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일요법회]6월 5일 일요가족법회 법문 2022-06-05

  

       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더워졌죠. 절기 적으로도 더울 때가 됐어요.

       다들 건강을 조심하고 내 몸을 살피셔야 해요. 특히 음식을 조심스럽게 드셔야 돼요. 이열치열이거든요. 우리 위장이 제일 먼저 음식을 받아들이는데, 위장은 화생토입니다. 위장은 따뜻한 기운이 들어와야지 움직이는 겁니다. 그런데 찬물을 자꾸 마시게 되면 위가 위축이 되어서 다른 힘든 나쁜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께 신심(信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게 신심입니다. 신심은 곧 공덕의 어머니가 됩니다. 공덕이라는 것은 내가 짓고 내가 한 행동인데, 선한 행위가 쌓여서 미래를 좌우하는 게 공덕이에요. 불교에서 말하지 않아도, 사회생활에서 신뢰라는 건 너무 중요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믿지 않고, 부부가 서로를 믿지 않고, 학생이 스승을 믿지 않고, 친구가 친구를 믿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괴로움이에요.

       우리 불교는 믿음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심, 믿을 신자, 마음 심자, 믿는 마음. 딱 마음을 믿게 되면 결정심이라 그래요. 내가 일단 그 사람을 믿었기 때문에 믿으면 하나가 되는 거, 하나가 되어서 결정심이 생기게 되는 거예요. 이럴까 저럴까가 아니라 결정심이 생기기 때문에 신심을 다른 말로 결정심이다, 또는 일심이다, 한마음이 되었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생기면 그다음에는 내가 무엇을 하겠다.’라는 나의 꿈이 발견이 돼요. 그것을 우리는 원력(願力)이라 그러죠. 원력, 내가 하고자 하는 원할 원자, 힘 력자, 꿈을 발견할 수 있어요. 믿음이 생기면 내가 뭐를 해야 되겠다라는 결정이 내 스스로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이 생기면 그다음에 원력이 생긴다. 원력이 생기면 그다음에는 열심히 마음을 모아서 정진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제 이 길이 맞다. 맞다고 생각하면은 그거를 그냥 열심히 내가 정성을 들인다. 정성이라는 것은 진실한 마음을 그대로 행하는 게 정성이에요.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거, 진실한 마음을 이게 맞다고 내가 생각했으면 끊임없이 부단히 그것을 하다가 보면 그다음에는 공덕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공덕, 공덕은 선근이 쌓여서, 내가 잘한 일이 거기에 축적이 되어서 나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걸 공덕이라고 하고, 공덕, 원력이 있으면 가피가 있어요. 가피나 공덕이나 같은 말이에요. 내가 받는 거, 그걸 받을 수 있으면 그런 다음에 성도가 되는 거예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거예요.

      그 제일 밑바탕이 믿음이에요. 우리 한문화 체험관의 지하가 흙다움이죠. 그 믿음은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한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흙에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처럼, 뿌리와 같은 거예요. 그 뿌리가 깊이 박히고, 그다음에 원력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열심히 하는 건 줄기, 그다음, 뿌리가 깊고 줄기가 튼튼하면 그다음에 뭐가 생겨요?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얻을 수 있잖아요. 열매를 얻는 것이 공덕의 과예요. 그렇게 하는 거를 신심이라고 해요.

 

       그러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걸 믿느냐. 우리는 뭐를 믿고 있어요?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있어요.

부처님 말씀 이전에 동양은 주로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한국은 유교 사상이 뿌리를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유교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어질 인자()입니다. 어질 인자. 어질 인자는 관계에요. 사람 인 변에 두 이자이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 관계를 잘하는 사람은 분명히 성공을 합니다. 그리고 유교에서는 어질 인자는 나의 씨앗이다.’라고 얘기해요. 내가 분자가 되는 씨앗이다. 이렇게 해서 논어에 보면 어질 인자, 배울 학자가 제일 첫 번째에 나오는 겁니다. 배울 학자. 인의예지, 성인이 말씀하신 거를 깊이 배워서 그걸 내 거로 습득해서 살다가 보면 만족한 삶을 살고 군자가 된다. 이렇게 가르치거든요.

       그러면 도교에서는 유불선이잖아요. 도교에서는 또 뭐라 그러느냐. 도교에서는 제일 첫 글자가 도라는 글자에요. 도덕경에 보면 도는 뭐냐. 무위자연(無爲自然), 자연이 돌아가는 섭리를 우리가 배우면 너무 행복하고 부족함이 없이 만족하게 살 수가 있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어요. 그래서 그 도라는 건 이 자연이 내가 뭔가를 계속 채우려는 마음, 이 마음을 버리고 계속 아는 것도 들어내고, 가진 것도 들어내고, 이렇게 해서 계속 들어내라, 비워라. 이게 도교에서 가르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그럼 부처님은 뭐라고 말씀을 하셨느냐. 부처님은 각()을 말씀하셨어요. , 깨달을 각자. 그럼 이 깨달음이라는 것은 뭐예요. 깨달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없는 것을 알아내는 게 깨달음이 아니에요. 내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몰랐던 것을 아는 게 깨달음이에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거를 알아내는 게 깨달음이거든요. 그러면 뭐를 알아냈느냐. 생사대사(生死大事), 우리가 밥 먹고 생활하고 나고 죽고 하는 것이 곧 해탈이더라. 그래서 생사대사가 곧 번뇌와 고통이 아니고 그게 곧 적멸이더라. 생사대사는 곧 적멸이다. 그 마음의 차이거든요. 마음의 차이. 그래서 우리 진관사에서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하지요. 누가? 내가. 내가 부처라는 거를 알면 이걸 믿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죠. “마음의 정원 진관사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스님이 계속 주장을 해요. 당신은 부처고, 우리 엄마도 부처고, 우리 아들도 부처고, 우리 선생님도 부처고, 다 부처님이다, 그거를 이제 인지를 했어요. 그걸 믿었어요. 믿으면 믿음대로 부처님처럼 내가 행동하고 보는 것도 부처님처럼 봐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색안경을 끼고 나를 보게 되고, ‘내가 뭐 스님이 말해도 거기 내가 뭐..’ 이러면서 스스로를 자학하는 거. 자신감이 없는 거예요. 자신감. 스스로 자자에 믿을 신자. 스스로를 믿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 믿음이 나의 팔자를 바꾸는데 근본입니다.

       믿음이 형성이 되면 그다음에는 방향이 설정이 됐어요. 내가 뭐를 해야 되겠다라는 원력, 꿈이 생겼어요. “난 부처님처럼, 스님께서 부처님처럼 행동하면 내가 행복하다니까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면 그렇게 행동을 하려고 하는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고질병이 있어요. 믿으라 해도 이게 안 되는 거예요. 무슨 고질병이냐. 매일 치료를 하고 약을 먹는데도 죽을 때까지 치료가 안 되는 병이 있어요. 뭘까요?

       첫째는, 배고픔이에요. 밥 한 끼 먹으면 그다음 배가 안 고파야 하는데 시간이 되면 또 배가 고파요. 그래서 평생 먹는 거예요. 그것도 잘 먹으면 되는데 탐욕으로 먹고, 잘못 먹고. 이게 고질병이에요. 배고픈 병. 근데 이제 다 치료가 됐나 하고 먹기 싫어서 안 먹으려니까 죽더라 이거에요. 할머니들이 그러시잖아요. ‘아이고 물도 안 넘어간다.’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아이고 입이 모래알 씹는 것 같다.’ 이게 죽을 때가 다 됐다 이 말이에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질병이 배고픈 병이고, 그거보다 더 중병이 또 하나 있어요. 만족하지 못하는 병이에요. 만족하지 못하는 병이 두 번째 고질병이에요. 그러니까 이걸 하면 좋을까 저걸 하면 좋을까. 특히 만족하지 못하는 게 부모와 자식 관계에요. 예를 들어 아들이 핸드폰을 사달라고 졸라서 핸드폰을 사 주고 나면, 엄마 입장에선 아들이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들을 거 같죠. 그러나 하루, 이틀, 일주일까지는 그 핸드폰에 빠져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엄마 자전거 사줘이렇게 되는 거예요. 근데 그것뿐만 아니에요. 그냥 이걸 가지면 저걸 가지고 싶고. 그중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게 수명이에요. 백 살을 산들 여러분들 죽고 싶다고 말하겠어요? ‘아 나는 죽고 싶어.’ 는 세계의 3대 거짓말에 들어간다잖아요. 수명, 만족하지 못해요. 배 속에서 죽는 사람, 한 살이 되어서 죽는 사람, 또 어린아이가 되어서 죽는 사람, 노인이 되어서 죽는 사람, 다 죽는데, 죽을 때 나 잘 죽는다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저는 여여하게 가신 분을 보았습니다. 우리 진자 관자 진관스님은 손을 흔들면서 모두 무병장수하라, 고맙다,’ 그렇게 하고 제 손을 잡고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 아무 소용이 없다. 복을 지어라. 복을 지으면 네가 살기가 좋고, 네가 지은 복으로 많은 사람이 편하게 산다. 마음을 닦아라.’ 이런 말을 하면서 여여하게 가셨어요. 저희 스님뿐만 아니라 많은 선지식들이 그렇게 가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부처님도 역시 그렇게 가셨어요. ‘나는 이제 갈 시간이다. 내가 없더라도 법을 믿고, 너 자신을, 자신의 마음을 밝혀라.’ 그래서 자등명 법등명을 말씀하셨거든요. 그다음 재산이에요. 한 개를 모아놓으면 두 개를 가지고 싶고. 그 말에 맞는 속담이 있죠. <말을 구하면 경마잡히고 싶다>는 말이요. 사람의 가지고 싶어 하는 그런 물욕, 이게 만족을 못하게 해서 우리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해요. 또 하나는 명예에요. 명예도 마찬가지예요. 회장, 국회의원, 대통령... 내 자식에게 권한을 물려줄 때도요. 자식 몇 남매 중에서 누가 나한테 잘할까. 그 사람한테 물려주고 싶어요. 권세를 가지고 싶어 하는 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하지 못해요.

 

        그러면 <내가 내 스스로 만족한다> 그 말이 뭐냐. 오유지족(吾唯知足). 나는 오직 만족할 줄 안다. 이 말을 옛날에 칠보사에 석주큰스님이,-저는 그때 그 당시에 무슨 말씀인지 몰랐어요,- ‘이거 최고 부자 부적이야하셨어요. 이 부자 부족을 96살 먹은 노스님이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100장 이상을 쓰신다는 거예요. 그냥 붓을 띄지 않고 오유지족을 그렇게 쓰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 그걸 붙여놓으면 부자가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내 스스로가 만족하면 사고를 당해도 아이고 큰 일 날 뻔했어. 내가 죽을 뻔했네. 이만하니 다행이다.’ 이러면 아픔이 좀 덜해요. 항상 만족할 수 있는 거, 이거를 배우는 거에요.

       그러면 어떻게 만족을 하는가. 그게 믿음이에요. 믿음. 곧 현재의 내 마음이 부처다. 그러면 내 마음이 부처인 줄을 내가 봐야 돼요. 내가 봐야지 내가 부처인지 알죠. 그러면 보는 연습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게 뭐냐면 염불입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우리 여기 있는 어린이, 청소년 친구들은 잠자기 전에 관세음보살을 매일 하는 거에요. 매일 그러면 내 입에서 그냥 자동으로 관세음보살이 나오게 돼요. 내 입에서 좋아도 관세음보살이 나오고, 싫어도 관세음보살이 나와요. 그걸 안 하고 그냥 스님이 마음을 봐라하니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만히 앉아 있다고 마음이 보이지는 않아요. 마음을 고요하게 해야 해요. 고요하게 하는 게 명상이에요. 그리고 고요해지지 않으면 염불을 하는 거예요. 안 되면 절을 해요. 절을 자꾸 하다가 보면 마음이 훈훈해져요.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 내 자신이 보이기 시작해요. 그게 정진이에요. 그게 원력이에요. 자꾸만 자꾸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해야 되는데 그거는 안 하고, 나무를 땅에 심어야 되는데, 믿음으로 심어야 줄기가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는데, 종이에 그림만 그리는 거에요, 나무를. 그림을 그리면 나무 열매가 열려요? 꽃이 펴요? 안 열려요.

 

       우리 진관사 신도님들은 이 진관사를 믿고, ‘여기는 깨달음의 도량이다, 나를 발견하는 도량이다, 내 꿈을 이루는 도량이다, 나는 분명히 행복해질 수 있다’, 이 마음, 한 마음, 이 믿음을 가지신다면 여러분들은 최고의 가치를 이룰 수 있어요. 안 되는 게 없어요. 내가 가진 잘못을 보고 트집을 잡고 비방하고 그러면, 내가 전생에 업이 많아가지고 -업이라는 건 내가 그렇게 익힌 습관이 더 많다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 일어나면 오늘부터는 얼른 이쪽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부처님 마음으로 돌리는 거, 이거 제일 빨리 돌릴 수 있는 게 관세음보살이예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러면 경계에 내 마음이 쫓아가지 않아요. 내 마음이 그쪽으로 쫓아가는 생사,- 부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거든요,- 생사대사 생로병사 우비고뇌. 그러니까 태어나고 죽고 생활하고 거기서 우비고뇌, 슬프고 괴롭고 이런 것이 곧 생사해탈이다. 그게 다른 게 아니다. 중생이 곧 부처다. 니가 곧 부처다. 이거를 믿어라. 그걸 믿는 것이 신심이다. 여러분들은 다 믿어요? 믿죠. 그걸 믿었으면 이제 가는 거예요. 열심히 공덕을 닦아가는 거에요. 닦아가면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된다? 정성스럽게 해야 된다. 정성이라는 건 참된 마음을 최선을 다하게 쓰는 마음이 정성이에요. 지극정성. 뜻을 모아서 지극하게 참된 마음을 행하는 거, 그게 예배예요. 예배. 여기 부처님께 와서 예를 하고 기도를 하고 이렇게 하면 자연적으로 좋은 행위가 계속 축적이 되어가지고, 그 축적이 된 걸 우리는 공덕이라고 얘기해요. 공덕이 축적되면 어떻게 되느냐. 분명히 부처를 이룰 수가 있다. 내가 나를 부처로 보고 그러면 세상이 다 부처님 세상으로 바뀌고 어떤 경계에도 부처님 시방 세계가 다 들었다 했거든요. 부처님으로 본다면 이게 얼마나 좋겠어요.

       특히 우리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은 어마어마한 희망이 있어요. 복이 있으니까 이렇게 와서 법문을 듣고 내 꿈을 발견할 수 있게 그 길로 벌써 입도, 도에 들어간 거예요. 내가 가진 것을, 내가 공부 한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니까 더 행복하더라 이거예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머리가 좋으면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살게 이끌어주고 발견해주고 시스템을 구축해주고 이렇게 해주면서 내가 기쁨을 얻는 거예요. 또 내가 돈을 많이 벌었다면 기부를 하면서 내가 기뻐져요.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좋은 일을 하니 공덕이 자라더라, 좋은 일이 쌓이더라, 이거예요. 이렇게 되니까 내가 너무나 행복하고 늘 만족하고 고질병이 없어져요. 그러면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들어있고, 하나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들어 있으니 참 고맙습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우리 아들 감사합니다.’

       특히 자식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되겠더라고요. 서로 그 집착만 없으면 자유로워요. 집착을 내려놓고 그냥 그 아이가 꿈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또 모든 거를 지금 이렇게 어린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다 해주면 안 돼요. 경험을 쌓게 해줘야지, 부모들이 다 해주면 이 아이들의 권한을 뺏어서 자기만족을 하고 있는 거예요. 뭐든지 그냥 아이들이 하게 해주세요. 지금 어렸을 때 자기가 할 수 있는 힘을 확장하고 경험을 쌓게 해야합니다. 우리 진관사가 인생학교라고 제가 얘기를 하죠. 인생학교에서 그걸 배우고 또 서로 가르쳐주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마음에 정원 진관사가 신심을 구축하게 되고 나의 원력을 이루게 되고 가피를 받게 되는 그런 시간이 될 것 같고 좋은 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처님이다. 내 옆에 있는 분이 부처님이다. 내가 하고 있는 행위는 지혜로운 행위다’, 반야심경에 정답이 다 나와 있어요.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은 다 허망하거든요. 이거 지금 시계라고 말할 수 없어요. 시계를 해체해 보니까 플라스틱이고 하나의 철이고 건전지가 들어있고 어느 걸 보고 시계라고 말하겠어요. 그래서 오온이 공한 것을 여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반야심경을 매일 읽으세요.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 -반야라는 말은 지혜거든요. 지혜라는 것은 부처님 마음, 밝고 맑은 공덕이 되는 그 행위 그게 지혜예요.- 반야를 행하게 되면 어디에 도착하게 되느냐. 해탈의 경계, 적멸의 세계에 갈 수가 있다. 그 내용이에요. 사리자는 누구를 얘기하냐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사리자라고 해요. 나라고 지칭하면 돼요. 내 스스로에게 반야심경을 매일 읽어주는 거예요. 내 모든 세포에게 반야심경을 읽어주면 몇 개만 기억하고, 오늘은 이만큼 기억하고, 내일은 이만큼 기억하고, 그게 점점점점 쌓이고 쌓이면 내 온몸이 다 반야바라밀로 바뀌어요. 마음이 그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합시다.

      다 같이 합장해 보세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법문은 신심을 가지고 내가 부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공덕(功德), -공에 힘 력자거든요.- 나의 재능을 가지고 힘껏, -덕이라는 것은 행하다,- 바른 마음을 향해서 노력해 나가는 것이 공덕이에요. 내가 바른 마음을 가지고 행해서 계속 그 재능을 축적해 가는 게 공덕이에요. 그렇게 되면은 결국 내가 행복하고 모든 것에 만족하고 이렇게 살 수가 있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