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진관사 수륙재 개건 626주년, 지난 9월 1일날 이제 입재하시고, 오늘은 초재, 큰 주제가 <우리 모두를 위해> 이렇게 타이틀이 되어 있죠. 오늘 법문 초재 주제는 뭡니까? <우리 모두 힘내자.> <우리 모두 힘내자.>입니다.
이렇게 수륙재라고 하는, 부처님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중생을 건지는 큰 보배 그물을 널리 펼쳐서, 수륙공계에 또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전부 모든 일체중생 모두 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뤄서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이런 뜻으로 수륙재를 행하면서, 지난 입재때는 혜국큰스님 모시고, <나라의 별이 되신 분들을 위한 갑진년> 법문을 이제 해오셨고, 오늘은 <우리 모두 힘내자>.
제가 지금 부산에서 새벽같이 달려왔더니, 힘이 쭉 빠져 있어요. 힘을 내는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뭐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박수 치고, 웃고, 이렇게 힘이 척척 나잖아요. 그죠. 질질 짜고 이러면 있던 힘도 쭉 빠져버리잖아요. 어쨌든지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전소선언(前笑先言)>. 같이 해보실까요? <전소, 먼저 웃어준다. 선언, 말을 먼저 건넨다.> 마음에 안 들면 우리가 전화번호도 차단하고 그러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조금 마음에 부대끼고, 또 어설프고, 좀 밉상스럽다 하더라도, 항상 전소선언이라. 이것이 모든 업장이 소멸되면서, 즐기면서, 홀가분하고, 편안하고, 천연스럽고, 그렇게 인생을 힘내는 길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짜증나면 있던 힘도 쭉쭉 빠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 모두 힘내자>, 이것은 불교의 칠불통계처럼, 언제나 그게 우리 불교의 주제죠. 그래서 오늘도, 염불할 때 매번 반복이 됩니다. <원컨대 공법계제중생>,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누구든지 다 아는 구절이죠. 원컨대 공법계, 이 말법 시대에 동생상계, 함께 인류로 태어나 가지고 처지가 어떻게 됐든지, 이 말법시대에 우리 함께 같이 태어난 이 사람들끼리, 뭐 축생들까지 다 합쳐 가지고, 식물 동물 할 것까지 없이, 나하고 사상에 맞든지 안 맞든지 상관없이, 이 원공법계제중생이라, 모든 중생들이 동입(同入), 이 수륙대재하는 의의가 어디 있습니까? 동입, 우리 모두 다 함께 들어가자. 어디로 동입미타대원해(同入彌陀大願海), 아미타불의 원력의 바닷속으로 다 함께 들어가야 된다. 압록강은 서쪽으로 흐르고, 두만강은 동쪽으로 흐르고, 낙동강은 남쪽으로 흐른다 하더라도, 바다로 들어가면 압록강, 두만강, 낙동강은 다 자기 이름을 버리고, 강의 이름을 버리고, 다 뭐가 되죠? 태평양이 된다. 바다가 된다. 그래서 이제 부처님 같은 마음을, 똥물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맑은 물도 있을 것이고, 모두 모두 흘러서 우리는 부처님의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를 왜 바다라고 하죠? 다 받아들인다고. 바다는 한 사람도 거부하지 않고 모두 다 받아들인다고 바다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다 받아들인다고 바다다. 부처님의 넉넉한 품이 되잖아. 오죽했으면 부처님은 당신을 독살하고, 악독하게 출가하기 전부터, 출가한 뒤로 계속 스토킹하면서 따라다니던 데바닷다, 부처님한테 하도 많이 데받아(되받아) 가지고 이름이 데바닷다, 그 데바닷다가, 법화경에 데바닷다품을 보면 그렇죠. “내가 전생에 그 왕으로 있을 때 불법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때 아시타 선인이 계셨다. 그분이 법문를 하실 때 내가 엎드려서 걸상이 되고 법상이 됐다. 신위상좌변삼천(身爲床座福三千). 그때 나에게 법의 공부를 일러 주시던 분이 참 아이러니하게도 저 못된 데바닷다다. 데바닷다가 있어서 내가 성불할 수 있었다. 데바닷다 너무 미워하지 마라.” 데바닷다가 성불해야 부처님의 원력이 완성되죠.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또 데바닷다도 딱 빠져버리면 퍼즐이 하나 이제 빠지는 거예요, 한 조각이. 그래 뭐 이것은 불교를 떠나가지고, 기독교로 보더라도 유다가 빠져버리면, 예수로서 포용을 못 하면은 예수가 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어쨌든지 뭐 데바닷다는 부처님한테 그렇게 되받아가지고 달려들다가 지옥 가서는 이름을 바꿨어요. 개명을 했어. 죄받았다(제바달다).
미래제가 다하도록 중생을 구한다. 말이 쉽지, 참 지난한 길이죠. 어렵고도 어렵고. 그래서 <자타일시성불도>라.
여러분들이 오늘 이제 <우리 다 함께 잘 되자>. 그래서 잘되는 길은 식상한 소리 같지만 공덕을 지어야 된다, 이런 말씀드릴 수가 있겠어요. 통도사 같은 데도, 얼마나 서로 화목 안 하면, 돌기둥에 새겨놨겠어요. 이성, 갖가지 성, 다른 성이 동거해 함께 살아가면 필수, 반드시 요구된다, 필수 반드시 수요가 있다, 요구된다, 뭐가? 화목. 그러니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뭐 임전무퇴 결사항전이 우리에게 종식을 갖다 투쟁 경고의 시대예요. 필수 화목인데. 범어사에 가면은 어산교라고 하는 자그마한 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자그마한 다리. 어산교, 범어사 금정산 다리다, 조그마한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사람 이름이 하나 있고, 옆으로 45도, 한 25도, 35도, 저 정도 요렇게 새겨져 있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범어사에 들어오는 사람은 반드시 선근 공덕을 지어야 된다. 김선근. 바위에 딱 새겨져 있어요. 김선근. 그래 그 옆에서 한 3발짝 딱 가면 김선근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사람 이름이에요. 근데 사람 이름이 얼마나 좋으면, 거 써도 개똥이처럼 써놓으면 안돼. 이 절은 뭐하는 곳이에요? 선근을 심는 자리인데, 사람 자체가 김선근이야. 저는 이제 다시 큰 절에 들어와서 이렇게 살다 보니까, 제가 이름이 용학이라고 이렇게 하는데, 우리 학인 스님들은 방학도 나가고, 또 신도님들도 방학도 하시고 그래 하잖아요. 그죠. 저는 신도님들 방학하시고 나서, 우리 그다음에 학인들을 계속 가르쳐야 되고, 학인들 방학하고 나면 신도님들 또 개학해요. 그래서 저는 방학이 없으니까, 이름 자체를 용학이라 안 하고, 앞으로 방학이라 하려고. 이래저래 방학 없는데 뭐 이름이라도 방학이라고. 그래서 이분이 얼마나 좋으면 이름 자체가 김선근.
자, 오늘 이제 수륙재라고 오셨는데, 열반경에 선근(善根)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가 선근이라면 좋은 착한 뿌리잖아요. 그죠. 착한 뿌리를 심고, 심고, 심는데, 최고의 선근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최고의 선근은 무엇이겠습니까? 경전에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착한 일이 많지요, 그쵸. 뭐 요거 아시는 분은 제가 크게 한턱 쏘겠습니다. 경전에 나와요, 경전에. 선근, 선근, 막연한 선근 말고. 그죠. 진짜 선근을 몰라. 산 중에서 제일 높은 산은 불교에서는 수미산, 수미산이다. 그죠. 경전에 고대로 나와요. 발자국 중에서 제일 큰 발자국은 코끼리, 예. 어우, 코끼리 발자국. 광명 중에 제일 밝은 것은 태양. 예. 태양, 일광이 제일 밝다. 이렇게 왕 중에서 제일 높은 왕은 전륜성왕. 여러분들 뭐 거의 천재, 모르시는 게 없습니다. 다 아세요. 전륜성왕이다. 선근 중에 제일 훌륭한 선근은 뭘까요? 한번 큰소리로 해 보십시오. 보시, 잘 보시오. 땡. 이 세상에 산이 제일 높은 것이 수미산이고, 저 밝은 태양이 광명 중엔 제일 밝다. 태양이 한번 떠버리고 나면 서울 시내 가로등, 부산, 대구, 대전할 것 없이 온 가로등 다 붙여놔도 태양 하나에 따라갈 수 없고, 저 하늘에 총총한 그 밤에 많던 별도 별 볼 일 없어져 버립니다. 태양 빛 하나에 모든 것이 다 가려져 버립니다. 부처님도 턱 앉으면은 천만 대중이 전체가 형색이 무색해져 버리잖아요. 그쵸. 그렇게 하듯이 선근 중에서 가장 훌륭한 선근이 뭐냐. 끊임없이 정진하는 <불방일(不放逸)>이다. 이렇게 했습니다. 불방일이 선근 중에서 가장 큰 선근이다. 불방일이 뭐죠? 게으리지 않고 계속 정진한다는 거예요. 불방일은 어떤 선근이냐. 어떤 뿌리냐. 이른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선근이다. 그래서 삼세제불이 불방일 선근으로 인해서 다 성불을 하셨다.
자, 우리 모두 힘내는 길은 뭡니까? 불방일로 죽으나 사나, 그냥 자나 깨나, 오나 가나, 뭘 해야 되겠어요? 정진하고, 정진하고, 정진하고. 뭘 정진합니까? 화목하게, 화목하게, 화목하게. 좋게 보면 전부 꽃이고, 제가 알라고 달려 들게 되면 전부 다 잡초잖아요. 그래서 불방일 하면은 이 게으르지 않는 것도 이렇게 증장이 되지만은, 다른 것도 따라서 같이 자라나게 된다고 그래요. 그래서 뭐 이런 수륙대재를 통해 가지고, 뭐 짐승 중의 사자처럼, 나는 새 중에는 금시조처럼, 전륜성왕처럼, 우리도 인제 선근 중에서 불방일을 제일 우선시해서, 정진하고 정진하다 보면은, 깊고 견고해져서 쉽게 뽑아지지 않는다. 이렇게 인제 말씀드릴 수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33천 중에 저기 도리천에 올라가면은, 그 도리천에 이제 천자, 소유제천자(所有諸天子)라. 그게 왕자들이 밥을 먹는데 공동일기식(共同一器食)이라. 화엄경에는 공동일기식이라고 나오는데, 유마경에서는 더 찬란하게 써놨죠. 공동보기식(寶器食)이라. 모두 함께 보배 그릇에 밥을 먹는다. 근데 소식은 각부동(所食各不同)이라. 각자 먹는 음식이 다르다. 똑같은 한 그릇 밥에다가, 밥 한 그릇을 똑같이, 한 그릇 밥을 가지고 몇십 명이, 몇백 명이 모여서 먹는데, 어떤 사람은 짜장면 먹고, 어떤 사람은 볶음밥 먹고, 어떤 사람은 국수 먹고, 냉면 먹고, 또 어떤 사람 뜨뜻한 거 먹고, 어떤 사람은 찬 거 먹고. 그쵸. 다 달라. 오늘 이렇게 수륙대재라고 한다고 이렇게 모여서 왔는데, 우리가 어때요? 각기 <우보일생만허공이나 중생수기득이익이라>. 자기 그릇만큼 알아듣고, 듣기 싫은 사람도 있고, 듣기 좋은 사람도 있고, 눈이 열린 사람도 있고, 캄캄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마는, 이렇게 수륙대재라든지 이런 법회를 통해 가지고, 또 우리가 이 말법시대에 같이 태어나 가지고, 같이 인류로 살아가면서, 서로 싸우지 않고, 인정하고 존중하고 이렇게 될라면은 첫째는 믿음이 있어야 되요. 믿음이. 이 선근을 인제 정리를 하자면 이렇게 돼요. 믿음을 먼저 키워야 되는데, 믿음이 잘 돋아나지가 않아. 믿음이 잘 돋아나지가 않아요. 그 믿음을 잘 돋아나게하려면은 절에 오면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게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이라> 그래요. 악한 사람하고 자꾸 만난 사람들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천친보살께서 딱 정의해 놓기를 “신귀덕업(信貴德業)이라,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덕업, 공덕을 짓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일을 믿음이라고 한다.” 이렇게 답합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제 <신위도원 공덕모(信為道元功德母)라>. 화엄경에도 그렇게 얘기해요. 많이 들어보셨죠.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도의 근원이고, 공덕을 짓는 어머니다. 그리고 ‘믿음이, 아, 뿌리가 되는데 그걸 믿음을 갖추면 되겠구나. 내가 불교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 내가 신용불량자는 아닌가, 다른 사람들한테 믿음을 갖추는가, 안 갖추는가.’ 그러면 가만히 생각하면은, 그럼 믿음이 어떻게 하면 돋아날까. 첫째, 능엄경 같은 데서 가르칠 때 믿음이 안 돋아나는 사람들은 아주 오신채 탁한 걸 많이 먹어서 그렇대. 그걸 조기제인이라. 1번이 그거야. 그 도와주는 음식을 가려라. 제기조인(除其助因)이라. 고기정성(刳其正性)이라. 안쪽에서 탐진치를 뽑아내라. 현실에서 이렇게 부딪칠 때, 또 이렇게 내가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또 내 유리한 대로 아만과 교만을 부릴 때, “내 수준이 와 이런 데”는 없고, 외면하고, 거기에 시시비비에 내가 휘말려 들어가지 말아라. 근데 말려 들어가면은 밀가루 속에다가 기름 1방울 통 들어가 가지고 또르르 말려들어가 다시는 탈출하지 못하는 거와 같다. ‘내가 똥파리처럼 살아서 되겠나.’ 여 인제 나온다는 거죠.
그래서 믿음이 딱 갖춰진 사람들은 부지런한 게 이제 따라붙어요. 부지런해야 이 정진 다음에. 저 정진은 불방일의 초보예요. 초보. 병아리야. 병아리. 정진이 자라고, 자라고, 자라다 보면, 나중에 어미 닭이 됐을 때는 불방일이라 그래요.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다음에 오는 현상에 가만히 쳐다보고, 여러분들이 절에 와서 공덕을 짓고 이런 분들이 이래 보면 굉장히 부지런합니다. 저는 꼭 버릇이 지각을 잘했어요, 어릴 때. 학교 다닐 때도 지각하고, 절에 와서 지각하고, 뭐 계속 지각을 자주 하더라구요. 그리고 왜 스님이 자꾸 지각합니까? 너무 규칙적인 생활을 하느라고. 지각하던 사람이 안 하면 이상하죠. 계속 지각. 여러분들도 이렇게 모임이 있으면, 늦는 사람 계속 늦지요. 또 빨리 오는 사람도 너무 빨리 와가지고 좀 별나죠. 빨리 오는 사람은 좀 별납니다. 빨리 오시는 분들은 자기가 잘하기 때문에 남 모자라는 거 (못 봐요.) 그냥 빨리 오면 빨리 온 대로, 또 늦게 오면 늦게 온 대로 이렇게 다 포용하고, 이해하는 것이, 인제 오늘 같은 날 한번 다시 짚어보는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부지런해지게 되면 사람이 자기 안쪽으로 또 바깥쪽으로 참회를 하게 되죠. 참회를 하는데, 참회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참회를 하지 않으면 법문이 안 들려요. 여기서 진관사도 자비도량참법을 시작했다고 하잖아요. 그렇죠. 믿음이 있고 난 뒤에, 그 다음에 자비도량 참법을 해서, 참법을 반드시 해야 법문이 쑥하고, 밭에다가 돌을 갖다가 인제 걷어내고, 돌자갈을 걷어내야 곡식을 심을 때 곡식이 좀 잘 자랄 수가 있겠죠. 그래서 이 참회를 한 사람들은 그다음에 오는 현상이 탐심이 많이 쪼그라듭니다. 그다음에 화닥질이, 자 화닥질이라 해야 되나, 화가 잘 안 나요. 화내는 사람은 수준이 아주 낮은 사람입니다. 저는 화를 한 번도 내본 적이 없습니다. 아, 정말로. 저는 이제까지 태어나가지고 이제까지 화를 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강의를 해도 꼭 저는 수요일날 합니다. 수요일. 화목의 중간에. 물처럼 유연하게. 정말로 수요일날 강의를 합니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오늘 수요일이죠. 금방 뽀록나 버리네.
그러면 내가 친하고 친하지 않은 것이 끊어진 사람한테 오는 현상은 뭐냐. 절대 남을 해꼬지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11가지가 믿음에서 정진으로, 그리고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남의 체면을 차리고, 이렇게 쭉 흘러가 나가는 것이 탐심이 없고, 진심이 없고, 치심이 없고, 그리고 홀가분한 정신 상태가 되면서 불방일를 가지고 친소를 떠나서, 남북을 떠나서, 그저 동서를 떠나서, 고금을 떠나서, 빈부귀천을 다 떠나서, 일일이 평등하게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니까 해코지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잘 안 한다. 예. 고런 것들이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있는데, 어쨌든지 뭐 이렇게 목동 눈에는 소 꼴만 보이고, 사냥꾼 눈에는 사냥감만 보이지만, 평생 산에 살아도 의사가 한의사가 비로소 산을 올랐을 때 뭐가 보입니까? 낙조.
그래서 이제 수륙재 이렇게 뭐 오늘 법문 재미없습니다마는, 재미있어라고 하는 법문는 아니니까, 그렇게 조금 염두에 두고 좀 정진했으면 좋겠다는 말씀 때문에 드리는 건데. 범어사에 가면은 어산교을 지나면 누가 있다? 김선근이가 있다. 김선근 옆에 또 이렇게 더 잘생긴 바위가 하나 있어요. 김사철이라. 밟을 철자. 전철을 밟아간다잖아요. 그죠. 사유할 사자. 부처님이 가신 길을 잘 사유하고 거기로 따라가라. 그러다 이제 왼쪽으로 이렇게 한 3미터 쪽에 돌아보면은 김영덕이가 있어요. 영원히 공덕을, 신심공덕을 짓고 살아라. 와, 그러니까 범어사 오는데도, 평생 30년, 50년 다녀도 까막눈은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여러분들 혹시나 부산 범어사 가시게 되면 김선근이네 한번 보고 착한 일 하나 하고, 김사철이네, 계속 착한 일하고, 일불이불삼사오불(一佛二佛三四五佛)이종선근이어무량천만불소종(而種善根已於無量千萬佛所種)에. 그리고 언제까지 또 공덕을 지어야 되겠어요? 김영덕. 그래서 가만히 쳐다보면 우리 다 함께 힘내자 하는데 남하고 똑같을 필요는 없어요. 채소를 보더라도 뿌리 먹는 거, 도라지, 더덕, 또 뭐 있나요? 예. 당근, 또 무, 감자, 땅콩. 그렇다고 뭐 뿌리는 뿌리대로 훌륭하고, 잎사구는, 잎사구가 아니고, 뭐 제가 이게 서울말을 할라고 임플란트를 서울에서 했는데 안 되네요. 그게 아이 참. 이파리, 잎사구, 또 잎사구라, 잎 먹는 상추, 배추, 양배추, 뭐 이런 게 있잖아요. 그죠. 또 열매 맺는 채소도 있지만 열매 먹는 거, 채소로 보면 뭐가 있어요. 옥수수, 강낭콩, 예? 토메이토. 그리고 어떤 것도 껍질 먹는 거도 있고, 그죠. 계피 같은 것도 있고, 껍질 먹는 것도 있고, 알맹이 먹는 것도 있고, 그렇게 어떤 거는 즙을 짜가지고 먹는 것도 있고. 안 그렇습니까? 이런 것을 우리는 다 어울려서 살아내서 세주묘엄(世主妙嚴)이다. 이렇게 늘 얘기를 해요. 세주묘엄. 그래서 인인이 다 잘났다 해서 다 우리 힘내자. 이것이 각득기소(各得其所)라. 각기 지 역할이 있다. 모난 놈은 모난 대로, 아니 저기 호랑이한테 뿔 달리면 이상하잖아요. 그렇죠. 소는 뿔 있는데, 호랑이는 뿔이 없어. 그죠. 고양이는 발톱이 있는데, 개는 발톱이 있긴 해도 시원찮잖아요. 그래서 어떤 거는 물에도 살고, 어떤 거는 숲에도 살고, 허공에도 살고, 땅에도 산다. 그 모든 중생들, 수륙이란 말이 그 모든 중생들, 태난습화 모든 중생들, 구류중생들이, 구류중생 일법계라. 그 구류 중생이 함께 자라장리살진주(紫羅帳裏撒眞珠) 구류 중생이 일법계라.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데 우리가 조금 뭐 돈 많이 가진 사람, 인물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학벌이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이런 걸 다 떠나가지고 전부 다 같이 잘 살자 이런 뜻이 있잖아요.
왜 요번에 올림픽을 이렇게 보면은, 그게 경기할 때 가만히 쳐다보면, ‘아유 저건 축생경기다, 저거는 지옥경기다, 저거는 인간경기다, 저거는 신선경기다’, 이런 게 있잖아요. 왜 그거 활 쏠때는 한 발짝도 안 움직이고 쏘잖아요. ‘와 신선 같다 신선.’ 근데 100미터 달리기 하든지 저기 수영하고 이런 거는 남 해코지 안 하고 어떻게 지 기록만 하잖아요. ‘아 우리 정말 인간 같네’, 그리고 구기종목 같은 걸 하잖아요. 그죠. 축구 같은 거 이런 거 하고. 그리고 아마 치고받고 하고 왔다갔다 하면 ‘좀 인간인데 조금 모자라는 아이들 같다.’ 조금 수준 높은 인간은 네트 딱 달아놓고 배드민턴도 치고 테니스도 하고 하잖아요. 저걸 서로 엉겨 붙어 싸우지 않으면서 게임을 잘도 한다. 그래도 조금 넘어가서 복싱이나 유도 오면 눈탱이 째지고 레슬링해서 지옥이다. 지옥. 100미터 딱 달리기 할 때 보면 준비 땅 10초 만에 끝내서 금메달 하나 딴 사람 있죠. 그죠. 저건 돈오돈수인데. 2시간동안 쎄빠지게 뛰어가지고, 메달 겨우 하나, 그 마라톤 있잖아요. 똑같은 메달 한 개인데 왜 저리 많이 뛰노. 저건 돈오점수다. 가만 보면 별별개 다 있어요. 탁구공은 가볍고, 탁구공 가벼워야 그렇게 배트가 이렇게 치고 해야지 볼링공은 어때요? 볼링공으로 탁구 치면 탁구대가 다 빠그라져.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볼링공처럼 무겁게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 업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마음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죠. 거기에서 볼링공을 잘 굴려야 될 것이고. 탁구공 같은 인생은 탁구공처럼 내 인연을 순응하고 살아야 되고. 야구공을 가지고 축구할 수는 없잖아요. 또 럭비공은 또 얼마나 모났어요. 모난 놈들이 럭비 하는 것 같애. 사각으로 그죠. 어디 튈지 몰라. ‘아 이렇게 모난 사람은 저건 어디 튈지 모르겠다’ 그렇게 이해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야 공 하나만 보더라도 자 던져놓고 참 별 게 다 희한하게 살아간다 이런 생각이 있어요. 어쩌든지 우리가 크든지, 작든지, 길든지, 짧든지, 무겁든지, 가볍든지, 껄끄럽거나 미끄럽다, 이런 것은 전부 인연법이고, 생멸이 멸이(滅已)하여 불생불멸로 가는 길. 이것이 인제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 이런 뜻이에요.
제가 통도사 얘기를 했고, 범어사 말씀도 드렸고, 그쵸. 예, 그럼 제 출가 본사 해인사 가면 이런 게 있어요. <원각도량이 하처냐(圓覺道場何處)>. 우리의 진정한 극락세계, 원만한 부처님의 세상이 어디에 있더냐.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時)다>. 지금 오늘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순간에, 모든 집착만 내려놓으면 좋겠다. 그 집착이 내려놔지나. 안 내려놔지지. 중생은 집착하며 살아야 되는 것 같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