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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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8월 23일 백중기도 5재 법문
종범스님 2025-08-23
안녕하세요. 백중 기도라. 백중 기도라. 백중 기도는 선망조상(先亡祖上), 또 생존 후손, 선망조상과 생존 후손이 모두 생사해탈(生死解脫), 생사에서 해탈해서 극락왕생(極樂往生), 극락왕생을 이루는 것이 백중 기도입니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실유불성(悉有佛性)하니 묘체원명(妙體圓明)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여. 수신생령(受身生靈)이오, 이신혼령(離身魂靈)이나 수연불변(隨緣不變)의 신령불성(神靈佛性)이여. 근진(根塵)에 무애(無礙)하고 묘용(妙用)이 자재(自在)하니 보방금색(普放金色)의 아미타불(阿彌陀佛)이여. 수광(壽光)이 무량(無量)하고 수처(隨處)에 현신(現身)하니 상방광명(常放光明)의 아미타불이여.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이 뭘 깨달았느냐, 부처님이 뭘 깨달았느냐, 이렇게 입술에 딱 붙이면 되는 거야. 부처님이 도대체 뭘 깨달았나?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생사는 없다, 나고 죽는 것은 없다, 이거 깨달았어요. 생사가 없다, 생사본무(生死本無), 나고 죽는 건 본래 없다, 이거 깨닫고. 그다음에는 불성원명(佛性圓明), 불성은 둥글고 밝다, 둥글 원(圓) 자, 밝을 명(明) 자, 그걸 깨달은 거예요. 생사는 본무하고 불성은 원명하다, 둥글고 밝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걸 알았는데 다만 범부(凡夫) 중생들은 모를 뿐이라는 거지, 모를 뿐이다. 몰라도 생사가 두 배로 있는 게 아니라 없어요, 없는 걸 느낄 뿐이에요. 그러면 부처님에게는 생사가 없는데 미혹한 범부들에게는 생사가 있다. 그래서 생사는 부처님에게만 없지, 범부에게는 생사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생사해탈이라 그래요. 생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그럼 그게 뭐와 같으냐. 꿈에서 깬 사람은 꿈이 없는데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꿈이 있어요. 그 차이뿐이에요. 꿈꾸는 사람에게는 꿈이 있고, 꿈 깬 사람에게는 꿈이 없다. 그러니까 생사가 있다는 말도 맞아요, 생사가 없다는 말도 더 맞아요. 그래서 생사 없는 불성 법문, 생사 없는 불성 법문, 꿈이 없는 본래 사람, 꿈에서 벗어나려면 잠에서 깨면 돼요. 잠이 없으면 꿈은 본래 없어요. 그래가지고 생사 없는 불성 법문을 계속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꿈꾸는 사람마다 꿈이 없는 본래 사람이 있어요. 꿈으로 그걸 모를 뿐이야. 그래서 꿈꾸기 이전에 본래 사람을 불성(佛性)이라 그러고,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 무명(無明)이라 그래요. 꿈이 없는 것을 밝게 보지 못한다, 밝음이 없다, 무명. 그래가지고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실유불성(悉有佛性)하니. 일체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 그러니 불성은 뭐냐, 묘체(妙體)가 원명하다. 이 불성은 묘체요, 묘체. 안이비설신의처럼 이렇게 보이고 들리는 게 아니고요, 생로병사(生老病死)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에요. 허공의 메아리처럼 보려고 하면 없는데 항상 그 속에 있다. 허공처럼 허공은 붙잡으려면 없는데 도망갈 수가 없다. 피할래야 피할 수 없고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게 허공인 것처럼 불성(佛性)도 붙들려고 하면 안 붙들리는데 불성은 도망갈 수가 없다. 그래서 묘체(妙體)가 원명(圓明)하니 그걸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그런다. 진여(眞如)라고 하는 것은 생멸(生滅)이 없다, 이걸 진여라 그래요. 나고 죽는 게 없는 걸 참 그대로 항상 한다, 참 진(眞) 자, 같을 여(如) 자. 참 그대로 항상 한다. 불성인데 불성은 ‘불(佛)’은 각(覺)이라, 느낀다. 느끼는데 눈으로 느끼는 것은 대상이 있어야 느끼는데, 불성은 대상이 있거나 없거나 항상 느껴요. 그걸 느끼는 본성이다, 이래 가지고 불성이라 그래요. 불은 느낀단 말이고, 성은 대상 없이도 항상 느낀다. 이게 뭔 말이냐, 우리 귀가 있는데 이 귀는 항상 느껴요. 어떻게 항상 느끼냐, 소리가 날 때는 소리를 느끼고, 소리가 안 날 때는 그 소리 안 나는 조용한 걸 느껴요. “아무것도 안 들리네” 하는데, 아무것도 안 들리는 걸 누가 아냐? 들어서 아는 거거든요. 항상 느껴요. 그래서 느끼는 본성이다, 그걸 불성이라고 그래요. 느끼는 본성. 진여불성인데 이 진여불성이 수신(受身)에는 생령이요, 몸을 받아서 이렇게 살아갈 때는 살아 있는 영이다. 살아 있는 영, 그래서 그걸 생령이라고 그러는데. 살아 있을 때는 살아 있는 대로 여러 가지 작용을 일으켜요. 그것이 뭐냐 하면, 산 사람에게는 누구나 똑같은 게 있는데, “뭐 하고 살았냐?” 아주 기본적으로 똑같은 게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다 이거는 벗어날 수가 없어요. 첫째, 숨 쉬고 살았다. 사는 게 뭐냐 이런 말 묻는데 아주 이상한 소리예요. 사는 건 숨 쉬는 거예요. 그건 물어볼 것도 없어요. “지금까지 뭐 했어?” 숨 쉬었어, 끝이지. 그다음에는 옷 입는 거예요. “뭐 했어?” 옷 입었어. 호흡하고, 착의하고, 그다음에 뭐 했어? 밥 먹었어. 그다음에 뭐 했어? 자. 숨 쉬고, 옷 입고, 밥 먹고, 그다음에 똑같이 한 게 있는데 뭘까요? 잠자고, 수면. 잠잤지. 그다음에 또 똑같이 하는 게 있어요. 뭘까요? 맞아, 그걸 어려운 말로 변리(便利)라 그래요. 변리, 변을 보면 몸에 이롭거든. 그래서 변(便) 자, 이(利) 자, 변리라고. 대소변리하고, 대변리, 소변리. 이거는 이 몸을 가진 중생들에게 누구나 똑같이 겪는 거예요. 그런데 이 몸을 가진 후로는 불성이 이걸 엄청나게 잘해요. 살아 있을 때는 살아 있는 대로 공덕 작용을 잘 일으켜요. 그다음에 이신(離身)을 할 때, 몸을 떠나서는 불성이 생령이라고 안 하고 그걸 혼령(魂靈)이라고 그래요. 혼령. 혼으로만 움직여요. 몸으로 숨 쉬고 밥 먹고 이렇게 움직이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 혼령이 가만히 못 있고 어딘가 계속 가려고 그래요. 혼령은 움직여. 그런데 생령(生靈)으로 있으나 혼령으로 있으나 인연을 계속 따라서 움직이지만, 불성은 불변(不變)이에요. 수연불변(隨緣不變)이라, 인연을 따르지만 변하지 않는다. 그래가지고 이걸 아무리 오래오래 태어나고 여러 번 죽어도 불성은 변하는 법이 없어요. 인연을 아무리 많이 따라도 불변(不變)이라. 그래서 이걸 신령불성(神靈佛性)이다. 신통(神通)이라는 신(神) 자, 신령하다는 령(靈) 자, 신령한 불성이라고 그런다. 생멸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 신령스러운 신령불성. 이걸 사람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귀로 들을 줄 알고, 눈으로 볼 줄 알고, 밥 먹을 줄 알고, 잠잘 줄 알고, 움직일 줄 알고, 이게 신령불성이요. 아무리 이걸 해도 불성은 변하는 법이 없어요. 그게 수연불변(隨緣不變)이요. 그런데 신령불성이 잘 인연을 지으면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돼요. 아미타불은 수명이 무량하고 광명이 무량하다, 이 수광무량(壽光無量)을 아미타불이라 그래요. 그럼 아미타불은 어떻게 되냐. 근진(根塵)의 무애(無礙)하고, 몸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이 있는데 또 육근에는 하나하나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대상 티끌이 있어요. 그런데 이 신령불성은 몸의 육근이나 대상 육진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아요. 이걸 근진의 무애라 그래요. 보는 데 구애를 받지 않고, 듣는 데 구애를 받지 않고, 근진의 무애하고. 또 묘용이 자재하니 그냥 보려면 보고, 안 보려면 안 보고, 가려면 가고, 오라면 오고, 묘한 작용이 자재하니 보방금색(普放金色)이다. 금색은 광명인데 금빛. 널리 널리 광명을 비추는 아미타불이다. 또 수광이 무량하고, 수명과 광명이 한량없고 처처에 현신하니, 곳곳에 몸을 나타내니 상방광명(常放光明) 아미타불이라. 항상 광명을 비추는 아미타불이다. 그래서 이 불성이 아미타불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신령불성하고 아미타불하고 진여불성하고 아미타불하고 어떤 관계가 있나. 비유로 말하자면, 이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요만한 씨앗이 하나 있는데 그 씨앗을 땅에 심었을 때 그걸 불성(佛性)이라고 그래요. 아미타불(阿彌陀佛)은 그 씨앗이 흙 속에서 뿌리가 나고 줄기가 나고 가지가 나고 이파리가 나고 꽃이 피어서 마지막에 열매가 맺어서 영글어서 다 익은 그 열매를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 그래요. 그런데 이게 종과(種果)가 일체(一體)라. 종(種)이라는 거는 종자인데, 땅에 심은 걸 말하고, 과(果)라고 하는 건 과일인데, 나무 꼭대기에서 열리는 걸 말해요. 그런데 종자 심어서 가꿔 가지고 나무 꼭대기에서 열매를 거두면 본래 심었던 종자와 똑같다, 하나도 다름이 없다 이 말이다. 그래서 범부(凡夫)로 있을 때는 불성(佛性)인데 성불(成佛)하면 아미타불(阿彌陀佛)이에요. 그래서 조상을 천도(薦度)하고 후손을 천도(薦度)하고 생사(生死) 해탈에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고 하는 게 전부 불성(佛性)이 있기 때문에. 그 불성을 가지고 생사는 없고 불성은 둥글고 밝다. 이걸 하나 탁 보는 순간에 다 해결되는 거예요. 그걸 기도라고 그래요. 생사는 없다, 생사는 본무(本無)하다, 불성은 둥글고 밝다. 둥글다는 건 없는 데가 없다. 밝다는 건 항상 빛난다. 세월이 없어요. 세월이. 생시일진청풍기(生時一陣淸風起)요. 멸거징담월영침(滅去澄潭月影沈)이니 생멸거래무괘애(生滅去來無罣礙)라 진신면목(眞身面目)을 갱하심(更何尋)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그 전에 큰스님, 선지식, 도인들께서 제사를 지낼 때 “생사는 없고 불성은 둥글고 밝다” 이런 말씀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그게 어떤 내용이냐 하면 불성을 떡 깨닫고 보면 생시에는 태어날 때는 생시에는, 태어날 때는 일진청풍기(一陣淸風起)요. 한 무더기 바람이, 일진이라면 한 무더기거든. 한 무더기 맑은 바람이 싹 불어서 일어나는 거와 같고. 또 멸거징담월영침(滅去澄潭月影沈)이라 이제 생명이 다해서 몸이 흩어져서 돌아가는 것은, 멸거는, 징담에, 맑은 징(澄) 자가 있고 연못 담(潭) 자가 있는데, 맑은 연못에 월영(月影), 달 그림자가 이렇게 비췄다가 그림자가 사라지는 거와 같다, 잠길 침(沈) 자. 태어나는 건 맑은 바람이 한 번 쒸익 일어나는 거와 같고, 죽는다는 것은 연못 속에 달 그림자가 비춰지다가 사라지는 거와 같다. 생사 없다는 얘기죠. 없어. 불성만 항상 한다는 얘기지. 그래가지고 생멸거래무괘애(生滅去來無罣礙)라. 나고 죽고 오고 가고 하는데 아무 장애가 없다. 바람이 일어나든 안 일어나든, 달빛이 비치든 안 비치든 아무 장애가 없다. 그러니 그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거, 그걸 싹 보면 그게 바로 불성이지, 생사를 떠나서 따로 불성을 찾을 필요가 뭐가 있나. 생사를 똑바로 봐라. 생사를 똑바로 보면 생사는 없고 불성만 밝다, 이렇게 제사를 지내요. 그래서 유가법(儒家法)으로 하면 제사는 추모(追慕)요, 추모. 부모님을 돌이켜서 생각하는 게 제사인데. 불교 제사는 천도(薦度)요. 불성을 깨우쳐서 생사에서 벗어나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도록 하는 게 불교의 제사인데, 그걸 시식(施食)이라고 하고, 음식을 베푼다고, 천도(薦度)라고 그래요. 영혼을 인도한다고. 천도. 일념망시명료료(一念亡時明了了)하면 미타부재별가향(彌陀不在別家鄕)이로다. 통신좌와(通身座臥)가 연화국(蓮華國)이니 처처(處處)가 무비극락당(無非極樂堂)이로다. 이 법문은 고려시대에 나옹(懶翁) 스님이라고 큰 도인 스님이 계셨는데, 그 나옹 스님 법문인데, 한 생각, 한 생각은 성심일념(性心一念) 연심일념(緣心一念). 성심(性心)은 본래, 본래 있는 마음. 너무 좋아가지고 이제 그냥 목이 다 막히고 그냥. 불성 얘기가 얼마나 좋으면 목이 다 막히겠어요. 한 생각은 성심일념이 있다. 본성 그대로 항상한 한 생각이 있다. 또 연심일념이 있다. 눈으로 보면 그 보이는 거를 분별하고, 보이는 것을 관찰하는 한 생각이 있다. 이거는 반연하는 마음이라고, 연(緣)은 쫓아간다, 쫓아가는 마음이라고 해서 인연 연(緣) 자, 마음 심(心) 자, 연심일념이라 그래요. 근데 이 생사는 연심에서 오는 거예요. 쫓아가는 마음에서 생겨. 쫓아가는 마음이 본래 마음으로 싹 돌아가면 본래 바람이 뭐냐, 바람은 없고 공기뿐이거든. 그래서 바람이 공기로 돌아가면 바람은 없어요, 공기뿐이야. 그래서 이 꿈을 꾸는데, 잠자서 헛것 안 보면 꿈이 없어요. 그러니까 한 생각이 잊을 망(忘) 자, 때 시(時) 자, 다른 잡념 망상이 다 없을 때, 잊었다, 없다 이거야. 이거 뭐 생각을 끊는다 그러는데 끊는다는 건 톱으로 뭘 끊고 칼로 뭘 끊고 그런 걸 끊는다고 그러는데, 그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은 그냥 생각 안 하면 돼요. 톱 안 가져도 되고 칼 안 가져도 되고, 그냥 생각 안 해버리면 돼요. 그걸 잊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이 전혀 없을 때, 그냥 본래 생각만 환히 비추면 그게 둥글고 밝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인데, 한 생각이 다른 잡념이 없을 때, 그럼 여기서 또 다른 잡념은 없는데, 꾸벅꾸벅 존다. 그러면 그것도 시원찮아. 없을 때 명료료(明了了) 하면, 아주 밝고 밝으면. 밝을 명(明) 자가 있고, 밝을 료(了) 자가 있는데, 명료료라. 료료하면 미타부재별가향(彌陀不在別家鄕)이라, 아미타불이 별가향이라는 것은 다르다는 별(別) 자, 집 가(家) 자, 고향 향(鄕) 자인데, 집 가 자는 어조사고, 고향 향 자는 장소라는 말인데, 아미타불이 다른 장소에 있는 게 아니다. 한 생각이 딱 잡념이 없어져서 밝고 밝으면 아미타불이 다른 장소에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어디 있냐? 우리 몸에도 있고, 보이는 데도 있고, 들리는 데도 있고,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고, 온 천지에 아미타불뿐이다. 이게 나옹(懶翁) 스님 법문이에요. 미타부재별가향이라 그러면 어떻게 되냐. 통신좌와(通身座臥)가 연화국(蓮華國)이니, 통신이라는 건 온몸, 좌와는 앉고 눕고, 온몸이 앉고 눕고 하는 이 움직이는 것이 연화국(蓮華國)이라는 것은 극락세계(極樂世界)란 말이지. 다 극락세계다. 그러니까 처처무비극락당(處處無非極樂堂)이라, 처처에 극락당 아닌 곳이 없다. 이게 이제 나옹 스님 법문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불성이 맑아지고 맑아지고, 밝아지고 밝아져서 아미타불이 떡 되면, 우리 몸도 극락세계고, 눈으로 보이는 것도 극락세계고, 귀로 들리는 것도 극락세계다. 이 법문을 이제 나옹 스님이 하신 거예요. 이 법문이 워낙 좋으면 잠자리까지 들어와서, 잠자리까지 들어와서 법문 듣는다고. 아, 기가 막히네, 기가 막히네. 불성이 청정하면 아미타불이에요. 자성미타(自性彌陀) 하처재(何處在)요, 시시염념불소망(時時念念不須忘)이로다.막연일일여망억(驀然一日如忘憶)하면 물물두두불부장(物物頭頭不覆藏)이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이 법문은 조선시대 서산 스님 법문인데, 자성미타(自性彌陀)라는 우리 불성 아미타불. 이 땅에 심어진 종자 열매, 이 종자를 가꾸면 열매를 따는데, 그 따고 보면 심었던 종자 그대로다. 그게 우리 불성 아미타불이다. 그걸 자성미타라고 그래요. 불성 아미타불이 하처재(何處在), 어느 곳에 있는고. 시시염념불소망(時時念念不須忘)이라, 때때로 생각 생각 모름지기 잊어버리지를 마라. 이 불성 아미타불이 어느 곳에 있는고. 정근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 부처님 명호 한 번 부를 때, 그 소리에 집중을 하게 되면 거기에 아미타불이 나타나요. 근데 이제 나타날 때는 사람마다 다 다른데, 눈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요. 눈이 번쩍 뜨일 때가 있어요. 그거 이상해요. 번쩍 뜨일 때는 눈에서 불이 확 나는 거라. 그러면 지금까지 보던 건데 전혀 다른 걸 보게 돼요. 지금까지 그릇을 봤는데, 눈에서 불이 확 나면서 보여질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이 보여져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전부 물건을 쫓아가서 봤는데, 눈에서 불이 나서 볼 때는 자기 속에 있는 마음이 나타나서 본다. 그 차이예요. 쫓아가서 보는 건 생사(生死)고, 나타나서 보는 건 아미타불(阿彌陀佛)이에요. 이제 나타나서 보면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인데, 그걸 비유로 말하면 어떻게 되냐. 늘 나그네 생활만 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에 고향 산천을 본 거예요. 그러면 고향 산천 뒷동산 넓기도 하구나. 그걸 느끼는 거와 같은 거예요. 기도는 그 방향으로 다 끌고 가는 거예요. 연심(緣心) 생사에서 성심(性心) 고향으로 인도해 가는데, 그게 극락세계(極樂世界)고 그 고향을 보는 것이 아미타불이에요. 그걸 백중기도(百中祈禱)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알든지 모르든지 기도 열심히 하면 다 그리 가요. 알아도 가고, 몰라도 가고. 그전에 큰스님 법문하면 참 재밌는 법문 많이 했는데. “아주 좋은 보약은 모르고 먹어도 몸에 좋다.” 보약은 모르고 먹어도 몸에 좋다. 그 보약의 성분을 어떻게 다 알고 먹을 거여. 그럼 왜 먹냐, 이거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하니까 그거 믿고 먹는 거지, 알고 먹을 수는 없어요. 의사도 그 보약 성분을 다 알 수가 있나. 의사도 모르는데 어떻게 다 알아. 믿고 먹으면 모르고 먹어도 몸에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를 한다는 게, 모르고 해도 믿고 하면 몸이 먼저 성불을 한다니까, 몸이 먼저 알아채요. 그래서 몸이 이상해져요. 가벼운 것도 같고, 흔들리는 것도 같고, 바람이 슬 일어나는 것도 같고, 반응이 몸부터 와요. 희한한 게 몸이에요. 그래가지고 고향 산천을 보기 전에, 눈에서 불부터 나. 이 몸 반응하는 거지. 그러면 그 보는 게 아미타불이고, 그 아미타불이 계신 곳이 전부가 그게 극락세계다. 이게 이런 법문이에요. 응심(凝心)하야 일몰(日沒) 사사바(謝娑婆)에, 십육관경청석가(十六觀經聽釋迦)로다. 무한성색(無限聲色)이 청이목(淸耳目)하니, 허다천지일미타(許多天地一彌陀)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마음을 한 군데 딱 모으는 걸, 이걸 엉킬 응(凝) 자, 마음 심(心) 자, 응심이라고 그러는데. 마음을 모으면 생사(生死)는 없어요. 마음만 딱 모으고 있으면 공포가 없어, 두려움이 없어요. 마음이 움직이니까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응심을 해서 마음을 딱 모아서 일몰(日沒)하고. 이 일몰이라는 건 해가 지는 건데, 이 목숨이 다하고 이 말이죠, 해 진다는 말은. 사사바(謝娑婆)에, 이 몸이 사바세계(娑婆世界)를 하직할 적에, 이 세상은 이제 몸이 흩어져서 끝나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는 십육관경(十六觀經)으로 청석가(聽釋迦), 십육관법에 의해서 석가모니(釋迦牟尼) 설법을 듣는다. 그러면 응심해서 세상을 보면 세상이 전부 마음이 나타나는 거기 때문에 심외무물(心外無物)이라. 마음 밖에 물건이 없다. 그런데 유물생념(由物生念)이라, 물건에 의해서 생각이 일어난다. 그래서 물건이 있고, 생각이 있는데, 이걸 가지고 사는데, 이 물질과 생각은 다 기본 성심(性心)에서 나온 거다. 되게 어렵네요. 진짜 어려워요. 물질이 있고, 그 물질을 판단하고 기억하고 처리하는 생각이 있단 말이죠. 그런데 그 물질과 생각은 기본 성심(性心)에서 다 나온 거다. 이걸 성심, 물질, 생각 이 세 가지가 있는데, 이 물질과 생각은 다 성심에서 나온 거다. 성심이 없으면 물질이 없어요. 못 봐. 물질을 못 보면 생각이 안 일어나. “저 사람 뭔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는데, 그 궁금할 거 하나 없어요. 사람 생각, 아니면 물질 생각, 아니면 자기 몸 생각 이 세 가지뿐이에요. 그거 궁금할 거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생각이 머무는 곳은 전부 밖의 것에 머물기 때문에 그래요. 이런 거 가르쳐주면 안 되는데, 이게. 아들 생각, 가족 생각, 이게 전부 사람 생각 아니에요. 그 생각은 밖으로 안 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기본 마음에 의해서 물질이 일어나고, 물질에 의해서 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물질과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럼 이 기본 성심이 생각을 딱 멈추고 있으면, 물질에 안 쫓아가니까 생각이 움직이질 않아요. 물질에 쫓아갔을 때 생각이 움직이고, 생각이 움직였을 때 두려움이 생겨요. 생각을 거둬버리면 두려움 없어요. 이런 것도 말해주면 안 되는데, 이거예요. 그러니까 “아, 저거 무섭다” 그래서 저 보이는 걸 쫓아가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무섭다”하는 생각을 딱 걷어버려요. 그러면 두려운 거 없어요. 이걸 그래서 응심(凝心)이라 그래요, 응심. 마음을 거둬서 뭉친다고. 뭉칠 응(凝) 자가 있어요. 그러면 이 몸이 죽을 때, 이 몸이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떠날 때, 다 이게 관법(觀法)으로 석가모니 부처님 설법을 듣게 된다. 그러면 무한성색(無限聲色)이, 무한히 눈으로 보이는 거나 귀에 들리는 거나,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자기 고향 산천이요. 이거를 이런 물질을요, 이걸 생각으로 분별하면 이게 이제 물질이고 티끌인데, 생각으로 분별하지 않고 자기 본래 마음으로 딱 보면, 이것이 자기 고향 산천이다. 이걸 깨달아서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선지식(善知識)들이. “산하대지(山河大地), 우주만물(宇宙萬物)이 자기 고향 산천이다. 그런데 이걸 쫓아가면 내가 나그네가 돼가지고 거기 헤매고 다녀요. 이걸 생사윤회(生死輪廻)라고 한단 말이죠. 그래서 무한성세계(無限聲世界), 눈으로 볼 때마다 자기 고향 산천이니까 자기 눈이 맑아져, 또 귀로 들을 때마다 자기 고향 산천이니까 자기 귀가 맑아져. 그걸 청이목(淸耳目)이라 그래요. 이목을 맑힌다. 그러니까 허다천지(許多天地)가 일미타(一彌陀)라, 허다한 하늘과 땅이 한 아미타불뿐이다. 이렇게 보면 돼요. 허다천지일미타, 아미타. 허다(許多)라는 건 많고 많다 이 말이죠, 허다라는 건. 천지(天地), 하늘과 땅, 많고 많은 하늘, 많고 많은 땅이 전부 한 아미타불뿐이다. 이 법문은 조선시대 서산 스님이 하신 법문이에요. 모든 도인들이 “생사는 없고 불성은 둥글고 밝으니, 이 둥글고 밝은 불성에 딱 마음을 모아서 들어가면, 허다한 하늘 허다한 땅이 전부 아미타불 극락세계뿐이다” 박수와 함께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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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8월 16일 백중기도 4재 법문
동우스님 2025-08-16
안녕하십니까? 제가 막 떨고 있는 게 보이시나 봐요.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환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진관사 기획국장이면서 어린이법회 법사 소임을 보고 있는 동우라고 합니다. 2600년 전에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하신 진리의 말씀을 제가 이 자리에서 법문하게 된 인연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를 응원하러 아이들이 왔어요. 쟤네가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 눈앞에 우리 운산 법우님, 종민 법우님 다 이렇게 있습니다. 자 사분율장에 증일 비니라는 곳과 또 반니원경 유행경이라는 부처님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이제 입멸하시기, 돌아가시기 전에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제 열반에 드신다고 선언하신 것은 당신을 늘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또 귀의했던 많은 수행자들에겐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큰 소식이었는데요. 이 때문에 늘 부처님을 곁에서 시봉했던 부처님의 가장 가까이에서 시봉했던 아난 존자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늘 매일 슬퍼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매일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난 존자를 보고 지혜로운 장로 스님 한 분이 아난 존자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존자시여, 당신 지금 이렇게 울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제 마땅히 부처님께 여쭈어야 할 것, 물어야 할 것을 얼른 물어보십시오”라고 “지금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에 아난 존자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부처님께 다섯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부처님이 입멸하시면 저희는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내가 죽으면 그러니까 내가 입멸을 하면 너희들은 사념처(四念處)에 의지하여 머물고 수행하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념처라고 하면 신수심법(身受心法)에 대해서 관하고 의지해서 머물라는 뜻인데요. 이 ‘신(身)’이라는 것은 바로 몸을 이야기합니다. 이 몸의 호흡, 그리고 몸 내 안에 장기, 여러 가지 내 물질이라고 하는 이 몸을 관하고 거기에 머물러 수행하라는 말이 이제 신념처이고요. 더 나아가서는 몸의 부정함까지도 관하는 이런 수행법입니다. 이렇게 신수심법 가운데 신념처에 의지해 수행하라. 두 번째는 수념처. 수념처라고 하면 상대나 대상이나 어떤 경계에 당했을 때 내가 늘 좋다, 좋지 않다 싫다, 그저 그렇다, 또 좋지도 싫지도 않다라고 하는 그런 느낌을 받는 수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수념처이고요. 또 심념처라고 하는 것은 이제 오고 가는 마음의 인연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념처라고 하면 우주 만물, 그러니까 나라는 물질을 비롯한 이 우주 전체가 돌아가는 어떤 원리. 예를 들어서 생로병사하고 생주이멸하고 성주괴공한다는 우주 전체의 원리가 결국은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라는 사성제(四聖諦)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늘 그것이 항상하지 않다는 법을 여실히 보고 관찰하라는 이 사념처에 의지하라는 말을 하십니다. 첫 번째 질문이 이렇게 되고요. 두 번째 질문을 또 합니다. 중요한 5가지 질문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면 저희는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 수행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잘 아시겠지만 늘 1250인의 큰 아라한들을, 대단한 아라한들을 이렇게 거동하고 다니셨잖아요. 그래서 부처님 주변에는 부처님과 같이 깨달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난이 “누구를 의지해서 스승 삼아 수행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는데 부처님께서는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고 “너희들은 반드시 계율(戒律)을 의지하여 스승 삼아 살아라”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이계위사(以戒爲師)’라고 합니다. 그래서 “계율을 스승 삼아 수행하라”라고 말씀 합니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이제 세 번째 질문은 부처님께서 입멸을 하시면 저희가 부처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결집하고 또 만들어서 후대에 전해야 하는데 이런 경장이나 율장이나 논장과 같은 부처님 말씀은 저희들이 어떻게 시작해서 전해야 합니까?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합니까라는 뜻입니다. 이 말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고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즉 전문 용어로 이것도 뭐죠? ‘여시아문(如是我聞)’입니다. 그래서 아난이 내게 들은 말은 분명한 것이고 이것이 부처님 내가 직접 한 말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 어느 누구도 시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이 이제 세 번째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이제 네 번째 질문입니다. 네 번째 질문은 부처님 재세시에도 말을 안 듣는 비구들이 있었어요. 이제 말을 안 듣는 비구를 저희는 악성 비구라고 합니다. 악한 성품을 가진 비구예요. 여러분들 잘 알고 있는 악성 비구 중에 누구 있어요? 제바달다가 있어요. 그런데 제바달다 말고도 또 유명한 비구가 있는데 이름이 찬타비구입니다. 이 찬타비구는 부처님이 출가하시기 전부터 부처님을 모셨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왕자 시절부터 부처님을 모시고 부처님께서 이제 야쇼다라와 라홀라를 뒤로 하고 성을 넘어 말을 타고 깊은 산속의 수행처로 갔을 때 이 말을 끌었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찬타카라고도 알고 있고 한역해서 찬타라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찬타가 이제 부처님을 수행처에 안전히 모셔다 드리고 나서 부처님께서 이제 머리를 단번에 자르시고 당신이 갖고 있던 모든 금은 영락 보배에 걸치고 있던 것을 찬타에게 주고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찬타는 이것을 받고 돌아가서 부처님 출가하시는 것을 왕궁에 알리고 나자마자 바로 부처님을 따라 출가를 합니다. 그래서 이 찬타는 이제 비구가 그래서 됩니다. 수행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 찬타비구가 교만한 마음이 안에 있었어요. 어떤 교만한 마음이냐면 나는, 그러니까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시고 난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부처님께서 이제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난 다음에 찬타비구에게 이제 아주 교만한 마음이 생겼는데 그 마음이 뭐냐 하면 ‘나 이 찬타는 정각을 이루신 부처님을 출가시킨 사람이다’라는 교만한 마음이 안에 들었어요. 내가 모셨던 사람은 정각을 이룬 부처님이니 당신들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시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잘못을 해서 잘못을 꾸짖고 서로 모여서 대중이 함께 갈마를 할 때도 이 갈마를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마음대로 했습니다. 이런 악성 비구였어요. 그래서 부처님께 이제 묻습니다. 찬타라고 꼬집어서 얘기는 하지 않고 찬타 말고도 많은 악성 비구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악성 비구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자 부처님께서는 ‘묵빈대처(黙賓對處)하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묵빈대처라고 하는 것은 뭐죠? ‘말을 하지 말라’ 상대를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상대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 자숙해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생각을 본인이 분명히 할 것이니 절대로 상대에서 이야기하지 말라’라고 네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셨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 중요한 질문입니다. 아난이 부처님께 드린 마지막 질문은 ‘부처님께서 입멸하시면 저희는 어떻게 장례를 치러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나의 장례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장례에 준해서 치르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전륜성왕의 장래라는 것은 이제 돌아간 시신을 깨끗한 여러 겹의 천으로 싸서 그 위에 향유를 붓고요. 그다음에 전단향이라는 향으로 태워서 시신을 화장하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이 시신을 이제 화장하고 나면 사리가 나올 건데 이 사리를 분배하고 공양하는 것은 수행자가 하지 말고 재가자가 하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5가지 중요한 질문을 부처님께 드리고 또 답변을 받습니다. 경전에 이런 얘기 많이 나오죠. 시대가 흐리고 견해가 흐리고 생명이 흐리고 번뇌가 흐리고 또 중생이 흐린 시대를 오탁악세(五濁惡世)라고 하는데요. 이 오탁악세에서 요즘과 같이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서 ‘진짜인가? 이거 거짓인가? 저 말 맞나?’라고 하는 이 정의가 흐려지는 이 세상에서 부처님께서 남기신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라’라고 하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요즘 같아서는 정말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너무 초롱초롱하게 저를 보셔 가지고 제가 갑자기 어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자 이것은 이제 갑자기에요. 자 이것은 단어입니다. 선물이 여기 있습니다. 이 단어는 2025년도에 유행하는 단어이고요. 현재 진행형의 단어이고요. 굉장히 트렌디한 단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계율의 그것과도 맞닿아 있는 단어입니다. 자 힌트 나가겠습니다. 나에게 자극을 주거나 상처를 주지 않고 오히려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대표적으로 이제 에버랜드의 푸바오 루이바오 푸바오 중국 같지만 아이바오 루이바오 후이바오 같은 이런 팬더 귀여운 팬더, 그리고 집에서 기르고 있는 고양이 강아지 아니 햄스터 토끼 이런 반려동물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때 이 말을 씁니다. 순수하고 귀엽고 작고 소중한 것. 우리 여기 있는 법성 법우님에게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입니다. 이 단어 무엇일까요? 이거 못 맞출 줄 몰랐네요. 저 맞추실 줄 알아 가지고. 자 당황스러워요. 초성은 미음 히읗입니다. 미음 히읗. 제가 여기 손에 선물을 두 개나 가져왔는데. 아 모르시군요, 진짜. 아 정말 모르실 줄. 네, 이거는 이제. 아유 참. 어 그러니까 첫 자가 아니라 초성이 미음 히읗이라고요. 마하? 무흣 아닙니다. 갑자기 너무 당황스럽습니다. 자 이 말을요 어떨 때 쓰냐면 아 막 예쁜 아기가 막 이렇게 지나가잖아요. 우리 세준이 같은 이런 어린이들이 딱 지나가면 보기만 해도 너무 좋죠. 보기만 해도 너무 마음이 편안하고 지나가는 고양이나 강아지 이런 거 보면 작고 귀엽고 참 소중하다. 이럴 때 사람들은 ‘무해’한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어려워요? 자 그래서 아우 참 “세상 무해하다” 이런 말 하시잖아요. 그죠? “세상 무해하다. 아우 참 무해하다. 내게 무해한 사람” 오죽하면 오늘 뭐해가 아니라 “오늘 무해” 이런 말도 쓴(대요). 너무 스님이 트렌디한데 트렌디, 그래요. 자 그래요. 그래서 이 ‘무해’라는 단어가 ‘없을 무’자 ‘해칠 해’자를 씁니다. 해로움이 없다, 해침이 없다라는 뜻으로 TV 광고나 프로그램 SNS 등에 많이 썸네일로 쓰이고 있는 단어가 바로 없을 무자 해칠 해자의 무해입니다. 이런 무해한 것들이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유가 있는데요. 여기 진관사의 신도님들은 굳이 이 단어에 사로잡히지 않으신 것 같아요. 아무도. 자 어쨌든 이 무해한 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안정적이게 해주고 지친 마음을 회복시키거나 재충전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갖고 있습니다. 집에 가서 고양이 잠깐만 만져도 밖에서 있었던 많은 그런 것들이 없어지는 건 이 무해한 느낌을 이 반려동물에게 받기 때문인 거거든요. 그렇답니다. 그래서 해롭지 않은 사람 나를 해치지 않고 보기만 봐도 안정적이게 느끼게 하는 이런 무해한 사람의 원조 누구일까요? 석가모니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무해한 분의 원조라고 이야기 드릴 수 있는 한 일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늘 이런 악성 비구들에게 시달림을 당했는데 제가 아까 말씀드린 제바달다라는 비구가 늘 교단의 중심에 서서 본인이 부처님을 제끼고 이 위에 서서 리더가 되기를 늘 원했어요. 그래서 이 많은 부처님을 음해하는 행위들을 합니다. 지나가시는 길에 언덕에서 바위를 굴려서 부처님 몸에 흉터를 내기도 했던 그런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죄를 짓기도 했고요. 어느 날 이제 이 제바달다가 아사세왕이라는 왕을 시켜서 또 부처님을 음해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시켰냐면 아사세왕에게 ‘큰 코끼리를 모집해서 그들에게 독한 술을 먹여라. 독한 술을 먹여가지고 그들이 취해서 부처님 가는 길에 풀어놓아라’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가는 길에 이 술 취한 코끼리를 아사세왕으로 하여금 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저쪽에서 이제 술 취한 코끼리들이 막 다가오는데 부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전혀 미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부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다 숨죽여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는데 부처님만은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점차 코끼리는 다가오다가 점차 걸음을 느릿하게 걷고 마침내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또 부처님 발을 핥고 그 위에 있는 먼지를 털어내기까지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떠한 성난 그리고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이것을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자비의 힘으로, 무해한 힘으로, 무해하다는 건 생명을 존중하는 힘입니다. 이 힘으로 그 코끼리를 제압했다는 것이 이제 부처님께서 무해한 존재의 원조라고 제가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무해한 존재 저도 되고 싶죠. 제가 집에 가면 아이들이 방문을 이제 닫고 들어간다든가 혹은 집에 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든가 이것은 뭔가 나를 해로운 존재로 여겨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많은 가족 사이에서도 도반 사이에서도 사회에서도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럼 결국 그 답은 불교 안에 있고요. 그 무해한 존재의 원조인 부처님 가르침 안에 있다는 것을 저희는 꼭 알아야 합니다. 무해한 존재가 되는 첫 번째 방법. 자 생명을 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나에게 손만 올리고 잠깐 이렇게만 해도 위협을 느낍니다. 굉장히 긴장되고 뭔가 생명의 위협을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해치려는 마음의 에너지가 없으면 그런 마음이 들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에너지는 어떻게 쌓이냐면 작은 생명부터 하찮고 소홀히 여기면서 괜히 죽이지 않는 그런 마음에서부터 이 부드럽고 생명을 존엄하는 에너지는 나옵니다. 내가 어떤 생명을 존엄하는 에너지가 내 마음 깊이 쌓이면 사람들은 나를 해로운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뭐라고요? 생명을 해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다른 사람의 소유를 해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소유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근데 그 못된 마음이 있어요.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거’ 이 마음 있죠.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거라는 그런 마음을 저는 도둑 마음이라고 늘 얘기합니다. 그리고 하열한 감정 가운데 가장 하열한 감정은 시기심, 질투심, 경쟁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지금 도둑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보면서 뺏으려는 에너지가 없으면 나를 안전한 존재로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혹시 아까 내가 맡아놨던 자리에 누군가 앉았더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세 번째 관계와 신뢰를 해치지 않습니다. 관계와 신뢰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경향이 있어요. 밖에서 좋은 사람인데 집에만 오면 막 쌩쌩하고 말과 몸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소중한 관계, 사소한 관계, 귀한 사람일수록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에서 사람들은 나를 믿을 수 있는 존재로 여깁니다. 네 번째 방법입니다. 말로 상대의 마음을 해치지 말라입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죠? 말에는 힘이 있어서 사람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합니다. 그래서 말로는 또 병을 치유할 수도 있습니다. 깊은 병을 치료할 수 있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말로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지금 내가 이거 할 말인지 안 할 말인지 잠깐만 생각해도 이 말로 사람을 해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과 대화를 할 때 이 생각만 잠깐 해도 사람들은 나와 대화하고 싶어 하고 나를 편안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는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을 해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술이나 마약, 게임 이런 중독성 있는 것들에 대해서 나를 보호하는 거예요. 특히 우리 어린이들 게임, 쇼츠, 유튜브 이런 것들에 내가 늘 중독되어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것은 나를 해칠 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도 불안하게 하는 그런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나를 소중히 생각하면 당연히 주변도 편안한 분위기로 바뀌고 나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그런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무해한 사람이 되는 다섯 가지 방법 어디 뭐 비슷하죠?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오계(五戒)를 현대적으로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계율은 부처님 재세시부터 또 부처님의 석가모니 부처님 그전부터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한결같이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이것을 5가지로 풀고, 10가지로 풀고, 8가지로 풀고 우리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240가지, 348개까지 여러 가지로 이렇게 방대하게 풀어놓았는데요. 결국은 과거의 부처님들이 말씀하셨던 ‘모든 악한 짓을 짓지 말고 선하고 착한 것을 받들어 행하라.’ ‘그것을 꼭 지켜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와 진배없느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말로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라고 합니다. 이 칠불통계게, 어쨌든 오계, 이런 말들이 백중 4재와 무슨 상관이 있어야죠? 그죠. 지금 백중 4재와 무슨 상관이에요? 계를 지키는 것과 나의 부모님을, 나의 조상님을 천도시키는 것은 굉장히 큰 연관이 있습니다. 백중의 49재, 1재부터 7재까지의 재. 그리고 진관사의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 그리고 여러분 많이 들어보셨던 천도재, 영산재, 예수, 생전예수 재. 이럴 때에 마지막에 붙는 재자는요. 유교에서 말하는 제사(祭事)의 제(祭)자가 아닙니다. 이 재(齋)자는 공손이 받들어 모신다는 뜻의 재자이고요. 첫 번째 의미 공손히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가 있고요. 두 번째 의미는 재계(齋戒)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재계하다의 이 재자는 가지런히, 계를 가지런히 반듯하게 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백중 49재나 천도재 할 때나 영산재, 수륙재, 모든 재가 들어가는. 하다못해 불교 달력에서 관음재일, 미타재일, 지장재일이라는 재자는 모두 이 재개의 재자를 씁니다. 육재일이 있어요. 지장보살 본원경에는 십재일이 나오는데 부처님 재세 시에는 육재일을 모든 수행자가 지켰습니다. 그 육재일은 매달 8일 14일 15일 23일 그리고 그믐 날, 그믐 전날입니다. 이 육재일을 반듯하게 지켜서 계를 가지런히 하라는 뜻이 담겨 있거든요. 그래서 백중에서 계를 가지런히 한다는 것은 당연히 여기 오시는 분들께서 계를 지키셔야 하는 기간이라는 뜻입니다. 반듯하게 계를 지키는 것이, 지키는 그 공덕이 온전히 나의 조상과 나의 부모에게 전해져서 그 공덕으로 그들이 해탈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이 선택한 진관사는요. 1년 365일 가운데, 제가 아까 이제 들어오기 전에 샅샅이 따져 보니까 한 300일 정도는 계를 지켜야 되는 날이더라고요.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 학교. 수륙재 할 때 수륙재 학교. 그다음에 백중 있죠. 그리고 그 중간에 초하루 신중 삼일 기도 있죠. 지장기도 있죠. 수능 엄마들 수능 기도해야 되죠. 이거 다 따져보니까 300일 정도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마땅히 절에 오기 전에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 걸리는 날 아닌가? 오늘 뭐 먹어도 되나? 저녁에 뭐 마셔도 되나? 이러다가 그다음 날 생각하죠. 나 어제 그거 마셨는데 가도 될까, 안 될까? 고민하셔야 됩니다. 진관사가 365일 가운데 300일 동안이나 재계할 수 있는 날들을 여러분 알게 모르게 만들어 놨어요. 모르셨죠? 그래서 사실은 매일 지키셔야 합니다. 매일 지키는 공덕으로 저희가 이제 기도 삼고 또 그렇게 하는데, 사실은 이 계를 지키면요 내가 어디 양심에 걸리거나 찔리거나 신경 쓰는 사람이 있거나 후회되는 일이 없고, 또 늘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긴장되지 않기 때문에 내 스스로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진관사를 선택한 또 여러분들이 이 계율 도량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 오셔서 또 계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1977년에 자운율사라고 하는 큰 율사 스님께서 진관사에 입적하신 노스님인 진관스님과 함께 진관사에서 국행수륙재를 다시 복원해서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리고 작년에 2024년에 무봉 성우 큰스님께서는 저희 진관사의 회주스님께 또 전계를 하셨습니다. 계율 계맥을 전승하셨습니다. 이렇게 계율이 전승되어지는 도량도 있고요. 또 더 멀리 조금 가면 진관사 북한산 자락에 비봉이 있습니다. 이 비봉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시죠? 신라 진흥왕입니다. 이 비봉의 주인공은 신라 진흥왕인데 이 신라의 신라가 계를 이야기하는 산스크리트어인 ‘실라(śīla)’에서 차용해서 신라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예전에 일타스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이 비봉 아래에 자리한 진관사는 계율 도량일 수밖에 없다. 조금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가벼우면서도 뭔가 ‘이 도량은 계율을 지키는 도량이니까 불보살과 호법 선신이 늘 보호하시고 호념하시는 곳이지’라는 안전한 생각을 갖고 다니시면 좋겠습니다. 자 그래서 이렇게 제가 계율을 지키는 것은, 내가 계율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내가 지키는 바르고 착한 에너지의 공덕으로 나의 부모님이 모든 그 계율의 공덕을 통해 천도 되고 좋은 곳에 왕생하신다라는 것으로 이런 의미를 전달할 수가 있겠습니다. 계율로 청정해진 마음으로 일심으로 정성을 들여서 그 일심으로 드린 정성으로 많은 분들이 또 조상님들께서 업장이 소멸되기를 발원합니다. 몸과 말과 생각으로 한량없이 지은 죄와 무수한 원결이 풀어져서 보리심으로 큰 서원을 세우시고 나쁜 짓 멀리하고 다시 짓지 아니한다는 생각을 하십시오. 또한 보살도를 항상 닦아서 물러남이 없는 정각을 이루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큰 서원을 함께 세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이 회향이 과거 모든 부처님들께서 하셨던 회향과 같기를 발원하며 오늘 4재 <계율, 공덕을 짓는 첫 마음>이라는 법문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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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8월 9일 백중기도 3재 법문
문광스님 2025-08-09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문광입니다. 예, 날이 꽤 더웠는데 오늘은 비도 오고, 우리 북한산의 천년 고찰 진관사에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참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법회를 많이 해봤는데, 이렇게 법당에 들어올 때 이렇게 바이올린 첼로로 연주를 하는, 이런 멋있는 그런 형태로 들어온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 좋았죠, 네. 우리 진관사는 지금 한국 불교에서 대한민국 전체의 영빈관이라고 할 정도로, 국외에 어떤 영부인이나 아주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주요한 분들이 오시면 서울에서 진관사를 다 가보라고 하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참 앞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테고 할 텐데, 이제 그래서 많은 분들을 의전을 하시고 그렇죠? 그래서 요즘 이제 사찰 음식도 진관사에 오시면 오고, 여러분 저기 오시다 보면 저 산 쪽에 능선에서 딱 내려와서 그쪽을 딱 오는 순간 북한산이 보이면서 이 진관사가 보일 때 마음이 웅장해지고, 막 업장이 녹는 것 같아요. 그렇죠? 아주 이 진관사는 우리 지금 이제 앞으로 한국 불교의 모든 것을 다 담보하고 있는 그런 장소입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 때도 서울을 수호하는 동서남북의 서쪽을 담당했던 곳이 진관사고, 동쪽에 불암사, 북쪽에 북한산 승가사, 남쪽에 이제 삼막사 이렇게 있었어요. 근데 이제 이 진관사가 비구니 스님들께서 여기 계시게 된다는 것도 이 역사적으로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역학적으로 여기가 이제 서북방 정도 되니까 건방(乾方) 정도 될 것 같아요. 이게 이제 특히나 남성적이고 ‘무(武)’ 이런 부분으로 해서 지키는 이런 부분인 것 같은데, 세상이 바뀌었어요. 여기에 이제 우리 진관스님부터 해서 지금 회주이신 계호스님, 우리 주지이신 법해스님, 여기 많은 비구니 스님, 대중 스님들이 계신데, 스님들이 여기에서 새롭게 세상을 펼쳐 나가고 있는 것 자체가 탄허스님이 말씀하셨던 1984년 갑자년 하원 갑자부터 건도수(乾度數)가 곤도(坤度)로 바뀌었다. 음양이 이렇게 바뀌어 가는 과정에 있고, 세상이 한 번 바뀐다라고 하셨는데, 그런 걸 대표하는 곳이 바로 이 진관사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까? 우리나라 계룡산에 동학사가 있는데, 경허스님 계셨던 곳이에요. 만공스님이 출가하셨던 곳이고. 그런데 거기가 지금 비구니 스님의 대표적인 강원으로 동학사가 있듯이, 계룡산에, 서울에 이 서북방의 서쪽을 담당하고 있는 이 진관사에 비구니 스님들께서 이렇게 한국 불교가 어떠한 것이 한국 불교다, 이렇게 보여주시고, 여기에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가 있었어요. 조선 시대 때도 여기를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이었고, 여기에 백초월스님의 태극기가 있고, 여기에 명상센터가 있고, 그다음에 여기에 한국의 사찰 음식이 있고, 그다음에 여기에 한국의 산하대지를 다 보여주고, 여기에서 어떤 의식을 하고, 예불을 어떻게 하고, 이런 모습들을 다 보여주는 것이 이 진관사입니다. 그래서 아마 앞으로 이제 진관사에서 하시고 있는 모든 이제 불법 의식과 생활하는 모습, 의식주까지. 들어오는 데 보면 한옥마을도 있고요. 다 갖추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 불교를 느낄 때, 서울에만 딱 왔다가 그냥 돌아가야 된다는 분은 진관사 보여드리면 한국 산지가람과 이 청정하게 생활하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게 되는 그런 곳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최근에 어떤 주지스님한테 말씀을 드렸어요. 사찰에 와서 점심을 드시고 나서 스님한테 주지한테 질문을 하더랍니다. 스님, 사찰 음식은 언제 나옵니까? 그러대. 이제 전 세계가 베지테리언도 많고 한데, 건강하고 어떻게 육식을 좀 줄이고 하고 하는 데 있어서 한국의 사찰 음식이 전 세계의 음식 문화의 큰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숭산스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소는 송곳니가 없다. 육식 안 한다는 뜻이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호랑이는 다 송곳니 같은 이빨밖에 없다. 채식 안 한다는 거예요. 사람은 송곳니 4개다 이거야. 그러면 12.5%. 체질 떠나서 그 이상 고기 먹는 건 맞지 않다. 숭산스님 그러셨어요. 근데 지금은 우리가 너무 고기를 많이 먹고, 그렇게 소가 뭐 고기 먹고 힘냅니까? 그렇죠? 자기 체질 음식을 먹되, 자연과 더불어서 할 수 있는 그 청정한 마음은 우리가 욕심을 조금 버리고, 청정한 산에서 나오는 저 우리 사찰에서 스님들 공부하시고 수행하실 때, 수행을 위해서 드셨던 그 음식들을 드시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이 말이죠. 그래서 참 우리 진관사에 오면 저는 이제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한국 불교가 전 세계에 이제, 전 세계가 명상 부흥이 일어나서 명상이 열풍인데, 우리 진관사가 있어서 굉장히 아름답구나. 앞으로 이제 본보기를 보여주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우리 주지스님께서 고향 선배님이세요. 그래가지고 처음에는 몰랐는데, 고향 선배님인 걸 알고 난 다음부터는 전화가 와서 “스님 좀 한번 와야 되지 않겠냐?” 그러면 그냥 바로 여기 와 있습니다, 이미. 제가 미국에 초청받아서 한번 갔는데요. 미국에서 뭐라고 그러냐면 국적은 바꿀 수 있으나 학연과 지연은 못 바꿉니다. 미국에서도 미국 영주권 가진 분들도 대학 선배, 고향 선배가 오라면 바로 가야 되지, 안 그러면 포띵즈(four things), 네 가지가 없다고 욕을 듣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근데 이제 고향 선배님이셔가지고 우리 스님이 이렇게 저기하는가 했는데, 그거가 아니라 뭔가 스님에게 특별한 힘이 있으신 것 같아요. 스님이 말씀을 하면 그냥 따라 해야 되는 어떤 기운이 있는 거 맞죠? 뭔가 어떤 파워가 있어요. 그래서 그 저 스님, 우리 스님의 어떤 그 에너지와 파워가 어디서 오시는가 몰랐는데, 최근에 같이 공양할 기회가 있었는데, 스님께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묘장구대다라니 대비주를 108독을 10년 넘게 해오셨고, 그 이전에도 하루 종일, 지금은 이제 불사나 사중에 일이 바쁘셔가지고 108독 하시는 거고, 그전에는 그렇게 정진을 많이 하셨대요. 그러니까 아마 매일 정진하셨던 그 수행력, 그 어떤 정진력의 힘이 이렇게 대가람을 이제 중창해서 이렇게 해 주시는 힘이었구나. 내가 그냥 단순하게 고향 선배님이기 때문에 여기에 이제 끌려온 건 아니다,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맞습니까? 그래서 스님께서 이렇게 한마디 하시면 이거 다 따라 하시는 거 이거 내가 봤어요. 뭐 절로 절로? 저절로! 이거 다 따라 하게 돼 있어요. 그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하셨으면, 그런 기도를 하셔야 돼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보면, 하나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모든 것을 다 하시는 우리 진관사 대중 스님들, 우리 회주스님, 주지스님을 비롯해서 진관사 대중 스님에게 정말 수희찬탄(隨喜讚嘆)해 드리기 위해서 스님들께 박수를 좀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이 백중 기도 저기를 쭉 봤어요. 그 법사 스님들하고 이렇게 하는 행사 이런 걸 봤는데, 제가 오는 날은 이 클래식을 이렇게 하게 됐다. 여기 우리 대한민국의 영빈관이잖아요. 의전이 제일 아주 훌륭하신데 말이죠. 역시 이 법사 스님이 클래시컬하고 엘레강스하고 인텔리젠트 하니까, 이렇게 클래식을 이렇게 딱 해서 해주시는구나, 저 혼자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아주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좋고요. 이렇게 이 타이스의 명상곡이죠? 예, 우리 오늘 연주해 주셨던 세 분의 우리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산하대지에 맑고 청정한 그런 대지에 이렇게 와서, 이런 영가님들도 업장이 소멸되고 천도가 되시는 인연법이 되지 않겠냐, 이런 생각을 해요. 진관사 올 때마다 이 맑고 깨끗한 청정 도량에 오는 그 기분을 느끼면서, 우리 제가 모셨던 혜암 큰스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도량에서 도량이 깨끗하지 못하면 귀신이 깔봐서 정진 못한다, 그러셨어요. 그래서 항상 도량이 깨끗했고, 제가 해인사 원당하면서 출가했는데, 하도 쓸고 닦고 풀을 뽑아가지고 밥알이 떨어진, 땅에 떨어진 밥알도 줏어 먹을 수 있다, 원당하면 그런 얘기했는데, 그때 이후로 저는 진관사에 오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주 청정하구나, 여기가 아주 가장 청정한 곳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탄허스님께서 여기를 중창하신 진관스님께 여기를 이제 주지를 맡아서 하시게 됐는데, 탄허스님도 이제 앞으로 이제 비구니 스님이 총무원장 하는 시절이 온다. 본사 주지하는 시절이 온다, 그러셨어요. 50~60년 전에 이제 음양이 바뀌어서 그럴 시절이 온다, 그러셨는데, 이번에 여러분, 우리 회주이신 계호스님께서 법계위원이 되셨어요.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렇죠? 이거는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비구 스님, 비구니 스님 전체 계를 받을 때, 이 스님들께서 오실 때 칠증사가 계시고, 처음 이제 스님들이 전부 비구 스님들이 다 법계위원으로 계셨는데, 비구니 스님 세 분, 그죠? 우리 진관사의 회주이신 계호스님과 전 비구니회 회장이셨던 본각스님, 현재 비구니회 회장이신 광용스님, 이렇게 세 분이 법계위원이 되셔가지고, 이제 수계 살림을 할 때 비구니 스님들이 이제 법계위원으로 오신다는 거는 이게 이제 세상이 역학적으로 다 바뀌고 있다고 하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시절 인연이 도래했고, 이제 세상이 많이 변화될 겁니다. 그리고 저도 이제 탄허스님 연구를 해서 앞으로 이제 그런 시절이 오겠구나 하는 걸 알게 됐는데요. 우리 진관스님께 탄허스님이 그러셨대요. 주지를 하고 계시니까, 그때는 뭐 비구니 스님 불사를 잘해놓고 하면 또 비구니 스님 보고 나가라, 그런 적도 있었고, 그래가지고 토삼굴이라고, “토끼도 굴은 3개를 파놓고 사니까, 스님도 어디 암자같이 절을 하나 해라, 혹시나 모르니까” 그 세월의 그런 부분을 다 아시면서도 탄허스님이 그러셨대요. 그런데 진관스님이 “스님, 저는 그런 거 안 해도 됩니다” 이랬대요. 끝까지 진관사에 딱 사시면서 원력불사를 다 하셨어요, 끝까지 해 주셨죠. 그렇죠? 예, 아주 멋있습니다. 스님 그러셨고, 우리 계호스님께 저 이거 지금 오늘 아침에 우리 회주스님께 염주도 받았어요. 그리고 우리 그 자운 큰스님, 율사 스님께서 시봉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우리 계호스님 시봉을 받으시더니 너무 시봉을 잘하신다고, 어디서 받으셨는지 롤렉스 시계를 선물을 해 주셔가지고, 그걸 지금 보관을 하고 계신데, 제가 사진도 찍었어요. 그 정도로 스님께서 여법하게 큰 스님 시봉도 잘 하시고, 그래서 인증을 받으신 거라. 예, 그리고 우리 주지스님도, 어, 예전에 이 진관스님을 여기에 주지 임명을 하셨던 서운 큰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스님이 처음에 딱 오시자마자 진관스님에게 스님을 평가하시기를 딱 그러셨대요. “문중을 책임질 스님이 왔다” 그러셨대요. 박수 한번 보내주시겠어요? 자, 이제 이 정도 되면 수십 년간 원력 불사를 하셔서, 하늘에서 불조 혜명을 이어가지고, 여기에 이 한국 불교의 이 도량으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지라고 하는 어떤 불보살님의 천명을 받고 오신 분들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고요. 이제 이 진관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불사와 법회들은 한국 불교의 모델이 될 거고, 모범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이대로만 따라하면 매뉴얼이 다 되리라고 보고요. 여기서 여러분, 이 좋은 시절 인연에 이 백중 기도의 천도를 이렇게 해드리는데, 열심히 여러분들 기도를 하셔가지고, 지금 이 다겁생 내의 업장을 다 소멸하고, 국가를 청정하고, 이 우주 법계를 청정히 하는 데, 아주 여러분들도 여기서 열심히 기도를 하셔가지고, 세상을 한번 맑고 청정하게 만들어 봅시다. 어떻습니까? 아, 여러분, 예전에는 집에 판검사가 하나 정도 있어야 되고, 의사가 한 명 정도 있어야 된다, 이랬거든요. 몰라서 하는 말이라요. 집에 스님이 한 명 있어야 돼요. 우리 여기 덕현스님 계시잖아요. 이런 염불을 이렇게 잘하시는 스님이 한 분 계셔가지고, 늘 염불을 해 주시면 어떻게 될까요? 구족이 승천하는 거예요, 집에. 맞죠? 누대에 그 수없이 많은 조상님들 천도 다 해드리고, 여러분, 우리 유교는 이제 제사를 매일 지내지만, 매번 지내지만, 바깥에 있는 유주무주 고혼 영가, 애원 영가 다 천도하기는 힘들단 말이죠. 그래서 이 고시례를 하고, 바깥에 헌식을 하지만, 우리 이런 청정한 도량에서는 스님들께서 지금 여기에 영가 위패 모셔놓은 많은 영가님들뿐만 아니라, 다겁생 내의 우리의 조상님들, 윗대 어른들 다 같이 천도를 해드릴 수 있는 역량이 있고, 그런 원력이 있단 말이죠. 거기에 불보살님들의 가피가 있기 때문에, 이런 데서 도량에서 천도들을 지내고, 백중 기도를 하게 되면, 여러분, 수도 없이 많은 영가님들이 천도가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도 있지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영가님들이 사실 알고 보면 전생에 우리 부모님이었고, 조상님들이었고, 그리고 알고 보면 그게 전생의 저였죠, 나 자신이에요. 맞죠? 전생의 나 자신입니다. 내 영가입니다, 내 영가. 그러니까 내가 나를 닦는 것이기도 하고요. 주변에 있었던 인연이 있었던 모든 은혜 빚 갚고, 원수 빚 갚고, 다 빚을 갚는 그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천도재라고 하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여러분, 이게 아주 큰일입니다. 제가 몇 번 말씀을 드렸는데요. 제가 해인사 원당암에서 위패를 많이 썼어요. 영가님 위패를 많이 쓰고, 만년 위패가 있거든요. 위패를 제가 직접 썼어요. 사미 때부터 위패를 많이 썼는데, 위패를 쓰고, 제사도 많이 지내고, 이렇게 해가지고, 제가 그 영가님 덕을 좀 봐가지고, 지금 조금 이렇게 좋지 않나 싶어요. 제가 위패를 수도 없이 많이 썼는데, 하루는 혜암 큰스님 모셨던 미속을 해서 위패를 쓰고, 밤에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이제 2시 40분에 일어나서 새벽 예불을 도량석 치고 해야 되는데, 1시쯤 갑자기 제가 일어나게 됐어요. 갑자기 일어나게 돼 가지고, 나도 모르게 위패 써놓은 걸 만지다가 위패가 훌 흩어져 버렸어요. 흩어져가지고, ‘내가 왜 이러지 갑자기? 이걸 내가 왜 위패를 손을 왜 대지’ 해서 다시 위패 순서대로 이렇게 맞추다 보니까, 번호가 하나 빠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대장을 보니까, 대장을 종이를 두 장 넘긴 거예요. 번호가 하나 빠졌어요. 그래서 그 복위자 해서 부모님 영가 위패를 안 쓴 거예요. 그래서 내가 깜짝 놀라서, 내가 인사를, 기도를 했어요. 죄송합니다. 영가님이 이렇게 위패를 자제분들이 다 모셔가지고 이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위패를 안 써서, 내 거 왜 안 써주노 이러신 것 같다는 거예요, 느낌이.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위패를 쓸 때, 야, 이거 정말 빠짐없이, 글자 한 자 틀린 거 없이, 정확하게 다시 썼나 안 썼나,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굉장히 그렇게 철저하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 보십시오. 이 좋은 도량에 이렇게 위패를 모셔서 이렇게 드리는데, 자제분들이 접수를 했는데, 저기 이름이 빠져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죠? 여러분,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요. 여기 들어오는데 입장권 끊어놨는데, 중간에 못 들어오셨다 이거야. 그러니까 스님, 빨리 일어나서 내 거 써달라, 이런 의미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아주 모골이 송연했어요. 그다음부터는 얼마나 열심히 영가님들 위패를 이렇게 하고, 천도재를 지낼 때 지극 정성으로 하게 됐어요. 여러분, 이게 보이지 않는 세계라 그래서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옛날 큰스님들 말씀이, 영가님들 도움을 좀 받을 줄 알아야 된다 그래요. 내가 이게 살아계신 부모님은 몸에 한계가 있어서, 자제분들 이렇게 여러분 항상 옆에 있지를 못하지만, 영가님들은 말이죠. 오신통(五神通)을 하잖아요. 천이통, 신족통, 천안통 다 있단 말이에요. 영가님들 몸이 없으니까 멀리 있는 거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타심통도 되고, 다 돼요. 영가님들도 다 오신통 다 한단 말이죠. 그래서 자제분들이 제사를 지내고, 천도재를 지내고, 이렇게 하게 되면은 다 오셔가지고 도와주신다 이거예요. 모든 거는 여러분 인과응보이기 때문에, 과보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유교의 공자님 말씀도,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은 여부제(如不祭)라는, 제사 안 지낸 거와 같다는 거예요. 우리 부모님 제사를 어딘가에서 지내고 있어도 내가 참여하지 않으면 영가님은 제삿밥을 드셨어도 나는 제사 안 지낸 것 같다. 가피를 못 받는다, 음복 못한다, 이렇게 논어에 나와 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예를 들면, 내가 제사를 못 지내더라도 망배(望拜)를 하는 거예요. 제사 지내는 시간에 멀리서 그쪽을 향해가지고 절을 합니다. 시간에 맞춰서. 그러면 영가님들은 다 보신다 이거예요.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그래서 예를 들면 49재 지낼 때도, 내가 그때는 초재, 막재하고, 몇 번 못 오게 되면, 그 어떠한 장소에서라도 망배를 하셔라 이거예요. 그럼 내가 제사에 참여하는 그런 방식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만큼 이렇게 과보가 분명한 것이 바로 이 제사이거든요. 그러면 제가 인도네시아에 예전에 지진났을 때, 2014년에 지진 났을 때, 제가 의견을 제시해서, 우리가 절에서 우리 절에 있는 스님들이 복위자가 돼가지고, 그때 세상을 떠나신 모든 영가님들, 우리가 49재를 지내줬어요. 갑자기 사고나 불의의 어떤 그런 부분으로 인해 가지고 영가가 되셨는데, 그분들이 다 다시 세상에 오실 거 아닙니까? 그분들에게 놀라고, 황망하고, 그다음에 예를 들면 원한이 있다든지, 이렇게 돼 있으면, 그걸 다 천도를 해드려야, 다음 생에 이 세상이 청정하고 맑고 깨끗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거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다 같이 해야 될 일이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같이 제사를 지내서, 열심히 해서, 유주무주 영가님들까지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건, 바로 우리 전 세계에 우리 사찰이 이걸 해줄 수 있다. 한국의 사찰이 해줄 수 있다, 이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이 물어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우리가 이거 한국말로 이렇게 하면은, 그걸 알아듣고 오십니까? 이러죠.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이제 전문 용어로 하는 말이 있죠. 귀신같이 알고 온다. 마음법이니까, 마음법이니까, 다 아시고 오셔가지고, 다 죄를 다 흠향하신다 이거죠. 마음이 통하면 다 되기 때문에, 그때 인도네시아에서 지진으로, 해일로 돌아가신 분들 영가님들 다 모시겠습니다. 그러면 언어가 달라도 다 아시고 오신다 이거요. 그렇게 이 법이 그런 법입니다. 일심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법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제사를 지낼 때 어떻게 하셔야 되냐면, 이제 49재 때 기도하실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원력을 세워서 기도를 하시되, 이 기도할 때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념이 지속돼서 무심삼매가 돼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게 중요합니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어떤 말이 있냐면, 이번 생에 지은 업장은 이번 생에 기도로 다 업을 다 소멸할 수 있대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들. 여러분 다 기억하시잖아요. 옛날에 힘든 일이 있었던 거,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거, 내가 예를 들면 참회할 일이 있었던 거, 다 기억하잖아요? 내가 60 경계로 다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그걸 다 발로 참회해서, 참회 기도를 하고, 다 기도를 하면, 다 업장을 소멸할 수 있답니다. 그러나 다겁생 내 죄업장을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기억도 못하는 것들. 칠식, 팔식, 아뢰야식에 있는, 이 수없이 많은 나의 전생 전생에 있었던 수없이 많은 생에 있었던 과보들, 업장들, 나의 원한들,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소멸할 수 있겠느냐. 삼매에 드셔야 된다는 거예요. 선정삼매에 들어가가지고, 그 칠식, 팔식 아뢰야식 있는 데까지 들어가서, 거기에서 이 업을 녹여내는데, 그게 바로 우리 참선하실 때 말씀하시는, ‘모기가 솥뚜껑을 뚫고 들어가듯이’라는 말이 있어요. 선정삼매로, 선정력으로, 정진력으로, 무심으로, 그걸 뚫고, 일념으로 염불을 하시고, 기도를 하시면, 나도 모르게 글로 쑥 들어가게 된단 말이죠. 그기에 쑥 들어가게 되면은, 내가 모르던 컴퓨터 파일 안에 들어가고, 들어가면, 그 깊이 깊이 있는 하드에 들어 있는 그 업장들이 딱 랑데뷰가 되면서, 그게 딱 녹습니다. 그럴 때 일어나는 현상들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든지, 뭔지 모르는데 가슴이 이렇게 벅차다든지, 뭔가 가슴이, 머리가 시원하다든지, 아니면 꿈에 봤는데 뭐가 빛이 보인다든지, 그러니까 지금 우리 현상적으로도 육식 경계로 잘 모르는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들이 일어난다 이거죠. 그러면 아, 내가 나도 모르는 다겁생 내에 어떤 이런 업들이 소멸됐구나. 이렇게 아시면 된다는 거죠. 그래서 기도를 하실 때는 단순하게 영가님들 천도 시켜드린다, 그 정도 생각으로 하실 게 아니라, 나와 인연이 있었던, 내가 은혜 갚았던, 은혜 입었던 모든 분들의 그 은혜에도 감사를 드리고, 업에도, 원한진 것도 다 풀고, 내가 전생에 있었던 나 스스로의 장애들, 내 마음이 평온하지 못해서 생겼던 모든 것까지, 총체적으로 기도를 다 한다 생각하시고, 이걸 이제 기도를 하셔서 녹여내셔야 된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우란분절이라고 했을 때, 그 근원이 부처님의 제자이신 신통 제일인 목련존자에게서부터 비롯됐는데, 신통이 가장 좋은 목련존자마저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정에 들어서 쫙 보니까, 28천 하늘에도 안 계시고, 다시 태어나신 것도 아니고, 지옥에 봐도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아무리 봐도 찾을 수가 없어서 부처님한테 가서, “어머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니까, 부처님 말씀이, “신통제일 목련존자도 보지 못한다” 그래요. 오무간지옥에 떨어져 있으면, 무간지옥이 다섯 군데가 있는데, 오무간지옥에 떨어져 있으면 신통력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무간이라고 하는 게, 아비지옥이라고 하는 게, ‘아’자라고 하는 게, 아미타, 아쇼카 해가지고 부정, 없다는 뜻이잖아요. 뭐가 없냐, 틈이 없다는 거예요, 무간지옥이. 틈이 없다는 건 뭐냐 하면, 그 무간지옥에 한 명이 있으면 한 명만 딱 아주 그냥 아주 힘들게 살 수 있는 공간밖에 틈이 없대요, 공간이. 100명이 살면은 100명이 있을 딱 그 틈 없이 빡빡하게 돼 있고, 천 명이 있으면 천 명이, 공간적으로 틈이 없는 곳이 무간지옥이고, 시간적으로도 틈이 없대요. 쉴 틈이 없답니다. 그게 무간지옥인데, 그때 종을 치면 잠시 쉰대요. 우리가 이 종을 쳐가지고, 여러분, 종송에 나오지 않습니까? 이지옥출삼계, 그죠? 파지옥진언. 지옥을 파하는 진언을 왜 하느냐? 종을 칠 때 무간지옥에 있는 그 지옥 중생들이 잠시 쉴 수 있대요. 근데 거기에 있는 중생들, 거기에 있는 분들은 우리가 일반적인 선정으로 볼 수가 없대요. 그래서 목련존자도 그 선정에 들어서 못 봐서 어떻게 했느냐, 석 달 안거를 놔서, 스님들께서 정진을 쫙 하셔가지고, 석 달 안거하셨던 개인적인 선정이 아니라, 모든 대중들의 선정력을 다 총동원해서, 마지막 백중날, 그날 집중적으로 선정의 힘으로 무간지옥을 뚫고 들어가서, 거기에 계신 분들을, 지옥 중생들을 제도한다 이거예요. 그게 백중이에요. 그러니까 이 많은 대중들이 기도를, 정진을 해서, 그날은 선정력을 바탕으로 해서, 칠식, 아뢰야식, 팔식, 여기에 있는 모든 업장을 녹일 만큼 깊이 깊이 깊이 들어가가지고, 거기에 여러 대중들의 선정력의 힘으로 무간지옥을 뚫고 들어가서, 지옥 중생을 제도하는 날이다. 하늘 문이 그렇게 해서 열리게 된다 이 말이죠. 참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생각을 할 때, 이런 법이 만일에 목련존자를 비롯해서 우란분절의 이 전통이라고 하는 게, 부처님 당시에서부터 이게 허망하고 없는 거라면, 벌써 세상에 없어졌을 거예요. 지금까지도 이렇게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은, 이걸 통해가지고 얼마나 많은 분들이 해탈을 얻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렇죠? 그래서 이게 굉장히 이렇게 중요한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그런 법회의 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이번에 이렇게 진관사에서 백중 기도를 이렇게 올려주시면, 여러분들 많이 올리셔야 됩니다. 생각나시는 분, 옛날에 내가 어떻게 그때 좀 도움을 받았는데, 그 영가님이 생각이 난다. 우리 집에 어떻게 좀 힘들게 그냥 돌아가신 분이 있는데, 우리 부모님은 아니더라도, 갑자기 떠오른다, 기도를 했는데, 그런 분이 자꾸 생각이 든다. 옛날에 내가 도움을 받으셨는데, 어떤 주변에 있었던 그 어른이 생각이 난다. 그러면 올려주셔가지고 천도를 다 해드리면, 그분이 얼마나 고마워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보니까, 이 과보가 과보가 분명해요. 그래서 저도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것이, 그저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 저는 영가님들 제사를 열심히 잘 지내고, 천도재를 열심히 하고, 위패를 잘 써드린 그런 복력으로 제가 이만큼 사는 거지, 저 잘나서 이렇게 사는 거라 생각을 안 합니다. 여러분, 이런 아주 소중한 인연을 맺으셨을 때, 천도재를 잘하시고, 기도를 잘하셔가지고, 여러분도 이 기회에 선정삼매에 들어가지고, 일념이 지속이 돼서, 여러분들도 영가님들과 함께 해탈하고, 깨달음을 얻으러 가는 과정으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래서 제가 오늘 이제 이 염불도 많이, 염불이나 음악이나 이런 부분들이나, 모든 부분들이 우리가 모기가 솥뚜껑을 뚫고 선정 세계로 들어가서, 마음에 이제 어떤 막힌 곳을 뚫고 들어가서, 칠식, 팔식, 아뢰야식이 있는 그 미세망념까지 뚫고 들어가는 힘을 발휘하게 됐을 때, 다겁생내에 모든 인연 있는 영가님도 같이 천도가 될 수 있다, 이걸 되새기시고, 그래서 절에서 일어나는 우리 모든 법회들은 웬만하면 다 참석을 하셔가지고, 어느 구름에 비가 내릴지 어떻게 압니까? 언제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해탈을 얻을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조금 전에도 여러분, 바이올린이나 첼로나 이런 선율에 보면, 마음이 움직이잖아요. 뭐라 그래요? 심금을 울린다, 그러잖아요. 마음에 여러분들 이 현악기 줄이 있는 거예요. 거기를 울리게 됐을 때, 업장이 녹는단 말이죠. 염불도 그와 같아요. 우리 이 진관사 어른 스님들이 염불을 해 주시면 업장이 녹습니다. 그때 한번 쑥 막힌 벽들을 뚫고 들어가가지고, 장애를 뚫고 들어가면서 해결이 되는데, 여러분들이 이번 철에는 열심히 기도를 하셔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 내가 염불하고, 그다음에 기도하는, 그것이 한 덩어리가 돼가지고, 이번 철에는 모든 영가님도 천도해드리고, 여러분들도 해탈할 수 있는 해인삼매 한번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축원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오늘 이 진관사를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진관사를 오면 올 때마다 너무 좋거든요. 그래서 이게 이 능선을 이렇게 넘어오면서, 갑자기 북한산을 보면서, 마음이 이렇게 확 열렸어요. 제가 이제, 저 앞으로 이제, 다음 주면 저는 이제 모든 법회가 끝이 나고, 저도 이제 정진하러 들어갈 겁니다. 그래서 동안거 방부를 넣어놨고, 이렇게 해놨는데, 제가 최근에 열심히 이렇게 법회를, 그동안 동국대 연구교수를 하면서, 4월달에 사직을 하고, 그러고 나서 저기 오라고 하는 곳이 있으면 무조건 이제 많이 갔거든요. 그랬더니 질문을 하세요. “스님, 빚이 있습니까? 그래, 열심히 다녀요? 빚이 있습니까” 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스님, 뭐 중병에 걸려가지고,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들어가셔야 됩니까?” 이렇게 하는 분도 있고, 다양하게 질문하시는 분이 있는데, 저도 이제 맑고 청정한 산하대지에 들어가서, 한번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선정삼매에 한번 들어서, 저의 근본 본래 면목과 한번 만나려고, 입을 닫고, 좀 들어가서, 이렇게 공부를 좀 하려고,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정한 진관사에 이렇게 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오다가 시가 하나 생각이 났어요. 우리 두보의 시인데, 두보 시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이게 한번 읽어볼게요. ‘강상피화뇌불철(江上被花惱不徹)하니’, 강가에, 강가에 꽃이 피었는데, 봄에 꽃이 피었는데, 피화라 그래요. 당할 피자, 꽃한테 당했대요. 꽃이 막 나를 막 너무 아름다운 꽃이, 나를 그냥 얼마나 그냥 나를 감동을 시켰길래, 꽃이 꽃한테 당해가지고, 뇌불철, 이 뇌가 벗어나지를 못한대, 이 아름다움에, 너무나 아름다운 이 두보가 이렇게 시를 지어요. 자기는 맨날 굶고, 부부하고 헤어져가지고, 막 전쟁 통에 이렇게 했는데, 시를 이렇게 지어요. 꽃이 나를 두들겨 패가지고, 내가 너무 그냥 뇌가 어떻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가지고, ‘무처고소지전광(無處告訴只顛狂)이라’, 이렇게 해요. 이거를 알려줘야 되는데, 어딘가 알려줘야 되는데, 알려줄 곳이 없고, 그래서 내가 아주 미치겠어요. 이걸, 이걸, 이 아름다운 이 소식을, 멋진 이 대자연의 모습을, 어디에 알려줘야 되는데, 알려줄 곳이 없고, 그래서 내가 아주 미치겠어요. 이걸 이걸 이 아름다운 이 소식을 멋진 이 대자연의 모습을 어디에 알려줘야 되는데 알려줄 곳이 없어가지고 아주 그냥 미칠 지경이 됐단 말이죠. 그래서 갑자기 떠올랐어요. 그래서 뭐냐면, 여기 ‘주멱남린(走覓南鄰)’, 그다음에 ‘애주반(愛酒伴)’이라고 그랬어요. 이 남쪽, 남쪽 요 마을에, 자기하고 마음이 통하는, 술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를 빨리 찾아 내려간 거예요. 이제 아주 말이 좀 되는 친구가 있어. 친구를 따라가가지고, 이제 그 친구하고 이 얘기를 내가 전하고 싶어서 막 내려갔단 말이죠. 딱 내려갔는데, 웬걸 말이죠. 웬걸, ‘경순출음(經旬出飲)’, 그다음에 뭡니까? ‘독공상(獨空床)’이라, 이렇게 돼 있어요. 이미 열흘 전에 이 친구는 술을 가지고 벌써 나갔어. 집을 나갔어요. 꽃이 너무 좋고 하니까, 이미 술 가지고 나간 지 열흘이 지났고, 아주 이 외로운 침상만 하나 딱 기다리고 있더라, 이렇게 돼 있어요. 이게, 여러분, 당나라 때 시에는 ‘술 주’자를 ‘참선 선’자로 바꾸면 다 뜻이 통해요. 이게, 이게 술 마신다는 뜻이 다른 뜻이 아니라, 선정에 든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이걸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경지를 아는 사람하고만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근데 이 아름다운 소식을 다 전하려고 온 천지를 돌아봐도 한 명이 있었는데, 그 한 명이 벌써 나갔어, 자기는. 그래가지고 ‘빈 자리만 딱 남아 있더라’라는 시가 있어요. 저는 진관사 생각하면 이 생각이 나요. 이 좋은데, 어떻게 말을 해줘야 되는데, 말로 할 수는 없는데, 이게 이 어떤 엄청난 선정의 세계가 있다. 깨끗한 선정의 세계가 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이 세계가 참선에서 아주 무심 상태에 들어갔을 때, 그 경지를 대부분 다 선사나 시인들은 이렇게 표현해요. 말로 할 수 없는 경지가 있다. 그래서 시를 짓고, 그래서 음악을 만들고, 예술을 하게 돼 가지고, 아티스트만이 그 세계와 교감을 한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한 번 선정에 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그 정말 내 본래 면모가 만났던 그 체험을, 다시 한 번, 그것보다 더 하는 게 좋은 게 없다는 생각에, 선방에서 나온 지 한 십몇 년 됐는데도, 안거철만 나면, 내가 저기 들어가 있어야 되는데, 내가 저기 들어가 있어야 되는데, 고시생 고시하다가 고시 패스 못하고 직장 생활하다가, 고시철만 되면, 내가 저 고시 시험 보러 가야 되는데, 이렇게 하는 시절이 있거든요. 그처럼 제가 그렇게 살았어요. 근데 이제, 이제 들어가려고 합니다. 들어가서 저도 한번, 저의 마음을 다 깨끗하게 청정하게 하는 정진을 한번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백중은 저에게도 그런 기도하는 기간이 될 거고, 다시금 우리 본래 면목에 한 물건이 있는데, 그 마음을 해탈을 할 수 있는 그런 기간이 되도록, 저도 열심히 기도를 할 테니까, 여러분들도 이번 윤달이 있는 이 멋진 이 기간에, 여러분들 조상님들 다 천도하시고, 여러분들도 무심을 증득하는 멋진 기도의 시간이 되셔서, 이 진관사에서 너나 할 거 없이,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하는 멋진 시절 인연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너무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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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8월 2일 백중기도 2재 법문
덕현스님 2025-08-02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웃음 요가 때문에 이 법문이 너무 즐겁게 돼버렸습니다. 아, 웃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은 그 웃음 요가, 20분 짧은 웃음 요가에 여러분들 얼굴이 더 밝아지신 것만 같습니다. 이 밝은 기운을 아까 우리 스님께서 이야기하셨듯, 이 밝은 기운을 여러분들이 나만 갖고 있을 게 아니라 내 가족들에게 그리고 또 내 부모 조상님들에게 올려드리는 그 밝은 느낌으로, 에너지로 그렇게 웃음 요가 활용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저의 법문 주제는 보은입니다. 보은. 요즘처럼 어떻게 이제 가족 간의 유대관계도 대개 낮아지고, 또 사이도 요즘 들어 또 안 좋아지는 집안도 많아요. 근데 다행히 우리 오늘 진관사 2재에 동참하신 분들은 이 웃음 요가라도 배워서 기분 나쁘면 문 닫고 들어가서 막 웃으면 되니까, 그러면은 뭔가 모르게 용서하는 마음도 생기고, 뭔가 모르게 이게 나의 한 같은 게 풀어질 수 있는 이 방법을 여러분들 오늘 체득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이거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오늘은 백중 2재입니다. 백중 2재로 제가 어떻게 법문을 하게 돼 가지고, 처음에는 은사 스님에게 “제가 무슨 법문을 하냐” 이러니까, “너도 해봐라” 그래서 이 자리에 얼떨결에 오르기는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께서는 제가 하는 이야기에 마음을 좀 담으셔서 이렇게 실천으로 꼭 이어졌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오늘 백중에 대해서 이제 잠깐 살펴볼 텐데, 사실 백중했을 때 여러분들이 지금 독송하시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있죠. 부모은중경이 요즘 시대에는 이게 좀 반발심이 있답니다. 지금 여기에 계시는 분들은 반발심이 없어요. 그런데 10대, 20대는 뭔지 모르게 이게 가족이 약간 핵가족화되기도 하고, 그리고 또 한부모, 한 가족으로 또 바뀌어 가면서 뭔가 아이들이 부모에 대한 한이 이렇게 생기나 봐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원한으로 이어지면서, 이제 부모은중경을 보면서 막 열이 난대요. 근데 왜 이럴까, 우리가. 그래서 제가 이런 이야기에, 이게 그러면 효孝가, 이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나. 여러분들 불교적인 효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저는 이 효에 대해서, 이 ‘효순(孝順)하라’라고 했을 때, 우리나라가 조선시대 때는 유교였죠. 유교였다 보니까 이 효라고 했을 때 대개 부모에게 순종하는 거, 그리고 부모의 제사를 첫째 아들은 당연히 지내드리는 거, 이런 것들을 효라고 이념을 지어서 효순하라라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근데 불교적인 효는요, ‘순종하라, 제사 지내라, 그래야지만 효도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불교적인 효는 어떻게 하면 나의 부모, 지금 나와 가족 간의 관계, 또는 나의 부모, 또는 조상, 또 나의 부모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또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고, 그렇게 해서 거듭거듭 끊임없는 정말 적재되어 있는 그 많은 부모, 스승, 모든 존재들이 결국 아버지, 어머니가 둘이 아니라는 거예요. 모든 이들이 나의 부모였을 수도 있고,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 라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부모은중경에서 여러분들께서 보시듯, ‘나의 모든 이들이, 나의 위에 있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나의 부모였고,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라는 그 생각을 하면, 이게 우리 불교적인 효는 그야말로 고통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거, 나의 부모가 지금 돌아가셔 가지고 어느 지옥에서 고통받을 수도 있고, 어느 축생에 있을 수도 있고, 어느 삼악도(三惡道)에서 머무를 수 있기 때문에, 그분들을 위해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시라고, 그렇게 효행(孝行)하면서 기도 올리는 것이 곧 이게 불교의 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스님, 왜 백중은요, 매번 매년마다 지내야 됩니까? 아니, 작년에도 지냈는데 또 지내야 됩니까? 저 10년 전부터 했는데 이제 정리해도 되지 않습니까?”라는 불자님들의 종종 질문을 받아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게 《목련경(目連經)》이나 《우란분경(盂蘭盆經)》에서 이야기하길, 신통 제일 목련존자(目連尊者)도 자기 부모를 위해서 승보 공양을 올렸지만, 단박에 어머니가 그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고통받던 아귀도를 단박에 버리질 못합니다. 목련존자조차도 그랬어요. 그렇다면 이 신통 제일한 목련존자조차도 아귀도에서 벗어나는데 승보 공양 한 번 가지고 되지 않았다는 거, 부처님 시대 때, 재세시에 그 한 번 가지고도 안 되고, 여러 번에 걸쳐서 아귀도에 올라갔다가 축생도에 올라갔다가, 몇 번의 계와 여러 가지 목숨을 받았다가, 결국에는 천상도로 올라가거든요. 그럼 이런 걸 봤을 때, 우리가 백중 기도를 1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이 몸뚱아리가 건강할 때,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나의 가족들, 이 가족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여러분들이 백중 기도를 올리시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요즘 말로, 또는 이전 예전 말로, 효순 또는 효도라고 이야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효도라는 것은, 불교적인 효도라는 것은 이생에만 부모님에게 맛있는 거 사드리고, 옷 사드리고, 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에게 가드리고 하는 그것은, 《아함경》에 따르길 하품의 효행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을 즐겁게 하는 것은 중품의 효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끔 부처님 전에 올리는 그 공양 공덕으로 회향하는 것은 그야말로 상품의 공덕이라고 합니다. 이런 선상에서 봤을 때, 여러분들이 이렇게 백중 기도를 올리실 때, 이게 나뿐만 아니라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도 얼굴도 기억 못하는 어느 때에 나의 부모였고, 스승이었고, 아들 딸이었던 그런 모든 분들이, 모든 중생이 이고등락하기를, 이렇게 마음을 드시고 백중 기도를 올리시면서 회향을 하면, 여러분들의 그 공덕은 그야말로 무량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네, 그리고 제가 이게 짧은 시간에 여러분들에게 많은 걸 알려드리려니까 좀 마음이 급합니다. 그러나 여유 있게 하겠습니다. 이게 《구사론》에 따르면, 여러분 우리는 영가라고 부르죠. 누구, 김똘똘 영가. 우리 여기에 지금 위패에 모셔진 것도 다 김똘똘 영가 다 모셔져 있는데요, 《구사론》에 따르면 이승도 아니고 저승도 아닌 이들을 가리켜서 중음(中陰)이라고 부릅니다. 또는 중유(中有)라고 부릅니다. 그럼 살아 있는 우리는 뭐냐, 생유(生有)라고 불러요. 그럼 죽었을 때를 사유(死有)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제 막 딱 죽어가지고 1일부터 49일 그 사이를 우리는 중음 또는 중유라고 합니다. 그럼 그 중유 기간을 부처님께서 우란분경에 이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목련존자 어머니, 어머니가 그 무간지옥에 탁 떨어져 가지고, 그 무간지옥에서 고통받는 그 기간이 인간계에서는 49일이나, 그 지옥의 아귀(餓鬼)고통에서는 정말 몇 억 년이 될 수도 있고, 몇 백만 년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그 목련존자의 어머니 청제 부인만 그럴 것이냐는 거죠. 나도 내가 내 알아차림하지 못하고, 내 아들 딸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아니면 내 어머니 아버지에게 좀 언짢은 말을 하거나. 근데 그 언짢은 말로 인해서 부모님이 마음이 너무 아파가지고, 또 이제 안 좋은 마음을 먹거나,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어찌하면 나도 그렇게 지옥의 고통을 받게 하는 살생죄를 지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살생이라는 게 짐승을 죽여서, 또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도 물론 살생, 물질적인 살생이지만, 내 말 한마디로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가족 간에 정말 잘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이 중유 기간 속에 이 청제 부인이 어떻게 합니까? 자기가 살아생전에는 목련존자가 자기 아들이었지만, 이게 이제 살아있을 때 온갖 살생을 저지르고, 그 목련경에 따르면 그 살생과, 그리고 또 자기가 계율도 안 지켜요. 얼마나 많은 남자분들을 막 잡았는지 몰라요. 그러한 모든 과보를 받아서 결국 떨어진 곳이 지옥입니다. 그 지옥의 고통 속에서, 이것도 무슨, 제1 초광대왕 도산지옥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제2 진광대왕 무슨 무슨 거해지옥, 한빙지옥, 온갖 지옥들이 나오죠. 근데 그 지옥 속에서 고통받는 한순간에, 그 고통 한 번 받고 좀 쉬었다가, 또 이제 과보를 받으려고 또 고통받다가, 또 쉬었다가 하는 그런 게 아니라, 고통의 연속이 끊임이 없다는 것을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합니다. 고통에 끝이 없는 거예요. 그 끝이 없는 그 고통을 목련존자 어머니가 그 무간지옥에 들어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아무리 목련존자가 신통력을 딱 얻고도, 자기 삼매력으로 아무리 지옥세계에서 자기 어머니를 찾아봐도, 어머니가 안 보여요. 안 보이죠. 결국에는 부처님 전에 묻죠. 부처님, 어떻게 하면 우리 어머니를 이 아귀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아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딱 알려드립니다. “모든 스님네들이 시방 세계에 있는 모든 스님네들이 열심히 정진하시고, 그 안거가 딱 끝났을 때 자자 일이 있다. 그것이 음력으로 7월 15일인데, 그렇게 수행 공덕을 열심히 하신 스님네들에게 공양을 올려라. 근데 공양을 올리고, ‘나의 부모님이 이 공양 공덕으로 회향되시기를 발원합니다’라고 발원을 하라. 이렇게 하면 너의 부모님이, 너의 어머니가 그 아귀의 고통 속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되는 것이 《목련경》과 《우란분경》입니다. 그렇게 해서 목련존자가 자기 어머니를 위해서 그렇게 공양의 공덕을, 진짜 100가지 음식과 100가지 여러 가지 모든 공양물로 스님들에게 올려요. 그 공덕으로 아귀고에서 벗어나고, 축생도에서 벗어나고, 그렇게 해서 결국 천상도에 올라갑니다. 그걸 근거로, 스님네들조차도 출가해서 부모를 버리고 출가해서 이렇게 수행을 할지언데,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에게 이렇게 이 공양 공덕을 올릴지언데, 하물며 우리들이겠냐.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이 백중을 잘 활용을 하십시오. 이게 나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들에게, 그리고 나의 부모님들에게 잘 회향을 하십시오. 제가 이 중유의 세계 속에서, 이걸 어떻게 49일간, 이거 부모님에 대해서 회향을 잘 하냐. 물론 여러 가지 방법들이 많이 있겠죠. 누구는 나의 부모를 위해서 《금강경》을 지금 이렇게 이제 독송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부모은중경》, 그리고 또 광명진언, 이런 여러 사경들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든 수단과 방편을, 여러분들이 그걸 잘 받아 지녀가지고 이거를 회향을 하되,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내 마음은 지금 콩밭에 가 있어요. 내 조금 전에 싸웠던 이 도반한테 막, 내 저것을 가만히 두지 않으리. 절 집 안에 왔는데도 아직까지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 근데도 뭔가 이거는 써야 되겠어. 사경을 하면서 자기 마음이 내려갑니다. 근데 그 자기의 그 악한 마음이 막 일어날 때, 그걸 막 억누르려고 애를 굳이 쓰지는 마십시오. 자연스럽게 사경을 하다 보면, 그 마음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겁니다. 근데 그런 사라지는 그 마음을 잡고 늘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곧 악업이 됩니다. 악업이 되면, 끊임없이 우리는 윤회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왜 이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축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하냐면, 결국 우리는 부처님처럼 이렇게 해탈하고 깨닫지 못하면, 끊임없는 업력으로 인해서 윤회한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끊임없는 윤회하는 그 과정 속에서, 조금이라도 이 인과 응보를 확 줄여가지고, 그 씨앗이 싹 트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단도리를 잘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우란분경》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아. 이거는 제가 아까 했고) 《중아함경》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중생이 악도에 떨어지기 전에, 지옥을 다스리는 염라대왕이 5명의 천사를 보내어서 그 사람을 꾸짖고 가르친다. 천사, 지혜로운 사람은 일을 보고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하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근데 첫 번째 천사는 부모님이다. 두 번째 천사는 노인, 그리고 세 번째 천사는 병자, 병고에 힘들어 하는 분들, 그리고 네 번째 사람은 죽은 사람, 그리고 다섯 번째는 감옥의 죄수이다’. 이 악도에 떨어지기 전에, 이렇게 정말 내 곁에 있는 이 부모님, 그리고 생로병사할 때 병자분들, 이러한 모든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 이제 공덕을 쌓으라고, 그리고 또 그분들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나의 인과 응보를 짓지 않기를 자꾸 발원하면서 이 공양 공덕을 올리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저 스님, 저는 돈이 없어요” 걱정 없어요. 돈이 없어도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게 있습니다. 웃음으로 화안애어(和顔愛語)로 모든 분들에게 보시할 수 있고요. 자리를 또 양보하기도 하고, 그리고 또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주어서 이렇게 격려를 하기도 하고, 응원을 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들에 꼭 돈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진관사라는 절집에 오셔서, 내가 마음을 다해서 이렇게 공양 공덕을 좀 올리시라. 왜냐하면 이 나만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나와 인연되어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렇게 공양 공덕을 올리고 하는 모든 것들이, 이것이 바로 나를 있게 한, 나를 여기 존재케 한 모든 이들에게 은혜를 갚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마음을 잘 헤아리시면 좋겠어요. 제가 행자 때요, 어떤 스님께서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스님이 저한테, ‘덕현 스님, 이쪽으로 와보라’고. 근데 이제 그 스님께서 그 당시에 선방에 가셨다가 잠깐 산철이 돼서 오셨는데, 그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때도 아마 이런 백중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스님이 자기가 어느 해에, 어느 날만 되면, 누가 이렇게 꿈속에서 자기를 위해서 자꾸 제사를 올려준다는 거예요. 제가 그때 좀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근데 그게 한 번이 아니라, 항상 그 날과 그 시일이 되면 꼭 그렇게 그 꿈을 꾼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날은 자기가 작정을 했대요. 그 꿈속에서도 깨지 않으면서, 내가 그 꿈속에서 누가 나에게 제사를 지내는지 그걸 찾아봐야지. 그래서 어느 해 때 자기가 진짜 똘똘하게 잠을 딱 깨지 않고, 그대로 이제 무의식 중이지만 이렇게 노력을 해서 봤더니, 절 집안에서 누가 자기를 위해서 제사를 지내는 거였는데, 그 절의 이름을 이제 알아보려고 이렇게 보니까, 무슨 무슨 절이었대요. 그래서 이제 그 절을 알고 꿈에서 깼죠. 깨고 난 다음에 진짜 인터넷을 찾아가지고 그 절이 어디 있는지를 찾으신 거예요. 찾아가지고, 근데 요즘에 얼마나 동명 그 절이 많습니까? 그 절을 찾아서, 결국에는 그 절의 어느 어느 해에 제사를 지내는 그 절 리스트를 뽑은 거예요. 근데 진짜 그 절 주지 스님의 제사 일과 자기가 항상 꿈을 꾸는 그 날짜와 동일했다는 겁니다. 저도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긴가민가, 이게 믿어도 되나, 약간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만큼 이생은 이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생이 있고, 윤회되어서 우리는 또 만나고, 이 생에서 정말 너무너무 미웠던 사람이나, 다음 생에도 또 만날 수 있다는 거. 모든 생들은 연결되어 있다는 거.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께서 항상 인과의 도리를 이야기하며 항상 착한 일을 행하라. 그래야 착한 과보를 받는다. 악한 인을 심으면 당연히 악한 과보가 싹 틀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내가 아직 싹 트지 않은 선의 씨앗, 또는 아주 싹틀랑말랑 하는 악의 씨앗들이 아마 있을 겁니다. 이런 것들을 기도하시면서, 또는 이렇게 염불하시면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또 잘 챙기시면 좋겠습니다. 《불설수생경(佛說壽生經)》에 보니까, 사람이 죽어서 망자가 되면 저승에서 49일에 걸쳐 7번의 10번의 시왕의 재판을 받게 된다. 이 저승의 열 시왕은 제가 아까 화청으로 일부러 한 분 한 분 지목을 해서 읽었어요, 오늘은. 기억나십니까? 예. 그 열 시왕이 누구나에게 정말 정말 여러분 공덕을 많이 지은 사람 같은 경우는, 돌아가자마자 중유를 거치기도 전에 바로 화현해서 천상으로도 들어갈 수 있고요. 아니면 재판도 필요 없이 바로 그냥 지옥에 바로 툭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근데 이런 그 지옥에 떨어지는 방법이 뭐냐? 지옥에 떨어지는 방법: 살생하고, 거짓말하고, 이게 나태하고, 의롭지 못하고, 그리고 누군가를 배신하고, 또는 폭력을 행하고. 이렇게 천륜, 나의 부모를 죽이기도 하고, 이런 것들로 인해서 재판을 하는 것이 바로 이제 그쪽이에요. 근데 이 명부시왕이 이게 내 눈에 안 보이니까 남의 일이 아니라, 이게 바로 코 앞에 내 일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이제 이 백중 재가 끝나고 난 다음에, 또 밑에 후원에 내려가서 공양도 하시고, 또 도반 분들과 함께 이렇게 막 이야기도 나누면서, 과일도 드시고, 차도 드시고 하실 텐데, 그러한 모든 과정들 속에서 항상 내 마음의 청정함을 자꾸자꾸 살피십시오. 내가 그 마음속에서 이제 앞에서 도반이랑 같이 밥을 막 먹다가, 이게 이제 비빔밥 먹고 난 다음에 그릇이 있죠. 근데 이 그릇을 이제 도반한테 밀어요. 니가 설거지를 해라. 나는 이 절에 온 지 좀 오래됐다. 이런 거는 원래 초짜가 하는 거다. 미뤄. 그러면 이게 한두 번은 해줘. 근데 여러 번 하다 반복이 되면, 이 사람도 짜증이 납니다, 그죠? “공양이야, 공덕이야, 그것도” 이런 식으로 묵살할 것이 아니라, 그때 그 마음을 잘, 여러분들이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공양을 하고,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밥풀을 좀 남기며, 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설겆이를 하는지. 이 뭔가를 행위를 할 때, 내 마음이 지금 어느 시점에 가 있는지를 여러분들이 잘 관찰하십시오. 그것이 곧 백중 기도에 처음 정말 선행을 하는 실천 방법의 첫 단추입니다. 내가 아무리 지금 부처님 전에 바나나 공양 올리고, 여러 가지 경전, 부모은중경, 금강경 100권 올리고, 여러 가지 보여지는 형상으로는 정말 많은 공양을 올리는 것 같지만, 속은 지금 부글부글 끓어. 이러면 이 공덕이 어디로 가냐? 물거품이 됩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그 선행을 반듯하게 이렇게 자꾸 둘 것을, 항상 스스로 이게 마음에 또 삐뚤어지면 다시 또 세우고, 또 삐뚤어지면 또 다시 세우고. 이렇게 하면서 흔들리면서 갈 수밖에 없어요. 이게 중생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그러면서 오늘처럼 이렇게 오셔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기도도 하시고, 또 후원에서 공양하실 때나, 아니면 무언가를 이렇게 행하실 때, 또 도반을 위해서 신발도 이렇게 가지런하게 놓아주고, 또 뭔가 좀 힘들어하는 처음 오신 신도님들 같은 경우는, 여러분들이 또 안내해서 이쪽으로 오시라고 따뜻하게 또 말씀을 해 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이게 물이 너무 마시고 싶은데 어디 가서 물 마실 줄을 모르는 그런 분들이 있다면 물 마실 수 있는 장소를 안내하기도 하고. 우리 진관사 신도님들은 그렇게 하시면서 내 마음을 보고 공덕을 쌓아서 나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지금 생활 속에 있는 불교예요. 부처님 가르침이 아무리 이렇게 높이 있고, 정말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가지 말들로 다 이렇게 되어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내것으로 하지 않고, 정말 그 인과 도리를 믿지 않으면서, 어리석은 마음으로 자꾸 탐욕과 성냄, 이게 인과응보를 모르는, 인과 도리를 모르는 이런 어리석음에 스스로 이렇게 돌아갈 때, 그때는 업력이 돼요. 그 업력이 되면 또 윤회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 원력의 힘으로, 정말 여러분들께서 백중 2재뿐만 아니라, 마지막 49일까지 잘 회향하시길 발원합니다. 이것이 곧 우리 ‘우란분’하면, 거꾸로 매달려 있다라고 하죠. 우란분이 도현(倒懸)이라는 거고, 도 자가 거꾸로 매달릴 도(倒)예요. 거꾸로 매달려서 지옥의 고통을 받는다는 걸 도현이라 하고, 산스크리트어로는 ‘우란바나’라고 합니다. 근데 우란바나, 그걸 딱 모아놓은 게 우란분경이에요. 그럼 이 우란분경에서 그 도현(倒懸), 거꾸로 매달린 그 중생의 그 고통을 구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거꾸로 된 나의 잘못된 가치관, 이 거꾸로 되어 있는 나의 올바르지 못한 그런 생각들, 이런 것들도 지옥 고통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내가 항상 부처님 경전을 바라보면서, 내 항상 내 마음이 어떻게 지금 이어가는지를 여러분들이 잘 이렇게 헤아려 보시고, 그렇게 해서 백중 기도 끝까지 잘 신심나게 회향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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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7월 26일 백중기도 초재 법문
주지 법해스님 2025-07-26
네, 오늘 윤달입니다. 지금이 윤유월 초이틀입니다. 그런데 윤달에는 많은 공덕을 짓고 부처님 가피가 가득한 달이라서 30일 내내 날마다 좋은 일을 하면은 좋다는 거예요. 그래서 또 그 복을 지으면 그 복이 다른 때 짓는 것보다 10배, 20배 더 공덕의 가피가 온다 해서 윤달에는 선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그런 달에 우리가 또 일부러 백중 기도 기간인데 윤달을 맞이해서 조상님들도 또 우리도 아마 공덕이 가득하리라 믿습니다. 날씨가 더워가지고 이제 어쨌든 여러분들이 함께 이 신심과 원력으로 기도를 해서 기도한 시간이 분명히 여러분들에게 가피가 갈 수 있도록 하려면, 기도는 왜 하나? 불교에서는 왜 기도를 하느냐? 다시 말하면 기도는 팔자를 바꾸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이 더운 폭염에 오셔 가지고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내가 지금 사는 삶보다 내 마음이 더 편안하고 복을 더 많이 받고 더 지혜롭고 더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 그거를 우리는 불교에서 ‘가피’ 이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의 가피다. 기독교적으로 은총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러면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실하게 내가 믿어야 돼요. 윤달이라서 오늘은 백중인데 백중은 거꾸로 매달린 죄인도 천상 세계로 낳는다고 하는 아주 그런 좋은 불교의 명절인데, 나도 얼른 거기 가서 동참을 해서 그 기도를 해야 되겠구나. 이런 마음, 마음이 내가 믿어져야 돼요. 이 더운데 뭐 아이고 그거 다 뭐, 이런 생각을 내는 사람은 항상 삶이 ‘뭐 그거. 뭐 그거’ 이러다가 평생 마치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는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폭염에도 ‘오늘 38도라는데 그래도 가봐야지’ 이런 마음을 내셔서 오늘 여러분들이 다 여기에 오셨어요. 그런데 윤달에는 또 더 이렇게 복이 많다고 그러는데 그 윤달의 어떤 일로 기도를 하느냐 하면은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준 부모님이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평생 고생만 하신 부모님을 위해서 또 공덕을 닦아줄 수 있는 그런 달이에요. 그래서 윤달에는 옛날에는 많은 천도재를 했습니다. 천도재를 하고 감사해하고 또 고마워하고 이런 천도재도 지내고 또 예수재라고 미리 내가 극락 갈 거를 미리 닦아간다 해서 예수재도 하고, 또 수륙재도 하고, 이렇게 백중 기도도 하고, 지장기도도 하고 이렇게도 하고. 그다음에는 또 뭐냐 하면 부모님이 좋은 장소에, 그때 당시에는 눈이 어두워 가지고 좋은 명당에 못 눕혀 드렸다 해서 멸리 그러죠, 멸리. 이장도 윤달에 합니다. 3년에 한 번씩 윤달이 돌아오면은 좀 더 좋은 자리로 모셔드리고 싶어 가지고 이장을 해도 무해무득하다, 그러고 발복한다. 해가 이장하는 것도 많이 하고. 또 그리고 부모님을 위해서 수의를 해드리는 거야. 부모님이 더 오래 사시라고. 그래갖고 옛날에는 저도 기억이 남았는데 60 환갑에 주로 많이 수의를 해드렸죠. 근데 요즘은 칠순 또 너무 젊으셔 가지고. 팔순 이렇게 되는데 그래도 우리가 이제 아무리 수명이 길어졌다 해도 이 생리적 여러 가지 나이는 못 속여요, 그죠? 그냥 겉모습 보기에 건강해 보여도 아무래도 생각하고 결정하고 이런 것들이 주춤거려지고 앞도 뒤도 또 전조 보게 되고 이렇게 되는 게 그게 늙음이에요. 젊어서는 용기도 있고 그냥 용맹하게 나가는 그런 힘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60이 이렇게 되면 사실은 부모님의 60, 근데 보니까 뭐 지금 거의 60선이에요, 오신 분들이, 오늘. 그러니까 내 주변 정리를 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그렇게 부모님의 수의도 해드리고 했지만 내 주변 정리를 하는데, 효자는 부모가 만듭니다, 효자는. 그래서 ‘야, 나 윤달이란다. 너희가 나 수의를 하나 선물로 해줘도 좋아’ 이거 가르쳐야 돼요. 그러면 그 자식이 이렇게 생각 ‘나, 우리 어머니 윤달에 수의를 해드렸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왜? 건강하시라고. 오래 사시라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수의는 이생에서 가장 여법한 옷을 해드리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해가지고는 수의를 딱 올려놓고 한 번씩 거풍하고 이렇게 옛날에 우리 조상님들의 좋은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70이 되면 내 주변 정리를 또 하는 거예요. 옛날 어머니들은 얼마나 현명했느냐 하면 그것도 이제 미리 친정어머니가 그런 교육을 시켜요. 시집을 가서는 어떻게 해라, 남편은 하늘같이 받들어라, 가족은 어떻게 해라, 이런 가정 교육을 다 시켰는데 요즘은 그런 게 아니고 막 무조건 서울대학 보낼라고 학원만 뺑뺑이 돌리더라고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서울대학 간다고 행복한 건 아니에요, 그죠? 그러는데 그런 교육을 현명한 어머니 또 부모님들이 교육을 시킨 사람, 이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그 아이가 분명히 효자가 돼요. 최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효자를 하는 행위는 가장 현명한 행위예요. 효자를 하게끔 해야 돼. 저도 상좌 스님들을 키워보니까 참 훌륭한 부모가 되기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아마 상좌를 안 뒀으면은 그 부모님 마음 몰랐을 거예요. 상좌를 데리고 두고 보니까 썩는 속이 말도 못 해요. 상좌 공개적으로 흉을 보는데 썩는 속이 말도 못 한대, 여러분 그거 참아야 돼, 그죠? 그래서 며칠 전에도 상좌가 속을 썩였어요. 상좌가 속을 썩였는데 제가 완전 폭탄 발언을 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끄응’하고 침을 한 번 삼키면서 삼켰어요. 내뱉으면 안 되니까. 상좌는 죽을 때까지 같이 가야 되거든요. 내 상좌 안 하고 싶다고. 상좌는 좀 안 하고 싶다 해도 안 할 수는 또 있어요. 근데 자식은 안 하고 싶다고 안 해지질 않아.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백중 기도하는 그 근본 목적은 뭐냐? 우리 아들딸을 효자로 만들자. 그러면 내 마음이 넉넉해야 돼요. 내 스스로의 마음이 넉넉하지 않으면 그거 시시끈끈 눈에 걸려가지고 폭탄 발언하게 돼 있어요. 내가 더 그냥 화가 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거를 울컥 내가 삼켜야 되는 그런 용기와 힘이 있어야 되는 그 내공을 갖춰야 그거를 갖출 수 있어요. 그래 그리고 폭탄 발언할 때는 내 마음이 진짜 따뜻할 때 폭탄 발언해야 돼. 안 그러면 감정이 동하면 결국 그 자식은 뻗나 가게 돼 있어요. 그래서 다 불행하게 돼 있다고. 그래서 이 윤달에 여러분들이 이 더운 폭염에 와서 기도하는 것은 다른 때보다 정해진 일은 거꾸로 매달린 죄인도 바로 서서 극락 가는 그런 시기이기 때문에 이게 3천 년을 내려왔어요, 그죠? 이 3천 년 내려오는 좋은 풍속 이런 기간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깔끔하게 하얀 옷을 입고 까만 바지를 입고 이게 함께 옷을 그렇게 정장을 차려입고 오는 것도 예의입니다. 불교는 위의가 불교라 그랬어요. 그 사람 모습이 곧 부처님 모습을 표현했는데 그건 또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들이 기도를 매일, 우리 불교에서는 새벽 기도를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새벽에 예불을 하면 소 한 마리를 얻고, 저녁에 기도를 하면 닭 한 마리를 얻는다. 이 벌써 가치 알겠죠? 가치가. 소 한 마리가 얼마인지 요즘 모르겠어요. 닭 한 마리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복이 쌓인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아침에 여러분들이 천수경을 독송하고, 우리 노보살님들은 그걸 매일 하는 분들 많을 거예요. 매일 그 습관으로. 그 습관은 내가 마음을 먹어서 자꾸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다가 보면은 그걸 안 하면 찝찝해. 그리고 그걸 하니까 어느새 내가 몸에 익혀져 있어요. 그 선한, 그걸 선근이라고 그래요, 선근. 내가 그런 착한 기운이 내 습관으로 익혀지고 내 마음에는 그게 저장이 되더라는 거예요. 저장이 되니까 어떻게 돼요? 내가 바른 판단을 하게 돼요. 바른 행동을 하게 돼요. 그거를 저는 부처님 마음이라 그러고, 그거를 부처님 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잠깐잠깐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부처님은 어디 계세요? 내 마음에 계세요. 부처님은 내 마음에 계시는데, 부처님 마음은 불심무구(佛心無垢), 부처님 마음에는 때가 없어요. 부처님 마음에 때가 없으니까 걸릴 게 없어. 판단하는 게 다 옳은 판단만 해요. 우리 할머니 말씀을 들으면 다 자다가도 떡이 생겨. 이렇게 신뢰를 하게 되는 가족들이. 그래서 기도를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매일 기도를 해야 되는데 아직까지도 제가 못 실천하고 있어요. 그러면 마음의 정원 진관사 신도님들은 매일, 지금 우리 불교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 갖고 너무 뭐가 많아 가지고 뭐를 해야 될 지를 모르는 거야. 이번에는 이거 했다가, 이번에는 지장보살하더만, 조금 있으니까 나무아미타불 해라 그러고, 또 뭐 관세음보살해라 그러고, 이렇게 하니까 헷갈려 하는 거예요. 사실은 다 똑같습니다. 왜냐 엄마, 아내, 딸, 이모, 고모, 한 사람이잖아요, 그죠? 다 똑같은 사람인데 부르는 사람이 다를 뿐이에요. 아내가 될 수도 있고, 딸이 될 수도 있고, 고모가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뭐든지 자기 입에 붙는 부처님을 하면 돼요. 그래도 진관사가 하는 부처님을 부르면 좋겠죠. 그래서 진관사는 나무아미타불로 염불을 하기로 시작했어요. 왜 그러냐면 나무아미타불 딱 하면 지장보살님도 자동으로 비서로 오셔요. 관세음보살님도 비서로 바로 오죠. 모든 부처님들이 오셔요. 특히 극락세계를 관장하기 때문에 내 마음을 어떻게 해요? 깨끗하게 해줘.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우리 회주 스님이 하루에 10만 번, 요즘은 13만 번 하신대요. 지금 회주 스님께서 타의 모범이 되어서 진관사를 극락 정원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나무아미타불을 하루에 13만 번 하는데, 회주 스님 하시는데 우리는 왜 못하겠어요, 그죠? 그래서 우리는 다 같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특히 윤달에는 더해야 되겠죠. 윤달에는 더 많이 하는 거예요. 더 많이 나무아미타불을 여러분들이 하시면 그게 우리 목표가 이제 정해졌죠? 그리고 주지 스님 말씀을 믿어야 돼요, 안 믿어야 돼요? 믿어야 돼요, 믿어야 돼요. 제가 교회 다닐 때 하도 ‘믿습니다’를 많이 해가지고 그러는데 믿어야 돼요. 믿지 않으면 불신 지옥이에요. 그게 불신(不信), 믿지 않는다. 아닐 불자 믿을 신자거든요. 믿지 않으면 지옥이에요. 내가 남편을 믿지 않고 자식을 믿지 않아 보세요. 불안해서 못 살아. 안 그래요? 그러는데 주지 스님이 나무아미타불을 하면 극락이 되고, 내 마음이 맑아지고, 또 내가 지혜로워지고, 내가 염불하면 복이 증장이 돼요. 못 살 수가 없어요. 잘살게 돼 있어요. 그거는 제가 경험했어요. 죽도록 저도 천수다라니를 하다 보니까 어느새 제가 복이 많아지더라고요. 천수다라니를 죽도록. 이제 천수다라니를 죽도록 하는 걸 우리 회주 스님께서 나무아미타불을 13만 번 하시지만, 저는 제가 체득한 거를 천수다라니를 우리 진관사 신도님들이 또 함께. 나무아미타불은 노는 입에 염불하는 거예요. 길 가도 나무아미타불, 발을 걸어도 나무아미타불. 저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냥 걸어도 나무아미타불. 여러분들 설거지해도 나무아미타불. 그러면서 시간 시간 염염이 상속이라 염불은. 염불. 부처님을 염하는 것을, 부처님을 생각하는, 생각할 염자거든요.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을 염염. 생각 생각이, 상속, 이어지게 하는 것이 기도의 가피에요. 그게 수행자예요. 내 삶에 그런 시간이 많이 축적이 되면은 못 살 수가 없어요. 모두 다 잘 살게 돼 있어요. 특히 윤달에 또 백중 기도에 우리 수륙재 기도에 여러분들이 그렇게 함께 하신다면 기도 공덕 가피는 어떻게 오느냐? 첫 번째 현상이 내가 뿌듯해져요. 내 마음이 뿌듯한 순간 모든 번뇌가 구름같이 밀려가고 태양이 솟아오르는 거하고 똑같아요. 그러면 바른 판단을 내가 해. 나는 이번에 오늘 어떻게 해야 되겠다, 이 판단이 바른 판단이 나와요. 그거를 우리는 지혜라 그래요. 바른 판단을 하면 복은 저절로 따라와, 성공을 자연적으로 하게 돼 있어요, 그죠? 그렇게 되기 때문에 여러분들 우리 진관사 마음의 정원 신도님들은 매일 일과로 부처님 마음을 따라 배우고, 부처님 마음을 실천하고, 부처님 마음을 사용하고,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고요. 또 이제 그래서 우리 윤달이 왔으니까 저도 우리 불자님들이 어떻게 하면 더 이렇게 복을 많이 받을까? 업장. 업장은 내가 행복하지 못한 행위를 업이라 그래요. 그걸 악업이라 그러고, 그러는데 악한 잘못된 습관, 그게 내 마음속에 저장이 되어 가지고 계속 그거를 화를 낸다든지, 욕심을 낸다든지, 어리석은 판단을 한다든지, 이렇게 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도 왜 예쁜 얼굴에 꼭 누구를 꼭 쑤셔야지 직성이 풀리는 사람 있잖아요. 그런 사람은 그걸 많이 익혔어. 그러면서 자기가 우쭐하는 거야. 왜냐하면 그게 저장이 많이 돼 가지고. 근데 그거는 그 마음을 이렇게 들여다보는 거, 그게 지혜입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아이고 아차, 내가 또 노는 입에 염불하라 했는데, 염불이 아니고 그 못된 마음을 쓰는구나’라고 보기만 해도 고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나쁜 건지 모르고 죽을 때까지 그 짓 하다가 죽으면 어디 가겠어요? 지옥에 가요. 지옥은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죽어가 가는 지옥이 아니라 살아도 지옥에 살아요. 그 가정이 편하겠어요? 살아서 지옥을 많이 경험하면서 또 저장을 하는 거야. 그러지 말고 우리는 다 마음의 정원, 듣기만 해도 평화롭지 않아요, 그죠? 도량이 요즘 너무 예뻐요. 대웅전 앞에 잔디를 심어 놓으니까 제가 얼마나 뿌듯해 갖고 막 우리 거사님들을 못 살게 굴어요. 빨리 물 줘라, 빨리 물 줘라, 이렇게 하고는 뭐 물을 또 안 먹은 데는 그냥 바짝 말라가 이러면 내 마음이 타들어서 빨리 여기 물을 줘라, 이렇게 하면서 사람들이 오늘 오셔 가지고 어떤 분들이 그러더라고요. 너무 좋대요, 너무 좋다, 너무 좋다, 이런 소리 한 번 들으면요. 제 마음이 뿡뿡뿡 비타민이 뿡뿡뿡 들어와요. 그래, 왜냐하면 저 사람 마음에서 좋다는 에너지가 진관사에 좋은 에너지가, 그 사람에게 뭐예요? 들어갔기 때문에, 제가 들어가는 걸 봤기 때문에 제가 너무 마음이 흐뭇한 거예요. 그러면 일거가 몇 득이 되잖아요, 그죠? 그 사람도 진관사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또 가면은 그게 삶의 에너지가 되고, 그 조직이 또 잘 되고, 이렇게 되는데 그래서 우리는 잘하자, 결론은 잘하자, 이 말이에요. 노는 입에 염불하고, 나무아미타불 많이 하고, 천수다라니 많이 하고, 이렇게 하자, 이 말이에요. 네, 그리고 이제 더 잘하기 위해서 8월 10일 날 저희가 삼귀오계 수계식을 합니다. 삼귀오계라는 것은 삼귀의(三歸依) 세 가지, 우리가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스님들에게 내가 의지하겠다, 온몸으로 의지하겠다, 모든 걸 바치겠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내 팔자를 한번 바꿔보겠다, 이게 삼귀의입니다. 그래서 모든 행사에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이게 불교의 세 가지 보배입니다. 그래서 삼귀계를 서약하는 거, 그래서 삼귀계라 그래요. 오계(五戒)라는 것은 살생하지 않겠습니다, 도둑질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 오계를 받아 가지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실천하겠다라는 서원을 세우는 거거든요. 그래서 계는 서서 받고, 앉아서 금방 계 받아 놓고 금방 욕하는 거 있죠. 그래도 공덕이 된대요. 그래서 계는 많이 받으면 많이 받을수록 좋다, 나쁘다? 그 말이에요. 계는 지난번에 받았는데 또 받나? 많이 받을수록, 우리가 지은 죄는 이만큼인데, 내가 이제 이만큼 극락 가려고 발을 옮겨놨어요. 그러면 자꾸 움직여서 가야 돼, 무조건 가야 돼요, 그 길을 보고. 그러는데 그래서 계를 받는데, 잉태한 애기도 계를 받으면 좋아요. 요즘은 애기를 태명을 많이 지어놓더라고요. 태명 뭐, 여기 사랑이, 저는 태명을 잘 지어주는데 마음이라고 잘 지어줘요. 마음이, 그리고 또 정원이라고 또 지어주고. 마음이 또는 정원이. 내 나름대로 여자애는 제 마음이라고 지어줄 때도 있고, 여자애는 정원으로 지어주고, 남자애는 마음이라고도 지어주고. 그래서 마음아, 너무 잘 왔다. 엄마 배를 만지면서 마음아, 넌 어떻게 그렇게 복이 많니, 지금 벌써 이렇게 엄마랑 같이 진관사에 왔구나, 이러면서 제가 배만 불룩하다 그러면 제가 뛰어가요. 뛰어가 가지고 오라 해 가지고 합장주도 주고. 그래서 이 배 속에 있을 때가 가장 큰 태교가 되니까 어쨌든 마음을 잘 써라 해가지고 그렇게 마음이라고 지어주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분은 요즘은 아주 신식 이름도 많이 짓더라고요. 그래서 태중 아기도 계를 받고, 금방 낳은 아기들도 계를 받고, 그러고 90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를 받고, 손주들까지 다 가족을 여기에 계에 올리도록 여러분들 실천할 거죠? 꼭 하셔야 돼요. 진짜 이건 권선입니다. 제가 선을 권장하는 일이니까 여러분 8월 10일은 아이고 핑계 있으면 안 돼요. 이렇게 좋은데 핑계, 나는 뭐 가족 뭐 어쩌고, 가족 놀러 갔어, 뭐 어쩌고. 그건 바보예요, 그죠? 이게 맨날 오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여러분들 삼귀오계, 그리고 또 그날 자비수참이라는 우리 진관사에서는 잘 안 했던 기도입니다. 저희는 자비도량참법기도를 했는데 자비수참이라는 기도는 오달국사라는 아주 국사께서 그렇게 기도했던, 이제 여러분들이 읽어보면 알아요. 그래서 봉녕사 주지 스님께서 저희에게 공양을 했어요. 진관사 저기 윤달에 뭘 하면 좋을까, 그러니까 스님께서 그걸 추천을 해주는데 제가 내용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아침부터 기도하고 오후에 수계식을 하니까 핑계 대지 말고 꼭 오세요. 네, 그래 가지고 오늘 날씨가 너무 더워 가지고 뭐 해주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아요, 너무 많지만 어떻게 또 뭐 다 가르쳐준다고 하는 건 아니더라고, 그저 잔소리만 되지. 그러니까 오늘 기억할 것은 매일 같이 내가 루틴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겠다. 기도하면 꼭 가피가 있다. 내 마음이 편안하고, 가족의 일이 절로 절로 저절로 이루어지고, 현생에 극락을 닦을 수 있다. 그리고 나무아미타불을 꼭 하자. 그래서 관세음보살했는데 어떡해요? 그러면 관세음보살하면 돼. 나는 나무아미타불은 습관이 안 됐다. 그럼 관세음보살하시면 되는데, 우리가 통일된 거는 나무아미타불. 이 말도 한마디 더 하고 가야 되겠네. 아침에 제가 오늘 일정이 엄청 빡빡해 가지고 있는데 애기들이 일정이 없는데 애들이 왔어요. 그래서 “너희 이렇게 일찍이 어떻게 왔냐?” “네, 주지 스님 극락버거 가져왔어요” 이래요. 그래서 “공덕 쌓고 극락가세요” 그래서 제가 뚱 했어요. 생각도 안 했는데. 극락버거를 가져와가, 애들 입에 ‘공덕 쌓고 극락 가세요’ 법문을 내려줬어요. 아 그래서 내가, “네 불자님, 제가 공덕 쌓겠습니다” 해가지고 제가 시주를 했어요. 시주하고 햄버거, 극락버거를, 마음의 정원 극락버거 맛도 얼마나 있는지 몰라요. 그래가지고 오늘 극락버거를 제가 시주를 받았는데, 아이들 오늘 어린이 여름불교학교를 하는데, 제목이 <수행하고 극락 가고>랍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 진관사는 마음의 정원이죠? 이제 조금 더 진보했어요. 극락정원 진관사입니다, 그죠? 이거는 어린이 법회에서 네이밍을 줬어요. 지네들이 ‘공덕 쌓고 극락 갑시다’라고, 지금 어린이 법회 법우님들이 그렇게 했으니까 우리 다 극락 갑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