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49재] 6월 10일 49재 법문 2022-06-10

 

今日 靈駕 至心諦廳 至心諦受

금일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生身太空塵  태어난 몸은 허공의 티끌 한 점이고

생신태공진이요

識心夢念想  생각은 꿈꾸는 몽상과 다름없네!

식심몽념상하여

浮雲自去來  뜬구름이 덧없이 오고 가듯

부운이 자거래하니

身識如是相  몸과 생각의 모습도 그러하네!

신식이 여시상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돌아가신 분을 극락세계로 모시는 것이 재를 올리는 의식입니다. 재는 어떻게 올리는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받은 몸, 움직이는 생각이 있고, 석가모니가 깨달은 몸, 석가모니가 이룩한 지혜, 그게 이제 극락세계는 깨달은 몸이 도달한 곳이고 이룩한 지혜로 머무는 곳인데요. 지금 한문으로 읽은 내용이 생신(生身), 날 생자, 몸 신자, 이 세상에 태어난 몸은, 석가모니가 깨달은 청정법신, 아무 데도 물들지 않고, 아무리 세월이 지나가도 변함이 없는, 물듦이 없고 변함이 없는 그 몸을 깨달았는데 그걸 청정법신이라고 한다. 법 법자, 몸 신자. 이 세상에 태어난 몸을 인연소생신, 인연으로 태어났다. 이 청정법신에다가 인연소생 세상에 태어난 몸을 비교를 해보니까, 이 태어난 몸은 태공진(太空塵)이라, 저 태허공에, 넓고 넓은 허공에 한 점의 티끌과 같다. 청정법신은 끝없는 허공과 같다. 이런 몸이거든요.

       평생을 세상에서 움직인 생각은 그 청정법신을 깨달아서 이룩한 지혜, 생신이 법신이 되고, 생각이 지혜가 되는 걸 깨달음이라고 하는데, 그 지혜는 보광명지(普光明智), 넓을 보, 빛 광, 밝을 명, 지혜 지, 넓게 빛나고 밝은 지혜, 보광명지. 그 보광명지에다가 알 식, 마음 심(識心), 생각하는 마음을 비교해 보니까 몽념상(夢念想)이라. 꿈의 꿈꾸는 생각과 같다. 생각은 꿈과 같고, 우리 태어난 몸은 허공에 한점 티끌과 같다.

       그래서 그 모습이 부운이 자거래(浮雲自去來)하니, 구름이 스스로 스스로 가니 이 태어난 몸과 생각하는 생각이 마치 그와 같다.

       그러면 극락세계에 가려면 이렇게 뜬구름과 같고, 허공에 티끌과 같고, 꿈꾸는 생각과 같은 그런 걸로 가는 게 아니라, 부처님이 깨달은 청정법신, 부처님이 이룩한 보광명지 그 세계로 가는 것이다. 이런 얘기죠.

 

一切凡夫 妄想執著

일체범부는 망상집착으로

住於世間 生滅相續

주어세간하야 생멸이 상속하고

三世諸佛 般若觀照

삼세제불은 반야관조

到於彼岸 眞如法界

도어피안하니 진여법계요

淸淨法界 常住法界

청정법계요 상주법계이니

壽光無量 福德具足

수광이 무량하고 복덕이 구족하며

神通自在 極樂世界

신통이 자재하니 극락세계로다

나무아미타불

 

       그럼 뭘 깨달았나.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는데, 이 마음이라는 게 불가사이하고, 생각할수록 무량공덕이라, 한량없는 공덕이다. 그런데 이 마음은 보통 사람의 마음이 있고, 도를 많이 닦아서 얻은 마음이 있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서, 그 완전한 깨달음을 대각이라고 하는데, 큰 대자, 깨달음, 그 대각을 얻은 마음이 있고, 세상살이에 골몰하는 마음이 있고, 인연 따라서 여러 가지로 나타나요, 이 마음이라는 게. 그래서 세상살이에 골몰하는 마음을 범부심이라 이러고, 도를 닦아가는 마음을 보살심이라 하고, 대각을 이룬 부처님의 마음을 두 마디로 설명하면 자성청정심, 신통광명심. 부처님은 그 마음의 근본 바탕, 자성, 그 근본 바탕에 티끌 한 점도 붓지 않은 청정한 모습으로 왔다. 그래서 이게 자성청정심이고. 그 자성청정심을 얻으면 어떻게 되냐. 거기서 한량없는 신통과 광명이 나온다. 이걸 신통광명심이라고 해요. 부처님의 마음은 자성청정심, 신통광명심이고, 도를 닦아가는 보살의 마음은 보살심, 범부심, 제불심. 보살의 마음은 반야관조(般若觀照), 반야는 지혜인데, 지혜가 하는 일은 볼 관자, 비출 조자, 보는 거예요.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사람을 보고, 생각이 일어나는 걸 보고, 생각이 사라지는 걸 다 봐요. 이걸 반야관조심이라고 해요. 반야관조. 그럼 범부의 마음은 뭐냐. 보는 대로 취하고 집착을 해요. 보는 대로 얻으려고 하고, 취하려고 하고, 가지려고 하고, 가진 것은 소유하려고 하고, 그래서 이걸 망상집착심이라고 해요. 허망한 생각으로 집착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일체범부는 망상집착으로(一切凡夫 妄想執著), 주어세간(住於世間)하니, 세간이라고 하는 것은 낳다 죽었다 하는 공간이에요. 범부가 머무는 것은 낳다 죽었다하는 세간 공간에 머문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느냐. 생멸이 상속이라(生滅相續). 나고 죽는 것이 계속된다 이 말이죠. 생멸 상속.

       근데 삼세제불은(三世諸佛) 보살행을 통해서 반야를 관조(般若觀照)하니, 망상집착을 하는 게 아니라 반야로 관조를 하니까 모든 지 딱 보면 취할 게 하나도 없어요.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걸 청정법계(淸淨法界). 망상 집착을 하면 생로병사 생멸상속인데, 반야로 관조를 하면 청정법계다. 뭐든지 딱 보면 두려울 게 없어요. 색즉시공이에요. 딱 보니 죽음이 없는데요. 딱 보면 태어나는 게 없어요. 그런데 망상 집착을 하면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 끝없이 생멸이 상속을 해요. 보면 없다. 그러면 없는 것 때문에 어떡하냐. 없는 것도 없는 거예요. 없는 거를 자세히 보면 없는 게 없어요. 있는 걸 자세히 보면 있는 게 없어요. 이게 반야관조에요. 그래서 반야관조하면 모든 것에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도 없는 그런 경지에 도달하는데, 망상집착하면 전부 생겼다 사라지고 탐나고 두렵고 그런 거예요. 취한 거 버리고. 딱 보면 취할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고, 무서울 것 없고. 그래서 그걸 세간이라고 하지 않고 피안(彼岸)이라고, 건너 공간이다. 피안. 보면 피안인데 집착하면 생사에요. 뭐든지 딱 보면 무서울 거 없어요. 탐 날 거 없어요. 집착하면 무섭고 탐나고 그런단 말이죠. 그래서 삼세제불(三世諸佛)은 이 지혜로 봤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고 봤기 때문에 어떻게 되냐. 도어피안(到於彼岸)이라, 피안에 도달한다. 그러니까 그 피안이 어떤 세계인가. 진여법계(眞如法界), 참 그대로 법의 세계다. 진여법계. 피안이다. 청정법계(淸淨法界). 뭐가 변하고 물들고 그게 아니라 그대로 청정한 법계다. 상주법계(常住法界). 항상 상자, 머물 주자. 항상 하는 상주. 그리고 거기는 수광이 무량하고(壽光無量), 수명과 광명이 한량이 없고. 청정법계는 수명이 없어요. 백 년 수명이 있는 게 아니고, 천년 수명이 있는 게 아니고, 만년 수명이 있는 게 아니고, 저 허공과 같이 무량해요, 수명이. 수명이 무량하고. 복덕이 구족하고(福德具足), 좋은 게 복덕인데 좋은 게 한량없이 많아요. 그리고 신통이 자재하고(神通自在), 신통이 자재라는 것은 보는 지혜로 딱 보면 여기서 움직이지 않고 가고 싶은 데 다 가는 게 그게 신통이에요. 비행기 타고 화성이나 달나라에 가는 게 아니라 지혜로 간단 말이죠. 지혜로 딱 보면 이곳을 움직이지 않고 저곳에 가. 그런 것을 신통이라고 해요. 그래서 신통이 자재하니 그 세계를 극락세계라고 한다. 여기까지 아까 읽은 것이거든요

 

非識所能識 생각으로 알 수 있는 것 아니고

비식소능식이며

亦非心境界 또한 마음의 대상도 아니다.

역비심경계이니

其性本淸淨 그 신령한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기성이 본청정하야

開示諸群生 중생에게 길을 열어 깨우친다.

개시제군생이로다

(화엄경, 보살문명품)

나무아미타불

 

       이 마음이라는 건 불가사이하다. 왜 불가사이하냐. 그냥 망상집착을 가지고 탐내고 화내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해도 그 근심 걱정하는 속에 자성청정심이 그대로 들어있어요. 그래서 불가사의하다는 거예요. 아주 희한해요.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금방 화냈다가 금방 또 웃을 수가 있는 거예요. 화내는 속에도 그 본래 깨끗한 마음이 그냥 들어있어요. 즐거워하는 속에도 본래 깨끗한 마음이 그냥 들어있어요. 그래서 이거를 수연심(隨緣心) 불변심, 수연이라는 건 따를 수 자, 인연 연자, 인연을 따르는 마음이 있다. 인연 따르는 마음이라는 것은 사람이 오면 사람 보고, 하늘이 열리면 하늘 보고, 어두울 때는 어두운 거 보고, 밝을 때는 밝은 거 보고 다 보는 거예요. 그걸 수연심이라고 하거든요. 인연 따른 마음, 근데 아무리 어두운 걸 봐도 마음 청정심이 어두워지질 않아요. 아무리 밝은 걸 봐도 마음 청정심이 밝아지지 않아요. 사람을 봐도 마음 그 청정심이 사람 되는 게 아니에요. 나무를 봐도 그 청정심이 나무 되는 게 아니에요. 이걸 불변심이라고 해요. 하나도 변함이 없는 상태로 모든 거를 다 보고 모든 걸 다 판단하니까 수연심 불변심이라고 한다. 이 사바세계를 세간법이라고 하는데, 이 세간법에 근심걱정을 하다가도 극락세계에 딱 가면 극락세계 그대로 담아요. 마음이 사바세계 된 게 아니고 세간법이 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거를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해인삼매라는 말로 이제 멋지게 가르쳤는데, 해인이라는 건 바다 해자, 도장 인자인데, 바다가 있고 거기 비춰진 그림자가 있단 말이에요. 그 그림자를 하얀 종이에 도장 찍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비유로 도장 인자를 쓰는데, 바다라는 건 물이에요, 해수. 바닷물은 그냥 바닷물일 뿐이야. 그런데 이 바닷물에 비추어지는 그림자는 아주 다양하다. 나무도 비치고 사람도 비치고 구름도 비치고 해도 비치고 달도 비치고 어두운 것도 비치고, 밝은 것도 비치고. 이걸 해인이라고 해요. 아무리 해인의 모습이 다종다양해도 해수는 항상 바닷물인 거예요. 그냥. 밤중이 되었다고 바닷물이 밤중이 된 게 아니고요, 햇빛이 올라왔다고 해도 바닷물이 햇빛 된 게 아니고 그냥 바닷물 그대로 변함이 없는 상태로 온갖 것이 나타나는 것마다 다 비친다. 이걸 불변수연이라, 이것이 해인삼매다. 이렇게 가르쳐요. 이것도 신통인 게 어째서 신통이냐. 바다에 높은 산이 비췄다고 해서 바닷물이 산꼭대기로 올라간 것도 아니고 산 정상이 바닷속으로 들어간 것도 아닌데, 그대로 바닷속을 보니 높은 산이 바닷물 속에 환히 비춘단 말이에요. 이게 신통이에요. 산이 제자리를 움직이지 않고 바닷속에 비치고 물이 산꼭대기에 올라가지 않고 산 그림자가 바닷속에 다 비친다. 이걸 깨달은 거예요. 아무리 세간 속에서 근심 걱정하고 애를 태우고 살았어도 극락세계에 가면 이 세간법은 없고 그대로 극락세계에 그냥 머물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청정법신을 깨닫고, 보광명지를 성취하고 극락세계에 노니는데, 일체 모든 사람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해서 이 세상에서 근심 걱정하는 사람들도 극락세계로 오면 그날로 극락세계에서 복을 받는 거지, 산 보고 왔다고 그래서 마음이 산 된 게 아니고, 싸우고 갔다고 마음이 싸우는 게 아니다 이거죠. 그런데 이것은 역비심경계(亦非心境界), 자성청정심 보광명지는 마음이 저 밖에서 알아내고 밖에 가서 찾는 게 아니다. 있는 장소가 없어요. 바닷물의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처럼.

      기성이 본천정(其性本淸淨)하야, 마음 자성청정이 본래로 청정해서, 개시제군생(開示諸群生)이라, 여러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길, 청정의 길, 복덕의 길을 열어서 인도한다. 그러니까 극락세계를 인도하는 삼세제불의 인도받을 수 있는 자성심을 일체범부가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로 극락세계에 갈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부처님은 반야관조, 반야로 딱 보는 행위를 통해서 갔는데, 오늘의 영가는 반야관조행을 닦을 일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의 인도를 받아서 간다 이거에요. 그 인도가 반야용선이라고 그래요. 반야의 배. 용이라는 건 보이지 않는데 하늘에 올라가듯이 반야라는 보이지 않는데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배다. 반야용선을 타고 간다. 믿으면 바로 가는데 안 믿으면 갈 수 없어요. 못 가. 아무리 이렇게 법문을 해도 아무도 못 가는 거예요. 그게 또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가라고 법문하지 못 가라고 법문 하는 거 아닌데 아무나 갈 수 없는 거에요. 그 마음은 불가사이 한 거지요. 이렇게 공덕을 드리고, 아들 딸 드리고 가족들이 손주 손녀가 인연을 짓는데 안 믿을 이는 없죠. 안 믿을 이는 없어요. 그렇게 잘 믿으시고, 반야용선의 인도를 잘 받아서 극락세계 왕생하도록 하는 게 재를 지내는 뜻입니다.

 

今日 靈駕 至心諦廳 至心諦受

금일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今日當靈 直往樂土

금일영가 직왕낙토하야

無盡福樂 無盡受用

무진복락을 무진수용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오늘 영가께서는 바로 낙토에 가서, 직왕낙토(直往樂土), 낙토는 극락세계를 즐거운 락자, 흑 토자, 낙토라고 그래요. 극락세계를 줄이면 낙토. 바로 극락세계 낙토에 가셔서 무진복락(無盡福樂), 없을 무, 다할 진, 다함없는 끝없는 복과 즐거움을 무진수용(無盡受用)하십시오. 끝없이 끝없이 수용은, 받을 수자, 쓸 용자, 받는다는 말인데, 끝없이 끝없이 받으십시오.

       이렇게 해서 오늘 법문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