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점안법회] 5월23일 음력 윤4월 1일 명부전 개금불사 점안법회 법문(유튜브라이브방송) 2020-05-23

 

부처님의 功德世界 공덕세계

 

      신개금점안법회. 그 법회가 오늘 법회입니다. 지장보살을 새롭게 금을 바꿔서 점안을 하는 법회다. 점안이라는 것은 눈동자를 찍는다. 이게 점안인데, 부처님으로 새롭게 오신다. 눈이 생기면 새롭게 오시는 거거든요. 그런 뜻이죠.

 

      그러면 신중상이든지, 보살상이든지, 불상이든지 이런 상들은 무조건 원만불(圓滿佛) 구족상(具足相)이 되요. 원만불이다, 모자라는 것이 하나도 없이 원만하게 다 갖추어졌다, 이게 원만불이고요, 구족상이라는 것은 상호가 모두 다 갖추어졌다. 이게 구족상이거든요. 작은 모습으로 보이든 큰 모습으로 보이든 모든 상을 다 구족이라고 해요. 남자 모습으로 보이든, 여자 모습으로 보이든. 그래서 모든 부처님은 원만불이고 모든 부처님 상호는 구족상이다. 이런 말씀이거든요. 왜 그러냐. 부처님은 원만불인데, 원만불은 대공덕이 있어요. 그것이 원만불 불공덕이에요.

 

      그러면 부처님에게는 어떤 공덕이 있느냐.

      원만불은 진여불(眞如佛)이라고 해서, 참 진자, 같을 여자, 이 우주에 진실과 똑같은 부처님, 이것이 진여불이에요. 그리고 지혜불(智慧佛)이라고 해서 이 우주의 진실을 깨달은 지혜가 있는데, 우주의 진실을 깨달은 지혜, 그 부처님을 지혜불이라고 해요. 그리고 그 진여불, 지혜불이 중생을 향해서 나타나는 부처님을 자비불(慈悲佛)이라고 해요. 자비심으로 오신다고. 그래서 부처님은 원만불인데, 진여불, 지혜불, 자비불, 이런 부처님이 다 거기에 갖춰져 있는 거예요. 구족하게 들어있어요. 그래서 진여불을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하고, 지혜불을 보신불(報身佛)이라고 하고, 자비불을 화신불(化身佛)이라고 해요, 변화한다고. 그래서 진여법신불, 지혜보신불, 자비화신불. 이런 부처님이니까 원만불이에요. 이런 부처님이니까 어떤 상을 내보여도 진여불상, 지혜불상, 자비불상을 드러내는 거니까 구족상이에요. 그래서 불상, 보살상, 신중상, 나한상, 온갖 상이 있는데 이런 상들은 원만불 구족상이다 이거죠.

 

      그러면 이 원민불 구족상에 어떤 공덕이 있느냐. 진여불은 그대로 진여불인데, 상주법계, 이 지구가 생기든 없어지든, 구름이 뜨든 안 뜨든, 항상 머무는 세계가 있는데 그걸 항상 상자, 머물 주자, 상주법계(常住法界)라고 해요. 그 다음에, 적멸보궁(寂滅寶宮), 적멸이란 말은 고요 적자, 없을 멸자인데, 생멸이 없는 게 적멸이거든요.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 죽었다.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이런 것이 적멸이거든요. 그런데 거기가 보궁이에요, 보배로운 집이에요. 생멸없는 적멸세계가 근심걱정없다고 적멸보궁이라고 해요. 그래서 부처님의 세계는 진여불인데 상주법계 적멸보궁, 또 제법여의(諸法如義)라고 금강경에서, 제법은 하늘도 있고, 땅도 있고, 사람도 있는데, 그게 제법인데, 거기엔 다 진여가 들어있어요. 사람에게도 적멸진여가 들어있고, 하늘에게도 들어있고, 땅에도 들어있고. 이것이 진여의 여여한 뜻이라고 해서 제법여의라고 해요. 제법여의. 우리에게도 진여의 여의가 있는데, 모를 뿐이에요. 없는 게 아니라 모를 뿐이다. 그래서 대적광명(大寂光明)이라고 자취는 없는데 항상 밝아. 자취 없다는 말을 큰 대자, 고요 적자, 크게 고요하다. 햇빛처럼 밝은 게 있고 그림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전등처럼 켰다 꺼졌다 하는 게 아니에요. 자취없이 항상 밝다고 그래서 크게 고요한 광명이다. 이걸 진여법신불이라고 해요.

 

      지혜불은 그런 진여법신불을 깨달았을 때 지혜가 나와요. 깨달았을 때, 정각공덕으로 대지출이라(正覺功德大智出), 화엄경 여래출현품에 나와요. 그 진여불을 깨달은 공덕으로, 진여불을 깨달았을 때 정각이라고 그래요. 다른 걸 모르던 걸 아는 것을 정각이라고 하지 않고. 상주법계 대적광명을 깨달았을 때만 정각이란 말을 쓰거든요. 바를 정자, 깨달을 각자(正覺). 그 정각을 깨달으면 그 정각을 이룬 공덕으로 대지가 출현해요, 대지출현. 큰 지혜가 출현하는데, 그 지혜는 일체종지(一切種智)가 되는데, 일체종지, 일체종지가 뭐냐. 부처님이 하고 있는 모습을 결인(結印)이라고 하는데요, 사찰에는 담을 이렇게 죽 쳐서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는 것을 맺을 결자, 경계 계자, 결계(結界)라고 해요. 그 다음에 부처님이 표시를 하는 게 있어요. 그 표시 하는 걸 백지에 도장 찍는 거 같다고 맺을 결자, 도장 인자를 써서 표시를 세운다, 도량 만드는 것을 결계라고 하고, 부처님이 몸짓으로 표시를 세우는 것은 결인이라고 해요. 백지에 도장 찍으면 표시가 확 나잖아요, 그것처럼. 부처님 상호를 보면 손을 가슴 쪽으로 모으는 결인이 있어요. 그건 진여법신불을 표시하는 거예요. 또 손을 양쪽으로 벌린 표시가 있거든요. 그게 지혜보신불인데, 지혜에는 일체종지라고 한쪽(오른손)은 처지(곳 처자, 지혜 지자, 處智), 이 보이는 세계, 삼세인과 천지만물, 그 세간법을 다 아는 지혜를 한쪽 손, 오른 손으로 표시하는 거예요. 왼손을 들어 표시한 것은 아등자성(我等自性)이라고 화엄경 십주품 게송에서 딱 가르친 게 있는데, 우리들 자성, -우리들 자성은 진여법신을 말하는 거지요, 적멸보궁, 제법여의, 대적광명,-을 한쪽 손으로 표시해요. 그래서 진여적멸도 알고 세간인과도 알아서 일체 종류의 지혜를 다 갖추었다하고 양손을 들어 표시한 것입니다. 이건 정각공덕으로 얻은 지혜예요. 정각공덕으로 대지출현이라. 그래서 일체종지가 자재무궁(自在無窮)이라. 자유자재로 끝이 없어요. 이게 보신불이에요. 그리고 화신불은 한쪽 손을 들어요. 이건 중생을 안심시키는 건데, 안심, 안심결인이에요. 세상에 두려운 게 하나도 없다. 무외, 시무외(施無畏), 보시 시자, 없을 무자, 두려울 외자, 이 세상에 두려운 게 하나도 없다, 무외안심인이에요, 두려움 없다고 중생을 안심시키는 것. 그리고 한손은 위로 하고 있어요. 원하는 거 다 얻는다는 여원인(與願印)이에요. 원하는 대로 준다. 세간법을 구하면 세간법을 얻게 되고, 해탈법을 구하면 해탈법을 얻게 되고, 성불법을 구하면 성불법을 얻게 되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원력법을 구하면 원력법을 얻게 돼서 원하는 대로 다 얻는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는 거예요. 두려운 거 하나도 없다. 다 와서 얻어라. 이게 자비화신불이에요. 자비화신불은 한손 들고 한손은 위로 향해서 올리는 거예요. 그런 것이 바로 부처님이거든요. 자비원력으로 종종시현 종종성덕이라. 가지가지 모습으로,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필요하면 관세음보살의 모습으로, 지장보살의 모습이 필요하면 지장보살의 모습으로, 신중상이 필요하면 신중상의 모습으로. 종종시현이에요, 보일 시, 나타날 현(示現). 종종으로 시현을 한다. 그래서 종종으로 성덕을 해요. 덕을 이뤄요. ‘모진 질병 돌 적에는 약풀 되어 치료하고 흉년드는 세상에는 쌀이 되어 구제하고라는 말이 있어요. 종종시현 종종성덕을 손모양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이런 공덕이 있기 때문에 불공덕이라고 하거든요. 

 

1.遠離功德 원리공덕

頓悟無生 頓忘生死

돈오무생 돈망생사

生滅滅巳 寂滅爲樂

생멸멸사 적멸위락

 

      첫째 불공덕 중에는 멀리 보내버린 공덕이 있는데요. 멀 원자, 떠나보낼 리자, 떠나보내는 거예요. 뭘 떠나보내냐. 중생의 근심걱정을 다 멀리 보내버렸어요. 어디에서, 원리.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이란 말이 반야심경에 있거든요. 멀리멀리 보내버리세요, 다시는 근심걱정을 안해. 그게 불공덕이에요. 왜냐하면 이 생멸없는 적멸진여법신을 깨달으면 돈망생사(頓忘生死), 죽고 사는 일은 바로 없어진다. 우리는 모양이 없어지는 것을 죽는다고 보고, 모양이 생기는 것을 산다고 그러는데, 이 상주법계 적멸보궁의 눈을 뜨면 다 똑같은 거예요. 아 이거 참. 민망스럽네요. 상주법계 적멸보궁은 태어나는 거나 죽는 게 똑같은 거예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불생불멸, 우리가 그것을 몰라서 헛고생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돈망생사에요. 생사가 바로 없어져 버려요. 망자는 없어질 망자도 되요. 바로 없어진다. 그게 첫 번째, 부처님이 생사의 두려움과 번뇌망상의 고통을 멀리 멀리 보내버렸어요, 원리했어요. 이게 원리공덕이에요. 멀리멀리 보냈다. 근심걱정없어요. 근심걱정이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 범부, 깨닫지 못한 것을 한자로 미혹할 미자, 날 생자, 미생범부(迷生凡夫)라고 그래요. 날 생자는 명사에 붙이면 명사의 조사인데, 짐승을 축생이라고 하고, 사람을 인생이라고 그러고 하듯이, 미한 사람이다. 먼저 난 사람을 선생이라고 하고, 뒤에 난 사람을 후생이라고 하거든요. 전부 명사조사거든요. 미생, 미한범부. 근심걱정은 이 미한범부에게만 있어요. 적멸보궁에 들어간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부처님에게는 근심걱정을 멀리 여의어 보냈다. 원리고뇌라. 고통도 걱정도 다 멀리 보내버려요. 우리 중생들은 병나고 아프고 죽고 하면 그걸 고통이라고 보는데, 적멸보궁에 들어간 삼세제불은 그게 그대로 행복이에요. 그러니까 민망하다는 거예요. 우리하고는 다른데 이런 얘기 하려니까 얼마나 민망해요. 죽음을 떠나서 행복이 없고요. 늙음을 떠나서 행복이 없고, 생로병사를 떠나서 행복이 없는데 우리는 늘 그 속에서 근심걱정을 느끼니까 그게 미생범부의 본업이죠. 깨달음은 멀리 여의어 버리고.

 

2.具足功德 구족공덕

常樂我淨 福智具足

상락아정 복지구족

華藏莊嚴 無量無邊

화장장엄 무량무변

 

      두 번째는 구족공덕이 있어요. 다 갖추어졌어요. 지혜를 얻는 순간에, 일체종지를 얻는 순간에 다 갖췄다. 그럼 뭐냐. 이렇게 세간생로병사도 보고, 이렇게 세간이 아닌 진여법계 불생불멸도 보는 그런 지혜가 다 갖추어지는 걸 지구족이라고 해요, 지혜구족이라고. 거기에는 모자라는 게 하나도 없어. 복덕구족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이 일체종지 정각공덕을 얻으면 지혜구족과 복덕구족이 다 채워져서 그게 구족공덕이에요. 이것이 부처님의 두 번째 공덕이거든요.

 

3.解脫功德 해탈공덕

海印三昧 究竟淸淨

해인삼매 구경청정

三種世間 於中現現

삼종세간 어중현현

 

      세 번째 공덕은 해탈공덕인데, 해탈은 불가사의해탈경계(不可思議解脫境界), 무한한 자유, 어디에도 속박이 없어요. 이것이 불가사의해탈이에요. 그것을 해인삼매(海印三昧)라고 하는데요. 해인이라는 것은 바다에 비친 그림자인데, 그걸 바다 해자, 도장 인자, 백지에 도장 찍으면 나타나듯이, 바다 멀리서 떡 보면 거기에는 북한산도 비치고, 금강산도 비치고, 한라산도 비치고, 구름도 비치고 별도 비치고 다 비쳐요. 바다가 용을 쓴다든지 산이 왔다갔다 한다든지 그런 거 전혀 없이 그냥 비치는 거예요. 그래서 바다에 산이 비친다고 해서 산이 바다속으로 들어가지도 않았고, 바다에 산이 비친다고 해도 바다가 산꼭대기로 올라오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환히 비치는 거예요. 그런데 무엇이 비치든 간에 그건 다 물이다. 산 그림자도 물이고, 구름 그림자도 물이고, 별그림자도 물이고 다 물이다. 우리가 사람도 보고, 물건도 보고, 여러 가지 형상도 보는데 그게 전부 우리 마음인 거예요. 이걸 모른다는 거예요, 미생범부들은. 그릇을 하나 떡 들면 이것이 그릇인 줄 아는데, 그릇을 보는 것이 마음이라는 것을 꿈에도 몰라요. 사랑하고 미워할 줄 아는데 사랑하고 미워하는 게 오로지 마음이라는 걸 꿈에도 몰라요. 사랑과 미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간단한 거예요, 아주. 그 대상으로 쫓아가면 항상 매이고, 자기 마음으로 돌아가면 바로 벗어나게 돼요. 그전에도 여기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요. 너무 충격적이기 때문에 그래요. 부산을 가는데 40대 초반의 어떤 여성분이 쫓아와서 하는 말이 우리 남편하고 15년을 살았는데, 15년을 산 남편이 다른 여자한테 살러 간대요. 나는 어떡하면 좋아요.”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가기는 남편이 가는데 내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나한테 물어도 소용이 없다. 가기는 남편이 가잖냐. 그런데 내가 한 말만 하고 싶은데 들으려면 들어봐라. 석가모니도 마야부인을 놔두고 갔다. 석가모니도 이상한 사람이다. 그런데 남편이 다른 여자한테로 안 가고 석가모니처럼 도 닦으러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때는 미련 없이 보내준대요. “왜 여자한테는 안 보내주고, 도 닦으러 가는 건 보내주냐?” “사람 마음이 그렇게 되냐. 바로 그거예요. 우리가 늘 괴로움에서 못 벗어나는 건 대상에 매이는 거예요. 내 마음으로 돌아가면 해탈이에요. 그것이 이 물속에 어떤 그림자가 비쳐도 물인 거예요. 그런데 물은 모르고 그림자만 자꾸 찾아서는 물속에 들어가 빠져 죽어요. 비친 그림자는 없고, 물에 빠져 죽게 된다. 그래서 대상을 쫓아가면 항상 채울 수 없는 빈 마음은 그대로 있고, 인생은 그냥 가는 거예요. , . 이런 말을 안 할 수도 없고, 하자니 민망하고 그래요. 그래서 구해서 다 얻은 사람이 없어요. 구하는 마음으로 돌아가면 하나하나가 다 만족이고 해탈이에요. 죽어도 만족하고 살아도 만족하고 그게 다 물속에 비친 그림자이기 때문에. 그런 해인삼매, 대해탈을 얻은 것이 부처님의 해탈공덕이에요. 그게 원만불 불공덕이거든요.

 

4.慈悲功德 자비공덕

我此普賢殊勝行 無邊勝福皆廻向

아차보현수승행 무변승복개회향

普願沈溺諸衆生 速往無量光佛刹

보원침닉제중생 속왕무량광불찰

 

      그다음엔 자비공덕인데. 자비공덕은 보현보살 대원력 행원품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게송인데, 아차보현수승행 무변승복개회향(我此普賢殊勝行 無邊勝福皆廻向)이란 게송이 있어요. 그러면 경전교리상으로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수분불(隨分佛, 따를 수, 분수 분), 분수를 따르는 불이다. 불은 깨달음인데, 보살십지의 깨달음이 있는데, 보살초지에 깨달은 분, 2지에 깨달은 분,..10지에 깨달은 분, 그 하나하나를 분에 따라서 깨닫는다고 수분불이라고 해요. 그래서 더 올라가서 등각, 묘각에까지 가는 것은 원만불이에요. 그럼 보살은 초지보살도 있고, 이지보살도 있고, 삼지, 사지보살도 있는데, 이런 보살을 수분불, 분수에 따라서 깨달은 부처님이다. 십지에 등각, 그 위에 묘각까지 올라가면 구경각 원만불이다. 그러니까 십지보살은 수분불인데, 구경각 원만불이 자비원력으로 중생을 향해서 출현할 때는 종종모습으로 출현하기 때문에 비로자나불 결인, 석가모니불 결인식으로 오는 게 아니고요, 보살 모습으로도 오고, 신중 모습으로도 오고, 부처님 모습으로도 오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와요. 이런 것을 화현불이라고 해요, 화현불. 변화할 화자, 나타날 현자. 그래서 보살이 초지보살부터 올라가는 거는 수분불이고, 부처님이 보살 모습으로 중생세계에 오는 것은 화현불이에요. 그래서 부처님이 중생 교화할 때는 화현해요, 그냥. 보살로도 화현하고, 신중으로 화현하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화현을 해요. 그래서 이게 보현보살도 중생 교화하는 보현보살은 화현불이에요. 아차보현수승행, 나의 이 보현보살수승행, 보현보살십대원이 있잖아요. 이게 다 여래화현보현보살이 중생교화하는 원력이거든요. 무변승복개회향(無邊勝福皆廻向)이라, 끝없는 복을 다 중생교화하는 쪽으로 회향을 한다. 이 불교에서 참 좋은 말이 회향이에요, 회향. 돌린다. 가지면 무상한데, 회향하면 영원해요. 돌리면 영원해. 가지면 가진 사람 죽으면 끝나요. 그런데 돌리면 끝없이 가요. 그런데 안 돌려져요. 끝없이 갖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왜 욕구가 생기냐, 두렵거든요. 죽기 전에 힘들면 어떡하냐, 그 공포가 있어서 그래요. 그래서 미생은 공포가 있기 때문에 돌리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신심과 원력이 없으면 잘 안 돼요. 잘 안되는 걸 좋다고 얘기하니 그것도 민망한 거예요. 좋은 것만 좋다고 얘기하면 되는 데 어려운 걸 좋다고 말하니까 민망하죠. 그래서 보원침닉제중생(普願沈溺諸衆生), 침닉이라는 것은 물에 빠진 건데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이 속왕무량광불찰(速往無量光佛刹), 무량광불찰, 부처님의 대광명 불세계로 다 속히 가기를 내가 널리널리 원하옵니다. 이게 발원이거든요. 이게 자비원력의 부처님 공덕이에요. 자비공덕이라는 게. 그래서 이런 공덕이 그대로 물을 한잔 먹어도 이 공덕으로 일체중생에게 돌려져서 일체중생이 성불하기를 원하옵니다. 이런 건데, 이게 다 부처님의 자비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자비가 없으면 원력이 안 나오거든요. 자비공덕이에요. 그래서 절에서는 목탁을 하나 칠 때나 종을 하나 칠 때도 이 종소리를 듣고, 목탁소리를 듣고 다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서 해탈을 얻도록 원하옵니다. 그런 거예요. 그게 부처님의 자비공덕인 거예요. 저기 보면 종각이 있는데요. 종각에 보면

 

원차종성변법계(願此鐘聲遍法系)

철위유암실개명(鐵圍幽暗悉皆明)이라

 

원해요, 원해서 치는 거예요. 이 종성이 법계에 빠짐없이 울려서, 철위유암이, 중생의 한량없는 미혹한 어두움이 다 밝아지기를 원하옵니다. 그런 마음으로 땡~하고 종을 쳐요. ~치나. 이 종소리가 온 법계에 퍼져서 일체중생의 미혹한 고통이 다 없어지고 밝아지기를 원하옵니다. 그게 회향이고 그게 공덕인데 전부 부처님의 자비공덕을 실천하는 거거든요.

 

      이제 마칠 시간이 됐거든요. 너무 오래 하면 얼마나 덥고 그래요. 여기는 시원하지만. 부처님은 온갖 공덕을 갖춰서 부처님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언제나 원만불 공덕상인데, 원만불 구족상이다. 다 갖추어진 상호인데, 거기에는 부처님만의 공덕이 있다. 근심걱정을 멀리 버린 공덕, 깨달음을 얻어서 세상도 멀리 살펴 이걸 세간해라고 하거든요. 또 생사 없는 적멸의 세계로 훤히 알아, 이것을 출세간지혜라고 해요. 세간을 초월한 지혜. 이걸 다 갖추어졌다. 노력을 해서 지혜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에 그림자 비치듯이 항상 비쳐요. 이걸 대광명 상방광명이라고, 큰 절에 가면 대광명전이라고 많이 쓰여있거든요. 일부러 안 해도 늘 비추는 걸 대광명이라고 해요. 상방광명이라 항상 광명을 비춘다. 이게 해탈공덕이에요. 항상 중생을 위해서 자비원력의 종종화현으로 종종의 덕을 다 이루는 부처님이 바로 원만불 불공덕이다. 그런 믿음으로 불보살상을 모시고 가는데, 이게 금옷을 입히면 오래되면 먼지도 묻고 그래요. 그래서 부처님 어깨 같은 데 보면 미세먼지가 많이 앉는데 걸레로 북북 닦을 수 없거든요. 부채로 날려야 해요. 걸레로 못 닦아요. 그런데 먼지는 날리면 된다지만, 오래가면 색이 또 검게 되기도 하니까 개금을 하고. 그건 다 부처님을 봉안하고 예경하는 방식 중의 하나거든요. 그렇게 하면 우리도 근심걱정 멀리 떠나서 지혜광명이 가득하고 복덕광명이 가득해서 영원히 자재하고 저절로 자비원력을 일으켜서 중생구제를 다 할 수 있는 덕이 나와요. 물이 맑으면 저절로 그림자가 비치듯이. 그런 원력으로 하는 겁니다.

 

      이렇게 불사한다고, 코로나시국에 어려움도 많은데 불사준비한다고 주지스님, 대중스님들이 정진을 많이 하셔서 이렇게 됐어요. 언제 한다고 하다가 미루고, 또 미루고 왜 그랬는지 몇 번 미루더라고. 어려움이 있는데, 일이라는 것은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을 다 하고 나면 그 일이 더 보람 있어요. 그런데 우리 이거 하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쉬운 일만 하는 건 보람이 반밖에 안 된다. 어려운 일을 해결하면 어려운 일을 해결한 기억이 몸에 꽉 배고요, 성공한, 성취한 기억이 몸에 배서 두 배로 기뻐요. 어려운 거 피하고 쉬운 거 찾아가려고 하지 말고 어려운 걸 해결할 때 그 해결하는 기쁨과 그 성취한 기쁨이 두 배로 있다. 그런데 하다 보면 쉬운 거 찾아가기 쉽거든요. 사실은 어려운 일 해결해서 성공하면 그 성공이 두 배로 많아요. 이런 불사를 일으켜서 공덕을 많이 지으셔서, 주지스님, 대중스님들 수고 많이 하시고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여러 불자님들도 인연 잘 지으셨고요. 저는 여기서 법문 다 마치고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