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49재] 3월 29일 49재 법문 2024-03-29

       마하반야바라밀 반갑습니다. 오늘 영가님의 49재를 맞이해서 하늘에서도 그간의 어머니가 주셨던 사랑만큼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49재인 만큼 우선 어머니를 위해서 다 함께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좀 갖고자 합니다. 합장을 하시고요. 지금 게송은 어머니에게 전해주는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제행은 무상이요 생자는 필멸이라

태어났다 죽는 것은 모든 생명 이치이니

임금으로 태어나서 온 천하를 호령해도

결국에는 죽는 것을 영가님은 모르는가

영가시여 어디에서 이 세상에 오셨다가

가신다니 가시는 곳 어디인 줄 아시는가

태어났다 죽는 것은 중생계의 흐름이라

이곳에서 가시면은 저세상에 태어나니

오는 듯이 가시옵고 가는 듯이 오신다면

이 육신의 마지막을 걱정할 것 없잖는가

일가친척 많이 있고 부귀영화 높았어도

죽는 길엔 누구 하나 힘이 되지 못한다네

맺고 쌓은 모든 감정 가시는 길 짐 되오니

염불하는 인연으로 남김없이 놓으소서

 

49재를 맞이해서 우리 어머님이 극락왕생하셨으면 하는 그런 우리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어머니에게 그 마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어디 갈 때 짐이 많으면 옮기기가 힘들 듯이, 돌아가신 분이 좋은 곳에 안락하게 가는 데 있어서 제일 힘든 건 아마도 내가 이생에 와서 인연 맺어서 또 같이 살았던 아들, , 또 며느리, 손자, 또 손녀, 아마 가장 마음에 밟히는 것이 그런 친족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들을 좀 내려놓고 좀 가벼운 마음으로 더 좋은 세상에 인연 맺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49재를 봉행을 해서 그 마음을 기립니다.

 

       어떻게 보면 49재는 돌아가신 어머니보다는 살아있는 우리들의 마음들을 좀 더 편안하고, 또 그리움들을 좀 더 아프고 또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어머니하고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서 모십니다. <기억은 역사다>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이 어머니와 우리 가족들의 가정사의 한 부분일 겁니다. 오늘 이제 비가 자분자분 내리는데 이 빗물이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만큼의 의미가 있을 것이고, 저는 이 그리움의 빗물이 또 어떻게 보면 그동안에 어머니하고 조금이라도 서운한 게 있다면, 조금 나쁜 게 있다면 그것을 씻어내는 그러한 빗물의 의미도 또 있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고, 또 봄의 빗물은 다른 때와 다르게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하고 성장하고 자라게 하는 그런 힘이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 49재를 통해서 좀 더 성숙한 인연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 같고, 또 어머니는 좀 더 좋은 세계로 갈 수 있는 그런 그립지만, 축복의 비가 세 번째 의미로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옛날에 부처님께서 아난존자하고 길을 가는데 갑자기 부처님께서 뼈 무덤을 보고 절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20년 넘게 부처님을 시봉했던 아난존자 입장에서는 깜짝 놀랐죠. 왜냐하면 부처님은 위대한 스승이고 또 사생의 자부(四生慈父)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근데 그런 분이 아주 남루한 그 초라한 뼈 무덤에 절을 하니까 아난이 웃습니다. “어떠한 연고로, 어떠한 인연으로 그 뼈 무덤에 그렇게 간절하게 절을 하십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묻습니다. “이 뼈가 남자 뼈이겠느냐, 여자 뼈이겠느냐?” 이렇게 물어봐요. 그러니까 이제 아난존자가 어찌 뼈만 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이 뼈 무덤은 여자의 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잖아요. “어떻게 아느냐?” 그러니까 남자의 뼈는 희고 무거울 것이며, 여자의 뼈는 검고도 가벼울 거다. 왜 그런고 하면은 아기를 한 번 낳을 때마다 여덟 섬 너 말의 피를 흘리고, 또 아기를 어느 정도 양육할 때까지 모든 본인의 영양분을 전달해 주기 때문에, 또 열 달 동안 품어서도 본인의 모든 걸 주기 때문에 그 뼈가 검고도 가볍다.” 그렇게 부처님께서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지중한지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무릎을 꿇고 그 수미산이 닳도록 오르락 내리락 해도 그 부모의 은혜는 다 갚을 수가 없다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은혜 특히 어머니의 은혜는 우리가 이생에 올 수 있는 그런 인연을 주신 거기 때문에, 부모의 은혜는 참 지중하죠. 근데 살아있을 때는 알면서도, 모르는 건 아닌데, 알면서도 잘 되뇔 수 없는 그런 망각의 시간들을 우리가 보냅니다. 근데 그게 절실해지는 게 돌아가시고 한 달이 지고, 두 달이 지고, 49재가 지나고 나서, 100일째가 되면 그 그리움이라는 게 또 잘해줬던 것보다는 못 해줬던 게 생각이 나서 마음이 너무 아려오죠. 우리가 이제 옛날 어른들이 이렇게 3년 탈상한 것도, 이렇게 49재를 지내고 7번을 지냈잖아요, 그리고 100일째 한 번 더 지내고, 그리고 1년째 한 번 더 지내고, 3년째 한 번 더 지낸 게 이게 10번이에요. 시황에 해당되는 건데 그러면서 우리가 적어도 3년은 지나야 우리의 마음도 수순해지고 또 그때 우리 마음도 좀 더 정리된다. 아마 그런 의미에서 옛날에 어른들은 3년간 그렇게 모셨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뭐 워낙 세월이 빠르다 보니까.

 

       부처님께서 이제 80세에 입멸하셨잖아요. 저번 주 일요일이 이제 열반재일이었는데, 부처님께서 이제 입적하신, 적멸에 드신, 불교 용어로 말하면 반열반에 드신 그런 날이기도 합니다. 열반재일 그러죠. 부처님도 열반하실 때가 돼서 그 숲속에 머리를 북측에 두고 오른쪽으로 누워가지고 마지막 입멸의 순간을 맞이하십니다. 부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었냐면, 부처님 칭찬 한마디를 하고 가면, 아난다가 왜 이렇게 허름한 숲속에 누워서, -그게 이제 구시나라의 사라쌍수 밑이죠.- 많은 대중이 모여 있는 데도 있고, 왕궁도 있고, 좋은 환경이 많은데, 왜 이 초라한 나무 두 그루 사이에서 입멸을 하십니까?” 이러니까, 부처님께서 그런 말 하지 말아라. 나중에 이곳이 큰 성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그게 현재 열반당에 있는 장소입니다. 구시나라의. 그러면서 말씀을 더 하시기를, “내가 왕궁에 들어가서 입멸을 하게 되면, 이생의 인연을 다하게 되면, 지위가 높은 사람은 나를 보러 올 수 있겠지만, 지위가 높지 않은 사람은 나를 보러 올 수가 없다.” 그러면서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지금 모든 사람에게 알려서 마지막 나에게 궁금한 것을 물으라 해라. 나를 마지막 보고 싶은 사람은 오도록 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게 소문이 나가지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 구시나국의 사라쌍수 근처에 모이게 되는 거죠. 그 제자들도 이제 많이 모여 있고, 그러니까 제자들은 얼마나 그 마음이, 본인이 그렇게 마음으로 영적으로, 이렇게 마음을 다해서 의지했던 귀했던 분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러고 있는데 이제 아난다가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이제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면 우리는 누구에게 공양을 해야 됩니까? 그동안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서 공덕을 짓기도 하고, 흔연한 마음도 생기고, 또 법의 그런 환희심이라 법열이라 그러는데 그런 것도 느끼고 했는데, 이제는 부처님이 안 계시니 누구한테 해야 됩니까?” 우리도 그렇죠. 어머니 살아계실 때는 어머니하고 같이 외식을 해서 맛있는 걸 먹는다든가, 어머니하고 외출을 해가지고 고운 옷을 사드려서 아주 곱디 고운 그런 자태를 볼 때 마음이 기쁘죠. 근데 어머님이 이제 사대가 모두 흩어져서 안 계신단 말이에요. 그런 그때 부처님의 제자들도 그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누구한테, 이제는 부처님 안 계시는데, 어떻게 공양을 짓고 어떻게 공덕을 지어야 됩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걱정하지 말아라. 나한테 공양을 하는 것과 똑같은 공덕이 있는 4가지가 있는데, 4가지를 잘 공양하면 마치 여래를 공양하는 것처럼 그 공덕이 수승하고 그 마음의 복이 충만할 거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아마도 지금 드릴 말씀, 이렇게 네 가지 공양을 그중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잘 선택을 해서 내가 실천한다면, 그거야말로 어머니에게 공양 올리는, 그래서 그 공덕으로 어머니도 좋은 세상에 가고, 또 내가 이생의 인연이 되는 그 순간까지 장애 없이 막힘없이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가 뭐냐 그러면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겁니다. 우리는 이제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배를 굶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 도반이 있는데, -도반이 친구예요. 같이 스님 생활하는 친군데, 도반인데,- 이 친구는 매일 아침마다 새벽 4시면은 빵, 우유, 사과 이렇게 해가지고 종로 일대를 돌아요. 종로 일대를. 길거리에서 집을 잃어버리고, 끼니를 잘 못 채우는 분들을 새벽마다 찾아다녀요. 그 스님에게는 그 아침에 종로를 도는 게 새벽 예불이에요. 그리고 만나는 사람은 다 부처님처럼 대하는 거. 다 자고 있으니까 먹을 걸 놓고 합장을 탁 하고 물러나고. 그러는 도반이지만, 내가 아주 존경하는 도반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인연을 맺어서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더하고 하는 것. 그것이 이제 첫 번째로 끼니를 굶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공양하는 것, 그것은 어머니를 공양하는 것 같은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두 번째로는 아픈 사람에게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계에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의학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해도 병원은 항상 만원이잖아요. 그리고 작은 병, 큰 병으로 시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인간이 이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병이 404가지나 된다고 그래요. 사대에서 한 대마다 101가지의 병이 있으니까 404가지, 404가지의 병이 있다, 그렇게 이제 얘기를 하는데, 얼마나 많은 아픈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가끔씩 가서 봉사도 하고 위로도 해주고 하는 것. 그것이 공양이고, 그것이 어머니에게 공양하는 것이고, 그리고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 공양이라고 하는 거는 평소에 그런 마음들을 지어야 되는 거예요. <마음을 짓다>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세상에는 이 짓다라고 하는 용어가 있는데 여기에는 집을 짓다, 여러 가지 옷을 짓다 그러죠. 여기는 마음이라고 하는 게 포함돼 있는 거예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평소에 잘 짓는 것, 밥을 짓다 그러죠. 밥을 짓는 것도 마음이 빠져버리면 설어버려요. 그래서 마음을 잘 짓는 거, 평소에, 그게 공양입니다. 내가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마음을 더 해야지, 아픈 사람에게 가서 내가 한번 아픈 거를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행동을 실천을 해야지.

       그리고 세 번째는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을 도와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내가 공덕을 짓는 일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우리가 이제 평소에 그런 마음을 잘 지어야 되겠죠. 외로운 사람을 돕기 위해서, 잘 위로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됩니다. 그게 보통 사찰에서, 우리 마음의 정원 진관사도 보면은 이 세 가지 일을 다 하죠. 세 가지 일을 다 합니다. 지역사회에 활동을 통해서 다 하죠.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가 뭐냐 그러면, 바르게 수행하는, 바르게 수행하는 수행자들을 잘 공양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그것이 최상의 공덕이다.
       이 네 가지를 잘 실천하는 것이, 네 가지 전부 다 수승하지만 이 중에 한 가지라도, 어머니가 가시고 49재가 됐으니, 100일 안에, 내지는 1년 안에, 3년 안에 이 중에 한 가지라도 실천하면 그 마음이 오롯하게 어머니에게 전달되고, 그 어머니는 흔연한 마음으로 또 가벼운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좋은 세계에 인연 맺고, 또 다시 우리 곁에 모습은 다를지언정 좋은 마음의 씨앗을 가지고 우리 곁에 올 거다. 저는 그거를 확신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49재를 거룩하게 이렇게 봉행하는 그 공덕으로, 어머니가 우리 곁에 분명히 오시는데, 더 좋은 마음, 더 좋은 복락을 가지고, 우리를 도와주는 인연으로 오실 거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중요한데, 마지막으로 이거는 꼭 해야 됩니다. 뭘 해야 되냐 그러면, 어머니의 후손들이 본인의 마음을 관찰하는 연습을 오늘부터 해야 돼요. 본인의 마음에 거울을 만들어서, 그 거울에 남편도, 자식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니고, 본인의 얼굴을 비춰보는 연습을 해야 돼요. 근데 우리는 일생동안 마음의 거울에 맨날 남의 얼굴만 비쳤어요. 잘한다, 못한다. 그러니까 마음이 점점점 걸어지고 거칠어지고 울퉁불퉁해지고, 때로는 마음에 뾰루지도 나고 곪기도 하고 그러다 어떻게 돼요? 터져요. 그러니 그거를 방지하려면, 오늘부터는 내 마음의 거울을 만들어서, 그 거울에 자신을 잘 비추는 거예요. 그래서 나를 자꾸 보는 연습을 하면, 그리고 그 보이는 내 모습에 내가 스스로가 자꾸 칭찬하고 잘하고 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네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실천하는 것이 어머니를 도와주는 거다, 그런 생각을 지어야 되고, 마음을 지어야 되고, 또 하나는 그 비춰진 그 본인의 모습으로 형제 간에 특히 직계 형제 간에 다툼을 하면 절대로 안 돼요. 다툼을 하면. 혹여라도 서운한 게 있고 또 마음에 맺힌 게 있다 하더라도, 이걸 통해서 다 풀어야 됩니다.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얘기하는데, 반대로 조상님이 좋은 데를, 우리 선망 부모들이 좋은 데를 못 가는 이유는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자꾸 다투기 때문에 그래요. 이거는 철없을 때는 몰랐는데, 자식을 키우고 나도 이제 제 아들, 딸도 있고 손자, 손녀가 있는 나이쯤 되면 그걸 알아요. 근데 그걸 아는데 이미 그때 되면 마음의 연습을 안 해가지고 마음이 이렇게 좁아져가지고, 마음의 문이, 아는데 이해가 안 돼요,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요. 알긴 아는데. 그래서 지금 말씀드렸던 연습은, 마지막에 마음의 거울을 만들어서 그 마음의 거울에 나를 자꾸 비춰보라고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가 나이가 먹을수록 마음이 넉넉해지고 여유 있어지고 커져야 되는데, 그걸 안 하니까 마음이 밴댕이 소갈딱지가 돼가지고, 밴댕이 속이 밴댕이도 작은데 밴댕이 속은 얼마나 작아요, 거기다 딱지예요. 얼마나 작겠어요?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같은 형제들끼리도 요만한 게 실수하거나 요만한 게 마음에 안 들어도 용서가 안 돼, 용납이 안 돼,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자, 이제는 어머니를 보내드릴 시간입니다. 이제 눈물이 아니고, 슬픔이 아니고, 이제는 우리 기존보다 더 좋은 인연으로 좋은 마음에 그런 복덕의 종자를 안고 우리를 도와주러 올 어머니를 위해서 극락왕생을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고 발원하고 그것이 진정한 어머니에 대한 천도입니다. 이제 슬픔의 눈물을 닦고, 그리움의 눈물도 닦고, 이제 축원의 눈물, 그리고 우리 발심의 그런 눈물로, 발원의 눈물로, 어머니가 좀 더 좋은 세상에 편안하게 계시다가 정말 큰 복덕, 공양을 가지고 우리 곁에 다시 오시라는 믿음을 갖고 천도하시기를 발원하면서, 오늘 말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