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수륙재] 9월 22일 국행수륙재 4재 법문 2019-09-22

 

      안녕하세요. 제가 진관사 수륙대도량법회에 수륙재 법문하러 왔습니다.

 

      수륙재는요, 수륙, 육지, 허공계, 그래서 수륙공계(水陸空界)라고 하거든요. 수계, 공계, 육계. 무주고혼이에요. 무주란 주인이 없다는 얘긴데, 제사 지내주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고, 가족도 없고, 주인 없는 외로운 영혼들, 그걸 무주고혼이라고 합니다. 수륙공계 무주고혼들을 왕생정토, 정토라는 얘기는 생사가 없고 고통이 없다는 얘기거든요. 삶과 죽음이 없고, 괴로움과 슬픔이 없는 정토에 가서 나서, 왕생정토해서 수용상락, 수용은 받는다는 애기거든요, 항상 즐거움을 받으십시오. 그런 뜻을 이루는 법회가 수륙재입니다. 그래서 수륙재하면 온 법계에 무주고혼을 천도해서 극락세계에 보내드리는 법회다, 그런 거예요.

 

      그래서 수륙재는 언제 꼭 성행을 했는가 하면, 전쟁이 많이 일어났을 때, 전쟁이 일어나면 무주고혼이 굉장히 많이 생겨요. 그래서 왕조가 처음으로 세워지면, 전쟁 없이 왕조가 안 세워지거든요, 반드시 수륙재를 많이 해요. 고려에도 그랬고, 조선시대에도 그랬고요.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시행하는 수륙재 도량을 국행수륙도량이라고 그래요. 국행, 나라에서 행했다고. 그러면 나라의 임금이 주인이 되는 거죠. 조선이 세워질 때까지 많은 생명을 잃은 무주고혼들을 전부가 다 정토왕생해서 항상 즐거운 상락, 또 편안하고 즐거운 안락을 받게 해드립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하는 거예요.

 

      그러면 영혼계가 편안하면 중생계가 편안하고, -잠자리가 편안하면 하루 종일 몸이 건강하거든요. - 보이지 않는 영혼계가 편안해야, 보이는 중생계도 편안하다. 그래서 수륙재를 개설을 해서 무주고혼들을 극락세계로 천도하는 일은 그 공덕이 자손 천추만대로 복을 받게 하는 일이다. 그러한 취지로 수륙재가 시행이 되어 왔어요. 그래서 보통 옛날에는 수륙재는 국재(國齋)로 해요. 국가에서 중심이 돼서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수륙재를 잘 못해요. 왜냐하면 하기가 힘들어요. 또 예수재나 이런 것은 각자 하는 사람이 정해져서 하지만은, 수륙재는 수륙공계 무주고혼을 천도하는 재라, 동참도 많이 해야 되고, 준비도 많이 해야 되고 힘들어요. 그래서 근래에는 잘 못하는데, 진관사는 오랫동안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여기가 조선왕조 초기의 국행수륙도량이에요. 나라에서 행한 수륙도량이에요.

 

      그러면 설명은 그 정도 하고요, 의식의 말씀을 잠깐 드리고 하겠습니다.

 

津寬大道場 水陸法會

진관대도량 수륙법회

依草附木 死此生彼 水陸空界 四生七趣

의초부목 사차생피 수륙공계 사생칠취

六道含靈 孤魂哀魂 一切列位 列名靈駕

육도함령 고혼애혼 일체열위 열명영가

至心諦聽 至心諦受

지심제청 지심제수

 

一切靈駕 無始已來 至于今日

일체영가 무시이래 지우금일

無明緣行 行緣識 乃至生緣老死憂悲苦惱

무명연행 행연식 내지생연노사우비고뇌

無明滅則行滅 行滅則識滅 乃至老死憂悲苦惱滅이로다

무명멸즉행멸 행멸즉식멸 내지노사우비고뇌멸

나무아미타불

 

지금 법문이 <중생이 왜 중생이냐.> 어디에 의지한다고 중생이라고 그래요. 의지하지 아니하면 해탈이에요. 의지하면 묶이는 거예요, 속박. 근데 중생이 의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데 의지해요. 의지할 데가 없는데 자기 욕심으로 아무 데나 의지해요. 그래서 그걸 의초부목(依草附木)이라고 그래요. 의지할 의, 풀 초, 요렇게 지나가다가 풀이 멋있게 생겼으면 거기에 의지해요. 또 나무가 좋게 생겼으면 거기에 의지해요. 이게 의초부목이에요. 붙을 부, 나무 목. 풀에도 의지하고 나무에도 붙고. 요즘 보면 부모 믿고, 취직 안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 자기 아들이 용돈 벌이만 하고 취직은 안 한 대요. ‘너 왜 아르바이트해서 용돈만 벌고 취직은 안하냐.’ 하니까, ‘아버지,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뭔 소리냐.’ ‘아버지 재산 다 아는데, 아들은 나 하나뿐인데 용돈 벌이만 하고 있으면 아버지 거가 다 내 건데 왜 나가 취직을 해요.’ 학을 떼겠더래요. 이건 벌써 교육이 잘 못 된 거예요. 교육은 절대 말로 되는 게 아닙니다. 몸에 익히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내 삶은 내가 살아야 한다.’를 몸에 익혀주는 게 교육이에요. 그게 학습이에요. 교육과 학습이 같이 가는 거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 부모에게 의지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모는 점점 늙어가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의지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자기 얼굴에 의지해요. 자기 잘 났다고. 어떤 사람은 자기 학벌에 의지해요, 자기 좋은 학교 나왔다고. 이게 다 삶과 죽음과 행복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 쓰잘데기 없거든요. 생사고락에는 얼굴도 학벌도 지식도 다 쓸 데 없어요. 그런데 덮어놓고 의지하는 거예요.

 

      그런 것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사차생피(死此生彼), 여기서 죽어서 저기에 난다, 이것이 생사인데, 사차, 죽을 사, 여기에서 죽어요, 그리고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다른 데 가서 또 태어나요. 이게 윤회라고 해요. 났다 죽었다 생사는 윤회고, 또 윤회는 취사라고 하거든요. 취하고 버리고. 똑같은 말이에요. 생사 윤회 취사, 요거 버리고 요거 취하고, 요것 버리고 이것 취하고. 맨날 나고 죽고, 가고 오고, 취하고 버리고, 이게 중생계예요. 그래서 여기서 수륙공계 사생칠취(水陸空界 四生七趣), 태란습화 여러 중생계, 육도함령(六道含靈), 지옥아귀축생 등 모든 영혼, 고혼애혼(孤魂哀魂), 외로운 영혼, 슬픈 영혼, 일체열위 열명영가(一切列位 列名靈駕), 모든 영가들이여. 이렇게 불렀어요. 불러서 한 말이 뭐냐.

 

      삶과 죽음이라는 건 한 생각이다. 한 생각이 다른 물질에 가서 붙으면 그게 생사가 되고, 한 생각이 마음 뿌리로 돌아가면 그게 해탈이 되는 거예요. 오늘 법문이 이거예요. 이게 밖으로 가서 붙으면 이거 버리고 저거 취하고, 취사, 사차생피, 여기에서 죽어서 저기에서 나고, 윤회, 계속 바퀴 돌듯이 되풀이 돼서 끝이 없어요. 생사윤회취사가 끝이 없어서 오늘 괴로운데 내일되면 편안하겠지.’, 천만의 말씀이에요. 내일 되도 취하고 버리는 건 계속 되요. ‘이 몸이 죽으면 편안하겠지’, 천만의 말씀이에요. 이 몸이 문제가 아니라 취하고 버리는 생각이 문제인거예요. 그래서 생각을 고치면 해탈인데, 몸을 없애는 건 어리석은 거예요. 몸이 없어진다고 해탈되는 게 아니에요. 이거 취하고 저거 버리는 것은 계속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한 생각이 마음으로 이렇게 돌아가면 그걸 일념(一念), 하나 일, 생각 념, 한 생각이, 환원(還源), 돌아갈 환, 근원 원, 일념이 환원하면 그것을 해탈이라고 해요. 또 일념이 반연(攀緣)을 하면, 인연을 쫓아간다, 인연을 붙잡는다, 붙잡을 반, 등반한다는 반자, 인연 연자, 밖으로 밖으로 반연으로만 나아가면 그게 생사예요. 밖으로 나가는 마음을 무명(無明)이라고 해요. 왜 무명이라고 하냐하면, 밝을 명자()은 지혜인데, 쫓아갈 게 없는 건데 쫓아갈 게 있는 걸로 잘못 본다고 해서 무명이라고 해요. (물컵 뚜껑을 들어올리시며) 이게 그릇은 그릇인데, 이걸 사용하면 그만인데, 이것을 계속 집착을 해요. 왜 집착하느냐. 이것은 이름뿐이고, 모양뿐인데, 이걸 불교에서 명상(名相) 이라고 해요. 중생사가 전부 이름뿐이고 모양뿐이다. 이거 참. 우리가 전부 이름과 모양에 속아 사는 거예요. 그래서 이름과 모양을 계속 쫓아가면 그것을 생사라고 그런다. 그런데 이름과 모양을 쫓아가는 한 생각을 근원으로 쓱 돌이키면 그게 환원이에요. 일념환원이에요. 일념반연은 생사고 일념환원은 해탈이다. 일념환원이 되면 그 한 생각에는 시간이 없어요. 과거 현재 미래가 없어요. 과거심도 불가득(不可得)이에요, 얻을 수가 없어요. 현재심도 불가득, 얻을 수가 없어요, 미래심도 불가득, 얻을 수가 없어요. 시간도 없어요. 공간도 없어요. 변만시방 (遍滿十方), 시방에 두루 하고 가득해요. 그게 일념이에요. 일념이란, 본무삼세(本無三世), 본래 삼세가 없고, 변만시방, 시방에 두루 하다. 일념이 그런 건데, 거기서 무명 한 생각이 일어나면 생사윤회가 되고, 무명 한 생각이 근원으로 쓱 들어가면 해탈자재(解脫自在)가 된다. 그래서 무명으로 말미암아 행이 있고, 움직이는 게 있단 말이죠, 행으로 말미암아 인식이 있고, 죽 나가서 생로병사우비고뇌가 있다(無明緣行 行緣識 乃至生緣老死憂悲苦惱). 근데 그 한 생각이 없으면, 한 생각이 본래로 돌아가면 행이 없고, 행이 없으면 인식이 없고, 인식이 없으면 더 나아가서 생로병사우비고뇌가 없다(無明滅則行滅 行滅則識滅 乃至老死憂悲苦惱滅). 그러니까 온 허공법계 무주고혼, 법계함령이라고 하는데요, 무주고혼 법계함령들이 한 생각 돌이키면 해탈인 거예요. 한 생각 일으키면 생사인거예요. 그걸 가르치는 게 불교거든요. 그러니까 모양을 자꾸 쫓아간다든지, 자기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든지, 그러면 안 돼요. 어떤 사람이 아들이 죽었는데, ‘아들을 한 번만 더 봤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죽은 아들을 볼 수 있을까요? 안 되는 줄 알아요. 근데 그만둘 수가 없어요. 옛날 노래도 그런 게 있잖아요.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안 되는 줄 아는데 보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요. 생각을 하다하다 하도 지쳐서 제발 자식 보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다, 자식 생각하는 마음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그래요. 벗어날 수 있을까요? 생각 안하려고 하면 더 생각이 나요. 자식 생각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죽은 자식을 한 번 더 만나 볼 수도 없는 거예요. 그럼 방법이 뭐냐. 딱 하나가 있거든요. 이거 굉장히 중요한 방법인데, 그냥 잘 안 가르쳐주는 방법이에요. 천하의 비법이라고. 딱 그 방법은요, 자식이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고, 그 마음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슬플 때는 그냥 울어요. 일부러 참지 말아요. 보고 싶을 때는 생각해요. 생각하다가 울다가... 이게 하루이틀해서 안 끝나거든요. 빨리 끝내려고 하면 더 안 끝나요. 울다 생각하다 울다 생각하다... 그럼 본인이 지쳐요. 그러면 법문 들은 걸 딱 기억해서 이 우울한 마음은 뭐며, 자식 생각하는 그 마음은 뭔가.’ 그 마음으로 돌아가면 그 마음이 보여요. 그 마음에는요, 엄마도 없고 자식도 없고, 삶도 없고 죽음도 없고, 과거 현재 미래도 없고, 동서남북도 없어요. 그냥 둥글고 밝아요. 그게 불교에요.

 

      그런데 그 마음이 뭔가 하는 건 잘 안 돼요. 늘 밖에 것만 생각해 봐서. 안 되니까 그것보다 좀 쉬운 게 경 읽는 거예요. 경 읽다보면 자식보고 싶은 마음이나 슬픈 마음이 이 경전 때문에 좀 잊혀져요. 그래서 반야심경 260, 10번씩만 읽고, 또 조금 쉬었다가 10번 읽고, 그래서 하루에 한 100번만 읽어도 굉장히 보고 싶은 마음이나 고통스런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있어요. 거기서 더 나가 한 200번 읽으면 상당히 좋아져요. 하루에 300번씩, 오전에 100, 오후에 100, 저녁에 100번씩 읽으면 울고 슬퍼하는 거에서 엄청나게 벗어날 수가 있거든요. 그냥은 안 돼요. 그냥 슬퍼 안 하려고 해봐야 안 되고요, 보고 싶어 한다고 해서 봐지는 게 아니고요. 한 마음에서 자식도 생기고 엄마도 생기고 세상도 생겼기 때문에 그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시 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우주법계 무주고혼들이 생사해탈하는 게 아주 간단한 거예요. 전쟁터에서 목도 날라 가고, 굶어서도 죽고 그런 건데, 한마음으로 돌아가면 그냥 둥글고 밝은 자기 본래 자신이 나와요. 그래서 지금 우리 몸이라는 것은 취하고 버리는 윤회의 몸인데, 한 생각으로 돌아가면 해탈의 몸이 보이거든요. 내가 해탈의 몸을 만나는 것이 극락왕생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극락왕생을 하는데, 화엄경 여래출현품에 보면 그런 말이 있어요.

 

佛智妙光明 遍在衆生心 妄想之所纏 不覺亦不知

불지묘광명 변재중생심 망상지소전 불각역부지

諸佛大慈悲 令其除妄想 如是乃出現 利益諸衆生

제불대자비 영기제망상 여시내출현 이익제중생

 

불지묘광명(佛智妙光明), 부처님의 묘한 지혜광명이 있는데, 이게 시간이 없고 공간이 없는 묘한 광명인 거예요. 그게 나거든요. 그것이 변재중생심(偏在衆生心)이라, 중생심 하나하나 꿈꾸고 생각하는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거예요. 그 꿈꾸는 마음을 돌리면 되지, 따로 있는 건 아니거든요. 중생심에 다 있는데, 망상지소전(妄想之所纏)으로, 이것 취하고, 저것 버리는 허망한 생각이 자꾸 얽혀있기 때문에 불각역부지(不覺亦不知), 모른다. 그래서 그 부처님이 망상을 제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이것이 화엄경 여래출현품 법문이에요.

 

      그러면 극락세계 왕생하는 게 다 똑같아요. 본래 자기 묘한 광명이 극락세계이기 때문에 법계영혼들이 그쪽으로 돌아가면 끝나는 거거든요.

 

      그래서 마치는 말씀이거든요.

 

衆生生死 猶如夢事 忽醒迷夢 頓亡生死

중생생사 유여몽사 홀성미몽 돈망생사

速往淨土 覺智圓成 神通自在 常放光明

속왕정토 각지원성 신통자재 상방광명

 

중생생사(衆生生死), 중생이 나고 죽고 하는 것이 유여몽사(猶如夢事), 마치 꿈꾸는 것과 같다. 중생이 한바탕 꿈이에요. 일장춘몽이라. 그런데 젊을 땐 도저히 몰라요, 이거를. 죽는 순간에 보면 알아요. 그런데 더 살 수는 없어요. 그게 인생이에요. 인생일생이 일장춘몽인데, 젊을 때는 모른다, 늙어서도 모른다, 언제 아냐. 죽기 1분전에 안다. 그땐 알아봐야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게 인생이에요. 아는 순간에 죽는 거예요. 그러니까 미리 좋은 인연 맺어서 좋은 공부하고 좋은 공덕을 심는다는 것은 무량대복이지요, 무량대복. 마치 꿈과 같아서, 홀성미몽(忽醒迷夢)하면, 홀연히 가다가 오다가 잠자다가 밥 먹다가, ‘, 이게 한 생각에서 생사가 벌어지고, 한 생각에서 해탈이 이루어지는 구나.’ 이걸 탁 깨요. 미혹한 꿈이라고, 어리석은 꿈. 미몽을 깬다, 미혹한 꿈을 깬다. 그러면 돈망생사(頓亡生死), 돈이란 바로, 즉시에, 망이란 없다, 생사란 없다. 꿈 꿀 때는 꿈이 있었는데, 꿈 깨는 순간에 꿈은 없거든요. 생사란 그런 거예요.

 

      그래서 진관사 수륙대도량에 운집한 무주고혼들께서는 속왕정토(速往淨土)하시고, 생사 없는 극락세계에 속히 가시고, 각지원성(覺智圓成)하시고, 깨달은 지혜를 원만히 이루시고, 신통자재(神通自在)하시어, 신통이 자유자재하시어, 상방광명(常放光明)하소서, 과거 현재 미래가 없고 동서남북이 없는 곳에서 항상 광명을 비추면서 상락과 극락의 대복덕을 받으소서.

 

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개공성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