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정초신중기도] 1월 27일 정초신중기도 법문 2020-01-27

 

<念願祈禱(염원과 기도)>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은 새해 복 받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새해 복을 받아야 되는데, 복을 누가 줄까. 나한테 복을 줄 사람이 누굴까. 그게 문제거든요. 누구한테 복 많이 받으십시오.”하니까 복을 줘야 받지요.” 하더래요. 맞는 말이거든요. 줘야 받지요. 복 줄 사람이 딱 한사람 있거든요. 나한테 복 줄 사람이 한 사람 있어요. 그게 누굴까요? (나 자신) 다 알고 계시네요.(웃음) 더 이상 말씀 드릴게 없고, 마음공부하고, 마음치료하고, 마음기쁨을 얻는 그런 시간을 갖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서 뭘 들으려고 하지 말고, 마음공부, 마음치료, 마음기쁨. 나한테 복 줄 사람은 나다. 내가 나한테 복을 줄 수 있다. 그래서

 

新年受福

신년수복

年年新年 盡未來劫

년년신년 진미래겁

無量福德 自作自受

무량복덕 자작자수

 

年年新年(년년신년), 해마다 해마다 새해가

盡未來劫(진미래겁)이라, 미래의 세월이 끝날 때까지, 끝날 때까지

내 스스로가 無量福德(무량복덕), 한량없는 복덕을

自作自受(자작자수)하여지이다,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받는 것이 중요하다.

무량복덕을 미래의 세월이 다 할 때까지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받는다, 자작자수라.

 

     내가 벌을 받을 때 누구에게 벌을 받는가. 나한테 받은 거예요. 다 자기의 벌로 자기가 벌 받는 거예요. 내가 복을 받을 때 누구에게 복을 받는가. 나한테 받는 거예요. 내가 복을 지으면 복을 내가 받거든요. 내가 죄를 지으면 그 벌을 내가 받아요. 벌 받고 고생한 사람들 가만히 봐요. 누가 벌을 줬나. 내가 나한테 준 거거든요. 복 받고 기쁨을 누리는 사람, 그 복과 기쁨이 어디서 왔나. 내가 지은 거예요, 그게. 그러니까 나한테 복 줄 사람은 딱 한 사람 있다. 나다, . 그래서 이게 복 받는 일이냐, 이게 벌 받는 일이냐, 이걸 살피는 게 마음공부예요.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 이게 내가 복 받는 일인가, 내가 이거 벌 받는 일인가.’를 살피지 않고 그냥하면 그게 복 받는 습관이 몸에 꽉 뱄다면 무슨 일을 해도 복만 받을 수 있는데요. 벌 받는 일이라는 것이 분명한데, 벌 받는 일인 줄 모르고, 그냥 몸에 밴대로 몸에 젖은 대로 그냥 하다보면, 평소대로 했는데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건강도 별로 안 좋아. 사람도 안 좋아하고, 건강도 안 좋아지고. 이러면 자기가 일부러 한 건 아닌데, 자기도 모르게 복 받는 일을 많이 못 한 거거든요. 자기가 자기한테 복을 안 준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나한테 복을 주자.

 

     그럼 복이라는 게 뭐냐. 복은 受福(수복)이라, 받는 것이 복이에요. 받다, 수복(받을 수, 복 복). 받을 때 그걸 복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럼 어디서 받냐. 부모한테 받고, 사람한테 받고, 물질로 받고. 그래서 유가에서는 오복을 얘기하는데, 불교에서는 만복을 얘기하고요. 만 가지 복덕. 이걸 줄이면 삼복이에요. 身福(신복), 몸이 건강한 게 복이에요. 몸 복이 있어요. 人福(인복), 사람이 나를 많이 믿어주면. 사람과 사람은 믿음이 없어지면 끝나는 거예요. 믿음이 떨어지면 정이 딱 떨어지고. 못 믿고 정 떨어지면 끝이에요. 이거 중요해요. 믿음이 안 가면 정이 떨어져. 그럼 끝나요. 그래서 사람으로부터 복을 받으려면 믿음을 항상 일으킬 수 있도록 신뢰를 줘야 되요. 그래야 감정이 안 상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많을 때 그걸 인복이라고 그래요.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 거예요. 좋은 감정을 받는 거고. 사람 없으면 안 되거든요. 몸 건강하고. 자기를 믿어주고 좋아해주는 사람 많고, 그럼 신복, 인복을 받은 거죠. 그 다음에 財福(재복)이에요. 재물. 그런데 재물이 많이 있으면 재복을 많이 받은 건데, 그것도 다 받은 거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거. 그래서 복은 받는 것이다.

 

     그런데 경에서는 복 다음에 ()이라는 말을 써요. 덕이라는 것은 받는 게 아니에요. 行德(행덕)이라, 행하는 데서, 실천하는 데서, 노력하는 데서 생기는 게 덕입니다. 그래서 수복, 행덕이라고 얘기해요. 덕이라는 것은 내가 어떻게 노력을 하느냐, 여기에 따라서 다 이루어지는 거거든요. 복은 받는 거지만 덕은 행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행하냐. 덕 중에 가장 좋은 덕이 恭敬(공경)勤勉(근면)이거든요. 덕은 공경하는데서 생겨요. 오만하고 불손하고 요즘 말로 갑질하면 덕이 없는 거예요. 오만불손 갑질횡포, 이게 전부 다 덕을 없애는 거예요. 공경, 공경하는 데서 덕이 생겨요. 그래서 복덕이에요. 그래서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공경하고 겸손하면 다 좋아해요. 그런 사람보고 덕망이 높다고 해요, 덕망. 그게 다 내가 나한테 복덕을 주는 거거든요. 그리고 근면해야죠. 게으르면 덕이 없어요. 복도 못 받아요. 이 근면과 공덕이라는 게 무지무지한 복덕을 받는 뿌리거든요.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부지런한 습관을 몸에 잘 안 익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크게 잘못하는 거거든요. 공경하는 것이 몸에 배고, 부지런한 것이 몸에 배야 그 아이가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가 있어요. 행복이라는 것은, 많은 복을 누릴 때 행복이라고 해요. 복을 누릴 때, 복을 느낄 때 행복이거든요. 누린다는 것은 느끼는 거잖아요. 재물이 많아도 재물이 많다고 느낄 때 그것이 행복이지, 많으면 뭐해요, 나에겐 항상 부족하면 그건 행복은 아니에요. 재복은 있는데 행복은 없다. 느끼는 것만큼 행복한 거예요. 느끼려면 건강해야 하거든요. 건강해야 되요. 있는 것을 느낄 줄 아는 게 건강이거든요. 그런데 있는 거는 못 느끼고, 없는 거만 구하는 게 많아요. 그게 건강치 못한 거거든요. 있는 거는 관심이 없어. 근데 없는 거만 찾아. , 그거 참, 희한하더라고. 손녀를 봤는데, 손녀에게는 관심이 없어. ? 손자가 아니란 말이에요. 손녀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느끼면 행복할 텐데, 앞에 있는 손녀는 관심이 없고 눈앞에 없는 손자를 자꾸 구하게 되면 행복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복이라는 것은 부지런하고 공경하는데서 복이 생긴다. 그리고 복이라는 것은 베푸는 데서 생긴다. 보시, 베푸는 데서 복이 오고 공경하는 데서 덕이 생긴다. 그러니까 베풀고 공경하면 복덕이 나날이 성장해서 행복해요. 복은 베푸는 데서 받게 되고 덕은 공경하는데서 이루어진다. 그거 다 알아요, 누가 몰라요.

 

     그런데 이렇게 정초에 와서 기도한다는 것은 그게 엄청난 복덕이 되는 거예요. 축하드려요! 정초에 이런 도량에 와서 기도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 온 몸에, 온 마음에 복덕종자가 가득히 심어져요. 그것을 평소에 늘 가꾸어 나가고 이뤄나가면 그게 항상 내가 나한테 복을 받고 내가 나한테 복을 주는 거예요. 내가 나한테 복을 받아라. 내가 나한테 복을 줘라. 근데 내가 나한테 복을 안 줘. 안 준다는 것은 베풀지 못하고, 공경하지 못하니까 복을 안 주는 거지요. 아무 것도 아닌 소리를 심각하게 들어.(웃음)

여기 몇 마디 적어가지고 왔는데, 범부가 있고 보살이 있고 제불이 있는데, 부처님이 있는데, 범부들은 어떻게 하냐.

 

凡夫 범부 : 作禍求福 苦惱不絶 작화구복 고뇌부절

菩薩 보살 : 常作福德 不受福德 상작복덕 불수복덕

諸佛 제불 : 福德智慧 圓滿具足 복덕지혜 원만구족

 

 

범부들을 作禍求福(작화구복)이라, 작화, 짓기는 화를 지어, 자꾸 사고를 만들어, 근심을 만들어, 그런데 구하기는 복을 구해요. 무슨 사고 또 쳤구나. 또 뭐 일 저질렀구나. 뭐 잘못했구나. 이게 다 작화거든요. 作禍(지을 작, 재앙 화). 만들기는 재앙을 만드는데, 구하기는 복을 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苦惱不絶(고뇌부절)이라, 고뇌가 끊어지질 않는다. 그런 게 범부의 삶이에요.

그런데 보살의 삶은 어떠냐 하면 常作福德(상작복덕)을 하는데, 항상 복덕을 짓는데, 不受福德(불수복덕)을 해요. 복덕을 받지를 않아요. 항상 복덕을 짓기만 하지 복덕을 받질 않아요. 왜 그러냐 하면 보살은 所作福德 不應貪着(소작복덕 불응탐착)이라. 자기가 지은 복덕을 탐하고 집착하지 않아요. 그냥 보시하고 회향해요. 그게 보살들이 복 짓는 행위에요. 복을 짓기만 해요, 받지 않아요. 금강경 不受不貪分(불수불탐분) 28에 보면, 所作福德 不應貪着(소작복덕 불응탐착)이라. 보살은 不受福德(불수복덕)이라. 그 경에 말씀이 있어요. 복을 짓기만 해요. 복덕을 다 회향해요.

그리고 제불은, 모든 부처님들은 福智(복혜), 복덕과 지혜가, 복덕지혜가 다 圓滿具足(원만구족)해요. 모자라는 것도 없고, 남는 것도 없고, 복덕과 지혜가 원만하고 구족해요. 그게 부처님의 일이고, 보살은 常作福德 不受福德(상작복덕 불수복덕), 항상 복덕을 짓기만 하지 받지는 않고, 범부는 作禍求福 苦惱不絶(작화구복 고뇌부절), 짓기는 재앙을 짓는데, 구하기는 복을 구한다. 나를 왜 좋아하지 않느냐고 가서 때리는 거죠. 나 좋아하라고. 때리면 때릴수록 좋아하겠어요? 경상도에서는 <디비쫀다>고 해요.(웃음) 경상도 사람 아니면 잘 모르죠. 난 충청도인데, 경상도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디비쫀다>, 반대로 한다는 얘기에요. 원효성사는 欲往東方而 向西行(욕왕동방이 향서행)이라고, 가기는 동쪽으로 가는데, 서쪽으로 가고 있다. 동쪽으로 가고 싶은 사람이 서쪽으로 가고 있다. 반대로 하는 거죠. 그게 우리들의 삶이에요. 자꾸 하는 짓은 재앙을 만들고 있는데, 구하기는 복을 구한다. 그러니까 근심걱정이 안 떨어져요. 고뇌가 부절이라.

 

     왜 이러냐. 인생이라는 것은 人生行路(인생행로), 인생이 가는 길이 뭐냐. 제가 하는 얘기에요. 경에 있는데 그대로는 아니에요. 인생행로, 갈 행자, 길 로자.

 

人生行路 인생행로

힘겹다 苦惱行 고뇌행

싱겁다 無跡行 무적행

꿈같다 如夢行 여몽행

어허야 圓明行 원명행

 

첫 번째는, 제가 순서를 매긴 거고요. 인생은 힘겹다. 힘겨운데 이걸 한자로는 苦惱行(고뇌행)이라. 행자는 그냥 펼쳐진다는 의미에요. 힘겹게 펼쳐지는 게 인생이다. 힘겨워. 아들 노릇도 해야 되고, 딸 노릇도 해야 되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남편노릇도 힘들어요. 아내 노릇만 힘든 게 아니에요. 남자들은 느끼지도 못하는 걸 여자들이 얘기할 때 미치는 거예요.(웃음) 전혀 생각도 없었는데 그런 걸 얘기하면 미치는 거죠. 그러니까 힘겨워, . 출세도 해야 되고, 부자도 돼야 하고, 사람노릇도 해야 되고 힘겨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힘겹게 펼쳐지는 게 인생이다.

그런데 결과는 뭐냐. 결과는 싱거워요. 싱거운 게 인생이에요. 그럼 싱거운 게 뭐냐. 지나가다 보면 옛날 집을 허물어뜨려서 새 집을 짓는 경우를 봐요. 그런데 그 집을 허물기 전에는 집을 쓸고 닦고 청소하고 수리하고 별별 일이 많았는데, 포클레인을 가지고 가서 그 집을 확 허무는 순간에 그 집에 무슨 집수리를 했는지, 도배를 어떻게 했는지, 청소를 어떻게 했는지 아무 가치가 없어요. 그게 인생이에요. 인생은 남는 게 없다. 이건 제 말이에요. 남는 게 없는 게 인생이에요. 그러니 청소했다고 신경질내지 마세요. 뜯으면 그만이에요. 썰렁하네요(웃음). 집 뜯는 순간에 청소 아무리 잘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냥 되는대로 살아요. 잠자면 그만이에요, 집이란 것은. 그게 인생이란 거예요. 그리고 얼굴을 가꾼다, 머리를 가꾼다, 몸매를 가꾼다, 그렇게 몸을 위해서 치장을 하고 가꿨는데 화장하는 순간에 아무 필요 없어요.(웃음) 화장하는 순간에 몸 가꾼 게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요. 지하철 타 봐요. 성형 전 해놓고 성형 후. 그래서 어쩌라고. 태우는 순간에 전후가 어디 있어. 그게 인생인데 얼굴 가꿀 때는 그걸 모르거든. 집안 청소할 때는 집 뜯을 때 먼지 밖에 없다는 걸 모르거든.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예요. 그래서 인생은, 말이 좀 그렇긴 한데, 방귀풍이다. 제가 만든 말이에요. 인생은 방귀바람. 이 방귀라는 게 크게 나오는 소리도 있고 작게 나오는 소리도 있고, 냄새가 고약한 것도 있고 향기로운 것도 있지만, 어찌 됐든 조금 있으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지는 거예요. 인생도 평생 떠들고 다니는 것은 방귀소리가 아직 안 끝난 것 같고, 죽은 다음에는 다 날라 간 것과 같은 거예요. 이게 인생방귀명상이에요. 인생은 방귀바람이다. 신경질, 근심걱정 다 방귀처럼 다 날아가요. 인생은 방귀바람, 한자로는 방귀풍.

그 다음에 인생이라는 것은 꿈같다. 인생은 힘겹다, 인생은 싱겁다, 인생은 꿈같다. 그렇게 허무해도 고통스러웠던 기억이나 힘들었던 기억이 없는 게 아니에요. 있어요. 있는데 잡히지 않아요. 꿈인 거예요. 꿈이라는 게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몰라도 꿈 꾼 사람은 알잖아요, 꿈을 깨도. 그래서 허무하면서도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 것이 꿈이에요. 아무도 몰라, 그런데 자기는 꿈 꾼 기억이 분명히 있거든요. 인생은 꿈같다. 그러니까 편안하게 살아요. 힘겨워봐야 방귀바람이고, 또 무슨 짓도 꿈같다. 고통은 내가 안고 표시는 없다.

그럼 결과적으로 뭐냐. 엉뚱한 소리인 것 같은데,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할 때 내가 세 글자로 표현했는데, <어허야>. <어허야><어허야>~~~이걸 한자로 쓰면 圓明行(원명행), 둥글고 밝은, 펼쳐진다. 언제나 둥글고 밝아요. 거기에는 힘겨운 것도 있고, 싱거운 것도 있고, 꿈같은 것도 있고, 다 있어요. 근데 그 핵심은 <어허야>에요. <어허야>, 원명행이라. 싱거운 것은 無跡行(무적행)이라, 없을 무, 자취 적, 행할 행, 자취 없는 게 인생이다.

 

     그러니 뭐냐. 복을 지란다고 다 그렇게 져요. 말이 그렇지, 헛소리에요, 복을 지으라는 게. 복 받으란 소리도 헛소리에요. 받으란다고 누가 다 복을 받아요. 그러나 금년에 죄 받으세요.’ 하면 다 신경질 낼 텐데, 죄 받으란 소리보다는 나은 거예요. ‘금년에 벌 받으세요.’ 보다는 낫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다짐을 하고 염을 할 때 그게 완전한 복은 아니지만 복의 씨앗이 되요, 염원. 생각하고 원하는 것. 그래서 일상생활을 복을 짓고 복을 주고 복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염원을 간직하고 살면 그것이 복의 종자가 되고 복의 뿌리가 돼서 내가 나한테 복을 주게 되요. 내가 나로부터 복을 받게 되요. 이 세상의 다, 벌도 나한테서 받았고, 복도 나한테서 받았다. 이런 인식, 이런 생각이 굉장히 중요해요. 모든 벌 받는 사람이 그걸 누구한테서 받았느냐. 나한테서 받았는데, 그걸 인정을 못해요. 그래서 벌을 더 받아. 벌을 나한테서 받았다는 것을 인정을 하면 또 벌이 멈춰요. 인정을 안 하면 벌이 많아져요. 염원, 염원이 잘 이어지면 그것이 기도예요. 기도는 염원을 자꾸 키우는 거다. 염원을 북돋고 염원을 재배하는 거거든요. 내가 나한테 복을 지어서 복을 주어야겠다. 내가 스스로 복을 지어서 스스로 복을 받아야겠다. 이런 염원이 필요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 염원을 문화화 시킨 게 많아요. 첫째로 설날이 되면 떡국을 먹는데, 이게 염원을 문화화 시킨 거거든요. 우리나라 특별한 음식이 있어요. 송편, 팥죽, 떡국, 이런 게 있거든요. 이게 전부 다가 염원을 담은 거예요. 그래서 생명력이 있는 거예요. 떡국이라는 게 뭐냐. 하예요(), 그게. 이건 근심걱정 없고, 질병환란 없는 것을 말해요. 하얀 떡. 길어. 명 길어. <명 길고 질병 없고 근심 없고 걱정 없는 한 해가 되게 해주십시오.> 하는 염원으로 하얗고 긴 떡을 빼서 끓여 먹는 거예요. 그 얼마나 중요한 문화예요. 아주 중요한 문화거든요. 그러니까 기도 잘하시고 금년에는 내가 많은 복을 지어서 내가 많은 복을 받아야겠구나. 좋은 한 해가 되시고. 되란다고 다 되는 건 아니겠지만(웃음). 행복한 한 해가 되시고. 또 정초에 정초기도하시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아주 축하받을 일이다. 축하할 일이다. 서로서로 축하해 주세요.(박수)

법문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