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일요법회] 6월 9일 법문 2019-06-09

  부처님 마음에는 때가 없습니다.

우린 늘 마음을 닦아 누굴 제접 해도 밝고 환한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정진해야 합니다.마음을 어떻게 닦느냐?

저의 은사스님이신 眞字 觀字 회주스님께서 제게 유언 하시길 “얘야,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 아무 소용이 없다.

복을 지어라. 복을 지으면 네가 살기가 좋고, 네가 지은 복으로 많은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을 닦아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마음을 닦아라, 복을 지어라.’라는 말이 바로 “이거구나!”라고 와 닿지 않았습니다.은사스님의 법향이 그리울 때면 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복을 짓고 마음을 닦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발우공양 때도 ‘마음을 닦는 게 바로 이거로구나.’ 라고 생각 했습니다.  ‘이 음식에 깃든 은혜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상구보리 하화중생 명심 발원하옵니다.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기도를 드린 뒤 공양을 합니다. 그리고 발우를 씻어서 나갈 때는, ‘이 음식의 공양을 받고 뭇 중생들이 모두 다 지혜를 증득하십시오.’라고

축원 하는 이 시간이 마음이 닦기고 있구나 하면서 환희심이 났습니다.염불을 하고, 또 기도를 할 때는 내 마음이 정말 편안하고 행복하니 이것이 불심이며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고.

또 다라니를 하고, 참선을 하고, 아미타불을 부르고, 관세음보살을 부를 때, 내 마음은 절로 닦여서 부처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불자 여러분들도 시간 나는 대로, ‘노는 입에 염불하십시오.’  그럼 관세음보살처럼 지혜롭고, 자비롭게 살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내 마음에 안주하고 계시는데, 내가 계발을 못 했을 뿐입니다.

자신의 관세음보살을 마음에 넣어놓고, 그 관세음보살님의 버튼을 누르질 않은 거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면서, 자신의 관세음보살님을 나투어 낼 때 10초면 10초 관세음보살 되고, 1시간 지성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1시간 관세음보살이 되는 겁니다.

관세음보살은 어떤 분이냐 하면. 지혜롭고 자비로운 어머니 마음으로 發苦與樂 하시는 부처님 이십니다. 지혜는 자비를 먹고 살지요. 그럼 지혜란 내가 선택한 것이 후회가 따르지 않고,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고, 그 조직도 살아나고, 이런 행위의 결정이 지혜입니다.

각자 사용한 시간과 행위가 후회가 따르지 않고, 상생이 되고 매사 창출이 되고 주변과 함께 모두 신바람으로 행복을 나누고,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불자님들의 지혜로운 삶이라 여깁니다. 그런 지혜는 늘 자비를 먹고 삽니다. 그러니 자비가 꼭 있어야 되겠죠? 그럼 자비란 무엇인가. 나눔이며 관계입니다.

우리는 관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스스로 살펴보십시오. 잘난 척하고, 있는 척하고, 아는 척하고, 또 아니면 움츠리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불편한 관계를 대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

 

  우린 이제 마음의 정원 진관사에서 모든 분들께 감사해 하고, 고마워하고, 상대에 맞는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는 지혜와 자비를 배우고 실천 하는 곳이 되기를 염원합니다. 내 스스로에게도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하고, ‘오늘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제가 이 귀중한 인생을 얻었으니, 오늘은 화를 내지 않고 어려운 일도 인내 하겠습니다. 좋은 말을 쓰고 착한 일을 하겠습니다.

오늘도 마음 닦는 수행을 하면서 제 모든 것을 이 세상에 베풀겠습니다. 이 귀한 오늘 그렇게 살겠습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이 마음을 발원하는 겁니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발원하는 것이 발심입니다. 우리불자는 늘 자신을 관찰하고 발심해야합니다.

시시때때로 숙업으로 익힌 습관이 여름에 여기저기 잡초가 금방 자라는 것처럼 마음에 잡초가 순식간에 자라게 되면 불행하고 우울해지고

곧 중생 노름에 빠지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겁니다. 많은 생 동안 그런 생활을 익혔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부처님 마음을 이탈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 불자님들이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습관을 익히시어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라고 금방 불심으로 모셔다 놓을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살다보면 돌아서면 주변 경계가 또 중생심으로 변하게 합니다.

   남편이 또는 아이가 바른 행동을 안 했을 때, 화가 불끈 일어나죠. 그 경계에서 내 생각을 갖다 쓰게 되는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생각, 자기가 경험한 것이 몸에 저장이 되어 업식이 동하여 자기 잣대로 추렴해서 번뇌를 일으키는 게 중생입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얼마 전 제가 미국을 처음 가봤습니다. 여행일정 중 라스베이거스를 가게 되었는데, 가기 전부터 불편한 마음 이었습니다.

장소도 청정하지 못 하고 그곳에서 일정 중에 공연이 있었습니다. 같이 동행 한 분들께 ‘저는 참가하지 않고 호텔에만 있겠습니다.’라고 하니 동행 하신 분들이 저를 설득을 했습니다.

“제가 아무렴 스님을 이상한 곳에 모시고 가겠습니까.” “저를 설득하려고 하지 마세요, 몸은 기억합니다. 제가 본 것은 제 아리아식에 담겨지고, 몸이 기억하기 때문에 저는 안 가겠습니다.”

그러나 계속 설득을 해서 결국 설득을 당했습니다. 저는 라스베이거스하면 파친코와 도박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연 또한 이상하다 생각한 겁니다. ‘도박꾼들만 오는 곳이다.’라고 생각 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건 너무나 어리석은 마음이었습니다.

실제의 공연은 너무 훌륭한 예술이었습니다. 감탄과 탄성으로 대방광불화엄경의 세계를 경험하였습니다.

저의 작고 어리석은 마음으로는 그런 훌륭한 공연을 보지 못 했을 것인데 다행히 복 많고 훌륭한 분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여러 불자님들이 모두 부처님 마음 실천하고 행할 때 가는 곳마다 선연이 되고 또 안목이 넓혀지고 도량이 커집니다.  우린 수많은 중생들 중, 벌레, 애벌레, 소, 말, 기생충 등등 중에 우리는 사람 되었습니다.

사람이 되고도 불법을 만났고 또 복이 많아 진관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부지런히 마음을 닦고, 공덕을 짓고 했을 때 우리는 명복을 받게 되고 어떤 환경에서도 환희롭게 자비를 나눌 수 있습니다.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주먹을 딱 쥐고 태어났습니다. 갈 때는 손을 펴고 다 주고 가죠. 아무것도 가져가는 게 없습니다. 누구를 데리고 가나요?

아무도 없이 혼자 자신의 마음의 성적표만 가져갑니다.

   어제 천수 다라니기도를 마치고 지난주에 봉사 부단장으로 위촉 받은 보살님과 차담 하면서 말씀하시길,

‘스님께서 봉사부단장으로 임명 해 주셨는데, 논을 사고 밭을 산 것도 아닌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저는 마음에서 환희로움과 보람을 느끼고 같이 동석한 보살님은 천상분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듯하다 하였습니다.

그 보살님께서는 대웅전 천일을 동참하시며 쭉 정진 하시다 회향 때 십만 배 기도정진을 통해 자신을 내려놓게 되며 다른 운동을 안 하셔도

몸도 마음도 너무 가볍고 늘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진관사에서 매번 불기 닦고, 다른 봉사를 할 때 빵과 음료수를 가지고 오시는데

봉사자 인원이 점점 많아지고 신도님들이 서로 일을 더 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아름답고 보기 좋으며 이곳이 극락세계라 말씀 하셔 제가 생전안락 사후왕생의 가피가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정원 진관사 사부대중 모두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