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입춘기도]2월 4일 입춘기도 회향 법문 2023-02-04

 

       안녕하십니까. 계묘년 입춘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진관사 계묘년 입춘 법문입니다. 입춘은 <봄맞이, 복 맞이, 봄을 맞이하고 복을 맞이한다> 그런 의미거든요.

       봄을 맞이해서 복을 부르는 행사를 어떻게 하냐. 첫째는 온 집안을 청소를 하죠. 그리고 입춘송을 붙여요. 그리고 음식을 해서 먹고. 옛날에는 남자들 중심 문화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술을 마시고, 여성들은 술상을 보고. 그런 게 이제 어릴 때부터 봐왔던 입춘 맞이 행사입니다.

 

立春大吉(입춘대길)

새해의 새봄을 맞으니 많은 복 빠르게 오소라.

建陽多慶(건양다경)

새해의 새 햇살 맞으니 많은 복 빠르게 오소라.

天增歲月人增壽(천증세월인증수)

하늘에 세월이 불어나듯 사람의 수명도 불어나라.

春滿乾坤福滿家(춘만건곤복만가)

봄 햇살 천지에 가득하듯 만복이 집안에 가득하라.

 

       입춘을 맞이해서 복을 부르는 송이 많이 있지만, 맨날 보는 게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이거거든요. 그 입춘이라는 게 뭔가. 그 설 립자가 온다는 뜻이에요. 온다. 봄이 오니 그 길자가 그게 복이라는 뜻이에요. 길 복. 대복이라는 말인데, 한자는 그냥 명사가 형용사 서술어가 돼요. ‘큰 복이다그런 게 아니고 큰 복이 오라그런 말이거든요. <봄을 맞이해서 큰 복이 오십시오.> 그래서 입춘대길이고. 건양이라는 것도 세울 건자인데, 그것도 온다는 소리예요. 양은 햇빛이라는 뜻이죠. 봄 햇살, 따뜻한 햇살이 새해를 맞이해서 새롭게 다가오니, 그 밑에 이제 다경이라고, 많을 다자고 경사 경자인데, 그 경사 경자도 복이라는 소리예요, 복 경자예요. <많은 복이 오십시오>. <햇살을 맞으니, 봄 햇살을 맞으니, 많은 복이 오십시오> 이런 거거든요. 입춘대길 건양다경. 그래서 이것을 간단하게 번역을 하기를, <새해의 새봄을 맞으니 많은 복 빠르게 오소라.> 이건 시적인 용어인데, ‘오십시오하면 너무 건조하고 재미없잖아요. ‘오소라’, 가라는 말을 가소라오라는 말을 오소라, 좋아하십시오, 이 말을 좋으라. 이제 시에서 많이 쓰는 용어인데, 새해에 새봄을 맞으니 많은 복, 해 다 가서 오지 말고, 오늘부터 당장, 여름에 오거나 가을에 오거나 그러지 말고, 아주 오늘 당장 빠르게, 많은 복 빠르게 오소라. 또 건양다경도 <새해의 새 햇살 맞으니 많은 복 빠르게 오소라.>  새해의 새봄을 맞으니 많은 복 빠르게 오소라’. 새해의 새 햇살 맞으니 많은 복 빠르게 오소라.’ 거기에 모든 염원이 다 담겨 있어요. 복이 제일 좋잖아요.

       복이라는 건 좋은 게 다 복인데, 서경에서는 오복을 말했는데, 서경에서 말하는 오복이라는 게, (), 오래 사는 거. 근데 요새는 다 오래 살아서 장수 재앙이라는 말이 있어요. 장수가 재앙이다. 그래서 자녀들한테 부모가 몇 살 살기를 원하느냐?” 그러니까 “60대에 가셨으면 좋겠다.” 그래요. 이게 자녀가 생각하는 부모의 수명이에요. 왜 그러냐. 60 이상은 더이상 부모가 이룰 게 없다는 겁니다. 이룰 거 다 이루었다면 빨리 넘기고 가라. 그러면 본인이 생각하는 수명은 얼마냐. 최소한이 90이거든요. 최소한이. 80대에 가도 이거는 병으로 갔다. 수명으로 간 게 아니고, 명으로 간 게 아니고, 병으로 갔다. 조금 장수한다면 요새는 100세예요. 그렇죠. 보통 수명이 90이고 90전에 가면 명대로 다 못 살고 병에 의해서 간 걸로 이렇게 되거든요. 근데 요즘에는 그 수명도 원하는 수명이 있어요. 옛날처럼 적어도 60은 살아야 되고, 70 사는 거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 게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수명대로 가면 그게 장수예요. 자식이 생각할 때는 60만 살면 좋겠다. 이러는데 본인이 생각할 때는 90 정도만 살면 알맞겠다. 또 뭐 한 사람은 100세 더 살아도 좋다. 그러니까 본인이 부족함이 없이 사는 거를 수복이라고 할 수 있죠. 목숨 수자, 수복. 그다음에 부(). 이제 재산이 많은 게 부거든요. 이게 부복이에요. 수부. 강령(康寧), 건강한 게 이게 복이에요. 강령복. 이게 재산도 있고 오래 사는데 건강이 없으면 또 안 되잖아요. 호덕(好德)이라고 심복이 있는 게 그게 또 복이에요. 이게 덕성이 있어야지, 인성이 풍부해야지, 이게 사는데 복이 있지, 오래 살고 재산도 있고, 그리고 건강하고 그래도 인성이 안 갖춰지면 행복할 수가 없어요. 요즘에는 인성의 시대라, 요즘에는 실력의 시대가 아니고 인성의 시대, 실력은 다 있고, 엘리트라는 게 요새는 아니에요. 대중 시대예요. 그래서 대중 시대는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성공을 하지, 엘리트 자기 능력만 있고 대중의 관심을 못 받으면 절대로 성공할 수가 없어요. 대중 시대이기 때문에. 그럼 실력은 다 있는 거고, 그러면 대중 관심을 어떻게 받느냐. 인성이 좋아야 되거든요. 인성이. 그래서 요즘은 인성 시대지 엘리트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여전히 엘리트를 강조하고, 인성을 등한시해요. 그러면 그 아들이 반드시 실패해요. 이 대중의 인기, 대중의 선택을 못 받으면 대중문화, 대중사회, 대중이 취향이기 때문에, 요새 또 옳고 그른 게 아니라 취향이라는 게 있거든요. 대중이 어느 쪽으로 선택을 하느냐. 취향에 맞춰야 되고. 대중에 맞춰야 되고. 또 다 함께 살아가는 노력을 해야 성공을 하지, 자기 똑똑한 것만 가지면 절대 안 된다. 근데 이미 서경에서도 호덕, 좋은 덕이 넉넉하게 보이다, 그 얘기를 했어요, 이미. 오복 중에 호덕. 그다음에 요즘엔 조금 틀린데, 고종명(考終命)이라고, 죽을 고자가 있는데, 죽을 때 자기 명대로 생을 맞춰야 된다, 이게 고종명인데요. 뭔 소리냐. 옛날에는 호식이 많았어요. 호랑이한테 목숨을 잃는 거. 이렇게 재앙으로 하고, 갑자기 뭐 수중 사고가 난다든지, 갑자기 화재 사고가 난다든지, 그렇게 되면 복이 하나 없는 걸로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 죽음을 자기 명대로 죽고, 병으로 죽는 것도 고종명으로 본 거예요. 이병 치사, 병으로 치사한다든지 그래야지, 뜻밖에 사고를 당해서 가는 거는 고종명이 아니다.

 

       이래서 수부 강령 유호덕 고종명, 이걸 이제 오복으로 했는데, 불교는 온갖 복을 다 설명을 했어요. 그래서 백복이라는 말도 있어요. 백이라는 백자. 천복이라는 말도 있고, 만복이라는 말도 있어요. 백복, 천복, 만복. 그래서 여러 가지 복이 있는데, 이 오복 중에 숫자에 안 들어가는 복이 과거에 하나 있었는데, 오복 중에 치아가 좋은 게 오복의 하나다. 그런데 그건 속담이에요. 오복에 치아는 없어요. 그런데 나이 들어보니까, 이거 이가 좋은 게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딱딱한 거라도 마음대로 씹고 먹으면 그거 진짜. 그래서 아 이게 치아 좋은 걸 하나 더 넣든지 해야 되겠다. 이런 게 아주 중요해요.

 

       어쨌든 좋은 게 복이라고 해요. 좋은 게 복. 그래서 복과 수명은 항상 따라다니는 거고. 가만히 보니까 이게 같은 세월이라도 연령에 따라서 똑같지 않아요. 10대 때 보내는 10년 하고, 20대 때 보내는 10년 하고, 3010, 4010, 6010년이. 30, 40, 5010년 요게 진짜 수명이고, 60 넘어서부터 60, 70, 80, 70 넘어서 사는 거는 별로 사는 게 아니야 이게. 누가 뭐 만나자고를 하나, 누가 뭐 오라고 하나, 올까봐 겁나요. 칠십 먹은 사람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요. 찻집에를 가도 뭐 좋게 안 봐. 그래서 70 먹은 사람은 약속된 장소 외에는 가면 안 된다. 큰일 나요. 굉장히 무서워하고 경계를 해요. 왜 왔나. 큰일 나요. 더군다나 며느리한테 함부로 70 먹은 시어머니가 가면 큰일 나. 그거. 그 사전에, 열흘 전에, 일주일 전에, 약속을 하고 가야지, 아들도 함부로 만나자고하면 안 돼요. 왜 왔나. 무슨 일이지. 겁부터 낸다고. 그러니까 찾는 사람도 없고, 찾아갈 데도 없고, 뭘 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 이러니까 60대까지는 그런대로 버티는데 70 넘어서부터는 같은 십년이라도 전혀 틀려요. 3010년하고 7010년하고는 이거 같이 비교할 수가 없어요. 그 활동량이라든지,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업적을 볼 때. 그런데 70대 넘어서 8010년이라 이거는 뭐, 어떻게 지나가는지 그냥 번개같이 지나가고, 90 넘어서부터는 숨만 쉬면 수명이에요. 숨을 안 쉴 수가 없으니까 숨은 매일 쉬잖아요. 근데 그 하는 일을 기대할 수 없어요. 구십서부터. 그러니까 구십 넘어서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그냥 숨만 쉴 뿐이다. 그러니까 이게 수복이라는 게 몇 살까지 살아야 이게 수명의 복을 얻은 건가. 이거는 본인이 결정에 달린 거예요. 같은 숫자라도 그게 똑같은 게 절대로 아니에요. 그런데 여하튼 소년에 간다든지 중년에 간다든지 그런 거를 하면 안 되거든요. 40에 가는 걸 단명이라고 그랬어요, 옛날에. 40전에 가는 걸 다 요절이라 그래요, 요절. 빠르게 간다. 요절하고 단명하면 안 되니까, 적어도 50은 살아야 된다. 50이라면 단명이라고 안 하고, 그냥 보통으로 생각했거든요. 요즘으로 보면 적어도 60까지는 살아야 될 것 같아요. 60에는 할 일이 많아요. 60에서는 뭐 결혼도 다시 할 수 있다고 그래요, 60대는. 충분히 결혼할 수 있다고 그래, 60대는. 그러니까 뭐 할 일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요즘으로 보면 기본적으로 60대까지 사는 거는 적당한 수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거기에 이제 입춘송이 천증세월인증수(天增歲月人增壽), 하늘은 세월을 점점 불려가고 사람은 수명을 불려간다. 춘만건곤복만가(春滿乾坤福滿家), 봄이 하늘과 땅에 가득하니, 복이 집 안에 가득하기를 원한다. 이게 아주 기본 송이에요. 하늘은 세월을 불려가고, 사람은 수명을 불려가고, 또 봄이 천지에 가득하니 복이 집안에 가득하게 하소서. 이런 거. 이거를 이제 번역하기를 <하늘에 세월이 불어나듯 사람의 수명도 불어나라> 이거죠, 내용은. <하늘에 수명이 불어나듯 사람의 수명도 불어나라. 봄 햇살 천지에 가득하니 만복이 집 안에 가득하라.> 이게 이제 입춘을 맞이하는 기본 축원이예요.
       그렇게 새해를 시작하는 거지요. 계절로 보면 입춘이 처음이거든요. 입춘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한까지가 24절기예요. 그러니까 계절로 보면 입춘이 새해인 거예요. 입춘 새해. 근데 이걸 가만히 보면, 봄은 지난해에도 맞이했고 그 지난해에도 맞이했는데, 한 번만 보면 안 온다고요. 그런데 이 봄을 맞이하는 마음은 지난 마음이 없어요. 항상 새 마음인 거예요. 지난해는 새 마음으로 새봄을 맞이했고, 또 금년에는 금년에 새 마음으로 새봄을 맞이하고, 내년에는 또 내년에 새 마음으로 새봄을 맞이한다. 세월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데, 마음은 항상 새 마음이다. 이게 지난 마음은 젊었고 오늘 마음은 늙었고 그게 아니에요. 몸은 늙는데 마음은 항상 새 마음인 거예요. 이거를 가르치는 게 불교예요. 세월은 오고 가는데 오고 가지 않는 마음이 있다. 이거 참 중요한 거예요.

 

迎春迎福 古今同事 봄맞이는 고금이 같으나

영춘영복 고금동사

迎迎之人 是箇阿誰 맞이하는 '이는' 누구인가?

영영지인 시개아수

 

 

       그래서 영춘영복은 고금이 동사다(迎春迎福 古今同事). 봄을 맞이하고 복을 맞이하는 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일이다. 그런데 영영지인(迎迎之人), 봄맞이 복맞이하는 그 사람은 무엇이 사람이냐. 이걸 이제 항상 하는데, 무엇이 사람인가. 그 이름이 있어요. 누가 오잖아요. 딱 와서 대면을 하면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나. 이게 이 마음공부하는 아주 첫 번째 화두예요. 몸을 보는 게 아니에요. 몸은 늙어도 늙지 않는 마음이 있는 거예요. 몸은 젊어도 젊지 않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몸은 어려도 어리지 않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몸은 죽어도 죽지 않는 마음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딱 깨우치기 위해서 딱 부르면 뭔 물건이 이렇게 왔냐 이거예요. 몸 보고 이름 보고 아무개야 잘 왔냐, 그거는 아주 세속적인 거고. 이 마음을 깨우치고 마음을 찾게 하는 이 마음공부에서는 몸 보고 이름 보고 그거 아니에요. 그건 아주 세속적인 거예요. ‘뭔 물건이 왔냐이 말이에요. 여기 온 게 다리가 왔냐, 팔이 왔냐. 거기 다리요, 숨지면 못 걸어요. 눈요, 이거 숨지면 못 봐. 다리가 온 게 아니라 다리를 움직이는 마음이 있었다. 눈이 보는 게 아니라 눈을 움직이는 마음이 있다. 두뇌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 두뇌를 움직이는 마음이 있다. 이게 마음공부의 핵심이에요. 그래서 이 마음이라는 것은 눈을 감으면 검은 게 보이고, 눈을 뜨면 밝은 게 보이는데, 마음은 눈 감을 때 어두운 것도 보고, 눈 떴을 때 밝은 것도 보고, 마음은 그 넓고 넓은 허공도 보고, 마음은 이 먼지가 풀풀 나는 땅도 보고, 못 보는 게 없어요. 그럼 마음이 허공이라면 땅을 못 볼 거고, 마음이 땅이라면 허공을 못 볼 거고, 마음이 사람이라면 나무를 못 볼 거고, 마음이 나무라면 사람을 못 볼 건데, 이 마음은 소리가 날 때는 소리를 듣고, ‘아무것도 안 들리네그러는데 아무것도 안 들리는 걸 아는 게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조용할 때는 조용한 걸 알고, 시끄러울 때는 시끄러운 걸 알고, 밝을 때는 밝은 걸 알고, 어두울 때는 어두운 걸 알아서, 찾아보면 한 물건도 없는데 마음은 무일무이라, 찾아보면 이 마음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 아무리 이 몸을 조사를 해봐도 마음이 안 보여요. 그러나 항상 안다. 상방광명이라고, 항상 광명을 비춘다. 찾으면 한 물건도 없는데, 상방대광명 항상 광명을 비춘다. 그 마음을 하나 딱 찾고 나면 어두운 것도 마음이 보는 그림자고, 밝은 것도 마음이 보는 그림자고, 죽는 것도 마음이 보는 그림자고, 사는 것도 마음이 보는 그림자고, 마음은 죽어도 죽어도 죽는 게 아니고요, 살아도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보여도 보여도 보이는 게 아니고, 안 보여도 안 보여도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보이고 안 보이고 오고 가는 데서 걱정 근심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요새는 일도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하나도 없다는 건 옛날 말이고, 일도 없다, 이거는 현대 말이에요. 일도 없어요. 이 마음을 알고 나면 걱정 근심할 일은 일도 없다.

 

       그럼 걱정 근심이 뭐냐. 이 마음을 모르는 번뇌망상이예요. 마음 하나 딱 챙기면 보이고 안 보이는, 오고 가는 건 전부 그 마음에 비친 그림자예요. 예를 들면 깨끗한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에 보면 비행기 지나가는 것도 보이고, 구름 낀 것도 보이고, 사람 오고 가는 것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다 보이는데, 그 연못에 맑은 물은 아무것도 없어요. 근데 그 연못 속에 보이는 건 전부 그림자에요. 그래서 이 걱정 근심이 생기는 건 그 연못에 있는 맑은 물은 못 보고 거기 오고 가는 그림자를 보고 그 그림자가 올 때는 좋아하고 그림자가 사라질 때는 싫어하고 이거란 말이지. 이걸 가르치는 게 불교의 마음공부예요. 그게 해탈이고 그게 깨달음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내 마음에 비추어진 그림자고, 내 마음은 그 연못의 맑은 물과 같은 그게 내 마음이다. 이거 오가는 걸 보고 붙잡으려고 하고 밀어내려고 할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하면 정말로 그래요?” 또 이런 사람이 있어요. 정말로 그럴까요. 왜 그러냐면 전부 이게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 그래가지고, 내 마음에 비친 그림자를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고 했기 때문에, 이걸 전도라 그래요, 뒤바뀌었다고. 예를 들면 자기 그림자를 보고 자기가 싫어한다든지 좋아하는 거 이게 전도거든요. 또 꿈꾸는 생각과 같다. 이걸 몽상이라 그래요. 전도몽상. 그러니까 일심삼매(一心三昧)에 딱 들면 삼매라는 거는 하나가 되는 게 삼매인데, 여러 가지 보고 듣는데 지금 걱정 근심이 꽉 차 있는데, 그걸 한 마음으로 딱 돌아가면 걱정할 일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걸 불생불멸이라고 그러거든요. 불생불멸이라는 말은 걱정할 일이 없다 이거예요. 나도 난 게 아니고, 연못에 그림자가 비춰도 생긴 게 아니고, 안 비춰도 없어진 게 아니고.

 

三般物 삼반물

七賢女遊屍多林 曰 屍在者裏 人向甚處去 云 作麽作麽

칠현녀유시다림 왈 시재자이 인향심처거 운 작마작마

賢女諦觀 各各契悟 帝釋云 有何所須 女云 唯要三般物

현녀체관 각각계오 제석운 유하소수 여운 유요삼반물

一要無根樹子一株 二要無陰陽地一片 三要叫不響山谷一

일요무근수자일주 이요무음양지이편 삼요규불향산곡일

所 帝一切所須 我實有之 若三般物 我實無得

소 제일체소수 아실유지 약삼반물 아실무득

(禪門拈頌集卷1.18)(선문염송집권1,18)

 

 

        그리고 이제 60년대 후반에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 강원에서 있었는데, 그때는 큰 스님들이 학인들에게 수시로 법문을 해주시는데, 저녁에 주지 스님도 해주시고, 큰스님들도 해주셨어요. 그게 항상 이야기가 있는데, 칠현녀 삼반물(七賢女 三般物), 칠현녀라는 건 일곱, 어질 현자, 여인 여자, 일곱 어진 여인들이 제석천왕에게 요구한 것이 있는데 그게 뭘 요구했냐 그러면, 삼반물이다. 석 삼자, 일반이라는 반자가 있는데, 가지 반자, 가지가지, 한 가지, 두 가지 이런 삼반, , 물건 물자, 세 가지 물건이다. 이 법문이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이라고 하는데, 30권짜리가 있는데 그 제1번에 수록된 내용이에요. 칠현녀라, 인도에서 일곱 현녀들이 아주 어질고 지혜도 높고 하는 현녀들이, 인도는 시다림(屍多林)이라고, 사람이 죽으면 그 숲속에 갖다가 안치를 하는 그 숲을 시다림이라고 그래요. 숲에 갖다, 그냥 수목장식으로 갖다 안치를 하는 거예요. 화장이나 뭐 토장이나 이거는 또 따로고, 임장이 있어요. 숲속에 시신을 갖다 놔. 임장이에요. 그 임장하는 그 숲을 시다림이라고 그래요. 시신이 있는 숲이다. 그래서 이 칠현녀가 이 시신을 갖다가 장례를 치르는 시다림에 떡 갔는데, 어떤 시신이 있어요. 그런데 칠현녀 중에 한 여인이 시신은 여기 있는데, 사람은 어디 갔나?” 이런 질문을 했어요. 이게 이제 마음공부에요. 사람이 오면 무슨 몸이 왔나?” 이렇게 묻고, 또 시신을 보면 시신은 여기 있는데 이 사람은 어디 갔나?”. 그게 마음공부예요. 그냥 울고 이것만이 아니라 도대체 이 시신의 사람이 어디 갔냐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중에서 어떤 사람이 어디로 갔나, 어디로 갔나. 작마작마(作麽作麽) 이렇게 쓰는데, 지을 작자 어조사 마자. 어떤 일인가. 어떤 일인가. 이게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인가, 뭐냐, 뭐냐, 이렇게 다 돼요. 어디로 갔나, 어디로 갔나, 이 말이지. 자꾸 그러는 거예요. 시신은 여기 있는데 사람은 어디로 갔나, 어디로 갔나. 어떻게 된 일인가, 어떻게 된 일인가. 그래서 한참을 그렇게 집중을 하고 관찰을 했는데, 이 칠현녀들이 다 거기서 깨달음을 얻었어요. 각각계오(各各契悟), 깨달을 계자가 있고, 깨달을 오자가 있는데, 다 그 시신이 어디로 갔는지, 죽음이라는 게 뭔지 다 알게 됐어요. 근데 그걸 보고 제석천왕이 하도 감동을 해서, “내가 이 칠현녀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싶은데 공양을 받아줄 수 있겠냐”, 그러니까 칠현녀 하는 말이 나에게는 모든 게 다 있어서 필요한 게 하나도 없다. 오직 세 가지만 필요하다. 그러니까 공양을 하려거든 이 세 가지를 우리에게 공양을 해라.” 그러니까 그럼 세 가지가 뭐냐.” 첫째 요구하는 거는 무근수자일주(無根樹子一株)라고, 뿌리 없는 나무 한 그루 그게 필요하다라는 거예요. 뿌리 없는 나무 한 그루, 무근수자일주를 요한다, 필요로 한다. 두 번째는 요구하는 것이 무음양지일편(無陰陽地一片). 햇살, 그늘 없는 땅 한 조각, 햇빛도 없고 그늘도 없는 땅 한 조각, 음양이 없단 말이에요. 그리고 세 번째는, 요구하는 게요, 규불향산곡일소(叫不響山谷一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소리 지를 규자가 있거든요. 불향, 메아리가 없어, 울림이 없는 산골짜기 한 장소.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거를 우리가 받기를 원한다. 이게 칠현녀 삼반물이에요. 근데 이 제석천왕 궁중에는 없는 게 없는데 이건 없어요. 제석궁중에. 그냥 무진 보물이 있는데, 이 삼반물은 없어요. 뿌리 없는 나무 한 그루, 햇빛 그늘 안 드는 땅 한 조각, 소리쳐도 메아리 없는 골짜기 하나, 이건 없어요. 그러니까 제석천왕이 말하기를, 일체소수는 아실유지하되(一切所須 我實有之), 일체 다른 바라는 바는 내가 다 있지만은, 약삼반물(若三般物)은 아실무득(我實無得)이라. 나는 이걸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 마음이라는 거는 뿌리 없는 나무, 뿌리 없는 나무, 불생불멸 무생실법, 생멸 없는 진실법, 불생불멸 무생실법이란 말이에요. 또 없을 무, 날 생, 진실할 실, 법 법, 생멸 없는 진실법, 이게 마음이다. 또 이 마음이라는 것은 뭐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죽고 그게 아니고 음양이 없어요. 태어나는 거는 양이고 죽는 건 음인데, 죽고 사는 게 없어. 또 이 마음이라는 거는 고함을 지른다고 해서 소리가 나고, 고함을 안 지른다고 해서 소리가 나고 그런 게 아니에요. 이게 소리가 났다 안 났다 울렸다 안 울렸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게 규불향산곡, 소리쳐도 메아리 없는 산골짜기 하나. 이게 이제 자성 청정심인데, 자성 청정심. 자성 청정심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고, 햇빛 그늘 안 드는 나무와 같고, 메아리 없는 산골짜기와 같아서 세월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고 가는 데 영향을 받지 않아요. 이거를 딱 하나 이렇게 찾고만 있어도, 그 찾는 순간에 죄는 하나도 안 지어요. 마음을 찾는 순간에 누구 욕도 안 하고, 누구 원망도 안 하고, 뭐 누구 거 뭐 해칠 생각도 안 하고, 그러니까 마음을 딱 이렇게 찾는 그 순간만 하더라도 죄는 하나도 안 짓고, 번뇌망상은 싹 사라지니까 거기에 한없는 복이 생기는 거예요. 못 깨달아도 깨달으려고 하는 노력만으로도 죄는 사라지고, 지혜는 드러나서 한량없는 복을 거기서 받게 된다. 그러면 오래 안 해도 돼요. 사람에 따라서 0.5초만 해도 다 깨달아요. 왜냐하면 자기 있는 거 자기가 찾는 거니까, 그 어떤 사람은 지나가다가 경 한마디 읽는 것만으로 그냥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익히는 게 아니라 깨닫는 거예요. 깨닫는 게 수행이지, 뭘 실습을 하고 연습을 하고 그게 아니에요. 수행은 연습이 아니다. 오늘은 오늘 깨닫고, 내일은 내일 깨닫고, 모레는 모레 깨닫고, 항상 깨달으라는 거지. 연습이 아닌데 왜 그러고 자꾸 자꾸 오래오래 해야 되느냐. 이게 번뇌망상이 너무 깊어서 그 마음을 찾는 청정한 힘이 그 번뇌망상을 확 녹이는 힘이 부족해가지고 그래요. 그게 예를 들면 뜨거운 물이 있는데, 그 뜨거운 물은 분명히 뜨거운 건데, 이 얼음이 워낙 넓고 깊으면 뜨거운 물 한 바가지 얼음에 부어봐야 얼음을 다 녹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얼음이 본래 없는 거면 뜨거운 물을 부을 필요도 없는 거예요. 말 한마디 들으면 그냥 다 깨달아요. 옛날 훌륭한 선지식들이 다 그렇게 일언지하에 다 깨달아버렸거든요. 어떤 분은 5년 만에 깨닫고, 어떤 분은 10년 만에 깨닫고, 어떤 분은 평생 닦기만 하는데, 그 닦는 것 자체가 그게 깨달음이에요. 그 생각을 해봐요. 10분이라도, 오고 가는 게 이게 무슨 물건인가. 보고 듣는 게 이게 무슨 물건인가. 그 순간에는 번뇌망상이 싹 사라지고 일체 죄를 짓지 않아요. 그리고 거기서 그대로 빛을 발하기 시작하거든요. 그렇게 하고 있는데 스스로 이제 망상이 계속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걸 본인이 모를 뿐이다. 그럼 이제 마음을 딱 찾고 나면 다른 물건은 하나도 없고 오직 마음뿐이다. 이제 심외무법(心外無法)이라,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가르쳐요.

 

百年三萬六千日 翻覆元來是這漢

백년36천일 번복원래시자한

(法演禪師語錄卷下. 大正藏47. 666)

(법연선사어록권하.대정장47. 666)

 

       그래서 우리나라의 강원에서 가르치는 교제 중에 선요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선요. 거기에 보면, 10036천일이, 100년 살면 그걸 36천일로 본 거예요. 요즘은 365일이니까 36500일인데, 500일을 빼고, 옛날 어릴 때는 1360일이라고 그랬어요. 이상하게 365일이라고 안 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360일을 100년 하면 36천 일이거든요. 10036천 일이, 번복이, 계속 억지락뒤치락 그냥 오고 가고 계속 되풀이하는 걸 말하는데, 되풀이하는 것이, 원래 바로 이놈이다. 시자한(是這漢)이라고 쓰는데 이건 이놈이다. 이놈 바로 이놈. 10036천일, 계속 되풀이 되풀이하고 하는 것이 바로 이놈이다. 근데 이게 보고 듣고 오고 가는 게 전부 마음인데, 우리는 이거를 눈이 보고 귀가 듣고 발이 걷는다고 봐서, 물속에 그림자가 비춰졌는데, 그게 물로 안 보고 그 그림자로만 본단 말이죠. 물은 잊어버리고. 그걸 전도몽상이라고 그래요. 그게 비추어진 햇빛이나 달빛이나 사람 모양이 물이야, 그게 물. 이 소리 들으면 바로 깨달아야 되는데, 연못 속에 가서 보이는 게 다 물인데, 물은 못 보고 그 물에 비친 그림자만 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거 구하려고 연못 속에 들어가요. 들어가면 그림자는 안 보이고 물 뿐이야. 아 이거 참. -아니 누가 박수 치기 시작한 거요. 억지로 따라서 쳤는데 지금. 억지로 따라서. 용기가 대단하시네. .- 그러니까 이게 몸도 마음이고, 몸도 마음에 비춰진 그림자니까, 물 없으면 그림자 안 비춰지잖아요. 마음 없으면 이 몸이 없어, 안 보여. 산도 마음이고, 하늘도 마음이고, 듣는 것도 마음, 전부 마음뿐인데, 몸만 보고 산만 보고 사람만 보고 마음을 모른다 이걸 했다 그래요. 미해서 산다고. 래서 마음 하나 딱 찾으면 이 몸도 마음이고, 죽는 것도 마음이고, 사는 것도 마음이라. 심외무법이라, 일체유심이라, 마음밖에 법이 없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다. 일체유심. 오직 유자, 마음 심자거든요. 심외무법, 일체유심.

 

       근데 봄을 맞이하는데 그 봄이 마음이에요. 마음에 비춰진 그림자가 그게 봄이에요. 여름을 얘기하는데 여름이 마음이요, 가을도 마음이요, 겨울도 마음이에요. 심외무법 일체유심이요. 일체가 오직 마음이요, 이게 이제 해탈이고, 이걸 아는 게 반야거든요. 해탈을 하면 오직 마음이기 때문에 어디에도 걸릴 게 없어요. 다 자유로워요.

       입춘 법문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