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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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행수륙재] 8월 22일 국행수륙재 입재 법문
종범스님 2022-08-22
금차 국행무차수륙대재 입재일체유주무주 애혼 고혼 각열위열명영가일체열위열명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天地水月 三界空花 水月空花 施作佛事 천지수월은 삼계공화요 수월공화로 시작불사요開方便門 示眞實相 諸佛菩薩 無盡願力개방편문하야 시진실상이니 제불보살의 무진원력이로다나무아미타불 진관사 국행수륙대재, 무차대재 오늘 입재인데, 오늘 제목을 주기를 수월공화(水月空花)라고, 물 수자, 달 월자, 빌 공자, 꽃 화자. 첫 번째 게송이 천지는 수월(天地水月)이요, 하늘과 땅은 물 속에 비친 달이요. 삼계는 공화(三界空花)라, 삼계는 허공에 핀 꽃이다. 우리가 보고 듣는 일체 만물이 물속 달, 허공의 꽃이다. 그렇게 수월공화로, 물속의 달과 허공의 꽃으로, 시작불사(施作佛事)하니, 중생을 제도하는 온갖 불사를 베풀어 지으니, 개방편문(開方便門)하야 시진실상(示眞實相)이라, 방편문을 열어, 진실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제불보살의 무진원력(諸佛菩薩 無盡願力)이다. 一切衆生 心意識心 天地三界 心外境界 일체중생은 심의식심이니 천지삼계가 심외경계요一切菩薩 般若觀照 天地三界 寂滅實相 일체보살은 반야관조이니 천지삼계가 적멸실상이요一切諸佛 一切種智 天地三界 水月空花 일체제불은 일체종지이니 천지삼계가 수월공화로다나무아미타불 일체중생(一切衆生), 일체보살(一切菩薩), 일체제불(一切諸佛) 이렇게 말씀을 하는데, 일체중생은 왜 일체중생이냐. 마음을 가지고 사는데 무슨 마음이냐. 심의식심(心意識心)이다. 마음 심자 심, 생각 의자 의, 알 식자 식. 심의식심을 가지고 산다. 식이라고 하는 것은 분별식인데, 보고 듣고 일체 느끼고 헤아리고 하는 분별식인데, 이걸 식별식이라고 한다. 식별을 해요. 중생은 먼저 식별을 해, 알아서 구별을 해요. 그다음에 의는 사량식(思量識)인데 생각할 사자, 헤아릴 량자, 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전부 자신이 재정리하고 재구상하고 재평가를 해요. 그게 의식이에요. 그 다음에 심식은 종자식인데, 자기가 본 거, 생각한 거, 경험한 게 전부 종자로 저장이 돼요. 종자. 그래서 이 종자식을 마음 심자를 써서 심이라고 하고, 제8식이라고 하고, 이 사량식을 집착이라고 해서, 집착식이라고 하는데, 이 식을 제7식이라고 하고, 식별식을 안이비설신의 육군으로 헤아려서 식별하는 식인데 이 식을 분별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생은 분별하고 생각하고 저장하고, 한 번 경험한 건 다 저장이 돼요. 그러나 어디에 저장되는진 몰라요. 근데 종자로 다 남아. 그래서 그 종자가 볼 때, 들을 때 그 종자가 나타나야 비로소 알아요. 자기가 본 것이 저장돼 있어야 보면 알지, 본 것이 저장돼 있지 않으면 봐도 몰라요. 그래서 봐야 알지 그러는데, 저장 안 된 건 봐도 몰라요. 가령 이것(안경집을 들어보이시며)이 뭐냐. 어릴 때부터 애들이 이걸 보고 만져도 보고, 움직여도 보고, 이름도 듣고, 이게 경험이 있어야 이게 뭔지 알아요. ‘봐야 알지’ 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종자로 저장이 된 것, 이걸 보면 내가 ‘어릴 때 본 거, 이거지 알지’ 생판 처음 보는 건 봐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식별식, 사량식, 종자식, 본 거는 다시 생각하고, 생각한 거는 종자로 저장되고, 그것이 경계에 부딪히면 다시 종자가 튀어나와서 그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줘서 알게 하고, 이렇게 뱅뱅 도는 거예요, 이게. 그래서 이 심의식심은 식별사량종자식인데, 이거는 특징이 밖에 것만 본다는 거예요. 안의 걸 못 봐. 전부 의경발식(依境發識)을 해요. 경계에 의지해서 그 식심을 일으켜요. 의경발식. 경계가 없으면 몰라. 그래서 일체중생은 심의식심이니, 천지삼계가 심외경계다(天地三界 心外境界). 마음 밖의 경계다. 그러니까 중생이 볼 때는 마음은 없고 경계뿐이에요. 전부 ‘저게 뭐지, 저게 뭐지’, 그래서 경계 쫓아가다가 경계에 파묻혀서 죽는 게 중생이에요. 보통 사람은 구하다 죽고, 새는 날다 죽고, 벌레는 기다 죽고. 이게 경계 쫓아가다가 경계 속에 파묻히는 게 그게 중생인데, 이게 삼계육도 윤회중생이다. 삼계육도 윤회중생. 윤회중생, 이게 중생살이에요. 그다음에 일체보살은 어떻게 되냐. 보살은 경계가 허망하고 식심이 무상하고, 경계 없으면 식도 없으니까 경계가 나타나면 식도 나타나고, 경계가 사라지면 식도 사라지고 하니까, 이 식심이 무상해요. 금방 좋다가 금방 나빠지고, 그게 다 경계에 의지해서 식을 발동시키니까 그렇다 이 말이죠. 이런 걸 보고 깊은 이해를 하게 돼요. 이렇게 살아가는 게 이게 뭐냐. 삼계육도 윤회중생을 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발심을 하게 돼요. 이 중생을 깊이 관찰하면 발심이 나와요. 중생을 관찰하지 않으면 발심이 안 나와요. 중생이 살아가는 모습이 좋게 보이거든. 깊이 관찰하여 ‘한번 이걸 깨달아봐야 되겠다.’ 이게 이제 보리심을 일으키는 건데, 중생에 대한 이 허망하고 무상한 것을 깊이 이해를 하고, 그다음에 깨닫고자 하는 서원을 일으켜서 이제 부처님이 깨달은 방법대로 해보는 거예요. 그럼 부처님이 어떻게 해서 깨달았나. 먼저 대상을 딱 보는 거예요. 쫓아가는 게 아니라 봐요. 관조(觀照)를 해, 관조. 중생은 반연(攀緣)을 하는데, 얽을 반, 따라갈 연, 중생은 보기만 하면 반연을 하는데, 보살은 관조를 해요. 볼 관, 볼 조, 보는 거예요. 이렇게 보는 거에요. 딱 보면 형상에 형상이 없는 걸 알아요. 제상이 비상임을 본다. 왜 상이 상이 아니냐. 상은 전부 자성이 없고 상무자성(相無自性)하고, 상에는 자성이 없고, 이타의성이라, 다른 것으로 자성을 삼았다. 그러니까 이 그릇(물컵을 보이시며)도 이게 상인데, 여기 상의 상이 없다. 뭔 소리냐. 이거는 다 흙과 물과 여기 색깔, 또 만든 사람의 기술, 구상, 이런 걸로 이게 자성이 된 것이니까 이타의성이라, 다른 것으로서 자성을 삼았다. 그래서 반연하는 중생심을 잠시 멈추고, 일체상을 딱 바라보면 일체상에 일체의 자체성이 없는 거를 본다. 이것이 ‘오온이 개공함을 본다’ 이 말이고 제상이 비상임을 본다. 이게 반야 지혜의 관조행위거든요. 일체보살은 이걸 하는 거예요. 반야지혜 관조행위, 이걸 하는 게 보살이에요. 그러면 형상을 볼 때 형상의 형상이 없는 거를 보고 나면, 그다음에는 마음을 보게 돼요. 대상에 쫓아가는 이 마음이 뭐냐. 그래서 대상에는 이제 관심이 없고 마음을 보게 돼요. 그걸 가르칠 때, 어느 도둑이 어느 집 안에 들어갔는데 집에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 빈집이더라. 그러니까 빈집임을 안 도둑은 거기 더이상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도로 나온단 말이에요. 그 경지에요. 그러면 이 지금까지 대상에 쫓아다니던 이 반연심, 또 다른 말로 하면 연려심(緣慮心)이라고 그러는데 인연 년, 생각 려. 그 인연해서 생각하던 마음, 대상에 쫓아가던 마음, 이걸 가만히 또 관조를 하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생각도 공해서, 첫 번째는 대상이 불생불멸이고, 두 번째는 이 생각이, 심의식심이 불생불멸인 거예요. 그러고 나서 또 깊이 깊이 관조를 하면 대상과 생각이 갈라지기 전 최초 일념이 나와, 그걸 근본무명이라고 그래요. 대상과 생각이 갈라지기 전 최초 일념, 그걸 무명업상(無明業相)이라고도 하는데, 그 경지에 이제 딱 도달을 하게 돼요. 그럼 다시 또 깊이 깊이 보면 각심초기(覺心初起)하면 심무초상(心無初相)이라, 그 최초의 어리석은 한 생각이 일어난 것을 딱 깨달으면 심초기, 마음이 처음 일어난 거, 그게 미혹 최초 일념인데 그걸 깨닫는단 말이에요. ‘아, 최초에 이렇게 일어났구나. ’그래서 각심초기하면, 마음이 처음 일어난 것을 깨달으면, 심무초상이라, 마음에는 처음 일어난 상이 없어. 그래서 마음은 심즉상주(心卽常住)라, 시위견성이라 이렇게 나오죠. 마음은 곧 상주하는 것이다. 항상 머무는 것이다. 항상 머무는 것을 보는 것이 견성이다. 이렇게 되는 거에요. 심즉상주 그게 바로 즉견심성이다. 그게 바로 심성을 보는 것이다. 이게 보살이에요. 그 보살은 반야관조지 심의식심이 아니에요. 그런데 일체중생은 심의식 그 마음 가지고 산다 그 말이죠. 근데 일체제불은 일체종지(一切諸佛 一切種智)이니, 일체제불은 삼계가 일심이오, 만법이 유심이라, 삼계가 오직 한 마음이오, 만법이 한 마음이다. 이걸 딱 아는 게 시성정각인데, 처음으로 정각을 이룬 건데,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면 지금까지 반야관조나 심의식심이 전부 지혜가 돼요. 이거를 각지출현이라고 그래요. 각지, 깨달은 지혜가 출현한다. 날 출, 나타날 현. 반야관조도 깨달은 지혜가 되고 심의식심도 깨달은 지혜가 된다. 이 말이죠. 그러면 뭐를 보든지, 저걸 세간 중생은 산이라고 보는데 저것이 유심소현이다. 오직 마음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세간법도 알고 유심법도 알고 이게 모든 종류가 다 그래요. 그래서 이거를 일체종지라고 그래요. 일체 종류의 지혜라고. 이거 이제 세간법으로 보면 안경집인데, 이게 각지로 보면 이것이 유심소현, 오직 마음이 나타나는 거예요. 뭐든지 다 그래요. 그래서 근본지와 방편지가 항상 구족하니까 일체 종류의 지혜를 다 갖춘다. 그것이 일체종지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일체제불은 일체종지이니, 천지삼계가 수월공화(天地三界 水月空花)라, 하늘, 땅, 욕계, 색계, 무색계가 물속 달이요, 허공 꽃이다. 물속 달이요, 허공 꽃이라는 게, 이게 보이기는 보이는데 물속에 달이 완연히 있어요. 근데 물속에 들어가 보면 없어. 달이 물속에 빠지지도 않았고 물이 달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환히 보여요. 또 허공에 꽃이 폈는데 이게 공중발화라고 하거든요. 공중에 발화(發花), 꽃이 피었다. 필 발자. 반짝 폈는데 찾아가 보면 없어. 그럼 허공 꽃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냐. 예안소생이라, 눈에 안질이 딱 생기면 그 가릴 예자, 예안이라고 그러는데, 그 안질의 눈에 의해서 허공 꽃이 보인 거지, 예안소생이지, 공무자생이라 허공에는 스스로 난 것이 없다. 이거를 알게 돼요. 그래서 천지삼계가 물속 달이오, 허공 꽃이라고 아는 것은 일체제불 일체종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모든 게 무생청정, 원만구족, 대안정토다. 난 게 없어요. 물속에 달도 난 것이 없고, 허공의 꽃도 난 것이 없어요. 이걸 무생청정이라고 그래요. 난 것이 없는 청정세계다. 그대로 그게 화장세계예요. 화장세계라는 거는 공덕으로 저장됐다 이 말이거든요. 꽃은 공덕이니까, 모든 공덕으로 저장이 된 거고. 그리고 이게 원만구족해요. 하나도 모자라는 것도 없고, 하나도 남는 것도 없고, 그냥 원만하고 구족해 다 갖춰져 있어요. 대안정토에요. 항상 온전히 편안한, 큰 대자, 편안할 안자, 온전히 편안한 청정진토, 티끌 진, 흙 토, 청정진토다. 이제 이 세계가 각지출현 일체제불 일체종지 세계다 이 말이죠. 그러면 이런 게 도대체 뭐냐. 왜 중생은 심의식심을 가지고 마음 밖의 경계를 보고, 보살은 반야관조로 그 상이 아닌 모든 게 불생불멸이다, 그걸 적멸이라고 그러는데, -불생불멸을 두 자로 줄이면 적멸이에요. 그 적멸이 뭐냐 하면 진실할 실자, 형상 상자, 실상이다.- 이 일체보살은 반야관조로 적멸실상을 보고, 일체제불은 일체종지로 이 천지삼계가 수월공화로 보는데, 이게 도대체 뭐냐 이거에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법문이 60권 화엄경 야마천궁보살설게품에 있는데, 心如工畫師 畫種種五陰 심여공화사 화종종오음一切世界中 無法而不造일체세계중 무법이부조 若人欲求知 三世一切佛약인욕구지 삼세일체불 應當如是觀 心造諸如來 응당여시관 심조제여래로다(60華嚴經,夜摩宮偈品)(60화엄경, 야마궁게품)나무아미타불 마음이라는 게 있는데, 이 마음이라는 거는 보통 생각하는 걸 마음이라는데, 생각하는 것도 아니에요. 마음이 아닌 마음. 그전에 법문할 때 입승스님이 나와서, 세 가지가 있는데, 불시심 불시불 불시물, ‘마음도 아니오, 부처도 아니오, 물건도 아니오.’ 이게 남전스님, 선종의 남전스님 법문인데, ‘불시심, -불시라는 건 아니다, 이 말이죠.- 마음도 아니에요. 불시불, 부처도 아니에요. 불시물, 물건도 아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그렇게 하고 죽비를 쳐요. ‘마음도 아니오, 부처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가.’ 딱. 세 번 하는데 ‘마음도 아니오, 부처도 아니오, 물건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가.’ 딱. 그게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 그 말만 들으면 법문 더 들을 필요도 없어요. 그런 게 있어요. 부처라는 이름도 해당이 안 되고, 마음이라는 이름도 해당이 안 되고, 물건이라는 이름도 해당이 안 되는 그것이 있다.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뭐라고 그랬냐. 마음이라는 것은 공화사(心如工畫師)와 같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다 이거지요. 화가. 근데 화가가 모든 그림을 다 그려내는데, 화가 자신은 그림이 아니에요. 마음이 그와 같다는 거예요. 화가가 사람도 그리지만, 사람이 그려낸 사람이 그게 화가가 아니거든요. 하늘도 그리고 땅도 그리지만, 자기는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니에요. 그런데 온갖 걸 다 그려낸단 말이죠. 비유를 참 멋지게 잡았어요. 그래서 화종종오음(畫種種五陰)이라, 가지가지 오음 중생, 색수상행식 오음 중생을 다 만들어내요, 마음이라는 게. 중생도 만들어내고 또 일체세계중(一切世界中)에 이 마음이라는 게 무법이 부조(無法而不造)라. 어떤 법도 만들지 못하는 게 없다. 그러니까 세계도 만들어내고, 또 약인욕구지 삼세일체불(若人欲求知 三世一切佛), 어떤 사람이 삼세일체불을 이게 뭔가 이거 찾고 알고자 한다면, 부처를 한번 찾아보자, 구할 구자는 찾는단 말이거든요, 부처를 한번 알아보자, 찾아보고 알아보고자 한다면, 응당여시관(應當如是觀)하라, 응당히 딴짓 하지 말고 다음과 같이 살펴봐라. 심조제여래(心造諸如來)니라. 마음이 모든 여래를 만들었나니라, 이런 법문이 있어요. 그러니까 마음이 여래도 만들고, 마음이 세계도 만들고, 마음이 중생도 만든다. 그러니까 이 마음을 딱 찾아보면, 깊이 들어가면 최초 일념을 일으킨 것이 일으킨 자체가 없다. 더 들어가면 이 마음은 마음도 아닌 마음이오, 부처도 아닌 마음이요, 물건도 아닌 마음이다. 그거는 내가 보고 내가 참으로 얻을 뿐이지, 다른 길이 없어요. 자견자득, 내가 보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얻는 거예요. 여기에 생사니 세계니 범부 중생이니 전부 다 소용없는 거예요. 전부 다 이거는 망상이 만들어낸 허상이에요. 망상 허상. 그 허상은 어디서 나오느냐. 망상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허공 꽃이 어디서 나왔느냐. 눈병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일체의 근심 걱정이 망상 허상이다. 이렇게 인도하는 게 이게 수륙재예요. 일체 고혼 영가가 온갖 억울하고 분통 터지고 가슴 답답하고, 이게 전부 망상이 만들어낸 헛된 생각이에요. 그래서 이걸 깨우쳐서 바로 앉은 자리에서 대안정토로 가라고, 크게 편안한 청정국토로 가라고 이렇게 수륙재를 지냈는데, 징을 얼마나 크게 치고, 그냥 뭘 불어 제끼고, 법문하는데도 뭘 불어요. 소리를 질렀는데, 다 치우라고. 아니 법문 하는데 법문을 들어야지 무슨 뭘 불어 거기다가. 그러니까 이제 세상에서는 말을 해도 말에 자신감이 없으니까 그 말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서 전주곡을 울려요. 그러니까 하나를 울려도 만족하지 못하니까, 어떤 때는 조용한 조작된 침묵을 또 만들어내요. 이게 전부가 다 이 세상법으로 하는 거다 이 말이지요. 그래 가지고 그 귀가 기억을 잘 하도록 그 쉼표를 만들어 놓고, 큰 소리 작은 소리를 만들어 놓고 뭐 이래요. 그런데 소리라고 하는 것은 사람 생각에서 나오는 거기 때문에 생각이 기쁘면 기쁜 소리가 나오고, 생각이 슬프면 슬픈 소리가 나오는 거지, 그걸 음악으로 만들어 가지고 그걸 한단 말이에요. 그게 습관이 돼서 어떤 사람이 절에서 천수경을 주고 읽으라고 하니까, 이걸 어디서 소리를 내고 어디서 숨을 쉬는지 알 수가 없더래요. 그래서 물어요. ‘이거 어디에서 숨 쉬냐.’고. 그래서 내가 얼굴을 또 쳐다보고 그랬어요. ‘여보시오, 숨 쉬다 숨 막히면 쉬는 거지, 어디 따로 그 책에 숨을 쉬고 안 쉬는 표시를 왜 해놓냐’고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된다고 그래요. 내 마음이 중심이 돼야 해요. 그러면 일체중생이 세간법이 중심이 돼서 길이 들었기 때문에 그 세간법에 맞추어서 법도를 진행하는 게 이게 수월공화 수륙대재에요. 수월공화라는 건 세간법에 맞춘다 이 소리거든요. 어떻게 맞추냐. 建設香壇 六法陳供건설향단 육법진공香華燈燭 茶果珍羞향화등촉 다과진수로다 威德自在王 勝妙變食力 위덕자재왕이 승묘변식력으로世間種種物 解脱最上供세간종종물이 해탈최상공이로다나무아미타불 이제 수륙재를 봉행하는 데는 첫째 단을 건설을 해야 되는데, 그걸 설단이라고 그래요. 설단, 단을 여러 개 다 건설하고, 그다음에 진공(陳供)을 해야 돼요, 공양물을 진설해야 돼요. 펼칠 진, 진열한다고. 공양물을 다 진열해서 올린단 말이에요. 그러면 불교에서 올리는 공양물은 뭐냐. 육법공양물인데, 육법 공양물을 글자로 외울 때는 8자로 외워요. 향, 향은 향이죠. 화, 꽃이죠. 등을 말할 때 등이라고 한자로는 말하지 않고, 등촉이래요. 등촉. 촉이라는 건 촛불 촉자가 있고, 등이라는 건 등불 등자가 있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거 등이 두 자로 들어가요. 향화등촉(香華燈燭). 그다음에 다, 다는 차 다에요. 과는 과일이잖아요. 또 진수, 여러 가지 나물이라든지 온갖 밥이라든지 이런 걸 전부 진수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불교에서 울리는 공양물은 무조건 향화등촉 다과진수(茶果珍羞), 이렇게 6가지인데 8자로 발음을 해요. 읽기 좋으라고 그러는 거예요. 향화등촉 다과진수 이게 원래예요. 그러고 나서는 뭘 하느냐. 진언을 해요. 진언. 진언을 하는 게 이게 또 예식의 아주 근본이에요. 그다음에 명성이라고, 울릴 명, 소리 성, 소리를 울리는데, 여기는 대종, 대고, 큰북, 징도 있고 요잡도 있고, 목탁도 있고, 요령을 금탁이라고 그러는데, 나무로 만든 건 목탁이요, 쇠로 만든 건 금탁이에요. 입으로 불기도 하고 온갖 소리를 다 내요. 어린아이들이 여기에 오면은 그냥 까무러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요. 어떻게 소리가 많고 큰지. 진언, 명성 그다음에 독경, 경을 읽죠. 그다음에 또 설법도 하고 작관이라고 있어요. 지을 작자, 볼 관자. 작관, 관법을 짓는 게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관법을 짓는 게. 그래서 이게 전부 설단, 진공 또 진언, 명성, 독경, 또 축원, 설법, 작관, 이런 모든 것으로 법을 진행시키는 거예요. 그 하나하나가 전부가 뭐냐. 소리도 마음이오, 공양물도 마음이오, 경전도 마음이오, 설법도 마음이요, 작관도 마음이오. 일체물 일체행위 전부 마음법이라고 하는 걸로 이 의식이 구조화된 거예요. 전부가 다 이게 마음법이다. 그래서 차를 한 잔 이렇게 공양을 올려도 이게 그냥 차가 아니라 위덕자재왕 승묘변식력(威德自在王 勝妙變食力) 으로 이 마음이라는 건 위덕자재왕이다. 이게 마음 밖에 경계도 되고, 또 진여 진실상도 되고 삼계 육도가 삼계 천지가 전부 이게 물속 달이요, 허공 꽃도 되고, 그 위덕이, 위엄스러운 공덕이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이게 자유 자재하는 근본 세력이다 이거죠. 위덕자재왕이. 그래서 위덕자재왕의 그 위신력으로 승묘변식력이 있다. 아주 훌륭하고 미묘해서 모든 그 음식을 변해버리게 하는 힘이 있다. 이 말이 우리가 사다라니 진언할 때 맨날 외우는 거예요. <무량위덕 자재광명 승묘력 변식진언> 그러고 끝나는 거예요. 일체 세간물이 전부 해탈 공양이 돼요. 그게 불교 의식의 기본 구조예요. 그래 가지고 세간종종물(世間種種物)이 전부 해탈최상공(解脱最上供)이라. 세간에서 과일도 올리고 하잖아요. 이게 전부 다 해탈을 이루는 최상의 공양물이다. 이 말이 그러니까 어떤 소리를 내든, 어떤 경을 읽든 또 어떤 공양을 올리든 위덕자재왕 일심묘법력을 떠나지 않는다 이거거든요. 위덕자재왕 일심묘법력. 묘한 법의 힘. 그렇게 돼서 공양을 깊이 올리고 공양을 깊이 받으면 지금까지 온갖 고생을 하고 고통을 느꼈던 것도 전부 일심소현이다. 한 마음에서 나타난 바다. 올리는 것도 다 일심소현이다. 한 마음에서 나타난다. 이걸 알아가지고 대안정토에서 자재하게 되어, 크게 편안한 청정토에서 자유자재하게 된다 이 말이죠. 그래서 종종공양물이 즉시 자심법이라고 하는 게송이 있어요. 종종공약물 즉시자심법, 자기 마음법이다. 茶即是心心即茶 離茶無地露眞心 다즉시심이요 심즉시다이니 이다무지노진심이야若向此中嘗一椀 了知無物不自心 약향다중하야 상일완하면 요지무물부자심(水月道場夢中問答附錄)(수월도량몽중문답부록)나무아미타불 이 게송은 조선시대의 큰 스님 허응당 보우스님이라고 계신데 그분이 이제 수월공화 수월도량몽중문답이라는 책을 지시고, 거기에 부록으로 제사 의식을 올리는 의식문이 있는데 거기 있는 게송이에요. 차 하나만 여기서 얘기를 한다면, 육법 공양 중에 차가 뭐냐. 다즉, 차라고 하는 것은 곧 시심이니(茶即是心), 이것은 마음이니. 차가 그게 마음이다 이 말이에요. 마음 없는 차가 어디 있어요. 일체제법은 유심소현이라, 오직 마음이 나타난 바다. 이거를 딱 깨달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심즉다(心即茶)라, 마음은 곧 차다. 이다(離茶)는 차를 여의고는 -다른 공양물을 여이고는 이 말이지요- 무지라는 거 없을 무자, 땅 지자인데요, 땅 지자는 안 새기는 어조사고, 노진심(露眞心)이라, 노라고 하는 건 이제 드러낸단 말이죠. 이슬 로자. 진심, 참 마음, 차를 떠나서는 참 마음을 드러낼 수가 없다. 그러니까 마음을 어떻게 드러낼까요. 그냥 차 한 잔으로 떡 올리고, 과일 하나를 올리고, 이렇단 말이지. 향 하나로 올리고 꽃 하나를 올리고. 이다무지노진심(離茶無地露眞心)이라, 차를 떠나서는 진심을 드러낼 수가 없다. 그래서 약향다중상일완하면(若向此中嘗一椀), 만약에 차 올리는 이 공양 속에서 한 잔의 차를 딱 감상을 해서 제대로 마시게 되면, 요지무물부자심(了知無物不自心)이라, 요지라는 말은 안다 이 말이죠. 알 료자, 알 지자, 무물, 어떤 물건도, 부자심, 자심이 아닌 것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요지는 안다. 뭘 아냐 무물부자심, 어떤 물건도 자기 마음 아닌 건 없다, 이걸 안다는 거에요. 그러면 태어나도 한 마음이오, 살아도 한 마음이오, 죽어도 한 마음이오, 살아도 한 마음이오, 영가가 돼도 한 마음이요, 다시 또 윤회를 해도 한 마음, 아무것도 없고, 거기는 뭐만 있느냐. 물속의 달이오, 허공의 꽃이다. 이렇게 재를 잘 모시면 그게 수륙무차대재가 되는 겁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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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8월 12일 백중기도 회향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2-08-12
안녕하세요. 며칠 동안 폭우로 인해서 비 피해가 많은 지역도 있고, 여러 가지, 코로나 때문에 또 이렇게 피해가 많았었는데, 오늘 이렇게 좋은 날씨, 밝은 날씨에 여러분을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갑습니다. 오늘은 정말 좋은 날입니다. 저희들은 4월 보름날 입재해서 7월 보름날 해제하는 90일 동안 정진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전체 우리나라 비구 비구니 선원에서 해제하는 날에 큰스님의 법어를 들으면서, 큰스님께서 법문을 하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근데 옛날에는요, 선방의 스님네들이 이렇게 해제하는 날 자기가 여태까지 수행하면서 공부가 좀 미진하면 보궁에 가서 37일간 철야 정진하기도 하고, 업장을 좀 소멸해서, 잠이 많은 사람은 잠 좀 없애게 해달라고, 그런 내용의 기도를 하면서 정진을 했었는데, 요새는 해제를 하면 미얀마 가서 남방 불교 공부를 하는 등 흐름이 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세대 때하고 지금 세대가 조금 다르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진관사에서는 계속 천일기도도 하지만, 백중 동안에 초재, 2재, 3재, 4재 해서 오늘 회향 날입니다. 그동안에 신도님들도 오셔서 애를 많이 썼지만, 경한 스님이 49일 동안 기도를 열심히 했어요. 우리 다 같이 한번 크게 박수 보내 주세요. 우리가 기도를 하는데 공덕이 되는 네 가지가 있어요. 신심이 있고 혜심이 있고 자비심이 있고 회향심이 있는데, 신심은 기도하는 첫 관문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신심이 공덕의 어머니>라고 그랬죠. 신심이 이렇게 많으면 이 자비로운 마음이 저절로 나고, 지혜로운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하기 싫은 마음은 신심이 아니에요. 하고 싶어서 막 열정을 가지고 하는 마음이 신심인데, 신심의 공덕으로, 도력으로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구제했잖아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해제 날 ‘여러 시방의 대중 스님들에게 여러 가지 백 가지,- 백 가지라는 거는 수많은, 많다는 의미에요,- 공양을 해가지고, 그 공양의 공덕으로 어머님이 천상락을 받을 것이다’ 해서,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내용이 목련구모예요. 여러분들도 목련구모에 대해서 제가 매일마다 말씀드렸기 때문에 알고 계시죠. 어머니를 구제하고 오늘은 지옥문이 열리는 날입니다. 일체 유주무주 원혼 고혼 애혼 모든 영가들이 지옥에서 해탈하는 문이에요. 그래서 지옥문이 열리기 때문에 이렇게 많이 천도재도 지내고, 저희들 조상영가도 다 올렸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해탈의 문도 되지만 영가의 문이 열리는 날, 문 앞에서 지장보살이 합장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계세요.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그래서 비증보살이 지장보살이에요. 자비의 보살은 관세음보살이고, 지혜의 보살은 문수보살이고, 실천의 보살은 누구예요. 보현보살이죠. 자기 스스로 묘명을 쓰는 분들이 계셔요. 조선시대 선비들은 묘명을 쓰는데, 묘명이라는 것은 죽을 때 쓰는 마지막 글이잖아요. 비석이 묘명이거든요. 그래서 영국의 어떤 극작가의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지> 하는 내용의 비문도 있어요. 그런데 이조시대 후반기의 문인으로서 삼척 부사를 한 허목 선생의 비문에 보면, <말은 행동을 담지 못하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하였다. 부질없이 앉아서 성현의 글 읽기만 좋아했지, 내 허물은 하나도 밝히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이에 돌에다 새겨서 후에 사람들을 경계하노라.> 하는 게 이 허목 선생의 비명이에요. 이게 보통 말이 아니잖아요. 실천과 행동을 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에요. 진리를 증명하는 유일한 기준이 실천이거든요. 말을 아무리 잘해도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면 행동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신심도 바로 실천이지, 그냥 말로서 하는 건 아니거든요. 신심이 가득하면은 지혜의 문은 저절로 열려요. 내가 신심이 있으면 옆에 사람들에게 공덕을 주는 거에요. “아, 저 사람은 삼 천배를 한다, 천배를 한다, 만 배를 한다는데, 나도 만 배, 천 배는 못 하지만은 하루에 10배라도 해보자. 아홉 배라도 해보자, 3•7 21번 절을 해보자. 안 되면 49일간 지장기도를 하듯이 49배를 좀 해보자.” 이렇게 해가지고 신심이 넘치면 지혜의 마음이 생기고, 지혜 마음이 생기다 보면은 자비의 마음이 저절로 나오는 거예요. 지혜와 자비는 불가분의 관계거든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예요. 이렇게 하다 보면 공덕이 되어 회향문까지 가는 거예요. 회향문이라는 것은 내가 지은 공덕을 나 혼자만 가지면 안 되겠죠. 누구에게 줘야 돼요. 이타행을 해야 되겠죠. 남에게 돌리는 게 회향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수행하는 거는 자리문이고 회향하는 건 이타행이기 때문에 자리와 이타행이 같이 겹쳐야지만이 우리가 이 49일간 지장기도를 해온 공덕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신심과 혜심과 또 자비심과 회향심이 있어야지만이 공덕과 실천이 다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사십구일간 했는데 그동안에 미진해서 ‘아 나는 기도를 좀 섣불리 좀 했구나.’ 할 때는 수륙재가 또 2주 있으면 하거든요. 진관사는 기도가 끊이지 않는 도량, 정말 실천과 행동이 같이 하는 도량입니다. 설악 무산 스님의 묘비명은 어떠냐 하면, 당신이 그냥 무애스럽게, 자재무위하게 살았기 때문에,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보니 이마에 뿔나고 온몸에 털 난다> 이렇게 했는데, 그것도 하나의 우리가 말하는 선어록이에요. 기고만장 천방지축 마음대로 살았지만, 결국에는 몸에 털이 나는 건 짐승이잖아요. 또 이렇게 이마에 뿔 나는 건 짐승들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묘명을 <진관사에서 기도하다 평생을 바쳤노라> 해도 돼요. 안 되면 <관세음보살 하다가 평생을 살았다.> 관세음보살이 사실은 아미타 후신이잖아요. 그러니까 아미타불 극락왕생은 저절로 되는 거예요. 생전안락 사후왕생이라고 하잖아요. 그렇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이 편안해야지 극락이라는 것도 보이지, 행복도 보이지,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요, 행복, 극락도 눈에도 안 보여요. 무엇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느냐? 누가 해주는 건 아니에요. 그렇죠. 자기 스스로 마음을 느껴야 돼요.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자꾸 이렇게 읊어야지. 한마디 말을 만 번만 해보세요. 그게 벌써 진언이 되는 거예요.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만 번만 해보면 고마운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거예요. 그렇지만 ‘아이고 짜증난다, 싫다, 싫다, 싫다.’ 평생 싫다가 끝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극락이에요? 지옥이에요? (지옥이요) 그래요 맞아요. 그래서 평생 극락과 지옥은 내 마음속에 있다는 거에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행복함을 느껴야 해요. 행복(幸福)이라는 복자는요, 한 일자에다 입 구자에다 밭 전자에다 보일 시자예요. 한 입으로 먹을 밭만 보이면 행복하다는 거예요. 많은 돈도 필요 없고 많은 것도 필요 없는 거예요. 밭뙈기 하나 가지고 농사 지어서 여기서 나오는 그냥 그대로 채소를, 요새는 바로 바로 음식 마일리지라 해가지고 내가 이렇게 텃밭 가꿔서 먹는 그 음식이 바로 최고의 음식이에요. 그래서 음식도 그렇듯이, 내 마음도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서 행복하게 하면 이런 행복이 저절로 느껴지는 거에요. ‘아 저 사람은 기도를 하는데 왜 저렇게 항상 즐거울까?’ 그 생각을 해보셔야 돼요. 저도 기도를 하다 보면요. 제가 자다가 잠꼬대를 하는데 이상한 소리 한다더라고요. 축원한다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깜짝 놀라서 ‘내가 이 밤에 잠꼬대하면서 무슨 축원인가’ 했더니 그게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경지가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여러분들도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자꾸 기도하면은 기도의 그 복전이 생겨가지고, 그대로 정토에요. 정토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에요. 내가 만들지. 그렇죠. 진관사 신도들은 기도 삼매에 빠진 것 같아요. 제가 보니까 정말 기도 삼매에 들어가죠. 기도 삼매에 들어가야지 내가 행복한 거예요. 그래서 저도 맨날 이렇게 어리빙빙하게 살아도 다른 거는 몰라도 나무아미타불은 놓지 않아요. 어떤 스님도 경전을 막 거꾸로 읽고 바로 읽고 했는데도, 딱 죽게 생기니까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더래요. 그래서 아미타불하다가 숨졌어요. 그게 바로 극락왕생이에요. 극락왕생 왕생정토가 바로 그 자리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큰 스님처럼 행동 안하고, 실천 안 하면 아까 평생 성현의 글만 읽다가 내 허물도 찾아보지도 못했다 했잖아요. 허목선생님도 그랬는데 우리는 불자로서 신심을 가지고서 열심히 해야 되겠죠. 열심히 기도하고, 수륙재 기도 때 또 동참하면은, 수륙재 도량에 들어만와도 삼업이 녹아지고 산 사람은 생전안락, 돌아가신 분은 왕생극락이 저절로 되는 거예요. 그러니 기도 열심히 하고 부처님 되도록 합시다. 간단히 마칠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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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7월 29일 백중기도 5재 법문
종범스님 2022-07-29
금차 진관사 임인년 7월 백중 천혼간도재자 시회합원대중등 복위 천혼 소청 제위 열위 열명영가지심제청 지심제수 금일 소청 건설법연 시회합원 전원 당년열위열명영가 今日靈駕 無始已來 至于今日 금일영가 무시이래 지우금일 無明緣行 行綠識 識緣名色 名色緣六入 六入緣觸 觸緣受 무명연행 행연식 식연명색 명색연육입 육입연촉 촉연수受緣愛 愛緣取 取緣有 有緣生 生緣老死憂悲苦惱수연애 애연취 취연유 유연생 생연노사우비고뇌로다나무아미타불 경전에서 가르치기를, 중생의 마음이 있고, 보살의 마음이 있고, 여래의 마음이 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중생의 마음은 범부라 그러는데, 범부심은 없을 무자, 밝을 명자, 무명심(無明心)이고, 보살의 마음은 반야심이고, 여래의 마음은 보리심이다. 무명 반야 보리. 무명이라고 하는 것은 온 천지 만물이 유심소현(唯心所現)인데, 오직 마음이 나타난 것인데, 천지 만물이 유심소현이라. 온 우주의 존재가 오직 마음이 나타난 것인데, 그 마음인 줄을 모르고 마음은 보지 못하고 물건을 본다. 심소견물이라 마음 장소에서 물건을 본다. 이렇게 보면(안경집을 들어보이시며) 이게 무명으로 보면 물건이거든요. 근데 이제 보리로 보면 이게 마음이에요. 무명견 보리견. 보리는 깨달음인데 그 마음을 깨달은 눈으로 보면 이거는 마음이다. 그래서 맨날 이렇게 물건을 들어 보이는 게 “여기서 마음을 봐라” 이거거든요. 근데 범부는 심소에서, 마음 장소에서 물건을 봐요. 견물을 해. 심소견물. 그래서 어물탐애(於物貪愛)라, 자기가 본 그 물건에서 탐애를 해요. 탐하고 애착을 가져. 마음 장소에서 마음 보지 못하고 물건을 봤는데, 그 자기가 본 물건을 탐하고 애착을 가져요. 어물탐애라고 그래. 그걸로 살아가는 것이 범부의 행업이니, 행업은 하는 일이다 이 말이죠. 범부가 하는 일은 마음에서 물건을 보고 물건을 탐하고 애착하는 일인데, 그 일은 범부가 하는 일이다. 그걸 무명이라고 한다 이거예요. 이게 범부의 마음이죠. 이 범부의 마음을 그 전개 과정으로 설명한 게 12연기인데, 삼세인과가 12연기로 펼쳐진다. 삼세인과 십이연기. 그리고 삼세인과 십이연기의 핵심 본질이 무명이에요. 그래서 무명연행(無明緣行) 이런 말이 있는데 무명에서부터 12가지 항목으로 생로사까지 가거든요. 근데 무명이 있다. 그러면 그 무명이 행으로 간다. 그래서 그 무명과 행동하는 거, 그걸 연결하는 걸 인연 연자를 썼는데 그 인연 연자가 한자에서 연은 기하라, 인연이라고 하는 건 일으키는 거다. 연기. 연은 생야라, 연생.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만들어내는 거다. 또 연은 유야라, 말미암을 유, 시작할 류, 연유. 시작하는 것이 연이다, 이래요. 연기 연생 연유. 그래서 무명이 행을 일으키고, 또 행이 식을 일으키고 이래서 생로병사 우비고뇌를 무명이 다 일으키는데, 이걸 종합적으로 보면 삼세인과 12연기 이래요. 無明滅則行滅 行滅則識滅 識滅則名色滅 名色滅則六入滅 무명멸즉행멸 행멸즉식멸 식멸즉명색멸 명색멸즉육입멸六入滅則觸滅 觸滅則受滅 受滅則愛滅 愛滅則取滅 육입멸즉촉멸 촉멸즉수멸 수멸즉애멸 애멸즉취멸取滅則有滅 有滅則生滅 生滅則老死憂悲苦惱滅취멸즉유멸 유멸즉생멸 생멸즉노사우비고뇌멸 과거의 무명과 그 행업이, 행동한 업이, 활동이 이게 쌓여요. 근데 초기불교에서는 과거의 업이 어떻게 현세로 오는지 그걸 설명을 잘 못했어요. 근데 나중에 팔식 아뢰야식이 가르쳐지면서, 아뢰야라고 하는 것은 무몰(無沒)이라고, 없어지지 않는 생각이 있다는 거예요. 육십년 전의 일도 몸 어디엔가 있어요. 그렇듯이 전생에 노래 많이 불러본 사람은 노래 듣는 감이 틀려요, 벌써. 딱 들어보면 음을 알아채요. 그래서 ‘아 이게 없어지지 않는 인식이 있구나’ 이거를 발견한 거예요. 이걸 아뢰야식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과거 무명 행업이 아뢰야식을 통해서 현재로 오면 그게 과거 무명이죠. 그것이 행업을 일으키고 그러면 그게 또 태어나요. 그래서 또 현세에서 계속 감수성, 애착성을 가지면 내세에 태어날 또 힘이 돼요. 三界所有 唯是一心삼계소유 유시일심 無邊虛空 覺所顯發무변허공 각소현발覺所見物 於物貪愛 각소견물 어물탐애凡夫行業 是爲無明범부행업 시위무명 그래서 내세에 또 태어나고 이렇게 삼세인과 십이연기로 설명하는데 이게 범부가 살아가는 길이에요. 그래서 범부는 항상 무명, 깨달은 부처님들은 심외무법이라,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있는 게 없다. 유심소현이라, 오직 마음이 나타난 거다. 삼계소유(三界所有)가, 삼계라는 건 온 세상인데, 온 세상에 있는 바가 유시일심(唯是一心)이라, 오직 한 마음이다. 오직 유, 이 시, 한 일, 마음 심, 이게 보리심이에요. 무명심은 마음에서 물건 보고 자기가 본 물건 탐애하고, 그래가지고 생로병사 우비고뇌를 끊임없이 받는다, 이게 무명심이고요. 그래도 원각경 같은 데서는 무변허공(無邊虛空)이 각소현발(覺所顯發)이라, 끝없는 허공이, 각은 깨달을 각, 알 각, 마음 심자와 같은 건데, 이 무변, 끝없는 허공이 각심에서 나타난 곳이다. 장소라는 소자. 아는 마음에서 나타난 것이 무변허공인데 무변허공은 온 우주 법계라는 거죠. 허공 없는 곳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근데 보살은 뭐냐. 그 무명에서 오직 마음밖에 없다고 하는 보리심으로 가는 과정을 반야라고 그래요. 반야는 도피안이라. 피안에 간다. 무명은 이쪽이고 보리는 저쪽인데, 무명에서 보리로 간다. 그게 반야거든요. 그럼 무명은 뭐냐. 딱 한 생각 착각, 한 생각이 잘못 본 거다. 이렇게 보면(안경집을 보시며) 여기에 자기도 모르게 ‘아 이거 뭐다’ 요걸 대상으로 인식했다는 거예요. 그걸 무명이라 그래요. 대상 인식. 대상 인식을 하게 되면 인식하는 주체는 잃어버리고 인식의 대상에 빠져들게 돼요. 이거를 불교에서는 경계에 팔린다 그래요. 경계에 팔린다. 내가 팔려가면 어떻게 돼요. 내 마음대로 못하고, 나를 사간 사람이 알아서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경계에 팔린다는 말은 뭐냐 하면, 물건을 딱 보는 순간에 내 인식이 물건으로 가버려, 그래서 이 물건의 경계인데 경계에 팔려 갔다. 그래서 맨날 팔려 다니는 게 무명이에요. 사람 보면 사람에게 팔려 가고, 손자 보면 손자에게 팔려 가고, 아들 보면 아들에게 팔려 가고, 오늘은 이쪽에 팔려 가고, 내일은 저쪽에 팔려 가고. 한평생 팔려 다니고, 이게 경계에 팔린다,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이걸 대상으로 인식하기 전에 딱 보는 본 인식이 있어요. 이거 딱 보면 ‘이게 뭐 안경집이다.’ 이거 생각하기 전에 그냥 딱 보여주는 게 있어요. 그걸 본 인식이라 그러고, ‘아 저거는 어떤 거다’ 이렇게 하면은 이걸 후 인식이라고 그래요, 후, 뒤에 인식하는 거다. 본 인식에 머물러서 본 인식에 자재하면 팔려 가는 일이 없어요. 뭘 봐도 ‘아 저건 나의 인식이다.’ 그냥 자재할 뿐이지 쫓아가는 일이 없어요. 쫓아간다는 말은 탐하고 애착한다 이 말이거든요. 탐애하는 일이 없어요. 그냥 인식은 하되 탐애는 않는다. 그러면 그걸 반야라고 그래요. 그냥 인식만 해요. 탐애는 안 해요. 탐애하다 보면 나중에 싫어져요. 또 버리게 돼요. 이걸 취사 무명이라고, 취하고 버리는 무명이다, 이렇게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선지식의 가르침을 듣고, 경전의 가르침을 듣고, 이 무명심이 한순간에 깨지는 수가 있는데 그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한순간에 확 무너질 때가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 대상 인식에 팔려 가는 마음이 없어요. 그래서 본 인식에 자재한단 말이에요. 후 인식에 안 팔려가면 그 본 인식에 자재하니까 그걸 ‘무명이 없어졌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게 무명이 없어지면 생로병사 우비고뇌가 그냥 다 없어지는 거예요. 그냥. 예를 들면 수면 몽식이 있는데, 수면 몽식, 수면은 잠자는 거잖아요. 이렇게 잠이 들고 그냥 잠만 자면 그만인데, 꿈을 꿔. 그러면 꿈을 한참 꾸면 자기가 누군지 몰라요. 자기가. 그래서 꿈꾸는 동안에는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계속 뭘 보기도 하고, 뭘 하기도 하고 그래요. 근데 누가 문을 확 열어서 그래서 잠을 탁 깼어요. 꿈은 없어졌어요. 잠 깨서 꿈 없어지니까 꿈에서 봤던 건 하나도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무명으로 인식한 대상은 무명이 없어지면 아무것도 없다. 이게 천도에요. 삼세 인과로 계속 윤회를 하는데 그 삼세인과 윤회 생사는 무명 의식 고거 하나다. 그래서 꿈꾸는 사람이 잠 깨면 꿈도 잠도 없다. 잠을 깨면 그만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 무명인식을 딱 깨면 생사는 없고 뭐만 있냐. 마음뿐이다 이거지. 생사는 없고 마음뿐이다. 뭘 보든지 본 인식이 있어요. 하늘을 보더라도 저 하늘인 걸 아는 본래 인식. 근데 저 하늘이 지금 넓다, 구름이 있다, 바람이 분다, 그렇게 인식하고 하늘이 수정같이 맑다. 이건 탐애예요. 저기를 훨훨 날아다녔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그래서 본 인식에서 후 인식을 하고 후 인식에서 그걸 탐하고 애착하고 요게 무명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무명이 딱 깨지는 순간에 천지 만물은 천지 만물이 아니고 유심소현이다. 천지 만물이 유심소현이다. 오직 마음이 나타난 거다, 이게 천도예요. 천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천지 만물 생로병사가 오직 마음이 나타난 거다, 고거 아는 게 천도예요. 그래서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구제하냐. 꿈 딱 깨게 하면 끝나는 거예요. 꿈 잘 꾸라고 찬물 갖다주고 바람 부쳐주고 그게 아니고, 막 땀 흘리면서 꿈꾸고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 구제하는 거는 잠에서 딱 깨게 하면 끝나는 거예요. 석가모니가 그걸 깨달았다는 거죠. 그래서 佛以大圓覺 充滿十方界 불이대원각으로 충만시방계어늘我以轉倒想 出沒生死中 아이전도상으로 출몰생사중이로다既從一念生 還從一念滅 기종일념생이니 환종일념멸이라生滅滅盡處 則我與佛同 생멸이 멸진처에 즉아여불동이로다나무아미타불 이 게송은 낙방문류(樂邦文類)라고 극락세계에 가는 모든 가르침을 적어 놓은 책이, 극락이라는 낙자, 나라 방자, 낙방, 문류, 글의 종류다, 이걸, 극락세계에 가는 문헌을 모아놓은 책을 낙방문류라고 그러는데, 거기에 있는 게송인데, 불이대원각(佛以大圓覺)으로서 크게 원만한 깨달음을 이룸으로서, 이제 무명에서 반야행을 통해서 대원각을 이룬 게 여래란 말이죠. 무명 없으면 깨달음도 없어요. 깨달음을 이루는 건 전부 무명 범부가 깨닫는 거지, 제불은 이미 깨달았는데 뭘 깨달아요. 그렇지 않아요? 부처님은 대원각으로서 크게 원만한 깨달음으로서, 충만시방계(充滿十方界)어늘, 이 시방 세계에 충만하다, 가득하다. 부처님은 그 깨달은 마음이 자기가 되는 거예요. 범부는 요 태어난 몸이 자기가 되요. 태생일신이 유아자기다, 오직 나의 자기다. 근데 요 태생일신이라는 거는 이거 진짜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아서, 이거 살아도 오래 가면 못 쓰는 물건이에요. 이 물건은. 어떤 사람은 속도 없이 늙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꿈 깨라고 그래요. 늙으면 아파 죽겠고,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데 행복은 무슨 놈의 행복이에요. 이 몸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살아 있어도 숨만 쉴 뿐이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어요. 난 젊을 때 노인들이 왜 저렇게 천천히 점잖게 움직이나 했더니, 점잖은 게 아니고 힘이 없어서, 몸이 둔해져가지고 그렇더라고, 그래 내가 깜빡 속았다니까요. 그러니까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에요. 그 노인의 그 애로와 노인의 고통은요, 노인이 안 되고서는 몰라요. 그냥 오래 살고 봐야 돼요, 여하튼. 70대가 어떻게 80대를 알 수 있으며, 80대가 어떻게 90대를 알겠어요. 그러니까 오래 살아봐야 알지. 이 몸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근데 그 범부가 알 수 있는 건 오직 몸뿐이에요. 근데 깨달은 부처님은 그 자체가 없고 주소가 없고 막힘이 없는 해탈 광명 불성 실상, 이게 내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해탈 광명 불성 실상은 온 시방계에 가득하단 말이죠. 그래서 충만시방계(充滿十方界)라 그래요. 그런데 아이전도상(我以轉倒想)으로, 나는 전도상으로서, 전도상은 무명상인데 내 마음에 내 마음을 보지 못하고 물건을 보고, 그 자기가 본 물건에 또 탐하고 애착하고 그게 전도상이거든요. 자기 집에서 자기 집인 줄 모르고 남의 집으로 알고, 그 남의 집에 물건이 좋아 보인다고 자꾸 욕심내고. 그걸 전도상이라고 그래요. 나는 이 전도된 무명 생각으로 출몰생사중(出沒生死中)이라. 나고 죽는데 계속 출몰을 한다. 오르락 내리락 출하는 건 출생이요, 몰하는 건 죽음인데 자꾸 오르락 내리락 한단 말이죠. 그런데 이 생사가 어디서 왔느냐. 기종일념생(既從一念生)이요, 이미 한 생각으로부터 나왔다. 한 생각이 그 본 인식에 머물지 못하고 후 인식으로 가고, 그 후 인식이 또 탐애을 해서 거기서부터 나왔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환종일념멸(還從一念滅)이라. 도리어 한 생각으로부터 그 후 인식 탐애가 사라진다. 그러니까 이걸 물건으로 봤던 걸 마음으로 딱 알아채면 이 물건으로 집착하는 건 싹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한 생각으로부터 생사가 생겼으니까 생사가 없어지는 것도 한 생각으로부터 없어진다. 그래서 생멸이 멸진처(生滅滅盡處)에, 나고 죽는 게 없다. 마음뿐이다. 그래서 오불견공(悟不見空)이라, 깨달을 오, 아니 불, 볼 견, 허공 공, 그 말이 있는데 깨달은 사람은 허공을 못 본다. 그럼 허공이 뭐냐. 일체 만물이 다 허공 안에 있는데 일체 만물을 허공이라고 그래요. 근데 깨달은 사람은 허공을 못 본다고 하니까, 깨달은 사람은 일체 만물을 못 본다, 이거예요. 그럼 뭘 보느냐. 오직 마음임을 본다 이 말이지. 오불견공이에요. 깨달은 사람은 허공을 못 본다. 왜냐. 허공은 없고 오직 마음뿐이다. 이렇게 훌륭한 법문을 어떻게 남겼는지 참 기가 막혀요. 오불견공이에요. 그러니까 깨닫고 나면 죽고 사는 게 다 마음이에요. 불취불사(不取不捨)여.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아요. 그래서 생사가 멸진처에, 생사는 없고 오직 마음임이 드러나는 곳에, 즉아여불동(則我與佛同)이라, 곧 내가 즉 아가 여불, 불과 더불어 같다. 무명 때문에 제불과 다른 거지, 깨달음을 얻으면 불과 내가 똑같다. 이런 법문이거든요. 이런 법으로 천도를 하는 거예요. 이런 법으로. 在處爲西方 所遇皆極樂 재처가 위서방이요 소우가 개극락이니人人無量壽 無去亦無來 인인이 무량수요 무거역무래로다(樂邦文類제5권,大正藏47.215중)(낙방문류 제5권, 대정장47.215중)나무아미타불 오직 마음밖에 없다고 하는 그걸 깨달으면, 이제 비유로 말할 때, ‘동방은 생사요, 서방은 극락이라’ 이렇게 가르쳐요. 서방은 청정방이라, 동방은 생멸방이라 가르치는데, 그게 서방은 정토요 동방은 예토(穢土)다 이렇게 가르친단 말이죠. 서방은 극락세계요, 동방은 사바세계다. 그런데 이거는 무명심이 있을 때 얘기고, 보리심으로 싹 바뀌게 되면 재처가 위서방(在處爲西方)이라, 있는 곳이 자기가 어디 있던지 방석에 있던지 땅바닥에 있던지 방 안에 있던지 재처가 서방이 된다. 극락세계가 된다 이거예요. 재처가 위서방이라. 자기가 어디 있든지 있는 곳이 바로 서방정토 극락세계다. 소우가 개극락(所遇皆極樂)이라. 만나는 바가, 바 소, 만날 우, 만나는 그것이 개극락이라, 다 극락이다. 이게 이제 무명에서 마음을 깨달은 뒤에 이야기죠. 그곳으로 가는 게 천도를 하는 거예요. 인인이 무량수(人人無量壽)요, 사람 사람이 무량수다. 이거를 본 인식으로 보지 못하고 후 인식과 탐애 의식으로 보면, 그게 이제 태어난 날로부터 하루하루 늙어가다가 죽는데 이건 무량수가 아니고 유량수에요. 셀 수 있는 헤아릴 수 있는 수명이란 말이죠. 그런데 그 본인 식으로 딱 들어가면 마음 뿐이기 때문에 시종이 없어요. 이 실상광명은 무시무종이라 진실상, 그 광명은 생일 날이 없어요. 제삿날도 없어. 그러니까 뭐 언제 태어났다 연세가 얼마다, 언제 돌아가셨다 하는 건 전부 이건 무명 놀음이에요. 후 인식 놀음이라고요. 본 인식으로 딱 들어가면 실상광명뿐이니까 거기에는 시작이 없다. 그래서 사람 사람이 본인식 실상 광명으로 들어가면 전부가 무량수다. 한량없는 수명을 가지고 있는 거다 이거죠. 이 유한 생명에서 무량수로 돌아가는 게 이게 조상 천도거든요. 무량수. 그 무량수가 극락세계죠. 그래서 거기에는 무거역무래(無去亦無來)라.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또 어디서 오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돼서 무명심, 반야심 보리심인데, 온갖 공덕으로 이 생로병사에서 해탈 피안으로 가는 건 보살이고, 오직 마음 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건 여래인데, ‘일체 조상들을 떡 모셔서 바로 이 찰나에 그 청정심을 깨달으면 생로병사는 꿈 깨듯이 없어지고 무량 복락이 무진장으로 펼쳐지는데 그렇게 천도를 받으십시오.’ 하는 법회가 이런 천도법회입니다.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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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7월 22일 백중기도 4재 화청법문
동희 어장스님 2022-07-22
아 지심걸청 지심걸청 일회대중 일심봉청거얼랑 두어두고 금일날 이도량에 함께 하시는 사부대중 화청 법문 들어보소 금일날 진관사 청정도량에 백중기도 4재기도 설판하고 부처님께 공양하고 조상님께 분향할 때 그 공덕이 장하다고 삼천 대천 모든 세계 불보살님이 강림하사금일날 운집하신 사부대중 무량성심 선다공양을 받읍시고선망부모 조고조상 원근친척 형제숙백 자매질손 무진 제불자등 각각열위 열명영가 봉안위패선가영가 봉안위패, 승문권속 각각존령 건국이래 순국열사 위국절사 애국지사 육해공군 전몰장병 호국영령 순직군경 이망자 각각영가 전대통령 각각열위 양위영가 삼계만령 십육고혼 위국절사 충의장졸 무진제불자 등 각각열위 열명영가진관사 수륙도량 수륙공계 수중참사 고혼각각 열위영가거리로중 윤화참사 각각영가 공중산화 허공배회 고혼영가 금일 도량 등에 봉안위패 운집고혼 각각열위 열명영가코로나 19로 유명을 달리하신 각각고혼 열위영가 우크라이나 전쟁참사 고혼각각 열위열명 각각 영가를 극락세계 상품상생 구품연대로 모셔갈 때 오방오제를 가려보자 동방은 청련이요, 서방세계는 백련이요, 남방세계는 홍련이요, 북방 세계는 흑련이요, 중앙 세계는 황련인데, 오방오제의 불을 밝혀 금일 영가를 극락세계로 가옵소서 무진경전을 설할적에 일체중생 심행대로 무한중생을 천도후에 지혜광명을 이뤄놓고 부답명로 하옵시고 생사대해를 건너갈 때 금번 삼하결재 백중기도 금일날에 설판하신 불자들이 금일 배를 승선하고 금일 영가를 모셔놓고 중앙에는 금일 영가를 위로하여 극락도사 아미타불이 사자탑상에 결가부좌 하옵시고 극락세계로 모셔갈 때 하단에는 염불중생 가득 싣고 그가운데 금일날 동참하신 선망부모 조고조상 형제숙백 자매질손 각각열위 열명영가또하단 한쪽에 낙태수자령 고혼영가를 모셔놓고 극락세계로 모셔갈 때 금일영가를 위로하여 지장보살이 기로성차로 앉으시고 장상명주를 번쩍드사모든 강은 막아놓고 극락강으로 인도하여 금일영가를 모신 때는 순풍에 돛을 달고 망망창해 너른바다 순식간에 건너가서 극락세계 당도하니 극락이라 하는국토 법성원륭 너른 뜰에 황금으로 땅이 되고 백은으로 성을 쌓고 칠중난순 둘러있고 칠보난망은 덮였는데 무비상묘에 보배로다. 또 한편 바라보니 우담바라 꽃나무는 금일 조상님 반기는 듯 실우향풍에 늘어지고 또 한편을 바라보니 많은 새가 날아든다 무슨 새가 날아드나청학백학에 비금조수 두견접동 앵무공작 가릉빈가 공명조는쌍쌍이 날아들 때 새소리로 아니 울고미묘한 울음으로 장엄염불을 독송하니 극락세계가 분명쿠나또 한편 바라보니 쇄향수 맑은 연못 오색연꽃이 피었는데 연꽃마다 광명이요 광명조차 향내 나고 향내조차 서기로다 서기방광 다리놓아금일날 봉안위패 선가영가 승문권속 존영영가금일날 봉안위패 부지명위 각각열위 열명영가그 연못에다 목욕하고 정신이 쾌락하여 부처님의 마정수기를 정득하고극락세계 상품상생 구품연대 연태 중에 화생하게 되었으니이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과 금일날 4재를 설판하고 진설하고 기도하신 사부대중의 원력이라 여보시오 금일대중 또한 말씀을 들어보소 천만년이나 살줄알고 이 세상을 태산같이도 믿건마는 백년광음 못다살고 지구황천 돌아가는 애달픈 우리 인생 이세상에 계실적에 악한일은 짓지말고염불공덕을 많이 하소 염불하면은 불법이요 불법하면은 요순인데 요순우탕 문무주공 삼강오륜 팔조목은 금시태평에 있는거요. 내 마음 내 뜻 모르거든 남을 보아서 깨치소서단 물에 나비같고 하루살이 같은 목숨 천 년 살면은 만 년 살아 몇 백 년이나 살 줄 알고 보시않고 먹지않고 쓰지않고 애면글면 재물모아 어느 곳에 쓰려는가 염불이라 따로 없소 착한 남도 염불이요 부모님께 효도하고부처님께 공양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가족과 화목하고이웃과 함께하면 이모두가 염불이니 아무쪼록 힘을 써서이차인연 공덕으로 생전에는 수복강령 자손창성 년년익수 계계승승 누립시고 사후에 극락세계에 다시 만나 함께 정진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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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7월 8일 백중기도 2재 법문
주지 법해스님 2022-07-08
오늘은 지장보살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지난 번 여러분들께 49일 동안은 그냥 지장보살님만 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49일 동안은 우리가 다른 기도 다 놔두고,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계속 지장보살만 하시는 거예요. 이 기간에는 지장보살을 하는 주간이에요. 내가 혼자 할 때보다 다 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하게 되면 지옥문이 열리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지장보살님은 어떤 분이신가> 오늘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지장보살님은 신통력과 자비가 충만하고, 또 지혜와 변재가 불가사의하다 그랬어요. 신통력과 자비와 또 지혜와 변재가 충만하셔서 그냥 지장보살님을 한마디 하면 나쁜 마음을 안 일으키고, 그 말을 듣고 악근을 없애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게 잘 안 되죠, 그렇죠. 여러분들 자식들이 말을 잘 안 듣죠. 왜?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고 제가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리고 인연이 안 되는 사람은 아무리 얘기를 해도 말을 안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장보살님은 다행히 변재도 자비도 신통력도 불가사의하다는 거예요. 불가사의해서 항상 지옥 문전에서 목만 내놓고 지옥을 오는, 지옥 심판을 받고 지옥에 오는 사람들을 다 돌려 보내는 그런 역할을 하는데, 돌려보내면은 그 죄는 누가 받냐, ‘내가 대신 받겠습니다.’라고 대비 대원을 세우신 부처님이 지장보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악업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보살님이 지장보살님이에요. 그래서 내가 좀 잘못을 저질렀어도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하다가 보면은 나도 머리가 편안해지고 마음이 맑아져요, 그 공덕이 아주 부사의하기 때문에. 우리가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을 부사의라고 그러거든요. 이번 49일 동안은 우리 진관사에서 지장보살을 부르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만 번 이상, -만 번도 제가 계수기로 해보니까 금방 만 번이 되더라고요.- 설거지할 때도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하면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는 거예요. 습관이 되면 힘이 생겨요. 내가 막 여기 쏠렸다가 저기 쏠렸다 하는 힘이 안 쏠리게 돼요. 감정에 쏠리지 않고 지혜의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악업에서 해탈하는 그런 보살이고, 또 죽은 사람과 산 사람들을 모두 다 이롭게 하는 보살이 지장보살이에요. 어떤 분은 “저는 보통 관세음보살하는데 지장보살을 하니까 좀 이상해요. 지장보살을 해서 집에 장애가 난 거 아니에요.” 그건 마음이 장애를 일으키는 거예요. 지장보살을 불렀을 때는 아무 장애도 없어요. 그냥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 모두 다 이롭게 하는 보살님이 지장보살이에요. 지장보살은 신라 시대 이후에 대중 신앙으로서 자리를 잡아서, 중국 구화산에 가신 김교각 스님이 계시고, 또 신행스님이라는 스님도 지장 보살 신앙을 우리 한국에 많이 펼쳤다고 하십니다. 그때서부터 지장 신앙이 한국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요. 진관사는 지장보살님이 어디 계시죠? 명부전에 계시죠. 지장전이라고 하는 절도 있어요. 명부전, 지장전, 시왕전, 여기 다 지장보살이 주불이 되는 곳입니다. 명부(冥府), 명부의 세계, 어두울 명자입니다. 저승 세계의 주인이다. 그리고 시왕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제가 오늘 여러분들께 이 지장보살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찾아보니까, 시왕 신앙 이게 참 재밌어요. 시왕은 열 대왕님을 말하는 거예요. 진관사에도 다 모셔져 있죠. 진광대왕에서부터 초강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이렇게 열 대왕님이 지장보살님 옆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사람이 딱 죽게 되면은요, 이 나를 끌고 다녔던 에너지, -우리 불교에서는 그걸 마음이라고 얘기합니다.- 마음이 이 백회로 빠져나갔을 때가 가장 좋다고 해요. 운명하실 때 어떤 사람은 손으로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배로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발로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그곳으로 빠져나가는 걸 스님은 어떻게 압니까.” 제일 나중까지 온기가 있는 곳, 거기에 아직도 마음이 있는 거예요. 어떤 분은 분명히 의학적으로 ‘이분은 운명하셨습니다’ 하는데 아들이 안 오니까 계속 몸이 따뜻하더래요. 아들이 오니까 그때서야 아들을 보고 몸이 다 식는 분도 있답니다. 얼마 전에 제가 동국대학교 영안실에 갔는데 어떤 본사 주지스님께서 티벳 불교에서 하는 말이라고 알려주시는데, 참 좋은 정보를 제가 받았어요. 사람이 보통 운명하게 되면 이제 막 호흡이 가쁩니다. 처음에 애기들은 단전해서 호흡을 하고, 점점 이게 호흡이 올라와가지고, 돌아가실 때쯤 되면 호흡이 목에 이렇게 딱 걸려 있어요. 그래서 거칠게 호흡을 하거든요. 호흡이 짧아지고, -이게 에너지를 담을 수 없어서 그렇게 되는데- 이제 돌아가실 때가 되면 가래가 끓어요. 가래가 막 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도를 많이 하신 분들은 -조사 열반이라 그럽니다.- 그냥 조용히 안온하게 운명을 하시는 분이 있어요. 제가 우리 스님도 그렇고 저희 어머니도 그렇고 실상화보살님도 그렇고 열반하실 때 보니까 그렇게 조용하게 가시더라고요. 막 힘들어하지 않고, 염불을 해드리면 귀가 열려서 그냥 조용히 부처님 마음에 본인 마음을 맡겨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돌아가실 때, 마지막에 요즘은 의사가 다 얘기를 해주잖아요, <운명하셨습니다.> 하기 전에 머리카락을 하나 싹 뽑아버리면 우리가 아픈 데로 마음이 가잖아요. 아픈 대로 마음이 탁 가게. 그러는데 돌아가실 때는요, 절대 건드리면 안 돼요. 그냥 불효자는 또 끝까지 불효를 하는 거예요. 이게 몽둥이로 패는 것 같이 아프답니다. 얼마나 이 몸에 대한 집착이 심하겠어요. 그래서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게 그렇게 어렵다는 거예요. 그러는데 그때 그냥 머리카락 한 가닥을 이렇게 탁 당겨버리면 그걸로 그냥 싹 빠져나간다는 거에요. 믿든지 말든지 좋은 거 아니겠어요. 제가 이제 앞으로는 그거를 꼭 실천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죽기 전 5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해요, 다음 생을 결정하는데. 그래서 여러분들이 울고 불고 할 시간이 없어요. 정신 바짝 차려가지고, 마음을 도와준다, 그 환자가 운명하기 전에 좋은 말을 많이 해주는 거예요. “엄마, 엄마가 진관사에 그렇게 공양도 하고, 합창단에서 노래도 열심히 부르고, 봉사도 열심히 하시고, 시주도 하시고 우리도 잘 길러주고.” 이런 말만 계속하는 거예요. ‘어떻게 살꼬’ 그거는 49일 지난 다음에 얘기를 해야 돼요. 근데 보통 모두 다 어떻게 살 거냐고 자기 생각만 하더라고요. 그렇죠. 솔직히 보면 그래요. “너무 감사했어요. 고마웠어요. 참 어머니 그동안 열심히 절에 다녔으니까 진관사 부처님이, 아미타 부처님이 영접해 주실 겁니다. 지장보살님이 어머니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을 다 받아서 소진해 주실 겁니다. 아버지, 아버지 꼭 믿으시죠.” 그거는 좀 정신이 말짱말짱할 때 믿는다고 확답을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본인이 계속 염불을 해야 돼요. 이 몸이 기억하고 있어야 돼요. 자동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기억을 해요. 망자가 돌아가면, 진광대왕에게 심판을 받으러 와요. 망자는 돌아가시면 사출산(死出山)이라는 산을 넘게 돼요. 그런데 공덕을 많이 지은 사람들은 산이 평탄해가지고 금방 거기를 가게 되는데, 거기에 당도하면 누가 나타나느냐. 진광대왕님 앞에 딱 서는 거예요. 진광대왕이 “도대체 그렇게 옥졸들한테 괴로움을 당하고, 그렇게 고난을 당하면서 또 이렇게 지옥을 왔느냐. 내가 뭐라 그랬냐. 열심히 공덕 지어서 염불을 해서 극락왕생 하라고 일러주지 않았느냐. 근데 왜 또 왔느냐”고 야단을 치신대요. 우리 진관사 신도님들은 그렇지 않겠죠.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지난 시간은 상관없어요. 지난 시간은 내가 열심히 기도를 하게 되면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이라고 그랬습니다. 마른 풀을 불태우듯 흔적조차 없어진다고 그랬어요. 진 참회를 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은 지난 죄업이 하나도 없어진다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앞으로 내가 맞이하는 오늘 이 시간부터는 어떻게 하냐. 계속 지장보살, 스님이 지장보살해라 할 때는 지장보살 주간이니까 지장 보살, 지장보살 하면 그다음에 관세음보살해도 금방 입에 붙어요. 또 관세음보살이 돼요. “스님. 이제까지 관세음보살만 했는데 지장보살 하라니까 괜히 좀 섬찟섬찟하네요.” 이런 분도 있어요. 그런데 명부의 세계는요, 관세음보살하고,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세 분이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에요. 거기에 명부 세계의 주인은 아미타 부처님이세요. 그래서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을 항상 보관에 모시고 있고, 지장보살님은 항상 육환장을 들고 있어요. 육도윤회 지옥아귀 축생에 그 죄업을 짓는, 다시 말해 인간계에서 죄업을 짓는 사람, 지옥 가는 사람 문을 열어주고, 축생계에 죄업을 짓는 축생을 문을 열어주고 그러니까 육환장으로 툭툭하면 그 지옥 문이 다 그냥 소멸이 된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또 손에는 장상명주(掌上明珠), 장상, 손바닥 장자, 윗 상자, 손바닥에는 밝은 구슬을 갖고 있어요. 밝은 구슬은 지옥을 비춰주는 거예요. 그 빛을 따라서 가면 극락 세계로 인도해주는 거예요. 그러려면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되겠죠. 평소에 많이 기도해야 지장보살이 보여요, 또 들려요. 그러니까 아주 변재가 뛰어나고 지혜가 부사의 하고 자비가 출중하시고 그러신 부처님이 우리 지장보살이다. 이제 진짜 믿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열심히 열심히 지장보살을 정근하면 우리가 모신 모든 영가님들도 극락세계에 가시고 나도 나의 나쁜 업, 잘못 보고 트집 잡고 비방하는 습관이 없어져요. 잘못 보고 트집 잡고 비방하다가 보면 그 습관이 나와 또 그 말을 하게 돼요. 그럼 얼른 자기 마음을 들여다봐요. “내가 아직도 멀었구나” 그러면서 딱 보는 순간 안 하면 돼요. 그래서 항상 본인의 마음을 보는 습관, 보고 멈추고,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 이걸 지관이라 그럽니다. 지관법이라고, 그칠 지자 관할 관자. 멈추면 비로소 보여요. 근데 멈추지 않아요. 감정이 계속 올라와서 분노가 들끓으면 아무 공덕이 없어져 소무공덕이 된다고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지장보살님의 원력을 살펴보면, 첫째, 중생도진 방증보리(衆生度盡 方證菩提)다. 중생들을 모두 제도한 후에 내가 깨달음을 이루겠다라는 그런 원을 가지고 계시는 거예요. 중생을 모두 제도하고 난 뒤에 나는 깨달음을 이루겠습니다. 그리고 둘째, 지옥미공 서불성불(地獄未空, 誓不成佛.)이라고, 지옥이 텅 비지 않으면 나는 절대로 성불하지 않겠습니다. 이 소원도 또 하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아불입지옥 수입지옥(我不入地獄 誰入地獄)이라, 자신이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들어가겠습니까. 이 세 가지 원을 굳건히 본인이 발원을 하고, 대비 대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나니까 “우리는 어떻게 삽니까.” 그러니까 “내 법을 믿고, 법등명 아등명하라.”이랬거든요. 자신을 믿고 법을 믿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미래에 미륵 부처님이 오시기까지는 지장보살님과 관세음보살님이 많은 중생들을 변재로 또는 신통력으로 지혜로 자비로 다 구제해 주겠다. 이런 원력을 가진 부처님의 지장보살이다. 그래서 계속 반복되는 말인데, 지장보살님은 어떻게 생긴 분이 지장보살님인가. 명부전에 계시는 부처님이 지장보살이다. 또 시왕전에 계시는 부처님은 지장보살이다. 그리고 지장전에 계시는 분은 지장보살이다. 지장보살님은 이렇게 삭발을 하고 계세요. 보통 다른 부처님들은 이렇게 화관을, 우리 여기 문수보살님도 화관을 이렇게 쓰셨잖아요. 관세음보살님은 화관을 쓰고, 아미타 부처님을 화관에 항상 모시고 다니고, 또 문수보살님은 책을 들고 계세요. 지혜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 부처님이 있는데 지장보살님은 삭발을 하고 계세요. 또 어떤 데는 지장보살님이 두건을 쓰고 계세요. 항상 머리 뒤는 서광이 비춰져 있어요. 그리고 눈썹 사이에는 백호(白毫)가 나 있어요. 왜냐하면 중생들을 밝혀주느라고. 백호를 제3의 눈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손에는 육환장, 한 쪽 손에는 이렇게 육환, 여섯 동그란 고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한 손에는 장상명주, 손바닥 위에 구슬을 가지고 모든 지옥을 비춰 보면서 건져주고 또 극락세계로 인도해 드리려고 장상명주를 가지고 계신다. 이런 분이 지장 보살이다. 그러면 우리가 지장보살을 열심히 열심히 하면 무슨 가피가 있나. 지장보살님은 넓고 풍요로운 땅을 가질 수 있게 한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사람들이 자기 집을 가진다든지 또 땅을 가지고 싶은 거는 안주예요. 편안함. 본인의 집을 가졌는데, 그런데 복이 없으면 안주가 안 돼요. 아주 기량도 좋고 그냥 뭐든지 재주도 좋고, 뭐든지 다 할 수 있어도 복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성사가 되지 않아요. 그런데 지장보살을 열심히 했을 때는 넓고 풍요로운 땅을 가질 수 있어요. 땅, 대지는 평안을 또 의미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마음이 늘 평화로워요. 내 마음이 그냥 내가 앉은 자리가 곧 극락이다. 세 번째는 돌아가신 선망 부모님들을 모두 극락세계로 모실 수 있는 천도의 공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건강한 수명을 가지게 된다. 얼마나 좋아요.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거든요. 건강해지고 또 구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다. “스님. 아무리 지장보살을 했는데 안 되던데요.” 그러면 될 때까지 하는 거에요. 될 때까지. 내 마음이, 내가 지장보살님하고 하나가 안 돼서 그래요. 될 때까지 해보는 거예요. 될 때까지 만 독, 10만 독, 천만 독을 해보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구하는 것이 마침내 다 이루어집니다. 또 물과 불의 재앙이 없어집니다. 수재 화재가 없어진다 이런 말입니다. 그리고 또 헛된 낭비를 하지 않는다. 헛된 낭비라는 것은 있는 척 잘난 척 쓸데없는 시간을 버리게 되는 거예요. 괜히 과욕을 부리고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게 만들고 이렇게 하는 그 시간의 낭비, 재물의 낭비, 에너지의 낭비를 하지 않아요. 왜 참나를 만나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그리고 악몽과 잡귀가 끊어진대요. 꿈자리가 시끄러우면 지장보살을 해보세요. 지장보살을 열심히 하면 그런 게 없어지고, 다니는 곳마다 신장님이 옹호해 줘요. 내가 마음이 해이해졌든지 그런 일이 생기면 발도 삐끗하고 사고도 나고 그렇거든요. 설령 사고가 났어도 “어머, 그만하기 다행이다. 큰일 날 뻔했다.” 이 사람은 벌써 복이 마음에 들어오는 거예요. 더 큰 사고를 면했기 때문에. 1초 전도 과거예요. 마음을 그렇게 전환하는 거 그게 천도입니다. 또 훌륭한 스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반은 성공한 것 같아요. 진관사, 이렇게 좋은 도량에 와서 같이 동수정업(同修淨業)을 우리가 닦고 있잖아요. 그래서 훌륭한 스승을 만난다. 내 팔자가 바뀌려면요,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해야 돼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악한 것을 멀리해야 해요. 착한 것을 항상 가까이 하고. 내가 지혜로우면 착한 사람이 내 주변에 가득해요. 종이가 똥을 만나면 똥 냄새가 나요. 근데 향을 만나니까 향 냄새가 나더라는 거예요. 그거예요. 그래서 내가 똥을 만나가지고 똥 냄새를 풍길 필요가 없어요. 그건 내가 선택하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그게 지혜예요. 그래서 항상 좋은 스승을 만나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죽었을 때 지장보살님이 나를 대신해서 내가 지은 업을 다 받으시고 나는 극락세계로 보내주더라 그래서 그렇게 공덕이 있다는 겁니다. “스님. 지장보살 하는데 자꾸만 망상이 일어나요.” 이렇게 또 말씀을 하셔요. 우리 보살님들이. 망상 당연히 일어나죠. 내가 익힌 게 망상을 더 많이 익혔기 때문에. 그럼 안 일어날 때까지 하는 거예요. 안 일어날 때까지. 그냥 오로지 내가 지장보살 하고 있는데 지장 보살 하는 놈을 내가 보는 거예요. 그러면 지장보살하고 나하고 하나가 되는 거거든요. 내가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가 하니까 내 마음이 막 맑아져요. 맑아지는 거를 자기가 느끼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 지장보살하고 나하고 하나가 되니까 그다음에 나타나는 현상이 뭐겠어요. 가피예요. 가피. 지장보살과 내가 하나가 되어가지고 가피를 받으니까, 첫 번째 내 마음이 후련하고 깨끗하고 가볍고 그리고 일이 그냥 척척되는 거예요. 모든 일이. 그리고 또 하나의 현상이 뭐냐. 막 진관사 가고 싶어져요. 우리 여기 종무원 국장님 한 분이 진관사 오고 싶어 새벽에 언제 해가 뜨나 하신대요. 왜? 당신이 채소 기르는 거 보고 싶어가지고. 내 마음 먹기 달렸어요. 내가 그렇게 밝은 마음을 먹고, 부처님 마음을 먹고,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를 해보니까 그냥 그저 마음이 가볍고 우울해지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더라는 거예요. 그러면 내생에는 꼭 정토에 왕생하고 또 구경에는 참다운 불자로서 꼭 성불하겠다라는 그런 서원을 세우시길 바랍니다. 지난 시간처럼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시고 눈을 살짝 감으세요. 호흡을 깊이 들으셨다가 또 내쉬고, 마음에 불편한 게 만약에 있다면 마음의 불편함을 다 내려놓으시고, 어깨가 경직되었다면 어깨를 한번 들썩 하면서 편안하게 하시고,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대원본존 지장보살님이시어큰 신통력과 자비와 지혜의 변재가 불가사의한 원력으로 임인년 백중 49일간 지장기도를 봉행하옵니다. 우리 선망부모 조상님들이 지장보살님의 큰 원력으로 부처님의 길을 찾아 가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임인년 49일 백중기도 기도법사 경한 스님과 진관사 대중 스님들 그리고 동참한 진관사 신도님들이 법의 향연, 공덕의 잔치, 진리의 잔치를 베풀어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전하고 밝고 환희로운 마음으로 영원한 생명의 빛, 끝없는 환한 빛의 세상, 극락세계의 길로 보내드립니다. 스스로 그 빛을 찾아가시길 지극정성 권청하옵니다.저희도 부처님의 큰 인연으로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다, 많은 인연을 짓고 빈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모진 비바람과 가혹한 설한풍을 견디며 잎과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남겨놓고 소리 없이 낙엽이 되신 부모님, 한 그루의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모진 풍상과 생가지를 찢기는 아픔을 참아야 하듯,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부모님의 인고의 세월로 낳아 기르시기까지 한과 눈물로 가지마다 생명을 나누어 주신 큰 은혜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마음의 정원 진관사에서 임인년 백중 49일 기도 중 오늘이 2재를 맞이하였습니다. 49일 백중 기도법사 경한스님과 진관사 대중스님들, 동참하신 신도님들의 간절한 기도 2차 인연공덕과 지장보살님의 대원력으로 지난 생과 금생에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업이 모두 소멸하시고 생전에 못다한 수행 공덕 낱낱이 원만하게 갖추셔서, 지장보살님의 대원력으로 서방정토 극락 세계에 아미타 부처님의 영접을 받으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리고 살아생전 집착한 일들과 섭섭한 인연 모두 놓아버리시고 잠시라도 명부에 어두운 길 헤매지 마시고,반드시 극락 세계에 왕생하시어 위 없는 미묘 법문 받아지니시며 무생법인 남김없이 요달하셔서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나무 마하반야 바라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눈 뜨시고. 법문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