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국행수륙재] 9월 24일 국행수륙재 4재 법문 2023-09-24

 

  

지심발원 대자대비 불보살님

이 진관사 국행수륙재에 모인 모든 운집 대중과 운집 영가 고혼들을 위하여 증명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이 과거 전생으로 오늘날에 이르도록 먹은 마음 연기 공성을 깨닫지 못하고, 잠깐동안 빌려 쓰는 이 몸을 나라고 잘못 생각하여 번뇌 망상 감정에 끌려다니느라, 나고 죽는 생사윤회를 하옵는바, 이차인연 수륙재 참회발심공덕으로 필경성불하여지이다.

나무아미타불

 

       오늘 이 진관사 수륙재에 동참한 모든 고혼들이여. 당신들이 있어서 오늘 대한민국 땅이 있고, 이러한 우리 눈에 보이는 찬란한 이런 문화들이 내려오고 있는데, 금일 영가들이 삶이 아름다웠다면 죽음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삶을 그렇게 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 바치고 온 중생이 내 몸같이 생각했던 그런 마음으로 장엄을 했다면, 죽음 또한 그렇게 아름답게 장엄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저에게 주어진 주제가 <미래 세대의 불교를 위한 화두>. 그럼 미래 세대라고 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부처님께서는 과연 뭐라고 하셨는가. 부처님께서는 금일 영가들, 우리 몸속에 나라고 하는 영혼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삶이 곧 마음이다. <과거니 현재니 미래를 부처님께서는 재행무상이다> 이렇게 하셨는데, 오늘 이 진관사를 제가 오면서 청주에서 올라오느라고 한강을 지나왔는데, 오늘 오후에 가다 보면 그 한강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한강이 있다.’ 그러거든요. 아침에 올라오면서 내가 본 한강물은 분명히 바다로 흘러가 버려서 다시는 볼 수도 없고, 손을 씻을 수도 없건마는, 엉뚱한 다른 강물을 나는 아침에 본 한강물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사니, 그것을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착각이라, 번뇌 망상이라고 한다. 번뇌 망상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연기 중도에는 과거도 바로 지금이 이 시간이오, 현재도 이 시간이오, 미래도 이 시간이니, 미래의 세대를 위한 불교는 바로 오늘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오늘 내 마음 밭에 어떠한 씨앗을 심고 있는가, 오늘 나는 어떤 말투를 쓰고 있고, 어떤 행을 하고 있는가, 내 가족들이 볼 때, 내 이웃들이 볼 때, 내 모습이 어떤 씨앗으로 보여지고 있는가, 그것을 바로 보는 것을 우리는 미래의 씨앗을 바로 심는 사람이라 미래가 아름다워진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미래의 가장 큰 걱정은 환경입니다. 환경. 즉 우주 대자연인데, 올여름만 하더라도 얼마나 그렇게 무덥던지, 한국은 그래도 땅의 기운이 좋고 이만큼 이상기후의 폐해를 좀 더 적게 받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볼 때 환경이 이상기후가 될 때 우리 자손들에게 우리가 그냥 있어도 될 것인가, 그냥 이대로 살아가도 될 것인가. 만약 이대로 이상기후가 오고 환경을 파괴하면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어떤 철학에서도, 어떤 종교에서도 나온 일이 없는, 즉 연기 중도법을 설하셨는데, 그 말씀은 뭐냐 하면, <환경과 나와의 관계가 과연 어떠한가> 그것부터 먼저 가르쳤습니다.

       그럼 우리 눈에는 이 진관사 와보면 정말 인생을 바치면서 살고 있구나. 열과 혼을 바치는 그런 정성을 느껴서 참 고맙다. 수륙재 하나를 지내는 것만 보더라도 정말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구나.’ 수륙재란 바로 우리들의 삶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바로 현재의 우리 자신의 마음이 깨어 있는가, 깨어 있지 않는가를 바로 보는 것이 수륙재입니다. 그럼 수륙재를 지내는 진관사에 오면 법당이나 이 건물 하나하나 산이나 소나무나 돌 하나하나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오늘 영가들에게 저 앞에 산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영가들에게는 산이 없습니다. 진관사 함월당이든 법당이든 문을 꽁꽁 걸어 잠가놔도, 스님들이 이 나라를 위해서 죽어간 영가들이여, 그리고 심지어 그 외국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우리나라에서 목숨 바친 영가들이여, 당신들을 위한 수륙재를 올립니다.” 하면 문을 꽁꽁 잠가놨는데 들어옵니까, 안 들어옵니까? 마음대로 들어온다. 이 말이 그럼 문이 있다는 얘기예요, 없다는 얘기예요? 우리에게는 문이 있지마는 영가들에게는 문이 없다는 얘기예요.

      그러면 저 모든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내 마음 상태에 따라서 달리 보이는 것이다. 물을 예로 들자면, 물은 인간이 볼 땐 물로 보이고, 물고기가 볼 땐 허공으로 보이기 때문에 자유롭듯이, 내가 본다고 하는 모든 것은 내 마음 상태, 내가 익힌 아는 만큼 비친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바로 보면, 환경은 곧 나다, 내가 곧 우주다, 우주가 곧 나다, 하나로 봤습니다. 심지어 이런 법을 듣고 아인슈타인 박사는 부처님이라는 분은 과학의 아버지라고까지 표현을 했거든요. 저는 그래서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뜻을 따르는 불자가 된다는 복이,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스님으로서 살아간다는 게 아마 내가 과거생부터 금생까지 살아온 몇백 년, 몇 천년 중에 가장 큰 복이었구나. 그럼 왜 그런가를 한번 들어가 보자는 얘기예요.

       왜 그런가. 이 앞에, -지금 저 밖에 계시는 분들은 이게 안 보이는데,- 제가 물컵을 하나 들고 있거든요. 물컵을. 그런데 이 물컵이 동그래요. 물컵이 동그라면 물 모양이 동그랗습니까? 네모납니까? 동그랗죠. 그래서 내가 동그란 게 좀 싫다고, 주지 스님이 -저 주지 스님은 원력으로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꽉 차신 분인데, 참 내가 그것을 정말 아주 어쩌면 부러워하는 일이기까지도 한데,- 주지스님 보고 나 이 동그란 컵 싫으니까 네모반듯한 컵 좀 갖다 주십시오.” 하면, 네모반듯한 컵에 이 물을 부으면 이 물은 동그랗습니까? 네모반듯합니까? 그러면 동그란 물을 네모반듯하게 만든 놈이 따로 있습니까? 그릇에 따라서 물이 변하는 겁니까? 그릇에 따라서 네모난 물이 되기도 하고, 세모난 물이 되기도 하고, 동그란 물이 되기도 하고. 조건, 네모난 그릇이냐, 동그란 그릇이냐, 조건, 그걸 인연이라 그럽니다. 인연에 따라서 네모 물이 되고 세모 물이 되고, 영하라고 하는 인연이 오면 얼음이 돼버리고, 영상이라고 하는 인연이 오면 물이 되고, 100도 이상이라고 하는 인연이 오면 수증기가 돼버린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 세계를 오온개공(五蘊皆空)이다. 저는 이 세상에 오온개공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을 울리는 글이 없다고까지 생각을 하는데요, 뭐 다 안 찾아봐서 모르긴 하겠습니다마는. 그러면 여러분들이 반야 심경을 외울 때마다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이래 나가는데, 그 오온개공이 저는 미래 세대의 불교를 위한 화두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럼 왜 오온개공이냐. 그럼 부처님께서 오온이다, 오온이다 하면 이 몸뚱이를 오온이라고 다 생각을 해. 맞긴 맞죠. 오온이라는 게 색수상행식. 요 다섯 가지를 오온이라 그런다 이 말이야.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니 몸뚱이가 오온이란 말은 이 세상이 오온이란 말이다. 온 우주가 오온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한번 봅시다. 온 우주가 오온이라면 내 몸뚱이와 우주를 하나로 본 건데, 그러면 내 몸뚱이가, 혜국 스님이라고 하는 이 몸뚱이가 이 안에서 나라고 하는 놈이 따로 있어가지고 살을 찌게도 만들고 빠지게도 만들고, 크게도 만들고 적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간혹 있거든요. 내 안에 내가 따로 있다. 그러나 내 몸뚱이나 여러분들 몸뚱이를 가만히 보면, 음식이 들어가고 물이 들어가고 공기를 마시고, 즉 태양 열량을 이제 빌려오고, 온 우주 기운이 나를 살을 찌게도 만들고 크게도 만들고 병들게도 만들고 빠지게도 만들고 있지. 그럼 이 몸뚱이란 지수화풍, 우주 자연이 키운 음식이 모인 것이지, 나라는 게 따로 있어서 늙지 못하게 하고 아프지 못하게 하는 놈이 따로 없다. 이게 참 믿음이 안 가요. 부처님께서는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 제일의 공경에서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 이게 오온개공으로 이어지게 되거든요. 그러면 이 몸뚱이라는 게 여러분들이 전부 다 내가 따로 있다는 거예요. 내가 따로 있다고. 내가 따로 있다는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면 스님은 뭐 아무것도 없는데, 뭘 가지고 그렇게 지껄이고 있고, 우리는 뭘 가지고 이래 듣습니까? 이게 바로 미래 세대를 위한 불자들의 화두입니다.

       그래서 함허득통선사 같은 분들은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참으로 뭐라고 표현해도 표현할 수가 없다. 너무나 오묘하고 미묘하여 있다고 하니 없는 것 같고, 없다고 하니 있는 것 같고, 이거는 측량하기 어렵고 말하기 어렵다.

오늘 진관사 수륙재에 오신 모든 고혼들이여, 영가들이여, 이 어떠한 물건인가. 당신들이 오늘 수륙재 지내기를 얼마나 기다리셨고, 기다리고 오늘 와서 염불 듣고 법문 들을 줄 아는 그놈이 과연 누구인가. 스님, 내가 따로 없다면 누가 와서 듣는 겁니까? 이거야말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 이거야말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말이에요그러면 우리가 조금 이제 내려가 봅시다.

       뭐 요즘은 제가 죽도록 법문해봐야 그 양반 뭐라고 지껄였는지 너무 어려워.’ 하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약간 지금 주눅이 들어 있어. 내가 어떻게 하면 좀 알아듣기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그걸 좀 배워야 되겠는데, 그게 이제 물론 내 허물도 많지만은, 옛날 내가 배울 때는 성철 큰스님이든 뭐 경봉 큰스님이든 전부 다 그 어른들은 내가 보이나?” “, 스님 보입니다.” “뭐라고 하노.” “모르겠습니다.” “나가.” 이게 전부 다였단 말이야. 이게 전부 다였어. 그런데 그게 엄청난 가르침이었거든요. 그래 배워놓으니까 내가 이제 좀 서툴러. 이제 좀 쉽게 하는데. 근데 최대한 이제 쉽게 좀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여러분들 이 세상 살면서 미운 사람 있죠. 가족도 마음에 안 든대요. 대부분 보살들 와서 말 들어보면, 남편 흉 엄청 보거든.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도대체가 마음에 안 들어. 저런 줄 알았으면 결혼을 안 했을 거라는 거예요. 내가 그래서 그 보살 보고 웃고 그래요. “당신 위해서 태어난 분 아니거든요. 남편은 당신이 잘해줄까 봐 결혼했지, 당신한테 잘해주려고 결혼한 게 아닙니다. 그러면 그 남편이나 아들, , 말 안 듣는 아들, 딸 말 잘 듣게 할 자신 있습니까?” “자신이 없으니까 스님 찾아왔죠.” 그럼 나도 모르니까 부처님께 물어보자. 부처님은 뭐라고 하셨는가. 부처님은 100% 해결을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연기법에서 인연법에서 그 사람 되게 밉지? 니가 미워하는 사람이 내가 되게 미워하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좋아서 죽을 지경인 사람이 많거든요. 그 사람 나는 그렇게 미운데, 그 사람 보고 2분의 1 했다는 거예요. 2분의 1이 뭐예요? 반이니까 반했다 이 말이야. 반했어. 딱 반했다 이 말이야. 그러면 그 사람은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닌데 문제는 어디 있어요? 미워하는 내 마음, 나한테 있다는 거예요. 부처님께서는 대상은 네가 비친 그림자라, 실상이 아니다. 그 역경과 미운 마음, 원망하는 그 사람을 없애려면 만약에 그 사람을 어디로, 외국으로 이민 보내면 네 마음에 있는 기운만큼 그보다 꼭 그런 사람이, 뺑덕엄마 같은 게 하나 와가지고 너를 똑같이 힘들게 할 것이다. 영원히 이어지는 것을 윤회라 그러는데, 윤회를 안 하고 싶거들랑 네 마음만 내려놔버려라. 미운 마음 하나 내려놔 버리면, 이건 내가 미워해서 그렇지 상대방의 문제가 있는 게 아니구나. 내 남편이 문제도 아니오, 내 부인이 문제도 아니오, 아들, 딸이 문제도 아니오. 이거는 오직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그러면 내 마음을 한번 좋게 쓰면 좋은 식으로 나가고, 좋은 기운이 나오고, 나쁘게 쓰면 나쁜 기운으로 되니까, 내 마음이 고정으로 딱 정해진 겁니까? 생각 일으키는 대로 달라집니까? 그걸 공이라 그래요. 그걸 물이 없는 게 아니고 물이 있고, 얼음이 없는 게 아니고 얼음이 있고, 수증기가 없는 게 아니고 있고, 다 있는데,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주위 여건에 의해서 얼음이 물도 될 수 있고 물이 수증기도 될 수 있으니, 오늘날까지 도둑질을 하고, 죄업을 지어도, 한 생각 딱 수륙재, 수륙재가 그 뜻이니까, 딱 바꿔 먹으면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이번 비 피해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가지고, 사람 살리는 게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구나, 나는 이 길을 가야겠다면 그 사람 도덕놈이요? 의로운 좋은 사람이요? 그러면 그 사람이 도둑질했던 업에 끌려가면 윤회요. 그걸 딱 끊어두고 나는 이 길 가겠다면 죄하고는 상관이 없어. 그것이 공이라 이 말이요. 그것이 공이여.

       그 공이란 나는 제일 지금 어떨 때 보면 요즘 말로 뚜껑이 열리는 이유가 있는데, -요즘 말로 화가 나는 걸 뚜껑이 열린다 그러더라고. 맞긴 맞아요.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머리에 뚜껑이 있어.- 중국의 대단히 유명한 임어당이라고 하는 그런 대학자도 불교는 공을 주장하기 때문에 좀 허무적이다. 공이기 때문에 희망이요, 공이기 때문에 무한이요, 공이기 때문에 무한 가능성 부처인데, , 공을 그런 대학자도 허무로 봤구나. 공이야말로, 이 공이야말로 삶이요, 희망이라. 이게 바로 미래 세대를 위한 불자들의 화두가 돼야 된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 생각만 딱 내려놔버리면, 내려놓고 봐봐요. 남편이나 아들, 딸들은 나를 위해서 온 게 아니다. 각자 자기 길을 가니까, 내가 옳다는 거를 인정받고 싶으면 상대방 옳은 것부터 먼저 인정을 하자. 그러면 올 수밖에 없어. 나와 남은 둘이 하나니까. 내 옳다는 고집을 딱 내버리는 순간 내가 편안해지지. 이게 공이 현현이요, 공의 현현, 공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부처님께서 오온개공이다.

        여기는 이제 워낙 이제 훌륭한 스님들이 와서 이제 법문을 많이 하기 때문에, 법문은 이제 많이 길게 안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몇 분이요. 몇 분 해요? 그거는 잘못 말씀하는 거요.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니까. 내가 그것 때문에 한 번 되게 혼난 사람이거든. 청담 큰스님께서 해인사 주지할 때 내 어릴 때 모시고 진주를 갔는데, 진주 호국사에서 법문하는데 주지 스님 보고 언제까지 하면 되냐니까 스님 마음대로 하라고 해서 8시간을 했거든요. 그럼 몇 사람 남아 있게요? 나하고 주지 스님하고 둘이 남았다고요. 둘이. 다 가버렸는데 그냥 법문을 하고 있더란 말이요. 나 그때 되게 혼나가지고, 절대로 나는 50분 이상 하는 법이 없어. 그때 배운 법이여 그게.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수륙재에 대해서 한번 보자 이 말이야. 영가들이이 세상 원망하는 마음 모든 거는 그건 내가 놔버릴 데 없는 것이다. 그럼 왜 놓아버려야 되냐는 그것만 바로 배우면 되요. 여러분들이 이 수륙재의 고마움을 다 몰라요, 몰라. 과거를 청정해야 한다는 건 현재로 이어지고 현재의 청정이 미래로 이어지는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고마움은 나라에서 하는 일이었거든요, 나라에서.

       그러면 스승들은 어떻게 했는가를 한번 보자 이 말이오. 오늘 수륙재에 동참한 모든 영가들이여, 스승을 찾아가 봅시다. 어떤 스승을 찾아가느냐 하면, 육조 스님이라고 하는 큰 스승을 찾아가는데, 우리를 대신해서 누가 가셨느냐면 청원 행사 스님이, -뒤에는 아주 거룩한 스승이었지만 그때는 이제 공부를 많이 해가지고, 그때도 이제 공부를 거의 다 이루고 거의 도를 통한 분인데,- 찾아가서 질문을 하기를, -금일 영가등이여, 그 스승들이 하는 질문을 들어보면 와, 저런 질문이 질문이구나. 화장실을 어디로 옮기면 좋겠습니까? 하는 그런 거 물어보는 이 질문이 아니고, 내 딸 어느 사위 보는데 사주가 맞습니까? 난 그런 질문을 모르니까 제발 나한테 그런 거 물어보지 말라고. 그건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계급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물었다 이 말이야. 수륙재에 동참한 모든 영가들이. 이승이라는 계급, 저승이라는 계급, 나는 못났다는 계급, 나는 잘났다는 계급, 쌍놈이라는 계급, 양반이라는 계급, 우리나라 조선시대 양반과 상놈 계급은 대단했습니다. 인도 가면 사성 계급이 대단하다지만, 우리나라 조선시대는요, 양반은 아무리 뭘 잘못해도 쌍놈이 말 한마디 못했어요. 심지어 쌍놈은 노비로 만들어 가지고 요즘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 팔고 사고 하듯이 사고 팔고 했다 이 말이야. 그러면 부처님께서 오온개공이라 하신 말씀은 양반이라는 계급도 명색이오, 쌍놈이라는 것도 명색이요. 인간들이 붙여놓은 이름이지만은, 모든 공의 세계에서는 그 사람이 오늘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느냐, 즉 삶이 마음이요 현재 생명이다. 이거 기가 막힌 말이구먼. -모르니까 박수도 안 치거든. 모르니까.- 삶이 바로 우리 공의 현현이라 이 말이야. 그러면 삶을 도둑질을 하면 계급에 상관없이 부처님은 그건 도둑놈이다. 아무리 쌍놈이라도 잘 살면 저 사람은 이로운 사람이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말씀한 오온개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상놈, 양반, 그런 계급 없이 어떤 삶이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고 미래가 달라지는구나. 그러면 여기서 청원스님께서 질문한 질문은 잘 났다 못났다, 너다 나다, 자연이다 나다, 그러한 모든 분별상에서 벗어나려면, 나 옳다고 하기 때문에 남과 싸우고 남하고 비교하기 때문에 싸우지. 여러분들이 불행을 가만히 돌아보면 남하고 비교하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들 할머니 할아버지 시대에는 라디오 조그마한 거 하나 있으면 부잣집이었고, 만약 그 집에 텔레비전 하나 있었다면 그 집 애하고 싸움도 못했어요. 텔레비전 보러 못 갔으니까. 그러면 엄청난 부자라고 했는데, 지금 텔레비전 없는 분이 없고 손에 손에다 텔레비전을 들고 다닙니다. 저 휴대폰인가 하는. 할머니보다 100배의 재산을 가지고 있고, 천배의 학문을 익혔는데, 왜 저런 묻지마 폭력이 생기고, 진보니 보수니 저렇게 갈등을 해서 싸움 싸움하느라고, 그러한 노력을 우리 국민들에게 정말 정성을 다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됐지만, 세계적인 데서 또 정말 세계적으로 될 수 있는 그런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대단한 나라거든요. 세상에 그냥 남의 거 얻어먹다가,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알랑미 얻어다 먹던 나라에서 지금 비교가 됩니까? 그러면 이게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인가.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놨다. 이 수륙재에 모시는 그러한 모든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것은 이게 미래로 이어지기만 하면 묻지마 폭력을 없애는 길이오, 막가파식으로 가는 그러한 법을 해결하는 법이오. 너니 나니 민주니 진보니 보수니 편을 갈라가지고 싸움 싸움 하느라고, 만일 그 노력만, 야 우리 이번엔 이걸 어떻게 할까 이번엔 어떻게 할까, 참 보기도 좋고 아름다울 텐데.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아까 청원 행사를 대신해서 그런 계급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물었으니 그 질문이 대단한 질문이지 않느냐, 이 말 대단한 질문이거든. 그 말은 다른 말을 말하면 뭐라고 할까요?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 금강경에 나오는,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은 흘러가는 강물과 같이 멈춰 있지 않다. 무상하다. 나도 나도 흘러가는 강물이라. 내가 13살에 처음 절에 들어와가지고 이 가사장삼 입고 법당 앞 지나가면, 주지 스님 나이쯤 되는 비구니 스님들이 내 볼때기를 요리 만지면서, “아이고 동자스님 귀엽다그러는데 지금 귀여워? 내일 모레 80이야. 다 늙었잖아. 완전히 그냥 다 늙어 간단 말이야. 그러면 늙을 줄 아는 사람은 나도 흘러가는 강물이라. 늙어가는 아름다움, 늙어가는 것이 내 자신이 아름답지 않으면 늙어갈수록 인간은 초라해지지만, 늙어가는 게 소나무 늙어가면 낙락장송, 진관사 주위 소나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나도 그렇게 낙락장송이 되고 있구나. 얼굴은 쪼글쪼글해진다만 내 안의 기운은 젊은이들이 가지지 못하는 그 아픔을 이겨내는 지혜, 넓은 마음, 이 마음이란 좁게 쓰기로 말하면 바늘 구멍보다도 더 좁아져버리고 넓게 쓰기로 말하면 태평양 바다보다도 넓어지는 게 마음이니, 이게 공이 아니고 뭐예요. 그러면 그 약견제상비상, 눈에 보이는 모든 건 허망한데 그 눈에 보이는 그게 허망한 것이 내 분별상, 내가 분별하기 때문에 상이지, 내가 분별하지 않으면 상이 없다는 걸, 내 분별상인 줄 알면, 즉 내 분별상은 내가 만든 거라, 한 생각 일어난 망상 번뇌인 줄 알면 그 자리가 부처요, 즉견여래라 그랬단 말이야. 

       그러면 이걸 조금만 더 설명할게요. 이 지금 함월당에 드럼통으로 그냥 보리, , 뭐 오징어젓, 그런 것들로 꽉 채우면 우리가 이걸 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쓸 수 없어요. 쓸 수 없어요. 비었기 때문에 써요. 비었기 때문에. 그러면 여러분들이 죄를 퍼지어도, 금일 영가 잘 들어요. 이 진관사에서 해마다 지내주는 이 수륙재가 당신들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걸 내가 알기 때문에 잘 들어라 이 말이야. 당신들 본질, 본 마음 연기공성에는 죄가 묻지를 않습니다. 죄가 안 묻어요. 죄가 없다 이 말이요. 그럼 아예 없습니까? 왜 없어, 죄를 지으면 받아야지.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그러니 법문을 잘 들어요. 그러면 금일 영가 등이여. 이 법당을 온통 비워버리면 마음대로 쓸 수 있는데, 본래 이 법당은 비어 있었습니까? 우리들이 잘못해가지고 가득 채웠습니까? 본래 비어 있는 법당인데 우리 욕심으로 채웠다 이 말이야. 그러면 채워 있을 때도 이 허공은 그대로고, 비워도 그대로고, 변함이 없어. 다만 눈에 볼 때 꽉 찰 때는 다른 걸로 쓸 수만 없다 뿐이야. 그러면 여러분들 마음도 완벽하기 때문에 새로 닦아서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법당 안에 있는 그 가득 찬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이것만 비워버리잔 말이야. 이것만 놔버리면 완벽하다 이 말이야. 금일 수륙재에 참석한 영가들, 해봐, 해봐서 안 되면 내 생명 대신 가져가란 말이야. 해보란 말이야. 한 생각만 딱 놔버려. 그럼 바로 비울 수 있단 말이야. 마음은 한 생각에 의해서 비울 수 있어. 이거를 유심인과(唯心因果)라 그래.

       그러면 스승은 뭐라고 했느냐면 너는 어떠한 길을 걸어왔느냐?” 이렇게 물었어. 육조 스님은 그거 참 대단한 세계들이거든. 벌써 딱 보니까 저놈이 계급을 벗어났기 때문에 저런 질문을 하지, 만약 분별상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저런 질문 자체가 안 나올 텐데. 이놈의 자식, 참 쓸만한 놈 왔구나.’ 너는 어떠한 길을 걸어왔느냐 하니까, 청원 스님이 대답하기를, 수륙재에 동참한 영가 등이여, “성스러운 진리라도 행하지 않습니다.” 금일영가여 여기에 답이 있어요. 여기에.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건 한 생각 일으킨 내 마음 일어난 공이 현현입니다. 그러니 스승이 얼마나 좋았던지 너는 어느 산을 찾아가 가지고 수천 명 대중을 깨어있도록 노력하라.” 청원산으로 보냈다 이 말이야. 청원산이라는 건 그래서 청원 행사인데, 금일 영가들 나하고 청원산을 한번 같이 가보자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그 세계를 선적인 언어로 말하면은 바로 불이중도(不二中道)요 무진연기(無盡緣起). 그렇게 공의 현현이라는 건 무진하여 다함이 없구나. 바로 영원이구나. 이것이 생사윤회에서 벗어난 자리야. 

       그러면 유심인과라는 게 뭐냐 하면은, 여러분들 인과라는 게 네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동시인과, 두 번째는 이시인과, 세 번째는 뭐요? 강약인과, 네 번째 마지막에 유심인과요.

       여러분들은 불교를 믿으면서도 아 저 사람은 되게 악하게 사는데도 왜 저렇게 잘 돼요?” 그건 이시인과를 몰라서 그래. 동시인과는 내가 어떤 사람 귀싸대기를 한 번 때리면 그놈도 화가 나서 날 동시에 때리는 거, 동시에 일어나는 걸 동시 인과라 그러고, 내가 오늘 사과나무를 -나도 사과 농사를 석종사에서 한 13년을 지었는데- 심으면 그날 열려요? , 비가 와야 되고, 태양이 비춰져야 되고, 흙의 기운을 받아야 되고, 때가 돼가지고 나무가 커서 때가 돼야 열매가 열립니까? 바로 열립니까, 때가 돼야 됩니까? 그걸 알긴 아네. 그러니 악한 일을 해도, 열매 맺듯이, 때가 돼서 다른 시간에 오는 걸 이시인과라 그래요. 이시인과까지도 수륙재에 이분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다음에 강약인과요. 내가 나무를 10년 동안 했는데도 강한 불길이 오면 1시간에 타버려. 여러분들 마음 씀에 따라서. 마지막 금일 오늘 수륙재 영가 등이여, 유심인과라, 유심인과라. 내가 오늘날까지는 도둑질을 하고 못된 짓 하다가 삭발을 다 하고 승복을 입고, “부처님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이 왜 이리 엉망이었습니까, 눈 온 들길을 걷는 나그네여, 갈팡질팡 걷지 말아라. 오늘 그대의 발자취는 뒷날 후인의 이정표니라. 정말 내 발자국을 돌아보면 여러분들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봐요. 하얀 눈이 왔을 때 어떤 발자국이 찍혀졌는가. 나 미워하는 발자국, 자식들이 내 마음대로 되길 바라는 욕망의 발자국, 그거는 돌아가서 지울 수가 없어, 어제로 돌아갈 수가 없단 말이오. 여고 시절로, 남자 고등학교 시절로 못 돌아가요. 어제로 못 돌아가니까, 만약에 그 발자국 깨끗하게 지워서 언제 돌아가도 아름다우려면 그날부터 반듯반듯한 발자국을 찍어나가면 한참 지나고 돌아보면 삐딱삐딱한 건 안 보이고 반듯반듯한 게 보이니, 이것이 바로 공의 희망이요, 언제든지 내 마음에 따라서 새로운 발자국을 찍을 수 있으니 이것을 유심인과라 그런다. 어제까지 죄를 퍼지어서 나는 죄인이었지만, 오늘 딱 정신 차리고 바로 살면 그럼 죄가 무엇이냐. 본질에는 죄가 안 묻지만, 내 감정에 쌓이고 쌓여서 내가 익힌 습관, 내 감정을 내가 붙들어 놓은 화, 이것을 부처님은 죄라 그랬다. 그것은 내가 착각에 의해서 만들어서 이미 화를 낸 날, 화는 지나가버렸는데 마음에 꽉 붙들고 화병이 되니까 그걸 번뇌 망상이라 그러고 그것을 죄라 그랬다.

       그러면 금일 국행수륙재에 동참한 모든 영가 등이여, 나와 당신은 한 몸이오. 이 함월당 법당이 따로 있다는 건 벽을 쌓기 때문에, 이게 땅이지 벽만 허물어버리면 한 허공이요, 한 허공 한 생명이요, 내가 따로 없다 이 말이요. 내 안에 움직이는 내 생명이나 여러분들 안에 있는 생명이나 우주 법신이라 이 말이요, 한 허공이란 말이야. 우리는 허공의 고마움을 너무 몰라요. 허공 덕에 앉아 있고, 허공 덕에 집을 짓고, 허공 덕에 누워 있고, 허공을 1초도 떠나보지 않고, 허공 없으면 다 죽는대. 허공을 향해서 이 허공 덕에 내가 살고 있구나. 허공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것을 나태주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더구먼. <어디선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이 세상은 찬란한 아침이 오고 어디선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이 세상은 고요한 저녁이 온다. 아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이게 이제 나태주씨 시인데. -(박수)그러면 내 그럴 줄 알았다고, 이럴 땐 박수 치고 정말 칠 때는 안 치고 벌써 처음부터 알았어.-

        수륙재에 동참한 모든 영가여, 결론입니다.

       이제 한번 돌아보자. 이 자연이 있어서 나고 내가 있어서 자연이라고 하니, 우주 자연과 나는 하나이니, 당신들이 생명을 바친 거는 당신들을 생명에 바친 것이지, 내가 따로 있어서 남에게 내 생명을 바치지 않는 걸 알면, 당신으로 인해가지고 이 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워지고 후손들이 이런 수륙재를 지낼 수 있다는 건, 와 정말 한 허공 맞네. 한국 허공이나 미국 허공이나 인도 허공이나 온 허공이 하나인 게 맞구나. 내 생명 네 생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한 생명 한 법신에 의해서 살고 있으니 그거를 부처님께서는 부처라 그랬고 법신이라 그랬으니 그것을 공이라 그런다.
       금일 영가여, 공이란 저 허공을 만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허공은 못 만들어.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허공 송을 하는 그 조용필이 허공 말고 조용필 씨가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한 노래 있죠, 그게 왜 나왔어요? 조용필 씨가 경봉 큰스님을 찾아가니까, 경봉 큰스님이 자네는 뭐 하는 사람인가” “저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꾀꼬리구먼.” 꾀꼬리처럼 노래를 한다 이 말이야. “그 꾀꼬리가 어디 있어이렇게 물었다. 이 말이오. 즉 니가 누구냐. 금일 수륙재를 지내는 모든 영가들이여. 누가 이거 묻겠습니까? 당신 누구요? 당신 누구냐 이 말이야. 저 영국 미국에서 온 사람, 혹시 한국 말 못 들으니까 Who are you? 누구냐 이 말이야. 누구야. 말이 그렇지 영혼들은 그냥 마음이 통하는 거지, 영어 한국어 불어가 따로 없어. 누구냐 이 말이야. 그러니까 조용필 씨가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꽉 막혀가지고 자기를 꾀꼬리라고 해놓고는 못 찾으니까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한 거란 말이야. 그러면 수륙재의 오늘 온 영가들도 아 내가 목숨 바친 그 생명이 나는 누구인가? 이 뭤고.

       진관사에서 가는 곳마다 붙여놓은 <여러분은 부처님입니다.> 금일 수륙재에 온 영가 등이여, 당신들을 부처님으로 모시는 이 희망,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즘 말로 말하면 오늘 영가들은 기분이 째지게 좋은 거예요. 째지게 아주. 오늘 수륙재를 이렇게 해마다 지내가지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고, 내 안에 내 생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온 공기와 물과 태양열 에너지와 대지 음식이 나를 왕자 왕비처럼 떠받들고 있기 때문에 내 감정대로 해서는 안 되겠구나. 정말 깨어 있어 보자.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를 한번 이제 찾아보고. 금일 수륙재 영가들은 그렇네, 죽음이란 없네. 몇백 년이,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역력하게 이거 들을 줄 아는 거는 독립된 내가 아니라 제법무아로서 연기 공성으로서의 나는 이걸 영혼 생명이요 바로 부처라고 하는구나. 이것이 오늘 수륙재를 지내는 영가들에게 올리는 최상의 선물이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영가들이 이렇게 아주 기분이 찢어지게 좋았으면, 여러분들도 오늘 집에 가서 내 마음에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이거 내려놓지 않는 이상, 내 마음에 아름다운 평화,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하는 시구절처럼 세월이 정신없이 나를 늙도록 만드는데 이런 감정 이런 번뇌 망상 요거 가득 채워서 다닌다는 게 이건 정말 아니거든. 사람 한 번 되기 어려우니 부디 마음 농사들 열심히 지내주시기를 바라면서,

  

원컨데는 수륙재를 이렇게 지내는 공덕, 살아생전 모든 죄업은 번뇌 망상임을 깨달아서, 바로 이 소리와 둘이 아닌 참생명을 깨달아서, 나라리 라라 나라리 라라 태평가를 불러 봅시다.

나무아미타불

바깥에서 듣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