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相祖師法性偈이야기 10
의상조사법성게이야기 10
--一微塵中含十方, 即事法 明攝法分齊--
--일미진중함시방, 즉사법 명섭법분제--
일미진중함시방 일미진중함시방 일미진중함시방 일미진중함시방
일미진중함시방 일미진중함시방 일미진중함시방 일미진중함시방
일미진중함시방 일미진중함시방
이 글을 읽는데요. 읽는 방법이 첫째는 송독(誦讀). 송독. 외울 송자, 읽을 독자 송독. 이렇게 외우는 걸 중심으로 하다 보면 이 말하는 대로 가게 돼요. 말 따라서 가게 돼요. 그리고 뜻을 보는 걸 중심으로 읽는 것을 볼 관자, 읽을 독자, 관독(觀讀)이라 그래요. 관독. 그럼 이제 송독을 할 때는 일미진, 일미, 일미로 붙게 돼요. 일미 진중. 근데 관독을 할 때는 일하고 떼어서 미진중 이렇게 읽었거든요. 미진이라는 게 그게 하나의 용어고, 일이라는 게 또 독립된 용어잖아요. 그래서 뜻을 가만히 보고 읽을 때는, 자연스럽게 일/ 미진중/ 함/ 시방 이렇게 읽고, 외울 때는 외우기 편한 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일미/ 진중/ 함시방, 일미진중함시방.
그런데 이 게송이 깨달음의 세계를 전하는 아주 중생에게 기억하기 좋은 게송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미진이라는 거는 이 보이는 물체 중에 작은 것 중에 제일 작은 것을 미진이라 그래요. 그런데 그것도 많은 미진이 아니라 일미진, 한 가는 티끌. 그리고 시방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 전체를 시방이라고 하니까 큰 것 중에 이거보다 더 큰 게 없는 게 시방이잖아요. 십방. 근데 깨닫고 보니까 ‘아주 작고 작은 가는 티끌이 시방세계를 다 거두어들이더라’ 이 뜻이에요. 함자는 머금을 함잔데, 머금을 함자가 거둘 섭자, 들어갈 입자, 모두 거두어서 입 안으로 다 들인다, 이걸 함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리고 함자는 받을 수자, 받을 수자, 함수(含受)라고 그래요. 함수 모든 걸 다 거두어서 받을 수자는 옥편에 뭐라고 나왔느냐 하면 담을 수, 담는다. 그릇에다 물건을 담듯이 이렇게 거두어 담는다, 이런 뜻이에요. 함수, 함, 섭, 거둘 섭자가 있기 때문에. 이게 깨달음의 경지가 어떤 경지냐. ‘한 가는 티끌 속에 크고도 큰 시방세계를 거두어서 다 들어가게 한다’는 뜻이고요. ‘가는 티끌 속에 넓고 넓은 시방 세계를 함수, 다 들어가게 해서 담는다. 그릇에다 담아’ 뭐 이런 뜻이에요.
微塵者 虚隙日光塵, 法界摠相塵
미진자 허극일광진, 법계총상진
大記云 ··· 含受十方世界 無㝵自在 此是事法 最細之初位
대기운 ··· 함수시방세계 무애자재 차시사법 최세지초위
眞定德云 事融現理門者 約塵含十方之道理云耳 非謂一塵
진정덕운 사융현리문자 약진함시방지도리운이 비위일진
泯融 同理也 (叢髓錄卷一)
민융 동리야 (총수록권일)
그리고 의상 스님 제자 중에 진정 스님(眞定)이 있는데, 참 진자, 선정이라는 정자, 진정 스님이 이 법성게는 사융현리문(事融現理門者)이 있다, 이렇게 설명했어요. 사융, 사는 일 사자인데, 이 사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물 세계, 보이고 들리는 색성향미촉법이에요. 이게 다 하나로 녹아서, 모든 사물이 하나로 녹아서, 뭐를 드러내느냐. 법성의 이치를 드러낸다. 하나하나 사물이 전부 하나로 녹아가지고 법성의 위치를 드러낸다. 이런 가르침을 줬거든요, 진정 스님이. 그래서 이것은 진함시방세계시방지도리(約塵含十方之道理)라. 진함시방이라. 미진이 시방을 다 거두어들이는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 한 티끌이 일진이 민용(非謂一塵泯融)하여 없어져서 이치와 같은 것이 아니다. 미진 그대로 있으면서, 그 미진 하나가 시방세계를 다 거두어 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거지, 이 미진의 형상이 없어져 가지고 진리를 드러내는 게 아니다. 이렇게 가르침을 주고 있네요. 진함시방지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눈으로 보면 형상인데, 이 형상을 법성 삼매에 딱 들어서 보면 이 형상이 우주 만법계의 형상과 다르지 않아서 원융무애하다. 이거야 원융해가지고 장애가 없어. 그래서 하나의 미진이 온갖 진리를 다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게 없어져서 진리가 드러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네요. 있는 그대로 이것이 모든 것을 다 거두어서 들인다. 그래서 이것 자체가 법의 본성이다. 이게 없어져서 진리를 드러내는 게 아니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신라 시대에 이런 공부를 했다는 게 참 놀라워요. 보통 놀라운 게 아니에요.
道身章云 相和尙日 一微塵中 含十方世界者 同是無住故爾
도신장운 상화상왈 일미진중 함시방세계자 동시무주고이
元師問云 微塵無住 小 十方世界無住 大耶 答 一量也 問
원사문운 미진무주 소 시방세계무주 대야 답 일량야 문
若爾 何言塵小十方世界大耶 答 微塵與十方世界 各無自性
약이 하언진소시방세계대야 답 미진여시방세계 각무자성
唯無住耳 所言塵小世界大者 是須處須耳 非是 小故云小 大
유무주이 소언미소세계대자 시수처수이 비시 소고운소 대
故云大 所謂不知塵小世界大機中 令知塵小世界大故 且說塵
고운대 소위부지진소시계대기중 영지진소세계대고 차설진
小世界大耳 非是一向塵小自性 世界大自性 亦得云塵大
소세계대이 비시일향진소자성 세계대자성 역득운진대
世界小 道理齊一 無住實相也
세계소 도리제일 무주실상야
(叢錄卷上, 한불전6, 780下)(총록권상, 한불전6, 780하)
그러니까 원사가 물어 이르되, 원사는 상원 스님이라고 하는 의상 스님 제자가 있었는데, 의상이라는 상자하고 근원 원자하고 상원 스님이요. 아주 법이 높은 스님으로 기록이 돼 있어요. 상원 스님이 묻기를, 미진무주와, 미진이 머물지 않는 법성과, 또 시방세계 무주에 있는데, 시방 세계가 머물지 않는 법성이 있는데, 미진 무주 법성은 작고 시방세계의 무주 법성은 큽니까?(微塵無住 小 十方世界無住 大耶) 이렇게 물었어요. 질문 대단하죠. 그러니까 요 법성이 있는데 이게 이 법성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거거든요. 시방세계의 법성이 있는데 시방세계 법성에 안 머문다고 그랬는데, 그렇지만 그러면 미진이 머물지 않는 법성하고 시방세계가 머물지 않는 법성하고 두 가지를 비교해 보면 미진 법성은 작고 시방세계 법성은 큽니까? 이렇게 질문을 했어요. 그러니까 의상 스님이 답을 하되, 한 일자, 헤아릴 양자, 일량이다(一量也) 이랬어요. 일량. 일량이라는 건 양은 수량인데, 그 수량이 하나다. 크고 작은 게 아니다. 일량이다. 참 기가 막히네요. 어째서 그게 일량인고. 그러니까 상원 스님이 또 묻기를 약이(若爾)면, 그러하면, 하언진소시방세계대야(何言塵小十方世界大耶), 어찌 티끌은 작다고 하고 시방세계는 크다고 합니까? 이렇게 질문했어요. 법성이 똑같다면 어째서 티끌은 작다고 하고 시방 세계는 크다고 합니까? 일량인데, 미진과 법계가 일량인데 왜 티끌은 작고 법계는 크냐. 그러니까 답하되 미진여시방세계(微塵與十方世界)는 각무자성(各無自性)하야, 미진은 미진에게 고정불변한 자체 본성이 없고, 각무자성이라는 게 그거예요. 미진의 변하지 않는 자기 성격이 없다. 또 시방세계도 시방세계의 고정불변해서 달라지지 않는 자기체성이 없다. 이게 또 이제 법무자성이라는 게 법성 무주라는 말하고 아주 중요하게 설명되는 말이에요. 법은 자성이 없다. 법성은 머묾이 없다. 법무자성 법성무주. 미진은 미진의 자성이 없고, 시방세계는 시방 세계의 자기 체성이 없다. 자기 본체, 자기 성질이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냐. 아 없다. 유무주(唯無住)라. 오직 머묾이 없을 뿐이다. 미진도 무주요, 머묾이 없고 시방세계도 무주다. 그 무주라는 말은 무자성이다. 자성이 없다. 자체 체성이 딱 있으면 그게 머묾이 있는 거거든요. 근데 자체 체상이 없으면 머묾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미진의 자성도 머묾이 없는 법무자성이고, 법에는 자성이 없는 거고, 또 세계의 자성도 법무자성으로 머묾이 없는 자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원융원통하고 무장무애일 수밖에 없다.
이래가지고 이제 우리 범부들이 자나 깨나 고생하는 거는 이 몸을 나로 삼기 때문에 4대 육신을 자기라고 한다. 근데 깨달은 분은 우주 법계에 가득한 불성을 나로 삼아요. 못 깨달으면 이 육신이 난데 깨달으면 불성이 나요. 육신은 금방 생겼다 금방 사라지지만 불성은 시작이 없어요. 언제 시작됐는지, 끝이 없어. 또 우주에 변만해. 장소가 없어. 그러니까 이 생로병사라는 게 허공에 구름 한 점과 같아. 이 육신의 생로병사가. 그게 이제 못 깨달은 범부하고 깨달은 제불하고 차이점이에요. 제불은 불성이 난데, 못 깨달은 범부는 이 육신이 나다. 근데 불성은 허공과 같고 육신은 구름과 같아서, 뭐 뜬구름은 언제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아까 눈이 그렇게 많이 오더니 이제 말짱하네요. 이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이 불성을 딱 보면 이 몸이 오고 가는 것은 허공에 뜬 구름이 왔다 갔다 하는 거라, 아무 장애가 없단 말이죠. 그걸 여기서 말해요. 그게 일미진중함시방, 이 이치를 설명하는 거다 이런 말이죠.
이렇게 어려운 말 하는데 왜 잠을 안 자요? 희한하네. 이런 소리를 언제 뭐 듣기가 어려운데 못 들어본 얘기를 하면 꼭 잠 오게 돼 있거든요. 이 생각이라고 하는 거는 아는 걸 받아들여요. 모르는 걸 못 받아들여요. 과거 들었던 경험이 있을 때 그걸 듣지, 경험이 없으면 그걸 못 들어요. 똑같아요. 근데 잠속에서라도 이런 소리를 들어보셨는가 봐. 그러니까 잠을 안 자지. 현재를 보면 과거를 알잖아요.
그렇게 돼 가지고 각무자성하야 유무주이라. 각각 자성이 없어서 오직 머묾이 없을 뿐이다. 그래가지고 반대로 미진은 크고 세계는 작다고도 말할 수 있다. 각각 자성이 없기 때문에 이 일미진이라고 하는 것을 크다라고 인식을 하면 그게 큰 거예요. 법이라는 것은 각각 자성이 없어서 정해진 게 없기 때문에 인식하는 대로 달라지는 거예요. 크다고 내가 알면 커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큰 자성이 없으니까. 작다고 알면 작아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작은 자성이 없으니까. 아 잘생겼네. 그러면 그 잘생긴 거예요. 왜냐하면 잘생긴 자성이 없거든. 자기 체성이 없단 말이야. 잘못 생겼네. 그러면 잘못 생긴 거에요. 왜냐 잘못 생긴 자체 체성이 없어. 그러니까 잘생겼다고 해도 그 사람이 마음이 잘생긴 거다. 못생겼다 그러면 그래요. 니 마음이 못생겼다 이래요. 내가 못 생긴 게 아니라 보는 사람 마음이 못생긴 거다. 왜냐하면 보는 대로 보이고 생각하는 대로 나타나는 게 이게 무장무애 해탈법문이요. 이거 이거 어려운데, 이런 말 듣기. 보는 대로 보이고 생각하는 대로 나타나는 것이 무장무애 해탈 법문이다. 그러니까 이 맛 없네. 그러면 그 마음이 맛없는 거예요. 맛 좋으네. 그 마음이 좋은 거예요. 정해진 게 없어요. 그래서 입맛을 바꿔야지. 그냥 맛있는 거 막 만들어내려고 애를 쓰면 애쓰다가 죽어. 왜냐하면 맛있는 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끝이 없어요. 이거 가장 아주 궁극적인 맛을 낸다고 변하지 않는 맛을 낸다고 설치다 다 죽었어요. 그 맛을 낸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그게 정해진 게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세상 만물을 다 알려고 하지 말고, 세상 만물을 보는 내 마음 하나를 딱 맑히면 그 담장이 널리 처져 있는데 그 담을 다 허물지 않고 거기 들어가는 열쇠 하나를 탁 열면 그냥 들어가는 거 하고 똑같아요. 만물은 담장과 같고 마음은 열쇠와 같단 말이야. 그 담 부실 거 없어요. 열쇠 하나 열면 그냥 들어가거든. 그러니까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보다 내 마음을 다 맑혀. 그러면 세상은 다 내가 보는 대로 보이는 거예요. 생각하는 대로 나타나요. 아 이거 참 이렇게 오묘한 이치가 있는데 그걸 모르고 맨날 고생을 하다니. 이거 참 문제예요, 문제요.
그래서 말을 하기를 진대세계소(塵大世界小), 진, 티끌은 크고 세계는 작다고 말하는 것도 또한 얻을 수가 있다. 이루어질 수가 있다. 그런데 도리는 제일(道理齊一)이니 모든 크고 작은 이치는 하나니, 무주실상(無住實相也)이라 머묾이 없는 진실상이다. 무주실상. 진실상이 있는데, 진실상은 무주라는 거예요. 무주는 뭐냐. 하나하나의 자성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큰 것도 큰 자성이 없기 때문에 적은 것과 다르지 않고, 적은 것도 적은 자성이 없기 때문에 큰 것과 다르지 않아서, 이 대소가 원융원통하고 무장무애하다. 이게 해인삼매거든요. 이거 딱 보면 무주 법성에 들어가요. 머묾이 없는 법성에 딱 들어가. 근데 그 법성을 딱 보면 거기에 크고 작고 있고 없고, 없는 게 없어요. 근데 없는 게 없는 게 그게 다 하나여. 원융원통해요. 그래서 그거를 큰 거울을 딱 갖다 놓고 이렇게 비춰보면 거울 안에 산도 있고 나무도 있고 집도 있고 다 있는데, 그 거울 안에 그게 있다고 거울 부수면 없어, 그게. 그러니까 그 거울 빛깔 안에 그게 비추어진 거라. 그러니까 큰 걸 비추어도 거울빛이고, 작은 게 비추어져도 거울빛이지, 거울에는 큰 거 작은 것이 없다. 그냥 오직 비춰져 있을 뿐이다. 이거지. 그래서 이 세상 만물이 이렇게 드러났지만, 하나하나가 불변의 자성으로 각자 지위에 머물러서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라, 각자 자성이 없어서 큰 것이 작은 것으로 들어가고, 작은 것이 큰 것으로 들어가고 이렇게 돼서 원융원통하고 무장무애하다. 이게 이제 화엄경에서 가르치는 법성원융이에요. 법성은 원융하다. 법의 본성은 다 통한다. 그래서 이 법성삼매에 떡 들면 바다에 무한한 삼천 대천 세계가 다 비춰져도 그게 하나의 바닷물일 뿐이지, 비추어진 그림자가 자성이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법성을 딱 보면 죽고 살고 모든 일이 자기 그 법성을 보는 불성자성, 불성을 아는 성격이거든요. 그 아는 성격, 불성 자성 그것이다. 다른 게 없다 이렇게 돼 있어요.
微塵不是小 十方不是大
미진불시소 시방불시대
法性本平等 隨須卽眼對
법성본평등 수수즉안대
無住實相境 入觀成正觀
무주실상경 입관성정관
凡夫生老死 圓融法性身
범부생노사 원융법성신
無住實相 圓融法性
무주실상 원융법성
不動諸法 無生而生
부동제법 무생이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