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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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9월 6일 백중기도 7재 법문
회주 계호스님 2025-09-06
안녕하세요. 인도말로 나마스테라 합니다. 이 나마스떼란 말은 “당신 안에 있는 영성을 영원히 존중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영성이라는 말은 우리가 보통 불성(佛性)이라고 그러죠. 근데 여러분들이 오늘 49일간 지장기도를 회향했다라고 하지만 저는 안 그렇게 생각합니다. 영원히,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이고 긍만세이장금(亘萬歲而長今)’이라는 말이 금강경(함허설의)에 있습니다. 정말 만 년을 지나고 억겁을 지나더라도 그대로 고금이에요. 그래서 수행(修行)이라는 건 시작이 있어도 끝은 없습니다. 영원히 수행자의 삶입니다. 진관사는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에요. 여러분들이 와서 기도하고 정진해 보면 “아, 이 도량이 얼마나 맑은 도량인가.” 청정한 도량은 누가 청정하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닙니다. 내가 청정하면 그대로 국토청정(國土淸淨), 심청정(心淸淨), 국토청정이라고 하듯이 그대로 청정한 겁니다. 그래서 보통 아까 학생들이 어버이, 어머니의 은혜라는 노래 있었죠. 제가 알기로는 양주동 박사께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한글로 번역해서 “어머니의 은혜”라는 노래를 작사했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아까 역천겁이불고이고 긍만세이장금’이라 하시니, 고음을 통해서 부모은중경도 기도했고 계속 지장기도 하고 있는데, 보통 백중날은요, 불교의 어버이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인정합니까? 다 같이 우리 박수 한번 칩시다. 우리가 네 가지 의무를 해야 돼요. 예경해야 되고, 찬탄해야 되고, 예배해야 되고, 공양해야 된다. 거기에 무슨 말이 붙어야 되는지 아세요? “환희”란 말을 집어넣어 보세요. 환희 공경, 환희 예배, 환희 공양, 환희 찬탄. 그러면 네 가지 의무를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그대로 우리가 부처님 세계에 사는 거예요. 아까 불성 영성이라고 그랬죠. 내 몸 자체가 불성이에요. 사람이 살아가는데요, 정말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두 가지 행이 있는데 아시는 분 손 한번 들어보세요.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가는 두 가지 행, 아까 다 했는데. 선행과 수행입니다. 선행은 복(福)으로 가고, 수행은 열반(涅槃)으로 가는 거예요. 깨달음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선행을 베풀 때, 베푸는 사람도 행복하고 받는 사람도 행복해야 돼요. 공양을 받을 때 이게 너무 좋다고 환희심을 내야지, “이거는 내한테 안 맞는데.”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하면 영원한 부정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선행과 수행, 복과 열반을 생각하셔야 돼요. 복이라는 건 복락이고 공덕을 짓는 거고, 수행이라는 것은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거예요. 그럼 여기 다 정답이 나와 있잖아요, 그렇죠? 내가 살아가면서 즐겁게 가치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남 탓보다 내 탓을 먼저 하는 사람은 보살(菩薩)이라 그러고, 내 아픔보다 남의 아픔을 더 걱정하면 바로 부처님이에요. 우리가 팔복전(八福田) 짓잖아요. 오늘도 승보공양(僧寶供養)하니까 저는 승보공양이 부처님 공양이구나, 승보 자체라는 말이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 가운데 승보도 부처님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오늘은 스님네들에게 공양한 게 아니라 부처님들께 공양했구나’ 이런 마음 가지시면은 당신도 부처님이세요. 너도 나도 부처님, 아시겠죠? 그래서 백중은 우리가 보통, 프린트 내줬죠. 여러분들 잘 알으라고 이렇게 프린트를 해줘요. 왜냐하면 그냥 말로 지나가면 다 끝나잖아요. 기록이 기억을 지배합니다. 기록이라는 게. 기억을 지배하기 위해서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호신 깊은 불자가 삼법계 공양하면서, 공양을 올려드리면서 조상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언제가? 백중날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 생일은 잘 챙겨도 부모님 생일, 돌아가신 분은 잘 안 챙기는 분들도 혹시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 분들은 마음속으로 “아, 내가 여태까지 좀 잘못했구나. 잘해 드리겠다.” 이런 마음을 내면 그게 바로 부처님이에요. 살아가면서 좋은 마음 내고 좋은 생각 내면 그게 바로 부처님이듯이 우리가요, 살아가야 될 방법도 잘 찾아야 하지만, 죽어가야 할 방법도 잘 찾아야 돼요. 계절이 사계절이 있듯이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잘 살아가면은, 잘 살면 잘 돌아가신다는 말 들어보셨죠? 평상시에 잘 살면 그대로 잘 돌아가는 거예요. 돌아가실 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바로 이 현생에서 바로 과보를 받아서 극락당(極樂堂)이 될 수 있어요. 함월당에서는 극락당이라도 하고 싶고, 염불당이라도 하고 싶고, 무슨 불을 붙여도 아무 이유가 없어요. 붙이는 대로 쓰면되는 거예요. 이름이라는 건 내가 붙이는 나름이잖아요. 꽃이라면 꽃이라고 하고, 아름답다 하면 얘가 아름다운 거고, 좋다 하면 좋다라는 개념이에요. 여러분들도 다 좋은 생각 내시고 진관사에 들어오면 왠지 너무 즐겁고 환희심 난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되는데 집에 가면 안 그렇다면 그건 내가 명철하지 못한 거예요. 안과 밖이 똑같아야 돼요. 수행자(修行者)는 안과 밖이 똑같잖아요. 그래도 계속 수행하잖아요. 수행자는 특별한 거 없어요. 그대로 평상심(平常心)이 그대로 도(道)잖아요. 여러분들이 진관사 와서 수행하면 그 자체가 바로 부처님이에요. 저는 그래서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은 항상 당신은 부처님이 될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무시하지 않는 거야. 항상 불경스럽지 않고 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에 상불경보살님이라 그래요. 우리도 모든 사람들을 갖다가 찬탄, 환희, 공양. 처음에 그랬죠, 네 가지 뭐예요? 공경, 예배, 찬탄, 공양. 거기다 뭘 붙이라 그랬어요? 환희 자도 붙이면 너무 좋잖아요. 우리가 우울하다보다는 환희하다가 더 좋잖아요. 사람을 만나도 기분 좋은 사람 있죠. 스님네들 보면 여러분들이 다 좋아하잖아요. 삭발하고 법복 입고 수행하는데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 이런 마음 가져보세요. 옛날에 순치황제 출가시에 보면요. 당신이 다 소용없다 그래서 절에 가서 스님이 됐는데, 언젠가는 왜 그러면은 왕이 됐냐면은 언덕에 가서 이렇게 있는데 임금님이 지나가는 행렬을 보고 “하아 저렇게 하니까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하는 바람에 임금이 된 거예요. 그 말 한마디 과보로. 그래가지고 살면서 “아, 이건 아니다.” 하고 태어나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 태어나서 나는 누구인가 하는 그런 출가시의 내용이 있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공경하고 예배하고 찬탄하고 공양을 하셔야 돼요. 그건 기본이에요. 여러분들이 다 이렇게 공양을 올려 가지고 너무 좋잖아요. 꽃공양, 과일공양, 육법공양 다 하셨죠? 육법공양 그대로가 다 부처님의 도리예요. 그래서 저는 항상 살아가면서 “나는 정말로 참 스님 되기를 너무 잘했다.” 과거에도 스님이었는지 후에서 지금 살아가는 걸 보면 그 사람이 내생에 뭐하는 줄 알잖아요. 그렇지만 쓸 수 없는 날이 이틀이 있어요, 살아가는데, 하루에. 언젠 줄 아세요? 어제와 내일은 쓸 수 없어요. 오늘만 있을 뿐이에요. 어제와 내일은 아직까지 오지 않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여러분은 너무 행복한 거예요. 지난 삶이면 너무 기분 좋다, 환희심이 난다. 이럴 때는 여러분이 부처님인 거예요. 진관사 가기 싫다 하면 그건 부처님이 아니고 마구니잖아, 그렇죠? 여기서도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에 보면 구도현이라는 말이 있어요. 거꾸로 매달렸으니까 바로 세워야 되겠죠. 이거는 내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거예요. 백중날, 여기서 백중하면 해제일을 마칠 종자에서 하안거 마치는 날이라 해서 백종(百終)이라고도 하고 자자일이라 하기도 해요. 그날은 내가 공부한 걸 점검해 가지고 내가 잘못했나 잘했나 이걸 갖다가 다시 점검해 보는데, 옛날 큰스님들이 저희 때 스님네들이요 해제하면 어떻게 되냐면 걸망 지고 큰 절에 가서 100일 기도해요. 다음 결제 때까지 겨울 동안거 때까지 그렇게 하고 탁발하면서 정진하고 그랬었는데, 요새도 그런 스님네들이 있긴 있는데 옛날 같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다 보니까 사람들이 조금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이에요. 먹는 것도 약간 조금 조금씩 다르듯이, 그때 당시에는 먹을 게 없으니까 뭐 짠 김치 먹어도 좋고 짠무 먹어도 좋고 다 좋았는데, 요새는 좀 너무 짜면 안 좋다 해서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옛날에 우리 어른들이 말하기를 “된장 먹지 않으면 엎어진다.”고 그랬어요. 된장 먹지 않으면. 그러니까 조금 그런 기운이 있어야지 잘 안 엎어지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적당히 드시고 적당히 하면, 이 적당히라는 게 중도(中道)예요. 이쪽 저쪽의 중간이 아니고 우리가 생각하는 제일 나쁜 게, 아까 제일 좋은 게 뭐라고 그랬어요? 선행(善行)과 수행(修行)이라고 그랬죠. 제일 나쁜 건 편견(偏見)과 아만(我慢)이에요. 고루한 생각은 편견이고, 아만은 너무 이렇게 자기를 갖다가 이렇게 저기해요. 凡有下心者(범유하심자) 萬福自歸依(만복자귀의)라는 말이 초심에 나와요. 하심(下心)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귀의하는 거예요. 그래서 편견과 아만 갖지 말고 선행과 수행을 하자. 아까 말씀드렸죠. 떠나면서 두 가지, 그러니까 내가 살아가면서 우리가, 내가 젊다, 내가 늙는다는 건 나한테 달린 거예요. 젊다고 생각하고 살면 젊은 거고, 늙다고 생각하면 늙은 거고, 그러니까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 좌우되는 거예요. 옛날에는요 얼마나 사는 게 좀 각박하고,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으면 아침에 뭐라 그래요? "밤새 안녕하십니까?" 하는 인사했죠. 우리 보통 그렇게 밤 동안에 무슨 일이 없습니까? 혹시 밤 동안에 심장마비로 가신 사람도 있고 아픈 사람도 있는데, 우리가 수행 잘하면 "밤새 안녕하십니까?" 할 필요도 없고, 저기 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아까 나마스테할 때, 당신 안에 있는 영성을 영원히 존중합니다 하듯이, 정말 "당신을 존중합니다."라고 하셔야 돼요. 공양, 예배, 찬탄, 공경하듯이, 공경 먼저 하고 예배하고 찬탄하고 공양해야 된다예요. 네 가지. 의무적으로 하셔야 돼요. 여러분들은 지금 부모은중경도 했고, 지장기도도 4일 동안 했고, 스님네들이 오셔서 다 법문하는 소리 들으셨죠, 말씀 들으셨죠? 그게 다 다른 게 아니에요. 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한 일이에요. 그렇지만 우리는 실천하는 수행자가 돼야 돼요. 아는 건 지식이에요. 실천하는 건 수행이고, 열반(涅槃)이고, 적정(寂靜) 열반이에요. 그래서 스님들이 많이 법문도 해주시고 좋은 말씀도 다 해주셨어요. 그걸 내가 실천하는 수행자가 되어야 돼요. 좋은 생각을 내가지고, 우리가 맨날맨날 음식을 먹어서 내 몸에 영양가를 생각해서 음식을 먹듯이 나의 지식이 없애가지고 수행을 하셔야 돼. 그래야지 지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자비(慈悲)와 지혜(智慧)가 같이 갖추어져야 되겠죠. 자비롭고 지혜롭고, 그러니까 열심히 수행하면서 매일매일 공부하셔야 돼요. 무슨 공부? 마음 공부. 그래서 명상할 때도 마음 공부, 챙김이라는 게 있죠. 잘 챙기셔야 돼요. 그 뒤에 보세요 여기. 우란분절의 역사적 전승과 확산이라는 게 있죠. 중국 서진 시대 축법호 스님이 한역한 게 불설우란분경이 었는데, 4세기의 동진 시대 때 불설보은봉분경에도 이런 같은 내용이 보여요. 불설우란분경 보이듯이. 그래서 3~4세기 중국에서 효와 조상 천도(薦度) 의식이 점점 성행한 것을 볼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는요 예종 시대 당시에 숙종의 명복을 위해 우란분재(盂蘭盆齋)를 봉행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대각국사가 고려 시대때죠. 이 스님은 왕족의 저기에요. 문집에 보면 스님이 우란분절에 연비를 한 게 나와요. 우리가 보살계 받을 때만 연비한 게 아니라 우란분절에도 연비했다는 내용이 나오고요, 그다음에 송나라 유학을 가기 전에 발원하는 구절을 볼 수 있고요. 또 의종 7년 봉원전에서 (우란분재를), 충렬왕께서도 1285년, 1296년에 신효사라는 절과 강릉사에서 각각 우란분재를 베풀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고려시대의 우란분절은 왕실에서 이렇게 우란분절은 행해지고 있었지만은 지금은 각 사찰에서 우란분절, 백중을 지내지 않는 사찰이 없습니다. 다 백중을 지내는데, 조선시대 때는 억불 정책 속에서도 효를 숭상하는 우란분절이, 비가 많이 와서 얼른 끝나야 되는데. 비 와도 진관사는 ‘나루 진’자기 때문에 비 오면 더 좋아요.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그냥 그대로 보시면 되는 거예요. 이것도 하나의 일상 과정이구나, 수행이 삶이고 삶이 그대로 수행이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절에 와서 수행한다는 생각도 더 좋지만은, 도량이 청정하니까 물론 좋지만은, 집에서도 도량이라 생각하세요. 내가 명철해야 된다 했죠? 집에서 하는 것과 바깥에서 하는 게 다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분법이 되는 거예요. 반으로 갈라지니까 안 좋아만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안에서나 바깥이나 똑같은 마음을 써야 돼요. 그래야지만 부처님이다라는 얘기예요. 그래서 용재총화에 보면 7월 15일을 백종이라 하는데, 승가에서는 100가지 꽃, ‘백’이라는 말이 많다, 오만 가지, 수만 가지, 수만 가지 뭐 그런 말 쓰죠. 그럴 때 그런 많다의 의미고, 꽃과 과일을, 오늘도 우리 저기 뭐야 승보 공양할 때 꽃 공양을 이렇게 받았잖아요. 그래서 꽃과 과일을 모아서 우란분을 베풀었고, 서울에 있는 비구니 암자에서 더욱 심해서 부녀자들이 쌀과 곡식을 바치고 돌아가신 부모 영가를 위해서 우란분재를 베풀었다는 얘기 용재총화에 나오는 게 있습니다. 아시아권에서는 우란분재의 전통이 성행하는데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에서는 음력 7월 15일에 음식을 올리고, 이 사람들은 등을 켜고 또 춤추는 걸 좋아해 가지고 춤도 추고 노래 공연도 하고 그러는데, 특히 대만에서는 공승재를 열어요. 그래서 공승재 때 스님네들이 500 공승재 뭐해가지고 우란분절 무렵에 스님네들이 이렇게 사찰에서 모집해 가지고 거기 가면은 꽃공양, 과일공양, 또 여러가지 보시를 받는다고 그래요. 그래서 가기도 하고 그러는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10년, 100년, 3만 6천 500일이죠? 100년이면 365x100 해보세요. 36,500번이 오욕락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사찰이나 집에서 반나절, 절에 와서 하면 더 좋아요. 절에 와서 반나절 수행하는 것만 못하다 이거예요. 어떤 게 더 수승해요? 절에 와서 반나절 수행하는 게 더 좋은데 여러분 반나절 넘기지 아니죠. 49일간 하잖아요. 어떤 분은 천일기도 계속 오셔서 기도하는 분들도 계셔요. 그리고 어떤 분들은 아침으로 조석예불도 오고, 저녁예불도 오는 분들도 계시고, 또 사분정근에 한 번 참여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몇 번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에 어떤 생각을 내면서 하느냐. 망상이 많은 마음은, 그거는 잡생각이고, 오로지 부처님만 생각하면 일념(一念)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처처에 일념으로 생각하면 처처마다 불심이에요. 극락당(極樂堂)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항적당에서 하든지 지장전에서 하든지 대웅전에서 하든지 나한전에서 하든지 상관은 없는 거예요. 어디서든지 간에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을 열심히 진심으로 하면 그대로 진심인 거예요. 가심으로 하면 내 몸이 진짜 몸이 아니에요. 뭐로 흩어져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흩어지잖아요. 일념불심(一念佛心)만이 진심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좋은 마음을 영원히 가지고 가야 되겠죠. 그래서 항상 부처님 그래서 아까 주지 스님 맨날 그러잖아요.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부처님처럼 뭐 하고 부처님처럼 뭐 하는 공식적으로 계속 하시잖아요. 그걸 잘 생각해 가지고 열심히 하면은 정말 그대로 부처님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래요. 경전을 볼 때도 항상 바르게 보고 눈과 귀와 그것이 다 함께 가서 똑똑히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좋은 행상이에요. 그래서 저는 진리를 즐기고, 다 같이 한번 합장하면서 따라해 보세요. 항상 진리를 즐기고 진리에 머무르고 진리를 기뻐하며 진리의 길을 알며 진리를 비방하는 말을 입에 담지 말고 훌륭하게 설해진 진리를 따라 생활하자. 생활하자는 말은 수행하자 얘기예요. 그러니까 어디에 입각해서 진리에, 부처님 말씀, 경전은 다 진리예요. 부처님의 마음은 선(禪)이라 그러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뭐에요? 교리라 그러고 또 부처님의 행동은 율이라 그러잖아요. 경률론(經律論) 삼장을 항상 우리는 따라가면서 열심히 수행하면 생활하면 그대로 부처님이에요. 오늘 여러분들이 이렇게 지장재일날, 아니다, 백중 회향 날 참석해 가지고 불교의 어버이날이라 생각하시고 효심을 잘 생각하고 충성스러운 마음, 효심스러운 마음,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끝까지 가지면 그대로 부처님이에요. 부처님 되셔야 되겠죠? 중생 되고 싶은 사람 손 들어보세요. 아닙니다. 저는 싫어요. 어떤 분들은 아, 난 중생 속에서 지장보살의 서원은 항상 합장하면서 중생이 성불할 때까지 눈물 흘리고 계시듯이 제석천신이요 여러분들을 위해서 수행을 잘하면 콩이 세 알 나오잖아요. 몇 알로 나오는지 아세요? 플러스 하나를 더하면 몇 알이에요. 네 알이에요. 우리는 네 알, 신해행증(信解行證), 사무량심, 사무량심이 할 때 사(四)자가 나쁜 사자는 아니에요. 한국에서는 사자 쓰면 무슨 사자? 살 사자, 좋을 사자. 그래서 항상 네 가지를, 네 알이 나와서 정진을 잘 하도록 도와주듯이 여러분들은 신장님도 돼야 되고 부처님도 돼야 되고 호법신장(護法神將)도 되어야 돼요. 왜냐하면 부처님을 옹호해 주는 신장님 같은 생활을 해야 되고 마음을 써야 되고 또 스님네들을 옹호해 주는 신장님도 돼야 되고 또 삼보(三寶)를 갖다가 잘 호지하는 호법신장이 될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하면 정말 그대로 극락당이에요. 처처가 극락당이 돼야 되겠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견디고 참는 세계이지만 우리가 공부 잘하면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바꿀 수 있어요. 일념에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10번만 해도 극락정토에 간다 하잖아요. 그냥 항상 부처님 되시고 여러분 생활에 좋은 날 되시고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심축드립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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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8월 30일 백중기도 6재 법문
본엄스님 2025-08-30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러네요. 네, 그 백중(百中)이 일주일 남았죠. 제가 오늘은 오늘 법문 주제를 어떻게 잡을까 하다가 제목을 여러분들이 참 부담되는 그런 제목을 잡아왔어요. 매일매일 지혜로운 천도의 삶. 지금 일주일 남았다고 일주일만 기도하고 나면 이제 백중 기도 끝이다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는데, 우리 이 천도(薦度)하고 이런 기도(祈禱)는 매일매일 여러분이 하셔야 된다는 거, 그리고 매일매일 기본적으로 자기의 몸과 마음이 맑혀지는 게 바로 이 천도의 핵심이라는 걸 오늘 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백중이라는 건 우리 지금까지 많은 법사(法師) 스님들이 다 얘기하셨지만, 돌아가신 부모님 그리고 가족들 조상들을 천도하는 그런 제사 의식인데요. 제가 먼저, 그래서 보통 흔히 영가 천도라는 말을 많이 하죠. 백중은 그런 단어들에 오늘 좀 다시 단어를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영가(靈駕)는 무엇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천도(薦度)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볼 텐데요. 여러분, 영가 하면 영가는 어떤 분들이죠? 그렇죠, 정말 돌아가신 분이라고 딱 얘기를 하잖아요. 근데 이게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이라고 하면 불교에서는 육도 윤회(六道輪廻)를 얘기하잖아요. 여러분 돌아가시면 계속 돌아가신 채로 있어요? 네, 다시 어딘가에 태어나십니다. 그래서 만약에 돌아가신 분들이 영가라고 한다면 우리 조상님들, 지금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 그런 분들은 영가라고 말하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어디선가 지금 계시고, 여러분 옆에 계신 누구일지도 몰라요. 사실은 네, 어디선가 지금 육도 중에, 어디선가 태어나 계시거든요. 그래서 영가라는 존재를 굳이 돌아가신 분이라고 말씀하신다면, 49일—돌아가신 지 바로 얼마 안 돼서 49일 안에 있는 그 중유(中有)에 계시는 그런 영혼들을 영가라고 얘기하는 건데, 불교에서 얘기하는 영가는 그렇게만 얘기하기에는 굉장히 작은, 협소한 그런 개념이다. 그래서 영가의 한자를 제가 사전을 좀 찾아봤는데, 영(靈)자는 다 아시죠? 영혼, 신령스러운 영혼이고, 가(駕)는 뭘까요? 사전을 보니까 ‘멍에’라는 뜻이 있습니다. 가의 두 번째는 ‘수레’라고 돼 있는데, 보통 불교에서는 다른 데서, 다른 스님들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영혼이 실려 있는 수레” 해서 영가라고 얘기를 하는데, 만약에 그 첫 번째, ‘멍에’의 의미로 우리가 해석을 하자면 영원히 매여 있는, 멍에에 매여 있는 존재들입니다. 여러분 그게 좀 와닿으세요? 왜냐하면 그렇게 해석을 하면 저희 모두가, 영원히 매어 있는—우리는 불성(佛性)이라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우리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하고 걸림이 없고 아무 문제 없고 그런 모든 무한한 능력을 가진 그런 존재, 그런 마음을 가진 존재들인데, 우리는 이 몸, 이 사대 오온(四大五蘊)의 몸에 나를 묶어놓고 살죠. 그래서 이게 나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그래서 이 몸이 우리의 멍에이고, 그리고 ‘나’라는 관념에 묶여서 삽니다. 저희는 그러면 이 육도를 윤회하는 모든 중생들은 다 영원히 육도 윤회(六道輪廻)에 결박되어 있는 그런 영가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맞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각자는 자기 업에 얽매어 있고요, 그리고 이 몸에, 그리고 ‘나’라는 관념에—금강경(金剛經)에서 얘기할 때는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이라는 그런 상에 매여 있는, 그래서 그 매여서 육도를 끊임없이 윤회하고 있는 그런 존재들이 바로 영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영가 천도, 우리 모두 천도라고 할 때 천도는 어떤 의미일까요? 천도(薦度)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 하는데 안 좋은 곳에 계신 분들을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는 그런 의식이에요. 근데 이 천도라는 거, 그러면 더 좋은 곳으로 우리 조상들을 지금 보내드리기 위해서 저희가 기도를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그런 돌아가신 부모님들 조상님들은 지금 어디 계실까요? 여러분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지금 어디 계실까요? 여기 어디 계실까요? 여기 어디 계셔서 누구누구누구 연가 하면 막 오셔가지고 잔도 막 드시고 그리고 막 내 기도도 듣고 이렇게 하고 계실까요? 우리가 육도(六道) 중 어디선가 태어나셨겠죠. 우리의 마음은 전해지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다음 생을 받을 때 여러분 이번 생의 기억을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를 하면 어딘가 태어나서 계시는 그 저희 조상님들 부모님들에게 다 그 공덕이 회향이 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으로 조상님의 모습으로 지금 계신 건 아니에요. 만약에 우리가 죽었는데 다른 데 태어났는데 그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모든 게 너무너무 복잡해지겠죠. 그래서 이 돌아가신 분들은 이미 49일 안에 다 다른 몸을 받고 육도 중에 어디에 계신다. 근데 우리가 보통 육도 중에 계신다고 할 때 사람에만 있다는 생각을 좀 하게 되죠. 아니면 어디 영혼으로 이렇게 다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들이 지금 지옥 아귀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상 그렇게 육도에 자기 업에 따라서 가서 계세요. 그러면 그때 그래서 보통 지장경이나 어떤 경전에 보면 우리 부모님은 도대체 돌아가셔서 어디 계실까 이런 얘기들이 많이 나오죠. 지장경에 보면 광목 여인과 바람은녀가 나오는데 너무너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살아생전에 좋은 일을 하지 못하셨고 산보를 비방하고 남을 해치는 일을 많이 했는데 우리 어머니가 어디 가셨을까 너무너무 궁금해하면서 기도를 드리니까 부처님이 오셔서 알려줍니다. 어디 계신다 지옥에 계신다. 그리고 우란분경에 보면 목련전자의 어머니도 많이 들으셨겠지만 아귀보를 받고 계셨죠? 그렇게 우리가 태어난 우리의 조상님들이 대부분이 정말 안타깝게도 왜냐하면은 지옥과 아귀고를 받고 계실 사막도의 보를 받고 계실 확률이 많아요. 왜냐하면 아까 참 두려운 일인데 아까 우리 덕현 스님이 화청에서도 했지만 맹구 우목 사람 몸 받기가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경전에 의하면 맹구 우목 다 아시죠? 맹구 우목은 아주 눈 먼 거북이가 바다 밑에 있다가 숨을 쉬러 바다 위에 딱 올라오는데 그 눈 먼 거북이 앞에 우연히도 판자 하나가 딱 떴어요. 근데 그 판자에 우연히도 구멍이 뚫려 있어요. 쏙 올라왔는데 거기에 목을 딱 낄 수 있는 그 우연이 우리가 확률로 따지면 얼마나 될 수 있을까요? 거의 없는 확률이죠. 그렇게 사람을 받기가 힘들다고 해요. 그리고 또 다른 경전의 비유에 의하면 이렇게 모래 우리가 모래 사장에 가서 손으로 이렇게 모래를 딱 했을 때 모래가 술술술술 다 빠지잖아요. 그 빠지는 만큼 사막도에 가고 여기 모래 몇 알이 남아 있죠 그만큼이 삼선도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렵다고 해요. 그런데 그러면 우리가 너무너무 두렵다. 우리 조상님들이 지옥과 이런 데서 너무 고통받고 있는 거 너무 두렵다 이렇게만 생각하시고 기도를 하시는 것도 중요한데 우리가 꼭 분명히 좀 짚고 넘어가야 될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분명히 이해해야 될 부분이 어떤 부분이냐 하면 기본적으로 그분들이 왜 왜 사막도에 가게 되었는가 이 유해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가 악도로 가게 되는 그런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분명히 성찰을 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우리가 기도를 하더라도 또다시 지옥에 가고 지옥에 가고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지장경(地藏經)에 보면 우리 지장보살님(地藏菩薩)은 여러분들 지장경을 한 번쯤은 다 읽어보셨겠지만 지장보살님은 지옥에서 지옥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분인데 항상 슬프게 울고 계세요. 왜냐하면은 이렇게 이렇게 제도해서 좋은 데 건져놓으면 또다시 그 자기 습 때문에 다시 지옥으로 돌아오고 다시 지옥으로 돌아오고, 건져놓으면 또 돌아오고, 건져놓으면 또 돌아와요. 우리가 기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사막도(四惡道)로 가는 원인, 마음의 습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거는 진정한 천도(薦度)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 자신이 스스로가 그런 악습이 남아 있는 가운데 우리가 조상을 천도하려고 한다. 자기가 지옥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천도할 수 있을까요? 못하죠. 네, 그래서 먼저 우리는 자기 먼저 지옥에 갈, 사막도에 떨어질 습을 짓지 말아야 됩니다. 그 부분을 여러분 이미 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좀 말씀을 좀 다른 식으로 드려보고 싶은데, 결국 우리가 악습 사막도에 가는 거는 악한 습관 때문인데 그 습을 바꾸지 않으면 천도 자체가 사실은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해도 자기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천도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제사(祭祀)는 어떻죠? 몸과 마음의 악습을 정화하고 그리고 참회하고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배우고 공덕을 쌓는 의식이 바로 제사예요. 제사가 막 이렇게 하고 공양 올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불교의 제사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참회하고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할 때 내 마음과 몸이 정화되지 않으면 그거는 그렇게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어요. 근데 그러면 우리가 또 짚고 가 봐야 될 게 사막도로 가는 그런 악도로 가는 악습은 무엇인가, 여러분 다 알고 있으시죠? 아까 천수경(千手經)에서도 하셨어요. 살생(殺生) 중죄(重罪) 금일 참회(今日懺悔), 투도(偸盜) 중죄 금일 참회, 사음(邪婬) 중죄 금일 참회. 그래서 살생하고 어떤 존재를 해치고, 그리고 남의 것을 빼앗고, 그리고 삿된 음행은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일이죠. 남의 행복을 빼앗고, 그리고 거짓말, 꾸미는 말, 악한 말, 이간질, 탐진치(貪瞋癡) 등이 다 악한 습이라고 얘기하는 건 남을 괴롭히기 때문이에요. 제가 물어보려고 했는데 답을 다 얘기해버렸네요. 그리고 보통 우리가 십악업(十惡業)이라고 해서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지만 능엄경(楞嚴經)에 보면 지옥으로 가는 10가지 악한 습에 대해서 나옵니다. 마음의 습, 그것도 살생, 탐욕, 그리고 교만이 들어 있어요. 교만한 마음은 결국에는 악한 자기만을 위하는 일들을 하기 때문에 그런 악습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많고요. 그리고 성냄, 그리고 사기(詐欺) 남을 자꾸 속이는 거, 우리 여기 그 살생 중죄… 이 10가지 10가지가 자기는 없다고 그럴 수 있는데, 교만한 마음, 남을 속이는 거, 그리고 원망하는 마음, 그리고 삿된 견의 주장, 모함하고 없는 죄를 남의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고 비방하고, 자기 잘못은 덮어버리고 남의 것은 들추어내는 그런 행위들도 지옥으로 가는 10가지 나쁜 마음의 습관이라고 경전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10가지들을 하나하나 다 외우실 필요 없어요. 뭐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뭐도 하지 말고 뭐도 하지 말고 이것도 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외우실 필요가 없이, 딱 한 가지만 알면 이것들은 저절로 안 하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이 10가지만 외운다면 그 11가지가 될 수 있는 어떤 조그마한 것들은 “아, 이거는 이거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이렇게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이 이런 하나하나의 목들이, 제목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마음을 바꿔야 되는 일이거든요. 지금 지옥으로 가고 삼악도로 가는 악습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어요. 그 공통점이 뭐죠? 제가 아까 살짝 스포했지만 남을 괴롭히는 겁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요. 남을 고통스럽게 하고, 남을 괴롭게 하는 행위들이에요. 다 아닌 거 있으면 한 번 손들어서 얘기해 보실래요. 그래서 모든 부처님께서 하신 가르침이 칠불통계(七佛通誡)라고 있죠. 과거 칠불(過去七佛) 그리고 현재도 그렇고, 모든 불보살님과 모든 승가 삼보(三寶)가 하시는 말씀이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教)”입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제악막작, 모든 악은 짓지 말아라.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라.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그리고 자기 마음을 맑혀라. 자기 마음을 맑히지 않으면 계속 그렇게 하게 돼 있습니다. 그게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말라. 자기 마음을 밝혀라. 이 가르침을, 이게 바로 천도(薦度)의 근본이고 가장 핵심입니다. 그래서 착하게 살아야 된다. 부처님뿐만 아니라 이건 모든 성현들이 말씀하신 건데요.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분들 맨날 인과법, 착하게 살아라, 악을 짓지 말아라, 너무 당연하게 들릴 수 있어요. 그리고 나는 이 정도면 착하게 사는 거 아닌가, 제가 뭐 특별히 악을 행하고 사는 것 같지 않은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근데 좀 더 새로운 눈으로, 좀 신비롭게 이 세상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가끔씩 혼자 이렇게 있다 보면 마음이 너무 혼자 벅찰 때가 많아요. 왜냐하면 이 세계가 돌아가는 법칙이 너무 신비로운 것 같아요. 인과법, 인연, 연기(緣起)의 법칙은 부처님이 창조해내신 게 아닙니다. 누가 창조해낸 법칙이 아니에요. 우리 그런 얘기 많이 하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면 내 눈에도 피눈물 난다. 그리고 또 뭐 있죠?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난다. 이거는 뭐 부처님이나 어떤 신이 이렇게 해놓은 게 아니에요.그래서 요즘에는 이게 너무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 이 법칙이 너무 치밀하니까 심지어는 그런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이 우주는 누군가가 아주 정밀하게 프로그래밍을 한 그런 세계다, 이런 말도 나오기 시작했어요. 과학계에서. 하지만 왜 이런 세계가 이렇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물을 필요 없이 우리는 그런 세계 속에 살고 있어요. 너무너무 신기하게 우리가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어떤 행위는 어딘가에 우리 마음에 다 새겨지고 절대로 없어지지 않아요. 여러분 그걸 기억하셔야 돼요. 내가 이렇게 몇 년 전에 뭐 했는데, 몇 년 지났고 했으니까 이거 아무도 모르겠지… 신기하게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연(因緣)이 되면 그게 꼭 싹을 틔워요.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힘들게 하거나 괴로움을 주면 그 과보를 내가 받게 돼 있어요. 이거 누가 그렇게 시키는 게 아니라 이 법계(法界)가 스스로 저절로 이렇게 움직입니다. 좀 무섭죠. 너무 두렵죠. 근데 희망적인 얘기도 있어요. 선(善)을 행하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주고, 두려움을 없애주고, 좋은 일을 행하면 그것도 반드시 나에게 또 돌아오게 돼 있어요. 너무 신비롭지 않나요? 여러분 이게 신비로우셔야 돼요. 신비롭고,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세계가 싫고 이런 법칙이 싫으시면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나셔야 돼요. 지금 하실 수 없잖아요. 지금 그렇기 때문에 이미 이 세계, 6도(六道) 윤회의 세계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일단은 다른 세계에 태어나고 싶으시면, 그거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른 향적 세계(香寂世界)나 어떤 다른 세계로 가시고, 지금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는 한 여러분들이 꼭 지키셔야 될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남에게 고통을 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 남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으로 가고 그렇게 떨어진 분들을 우리가 계속 기도하면서 천도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천도해도 또 그 마음에 습이 남아 있으면 계속 들어가요. 그래서 지장경(地藏經)에 보면 그런 얘기를 하죠. 그물이 이렇게 바다에 있는데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는 거예요. 또 꺼내놓으면 또 가서 기어들어가고, 또 또 기어들어가고… 너무너무 슬퍼서 모든 불보살님들이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런 법칙을 잘 이해하고, 내가 행복해지고 싶으면 여러분 남을 배려하고 선한 행위를 하셔야지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보통 행복해지고 싶어서 살생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자기가 행복해지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거든요. 근데 그게 내 행복의 원인이 되지 않고 악도로 가는 원인이라는 거를 분명하게 이해를 하셔야 돼요.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거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데, 여기서 남에게 고통을 준다고 했잖아요. 남이 누구일까요? 나 그리고 옆에… 뭐 이렇게 우리는 남을 사람에 되게 한정시켜서 살아요. 우리가 모든 중생이, 이 남이라는 건 모든 중생이거든요. 부처님이 세상에 어떤 중생들이 있다고 했죠? 사생육도(四生六道), 태란습화(胎卵濕化), 지옥·아귀·축생·인간·아수라·천상. 인간은 그중에 하나예요. 여러분들이 선을 베풀고 뭔가 하고, 그리고 남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아야 되는데, 나는 자랑스럽게 “나는 아무도 지금까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다.” 당연하죠.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 일도 받지 않을 거야. 나는 좋은 곳에 갈 거야.” 그렇게 생각하시면 좀 곤란한 게, 이 불교 부처님이 깨달으신 바에 의하면 사람뿐만 아니라 아무리 작은 미물이더라도 그 미물들은 모두 행복하고 싶어 하고 편안하고 즐겁고 싶어 하기 때문에 내가 그 행복을 해치고 내가 그 존재를 고통스럽게 하면 그건 나에게 돌아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우리가 예불을 할 때 삼계도사(三界導師) 사생자부(四生慈父)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이 인간뿐만 아니라 옆에 보이는 모든 그런 보이든 안 보이든 보이는 존재도 있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거든요. 귀계(鬼界)에 있는 존재나 천상(天上)에 있는 존재들은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도 다 중생이에요. 그리고 옆에서 보는 강아지 고양이, 소 돼지 닭 이것도, 좀 이런 얘기는 안 하려고 했었지만 그래도 이게 현실이거든요. 그런 존재들도 다 중생입니다. 근데 그런 중생에게 우리가 고통을 주면 그게 그대로 돌아오게 된다는 걸 여러분들이 꼭 기억을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런 인과법(因果法)이 존재하는 이 법계(法界)에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마음을 그 법칙을 분명하게 이해하시고 그렇게 이해하시고 나면 지금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여러분들이 적어도 친절하게 하셔야 됩니다. 지금 요 옆에 앉아 계신 분들도 다 내 조상일 수 있어요. 제가 혼자서 방에서 계산을 해봤어요. 내가 지금 50세인데, 네 그럼 50년 전에 죽었다는 얘기잖아요. 그러면 만약에 60세나 70세, 지금 여기 어떤 분들이 나의 가족이었던 어떤 분들이 내 이름을 저기에 올려놓고 기도를 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맞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렇게 제가 사실 이 진가사에 처음 왔을 때 지장기도 들어가서 엄청 놀랐어요. 이렇게 돌아가신 분들이 많단 말인가. 이름을 계속 부르는데 와, 정말 많은 분들이 지금 저기 적혀 있는 분들 중에는 여기 앉아 있는 분들도 계실 수 있어요. 그렇겠죠. 네 그렇기 때문에 육도(六道) 어딘가, 지금 여기는 인간계지만 육도 어딘가에서 윤회하고 있는 모든 존재가 나의 조상이고 나의 부모고 나의 가족이었다는 그런 걸 분명하게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공양을 올리고 공덕을 지으면서 우리 몸과 마음, 그리고 이런 신구의(身口意) 사업을 중생을 이롭게 하는 쪽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기도가, 기도의 효과는 있겠죠. 하지만 기도가 그렇게 많이, 효과를 100% 낼 수 있는 효과를 10%, 20%밖에 못 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항상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모든 악을, 모든 악을 모든 존재에게, 사람만 내 옆의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에게 모든 악을 행하지 않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면서 자기 마음을 맑히는 거, 그것이 바로 스스로 사막도(四惡道)에 가지 않고, 내가 가지 않고 그리고 다른 분들도 천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그런 원칙이라는 거를 꼭 이해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천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천도할 수 없고, 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다른 존재를 천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얼마 남지 않은 백중 기간 동안 자기가 지금까지 지은 죄를, 그리고 모든 존재가 지었던 어떤 악습들을 지극하게 참회하고, 그리고 이 실질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가 어떤 악한 행을 하는 이유는 다 자기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우리가 살생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이런 거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냐면 나와 세상에 대한 집착이 있어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우리가 제일 근본적으로 이런 모든 악습을 끊어내려면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무아(無我), 나라는 건 본래 실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나라고 고정된 실체는 없다는 거, 그리고 이 세상은 금강경(金剛經)에서 뭐라고 했죠?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이 세계는 꿈의 세계입니다. 꿈과 같이 보고, 환영과 같이 보라고 하셨어요. 근데 자꾸 실제한다고 생각하고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와 남을 가르다 보니까 우리가 그거에 집착해서 자꾸 악습을, 악한 행위들을 하게 돼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자기의 어떤 악한 마음의 습관이나 행들을 참회하면서 끊임없이 또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반야심경(般若心經), 우리 매일 하는 공(空)에 대한 가르침, 무(無)와 무상(無常), 고(苦)에 대한 가르침을 다 새기면서 자꾸 자기의 집착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셔야지만 진정한 천도(薦度)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게 하나 있어요. 지장경(地藏經)에도 그렇고 여러 경전에서, 우리 부모님을 그러면 어떻게 하면 지옥에서 꺼내올 수 있을까요? 했을 때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라. 그리고 자기 마음을 맑히는 건, 그분들은 이미 보살의 경지에 있었기 때문에 이미 몸과 마음이 청정하신 상태였고, 그런 상태에서 한 가지 더 뭘 얘기하시냐면 발원(發願)을 하라고 얘기하십니다. 발원, 모든 중생을 행복하게 하겠다. 내가 부처님 가르침을 바르게 배워서 깨달음을 얻어서 그 깨달음을 다른 중생들에게 회향하겠다. 이런 원력을 발원하라고 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참여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수행하고, 그리고 내가 이 가르침을 바르게 배워서 다른 모든 분들에게, 근데 이 다른 분들이 조금 전에 얘기한 것처럼 다른 분들이 다른 분들이 아니에요. 여러분 다 내 조상이고 내 부모였던 분들이어서 여러분들이 조상과 부모의 개념을 좀 많이 넓히셨으면 좋겠어요. 근데 이거 너무 이해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이렇게 끊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윤회(輪廻)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만나는 모든 존재가 나의 부모고 나의 가족이고 나의 조상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보리심(菩提心)을 발해서 원력(願力)을 가지고, 중생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불법(佛法)을 수행하시면 그게 바로 스스로도 천도(薦度)가 되고, 모든 다른 분들도 천도가 되는 그런 가르침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매일매일, 제가 제목을 말씀드렸죠. 조금 이제 더 이해가 되시죠? 매일매일 지혜로운 천도의 삶. 기도가 이 7일 안에, 백중(百中) 49일 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매일매일 자기 몸과 말과 그런 어떤 행동들을 살피시고 그걸 악한 쪽에서 남을 위한 쪽, 남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는 쪽으로 계속 돌린다면 그때 순간순간이 천도입니다. 그래서 죽고 나서 누구를 천도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우리 조상님들을 천도하니까 내가 죽고 나면 누군가가 나를 천도해 줄 것이다. 누가 천도해 주실 것 같습니까? 여러분 천도해 주실 거예요. 하지만, 하지만 그 좀 가능성이 어려울 수 있어요. 우리 자식들이나 돌아보면은 이제 앞으로 이게… 네 그래서 기대를 하시면 안 돼요. 여러분들이 가실 때 여러분들이 스스로 여러분을 천도하고 가셔야 됩니다. 네. 기도는 해주더라도, 왜냐하면 지장경(地藏經)에 분명히 나오죠. 누가 남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면 그 공덕은 7분의 1밖에 돌아가신 분이 못 받아요. 나머지는 기도하는 사람이 7분의 6을 받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누군가 나를 천도해 줄 거라는 기대를 하지 마시고, 이번 생에 스스로를 완전하게 천도를 하고 가시고, 그리고 지금은 조금 아직 죽을 때가 멀었으니까 죽을 때쯤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해가지고 이제 가겠다 이런 생각을 하시는 것도 지금 바꾸셔야 돼요. 왜냐하면 말씀드린 것처럼 몸과 말과 뜻에,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들, 악한 습들이 배겨 있는 상태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아무리 한다고 해도, 죽을 때가 되면 여러분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오랫동안 익혀왔던 습들도 잘 안 이루어져요. 기도를 해도. 그래서 여러분들이 매일매일 그런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 부처님 가르침 따라 살고, 그런 마음들이 마음에 몸에 완전히 스며들어 있어야지만 그때 나무아미타불을 하셔도, 그게 이제 부처님께서 와서 데려가 주시는 그런 일이 생기는 거거든요. 그래서 죽을 때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는 거는 정말 여러분 생각을 고치셔야 돼요. 죽을 때가 되면 오히려 악한 업들이 다 몰려옵니다. 제가 또 오늘은 너무 많은 분들이 계셔가지고 아까 얘기할까 말까 했는데, 저희 아버지가 또 생각이 났어요. 저희 아버지가 어저께 저희 언니하고 통화를 했는데, 아버지가 요즘에 자꾸 옷에 탐착을 부리신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그런 분이 아니셨거든요. 진짜 저희 어제 들었는데, 저희 어머니가 결혼하고 오셨을 때 아버지한테 딱 양복이 두 벌밖에 없었다고 하셨어요. 갈아입고,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봐온 저희 아버지는 3천 원 이상 가는 넥타이를 하지 않으세요. 그리고 하여튼 옷이나 뭐나 굉장히 절약하시고, 그런 게 없는 분인데, 요즘 들어서 자꾸 바지하고, 80이 다 되셔서 자꾸 그런 거를 사달라고 한다고 합니다. 제가 그걸 보면서 뭐를 느꼈냐면, 아 그렇게 습이 된 것들도, 근검절약이 습이 돼 있던 것들도 무의식에 눌려 있던 어떤 자기 욕구들이 죽을 때가 되고,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면 그동안 이성으로 잡아놨던 것들이 흐려지면서 그런 눌러놨던 욕구들이 다 올라와요. 그때 돼서 여러분들이 자기 자신을 천도하려고 하면, 그리고 누가 옆에서 기도해 준다고 해서 그게 잘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스스로를 매일매일 천도(薦度)하는 그런 습관을, 살아 있을 때 정신이 온전할 때 매 순간 스스로를 천도하시는 그런 삶을 사시길 바라고, 그리고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에게 여러분들이 내가 모든 존재를 구제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친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한테만 말고, 목이 날아다닌다고 막 이렇게 잡지 마시고요. 좀 더 친절하실 수 있잖아요. 여러분 친절할 수 없을까요? 아 친절… 어떻게 내가 모든 존재에게 친절할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고통을 안 줄지는 여러분들이 생각을 하세요. 여러분들이 제가 뭐 그것까지 하나하나 하지만, 우리가 마음도 그렇고 같은 행을 하더라도 친절하고 더 좋은 동기, 그리고 좋은 마음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 막 기도해 주면서 “내가 빨리 천도해 줄게” 하면서 막 또 이러시면 안 돼요. 그러니까 그래서 조상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바로 지금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존재들, 사람이든 어떤 다른 존재들이 다 나의 조상이라고 생각하고, 매일매일 부처님 가르침 따라서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하시면서 사막도(四惡道)에서 삼선도(三善道)로, 극락세계(極樂世界)로 가는 그런 천도하는 그런 마음의 마음과 몸의 습을 키워 나가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나는 좋아졌지만 “조상들은 그럼 내가 어떻게 천도하죠?” 이렇게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근데 여러분들이 그렇게 마음을 내시고, 그렇게 청정한 마음으로 이렇게 수행을 하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우리 입에도 배웠잖아요.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래서 우리는 이 입의 습관도 바꿔야 돼요. 다른 중생이라고 하면 너무 불교 냄새 많이 나고, 사람들이 다른 중생이라고 하면 잘 못 알아들을 수도 있어요. 다른 존재들에게,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에게 계속 어떤 그런 선한 마음,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내면서 우리가 열심히 부처님 가르침을 가지고 정진을 하면, 이 마음은 온 우주가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조상님들, 부모님들, 돌아가신 모든 분들이 다 그 은덕을 받습니다. 그게 저희가 사실은 제사를 지내는 가장 큰 포인트예요. 이렇게 잔을 누가 와서 몰래 와서 영원히 떠돌아다니면서 받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이 온 세계에 모든 존재에게 전해진다는 거, 그러면 그게 바로 여러분들이 모든 중생을 행복하게 하려는 그런 원력(願力)의 마음이 돼요. 그래서 내 조상, 내 부모, 내 가족을 천도할 때, 내 조상 내 부모 내 가족이 모든 중생이고, 지금 모든 내 옆에 그리고 항상 우리 함께하는, 여기 육도(六道)에 윤회(輪廻)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든 존재라고 생각하면 여러분들이 정말 보살(菩薩)의 원력으로 여러분도 천도하고 모든 중생도 천도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사시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 제 법문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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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8월 23일 백중기도 5재 법문
종범스님 2025-08-23
안녕하세요. 백중 기도라. 백중 기도라. 백중 기도는 선망조상(先亡祖上), 또 생존 후손, 선망조상과 생존 후손이 모두 생사해탈(生死解脫), 생사에서 해탈해서 극락왕생(極樂往生), 극락왕생을 이루는 것이 백중 기도입니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실유불성(悉有佛性)하니 묘체원명(妙體圓明)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여. 수신생령(受身生靈)이오, 이신혼령(離身魂靈)이나 수연불변(隨緣不變)의 신령불성(神靈佛性)이여. 근진(根塵)에 무애(無礙)하고 묘용(妙用)이 자재(自在)하니 보방금색(普放金色)의 아미타불(阿彌陀佛)이여. 수광(壽光)이 무량(無量)하고 수처(隨處)에 현신(現身)하니 상방광명(常放光明)의 아미타불이여.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이 뭘 깨달았느냐, 부처님이 뭘 깨달았느냐, 이렇게 입술에 딱 붙이면 되는 거야. 부처님이 도대체 뭘 깨달았나?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생사는 없다, 나고 죽는 것은 없다, 이거 깨달았어요. 생사가 없다, 생사본무(生死本無), 나고 죽는 건 본래 없다, 이거 깨닫고. 그다음에는 불성원명(佛性圓明), 불성은 둥글고 밝다, 둥글 원(圓) 자, 밝을 명(明) 자, 그걸 깨달은 거예요. 생사는 본무하고 불성은 원명하다, 둥글고 밝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걸 알았는데 다만 범부(凡夫) 중생들은 모를 뿐이라는 거지, 모를 뿐이다. 몰라도 생사가 두 배로 있는 게 아니라 없어요, 없는 걸 느낄 뿐이에요. 그러면 부처님에게는 생사가 없는데 미혹한 범부들에게는 생사가 있다. 그래서 생사는 부처님에게만 없지, 범부에게는 생사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생사해탈이라 그래요. 생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그럼 그게 뭐와 같으냐. 꿈에서 깬 사람은 꿈이 없는데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꿈이 있어요. 그 차이뿐이에요. 꿈꾸는 사람에게는 꿈이 있고, 꿈 깬 사람에게는 꿈이 없다. 그러니까 생사가 있다는 말도 맞아요, 생사가 없다는 말도 더 맞아요. 그래서 생사 없는 불성 법문, 생사 없는 불성 법문, 꿈이 없는 본래 사람, 꿈에서 벗어나려면 잠에서 깨면 돼요. 잠이 없으면 꿈은 본래 없어요. 그래가지고 생사 없는 불성 법문을 계속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꿈꾸는 사람마다 꿈이 없는 본래 사람이 있어요. 꿈으로 그걸 모를 뿐이야. 그래서 꿈꾸기 이전에 본래 사람을 불성(佛性)이라 그러고,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 무명(無明)이라 그래요. 꿈이 없는 것을 밝게 보지 못한다, 밝음이 없다, 무명. 그래가지고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실유불성(悉有佛性)하니. 일체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 그러니 불성은 뭐냐, 묘체(妙體)가 원명하다. 이 불성은 묘체요, 묘체. 안이비설신의처럼 이렇게 보이고 들리는 게 아니고요, 생로병사(生老病死)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에요. 허공의 메아리처럼 보려고 하면 없는데 항상 그 속에 있다. 허공처럼 허공은 붙잡으려면 없는데 도망갈 수가 없다. 피할래야 피할 수 없고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게 허공인 것처럼 불성(佛性)도 붙들려고 하면 안 붙들리는데 불성은 도망갈 수가 없다. 그래서 묘체(妙體)가 원명(圓明)하니 그걸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그런다. 진여(眞如)라고 하는 것은 생멸(生滅)이 없다, 이걸 진여라 그래요. 나고 죽는 게 없는 걸 참 그대로 항상 한다, 참 진(眞) 자, 같을 여(如) 자. 참 그대로 항상 한다. 불성인데 불성은 ‘불(佛)’은 각(覺)이라, 느낀다. 느끼는데 눈으로 느끼는 것은 대상이 있어야 느끼는데, 불성은 대상이 있거나 없거나 항상 느껴요. 그걸 느끼는 본성이다, 이래 가지고 불성이라 그래요. 불은 느낀단 말이고, 성은 대상 없이도 항상 느낀다. 이게 뭔 말이냐, 우리 귀가 있는데 이 귀는 항상 느껴요. 어떻게 항상 느끼냐, 소리가 날 때는 소리를 느끼고, 소리가 안 날 때는 그 소리 안 나는 조용한 걸 느껴요. “아무것도 안 들리네” 하는데, 아무것도 안 들리는 걸 누가 아냐? 들어서 아는 거거든요. 항상 느껴요. 그래서 느끼는 본성이다, 그걸 불성이라고 그래요. 느끼는 본성. 진여불성인데 이 진여불성이 수신(受身)에는 생령이요, 몸을 받아서 이렇게 살아갈 때는 살아 있는 영이다. 살아 있는 영, 그래서 그걸 생령이라고 그러는데. 살아 있을 때는 살아 있는 대로 여러 가지 작용을 일으켜요. 그것이 뭐냐 하면, 산 사람에게는 누구나 똑같은 게 있는데, “뭐 하고 살았냐?” 아주 기본적으로 똑같은 게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다 이거는 벗어날 수가 없어요. 첫째, 숨 쉬고 살았다. 사는 게 뭐냐 이런 말 묻는데 아주 이상한 소리예요. 사는 건 숨 쉬는 거예요. 그건 물어볼 것도 없어요. “지금까지 뭐 했어?” 숨 쉬었어, 끝이지. 그다음에는 옷 입는 거예요. “뭐 했어?” 옷 입었어. 호흡하고, 착의하고, 그다음에 뭐 했어? 밥 먹었어. 그다음에 뭐 했어? 자. 숨 쉬고, 옷 입고, 밥 먹고, 그다음에 똑같이 한 게 있는데 뭘까요? 잠자고, 수면. 잠잤지. 그다음에 또 똑같이 하는 게 있어요. 뭘까요? 맞아, 그걸 어려운 말로 변리(便利)라 그래요. 변리, 변을 보면 몸에 이롭거든. 그래서 변(便) 자, 이(利) 자, 변리라고. 대소변리하고, 대변리, 소변리. 이거는 이 몸을 가진 중생들에게 누구나 똑같이 겪는 거예요. 그런데 이 몸을 가진 후로는 불성이 이걸 엄청나게 잘해요. 살아 있을 때는 살아 있는 대로 공덕 작용을 잘 일으켜요. 그다음에 이신(離身)을 할 때, 몸을 떠나서는 불성이 생령이라고 안 하고 그걸 혼령(魂靈)이라고 그래요. 혼령. 혼으로만 움직여요. 몸으로 숨 쉬고 밥 먹고 이렇게 움직이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 혼령이 가만히 못 있고 어딘가 계속 가려고 그래요. 혼령은 움직여. 그런데 생령(生靈)으로 있으나 혼령으로 있으나 인연을 계속 따라서 움직이지만, 불성은 불변(不變)이에요. 수연불변(隨緣不變)이라, 인연을 따르지만 변하지 않는다. 그래가지고 이걸 아무리 오래오래 태어나고 여러 번 죽어도 불성은 변하는 법이 없어요. 인연을 아무리 많이 따라도 불변(不變)이라. 그래서 이걸 신령불성(神靈佛性)이다. 신통(神通)이라는 신(神) 자, 신령하다는 령(靈) 자, 신령한 불성이라고 그런다. 생멸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 신령스러운 신령불성. 이걸 사람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귀로 들을 줄 알고, 눈으로 볼 줄 알고, 밥 먹을 줄 알고, 잠잘 줄 알고, 움직일 줄 알고, 이게 신령불성이요. 아무리 이걸 해도 불성은 변하는 법이 없어요. 그게 수연불변(隨緣不變)이요. 그런데 신령불성이 잘 인연을 지으면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돼요. 아미타불은 수명이 무량하고 광명이 무량하다, 이 수광무량(壽光無量)을 아미타불이라 그래요. 그럼 아미타불은 어떻게 되냐. 근진(根塵)의 무애(無礙)하고, 몸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이 있는데 또 육근에는 하나하나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대상 티끌이 있어요. 그런데 이 신령불성은 몸의 육근이나 대상 육진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아요. 이걸 근진의 무애라 그래요. 보는 데 구애를 받지 않고, 듣는 데 구애를 받지 않고, 근진의 무애하고. 또 묘용이 자재하니 그냥 보려면 보고, 안 보려면 안 보고, 가려면 가고, 오라면 오고, 묘한 작용이 자재하니 보방금색(普放金色)이다. 금색은 광명인데 금빛. 널리 널리 광명을 비추는 아미타불이다. 또 수광이 무량하고, 수명과 광명이 한량없고 처처에 현신하니, 곳곳에 몸을 나타내니 상방광명(常放光明) 아미타불이라. 항상 광명을 비추는 아미타불이다. 그래서 이 불성이 아미타불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신령불성하고 아미타불하고 진여불성하고 아미타불하고 어떤 관계가 있나. 비유로 말하자면, 이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요만한 씨앗이 하나 있는데 그 씨앗을 땅에 심었을 때 그걸 불성(佛性)이라고 그래요. 아미타불(阿彌陀佛)은 그 씨앗이 흙 속에서 뿌리가 나고 줄기가 나고 가지가 나고 이파리가 나고 꽃이 피어서 마지막에 열매가 맺어서 영글어서 다 익은 그 열매를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 그래요. 그런데 이게 종과(種果)가 일체(一體)라. 종(種)이라는 거는 종자인데, 땅에 심은 걸 말하고, 과(果)라고 하는 건 과일인데, 나무 꼭대기에서 열리는 걸 말해요. 그런데 종자 심어서 가꿔 가지고 나무 꼭대기에서 열매를 거두면 본래 심었던 종자와 똑같다, 하나도 다름이 없다 이 말이다. 그래서 범부(凡夫)로 있을 때는 불성(佛性)인데 성불(成佛)하면 아미타불(阿彌陀佛)이에요. 그래서 조상을 천도(薦度)하고 후손을 천도(薦度)하고 생사(生死) 해탈에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고 하는 게 전부 불성(佛性)이 있기 때문에. 그 불성을 가지고 생사는 없고 불성은 둥글고 밝다. 이걸 하나 탁 보는 순간에 다 해결되는 거예요. 그걸 기도라고 그래요. 생사는 없다, 생사는 본무(本無)하다, 불성은 둥글고 밝다. 둥글다는 건 없는 데가 없다. 밝다는 건 항상 빛난다. 세월이 없어요. 세월이. 생시일진청풍기(生時一陣淸風起)요. 멸거징담월영침(滅去澄潭月影沈)이니 생멸거래무괘애(生滅去來無罣礙)라 진신면목(眞身面目)을 갱하심(更何尋)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그 전에 큰스님, 선지식, 도인들께서 제사를 지낼 때 “생사는 없고 불성은 둥글고 밝다” 이런 말씀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그게 어떤 내용이냐 하면 불성을 떡 깨닫고 보면 생시에는 태어날 때는 생시에는, 태어날 때는 일진청풍기(一陣淸風起)요. 한 무더기 바람이, 일진이라면 한 무더기거든. 한 무더기 맑은 바람이 싹 불어서 일어나는 거와 같고. 또 멸거징담월영침(滅去澄潭月影沈)이라 이제 생명이 다해서 몸이 흩어져서 돌아가는 것은, 멸거는, 징담에, 맑은 징(澄) 자가 있고 연못 담(潭) 자가 있는데, 맑은 연못에 월영(月影), 달 그림자가 이렇게 비췄다가 그림자가 사라지는 거와 같다, 잠길 침(沈) 자. 태어나는 건 맑은 바람이 한 번 쒸익 일어나는 거와 같고, 죽는다는 것은 연못 속에 달 그림자가 비춰지다가 사라지는 거와 같다. 생사 없다는 얘기죠. 없어. 불성만 항상 한다는 얘기지. 그래가지고 생멸거래무괘애(生滅去來無罣礙)라. 나고 죽고 오고 가고 하는데 아무 장애가 없다. 바람이 일어나든 안 일어나든, 달빛이 비치든 안 비치든 아무 장애가 없다. 그러니 그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거, 그걸 싹 보면 그게 바로 불성이지, 생사를 떠나서 따로 불성을 찾을 필요가 뭐가 있나. 생사를 똑바로 봐라. 생사를 똑바로 보면 생사는 없고 불성만 밝다, 이렇게 제사를 지내요. 그래서 유가법(儒家法)으로 하면 제사는 추모(追慕)요, 추모. 부모님을 돌이켜서 생각하는 게 제사인데. 불교 제사는 천도(薦度)요. 불성을 깨우쳐서 생사에서 벗어나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도록 하는 게 불교의 제사인데, 그걸 시식(施食)이라고 하고, 음식을 베푼다고, 천도(薦度)라고 그래요. 영혼을 인도한다고. 천도. 일념망시명료료(一念亡時明了了)하면 미타부재별가향(彌陀不在別家鄕)이로다. 통신좌와(通身座臥)가 연화국(蓮華國)이니 처처(處處)가 무비극락당(無非極樂堂)이로다. 이 법문은 고려시대에 나옹(懶翁) 스님이라고 큰 도인 스님이 계셨는데, 그 나옹 스님 법문인데, 한 생각, 한 생각은 성심일념(性心一念) 연심일념(緣心一念). 성심(性心)은 본래, 본래 있는 마음. 너무 좋아가지고 이제 그냥 목이 다 막히고 그냥. 불성 얘기가 얼마나 좋으면 목이 다 막히겠어요. 한 생각은 성심일념이 있다. 본성 그대로 항상한 한 생각이 있다. 또 연심일념이 있다. 눈으로 보면 그 보이는 거를 분별하고, 보이는 것을 관찰하는 한 생각이 있다. 이거는 반연하는 마음이라고, 연(緣)은 쫓아간다, 쫓아가는 마음이라고 해서 인연 연(緣) 자, 마음 심(心) 자, 연심일념이라 그래요. 근데 이 생사는 연심에서 오는 거예요. 쫓아가는 마음에서 생겨. 쫓아가는 마음이 본래 마음으로 싹 돌아가면 본래 바람이 뭐냐, 바람은 없고 공기뿐이거든. 그래서 바람이 공기로 돌아가면 바람은 없어요, 공기뿐이야. 그래서 이 꿈을 꾸는데, 잠자서 헛것 안 보면 꿈이 없어요. 그러니까 한 생각이 잊을 망(忘) 자, 때 시(時) 자, 다른 잡념 망상이 다 없을 때, 잊었다, 없다 이거야. 이거 뭐 생각을 끊는다 그러는데 끊는다는 건 톱으로 뭘 끊고 칼로 뭘 끊고 그런 걸 끊는다고 그러는데, 그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은 그냥 생각 안 하면 돼요. 톱 안 가져도 되고 칼 안 가져도 되고, 그냥 생각 안 해버리면 돼요. 그걸 잊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이 전혀 없을 때, 그냥 본래 생각만 환히 비추면 그게 둥글고 밝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인데, 한 생각이 다른 잡념이 없을 때, 그럼 여기서 또 다른 잡념은 없는데, 꾸벅꾸벅 존다. 그러면 그것도 시원찮아. 없을 때 명료료(明了了) 하면, 아주 밝고 밝으면. 밝을 명(明) 자가 있고, 밝을 료(了) 자가 있는데, 명료료라. 료료하면 미타부재별가향(彌陀不在別家鄕)이라, 아미타불이 별가향이라는 것은 다르다는 별(別) 자, 집 가(家) 자, 고향 향(鄕) 자인데, 집 가 자는 어조사고, 고향 향 자는 장소라는 말인데, 아미타불이 다른 장소에 있는 게 아니다. 한 생각이 딱 잡념이 없어져서 밝고 밝으면 아미타불이 다른 장소에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어디 있냐? 우리 몸에도 있고, 보이는 데도 있고, 들리는 데도 있고,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고, 온 천지에 아미타불뿐이다. 이게 나옹(懶翁) 스님 법문이에요. 미타부재별가향이라 그러면 어떻게 되냐. 통신좌와(通身座臥)가 연화국(蓮華國)이니, 통신이라는 건 온몸, 좌와는 앉고 눕고, 온몸이 앉고 눕고 하는 이 움직이는 것이 연화국(蓮華國)이라는 것은 극락세계(極樂世界)란 말이지. 다 극락세계다. 그러니까 처처무비극락당(處處無非極樂堂)이라, 처처에 극락당 아닌 곳이 없다. 이게 이제 나옹 스님 법문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불성이 맑아지고 맑아지고, 밝아지고 밝아져서 아미타불이 떡 되면, 우리 몸도 극락세계고, 눈으로 보이는 것도 극락세계고, 귀로 들리는 것도 극락세계다. 이 법문을 이제 나옹 스님이 하신 거예요. 이 법문이 워낙 좋으면 잠자리까지 들어와서, 잠자리까지 들어와서 법문 듣는다고. 아, 기가 막히네, 기가 막히네. 불성이 청정하면 아미타불이에요. 자성미타(自性彌陀) 하처재(何處在)요, 시시염념불소망(時時念念不須忘)이로다.막연일일여망억(驀然一日如忘憶)하면 물물두두불부장(物物頭頭不覆藏)이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이 법문은 조선시대 서산 스님 법문인데, 자성미타(自性彌陀)라는 우리 불성 아미타불. 이 땅에 심어진 종자 열매, 이 종자를 가꾸면 열매를 따는데, 그 따고 보면 심었던 종자 그대로다. 그게 우리 불성 아미타불이다. 그걸 자성미타라고 그래요. 불성 아미타불이 하처재(何處在), 어느 곳에 있는고. 시시염념불소망(時時念念不須忘)이라, 때때로 생각 생각 모름지기 잊어버리지를 마라. 이 불성 아미타불이 어느 곳에 있는고. 정근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 부처님 명호 한 번 부를 때, 그 소리에 집중을 하게 되면 거기에 아미타불이 나타나요. 근데 이제 나타날 때는 사람마다 다 다른데, 눈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요. 눈이 번쩍 뜨일 때가 있어요. 그거 이상해요. 번쩍 뜨일 때는 눈에서 불이 확 나는 거라. 그러면 지금까지 보던 건데 전혀 다른 걸 보게 돼요. 지금까지 그릇을 봤는데, 눈에서 불이 확 나면서 보여질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이 보여져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전부 물건을 쫓아가서 봤는데, 눈에서 불이 나서 볼 때는 자기 속에 있는 마음이 나타나서 본다. 그 차이예요. 쫓아가서 보는 건 생사(生死)고, 나타나서 보는 건 아미타불(阿彌陀佛)이에요. 이제 나타나서 보면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인데, 그걸 비유로 말하면 어떻게 되냐. 늘 나그네 생활만 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에 고향 산천을 본 거예요. 그러면 고향 산천 뒷동산 넓기도 하구나. 그걸 느끼는 거와 같은 거예요. 기도는 그 방향으로 다 끌고 가는 거예요. 연심(緣心) 생사에서 성심(性心) 고향으로 인도해 가는데, 그게 극락세계(極樂世界)고 그 고향을 보는 것이 아미타불이에요. 그걸 백중기도(百中祈禱)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알든지 모르든지 기도 열심히 하면 다 그리 가요. 알아도 가고, 몰라도 가고. 그전에 큰스님 법문하면 참 재밌는 법문 많이 했는데. “아주 좋은 보약은 모르고 먹어도 몸에 좋다.” 보약은 모르고 먹어도 몸에 좋다. 그 보약의 성분을 어떻게 다 알고 먹을 거여. 그럼 왜 먹냐, 이거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하니까 그거 믿고 먹는 거지, 알고 먹을 수는 없어요. 의사도 그 보약 성분을 다 알 수가 있나. 의사도 모르는데 어떻게 다 알아. 믿고 먹으면 모르고 먹어도 몸에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를 한다는 게, 모르고 해도 믿고 하면 몸이 먼저 성불을 한다니까, 몸이 먼저 알아채요. 그래서 몸이 이상해져요. 가벼운 것도 같고, 흔들리는 것도 같고, 바람이 슬 일어나는 것도 같고, 반응이 몸부터 와요. 희한한 게 몸이에요. 그래가지고 고향 산천을 보기 전에, 눈에서 불부터 나. 이 몸 반응하는 거지. 그러면 그 보는 게 아미타불이고, 그 아미타불이 계신 곳이 전부가 그게 극락세계다. 이게 이런 법문이에요. 응심(凝心)하야 일몰(日沒) 사사바(謝娑婆)에, 십육관경청석가(十六觀經聽釋迦)로다. 무한성색(無限聲色)이 청이목(淸耳目)하니, 허다천지일미타(許多天地一彌陀)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마음을 한 군데 딱 모으는 걸, 이걸 엉킬 응(凝) 자, 마음 심(心) 자, 응심이라고 그러는데. 마음을 모으면 생사(生死)는 없어요. 마음만 딱 모으고 있으면 공포가 없어, 두려움이 없어요. 마음이 움직이니까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응심을 해서 마음을 딱 모아서 일몰(日沒)하고. 이 일몰이라는 건 해가 지는 건데, 이 목숨이 다하고 이 말이죠, 해 진다는 말은. 사사바(謝娑婆)에, 이 몸이 사바세계(娑婆世界)를 하직할 적에, 이 세상은 이제 몸이 흩어져서 끝나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는 십육관경(十六觀經)으로 청석가(聽釋迦), 십육관법에 의해서 석가모니(釋迦牟尼) 설법을 듣는다. 그러면 응심해서 세상을 보면 세상이 전부 마음이 나타나는 거기 때문에 심외무물(心外無物)이라. 마음 밖에 물건이 없다. 그런데 유물생념(由物生念)이라, 물건에 의해서 생각이 일어난다. 그래서 물건이 있고, 생각이 있는데, 이걸 가지고 사는데, 이 물질과 생각은 다 기본 성심(性心)에서 나온 거다. 되게 어렵네요. 진짜 어려워요. 물질이 있고, 그 물질을 판단하고 기억하고 처리하는 생각이 있단 말이죠. 그런데 그 물질과 생각은 기본 성심(性心)에서 다 나온 거다. 이걸 성심, 물질, 생각 이 세 가지가 있는데, 이 물질과 생각은 다 성심에서 나온 거다. 성심이 없으면 물질이 없어요. 못 봐. 물질을 못 보면 생각이 안 일어나. “저 사람 뭔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는데, 그 궁금할 거 하나 없어요. 사람 생각, 아니면 물질 생각, 아니면 자기 몸 생각 이 세 가지뿐이에요. 그거 궁금할 거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생각이 머무는 곳은 전부 밖의 것에 머물기 때문에 그래요. 이런 거 가르쳐주면 안 되는데, 이게. 아들 생각, 가족 생각, 이게 전부 사람 생각 아니에요. 그 생각은 밖으로 안 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기본 마음에 의해서 물질이 일어나고, 물질에 의해서 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물질과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럼 이 기본 성심이 생각을 딱 멈추고 있으면, 물질에 안 쫓아가니까 생각이 움직이질 않아요. 물질에 쫓아갔을 때 생각이 움직이고, 생각이 움직였을 때 두려움이 생겨요. 생각을 거둬버리면 두려움 없어요. 이런 것도 말해주면 안 되는데, 이거예요. 그러니까 “아, 저거 무섭다” 그래서 저 보이는 걸 쫓아가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무섭다”하는 생각을 딱 걷어버려요. 그러면 두려운 거 없어요. 이걸 그래서 응심(凝心)이라 그래요, 응심. 마음을 거둬서 뭉친다고. 뭉칠 응(凝) 자가 있어요. 그러면 이 몸이 죽을 때, 이 몸이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떠날 때, 다 이게 관법(觀法)으로 석가모니 부처님 설법을 듣게 된다. 그러면 무한성색(無限聲色)이, 무한히 눈으로 보이는 거나 귀에 들리는 거나,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자기 고향 산천이요. 이거를 이런 물질을요, 이걸 생각으로 분별하면 이게 이제 물질이고 티끌인데, 생각으로 분별하지 않고 자기 본래 마음으로 딱 보면, 이것이 자기 고향 산천이다. 이걸 깨달아서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선지식(善知識)들이. “산하대지(山河大地), 우주만물(宇宙萬物)이 자기 고향 산천이다. 그런데 이걸 쫓아가면 내가 나그네가 돼가지고 거기 헤매고 다녀요. 이걸 생사윤회(生死輪廻)라고 한단 말이죠. 그래서 무한성세계(無限聲世界), 눈으로 볼 때마다 자기 고향 산천이니까 자기 눈이 맑아져, 또 귀로 들을 때마다 자기 고향 산천이니까 자기 귀가 맑아져. 그걸 청이목(淸耳目)이라 그래요. 이목을 맑힌다. 그러니까 허다천지(許多天地)가 일미타(一彌陀)라, 허다한 하늘과 땅이 한 아미타불뿐이다. 이렇게 보면 돼요. 허다천지일미타, 아미타. 허다(許多)라는 건 많고 많다 이 말이죠, 허다라는 건. 천지(天地), 하늘과 땅, 많고 많은 하늘, 많고 많은 땅이 전부 한 아미타불뿐이다. 이 법문은 조선시대 서산 스님이 하신 법문이에요. 모든 도인들이 “생사는 없고 불성은 둥글고 밝으니, 이 둥글고 밝은 불성에 딱 마음을 모아서 들어가면, 허다한 하늘 허다한 땅이 전부 아미타불 극락세계뿐이다” 박수와 함께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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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8월 16일 백중기도 4재 법문
동우스님 2025-08-16
안녕하십니까? 제가 막 떨고 있는 게 보이시나 봐요.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환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진관사 기획국장이면서 어린이법회 법사 소임을 보고 있는 동우라고 합니다. 2600년 전에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하신 진리의 말씀을 제가 이 자리에서 법문하게 된 인연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를 응원하러 아이들이 왔어요. 쟤네가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 눈앞에 우리 운산 법우님, 종민 법우님 다 이렇게 있습니다. 자 사분율장에 증일 비니라는 곳과 또 반니원경 유행경이라는 부처님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이제 입멸하시기, 돌아가시기 전에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제 열반에 드신다고 선언하신 것은 당신을 늘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또 귀의했던 많은 수행자들에겐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큰 소식이었는데요. 이 때문에 늘 부처님을 곁에서 시봉했던 부처님의 가장 가까이에서 시봉했던 아난 존자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늘 매일 슬퍼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매일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난 존자를 보고 지혜로운 장로 스님 한 분이 아난 존자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존자시여, 당신 지금 이렇게 울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제 마땅히 부처님께 여쭈어야 할 것, 물어야 할 것을 얼른 물어보십시오”라고 “지금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에 아난 존자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부처님께 다섯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부처님이 입멸하시면 저희는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내가 죽으면 그러니까 내가 입멸을 하면 너희들은 사념처(四念處)에 의지하여 머물고 수행하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념처라고 하면 신수심법(身受心法)에 대해서 관하고 의지해서 머물라는 뜻인데요. 이 ‘신(身)’이라는 것은 바로 몸을 이야기합니다. 이 몸의 호흡, 그리고 몸 내 안에 장기, 여러 가지 내 물질이라고 하는 이 몸을 관하고 거기에 머물러 수행하라는 말이 이제 신념처이고요. 더 나아가서는 몸의 부정함까지도 관하는 이런 수행법입니다. 이렇게 신수심법 가운데 신념처에 의지해 수행하라. 두 번째는 수념처. 수념처라고 하면 상대나 대상이나 어떤 경계에 당했을 때 내가 늘 좋다, 좋지 않다 싫다, 그저 그렇다, 또 좋지도 싫지도 않다라고 하는 그런 느낌을 받는 수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수념처이고요. 또 심념처라고 하는 것은 이제 오고 가는 마음의 인연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념처라고 하면 우주 만물, 그러니까 나라는 물질을 비롯한 이 우주 전체가 돌아가는 어떤 원리. 예를 들어서 생로병사하고 생주이멸하고 성주괴공한다는 우주 전체의 원리가 결국은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라는 사성제(四聖諦)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늘 그것이 항상하지 않다는 법을 여실히 보고 관찰하라는 이 사념처에 의지하라는 말을 하십니다. 첫 번째 질문이 이렇게 되고요. 두 번째 질문을 또 합니다. 중요한 5가지 질문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면 저희는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 수행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잘 아시겠지만 늘 1250인의 큰 아라한들을, 대단한 아라한들을 이렇게 거동하고 다니셨잖아요. 그래서 부처님 주변에는 부처님과 같이 깨달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난이 “누구를 의지해서 스승 삼아 수행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는데 부처님께서는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고 “너희들은 반드시 계율(戒律)을 의지하여 스승 삼아 살아라”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이계위사(以戒爲師)’라고 합니다. 그래서 “계율을 스승 삼아 수행하라”라고 말씀 합니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이제 세 번째 질문은 부처님께서 입멸을 하시면 저희가 부처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결집하고 또 만들어서 후대에 전해야 하는데 이런 경장이나 율장이나 논장과 같은 부처님 말씀은 저희들이 어떻게 시작해서 전해야 합니까?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합니까라는 뜻입니다. 이 말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고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즉 전문 용어로 이것도 뭐죠? ‘여시아문(如是我聞)’입니다. 그래서 아난이 내게 들은 말은 분명한 것이고 이것이 부처님 내가 직접 한 말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 어느 누구도 시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이 이제 세 번째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이제 네 번째 질문입니다. 네 번째 질문은 부처님 재세시에도 말을 안 듣는 비구들이 있었어요. 이제 말을 안 듣는 비구를 저희는 악성 비구라고 합니다. 악한 성품을 가진 비구예요. 여러분들 잘 알고 있는 악성 비구 중에 누구 있어요? 제바달다가 있어요. 그런데 제바달다 말고도 또 유명한 비구가 있는데 이름이 찬타비구입니다. 이 찬타비구는 부처님이 출가하시기 전부터 부처님을 모셨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왕자 시절부터 부처님을 모시고 부처님께서 이제 야쇼다라와 라홀라를 뒤로 하고 성을 넘어 말을 타고 깊은 산속의 수행처로 갔을 때 이 말을 끌었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찬타카라고도 알고 있고 한역해서 찬타라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찬타가 이제 부처님을 수행처에 안전히 모셔다 드리고 나서 부처님께서 이제 머리를 단번에 자르시고 당신이 갖고 있던 모든 금은 영락 보배에 걸치고 있던 것을 찬타에게 주고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찬타는 이것을 받고 돌아가서 부처님 출가하시는 것을 왕궁에 알리고 나자마자 바로 부처님을 따라 출가를 합니다. 그래서 이 찬타는 이제 비구가 그래서 됩니다. 수행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 찬타비구가 교만한 마음이 안에 있었어요. 어떤 교만한 마음이냐면 나는, 그러니까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시고 난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부처님께서 이제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난 다음에 찬타비구에게 이제 아주 교만한 마음이 생겼는데 그 마음이 뭐냐 하면 ‘나 이 찬타는 정각을 이루신 부처님을 출가시킨 사람이다’라는 교만한 마음이 안에 들었어요. 내가 모셨던 사람은 정각을 이룬 부처님이니 당신들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시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잘못을 해서 잘못을 꾸짖고 서로 모여서 대중이 함께 갈마를 할 때도 이 갈마를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마음대로 했습니다. 이런 악성 비구였어요. 그래서 부처님께 이제 묻습니다. 찬타라고 꼬집어서 얘기는 하지 않고 찬타 말고도 많은 악성 비구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악성 비구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자 부처님께서는 ‘묵빈대처(黙賓對處)하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묵빈대처라고 하는 것은 뭐죠? ‘말을 하지 말라’ 상대를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상대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 자숙해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생각을 본인이 분명히 할 것이니 절대로 상대에서 이야기하지 말라’라고 네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셨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 중요한 질문입니다. 아난이 부처님께 드린 마지막 질문은 ‘부처님께서 입멸하시면 저희는 어떻게 장례를 치러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나의 장례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장례에 준해서 치르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전륜성왕의 장래라는 것은 이제 돌아간 시신을 깨끗한 여러 겹의 천으로 싸서 그 위에 향유를 붓고요. 그다음에 전단향이라는 향으로 태워서 시신을 화장하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이 시신을 이제 화장하고 나면 사리가 나올 건데 이 사리를 분배하고 공양하는 것은 수행자가 하지 말고 재가자가 하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5가지 중요한 질문을 부처님께 드리고 또 답변을 받습니다. 경전에 이런 얘기 많이 나오죠. 시대가 흐리고 견해가 흐리고 생명이 흐리고 번뇌가 흐리고 또 중생이 흐린 시대를 오탁악세(五濁惡世)라고 하는데요. 이 오탁악세에서 요즘과 같이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서 ‘진짜인가? 이거 거짓인가? 저 말 맞나?’라고 하는 이 정의가 흐려지는 이 세상에서 부처님께서 남기신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라’라고 하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요즘 같아서는 정말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너무 초롱초롱하게 저를 보셔 가지고 제가 갑자기 어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자 이것은 이제 갑자기에요. 자 이것은 단어입니다. 선물이 여기 있습니다. 이 단어는 2025년도에 유행하는 단어이고요. 현재 진행형의 단어이고요. 굉장히 트렌디한 단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계율의 그것과도 맞닿아 있는 단어입니다. 자 힌트 나가겠습니다. 나에게 자극을 주거나 상처를 주지 않고 오히려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대표적으로 이제 에버랜드의 푸바오 루이바오 푸바오 중국 같지만 아이바오 루이바오 후이바오 같은 이런 팬더 귀여운 팬더, 그리고 집에서 기르고 있는 고양이 강아지 아니 햄스터 토끼 이런 반려동물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때 이 말을 씁니다. 순수하고 귀엽고 작고 소중한 것. 우리 여기 있는 법성 법우님에게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입니다. 이 단어 무엇일까요? 이거 못 맞출 줄 몰랐네요. 저 맞추실 줄 알아 가지고. 자 당황스러워요. 초성은 미음 히읗입니다. 미음 히읗. 제가 여기 손에 선물을 두 개나 가져왔는데. 아 모르시군요, 진짜. 아 정말 모르실 줄. 네, 이거는 이제. 아유 참. 어 그러니까 첫 자가 아니라 초성이 미음 히읗이라고요. 마하? 무흣 아닙니다. 갑자기 너무 당황스럽습니다. 자 이 말을요 어떨 때 쓰냐면 아 막 예쁜 아기가 막 이렇게 지나가잖아요. 우리 세준이 같은 이런 어린이들이 딱 지나가면 보기만 해도 너무 좋죠. 보기만 해도 너무 마음이 편안하고 지나가는 고양이나 강아지 이런 거 보면 작고 귀엽고 참 소중하다. 이럴 때 사람들은 ‘무해’한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어려워요? 자 그래서 아우 참 “세상 무해하다” 이런 말 하시잖아요. 그죠? “세상 무해하다. 아우 참 무해하다. 내게 무해한 사람” 오죽하면 오늘 뭐해가 아니라 “오늘 무해” 이런 말도 쓴(대요). 너무 스님이 트렌디한데 트렌디, 그래요. 자 그래요. 그래서 이 ‘무해’라는 단어가 ‘없을 무’자 ‘해칠 해’자를 씁니다. 해로움이 없다, 해침이 없다라는 뜻으로 TV 광고나 프로그램 SNS 등에 많이 썸네일로 쓰이고 있는 단어가 바로 없을 무자 해칠 해자의 무해입니다. 이런 무해한 것들이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유가 있는데요. 여기 진관사의 신도님들은 굳이 이 단어에 사로잡히지 않으신 것 같아요. 아무도. 자 어쨌든 이 무해한 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안정적이게 해주고 지친 마음을 회복시키거나 재충전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갖고 있습니다. 집에 가서 고양이 잠깐만 만져도 밖에서 있었던 많은 그런 것들이 없어지는 건 이 무해한 느낌을 이 반려동물에게 받기 때문인 거거든요. 그렇답니다. 그래서 해롭지 않은 사람 나를 해치지 않고 보기만 봐도 안정적이게 느끼게 하는 이런 무해한 사람의 원조 누구일까요? 석가모니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무해한 분의 원조라고 이야기 드릴 수 있는 한 일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늘 이런 악성 비구들에게 시달림을 당했는데 제가 아까 말씀드린 제바달다라는 비구가 늘 교단의 중심에 서서 본인이 부처님을 제끼고 이 위에 서서 리더가 되기를 늘 원했어요. 그래서 이 많은 부처님을 음해하는 행위들을 합니다. 지나가시는 길에 언덕에서 바위를 굴려서 부처님 몸에 흉터를 내기도 했던 그런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죄를 짓기도 했고요. 어느 날 이제 이 제바달다가 아사세왕이라는 왕을 시켜서 또 부처님을 음해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시켰냐면 아사세왕에게 ‘큰 코끼리를 모집해서 그들에게 독한 술을 먹여라. 독한 술을 먹여가지고 그들이 취해서 부처님 가는 길에 풀어놓아라’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가는 길에 이 술 취한 코끼리를 아사세왕으로 하여금 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저쪽에서 이제 술 취한 코끼리들이 막 다가오는데 부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전혀 미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부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다 숨죽여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는데 부처님만은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점차 코끼리는 다가오다가 점차 걸음을 느릿하게 걷고 마침내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또 부처님 발을 핥고 그 위에 있는 먼지를 털어내기까지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떠한 성난 그리고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이것을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자비의 힘으로, 무해한 힘으로, 무해하다는 건 생명을 존중하는 힘입니다. 이 힘으로 그 코끼리를 제압했다는 것이 이제 부처님께서 무해한 존재의 원조라고 제가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무해한 존재 저도 되고 싶죠. 제가 집에 가면 아이들이 방문을 이제 닫고 들어간다든가 혹은 집에 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든가 이것은 뭔가 나를 해로운 존재로 여겨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많은 가족 사이에서도 도반 사이에서도 사회에서도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럼 결국 그 답은 불교 안에 있고요. 그 무해한 존재의 원조인 부처님 가르침 안에 있다는 것을 저희는 꼭 알아야 합니다. 무해한 존재가 되는 첫 번째 방법. 자 생명을 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나에게 손만 올리고 잠깐 이렇게만 해도 위협을 느낍니다. 굉장히 긴장되고 뭔가 생명의 위협을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해치려는 마음의 에너지가 없으면 그런 마음이 들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에너지는 어떻게 쌓이냐면 작은 생명부터 하찮고 소홀히 여기면서 괜히 죽이지 않는 그런 마음에서부터 이 부드럽고 생명을 존엄하는 에너지는 나옵니다. 내가 어떤 생명을 존엄하는 에너지가 내 마음 깊이 쌓이면 사람들은 나를 해로운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뭐라고요? 생명을 해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다른 사람의 소유를 해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소유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근데 그 못된 마음이 있어요.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거’ 이 마음 있죠.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거라는 그런 마음을 저는 도둑 마음이라고 늘 얘기합니다. 그리고 하열한 감정 가운데 가장 하열한 감정은 시기심, 질투심, 경쟁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지금 도둑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보면서 뺏으려는 에너지가 없으면 나를 안전한 존재로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혹시 아까 내가 맡아놨던 자리에 누군가 앉았더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세 번째 관계와 신뢰를 해치지 않습니다. 관계와 신뢰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경향이 있어요. 밖에서 좋은 사람인데 집에만 오면 막 쌩쌩하고 말과 몸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소중한 관계, 사소한 관계, 귀한 사람일수록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에서 사람들은 나를 믿을 수 있는 존재로 여깁니다. 네 번째 방법입니다. 말로 상대의 마음을 해치지 말라입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죠? 말에는 힘이 있어서 사람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합니다. 그래서 말로는 또 병을 치유할 수도 있습니다. 깊은 병을 치료할 수 있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말로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지금 내가 이거 할 말인지 안 할 말인지 잠깐만 생각해도 이 말로 사람을 해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과 대화를 할 때 이 생각만 잠깐 해도 사람들은 나와 대화하고 싶어 하고 나를 편안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는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을 해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술이나 마약, 게임 이런 중독성 있는 것들에 대해서 나를 보호하는 거예요. 특히 우리 어린이들 게임, 쇼츠, 유튜브 이런 것들에 내가 늘 중독되어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것은 나를 해칠 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도 불안하게 하는 그런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나를 소중히 생각하면 당연히 주변도 편안한 분위기로 바뀌고 나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그런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무해한 사람이 되는 다섯 가지 방법 어디 뭐 비슷하죠?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오계(五戒)를 현대적으로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계율은 부처님 재세시부터 또 부처님의 석가모니 부처님 그전부터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한결같이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이것을 5가지로 풀고, 10가지로 풀고, 8가지로 풀고 우리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240가지, 348개까지 여러 가지로 이렇게 방대하게 풀어놓았는데요. 결국은 과거의 부처님들이 말씀하셨던 ‘모든 악한 짓을 짓지 말고 선하고 착한 것을 받들어 행하라.’ ‘그것을 꼭 지켜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와 진배없느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말로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라고 합니다. 이 칠불통계게, 어쨌든 오계, 이런 말들이 백중 4재와 무슨 상관이 있어야죠? 그죠. 지금 백중 4재와 무슨 상관이에요? 계를 지키는 것과 나의 부모님을, 나의 조상님을 천도시키는 것은 굉장히 큰 연관이 있습니다. 백중의 49재, 1재부터 7재까지의 재. 그리고 진관사의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 그리고 여러분 많이 들어보셨던 천도재, 영산재, 예수, 생전예수 재. 이럴 때에 마지막에 붙는 재자는요. 유교에서 말하는 제사(祭事)의 제(祭)자가 아닙니다. 이 재(齋)자는 공손이 받들어 모신다는 뜻의 재자이고요. 첫 번째 의미 공손히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가 있고요. 두 번째 의미는 재계(齋戒)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재계하다의 이 재자는 가지런히, 계를 가지런히 반듯하게 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백중 49재나 천도재 할 때나 영산재, 수륙재, 모든 재가 들어가는. 하다못해 불교 달력에서 관음재일, 미타재일, 지장재일이라는 재자는 모두 이 재개의 재자를 씁니다. 육재일이 있어요. 지장보살 본원경에는 십재일이 나오는데 부처님 재세 시에는 육재일을 모든 수행자가 지켰습니다. 그 육재일은 매달 8일 14일 15일 23일 그리고 그믐 날, 그믐 전날입니다. 이 육재일을 반듯하게 지켜서 계를 가지런히 하라는 뜻이 담겨 있거든요. 그래서 백중에서 계를 가지런히 한다는 것은 당연히 여기 오시는 분들께서 계를 지키셔야 하는 기간이라는 뜻입니다. 반듯하게 계를 지키는 것이, 지키는 그 공덕이 온전히 나의 조상과 나의 부모에게 전해져서 그 공덕으로 그들이 해탈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이 선택한 진관사는요. 1년 365일 가운데, 제가 아까 이제 들어오기 전에 샅샅이 따져 보니까 한 300일 정도는 계를 지켜야 되는 날이더라고요.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 학교. 수륙재 할 때 수륙재 학교. 그다음에 백중 있죠. 그리고 그 중간에 초하루 신중 삼일 기도 있죠. 지장기도 있죠. 수능 엄마들 수능 기도해야 되죠. 이거 다 따져보니까 300일 정도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마땅히 절에 오기 전에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 걸리는 날 아닌가? 오늘 뭐 먹어도 되나? 저녁에 뭐 마셔도 되나? 이러다가 그다음 날 생각하죠. 나 어제 그거 마셨는데 가도 될까, 안 될까? 고민하셔야 됩니다. 진관사가 365일 가운데 300일 동안이나 재계할 수 있는 날들을 여러분 알게 모르게 만들어 놨어요. 모르셨죠? 그래서 사실은 매일 지키셔야 합니다. 매일 지키는 공덕으로 저희가 이제 기도 삼고 또 그렇게 하는데, 사실은 이 계를 지키면요 내가 어디 양심에 걸리거나 찔리거나 신경 쓰는 사람이 있거나 후회되는 일이 없고, 또 늘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긴장되지 않기 때문에 내 스스로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진관사를 선택한 또 여러분들이 이 계율 도량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 오셔서 또 계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1977년에 자운율사라고 하는 큰 율사 스님께서 진관사에 입적하신 노스님인 진관스님과 함께 진관사에서 국행수륙재를 다시 복원해서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리고 작년에 2024년에 무봉 성우 큰스님께서는 저희 진관사의 회주스님께 또 전계를 하셨습니다. 계율 계맥을 전승하셨습니다. 이렇게 계율이 전승되어지는 도량도 있고요. 또 더 멀리 조금 가면 진관사 북한산 자락에 비봉이 있습니다. 이 비봉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시죠? 신라 진흥왕입니다. 이 비봉의 주인공은 신라 진흥왕인데 이 신라의 신라가 계를 이야기하는 산스크리트어인 ‘실라(śīla)’에서 차용해서 신라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예전에 일타스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이 비봉 아래에 자리한 진관사는 계율 도량일 수밖에 없다. 조금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가벼우면서도 뭔가 ‘이 도량은 계율을 지키는 도량이니까 불보살과 호법 선신이 늘 보호하시고 호념하시는 곳이지’라는 안전한 생각을 갖고 다니시면 좋겠습니다. 자 그래서 이렇게 제가 계율을 지키는 것은, 내가 계율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내가 지키는 바르고 착한 에너지의 공덕으로 나의 부모님이 모든 그 계율의 공덕을 통해 천도 되고 좋은 곳에 왕생하신다라는 것으로 이런 의미를 전달할 수가 있겠습니다. 계율로 청정해진 마음으로 일심으로 정성을 들여서 그 일심으로 드린 정성으로 많은 분들이 또 조상님들께서 업장이 소멸되기를 발원합니다. 몸과 말과 생각으로 한량없이 지은 죄와 무수한 원결이 풀어져서 보리심으로 큰 서원을 세우시고 나쁜 짓 멀리하고 다시 짓지 아니한다는 생각을 하십시오. 또한 보살도를 항상 닦아서 물러남이 없는 정각을 이루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큰 서원을 함께 세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이 회향이 과거 모든 부처님들께서 하셨던 회향과 같기를 발원하며 오늘 4재 <계율, 공덕을 짓는 첫 마음>이라는 법문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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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8월 9일 백중기도 3재 법문
문광스님 2025-08-09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문광입니다. 예, 날이 꽤 더웠는데 오늘은 비도 오고, 우리 북한산의 천년 고찰 진관사에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참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법회를 많이 해봤는데, 이렇게 법당에 들어올 때 이렇게 바이올린 첼로로 연주를 하는, 이런 멋있는 그런 형태로 들어온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 좋았죠, 네. 우리 진관사는 지금 한국 불교에서 대한민국 전체의 영빈관이라고 할 정도로, 국외에 어떤 영부인이나 아주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주요한 분들이 오시면 서울에서 진관사를 다 가보라고 하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참 앞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테고 할 텐데, 이제 그래서 많은 분들을 의전을 하시고 그렇죠? 그래서 요즘 이제 사찰 음식도 진관사에 오시면 오고, 여러분 저기 오시다 보면 저 산 쪽에 능선에서 딱 내려와서 그쪽을 딱 오는 순간 북한산이 보이면서 이 진관사가 보일 때 마음이 웅장해지고, 막 업장이 녹는 것 같아요. 그렇죠? 아주 이 진관사는 우리 지금 이제 앞으로 한국 불교의 모든 것을 다 담보하고 있는 그런 장소입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 때도 서울을 수호하는 동서남북의 서쪽을 담당했던 곳이 진관사고, 동쪽에 불암사, 북쪽에 북한산 승가사, 남쪽에 이제 삼막사 이렇게 있었어요. 근데 이제 이 진관사가 비구니 스님들께서 여기 계시게 된다는 것도 이 역사적으로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역학적으로 여기가 이제 서북방 정도 되니까 건방(乾方) 정도 될 것 같아요. 이게 이제 특히나 남성적이고 ‘무(武)’ 이런 부분으로 해서 지키는 이런 부분인 것 같은데, 세상이 바뀌었어요. 여기에 이제 우리 진관스님부터 해서 지금 회주이신 계호스님, 우리 주지이신 법해스님, 여기 많은 비구니 스님, 대중 스님들이 계신데, 스님들이 여기에서 새롭게 세상을 펼쳐 나가고 있는 것 자체가 탄허스님이 말씀하셨던 1984년 갑자년 하원 갑자부터 건도수(乾度數)가 곤도(坤度)로 바뀌었다. 음양이 이렇게 바뀌어 가는 과정에 있고, 세상이 한 번 바뀐다라고 하셨는데, 그런 걸 대표하는 곳이 바로 이 진관사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까? 우리나라 계룡산에 동학사가 있는데, 경허스님 계셨던 곳이에요. 만공스님이 출가하셨던 곳이고. 그런데 거기가 지금 비구니 스님의 대표적인 강원으로 동학사가 있듯이, 계룡산에, 서울에 이 서북방의 서쪽을 담당하고 있는 이 진관사에 비구니 스님들께서 이렇게 한국 불교가 어떠한 것이 한국 불교다, 이렇게 보여주시고, 여기에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가 있었어요. 조선 시대 때도 여기를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이었고, 여기에 백초월스님의 태극기가 있고, 여기에 명상센터가 있고, 그다음에 여기에 한국의 사찰 음식이 있고, 그다음에 여기에 한국의 산하대지를 다 보여주고, 여기에서 어떤 의식을 하고, 예불을 어떻게 하고, 이런 모습들을 다 보여주는 것이 이 진관사입니다. 그래서 아마 앞으로 이제 진관사에서 하시고 있는 모든 이제 불법 의식과 생활하는 모습, 의식주까지. 들어오는 데 보면 한옥마을도 있고요. 다 갖추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 불교를 느낄 때, 서울에만 딱 왔다가 그냥 돌아가야 된다는 분은 진관사 보여드리면 한국 산지가람과 이 청정하게 생활하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게 되는 그런 곳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최근에 어떤 주지스님한테 말씀을 드렸어요. 사찰에 와서 점심을 드시고 나서 스님한테 주지한테 질문을 하더랍니다. 스님, 사찰 음식은 언제 나옵니까? 그러대. 이제 전 세계가 베지테리언도 많고 한데, 건강하고 어떻게 육식을 좀 줄이고 하고 하는 데 있어서 한국의 사찰 음식이 전 세계의 음식 문화의 큰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숭산스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소는 송곳니가 없다. 육식 안 한다는 뜻이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호랑이는 다 송곳니 같은 이빨밖에 없다. 채식 안 한다는 거예요. 사람은 송곳니 4개다 이거야. 그러면 12.5%. 체질 떠나서 그 이상 고기 먹는 건 맞지 않다. 숭산스님 그러셨어요. 근데 지금은 우리가 너무 고기를 많이 먹고, 그렇게 소가 뭐 고기 먹고 힘냅니까? 그렇죠? 자기 체질 음식을 먹되, 자연과 더불어서 할 수 있는 그 청정한 마음은 우리가 욕심을 조금 버리고, 청정한 산에서 나오는 저 우리 사찰에서 스님들 공부하시고 수행하실 때, 수행을 위해서 드셨던 그 음식들을 드시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이 말이죠. 그래서 참 우리 진관사에 오면 저는 이제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한국 불교가 전 세계에 이제, 전 세계가 명상 부흥이 일어나서 명상이 열풍인데, 우리 진관사가 있어서 굉장히 아름답구나. 앞으로 이제 본보기를 보여주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우리 주지스님께서 고향 선배님이세요. 그래가지고 처음에는 몰랐는데, 고향 선배님인 걸 알고 난 다음부터는 전화가 와서 “스님 좀 한번 와야 되지 않겠냐?” 그러면 그냥 바로 여기 와 있습니다, 이미. 제가 미국에 초청받아서 한번 갔는데요. 미국에서 뭐라고 그러냐면 국적은 바꿀 수 있으나 학연과 지연은 못 바꿉니다. 미국에서도 미국 영주권 가진 분들도 대학 선배, 고향 선배가 오라면 바로 가야 되지, 안 그러면 포띵즈(four things), 네 가지가 없다고 욕을 듣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근데 이제 고향 선배님이셔가지고 우리 스님이 이렇게 저기하는가 했는데, 그거가 아니라 뭔가 스님에게 특별한 힘이 있으신 것 같아요. 스님이 말씀을 하면 그냥 따라 해야 되는 어떤 기운이 있는 거 맞죠? 뭔가 어떤 파워가 있어요. 그래서 그 저 스님, 우리 스님의 어떤 그 에너지와 파워가 어디서 오시는가 몰랐는데, 최근에 같이 공양할 기회가 있었는데, 스님께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묘장구대다라니 대비주를 108독을 10년 넘게 해오셨고, 그 이전에도 하루 종일, 지금은 이제 불사나 사중에 일이 바쁘셔가지고 108독 하시는 거고, 그전에는 그렇게 정진을 많이 하셨대요. 그러니까 아마 매일 정진하셨던 그 수행력, 그 어떤 정진력의 힘이 이렇게 대가람을 이제 중창해서 이렇게 해 주시는 힘이었구나. 내가 그냥 단순하게 고향 선배님이기 때문에 여기에 이제 끌려온 건 아니다,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맞습니까? 그래서 스님께서 이렇게 한마디 하시면 이거 다 따라 하시는 거 이거 내가 봤어요. 뭐 절로 절로? 저절로! 이거 다 따라 하게 돼 있어요. 그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하셨으면, 그런 기도를 하셔야 돼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보면, 하나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모든 것을 다 하시는 우리 진관사 대중 스님들, 우리 회주스님, 주지스님을 비롯해서 진관사 대중 스님에게 정말 수희찬탄(隨喜讚嘆)해 드리기 위해서 스님들께 박수를 좀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이 백중 기도 저기를 쭉 봤어요. 그 법사 스님들하고 이렇게 하는 행사 이런 걸 봤는데, 제가 오는 날은 이 클래식을 이렇게 하게 됐다. 여기 우리 대한민국의 영빈관이잖아요. 의전이 제일 아주 훌륭하신데 말이죠. 역시 이 법사 스님이 클래시컬하고 엘레강스하고 인텔리젠트 하니까, 이렇게 클래식을 이렇게 딱 해서 해주시는구나, 저 혼자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아주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좋고요. 이렇게 이 타이스의 명상곡이죠? 예, 우리 오늘 연주해 주셨던 세 분의 우리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산하대지에 맑고 청정한 그런 대지에 이렇게 와서, 이런 영가님들도 업장이 소멸되고 천도가 되시는 인연법이 되지 않겠냐, 이런 생각을 해요. 진관사 올 때마다 이 맑고 깨끗한 청정 도량에 오는 그 기분을 느끼면서, 우리 제가 모셨던 혜암 큰스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도량에서 도량이 깨끗하지 못하면 귀신이 깔봐서 정진 못한다, 그러셨어요. 그래서 항상 도량이 깨끗했고, 제가 해인사 원당하면서 출가했는데, 하도 쓸고 닦고 풀을 뽑아가지고 밥알이 떨어진, 땅에 떨어진 밥알도 줏어 먹을 수 있다, 원당하면 그런 얘기했는데, 그때 이후로 저는 진관사에 오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주 청정하구나, 여기가 아주 가장 청정한 곳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탄허스님께서 여기를 중창하신 진관스님께 여기를 이제 주지를 맡아서 하시게 됐는데, 탄허스님도 이제 앞으로 이제 비구니 스님이 총무원장 하는 시절이 온다. 본사 주지하는 시절이 온다, 그러셨어요. 50~60년 전에 이제 음양이 바뀌어서 그럴 시절이 온다, 그러셨는데, 이번에 여러분, 우리 회주이신 계호스님께서 법계위원이 되셨어요.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렇죠? 이거는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비구 스님, 비구니 스님 전체 계를 받을 때, 이 스님들께서 오실 때 칠증사가 계시고, 처음 이제 스님들이 전부 비구 스님들이 다 법계위원으로 계셨는데, 비구니 스님 세 분, 그죠? 우리 진관사의 회주이신 계호스님과 전 비구니회 회장이셨던 본각스님, 현재 비구니회 회장이신 광용스님, 이렇게 세 분이 법계위원이 되셔가지고, 이제 수계 살림을 할 때 비구니 스님들이 이제 법계위원으로 오신다는 거는 이게 이제 세상이 역학적으로 다 바뀌고 있다고 하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시절 인연이 도래했고, 이제 세상이 많이 변화될 겁니다. 그리고 저도 이제 탄허스님 연구를 해서 앞으로 이제 그런 시절이 오겠구나 하는 걸 알게 됐는데요. 우리 진관스님께 탄허스님이 그러셨대요. 주지를 하고 계시니까, 그때는 뭐 비구니 스님 불사를 잘해놓고 하면 또 비구니 스님 보고 나가라, 그런 적도 있었고, 그래가지고 토삼굴이라고, “토끼도 굴은 3개를 파놓고 사니까, 스님도 어디 암자같이 절을 하나 해라, 혹시나 모르니까” 그 세월의 그런 부분을 다 아시면서도 탄허스님이 그러셨대요. 그런데 진관스님이 “스님, 저는 그런 거 안 해도 됩니다” 이랬대요. 끝까지 진관사에 딱 사시면서 원력불사를 다 하셨어요, 끝까지 해 주셨죠. 그렇죠? 예, 아주 멋있습니다. 스님 그러셨고, 우리 계호스님께 저 이거 지금 오늘 아침에 우리 회주스님께 염주도 받았어요. 그리고 우리 그 자운 큰스님, 율사 스님께서 시봉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우리 계호스님 시봉을 받으시더니 너무 시봉을 잘하신다고, 어디서 받으셨는지 롤렉스 시계를 선물을 해 주셔가지고, 그걸 지금 보관을 하고 계신데, 제가 사진도 찍었어요. 그 정도로 스님께서 여법하게 큰 스님 시봉도 잘 하시고, 그래서 인증을 받으신 거라. 예, 그리고 우리 주지스님도, 어, 예전에 이 진관스님을 여기에 주지 임명을 하셨던 서운 큰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스님이 처음에 딱 오시자마자 진관스님에게 스님을 평가하시기를 딱 그러셨대요. “문중을 책임질 스님이 왔다” 그러셨대요. 박수 한번 보내주시겠어요? 자, 이제 이 정도 되면 수십 년간 원력 불사를 하셔서, 하늘에서 불조 혜명을 이어가지고, 여기에 이 한국 불교의 이 도량으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지라고 하는 어떤 불보살님의 천명을 받고 오신 분들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고요. 이제 이 진관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불사와 법회들은 한국 불교의 모델이 될 거고, 모범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이대로만 따라하면 매뉴얼이 다 되리라고 보고요. 여기서 여러분, 이 좋은 시절 인연에 이 백중 기도의 천도를 이렇게 해드리는데, 열심히 여러분들 기도를 하셔가지고, 지금 이 다겁생 내의 업장을 다 소멸하고, 국가를 청정하고, 이 우주 법계를 청정히 하는 데, 아주 여러분들도 여기서 열심히 기도를 하셔가지고, 세상을 한번 맑고 청정하게 만들어 봅시다. 어떻습니까? 아, 여러분, 예전에는 집에 판검사가 하나 정도 있어야 되고, 의사가 한 명 정도 있어야 된다, 이랬거든요. 몰라서 하는 말이라요. 집에 스님이 한 명 있어야 돼요. 우리 여기 덕현스님 계시잖아요. 이런 염불을 이렇게 잘하시는 스님이 한 분 계셔가지고, 늘 염불을 해 주시면 어떻게 될까요? 구족이 승천하는 거예요, 집에. 맞죠? 누대에 그 수없이 많은 조상님들 천도 다 해드리고, 여러분, 우리 유교는 이제 제사를 매일 지내지만, 매번 지내지만, 바깥에 있는 유주무주 고혼 영가, 애원 영가 다 천도하기는 힘들단 말이죠. 그래서 이 고시례를 하고, 바깥에 헌식을 하지만, 우리 이런 청정한 도량에서는 스님들께서 지금 여기에 영가 위패 모셔놓은 많은 영가님들뿐만 아니라, 다겁생 내의 우리의 조상님들, 윗대 어른들 다 같이 천도를 해드릴 수 있는 역량이 있고, 그런 원력이 있단 말이죠. 거기에 불보살님들의 가피가 있기 때문에, 이런 데서 도량에서 천도들을 지내고, 백중 기도를 하게 되면, 여러분, 수도 없이 많은 영가님들이 천도가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도 있지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영가님들이 사실 알고 보면 전생에 우리 부모님이었고, 조상님들이었고, 그리고 알고 보면 그게 전생의 저였죠, 나 자신이에요. 맞죠? 전생의 나 자신입니다. 내 영가입니다, 내 영가. 그러니까 내가 나를 닦는 것이기도 하고요. 주변에 있었던 인연이 있었던 모든 은혜 빚 갚고, 원수 빚 갚고, 다 빚을 갚는 그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천도재라고 하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여러분, 이게 아주 큰일입니다. 제가 몇 번 말씀을 드렸는데요. 제가 해인사 원당암에서 위패를 많이 썼어요. 영가님 위패를 많이 쓰고, 만년 위패가 있거든요. 위패를 제가 직접 썼어요. 사미 때부터 위패를 많이 썼는데, 위패를 쓰고, 제사도 많이 지내고, 이렇게 해가지고, 제가 그 영가님 덕을 좀 봐가지고, 지금 조금 이렇게 좋지 않나 싶어요. 제가 위패를 수도 없이 많이 썼는데, 하루는 혜암 큰스님 모셨던 미속을 해서 위패를 쓰고, 밤에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이제 2시 40분에 일어나서 새벽 예불을 도량석 치고 해야 되는데, 1시쯤 갑자기 제가 일어나게 됐어요. 갑자기 일어나게 돼 가지고, 나도 모르게 위패 써놓은 걸 만지다가 위패가 훌 흩어져 버렸어요. 흩어져가지고, ‘내가 왜 이러지 갑자기? 이걸 내가 왜 위패를 손을 왜 대지’ 해서 다시 위패 순서대로 이렇게 맞추다 보니까, 번호가 하나 빠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대장을 보니까, 대장을 종이를 두 장 넘긴 거예요. 번호가 하나 빠졌어요. 그래서 그 복위자 해서 부모님 영가 위패를 안 쓴 거예요. 그래서 내가 깜짝 놀라서, 내가 인사를, 기도를 했어요. 죄송합니다. 영가님이 이렇게 위패를 자제분들이 다 모셔가지고 이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위패를 안 써서, 내 거 왜 안 써주노 이러신 것 같다는 거예요, 느낌이.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위패를 쓸 때, 야, 이거 정말 빠짐없이, 글자 한 자 틀린 거 없이, 정확하게 다시 썼나 안 썼나,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굉장히 그렇게 철저하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 보십시오. 이 좋은 도량에 이렇게 위패를 모셔서 이렇게 드리는데, 자제분들이 접수를 했는데, 저기 이름이 빠져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죠? 여러분,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요. 여기 들어오는데 입장권 끊어놨는데, 중간에 못 들어오셨다 이거야. 그러니까 스님, 빨리 일어나서 내 거 써달라, 이런 의미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아주 모골이 송연했어요. 그다음부터는 얼마나 열심히 영가님들 위패를 이렇게 하고, 천도재를 지낼 때 지극 정성으로 하게 됐어요. 여러분, 이게 보이지 않는 세계라 그래서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옛날 큰스님들 말씀이, 영가님들 도움을 좀 받을 줄 알아야 된다 그래요. 내가 이게 살아계신 부모님은 몸에 한계가 있어서, 자제분들 이렇게 여러분 항상 옆에 있지를 못하지만, 영가님들은 말이죠. 오신통(五神通)을 하잖아요. 천이통, 신족통, 천안통 다 있단 말이에요. 영가님들 몸이 없으니까 멀리 있는 거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타심통도 되고, 다 돼요. 영가님들도 다 오신통 다 한단 말이죠. 그래서 자제분들이 제사를 지내고, 천도재를 지내고, 이렇게 하게 되면은 다 오셔가지고 도와주신다 이거예요. 모든 거는 여러분 인과응보이기 때문에, 과보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유교의 공자님 말씀도,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은 여부제(如不祭)라는, 제사 안 지낸 거와 같다는 거예요. 우리 부모님 제사를 어딘가에서 지내고 있어도 내가 참여하지 않으면 영가님은 제삿밥을 드셨어도 나는 제사 안 지낸 것 같다. 가피를 못 받는다, 음복 못한다, 이렇게 논어에 나와 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예를 들면, 내가 제사를 못 지내더라도 망배(望拜)를 하는 거예요. 제사 지내는 시간에 멀리서 그쪽을 향해가지고 절을 합니다. 시간에 맞춰서. 그러면 영가님들은 다 보신다 이거예요.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그래서 예를 들면 49재 지낼 때도, 내가 그때는 초재, 막재하고, 몇 번 못 오게 되면, 그 어떠한 장소에서라도 망배를 하셔라 이거예요. 그럼 내가 제사에 참여하는 그런 방식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만큼 이렇게 과보가 분명한 것이 바로 이 제사이거든요. 그러면 제가 인도네시아에 예전에 지진났을 때, 2014년에 지진 났을 때, 제가 의견을 제시해서, 우리가 절에서 우리 절에 있는 스님들이 복위자가 돼가지고, 그때 세상을 떠나신 모든 영가님들, 우리가 49재를 지내줬어요. 갑자기 사고나 불의의 어떤 그런 부분으로 인해 가지고 영가가 되셨는데, 그분들이 다 다시 세상에 오실 거 아닙니까? 그분들에게 놀라고, 황망하고, 그다음에 예를 들면 원한이 있다든지, 이렇게 돼 있으면, 그걸 다 천도를 해드려야, 다음 생에 이 세상이 청정하고 맑고 깨끗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거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다 같이 해야 될 일이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같이 제사를 지내서, 열심히 해서, 유주무주 영가님들까지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건, 바로 우리 전 세계에 우리 사찰이 이걸 해줄 수 있다. 한국의 사찰이 해줄 수 있다, 이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이 물어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우리가 이거 한국말로 이렇게 하면은, 그걸 알아듣고 오십니까? 이러죠.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이제 전문 용어로 하는 말이 있죠. 귀신같이 알고 온다. 마음법이니까, 마음법이니까, 다 아시고 오셔가지고, 다 죄를 다 흠향하신다 이거죠. 마음이 통하면 다 되기 때문에, 그때 인도네시아에서 지진으로, 해일로 돌아가신 분들 영가님들 다 모시겠습니다. 그러면 언어가 달라도 다 아시고 오신다 이거요. 그렇게 이 법이 그런 법입니다. 일심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법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제사를 지낼 때 어떻게 하셔야 되냐면, 이제 49재 때 기도하실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원력을 세워서 기도를 하시되, 이 기도할 때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념이 지속돼서 무심삼매가 돼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게 중요합니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어떤 말이 있냐면, 이번 생에 지은 업장은 이번 생에 기도로 다 업을 다 소멸할 수 있대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들. 여러분 다 기억하시잖아요. 옛날에 힘든 일이 있었던 거,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거, 내가 예를 들면 참회할 일이 있었던 거, 다 기억하잖아요? 내가 60 경계로 다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그걸 다 발로 참회해서, 참회 기도를 하고, 다 기도를 하면, 다 업장을 소멸할 수 있답니다. 그러나 다겁생 내 죄업장을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기억도 못하는 것들. 칠식, 팔식, 아뢰야식에 있는, 이 수없이 많은 나의 전생 전생에 있었던 수없이 많은 생에 있었던 과보들, 업장들, 나의 원한들,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소멸할 수 있겠느냐. 삼매에 드셔야 된다는 거예요. 선정삼매에 들어가가지고, 그 칠식, 팔식 아뢰야식 있는 데까지 들어가서, 거기에서 이 업을 녹여내는데, 그게 바로 우리 참선하실 때 말씀하시는, ‘모기가 솥뚜껑을 뚫고 들어가듯이’라는 말이 있어요. 선정삼매로, 선정력으로, 정진력으로, 무심으로, 그걸 뚫고, 일념으로 염불을 하시고, 기도를 하시면, 나도 모르게 글로 쑥 들어가게 된단 말이죠. 그기에 쑥 들어가게 되면은, 내가 모르던 컴퓨터 파일 안에 들어가고, 들어가면, 그 깊이 깊이 있는 하드에 들어 있는 그 업장들이 딱 랑데뷰가 되면서, 그게 딱 녹습니다. 그럴 때 일어나는 현상들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든지, 뭔지 모르는데 가슴이 이렇게 벅차다든지, 뭔가 가슴이, 머리가 시원하다든지, 아니면 꿈에 봤는데 뭐가 빛이 보인다든지, 그러니까 지금 우리 현상적으로도 육식 경계로 잘 모르는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들이 일어난다 이거죠. 그러면 아, 내가 나도 모르는 다겁생 내에 어떤 이런 업들이 소멸됐구나. 이렇게 아시면 된다는 거죠. 그래서 기도를 하실 때는 단순하게 영가님들 천도 시켜드린다, 그 정도 생각으로 하실 게 아니라, 나와 인연이 있었던, 내가 은혜 갚았던, 은혜 입었던 모든 분들의 그 은혜에도 감사를 드리고, 업에도, 원한진 것도 다 풀고, 내가 전생에 있었던 나 스스로의 장애들, 내 마음이 평온하지 못해서 생겼던 모든 것까지, 총체적으로 기도를 다 한다 생각하시고, 이걸 이제 기도를 하셔서 녹여내셔야 된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우란분절이라고 했을 때, 그 근원이 부처님의 제자이신 신통 제일인 목련존자에게서부터 비롯됐는데, 신통이 가장 좋은 목련존자마저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정에 들어서 쫙 보니까, 28천 하늘에도 안 계시고, 다시 태어나신 것도 아니고, 지옥에 봐도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아무리 봐도 찾을 수가 없어서 부처님한테 가서, “어머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니까, 부처님 말씀이, “신통제일 목련존자도 보지 못한다” 그래요. 오무간지옥에 떨어져 있으면, 무간지옥이 다섯 군데가 있는데, 오무간지옥에 떨어져 있으면 신통력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무간이라고 하는 게, 아비지옥이라고 하는 게, ‘아’자라고 하는 게, 아미타, 아쇼카 해가지고 부정, 없다는 뜻이잖아요. 뭐가 없냐, 틈이 없다는 거예요, 무간지옥이. 틈이 없다는 건 뭐냐 하면, 그 무간지옥에 한 명이 있으면 한 명만 딱 아주 그냥 아주 힘들게 살 수 있는 공간밖에 틈이 없대요, 공간이. 100명이 살면은 100명이 있을 딱 그 틈 없이 빡빡하게 돼 있고, 천 명이 있으면 천 명이, 공간적으로 틈이 없는 곳이 무간지옥이고, 시간적으로도 틈이 없대요. 쉴 틈이 없답니다. 그게 무간지옥인데, 그때 종을 치면 잠시 쉰대요. 우리가 이 종을 쳐가지고, 여러분, 종송에 나오지 않습니까? 이지옥출삼계, 그죠? 파지옥진언. 지옥을 파하는 진언을 왜 하느냐? 종을 칠 때 무간지옥에 있는 그 지옥 중생들이 잠시 쉴 수 있대요. 근데 거기에 있는 중생들, 거기에 있는 분들은 우리가 일반적인 선정으로 볼 수가 없대요. 그래서 목련존자도 그 선정에 들어서 못 봐서 어떻게 했느냐, 석 달 안거를 놔서, 스님들께서 정진을 쫙 하셔가지고, 석 달 안거하셨던 개인적인 선정이 아니라, 모든 대중들의 선정력을 다 총동원해서, 마지막 백중날, 그날 집중적으로 선정의 힘으로 무간지옥을 뚫고 들어가서, 거기에 계신 분들을, 지옥 중생들을 제도한다 이거예요. 그게 백중이에요. 그러니까 이 많은 대중들이 기도를, 정진을 해서, 그날은 선정력을 바탕으로 해서, 칠식, 아뢰야식, 팔식, 여기에 있는 모든 업장을 녹일 만큼 깊이 깊이 깊이 들어가가지고, 거기에 여러 대중들의 선정력의 힘으로 무간지옥을 뚫고 들어가서, 지옥 중생을 제도하는 날이다. 하늘 문이 그렇게 해서 열리게 된다 이 말이죠. 참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생각을 할 때, 이런 법이 만일에 목련존자를 비롯해서 우란분절의 이 전통이라고 하는 게, 부처님 당시에서부터 이게 허망하고 없는 거라면, 벌써 세상에 없어졌을 거예요. 지금까지도 이렇게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은, 이걸 통해가지고 얼마나 많은 분들이 해탈을 얻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렇죠? 그래서 이게 굉장히 이렇게 중요한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그런 법회의 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이번에 이렇게 진관사에서 백중 기도를 이렇게 올려주시면, 여러분들 많이 올리셔야 됩니다. 생각나시는 분, 옛날에 내가 어떻게 그때 좀 도움을 받았는데, 그 영가님이 생각이 난다. 우리 집에 어떻게 좀 힘들게 그냥 돌아가신 분이 있는데, 우리 부모님은 아니더라도, 갑자기 떠오른다, 기도를 했는데, 그런 분이 자꾸 생각이 든다. 옛날에 내가 도움을 받으셨는데, 어떤 주변에 있었던 그 어른이 생각이 난다. 그러면 올려주셔가지고 천도를 다 해드리면, 그분이 얼마나 고마워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보니까, 이 과보가 과보가 분명해요. 그래서 저도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것이, 그저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 저는 영가님들 제사를 열심히 잘 지내고, 천도재를 열심히 하고, 위패를 잘 써드린 그런 복력으로 제가 이만큼 사는 거지, 저 잘나서 이렇게 사는 거라 생각을 안 합니다. 여러분, 이런 아주 소중한 인연을 맺으셨을 때, 천도재를 잘하시고, 기도를 잘하셔가지고, 여러분도 이 기회에 선정삼매에 들어가지고, 일념이 지속이 돼서, 여러분들도 영가님들과 함께 해탈하고, 깨달음을 얻으러 가는 과정으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래서 제가 오늘 이제 이 염불도 많이, 염불이나 음악이나 이런 부분들이나, 모든 부분들이 우리가 모기가 솥뚜껑을 뚫고 선정 세계로 들어가서, 마음에 이제 어떤 막힌 곳을 뚫고 들어가서, 칠식, 팔식, 아뢰야식이 있는 그 미세망념까지 뚫고 들어가는 힘을 발휘하게 됐을 때, 다겁생내에 모든 인연 있는 영가님도 같이 천도가 될 수 있다, 이걸 되새기시고, 그래서 절에서 일어나는 우리 모든 법회들은 웬만하면 다 참석을 하셔가지고, 어느 구름에 비가 내릴지 어떻게 압니까? 언제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해탈을 얻을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조금 전에도 여러분, 바이올린이나 첼로나 이런 선율에 보면, 마음이 움직이잖아요. 뭐라 그래요? 심금을 울린다, 그러잖아요. 마음에 여러분들 이 현악기 줄이 있는 거예요. 거기를 울리게 됐을 때, 업장이 녹는단 말이죠. 염불도 그와 같아요. 우리 이 진관사 어른 스님들이 염불을 해 주시면 업장이 녹습니다. 그때 한번 쑥 막힌 벽들을 뚫고 들어가가지고, 장애를 뚫고 들어가면서 해결이 되는데, 여러분들이 이번 철에는 열심히 기도를 하셔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 내가 염불하고, 그다음에 기도하는, 그것이 한 덩어리가 돼가지고, 이번 철에는 모든 영가님도 천도해드리고, 여러분들도 해탈할 수 있는 해인삼매 한번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축원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오늘 이 진관사를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진관사를 오면 올 때마다 너무 좋거든요. 그래서 이게 이 능선을 이렇게 넘어오면서, 갑자기 북한산을 보면서, 마음이 이렇게 확 열렸어요. 제가 이제, 저 앞으로 이제, 다음 주면 저는 이제 모든 법회가 끝이 나고, 저도 이제 정진하러 들어갈 겁니다. 그래서 동안거 방부를 넣어놨고, 이렇게 해놨는데, 제가 최근에 열심히 이렇게 법회를, 그동안 동국대 연구교수를 하면서, 4월달에 사직을 하고, 그러고 나서 저기 오라고 하는 곳이 있으면 무조건 이제 많이 갔거든요. 그랬더니 질문을 하세요. “스님, 빚이 있습니까? 그래, 열심히 다녀요? 빚이 있습니까” 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스님, 뭐 중병에 걸려가지고,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들어가셔야 됩니까?” 이렇게 하는 분도 있고, 다양하게 질문하시는 분이 있는데, 저도 이제 맑고 청정한 산하대지에 들어가서, 한번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선정삼매에 한번 들어서, 저의 근본 본래 면목과 한번 만나려고, 입을 닫고, 좀 들어가서, 이렇게 공부를 좀 하려고,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정한 진관사에 이렇게 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오다가 시가 하나 생각이 났어요. 우리 두보의 시인데, 두보 시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이게 한번 읽어볼게요. ‘강상피화뇌불철(江上被花惱不徹)하니’, 강가에, 강가에 꽃이 피었는데, 봄에 꽃이 피었는데, 피화라 그래요. 당할 피자, 꽃한테 당했대요. 꽃이 막 나를 막 너무 아름다운 꽃이, 나를 그냥 얼마나 그냥 나를 감동을 시켰길래, 꽃이 꽃한테 당해가지고, 뇌불철, 이 뇌가 벗어나지를 못한대, 이 아름다움에, 너무나 아름다운 이 두보가 이렇게 시를 지어요. 자기는 맨날 굶고, 부부하고 헤어져가지고, 막 전쟁 통에 이렇게 했는데, 시를 이렇게 지어요. 꽃이 나를 두들겨 패가지고, 내가 너무 그냥 뇌가 어떻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가지고, ‘무처고소지전광(無處告訴只顛狂)이라’, 이렇게 해요. 이거를 알려줘야 되는데, 어딘가 알려줘야 되는데, 알려줄 곳이 없고, 그래서 내가 아주 미치겠어요. 이걸, 이걸, 이 아름다운 이 소식을, 멋진 이 대자연의 모습을, 어디에 알려줘야 되는데, 알려줄 곳이 없고, 그래서 내가 아주 미치겠어요. 이걸 이걸 이 아름다운 이 소식을 멋진 이 대자연의 모습을 어디에 알려줘야 되는데 알려줄 곳이 없어가지고 아주 그냥 미칠 지경이 됐단 말이죠. 그래서 갑자기 떠올랐어요. 그래서 뭐냐면, 여기 ‘주멱남린(走覓南鄰)’, 그다음에 ‘애주반(愛酒伴)’이라고 그랬어요. 이 남쪽, 남쪽 요 마을에, 자기하고 마음이 통하는, 술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를 빨리 찾아 내려간 거예요. 이제 아주 말이 좀 되는 친구가 있어. 친구를 따라가가지고, 이제 그 친구하고 이 얘기를 내가 전하고 싶어서 막 내려갔단 말이죠. 딱 내려갔는데, 웬걸 말이죠. 웬걸, ‘경순출음(經旬出飲)’, 그다음에 뭡니까? ‘독공상(獨空床)’이라, 이렇게 돼 있어요. 이미 열흘 전에 이 친구는 술을 가지고 벌써 나갔어. 집을 나갔어요. 꽃이 너무 좋고 하니까, 이미 술 가지고 나간 지 열흘이 지났고, 아주 이 외로운 침상만 하나 딱 기다리고 있더라, 이렇게 돼 있어요. 이게, 여러분, 당나라 때 시에는 ‘술 주’자를 ‘참선 선’자로 바꾸면 다 뜻이 통해요. 이게, 이게 술 마신다는 뜻이 다른 뜻이 아니라, 선정에 든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이걸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경지를 아는 사람하고만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근데 이 아름다운 소식을 다 전하려고 온 천지를 돌아봐도 한 명이 있었는데, 그 한 명이 벌써 나갔어, 자기는. 그래가지고 ‘빈 자리만 딱 남아 있더라’라는 시가 있어요. 저는 진관사 생각하면 이 생각이 나요. 이 좋은데, 어떻게 말을 해줘야 되는데, 말로 할 수는 없는데, 이게 이 어떤 엄청난 선정의 세계가 있다. 깨끗한 선정의 세계가 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이 세계가 참선에서 아주 무심 상태에 들어갔을 때, 그 경지를 대부분 다 선사나 시인들은 이렇게 표현해요. 말로 할 수 없는 경지가 있다. 그래서 시를 짓고, 그래서 음악을 만들고, 예술을 하게 돼 가지고, 아티스트만이 그 세계와 교감을 한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한 번 선정에 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그 정말 내 본래 면모가 만났던 그 체험을, 다시 한 번, 그것보다 더 하는 게 좋은 게 없다는 생각에, 선방에서 나온 지 한 십몇 년 됐는데도, 안거철만 나면, 내가 저기 들어가 있어야 되는데, 내가 저기 들어가 있어야 되는데, 고시생 고시하다가 고시 패스 못하고 직장 생활하다가, 고시철만 되면, 내가 저 고시 시험 보러 가야 되는데, 이렇게 하는 시절이 있거든요. 그처럼 제가 그렇게 살았어요. 근데 이제, 이제 들어가려고 합니다. 들어가서 저도 한번, 저의 마음을 다 깨끗하게 청정하게 하는 정진을 한번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백중은 저에게도 그런 기도하는 기간이 될 거고, 다시금 우리 본래 면목에 한 물건이 있는데, 그 마음을 해탈을 할 수 있는 그런 기간이 되도록, 저도 열심히 기도를 할 테니까, 여러분들도 이번 윤달이 있는 이 멋진 이 기간에, 여러분들 조상님들 다 천도하시고, 여러분들도 무심을 증득하는 멋진 기도의 시간이 되셔서, 이 진관사에서 너나 할 거 없이,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하는 멋진 시절 인연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너무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