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49재] 6월 28일 49재 법문 2019-06-28

 

 

 

靈駕 至心諦廳 至心諦受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我有一卷經(아유일권경)하니 不因紙墨成(불인지묵성)이로다

展開無一字(전개무일자) 常放大光明(상방대광명)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이라고 하면 세 가지 몸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청정법신. 청정이란 말을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어느 곳에 있어도 전혀 변하고 바뀜이 없는 것을 청정이라고 해요. 변하고 바뀜이 없는 법의 몸이다. 그래서 청정법신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부처님이다.

 

      또 원만보신이라, 원만보신은 원만하게 이루어진 보답으로 된 몸이라는 건데, 무슨 보답이냐. 부처님이 시성정각(始成正覺)을 할 때, 처음으로 바른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 때 우리 생로병사, 사대색신에서 아미타불을 만났어요. 그게 깨달음이에요. 깨닫기 전에는 생로병사가 이 몸이었는데, 깨닫는 순간에 아미타불을 만났다. 아미타불은 무량수 무량광, 수명이 한량이 없고, 광명이 한량이 없는 무량수 무량광인데, 그걸 깨닫기 전에는 전혀 모르다가 깨닫는 순간에 각성일체지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일체지를 이룬다. 지혜로 얻어진 부처님이 아미타불이에요. 무량수불이고 무량광불이고. 지혜의 세계를 원만보신이라고 해요. 보답으로 얻은 몸이다. 무슨 보답이냐. 깨달음의 보답이다. 원만보신은 깨달은 순간에 나타난 거예요. 원만보신, 지혜광명. 원만보신은 지혜광명이에요. 그 지혜는 각성일체지, 깨달음으로 일체지를 이뤘다. 정각공덕으로, 바르게 깨달은 공덕으로 대지혜가 나타났다 이거거든요. 그래서 지혜광명 원만보신이 부처님이에요.

 

      그 다음에는 자비원력으로 일어나는 부처님이다. 당신은 생로병사 중생의 몸에서 무량수불 무량광불 아미타불을 만났는데, 중생들은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고, 아미타불을 가지고 있으면서 죽는 걸 걱정하니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냐. 서로 찾고, 자기 집에서 자기 집 찾는 어리석은 범부의 정신세계다, 이 말이지. 그런 중생들이 하나도 없이 당신과 같이 아미타불을 만날 때까지 자비와 원력으로 곳곳에 태어나서 중생을 제도하겠다, 이것이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에요. 인연이 있는 곳마다 나타나는 분이 석가모니불이고, 원만보신 노사나불은 깨달음을 통해서 나타나 거거든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무고무래역무주(無去無來亦無住),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머무는 것도 없는 적멸실상, 적멸하고 진실상 그대로 부처님이다 이거죠.

 

       그래서 오늘 법문 처음이, 중생은 누구나 다 한권의 경이 있는데, 종이로 먹으로 된 것이 아니다. 展開無一字(전개무일자), 기술하고 기록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常放大光明(상방대광명)이라, 항상 대광명을 얻는다. 대광명을 비춘다. 눈으로 볼 때도 형태 없는 경이 나타나고, 귀로 들을 때도 문자 없는 경이 나타나는데, 오직 스스로 모를 뿐이다. 자기 집에 있는데, 꿈에 보면 꿈속에서는 자기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해요. 꿈을 깼을 때 자기 집이 환히 보이는데. 꿈꾸다가 꿈 깬 그 공덕으로 자기 집을 만난 거예요. 그게 지혜광명신이고 원만보신이고. 지혜광명으로 중생의 모습을 보니까 어떠하더냐.

 

一切有爲法(일체유위법)

오온 생멸법이

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이요

몽 환 포 영과 같고

如露亦如電(여로역여전)이니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應作如是觀(응작여시관)이로다

이렇게 봄이 마땅하다.

나무아미타불

 

       일체유위법은 생로병사인데, 지혜광명을 가지고 아미타불 눈으로, 무량수 무량광의 눈으로 생로병사 몸을 보니, 夢幻泡影(몽환포영)이라, 꿈같고, 꼭두각시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게 한순간 사라지는 몸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미타불을 만나기 전에는 꿈같은 몸을 살아가는 거고, 꼭두각시 같은 몸을 살아가는 거고, 그림자 같은 몸을 살아간다. 如露亦如電(여로역여전)이라,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 우리가 생로병사의 몸을 볼 때, 應作如是觀(응작여시관)이라, 이렇게 봄이 마땅하다. 무상한 것을 무상하지 않다고 보고, 허망한 것을 허망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중생의 소견인데, 그렇게 보면 못 깨닫는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중생 속에 꿈같은 요소가 뭐냐. 과거는 여몽이라, 지나간 것은 다 꿈같아요.

 

       환()은 꼭두각시를 말하는데, 밖으로 펼쳐지는 세계가 다 꼭두각시와 같다. 꼭두각시라는 것은 성들에서 하는 건데, 성을 쌓아 그 위에 꼭두각시를 만들어 올려놓고 성의 담 밑에서 줄을 당기고 늦추고 하는 놀이를 꼭두각시놀이라고 해요. 세계를 가만히 보니까 전부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 게 있고 꼭두각시처럼 변화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세계는 다 꼭두각시다. 금방 있다 금방 없어져요. 제가 지금 나이가 74인데요, 지난 50년 동안 어떤 경험이 있냐하면, 어릴 때는 사람들이 전부 신문을 봤어요. 신문꼭두각시. 그 다음에는 텔레비전을 많이 봤어요. 텔레비전 꼭두각시. 그 다음에는 컴퓨터를 많이 했어요. 그다음에는 인터넷을 했어요. 2009년까지 종이신문 구독률이 73%였는데, 2019년에는 10%라고 해요. 요즘 종이신문 읽는 사람은 문제가 많은 사람이에요(웃음). 요즘은 전부 스마트폰이에요. 스마트폰은 나의 인생이다. 스마트폰과 내 몸은 한 몸이다. 외국에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사람이 책으로 썼는데, 스마트폰을 자기 몸처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포노 사피엔스>라고 했어요. 포노는 스마트폰, 사피엔스는 인간. 스마트폰이 오장육부처럼 내 몸이 되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게 전부 꼭두각시처럼 변하는 거예요. 전에는 신문 안보면 알 수가 없었잖아요. 요즘은 스마트폰 없으면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앞으로는 뭐가 나타날지 모르죠. 그걸 환이라고 해요.

 

       그 다음에 물거품이란 무엇이냐. 감정,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데,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물거품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처럼 금방 좋아했다 금방 싫어했다한다고. 좋고 나쁜 감정을 물거품에 비유한 거예요.

 

      그림자는 뭐냐. 생각이에요. 그림자가 몸 따라 가듯이, 환경 따라서, 시골가면 생각이 시골스러워지고, 도시가면 생각이 도시스러워져서, 몸 따라다니는 그림자처럼 생각이 맨날 바뀐다. 그래서 생각을 그림자라고 해요. 몸이라는 것이 얼마나 금방 늙어서 금방 죽느냐, 먼 아미타불 무량수 세월에서 보면 아침이슬과 같다는 거죠. 이 몸이 태어나서 죽는 순간이 아침 이슬과 같다. 금방이에요. 젊은 사람들은 그 얘기하면 전혀 이해를 못 해요. 딴 나라얘기예요.

 

       또 일평생이 번개와 같다. 세월이라는 것이 번개처럼 사라진다고 해요. 아미타불을 만나서 깨달은 지혜로 보니까 한 평생의 범부 일생이 그와 같더라. 이렇게 금강경에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종이와 먹이 없는 중요한 경전 그거는 뭐냐.

 

如來者(여래자) 여래는

無所從來(무소종래) 시작해서 온 데가 없고

亦無所去(역무소거) 또한 가는 데가 없다.

故名如來(고명여래) 그러므로 여래라 한다.

(金剛經 금강경)

나무아미타불

 

       대승불교에서 여래라고 하면, 법왕이라고 해요. 만법의 왕이다. 만법의 주인이다. 여래는 진리자체를 이른다. 법왕은 별명이라고 해요. 법성, 만법에는 본성이 있는데, 그 만법, 본성이 별명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삼제와 실제가 있는데, 삼제는 과거, 현재, 미래 3가지로 구분한다고 해서 삼제고, 실제는 진실한 세계를 실제라고 하거든요. 과거제, 현재제, 미래제가 없어요. 완전히 진실한 진여, 적멸, 실상. 진여, 적멸, 진실상을 실제. 과거, 현재, 미래는 삼제. 그것을 중도라고 해요. 동쪽에 속한 것도 아니고, 서쪽에 속한 것도 아니고, 과거에 속한 것도 아니고, 미래에 속한 것도 아니고. 그게 딱 실제 중도. 그런데, 여래라는 말은 법왕의 별명이요, 법성의 별명이요, 실제의 별명이요, 중도의 별명이다. 그것을 여래라고 해요. 여래십호중의 하나도 여래예요. 여래의 용례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형성됐어요. 이런 여래는 일체중생의 본래 몸인데, 위에는 부모에게 받아서 태어나서 죽는 몸도 있고, 부모에게 몸 받기 전도 있고, 몸을 가진 데도 있고, 몸을 버린 데도 있고, 본래 몸이 있다 이거예요. 그게 법성인데, 그걸 법왕이라고 그런다. 그 법왕법성여래자는 無所從來(무소종래), 고향이 어딘지, 주소가 어딘지 몰라요. 시작해서 온 데가 없어. 가는 곳도 없어요. 그러므로 여래라고 그런다. 이걸 눈으로 볼 때 지혜가 생기고, 그 지혜에서 생긴 것이 아미타불인거예요. 그게 원만보신이에요. 그 시작해서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곳도 없는 그 청정법신의 세계를 극락세계라고 해요. 이 생로병사 근심걱정하다 가는 곳을 사바세계라고 해요. 생로병사가 있으면 사바세계고, 생로병사가 없으면 무량수 무량광 아미타불의 세계를 얻어서 살면 극락세계예요. 

 

      그럼 재는 왜 지내느냐. 생로병사 근심걱정 있는 세상에서 생로병사 근심걱정 없는 극락세계로 보내드리는 것을 재로써 모시는 거거든요. 그래서 생로병사 사바세계 법왕법성 극락세계. ‘법왕법성 극락세계로 속히 가시고 편안히 가셔서 만복을 누리소서.’ 하는 게 재를 올리는 참 뜻이죠.

 

諸佛智自在하야(제불지자재) 제불의 지혜는 자재하여

三世無所礙하니(삼세무소애) 삼세에 장애가 없다.

如是慧境界(여시혜경계)는 이러한 지혜의 경계는

平等하야 如虛空(평등여허공)이로다. 평등하여 허공과 같다.

(華嚴經問明品 화엄경문명품)

나무아미타불

 

      깨달음을 통해서 아미타불이 돼서 지혜광명을 가지고 살아갈 때 어떻게 사느냐. 장애가 없어요. 무장애. 해탈이라는 말도 쓰고, 무애라는 말도 써요. 해탈이란 죽고 사는데 매이지 않아요. 무량수명과 무량광명을 깨달음을 통해서 바로 얻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무애해탈. 걸리는 건 매이는 거거든요. 목숨에 매이지도 않고, 눈앞에 펼쳐진 환경에 매이지도 않고, 뭘 얻으려고 하는데 매이지도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 이 몸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거에는 전혀 관심을 가질 수가 없고, 이 몸으로 무엇을 이룰 것이냐에만 관심이 많아요. 이 몸으로 무엇을 이룰 것이냐, 이루다 죽어요. 무엇을 이룰 것이냐에만 관심을 가지고 이 몸이 몇 년을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하다 죽고 하다 죽고. 구하다 죽고, 구하다 죽고. 이게 인생살이에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장래 희망과 목표는 많은데, ‘너 언제 죽을 건데?’ 물으면 그 소리 왜 하는데하며 기분 나빠해요. 왜 기분 나쁜가? 사는데 매인 거예요. 목숨이 사는 데 매여 있어. 죽는 건 다 싫어해요. 사람들이 다 똑같은 감정이에요. 

 

      그럼 스스로 죽는 사람은 왜 죽느냐. 죽는 게 더 좋아 보이니까 죽지, 안 좋아 보이면 안 죽어요. 그러니까 죽는 노력도 더 좋은 것으로 향하는 마음과 똑같은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죽으라는 건 절대 아니에요.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더 힘들 거라는 확신이 있으면 안 죽어요. 죽는 게 적어도 이 고통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죽는 거예요. 다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은 똑같다. 그거거든요. 그래서 걸려있어요, 장애, 속박. 그게 사바세계예요. 사바세계는 몸으로 사는 건데, 그건 장애와 속박이다. 만나면 기분 나쁘게, ‘많이 늙었네요.’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건강해 보이시네요.’ ‘하나도 안 늙었네요.’라는 소리에요. 그건 거짓말이에요(웃음). 옳은 소리하면 기분 나쁘고, 거짓말하면 저 사람 거짓말하지하고 기분 좋지도 않더라고. 늙는 걸 싫어한다는 거죠. 그게 다 장애예요. 싫어하고 좋아하는 게 있으면 다 장애거든요. 그런데 일체 제불의 지혜가 자재해서, 무량수 무량광, 생로병사에 아무 장애가 없고, 해탈로서 자재하여, 三世無所礙(삼세에 무소애), 과거 현재 미래에, 오 만겁 전이나, 오 만겁 후나 세월에 전혀 구애되는 바가 없다. 그게 깨달은 분의 생애들이에요. 如是慧境界(여시혜경계), 이와같이 지혜광명, 원만보신을 얻은 지혜의 경계는 平等하야 如虛空(평등여허공)이로다. 평등해요. 차별이 많을수록 정신연령이 낮은 거예요. 너와 나는 다르다, 너는 나와 다르다. 다르긴 뭐가 달라요 똑같지. 옛날에 어떤 사람이 국민은 개, 돼지다.’ 라고 했다가 굉장히 비난을 많이 듣는데, <기생충>이란 영화는 왜 항의를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기생충>도 개, 돼지나 비슷한 내용이에요. 별 얘기를 다하네요. 그게 다르다는 거예요. 그런데, 누군들 무장애, 무이상 두 가지 없는 경계에 올라간 걸 평등이라고 해요. 죽고 사는 게 두 가지가 아니고, 너와 내가 두 가지가 아니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두 가지가 아니고, 이것을 무이평등(無二平等)이라고 해요. 둘이 없는 평등이라. 사실 알고 보면 이루고 못 이루는 게 둘이 없어요. 똑 같아요, 이루나 못 이루나. 어린아이들이 내가 이걸 올려놓으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엄마가 먼저 올려놓으면 자기가 다시 내렸다가 다시 올려놓아요. 자기가 상에 올려놓거나 아니거나 다를 바 하나 없는데. 어른들도 똑같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요. 내가 한 건 소중하고, 내가 안한 건 소중하지 않아. 그게 못 깨달은 미혹의 마음이에요. 한 단계 위에서 보면 이루거나 안 이룬 거나 다를 바 없어요. 그게 평등이에요. 如虛空(평등여허공)이로다. 평등이 허공과 같다. 그게 극락세계에요.

극락세계에 가려면 화엄경에도 청량스님께서 ‘3대 정기를 일으켜라고 되어있어요. 3대 정기(精氣), 정자는 쌀 정자, 깨끗할 정자가 있는데요. 껍질 없는 쌀을 정미라고 하잖아요. 하얀 쌀. 깨끗할 정자, 좋을 정자. 정기는 좋은 기운. 좋은 기운이 3가지가 있다. 첫째는 토지정기, 흙에 좋은 기운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흙을 토지정기가 넘쳐나도록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요. 지역에 따라서 특산물이 있는 것은 토지정기 때문에 그래요. 어느 지역에 가면 무가 잘 된다, 어느 지역에 가면 토마토가 잘 된다. 어느 지역에 가면 인삼이 잘 된다 등 있잖아요. 토지정기가 있는 거예요. 토지정기를 사람으로 보면 몸이에요. 몸에 병이 없고, 몸 세포가 아주 활발하고 건강하고, 뚱뚱하다고 몸 정기가 좋은 건 아니거든. 혈액이 건강하고, 골격이 건강하고 이런 거거든요. 그 다음은 중생정기. 중생들이 몸이 아주 강건하고, 깨끗하고, 수려하고, 이목구비 신체장엄이 됐을 때, 단엄(端嚴)하다고 해요, 단정하고 엄숙하고. 요즘에 성형수술을 많이 해서 예쁘게 만드는 게 단엄한 신체로서 중생정기가 되느냐.

그건 아니에요. 성형수술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까 아이 얼굴이 성형수술을 하기 전 얼굴과 똑같이 생겼대요. 그건 아니거든. 이 몸을 단정하고 엄숙하고 수려하게 만드는 것이 그게 중생의 정기다. 그리고 세 번째는 선법정기라고, 이 몸에서 좋은 공덕법이 자꾸 일어나도록 정기가 만들어져요. 이 몸이 건강하고, 이 몸이 단정하고 수려하다고 해도 몸에 착하지 않은 기운이 감돌면 안 되는 거예요. 절에서 왜 사찰정기가 항상 좋은가하면 늘 기도를 하니까, 목탁치고 기도하고 법문할 때 선법정기가 자꾸 성장을 해요. 또 우리자신도 좋은 일을 하고 봉사를 하고 뜻있는 일을 하면 이 몸에서 선법정기가 자꾸 성장을 해요. 그런데 이 몸을 게으르게 하고 불만을 갖고, 자기가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하면 악법이 성장을 해요.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악법이 성장하면 못써요. 절대로 행복할 수도 없고, 절대로 만족할 수도 없고. 그런데 이 선법정기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선법정기라는 게 경 읽고 법문 듣고, 기도하고, 좋은 일 하고, 내가 할 일 내가 하고, 이러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몸에서 착한 에너지가 자꾸 성장해서, 그런 사람들은 항상 자기 선법의 정기로 행복하고, 그런 사람이 아미타불을 만날 수 있고, 극락세계를 갈 수 있어요.

 

靈駕 至心諦廳 至心諦受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法王法性(법왕법성) 實際中道(실제중도)는 법왕 법성의 실제중도는

行行本處(행행본처) 至至發處로다(지지발처)

가도 본처요 이르러도 발처이니

安樂常樂(안락상락) 極樂世界(극락세계)이니

안락 상락의 극락세계입니다.

今日靈駕(금일영가)께서는 速往하시고 速往하소서(속왕속왕)

영가께서는 속히 왕생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우리의 본래 생명, 어머니 아버지에게 몸 받기 전부터 있었고, 이 몸이 다 한 뒤에까지 항상 있는 본래 생명을 법왕이라고 하고, 법성이라고 하고, 실제라고 하고, 중도라고 하는데, 어떠한 구애도 없고, 속박도 없어요. 그래서 行行本處(행행본처), 가도 가도 항상 본래 자리에 있는 거예요. 화성을 가나 금성을 가나 원래 본래 자리에 있는 게 청정법신의 세계에요. 至至發處(지지발처), 어느 곳에 이르러도 당도하고 이르는 곳마다 출가하는 곳이다. 이것이 안락이고 상락인 극락세계다. 편안하고 즐겁고 항상 즐거운 극락세계다.

 

     오늘 영가께서는 절대 다른 데 가지 마시고, 극락세계로 속왕속와하소서, 속히 가시고, 속히 가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