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자비도량참법기도] 2월 18일 자비도량참법기도 회향 법문 2024-02-18

       마하반야바라밀.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설 잘 보내셨죠?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진관사를 대표하는 분들만 앉아 계신 거죠. 얼굴 뵈니까 다 진관사다운 면모를 갖춰서 눈빛이 반짝반짝한데요.

       오늘은 이제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회향하는 날이기도 하죠. 저도 유튜브로 좀 봤습니다. 저도 이제 소임을 볼 때 연초가 되면 자비도량참법을 하곤 했는데, 자비도량참법은 말 그대로 자비도량이 핵심이잖아요. 자비도량을 건립하는 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제 <자비도량을 건립하자>라고 하는 주제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주지 스님께서 들어서자마자 박사를 받았다고 그러셔서 낯부끄러워서. 근데 사실은 사실이에요. 학위는 아직 못 받았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 학위 수여식이 있어요. 그래서 이제 철학 박사를 받게 됐는데, 제가 원래는 우리 주지스님하고 같이 학교 다닐 때 박사학위를 제일 빨리 받을 거라고 소문이 났었는데, 제일 늦게 받게 돼버렸어요. 중간에 한눈을 많이 팔아가지고 늦게 받았는데, 우연치않게 정토 관련된 공부를 다시 하게 됐어요. 그래서 박사학위는 이제 <조선시대 정토신앙 연구>라고 하는 걸로 학위를 받게 됐는데, 조선시대 하면은 불교가 가장 어려울 때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조선시대의 정토를 연구한 선행 자료들이 없어서 꽤 애를 먹었습니다. 자료를 찾는데. 그래서 제가 조선시대 정토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해볼까 하다가, 15년 전에 통도사로 성지순례를 갔는데, 그때 천일 기도하는 스님이 참법 기도를 하는데, 기존에 우리는 이제 자비도량참법만 알았는데, 그 스님이 하는 책이 미타도량량참법이라는 걸 가지고 참법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책을 하나 얻었어요. 절에 와서 쭉 읽어보니까, 내용이 너무 신심이 나고 또 너무 좋았어요. 특히 제가 살던 도량이 미타도량이었기 때문에, 그러면 이제 내년부터는 이 미타도량참법을 가지고 정초마다 참법기도를 해야 되겠다.’ 그래서 이제 그 스님한테 책 복사본을 내는 걸 허락 맡고, 1천여 권을 찍어서 신도분들한테도 나눠드리고, 또 오는 인연들한테 하나씩 나눠드렸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그 미타도량참법을 보니까 이게 조선시대에까지 면면이 이 참법 기도가 내려오는데, 이 중국에서부터 쭉 내려온 게 미타도량참법인데, 그 참법이 자비도량참법도 마찬가지지만은 굉장히 중요한 신행 내지는 수행의 한 방법으로 해왔던 거였어요. 그런데 자비도량참법만 해도 10권으로 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옛날에 이게 너무 기니까 이걸 줄여가지고 소미타참법이라고 줄여서 한 기록도 있더라고요. 근데 이제 우리 진관사도 하지만, 예수재나 수륙재를 하지 않습니까? 근데 옛날에는 그 수륙재나 예수재의 핵심이 참법이에요. 근데 이게 너무 길고, 이제 오래 복원이 지금 되고 있지만, 하다 보니까 이 참법이 빠지고 공양만 남아 있는 거예요. 예수재나 수륙재가 원래의 원형을 찾으려면 공양 플러스 참법이 들어가야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참법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한데, 또 이 참법을 하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뭐냐 하면, 중생의 습성을 내려놓고,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본래 붓다의 성품을 드러내는 게 참법의 가장 큰 특징이란 말이죠. 그런데 이 정토가 바로 그런 거잖아요. 정토가 이제 깨끗한 세계, 예토의 반댓말이니까, 좀 편안한 세계, 고통이 없는 세계, 그다음에 바로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세계, 이게 이제 정토인데, 조선시대 정토는 우리나라 불교가 들어와서 전래가 되면서, 정토에는 세 가지가 있거든요. 저 멀리 서방정토 세계가 있고, 그다음에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정토로 만드는 게 있고, 또 하나는 마음이 정토인 세계가 있어요, 쉽게 말하면. 근데 우리나라에서 해방 이후에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온 스님들이 많이 들어와서 정토를 하다 보니까, 유심정토보다는 우리가 사후에 가는 극락정토 서방정토 세계를 많이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조선시대의 자료를 보다 보니까 우리나라는 정토의 특징이 화엄선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화엄선이 이제 나중에 극도로 아주 최고의 수행 과정으로 가는 게 간화선이란 말이죠. 이 화엄선의 출발점이란 말이에요. 우리나라는 화엄선이 핵심이에요. 근데 화엄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정토도 유심정토 성향이 강합니다. 마음이 정토라는 거예요. 마음이 정토여야 된다. 그래서 조선시대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눠서 보니까, 그 당시에 선사 스님들도 전부 정토에 관련된 책을 쓰고, 정토에 의지했던 모습들이 있어요. 근데 그 정토는 우리가 기존에 생각했던 사후 세계의 정토가 아니라, 어떤 세계다? 마음이 정토인 세계인 거예요. 깨달음의 세계인 거죠, 일종의. 그래서 그런 것들로 조금, 이제 아주 조금 연구를 해놨어요. 그래서 다행인 것은 이후에 후학들이 조선시대 정토를 연구하는데 한국적인 시각에서 정토를 보는데 조금 이바지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보게 돼서 스스로 칭찬을 하게 됩니다. 제 자랑은 여기까지 하고요.

       자비도량참법을 좀 이야기할까 하는데, 아까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자비도량을 건립을 해야 된다> 그게 목적이다 그랬잖아요. 근데 우리가 1년을 새로 열면서,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 그 첫 페이지에 자비도량으로 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수행 중에 하나입니다. 자비라고 하는 것이 이제 늘 얘기하지만, 자비라는 게 뭐예요? 우리 이제 젊은 불자들도 있고, 또 절납이 오래되신 노보살님도 계시는데, 자비가 뭐냐 하면, 자비가 뭐예요? 자비.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었던 선물 중에, 선물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제 지혜라는 선물이 있고, 자비라는 선물이 있는데 자비는 온화하고 따뜻한 거예요. 자비스럽다. 자비스러운 마음 그러면 다른 거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지그시 눈을 감고, 내 마음이 온화하고 따뜻한지 이렇게 떡 보면 돼요. 근데 내 마음이 산란해, 마음이 차가워, 마음이 굳어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건 자비한 마음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자비한 마음을 돌리는 거죠. 돌리면 되는 거예요. 온화하고 따뜻한 것이 왜 중요하냐 그러면, 온화하고 따뜻한 것이야말로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입춘이 지났으니까 제가 늘 가끔씩 엄청난 예언들을 하는데 들어본 적 있죠? 제가 엄청난 예언을 하잖아요. 봄이 오면 꽃이 필 거고,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릴 거다. 중요한 건 뭐냐면 그때 다 우리가 건강한 모습으로 볼 거다. 이건 엄청난 신령스러운 일이에요. 우리가 때가 지나도 건강하게 늘 볼 수 있다는 거는 그것만큼 신령스러운 일이 없는데, 어쨌든 봄이 오니까 봄이 오면 따뜻해지죠. 따뜻해지고 온화해지면 어떻게 돼요? 생명이 움트게 됩니다. 이제 법문하려고 쭉 내려오는데, 아주 우리 진관사 도량이 고즈넉해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습니다. 근데 이제 도량에 서 있는 나무들이 전부 지금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죠. 근데 이게 이제 온화하고 따뜻해지면 싹이 나기 시작해서, 녹음이 지고, 또 가을에는 낙엽이 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온화하고 따뜻한 거는 생명이 움트게 한다는 거는 변화하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내 마음이 온화하고 따뜻해져야지만이 내가 뭔가 성취도 되고 뭔가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마음이 굳어 있고 차가워 있고 얼어 있는 사람은 어떤 것도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절에 와서 기도 성취를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 또 무량 공덕을 짓기 위해서, 또 신행하는 분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뭐냐 하면, 부처님 앞에 서서 발원할 때는 그 마음이 녹아야 돼요. 근데 이제 마음이 얼어 있어가지고 굳어 있어서, 아니면은 더 쉽게 말하면 뭔가 원망하는 마음, 뭔가 누구한테 미워하는 마음, 내지는 마음에 갈등하는 그런 것을 가지고 기도하면 안 된다는 거죠. 예를 들면 똑같은 원리잖아요. 언 땅에 씨를 뿌리면 안 되잖아요. 그죠. 뭔가 녹고, 좀 뭔가 포근한 데다가 씨를 뿌려야 싹이 나듯이, 그래서 자비라고 하는 건 그만큼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을 이루는 거에요.

 

       그다음에 도량이라는 게 있어요. 그 도량(道場)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우리가 절을, 사찰을 도량이라고 얘기하는데, 그 도량은 한자로 쓰면 도장이라고 읽어요. 도장, 태권도장 할 때 도장이거든요. 근데 왜 도장이라 안 읽고 도량이라 읽느냐 그러면, 도장은 몸에 힘을 키우는 거를 도장이라고 그래요. 몸에 힘을 키우는 거. 마음에 힘을 키우는 걸 도량이라고 읽습니다. 그러니까 도량이라고 자비도량 그러면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의 힘을 키우는 곳이에요.

       자비도량을 한다는 거는 내 마음이 온화하고 따뜻한 그런 마음의 힘을 키워는 기도인 거죠, 자비도량참법이라는. 근데 자비도량참법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미움이 남아 있다면 이게 뭔가 잘못된 거라서 이건 점검을 해봐야 됩니다. 자비도량참법을 했는데, 기도를 하고 났는데, 나가다가 보니까 신발을 누가 밟고 갔어. 근데 그거 보는 순간 욱하는 게 올라와. 이게 이제 말짱 (헛수고)이에요. 이게. 이럴 때는 이제 점검해 봐야 돼요. 근데 왜 그러느냐 그러면, 기도를 했지만 습성 때문에, 화내는 습성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자비도량참법은 한 번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해야 됩니다. 꾸준하게. 우리가 이제 진관사에서 자비도량참법을 이렇게 하는 것은 인연이 맺어진 거예요.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이 인연 맺음을 힘으로 일상에서도 자비도량참법을 꾸준하게 해야 돼요. 스님이 시키든 시키지 않든, 누가 보든 안 보든, 자기 스스로가 자비도량참법을 쭉 읽으면서 또 독서해가면서 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자비도량참법이 힘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자비도량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자비도량참법이 지금으로부터 한 1500년 전에 만들어진 말씀이잖아요. 경전은 아니에요. 이게 자비도량참법이. 양나라때 만들어진 거잖아요. 자기 부인 치씨를 위해서 만들어진 건데, 부처님의 말씀 중에 좋은 걸 다 모아가지고 만들어 놓은 건데, 이게 중국, 한국, 대만에서 유행을 해요.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이게 1500년 동안에 내려온 거니까 얼마나 많은 다양한 것들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중간에 이제 중심 내용들은 같은 건데,- 그 중심 내용들을 몇 가지 점검해가면서 이건 꼭 해야지만이 자비도량참법을 건립할 수 있다라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비도량참법을 해도 이게 좌로 가는 건지, 우로 가는 건지, 위로 가는 건지, 밑으로 가는 건지, 모르고 하긴 하는데 이게 방향감이 없단 말이죠. 그래서 이 자비도량참법을 하면서 이 네 가지는 꼭 명심을 해야 된다라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우리 어린 학생들도 와가지고, 가장 쉬운 언어로 이제 말씀을 드릴게요,아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자비도량은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에 힘을 키우는 기도다. 이거는 이해하셨죠? 그래서 그 첫 번째가 뭐냐 하면 <의심하지 마라>입니다. 의심하지 마라. 우리가 왜 의심하지 마라 하냐 그러면, 의심은 뭐예요? 번뇌예요. 번뇌. 근데 우리는 살아오면서 법에 대한 의심을 하면 그게 자기한테 큰 도움이 되는데, 저 법은 왜 저렇게 됐을까, 저 법은 내가 왜 얻지 못할까 이렇게 의심하면 좋은데 뭘 의심하냐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의심을 해요.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의심. 그래서 그 의심이라고 한 용어로 돼 있지만 이건 다른 말로 번역하면 번뇌라는 뜻이에요. 번뇌. 다른 말로 하면 번뇌는 뭐예요? 괴로움이라는 말이잖아요. 괴로워한다는 거예요. 여기 자비도량참법에 첫 번째 나오는 게 의심하지 마라거든요. 의심하지 마라. 이걸 아주 편한 말로 풀이하면 괴로워하지 마라라는 겁니다. 근데 우리는 괴로워하는 게 습성화돼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생각이 올라오면 의식이라는 게 있거든요. 의식. 의식이라는 게 있는데 의식은 구사론이나 이런 데서 보면, 논서에 보면, 의식의 의자는 <전 생각> 이렇게 번역돼요. 식은 <후 생각>. 그 전 생각과 후 생각이 찰나 동안에 생멸하면서 우리 생각이 바뀌는 거예요. 의식이라고 하는 게. 의식이 있죠. 의식 없는 분 손들어보세요. 난 의식이 없다. 의식이 없으면 살아있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근데 의식도 전의식이 있고, 무의식이 있어요. 조금 어려운 걸 한번 터치해보면 전의식은 뭐예요? 안이비설신 다섯 가지 느끼는 거, 이를 전의식이라고 하고, 그다음에 생각으로 하는 거를 무의식이라고 표현하죠. 무의식. 무의식이 하도 또 다양해 이게. 이거는 우리가 조금 알아둬야 될 게, 우리의 의식의 흐름이 원래 그렇게 고정돼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한번 분석의 틀을 통해서 나를 분석할 필요는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보는 거, 듣는 거, 맛 보는 거, 냄새 맡는 거, 몸으로 느끼는 거가 있는데 그거를 통괄하는 게 의식인데, 첫 번째 의식이 뭐냐 하면 육식이잖아요. 의식. 그게 의식이 전 생각과 후 생각이 자꾸 교차하면서 나를 만들어가는데, 그 교차하는 핵심이 뭐냐 그러면, 나라고 하는 생각이에요. 그거를 말라식(末那識)이라고 하고 염오식(染汚識)이라고 얘기해요. 염오식. 물들인다. 염오식. 이거는 이제 다른 말로는, 제가 만들어낸 말로 표현하면, 이거를 저는 정체식이라고 그래요.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낸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여러 색깔, 세상에 여러 색이 있는데 사람마다 좋아하는 색이 다 다르고, 세상에는 너무 많은 노래가 있는데 노래하는 게 다 달라요. 어떤 사람들은 트로트 좋아하고요. 저희 은사 선생님은 트로트를 너무 좋아하세요. 제가 어디 모시고 갈 때 트로트를 틀어드리면 너무 좋아하세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또 발라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 것처럼 그거를 구분하는 게 일곱 번째 식인 거예요.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식이 있는데 여덟 번째 식은 이런 경험들을 다 모아놓는 의식이 또 있는 거예요. 그 모아놓는 것에 자기의 취향대로 꺼내다 쓰는 거, 저거 좋은 거, 저거 내가 싫어하는 거, 저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 거. 이런 식으로 해서 이제 쓰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 생각이 올라올 때 무시겁래로 우리가 했던 마음 중에 뭐가 있냐면 걱정과 염려라는 게 있어요. 그래서 의심하게 됩니다. 의심이 왜 이게 괴로운 거고 이게 고통이냐면, 의심하게 되면은 생각이, 어떤 사물이 바르게 보이지 않고요. 이게 굴절돼 보여요. 의심하게 되면. 굴절된다는 게 뭐냐면 바르게 들어온 게 아니라 거꾸로 보여요. 진짜가 아닌데 진짜처럼 보이고, 가짜인데 그게 진짜처럼 느껴지고 그런 거란 말이죠. 그걸 전도라고 그러죠. 전도. 의심하게 되면 전도된 마음이 생기게 돼요. 전도된 마음이 생기게 되면 어떻게 돼요? 몽상을 하게 돼요. 몽상은 뭐예요? 엄한 생각을 하는 거예요. 거기 생각을 가지고 막 이제 여러 가지 자기의 경험과 그동안에 들은 이야기, 느낀 걸 통해가지고 많은 생각들을 이 번뇌들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의심이 전도된 생각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몽상까지 가는 것, 이게 총체적으로 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괴로움인 거예요. 괴로움. 그래서 이게 첫 번째 자비로운 참법을 할 때는 그런 의심을 내려놓는 거예요. 걱정을 내려놓는 연습부터 해야 됩니다. 그리고 자비도량참법을 통해서 그런 걸 내려놔야지, 자비도량참법을 통해서 또 그게 나중에 자비도량참법을 쭉 오래하다 보면 그 힘을 얻게 돼요. 걱정을 내려놓게 됩니다.

       출가해서 부처님 법을 믿고 따르는 스님들이, 저는 출가해서 가장 큰 공덕이 뭐냐 하면 다른 것보다도 편안하게 자유롭게 사는 것도 있지만, 저는 출가에서 가장 큰 공덕은 뭐냐 하면, 스스로 걱정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힘을 얻게 돼요. 그게 저는 출가의 가장 큰 공덕이라고 봅니다. 근데 우리는 너무 걱정을 많이 해요. 그러니까 그게 번뇌가 되다 보니까 괴롭죠. 그래서 의심을 내려놔라. 의심을.

       그다음에 의심을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면은, 그다음 나오는 구절이 <신심을 가져라>라는 거잖아요, 믿음을 가져라. 믿는 마음을 가져라. 믿는다는 건 어떤 거예요? 의심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믿는다는 그 네 가지는 첫 번째로는 뭘 믿어야 되느냐. <내 자신을 먼저 믿어야 돼요.> 이걸 근본신이라 그래 근본신. 나를 믿어야 돼요. 그래 나를 믿는데 내 생각과 내 고집을 믿는 게 아니고, <내가 원래 다 본래 붓다로서 이 안에 원래 맑고 밝고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이 있다>라고 믿어야 되는 거예요. 그게 그것부터 출발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 걸 드러내고, 그걸 믿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고, 또 부처님 가르침을 열심히 수행하는 스님들을 봐야 그게 합일되는 거죠. 그 채널이 맞아지는 거죠. 그래서 내가 나는 중생이야, 나는 괴로운 사람이야. 나는 늘 운이 없어,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나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일도 성취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우리 청년들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자기 스스로가 자기한테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법을 배워야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근데 우리는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법을 잘 몰라요. 너무 인색해. 그게 무슨 세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자기한테 칭찬이 너무 인색해요. 자기한테 칭찬이 인색하다 보니까 마음도 좁아질뿐더러 자기를 칭찬하는 게 안 되다 보니까, 남도 칭찬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을 믿는데 자기 자신을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거울을 보고, 거울을 보고 화장만 하지 말고, 내 마음에도 칭찬해줘야 돼요, 내 자신에게. 내 마음속에 맑고 밝고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이 있다라는 걸 믿는 마음을 확인해야 돼요.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게 첫 번째 자기 자신을 믿는 거잖아요. 그런 믿음을 만들어내야 그다음에 부처님을 봐도 부처님의 광명이 내 안으로 내려앉을 수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봐도 그 고구정령한 말씀이 내 안에 녹아내릴 수가 있는 거죠. 스님들을 봐도 스님들 말씀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나를 믿자.

 

       첫 번째는 이제 의심을 드러내고 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신심을 갖는 거잖아요. 두 번째로는 자비도량참법의 가장 핵심인데 이걸 하기 위한 거예요. 이제 의심 끊어내고 신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자비도량참법이 네 글자로 압축해서 말씀을 드리면 해원석결(解寃釋結)이에요. 해원은 뭐냐 하면,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풀어내는 거예요. 그리고는 또 하나는 석자도 푼다는 말인데, 그것도 미운 마음을 푸는 거예요. 원수진 마음을 푸는 건데, 미운 마음을 푸는 건데, 이 해원석결이 이 자비도량참법을 하는 원래의 목적이에요. 양무제의 치씨 부인이 살아생전에 좀 옹졸했었나 봐요. 그래서 좀 인색한 마음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뭐가 돼요? 죽어서 구렁이가 되잖아요. 그래서 꿈에 나타나가지고 본인의 그런 나쁜 갈래에 떨어졌는데, 그걸 구제해달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나쁜 갈래에 떨어지는 게 왜 떨어진다?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떨어진다는 거예요. 원망하는 마음 때문에 떨어진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구를 미워합니다. ‘저 원수 같은,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그런 얘기 많이 하죠. 근데 처음에는 사랑하는 마음이었는데 그게 원망하는 마음이 되고, 또 처음에는 좋은 인연을 만났는데 그게 서로 간에 미워하는 마음이 되는 건 왜 그럴까요? 가까이 있다 보면 그렇게 되는 거죠. 가까이 있다 보면. 멀리 있는 사람들은 해원석결, 풀 일이 없어요. 이 해원석결은 전생까지 다음 생까지 내일까지 나의 미래를 그렇게 점철시키는 것은 같이 살던 사람들로 인해서 그래요. 가장 큰 게 뭐예요? 가족입니다. 친족들이 그래요. 남과, 타인과 이렇게 같이 지내다가 원망이 되고 미워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이 다 전체가, 전체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친족 간에, 가족 간에 이 원망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서로 상처받고 서로 얼굴 안 보고 살고 그럴 경우가 많죠. 그러니까 이제 자비도량참법을 했는데 마음에 미운 마음이 안 풀린다. 이거는 또 진료를 또 해봐야 되죠. 전문적으로, 또 우리 주지스님 만나가지고 상담을 하셔야 돼요. 특단의 조치를 받으셔야 돼요. 자비도량참법을 하게 되면은 기도를 할 때 저도 그랬습니다마는, 자비도량참법을 처음에 시키면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게 뭐냐 하면, “눈물이 나요.”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런 경험해보셨어요? 자비도량참법하다가 눈물 흘리신 분 계세요? 우는 분들 많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게 뭐냐 하면, 알게 모르게 마음에 쌓였던 미움의 업식이 녹아내리는 거예요. 그 미운 마음이라는 게 사람 마음을 차갑게 굳게 하잖아요. 그게 녹아내리는 거거든요. 이게 자비의 힘인 거예요. 그게 그러니까 이제 이 자비도량참법을 하면서는 제일 중요한 게 가족들하고 잘 지내야 돼요. 가족들하고 잘 못 지내면 자비도량참법은 무릎이 깨지도록 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예를 들자면 자비도량참법을 여러분이 오늘 마치고 회향을 했잖아요. 그러면 오늘 가서 제일 할 게 뭐냐? 남편과 아내의 손을 다 잡고 나 때문에 참 고생 많았어. 내가 앞으로 잘할게.” 이렇게까지는 안 되더라도, 미워하는 눈빛을 보내면 안 돼요.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들도 내가 인연을 맺어서 왔잖아요. 애가 오고 싶어 온 게 아니잖아요. 내가 만들어 놓은 인연이란 말이죠. 근데 그 인연들한테 너무 상처되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근데 요즘에 이제 프로그램 중에, 우리 아까 주지스님께서 tv 많이 보지 말라고 했는데 이건 드라마는 아니에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고 하는 그런 프로그램 있잖아요.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시하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 있잖아요. 그 아이들을 분석해 보면 문제는 그 아이였어요? 환경이었어요? 90%가 환경이었어요. 물론 타고난 기질이 그런 아이들도 있어요. 없는 건 아닙니다마는 대부분이 뭐예요? 그 아이가 그렇게 문제 행동하는 것은 그 가정이 가졌던 환경 문제였던 거예요. 환경 탓이었던 거죠. 환경이 문제였던 거죠. 여기 우리 꼬마들이, 우리 어린 법우들이 와 있지만, 이 법우들이 이렇게 선량한 복을 지을 수 있는, 부처님 전에 앉을 수 있는 건 뭐예요? 가정환경이 좋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기 앉아 있는 아이들이 문제아가 될 수가 없어요. 여기 앉아 있는 우리 진관사 도량에 같이 와서 함께한 아이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들로 성장할 겁니다. 여기서 장관도 나오고, 정치인도 나오고, 또 재벌 총수도 나오고 그러겠죠. 축원의 박수 한번 보내주세요. 그런 것처럼 그 문제, 우리가 가정이라고 하는 것에서 그런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자비도량참법은 해원석결이다. 미운 마음을 덜어내는 거다 라는 거예요. 그 미운 마음을 덜어내려면은 하나의 그 좋은 기재가 있는데 그 기재가 뭐냐 그러면 발보리심이에요. 발보리심. 그래서 이 해원석결을 하는 거, 참회를 통해서 해원석결하는 건데, 그 해원석결을 참회를 제대로 하려면 마음에 보리심이 올라와야 돼요. 보리심. 보리심을 발하는 거죠. 보리는 뭐예요? 지혜죠, 지혜. 반야, 지혜, 보리 같은 말인데, 지혜심이에요. 지혜심, 반야심. 반야심을 발하는 거예요. 발한다는 거는 없는 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펼쳐내는 걸 발이라고 그래요. 출발 이렇게 하죠. 출발. 출발은 뭐예요? 여기서 출발하는 거잖아요. 어디 한 곳에서, 있는 곳에서. 그러니까 이 발보리심, 발은 원래 내가 없던 거를 받아서 만들어서 하는 게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보리심, 보리라는 건 반야라는 거, 맑고 밝은 마음, 맑고 밝은 마음을 드러내는 거예요. 발보리심은. 드러내면 어떻게 돼요? 맑고 밝아지니까 해원석결이 되는 거예요. 내가 미운 마음이 든다는 거는 어두운 마음이란 말이죠. 거기에 발보리심을 하는 거예요. 발보리심. 발보리심을 어떻게 해요? 알려드릴까요? 아주 쉬운데. 이렇게 앉으셔가지고 마음이 밝은지 맑은지 돌이켜보면 돼요. 얼마나 쉬워요? 이거 0.1초도 안 걸리죠. 돌이켜보는 거. 이거를 이제 요즘 말로는 메타인지라 그래요. 메타인지 들어보셨어요? 메타인지. 나의 어떤 마음에 또 다른 나를 만들어서 이렇게 살펴보는 걸 메타인지라 그래요. 전문용어로. 조금 똑똑해 보이죠. 이런 용어 쓰니까. 그래서 그렇게 돌이켜봐야지 말이 된다. 그게 발보리심이다라는 겁니다. 발보리심. 발보리심이 어려운 게 아니에요. 맑고 밝은 마음을 발현해내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발보리심까지 이루어진 다음에, 마지막으로 회향심인 거예요. 회향심. 요게 자비도량참법의 큰 줄기입니다. 회향심은 뭐예요? 내가 기도를 통해서 느꼈던 것,
 

고마워. 내가 이게 중 되고 이런 경험 처음 하네요. 내가 출가하고 나가지고 법문하다가 이렇게 현금을 받아보기로는. 아이고 야, 합장도 잘하네. 아이고 이런. 새로 오신 부주지스님이세요? 회향심 얘기하니까 바로 이렇게 회향을 그냥 몸으로 보여주는 애기 보살님이 계시네요. 이런 게 회향심인데, 오늘 법문 소용없어. 우리 아이가 그냥 몸으로 보여줬어요. 아기 보살님이.       

       근데 회향심이라고 하는 거는 뭐냐 하면, 내가 기도를 통해서 느꼈던 바의 느낌들을 내 홀로 마음으로 간직하는 게 아니라, 나의 아이들에게, 나의 가족들에게, 나의 이웃들에게, 나의 인연들에게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근데 우리가 이 회향심을 잘 몰라요. 우리 불자들이 좀 약한 부분이 요 회향심이 좀 약해요. 내가 느낀 것들이 있거든요. 아주 작은 것이라도 기도하는 속에서 느꼈던 느낌이 있는데, 그리고 변화들이 있는데, 그 느낌과 변화들을 자기만 간직하고 있어요. 이제는 이야기할 때가 됐습니다. 그 이야기해서 같이 공유하면, 같이 향유하면, 뭐가 되냐면 그거를 다른 말로 전법포교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전법포교는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느낀 바, 내가 깨친 바, 내가 얻은 바만큼의 이야기를 나의 가족과 나의 인연들과 함께하는 거, 이게 전법포교인 거죠. 그래서 이 자비도량참법이 회향을 하게 되면, 회향심을 갖고 하게 되면 전법포교를 하는 거잖아요. 보세요. 이것만큼 전법포교에 좋은 게 뭐가 있어요? 마음에서 신심이 우러나잖아요. 지금.

 

       그래서 우리가 자비도량참법기도를 회향한 만큼, 지금 말씀드렸던 의심을 내려놓고, 신심을 갖고, 그다음에 해원석결하고, 해원석결을 하려면 발보리심을 해야 되고, 발보리심을 이룬 다음에는 회향심까지 마음에 갖는다면 우리는 참다운 자비도량참법을 성취할 거다. 그래서 여러분 올 1년 내내 진관사와 함께, 또 우리 최고의 수행자이시고 또 진관사의 탑이신 우리 법해 스님하고 함께 자비도량참법을 건립하시기를 축원 올리면서 법담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