러분들은 다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위대하신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은 다 미래의 부처님이 되실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여러분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부모 없이 태어나신 분 있습니까? 없지요. 부모님 역시 그 윗대 부모를 의지해서 태어났을 것이잖아요. 그러면은 우리가 잘 생각해 보십시오. 손목을 이렇게 집어보면은 피가 뛰는 것을 느끼죠. 호흡을 느끼기도 하고요. 이럴 때 이 호흡이 아버지, 어머니가 물려주신 것이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물려주신 것이며, 백대, 천대, 만대의 조상들이 물려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식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성공하기를 바라잖아요. 그런 것처럼 모든 과거 조상들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누구에겐가 뭔가를 가르칠 때,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사랑에 담아서 남들에게 나눠주기를 바랬을 겁니다. 그러한 것 역시 내 혈관에 돌고 있는 피와 함께, 내 정신세계를 그렇게 움직여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또 몰라서 무엇을 배우러 갔을 때, 이렇게 해서 모든 분들과 인간관계가 맺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고마운 인연들 덕분이죠. 그 모든 조상들이 내 몸속에 있고, 모든 자손들이 내 몸속에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모든 분들에게 고맙고, 감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가장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숨을 들이쉬면서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시면서 내 성품이 아미타불 하는 것은 지금 내가 그런 모든 은혜로운 분들과 하나 되는 거, 처음 말씀드렸던 지수화풍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랬을 때 나밖에 다른 남남은 없습니다. 남들은 전부 내 마음속에 있고 나는 역시 남들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과 나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라는, 이 사실에 대한 이해라면은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행복할 수 있고, 또 행복한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둘에 둘을 더하면 얼마가 됩니까? 2와 2를 더하면 4가 되죠. 이 말을 이렇게 이해하십시오. 이해하고 또 이해하면은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해하고 또 이해하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 5 더하기 3을 하면 어떻게 되나요? 8이 되죠. 이것을 이렇게 이해하십시오. 오해하고 있을 때, 오해해본 일이 있습니까? 오해로 불편했거나, 또는 다퉜었거나, 그런 경험들이 있죠. 오해하고 있을 때, 내 입장에서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은 피가 팔팔 끓는다는 이야기는 화가 나죠. 미쳐 돌아버릴 것 같잖아요. 그러나 5에서 3을 빼면 어떻게 되나? 2가 되죠. 이것을 이렇게 이해하십시오. 오해하고 있을 때 상대편의 입장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또 이해하고, 또 이해한다면 그러면은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사람 입장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거죠. 근데 이해하고, 이해하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면은 행복해지는 거거든요. 그런데요. 우리가 화가 나거나, 정말 모든 것을 다 깨부수고 내 목숨까지도 버리고 싶은 그런 억장이 무너지고 속상하고 어려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먹구름이 끼어서 금방 소나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분다고 하더라도, 고요한 바다, 고요한 허공은 그대로 있는 거거든요. 비행기를 타보면은 구름위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면은 우리가 빨리 고요함 속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 고요함 속으로 돌아올 수 있는 힘, 이것이 내 마음이 극락 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이라고 하는 겁니다. 내 마음이 극락 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불자는 부처님의 연속체예요. 부처님이 강의 상류라면은 그것이 흘러서 우리가 하류가 되어서 또 바다로 들어가는 겁니다. 부처님의 공덕 바다가 되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선행을 한 번 하는 것, 미소 한 번 짓는 것, 따뜻한 눈빛 한 번 주는 것, 손으로 이렇게 힘든 사람 잡아주는 것. 작은 선행이라도 그것이 부지런히 쌓이면은,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모여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거죠. 이렇게 선행이 쌓여서 선행 공덕이 쌓여서 우리는 행복의 바다, 부처님의 공덕의 바다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정토를 지금 여기에서 만드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국행수륙재를 통해서 많은 공덕을 지을 겁니다. 이것이 한 컵의 물이 될 수도 있고, 또 허공에 가득한 공덕의 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우리가 짓는 공덕이 많지 않을 겁니다. 한 컵의 물 혹은 한 방울의 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 바다에 던져야 돼요. 이게 회향이에요. 내가 지은 공덕을 바다에 던진다는 것, 그것이 고통받는 중생의 바다에 던져서 그 사람들의 목마름을, 그 사람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일이거든요. 이래야 된다는 겁니다. 바다는 마르는 일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지은 공덕이 영원히 존재하는 겁니다. 다시 한번 종소리를 들으면서 대지를 만집니다. 5. 자비와 이해로 나를 고통받게 했던 모든 이들과 화해하려 합니다. 내 인생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삶의 많은 부분을 파괴했던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과 이해의 에너지를 전합니다. 지금은 압니다. 그들 역시 엄청난 고통을 겪었으며, 그들의 마음도 고통과 화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이것 또한 압니다.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다시 아프게 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은 불운했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을. 삶과 사회는 그들에게 너무나 많은 결핍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용당했고, 올바른 길로 인도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삶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를 고통받게 한 그 사람들에게 사랑과 보호의 에너지를 전해달라고 기원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사랑의 과즙을 받아들이고 사랑의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들의 삶이 기쁨과 행복을 창조할 수 있도록 변화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기에 그들을 향한 내 안의 증오와 화를 털어버립니다.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나의 사랑과 이해의 에너지를 그들에게 전하며, 조상들께도 그들을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기원할 것입니다.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내 마음이 극락정토, 내 성품이 아미타불 어쩌면은 이 허공 중에 가득한 영혼들, 이 땅속에 가득한 영혼들, 우리 마음속에 가득한 영혼들이 삶의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고통받으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어떤 여인이 잘못된 사랑을 하는 사람에 의해서 잔인하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우리는 경악했습니다. 자, 부처님의 입장에서 그 사람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남자가 어릴 때 훌륭한 부모를 만나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 훌륭한 친구를 만나고, 훌륭한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그렇게 잔인한 살인 범죄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 세상의 모든 범죄자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음으로 인해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으므로 해서, 그런 범죄자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내가 만약 미워하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살 곳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죄를 저지르고, 교도소 들어가고, 죄를 저지르고, 교도소 들어가는 일을 반복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렇게 사랑을 받으면 행복해집니다. 태양이 비추면 그 태양을 받으면서 나무가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익게 하는 것처럼, 우리도 뜨거운 사랑을 받으면서, 부모의 사랑과 스승의 사랑과 세상의 사랑을 받으면서 그 사랑의 과정을 먹으면서,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럴 기회를 애초부터 갖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봐야 됩니다. 외면하면 되는가. 나 자신을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그와 마찬가지로 남을 돕지 않고 내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법이든지 그 사람들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와줘야 됩니다. 그리고 도와주는 시설을 만들고, 그런 시설은 시스템에 맞춰서 그 사람들이 교육받고 변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그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어머니들이 아기가 어릴 때요, 어땠습니까? 아기가 울고 있으면은 찌개냄비가 끓는다고 하더라도 그걸 놔두고 아이에게로 달려가서 아이를 안아주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내가 미워하고, 나를 원망하고, 정말 원수 같은 사람들을 끌어안으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한 5- 60년 동안 우리의 아버지 세대, 할아버지 세대, 우리 세대가 합쳐가지고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민주화를 이루어낸 유일한 민족이라고 합니다. 세계 사람들은 한국을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특히나 동남아나 저쪽의 인도 쪽에 있는 사람들은 한국에 와서 살기를 간절하게 염원합니다. 그런데도 한국에 살고 있는 이들은 서로 물어뜯고 서로 남을 할퀴는 것으로 일과를 보내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의 핏속에는 팔만대장경을 조성한 그런 힘이 있습니다. 한글을 창제한 그런 힘이 있습니다. 삼국을 통일한 힘이 있습니다. 만주까지, 세계를 지배한 그런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지금 세계만방에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로서 세계를 제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10대 경제대국 혹은 5대 경제대국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돈이 아닙니다. 권력이 아닙니다. 학문이 아닙니다. 오직 남을 진실하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거지요. 나를 이해하고 사랑할 때 남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내가 이해와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 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사랑과 이해로 변해가게 될 것입니다. 우는 아기를 때리고 꼬집는 엄마는 없습니다. 사랑으로 보듬고 달래줍니다. 내가 나를 죽도록 미워할 그런 상황이 생길 때도 있죠.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참혹하기도 하고, 그럴 때는 진관사를 찾아오십시오. 진관사 부처님께 절을 하십시오. 그리고 못난 나를 부처님께 바치십시오. 그리고 내 마음의 정토를 만드십시오. 마음의 정원 진관사를, 마음의 정토 진관사를 여러분들의 의지처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숨을 들이쉬면서 이것은 ‘모든 조상들이 나의 행복을 기원했던 그 공기를 들어마신다’고, 숨을 내쉬면서 ‘내 안에 있는 병과 또 번뇌를 토해낸다’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숨을 들여 마시고 내쉬십시오. 그리고 부처님의 길, 부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그 길을 천천히,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미소 지으며, 명심해서 알아차리면서 그렇게 살아가겠다고, 1초, 1초가 모여서 1분이 되고, 1분, 1분이 모여서 한 시간이 되는 거. 그 일분, 일분이, 평화와 기쁨 속에서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도록 그렇게 만들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내 한 시간이 평화롭고 행복하다면 내 가족들에게, 내 이웃들에게 그 한 시간의 평화와 행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거지요. 하루가 평화롭고 행복하다면 그것을 내 이웃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에너지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부처님으로 향해가는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가는 일입니다. 남을 돕는 것이 나 자신을 돕는 겁니다. 남들은 다 내 마음속에 있고, 나는 남들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나 혼자만 잘 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그 길을 찾아야 됩니다. 네 번째 명상은 나에게 고마웠던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 명상은 정말 어렵습니다. 나를 공연히 꾸짖고, 야단치고, 비난하고, 헐뜯고, 때리고, 혹은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내가 미움과 원망으로 대한다면, 결국 거기에는 이에는 이, 칼에는 칼, 주먹에는 주먹, 이렇게 되면 전쟁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참고 견디고 기다리면서, 그것을 내 수행을 위한 인욕바라밀을 가르쳐주는 스승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분들이 없다면 나는 인욕바라밀을 성취할 수 없을 것이고, 인욕바라밀을 성취할 수 없다면은 보살도를 원만히 성취할 수 없고, 보살도를 원만하게 성취할 수 없다면 나는 부처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잖아요. 나 하나의 변화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부처님도 우리와 똑같은 범부로 시작했었고, 과거의 모든 성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범부로 시작했었습니다. 우리보다 더 많은 문제를 가졌던 사람들도 또한 우리보다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성장합니다. 저 진관사 주변에 있는 나무들 보십시오. 죽은 나무를 제외하고는 사시사철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그 부처님의 성품, 부처님의 마음도, 부처님의 이해와 사랑도 자라날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원합니다. 오늘 진관사 국행수륙재 사재를 맞이해서 초청해 주신 우리 회주스님과 주지스님, 대중 스님들 그리고 모든 신도들에게 밥값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야기를 여기서 마쳐야 된다고 하니까 마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언제나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기원하고 과거에 언젠가는 저의 조상들이었고 부모였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명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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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행수륙재]9월11일 국행수륙재 3재 법문
대우스님 2022-09-11
“시방삼세 부처님께 향 올리고 그 가피력에 기대어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옵니다. 부처님의 본원력으로 철위산간 지옥중생들이 정토에 왕생하게 하소서. 사나운 아귀와 축생들이 아픈 고통 벗어던지고천상, 인간, 아수라 중생들도 삼재팔난 고통 벗어나 정토에 왕생하여 지이다.” 지금 법문하기 전에, 정말 장엄스러운 의식을 제가 참여하면서, 늘 경전을 보다 보면 부처님의 세계에서만이 경험할 수 있는 무수한 불가사의의 삼매와 불가사의한 방광, 불가사의한 신통한 환희심 나는 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루어져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허공으로 비천상님들이 날아다니면서 굉장히 찬탄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법회가 시작되기 전에 모인 대중, 늘 부처님을 따라다니던 상수중 보살들과 또 부처님의 법문이 시작된다고 하면 사방에서 모여드는 래집중(來集衆), 올 래자, 와서 모여드는 대중, 그래서 상수중 대중과 래집중 보살들에게, 맨 처음에 자리에 앉으셔서 아무 말씀 하지 않으시고 양미간으로, 미간 백호상으로 광명을 나투시기도 하고, 또 정수리로부터 그런 광명을 놓으시기도 하고, 그 광명을 사방으로 놓아서 모인 대중까지 광명에 휩싸이는 그러한 상황이 늘 경전마다 나옵니다. 그런 내용에는 반드시 광명을 놓으신 의미가 있고, 또 그 의미로서 중생들에게 깨치시려고 했던 부처님의 깊은 그런 의도를, 저희는 중생이기 때문에 어리석고 앞이 막혀 있고 집착에 갇혀 있고 애착에 묶여 있고, 이러니까 현실에 묶여서 그러한 부처님 세계를 감히 볼 수도 없는 저희는, 경전을 통해서 보는 데도 굉장히 그때 그때마다 정말 그 부처님 세계에 대해서 환희심이 나지만 그 환희심의 갈래를 알 수가 없어서 굉장히 답답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그러한 세계에 대해서 집중하고 마음을 모을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범망경(梵網經)의 노사나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그 내용에도 보면, 노사나불께서 <본원성불 상주법신삼매>, 그 앞에 또 글자가 더 많아요, <허공광체성 본원성불 상주법신삼매(虛空光體性 本原成佛 常住法身三昧)>, 삼매를 나타내어서 모든 대중에게 보이시고 대중을 위해서 설법하시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마음을 깨달아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해서 그것을 심지도라고 하는데, 그 과정을 닦아 들어가려면 어떠한 계행을 지켜야 되나. 그래서 그 하권에서는 십중사십팔경계(十重四十八輕戒)를 설해 놓으신 내용이 있어요. 그 내용은 처음에 어떻게 나오느냐 하면, 석가모니불께서, 노사나불께서 예전에 설하셨던, 심지법문품(心地法門品)을 설하시는데, 그 설하시는 장면에서 지혜 광명이 몸에서 나타나서 연화대장세계를 비추고, 그때 모였던 수많은 보살과 수많은 수행자, 일체중생들이 다 모여서 그 빛을 보는 거예요. -이 진관사에서도 큰 불, 아마 제가 여쭤는 안 봤지만 여기에서도 그런 불가사의한 그런 방광의 사례가 많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기 지금 회주스님이나 주지스님을 비롯해서 우수하게 기도를 많이 하고 계시기 때문에요. 그것을 낱낱이 다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요. 그럴 때 모두 함께 보는 이들이 있어요. 같은 장소에 있었어도 그것을 미처 못 보는 사람이 있고, 마음이 급해서 집으로 빨리 가느라고 못 보기도 하고 그런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이제 그러한 광명이 이렇게 나투시니까, 온 전체, 모든 거기에 모인 대중들이 의아해 하는 거예요. 마음이 기쁘고. ‘도대체 이 광명은 어떤 인연으로부터 이렇게 비추는 것일까?’ 하고 모두 의아해했어요.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때 모여 있는 대중 가운데 한 보살이, 그 보살 이름은 현통화광왕보살이에요. 화광왕보살이 광명의 삼매로부터 일어나, -원래 그 광명 삼매 속에서 정진을 하고 고요하게 있던 그 보살이 일어나- 백운색, 하얀색 그러한 광명을 놓아서 비추니까 그 의아했던 온 대중이 또 놀라서 ‘이 광명은 어떤 사상이 담겨 있고,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이런 광명을 놓으시는가?’ 모두 의아했어요. 그러니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 여러 중생의 마음을 다 헤아리는 거죠. ‘의아해하고, 환희심 나고 이것이 무엇일까, 이건 무슨 의도가 있으며, 이 속에 어떠한 깊은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의심을 하고 있으니까 그 석가모니 부처님이 위신력으로 한 손으로 하나 가득 그 중생을 모두 한아름에 바짝 들어서, -그 경에 그렇게 표현이 됩니다. 한꺼번에 이거 불가사의한 일이죠.- 그 많은 중생을 한꺼번에, 한아름에 모두 안아서 노사나 부처님께서 광명에 쌓여 있는 그 자금강광명에, 광명에 휩싸여 앉아 계신 그 앞에다가 그 중생을 모두 그대로 갖다 놨어요. 그러고 나서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모든 보살님과 다 같이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게 됩니다. 다 같이 예경을 하고 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중을 대신해서 노사나불께 질문을 합니다. “이 세계의 일체중생은 어떤 인연에 의해서 수행을 하여야지만 불보살님께서 성취하신 십지도(十地道)를, - 심지도죠, 십지도이기도 하고 심지도이기도 합니다.- 심지도를 다 성취할 수 있으며, 또 성취했을 때 그 과보는, 그 불과(佛果)를 이루는 그 상태는 어떤 모습을 얻는 것입니까?” 이렇게 물어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대중을 대신해서. 그러니까 노사나불께서 굉장히 기뻐하셔요. 기뻐서 법신 삼매를 나타내어서 모든 대중에게 그 삼매의 상황을 비추시면서. 그래서 저희는 이런 글을 보면 비추는 모습을 상상을 해봅니다. ‘그 비추는 상태가 어떨까?’ 이제 이렇게 상상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나서 이제 노사나불께서 설법를 어떻게 하시느냐면 “나는 이미 백아승지겁 동안에 그 심지법이라는 실천행을 다 받고, 그 심지법 수행함으로 인해서 출리심을 일으켜서 사바세계에서 ‘아, 이 사바세계는 견고한 것이 아니로구나.’ 이렇게 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서 범부라는, 그동안 범부로 살아왔던 그 범부의 입장을 버리고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서 노사나(盧舍那)라는 이름을 얻었고, 지금은 어디에 거하느냐? 연화대장세계에 거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그 연화대장세계라고 하는 곳은 큰 꽃이 있다고 그래요. 연화로 된 꽃이 있는데 그 중앙이 이렇게 대가 있어요. 어느 꽃이든지, 연꽃 한송이에도 그 가운데 연자가 맺히는 곳이 있는데, 그 위에 노사나불이 계시다고 그래요.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이렇게 쭉 설명을 했기 때문에 그려야 돼요. 어떻게 그려야 되느냐 하면, 노사나불께서 천 명의 석가와 천 백 억명의 석가가 질문한 심지법문품을 자세히 답변하시는데, “모든 불자들아,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고 수행하라. 나는 이미 백 아승지겁 동안 심지를 닦고 연화대장세계에 머물러서, 연하대 둘레에 천 장에 꽃잎이 있는데, 천 장에 부처님이 석가모니불이 낱낱이 다 계시는 거예요. 그러면 천 장에 다 계시니까 한 잎사귀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는, 천 부처님이시죠. 그런데 그 속에 한 석가모니불 계시는 곳마다 백억 개의 국토가 있고, 백억 개의 수미산이 있고, 백억 개의 해와 달이 있고, 백억 개의 남선부주가 있고, 백억 개의 보살 석가가 있고, 백억 그루의 보리수가 있고, 그래서 그것을 다 합쳐서 보면 그 보리수 밑에 앉아 있는 그 부처님들이 일시에 그 연화대 위에 앉아서 천백억 화신의 석가모니불이 일시에 다 성불을 했다.” 이렇게 나오거든요. “천 백억 명의 석가불이 성불을 하시고, 각각 티끌처럼 많은 대중을 접인해서 감로문이 환하게 열렸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 그 심지도에 들어가려면 어떠한 절차를 얻어서 들어가는가. 가장 처음은 십발취심이에요. 십발취심. 두 번째는 십장양심(十長養心), 열 가지 장양심, 세 번째는 십금강심(十金剛心), 네 번째는 십지(十地). 그래서 등각,묘각, 52위를 설명을 해놨거든요. 그런데 그 심지도 수행위(心地道修行位)의 십발취심이라는 것은 굉장한 높은 지위 같지만, 그것을 낱낱이 다 들여다보면은, 어떠한 경우에 우리가 이 십발취심에 들어가느냐. 처음에 불교를 한 개도 몰랐어요. 불교의 내용을 몰랐는데 어쩌다가 인연이 되어서 이렇게 진관사라는 이런 사찰에 와서 이러한 법식을 보고, 환희심을 내고, 큰스님 오실 때마다 그 법문을 다 듣고, 또 여기에 계시는 스님들이 가끔 법문 하시면 그 법문 속에서 어떤 때는 그냥 나도 모르게 늘 와서 ‘부처님 무엇을 이루게 해주십시오.’ ‘무엇을 어떻게 하게 해주십시오.’ 막 그렇게 개인적인 그런 소망을 하다가, 문득 생각을 하면은 ‘이거는 아닌데’ 싶을 때가 또 있어요. 그리고 불현듯이 절에, 부처님께 오면 내 마음이 편치 않아서 언제는 마음이 확 뜨거워지면서 ‘내가 왜 이렇게 중생 세계에서 참 허망한 세월을 사는가’ 해서 뜨거운 눈물이 속에서부터 일어나면서, ‘이 사바세계가 다 물질의 세계고, 이것은 다 연기의 법이고, 이래서 정말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 내가 이렇게 절에 다니면서 진실로 부처님께 나아가서 아주 올바른 정법을 배워야 되겠다.’ 이렇게 발심하는 그게 발취심의 첫발이에요. 그 발심, 별 게 아니에요. 어쩌다가 지나가다가 한 소리를 듣고, 지나가다가 큰 스님의 법문 한마디, 우리가 마음에 발심을 한다는 것은 한순간에 그렇게 발심을 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귀를 기울여 보세요. 그게 십발취심이에요. 근데 그 발취심의 첫 번째가 뭐냐 하면은 사심입니다. 사심(捨心). 버릴 사자, 사심. 그것이 이제 버린다 하는 것은 버린다라는 말만 그렇지, 일단 내가 남에게 보시를 하려면 나에게 있는 것을 이쪽으로 내놔야 돼요. 내 쪽에서 보면 버리는 것이 되거든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그 사람에게는 필요한 것을 받게 되고, 도움을 받게 되고, 그래서 처음에 십발취심에서는 보시로 시작을 합니다. 보시로 시작을 해서, 그다음에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육바라밀 수행을 첫 번 발취심에서 해가고, 또 방편 원력 지혜까지 참 잘 닦아요. 그렇게 해서 일단 일차적으로 닦고 나서, 두 번째는 십장양심이에요. 금방 우리가 발심을 했다고 해서 그게 단박에 내 것이 되질 않아요. 발심도 또 발심을 해야 되고, 발심 위에 또 해야 되고. 보시를 해도 내가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보시를 해야 되고, 또 보시를 해도 자꾸 재발심을 해서 해야 되는 거거든요. 계행도 우리가 계행을 지킨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또 계를 범했으니까 자꾸 내면으로 참회를 하고, 그래서 자꾸 자기를 맑혀서 견고하게 그것을 장려해서 더 단단하게 해야 해요. 지금까지 육도 윤회로 돌아다녔던, 참 우리가 돌아다녔으면 얼마나 많은 세상을 돌아다녔겠어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 지옥 아귀 축생을 다 돌아다녔을 거예요. 그렇듯이 그러한 세상에 돌아다녔지만 이제 다행히 불법을 만나서 지금 이렇게 보시로부터 시작을 하거든요. 그래서 그 열 가지를 잘 닦고 나면, 십장양심이 있어서 그것은 내가 닦은 그 수행을 더욱 잘 다듬는 거예요. 정말 수준 있고 고품격으로. 그래서 옛날에는 사사로운 걸 보시를 했으면, 그다음에는 마음으로부터 보시를 하는 거예요. 깊은 속 내면으로부터 보시를 하고, 또 인욕을 하고, 정진을 하고, 이게 십장양심으로 들어가요. 그다음에 이제 십금강심은 장양을 했으면 불퇴전에 오른, 다시는 그 자리에서 퇴타하지를 말아야 돼요. 우리가 잠시 조금 안 된다 해서 마음이 퇴타해선 안되거든요. 우리 수행도 똑같아요. 십발취심에서 십장양심으로, 십금강심은 아주 견고해서 이 신심이라는 것은 열길 스무길을 파도 뿌리를 볼 수 없는 그런 신심이어야 하거든요. 신심. 그래서 그 신심으로 들어가서 그것이 견고하게 돼서 다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퇴전하지 않는 이제 그런 지위가 십금강심에, 그 다음에 십지에 올라가면 그때부터 성태에 들어요. 성인으로 되는 모든 자격이 갖춰져서, 그래서 이미 그 성태에 들면 다시는 중생세계로 가지 않는 그 자리가 십지행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에 그 모든 불보살님께서 십지행록에서도 굉장한 수행을 하셨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소소한 물건을 보시하고 또 인욕을 하고 나에게 있는 물건을 남에게 베풀기도 하고 그렇게 했지만, 점점 그 베푸는 강도가 더 커져서 그때는 나에게 가지고 있는 내 몸의 것도 남에게 주는, 눈을 달라면 눈을 주고, 팔을 달라면 팔을 주고, 내가 갖고 있는 논밭을 달라면 논밭을 주고, 그렇게 하면서 그 십지행을 견고히 해서 부처님 되시는 그 과정을 낱낱이 밟지 않은 게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쉽게 말하면 부처님의 팔십종호, 삼십이상 팔십종호(三十二相 八十種好) 이야기하잖아요. 그 상호 상호마다 반드시 그만한 수행이 있었기 때문에 삼십이상의 한 상호 하나 하나가 다 이루어진 거예요. 그게 그냥 하나를 했다고 해서 한꺼번에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낱낱이 그 부분에도 열심히 마음을 쓰고, 열심히 보시를 하고.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십발취심, 십장양심, 십금강심, 십지가 그 속에 낱낱이 또 들어있어요. 거기에도 굉장히 많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사리불 존자가 그 전생에 수행을 했을 때, ‘나는 금생에는 보시행을 열심히 해서 내가 하나의 보시행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커다란 불과를 이루리라’ 하고, 보시행을 한다는 마음으로 수행을 하고 계셨어요. 하루는 어떤 걸인이 와서 물어요. “당신이 뭐 하는 사람이냐.” “보시행을 하려고 합니다.” “아! 보시를 하려고 하느냐.” 이러니까 그렇다고. “그러면 나는 사실 당신의 눈이 필요하다.” 사리불 존자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눈이라는 것은 내 눈에 있을 때,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생명이 연결되어 있기때문에 소용이 있는거지, 저 사람한테 빼줘도 소용이 없다 싶어서 그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그 눈 달래는 사람이 “일단 보시를 한다고 했으면 주면 그만이지, 그 사람이 쓰든 안 쓰든 그걸 뭘 생각하느냐.”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그렇다고 생각하고, 피를 흘리면서 왼쪽 눈을 싹 뽑아서 딱 줬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한참 들여다 보더니 “아! 이거는 아니네. 내가 필요한 건 오른쪽 눈이 필요해.” 그래도 하나가 있어야 내가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오른쪽 눈 못 준다.” 이러니까 “그것도 못 주면서 무슨 보시행을 한다고 하느냐.” 이렇게 또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라고 하냐면 “일단은 내가 필요하다는데 보시로서 깃발을 걸고 보시행을 한다는 사람이 그 눈 하나 아까워서 못 주느냐.” 이렇게 말해요. 그래 할 수 없이 눈을 빼서 줬어요. 오른쪽 눈마저 빼서 주니까, 그 사람이 한참 들여다보면서 냄새를 푹푹 맡더니 “아휴. 썩은 내가 나네.” 그러더니 탁 땅에 던지고 침을 한 번 탁 뱉고 발로 쓱쓱 문대버리는 거예요. 그래 사리불 존자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참, 내가 정말 수 없는 세월을 참 보시 바라밀을 행하면서 내가 불과를 이루려고 원력을 세웠는데, 도대체 저런 중생을 어떻게 내가 제도를 하겠나. 그냥 대승 보살행을 닦지 말고 내 수행이나 잘하자.” 이렇게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 부처님께서 뭐라고 하셨냐 하면, “그 대승의 마음을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 하나의 일로서 대승을 버릴 수 있느냐.” 우리도 그렇잖아요. 누구한테 잘하다가 그 사람이 신심 없게 하면, 하다가 말아버리는 일, 수도 없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거죠. 우리가 보시를 하는 것도 끝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누구에게라도 보시할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서 보시를 행할 수 있어야 되고, 그것이 한계가 있어서는 또 안 되고요. 지금 여기 법회가 무슨 법회입니까? 무차법회잖아요. 막음이 없는 법회. 그래서 차별 없이 보시가 이루어져야 된다. 보시에도 흡족한 보시가 있고, 뛰어난 보시가 있고, 굉장히 수승한 보시가 있고, 청정한 보시가 있고 그렇거든요. 정말 알게 모르게 하는 숨어서 하는 그런 보시가 있고. 큰 바램이 없는 그러한 보시도 있고, 여러 종류의 보시가 있어요. 경을 들여다 보니까 부처님께서 성불을 하시자마자, 부처님 당시때부터, 가장 먼저 시행된 것이 보시에요. 보시. 부처님 성불 하시니까 그 재가불자가 앞다퉈서, 부처님 계실 곳이 없으니까 큰 정사를 보시하고, 급고독장자가, 기수급고독장자가 그 <외로운 이 돕는 절> 이래서 큰 정사를 보시를 하고. 또 녹자모강당, 부처님 제자가 많이 모이니까 또 강당을 헌사하고, 또 웃가(웃가세에나) 장자가 스님들에게 청정한 공양을 보시하고. 그래서 <보시라는 것은 가장 수승한, 가장 선행적인 것으로, 가장 으뜸이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설명하셨어요. 그러면 왜 보시를 그렇게 중요시하느냐. 기본적으로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법하신 내용을, 불가에서 우리 스님들께서는 다 아시지만, 전체로 보면 세 마디예요. 제행무상(諸行無常), 이 세상은 정말 무상하기 짝이 없어요. 무상하기 짝이 없어서 정말 하나도 견고한 것이라고는 있지를 않아요. 그래서 삼라만상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을 하고 있죠. 계속 진행 중이에요. 이루어졌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변형돼서 또 무너지고 새로 생기고. 우리 마음도 그렇죠.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다른 생각으로 바뀌고 또 없어지고. 우리도 태어나서 생로병사하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것도 우리 눈에 보이는 거, 하다 못해 내 몸까지도 무상하기 짝이 없다. 두 번째는 이제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제법무아(諸法無我). 어떤 것도 독보적인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이런 모든 물질들이 연기법에 의해서 다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다. 세 번째는 일체개고(一切皆苦)예요. 여러분들 삶, 어려서는 세상 모르고 사는데 살다 보니까 고 아닌 것이 없어요. 연세 드신 분 하루가 가면 갈수록, 저도 나이가 들어보니까, 눈도 가고 귀도 가고 막 이래요. 몸도 비틀거리고 그러니까 다 고라는 거죠. 그래서 마음 하나 빼놓고는 정말 그 견고한 것,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요. 그러한 원리를 알고 있어야지만 우리가 이 마음에서 남에게 보시하고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그런 마음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보시라는 것은 금강경에서는 뭐라고 했느냐 하면,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는 보시를 해야 하고, 물질에 집착하지 않는 그런 보시를 해야 되고, 또 보시를 했더라도 마음에 집착이 남아있지 않는 그런 보시를 하고, 상에 집착이 없어야 해요. ‘내가 이만큼 절에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이런 마음도 늘 일어나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제 보시를 할 때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하고, 이것은 부처님께 나아가는 최상의 어떤 선행적인 실천을 해야 할 그런 일이기 때문에, 이제 보시로서 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 수행의 지름길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보시의 공덕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공덕이라는 것이 굉장히 많은데, 사경공덕, 지계공덕 등 여러 가지 그런 공덕이 많잖아요. 그러한 공덕들이 우리가 복덕이다, 복덕이라는 말도 많이 하거든요. ‘참 복이 많아.’ ‘저 사람은 공덕이 많아.’ 그걸 제가 따로따로 찾아보니까 복덕은 어떻게 보면 물질적인 것을 복덕이라고, 눈에 보이는 것 그런 것을 복덕이라고 한다면, 공덕의 세계는 무량하게 많아요. 그래서 뭐든지 좋은 일에는 그것이 공덕이 되고 부처님의 씨앗이 되고 성불하는 과정이 되고, 그 공덕이라는 것은 세속적이지 않은 출세간적인 그래서 그 행동을 하게 되면 반드시 깨달음으로 가는, 직결돼 있는 그러한 행을 했을 때에 그것이 공덕이 되고 결국은 그 길로 갑니다. 모두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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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행수륙재] 9월 4일 국행수륙재 2재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2-09-04
진관사 수륙재의 본원적 의미와 실천적 가치 우리나라 선불교를 집대성하신 고려의 나옹스님께서는 수륙재에 대해서 “어두운 세상, 밝은 세상의 큰 도량이며, 티끌마다 세계마다 두루 미친다”라고 했습니다. 우주법계, 모든 시방법계에 두루하다라는 뜻입니다. 거룩하신 불보살님을 모시고, 극락으로 인도되지 못한 모든 외로운 영혼과 일체의 모든 중생들에게 평등하게 법식을 베풀어 누구라도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환희로운 의식이 수륙재입니다. 아까 수륙무차평등대재라고 그랬지요. 천지명양무차평등대재(天地冥陽水陸無遮平等大齋)를 줄여서 수륙평등대재 아니면 수륙회(水陸會)라고도 하고, 수륙재라고도 합니다. 저희들은 국행수륙재, 나라에서 행하는 수륙재입니다. 이 도량에 삼업이 청정하신 분이 들어오시면, 업장도 소멸되고 모든 공덕이 무량해지는 것이 수륙재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 진관사 수륙재는 조선을 대표하는 왕실 수륙재로서 600년 서울의 역사와 함께하였습니다. 임란 때 수륙사도 불에 타 소실되어 한동안 수륙재가 멈춰졌습니다. 저희 은사 스님께서 1963년에 오셔서 다시 수륙재를 지내야 되겠다는 원을 가지고 계셨는데, 마침 그때 자운 율사스님께서 수륙재를 지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해인사도 그렇고, 범어사도 그렇고 지낼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하셨었대요. -저희 은사스님은 진관(眞觀), 참 진자, 볼 관자에요, 진관사(津寬寺)는 무슨 진자죠? 나루 진자, 너를 관자,- 진관스님께서 오셔서 가람을 중창하시고 1977년 자운율사스님께서 수륙재를 다시 복원하여 봉행하기 시작하였으며, 4년, 윤년에 한 번씩 하거나 2년에 한 번씩 하다가, 2006년 제가 주지로 부임하면서 매년 49일 동안 칠칠재 형식으로 법화경을 독송하며 봉행하고 있습니다. 진관사의 특이한 점은 칠칠재를 지낸다는 점, 그리고 법화경을 독송한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에 낮재와 밤재가 있다는 점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우리 매년 그렇게 하고 있죠. 여러분들도 오늘 이렇게 날씨가 궂은데도 오셔서 무량한 공덕을 짓는 거예요. 이 무량한 공덕은 누가 다른 사람이 짓는 게 아니죠. 본인이 짓는 겁니다. 이런 공덕을 자발적으로 행하는 것이 바로 보시에요. 육바라밀 염불가도 있고, 그냥 염불가도 있는데, 그건 이따가 하고요. 오늘은 진관사 수륙재 2재를 봉행하는 날입니다. 조금 전에 비구니 최초 어장스님과 어산스님들이 대령, 관욕을 하셨어요. 관욕 때 남자 영가는 ‘상뇌(象雷)’(코끼리 상자, 우레소리 뇌자)라는 거울을 보고 코끼리처럼 용맹정진의 마음을 내었고, 여자 영가는 ‘서월(犀月)’ (무소 서자, 달 월자)이라는 거울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고요히 나아갈 마음을 내었습니다. 낡고 더러운 삼업의 마음의 옷을 벗고 깨끗한 몸으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환희로운 마음이에요. 일체 유주 무주 영가들, 이제 안착시켜 가지고 법문도 듣게 염불하셨어요. 그 염불의 의미를 가만히 음미해보면 다 법문이에요. 그대로 대승법문이에요. 우리가 염불문도 있고, 참선문도 있고, 주력문도 있고, 경전문도 있는데, 염불은 제일 하근기라고도 하는데, 전번에 태원스님께서 그러셨죠, 염불은 하근기가 아니다, 마지막에 염불선이 염불문이다. 염불을 우습게 알아서 노인들이나 나무아미타불하고 관세음보살하는 것이지, 누가 그렇게 하느냐고 하는 분들도 옛날에는 있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운 율사스님도 참선을 10년을 하셨어요. 그러다 마지막 20-30년 남겨놓고 진관사에 오시면 보름동안, 일주일동안 계셨는데, 제가 시봉 다하고, 빨래도 빨아드리고 음식도 차려드리고 했는데, 2시에 일어나셔서 불설소재길상다라니를 하고, 불정존승다라니를 만 독씩 하셨어요. 염불을 다섯 시간씩 했어요. 2시에 일어나셔서 7시에 공양하실 때까지 다섯시간을 계속 하시고, 광명진언하시고. 아침만 하시는 게 아니라, 점심 공양 끝나면 또 12시부터 2시까지 하시고, 오후 불식이니까 저녁에는 미음만 드시고 씹는 건 안 하시는데, 미음만 드시면서 5시부터 10시까지 계속 정진하시고, 부단히 염불을 12시간, 15시간 하신 거 같아요. 그렇게 하시는 걸 저는 한 7년 동안 시봉을 했어요. 77년부터 시봉하다가 83년도에 운문사 갔는데, 그 다음에 누가 시봉했냐하면 우리 주지 법해스님이 시봉을 했어요. 우리 율사스님과 인연이 지중해서 저희는 중노릇을, 스님노릇을 참 잘한 것 같아요. 인연이 많아서. 세상은 인연공덕이에요. 우리가 수륙재를 지내는 공덕이 수행공덕, 염불공덕, 청정공덕이에요. 전번에 극락세계, 정토는 청정이라고 그랬죠. 청정치 못하면 정토에 못 간다 그랬어요. 그리고 막 놀고 노래하는 곳이 정토가 아니라고 그랬죠. 저번에 큰스님께서. 그렇듯이 극락세계는 염불수행해서 정진하는 그런 수행력, 실천력이 있어서 왕생극락발원이지, 가만히 앉아서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진관사 국행수륙재의 근본 의미는 수륙사 건립 후 권근이 지은, -나중에 여러분들한테 회향 때 이런 책자를 하나 줄 거예요. 거기 보면 권근의 [수륙사 조성기]라는 게 있어요. 책마다, 매년 이런 거 보셨죠. 그래서 권씨문중들이, 그 후대의 사람들이 여기 진관사를 다니면서 너무 뿌듯하게 생각해요.- 진관사 수륙사 조성기에 보면, 태조 6년에 1397년 이성계는, 태조 이성계죠, 뭐를 없애고 이조를 만들었어요? 고려를 없앴죠. 그 고려 사람이 이조 사람이고, 이조의 사람들이 다 고려에서 이렇게 연연해서 내려온 사람들을 자기가, 태조 이성계가 조선 국왕이 되려고 하니까 고려의 충신들을 다 없앴어요. 그러니까 지은 죄가 많겠어요? 적겠어요? 많죠. 그러니까 이거를 참회하는 의미에서 “내가 수륙사를 지어 수륙재를 지내야 되겠다.” 원래 중국 양 무제부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때부터 시작했는데 그게 쭉 내려오다가 이제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부터 시작해서 내려오고 있어요. 이렇게 해서 진관사에 수륙사터가 저기 있어요. 저희들이 아직 닫아놓고 나중에 마무리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수륙사는 3층 59칸을 지었어요. 그래서 1층, 2층, 3층인데, 요새 말로는 1층, 2층, 3층이지만, 그때는 상단, 중단, 하단이에요. 자기의 조상들, 태조 이성계의 조상들 위패를 다 모신 단이 상단이고, 고려의 열사들, 순국한 열사들을 모신 위패의 단이 중단이고, 하단은 일체 고혼 영가들이 있잖아요. 이름 있는 영가, 이름 없는 영가, 생명 있는 영가, 생명 없는 영가. 그렇게 해서 3층 59칸을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다 불이 탔어요. 그렇게 되니까 지금 지을 수가 없어요. 요새는. 그래서 나중에 원력이 생기면, 수륙사를 짓든지, 거기다가 무량수전을 짓든지 그건 나중에 일이고, 지금은 아니고, 그렇게 지을 예정이라고 저희는 봅니다. 공덕이 우리가 원력을 가지고 있으면 꼭 이루어진다고 그랬죠. 원이 있는 사람은 주인이고, 원이 없으면 종이에요. 누구든지 다 원을 가지고 살면 다 이루어질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수륙재도요, 여러분의 공덕이 네 글자로 뭐예요. 아까 얘기했잖아요. 무량공덕, 무량공덕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효도를 잘해야 하고, 청정, 계행이 청정해야 되고, 염불도 -염불도 부처님께 나아가기 위한 행위가 염불이에요.- 이제 금자에다, 마음 심자 쓴다고 그랬죠, 전번에 스님께서.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제 생각하는 마음은 오로지 부처님 마음, 다른 생각, 잡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염불은, 염불자는 그 치문에 보면 여덟 가지가 차면은 해탈하는 문(팔일성해탈문八溢聖解脫門)이 있어요. 염불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거, 내가 부처님한테 정말 이렇게 기도하면서 내가 은혜에 감사해야 되겠다, 보답해야겠다 하는 마음을 내는 게 바로 염불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염불을 할 때 다른 생각이 들어가면 그걸 뭐라 그래요. 망상이라고 그러죠. 번뇌 망상이라는데, 번뇌 망상 일으키지 아니하고, 그대로, 진심으로, 참말로, 아주 그냥 다른 생각 없이 염불하는 게 바로 극락정토예요. 그래서 조성기에 보면 조상을 추모하고 공경하는 효성심은 왕이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만물을 이롭게 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자비심은 부처님의 법을 펼치는 전법교화의 중심 사상임을 천명하였습니다. 또한 “살아 있는 사람이 부처님을 섬기어 승려에게 공양하고 이로움을 베풀어 죽은 자의 배고픈 혼령까지 배부르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 낙(樂)을 얻고,” 생전안락 사후왕생이에요. 생전에는 편안하고 돌아가시면 왕생극락 할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을 쉽게 이렇게 얘기했는데, 나중에 조성기를 한번 보면 다 나와요. 이거는 2019년도에 조성기인데 여기 보면 이렇게 나와 있어요. 나중에 기회 되면 한번 보세요. 우리는 책이 있어도 보지 않아요. 그런데 기록이 기억을 지배해요. 기록을 해놔야지요. 기억은 점점 나이가 들면 어떻게 돼요? 잊어먹죠. 그러니까 기록이 있어야 돼요. 사진도 있어야 하고. 사진을 안 찍어 놓으면 누가 그때 당시에 뭐 했다는 거 아무것도 몰라요. 우리 어장 스님께서 와서 어떻게 집전을 했는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지금 다 기록 촬영하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그런 기록이 있어야지만이 다 알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수륙재는 물과 땅 그리고 육지, 명양하면 명은 지옥 세계고 양은 이렇게 산 사람들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평등하게 고혼을 달래는 그 법회의식으로서 가장 큰 재가 수륙재예요. 아시겠죠. 그래서 수륙재를 지내는 도량에 들어서기만 해도 삼업이 녹는다고 그랬어요. 자운 율사스님께서 하도 저희들한테 귀에 딱지가 떨어지도록 “수륙재 도량에는 꼭 참석해야 됩니다. 빠지면 안 됩니다. 안 됩니다.” 그랬어요. 제가 그때 옆에서 시봉하면서 저한테 목탁 바라지를 하게 만들었어요. 당신은 법인 하시고. 그래서 제가 법인을 율사 스님한테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하고 있잖아요. 이것도 다 전생사 같은 생각이에요. 제가 이렇게 앉아 있으면 어떤 때는 다리가 좀 아프기도 한데 아무 생각이 없어요. 무심경지 같아요. 그것도 선방에서 스님네들이 정진을 8시간, 7시간, 10시간 이렇게 해도 아무 이상이 없듯이, 저 법인상에 앉아 있으면 아픈지 안 아픈지 모르겠어요. 거기에 몰입하면은 그게 바로 삼매에요. 선방에서 스님들 공부하셨으니 다 알잖아요. 그렇죠. 자기가 몰입하고 있으면 망상만 안 내도 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망상이 너무 많으면 “아 언제 끝나나. 법문 언제 끝나나. 빨리 뭐 해야 하는데. 뭐 해야 하는데.” 이런 마음이 생기겠죠. 그렇지만 몰입하면 아무 생각 없어요. 삼매 들면은. 염불 삼매에 들어야 돼요. 그냥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저도 요새는 좀, 그전에는 건강할 때는 잘 몰랐는데, -사람이 살다 보니까 탄생의 끝은 뭐예요. 죽음이죠. 생로병사예요. 생로병, 노병은 나중에 죽는 거예요. -그래서 “안 되겠다. 염불을 좀 해야 되겠다” 해서 요새는 나무아미타불을 6만 번씩 하고 있습니다. 그냥 그냥 하고 있는데 어떤 때는 그게 참 일념으로 잘 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망상이 들어갈 때도 있는데, 그래도 ‘망상이다’ 생각하고 정신 차리면 또 다시 나무아미타불로 돌아가요. 여러분들이 실제로 해야 돼요. 아무리 아는 게 많아도 실천치 않으면 안 되잖아요. 실천을 해야 되죠. 그래서 우리가 염불 실천하는데, 수행정진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냐면, 아까 그랬죠, 부처다워지는 행위가 바로 염불이라고 그랬죠. 우리들의 생각을 지혜롭고 청량하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염불이에요. 그래서 괴로운 생각, 나쁜 생각, 이런 생각 다 일으키지 말고, 부처님의 명호, 아미타불을 좋아하시면 아미타불을 하고, 관세음보살을 염하려면 관세음보살 하시고, 지장보살 하시려면 지장보살을 하시고, 나반존자님 하시면 나반존자님을 하시든지 본인들의 취향에 맞는 대로 하세요. 좀 나이 많이 들면 뭐 하는 게 좋겠어요? 나무아미타불이 좋겠죠. 그런데 나무아미타불, 또 타불이 싫으면 아미타불만 하고, 싫으면 뭐 타불 타불 해도 돼요. 하다가 안 되면은 그러니까 어떤 스님이 나무아미타불을 많이 하라니까 나중에 죽을 때 천타불, 만타불을 하다 갔어요. 나무아미타불 하기 싫으니까. “나는 천타불 만타불을 했는데 뭐 어떻냐고.” 그래서 가는 분들도 계시는데, 이왕이면 정성을 잘 들여가지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시면은 그대로 내가 뭐가 되는 거예요. 나무아미타불 되는 거예요. 기도하는 사람의 얼굴이 왜 맑은지 아세요. 잡생각이 없으니까 맑은 거예요. 스님네들 보면 그 스님이 그 스님 같고, 그 스님이 그 스님 같아요. 처음에 절에 오니까요. 우수좌(禹首座), 김수좌하는 거예요. 총무 스님을 총무라고 안 하고 성이 우씨거든요, 우수좌 우수좌 우수좌. 그래서 나는 우수좌가 뭔가. 우수좌가 그냥 우수하다, 수우미양가에 우수하다 우수, 너무 우수해서 우수좌인가 이랬어요. 처음에는 몰라가지고. 나중에는 수좌라는 말은 스님의 상좌를 지칭할 때는 수좌, 성이 '우'니까 우수좌 법명이 재호 스님이에요. 우리 스님 맏상좌인데 돌아가신 지가 한 30년 넘었는데 일찍이 좀 가셨어요. 염불실천 수행정진 그러면 열심히 염불하는 내용의 사례를 한번 여기서 할게요. 석실 명안 선사는 우리나라 이조 때 스님인데요. 진주 태생이에요. 그런데 처음에는 선과 교를 같이 연구하시다가 나중에 염불문 쪽으로 하면서 계속 염불하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하고 계속 서쪽을 향해 하는데, 마지막에 일어서서 3배 절 하면서 그대로 앉아서 원적에 들었어요. 좌탈 하는 거예요. 좌탈, 좌탈입망(坐脫立亡), 좌탈입망의 아주 보기 좋은 예가 저 월정사에 한암 노스님 아시죠. 입을 이렇게 벌리시면서 돌아가신 모습. 그 6.25 때 그때도 다 피난 가시자고 했는데도 안 가시고 혼자 지키셨어요. 그래서 불도 안 타고 앉아서 그대로 돌아가신 분이에요. 이 근래에 백양사의 서옹스님도 그렇게 돌아가시더라고요. 그래서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서서 돌아가시기도 하고 앉아서 돌아가시기도 하고 그러는데, 당나라 때의 지한 스님이라는 스님이 계셨어요. 그런데 그분도 연세가 많으셔서 임명종시에 상좌들을, 제자들을 불러놓고 “앉아서 돌아가신 사람이 있는가?” 물었어요. “서서 돌아가신 스님이 있는가” 하니까 제자가 “네 많습니다.” 말 떨어지자 마자 일어서서 일곱 발자국,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해가지고 그대로 서서 가셨어요. 그거 어렵죠. 앉아서 가기도 어렵고 서서 가기도, 진짜 앉아서 가는 것보다 서서 가는 게 더 어려운데, 어떤 스님은 거꾸로 서서 가는 사람, 물구나무 서기처럼, 서서 가는 스님들도 있었어요. 근데 우리가 잘 살면, 수행을 잘 살면, 잘 돌아가셔요. 전식즉시래생(轉息卽是來生)이라고, 숨을 한 번 쉬어가지고 그걸 내뱉지 못하면 돌아가는 거예요. 그렇죠. 심장마비 걸릴 때 그러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돌아갈 때 그 사람이 수행을 잘했나 못했나는 화장막에 들어가서 마지막에 보면 안다 그래요. 뭐 사리 나왔다고 그런 건 아니고, 화장막에 들어가서 아무 하자가 없을 때, 아무 아는 인연이 없을 때 그 스님은 참 정진도 잘하시고 수행도 잘하셨구나 하고 칭찬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감화를 입고서 그 스님을 아주 이렇게 정말 공경하고 그러지. 그래서 우리는 생활이 수행이어야 되고 수행이 그대로 생활이어야 돼요. 수행 따로 생활 따로면 안 되죠.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말 아시잖아요. 평상시 마음이 그대로 도 닦는 마음이 돼야 돼요. 우리는 놀기 좋아하는 사람, 전생에 놀기 좋아하는 사람은 춤 잘 추고 노래 잘하고, 전생에 공부, 경제를 많이 해온 사람들은 공부도 잘해요. 수학을 전공한 사람은 수학 1등이고. 자기 영역에 잘하는 사람들이 그거는 다 전생의 경전을 많이 본 거예요. 우리가 인과법 얘기하면 –법문지에는 없죠.- 왜 곰보가 생기냐면요. 이게 이제 성냥이잖아요. 성냥불 켜죠. 그러면 성냥을 이렇게 가에다가 놔야 되는데 여기에다(향로) 꼭 꼽는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내 생에 곰보 된다 그래요. 천연두를 안 맞아서 그런 게 아니고, 자꾸 꼭꼭 찌르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제가 몇 번 이거 좀 얘기하려다가 지금 보니까 얘기하는데, 그 향로 재 있잖아요. 이렇게 쑥 들어가게 하면 눈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아요? 눈이 노인네처럼 쑥 들어가요. 이렇게 되면 안 좋잖아요. 그러니까 향로 재를 꼭꼭 다져가지고 위에까지 올라오게 해주세요. 왜 이게 향이 이렇게 비뚤어지냐면 너무 꽉꽉 다지지 않고 해놔서 그래요. 이게 조금 더 올라와야 돼요. 7, 8부까지. 그걸 잘 명심하셔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도배 한다든지, 장판하면 장판도배 면팔난(免八難)이라, 팔난을 면한다고 그래요. 그리고 종 불사를 잘하면 목소리가 좋아지고, 단청을 잘하면 얼굴이 깨끗해지고 또 이렇게 바닥을 잘 닦으면 윤기가 나고, 또 못 시주를 잘하면 치아가 좋아지고, 그런 게 인과경이 다 나오는데, 오늘은 인과경 얘기가 아니고, 염불하자는 염불 삼매 들어가자는 얘기하면서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 이조시대 石室明眼(석실명안선사1646-1710)선사의 염불가(念佛歌) 이조시대 석실명안 선사의 염불가 한번 보세요. 절 세 번하고 앉아서 원적(圓寂)에 들어가다고 그랬죠. 다 같이 한번 해봅시다. 行住坐臥南無佛(행주좌와나무불) 가고 머무르고 앉고 누워서도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의 준말이 나무불이에요. 천타불 만타불하지마세요.著衣喫飯南無佛(착의끽반나무불) 옷 입고 밥 먹을때도 나무아미타불語時黙時南無佛(어시묵시나무불) 말 할때고 묵언 할때도 나무아미타불睡時夢時南無佛(수시몽시나무불) 잠 잘때나 꿈 꿀때에도 나무아미타불念念歸於一念佛(염염귀어일념불) 염염(생각사이)이 일념불에 돌아가고一念圓成三昧佛(일념원성삼매불) 일념에 원만히 삼매불을 이루었네三昧得見無生佛(삼매득견무생불) 삼매로 득견하니 무생불이다始知衆生本性佛(시지중생본성불) 비로소 중생이 본래 성불(부처님)인줄 알았네臨終面見彌陀佛(임종면견미타불) 임종시에 아미타불을 친견하고摩頂授記證心佛(마정수기증심불) 증심불을 마정수기함이다. 그러니까 염불 삼매에 들어가면 이렇게 저절로 되고, 그다음에 육도 염불가가 있어요. ⃞ 육도염불가(六度念佛歌) (명(明)나라 지욱 선사 1599-1655) 육바라밀 염불가 육도(六度), 도자는 바라밀이라는 뜻이에요. 육바라밀 아시죠.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육바라밀이에요. 거기 보면, 眞能念佛 放下信心世界 卽大布施 (진능염불 방하신심세계 즉대포시)진실하게 염불하여 몸과 마음의 세계를 내려 놓은 것이 커다란 보시이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세상의 주인은 자신인데 집착만 없으면 괴롭지 않죠, 자유롭죠. 집착 때문에 우리가 다 병이에요. 집착의 병. 그래서 몸과 마음을 내려놓으면은 그게 바로 보시에요. 보시에는 여러 가지 보시가 있잖아요. 법보시 등. 우리가 이 수륙재를 지내면 무량공덕이 있는데, 보시공덕도 있어요. 여러분들이 삼보께 이렇게 공양하잖아요. 과일공양, 미공양, 향공양, 다공양, 꽃공양, 이렇게 하듯이 그것도 하나의 공양이에요. 보시인데 여기서의 보시는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보시에요. 몸과 마음을 집착하면 안 돼요. 그건 보시 아니에요. 그건 집착이지. 眞能念佛 不復起貪瞋痴 卽大持戒 (진능염불 불부기탐진치 즉대지계)진실하게 염불하여, 다시 부(復)자에요, 탐진치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커다란 지계이다. 탐진치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뭐예요. 지계예요. 우리가 계율을 잘 지킨다는 지계 있죠. 그게 지계인데 탐진치를 일으키지 않는 것, 탐진치는 무슨 독이라고 그래요, 삼독이라고 그러죠. 여기서도 탐심은 들어오는 복을 막지만, 진심은 들어와 있는 복까지도 까먹는 게 진심이에요. 진심이면 뭐를 진심이라고 그래요. 화 내는 거죠. 그래서 일기진심 수사보(一起嗔心 受蛇報)란 말이 있어요. 한 번 성냄은 뱀보를 받는다 그래요. 뱀보. 뱀은 지나가다가 좀 모르고 밟으면 꽉 물잖아요. 그거 왜 그러냐. 뱀보 받은 사람은 전생에 너무 화를 내면 그런 긴 몸을 받는다 얘기해요. 그러니까 화 많이 내지 마세요. 화 많이 내면 내 몸도 상하고, 그래서 우리가 한 번 화내면은 백만(百萬) 가지 장애 문이 열린다고 했어요. 장애가 없어야 되잖아요. 공부하는 데도 장애 없어야 되고, 좌선하는 데도 장애가 없어야 되고, 기도하는 데도 장애가 없어야 돼요. 장애가 있으면요, 괜히 사람을 불안케 하고 그 사람들을 다 자꾸 불화합시키는 거예요. 화합시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절대로 장애를 일으키지 말아야 된다. 탐진치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지계죠. 眞能念佛 不計是非人我 卽大忍辱 (진능염불 불계시비인아 즉대인욕)진실하게 염불하여 인아의 시비를 가리지 않는 것이 커다란 인욕이다. 그래서 능히 염불에서 인아의 시비, 너다 나다 시비하지 않는 거. 시시비비하는 사람 있죠. 꼭 간섭하고 참견하고 뭐 좀 하면 뭐 이거 하지 말라, 저거 하지 말라 막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거는 인욕심이 없어서 그래요. 그 인아의 시비를 하지 않는 것이 뭐예요. 인욕이에요. 금방 인욕했잖아요. 인욕 다음은 뭐예요. 眞能念佛 不稍間斷來雜 卽大精進 (진능염불 불초간단래잡 즉대정진) 진실하게 염불하여 끊거나 잡생각 하지 않는 것이 커다란 정진이다. 정진이죠. 여기서는 진실하게 염불해서 끊거나 잡생각하지 않는 것이 정진이다. 망상 부리지 않는 것이 정진이에요. 수행정진이라는 말이 있죠. 염불정진을 끊임없이 계속 일념으로 삼매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바로 정진이다 얘기에요. 眞能念佛 能不妄想馳逐 卽大禪定 (진능염불 능불망상치축 즉대선정)진실하게 염불하여 망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커다란 선정이다. 그 다음에 진실하게 염불하여 선정이죠. 망상에 휘둘리지 않는 것. 어떤 사람은 망상에 휘둘려서 괜히 거기에 빠져가지고 공부하다가도 잠이 일어나면요. 정말 참선하는 사람들, 옛날 어른 스님네들이 하는데 잠이 막 오면 여기(허벅지)를 막 송곳으로 찌르라고 한 대요. 그래서 송곳 이렇게 가지고 있다가 아니면 뭐 침이나 뭐 가지고 있다가 찔러도 아무 감각이 없대요. 나중에 보면 이게 상처가 나서 피가 나는데 그때서야 알게 된대요. 그러니까 망상에 휘둘리지 않으면, 거기에 절대로 깨어 있으면, 성성이 깨어 있으면, 여야하면은 장애가 없다는 거. 그러니까 우리도 계속 아주 염불하고 이렇게 해서 삼매에 들도록 해야 되겠죠. 예 그렇게 하고 또 마지막에 뭐예요. 眞能念佛 不爲他岐所惑 卽大智惠 (진능염불 불위타기소혹 즉대지혜)진실하게 염불하여 곁가지에 미혹되지 않는 것이 커다란 지혜이다. 그래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예요. 그래서 진심을 내려놓는 것이 보시고, 그다음에 탐진치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지계고, 인아를 시비하지 않는 것이 인욕이에요. 그다음에 정진은 잡생각 하지 않는 것, 그다음에 망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선정이고, 마지막으로 염불를 하여 곁가지에 미혹되지 않는 것이 커다란 지혜이다. 오늘은 공부를 뭐 했어요. 생각나는 거. 행주자와나무불, 차의끽반나무불, 또 생각 안 나죠? 어시묵시나무불, 수시몽시나무불, 염염귀어일념불, 일념원성삼매불, 그다음에, 시지중생권성불, 임종명견미타불, 마정수기증심불, 부처님이라고 딱 증득하는 마음이 증심불이에요. 그 다음에 육바라밀 뭐예요. 방하신심세계 즉대보시라고 그랬죠. 몸과 마음이 세계에 집착 놓아버리는 것이 보시고, 그다음에 지계는 탐진치 일으키지 않는 거, 그다음에 또 인아의 시비를 가리지 않는 것이 인욕이고, 염불하여 끊거나 잡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정진이고, 망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선정이고, 곁가지 미혹되지 않는 바가 지혜예요. 그래서 지식이 중요한 거예요? 지혜가 중요한 거예요? 지혜가 중요한 거예요. 세간에서 아는 거는 세지변총(世智辯聰)이지 지혜는 아니에요. 마하반야바라밀이 지혜예요. 그래서 염불 삼매에 바로 들어가면 그대로 부처님이에요. 염불을 열심히 하면은. 그래서 오늘은 <염불로 수행 정진하자>, 실천과 수륙재의 본원적 얘기들. 그래서 600여 년 전에 시작됐던 수륙재가 좀 끊겼지만 저희 진관 은사스님이 오셔서 잘 이어갔고, 이제 우리 스님네들이 이렇게 어산 작법도 잘하고. 진관사 스님들이 요새 아주 맹렬하게 어장 스님한테 배워요. 그래서 다른 사람 한 4, 5년 할 거 3년 만에, 2년 만에 배우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열심히 하는 데는 못 따라가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죠. 아는 사람은 금방 외우면 금방 잊어먹는데, 차근차근 해가지고 열심히 하면 다 부처님이에요. 그래서 우리 마음의 정원 진관사에서 불국토를 이루어지고 부처님 돼야 되겠죠. 꼭 부처님 되도록 합시다.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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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행수륙재] 8월 28일 국행수륙재 초재 법문
태원스님 2022-08-28
반갑습니다. 오늘 법문 내용은, 주지스님께서 연락이 와서, <정토에 왕생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면 되겠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한마디 해달라 이야기했는데,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30분입니다. 사실 30분 가지고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도 들지만은, 시간에 맞춰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우리가 정토에 왕생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되느냐> 하는 것에 대한 유인물을 여러분들한테 아마 나눠드렸을 거예요. 유인물에 보면 연지대사(蓮池大師)가 지은 정토 발원문이 있습니다. 그 정토 발원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시면은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되겠다하는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쓰여 있기때문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하면 그건 우리 주지스님한테 묻도록 하십시오. 내가 여러분들한테 한 10분, 15분 정도 걸쳐서 말씀드리고 그다음에 정토 염불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릴까 하는데, 나눠드린 유인물에 보면, 우리가 죽는 순간에 어떻게 죽는 순간이 임해지는가, 그것을 임종과 명종으로 나누어서 거기에 적어놨습니다. 우리의 죽는 순간과 내세의 결정(임종과 명종) ♣ 임종(臨終) ― 1.병위(病危)⤍ 2.단기(斷氣)⤍ 3.신점냉(身漸冷, 分分冷)⤍ 4.난심위(亂心位, 悶絶無心位 )⤍ ♣ 5.명종(命終, 身全冷)⤍ 6.중음신(中陰身)⤍ 7.남이제(攬二諦, 三和合) 이 세상 천지 만물은 한 번 생겼다가는 없어지게 됩니다. 없어지는 순간이 어떠냐. 그래서 첫째가 임종(臨終)입니다. 임종이라고 하는 것은 숨을 마칠 때를 임종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보면 첫 번째가 병위(病危)라고 쓰였죠. 병위. 이 병위라고 하는 것은 병에 의해서 우리 몸이 위태로울 때를 이야기한 겁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돌아가실 때는 아파서 돌아가세요. 요즘에는 흔히 암에 의해서 돌아가시기도 하고, 또 심장마비에 의해서 돌아가시기도 하고, 또는 폐렴이 있어서 돌아가시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병위라 그럽니다. 그러면 이 병위가 심각해지면 우리가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은 그 두 번째 있는 이야기가 단기(斷氣)에요. 끊을 단자에다가 기운 기자, 그래서 기운이 끊어진다. 그런데 기운이 끊어지는 것이 어떤 거냐. 첫째는 곡기가 끊어집니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해야만 우리 몸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이 몸을 유지할 수가 없다. 옛날 진관사도 자주 오시고 그랬던 큰 스님이 계신데, 월정사에 탄허 큰 스님, 그 스님이 항상 하신 말씀이 “인간은 별 수 없어. 갈 때는 다 곡기가 끊어지면 가는 거야.” 맞습니다. 그러니까 돌아가신 걸 보면은 거의가 다 곡기가 끊어집니다. 그다음에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신기가 끊어져요. 정신할 때 신자, 귀신할 때 신자, 이 신기가 끊어집니다. 신기가 끊어진다고 하는 것은 의식이 몽롱해진다. 아들, 딸들이 와서 어머니, 아버지 불러도 대답을 못하는 상태, 이런 상태가 신기가 끊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단기라고 하는 것은 곡기와 신기가 끊어지는 것이 단기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신(身)이 어떻게 되느냐. 점점 차가워진다. 몸이 점점 차가워지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임종할 때 대부분 여러분들이 임종을 지켜보면, 심장에서 가장 먼 다리부터 식어 갑니다. 다리. 손도 식어 가고, 점점 식어 가는 거예요. 식어 가다가 마지막에 심장 쪽에 좀 온기가 있다가 심장이 식으면은 운명하는 그런 신점냉(身漸冷)이 온다. 그런데 거기에 한문이 하나가 분분냉(分分冷)이라고 하는 것이 있죠. 분분냉.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르다. 사람에 따라서 다리가 먼저 식어 가는 사람이 있고, 손이 먼저 식어 가는 사람이 있고, 정수리가 먼저 식어 가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각기 다르다 그런 겁니다. 그런데 경(經)과 논(論)에 의하면, <마지막까지 머리가 따뜻한 사람은 천상에 태어난다> 그런 말이 있어요. 그다음에 <마지막까지 심장이 따뜻한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난다. 마지막에 배꼽 쪽에 따뜻한 사람은 아귀로 태어난다.> 그런 건데 그런 설도 있기는 있지만 아무튼 신냉점이다. 그리고 그다음에 임종의 마지막에 난심위(亂心位)라. 어지러울 난자, 마음 심자, 난심위라고 하는 건 뭐냐 하면 ‘마음이 어지럽다’하는 거예요. 육체가 어지러운 게 아닙니다. 마음이 어지럽다. 여러분들이 현생에서 인식하는 건 뭐가 인식합니까. 현생에서 인식하는 건 육근이 인식하는 거거든요. 육근. 눈으로 물질을 볼 때 눈에 안식이 생기는 거고, 귀로 소리를 들을 때 귀에 이식이 생기는 거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육근이 이 육경의 대상에 의해서 알음알이가 생기는 걸 육식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신점냉 오면은 육식 작용이 끊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무엇만 남겠어요. 마음만 남는다. 조금 어려운 말인지 몰라도, 제7식 말라식 제8식 아뢰야식, 이 두 가지만 남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전육식이라 그래요, 좀전에 이야기했던 안이비설신의는. 전육식은 다 없어지고, 끊어지고 제7식, 제8식만 남는다. 그래서 제 7식, 제 8식만 남는데, 이때 마음이 어지럽다하는 건 무슨 뜻이냐. 여러분들이 지금 행동하고 뭐 하고 하는 것들이 어디에 저장이 되느냐. 제8 아뢰야식에 저장이 됩니다. 제8 아뢰야식에 저장이 됐다가, 전육식 작용이 끊어지면 제팔 아뢰야식에 저장이 됐던 업식이, 어느 것이 먼저 수면 위로 올라오느냐 서로 다툼이 있는 거예요. 다툼이. 그래서 여러분들이 평소에 업을 지었던 것이 서로 다툼이 있기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그래서 난심위라 그래요. 그다음에 한문이 하나 있는데 민절무심위(悶絶無心位)라, 민절무심, 모든 것들이 안이비설신의로 봤던 모든 육근 작용이 끊어지는 상태를 무심, 민절무심이다 그런 거예요. 여기까지가 임종하는 단계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15분이 흘렀는데요. 그다음에 명종(命終)이라고 하는 건, 목숨 명자에다가 마칠 종자, 명종이라고 하는데, 명종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단계가 명종이냐 그러면, 우리 육신의 작용이 끊어져가지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뢰야식이 이 몸에서 벗어나는 걸 명종이라 그래요. 명종. 뒤에 이제 내가 써놨지만, 인광대사가 쓴 ‘명종 때 자손들이 부모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중음신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색수상행식의 몸을 받아 이걸 오온이라고 그러죠. -진관사 신도님들 고개를 끄덕끄덕하신 거 보니까 굉장하신 거예요. 다른 데 가서 법문하면 오온 잘 모릅니다.- 그래서 색수상행식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색은 물질이죠. 수상행식은 정신적인 작용이에요. 그런데 수상행식은 정신적인 작용인데, 이 물질과 정신이 떠나버린 상태가 중음신(中陰身), 다음에 색수상행식을 형성하기 이전까지 기반을 중음신이라 그래요. 그다음에 마지막에 남이제(攬二諦)라 그랬는데, 남은 무슨 남이냐. 무엇을 잡는다, 무엇을 끌어당긴다 이런 거예요. 그러면 이제, 두 가지를 끌어당긴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하면은 우리가 죽어서 사람으로 태어나면은 어떻게 태어나느냐. 첫째 양인 아버지를 선택해야 되죠. 양인. 이 세상에 아버지 없이 태어난 사람이 있어요? 손 한 번 들어봐요. 없죠. 두 번째 뭐냐. 어머니를 선택해야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 양과 음, 이 두 가지를 선택을 해서 돼야 된다. -이런 말 스님이 해서 되는지 모르겠다. 한 집안 식구 같으니까 한번 하지 뭐.- 예를 들어서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면 남자가 발산한 정자가 있고, 여자가 가지고 있는 난자가 있는데 정자와 난자 사이에 아뢰야식이 영원히 들어갔을 때 이게 잉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뒤에 뭐라고 그랬어요. 삼화합(三和合)이라 쓰였지요. 삼화합, 이 세 가지가 화합이 돼야 된다. 그래서 오온이 형성되는 겁니다. 오온이. 그러니까 애가 생긴다고 하는 것은 이 오온의 시발점이에요. 그래서 임종과 명종이 다르다 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인광대사가 말씀드리는 거 세 가지 아주 중요한 게 있어요. <첫째가 뭐냐 하면, 임종하는 사람을 위해서 선교방편으로 이끌어서 안심하게 하고 위로하여 바른 믿음을 내도록 하며, 병든 분에게 간절히 권하여 일체 만사를 잊어버리고, 일심으로 염불하게 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임종하는 사람이 마지막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가느냐에 따라서 다음 생에 어떻게 태어나느냐 이게 걸려 있다는 거예요. 예전에 큰스님들한테 들은 말이지만, 시골에서도 참선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문지방이 있는 데다 갖다 놨다는 거예요. 갖다 놨는데 바람이 불어서 문지방을 딱 닫으니까 손이 어떻게 되겠어요. 아프죠. 그래서 진심을 내가지고 좋은 곳에 못 태어났다 이런 말씀을 내가 들은 적이 있거든요. 이게 생각이 중요한 거다. 생각이. 그래서 이게 뭐냐 하면, 돌아가신 분들한테 선교 방편이라고 하는 건 뭐예요. 선교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어머님,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재산과 명예라고 하는 것은 아주 무상해서 거기에 대해서는 절대 미련을 두지 마세요.’ 이렇게 권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재산에 애착을 가졌다고 하는 분이라든가, 자식에 애착을 가졌다고 하는 분은 미련이 있어서 홀가분하게 못 떠나는 거예요. 미련이 있어서. 예전에 어떤 스님이 원주, 총무, 주지로 이렇게 살면서 신도님들이 좋은 것을 갖다 주는 거예요. 좋은 것을 갖다 주면 대중들하고 나눠 쓰고 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고 창고에다 차곡 차곡 쟁이는 거라. 그런데 상좌를 아주 잘 들였어요. 상좌가 전국 지방에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한 번 오니, ‘우리 은사스님이 저렇게 해서는 아주 좋은 곳에 못 갈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 그러고 은사스님한테 가서 3배를 올리고 무릎을 꿇고 -그냥 내가 이쪽을 안 보고 저쪽 보는 건 저쪽에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왜 그러냐면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얼굴을 봐야 되거든.- 은사스님한테 간절히 청하니까, 상좌 말이 옳거든요. 그래서 상좌를 따라서 같이 수행하러 깊은 산속에 가는데, 산마루에 올라가는데 자기가 있었던 창고에 불이 나는 거예요. 평생을 아끼던 물건이 있는 창고에서 불이 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냥 마음속에서 쑥 올라와서 불 끄러 간다고 내려갔다가 불에 타서 돌아가셨단 말이에요. 애착을 가지면 안 되는 거예요. 상좌가 도력이 있는 스님이라, 이 스님의 혼이 나와서 가는데 그 혼을 따라서 가니까 어디로 가냐. 암놈 숯놈 뱀이 있는데 그리 간단 말이에요. 그러면 뱀으로 태어나는 거 아닙니까. 아까 삼화합 이야기했잖아요. 뱀으로 태어나면 이거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서 뱀으로 못 태어나게 도력으로 그 혼을 다시 나오게 해서 가는데, 깊은 산속에 40이 넘은 부부 그 집으로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그 집에 들어가는데 그 집은 자식을 못 낳은 집이에요. 밖에서 저녁 내 있다가 아침 돼서 상좌가 그 집을 방문해가지고 말씀드리기를, ‘아기를 임신을 하는데, 이 애는 이 집에 있으면 안 되니 다섯 살 되거들랑 나를 주세요.’ 그래서 ‘내가 애를 낳기만 낳으면 다섯 살이고 한 살이고 드리겠다.’ 지금까지 애를 못 낳는데 낳는다 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임신을 해서 애를 낳은 거거든요. 그 뒤에 이야기는 다 생략하고, 이런 게 뭐냐 하면 마지막 생각이 중요한 거라 이 말이에요. 여러분들도 가지고 계시면, 평소부터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지 자꾸 움켜쥐면 아무 소용 없어요.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이 세상은 전부 무상하기 때문에 공수래공수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선교 방편으로 그분을 안심하게 해야 된다. 그래서 임종 법문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임종 법문이. 그리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내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해야 된다. 내세에 대한. 그런데 여러분들이 금세에는 꿈을 가지고 있어도, 내세의 꿈을 확고하게 갖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내 나이 먹어야 아마 있을 거예요. 내 나이 먹어야. 내 나이 먹고 또 나 같이 뭐가 아파야, 죽음이 문 앞에 있어야 이게 가깝거든요. 그러니까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된다. 이런 이야기하려고 하면은 한 학기는 해야 해요. 한 학기는. 오늘 이야기 다 못하고. 그래서 병든 분에게 간절히 구해 일체 만사를 잊어버리고, 일심으로 염불하게 해야 된다. 염불. 염불에 대해서 조금 이따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여러 사람들이 몇 개 반으로 나누어 염불를 하여 임종하는 사람을 염불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야 된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스님들이 돌아가신 분 영안실에 가서 24시간 염불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에게 제일 좋은 방법을 내가 가르쳐드리면은, 가족 전체를 교화를 시키세요. 가족 전체를 교화를 시켜가지고, 가족이 그러니까 애도 많이 낳아야 됩니다. 한 12명 낳아가지고 4명씩 3개 반을 만들어, 4명씩 3개 반이 돌아가면서 1시간씩 1시간씩 이렇게 염불을 하는 게 제일 좋아요. 그렇지 않으면 가족이 적으면 친구라든가 사촌간이라든가 이렇게 해서 염불을 하게 하고. 진관사 주지스님을 또다시 불러가지고 목이 나가게 하면 힘듭니다. 목이 나가게 하면은. 그러니까 염불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24시간 염불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세 번째는 절대로 임종하는 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움직이지 말고, 또 곡을 하지 말며, 이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해야 된다.> 우리가 이 몸에서 아뢰야식이 떠날 때가 한 10시간 걸린다 그래요. 또 어떤 분은 8시간 걸린다 그러는데, 아뢰야식이 그렇게 쉽게 떠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의사 선생님들이 숨을 안 쉬고 심장이 딱 멎었으면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고 어떻게 되느냐 하면 두 시간 이내에 차가운 냉동칸으로 넣습니다. 냉동칸으로 넣고 그다음에 장의사가 와 가지고 손이고 발이고 이걸 이제 정리를 하거든요. 그게 정토 학자인 나는 좀 못마땅해요. 왜 못 마땅하냐 하면, 내 몸속에 있는 아뢰야식이 영원히 떠나지 않고 있기때문에 움직이면 안 좋은 거예요. 그래서 한 넉 달 전인가, 내 아는 분이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해서 돌아가셨느냐 그러면, 이분이 사우나를 갔대요. 사우나 하고 와서 집으로 오다가 시장에서 먹을 거, -이야기 해도 되겠지,- 천엽을 사서 친구들하고 같이 먹으려고 친구들이 모여있는 친구 집으로 간 거예요. 친구 집 가 가지고 저녁을 먹으려고 친구가 상을 차려놨는데, 사 온 당사자는 소파에 앉아 있는 거예요. 친구가 내려와서 먹자고 하는데 소리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가서 보니까 돌아가신 거예요. 그게 요즘 말로는 심장 마비겠죠. 심장마비. 그런데 남의 집에서 돌아가신 거예요. 그 친구가 남편한테 알려서 남편이 앰블란스를 불러서 병원에 가는데, 이분이 눈을 뜨고 있는 거예요. 남편이 귀에다 대고 “여보. 나도 곧 따라갈 거니까 편안하게 눈을 감고 가세요.” 그러면서 손으로 눈을 감기니까 눈을 딱 감더라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심장은 멎었지마는 내 몸속에 아뢰야식은 아직 안 떠난 거예요. 아뢰야식이 안 떠났는데 시신을 냉동칸에 넣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차가운 걸 느끼잖아요. 움직이는 걸 느끼잖아요. 또 잘못하면 자극을 줘서 아프다고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아프다고 한다고 하면 진심이 일어나죠. 진심이. 그러니까 절대 돌아가신 분 앞에서는 곡도 하지 말아야 된다. 그걸 하려고 하면 변소 가서 하세요, 문을 꽉 닫고. 곡을 하면은 뭐냐 하면 돌아가신 분한테 비식, 슬플 비자, 비식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절대적으로 돌아가신 분은 적어도 8시간 정도는 좀 모셔놔야 된다. 해인사에 어떤 암자에 노스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분 상좌가 나한테 묻기를 ‘우리 노스님을 임종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절대적으로 10시간 이내는 영안실로 모시고 가지 말고 좀 염불을 하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새벽 1시인가 2시에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의사선생님한테 부탁을 해서 아침 9시 정도 시신을 옮겼으니까, 한 7시간 정도, 8시간 정도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일 좋은 방법은 자기 집에서 돌아가시는 게 좋습니다. 자기 집에서. 나도 유언을 그렇게 하려고 그럽니다. 내 방에서 죽고 난 뒤에 영안실로 가든지 어디로 가든지 그때 좀 해달라. 그래서 이렇게 옮기지 말고 곡도 하지 말고, 그 시신에 대해서 그르치지 말아야 된다 이런 거예요. 그다음에 이거 좀 했는데, 30분 다 됐어요. 그냥 내 전공인데 본론을 좀 이야기하면 정토 왕생이라고 하면, 정토가 뭔데 정토에 가려고 하느냐. 또 정토에 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해야 정토에 가느냐. 이게 중요하잖아요. 이게 중요해요. 주지스님. 다음에 나를 한번 불러. 오늘은 간단히 하겠습니다. 정토라고 하는 것은, 정토의 본질은 청정의 본질입니다. 이 사바세계는 청정이 본질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사과가 아무리 아름답고 깨끗하더라도 사과의 본질은 청정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일부러 물어서 씹어서 위장에 들어가면 나올 때 어떻게 나옵니까. 그거 모르세요. 그건 청정이 본질이 아니라서 그런 거예요. 청정이 본질이 아니라서. 그래서 나올 때는 냄새가 나잖아요. 근데 극락세계는 청정이 본질입니다. 그 불교의 닉네임이 뭐냐. <청정심시보리>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청정한 마음 자체가 곧 부처다> 이런 게 있어요. 청정한 마음 자체가. 그러니까 부처라고 하는 건 다른 거 없습니다. 어떤 상태가 부처냐. 부처 상태는 청정한 상태가 부처예요. 청정한 상태가. 그러면 극락세계의 본질이 청정이 본질이면은, 극락세계 그 나라에 가면은 내가 어떻게 돼요. 청정으로 순화되는 거예요. 근데 잘 모르는 분들이 있어. 극락세계에 가면 고스톱 치고 놀고 술 먹고 그런 줄 알아요. 그런 게 아니에요. 극락세계라고 하는 것은 가장 청정으로 가는 수행이 아주 좋은 공간이다. 이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극락세계에 가야 된다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극락세계라고 하는 것은 절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만 전진하는 겁니다. 그래서 극락세계에는 아이월치(我而越就)라고 하는 불퇴전의 지위에 올라가는 그게 아미타 부처님의 48원 가운데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극락세계는 그런 세계다 이 정도만 이야기를 해두고, 그다음에 극락세계에 가려고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극락세계에를 가느냐. 내가 여러분들한테 이야기하려고 잔뜩 가져왔는데 이거 다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오늘 보니. 극락세계에 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서 가야 되느냐 하면, 첫째는 윤리적으로 부모한테 효도해야 된다. 부모한테 효도. 어른들한테. 그다음에 두 번째는 뭐냐. 부처님이 주신 계를 잘 지켜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뭐냐. 이 두 가지 바탕에 염불을 해야 된다. 그래서 염불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염(念)이라고 하는 것은, 요 한문으로 보면 위에가 사람 인자 써졌죠. 한자로 보면. 그다음에 쓰여진 건 그건 뭐냐. 이제 금자예요. 이제 금자. 뭐냐 하면은 염불하는 사람은 과거도 생각하지 말고 다가오는 미래도 생각하지 말고, 오직 지금, 지금 이 상태, 이 상태를 이야기하는 거야, 그게 이제 금자야, 그 밑에 마음 심자를 썼죠. 지금 이 상태의 마음을 가지고 생각할 때 염이에요. 염. 그러면 범어로는 그것을 스므르티라 그럽니다. 스므르티, smrti, 스무리티라 그러는데, 스무리티라고 하는 건 뭐냐 하면, 첫째는 수념이라는 뜻이 있어요. 수념(隨念). 수념은 따를 수자, 염할 염자. 여기에 이제 부처님이 계시죠. 부처님이 계시면 저 부처님을 항상 마음속에 자꾸 넣는 거예요. 그래서 염불 다음에 이야기를 언제 할 기회가 있으면, 그걸 관상염불(觀像念佛)이라고 그럽니다. 볼 관자에다가 형상 상자 써서 관상염불, 부처님을 자꾸 마음속에 넣는 거, 그걸 수념염불이라 그래요. 그다음에 지을 작자, 뜻 의자, 작의(作意)라고 하는 뜻이 있어요. 작의. 작의라고 하는 것은 뭐냐. 자꾸 여러분들이 염불을 하시다 보면 어떻게 해요. 집에 있는 꿀을 먹을까, 떡을 먹을까, 또는 오늘 가서 이제 라떼커피를 먹을까. -라떼커피가 맞나. 커피를 안 먹으니까.- 아무튼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잖아요. 부처님 생각은 딴 데로 가고, 그러면 안 돼요. 그게 염불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자꾸 부처님 생각을 갖다 넣는 거예요. 그다음에 불이라고 하는 건 뭡니까. 불이라고 하는 건, 불이라고 하는 건 붓다하라고 하는데 붓다하는 깨닫는 분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깨달은 분을 마음속에 자꾸 생각하게 되면은 여러분들이 어떻게 돼요. 깨달아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선을 생각하면 선을 행하게 되잖아요. 악을 생각하면 악을 행하게 되고.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데 부처를 생각하게 되면 부처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거죠. 부처 같은 행동을. 그렇기 때문에 염불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다워지는 행위가 염불이다. 그래서 정토삼부경 가운데는 아미타 부처님을 염할 것 같으면 누구든지 내가 그 사람을 극락세계로 인도하겠다. 그래서 48원 가운데 19번째 원이 뭐냐. 내영인접원(來迎引接願)이라 그럽니다. 돌아가신 분들을 향해서 아미타 부처님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성인들을 데리고 와가지고 돌아가신 분들을 맞이하러 오는 거예요. 맞이하러 오는 이유가 뭡니까. 아까 이야기했죠. 난심위라고 하는 거 이야기했죠. 마음이 자꾸 어지러워져가지고 내 업이 지옥으로 가는지 또는 축생으로 갈는지 아귀의 갈는지 천상에 갈는지 모르니까, 아미타 부처님이 성인들을 데리고 와서 그 영혼을 반야선에 태워서 극락세계에 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염불이라고 하는 것은 극락세계에 가는 밑전(근본)이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오늘 사실은 발원문까지 다 하려고 그랬는데 그거 놔두고, 다 같이 합장을 하시고 나하고 같이 따라서 이것도 인연이니까 같이 염불을 해 주세요. 나무서방대교주 무량수여래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계수서방안락찰 접인중생대도사 아금발원원왕생 유원자비애섭수 다 성불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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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 8월 27일 음력8월 초하루 신중기도 법문
종범스님 2022-08-27
-日常禮(일상례)과 持誦發願(지송발원)- 안녕하십니까. 임인년 8월 초하루 진관사 법문은 <일상예경(日常禮)과 지송발원(持誦發願)>. 일상예경, 매일같이 항상, 지송, 수지독송, 늘 읽고 외우는 속에서 발원이 항상 들어 있다. 무엇을 외우든지 그 속에는 늘 발원이 들어있어요. 천수경도 보면 전부 발원이에요. 원을 일으킨다. 그 원을 일으키는 게 왜 중요하냐. 원은 종자를 심는 거와 같은 최초 인연이라. 성불이 구경 인연, 마지막으로 이루어지는 인연이고, 발원이 최초 인연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최초 발원이 없으면 구경 성불도 없다. 구경 성불은 최초 발원에서부터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경에도 발원이 있고, 예불문에도 발원이 있고, 여러 의식을 봉행하는 데도 전부 발원으로 구성이 돼 있어요. 四弘誓願 (사홍서원)衆生無邊誓願度 = 依苦諦立云 衆生無邊誓願度 중생무변서원도 = 의고제립운 중생무변서원도煩惱無盡誓願斷 = 依集諦立云 煩惱無盡誓願斷 번뇌무진서원단 = 의집제립운 번뇌무진서원단法門無量誓願學 = 依道諦立云 法門無量誓願學 법문무량서원학 = 의도제립운 법문무량서원학佛道無上誓願成 = 依滅諦立云 佛道無上誓願成 불도무상서원성 = 의멸제립운 불도무상서원성(千手眼大悲心呪行法, 四明知禮集, 大正藏46)(천수안대비심주행법, 사명지례집, 대정장46) 그럼 그 대표적인 것이 사홍서원(四弘誓願)이 있는데, 사홍서원, 네 가지 큰 서원이라. 이 네 가지 큰 서원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불교 전체의 서원을 전부 종합한 것이다 그런 뜻이죠. 전체 불교 서원을 종합한 서원이 <사홍, 네 가지 넓은 서원> 그렇게 되는데, 그게 이 번역이 참 잘 됐는데, 한문으로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이렇게 나오는데, 한글로 하면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너무 번역이 잘 됐어요.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한문으로 하면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그런데 한글로 하면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그다음에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그렇게 되는데,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그러는데,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한문보다도 훨씬 더 좋은 내용이고, 읽기도 좋고요. 번역은 보통 잘된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 중생이라는 건 뭐냐. 중생이라는 것은 고통이 없으면 중생이라고 안 해요. 중생에게는 고통이 있고. 고통과 근심, 걱정을 합해서 부르는 이름이 고뇌라 그러는데 고뇌. 그러면 이 고통이 뭐냐. 죽고 살고, 되고 안 되고. 보통 고통을 얘기할 때 생로병사를 얘기하고, 애별리고(愛別離苦)를 얘기해요.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거. 또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거. 원증회고(怨憎會苦), 만나기 싫은 사람하고 만나는 거. 오온성고(五蘊盛苦), 몸과 생각이 너무 왕성해서 스스로 괴로움을 만드는 거. 이런 걸 이제 고통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이 생로병사라든지 이런 고통이 어디서 왔느냐. 이걸 설명하는 게 집(集)인데 고집, 이 집이라는 거는 여러 가지가 모여서 왔다. 여러 가지 모인 게 뭐냐. 거기에는 딱 한 가지예요. 이 몸을 나라고 생각하는 거. 생로병사도 내가 태어나서 늙어 죽는다는 거거든요. 거기에 주체가 나요. 그다음에 뭐 되고 안 되고 하는 것도 나고, 나, 이게 이제 번뇌인데, 나라고 하는 것은 불교 용어로는 혹업(惑業)이라고 그래요. 미혹할 혹자, 움직일 업자, 직업이라는 업자, 혹업. 혹업은 행위인데, 미혹한 행위이다. 미혹에서 온다. 뭐가 미혹이냐. 이 몸이 난 게 아닌데 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몸이 난 것이 없다>라는 걸 아는 거예요. 이거 참. 이거 보통 일이 아니에요. 이 몸이 난 것이 없다. 난 것이 없다는 것을 없을 무자, 날 생자, 무생(無生)이라고 그러고, 또 죽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적멸(寂滅)이라고 그래요. 고요할 적자, 없어질 멸자, 적멸. 그걸 열반이라고 그래요. 무생, 적멸, 열반, 그걸 깨닫는 거예요. 이 몸은 난 것이 없다. 무생. 이 몸은 죽는 것이 없다. 적멸. 이 몸은 죽고 사는 게 없다. 열반. 그런데 그걸 모르고 이 몸이 났다. 난 건 누구냐. 나다. 이 생멸과 아상에 매여서 살아요. 나고 죽는다, 나라는 생각에 매여서 사는데 그걸 혹업이라 그래요. 그런 혹업에 의해서 온갖 고통이 나온다. 그래서 번뇌라는 것은 난 것이 없는 데서 났다라고 잘못 생각해서, 나를 위해서 온갖 행위를 해서, 그 행위에 의해서 나타나는 결과가 괴로움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거예요. 이게 고집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어떡하면 되냐. 어떡하면 이 난 것이 없는 걸 깨닫느냐. 그게 깨닫는 방법이 이제 법문을 배우는 건데, 그 ‘법문을 배운다’라는 것은 다른 거 아무 것도 없고, 그 혹업, 난 것이 없는 나에게 났다, 나다, 내가 태어났다, 나다, 이렇게 생각하고 얽매이는 것을 닦아내는 거예요, 그 혹업을. 그게 법문을 배우는 거지요. 그다음에 불도를 이룬다는 것은 이 몸은 난 것이 아니다, 이 몸은 죽는 것이 아니다. 나고 죽음이 없는 적멸 세계가 있다. 이걸 깨닫는 게 이제 불도를 이루는 건데, 이걸 어떻게, 불도를 이루면 어떻게 되냐. 무생구족, 생멸은 없는데 모든 게 다 구족해요. 갖출 구자, 넉넉할 족자. 없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걸 열반이라고 해요. 무생구족. 그래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구족한 세계에 들어가는 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그걸 성불이라고 하고. 그러면 이 무생구족을 초기불교에서는 별로 설명을 안 하는데, 이제 대승불교에서는 이 무생을 성(性)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성품이라는 성자, 그런데 중생들은 상을 보는데 성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늘 가르치는 걸 성을 가르쳐요. 상이라고 하는 것은 구름도 상이요, 이슬도 상이요, 바다도 상이요, 안개도 상이요, 상인데, 성이라고 하는 거는 그 축축한 습기, 습성, 그게 성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구름 모양이나, 안개 모양이나, 흐르는 물 모양이나, 얼음 모양이나, 이건 전부 모양에 불과하고, 내용은 바로 그 축축한 습기 그것이다. 그것이 여러 가지 나고 죽는 속에, 나고 죽음이 없는 성이다. 그래서 상에서 성으로 돌아가면 거기는 구족하다. 다 갖춰져 있다 이거죠. 상성.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항상 온갖 천지 만법에 본성이 있다. 그래가지고 그걸 만법 본성이라고 그래서 법성이라고 하거든요. 법성, 턱 보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일체제불에게 본성이 있다. 그걸 불성이라 그래요. 또 이 허망하고 무상하게 헛되고 거짓된 속에 헛되지도 않고 거짓되지도 않은 참성이 있다. 이래서 이걸 진성이라 그래요. 다 헛된 건데 거기에 아주 참 본성이 있다해가지고 진성이다 그러거든요. 나는 이게 몸인데 내 몸, 내 얼굴, 이렇게 내 몸을 말하는데, 이 내 몸에 나의 본성이 있다. 이걸 자성이라고 그런단 말이에요. 자성. 이렇게 법성, 불성, 진성, 자성, 이걸 딱 보는 걸 견성(見性)이라고 그러고. 성을 본다. 이걸 믿는 거를 신성이라고 그러는데, 믿을 신자. 가르침에 의해서 쭉 따라가는 게 이제 신성인데, 자기가 눈앞에서 봐요, 이걸 견성이라 그래요. 현견불성, 눈앞에서 불성을 본다. 현견자성, 바로 눈앞에서 자성을 본다. 그러면 이걸(물컵) 떡 이렇게 보이면, 여기서 이 모양을 보는 게 아니라 법성을 보는 거예요. 그래서 내 몸에서 태어난 몸을 보는 게 아니라 나의 자성을 봐요. 그러면 거기에는 무생구족이라, 생멸이 없고 다 갖추어져서 무생구족. 그냥 놀면 돼요. 할 일은 없어. 인간이 바쁘고 할 일이 많고 힘들고 어려운 건 전부 번뇌망상으로 시작된 거예요. 할 일 없어요. 할 일 많은 사람들은 너무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해서 뭐 할 건데. 다 쓰잘데기 없어요. 전부 그것은 상 놀음이다. 상 보이는 모습이다. 그 성 놀음이 아니에요. 그걸 현상, 진성 이렇게 설명해요. 전부 현상 놀음입니다. 나타난 모양, 나타난 모양에 얽매여서 하니까 바쁜 거예요. 참된 본성에 들어가면 없어. 그냥 무생구족이에요. 생멸 없는 구족한 것이다 이거죠. 그게 불도예요. 그래서 불도를 대승불교에서는 원융무애라고 설명을 해요. 원융무애. 원융하다. 어떻게 원융하냐. 원이라는 거는 두루, 융이라고 하는 것은 융통한다. 융자는 통한다 소리요. 두루 다 통한다. 그 뭐와 같으냐. 이 습기가 있는데, 습기는 빗물하고도 통하고, 안개하고도 통하고, 얼음하고도 통하고, 다 통한다는 거죠. 그리고 비나 얼음이나 걸리지 않아, 이걸 무예라고 그래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다. 일념은 일 찰나인데 무량겁은 한량없는 세월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이 진성으로 돌아가면 일 찰나 진성이나 무량겁 진성이 다른 게 아니에요. 이게 원융무애예요. 이렇게 이 경지에 들어가는 거를 이제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그러고요. 불도라는 것은 원융무애, 구족자재 다 갖춰져 있고, 한 티끌이나 시방세계가 다 원융무애에서 구족자재하거든요, 다 갖춰져 있고 자재하고. 그렇게 되면 저절로, 거울이 밝으면 모든 게 다 비추듯이, 저절로 자비가 나와요. 아집이 있을 때는 탐욕이 나오는데 모든 욕심은 자기 집착에서 나오는 거예요. 왜 저렇게 구하는 게 많냐. 그거 몰라서 물어요. 자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나는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전부 자식 생각뿐이다. 그게 누구 자식인데요? 내 자식이지. 나는 오직 남편 뒷바라지만 한다. 그게 누구 남편인데? 뭐 딴 동네 남편을 위해서 하는건가요? 그 모든 탐욕에는 나라는 게 들어있는 거예요. 근데 나라는 게 없어지고 그 자성, 진성에 머물면 어떻게 되냐. 그 탐욕이 아니라 자비가 나온다. 자비는 더 많은 것을 이루려고 하는 원력이 나오는데, 이걸 불사라고 그래요, 부처님의 일이다 말이에요. 부처님의 일은 자기 원력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 여러 문에 보이고 나타난다. 이걸 불도라고 하거든요. 원융무애 구족자재 자비원력 보문시현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사성제 법문이 있는데, 고에서 중생무변서원도 하는 이 발원이 나왔고 이렇게 가르치는 거예요. 인간은 고통이 있다 이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거를 원을 세우기를, 거기에 근거해서, 그걸 땅바닥으로 딱 서서 원을 세우기를 중생무변서원도,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이런 원을 세웠고, 또 번뇌는 다 끊어오리다 이런 거를 갖다가 번뇌무진서원단, 이건 이제 고집, 고통은 집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그 집에 의해서 번뇌무진서원단 원력이 나왔고. 또 법문무량서원학은 고집멸도라는 게 있거든요. 그 도제에 의해서 이제 법문을 다 배우리라가 나온 거고, 불도무상서원성 이거는 이제 고집멸, 멸제에 의해서 불도무상서원성 이런 원력이 나온 거예요. 초기불교는 고집멸도 사성제인데 대승불교는 사홍서원이다. 이렇게 이제 가르치는 게 이게 대승불교예요. 이거는 천수안대비심주행법(千手眼大悲心呪行法)이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관세음보살 천수안이죠. 대비심주 천수다라니인데 그 다라니를 어떻게 봉행하고 어떻게 예경할 것이냐 그 행법이 있는데, 그 행법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어요. 自性衆生誓願度 自性煩惱誓願斷 자성중생서원도 자성번뇌서원단自性法門誓願學 自性佛道誓願成 자성법문서원학 자성불도서원성自心衆生無邊誓願度 自心煩惱無邊誓願斷 자심중생무변서원도 자심번뇌무변서원단自性法門無盡誓願學 自性佛道無上誓願成 자성법문무진서원학 자성불도무상서원성①自心衆生度 : 自心中 煩惱衆生 般若智自度 名爲眞度 자심중생도 : 자심중 번뇌중생 반야지자도 명위진도②自心煩惱斷 : 將自性般若智 除却虚妄心 是也 자심번뇌단 : 장자성반야지 제각허망심 시야③自性法門學 : 須自見性 常行正法 是名眞學 자성법문학 : 수자견성 상행정법 시명진학④自性佛道成 : 常行般若 除眞除妄 即見佛性 即成佛道 자성불도성 : 상행반야 제진제망 즉견불성 즉성불도(六祖壇經 傳香懺悔제5)(육조단경 전향참회제5) 그런데 이제 사홍서원 경전의 가르침이고, 천수경에 보면 자성중생 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 이 말이 있어요. 자성. 또 자성번뇌서원단(自性煩惱誓願斷), 자성법문서원학(自性法門誓願學), 자성불도서원성(自性佛道誓願成), 이거는 경전에 의한 서원이 아니라, 내 마음에 의한 서원이에요. 이 많은 공덕과 지혜를 이루는데 멀리 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 중생이 있다. 그래서 내 마음속 중생을 제거하는 걸 자성중생서원도라고 그래요. 그 내 마음속 중생이 뭐냐. 이 법문은 육조단경(六祖壇經)이라고 하는데 나와요. 육조단경에 보면, 자성중생을 제도하라. 그러면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동아시아 조사선법 자성법문이거든요. 그러면 자성중생이 뭐냐. 자성중생은 자기 마음속에 번뇌중생인데, 자기 마음속에 있는 구할 것이 없는데 구하려고 하는 거, 죽음이 없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는 거, 이걸 전도몽상이라고 그래요. 왜 죽음이 없냐. 왜 남이 없냐. 아침에 해가 동쪽에서 떡 떠오르는데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그게 태어난 건 아니다. 저녁에 이제 서쪽으로 해가 넘어가는데 안 보이기는 하지만 그게 죽는 게 아니다. 상으로는 보였다 안 보였다 하지만, 진성으로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데 근심 걱정은 전부 나고 죽는 데서 나와요. 그러니까 그걸 반야심경에서는 전도몽상이라 그래요. 죽음이 없는데 죽는 거 걱정하는 거, 이거 참, 사람 미칠 노릇이에요. 죽는 건 아예 없어요. 이 물을 이걸 사람이 마셔도 이게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물은 또 땅에 버려도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 물 없어질까 봐 온갖 걱정 다 하면 그걸 번뇌라고 하는 거거든요. 번뇌는 전도몽상이라고, 전도라는 거는 뭐냐 하면, 쉽게 말하면 되지도 않는 생각이다 이 말이에요. 되지도 않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할 때 말도 안 된다고 그러잖아요. 말 안 되는 것이 한두 가진가. 전부 되지도 않는 생각이죠. 그걸 전도몽상이라고. 어려운 말로 전도 몽상. 그래서 자성 중생이라는 건 내 마음속에 그 쓸데없는 생각을 다 맑혀요. 그것이 뭐냐 그러면, 반야 지혜로 내 자성중생을 스스로 제거하는 것이 자성중생서원도다 그 말이죠. 자성번뇌서원단 그러면 이 반야지혜를 가지고 허망한 생각을 다 없애는 게 그게 자성번뇌를 없애는 거고, 자성법문서원학 그러면 견성을 해서 내가 스스로 나의 자성을 봐가지고 상행정법(常行正法)이라. 항상 바른 법을 행한다. 그 바른 법이라고 하는 것은 상법에 머물지 않고 법성법, 불성법, 자성법, 진성법에 다 머물러서 그 진성법을 실행한다 이 말이죠. 상에 머물면 근심 걱정이 있는데, 성에 머물면 근심 걱정이 없어요. 저 멀리서 새가 깍깍하는데, 여기서는 사홍서원 설명한다고 마이크 대고 막 떠들고 그러면, 상으로 보면 새 소리나 마이크 소리가 다른데, 성으로 보면 원융무애, 다 원융하게 통하고 걸림이 없어요. 그다음에 자성불도서원성은 항상 성에 머무는 것이 반야인데, 상에 머물면 번뇌고 성에 머물면 반야란 말이에요. 지혜. 그게 항상 그 반야지(般若智)로서 좋고 나쁜 건 다 없애는 거예요. 진실, 허망이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진실하다는 생각과 허망하다는 생각 다 없어요. 내 법이라는 생각과 타인법이라고 하는 생각 없어요. 그래가지고 상견불성, 상성불도, 항상 눈앞에서 법성, 진성을 보는 거예요. 근데 상으로 보면 전부 다 이게 물질인데, 성으로 보면 전부 진성이에요. 이걸 이렇게 드러내도 이게 진성이고, 하늘을 봐도 진성이고, 땅을 봐도 진성이고, 사람이 죽을 때도 진성이고, 태어날 때도 진성이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전도몽상을 일으킬 때 죽는다 산다, 보인다 안 보인다 하는 거거든요. 그래가지고 늘 불성을 보고 항상 불도를 이루는 거예요. 그냥 여기서 있을 때는 여기서 불도를 이루고, 저기서는 저기서 불도를 이루고, 항상 불성을 보는 거예요. 이걸 자성불도서원성이라고 한다 이렇게 가르쳐요. 이거 이제 선불교, 아까 사홍서원은 전체 대승불교이고, 이 조사선법 선불교 가르칠 때는 이걸 자성사홍서원이라 그런다 이거죠. 근데 천수경에는 이게 다 있어요. 그게 우리나라 불교에. 如來十大發願文 여래십대발원문願我永離三惡道 願我速斷貪瞋癡 願我常聞佛法僧 원아영리삼악도 원아속단탐진치 원아상문불법승願我勤修戒定慧 願我恒隨諸佛學 願我不退菩提心원아근수계정혜 원아항수제불학 원아불퇴보리심 願我決定生安養 願我速見阿彌陀 願我分身遍塵剎원아결정생안양 원아속견아미타 원아분신변진찰 願我速度諸衆生(往生淨土十願文, 樂邦文類2. 大正藏47)원아속도제중생(왕생정토십원문, 낙방문류2, 대정장47)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여래십대발원문(如來十大發願文)이라고 그러는데, 이거는 사홍서원과 자성사홍서원 그 중간에, 일체중생이 꼭 머물게 하는 극락세계를 얘기하는 게 여래십대발원문이에요. 그거는 극락세계 가는 건데, 왕생정토십원문(往生淨土十願文)이라고 하는 법문에 있는 내용이에요. 왕생정토, 정토에 가서 태어나는 10가지 원이다, 이게 십원문이거든요. 거기는 원아영리삼악도(願我永離三惡道) 이렇게 나와요. 이게 자성하고 틀려요. 내 안에 있는 중생을 제도하는 게 자성중생 서원도인데, 이거는 삼악도, 일체 법계에 있는 삼악도를 멀리 여의기를 원한다. 이렇게 돼가지고 마지막에는 원아속도제중생(願我速度諸衆生), 일체제중생을 다 제도하기를 원한다 그러면, 자성이나 스스로 불도를 이루는 게 아니라, 이건 부처님의 원력과 부처님의 자비와 부처님의 신통을 내가 힘입어서, 승불원력(乘佛願力)하고, 내 힘으로 가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원력을 타고, 우리가 차 타고 가면 빠르듯이, 탈 승자, 승불원력, 부처님의 원력을 타고 간다. 이게 이제 여래십대발원문이에요. 그래서 사홍서원과 왕생발원과 자성발원이 다 있는데, 이런 거를 맨날 외울 때 이렇게 발원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성불하면 사홍서원이고, 내 자성 속에서 성불하면 자성사홍서원이고, 부처님의 원력을 힘입어서 극락세계에 가면 그것은 왕생정토 승불원력으로 시행되는 거다 이거죠. 이런 거를 만들어 외워요. 만날 외우는데 이제 문제가 요즘 이게 한글 세대인데 이 한문으로 이렇게 하면 이게 너무 답답하지 않나 그러는데, 그 옛날에 60년대 뭘 경험했냐고 그러면 내가, 할머니들, 그 당시 절에 오시는, 대부분 한글 모르세요. 한글도 모르는 할머니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금방 외우는데, 이 대학생 애들은 말이야, 이게 한 달이 되도 못 외우고 1년이 되도 못 외우고 그래요. 그래서 ‘아 이거 쉽게 만들 필요가 없다. 이건 마음 문제지, 이게 뭐 능력 문제가 아니다.’ 능력 아무리 있어도 마음 없으면 소용없어요. 그래서 아무리 쉽게 만들어놔 봐야 관심 없으면 소용없어요.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은 쉽게 만들 생각은 안 해요. 아무리 좋은 음식을 만들어 놔도 안 먹으면 그만이에요. 그런데 배고프면 다 먹어. 그래서 배고플 때까지 기다려야 돼요. 저 애들 양육하는 어머니들 답답해요. 쫓아다니면서 먹으라고 그래요. 그거 미쳤어. 굶겨요. 굶겨. 그러고 잠재운다고 그래요. 그 잘못된 생각에 잠재우려고 하지 말고 애들 데리고 막 돌아다녀요. 그러면 그냥 쓰러져 자요. 애들이. 밥 안 먹을 때는 굶기고, 잠 안 잘 때는 막 그냥 뛰게 하고, 같이 뛰어요. 운동을 시켜요. 그러면 다 하는데 왜 그걸 그리 해요.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가 잠 안 잔다고 그러는데, 할아버지는 기운이 없어서 맨날 애를 방에만 데리고 있거든요. 그러면 잠 안 자죠. 근데 아버지가 데리고 나가서 운동장에서 그냥 몇 시간을 같이 뛰었어요. 그러니까 그날 저녁에 저녁 되자마자 그냥 쓰러져 자요. 그러니까 이걸 뭘 쉽게 만들고 어렵게 만들고 여기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문제는 마음을 어떻게 일으키느냐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