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49재] 1월 1일 49재 법문 2024-01-01

 

  

금일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生也猶似 水中印月 死也還是 無跡晦月

생야유사 수중인월이요 사야환시 무적회월이라

隨緣隱現 依舊如然 一輪空月 孤朗碧天

수연은현은 의구여연이나 일륜공월은 고랑벽천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오늘 이렇게 영가를 극락세계 보내기 위해서 재를 모시고 공덕을 닦고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극락 가는 길이 너무도 쉽고 가깝고 간단하니까, 오늘 재를 잘 모셔서 극락세계 바로 가시도록 잘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법은 생사는 없고, 마음은 항상 하고, 머무는 데는 극락이다. 이걸 깨달으셨어요. 생사는 없다. 본무생사(本無生死), 마음은 항상 하고 일심은 상주하고, 본무생사 일심상주(常住). 항상 상, 머물 주. 생사는 본래 없고 마음은 항상 머물러 있고, 항상 머무는 한마음이 있는 곳은 극락세계다. 그걸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극락세계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얻은 곳이에요. 극락세계는 건축하듯이 만든 데가 아니고, 깨달음으로 얻어진 것이다. 예를 들면 꿈에서 굉장히 고생을 하다가 꿈을 탁 깨니까 그 꿈에서 본 건 없고 본래부터 있는 평시현상을 얻었다. 그러면 그 평시 현상을 사람이 손으로 만들었냐? 아니고 꿈을 깸으로 말미암아 평시 현상을 얻었다 이거죠. 그럼 평시 현상을 어떻게 이뤘느냐. 꿈을 꿨기 때문에 이룬 거죠.

        그럼 생사가 왜 있냐. 한마음이 미혹해서 생사가 있고, 한마음이 깨달음을 얻으면 한마음은 항상 하고 극락세계는 여전하다. 그걸 깨달은 게 부처님이거든요. 생사는 본래 없고 한마음은 항상 하고 극락세계는 그대로 있다.

        그래서 첫마디가 생야유사 수중인월이요(生也猶似 水中印月),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거와 같다. 달이 물속에 비춰서 물가에 가서 보면 달 모양이 보이는데, 달이 물속에 떨어진 것도 아니고 물이 달 있는 대로 올라간 것도 아니고, 그냥 보이는 거예요. 이걸 인연법이라 그래요. 물도 가만히 있고, 달도 가만히 있는데, 그 물가에 가면 물속의 달이 보인다. 그게 인연법이다. 이 죽고 사는 건 다 인연법으로, 현상은 보이는데 실상은 없다. 사야환시 무적회월(死也還是 無跡晦月),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또한 무적회월, 자취없는 그믐달과 같다. 그믐날 되면 달 모양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모양만 안 보일 뿐이지 달은 그대로 있다.

 

        수연은현(隨緣隱現), 인연 따라서 달이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는 것은 의구여연(依舊如然)이나, 옛날부터 그냥 항상 있는 일이나, 일륜공월(一輪空月), 하나의 둥그런 달바퀴가 허공에 그대로 있는 것이 공월인데, 물속에 비친 달을 수월이라고 하고, 물 수자, 허공에 있는 달을 공월이라 그래요. 일륜공월은, 한 일자, 바퀴 륜자, 하나의 둥그런 모양으로 보이는 허공의 달은 고랑벽천(孤朗碧天)이라, 홀로 밝다. 이걸 고랑이라 그래요. 외로울 고자, 밝을 랑자. 푸른 하늘에 홀로 밝다. 물속에 달이 보이든 그믐달이 돼서 달이 안 보이든, 초생달이든 또 지는 달이든 뜨는 달이든 여러 가지 모양이 있지만, 실제 달은 일륜공월인데, 한 바퀴 허공달인데, 푸른 하늘에 홀로 밝은 것이 한 바퀴 허공달이다.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기도 하고, 늙기도 하고, 세상을 떠나기도 하는데, 이 일심상주, 상주일심, 항상 머무는 한 마음. 마음이 항상 머무는 세계는 달이 보이든 안 보이든 아무 상관없이 홀로 밝은 거와 같이 생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거죠. 그걸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일심은 항상 머물고 생사는 본래 없다는 걸 딱 깨닫는 순간에 그것이 생사해탈이고, 그것이 극락왕생이에요.생사해탈 극락왕생. 본무생사 일심상주. 그 도리가 극락세계 가는 도리에요.

 

一切唯心 心外無法

일체유심 심외무법

心外無法 一切唯心

심외무법 일체유심

 

        그럼 이제 불교에서는 뭘 가르치느냐. 모든 것은 마음이다. 생사도 마음이고, 극락도 마음이고, 해탈도 마음이고, 그래서 일체가 유심(一切唯心)이다. 일체가 오직 마음이다. 이게 부처님이 깨달은 거예요. 일체가 유심이다. 심외무법(心外無法)이다. 마음 밖에는 없다. 무법, 없을 무, 법 법. 법이라는 건 사물인데, 마음 밖에는 사물이 없다. 모든 사물이 오직 마음이다. 심외무법이니, 마음밖에 법이 없으니 일체의 유심이라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 하나를 딱 챙겨서 마음속에 머물고 마음속에 자재하면 그것이 극락세계죠. 일심에 자재하면 극락세계다. 사물에 출몰하면 그것이 생사윤회다. 물건 따라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 그게 생사윤회고요. 일심 한마음에 자재하면 극락세계다. 이 도리가 극락 가는 도리거든요.

 

        그러면은 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어서 극락세계 항상 계시는 거 하고, 중생이 늘 죽고 사는 거 하고, 이게 전부 한마음에서 이루어지는데, 죽고 사는 마음에서 죽음이 없는 세계로 가는 게 극락왕생이거든요. 근데 죽고 사는 것도 마음이고, 극락세계도 마음이니까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는 거예요, 이 극락왕생이라는 게. 무슨 차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는 게 극락왕생이다.

 

見聞覺知 受想行識 生老病死 憂悲苦惱

견문각지 수상행식 생로병사 우비고뇌

寂照圓明 靈明性覺 莊嚴淨土 極樂世界

적조광명 영명성각 장엄정토 극락세계

一心迷惑 生老病死 一心智德 極樂世界

일심미혹 생로병사 일심지덕 극락세계

一心迷惑 依根意識 : 觸境發識 了別境界

일심미혹 의근의식 : 촉경발식 요별경계

          ②獨頭意識 : 業識所現 無物見物

          ②독두의식 : 업식소현 무물견물

一心智德 般若智見 : 照見空相 智到彼岸

일심지덕 반야지견 : 조견공상 지도피안

           ②菩提智光 : 大寂光明 普照法界

           반야지광 : 대적광명 조견법계

菩提智光 : 寂照心 圓明心 普照心 靈明心

반야지광 : 적조심 원명심 보광심 영명심

 

具足一切智 遍知一切法

구족일체지 변지일체법

一切國土中 一切無不現

일체국토중 일체무불현

(화엄경, 여래현상품)

 

 

        그러면 이 마음이라는 게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마음이 있어요. , 보는 마음, , 듣는 마음, , 느끼는 마음, 미각, 혀로 느끼고 몸으로 느끼고, 후각, 코로 느끼고, 안이비설신 이러거든요. 또 생각으로 느껴요. 이거를. 지각이라 그래요. 이것이 수상행식(受想行識)을 해요. 견문각지로 수상행식을 한다. 받을 수, 감수를 해요. 또 이걸 상상을 해요. 그게 상이에요. 행동을 해요. 인식을 해요. 이걸 중생심이라 그래요. 견문각지 수상행식이 일심을 미혹한 중생의 마음이다, 이렇게 가르쳐요. 그래서 마음은 중생심이 있다. 그 중생심 중에 이제 범부중생이죠. 범부심. 범부의 마음은 견문각지 수상행식,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감수하는 마음, 상상하는 마음, 행동하는 마음, 인식하는 마음, 이놈을 가지고 살아요.

 

        그래서 뭘 느끼냐.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느껴요. 생로병사. 또 생로병사에는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있어요. 근심 우, 근심이 자꾸 생겨. 슬플 비, 슬픔이 생겨. 비애가 생겨. 고뇌, 괴로움이 생겨, 걱정이 생겨. 이게 범부의 마음인데 이걸 범부심이라고 하거든요. 이거를 어려운 말로 의식이라 그래요. 의식. 그 마음에는 이렇게 의식심이 있다. 그러면 이 의식심은 이 몸으로 느끼는 의식이 있어요. 이걸 의근의식(依根意識)이라고 그러는데, 의지할 의자, 뿌리 근자. 이 몸을 뿌리에다가 비교해서 눈으로 느끼는 안식. 근데 이게 보통 사람은 눈이 본다 그러면은 눈동자가 보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에요. 눈동자는 뿌리일 뿐이고, 이건 뿌리와 같아. 이 여기에 이제 식이 나오는데, 안근이, 이 눈 뿌리가 촉경을 하면, 경계에 접촉을 하면 거기서 의식이 발동을 한다. 이걸 촉경발식(觸境發識)이라고 그러죠. 촉경발식. 이게 손은 이게 신근 뿌리인데, 이걸 경계라고 그래요. 경계 경자, 경계. 이 대면 이 몸이 이게 바로 느끼는 게 아니라 의식이 몸에 식이 발동을 해서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운명을 했을 때 눈동자는 그냥 있는데 보지 못하면 그건 식이 발동을 안 해서 그래요. 발식을 안 해서 그렇다. 그래서 귀도 마찬가지에요. 이근인데 듣는 뿌린데 이근이 촉경을 하면 소리와 접촉을 하면 발식을 해요. 촉경발식 코도 마찬가지고요. 코는 비근인데 비근이 냄새 같은 데 접촉을 하면 거기서 식이 발동을 해서 느끼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의식은 무슨 특징이 있느냐 하면 전부 경계만 쫓아가는 특징이 있어요. 경계만. 눈에 보이는 거 쫓아가고 귀에 들리는 거 쫓아가고 몸에 접촉되는 거 쫓아가고. 전부 경계만 쫓아가요. 이래서 이걸 이제 의근의식이라, 근에 의해서 이제 식을 발동시키는 의식이 있는데, 또 의식 중에는 독두 의식(獨頭意識)이라고 그래가지고, 홀로 독, 머리 두, 머리 두자는 어조사고 홀로 일어나는 의식이 있어요. 의근의식이라는 건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게 이제 근에 의지해서 느끼는 의식이고 안 보면 안 보여요. 근데 독도의식이라는 거는 이 안이비설신의 눈과 귀가 다 잠들어 있는데 홀로 꿈을 꿔요. 이거는 눈, , , 입 상관없이 홀로 일어나는 의식이다. 이래가지고 독도 의식이라 그래요. 그러면 선정에 깊이 들면 눈으로 보고 귀로 안 들어도 많은 세계가 보이는데, 그런 것도 몸 상관없이 보는 거기 때문에 독도 의식이다. 근데 뭐든지 이 의식은 쫓아가는 의미가 있어요. 쫓아가. 보는 대로 쫓아가고 듣는 대로 쫓아가고 이게 범부의 마음이에요. 그러면 이 촉경발식을 하면, 이 경계에 접촉해서 식이 일어나면, 요별경계(了別境界)라 이 경계를 자세히 살피고 판단하고 취사하고 취하고 버리고 이 짓을 해요. 그게 범부의 범부심이에요. 그리고 독도 의식이라는 건 저 혼자 꿈꾸고 저 혼자 돌아다니는데, 그 녀석은 뭘 하는 녀석이냐 하면, 절대 혼자 다니는 게 아니라 평소에 몸에 익혔던 경험으로 그 의식이 일어나는 거예요. 평소 경험이 없으면 꿈을 못 꿔요. 이걸 평소 경험에 의해서 의식이 일어나는 거를 불교 용어로는 업식(業識)이라고 그래요. 업은 경험이고 의식이 일어나는 건 의식이란 말이지. 업식. 그래서 이 꿈꾸는 내용을 가만히 보면 다 들었던 거, 또 비슷한 거, 보았던 거, 비슷한 거 이런 게 꿈에 보여요. 그래서 그건 업식소현(業識所現)이라, 경험의 인식으로 나타나는 바다. 그래가지고 순전히 자기 경험, 자기 인식으로 무물견물(無物見物)이라, 물건이 없는데 물건을 봐요. 그게 꿈이에요. 꿈에서 본 물건은, 사물은 다 없는 거예요. 근데 자기 경험 자기 인식으로 보는 거예요. 무물견물이라. 어떤 사람이 꿈에 나를 꿈을 꿔서 내가 꿈에 스님하고 같이 있었다 그러는데, 나는 같이 안 있었거든요. 그 사람이 저 홀로 꾼 거예요. 그게 무물견물이야. 내 없는 데서 나를 봤거든. 이런 거를 꿈이라는 건 자기 경험의 인식으로 물건 없는 데서 물건을 보는 거다. 이렇게 인도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중국의 장자라는 사람이 꿈에 나비가 됐는데 이걸 몰랐어요. 꿈에 본 나비와 내가 생시에 사는 나는 어떤 관계가 있나 몰랐던 거예요. 근데 이게 불교에서는 꿈에 나비가 됐다고 하는 것은 업식소현으로 평소 경험이 나타난 바로, 무물견물이라, 나비 없는 데서 나비 본 거거든요. 이 문화라는 게 이래요. 천하의 지식인이고 천하의 머리가 좋은 사람인데 꿈에 나비가 본 거를 해석을 못했어. 이상하다. 근데 불교에서는 업식소연이다. 업으로 나타난 바다, 무물견물이다. 물건 없는 데서 물건 보는 게 꿈이다. 이게 중생심이에요.

 

 

        그다음에 이렇게 살아서 안 되겠다. 이거 깨달음을 얻어야 되겠다. 이게 보살인데, 보살은 지혜심을 가져요. 이런 의식심에서 벗어나서 그 지혜를 인도말로 반야라 그래요. 반야는 경계를 쫓아가는 게 아니고 경계를 바라보는 거예요. 산이 보이면 산을 딱 본다. 이거 조견(照見)이라고 그러는데, 바라볼 조자, 조명할 조자가 있거든요. 볼 견. 사람이 보이면 사람을 딱 본다. 하늘이 보이면 하늘을 딱 본다. 이렇게 보는 대로 쫓아가지 않고 바라보면 공상이라는 걸 봐요. 이게 조견공상(照見空相)이에요. 공상이라는 건 뭐냐. 형상이 나도 난 것이 아니고 형상이 사라져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 불생불멸을 공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반야로 보면 일체 사물이 불생불멸상이다 보는 거예요. 그러면 이 생로병사는 여기 이 세상인데, 불생불멸 세상은 저기 저 세상이에요. 그래서 지도피안(智到彼岸)이라, 그 불생불멸을 보는 지혜로 피안에 도달한다. 이게 보살 마음이에요. 보살 마음은 반야고 범부 마음은 의식이고. 그래서 의식의 마음에서 이제 반야의 마음으로 또 이제 보리의 마음으로 가는 게 극락세계예요. 수속 밟을 것도 없어요. 자리 옮길 것도 없고.

 

        조견공상이라. 딱 생각을 움직이지 말고 바라보면 있는 게 그대로 없는 거와 똑같아요. 그걸 비유로 말하면 얼음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얼음은 없고 물이다. 그래서 얼음 속에서 물을 보는 거예요. 죽고 사는 데서 죽고 사는 게 없는 걸 보는 게 이게 반야다 말이죠. 그걸 보살이라 그래요. 그래서 마하반야 바라밀 이게 불교예요. 반야로 피안에 간다. 죽고 사는 곳에서 죽고 사는 곳이 없는 곳으로 간다. 도피안. 이게 전부 마음으로 되는 거예요, 이게요.

 

        그다음에 삼세제불은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님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데, 큰 깨달음을 이제 이룬 분들인데, 이 생각이 완전한 지혜로 이루어지면 대적광명(大寂光明)이 되요. 자취는 하나도 없는데 항상 비춰. 이게 대적(大寂)이라 큰 대자, 고요할 적자. 이게 해도 자취가 있고 달도 자취가 있고 별도 자취가 있는데 이 보리 광명, 보리는 깨달음이거든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보리 광명은 대적광명이라. 자취가 어디도 없는데 광명이 비춰요. 마음도 찾아보면 없는데 희로애락을 느끼듯이, 자취는 하나도 없는데 늘 밝다. 대적광명. 보조법계(普照法界), 널리 법계를 비춘다. 이게 제불의 마음이에요. 모든 부처님 마음이에요. 범부의 마음은 경계를 쫓아가서 생사윤회하고, 보살의 마음은 형상에서 공상을 봐가지고 피안에 도달하고, 제불의 마음은 자취 없는 광명으로 온 법계를 다 비춘다. 이게 극락세계에요. 온 법계를 다 비추니까 극락세계.

        그래서 이 깨달은 지혜 광명을 적조심(寂照心)이라고 그래요. 적조. 고요하게 비치는 마음이다. 이 적조심에 극락세계가 있어요. 극락세계가 있느냐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데, 이거는 생각으로 골몰하면 극락세계 안 보이고, 고요한 마음으로 돌아가면 극락세계가 그대로 나타난다. 원명심(圓明心)이라 그래요. 둥글 원자, 밝은 명자, 둥글고 밝은 마음. 고요하게 비추는 마음. 둥글고 밝은 마음. 우리 생각이 그렇게 변하는 거예요. 보조심(普照心), 넓게 비추는 마음, 영명심(靈明心), 신령 영자, 밝을 명자, 신령스럽고 밝은 마음. 이 마음은 아주 신령스럽고 밝은 거예요. 사람은 60, 80이 됐는데, 2, 3살 때 거 다 기억해요. 그러면 이 기억이 어디에 들어있느냐. 머리에 들어있느냐. 뱃속에 들어있느냐. 아무리 뱃속 갈라봐도 마음 안 보여요. 그런데 기억은 해요. 그래서 이걸 무표색이라 그래요. 표시 없는 빛깔이다. 그 마음을 무표색(無表色)이라, 마음 표시가 없어요. 근데 움직여. 그래서 그걸 무표색이다. 불교에서 그렇게 가르쳐요. 그래가지고 성불을 하게 되면 의식은 다 소멸되고 지혜가 원만해서, 보살은 피안도 보고 또 생사도 느끼는데 제불 부처님이 되면 생사 의식은 완전히 없어졌요. 그래서 그 생사 없는 광명만 널리 비춘다. 이래가지고 이걸 생사는 하나도 없고 생사 없는 광명만 완전한 걸 일체지(一切智)라고 하는데요. 일체지. 생사가 없고 생사가 없는 지혜, 또 광명이 항상 하고 광명을 비추는 지혜, 이런 지혜를 다 갖췄다고 일체지라고 그럽니다. 일체지, 생사 없는 지혜, 광명을 비추는 지혜, 이걸 구족해서 다 갖추어서 변지일체법(遍知一切法)하고, 일체법을 두루 알고 이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지혜를 얻으면 뭐를 보더라도 불생불멸이오. 일심상주라. 일심은 상주하고 만물은 나되 나는 것이 아니고 죽되 죽는 것이 아니다. 그거에요.

        물속에 온갖 것이 비춘다 하더라도 물을 모를 때는 그 물속에 비추어진 그림자만 막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했는데, 물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 물 속에 뭐가 비추어지고 보여도 물뿐이에요. 그림자는 없는 거예요. 그렇듯이 이 마음을 하나 밝히고 나면 세상 만물이 전부 마음뿐이에요. 세상 만물은 없는 거예요. 그걸 무상하다 그러고 비법이라고 법이 아니다. 무상비법인데 항상함도 없고 법도 아닌데 일심을 몰라서 무상한 거를 영원한 걸로 착각하고 쫓아가요. 법이 아닌데 법으로 알고 거기에 매달려. 그러다가 이제 죽을 때쯤 되면 허망하다는 걸 알고 내가 잘못 살았다 울어. 근데 거기서 멈추지 않아요. 또 다시 보이는 현상을 또 쫓아가. 이게 윤회거든요. 내세에는 뭐 좋은 집에 태어나고 싶다. 좋은 집에 태어나도 그것도 얼마 못 가. 내세에는 좋은 사람 만나고 싶다. 좋은 사람이 그게 몇 년 가나. 결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상대 편이 나의 이상형이다. 그 이상형 지금 모습이 10년도 안 가는데. 10년 후에는 어쩔 건데. 이 사람 아주 미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깨달음을 얻어서 마음에 자재해야 되는데, 만물에 매달려서 생사에 윤회한다. 이걸 지적하는 게 이제 부처님이거든요. 깨달음을 얻어서 만물에 자재하면 되는데, 자재라는 건 뭐냐. 물속에 뭐가 비치던 물은 그대로 물이에요. 사람이 비춰도 물이고 나무가 비춰도 물이고 산이 비춰도 물이고. 근데 물을 모를 때는 물속에 나무가 있고, 사람이 있고 산이 있는 줄로 알아요. 그래서 거기 쫓아가서 그거 건지려고 하다가 건지지 못하고 옷만 다 버리고 고생만 하고 나오는 거지. 이게 중생의 고통이라는 거지. 고통. 그래서 인생사는 물속에서 달 건지는 거다. 달이 보이니까 안 건질 수도 없고, 건지는 거예요. 건져도 건져도 안 건지니까 계속 건지는 거예요. 그러다 기운 떨어져서 이제 가는 거지. 그래서 이 세상에서 뭘 얻어도 오래 안 가요. 그러고 뭘 얻어도 이 코에 숨지는 걸 막을 수가 없어요. 책을 수백 권을 저술해도 코에 숨지는 거 그거 못 막아요. 다른 명예나 재산이나 이런 거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지식이 자기를 구제하지 못한다. 근데 그 한참 그 지식을 추구할 때는 몰라요. 논문 하나라도 더 써서 유명 교수가 되려고 그냥 밤낮없이 고생하거든요. 근데 자기 죽을 때 자기 논문을 보나. 왜냐하면 자기 논문이 그거 별수 없다는 걸 자기는 알거든. 자기도 구제하지 못할 지식을 쌓다가 죽고, 자기 코에 숨지는 거 어쩔 수 없는 거 그거 하다가 죽고 그게 인생이에요. 그걸 안 하면 갑자기 어떻게 해볼 방법도 없고, 근데 마음을 환히 점점 닦아보면 세상사도 어렵지 않게 되고, 마음 닦는 일도 어렵지 않게 될 때가 있는데 그걸 보살이라 그래요. 범부로 있을 땐 잘 안 돼요. 안 돼도 고생하면 돼요. 처음부터 보살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 부처님의 이 보리 광명의 지혜는 일체 국토 중에 일체의 온갖 국토 중에 일체무불현(一切國土中 一切無不現)이라 나타나지 않는 데가 없다.

 

        이게 화엄경 말씀인데 이게 이제 여래의 지혜광명이거든요. 여래의 지혜 광명은 이건 이제 마음은 항상 하고 생사는 본래 없다. 머무는 곳이 다 극락세계다. 그래서 이제 제사 지낼 때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 생각생각이 부처님 깨달은 마음이면, 곳곳이 편안하고 즐거운 극락세계다그렇게 제사를 지내요. 염념보리심 처처안락국. 그러니까 오늘 영가께서 이런 세계로 잘, 한 생각 돌이켜서 바로 가시라. 기차표 예약할 것도 없고, 뭐 비행기표 알아볼 것도 없고, 앉은 자리 방석에서 떠날 것도 없고, 바로 가시라, 이런 말씀이거든요.

 

지심제청 지심제수

法性圓融 常住法界 莊嚴淨土 極樂世界

법성원융 상주법계 장엄정토 극락세계에

一念往生 一念往生 無盡受樂 無盡受樂

일념왕생하시고 일념왕생하시여 무진수락하고 무진수락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얼음을 이제 큰 덩어리 얼음, 작은 덩어리 얼음, 뭐 여러 가지 조각된 얼음을 녹이면 똑같은 물이에요. 그래서 얼음 모양은 다 다른데 물은 똑같다. 이걸 원융이라 그래. 원융 막힘없이 융통한다 이거거든요. 이게 상주법계에요. 법성원융은 상주법계라(法性圓融 常住法界). 항상 머무는 세계다. 근데 장엄정토(莊嚴淨土)예요. 여러 가지로 이제 만들어 놨는데 그게 청정심으로 보면 전부 다 깨끗하고 한마음이 청정하니까 온 사물 세계가 다 더러움이 없더라.
        그래서 이게 이제 오늘날도 큰 정신 건강의 문제인데,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원망하고 자기가 무서워하는 건 전부 그게 자기 노이로제, 자기 스트레스예요. 자기 생각은 다 자기 노이로제다. 노이로제라는 건 쉽게 말하면, 가진 걸 모르는 게 노이로제다. 내가 많이 가지고 있는데 자기 가지고 있는 걸 하나도 몰라. 그리고 안 가진 것만 더 가지려고 그래요. 그게 스트레스거든요. 그게 전부 자기 문제예요. 원망하는 것도 내 문제고, 두려워하는 것도 내 문제고, 근심 걱정하는 게 전부 내 문제예요. 자기 한마음이 깨끗해지면 바로 극락세계인데, 그가 아주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할 생각은 안 하고, 맨날 돌아가신 부모 원망하고, 또 몇 대 위에 조상도 원망하는 사람이 있어요. 친구 원망하고 세상 원망하고, 세상원망하고, 몇천 년 전에 돌아가신, 몇백 년 전에 돌아가신 조상을 내가 바꿀 수가 있나. 상대편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나. 내가 바뀌면 하늘도 바뀌고 땅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는데, 나는 안 바꾸고 밖을 원망하니까 그걸 생사윤회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 전부 내 문제다. 나의 노이로제요, 나의 스트레스요. 자기 걱정이다. 그것이 다 사라지면 법성원융 상주법계다. 근데 이게 장엄정토다. 하나하나 이렇게 돼 있는 게 다 공덕으로 이루어진 청정국토지, 거기서 뭐 나쁘다고 뺄 거 하나도 없고, 좋다고 취할 거 하나도 없고 그대로 정토다. 그게 극락세계란 말이에요. 장엄정토 극락세계.
        그러니까 오늘 영가께서는 한 생각으로 두 생각 갖지 말고 사바세계에 더 머물 생각을 하면 극락 못 가거든. 사바세계는 생사가 있는 세계고, 극락세계는 생사가 없는 세계인데, 생사가 있는 이 사바세계에 좀 머물고 싶다. 자식 생각도 나고, 사업 생각도 나고. 지금 있는 자식이 오래 가나, 100년 후에는 하나도 없을 텐데. 지금 있는 사업이 오래 가나, 얼마 지나면 다 없어져요. 근데 그게 마음에서 안 지워진단 말이에요. 그거를 번뇌라고 그래요. 알기는 아는데 떠날 수는 없어. 그러니까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깨끗이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로 된단 말이죠. 그래서 이 장엄정토 극락세계에 두 생각 갖지 말고 한 생각으로 가시고 한 생각으로 가셔서 가는 걸 왕생이라 그런다고요. 왕생. 갈 왕자, 날 생자. 무진수락(無盡受樂)하시고. 거기 가서 끝없이 즐거움을 받으시고, 끝없이 즐거움을 받으십시오.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