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천일기도] 6월 9일 명부전 천일기도 입재 법문(유튜브라이브) 2020-06-09

    안녕하십니까. 오늘 지장기도 입재 법문하러 왔습니다.

 

諸佛如來 無量佛身 如來化現 諸尊菩薩

제불여래 무량불신 여래화현 제존보살

大智大行 大悲大願 智行悲願 四大菩薩

대지대행 대비대원 지행비원 사대보살

 

      지장기도를 하는 원리가 어떻게 되는가. 일체제불(一切諸佛) 깨달음을 얻으신 모든 부처님에게는 한량없는 몸이 있는데, 중요한 몸이 3가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첫째 몸은 법이라는 법자, 성품 성자, 법성신(法性身),

둘째 몸은 깨닫는다는 깨달을 각자, 지혜라는 지혜 지자, 각지신(覺知身),

셋째 몸은 자비라고 하는 자비로울 비자, 서원이라고 하는 원할 원자 써서, 비원신(悲願身),

 

      이렇게 부처님에게는 법성신, 각지신, 비원신, 3가지 몸이 있는데, 법성신이라고 하는 것은 온 우주의 만법에 평등 본성, 일체만법 평등본성, 하늘법의 본성이나 땅 법의 본성이나, 과거법의 본성이나, 현재법의 본성이나, 미래법의 본성, 생명이 있는 본성, 생명이 없는 본성, 남자의 본성, 여자의 본성, 다 평등하다는 거예요. 그게 법성신이에요. 그건 깨달은 사람의 본성이나 깨닫지 못한 사람의 본성이나 전부가 평등하고 원융하고 진실하다. 그런 것을 청정법신이라고 하고, 그냥 법신이라고 하고 부처님의 첫째 몸이고요.

      둘째 몸은 일체 법문은 못 깨달았는데, 부처님이 깨달았다. 법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걸 깨달았다고 해서 깨달을 각자()에요. 깨달은 직후에 무엇이 달라졌느냐. 깨닫기 전에는 생각이었는데, 깨달은 후에는 생각이 지혜로 바뀌어요. 못 깨달은 범부는 생각으로 살고, 깨달은 부처님은 지혜로 존재하는데, 그 지혜는 깨달은 결과의 보답이거든요. 그래서 그 지혜의 몸을 결과 보답으로 얻어진 몸이라고 해서 보신(報身, 보답 보자, 몸 신자)이라고 해요. 이게 각지신이거든요.

      깨달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냐. 자기 문제는 하나도 없어요. 왜 그러냐. 청정법신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나의 본신이 법신이다. 자기 본래 몸을 깨달았기 때문에, 본래 몸은 원융하고, 평등하고 진실해서 문제가 없어요. 그래서 인간의 모든 문제는 법신을 깨닫기 전까지만 있는 거지 깨달은 후에는 문제가 없거든요. 문제가 없는 걸 불교용어로 해탈이라고 해요. 해탈이라는 말은 모든 문제가 없다는 말이에요. 그런 자기 문제를 해탈하신 부처님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나. 깨닫지 못한 일체중생 일체범부를 깨우치게 하는 자비심이 생겨요. 일부러 자비심을 내는 게 아니라 거울이 밝으면 모양이 비치듯이 저절로 생겨요. 그걸 무연자(無緣慈, 없을 무자, 인연 연자)라고 합니다. 인연이 없어도 저절로 생겨요.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거울에 물건이 비치듯이, 중생을 깨우치고자 하는 그런 자비심과 그 자비심이 샘솟듯이 일어나니까 거기서 원력이 생겨요. ‘일체중생을 다 제도해야 되겠다, 깨우쳐야 되겠다이 말이죠. 이게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깨우치겠다, 이런 서원이거든요. 깨우치는 방법은 어떻게 되냐. 불력(佛力), 가피, 부처님의 힘이 불력인데, 불력으로 보살들에게 더 힘을 입혀줘요, 그게 가피(加被, 더할 가자, 입혀줄 피자)에요. 불력 가피를 주면 보살은 승불신력(承佛神力)이라, 부처님의 신력, 신통력을 이어받는다. 불력으로 가피하고, 승불신력하고, 불신력을 이어받고, 그게 보살이에요. 부처님이 중생을 깨우칠 때, 이렇게 보살들에게 가피를 줘서 보살의 모습으로 중생을 깨우치는 게 부처님 불사 내용입니다.

      (종이가 날아간다) 이게 다 인연이거든요. 바람이 확 불면 날아가요. 날아가는 것도 이걸 법성이라고 해요. 날아가도 날아가도 날아가는 게 없고, 생겨도 생겨도 생기는 게 없고, 생긴 것과 생기지 않는 것이 평등하다. 불력가피 승불신력, 가피를 주는 분은 일체제불이요, 가피를 받는 분은 일체보살이라고 해요.

      그 보살 중에서 대지보살(大智菩薩, 큰 대자, 지혜지 자), 대행보살(大行菩薩, 크게 실행한다)이 있어요. 또 대비보살(大悲菩薩, 큰 자비를 가졌다), 대원보살(大願菩薩, 큰 원력, 서원을 가졌다고)이 있어요. 대지보살을 문수보살이라고 하고, 대행보살은 보현보살이라고 하고, 대비보살은 관세음보살, 대원보살은 지장보살이라고 해요. 사대보살인데,

일체제불 사대보살

대지문수사리보살 대행보현보살

대비관세음보살 대원본존지장보살

이런 모습으로 중생 속에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면 지장보살에 대한 원력과 지장보살에 대한 공덕을 이야기한 경전이 많이 있는데 지장보살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하냐.

 

修脫衣入地之行 捨五膓身示本身 化世之功證十地 大願本尊地藏菩薩

  수탈의입지지행 사오장신시본신 화세지공증십지 대원본존지장보살

 

      수탈의입지지행(修脫衣入地之行)이라, 탈의, 벗을 탈자, 옷 의자, 옷을 벗고 땅속으로 들어가는 행을 닦았다. ()이라는 것은 들어갔다는 거예요. 땅속으로 들어갔다. 감출 장자, 들어가는 게 감추는 거예요. 어떻게 들어갔냐. 옷을 벗고 들어갔다. 일체 범부들이 입는 옷이 있는데, 그 옷은 무슨 옷이냐. 오장육부를 가진 몸이다.

      사오장신(捨五膓身)하고, 오장신이라는 것은 인간의 몸이 움직일 때 안에 다섯 가지 장기가 있어야 움직이지 그냥 못 움직이거든요. 머리를 중요시한 게 아니에요. 머리는 장이 탈이 나면 끝나요. 그래서 늘 장을 튼튼히 하라고 하지 머리를 튼튼히 하라고 하지 않아요. 재밌어요. 오장이 탈이 나면 머리는 저절로 못 쓰게 되는 거예요. 아주 재밌어요. 오장이라는 게 약하기 짝이 없거든요. 지장보살은 옷을 벗는다는 의미가 오장신을 버리고, 시본신(示本身)이라, 본래신, 법성신, 청정신을 보이지 않는 행을 닦는다고 해서 그걸 지장보살이라고 해요. 탈의입지지행을 한다고, 옷을 벗고 땅속으로 들어간다, 땅은 본래신을 말하고 옷이라는 것은 오장의 몸을 말하는데, 오장신은 영원한 게 아니라 그걸 버리고 본래신을 보이는 것이 지장보살이다.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근본원력이라는 거죠.

 

그런데 지장보살은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서 어떤 원력을 시행하는가.

 

衆生度盡 方證菩提 地獄未除 誓不成佛 大願本尊地臧菩薩

중생도진 방증보리 지옥미제 서불성불 대원본존지장보살

 

      중생도진(衆生度盡)이라는 것은 중생을 다 제도한 다음에야 내가 성불하겠다, 늘 보살로 중생구제하겠다, 이게 지장보살의 첫 번째 원이에요. 중생도진에 방증보리(方證菩提).

 

그다음에는

誤入險途 接引亡靈 出於生死 擁護衆生 大願本尊地藏菩薩

오입험도 접인망령 출어생사 옹호중생 대원본존지장보살

 

      접인망령(接引亡靈), 망령은 돌아가신 분이죠. 돌아가신 분의 영혼, 영가를 다 접인해서, 영접해 인도해서, 출어생사(出於生死), 생사에서 다 벗어나게 하겠다. 그것이 지장보살의 원력이에요.

 

그 다음,

聞佛名號 獲福無量 慈悲布施 七寶具足 大願本尊地藏菩薩

문불명호 획복무량 자비보시 칠보구족 대원본존지장보살

 

      문불명호 획무량복(聞佛名號 獲無量福), 어떤 중생이든지 불명호, 부처님 이름을 들으면 획무량복이라, 무량한 복을 획득하도록 하겠다. 누구든지 부처님 이름 한 번만 들으면 그게 불씨가 되고, 그게 씨앗이 돼서 나쁜 거 다 태우고, 좋은 열매를 다 이루게 하겠다. 이런 원을 세우는 분이거든요.

 

그 다음에는,

求者隨意 无有三災 虛耗辟除 杜絶惡夢 大願本尊地藏菩薩

구자수의 무유삼재 허모벽제 두절악몽 대원본존지장보살

 

      허모벽제(虛耗辟除)하고 두절악몽(杜絶惡夢)이라. 허모, 빌 허자와 나쁠 모자가 있는데, 텅빈 것, 헛 것,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다 벽제, 물리칠 벽자, 제도할 제자가 있어요. 헛되고 나쁜 건 다 없애고, 두절악몽이라, 나쁜 꿈자리는 다 두절시키겠다, 막고 끊겠다(막을 두, 끊을 절). 재밌는 게, 꿈이라는 게 뭐냐. 꿈이라는 건 나의 생각이고, 나의 생각은 자기의 행동이에요. 행동에서 생각이 생기고 생각에서 꿈이 생기는데, 꿈이 좋다는 것은 생각이 좋다는 거고요, 꿈이 안 좋은 것은 생각이 안 좋은 건데, 꿈이 편안하다, 아주 좋은 거거든요. 그래서 잠자리를 잘 만들어놔도 생각이 편치 않으면 꿈자리가 안 편해요. 꿈자리는 잠자리 잘 만든다고 좋은 게 아니고요. 생각이 깨끗하고 건강하면 잠이 잘 와요.

      예전에 통도사에 있었는데요. 통도사 큰 절이 아니고 암자에 있었는데, 젊은 스님들이-옛날에는 10대의 젊은 스님이 많았어요, 70년대, 60년대- 새벽에 일어나서 큰 종을 치는데, 종소리가 오래 울리거든요. 한 번 꽝 치면 웽~~~, 그러면 종소리 울리는 동안에 자요. 큰 법당에서 종 다 치길 기다리는데, 종소리가 안 들려. 왜 그런가. 가보니까 앉아서 자고 있어요. 요즘 도시인들이 잠 안다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세상 자기 쉬운 게 잠이거든요. 잠이 왜 안 와요. 잠 안 온다는 얘기는 생각이 편안하지 않다는 얘기에요. 잠을 일부러 자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거예요. 생각을 편안하게 해야 해요. 생각을 어떻게 편안하게 하느냐. 좋은 일 많이 하면 생각이 편안해요. 몸을 놀리지 말고, 몸을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좋은 일 많이 하면요, 복 많이 짓고 부지런하면 생각이 편안하고. 좋은 일은 많이 안 할수록 생각이 불안해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얘기를 했고요.(웃음) 지장보살이 두절악몽이에요. 악몽은 다 두절시키겠다, 중생들에게. 그런 원을 세운 거예요.

 

永滅苦具 空諸地獄 令諸衆生 離苦受樂 大願本尊地藏菩薩

영멸고구 공제지옥 영제중생 이고수락 대원본존지장보살

 

      지장보살은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이고수락(離苦受樂)이라.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다 여의고, 즐거움을 받도록 하겠다. 이런 원을 세우는 분이 대원본존지장보살이에요.

지장보살의 원력은 그러하고.

 

地藏大聖威神力 恒河沙劫設難盡

지장대성위신력 항하사겁설난진

見聞瞻禮一念間 利益人天無量事 大願本尊地藏菩薩

견문첨례일념간 이익인천무량사 대원본존지장보살

                                        (華嚴大禮文)

                                        (화엄대예문)

 

      그러면 기도라는 것은 어떤 거냐. 기도라는 것은, 허공에서 허공으로 가는 것이 기도예요. 조금 알아듣기 어려울 수가 있어요. 기도라는 것은 허공에서 허공으로 가는 거예요. 기도라는 것은 내 집에서 내 집으로 가는 거고요, 내가 나에게로 가는 거예요. 허공에서 허공으로 가는 거예요, 자기 집에서 자기 집으로 가는 거예요, 내가 나에게로 가는 거예요. 이것은 불가사의한 거예요. 기도를 생각으로 계산하면 답이 없어요. 생각은 수량이고 기도는 무량이에요. , 이거 또 어려운데.. 이 세상에는 계산할 수 있는 수량이 있고, 계산할 수 없는 무량이 있어요. 그런데 기도는 무량불가사의(量不可思議)대공덕, 이게 기도예요. 헤아릴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 공덕이 아니라 전체 대공덕이다. 이렇게 되거든요.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하냐. 경을 읽는 것도 기도예요. 부처님 이름 부르는 것도 기도예요. 또 생각을 멈추고 하나를 보는 게 아니라 전체를 보는 거, 그걸 무념보관(無念普觀)이라고 해요. 무념, 없을 무, 생각 념, 생각을 멈춰요. 생각이 없어요. 그런데 잠을 자느냐, 그건 아니에요. 생각을 일으키지도 않고 잠도 안 자고 무념한 상태로, 하나 둘을 보는 게 아니라 무량한 걸 다 봐요. 이걸 보관, 넓을 보, 볼 관, 넓게 본다. 그러니까 잡념 망상 없이 넓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어디에 머무는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 환하게 보여요. 이것이 무량삼매에요, 무량삼매. 그래서 기도는 수량에서 무량으로 들어가는 거다. 수량은 생각이고, 무량은 지혜인데요. 생각에서 지혜로 들어간다는 얘기가, 생각도 나고, 지혜도 나니까 내가 나한테로 가는 거다. , 이거 무슨 얘긴지.(웃음) 좀 멍하려고 해요. 우리는 생각으로 살고 숫자로 사는데, 생각이 아니고 숫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멍할 수밖에 없거든요. 수량이 있어요, 이 수는 다 생각인데, 허망한 거예요. 생각하기 위해서 숫자를 만든 거예요. (탁자위 물건을 가르치면서) 요거 하나 있고, 요거 하나 있고, 요거 하나 있고, 이게 숫자인데, 근데 이거 하나도 하나가 아닌 거예요. 여기도 실밥이 한없이 많거든요. 그러나 이걸 하나라고 해야 생각하기 편해요. 그래서 생각하는 도구로 숫자를 만들어 놓은 거지 본래 숫자가 있어서 숫자를 만들어 놓은 게 아니에요. 그럼 생각을 멈추고 무념상태로 멀리 딱 보면 숫자 하나하나가 숫자로 셀 수 없는 무량이에요. 그래서 기도라고 하는 것은 수량에서 무량으로 들어가는구나. 지장보살, 지장보살..그건 수량인데, 지장보살 지장보살 무념으로 하다 보면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세계에 들어가요. 그걸 피안 (彼岸)이라고 해요. 저 언덕. 생각은 이곳, 차안(此岸).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피안에 들어가요. 삶과 죽음이라는 건 숫자인데, 지혜로 들어가면 삶과 죽음이 없는 그 세계로 가거든요. 그래서 기도는 형식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생각에서 지혜로 가는 것이고, 수량에서 무량으로 가는 거예요.

      그럼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분별이냐, 무분별이냐. 분별은 나누는 거니까 숫자고, 무분별은 나눔이 없는 거니까 무량이에요. 그래서 모든 수행이라고 하는 게 무분별공덕이에요, 분별없는 공덕. 수행은 아주 간단한 거예요. 무분별공덕이 수행이다. 지장보살 한 번만 딱 해도 무념보관이 되면 바로 성공하는 거예요. 성공이라는 것은 무량피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이상해요, 지장보살 한 번 불러 기도성취한다니. 그게 불가사의 대공덕이에요. 그래서 기도를 할 때는 이것저것 분별하고 헤아리고 계산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분별하고, 헤아리고 계산하는 걸로 살아왔는데 거기에는 늘 부족감이 있고 불안감이 있어요. 우리는 생각으로 그 부족감과 불안감을 자꾸 만들어 가는데 그걸 업이라고 해요. 지금은 새로운 업을 짓는 게 아니라 불가사이해탈로 들어가는 거예요. 업은 생각으로 짓는 거고, 해탈은 지혜로 이루는 거에요. 지금 나의 뭐가 문제고, 뭐가 문제고, 이건 다 나의 생각의 수량에서 일어난 문제에요. 생각의 수량이 딱 지혜로 변하면 평등, 진실. 수량은 차별이거든요. 모든 차별은 자기 생각으로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우리 인생문제를 근원적이고 절대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무량삼매에 드는 거예요. 헤아릴 수 없는 세계에 들어가면 관찰, 삼매는 무념과 관찰인데, 무념이라는 것은 첫째 생각을 멈추는 거예요. 그리고 넓게 보는 거예요. 그냥 멈추고 봐. 멈추는 건 무념이고 넓게 보는 건 관찰이에요. 그러면 이 몸이 어디서 온 것도 없고 머무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이 광대보견하고 무한청정해요. 그게 우리 본신이에요.

      기도를 했으면 벌서 다 이뤘는데, 못 이룬 느낌이 드느냐. 자기 생각을 그렇게 만들어요. 지장보살 한번 했으면 다 이룬 건데, 그게 불가사의무량공덕인데, 생각으로 됐나?’ 생각해요. 극락생각하고 아미타불염불하니까-옆에서 열심히 염불하더라고요.- 극락 간건데, 다시 묻더라고요. “정말 극락세계 갔습니까?” 그거 참. 아미타불 한 번만 하면 가는 거예요. 그게 불가사의 대공덕이에요. 그런데 생각이 이거 해 가지고 가나?’ 이렇게 되면 불가사의 대공덕에 생각이 가로막혀 못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는 수량이 아니고 무량인데 그냥 무념청정심으로, 잡념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한 번을 하면 한 번으로 성취되고, 두 번 하면 두 번으로 성취되고, 다 성취가 되는 게 기도의 원리거든요. 내가 죽어도 성취요, 내가 살아도 성취요, 가도 성취요 와도 성취요, 이게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이에요. 법성은 원융해서 된다 안된다 두 가지가 없다. 불가사의대공덕 법성원융무이상. 그걸 전부 가르치고 있어요. 그런데 중생이 왜 그걸 못 하냐. 생각의 끈을 못 놔요. 지혜를 얻으면 생각의 세계도 다 헤아리고 불가사의대공덕의 세계도 다 증득을 해서, 부처님께서 양쪽 손을 어깨 위로 다 올리잖아요. 그게 생각의 세계와 지혜의 세계를 다 관찰하고 계신다는 뜻이거든요. 기도가 그런 거예요. 기도가 어렵다, 기도가 안 된다, 기도하면 되냐, 그런 생각 다 그만두고 그냥 해요. <~~~~>. 이런 거예요. 본래 수량이 없기 때문에. 하나 속에는 일체가 다 들었어요. 일중일체. 일체속에는 하나가 다 있어요. 출발이 구경이고 구경이 출발이에요. 최고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건 첫 번째 출발점이 없으면 안 돼요. 출발점만 생각하지 말고 목적지도 생각하고, 목적지가 아무리 크게 보여도 출발점이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아이 참, 어렵네 어려워. 왜 어려우냐. 생각으로 머물러 있기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지혜로 보면 그냥 바람이 부는 것과 똑같은 거거든요. 물 흐르는 게 뭐 어려워요. 바람 부는 게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見聞供養諸如來 所得功德不可量

견문공양제여래 소득공덕불가량

於有為中終不盡 要滅煩惱離眾苦

어유위중종불진 요멸번뇌리중고

如乾草積等須彌 投芥子火悉燒盡

여건초적등수미 투개자화실소진

供養諸佛少功德 必斷煩惱至涅槃 (華嚴經 如來出現品)

공양제불소공덕 필단번뇌지열반 (화엄경 여래출현품)

 

     그래서 기도는 뭐와 같으냐. 마른 풀이 한없이 많이 쌓였어도 성냥불 하나 딱 붙이면 마른 풀을 다 태워버려요. 중생의 생각이 아무리 많아도 부처님 명호 한 번 부르는 순간에 다 없어져요. 그래서 공양제불소공덕(供養諸佛少功德), 모든 부처님께 예불하고 공양한 작은 공덕이, 필단번뇌지열반(必斷煩惱至涅槃)이라, 반드시 번뇌를 다 끊고, 불생불멸대해탈, 대열반이라고 하는데, 해탈 열반 같은 소리거든요, 불생불멸대해탈, 대열반에 반드시 들어간다. 대열반은 법성신이고, 여기 꽃들이 있는데요. 꽃은 가도 봄은 안 간다. 나비는 가도 봄은 안 간다, 벌은 가도 봄은 안 간다. 꽃이 있지만, 꽃을 피운 봄이 있거든요. 봄을 법성, 열반이라고 하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생사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생사, 나고 죽는 몸에서 나고 죽음이 없는 몸을 아는 거예요.

      (물을 드시면서)아이고, 물이 약간 더워졌네요. 오늘 날씨가 더운가 봐요. 여긴 좀 시원하거든요. 일찍이 오셔서 배도 고플 거고 차일을 해서 더 더울 거예요. 법문을 30분 이상 들었거든요. ‘30분 내가 뭘 들었나?’ 이건 생각이에요. 모든 걸 다 들은 거예요. 그게 무량이에요. 그게 기도입니다. 생각으로 헤아리지 말고 무량을 깨달아라. 헤아릴 수 없는 세계를 깨닫는 게 기도다.

 

 

須菩提 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 如人入闇 則無所見 若菩薩

수보리 약보살 심주어법 이행보시 여인입암 즉무소견 약보살

心不住法 而行布施 如人有目 日光明照 見種種色 須菩提 當來

심부주법 이행보시 여인유목 일광명조 견종종색 수보리 당래

之世 若有善男子 善女人 能於此經受持讀誦 則爲如來以佛智慧

지세 약유선남자 선여인 능어차경수지독송 즉위여래이불지혜

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 無量無邊功德

실지시인 실견시인 개득성취 무량무변공덕

                                       (金剛經 離相寂滅分14)

                                       (금강경 이상적멸분제14)

 

      금강경을 자주 독송하는데, 금강경 이상적멸분제14가 있는데요, 그 제일 마지막에 약보살이 심주어법 이행보시(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 마음이 어디에 분별하고 집착하고 헤아리는 걸 머물 주자를 쓰는데, 분별, 집착, 헤아림으로써 공덕을 지으면, 여인입암 즉무소견(如人入闇 則無所見), 어떤 사람이 저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보이는 것이 없다. 약보살이 심부주법 이행보시라, 어떤 사람이 마음에 생각하고 분별하고 집착하고 헤아리는 마음이 없이, 무분별대공덕으로 간다 이 말이죠, 무분별대공덕으로 가면, 여인유목 일광명조 견종종색(如人有目 日光明照 見種種色)이라. 어떤 사람이 눈도 있고, 햇빛도 있어서 여러 가지 색깔을 다 보는 것과 같다. 이게 기도예요. 기도는 생각으로 이루는 게 아니라 불가사의무분별대공덕이거든요. 지장보살하면 거기 아무 생각이 없어요. 생각이 오면 그 결정성, 무분별결정성이 일체가 평등해서 불가사의로 다 이루어지는 게 그게 기도예요. 그거는 체험을 해보지 않으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불가사의에요. 그런 거거든요.

 

      오늘 지장기도 입재기도에 참석하신 것은 무한한 공덕을 지은 것이고, 그런 무한한 공덕을 누리신 여러분들에게 많이많이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이것으로 오늘 모든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