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천일기도]]대웅전 관음천일기도 회향 법문 2024-10-11

--現在佛慈悲當來出現佛--

--현재불자비와 당래출현불--

 

 

        안녕하십니까? 오늘이 무슨 법회에요? 천일기도 회향법회. 천일기도 회향을 축하드립니다. 100일 기도하기도 힘든데, 천일을 기도를 하시고, 참 대단한 인연이에요.
       오늘 천일기도 회향 법문은 현재불자비(現在佛慈悲), 현재불자비, 당래불, 당래출현불(當來出現佛), 현재불자비와, 당래라고 하면 미래를 말하는 거에요, 당래출현불,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於諸病苦 爲作良醫 於失道者 示其正路

어제병고 위작양의 어실도자 시기정로

於闇夜中 爲作光明 於貧窮者 令得伏藏 (普賢行願品)

어암야중 위작광명 어빈궁자 영득복장 (보현행원품)

 

        이게 뭔 말이냐 하면, 부처님의 자비를 말씀하는 건데요. 자비가 뭐냐. 모든 병고에는, 질병과 고뇌에는 좋은 의원이 되어 주시고, 어실도자(於失道者), 길을 잃은 자에게는 그 바른길을 보여주시고, 어암야중 위작광명(於闇夜中 爲作光明)이라, 깜깜한 어두운 밤에는 광명이 되어 주시고, 어빈궁자 영득복장(於貧窮者 令得伏藏)이라,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는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쓸 수 있는 그런 금은 창고, 그 금은 창고를 얻게 해주신다. 이것이 부처님의 자비다. 이렇게 공양 올릴 때마다 염불하는 그런 내용이고, 보현행원품에서 말씀하신 그런 내용이에요.
         그러면 병고라고 그랬는데 병고가 뭐냐. 병은 몸이 없으면 병이 없거든요. 병은 몸에서 오는데, 몸은 중생이 느끼는 이 사대육신, 지수화풍 사대, 근육으로 된 이 육신이 있고요. 이제 제불보살이 가지고 있는 몸은 여여무주 진여불성. 여여(如如)해요. 하늘이 무너져도 달라짐이 없어요. 여여해. 같아, 같아. 땅이 무너져도 여여해. 이 몸이 죽어도 여야해. 근데 이 몸은 여여이 변만법계 하는데, 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법계에 가득한데, 또 시방무주예요. 시방에 머무는 데가 없어. 무주(無住). 봄이 모든 꽃을 피우지만, 봄은 어느 꽃에도 머물지 않아요. 그래서 부처님이 깨달으신 몸을 여여신이라, 무주신이라, 여여한 몸이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그런 몸이다. 그런 몸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이다. 참 아는 몸이다. 불성이다.

 

        이게 이제 불보살의 몸인데, 범부의 몸은 이 사대육신으로 몸을 삼기 때문에 병이 많아요. 병이 많아. 병 중에 제일 많은 병이 배고픈 병인데, 이 배고픈 병은 염치도 없고, 숫자도 없어서, 먹고 조금 있으면 배고파요. 그래서 이 배고픈 병 다 고치는 날은 이 몸이 숨지는 날이에요. 이 몸이 숨지기 전에는 배고픈 병은 못 고친다. 그런 병도 있고, 아픈 병도 있고, 뭐 힘이 빠지는 병도 있고, 늙는 병도 있고, 몸에는 그렇게 병고가 많아요. 그런데 그 병고를 어떻게 가르치냐. 죽지 않는 몸, 여여신, 진여신, 무주신, 이런 몸을 떡 얻는 순간에 몸의 병고는 없어요. 그래서 모든 병고에서 훌륭한 의원이 돼 주신다, 그 말이고요.

        어실도자 시기정로(於失道者 示其正路). 길이라는 게 뭐냐. 불성의 길이 있고, 진여의 길이 있고, 열반의 길이 있는데, 이 몸을 내 몸으로 딱 집착하는 순간에 불성, 진여, 열반, 다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그 여여의 길로 돌아가도록, 불성의 길로 돌아가도록, 그 바른길을 보여주신다.

        어암야중 위작광명(於闇夜中 爲作光明)이라. 어두운 밤이라, 어두운 밤이 뭐냐. 이 해가 져서 어두운 건 어두운 게 아니에요. 그건 자성이 없어서, 해를 등진 인연으로 나타나는 거기 때문에, 해를 등지지 아니하면 어두움은 없어져요. 또 이 밝음도 밝음이 아니라, 밝음도 자성이 없어서, 이 해를 등져버리면 밝음은 또 없어져 버려요. 인연으로 생긴 것은 없는 거다. 그래서 밝으면 밝음이 없고, 어두우면 어둠이 없어서, 이 육안을 몸에 있는 눈으로 본 어두움은 어두움이 아니다. 그럼 뭐가 어둠이냐. 불성을 보지 못하는 어두움, 무명(無明), 무명의 어두움이다. 불성이 그게 난데, 불성이 내 몸인데, 그 내 몸을 내가 보지 못하는 어둠이 그게 어두움이다, 그거죠. 그래서 어두운 밤에는 광명이 되어 주신다, 그거고요.

       어빈궁자에겐 영득복장(於貧窮者 令得伏藏)이라. 빈궁이라는 게 뭔가. 이 육신의 몸을 자기 몸으로 삼다 보니까 항상 가난해요. 왜냐. 이 몸을 위해서 모든 게 필요해요. 그래서 눈이 가난하고, 귀가 가난하고, 코가 가난하고, 입이 가난하고, 손이 가난하고. 그래가지고 눈, 귀가 다 가난해. 그래서 어찌 되냐. 눈은 이 몸을 위해서 뭐 좋은 게 없나 항상 살펴요. 이건 나이 많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똑같아. 나이 많다고 뭐 안 보냐. 뭐 그거 아니에요. 절대 다 봐요, 나이 많아도. 다만 속도가 좀 느릴 뿐이여. 왜 보냐. 이게 이 몸을 위해서 필요한 게 많아. 그래서 눈은 항상 뭐를 얻으려고, 뭘 구하려고 계속 봐요. 항상 빈털터리로, 가진 거 하나도 없는 상태로, 계속 보는 거예요. 그래서 눈이 가난하다. 귀가 가난하다. 뭐 좋은 소리 없나 싶어서 계속 들으려고 그래요. 이거 노인인데도 더 들으려고 그래요. 노인은 잘 안 들리니까, 더 들으려고 용을 쓰고. 들어서 뭐 할래. 이 몸에 필요하니까 그래요. 안 들어놓으면 이 몸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또 코도 그렇지. 계속 냄새를 맡아서 이 몸이 좋은 거는 계속 구하고, 안 좋은 거는 안 구하고 이러려고. 혀도 그렇고 계속 맛보죠. 손도 좋지 않은 먼지는 계속 닦아내야 되고, 좋은 건 계속 맞아들여야 되고. 닦아내고 맞이하고, 닦아내고 맞이하고 하는 게, 이게 손이 평생 하는 일이에요. 이러니까 범부는 눈, , , , , , 온몸이 가난해요. 온몸이 가난해, 한낮에도 가만히 있는 걸 두려워해요. 어디 가서 뭔 소리 들어야 되는데. 어디 가서 뭐 봐야 되는데. 빈궁자예요. 그러면 그 불성의 보배를 다 알게 되면 가난 없어요. 또 배고프고 허직나는 것도 없어. 영절기허(永絕飢虛). 영절기허. 배고픈 거 허증나는 거 영원히 끊어진다. 그게 이제 그렇게 인도하는 것이 부처님인데 그걸 부처님의 자비라고 한다.
        어제병고 위작양의 어실도자 시기정로 어암야중 위작광명 어빈궁자 영득복장. 부처님의 자비. 참 좋다. 좋아. 부처님의 자비, 정말 좋다. 이게 이제 현재불자비예요. 현재 세상에 출연한 부처님의 자비다.

         근데 경전에 유마경이라는 경이 있는데, 그 유마경의 골자가 유마와 문수가 대화를 하는 것이 유마경의 핵심인데, 유마는 뭔 사람이냐 그러면, 유마라는 게 한문으로 번역하면, 깨끗할 정자, 이름 명자, 정명(淨名)이라 그래요. 정명. 정명이라는 게 뭐냐. 세상에는 이름이 있는데, 모든 이름에 물들지 않고, 모든 이름은 허명이라는 걸 알아. 일체의 명칭은 허명이다, 이걸 알아요. 이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몰라요. 무슨 가요에 그런 게 있다고. <살아서는 얻지 못하는 이름 하나 때문에> 뭐 이런 거 있더라. 이름은 다 허명이에요. 무슨 이름이든지. 헛된 거예요. 그걸 알아서 이름에 절대 물들지 않는 게 유마에요. 그래서 이름 자체가 정명이에요. 정명. 그럼 문수는 누구냐? 문수는 일체의 상이 상이 없다는 걸 알아. 상에서 무상을 안다. 모두 형상이잖아요. 형상. 형상은 다 헛되다. 그래서 형상은 다 상이 없다. 이걸 알아요. 그래서 이 두 분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하나는 이름이 다 헛되다는 걸 아는 유마, 하나는 모든 형상이 다 헛되다는 걸 아는 문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그게 유마경의 핵심이에요. 다 상에 집착하고, 상에 어리석고, 상에 매달려 산다고요. 그런데 이 불성으로 들어가려면 제상이 비상(諸相非相)임을 봐야 돼요.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봐야 그 죽음이 없는 불성의 세계로 들어가요. 약견제상이 비상이면 즉견여래다. 상에 속으면 못 들어가. 한 번 누구를 만났는데 아침마다 저 동방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하염없이 보고 있다고 그래요. 기도 안 차더라고. 내가. “범소유상이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이라는 거 모르나.” “아이 그래도 보면 좋아요.” 이래. 조금 나이가 들면요, 뭘 가르쳐줘도 듣지도 않아요. 안 들어, 안 들어. 이제 끝난 거예요. 저 해라는 게 저게, 인연으로 생겼다가 인연으로 사라지는 거, 헛된 건데, 상은 다 헛된 거예요. 몸이라는 형상도 헛된 거고, 지구라는 형상도 헛된 거고, 눈에 보이는 거 다 헛된 거고, 귀에 들리는 거 다 헛된 거고, 그 상은 허상이다. 이걸 알아서, 상에서 항상 무상을 보고 있는 게 문수지혜거든요. 이름에서 항상 이름이 없는 걸 보는 게 유마의 지혜고. 그 두 사람이 만났어. 대화가 이루어지는데. 묻는 건 문수고, 대답하는 건 유마에요.

 

又問身 孰爲本 答曰欲貪 爲本 又問欲貪 孰爲本 答曰虛妄分別

우문신 숙위본 답왈욕탐 위본 우문욕탐 숙위본 답왈허망분별

爲本 又問虚妄分別 孰爲本 答曰轉倒想 爲本 又問轉倒想

위본 우문허망분별 숙위본 답왈전도상 위본 우문전도상

孰爲本 答曰 無住 爲本 又問無住 孰爲本 答曰無住

숙위본 답왈 무주 위본 우문무주 숙위본 답왕무주

則無本 文殊師利 從無住本 立一切法 (維摩經 觀衆生品)

즉무본 문수사리 종무주본 입일체법 (유마경 관중생품)

         “몸은 무엇이 근본입니까?” 하니까 유마가 대답을 하기를, “몸이라는 것은 욕망이라는 욕자, 탐할 탐자, 욕탐(欲貪)이 근본이다.” 이렇게 대답을 해요. 이 몸은 욕탐의 산물이에요. 이건 내 몸이다라는 욕심과 탐욕이 없으면 이 몸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뭐 오래 살았다고 축하하는데, 그거 절대 축하받을 일이 아니에요. 100년을 살았으면 100년을 이 몸을 위해서 욕탐을 일으켰다는 거예요.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30년을 살았으면, 30년을 이 몸을 위해서 욕탐을 일으켰다는 거예요. 이 몸을 위해서 먹어야죠. 몸을 위해서 입어야죠. 몸을 위해서 잠재워야죠. 이 기가 막힌 말이에요. 그러면 욕탐은 무엇이 근본입니까?” 하니까 허망분별(虛妄分別)이 근본이다.” 이 우주법계는 여여무주인데, 여여이 머무는 데가 없는 건데, 이거는 좋은 거고, 이거는 나쁜 거고, 이건 내 몸이고, 이건 내 몸이 아니고, 이렇게 허망하게 나눈단 말이에요. 분별은 나눠. 그래서 둘로 보는 것이 있으면 범부고, 둘로 보는 것이 없으면 불보살이다. 불보살은 둘로 보질 않아요. 둘로 보면 다 범부여. 그걸 둘로 본다는 얘기를 불교에서는 분별이라고 그래요. 일반 세속에서는 상식이라 그래요. 무분별하게 그러면, 상식 없이 이러잖아요. 불교에서는 나누는 걸 분별이라고 그래요. 나눠. 다르게 나눈다. 그다음에 허망분별은 무엇이 근본입니까? ” “전도상(轉倒想)이 근본이다.” 뒤바뀐 생각. 이 우주만상이 다 자기 몸인데, 요 자기 육신만을 위해서 탐욕을 느끼고, 집착을 하니까, 하나를 둘로 나누는 전도상. 이미 자기 집에 있는데 다시 자기 집을 찾는, 자기 집에서 자기 집 찾는 거와 같은, 이미 머리가 위에 있는데, 머리를 땅에 박는 거와 같은 전도상이 그것이 근본이다. 이렇게 대답을 해요. “또 전도상은 무엇이 근본입니까?” 그러니까 전도상은 무주(無住)가 근본이다.” 본래 머무는 데가 없는 여여무분별 그게 근본이다. 그러면 또 무주는 무엇이 근본입니까?” 그러니까 무주는 무본(無本)이다.” 근본이 없다. 근본이 없다는 얘기는 지말(枝末)도 없다. 이 근본과 지말을 나누는 건 무명이고, 이게 근본, 이게 턱 이래보면 이것이 근본이 따로 있느냐, 지말이 따로 있느냐, 그냥 이게 여여상일 뿐이에요. 이게 여여상. 여여일상을 근본상, 지말상 이렇게 분별을 하면 그거는 허망분별이다. 전도상이다. 그래서 언제 사람이 평화로울 수 있느냐 하면, 자기 생각 속에서 두 가지가 사라졌을 때, 무이에 들어갔을 때, 둘이 없는데 들어갔을 때. 그럼 내 생각이 지금 둘이 없는데 들어갔나. 택도 없어요. 딱 생각하면 멀고 가까운 거 생각하고, 보이고 안 보이는 생각하고, 오고 가는 거 생각하고 전부 둘이여. 그러면 이 둘이 없는데 어떻게 들어가느냐. 딱 본래 눈을 떴을 때 개안, 이 진여불성의 눈을 딱 떴을 때 그때 둘이 없어요. 참세계에 눈을 뜨지 못하면 늘 둘 속에서 살아요. 옳은 거 아니면 그른 거, 죽는 거 아니면 사는 거. 무주는 무본이라, 근본이 없어. 근본이 없는데 입일체법(立一切法)이라. 모든 걸 다 세운다. 근본이 하나도 없지만, 일체법을 다 세운다. 일체법을 다 세우지만 거기에는 머무는 것이 없다. -이게 이제 우주 밖에 통신삼매, 우주 밖에가 아니라 우주법계인데, 나이 들면 이래요. 입술이 내 마음대로 안 돼요.- 우주법계 통신삼매, 통신이라는 거는 온몸이라는 소리예요. 온몸. 우주법계가 온몸, 그냥 자기 몸이에요. 그 삼매에 들기 전에는 둘이 없어지질 않아요. 우주법계가 전체로 통째로 내 몸이다. 딱 들면 둘이 없어요. 그렇기 전에는 전부 둘로 봐서 가난해. 그래가지고 그 가난을 어디서 면해야 되는가. 복장(伏藏)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복이라는 거는 숨겨졌다 이 말이에요. 엎드릴 복자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데 진금장(眞金藏), 진금으로 가득한 창고가 있다. 이걸 복장이라고 그러는데.  

 

善男子 我者 即是如來藏義 一切衆生 悉有佛性 即是我義

선남자 아자 즉시여래장의 일체중생 실유불성 즉시아의

如是我義 從本已來 常爲無量煩惱所覆 是故衆生 不能得見

여시아의 종본이래 상위무량번뇌소복 시고중생 불능득견

善男子 如貧女人舍內 多有真金之藏(涅槃經 如來性品)

선남자 여빈여인사내 다유진금지장(열반경 여래성품)

        선남자(善男子), 아자(我者)는 나라. 나라고 하는 것은 이 사대육신이 아니라 진여불성이 나다. 이 사대육신은 여러 가지 인연에 의해서 생겼다가 인연에 의해서 사라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놈을 나라고 막 계속 욕탐을 내서 하염없이 집착을 하니, 이 녀석이 자기가 집착한다고 가만히 있나. 이 몸은 사정이 없어요. 이 몸은 어머니도 없고요. 아버지도 없고요. 아들도 없고요. 부모도 없어요. 이 몸은 그냥 갈 때 가는 거예요. 어머니 몸이라고 뭐 안 가고, 무슨 몸이라고 가고, 그런 거 절대 없어요. 근데 나라고 하는 것은 곧 진여불성이다. 일체중생이 다 진여불성이 있다. 근데 이 진여불성이 말이여. 종본이래(從本已來), 근본으로부터 오면서, 위무량 번뇌소복(常爲無量煩惱所覆)이라, 한량없는 번뇌에 이게 뒤덮여 있어. 이제 근심 걱정하는 거, 둘러보는 거 좋고, 나쁘고 생각하는 거. 근데 이 진정 불성은 그냥 거기 있어요. 번뇌 속에. 아무리 번뇌가 끼어들어도 진여불성은 물드는 법이 없어. 그건 마치 월인천강이라. 달이 천 가지 만 가지 강의 그림자를 들여오면, 달이 아무리 그 물속에 그림자를 드리워도 물속에 달이 없어요. 아무리 달이 많이 비춰도 물속엔 달이 없어. 그거와 같이 번뇌가 아무리 진여불성에 꼬여들어도 진여불성은 번뇌에 물드는 법이 없다. 그러면 나의 번뇌심, 나의 청정심, 나의 청정심은 내가 근심 걱정할 때 어디 있었나? 그럼 나의 그 진여불성 청정심은 근심 걱정하는 그 속에 있어요. 근심 걱정하는 마음 따로고, 청정한 마음 따로 그게 아니라, 그 속에 그냥 있어요. 물 다르고 달빛 다른 게 아니라, 달빛 속에 물이 있고 그냥 있는 거예요. 근데 아무리 달이 비쳐도 그 물이 달에 물들질 않아요. 그래서 그걸 묘하다고 하는 거예요. 미묘심이라, 미묘. 아무리 번뇌를 수억 만 년을 일으켜도 진여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는다. 야 참 기가 막힌 거에요. 그래가지고 중생이 불능득견(不能得見)이라, 보지 못한다. 마치 빈녀인사내(如貧女人舍內), 가난한 여인의 집안에, 다유진금지장(多有真金之藏)이라. 진금으로 저장된 것이 많이 있는 거와 같다. 그러면 빈인사내, 가난한 집에, 가난한 집인데 그 집 안에 땅을 파보니까 거기에는 그저 진금 보배가 가득히 쌓여 있어요. 가난한 집안에. 근데 그 진금보배가 거기 쌓여 있는 줄 모르고 계속 가난을 걱정하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가난한 집 땅속에 진금의 창고가 가득한 걸 알고 여기 파보면 진금이 들어있다. 안 믿어. 안 믿어요. 정말 있느냐? 있다. 그럼 어떻게 그걸 증명할 수 있느냐. 내가 증명해 보이겠다 해가지고 팠어. 파니까 금방 나와. 그래서 그 가난한 집에서 진금을 한 번 얻은 다음에는, 눈으로 보고 뭘 구할 것도 없고, 귀로 듣고 구할 것도 없고, 손으로 구할 것도 없고, 그 진금 하나만 가지고도 뭐 수억 만 년을 쓰고도 남는다 이런 비유예요. 이 눈코귀, 안이비설신의가 저 색성향미촉법을 대할 때, 좋다 나쁘다, 멀다 가깝다 계속 구하는데, 구해도 구해도 만족하질 않아요. 사람이라는 요 근본을 아는 게 굉장히 필요해요. 가져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게 사람이고요. 얻어도 얻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게 사람이에요. 내가 너한테 얼마나 줬는데 그런 소리를 하냐. 그건 사람을 모르고 하는 소리여. 받으면 받을수록 더 받으려고 하는 게 사람이요. 그러니까 제대로 살려면 아예 안 줘야 돼. 처음부터. 그냥 왜냐하면 줘도 불만이니까, 안 줘도 불만이 있고, 그러니까 뭐 부모가 자식한테 좀 잘해주면 자식이 행복할 것 같죠. 절대 아니에요. 잘해줄수록 원망이 더 많아. 왜 이것밖에 안 해주느냐 그러고. 그게 인간이에요. 그러면 인간은 자기 스스로 좋은 체험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거예요. 누구한테 받으면 계속 더 받으려고 그래요. 자기 스스로 좋은 체험을 한 거는 그건 억만 재산보다 낫고 억만 상속보다 나아요. 자기 체험은 안 없어져요. 어디를 가든지 겁이 안 나, 좋은 체험을 하면. 그러니까 100일 기도를 하고 천일기도를 하고 다 그렇게 되면, 기도하는 그 순간에는 몸이 그게 부처님이거든요. 기도하는 순간에는 몸이 나쁜 짓 전혀 안 하고, 그냥 서든지 앉았든지 한 자리로 가잖아. 이게 부처님이지 완전히. 또 눈으로 경보고 눈으로 부처님 보고 입으로 부처님 이름 외우고 생각으로 부처님 생각하고 그 기도하는 순간에는 신구의 삼업이 전부 부처님이요.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 또 100일이 지나고, 천일이 지나면, 그보다 더 좋은 체험은 없죠. 그렇게 좋은 체험을 하면 그것이 어떤 경우가 와도 두려움이 없어요. 그런데 그런 체험이 없으면 늘 받아서 하려고 그러고, 얻어서 하려고 그러고, 주워서 하려고 그러니까 두려움이 많아. 그래서 부모가 뭘 많이 주면 아이들에게 겁을 많이 내게 한다. 근데 지가 체험을 해서 잘 살면 겁나는 거 하나도 없어요. 그 어릴 때부터 먹을 게 없어가지고, 주는 대로 먹고 산 사람이 60년대까지는 많았거든요. 나 뭐 먹을래. 어림도 없어요. 어떻게 주문해서 먹어요? 풀뿌리 먹고, 나무 껍데기 먹고 하는 판에. 그러니까 뭐든지 주면 좋은 거라. 그냥 주는 대로 먹어.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요. 뭐가 와도 겁나는 거 하나도 없어요. 어릴 때 주는 대로 먹었기 때문에. 뭘 먹어도 몸에 좋다는 거 알거든요. 안 먹는 것보다 낫다는 거. 그냥 먹는 거 해탈했어. 그냥. 그리고 몸이 좀 고생한 사람은 어디 가도 겁나질 않아요. 모기가 물어도 얼마든지 잘 수 있고. 참 이거는 나도 경험해서 아는 거예요. 그냥 책 보고 아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성불을 한다는 거는 몸 성불, 말 성불, 생각 성불, 신구의 삼업이 같이 성불하는 거예요. 인간의 몸이라는 게 아주 영리하거든요. 몸이 먼저 알아요. 좋은지 나쁜지. 눈으로 볼 때는 저 사람이 좋을지 나쁠지 잘 판단이 안 서는데, 몸이 딱 느끼면 바로 알아. 그거 틀림없어요. 그만큼 이 몸이 아주 대단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 몸 체험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몸 체험. 어느 골짜기 가면 그 골짜기 다 안 들어가 봐도 입구에서 몸이 벌써 알아요. “여기 쎄하다.” 틀림없이 가면 안 좋아요. “아 여기 어디 느낌이 좋다.” 그럼 가면 틀림없이 좋아요. 그러니까 깊은 경지에 들어가려면은 이 몸의 체험이 깊어져야 된다, 이거죠. 

 

兒子作宰相 身爲國夫人 未足爲貴 糞掃堆頭 收得無價之寶

아자작재상 신위국부인 미족위귀 분소퇴두 수득무가지보

百劫千生 受用不盡 方始爲眞貴耳(大慧書狀 答秦國太 夫人文)

백겁천생 수용부진 방시위진귀이(대혜서장 답진국태 부인문)

         그리고 강당에서 늘 가르치는 서장이라는 책이 있는데, 서장은 편지라는 거예요. 대혜 선사가 여러 사람에게 한 편지가 그게 서장인데, 거기에 이제 진국 태부인이라는 분이 있는데, 태부인이라는 건 지위가 아주 높다, 자식의 지위가 재상이다, 그래서 그 어머니를 태부인이라고 그러는데, 이 태부인이 경을 계속 읽다가 자기 불성을 봤어. 견성을 했어요. 이 눈으로 물질을 본 게 아니라 눈으로 자기 불성을 보았다. 그걸 견성이라 그래요. 견색은 맨날 하잖아요. 색을 본다. 이거 근데 자기 눈으로 자기 불성을 봐. 그래서 그걸 대혜 제자를 통해서 들었어. 근데 처음에는 대혜가 안 믿었어요. 그 진국 태부인이 불성을 보았는지 안 믿었는데, 그 제자가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니까 믿게 됐거든. 그러고 이제 편지를 쓴 거예요. 편지에 무슨 말이 있냐면, 아자는 작재상(兒子作宰相)하고. 아자라는 건 그 아들을 말해요. 아이 아자, 아들 자자. 아들은 재상이 되고, 신위국부인(身爲國夫人)은 자기 자신이 국부인이 된 것은 미족위기(未足爲貴), 귀할 것이 못 되나, 분소퇴두(糞掃堆頭), 분소라는 거는 인분 분자, 쓸 소자인데, 여러 가지 깨끗하지 못한 거 온갖 거 쓸어 모아놓은 그 쓰레기 무더기를 말해요. 쓰레기 무더기. 그 쓰레기 무더기 퇴자. 머리 두자. 머리도 두자는 어조사. 쓰레기 무더기에서 수득무가지보(收得無價之寶)하야, 이게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보배를 그 쓰레기 무더기 속에서 얻었다. 그게 견성이에요. 견성하지 못하고 그냥 죽으면 그냥 태우면 쓰레기 뿐이죠. 근데 거기서 견성을 하면 그 쓰레기 무더기에서 무가지보,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보배를 얻은 거와 같다. 이게 또 아주 중요한 법문이라. 중요한 법문 할 때면 졸음이 약간 오거든요. 졸음이 약간 오면 이거 중요한 법문인 거예요. 졸음이 안 올 때는 그건 중요한 법문 아니에요. 그러니까 중요한 법문 하려면 계속 졸아야 돼요. 왜냐하면 졸음이 온다는 건 평소에 못 듣던 얘기니까, 처음에는 눈이 번쩍 뜨이다가 잘 이해가 안 되니까 이제 몸이 벌써 알고 졸아. 이건 내가 조는 게 아니야. 몸이 조는 거예요. 몸이 벌써 알아요. 몸이 살~ 좋단 말이에요. 몸이 안 졸면 중요한 법문 아니지. 지금 중요한 법문에서 잠시 멈추니까 조는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그게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쓰레기 더미에서 무가지보를 얻어서 백겁천생(百劫千生)토록, 백겁이 지나고 천생이 지나도록 수용부진(受用不盡)이라야, 그걸 쓰고 쓰고 써도 다 쓰지 못하고 남는 것이라야방시위진귀이(方始爲眞貴耳)니라. 바야흐로 비로소 참되게 귀한 것이 되나니라. 이런 법문을 편지로 써서 보냈어요. 그러니까 이 몸 가지고 이 눈으로 자기 불성을 보는 것은 쓰레기 무더기에서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좋은 보배를 얻어가지고 백겁을 쓰고 천겁을 써도 다 쓰지 못하는 그런 걸 얻었을 때 그게 견성이다, 이런 법문이에요. 참 기가 막힌 법문이에요. 기가 막혀.

 

凡諸佛 爲衆生 說佛德 意爲欲令衆生 自亦得彼果 故令修行

범제불 위중생 설불덕 의위욕령중생 자역득피과 고영수행

是故衆生 望自當來 所得之果德 爲欲得彼 不惜身命修行

시고중생 망자당래 소득지과덕 위욕득피 부석신명수행

不爲得 他佛果修行 是故 正令吾 發心修行佛 但吾當果()

불위득 타불과수행 시고 정령오 발심수행불 단오당과()

已成佛 非他佛也(錐穴問答, 法界圖記錄卷下之二)

이성불 비타불야(추혈문답, 법계도기록권하지이)

         그리고 지금부터 할 얘기는 제 자신도 잘 모르던 얘긴데, 자기가 지금 예경 공양 올리는 부처님이 자기 미래불이다. 딱 얘기가 그거예요. 내가 법당에서 예경하고 공양 올리면 그게 자기 미래불이다. 딱 이게 핵심이에요. 내가 법당에 가서 다 절을 올리잖아요. 그러면 지금 내가 절하고 있는 그 부처님이 미래의 자기불이다 이거예요. 이게 핵심이에요. 요런 믿음이 이게 굉장히 중요한데, 이거 다른 데는 잘 없어요. 경에 있다고 그러는데, 그 경을 봤을 리도 없고, 근데 의상 스님이 제자를 데리고 그 추동이라는 데 가서 화엄법문을 석 달 동안을 했다라고 그러는데, 그 기록이 있는데 전해지지 않는 것도 많은데, 고려 말에 그 의상 스님 제자들이 주석해놓은 책을 전부 모아서 책을 낸 게 법계도기총수록인데, 그 총수록 네 번째 권에 그 추동 법문 이거에 대해서 간략히 수록을 해놨어요. 그걸 보고 나도 처음 봤는데 이게 얼마나 중요한 법문인지 몰라요. 내가 어느 법당에 가서 지금 절을 떡 올리고 있으면 그것이 자기 미래의 자기 불이다. 내가 절하는 부처님보다 그게 미래의 자기 불인 거예요자기가 그렇게 되는 거예요. 이건 인과법이고, 부처님의 자비법이고 부처님의 영험법이거든. 근데 그게 뭐냐 하면 그런 거예요. 범제불 위중생(凡諸佛 爲衆生)하야, 모든 부처님이 중생을 위해서, 설불덕(說佛德), 부처님의 공덕을 자꾸 얘기하는 것은 그 이유가 뭐냐. 의위(意爲), 뜻으로 생각하기를, 욕령중생(欲令衆生)으로, 중생으로 하여금 자역득피과(自亦得彼果), 중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그들도 그들의 성불을 얻기를 바래서 중생에게 부처님의 공덕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중생이 성불하라고 부처님의 공덕을 이야기했지, 이미 부처된 당신에게 자기를 칭찬하라고 부처님의 공덕을 이야기한 게 아니라는 거에요. 이게 너무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래서 고로 영수행(故令修行)하나니라. 그러니까 중생들이 스스로 성불하라고 수행을 하도록 하나니라. 그리고 그러므로 중생이 () 당래(當來) 소득지과덕(所得之果德)하야, 자기가 당래에, 앞으로 자기 얻을 과덕을, 내가 어떤 부처님이 돼야 되겠다, 내가 성불해야 되겠다, 이런 결과의 공덕을 딱 생각하고 바라고, 위욕득피(爲欲得彼)하야, 그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서원하는 그 부처님의 세계를 얻기 위해서 신명을 아끼지 않고 수행하면, 그것이 요게 굉장히 중요한데, 수행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했는데, 결과는 자기가 성불을 한 거예요. 가르쳐준 부처님 성불을 한 게 아니라 자기 성불을 한 거예요. 이게 이제 핵심이에요. 처음에 따라 할 때는 부처님을 따라 했는데, 이룬 거는 자기가 이뤘어. 모든 교육에 이게 똑같이 적용이 되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타불가(他佛果)를 얻는 것이 아니라, 타불가를 얻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고(是故) 정령오 발심수행불(正令吾 發心修行佛), 나로 하여금 발심해서 수행하게 하는 분은, 단오당과불(但吾當果)이라.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를 위해서 발심수계 하게 하는 것은 석가모니불이 나의 당래불이다 이거예요. 나의 당래불. 그러니까 자기가 절했던 분만큼 자기가 성불을 해요. 이런 가르침이 잘 없어요. 이렇게 아주 대놓고 그냥 딱 그냥 알맹이 까보이는 가르침이 별로 없다고. 그래서 이성불(已成佛)은 이미 부처를 이룬 분은 비타불(非他佛也)이다. 다른 부처님이 아니라 내가 성불할 나의 미래불이다. 며칠 전에 가까운 산에 갔는데 거기가 유명한 옛날 무슨 누각터고 그런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였지. 그런데 어느 분들이 와서 그 지도자의 가르침에 따라서 체조를 열심히 배우더라고요. 근데 지금 배울 때는 가르치는 대로 배우니까 그 가르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 같지. 근데 배우고 배우고 나면 전부 그게 나를 위해서 한 거예요. 배울 때는 다른 사람을 따라 했는데 이룬 건 내가 이루었어. 그 가르친 사람을 이룬 게 아니에요. 이거 이제 스승들이 하는 얘기인데 내가 다 너 잘 되라고 한다.” 그런데 근데 그 말도 들으면 안 돼요. 사람이 이 몸에 집착하는 한, 다 저 좋게 가르쳐요. 이 몸에 집착이 없는 부처님은 그게 되는데. 몸에 집착이 있으면요, 부모는 부모 좋게 자식을 가르쳐. 이게 몸의 한계예요. 자식은 또 자식 좋게 부모에게 요구를 해. 그러니까 자식 하자는 대로 하면 그 부모 망해요. 절대 그러면 안 돼요. 왜 그러냐면 근본적으로 몸이 숨을 쉬고 있는 한, 인간의 생각은 몸을 위해서 생각하게 돼 있어요. 부모도 마찬가지요. 몸이 있는 한 자식들을 뭐라고 뭐라고 할 때 자기 좋게 하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이 돼 있어요. 생겨먹기를. 절대 그러면 안 돼요. 부모한테 속아서도 안 되고 자식한테 속아서도 안 돼요. 스님들도 마찬가지여. 은사 스님도 성불하기 전에는 상좌들을 전부 자기 좋게 가르친다고. 그러니까 은사 이제 말 듣고 했다가는 잘못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나는 아예 안 가르치고 ,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처음부터 그냥 미련을 딱 끊으니까 그렇게 편하더라고. 그냥 오든지 말든지. 근데 그냥은 안 오고 꼭 뭘 배우러 와 참. 그것도 기분 나쁘더라고 참. 와서 뭘 꼭 배우려고 해요. 그러니까 저 좋게 하는 거 아니고 다 그게 좋다 이거예요. 근데 배우면 처음에는 내가 가르치는 대로 배우는 것 같지. 그게 전부 저들 게 되는 거예요. 내 거 안 돼요. 석가모니불이나 비로자나불이나 다 중생을 위해서 가르쳤잖아요. 그럼 그대로 따로 하면 내가 비로자나불이 되고 내가 석가모니불이 되는 거지. 석가모니불 되라고 중생을 가르친 게 아니고, 비로자나불 되라고 중생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이거지. 그러니까 자기가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면 그 예불 드린 부처님과 같이 미래에 자기가 성불한다. 요 얘기요.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