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수륙재] 8월29일 국행수륙대재 초재 법문 2021-08-29

      오늘은 신축년 진관사 수륙대재에 수륙재 법문을 하러 왔습니다. 초하루 법문도 하러 오고, 수륙재 법문도 하러 오고 이제 종종 와요, 종종 와.

      불교에 조상천도재(薦度齋), 생전예수천도재(生前預修齋), 수륙대재(水陸大齋)천도재, 이런 중요한 천도재 의식이 있는데요. 유정설법(有情說法)은 살아 있는 중생들에게 설법하는 것은 교화(敎化)라 그러고, 유정설법 자비교화, 그다음에 사후 천도, 사후에 교화하는 것은 교화라고 안 하고 천도라고 해요. 생전 교화는 교화고, 사후 교화는 천도다.

      그러면 천도라는 것은 조상 천도나 예수재 천도나 수륙재 천도나 다 같은 건데, 천자가, -진공, 진언이란 말이 있는데. 진공, 공양을 올린다는 뜻이에요. 말을 올릴 때 진언(進言)이라 그러고, 나아갈 진자, 말씀 언자, 진언을 한다, 또 공양물을 올릴 때 진공을 한다. 그게 다 올린다는 말이거든요, 나아갈 진자가. 그다음에 바칠 헌자가 있어요. 헌공(獻供)이라고 그래요. 봉헌삼보전(奉獻三寶前), 삼보전에 봉헌한다.- 이 올릴 천(), 천자는 나아갈 진자와 바칠 헌자, 두 가지 뜻을 다 가지고 있어요. 진공을 천이라고 하고, 헌공을 천이라고 한다. 그래서 잘 올려서, 잘 바쳐서. ()자는 제도할 도자인데, 인도할 도자와 마찬가지예요, 인도(引導). 돌아가신 영가들에게 잘 올려서 극락세계로 인도한다. 그게 천도죠. 첫 번째는 잘 올려야 돼요.

      그래서 어떡하냐. 죽음이 없는 극락세계. 죽음은 생각에서 나온 건데, 생각이 맑아지면 죽음은 없어요. 그래서 한 생각 돌이켜서 죽음의 괴로움에서 죽음 없는 극락세계로 가시도록 인도하는 것이 그게 천도예요. 그런데 예수재는 생전에 미리 하는 게 예수재고, 조상 천도는 후손이 천도하는 게 조상 천도라. 이런 것은 다 그 영가를 담당하는 주인이 있다고 해서 유주고혼(有主孤魂)이라고 그래요. 있을 유자, 주인 주자. 유주라는 말은 복위자(伏爲者)가 있다 이거죠. 복위, 정성을 올리는 사람. 그래서 아무개 복위. 근데 무주고혼(無主孤魂)이 있는데, 무주고혼은 복위자가 없어요. 누가 천도를 하는지 누가 제사를 올리는지 아무개 복위, 정성을 올리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정성 올리는 사람이 정해지지 않은 영가를 무주고혼이라, 주인 없는 외로운 혼이다 이래요. 그래서 수륙재는 전부 무주고혼을 위한 천도재예요. 예수재하고도 다르고 조상 천도하고도 달라요. 무주고혼. 그래서 개인이 하기가 힘들어요. 그래가지고 옛날부터 나라에서 주관을 했어요. 그래서 국행수륙대재라고. 무주고혼이 한, 둘도 아니고 규모가 작은 것도 아니어서 아주 국가적으로 하는 행사가 돼야만 원만한 수륙재가 된다, 그래서 국가에서 주도로 하는 수륙재가 많았는데 그걸 국행수륙무차대회(國行水陸無遮大會)라고해요. 무차(無遮)라는 것은 아무 막는 일이 없다. 막을 차자인데 다 참여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수륙재에 대한 의미 간단히 말씀드리고 이제 영가를 청해서 법문을 하고 마치겠습니다.

 

                   今年 津寬寺 建設 水陸無遮大道場

                   금차 신축년 진관사 건설 법연 천지면양수륙무차대도량

                   十方法界 水陸空界 四生七趣 六道含靈

                   시방법계 수륙공계 사생칠취 육도함령

                   無主孤魂 哀魂 一切列位 列名靈駕

                   무주고혼 애혼 일체열위 열명영가

                   降臨道場 來會道場 至心諦聽 至心諦受

                   강림도량 내회도량 지심제청 지심제수

 

                    法性湛然周法界 甚深無量絶言詮

                    법성담연주법계 심심무량절언전

                    自從一念失元明 八萬塵勞俱作蔽로다

                    자종일념실원명 팔만진로구작폐

                    (水陸齋儀軌,1573 板本)

                    (수륙재의궤, 1573 판본)

                    나무아미타불

 

     시방법계(十方法界), 수륙공계(水陸空界), 수중고혼, 육지고혼, 허공계고혼, 사생칠취(四生七趣)고혼, 육도함령(六道含靈)고혼, 이런 무주고혼(無主孤魂), 애혼(哀魂) -의지할 데가 없다, 이 말이죠.- 슬픈 영혼들 일체 열위, 여러 지위에 있는 모든 열위, 여러 이름을 가진 열명영가(一切列位 列名靈駕). 강림도량(降臨道場)하시고, 이 도량에 오시고, 강림, 내회도량(來會道場)하셔서, 이 도량에 오시어 모이셔서, 지심제청(至心諦聽)하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으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받으십시오. 그게 청혼송이고요.

 

     첫 번째 법문은 법성이 담연주법계(法性湛然周法界)하니, 만법이 있고, 만법의 본성이 있는데, 만법은 생사윤회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는데, 본성은 극락세계예요. 그래서 천도라는 것은 만법 생사에서 법성 극락으로 인도하는 거예요. 만법은 생사요 법성은 극락이다. 극락은 왜 극락이냐. 죽음이 없고, 어두움이 없고, 공포가 없고, 다만 즐거움만 있기 때문에 극락이라고 한다, 이거거든요. 만법 생사에서 법성 극락세계로 가시도록 인도하는 것이 천도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그 법성이 담담해서, 어두움도 없고 나쁜 것도 없어서, 주법계라, 일체 만법세계에 두루하다, 법성이 없는 만법이 없다 이 말이죠.

    심신무량절언전(甚深無量絶言詮)이라. 그 법성세계가 심히 깊고 헤아릴 수가 없어서 말이 끊어졌다. 말씀 언, 말씀 전. 말을 할 수가 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생사가 왜 벌어졌나.

    자종일념실원명(自從一念失元明)으로, 자종이라는 건 부터, 부터 자, 부터 종, 스스로 자, 쫓을 종이 전부 시작한다, 부터 한다 이 말인데, 한 생각이 원래 밝은 걸 잃어버렸다. 한 생각이 원래 밝은 것을 잃어버림으로부터. 그러면 한 생각이 원래 밝은 걸 왜 잃어버렸나. 요 법에 집착하면서 법성을 잃어버리게 된 거예요. ‘요게 법이다그러면 이걸 그냥 보고 말면 되는데 여기에 딱 매달리면 그 시방 법계에 두루한 법성을 상실하게 돼요. 법계에 집착해서 법성을 상실했다. 그게 원명을 잃었다. 근원 원자, 밝을 명자. 근데 문제는 아무리 현상 법계에 집착을 한다 하더라도 그 법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근데 스스로 가지고 있으면서 모를 뿐이다. 그게 참 분통 터질 일이에요. 가지고 있는데 모른다. 그래서 원래 밝은 걸 잃어버림으로부터 무슨 일이 벌어졌나.

    팔만진로구작폐(八萬塵勞俱作蔽), 팔만이라는 건 무량이라는 말인데, 팔만, 우리나라에서 팔만 많이 쓰는데, 그건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있기때문에 그래요. 왜 팔만이냐. 경판 판수가 팔만 천 이백 오십 팔매에요. 그래서 팔만대장경이라고, 학술 용어로는 고려대장경이요. 그래서 팔만인데, 팔만이라는 것은 그럼 팔만 천 이백 오십 팔매의 무량한 글자가 있고 그 글자 하나하나에 무량한 뜻이 있어서, 그냥 무량수, 한량없는 숫자를 그냥 팔만이라 그래요. 그래서 팔만 진로가, 진로라는 것은 티끌에 피로한 번뇌 망상인데요. 이게 보이는 데 집착하다 보면, 티끌 하나하나에 사람을 보면 사람에 집착하고, 물질을 보면 물질에 집착하고, 삶을 보면 삶을 집착해서, 이 티끌에 계속 집착을 하기 때문에 그 티끌로 말미암아 피로가 생겨요. 그래서 티끌 진자, 피로할 로자로 써서 진로라고 그러는데, 이거는 물질 집착 번뇌 망상을 진로라 그래요. 인간이 왜 고단하냐. 집착 때문에 그래요. 사람에 집착하고, 물질에 집착하고, 자기 삶과 죽음에 집착하고, 그게 진로요. 팔만 진로가, 한량없는 진로가 구작폐라, 함께 폐단을 지었다. 장애를 짓고 어려움을 지었다 이거거든요. 그래서 좋은 곳으로 가셔야 된다 이거죠.

 

                      靈然一箇主人公千古虛玄坐道場이니라

                      영연일개주인공 천고허현좌도량

                      正體堂堂明日月하고 往來常在涅槃床이로다

                      정체당당명일월 왕래상재열반상

                      (諸般文, 15744 板本)

                      (제반문, 15744 판본)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팔만 진로가 항상 번뇌 망상을 일으키고 업장고뇌가 끊어지지 않아도 영연일개주인공(靈然一箇主人公)은 신령 령자, 그러할 연자, 그러할 연자는 다 어조사고. 신령하다. 왜 신령하냐. 죽어도 죽음이 없고, 살아도 삶이 없고, 가도 감이 없고, 와도 몸이 없어서 신령하다고 하는 거예요. 신령 령자가. 세월이 많이 지나도 세월이 없어요, 그 속에. , 정말로 희한한 세계에요. 마치 눈에다가 비유를 하면, 눈이 사람을 봐도 눈 안에는 사람이 없어. 눈이 호랑이를 봐도 눈에는 호랑이가 없어. 눈이 죽음을 봐도 눈에는 죽음이 없어요. 눈이 허공을 봐도 눈엔 허공이 없어요. 그게 항상 사람도 보고, 호랑이도 보고, 허공도 보고 못 보는 게 없어요. 그런데 항상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억만년이 지나갔는데 거기에는 억만년이 없어. 맨날 죽고 사는데 거기엔 죽고 사는 게 없어. 그러니까 신령하다는 거예요. 그걸 하나 딱 찾아놓으면 만사에 무가애 무가애(無罣礙)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그렇게 되는 거죠. 이건 안 새겨도 되겠죠, 무가애 무가애, 무유공포, 공포없어요. 전도몽상 번뇌 망상이 없어. 그래서 일개 주인공이라. 항상 그 자리에서 온갖 일을 다 하되 온갖 일에 물들지 않는다라고 그래서 주인공이라고 하는 거지, 주인이 있고 손님이 있고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온갖 일을 다 하면서 온갖 일에 치우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주인공이에요. 영연한, 신령스러운, 하나, 한 개 주인공이 천고허현(千古虛玄)하야, 천고라는 건 일천 천자, 옛 고자인데, 천은 많다는 숫자고 고는 세월이라는 뜻이에요, 옛 고자는. 한량없이 많은 세월이 지나가더라도 천고에, 허현해요, 텅 비었으면서 현묘해. 검을 현자는 묘할 묘자의 뜻인데, 텅 비었어요. 그게 우리가 깨달아야 할 내용이에요, 현묘. 허현. 텅 비면서 오묘해, 그래서 한량없는 세월이 지나가더라도 비고 현묘해서 좌도량(坐道場)이라. 여기서 도량이라는 건 장소라는 말인데,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어요. 도량에 앉아 있어. 어디는 있고 어디는 없고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거에요. 근데 그 자리가 얼마나 대단하냐.

      정체가 당당(正體堂堂)하야, 그 허현한 상태로 도량에 앉아 있는 그 일개 주인공이 얼마나 대단한가. 정체가, 그 바른 몸이 당당해서 높고 높고 깊고 깊어서 명이 일월(明日月)이라. 밝음이 일월과 같다. 해와 달, 요새는 해와 달보다 더 밝게 시설을 잘 할 수도 있어요. 근데 그건 또 금방 없어지니까 그냥 일월이라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가지고 햇빛보다 더 밝게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따지면 곤란해요. 이걸 직접 보는 게 중요하지.

        근데 왕래상재열반상이라(往來常在涅槃床). 왕래, 갈 때나 올 때나 항상, 열반상, 이거 자리 상잔데, 중도, 실제중도상(實際中道床)하듯이, 그 자리에, 열반의 자리에 항상 있다. 열반은 죽음이 없는 자리다 이 말이죠. 죽음이 없는 자리에 항상 있다. 그러니까 이 영연일개주인공이라, 이걸 알았을 때 깨달음이라 그러고, 이걸 봤을 때 법성을 봤다, 심성을 봤다고 그래서 견성이라고 그러는데, 동아시아 조사선 불교에서는 요 본 걸로 그냥 살면 된다 그래서, 돈오돈수(頓悟頓修)라고 그래요. 그거 딱 보고 딴 생각 안 일으키면 그게 모든 걸 다 닦은 거다 이거지요. 일견갱불견, 한 번 보고 다시 보지 않는다. 일문갱불문, 한 번 듣고 다시 듣지 않는다. 딱 보고 딴 생각 안 일으키면 불기일념(不起一念)하면 다 닦은 거예요. 그래서 돈오돈수에요. 그 법으로 얘기를 하는 거죠. 그게 조사선이에요. 조사선은 딱 보는 순간에 다 닦는 거기 때문에 그게 돈오돈수거든. 그게 얼마나 신비한 법이에요. 그런데 그 이전에 수행법은 그 불성을 딱 보았는데 이즉돈오(理卽頓悟), 그 불성은 이치인데 이치는 봤는데, 이 몸이 아직까지 옛날 습관을 가지고 있다, 사비돈제(事非頓除). 오온 습관은 일시에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온 습관은 점차로 제거해야 된다. 그래서 이게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얘기한 거예요. 이거는 중하근기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에요. 중근기, 하근기는 돈오점수가 맞고, 상근대지(上根大智)는 돈오돈수, 딱 보면 딴 생각 안 일으키면 그만이야. 일견 법성하고, 한 번 법성을 보고, 불기일념하면,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아니하면 그게 돈오돈수, 대지해탈이다. 끝나는 거죠. 그런데 중하근기는 보기는 봤는데 이게 오온 습관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오온 습관은 일시에 제거되지 않는다고 해서 사비돈제라. 사는 오온이고 이는 법성인데, 법성은 바로 볼 수가 있는데 오온습관은 바로 제거가 안 되니 차례 차례로 오온습관이 다 없어질 때까지 닦아야 한다. 이게 중하근기는 그렇게 해야 돼요. 중근기, 하근기는 돈오점수를 해야 돼요. 그런데 기본 불교에서는 돈오돈수도 처음에 가르친 게 아니고, 돈오점수도 처음에 가르친 게 아니고, 모든 일체 중생을 위해서 전식 성질을 가르쳤어요, 전식. 이 식을 바꿔서 지혜를 이루라. 전팔식성사지(轉八識成四智). 전팔식, 여덟 가지 식을 바꿔서 성사지, 네 가지 지혜를 이룬다 이거예요. 그럼 팔식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오식, 제육식, 제칠식, 제팔식 그거잖아요. 이걸 바꾸면 이제 전오식을 바꾸고 제육식, 제칠식, 제팔식을 바꿔서 이루는 지혜가 사지에요. 이거는 모든 중생을 위해서 경전에서 다 가르치는 게 전식성지예요. 근데 조사들이 가르친 거는 돈오돈수 돈오점수를 가르쳤어요. 그래서 이게 불교하고 조교하고 교설 체계가 달라요. 근데 근기에 따라서 다 중요한 거예요. 일견법성하고 불기일념하면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아니하면 그게 돈오돈수에요. 그래서 오늘 영가들께서도 이 자리에서 돈오돈수로 천도도 되고, 돈오점수로 천도도 되고, 전식성지로 천도도 되고. 여래 가피로 천도된다. 여래 가피가 뭐냐. 대비주 착어처럼 우황대비신주력(又況大悲神呪力), 대비신주력으로 중생성불이 찰나중(衆生成佛刹那中)이라, 중생성불이 찰나에 된다. 이게 신주 성불이에요. 신주. 신묘 대비 주문으로 중생성불이 찰나에 이루어진다. 이게 중생성불찰나중이거든요. 이런 법으로 시방법계 무주고혼이 다 극락세계에 가시는 거지요.

 

                       非識所能識 亦非心境界

                       비식소능식 역비심경계

                       其性本清淨 開示諸衆生

                       기성본청정 개시제중생

                       若於一切智 發生迴向心이면

                       약어일체지 발생회향심

                       見心無所生하야 當獲大名稱이로다

                       견심무소생 당획대명칭

                       (水陸齋儀撮要,15732 板本)

                       (수륙재의촬요,15732 판본)

                       나무아미타불

 

      살아있는 유정이나 돌아가신 영가나, 이런 법성일체지, 법성일체의 지혜 경계에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회향심(迴向心)이라는 게 돌아간다, 발생, 낸다,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내면, 견심무소생(見心無所生)하야, 번뇌망상이 한없이 있었는데 그 마음속에는 번뇌망상이 나온 일이 전혀 없어요. 이게 심은 무소생이라, 마음은 생긴 바가 없다. 기신론을 공부하다 보면 각심초기(覺心初起) 심무초상(心無初相)이라는 기신론 본문이 있는데, 어떤 강사 스님들은 각심이, 깨달은 마음이 처음 일어나면, 심무초상이라, 마음에는 처음 난 것이 없다. 이렇게 옛날 강사스님들은 가르쳤는데 그건 잘못 새긴 거예요. 그 밑에 필삭기 기문을 보면 심초기, 심초기는 소각심이라고 거기다 기록을 해놨어요. 깨달을 바 마음이다. 각은 능각이고. 그러면 각심이, 깨달은 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건 아니고, 잘못돼요. 심초기를 깨달으면, 이렇게 돼 있어요. 마음이 처음 일어난 것을 깨달으면, 알면, 그 옛날 어른들이 잘 봐놨는데 그걸 잘못 보면 잘못 새겨요. 심초기가 있어, 마음이 처음에 일어날 때가, 그게 무슨 마음이냐. 근데 이거는 등각에 가야 알아요, 이거는 심초기를. 처음에는 불성을 알고 번뇌가 처음 일어난 거 알려면, 불성은 초지에서 아는데, 이게 전식성지 과정론이에요. 번뇌 처음 일어나는 거는 십지 지나서 등각 금강지에 가서 아는 거에요. 그래서 능엄경에서도 제3권에서 법신을 봤는데 오온에서 완전 해탈한 거는 10권 제일 마지막에 가서 이즉돈오나 사비 돈제라. 이거는 능엄경 10권 유통본 직전에 있어요. 이래서 이게 처음에는 불성을 아는데 마지막에는 최초의 번뇌 망상 망념이 언제 일어났는지 고걸 안다 이거에요. 그게 심초기에요, 심초기. 그거는 초지에서 모르고, 십지 지나서 등각, 등각을 금강지라고 그러는데, 금강지에 가서 알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중생이 한 생각을 일으켰다고 그러는데, 한 생각 일으킨 거를 나중에 밝은 마음으로 가만히 보니까 일어난 바가 없더라. 마음은 생긴 바가 없는 걸 본다. 그러면은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이요, 이걸 대명칭이라고 해요. 안으로 십불이고 밖으로 보현이니 대인의 경계다, 이말이에요. 이걸 큰 명칭을 받게 되는 대명칭이라. 대해탈, 대정각, 대명칭이죠. 근데 이게, 마음이 일어났는데 일어난 것이 없는 걸 아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이거는 꿈에서 완전히 깨야 아이 꿈이 그게 본래 없었구나.’ 이걸 아는 거에요.

       앞에 여기 스님들만 계시니까 옛날 강당에서 경 새기듯이 이렇게 해요. 저 밖에는 안 보여서 그래요. 그냥 그러니까 재미없어도 듣기만 하셔도 대공덕을 얻으시는 거예요.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더워도 잘 들으세요.

 

                          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

                          아등여중생 개공성불도

                          나무아미타불

 

       이 공덕이 다 성불하도록 기원하는 겁니다.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