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추모다례재] '무위당 진관스님 추모 다례재' 법문 2019-07-01

 

 

示寂之後 三週之辰 進供法香 飽滿飽滿시적지후 삼주지진 진공법향 포만포만

   진관스님 진관스님 법향을 가득히 받으십시오. 법향을 가득히 받으십시오.

眞樂이本有거늘 失而不知하고 妄苦가本空이어늘 得而不覺이로다진락본유 실이부지 망고본공 득이불각(淸凉華嚴經疏鈔청량화엄소초 권2의2, 43장하)나무아미타불

   화엄종주 청량화엄소초의 경인데, 역대의 많은 큰스님들이 하신 부분이에요. 眞樂이本有(진락본유)거늘, 일체중생에게 참된 즐거움(眞樂 참 진자, 즐거운 락자), 참된 진락이 本有(본유), 본래 있거늘, 失而不知(실이부지)하고, 그걸 잃어버려서 알지 못하고,  妄苦가本空(망고본공)이어늘,  허망한 고통이 본래 공했거늘,  得而不覺(득이불각)이라, 그걸 얻어서 망고가 본래 공함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역대로 큰스님들이 하신 법문입니다.

蛇福母死 元曉 臨尸祝曰사복모사 원효 임시축왈莫生兮其死也苦요 莫死兮其生也苦니라막생혜기사야고  막사혜기생야고 福曰詞煩 更之曰 死生苦兮 복왈사번 갱지왈 사생고혜(三國遺事 제4권, 蛇福不言章 삼국유사 제4권, 사복불언장)

   삼국유사 사복장에 보면, 사복동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원효선사를 찾아가서 “우리 어머니한테 법문을 좀 해주십시오.”하니까, “좋다.”하고, 사복어머니 영가앞에 가서 “莫生兮(막생애), 태어나지 말아라, 其死也苦(기사야고), 죽는 것이 고통이요, 莫死兮(막사혜), 죽지말아라, 其生也苦(기생야고)니라, 나는 것이 고통이니라.” 그러니까 옆에 있던 사복동자가 曰(왈), 말하기를, “詞煩(사번)이라, 말이 너무 번거로워, 말이 너무 많습니다.”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更之曰(갱지왈), 고쳐서 말하기를, “死生이苦兮라(사생고해), 죽고 나는 것이 고통이다.” 그 기록이 삼국유사에 그대로 실려 있는데, 이 법문도 많은 큰스님들이 하신 법문이에요. 통도사 경봉큰스님께서도 영가 법문할 때 이 법문을 자주자주 하셨어요. 사생이 고해라, 나고 죽는 것이 고통이다.    거기에 오늘 법사가 한 말씀을 붙인다면,

一念이忽起에 生死苦惱하고 一念이不起에 寂滅常樂이로다일념홀기 생사고뇌 일념불기 적멸상락나무아미타불

생사가 고통인데, 생사가 어디서 왔느냐, 생사가 온 곳이 어디냐, 이 말이죠. 생사는 한 생각이다.  一念이忽起에(일념홀기), 한 생각이 홀연히 일어남에, 生死苦惱(생사고뇌)하고, 생사고뇌가 끝이 없고, 一念이不起에(일념불기),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함에, 寂滅이요常樂이다(적멸상락),적멸이요 상락이다. 한 생각이 안 일어나면 생사는 없다. 생사 없는 것을 적멸이라고 하고, 생사를 생멸이라고 해요. 그래서 생멸은 연기, 생각이 일어날 때 생겨요. 일념불기,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생멸도 없고, 고통도 없고, 상락이다. 적멸상락. 그런데 경에서는, 생멸, 斷滅(단멸), 적멸 그렇게 얘기하는데, 생멸은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는 것이고, 단멸은 딱 끊어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고, 적멸은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色卽是空 空卽是色), 性空不生(성공불생), 본성이 공해서 나지 않고, 性空不滅(성공불멸), 본성이 공해서 죽지 않는 게 그게 적멸이다 라는 얘기예요.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적멸이요, 상락이다. 생사고뇌가 적멸상락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중생이 이미 한 생각을 일으켜서 생멸을 받는 고뇌에서 적멸상락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적멸상락을 얻는 방법은 뭐냐. 그게 오늘 법문인데요.

心不妄取過去法 亦不貪着未來事심불망취과거법 역불탐착미래사不於現在有所住하면 了達三世가悉空寂이로다불어현재유소주  요달삼세실공적(華嚴經, 十廻向品제25)나무아미타불

   예참헌공예불에 늘 하는 법문이데, 화엄경 십회향품에 있는 법문이에요. 이미 일어난 한 생각을 어떻게 하면 종결심으로 돌려서 상락을 항상 받을 것인가.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나듯이, 한 생각이 일어나서 생사가 있다면 한 생각을 돌이키면 생사는 없다, 이건데요. 한 생각을 돌이키는 방법이 뭐냐. 心不妄取過去法(심불망취과거법)하고, 마음으로 허망 되게 과거법을 자꾸 생각하지 말고(취할 취자는 생각한다는 뜻이에요). 일체중생이 과거법을 생각하다가 세월이 다 가요. 과거는 이미 현재가 다 됐는데, 내 생각 속에서만 현재가 되지 아니한 과거가 있는 거예요. 내가 옛날에는 어린아이였다. 그럼 그 어린아이는 어디로 갔는가. 옛날의 어린아이가 어디로 간 게 아니라 현재의 내가 된 거예요. 그래서 현재는 다 과거에서 왔기 때문에 과거는 다 현재가 되었다. 그런데 과거가 다 어디 들었는가. 중생의 기억 속에는 과거가 남아있어요. 그런데 과거 생각하다가 생사가 계속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허망 되게 과거법을 생각하지 말고. 亦不貪着未來事(역불탐착미래사)하고, 또한 미래사도 탐하여 집착하지 말고. 미래는 뭐냐. 현재가 그대로 미래가 되는데, 현재가 청정하면 미래가 청정하고, 현재가 혼란하면 미래도 혼란하고, 과거는 현재가 되고, 현재는 미래가 되기 때문에, 미래는 현재를 떠나서 따로 없다. 그런데 중생은 미래를 걱정하다가 세월이 가요. 이게 전부 다 망상이고 집착이다 이거죠. 不於現在有所住(불어현재유소주)하면, 현재 있는 바에 또 얽매이지 않으면, 현재는 현재에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현재란 말이에요. 거기서 자꾸 취사선택을 해요. 그게 머물 주자인데, 머물 주자는 종종취사(種種取捨)라, 가지가지로 취하고 버리고, 취하고 버리고. 원각경에는 종종취사는 개시윤회(皆是輪廻)라, 하나 취했다가 금방 하나 버리고, 취하고 버리는 게 계속 반복되니까 자동차 바퀴 돌듯이 계속 되풀이된다 말이에요. 

 

 그런데 현재 취하고 버리는 일을 하지 아니하면, 了達三世가悉空寂(요달삼세실공적)이라,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적멸실상임을 요달, 알게 되리라. 이거거든요. 그러니까 과거도 생각하지 않고,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현재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관조(觀照)라고 해요. 다 보고 비춘다. 비추고 본다. 그렇지 아니하고 과거 생각하고, 미래 생각하고, 현재 집착하는 것을 번뇌라고 하거든요. 관조를 하면, 과거를 생각하지 않고, 마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도 집착을 하지 않으면 조용해지고, 조금 더 들어가면 경계가 텅 비어있어요. 경계는 나의 대상인데, 이 안이비설신의에서 마지막에 있는 색성향미촉법 온갖 육근 대상 경계가 적멸법때문에, 고요한 법이 없어요. 산에는 산이 없고,  산이라는 분별심이 사라지니까 산이 없어. 하늘에는 하늘이 없고, 하늘이라는 분별심이 사라지니까 하늘에 하늘이 없고. 몸이라는 분별심이 사라지니까 몸에 몸이 없다.

 

 경계가 적멸해지고, 경계가 적멸해지면 그 적멸한 경계를 보는 마음이 적멸해지고. 이걸 경공심공(境空心空)이라고 해요. 경계가 공하고 마음이 공하다. 이 경공심공이 떡 되면 뭐가 나오는가. 이게 요달 인데, 과거현재미래가 이게 생사요, 이게 만법인데,  이 생사만법이 정을 하게 된다 말이에요. 이게 요달삼세가 실공덕이라. 이 적멸까지 들어가는 것을 정극(깨끗할 정자, 지극할 극자 淨極), 깨끗함이 극치에 오른다 이 말이죠. 조적이라(照寂, 비출 조자, 고요할 적자), 비추고 비추어서 비추는 지혜가 고요한 데까지 도달했다. 이걸 등각(等覺, 같을 등자, 깨달을 각자)이라고 해요. 등각은 조적, 비추어서 고요한 데 들어간 상태를 등각이라고 하거든요. 정극, 그 청명함이 극에 도달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조적, 정극에 들어가느냐? 일체 만물이 다 사라지는 경지인데, 불과 마가 있어요. 불은 뭐고 마는 뭐냐. 불과 마가 별종자가 아니라, 분별은 마요, 분별하는 것은 모두 마라고 하거든요. 不分別(불분별)은 佛(불)이라, 분별하지 않는 것을 불이라 한다. 화엄경 이세간품에서 자세히 가르치는 법문인데. 이 등각의 경지가 되면, 조적의 경지, 정각의 경지가 되면 십종마(十種魔) 항복을 해요. 십종마, 열가지 종류의 마인데, 십종마에 어떤 거까지 들어가는가 하면, 삼매마가 있어요. 삼매도 청정이 극한데 들어가면 마예요. 분별이요. 왜냐. 삼매는 탐미요라, 삼매의 고요한 맛을 탐하게 되요. 이게 삼매마(三昧魔)에요. 정극에는 삼매가 없어요. 그냥 청정이 극할 뿐이에요. 그 다음에 선지식마(善知識魔), 선지식도 마가 되요. 그리고 공부한 사람들 보면, 자기 삼매자랑 엄청나게 하고, 선지식 자랑 엄청나게 한대요. 전부 마구니에요. 정극에 못 들어갔어요. 청정의 극치에 못 들어가요. 삼매마, 선지식마. 또 보리마(菩提魔)가 있어요. 보리, 보리하면서 보리에 자꾸 집착하고, 보리에 분별하면 다 마에요. 그 외도 10가지니까 많겠죠. 선교마(善巧魔), 좋은 방편으로 선근공덕 짓는다고 자꾸 분별하면 그것도 정극, 등각 경지에서 다 마에요. 거기는 나쁜 것도 없지만 좋은 것도 하나도 없어요. 비춤이 고요한 조적이 되고, 청정이 극치에 오르는 정극이다. 이 경지에 들어가면 삼세가 다 공적한데, 공적한 것을 금강삼매(金剛三昧)라고 해요. 금강삼매는 일체를 다 부수는 거예요.

 

금강삼매는 조적무방(照寂無方)이라, 고요히 비추는 것이 이 방소가 있고 저 방소가 있는데, 방소가 하나도 없이 그냥 고요하게 비출 뿐이에요. 그 경지가 되면, 정극하면 광통을 해요. 빛이 확 나타나. 그걸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고 해요. 고요함이 극에 달하고, 청정함이 극에 달하면 능엄경에서 말하는 정극광통(淨極光通, 빛 광자, 통할 통자)이다. 그것을 시성정각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정각을 이뤘다. 시성정각이 조금 깊어지면, 본각(本覺)이 되요, 본래 깨달음과 같이 되요. 본각이 더 싶어지면 원각(圓覺)이 되요. 이게 공부하는 과정이에요. 역대선지식이 다 이 길로 공부하신 거예요. 처음에는 마음을 거둬서 고요히 관조를 하고, 그 다음에는 삼세를 공해지고, 생각이 공해지고, 그 다음에 시각을 이루고, 시각이 본각이 되고, 본각이 깊어져서 원각이 된다. 시각, 본각, 원각을 합쳐서 묘각(妙覺) 이라고 한다 이 말이에요. 묘각은 어떻게 되냐. 一切種智(일체종지)에, 다 원만구족한게 묘각이에요, 일체 종류의 지혜. 등각은 일체청정이고, 일체종류의 지혜를 묘각이라고 한다. 일체종지가 되면, 一切境界(일체경계)에 無住自在(무주자재)라, 일체경계에 머무는 곳이 없어. 분별하고 머무는 것이 생사에요. 무분별, 무주착이면 일체종지가 일체경계에 무주자재하는 것이다. 진관스님도 이 길로 가셔야 되고, 일체 중생도 이 길로 가야되고, 천하선지식이 다 이 길로 가는 거예요. 앞에 가는 사람이나 뒤에 가는 사람이나 가는 곳이 전혀 둘이 아니에요. 이것을 한문으로 한 번 더 읽어보면, 金剛三昧의 照寂이無方하고 海印三昧의 寂照가遍照하니금강삼매   조적무방   해인삼매   적조변조妙覺智用의 一切種智가 一切境界에 無住自在로다 묘각지용 일체종지  일체경계 무주자재 나무아미타불

   금강삼매를 말하는데 금강삼매는 등각삼매고, 해인삼매를 말하는데 해인삼매는 묘각삼매다. 일체종지를 이루어서 모든 것이 다 드러나서 일체를 두루 비추는 게 해인삼매예요. 그래서 金剛三昧(금강삼매)의 照寂이無方(조적무방)하고, 금강삼매는 조적인데, 조적이 여기 있고 저기 있고 하는 방소가 없이 항상 조적이 무방이다.  海印三昧(해인삼매)의 寂照가遍照(적조변조)하니, 해인삼매는 조적이 아니라 적조라고 해요. 고요한 상태로서 밖으로 비추는 걸 적조라고 해요, 비추어진 상태로 고요히 들어가는 것을 조적이라고 해요. 이게 경론소초에 다 있는 말이에요. 종범이 지어내는 말 한자 한 톨도 없어요. 적조해인 조적금강. 공부라는 게 갈수록 깊어지고 갈수록 태산이에요. 적조가 두루 다 비춘다는 거예요. 바다에 온갖 그림자가 다 비추듯이, 그러니 妙覺智用(묘각지용)의, 묘각지혜 작용의 一切種智(일체종지)가, 일체 종류의 지혜가 一切境界(일체 경계)에 온갖 경계에 無住自在(무주자재)라, 머뭄이 없이 자재한다. 오늘 법공양을 받으시는 진관스님이나 법공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대중이나 다 이리로 가는 거예요. 앞 부처나 뒤 부처나 다른 길이 없어요. 경을 보면, 경문,논주 등이 다 이런 공부과정을 거쳐서 논서를 지었지, 이런 묘각삼매를 얻지 못하고 논서 지은 사람은 없어요.

   그럼 그 분들은 어떻게 경을 봤길래 이런 묘각삼매를 얻었나. 경을 보다보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文字經(문자경)이 있어요.  거기서 조금 들어가 보면 觀照經(관조경)이 있어요. 문자 없이 마음으로 보는 관조경이 있다. 관조경에서 더 깊어지면 해인삼매 寂照經(적조대경)에 들어가요. 그걸 實相經(실상경)이라고 해요. 이 3가지 경을 보는 거예요.    첫 번째 문자경은 文解(문해)로 간경하고, 문장을 해석하는 것으로 경을 보고. 경을 배우다 보면 문장 해석이 아주.. 초입관문이에요, 처음 들어가는 관문이에요. 문장해석이 안되면 문자경을 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문자경은 문해(문장해석)로 간경(경을 봄)하고. 그다음, 관조경은 관조로 간경하고, 관조로 경을 보는 거예요. 마음은 과거도 생각하지 않고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현재를 분별하지 않고, 딱 보기만 하되 생각이 없다. 보는 것은 눈을 감는다는 게 아니에요, 그냥 본다. 照(조)는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이게 관조예요. 그러면 경계도 공해지고, 내 마음도 공해지고 照寂(조적)경지에 들어가게 되요. 비춰서 고요한 상태에 들어가요. 더 들어가면 지혜광명이 확 나오는데, 그것을 正覺(정각)이라고 한다. 정각을 하면 지금까지의 분별방식이 전부 지혜가 되는데, 지혜를 圓滿報身(원만보신)이라고 해요. 깨달음의 보답으로 얻은 몸이 지혜의 몸인데 그걸 보신이라고 해요. 절에 가면 대웅전, 대광보전,  대덕전, 전부 그게 보신을 말하는 거예요. 청정법신은 없는 데가 없고, 백억화신은 인연 따라 오고가고 하고. 그렇게 경을 보는 거예요. 문자경은 문해로 보고, 관조경은 관조로 보고, 그리고 실상경은 證得(증득)한 지혜로 봐요. 실상은 證分(증분)이에요. 증득한 분야에요. 증지(증득한 지혜)로 본다. 설법은 敎分(교분)이에요. 敎說(교설)의 분야에요. 증분이 없으면 교분이 안 나와요. 그래서 경론 종사들이 자기 실상을 증득한 경지가 없으면 경론소초가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럼 학인들이 어떡하면 되냐. 처음에는 문장해석으로 문자경을 보고, 그 다음에는 관조정진으로 관조경을 보고, 그 다음에는 증득한 지혜로서 실상경을 보면, 문자경, 관조경, 실상경을 원만구족하게 다 봐서, 문자가 관조요 실상이요, 실상이 관조요, 이게 전부 셋이 하나요, 하나가 셋이고. 이 경지가 공부입니다.    이제 법문이 다 끝났는데, 왜 이리 조금 허전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붙이는 거예요.

 

無上妙覺은 然之然之나 入道初心을 切須不忘이며무상묘각 연지연지 입도초심 절수불망百年生涯가 一夜困夢이니 永脫孤貧하고 親得眞樂이면백년생애 일야곤몽 영탈고빈 친득진락放下皮囊하고 一念返照로다 照看照看하면 古光이赫赫하나니라 방하피낭 일념반조 조간조간 고광혁혁나무아미타불

 

   無上妙覺(무상묘각)이란 지금까지 설명한 등각묘각, 無上妙覺은 然之然之나, 그러하고 그러하다. 그런데 最正覺(최정각)은 어디서 왔는가? 초발심에서 왔다. 초발심을 무엇이 되느냐? 최정각이 된다. 발심 없는 정각이 없고, 정각 없는 발심이 없다. 이게 불교예요. 그러니까 入道初心(입도초심)을 切須不忘(절수불망)이며, 도에 들어간 처음 마음을 간절히 잊지말아야한다. 어떤 게 입도초심이냐. 첫째는 인생무상하고, 세상허망함을 관찰해야 되는데, 성공이 다 허망함으로 돌아가고, 인생이 다 무상함으로 돌아가는데, 이걸 못 느낀단 말이에요. 인생이 무상하고 성공이 허망해. 성공이 뭐냐. 새가 허공을 나는데, 조금 더 날려고, 날고 조금 더 날고, 조금 더 가면 앞이 조금 더 길게 보여 또 날고, 날다가 죽는 거예요. 성공에 집착하는 범부들이 새가 날다 죽듯이, 성공하다 죽어요. 죽고 나면 다 허망해. 나한테 김 빼는 소리 같다고. 그런데 인생무상과 성공 허망을 절실히 관찰하지 못하면 절대로 도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百年生涯(백년생애)가 一夜困夢(일야곤몽)이니, 백년생애가, 백년동안 사는 것이 하룻밤 노곤한 꿈이다. 금년생애가 일야곤몸이라, 그러면 어떡해 하느냐. 永脫孤貧(영탈고빈)하고, 고독과 빈곤을 영원히 해탈하고,  親得眞樂(친득진락)이면, 본래 가지고 있는 참된 즐거움을 얻으려고 한다면, 放下皮囊(방하피낭)하고, 방하는 내려놓는다는 말이에요. 피낭은 가죽 피, 주머니 낭, 가죽주머니인데, 선문어록에서는 우리 몸을 피낭, 가죽주머니라고 해요. 가죽으로 된 피부 안에 온갖 것 다 담고 있다고 피낭이라. 五蘊色身(오온색신) 인간육신을 가죽주머니, 피낭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집착해서 도를 못 닦아요. 몸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고, 방하피낭을 하고, 一念을 返照(일념반조)하라, 한 생각을 일으키면, 생사여 한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적멸인데, 그 한 생각을 돌이켜봐라. 이게 일념반조거든요. 삼세제불이 전부 일념반조로 해탈했거든요. 일념반조가 없인 해탈이 안 돼요. 일념을 반조하라, 한 생각을 돌이켜봐라. 그래서 照看照看(조간조간)하면, 반조해보고, 반조해보면  古光이赫赫(고광혁혁)하나니라, 옛 광명이 빛나고 빛나느니라. 이게 입도초심이에요. 오늘 법문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