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특별법회] 3.1절 특별기념법회 및 (사)백초월스님 선양회 발족식 법문 2024-02-25

 

        안녕하세요. 문광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뜻깊은 자리에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백초월 스님 선양회가 이렇게 발족을 했습니다, 3.1절을 앞두고. 작년에도 3.1절에 왔었습니다. 와서 백초월스님 태극기에 대한 말씀을 드렸었는데, 올해 백초월 스님이 이제 80주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629일 날이 추모재 날, 기일인데요. 그때 학술대회를 할 때 태극기에 대해서 연구를 더 해서 발표를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태극기가 이 진관사에서 나오기 전에는 백초월 스님을 아시는 분이 우리 여기 계신 김광식 교수님 정도 있었고, 스님들 몇 분 아셨지 전 국민이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렇죠? 예전에 제가 탄허 스님 연구를 했는데 스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나는 문곡성이 발달해 있다. 그래서 살아서보다 나중에 세상 떠나고 나서 더 유명해질 거다.” 이러셨는데, 그래도 탄허 스님은 생시에도 많이 유명하셨더랬죠. 근데 이 백초월 스님이야말로 정말 진정한 문곡성의 기운을 받고 새롭게 한국 땅에 현신하신 분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이 진관사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드라마틱한 일이 2009년에 벌어졌고요. 그리고 그 일장기 위에 그려서 태극기를 만드는 그런 문화가 있었고, 그리고 그 뒤에, 40년대 이후에 그러한 태극기가 있다는 말씀은 들어봤으나, 3.1절 당시에, 3.1운동 당시에 그렇게 실제로 했다는 유물을 그대로 보여주신 게 우리 이 진관사의 칠성각에서 그대로 드러났지요. 희유한 일입니다. 우리 국민이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해서 한 번 더 경각심을 주고 있는 그런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제가 오늘 우리 회주 큰스님께 그런 말씀 드렸어요. 이제 우리 진관사는요, 단순한 조계종 사찰, 서울에 있는 사찰, 그냥 불교의 절, 이런 게 아닙니다.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을 찾고 있고요. 한국에 오게 되면 서울을 오게 되는데, 이 서울을 바로 보여줄 수 있는, 삼각산을 보여주고, 그다음에 여기에서 이 고려시대부터 시작해서 쭉 흘러왔던 역사들이 다 그대로 간직되어 있고, 조선시대 무학대사가 동서남북으로 이 수도를 수호하는 그런 절들 중 서쪽을 수호하는 진관사, 그렇게 벌써 임명을 받고 있었던 그런 엄청난 사찰이고요. 거기에다가 왕조 실록을 보면, 태조실록에 딱 보면 그냥 바로 처음부터 나옵니다. 수륙재 얘기가 나와요. 진관사 수륙재 얘기가 나오고요. 그리고 그런 부분들을 보면 이 진관사야말로 한국의 모든 우리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사찰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게 어르신이었던 진관 스님께서 여기를 불사를 너무 잘해 주셔서 너무나 맑고 깨끗하고, 그다음에 지금 우리 회주 스님, 그다음에 주지 스님을 비롯해서, 여기 진관사에 계신 스님들이 너무나 도량을 맑고 깨끗하게 정리를 해주셔가지고 여기에 그냥 오기만 와도 그 자체로 마음이 쉬어지고 힐링이 되는 도량이 됐어요. 거기에 템플스테이 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찰 음식까지 명장이 계시고, 아주 엄청난 문화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회주 스님께 그랬습니다. 문화총림이라는 말을 좀 쓰면 어떻겠느냐고. 우리 불교에서는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 이렇게 있으면 총림이라고 그러거든요. 근데 이제는 그야말로 진관사야말로 서울에 누군가 외국인이 온다면 이 진관사를 보면 한국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한국 문화의 아주 결집체다. 그래서 문화 총림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런 도량에서 백초월 스님의 이런 태극기가 나오고 신문이 나오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김광식 교수님께서 이제는 건국 훈장을 받으실 수 있도록 우리가 일을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고, 그다음에 태극기 기념관도 이제 마련을 해야 된다는 게 너무나 당연하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 백초월 스님을 저도 이제 진관사에 오게 되면서 뉴스는 봤지만 자세히 몰랐잖아요. 그래서 김광식 교수님 책도 보고, 여러 사료들도 이렇게 찾아보고 하면서, 그냥 한마디로 딱 느낌이 어떠냐 하면요. 그냥 투신하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이 <>라고 하는 거 일체 없고, 그냥 우리 민족과 우리 국가를 위해서 그냥 투신하신 분이다, 그렇게 보여집니다. 너무 행장이 잘 보이지 않고 그러셨는데, 일심교라고 하는 거를 만드셔서 일심회를 하셨다 그래요.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스님이 지리산 영원사에서 계셨었는데 그때에 스님이 강백이셨어요. 말하자면 저도 강사지만, 저처럼 그냥 공부하셨던 스님이었던 거예요. 근데 일제시대 때 스님께서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셨어요. 그것이 우리 땅에 있는,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께서 모든 스님들은 다 나와라. 생명을 구제하라. 살아있는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 우리나라의 모든 이 백성들을 이렇게 포악하게 살생을 하러 온 저 왜적을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생명을 구제해야 되니 나와라.”라고 하는 그런 방문을 날리셔서 사병 대사를 비롯해서 모든 분들이 한꺼번에 의승병이 돼서 나오셨단 말이죠. 그것처럼 그냥 정말 공부 잘하시고 훌륭하신 스님이, 선원장도 하시고 조실도 하시고 이러셨던 분이 갑자기 이렇게 나오셨던 거는 완전한 보살행이다. 보살행이라 생각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스님께서 청주의 용화사에 계실 때 화엄경을 보시다가, 화엄경의 대의가 통만법명일심(通萬法明一心), -여러분 많이 아시죠?- 통만법명일심이라는 구절을 보시고, -만법을 통설해서 일심을 밝힌다. 화엄경의 종지가 그거다.- 이 구절을 딱 보시면서 생각하신 게 그러네. 일심을 가지고 우리가 독립운동을 하면 우리가 해방이 될 수 있겠구나바로 그 생각을 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일심 그러면, 불교는 모든 사상이 일심 사상인데, 대승기신론에도 일심이문(一心二門)이 있고, 일심 만법귀일(萬法歸一)도 있고, 모든 게 다 있잖아요. 근데 화엄경의 종지를 보시고 일심교 일심회를 만드셨다 그러니까, 스님에게는 화엄 사상이 일단 기본이 있으셨다. 그러면 스님이 그렇게 구국의 활동을 하신 건 전부 화엄의 보살행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그러니까 스님께서는 감옥에 계시다가 밖에 나오시게 되면 바로 그냥 독립운동 바로 하세요. 그러니까 여러분 저기 아시죠? 용산에서 출발하는 그 열차에 대한독립 만세를 써가지고 그냥 그걸로 의사를 하는 겁니다, 무조건 잡히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때 같이 동참했던 박수남이라는 분이 계세요. 이분이 그때 그쪽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그냥 일반인이라고 봐야죠. 근데 그분이 그 일로 스님하고 잡혀서 같이 일본 감옥에 들어갔는데, 고문을 받고 10개월 만에 그 다음 해 돌아가셨어요. 얼마나 심한 고문을 받았으면. 그러니까 요즘이야 감옥이 인권이 있고 하지만, 그때 일제시대 때 상상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스님이 26개월 서대문 형무소에 계시다가 출소하시자마자 바로 또 독립운동을 하세요. 바로 만주에 독립 자금을 보내셔서 체포되셔가지고 결국은 청주교도소에서 1944년 광복을 한 해 앞두고 629일 날 순국하셨어요. 입적하셨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까 1944년에 입적하신 독립투사들이 많이 계세요. 만해 한용운 스님이, 참 이게 우연인가요? 한 살 차이가 나시는데, 만해 한용운 스님이 한 살 적어요, 초월 스님에 비해서. 똑같은 날 입적하셨어요. 1944629. 그래서 저기 백담산을 비롯해서 말이죠, 그때 추모재 합니다. 만해 한용운스님을. 이제 그 우리가 자료를 찾으면 좋겠는데 민족 독립 33, 거기에 백초월 스님을 넣으려고 했다라고 하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이제 우리가 이런 자료들을 찾아내서, 김광식 교수님 말씀하셨듯이, 용성 스님, 만해 스님이 민족대표 33인에 우리 불교계로 들어가 계신데, 백초월 스님은 정말 그 이상의 치열하게 정말 몸을 사리지 않으시고 투신하셨다. 몸을 그냥 던지신 분이신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정말 그야말로 스님의 이 정신이 이제 세상에 빛을 발하는 시절이 왔습니다.
        문화총림 우리 진관사에 스님께서 많이 계셨대요. 마포 포교당에 있었는데 거기 왔다 갔다 하시면서 경전에 아주 잘 통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 동국대 전신인 중앙학림에서, -명진학교 중앙 이렇게 불렀잖아요,- 그때 스님을 대표 강사로 초청을 하셨는데 영원사에서 불이 나서 못 가셨다 그래요. 그다음에 박한영 스님이 그 길을 가신 거예요. 그러니까 최고의 강백이셨던 거라고 보여집니다. 그런 분이셨는데 스님께서 이런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걸 보면 정말 거룩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여담을 하나 하자면요. 이순신 장군의 3부작 영화가 있죠. 명량 그다음에 한산, 노량이라고 이 영화 삼부작이 있는데, 우리나라 역대 최고 관객이 들어간 1700만 명이 넘은 영화가 명량이에요. 명량대첩. 그 감독님인 김한민 감독님이 불자라는 거예요. 저를 만나고 싶다고 그래서 한번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순신 장군 3부작이 끝났으니까, 이제 새로운 영화를 만드시고 뭐 해야 되는데, 제 유튜브도 보시고 하셨대요. 그래서 저 만났는데 한 10년을 이순신 장군 영화를 찍으면서, 이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같은 걸 보면서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살고 계셨고 어떻게 했느냐 이 행간의 의미까지 정말 보게 되더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이죠. 굉장히 중요한 얘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그분이 불자인데, 여러분, 명량에 보면 그 스님들 승병 나오셨던 게 보여요. 불자이시기 때문에 그러셨던 거에요. 근데 여러분 최근에 남해를요, 이순신해라고 병기하는 운동이 벌어졌어요. 그래서 여러분 서명하실 수 있어요. 그 사이트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회에서 법안을 내서 그렇게 하도록 하는 걸로 지금 진행 중이에요.

       이 단편적인 예, 여러분 우리 오늘 출범한 백초월 선양회가 이제 이런 일을 해야 됩니다. 모든 분에게 알려야 돼요. 모든 전 국민에게 알 수 있도록 알려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서해라고 부르는데 그게 공식 명칭이 될 수가 없대요. 중국에서 봤을 때는 동해니까 그래서 황해라고 한답니다. 그다음에 이제 우리 지금 동해라고 하는데, 일본 사람은 일본해라 그래요. 그렇죠? 독도가 자기 것이라 그러고. 여러분, 남해는 이순신 장군이 안 간 데가 없는 거죠. 그죠? 그래서 <전체를 그냥 이순신 해라고 이름을 붙이자> 이런 운동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굉장히 좋은 거 아니겠어요? 이제 앞으로 우리도 백초월 스님에 대한 이런 부분들을 연구를 좀 많이 해야 될 거라고 봅니다.
       여러분 제가 김한민 감독님한테, 너무 연구를 많이 하셔가지고, 들은 얘기가 있어요. 뭐라 그랬냐면, 여러분 그 영화 보셨습니까? 노량이라는 영화 보시면 그 뒤에, 저도 감독님을 만나게 돼서 영화를 못 보다가 봤어요. 노량에 보면 이순신 장군과 마지막으로 싸워서 전사하실 때 그 나오는 인물이 백윤식 배우가 연기를 했는데 말이죠, 시마즈 요시히로라고 나와요. 여러분 우리가 가토 기요마사 그다음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많이 아는데, 시마즈 요시히로는 잘 모르는데, 이 사람하고 마지막으로 이제 전쟁을 한 거예요. 이 사람이 뭐냐 하면, 우리가 이순신 장군이 종군을 하고 전쟁에 못 나가는 동안 우리 해군이 완전히 초토화가 돼요, -칠천량에서 그랬죠.- 초토화가 될 때 이긴 장군이라는 거예요. 근데 이 장군이 이순신 장군과 노량해전에서 너무 많은 피해를 입고 돌아가는 바람에 일본 역사가 바뀌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 밑에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이런 자기 군사들이 있는데, 그중에 핵심 중에 하나가 시마즈였는데, 너무나 많은 피해를 입고 가다 보니까,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전쟁에서 지게 돼서 도쿠가와 막부 에도 시대가 열렸다는 거에요. 근데 시마즈가 가서 사쓰마 현에서 다시 살아나는 기운이 일제시대 메이지 유신을 하면서 일제를 만들어 낸 거예요. 정한론. 한국을 정벌하자. 우리가 그때 못하고 왔으니까 다시 가자, 이렇게 해서 그게 만들어졌고, 시마즈가 있었던 그 지역이 아베 수상의 지역구였대요. 그러니까 혐한이라든지, 한국을 정벌하자라든지 그런 것들이 거기서 이어지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이 그렇게 혼을 내줬으면, 국가가 가서 큐슈 정도는 우리 걸로 한다 하든지, 또는 이제 다시는 침입을 못하게 한다는 걸 받는다든지, 이런 부분들을 정확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걸 못하고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면서 우리가 다시 침입을 받는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는 굉장히 강렬한 자각을 지금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예전에 조선통신사 기록을 봤는데, 일본에서 유교가, 성리학이 발전을 하다가 중간에 막혀요. 막혀서 이해를 잘 못 하고 있을 때 퇴계 선생의 글을 보고 이해가 됐다 그래가지고 굉장히 열심히 성리학을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조선에서 통신사가 가면 그 사람들이 이제 막 공부했던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갔다 와서 임금에게 뭐라고 얘기하냐면, “저 야만적인 무력만 쓸 줄 아는 저 왜놈들이 이제 정신을 좀 차렸나 봅니다. 공부를 좀 하는 것 같아요. 이제 우리 쳐들어올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수준이 그래요. 너무 안일한 거죠. 아베의 할아버지가 조선 마지막 총독이었던 거 아시죠? 다시 이 땅에 우리에게 반드시 온다 그랬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땅을 왜 이렇게 노립니까? 우리는 일본에 쳐들어갈 마음이 없는데. 우리 땅이 너무 좋아요. 우리 땅이 너무 좋아요. 여러분 북한산 가보셨어요? 저런 바위산이 어디 있습니까? 전 세계에. 앉아만 있어도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저런 땅이 없어요. 일본은 그냥 묘를 쓰고 나면 도시혈이라고 해서 그래서 그냥 관이 떠내려가잖아요. 땅이 움직이는데. 그래서 다 화장하고. 우리 땅처럼 이렇게 좋은 땅이 없어요. 금수강산이에요. 그래서 늘 우리 땅을 다들 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걸 잘 지켜내야 되는데, 그러려면 정신이 살아있어야 되고,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지금 우리가 말이죠. 제가 요즘 한국학 에세이를 많이 썼는데 그랬습니다. 전 세계는 말이죠, 무력과 폭력의 역사였어요. 지배하고, 전체주의 식민지 만들고 이걸로만 그냥 전 세계 패권을 유지하면서 살아왔는데요. 이제는 무력의 시대는 끝났다. 물력의 시대가 왔다. 조선시대 때는 무를 숭상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문이 약했어요. 문약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서 이만큼 국가가 발전했으면 그다음에 국방력이 있는 상황에서 문화로 가는 거죠. 문화. 문화의 힘으로 전 세계에 지금 우리가 한류라고 하는 엄청난 그런 상황을 보이고 있잖아요. 거기에 첨병 역할을 하는 곳이 여러분 진관사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우리 김광식 교수님이 건국훈장도 추서하고 그다음에 태극기 기념관도 만든다고 하시는데, 다음에 불자이신 영화 감독님을 보면, 백초월 스님 영화 좀 만들자고 하면 좋겠어요. 세상에서 책이나 이 정도 가지고는 이렇게 선양이 많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앞으로 여기에 진관사에 딱 보시다가 어느 감독님 오셨다 그러면, 빨리 어른 스님께 모시고 가서 영화 만들자고 해서 전 국민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분 전 국민이 알아야 돼요. 그리고 실제로 너무나 안 알려지셨던 어른이고 정신이 위대하다. 그러니까 그런 부분을 우리가 한번 생각을 해봐야 되겠습니다.

       굉장히 상징적입니다.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이렇게 그렸다는 거는 마치 말이죠, 주역에서 무극이 태극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무극이라고 하는 건 원상 하나만 있는 거예요. 원상 하나만 있는데 이게 태극이 됐다는 건 음양이 갈라졌는데 이 태극이 반으로 그냥 잘라진 것이 아니라 서로 갈마들고 있죠. 그다음에 상극인 것 같지만 상생하고 있단 말이죠. 이 세상의 모든 건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 몸도 그렇고, 우리 마음도 그렇고, 항상 음양을 왔다 갔다 하고 있죠. 그래서 이 음양이라는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음양이라는 세계를 벗어나는 세계가 바로 이게 도의 세계라 그래요. 그러니까 여기 진관 스님 계실 때 국수 먹으러 많이 오셨던 우리 탄허 스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유불(儒佛)을 회통해서 태극을 깨닫는 것을 각이라 한다그러셨어요. “태극을 깨닫는 걸 깨달음이라 그러고. 태극이 뭔지 아는 걸 깨달음이라그랬어요. “음양인 것 같은데 세상의 모든 게 다 갈라져 있어요. 세상의 모든 게 결국 이분법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는 사유를 하는데, 그것이 결국 둘이 아니라 궁극적인 하나라고 하는 걸 아는 것, 태극을 아는 것을 각이라 한다.”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일본이라고 하는 일장기 안에 태극을 다시 그렸고 괘를 그렸다고 하는 거는 원리적으로만 있는 도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등장시켰다, 이런 의미를 가지는 거죠. 여러분, 우리 한국의 태극기가 전 세계 국기 중에 제일 어려운 것 중에 하나예요. 이 태극기라는 걸 깨닫는 거예요. 이만큼 힘든 그런 진리가 있으나 이건 엄연한 완벽한 진리다. 그다음에 이 태극기라고 하는 걸 봤을 때 우리 국민들 모두 그렇고 우리 진관사의 신도분들도 그렇고 다 그러실 겁니다. 가슴이 뭉클하죠.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래서 초월 스님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고 계신 것 같아요. 우리 한국이요, 위기에 강합니다. 위기에 강한데, 위기에만 강해서 되겠습니까? 위기 아닐 때 우리가 정말 제정신을 차리고 정말 방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이제 전 세계의 문화의 중심이 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이제 한국을 알기 시작을 했는데요. 지금 10, 20, 30대까지 한류라고 하는 걸 통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익히고, 한국에 찾아오기도 하고, 이렇게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는데, 이것이 그냥 그냥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 사람들이 앞으로 40, 50, 60대가 되면 그 나라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 않겠어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나라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다 한국을 잘 아는 사람, 한국어로 된 노래를 들어봤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제 전 세계 대통령도 하고, 장관도 하고 이러는 시대가 앞으로 올 거예요. 그런다고 했을 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모르고, 우리의 민족혼 그다음에 우리의 어떤 한국의 정신을 모른다고 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제 이 백초월 스님이라고 하는 분에 대해서는 우리의 궁극적인 어떤 한국 문화의 정점으로 발전시킬 생각을 해야 되고요. 스님의 사상이나 이런 것들을 발굴을 많이 해내고, 그다음에 선양도 많이 하고, 그리고 그와 아울러 이 진관사에 왔을 때 정말 이런 곳이 한국이구나, 한국이 원래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하는 걸 알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조선 유학을 연구하다가 그냥 출가했어요. 조선 유학 공부. 너무 성리학 공부하다가 그냥 출가했어요. 여러분, 좀 답답했어요. 동인, 서인 나눠져 있다고요. 동인이 남인과 북인이 되고, 서인이 노론, 소론이 됐어요. 그래서 서로 토론하는 거 너무 좋죠. 의견이 갈라질 수밖에 없죠. 마치 말이죠, 무극이 태극됐다가, 태극이 양의가 돼서 음양이 됐다가 음양이 사상이 됐는데, 지금 모든 세상의 세부 분열도 이와 같이 하잖아요. 그건 당연한 일인데 항상 근본을 생각해야죠. 근본은 일심이에요. 백초월 스님이 일심 사상이야. 나는 앞으로 이제 이걸 일심 사상이라고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독립을 일심으로 하면 독립이 되겠구나, 독립 운동을 하셨던 것은 우리가 이런 좋은 땅을 유지하려면 일심이 돼야 된다는 메시지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이죠, 서로 서로 싸우다가 조선 말이 되면 또 나눠져서 싸웠어요. 여러분, 아관파천 후는 친러파잖아요. 그죠. 임오군란이 일어나니까 그냥 청나라 데려와서 친청파잖아요. 서재필이나 이런 분들은 또 친미파잖아요. 김옥균이나 이런 분들은 갑신정변을 일본을 등에 업고 친일을 했잖아요근데 우리 자체가 더 중요한 거죠. 우리 한국인이 아무리 서로 토론을 하고 의견이 분분해도, 궁극적인 목적은 같은 한국이 하나 되기 위한 거에 궁극적인 방점이 달려야 되는데, 어느 나라를 등에 업고, 나는 저 사람 되는 거는 못 보겠다, 이런 거는 문제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지금 예를 들면 아까 여기 정치하셨던 국회의원분들 많이 오셨는데 그런 거잖아요. 여러분 친A, A 이런 거 있잖아요. 친박, 비박, 친문, 비문 하듯이 이런 것들은 여러분 조선조에 있었던 우리의 문제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증거예요. 그렇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결국은 태극기 하나에 다 어울러 있듯이, 그다음에 일심으로 화합이 돼 있듯이, 그러지 않으면 또 위기가 온다는 메시지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너무나 많이 봤는데, 임진왜란 때도 봤고, 병자호란 때도 봤고, 그다음에 일제도 봤고, 그래서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구하고, 이렇게 해서 많은 국민들이, 백성들이 희생을 하고 해서, 지금 이렇게 꿋꿋하게 살아왔던 그 우리의 힘으로, 이제 한류라고 하는 걸 전 세계에 알리면서 한국이 이만큼까지 왔습니다.

        근데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이러한 메시지를 역사에 우리 교훈들하고 새겨서 화합해야 됩니다. 저도 한국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가장 안타까운 게 이분으로 나눠진 분열을 화합으로 만들어주는 원효의 화쟁, 회통, 그다음에 초월 스님의 일심 사상 이런 것이 앞으로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한국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제 이걸 잘 해서 보여줘야 됩니다. 탄허 스님이 그러셨어요. 진관사에 자주 오셨던 탄허 스님이 한국인이 하면 전 세계가 앞으로 따라한다. 대학생이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일어나서 정권이 바뀐 건 전 세계에 없었다. 우리 한국에서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그걸 따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됐어요. 그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바로 한국의 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앞으로 화합해야 된다. 화쟁해야 된다. 일심으로 나아가야 되겠다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여러분 평상시에 늘 3.1절이 되고, 광복절이 되면 태극기를 달고 했는데, 저는 작년에 받아온 이 진관사 태극기를, -작년에는 조금 더 컸어요. 그렇죠. 종이가 더 컸습니다.- 저는 방에 부처님 옆에 딱 모셔놓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하여튼 민족주의가 좋아요. 근데 한국은 이 민족주의라는 게 단순한 국뽕이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입해서 거기를 빼앗고 하는 그런 욕망이 없어요. 일본한테 그 정도 당하고 나면 말이죠, 어린애가 딱 그 역사책을 보고 나면 저는 일본에 가서 총독을 한번 하겠습니다.” 이런 애가 나와야 되는데, 그런 사람 한 명도 없어요. 제가 아무리 만나봐도. 우리 땅이 그만큼 좋고, 평화를 사랑하고, 우리 한국인의 어떤 심성이 그러한가 봅니다. 대신에 다시는 이와 같은, 우리가 외세도 막아야 되겠지만, 우리 안의 분열로 인해서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되겠다. 그것이 우리의 한국 정신으로서 일심의 정신으로 한번 피어나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갑자기 김한민 감독이 저를 다시 한 번 부르면, 이 진관사에 한번 모시고 와가지고 좀 발심을 하게 만들어야 되겠다. 천만 관객이 한번 이걸 관심을 가지게 좀 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이렇게 위대한 정신을 많이 알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하여튼 우리 원력을 세워가지고 이제 진관사에서 이렇게 백초월 스님 선양회가 발족을 했으니까,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새롭게 초월 스님을 알리고, 스님의 독립 정신을 알리고, 진관사 태극기를 이제 다시 한 번 우리 국민들에게 아주 새롭게 선사하는 그런 시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저도 역시 앞으로 초월 스님의 연구를 잘하고, 한국이 위대한 정말 정신의 문명으로 우뚝 서는 날까지 더 열심히 연구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진 : 은평구의회 박정묵주임님 / 진관사 청년법회 김명재법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