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신중기도] 10월25일 음력 10월 신중기도 입재 법문 2022-10-25

 

 

        임인년 10월 초하루 진관사 법문은 축원공덕(祝願功德), 축원공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불교는 인연법인데, 그 인연법을 설명하는 방법이 <하나가 있으면 모든 것이 있고, 한순간이 있으면 영원한 시간이 있다.> 이렇게 가르쳐요. 하나가 있으면 모든 것이 있고 한순간이 있으면 영원한 시간이 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설명하는 신라 시대의 가르침이 있는데, 한 집안에 본인이 하나 딱 있으면, 그 본인의 부모가 있고, 조부모가 있고, 또 본인의 아들이 있고, 손주가 있고, 그래서 이게 오대가 되는데요. 그런데 자기는 현재인데, 자기 아버지는 자기의 과거고, 자기 할아버지는 과거의 과거고, 또 자기 아들은 미래고, 손주는 미래의 미래고. 그런데 이것이 다 한순간에 있다. 내가 있으면 나의 부모도 있고,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고, 나의 아들, 딸도 있고, 나의 손주, 손녀도 있고 다 있는데, 이게 알고 보면 손주, 손녀는 자기의 미래의 미래고, 아들은 미래고, 자기 부모는 과거고, 자기 할아버지는 과거의 과거다. 이게 한순간이다 이 말이죠. 미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순간 한 장소에 다 있다. 그래서 한순간이 있으면 과거, 현재, 미래, 영원한 시간이 있는 거고, 영원한 시간은 한순간에 있다. 이렇게 인연법을 가르쳐요.

        그리고 하나가 있으면 모든 것이 있다. 모든 것이 있으면 하나가 있다. 예를 들면 여기 손가락이 하나를 딱 내세우면 이건 하난데, 하나를 더 내세우면 이게 하나가 둘이 돼버려요. 그러니까 둘은 하나가 둘 된 거지, 하나 없는 둘은 없어요. 그럼 이 둘이 하나가 둘이다. 또 둘 속에는 하나가 들어있다. 둘 없는 하나가 없고, 하나 없는 둘이 없다. 이래서 한 티끌 속에 우주가 있고, 온 우주 속에 티끌이 있다, 이렇게 가르치고요.

        시작은 바로 결과다. 결과 없는 시작은 없다. 또 결과를 이루고 보면 시작 그 자리에서 이루었다. 시작 없는 결과는 없다. 이렇게 인연법을 공간으로, 시간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마음을 담아서, 미래를 담아서, 결과를 담아서, 축원을 다 하면 그 축원이 바로 성취고, 결과고, 미래다. 그래서 하나가 둘이듯이 오늘이 미래지, 오늘 떠나서는 미래가 없다. 그렇게 가르치는 게 불교의 인연법이에요.

        어떤 분들 얘기 들어보면, 아들 키워 결혼시켜서 손주를 봤는데, 이 손주를 친정엄마한테 맡겨놓고 애들은 돈 버는 데만 열심히 하고. 그래서 옆에 사람이 그러시면 참 복 많이 받으시겠어요.” 그러니까 복은 받는지 안 받는지 보이지도 않고, 너무 힘드니까 애나 좀 안 봤으면 살 것 같다.” 이러거든요. 근데 애 보는 게 그거 자체가 복 받는 거예요. 현재가 미래인 거예요, 현재가. 현재 없는 미래는 없어요. 또 현재가 과거고. 그러니까 자기 아버지가 바로 과거고, 자기 아들이 미래고. 그래서 이게 시간도 영겁이 영원한 세월이 함께 있고, 공간도 하나 속에서 모든 것이 함께 있기 때문에 복 받는지 안 받는지 알 수도 없다.’ 이거는 잘못된 생각이고, 복 짓는 게 바로 받는 거예요. 이걸 인연법이라 그래요. 짓는 걸 바로 받는 거다. 이렇게 이해를 해라 이 말이죠.

         그래서 마음 모아서 축원하면 그 축원이 바로 성취인 거예요. 축원이 성취지, 축원 없는 성취는 없다 이거거든요.

 

        그럼 축원은 불교에서 어떤 격식으로 하느냐. 상단축원, 중단축원, 영단축원, 이런 격식으로 하는데요. 영단은 제사 지내면서 하는 축원이 영단축원인데, 영단은 제사 지내는 단상이에요. 법단. 중단은 화엄 신중 성현을 모신 곳이 중단이고, 상단은 부처님 불보살을 모신 곳이 상단이거든요.

 

通祝 : 時會合院 大衆通祝(上壇祝願)

통축 : 시회합원 대중통축(상단축원)

仰告 十方三世 帝網重重 無盡三寶慈尊 不捨慈悲

앙고 시방삼세 제망중중 무진삼보자존 불사자비

爲作證明 (許垂朗鑑) 先亡 父母師尊 法界含靈 超生樂邦

위작증명 (허수낭감) 선망 부모사존 법계함령 초생낙방

時會合院大衆所願 圓滿成就 然後願

시회합원대중소원 만원성취 연후원

恒沙法界佛子等 同遊華藏莊嚴海

항사법계불자등 동유화장장엄해

同入菩提大道場 恒蒙諸佛大光明

동입보리대도량 항몽제불대광명

頓成無上最正覺 廣度法界諸衆生

돈성무상최정각 광도법계제중생

究竟圓成薩婆若 摩訶般若波羅蜜

구경원성살반야 마하반야바라밀

        상단축원은 부처님 법 전체에 대한 축원이에요. 그래서 시작을 앙고(仰告) 이렇게 시작하는데, 앙고라는 건 딴 게 아니고, <말씀을 올립니다>. 고자는 말씀이라는 뜻이고, 앙이라는 건 올린다는 뜻이에요. 말씀을 올립니다. 이 말씀 올리는 게 축원이거든요. 시방삼세 제망중중 무진삼보자존 불사자비(十方三世 帝網重重 無盡三寶慈尊 不捨慈悲) 이렇게 나오는데, <불보살님의 청정법신 지혜광명 자비광명 일체 원력이 티끌티끌 순간순간마다 다 충만하고 원만하고 변만하다.> 이렇게 말하는데, 이 말은 <안 계신 데 없다> 이 말이죠. 충만 원만 변만. 그러니까 그런 부처님을 향해서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내용을 우러러 말씀을 올리면 그게 축원인데, 그렇게 하니까 불보살들께서는 이 축원하는 이 마음을 증명해 주십시오. 딱 헤아려 보시고 그렇게 관찰을 해주십시오. 증명하라 그런 거를 위작(爲作)이라고도 하고, 한문으로, 한다는 위자고 지을 작자고, 그게 할 위자나 지을 작자나 한다 이 소리예요, . 한다. 위작이 그럼 해주십시오. 이것도 되고, 허수(許垂)라는 말도 쓰는데, 허락할 허, 수직이라고 하는 위에서 밑으로 드리울 수, 그건 옥편에 보면 수자가 베풀 수자예요. 베풀 수자. 허락이라는 건 줄 허자, 그러니까 베풀어 주십시오. 뭐를. 이 기도하는 내용을 밝게 밝게 거울처럼 살펴주십시오.

        이제 그렇게 하고, 기가 막힌 게, 축원을 시작할 때 선망 부모 축원부터 시작을 해요. 나 이거 절에 와서 아주 이상하게 생각을 했어요. 산 사람이 제일이지, 왜 조상 축원을 먼저 하냐. 근데 그게 이유가 있어요. 조상이 자손이에요. 그러니까 조상 없는 자손이 없는 거예요. 이게 불교의 문화고, 이게 교설이에요. 조상이 자손이기 때문에 과거가 현재란 말이죠. 그래서 조상 축원을 하고. 부모, 선망 부모, 조상 또 일체 스승들(先亡 父母師尊) 이런 분들을 먼저 축원을 하고, 그다음에 겸급법계(兼及法界) 일체고혼이라고 참 기가 막혀요. 온 법계에 겸해서 온 법계에 미치도록 온갖 영가를 다 축원을 해요. 그래서 유교 문화에 딱 젖은 사람은 이걸 보면 아주 당혹스러워요. 내 부모 제사 지내는데 왜 온 우주 법계 영혼들을 불러들여서 축원하냐. 딱 이렇게 되거든요. 근데 그거는요, 깊은 뜻이 있어요. 심봉사가 눈을 뜰 때 일체 맹인들이 전부 개평으로 공짜로 눈 떴어요. 개평 눈 뜨는 수가 있어요. 그래서 복 받는 사람 옆에는 함께 복 받는 수가 있거든요. 이런 게 있기 때문에, 내가 기도를 잘하면 내 부모, 내 조상은 물론이거니와 일체의 고혼영가가 함께 극락왕생하는 법이 있어요. 이게 동양문화의 아주 핵심이에요. 이게 문학에도 나와요. 그 심청이 공덕으로 심청이 아버지 한 사람만 겨우 눈 뜬 게 아니에요. 그분이 눈을 뜰 때, 그냥 옆에도 뜨고, 저 멀리도 뜨고, 가까이도 뜨고, 전부 자기도 왜 뜨는 줄도 모르게, 그걸 개평 눈 뜬다고 우리 말로, 그냥 옆에서 뜨는 거예요. 그게 불교의 인과법이고, 그게 동양 문화의 아주 근본이에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함께 할수록 좋은 거다 그거죠.

        그리고 시회합원대중(時會合院大衆), 시회라는 건 지금 법회에, 합원이라는 거는 합할 합자인데, 합할 합자는 모일 회자, 회합이라고도 하는 건데, 모일 회, 합할 합, 회합, 모인단 말이거든요. 법당에, 원은 법당이고, 법당에 모인 일체 대중이 다 함께 업장도 소멸하고, 지혜도 청정하고, 복덕도 구족하고. 이렇게 되고.

        연후원(然後願), 그런 다음에, 또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있는데, 그걸 요약해보면, 항사법계불자등(恒沙法界佛子等), 항사법계라는 건 저 갠지스강 모래알 같은 숫자의 많은 법계 불자들이 동유화장장엄해(同遊華藏莊嚴海)하고, 화장은 부처님 깨달은 공덕 세계를 화장이라고 그러는데, 거기에 온갖 복덕장엄이 다 있어요. 그런 복덕장엄에 함께 머물고, 놀 유자를 쓰는데 논다는 말은 머문다는 말이에요. 요즘 말로 하면 템플스테이, 템플은 화장장엄이,고 스테이가 동유, 함께 머문다. 요새 화장장엄의 이름은 잘 몰라도 템플스테이 하면 다 알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함께 머무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동입보리대도량(同入菩提大道場)하고, 함께 부처님 도를 이루는 도량에 들어가고, 항몽제불대광명(恒蒙諸佛大光明)하고, 함께 모든 부처님의 광명을 항상 받고, 돈성무상최정각(頓成無上最正覺)하고, 무상최정각을 바로 이루고, 불교는 궁극 목적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데, 요거 그대로 놔두는 이유가 있어요. 이걸 한자로 바꾼다든지 우리 말로 바꾸면 이게 잘못될 염려가 있어서 그대로 놔두는 거거든요. 아뇩다라라는 말은 가장이라는 가장 최자하고 높다는 윗 상자하고, 최상이라는 말이고, 없다는 없을 무자하고 윗 상자하고 무상이라는 말인데, 가장 높고 그 이상 높은 곳이 없고 이런 말이에요. 또 삼먁이라는 말은 바르게 평등하다. 바르게 평등하다는 뭔가. 실개동등(悉皆同等)이라는 말을 쓰는데 경에서는, 다 실자, 다 개자, 동등하다. 이게 이제 불교의 그 보리 평등법인데, 깨달음을 얻고 나면 티끌이나, 하늘이나, 삶이나, 죽음이나, 있는 거나, 없는 거나, 다 평등해요. 못 깨달으면 차별이요. 그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게 이게 평등을 몰라서 그래요. 알고 보면 평생 이룬 게 다 쓰잘데기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룰 때는 그거 몰라요. 행복을 위해서 산다고 그러는데 죽을 때 행복도 부질없어요. 그래서 보이는 거나 안 보이는 거나 다 평등해요. 이걸 정등, 삼먁이라고 그래요. 삼먁. 이 평등을 모르면 못 깨달은 거고, 평등을 알면 깨달은 거예요. 정등, 바르게 평등하고, 또 삼보리는 보리는 깨달음이고, 삼은 바를 정자니까 정각. 그래서 최상무상 정등정각. 이거 얻는 거를 삼세제불은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이러거든요. 뭐 평생 싸우고 이루는 거 부질없어요. 그래서 싸워서 이길 생각하지 말고 깨달을 생각을 해요. 깨달음이 인생의 정답이에요. 그거 뭐 하려고 하는데요. 깨달아라. 왜 깨달아야 되는데요. 다 평등한 세계로 들어간다. 깨닫지 않고서는 평등한 세계에 못 들어가고, 평등한 세계에 못 들어가면 맨날 싸운다. 이거 참 보통 일 아니에요. 

        그래서 광도법계제중생(廣度法界諸衆生), 법계, 이렇게 맨날 싸우는 중생을 인도해야 된다. 중생 치고 안 싸우면 중생이 아니에요. 중생이 뭐가 중생이냐. 싸우면 중생이고 안 싸우면 중생 아니다. 그러니까 다 싸워요. 모녀지간도 싸우고, 부자지간도 싸우고, 형제 이거 말할 것도 없어요. 엄청나게 싸워요. 

          그러니까 그래가지고 구경원성살바야(究竟圓成薩婆若), 마지막에는 큰 지혜를 원만히 이루고,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 온갖 지혜로 이런 걸 해결하길 원한다 이거지요.

 

         그다음에 상단축원는 통축(通祝)이라고 그래서, 모두 다 함께 하는 거, 통이라는 건 함께 한다 이 말이거든요.

 

別祝 : 各其心中 所求所願(中壇祝願)

별축 : 각기심중 소구소원(중단축원)

仰告 華嚴會上 諸大賢聖 僉垂憐愍之至情 各放神通之妙力

앙고 화엄회상 제대현성 첨수연민지지정 각방신통지묘력

仰蒙 諸大聖衆 加護之妙力 所伸情願則

앙몽 제대성중 가호지묘력 소신정원즉

日日有千祥之慶 時時無百害之災 六根清淨 四大剛健 身無一切病苦

일일유천상지경 시시무백해지재 육근청정 사대강건 신무일체병고

厄難 心無一切貪戀迷惑 參禪者 疑團獨露 念佛者 三味現前 看經者

액란 심무일체탐연미혹 참선자 의단독로 염불자 삼매현전 간경자

慧眼通透 病苦者 即得快差 職務者 隨分成就 三障頓除 五福增嵩

혜안통투 병고자 즉득쾌차 직무자 수분성취 삼장돈제 오복증숭

三業皆清淨 奉持諸佛教 和南大聖尊 俱護吉祥 摩訶般若波羅密

삼업개청정 봉지제불교 화남대성존 구호길상 마하반야바라밀

 

         그리고 신중단의 중단축원은 별축(別祝)이라고 그래서, 별별, 따로따로 해요. 그럼 별축은 뭐냐. 각기심중 소구소원(各其心中 所求所願)이라. 각자 그 사람 마음속에 소구, 구하는 바, 원하는 바, 소구 소원 이거를 축원하는 게 중단축원이거든요.

 

        여기도 이제 앙고(仰告) 이렇게 나오는데, 누구한테 앙고하냐. 화엄회상 제대현성(華嚴會上 諸大賢聖)께 앙고합니다. 화엄경에 보면 세주묘엄품에, 해탈을 얻은 모든 여러분들이 세상의 주인들인데, 그분들이 각자 깨달음을 얻어가지고 이 세상의 중생들을 위해서 다 신통을 드러내요. 그걸 화엄회상 제대현성이라 그래요. 모든 현인과 성인이다. 그분들은 무슨 일을 하느냐. 첨수연민지지정(僉垂憐愍之至情)하고. 연민의 정이 있어요, 그분들은 세상에. 연민의 지극한 정을 다 베풀어주시는 분이고, 각방신통지묘력(各放神通之妙力)이라. 각각 신통의 묘력을 다 펼치는 분이다.

         그래서 이제 누구누구 축원하는데 여기서는 빼고, 그다음에 앙몽 제대성중 가호지묘력(仰蒙 諸大聖衆 加護之妙力)하여, 제대성중에 가호지묘력을, 앙몽이라는 건 잘 받아서, 우러를 앙자, , 몽자, 받아가지고 이루어진 가호지묘력, 가호지묘력을 잘 받아서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소신정원즉(所伸情願則), 소신이라는 거는 펼치는 거, 서술하는 건데 설명하는 거, 그리고 정원이라는 거는 정원 각각이에요. 각각 자기가 원하는 걸 정이라고 그러는데, 각각 원하는 그 정원을 서술해서 말씀을 드리면 이게 바로 깨달음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이분들은요, 세상의 복덕과 지혜를 이루는 거를 원력을 세워서 가호력을 펼치기 때문에 여기서, 각자 원하는 거는 일일유천상지경(日日有千祥之慶)하고, 나날이 천 가지 좋은 복이 있고, 시시무백해지재(時時無百害之災), 시간 시간마다 백까지 해로운 재앙은 다 없어지고. 이걸 원해요. 참 욕심도 많지.

        육근이 청정(六根清淨)하고 사대가 강건(四大剛健)하고, 육근 사대는 우리 몸인데, 몸이 다 이렇게 청정하고 강건하고, 신무일체병고액란(身無一切病苦厄難)하고, 몸에는 일체 병고와 액란이 다 없어지고. 심무일체탐연미혹(心無一切貪戀迷惑)하고, 마음에는 일체 탐연이라는 건 쓸데없는 거 탐하는 걸 탐연이라고 그래요. 인간은 쓸데없는 거 탐하다가 지옥 가거든요. 그거 없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데, 필요 없는 거 구하다가 지옥 가요. 이거 참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사는데 아무 지장 없는 거, 그걸 자꾸 구해요. 예를 들면 얼굴이 태어난 대로 한 평생 살면 되는데, 내 얼굴은 내 눈에 보이지도 않아. 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얼굴을 고치다가 평생 살다 죽어요. 그래가지고 그 여러 번 고친 얼굴이 화장막에 들어가면, 고친 얼굴이나 안 고친 얼굴이나 한 줌의 잿더미로 변해버리는데 그거를 위해서 그냥 애를 쓰는 게 없나. 참 쓸데없는 이름 하나 얻으려고 평생 고생하는 사람이 없나. 그걸 탐연이라고 그래요. 탐하고 연연한다고. 그걸 미혹이라고 그러거든요. 마음에는 일체탐연미혹이 없어지고. 

        참선자는 화두 의심이 다 홀로 드러나고(參禪者 疑團獨露), 염불자는 삼매가 그대로 이어지고(念佛者 三味現前), 간경자는 혜안을 얻고(看經者 慧眼通透), 병고자는 바로 낫고(病苦者 即得快差), 직무자는 자기 직무를 수행하고(職務者 隨分成就), 삼장은 돈제하고(三障頓除), 삼장이라는 거는 혹장, 업장, 미장, 미혹한 장애, 업을 짓는 장애, 고통 장애, 이게 혹업고 3장인데, 삼장은 모두 없어지고, 오복은 나날이 불어나고(五福增嵩), 또 삼업은 다 청정하고(三業皆清淨), 신구의 삼업, 봉지제불교(奉持諸佛教),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다 받들어 간직하고, 화남대성존(和南大聖尊)하고, 불법승 삼보께 다 예경을 올리고 귀의하고, 구호길상하고(俱護吉祥), 길상은 좋은 건데, 좋은 거는 다 이렇게 보호해서 이루고,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密), 큰 지혜로 피안 해탈 세계에 도달하기를 원합니다. 

        이게 이제 중단축원이에요. 이렇게 축원을 하면 반드시 이렇게 된다. 시작은 바로 결과다. 하나가 있으면 반드시 둘이 있다 이거죠. 하나 없는 둘은 없다 이거예요.

 

 

向祝 : 種種因緣 迴向祝願 (靈壇祝願)

향축 : 종종인연 회향축원 (영단축원)

表白祝願(表白文)

표백축원(표백문)

黃梅山下(靈鷲山下)親傳佛祖之心印 臨濟(創建祖師)門中

황매산하(영취산하)친전불조지심인 임제(창건조사)문중

永作人天之眼目 不忘本誓 速還娑婆 普利群生之大願

영작인천지안목 불망본서 속환사바 보리군생지대원

        그다음에는 영단축원(靈壇祝願)인데, 영단축원은 종종인연(種種因緣)으로 제사를 지냈으면 제사 지낸 그 인연으로 뭔가 바라는 원력이 있어요. ‘오늘 제사 지내면 제사 지낸 그 조상이 어떻게 되기를 바란다.’ 이런 거거든요. 종종인연으로 회향하는 축원이다, 이게 영단축원인데, 영단축원은 큰 스님들에게 하는 축원이 있고, 보통 제사 지낼 때 하는 축원이 있는데, 큰 스님들이 돌아가셨을 때 하는 걸 표할 표자, 표현한다는 표자, 고백할 백자, 표백(表白)이라 그래요. 여기는 <앙고> 이렇게 안 해요. 영단에서는. 앙고는 이 상단하고 중단 불보살단하고 신중단에만 <말씀을 올립니다.> 이렇게 하고, 제사 지내는 영단에서는 표백이라고요. 표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면 그 표백이 뭐냐. 우리 이제 보통식으로 <6조가 황매산 5조 홍인 대사한테 가르침을 받았다.> 이제 이걸 믿는 게 선종이거든요. 그래서 조계종은 선종이 중심이라, 지금까지 한 것이 황매산하에서 친전불조지심인(黃梅山下(靈鷲山下)親傳佛祖之心印)이라고, 황매산에서 친히 부처님 조사의 마음을 전했고, 또 동아시아 선종은 다섯 종파가 있는데, 거기서 이제 임제종이라고 있는데, 그 조계종은 임제종하고 가깝다. 그래서 임제문하에서, 임제문중에서 영작인천지안목(永作人天之眼目)이라, 영원히 인천의 눈이 되기를 원한다. 이렇게 그 큰 스님 돌아가신 분에게 표백을 해요. 그게 영단축원이에요.

        그리고 불망본서(不忘本誓)하고, 다 광도중생하는 게 불교의 본원이거든요.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게 불교의 본원이요, 그래서 그걸 본서라고 그래요, 본래 서원이라고. 본래 서원을 잊지 말고 속환사바(速還娑婆)하야, 속히 사바세계에 다시 오셔라. 오시면 저들이 잘해줄 건가. 잘해 줄 만한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냥 오시라고 그래요. 우리는 가만히 있을 테니까 좀 더 잘해달라고. 속환사바하야 보리군생(普利群生)하소서. <여러 중생들을 널리 이롭게 하소서.> 하는 이런 원을 말한다. 보리군생지대원(普利群生之大願) 이렇게 하고요. 

 

罷散祝願(罷散偈)

파산축원(파산게)

十方諸佛刹 莊嚴悉圓滿 願垂歸淨土 哀念忍界人

시방제불찰 장엄실원만 원수귀정토 애념인계인

        또 제사 지낼 때 있는데 이건 이제 파산게(罷散偈)라고 그러는데, 끝맺을 파자가 있어요. 그리고 흐틀 산 자가 있는데, 이게 다 흐틀 산 자도 일을 마친다는 뜻이고, 끝맺을 파자도 일을 마친다는 파잔데, 제사를 이제 마치면서, 제사를 다 끝내면서 말을 할 때, 이게 파산축원인데, 시방제불찰(十方諸佛刹)장엄이 실원만(莊嚴悉圓滿)이니, 시방에 있는 모든 부처님 나라에, 장엄이라는 거는 복덕과 지혜, 여러 가지 광명, 또 수명, 온갖 이런 게 장엄인데, 장엄이 다 원만하고 구족하다. 그러니까 그 장엄된 부처님 나라에 가면, 귀정토(願垂歸淨土)하면, 부처님 그 장엄이 정토인데 장엄정토, 이걸 불찰장엄정토라고 그래요. 불찰장엄정토. 불찰장엄정토에 돌아가시면, 애념인계인(哀念忍界人)하소서. 인계라는 건 사바세계의 중생세계인데, 중생세계의 사람들을 자비롭게, 슬플 애자를 썼는데, 자비롭게 생각을 하소서 이랬어요. 극락세계에 가면 거기서 혼자 살지 말고 극락세계의 모든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자비롭게 생각해 주십시오. 빨리 돌아오라는 소리에요. 아이들이 자기들이 아이 낳고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봐달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 거지. 가서 왜 와. 거기서 가만히 놀지. 왜 다시 와서 또 저들 봐달라고. 그게 제사를 떡 지내고 빨리 다시 와서 우리를 살펴주십시오. 이게 영단축원이거든요.

 

迴向祝願(迴向偈)

회향축원(회향게)

火蕩風搖天地壞 寥寥長在白雲間

화탕풍요천지괴 요요장재백운간

一聲揮破金城壁 但向佛前七寶山

일성휘파금성벽 단향불전칠보산

         그리고 이제 보통 시식하는 축원에도 이제 회향이라고 하고, 회향게(迴向偈)라고 그러는데, 지금도 저기서 밖에서 제사 회향을 지금 하고 계시네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위패를 태우고, 다 이제 마지막 순서를 행할 때, 그때 뭐 심정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걸 말하는 게 여기 이제 회향게인데, 회향축원이죠. 그 회향축원이 어떤 거냐면, 화탕풍요천지괴(火蕩風搖天地壞)라도, 화탕이라는 건 불이 세상을 다 태우고, 풍요라고 하는 건 바람이 세상을 다 날려도, 이 소리에요. 그래서 하늘과 땅이 다 부서져서 없어지더라도, 이 불찰장엄정토 극락세계는, 그 불이 타던 바람이 불든 아무 지장을 받지 않고 요요장재백운간(寥寥長在白雲間)이라, 고요히 고이 참 높은 흰 구름 속에 그대로 있다. 천지가 무너지든, 뭐 몸이 없어지든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 극락세계가 이렇게 완연하고 분명하다, 이렇게 말을 해요. 일성휘파금성벽(一聲揮破金城壁)하나니, 요령 쫙 흔들고 마하반야 한 소리 딱 할 때, 극락세계를 가로막는 금성벽, 그냥 무쇠 쇠덩어리로 쳐놓은 벽이라도 다 염불 한 마디, 이 요령 소리 한 마디에 다 부서진다. 그래서 극락세계로 가는 길에 장애 가림막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단향불전칠보산(但向佛前七寶山)하십시오. 오직 부처님 칠보산, 칠보라고 하는 거는 온갖 좋은 게 가득한 걸 칠보라고 하거든요. 그 부처님 극락정토 칠보산으로 오직 향해 가십시오. 이렇게 하는 게 그 영단 축원 마지막 축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축원을 잘하면 이 축원이 바로 성취다. 그러니까 이렇게 축원하는 게 성취지, 축원하는 거 따로 성취가 있는 게 아니다. 이걸 가르치고 있거든요.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