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49재] 11월 18일 49재 법문 2023-11-18

금일 영가 지심제청(至心諦聴) 지심제수(至心諦受)

 

諸法無眞實 妄取眞實相 제법이 무진실이어늘 망취진실상하야

是故諸凡夫 輪回生死獄 시고제범부가 윤회생사옥이로다

나무아미타불

(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

 

不見諸法空 恒受生死苦 불견제법공 항수생사고

斯人未能有 清淨法眼故 사인미능유 청정법안고

 

        불교는 깨달음인데, 깨달으신 삼세제불, 역대조사, 천하선지식이 깨달은 바가 무엇인가. 영명성심(靈明性心)이라. 신령 령, 밝을 명, 신령스럽고 밝은 본성의 마음을 깨달았다. 성품 성, 마음 심. 영명성심. 또 진여원각(眞如圓覺), 참 그대로 둥글게 아는, 둥글 원, 느낄 각, 둥글게 아는 그 마음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마음을 깨달았다 이거죠. 마음을 깨달아서 뭘 얻었나. 마음을 깨닫고 보니까 상락정토(常樂淨土)가 나타나더라. 항상 상, 즐거울 락, 깨끗할 정, 흙 토. 항상 즐거운, 다른 이물, 잡용물이 하나도 없고, 본래 그대로 청정국토가 나타나고, 극락 세대가 나타나더라. 즐거웠다 괴롭다 하는 게 아니라, 지극히 즐거워서 즐겁지 않은 곳이 없고, 즐겁지 않은 시간이 없는 극락세계가 나타나더라.

        이것이 삼세제불, 역대조사, 천하선지식이 깨달은 바인데, 깨달아서 뭘 어쩌라고. 세상에서도 누가 길을 열심히 내서 닦아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힘 안 들이고 그 길을 가듯이, 이 부처님이 깨달은 이 마음과 이 세계를 믿는 사람은 가게 돼 있고, 안 믿는 사람은 못 가게 돼 있다 이거죠. 아무리 좋은 곳을 쉽게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을 믿지 않고 안 가면 소용이 없는 거죠.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깨달은 세계고, 오늘 재를 지내는 원리입니다. 

 

        처음에 게송으로 말씀드린 것은 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인데, 뭐라고 했냐. 제법은 무진실이라(諸法無眞實).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하는 모든 현상은 진실한 것이 없다. 무상하고 허망해서, 생겼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생기고 이런 것인데, 지혜가 없는 범부 중생이 쓸데없이 그 제법 현상에 진실상을 일으키고 있다라는 거거든요. 제법이 뭐냐. 가까이는 우리 몸이죠, . 조금 멀리는 눈에 보이는 거고. 이 몸이나 눈에 보이는 거나 진실한 게 하나도 없고, 영원한 게 하나도 없고, 정해진 게 하나도 없는데, 그게 그런 줄을 모르고, 이게 내 몸이라 오래 갈 것이고, 눈에 보이는 게 저게 보통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사물이 꼭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허망하고 무상한 것을 구하다가, 구하다 구하다 구하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니까, 막상 이 코에 숨이 떨어지고, 머리에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에 가만히 생각을 하니, 내가 지금까지 구하고 이룬 것이 이 죽음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많은 걸 이루고 많은 걸 구했는데, 구한 것도 이 숨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고, 이룬 것도 자기 목숨 하나 떨어지는 걸 어떻게 구제할 수가 없다. 이걸 이제 깨달아서 대부분 후회하고, 후회가 깊으면 눈물을 흘리. 그래서 돌아가시는 분 대부분 보면 말은 못 해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분이 상당히 많아요. 왜 그러냐. 지금까지 구하고 이룬 것이 내 죽음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이거거든요. 그럼 내가 뭐 하러 그걸 했나. 이게 참 큰 인생 일대사여. 그래서 모든 범부가 윤회생사옥(輪回生死獄)이라. 윤회생사옥. 나고 죽는 감옥에 오고 가고 오고 가고 되풀이를 한다. 생사를 감옥으로 보죠. 생사옥. 윤회는 계속한다 이거죠. 나고 죽고, 죽고 나고.

        그러면 뭐가 이제 되느냐. 여기서 깨달음을 얻으신 불조(佛祖)께서는

 

生也只伊麽 死也只伊麽 생야지이마 사야지이마

生死與涅槃 總不干者箇 생사여열반 총불간자개라

緣生水裏月 想變夢中人 연생수리월 상변몽중인

火消烟滅後 還我本來身 화소연멸후에 환아본래신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진각국사법어. 한불전6, 23)

 

        일체중생에게 생사 없는 본래신(本來身)이 있다. 이게 이제 불조가 깨달은 몸이죠. 본래신.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받은 몸이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받기 전부터 있었고, 이 몸이 숨진 후에까지 있는 본래신이 있다. 그 본래신이 영명성심, 진여원각인데, 그 본래신을 떡 깨닫고 보면, 생야지이마(生也只伊麽). 태어나는 것이 그저 이러하다. 이러할 이, 이러할 마자가 있는데, 이러하다. 이러하다라는 게 뭔가. 연못에 달이 비칠 때나, 연못에서 달이 사라질 때나, 그 연못에서 볼 때는 달이 비칠 때도 그대로 연못이고, 달이 사라질 때도 그대로 연못이다. 그걸 이마라고 그래요. 이마. 이 손이 하나 있는데 이 손가락을 폈을 때도 그냥 손이고, 손가락을 오므렸을 때도 그냥 손이지, 폈을 때 손하고 오므릴 때 손하고 다른 것이 전혀 아니다. 이게 이제 깨친 분들이 가르쳐주는 말씀이죠. 죽는 것도 이러하다. 생사 열반이 생사는 나고 죽는 거고, 열반은 불생불멸인데, 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닌 것인데, 총불간자개(總不干者箇). 이 영명성심에 전혀 해당이 안 된다. 근데 연생은 수리월(緣生水裏月)이요. 인연에 의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고, 세상 생활용품의 모든 도움을 받아가지고 살아가고 하는 것이 이게 연생인데, 인연 연자, 날 생자. 그거는 수리월이라. 물 수자, 리자, 저 물속에 비친 달과 같다. 상변은 몽중인(想變夢中人)이라. 생각 상자, 변화할 변자. 변이라는 건 나고 죽는 거죠. 나고 죽는 걸 생각하는 것은 그 영명성심을 모르고, 나고 죽고 죽고 나고 이것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몽중인과 같다. 꿈 몽자, 가운데 중자, 사람 인자, 꿈속에서 꿈꾸는 사람과 같다. 몽중인이라. 화소연멸후(火消烟滅後), 여러 가지 이것저것 생각이 다 사라지고 지혜가 나타난 후에, 환아본래신(還我本來身)이라. 나의 본래신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이제 불교에서 이 마음을 가르칠 때, 보는 데 매이고, 듣는 데 매이고, 생각하는 데 매이고, 움직이는 데 매이는 마음을 밝은 지혜가 없다라고 해서 무명심(無明心)이라고 그래요. 없을 무자, 밝을 명자. 그리고 사물은 없고, 색이 공하고, 일심이 원명이라, 한마음이 둥글고 밝다. 이걸 보는 거를 반야심(般若心)이라 그래요. 색이 공함을 본다.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라.공이라는 건 불생불멸인데 불생불멸을 비추어 본다. 이걸 반야라고 한단 말이에요. 반야는 누구냐, 보살인데, 무명은 범부고. 보살은 산도 보고, 사람도 보고, 하늘도 보고, 땅도 본다. 거기서 관공(觀空)을 해요. 공을 본다. 하늘을 볼 적에도 공을 보고, 불생불멸을 본단 말이죠. 죽음을 볼 때도 불생불멸을 보고, 태어남을 볼 때도 불생불멸을 보고, 관공을 하는데 범부는 집상(執相)을 한다. 붙잡을 집, 형상 상. 형상을 집착하니까 범부라 그러고, 사물 속에서 공을 보니까 보살이라 그래요. 뭘 봐도 죽음이 불생불멸이다, 이걸 딱. 이게 조견오온개공이라고, 오온이 다 공함을 본다. 이게 보살이거든요. 근데 제불은 일광변조(日光遍照), 한 광명이 두룻이 밝아서 보고 안 보고가 없어요. 그걸 보리(菩提)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걸 대광명이라고, 절에 가면 석가모니 부처님 모신 곳, 부처님 모신 곳을 대광명전 뭐 이런단 말이죠. 그건 일광이 변조라. 그 마음 광명이 온 시방 법계를 항상 두룻이 비추니까 그걸 보리라고 한다 이거야. 근데 무명심 속에도 영명성심이 있다 이거죠. 신령스럽게 밝은 본성의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그 본성의 마음이 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또 머리로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고, 행동하고 하는 그걸 쫓아가고, 쫓아가고, 쫓아가다 보면 이 생각이 텅 비었어요. 생각이 없어요. 생각이란 뜬구름과 같아서 뜬구름을 자세히 보면 구름은 없고 허공뿐이다. 그래서 생각을 딱 들여다보면 생각은 없고 지혜뿐이다. 그래서 그 지혜를 얻고 나면 이 보는 놈도 본성의 마음이다 이거죠. 그런데 지혜를 얻기 전에는, 그게 본성의 마음인 줄 모르고 보는 대상에만 쫓아가요. 쫓아가도 쫓아가도 끝날 날이 없어서,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빈 마음을 가지고 산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그 나이가 됐는데 왜 욕심을 부리냐 그러니까 그거 생판 모르는 소리여. 이 욕심은 나이가 없어요. 욕심은 체면도 없어요. 욕심은 한계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게 보면 더 보려고 그러고, 받으면 더 받으려고 그러고. 그 어떤 부모들은 그만큼 해줬으면 됐지 왜 더 바라느냐’, 생판 모르는 마음이에요. 받으면 더 받으려고 하는 게 욕심이에요. 그러니까 어중간하게 주려면 아예 안 줘야 돼요. 아예 안 주면 원망도 없고, 고마움도 없고, 그거 얼마나 좋아요. 줬다가는 더 받으려고 그래요.그거 참 희한한 게 마음이에요. 받으면 더 받으려고 그런다. 멈춤이란 없다. 채우면 더 채우려고 그런다. 멈춤이란 없다 이거죠. 

         근데 그런 마음도 더 들어가고 들어가고 보면 뜬구름이라, 자취가 없어요. 그럼 자취 없는 속에 뭐만 남는가. 둥글고 밝은 지혜만 남는다. 그래 둥글고 밝은 지혜만 남을 때 그걸 보는 마음이 아니라 두룻이 밝은 마음이라고 광명변조심이라 그래요. 광명이 두룻이 밝은 마음이다. 부처는 그런 분들이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거죠. 

       평소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지금 듣고 계신데, 들을 만해요? 그러면 대단한 거예요. 이런 얘기를 듣고 들을 만 하면 대단한 거예요.

        그래서 이런 걸 이제 가르쳐주는 것이 부처님, 또 역대 조사, 천하 선지식의 가르침이다, 이런 말씀이죠.

事事物物 隨緣沒生 覺所現發 性覺靈明

사사물물이 수연몰생이니 각소현발이라 성각영명이로다.

自己本性 先天後天 行住坐臥 明明新新

자기본성이 선천후천이니 행주좌와에 명명신신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사사물물(事事物物), 온갖 세상 물건들이 수연몰생(隨緣沒生)이라, 인연 따라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게 뭐에, 사물에다가 아주 목적성과 절대성을 부여하면 나중에 슬픔이 생겨요. 수연몰생이기 때문에, 인연 따라서 생긴 거니까, 인연 따라서 사라져요. 근데 몇백 년 전에 돌아가신 조상 자랑하는 사람도 아직 있어요. 몇백 년 전 조상은 그 시대의 인연으로 사라졌어요, 그 시대 인연으로 생겼다가.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면 온갖 사물이 과연 뭐냐. 각소현발(覺所現發)이라, 각은 마음인데 현발은 나타난 것이죠. 소는 장소라.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이게 깨달은 분만이 할 수 있는 말인데, 그럼 이거(종이) 이렇게 보면, 이거 이제 사물로 보는 거는 무명으로 보는 바고, 깨달음으로 보는 바는, 이거는 뭐 종이니 뭐 글자니 그게 아니라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이거예요. 각소현발. 하늘이 저기 하늘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근데 범부는 사물만 있고 각이 없다. 근데 알고 보면 모든 사물이 각소현발이라, 이 마음이 나타난 장소일 뿐이지, 그 사물 자체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라, 자체가 없다. 이걸 가르치는데 우리 범부가 알지를 못한단 말이죠. 이게(물컵) 이렇게 보면 이게 그릇이 아니라 그릇은 공한 것이고, 이 마음이 여기에 떡 나타난 장소다. 그래서 이걸 또 이렇게 들어보이는 게 이게 너의 마음이다. 이걸 가르치려고 보이는 거예요. 그릇 구경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큰 스님들 법문할 때 보면 뭐 보이는 게 있거든요. 이게 바로 네 마음이 나타난 장소다. 형상에 따라가서 형상에 매달리면 허망한 슬픔만 있을 뿐이지 결과는 없다. 이걸 가르치는데, 이게 참 믿으면 바른데 안 믿으면 안 돼요. 자기 본성(自己本性), 자기 본래 성품이 선천후천(先天後天)이라, 하늘보다 먼저 있었고 하늘보다 뒤에까지 있다.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선천후천. 선이라는 거는 이거는 명사가 아니고 동사, 하늘보다 먼저 있었고, 후천, 하늘보다 뒤에까지 있다, 이거거든요. 행주좌와(行住坐臥), 돌아다닐 때나 멈춰 있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명명신신(明明新新)이라, 밝을 명, 새로울 신, 밝고 밝고 새롭고 새롭다. 어제도 이 그릇을 봤는데 오늘 보는 마음은 어제 마음이 아니에요. 오늘 마음이요. 내일도 그릇을 보면 이게 내일 마음이 아니라 바로 그 당시 마음이란 말이죠. 이걸 신신이라 그래요. 마음이란 늙음이 없다. 마음이란 죽음이 없다. 그러니까 항상 새로울 뿐이다, 이 말이죠. 명명신신이라. 이 마음이 되면 극락세계 아닌 데가 하나도 없어요. 티끌도 극락이고, 죽음도 극락이고, 삶도 극락이고, 숨을 내쉬는 것도 극락이고, 들여 쉬는 것도 극락이고, 하늘을 볼 때도 극락이고, 땅을 볼 때도 극락이고, 이걸 이제 깨달아서 상락정토 극락세계라 하는 거거든요.

 

 

一念忘時明了了 彌陀不在別家鄉

일념망시명요료하면 미타부재별가향이로다

通身坐臥蓮華國 處處無非極樂堂

통신좌와가 연화국이니 처처무비극락당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나옹가송, 한불전6,742)

  

        이 법문은 고려 말에 나옹 큰스님께서 남겨주신 법문인데요. 나옹집에 수록되어 있는 법문인데, 일념이 망시(一念忘時), 여기서 일념이라는 것은 밖으로 집착하는 한 생각, 밖으로 집착하는 한 생각이 딱 없어졌을 때, 명요료(明了了)하면, 그 본래 청정하고 밝은 지혜가 밝게 밝게 탁 나타나면, 미타부재별가향(彌陀不在別家鄉)이라, 아미타불이 저 딴 데 있는 게 아니고 바로 눈앞에 있다, 이 법문이에요. 통신좌와(通身坐臥), 온 몸이 안고 눕고 하는 게, 극락세계니, 연화국(蓮華國)이니, 처처무비극락당(處處無非極樂堂)이라, 곳곳이 극락당, 집 당자, 극락집 아닌 곳이 없다. 이게 이제 나옹 스님 법문이에요. 천하 선지식의 가르침이다, 이 말이죠그러니 극락 얘기는 이만하면 충분하고, 오늘 영가가 이제 가실 일밖에 없어요.

금일 영가 지심제청(至心諦聴) 지심제수(至心諦受)

般若淨土 極樂世界 菩提淨土 極樂世界

반야정토 극락세계 보리정토 극락세계

涅槃淨土 極樂世界 西方淨土 極樂世界

열반정토 극락세계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一念信心 一念信心 直得往生 速得往生

일념신심 일념신심으로 직득왕생하시고 속득왕생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극락은 정토인데, 청정국토인데, 어떻게 하면 청정이 되냐. 반야심이 되면, 색이 공함을 딱 보면 거기에 극락세계(極樂世界)가 나타난다. 그걸 반야정토(般若淨土)라고 한다 이거지. 또 극락은 보리인데 광명이 두룻이 세상을 비출 때 극락 아닌 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걸 보리정토(菩提淨土)라 그런다. 극락은 열반인데, 열반은 불생불멸 상주정토, 나고 죽는 게 아니고 항상 있는 정토인데, 열반정토 극락세계(涅槃淨土 極樂世界), 또 극락은 서방정토(西方淨土)인데, 서방이라는 건 비유인데 백방이라. 흰 것을 서로 표현하거든요. 그래서 극락세계에 떡 가고 보면 극락은 본래 더러워진 일이 없더라. 그걸 서방정토라고 그래요. 본래 청정. 꿈을 딱 꿀 때는 온갖 나그네가 됐는데, 꿈 깨고 나니까 본래 집주인이더라. 이거와 똑같은 거죠. 극락에 가고 보니까 본래 청정해. 그래서 그걸 서방정토라고. 그래서 보통 염불을 할 때는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말하거든요. 그게 그 뜻이에요. 가고 보니 본래 극락에서 벗어난 일은 본래 없더라 이거에요. 서방정토.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오늘 영가께서 일념신심(一念信心)으로, 한 생각으로 믿는, 두 생각, 세 생각은 안 되고 한 생각으로 믿는 신심으로, 또 한 생각으로 믿는 마음으로, 직득왕생(直得往生)하시고, 곧 직자, 얻을 득자, 얻을 득자는 어조사, 바로 딴 데 둘러 가지 마시고 바로 그곳에 가서 태어나시고, 속득왕생(速得往生)하소서. 속히 그곳에 가서 태어나십시오. 오늘 법문 다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