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9
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Ll6r_j6A05g
250219 신중기도 종범스님 법문
주제 : 丙午年 正初 法門 – 新年·佛性 이야기
병오년 정초 법문 – 신년·불성 이야기
안녕하세요. 진관사 병오년 정초 신중기도 입재날에 뭐 하러 왔냐. 새해 법문하러 왔습니다.
새해 맞이 행사를 세시풍속이라고 하는데요. 세시라는 것은 세월이라는 세(歲)자, 시간이라는 시(時) 자, 세시인데 매년 해마다 그때가 되면 언제나 하는 행사를 세시풍속이라 그래요. 그럼 우리나라 정초 세시풍속은 이제 가장 중요한 게 떡국이에요. 떡국으로 차례를 올리고, 떡국으로 밥을 먹고, 떡국으로 손님을 대접하고. 그게 언제부터 이 떡국이 이렇게 보편화됐냐 하면 조선시대 후기쯤이라고 하는데, 그건 뭐 중요하지 않고요. 왜 떡국을 이렇게 새해 맞이 행사로 받아들였을까. 요새 인터넷에도 많은 기록이 올라오고 하던데. 떡국은 색깔이 있고요, 길이가 있고요, 모양이 있어요.
색깔이 희거든요. 그래서 흰 게 그게 뭐냐. 흰 거는 깨끗함을 의미해요. 흰색은 정색(淨色)이다. 깨끗할 정 자. 깨끗해요. 깨끗하다는 거는 일체 다른 잡귀, 이물질, 다른 장애가 없다는 얘기거든요. 그래서 깨끗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이 흰색은 아주 순수해요. 변하질 않아. 그래서 변하지 않는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이 흰색은 초색(初色)이에요. 초색, 처음 나오는 색깔은 다 하얘요. 씨앗을 심어서 이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뿌리가 내리는 거거든요. 뿌리가 제일 먼저 내려요. 그 어떤 뿌리든지 뿌리 색깔은 하얘요. 그거 잘 아셨어요? 뿌리가 하얗다는 거. 파뿌리만 하얀 게 아니라 모든 곡식이 뿌리를 내릴 때는 하얀 색깔로 시작을 해요. 그래서 처음 색깔이다. 그래가지고 이 설날이라고 하는 것은 새날이라는 의미가 있죠.
새날. 또 그다음에 살날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살날은 햇살, 햇살이 밝아오는 날이다. 새로 시작하는 날이다. 그리고 또 새롭게 일어난다는 의미로 일어서, 설, 일어서라, 서는 날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시작을 해요. 그래서 떡국은 첫째 색깔이 희다. 그러고 떡국은 가래떡이 길어요. 그래서 길게 수명을 유지하고 싶다. 그리고 이거를 썰면 한쪽 한쪽이 동전 같아요. 그래서 이게 한 쪽 먹으면 돈 하나 더 생기고 한쪽 먹으면 돈 하나 더 생기고 떡국 많이 먹을수록 돈이 많이 생겨서 부자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의미를 담아서 세시풍속으로 정해졌을 것이다. 잘은 몰라요. 누가 이걸 알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죠.
또 이제 세배가 있는데 세배는 이제 조상님께 세배하는 게 다례잖아요. 그래서 조상님이 우리를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연장자에게 세배인데 이 어려운 세상에 그렇게 오래오래 살아주셔서 고맙다. 그게 세배예요. 이거 젊은 사람이 볼 때 나이 한 살 더 먹은 게 우습게 보일지 모르는데 그 1년을 산다는 게 쉬운 건 아니에요. 그때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큰 사고 없이 살아주셔서 고맙다 뭐 이런 뜻이 세배거든요. 그러니까 이 세배하는 게 현재 살아계신 분의 수명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고 나도 그런 수명을 누리겠다고 하는 염원도 있고 그런 것이 세시풍속이 돼서 떡국 끓이고 차례 지내고 손님 대접하고 세배하고 이렇게 된 거예요. 근데 절에 와 보니까 절에서는 어떻게 하냐. 사찰에서도 세배라는 걸 하는데 그걸 세알(歲謁)이라 그래요. 해 세 자, 뵐 알 자, 뵙는다. 옛날 알현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임금님에게 가서 뵙는 거. 세알이라고 그러는데 시방삼세 부처님께, 보살님께, 여러분에게, 또 같이 수행하는 도반들에게 이렇게 세배를 올리는 거예요. 한 자리에서. 그걸 세알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정초에 기도를 하더라고요. 초하룻날부터 통사 같은 경우는 계속해요. 섣달그믐서부터 밤새워서 하는 분도 있어요. 정초 기도를 하는데 기도는 다른 게 아니고, 정초 기도하고 일반 기도하고 다른 건 아니더라고. 축원이 똑같아요.
現當喜福 · 當生淨刹 · 畢竟成佛, 現當壽福配願의 所伸情願
현당희복 · 당생정찰 · 필경성불, 현당수복배원의 소신정원
日日有 千祥之慶 時時無 百害之災 六根淸淨 四大强健
일일유 천상지경 시시무 백해지재 육근청정 사대강건
身無一切病苦厄難 心無一切貪戀迷惑 三障頓除 五福增崇
신무일체병고액난 심무일체탐련미혹 삼장돈제 오복증숭
불교의 축원은 첫째가 무슨 뭐 축원이든지, 현증수복(現增壽福)이에요. 현세에는 수명과 복덕을 키워가겠습니다. 증(增)이라는 건 키운다, 늘린다 이런 소리거든요. 당생정찰(當生淨刹), 내세에는 극락세계 왕생하겠습니다. 또 필경성불(畢竟成佛), 끝내는 성불하겠습니다. 이게 상단 축원에 보면 전부 이 세 가지 서원으로 구성이 돼 있어요. 그래서 보체 이래요. 보체축원 현증수복(普體祝願 現增福壽)이고, 복우에 이이는게 왕생응당(往生應當)이고, 그리고 연후원(然後願) 이래가지고 항사법계(恒沙法界) 무량불자등(無量佛子等) 구성정거 가야지이다. 이런 건데, 이제 정초 신중 기도에는 현증수복, 현세의 수명과 복덕을 축원하는 중심으로 구성이 돼 있어요. 이게 이제 신중 기도의 의미가 그래요.
그러면 신중 기도할 때 그 축원이 뭐냐. 축원문에 보면 소신정원(所伸情願) 이런 말이 있어요. 정원이라는 거는 뜻 정 자, 원할 원 자, 마음으로 원하는 것이고, 소신이라는 것은 바 소 자, 펼 신 자인데 소신을 펼쳐서 말씀을 해 올리자면, 이게 이제 소신 정원이에요. 그럼 뭐냐. 아주 평범하고 간절한 소리야.
일일유 천상지경(日日有 千祥之慶)하고, 나날이 천 가지 상서의 복덕이 있고, 시시무 백해지재(時時無百害之災)라. 때때로는 100가지 해로운 재앙이 없어지기를 원합니다. 말이 그렇지 재앙이 하나도 없는 날이 어디 있어요? 근데 이렇게 염원을 하는 거예요. 육근이 청정(六根淸淨)하고 사대가 강건(四大强健)하야 육근은 우리 몸이거든요. 안이비설신의 육군이 청정하고, 사대도 우리 몸이에요. 지수화풍. 사대가 청정해서 신무일체병고액난(身無一切病苦厄難)하고, 몸에는 병고와 액난이 일체 없어지기를 원합니다. 심무일체탐연미혹(心無一切貪戀迷惑)하야 마음에는 일체 탐연과 미혹. 탐연이라는 건 뭐냐, 탐내고 매달리는 건데, 이게 아주 무서운 병인데, 자기 능력에 비해서 과한 걸 하고자 하는 걸 탐이라고 그래요. 뭐 80 노인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든지, 이건 탐(貪)이에요. 그리고 젊은 사람처럼 안 된다고 계속 잠도 안 자고 거기에 매달린다고, 이건 연(戀)이여. 미련을 가지고 매달린다는 소리야. 옛날에는 자기 분수를 알아야 행복하다고 그래서 자기 분수에 어긋나는 게 탐연이거든요.
탐내고 매달리고, 이게 노인이 되면요. 젊은 사람 따라가려고 하면 안 돼요. 젊은 사람이 하지 못하는 걸 가지고 딱 하니 주인 노릇을 해야 돼요. 젊은 사람이 복싱한다고 같이 복싱 대결했다가는 안 돼요. 그래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 딱 만족을 얻어야 그게 탐연미혹이 없는 거예요. 마음에는 탐연과 미혹이 일체 없어져서 삼장을 돈제하고, 삼장이라고 하는 거는 혹,업,고 삼장이라고 그러는데 번뇌장, 업장, 고통장, 이게 이제 번뇌의 장애가 없어지고, 그 쓸데없는 죄업을 지은 이런 장애가 없어지고, 또 그 번뇌와 죄업으로 그 고통을 느끼는 그런 고통장이 없어져서, 혹 업고 삼장이 그냥 일시에 소멸하고, 그게 삼장돈제예요. 또 오복을 증숭하야지다. 이제 오복은 불교 들어오기 전부터 동아시아 서경에 나오는 건데 간단해요. 수복, 부복, 또 강녕, 강녕복, 유호덕, 호덕복, 고종명보. 그런데 이게 뭐냐 하면 오래 사는 거예요.
요새 오래 산다고 그러는데 이 건강이 안 좋아서 80 넘으면 빨리 죽어야 된다 이런 말이 있거든요. 근데 그런 말 듣지 말아요. 그 환갑 넘기기가 어려웠던 서산스님도 85세를 살았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100세 이상 산 거예요. 근데 문제는 건강하게 오래 사느냐. 건강이라는 게 딴 게 아니에요. 자기 몸을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거, 이거예요. 그래서 이게 숨만 쉬고 산다고 그게 오래 산 게 아니고 자기 몸을 자기가 움직일 수 있게 오래 사는 거, 그게 중요해요. 자기 생각으로 판단할 수 있고, 이렇게 이제 수명이라는 게 같은 100년을 살아도 건강하게 사냐, 이제 총명이 있고 또 몸을 움직이는 기력이 있고, 총명도 없고 기력도 없으면 그건 이미 산 게 아니에요. 총명이라는 게 뭐예요? 이게 귀로 듣는 게 총이고 눈으로 보는 게 명이거든요. 그래서 귀로 들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기력이라는 게 뭐예요? 앉았다 일어나고 걸음 걷고 움직이고, 이게 기력이잖아요.
이렇게 오래 사는 게 그게 건강이에요. 그게 오래 사는 거예요. 수(壽), 부(富), 부자, 부자 되는 거 다 좋아하잖아요. 근데 부자가 이게 뭐냐. 자기가 쓸 만큼 있으면 그게 부자예요. 자기가 쓸 만큼 있으면. 강녕(康寧), 이제 신체가 강녕한 거, 건강하고 안녕하고. 유호덕(裕好德)이라, 좋은 덕이 넉넉하다. 성격이 좋아야 돼요. 이게 호덕이에요. 유호덕. 넉넉한 유 자가 있어요. 좋을 호 자, 덕이라는 덕 자 이 성격 좋은 게 이게 오복에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 오복을 알고 보면 다 내가 만들 수 있어요. 수명도 내가 만들 수 있고, 또 부자도 내가 만들 수 있고, 강령도 내가 만들 수 있고, 유호덕, 이 덕도 성격인데, 성격도 내가 만들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복이라는 건 내가 짓는 거예요. 그다음에 고종명(考終命)이라는 게 있는데 죽을 고 자인데, 죽을 때는 자기 명을 다한다. 옛날에는 무슨 사고가 많았냐면 호랑이한테 물려가는 사고가 많았거든요. 요즘으로 말하면 교통사고요.
그래서 자기 명을 스스로 다 살지 못하고 비명횡사를 하고 여러 가지 고통 액사를 한단 말이에요. 그런 거 없는 걸 보게 하라는 뜻이요. 자기 병을 끝까지, 죽을 때 명을 명으로 마친다. 그건 불교 전부터 동아시아에서 염원했던 거예요. 그래서 불교에서도 삼장은 돈제하고, 몰록 다 없어지고, 오복은 증숭하기를 원합니다. 더 불어나고 더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이런 게 기도하는 축원문이에요. 그건 정초 기도나 일상 기도나 다를 바가 없거든요. 그런데 이 복을 왜 이루어야 하는가. 복이 왜 필요하죠? 복을 이루는 게 인생의 목적은 아니에요. 그럼 복이 왜 필요하냐? 행복하기 위해서 복이 필요한 거예요. 행복. 그래서 오복이 목적이 아니라 행복이 목적이에요. 오복을 갖췄어도 행복하지 않으면 그게 의미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 중에는 오복을 이루기 전에 행복부터 먼저 이룬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오복 없어도 괜찮잖아요. 그러니까 요즘 사람들은 돈 많이 버는 데만 열중하지 행복은 온데간데없어요.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난단 말이여. 그럼 그게 뭐 하는 짓이여. 하루도 행복해 보지 못하고 가는데. 그런 거를 일장몽객이다. 한바탕 꿈꾸는 나그네다. 일장몽객이에요. 일생이라는 게 그냥 한바탕이요. 꿈을 꿨다. 재산을 모으는 꿈, 뭐 구하다가 죽는 게 구하는 꿈을 꿨다. 그런데 임종시에 보니까 자기가 평소에 구했던 게 아무 소용이 없어. 숨 한 번 딱 지는 순간에 자기가 구해놓은 거, 자기가 이루어 놓은 것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꿈이었단 말이죠. 그래서 한바탕 꿈꾸는 나그네였다. 그거를 안 거예요. 어떤 사람은 알아서 복을 구하지 말고 바로 행복하자. 아주 이게 생뚱맞게 산 사람들인데, 보통 사람 다 복을 구하는데, 이 사람은 행복해 버렸어. 이제 그게 기록에 나오는 사례가 있는데 삼국사기 50권인데, 제48권에 신라의 백결선생이라는 기록이 나와요. 백결, 백결이라는 게 뭐냐 하면.
좋아요. 저런 소리도 다 좋아요. 백결이라는 게 100이라는 백 자하고, 이 옷 기울 결 자, 옷을 기워 입는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옷이 하도 없어서 옷 한 벌을 계속 기워 입었어요. 그래서 한없이 기워 입었다. 여러 번 기워 입었다라는 뜻으로 백결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이 계속 기워서 입은 옷을 입고 나가면 그 메추리새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여. 그래서 이거를 현순(懸鶉)이라고 메추리 새 순 자가 있거든요. 매달릴 현 자. 이러고 입고 나가면 새들이 막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여, 하도 옷이 없어서. 그런데 뭘 했냐 하면 평생 거문고를 가지고 살았는데 백결이 인간의 희로애락을 전부 거문고로 표현했다고 그래요. 그걸로 그냥 평생 살았어. 그런데 하루는 섣달그믐날이 됐는데 그분의 부인이 혼잣말로 얘기를 했어요. 다른 집에는 다 설을 쇠기 위해서, 옛날에는 이제 기계가 없기 때문에 절구방아를 찧어서 곡식을 만들었거든요.
그 곡식을 찧는 절구방아 소리가 나는데 우리 집에는 찧을 곡식이 없다, 이렇게 한숨을 짓고 있었어요. 그걸 백결선생이 들었어. 듣고 나서 아주 엉뚱한 소리를 했는데 뭔 소리를 했느냐. 사생은 유명이요(死生有命), 죽고 사는 건 타고난 병에 있고, 구하지 않는 거예요. 오래 살려고도 안 하고 빨리 죽으려고도 안 하고 그냥 명에 맡긴다. 명대로 산다. 이런 소리 들으면 천불 나잖아요. 실제로 이제 부인이 이런 분하고 같이 사니까 얼마나 천불이 났겠어. 근데 이렇게 구하지 말고 바로 행복한 사람하고, 구해서 마음을 채우는 사람하고 전혀 틀린 거예요. 근데 그 사람은 사생은 유명이라 죽고 사는 건 타고난 명에 있다. 또 그다음에 부귀는 재천이라(富貴在天), 부하고 귀한 것은 저 자연, 하늘에 있다. 하늘의 운수에 있다 이거죠. 부귀는 재천하고, 사생은 유명이라 명에 있다.
그다음에 기래야불가거(其來也不可拒)하고, 그 장수라든지 부귀가 올 때 불가거라 그것을 막을 수가 없고, 장수와 부위가 갈 때, 기왕야 불가추(其往也不可追)라, 가서 잡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뭐 오래 살든지 부자로 살든지 귀하게 살든지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놔두라는 거예요. 그냥 언제나 만족하고 행복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평생 복을 구했는데 평생 행복하지 않았다. 일장몽객이 됐다. 한바탕 꿈꾸는 사람이 됐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바로 행복해 버려야 돼. 복 구하지 말고 바로. 이런 사람이 있었다니까요. 실제로 그래 가지고 자기는 그러하지만 이 자기 부인이 너무 방아 찍을 곡식이 없는 것에 대해서 안타깝게 여기니까 그 마음을 위로한다고 거문고로 방아 찧는 소리를 연주를 해 줬어요. 뭐 뭐 이렇게 연주했겠지, 따따. 그러니까 그 부인 입장에서 곡식은 못 벌어 오지만 그 마음이라도 거문고로 위로를 해주니 멋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일단 위로가 됐을 거 아니에요. 그건 외면도 하지 않고, 그게 세상에 전해질 때 그 방아타령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한자로는 방아 찧을 대(碓) 자가 있고 음악 악(樂) 자가 있는데 대악(碓樂)이라고 그러는데, 어려운 말로. 우리 말로 백결선생의 방아타령이다. 그거는 사람은 다 행복하려고 돈 벌다가 행복은 온데간데없고 죽어버리는데, 그게 일장꿈꾸는 나그네가 됐는데, 이 사람은 돈 벌기 전에 행복해 버렸어. 근데 옆에서 돈 없이 행복한 걸 몰라서 괴로워하니까 그걸 위로하기 위해서 방아 찧는 소리를 거문고로 내줬다. 그게 이제 방아타령이다. 이런 인생관도 있어요. 그런데 불교는 그거보다 더 다른 게 있는데.
高峯分歲는 雖則百孔千瘡이나 也要將無作有라 細切鎭頭雲하고
고봉분세는 수즉백공천창이나 야요장무작유라 세절령두운하고
薄批潭底月하야 尖新堆餠하고 出格安排하니 要使 簡簡로
박비담저월하야 첨신퇴병하고 출격안배하니 요사 간간로
盈腸塞腹하고 人人으로 永絶飢虛니라 (“禪要”, 除夜小參)
영장색복하고 인인으로 영절기허니라 (“선요”, 제야소참)
강원에서 배우는 선요(禪要)라는 책이 있는데요. 선에 대한 본문인데 거기에 제야소참(除夜小參)이라는 게 있어. 제야소참. 제야라는 건 섣달그믐인데 소참이라는 건 간단한 본문을 소참이라고 그래요. 적을 소 자, 참여할 참 자. 제야 소참에 무슨 본문이 나오냐 하면, 그 선요 저자가 고봉 스님인데, 고봉의 분세(分歲)는, 제야를 분세라고도 해요. 나눌 분 자, 해 세 자. 고봉의 섣달그믐은 수즉백공천창(雖則百孔千瘡)이나, 백공천창이라는 구멍이 백 가지고 창난 게 천 가지다. 그래, 천 종류다. 그래가지고 그냥 구멍이 다 뚫려서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그런 걸 백공천창이라고 그래요. 가난 중에 최대의 가난을 백공천창이라고 그래요. 가난하고 가난해서 아무것도 없으나 야요장무작유(也要將無作有)라. 내가 아무것도 없는 걸 가지고, 장무라는 거는 없는 걸 가지고, 작유라는 거는 많은, 있는 것을 만들고자 한다. 이게 불교의 새해맞이 지혜법이에요. 없는 걸 가지고 있는 걸 만들고자 한다. 그럼 어떻게 그렇게 하냐?
세절령두운(細切嶺頭雲)하고. 영두운이라는 건 저 산마루 위에서 구름이 있는데 산마루에 올라가서 구름을 세절, 작을 세 자, 끊을 절 자, 조금 끊어와요. 사람 미치겠네. 이게 불교 새해 맞이 아주 미쳐요. 저기 북한산 이제 올라가서 구름을 많이도 안 끊어오고 세절이라, 가늘 세 자, 끊을 절 자니까 조금 떼어와요. 또 박비담저월(薄批潭底月)하야. 담저월이라는 건 연못을 이렇게 쳐다보니까 그 연못 속에 달이 들어 있어. 그걸 연못 밑바닥에 있는 달이다, 그래가지고 연못 담, 밑 저, 달 월, 담저월이라 그래요.
이제 허공에 있는 건 허공 월이고, 허공은 높으니까 연못에 이렇게 들어가서 박비(薄批)라는 거는 아주 얇을 박자, 역시 베일 비 자인데, 조그만 베어와. 연못 속에 가서 달 조금 베어오고, 산꼭대기 올라가서 구름 조금 떼다가 담저월하야 어떻게 하냐. 첨신 퇴병(尖新堆餠)하고. 첨신이라는 건 수북이 아름답게 그릇에 담아. 그걸 가지고 그릇에 하여서 어떻게 하냐. 출격안배(出格安排)하니. 격식이 없이 잘 차려. 상을 잘, 격식 없이 차려. 출격을 안배하니. 그걸 가지고 뭐 하자는 거냐. 요사 간간(要使 簡簡)으로, 사람 사람으로 하여금 영장색복(盈腸塞腹)하고. 영장이라는 거는 천자문에 보면 찰 영, 기울 측 하는 영 자가 있거든요. 채운다는 소리에요. 창자를. 일체 중생의 속을 다 채워 허기짐이 없이. 색복이라는 건 역시 가득하게 만들 색 자하고 배 복 자인데, 배를 가득하게 만들어. 그 자기가 차려놓은 걸 가지고. 또 인인(人人)으로, 사람 사람으로 하여금 뭐 어떻게 하자는 거냐. 영절기허(永絶飢虛)라. 배고프고 허기진 것을 영원히 없게 하겠다.
이게 도로서 신년을 맞는 행사예요. 도로서 신년을 맞는 행사다. 이게 왜 그러냐 하면, 영절기허라는 게 일체 중생은 가져도 가져도 허기와 이 굶주림이 계속 있어서 갖는 게 소용이 없어요. 행복하질 않아요. 가져도 가져도 더 가지려고 그러고, 먹어도 먹어도 더 먹으려고 그러고, 채워도 채워도 더 채우려고 그래요. 이게 굶주리고 허기짐 때문에 그렇거든요. 근데 이거를 기허를 영원히 없앤다. 영절이라, 끊을 절 자인데 영원히 끊어지게 한다. 그래서 이 도라는 건 한 번 보면 기허가 다 없어지는 거예요. 굶주리고 허기짐이 다 없어져. 그래서 구할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구할 게 없는 게 이게 도를 얻는 거거든요. 이 도라는 것을 이제 다른 말로 하면 일념, 한 생각, 또 불성, 부처의 본성. 일념불성을 한 번 얻게 되면 배가 그득하고 창자가 가득해서 아무것도 구할 생각이 없어요.
근데 이제 세속적으로 부모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그건 부모의 아주 본능적인 착각인데, 자식한테 많이 주면 자식이 만족할 줄 알아요. 천만의 말씀이에요. 받은 놈일수록 계속 하늘만큼 받아도 만족 못 해, 더 달라고 그래요. 아이 이제 언성이 높아지네. 안 받아본 놈은 안 달라고 그래요. 받아본 놈이 계속 더 달라고 그래서 부모의 목숨이 끊어져야 그때서 그만둬요. 그러니까 주어서는 자식의 마음을 만족하게 할 수가 없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된 거예요. 이거를 본능이라는 말을 불교에서는 구생번뇌(俱生煩惱)라고 그러는데, 함께 구, 날 생, 낳을 때부터 그런 번뇌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게 구생번뇌예요. 나면서부터 태어난 거예요. 그래서 밖에서 얻어서는 뭘 얻어도 행복하지 않아요. 자기 한 생각, 자기 불성을 찾았을 때 그때서야 이제 아무것도 구할 것이 없고 언제나 굶주림이 없고 허기짐이 없다. 이걸로써 나는 신년을 맞이한다.
이게 이제 그 선요의 제야소참에 나오는 신년 맞이 법문이에요. 그거 참 희한하잖아요. 산마루에 올라가서 구름 조금 떼고, 연못 속에 가서 달빛 조금 떼서, 수북이 잘 형식 없이 잘 차려서, 수북이 담아가지고 형식 없이 잘 차려서, 사람 사람으로 배가 가득하게 하고 허기짐이 영원히 끊어지게 하겠다. 야 멋있어. 박수 한 번 쳐요.
無處無時 一念卽是 念無自相 空寂靈知
무처무시 일념즉시 념무자상 공적령지
無障無礙 圓滿具足 同時相應 隨須卽得
무장무애 원만구족 동시상응 수수즉득
그게 이제 마음을 깨달아서 행복한 사람. 중생은 돈을 벌어서 행복하려고 하다가 못하고 가고, 저 백결선생 같은 사람은 모든 건 하늘에 맡기고 빨리 죽어도 슬프지 않고 오래 살아도 기쁘지 않고 자기 분수대로 언제나 행복하게 살다 간다. 이런 걸로 이제 행복을 느끼고 불교는 한 생각 불성을 더 깨달아서 영원히 모자람이 없이 사는 것이 내가 신년을 맞이하는 거다. 이런 것도 있어요. 그래서 이 한 생각 불성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선지식들이 다 가르치는 건데, 한 생각뿐이다. 한 생각을 알고 나면 무처무시(無處無時)다. 처소도 없고 시간도 없다. 한 생각은 처소가 없어요. 어떤 장소에 가도 거기에 한 생각이 있어. 이 물건을 봐도 이 물건만 보고 집착하는 거는 이제 한 생각을 모르는 범부의 행위이고, 이게 한 생각이에요. 이걸 보는 게 한 생각이에요. 이걸 좋아하는 게 한 생각이야. 이걸 싫어하는 게 한 생각이야. 죽음을 인식하는 것도 한 생각이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한 생각이고, 한 생각뿐이다. 이 말이에요. 무처무시라고 처소도 없고 시간도 없다. 그럼 뭐냐. 일념이 즉시(一念卽是)라. 한 생각이 곧 처소고 곧 시간이다. 뭔 소린지 참 기가 막히네요. 저 산을 봐도 저게 한 생각이라고. 나이를 계산하는 것도 한 생각이라고. 늙음을 인식하는 것도 한 생각이고, 한 생각이 없으면 늙음이 존재하질 않아요. 그래가지고 념무자상(念無自相)이라. 한 생각은 정해진 자기 모습이 없어요. 자상이 없어. 그래서 무량겁도 한 생각에 들어가고, 삼천대천세계도 한 생각에 들어가고, 이게 자상이 없기때문에 그래요. 그래가지고 공적영지(空寂靈知)라. 아무것도 자상이 없어서 공적한데, 이게 말이에요. 신령 영 자, 알 지 자, 신령스럽게 아는 신통이 있어요. 그걸 공적영지라고 그래요. 이렇게 가르쳐요.
한 생각은 자체 모양이 없어서 공적한데, 공적하기 때문에 무량겁도 들어갈 수 있고, 삼천대천세계도 들어갈 수 있고, 일 찰나도 들어가고, 100년도 들어가고, 일체 중생이 다 들어간단 말이에요. 공적해서. 근데 그 공적한 속에 신령스럽게 아는 놈이 있어요. 그래서 100년을 아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고, 천 년을 아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고, 뭐 요새 화성 탐지한다고 난리인데 그 화성, 그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그게 한 생각이 공적영지라고 그래. 그래서 그 공적영지를 하나 더 자기가 밝혀놓으면 모자라는 거 하나도 없고, 굶주리는 거 하나도 없고, 허기진 거 절대 없다. 구할 거 전혀 없다. 바로 일이 들어간단 말이야. 근데 사람들이 잘 안 해요. 왜냐하면 믿을 수가 없거든. 정말로 그럴까. 내가 이런 얘기를 할 때 어떤 사람이 잘못되면 어쩌는데요 이래. 해보지도 않고 잘못될 걱정하더라고. 그건 뭘 의미하느냐 하면 자동차 타지도 않고 사고부터 걱정해서 못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공부하다가 때로는 실성한 사람도 있거든요. 그거는 자동차 운전하다가 사고 나는 수도 있다는 얘기여. 근데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고 공부 잘하면 절대 잘못될 수가 없어요. 그거 왜 그러냐면 나한테 있는 거 내가 갖는 거니까. 다른 데 가서 찾는 게 아니고 나한테 있는 것을 내가 그냥 갖는 거여. 찾을 것도 없고 그냥 갖는 거예요.
내한테 있는 건 내가 갖는데 그 무슨 잘못될 일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이 한 생각을 역대 선지식들이 종합적으로 어떻게 가르쳤느냐 하면은 무장무애(無障無礙)라. 장애가 없고 장애가 없다. 아무 걸리는 게 없다는 거예요. 이 일념 불성은 무장무애하고 또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원만이 다 갖춰져 있어. 이 일념불성에. 무장무애하고 원만구족하고. 또 동시상응이라(同時相應). 동시에 다 함께 만나. 천 년 전 걸 생각하면 천년과 만나고, 만 년 전 걸 생각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만 년과 만나고, 하나를 생각하면 하나와 만나고, 열을 생각하면 열을 만나고, 무량 억만 개를 생각하면 무량 억만 개를 그냥 만나. 이걸 동시상응이라고 그래요. 서로 상 자, 응할 응 자. 동시상응하여 수수즉득(隨須卽得)이라. 따를 수, 구할 수, 구함을 따라서 즉득, 곧 즉, 얻을 득, 바로 얻는다. 내가 100년을 구한다하면 100년 바로 되고, 만년을 구한다면 만년 바로 되고, 내가 저 화성을 원한다면 화성 바로 나타나고, 극락세계를 원한다, 극락세계가 바로 나타나고. 이걸 수수즉득이라고. 이거 말 참 어렵다. 이거 의상 스님이 쓰는 말인데, 수수, 필수적으로 구함을 따라서 즉시 얻는다. 즉득. 이게 한 생각이거든요. 근데 이게 어려우냐. 어려운 게 아니에요. 왜 안 해서 모르는 거예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