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웃음 요가 때문에 이 법문이 너무 즐겁게 돼버렸습니다. 아, 웃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은 그 웃음 요가, 20분 짧은 웃음 요가에 여러분들 얼굴이 더 밝아지신 것만 같습니다. 이 밝은 기운을 아까 우리 스님께서 이야기하셨듯, 이 밝은 기운을 여러분들이 나만 갖고 있을 게 아니라 내 가족들에게 그리고 또 내 부모 조상님들에게 올려드리는 그 밝은 느낌으로, 에너지로 그렇게 웃음 요가 활용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저의 법문 주제는 보은입니다. 보은. 요즘처럼 어떻게 이제 가족 간의 유대관계도 대개 낮아지고, 또 사이도 요즘 들어 또 안 좋아지는 집안도 많아요.
근데 다행히 우리 오늘 진관사 2재에 동참하신 분들은 이 웃음 요가라도 배워서 기분 나쁘면 문 닫고 들어가서 막 웃으면 되니까, 그러면은 뭔가 모르게 용서하는 마음도 생기고, 뭔가 모르게 이게 나의 한 같은 게 풀어질 수 있는 이 방법을 여러분들 오늘 체득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이거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오늘은 백중 2재입니다. 백중 2재로 제가 어떻게 법문을 하게 돼 가지고, 처음에는 은사 스님에게 “제가 무슨 법문을 하냐” 이러니까, “너도 해봐라” 그래서 이 자리에 얼떨결에 오르기는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께서는 제가 하는 이야기에 마음을 좀 담으셔서 이렇게 실천으로 꼭 이어졌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오늘 백중에 대해서 이제 잠깐 살펴볼 텐데, 사실 백중했을 때 여러분들이 지금 독송하시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있죠. 부모은중경이 요즘 시대에는 이게 좀 반발심이 있답니다. 지금 여기에 계시는 분들은 반발심이 없어요. 그런데 10대, 20대는 뭔지 모르게 이게 가족이 약간 핵가족화되기도 하고, 그리고 또 한부모, 한 가족으로 또 바뀌어 가면서 뭔가 아이들이 부모에 대한 한이 이렇게 생기나 봐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원한으로 이어지면서, 이제 부모은중경을 보면서 막 열이 난대요. 근데 왜 이럴까, 우리가. 그래서 제가 이런 이야기에, 이게 그러면 효孝가, 이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나. 여러분들 불교적인 효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저는 이 효에 대해서, 이 ‘효순(孝順)하라’라고 했을 때, 우리나라가 조선시대 때는 유교였죠. 유교였다 보니까 이 효라고 했을 때 대개 부모에게 순종하는 거, 그리고 부모의 제사를 첫째 아들은 당연히 지내드리는 거, 이런 것들을 효라고 이념을 지어서 효순하라라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근데 불교적인 효는요, ‘순종하라, 제사 지내라, 그래야지만 효도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불교적인 효는 어떻게 하면 나의 부모, 지금 나와 가족 간의 관계, 또는 나의 부모, 또는 조상, 또 나의 부모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또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고, 그렇게 해서 거듭거듭 끊임없는 정말 적재되어 있는 그 많은 부모, 스승, 모든 존재들이 결국 아버지, 어머니가 둘이 아니라는 거예요. 모든 이들이 나의 부모였을 수도 있고,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 라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부모은중경에서 여러분들께서 보시듯, ‘나의 모든 이들이, 나의 위에 있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나의 부모였고,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라는 그 생각을 하면, 이게 우리 불교적인 효는 그야말로 고통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거, 나의 부모가 지금 돌아가셔 가지고 어느 지옥에서 고통받을 수도 있고, 어느 축생에 있을 수도 있고, 어느 삼악도(三惡道)에서 머무를 수 있기 때문에, 그분들을 위해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시라고, 그렇게 효행(孝行)하면서 기도 올리는 것이 곧 이게 불교의 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스님, 왜 백중은요, 매번 매년마다 지내야 됩니까? 아니, 작년에도 지냈는데 또 지내야 됩니까? 저 10년 전부터 했는데 이제 정리해도 되지 않습니까?”라는 불자님들의 종종 질문을 받아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게 《목련경(目連經)》이나 《우란분경(盂蘭盆經)》에서 이야기하길, 신통 제일 목련존자(目連尊者)도 자기 부모를 위해서 승보 공양을 올렸지만, 단박에 어머니가 그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고통받던 아귀도를 단박에 버리질 못합니다. 목련존자조차도 그랬어요. 그렇다면 이 신통 제일한 목련존자조차도 아귀도에서 벗어나는데 승보 공양 한 번 가지고 되지 않았다는 거, 부처님 시대 때, 재세시에 그 한 번 가지고도 안 되고, 여러 번에 걸쳐서 아귀도에 올라갔다가 축생도에 올라갔다가, 몇 번의 계와 여러 가지 목숨을 받았다가, 결국에는 천상도로 올라가거든요. 그럼 이런 걸 봤을 때, 우리가 백중 기도를 1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이 몸뚱아리가 건강할 때,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나의 가족들, 이 가족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여러분들이 백중 기도를 올리시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요즘 말로, 또는 이전 예전 말로, 효순 또는 효도라고 이야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효도라는 것은, 불교적인 효도라는 것은 이생에만 부모님에게 맛있는 거 사드리고, 옷 사드리고, 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에게 가드리고 하는 그것은, 《아함경》에 따르길 하품의 효행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을 즐겁게 하는 것은 중품의 효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끔 부처님 전에 올리는 그 공양 공덕으로 회향하는 것은 그야말로 상품의 공덕이라고 합니다. 이런 선상에서 봤을 때, 여러분들이 이렇게 백중 기도를 올리실 때, 이게 나뿐만 아니라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도 얼굴도 기억 못하는 어느 때에 나의 부모였고, 스승이었고, 아들 딸이었던 그런 모든 분들이, 모든 중생이 이고등락하기를, 이렇게 마음을 드시고 백중 기도를 올리시면서 회향을 하면, 여러분들의 그 공덕은 그야말로 무량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네, 그리고 제가 이게 짧은 시간에 여러분들에게 많은 걸 알려드리려니까 좀 마음이 급합니다. 그러나 여유 있게 하겠습니다. 이게 《구사론》에 따르면, 여러분 우리는 영가라고 부르죠. 누구, 김똘똘 영가. 우리 여기에 지금 위패에 모셔진 것도 다 김똘똘 영가 다 모셔져 있는데요, 《구사론》에 따르면 이승도 아니고 저승도 아닌 이들을 가리켜서 중음(中陰)이라고 부릅니다. 또는 중유(中有)라고 부릅니다. 그럼 살아 있는 우리는 뭐냐, 생유(生有)라고 불러요. 그럼 죽었을 때를 사유(死有)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제 막 딱 죽어가지고 1일부터 49일 그 사이를 우리는 중음 또는 중유라고 합니다. 그럼 그 중유 기간을 부처님께서 우란분경에 이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목련존자 어머니, 어머니가 그 무간지옥에 탁 떨어져 가지고, 그 무간지옥에서 고통받는 그 기간이 인간계에서는 49일이나, 그 지옥의 아귀(餓鬼)고통에서는 정말 몇 억 년이 될 수도 있고, 몇 백만 년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그 목련존자의 어머니 청제 부인만 그럴 것이냐는 거죠. 나도 내가 내 알아차림하지 못하고, 내 아들 딸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아니면 내 어머니 아버지에게 좀 언짢은 말을 하거나. 근데 그 언짢은 말로 인해서 부모님이 마음이 너무 아파가지고, 또 이제 안 좋은 마음을 먹거나,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어찌하면 나도 그렇게 지옥의 고통을 받게 하는 살생죄를 지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살생이라는 게 짐승을 죽여서, 또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도 물론 살생, 물질적인 살생이지만, 내 말 한마디로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가족 간에 정말 잘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이 중유 기간 속에 이 청제 부인이 어떻게 합니까? 자기가 살아생전에는 목련존자가 자기 아들이었지만, 이게 이제 살아있을 때 온갖 살생을 저지르고, 그 목련경에 따르면 그 살생과, 그리고 또 자기가 계율도 안 지켜요. 얼마나 많은 남자분들을 막 잡았는지 몰라요. 그러한 모든 과보를 받아서 결국 떨어진 곳이 지옥입니다.
그 지옥의 고통 속에서, 이것도 무슨, 제1 초광대왕 도산지옥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제2 진광대왕 무슨 무슨 거해지옥, 한빙지옥, 온갖 지옥들이 나오죠. 근데 그 지옥 속에서 고통받는 한순간에, 그 고통 한 번 받고 좀 쉬었다가, 또 이제 과보를 받으려고 또 고통받다가, 또 쉬었다가 하는 그런 게 아니라, 고통의 연속이 끊임이 없다는 것을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합니다. 고통에 끝이 없는 거예요. 그 끝이 없는 그 고통을 목련존자 어머니가 그 무간지옥에 들어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아무리 목련존자가 신통력을 딱 얻고도, 자기 삼매력으로 아무리 지옥세계에서 자기 어머니를 찾아봐도, 어머니가 안 보여요. 안 보이죠. 결국에는 부처님 전에 묻죠. 부처님, 어떻게 하면 우리 어머니를 이 아귀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아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딱 알려드립니다.
“모든 스님네들이 시방 세계에 있는 모든 스님네들이 열심히 정진하시고, 그 안거가 딱 끝났을 때 자자 일이 있다. 그것이 음력으로 7월 15일인데, 그렇게 수행 공덕을 열심히 하신 스님네들에게 공양을 올려라. 근데 공양을 올리고, ‘나의 부모님이 이 공양 공덕으로 회향되시기를 발원합니다’라고 발원을 하라. 이렇게 하면 너의 부모님이, 너의 어머니가 그 아귀의 고통 속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되는 것이 《목련경》과 《우란분경》입니다.
그렇게 해서 목련존자가 자기 어머니를 위해서 그렇게 공양의 공덕을, 진짜 100가지 음식과 100가지 여러 가지 모든 공양물로 스님들에게 올려요. 그 공덕으로 아귀고에서 벗어나고, 축생도에서 벗어나고, 그렇게 해서 결국 천상도에 올라갑니다.
그걸 근거로, 스님네들조차도 출가해서 부모를 버리고 출가해서 이렇게 수행을 할지언데,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에게 이렇게 이 공양 공덕을 올릴지언데, 하물며 우리들이겠냐.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이 백중을 잘 활용을 하십시오. 이게 나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들에게, 그리고 나의 부모님들에게 잘 회향을 하십시오. 제가 이 중유의 세계 속에서, 이걸 어떻게 49일간, 이거 부모님에 대해서 회향을 잘 하냐. 물론 여러 가지 방법들이 많이 있겠죠. 누구는 나의 부모를 위해서 《금강경》을 지금 이렇게 이제 독송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부모은중경》, 그리고 또 광명진언, 이런 여러 사경들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든 수단과 방편을, 여러분들이 그걸 잘 받아 지녀가지고 이거를 회향을 하되,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내 마음은 지금 콩밭에 가 있어요. 내 조금 전에 싸웠던 이 도반한테 막, 내 저것을 가만히 두지 않으리. 절 집 안에 왔는데도 아직까지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 근데도 뭔가 이거는 써야 되겠어. 사경을 하면서 자기 마음이 내려갑니다. 근데 그 자기의 그 악한 마음이 막 일어날 때, 그걸 막 억누르려고 애를 굳이 쓰지는 마십시오. 자연스럽게 사경을 하다 보면, 그 마음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겁니다. 근데 그런 사라지는 그 마음을 잡고 늘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곧 악업이 됩니다. 악업이 되면, 끊임없이 우리는 윤회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왜 이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축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하냐면, 결국 우리는 부처님처럼 이렇게 해탈하고 깨닫지 못하면, 끊임없는 업력으로 인해서 윤회한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끊임없는 윤회하는 그 과정 속에서, 조금이라도 이 인과 응보를 확 줄여가지고, 그 씨앗이 싹 트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단도리를 잘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우란분경》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아. 이거는 제가 아까 했고)
《중아함경》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중생이 악도에 떨어지기 전에, 지옥을 다스리는 염라대왕이 5명의 천사를 보내어서 그 사람을 꾸짖고 가르친다. 천사, 지혜로운 사람은 일을 보고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하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근데 첫 번째 천사는 부모님이다. 두 번째 천사는 노인, 그리고 세 번째 천사는 병자, 병고에 힘들어 하는 분들, 그리고 네 번째 사람은 죽은 사람, 그리고 다섯 번째는 감옥의 죄수이다’. 이 악도에 떨어지기 전에, 이렇게 정말 내 곁에 있는 이 부모님, 그리고 생로병사할 때 병자분들, 이러한 모든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 이제 공덕을 쌓으라고, 그리고 또 그분들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나의 인과 응보를 짓지 않기를 자꾸 발원하면서 이 공양 공덕을 올리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저 스님, 저는 돈이 없어요” 걱정 없어요. 돈이 없어도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게 있습니다. 웃음으로 화안애어(和顔愛語)로 모든 분들에게 보시할 수 있고요. 자리를 또 양보하기도 하고, 그리고 또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주어서 이렇게 격려를 하기도 하고, 응원을 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들에 꼭 돈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진관사라는 절집에 오셔서, 내가 마음을 다해서 이렇게 공양 공덕을 좀 올리시라. 왜냐하면 이 나만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나와 인연되어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렇게 공양 공덕을 올리고 하는 모든 것들이, 이것이 바로 나를 있게 한, 나를 여기 존재케 한 모든 이들에게 은혜를 갚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마음을 잘 헤아리시면 좋겠어요.
제가 행자 때요, 어떤 스님께서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스님이 저한테, ‘덕현 스님, 이쪽으로 와보라’고. 근데 이제 그 스님께서 그 당시에 선방에 가셨다가 잠깐 산철이 돼서 오셨는데, 그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때도 아마 이런 백중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스님이 자기가 어느 해에, 어느 날만 되면, 누가 이렇게 꿈속에서 자기를 위해서 자꾸 제사를 올려준다는 거예요. 제가 그때 좀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근데 그게 한 번이 아니라, 항상 그 날과 그 시일이 되면 꼭 그렇게 그 꿈을 꾼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날은 자기가 작정을 했대요. 그 꿈속에서도 깨지 않으면서, 내가 그 꿈속에서 누가 나에게 제사를 지내는지 그걸 찾아봐야지. 그래서 어느 해 때 자기가 진짜 똘똘하게 잠을 딱 깨지 않고, 그대로 이제 무의식 중이지만 이렇게 노력을 해서 봤더니, 절 집안에서 누가 자기를 위해서 제사를 지내는 거였는데, 그 절의 이름을 이제 알아보려고 이렇게 보니까, 무슨 무슨 절이었대요.
그래서 이제 그 절을 알고 꿈에서 깼죠. 깨고 난 다음에 진짜 인터넷을 찾아가지고 그 절이 어디 있는지를 찾으신 거예요. 찾아가지고, 근데 요즘에 얼마나 동명 그 절이 많습니까? 그 절을 찾아서, 결국에는 그 절의 어느 어느 해에 제사를 지내는 그 절 리스트를 뽑은 거예요. 근데 진짜 그 절 주지 스님의 제사 일과 자기가 항상 꿈을 꾸는 그 날짜와 동일했다는 겁니다. 저도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긴가민가, 이게 믿어도 되나, 약간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만큼 이생은 이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생이 있고, 윤회되어서 우리는 또 만나고, 이 생에서 정말 너무너무 미웠던 사람이나, 다음 생에도 또 만날 수 있다는 거. 모든 생들은 연결되어 있다는 거.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께서 항상 인과의 도리를 이야기하며 항상 착한 일을 행하라. 그래야 착한 과보를 받는다. 악한 인을 심으면 당연히 악한 과보가 싹 틀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내가 아직 싹 트지 않은 선의 씨앗, 또는 아주 싹틀랑말랑 하는 악의 씨앗들이 아마 있을 겁니다. 이런 것들을 기도하시면서, 또는 이렇게 염불하시면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또 잘 챙기시면 좋겠습니다.
《불설수생경(佛說壽生經)》에 보니까, 사람이 죽어서 망자가 되면 저승에서 49일에 걸쳐 7번의 10번의 시왕의 재판을 받게 된다. 이 저승의 열 시왕은 제가 아까 화청으로 일부러 한 분 한 분 지목을 해서 읽었어요, 오늘은. 기억나십니까? 예. 그 열 시왕이 누구나에게 정말 정말 여러분 공덕을 많이 지은 사람 같은 경우는, 돌아가자마자 중유를 거치기도 전에 바로 화현해서 천상으로도 들어갈 수 있고요. 아니면 재판도 필요 없이 바로 그냥 지옥에 바로 툭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근데 이런 그 지옥에 떨어지는 방법이 뭐냐? 지옥에 떨어지는 방법: 살생하고, 거짓말하고, 이게 나태하고, 의롭지 못하고, 그리고 누군가를 배신하고, 또는 폭력을 행하고. 이렇게 천륜, 나의 부모를 죽이기도 하고, 이런 것들로 인해서 재판을 하는 것이 바로 이제 그쪽이에요. 근데 이 명부시왕이 이게 내 눈에 안 보이니까 남의 일이 아니라, 이게 바로 코 앞에 내 일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이제 이 백중 재가 끝나고 난 다음에, 또 밑에 후원에 내려가서 공양도 하시고, 또 도반 분들과 함께 이렇게 막 이야기도 나누면서, 과일도 드시고, 차도 드시고 하실 텐데, 그러한 모든 과정들 속에서 항상 내 마음의 청정함을 자꾸자꾸 살피십시오. 내가 그 마음속에서 이제 앞에서 도반이랑 같이 밥을 막 먹다가, 이게 이제 비빔밥 먹고 난 다음에 그릇이 있죠. 근데 이 그릇을 이제 도반한테 밀어요. 니가 설거지를 해라. 나는 이 절에 온 지 좀 오래됐다. 이런 거는 원래 초짜가 하는 거다. 미뤄. 그러면 이게 한두 번은 해줘.
근데 여러 번 하다 반복이 되면, 이 사람도 짜증이 납니다, 그죠? “공양이야, 공덕이야, 그것도” 이런 식으로 묵살할 것이 아니라, 그때 그 마음을 잘, 여러분들이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공양을 하고,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밥풀을 좀 남기며, 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설겆이를 하는지. 이 뭔가를 행위를 할 때, 내 마음이 지금 어느 시점에 가 있는지를 여러분들이 잘 관찰하십시오. 그것이 곧 백중 기도에 처음 정말 선행을 하는 실천 방법의 첫 단추입니다. 내가 아무리 지금 부처님 전에 바나나 공양 올리고, 여러 가지 경전, 부모은중경, 금강경 100권 올리고, 여러 가지 보여지는 형상으로는 정말 많은 공양을 올리는 것 같지만, 속은 지금 부글부글 끓어. 이러면 이 공덕이 어디로 가냐? 물거품이 됩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그 선행을 반듯하게 이렇게 자꾸 둘 것을, 항상 스스로 이게 마음에 또 삐뚤어지면 다시 또 세우고, 또 삐뚤어지면 또 다시 세우고. 이렇게 하면서 흔들리면서 갈 수밖에 없어요. 이게 중생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그러면서 오늘처럼 이렇게 오셔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기도도 하시고, 또 후원에서 공양하실 때나, 아니면 무언가를 이렇게 행하실 때, 또 도반을 위해서 신발도 이렇게 가지런하게 놓아주고, 또 뭔가 좀 힘들어하는 처음 오신 신도님들 같은 경우는, 여러분들이 또 안내해서 이쪽으로 오시라고 따뜻하게 또 말씀을 해 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이게 물이 너무 마시고 싶은데 어디 가서 물 마실 줄을 모르는 그런 분들이 있다면 물 마실 수 있는 장소를 안내하기도 하고. 우리 진관사 신도님들은 그렇게 하시면서 내 마음을 보고 공덕을 쌓아서 나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지금 생활 속에 있는 불교예요.
부처님 가르침이 아무리 이렇게 높이 있고, 정말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가지 말들로 다 이렇게 되어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내것으로 하지 않고, 정말 그 인과 도리를 믿지 않으면서, 어리석은 마음으로 자꾸 탐욕과 성냄, 이게 인과응보를 모르는, 인과 도리를 모르는 이런 어리석음에 스스로 이렇게 돌아갈 때, 그때는 업력이 돼요. 그 업력이 되면 또 윤회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 원력의 힘으로, 정말 여러분들께서 백중 2재뿐만 아니라, 마지막 49일까지 잘 회향하시길 발원합니다. 이것이 곧 우리 ‘우란분’하면, 거꾸로 매달려 있다라고 하죠. 우란분이 도현(倒懸)이라는 거고, 도 자가 거꾸로 매달릴 도(倒)예요. 거꾸로 매달려서 지옥의 고통을 받는다는 걸 도현이라 하고, 산스크리트어로는 ‘우란바나’라고 합니다. 근데 우란바나, 그걸 딱 모아놓은 게 우란분경이에요.
그럼 이 우란분경에서 그 도현(倒懸), 거꾸로 매달린 그 중생의 그 고통을 구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거꾸로 된 나의 잘못된 가치관, 이 거꾸로 되어 있는 나의 올바르지 못한 그런 생각들, 이런 것들도 지옥 고통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내가 항상 부처님 경전을 바라보면서, 내 항상 내 마음이 어떻게 지금 이어가는지를 여러분들이 잘 이렇게 헤아려 보시고, 그렇게 해서 백중 기도 끝까지 잘 신심나게 회향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