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국행수륙재] 9월 3일 국행수륙재 입재 법문 2023-09-03

 

 

-수륙재 공덕의 복전(福田)-

 

       반갑습니다. 오늘이 진관사 선망 부모 및 조상 영가 천도와 가정 행복 기원 진관사 국행수륙대재 입재 날입니다. 올해는 또 이제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지 10주년을 맞이해서, 더욱더 회주 스님을 위시해서 주지 스님 이하 사중 스님들께서, 또 신도님들께서 1년 내내 이렇게 수륙대재를 장엄하게 준비하신 것 같습니다.

 

       하여튼 대한민국 번영과 또 우리 국민들의 행복과 또 세계 평화 이와 같은 주제를 담고, 제가 어제 주지스님께서 전해주는 리플렛을 보니까 <대자대비의 물로서 생명의 꽃을 피운다.> 화엄경에서는 흔히 이제 그 자비로움을 상징할 때 일곱 번째 주제를 가지고 해나가는데,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찾아갈 때 일곱 번째 휴사우바이가 자비를 상징하고, 17번째 무염족왕이 자비를 상징하고, 스물일곱 번째 관세음보살이 자비를 상징하고, 그리고 여기 진관사 주제처럼 37번째가 그 유명한 개부수화일체주야신이니라. 모든 나무와 꽃나무와 모든 꽃 생명에 물을 주는 개부, 전부 다 꽃에 생명을 주는 것이 식지 선지식의 개부수화일체중생주야신이죠. 모든 일체 중생의 꽃을 피운다.
        그래서 오늘 수륙대재을 이렇게 맞이하는데, 세계가 안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국가 내적으로도 서로 대립 갈등을 볼 때 참 가슴이 아픈 일들이 한둘이 아니죠.

        그리고 오늘 법문은 학교 공부하듯이 듣지 마시고, 또 의례적으로 공연하듯이 그렇게 참석하시지도 마시고, 볼거리는 많습니다마는. 조금 전에 여법하게 화엄신중을 청하시고, 그리고 법을 청할 때 게송이 이렇습니다.

 

나에게 한 권의 책이 있는데 종이나 먹으로 된 것이 아니다.

펼쳐보면은 한 글자도 없지만은,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라.

 

 

이 모습을 우리가 잘 기억해야 될 것 같아요.
        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화엄경 입법계품 지남도> 책을 한 권씩 나눠드린 게 있습니다. 뒤에는 그 유명한 우리의 화엄종주 의상스님의 법성게를 책 찍는 걸음에 하나씩 더 찍어놨어요. 천년의 노래를. 이 화엄경 지남도를 왜 가져왔느냐. 오늘 이 수륙대재의, 제가 어제 받은 주제가 이거에요. <복전이 뭐냐, 경전이 뭐냐, 비전이 뭐냐, 이전이 뭐냐.> 우리가 복을 심는 것도 있을 것이고, 복을 짓는 것도 있을 것이고, 복을 아끼는 것도 있다. 조금 수준이 높은 거는 복을 심는 것이고, 조금 수준이 낮은 사람은 복을 짓는 것이고, 더 형편없는 사람들은 복을 아끼기라도 해야 된다.

 

        음식이라든지 여러 가지 복을 좀 아끼고 그렇게 사는데, 차돌을 갖다가 저기 지나가는 맑은 냇물에 아무리 담가놓더라도 물에 있을 때는 물이 좀 젖은 것 같지만, 끄집어내면 금방 바짝 말라버리는데, 우리는 감각 나라 중생이라. 아주 강직하고 뻣센 중생이라서 도대체 부처님의 말씀이 솜에 스며들듯이 스며들지가 않기 때문에, 그럼 경전에는 어떻게 말씀해 놓느냐. 억센 중생은 세력으로 제압해라. 그래서 저는 중생 제도의 길로 나선 사람이 아니고, 중생 제압의 길로 나선 그런 입장입니다. 오늘 수륙대재에 오면서 중생을 제압해야 되겠다. 그리고 보드라운 중생들은 어떠냐. 제가 별명이 보들 스님인데, 피부가 백옥 같잖아요(웃음) 이 보들 스님이 혹시 시커멓게 보이는 분들은 억장이 좀 두꺼운 분들.(웃음) 어쨌든 우리가 이제 보드라운 중생들에게는 뭘 설해야 되냐. 법을 설해야 된다. 법을 설하지 않아도 잘 알아서 한다. 그래 억센 중생들은 세력으로, 주먹이 센 사람은 더 주먹 센 사람을 갖다주고, 말 잘하는 사람은, 사기 잘 치는 사람은 더 말 잘하는 사람을 갖다주고,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더 부자를 갖다 줘가지고, 그 사람의 세상놀음의 생멸법을 꺾는 데 그 뜻을 두고 있다, 이런 말씀이에요. 감각 나라 중생인데, 꺾기 힘든 억센 중생들은 세력으로서 그 사람을 다스리고, 인물 잘 났다고 뻣세고 그러면 더 인물 좋은 사람, 우리 같은 사람 딱 갖다 놓으면 기가 죽거든요. 자그마한 반딧불 같은 지혜는 가로등 같은 지혜가 있다고, 자기가 뭘 잘한다고 하는 사람은 부처님 같은 태양을 갖다 놓아버리면은 싹 수그러든다 이 말씀이에요. 함석이 조금 야물다고 쇠하고도 다르고 무쇠를 갖다 놔버리면 돼요. 그렇죠? 그러니까 단단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더 단단한 거를, 부드럽다고 자랑하는 사람한테는 더 부드러운 것을, 이게 이제 생멸법의 중생을 제압하는 방법이에요.
        근데 오늘은 여러분들께 이 책을 한 권 드렸는데,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사회자분께서. <우리 괴불을 이렇게 함월당에 여법하게 모셨다.> 지금 그림이 참 볼 만하고, 부처님 저기 계시잖아요. 저렇게 부처님은 흔적도 없이 와 계신데, 그림으로 부처님을 보시면 안 된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제가 여기 앉아 있는데 저를 여러분들은 보실 수가 없을 거예요. 아마 혹시 본다면은 내 몸뚱이 고깃덩어리를 보고 계시지 않을까. 육신만 보고 법신은 못 보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 여기 드린 책도 분명히 글자가 있고, 그림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글자, 그림으로 전할 수 없는 부처님의 메아리가 있고 부처님의 그림자가 여기 담겨 있는데, 글로서 글자로서는 쓸 수가 없습니다. 그죠? 그래서 얼핏 보면은 여기에 그림 한 장에 여기 해설 한 장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 책은 보시지 마시고 집에 가셔서, 타로점 보듯이 오늘의 운세가 딱딱 적혀가지고 그림 한번 보고 운세글 한번 보고. 이 책을 집에 가서 야무지게 보시는 분들은 범죄 행위에 속한다 이거야. 이거는 그림 한 번 보고 대충 읽고 아셨죠?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될 건, 요 밑에 제가 한 줄 평을 써놓은 게 있어요. 예를 들자면 126페이지 보면은 <황금 그릇을 가지면은 거지 깡통이 미래는 없다.> 이런 구조는 제가 편찬을 해놓는 거라서 제 일기라서 그거는 볼 만합니다. 그거만 한 줄만 딱 읽어야지, 그 위에 한문 읽는다든지 이런 거는 범죄 행위에 속하는 거야. 절대 보지 마시고. 누구하고 오늘 짜장면 값 내기 해야 된다. 이러면 딱 그림을 펴서 너는 사람 몇 명 나왔냐. 나는 몇 명 나왔다. 이런 용도로 쓰셔야지. 라면 놓을 때 뜨거운 냄비 받침대. 그 외에 그렇게 하셔도 이 안에 묻어 있는 뜻은 충분히 우리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여러분들께 또 이 조그만 종이 하나 나눠드렸죠. 오늘 법문 시간이 한 30분밖에 안 돼가지고 종이 하나 나눠 드린 게 있어요. 요거 일단 화엄경 얘기니까 한번 읽고, 이 책을 가지고 또 한번 읽겠습니다.

못난 사람에게 잘 해라.

 

 

제가 왜 이걸 가져왔냐 하면은, 심청이가, -심청이 우리 다 아시죠?- 심청이가 효성이 지극해서 공양미 300석에 팔려서 그 파란만장한 천길만길 되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데, 목숨 바쳐서 아버지 눈을 뜨게 해드리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눈을 못 떴어요. 뺑덕이 엄마하고 산다고 심청이 인당수에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눈을 못 뜨셨다. 그죠? 목련존자가 아주 효성이 지극하고 신통력도 뛰어나고 지혜가 밝은 인데, 그렇게 효성이 뛰어난데도 어머니를 지옥에서, 아귀도에서 구하려고 하니까 구할 수가 없었다. 목련존자가 어떻게 어머니를 구했죠? 대중 스님들께 만발 공양을 한 뒤라야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다. 신통이 아무리 뛰어나도 어쩔 수 없다. 그럼 대중의 중요성을 우리는 알 수가 있어요. 심청이가 그렇게 지극한 효성이면 아버지가 눈을 떠야 되는데 눈을 못 떠. 심청이가 뭐 하고 난 뒤 아버지가 눈을 떠요? 잔치, 잔치 벌렸네. 심청이가 잔치를 벌여서 온 나라에 눈먼 사람을 구제하려고 했을 때, 비로소 누가 눈을 뜰 수 있다? 오늘 심봉사 눈 뜨는 날입니다. 심봉사 이름이 심학규. 학교 규칙대로 살면 눈이 캄캄한 사람이다. 융통성이 있어야 돼요.
        오늘 수륙대재라고 하는 것은 우리 조상이 천도되려면, 미루어 짐작컨대, 무엇을 해야 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해지기를 바라야 우리도 같이 잘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 내용을 가장 잘 담아놓은 내용이 법화경에 보면 화성유품에 동남방에서 대범천이 모여서 게송을 얻는 게 있습니다. 대통지승여래, 대통지승여래는 법화경에 누구죠? 석가모니 부처님의 아버지죠. 석가모니 부처님은 대통지승여래의 16번째 아들이라고 법화경에 나오죠. 16번째. 또 어름한 중들은 정반왕 아들 아니에요?” 이러고 앉아 있다. 6번째 아들이라고 하는 이 사바의 세계는 잘 살면은 팔정도, 못 살면은 팔사도가 된다.

        진관사에 들어오면은 우리가 그 누각 통과할 때 기둥이 4개 좋은 게 있잖아요. 그죠? 왜 그 돌기둥 세워놨어요? 사홍서원을 다짐하는 거예요. 사홍서원. 저기 일주문 통과해가지고, 해탈문 지나서 이렇게 대웅전 들어가기 전에 큰 돌기둥 있잖아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법화경의 주제가 그거거든.

        그래서 법화경의 대통지승여래의 성불을 찬탄하면서, 동남방의 대범왕이 자기 궁전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궁전만 올리는 게 아니고 다 장엄을 해서 올리고, 꽃도 태산같이 올리고 난 뒤에, 이렇게 부처님께 수륙대재 공양 올리듯이 떡도 올리고, 공양도 올리고, 음성 공양도 올리고, 눈에 보이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다 올리고 난 뒤에, 색성향미촉법을 올리고 난 뒤 어때요?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당생극락국은 없고- 동견무량수(同見無量壽)이랬잖아요. 그죠? 근데 극락이 빠지면 심심하니까 법화경 법문에는 없지만, 우리가 염불 할 때는 당생극락국(同見無量壽) 동견무량수라 그렇게 얘기를 하죠. 법화경 화성유품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 이 수륙대재를 지낼 때, 경전 중에 수륙대재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 이제 공양 올리는 것은, 화엄경 십회향품 제6회향에 보면은 무차 시혜 대법회라고 나옵니다. 무차법회라고 나와요. 우리 여기는 무슨 법회라고 했죠? 평등수륙대재라고 했잖아요. 평등이 바로 차등이 없는 무차법회거든요. 무차법회, 그건 화엄경 십회향품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거기에 음식으로부터 해서 모든 생필품을 일체 중생에게 공양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어떻게 심청의 아버지가 눈을 뜬다? 모든 사람에게 잔치 잔치 벌렸네. 이러니까 집에 있다가도 눈 뜨고, 잔치 얻어먹으러 오다가도 눈 뜨고, 얻어먹고 집에 가다가 눈 뜨고, 자고 일어나 눈 비비다가 눈 뜨고, 자다가 눈 번쩍 뜨니까 집에 있다가도 뜨고, 저기 왕궁에 잔치 얻어먹으러 가다가도 뜨고. 그래서 그런 것들 볼 때 멀리 있어도 눈을 뜨고, 가까이 있어도 눈을 뜨고, 잘 생긴 봉사도 눈 뜨고, 못 생긴 봉사도 눈 뜨고, 전라도 봉사도 눈 뜨고, 경상도 봉사도 눈 뜨고. 대충 짐작 가요. 걸어다니는 사람도 눈 뜨고, 자던 사람도 눈 뜨고, 어린아이도 눈 뜨고, 남녀노소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자타일시 성불도. 잔치 공덕이 그렇다.

        수륙대재에서 우리 조상을 오늘 어떻게 천도시킬 것인가. 조상은 놔두고라도 나부터 어떻게 천도될건가. 학교 규칙대로 살지 말고 조금 융통성을 발휘해서 살아야 된다. 융통성을 발휘하는데, 여러분들이 기존의 관념을 가지고 살던 것이 아마 정반대가 되지 않을까? 저는 화엄경의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이게 화엄경이 잘못됐나? 제가 잘못됐나? 저는 감히 강의 문자 법사라서 강의만 하고 사는 사람이 돼서 시원치 않은데 항상 이렇게 얘기합니다. 책이 잘못되면 잘못됐지, 내가 잘못되지는 않았다. 사람이 어째 잘못되나, 책은 오자, 탈자 있을 수 있다. 자 한번 읽어봅시다.

 

못난 사람에게 잘해라.

 

못된 사람한테 잘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못한다. 화엄경에는 이렇게 얘기해 놓습니다. 이게 잔치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 마하살이

이와 같이 선근을 닦을 적에

악한 중생에게

 

악하고 아주 못된 데바닷다같은 중생에게, 데바닷다가 부처님한테 많이 되받아 가지고 데바닷다가 됐잖아. 지옥 가서는 이름을 바꿨죠. 어떻게 바꿨어요? 죄 받았다, 죄받았다로 바꿨죠. 고달프고 악하고 내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달프고 싫은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또한 버릴 생각도 일으키지 아니한다.

 

 

설사 세간에 가득한 모든 중생이

은혜를 갚을 줄 모르더라도

 

아주 쪽제비처럼 여우처럼 얍삽하게 살더라도,

 

 

                                         보살 수행을 하는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혐오하고 원망하고 한탄하는 마음이 없고

잠깐이라도 나한테 은혜 갚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으며

다만 그 못난 중생들의 한량없는

고통을 멸해주려고 해야 한다.

 

 

어렵겠죠. 이거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없어요. 우리는 일본한테 침탈을 당하고, 중국한테도 침탈을 당한 역사가 많아요. 그리고 마을에 있어 보면, 이웃집에 못된 짓 하는 사람들도 많거든. 정말 못된 사람들이잖아요. 그죠? 그보다 더 못된 사람이, 자기 집안의 형제끼리 못된 짓 하면 더 못 됐겠죠. 우리가 그러고 있잖아요. 우리는, 일본이나 중국에 부끄러워해야 될 일이, 남북이 서로 가슴에 총을 겨누고 있어요, 형제의 가슴에. 이거는 한국 사람이 아무리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 해도, 이 수륙대재 이런 데서 우리가 돌아보면은 참 늘 가슴 아픈 얘기야. 나라가 뺏겨도 좋다 이거야. 근데 집안이 풍지박살 나도 좋은데, 형제끼리 제발 싸우지는 말아야 된다. 요새 형제끼리 안 싸우나, 부모 자식도 싸우고, 야단 법석이잖아요. 그렇죠? 엊그제 보니까 2살 때 자식을 버리고 갔다가, 여러분들 다 아는 뉴스죠, 엄마가 돈 찾으러 왔대요. 아들은 그 배가 전복돼서 물에 빠져 죽고. 그러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두 살 때 아이 버렸는데 그것도 못 찾으러 올까? 화엄경을 하면 이제 그런 소견이 생깁니다. 그래 그 사람이 돈 찾으러 와야지.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겠어요? 내가 버렸는데 양심에 찔려서 찾겠어요? 그러니까 수륙대재 하지. 긴병에 효자 있다 없다? (없다) 누가 그래요. 긴병에 효자 있다. 따라해보세요. 그러니까 병이 오래오래 가다 보면은 그 자식이 효자인지 불효자인지 알 수 있어요. 적당한 효자들은 오래되면 도금이 다 벗겨져. 그러니까 진짜 효자는 천년이 되든 만년이 되든 부모님이 앞에 누워 계시든 어떻든지 간에 싫어할까요, 안 싫어할까요? 싫어하지 않아요. 그런데 가짜 효자는 조금 길게 되면 어때요? 긴 병에 효자있다. 이게 이제 수륙대재 법문 듣는 느낌이고,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야 된다 이거예요. 긴 병에 효자있다. 입수에 장단이라. 물에 들어가 보면 누가 긴지 짧은지 표가 나는 거예요. 물에 담그기 전에는 쭉쟁이인지 알맹이인지 잘 분간이 안 가. 볍씨를 물에 딱 넣어보면은 가라앉는 게 있고 뜨는 게 있어요. 내일 모레 이제 백로가 다가오는데 찬바람 불 때 고개를 못 숙이면 그건 쭉쟁이 되고 마는 것이라. 이 책에 있어요오늘 여러분들하고 이 책을 한 번도 못 하고 이제 법문 시간은 다 될 것 같아요. 어쩌겠나 할 수 없어요. 연속극도 재미있을 때 끝나버려야 돼요. 복전 얘기는 한마디도 못 하고. 긴병에 효자 있다.

        그리고 또 저기 수륙대재 하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된다는 걸 이제 제가 전해드리는 겁니다. 그죠? 수륙대재. 네가 내 눈에 눈물 내면 네 눈에는 감사의 눈물이 쏟아지게 내가 너에게 잘하겠다. 이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남의 피눈물 이야기는 그거는 생멸법이지. 우리 부처님의 분상에서는 그런 얘기 안 한다고. 법화경에서 부처님께서 부처님이 되실 수밖에 없던 얘기가 있잖아요. 우리는 공공의 적 데바닷다, 부처님을 독살하려고 달려들고, 출가하기 전부터, 출가하고 평생토록 부처님을 고생시키고 애먹였던 데바닷다를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런 소리하지 마라. 내가 전생에 불교를 공부하고자 할 때 신의상좌변삼천(身爲床座遍三千)이라. 그 게송이 거기서 나온 거 아니에요. 내가 데바닷다한테 불법을 얻어 들어가지고 내가 성불을 했다. 데바닷다는 나의 전생에 스승이었다.” 데바닷다를 포용 못하면 부처님이 될 수가 없죠. 다른 종교지만은 유다를 포용 못하면 예수가 될 수 없는 것이라. 우리는 그래서 중생으로 살 수밖에 없는 거에요. 조금만 미우면은 그 사람 전화번호 차단시켜버린다. 그래서 남들이 못된 짓하고 도둑질하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래 니 소임이다. 미사일 많이 쏘라. 이놈아. 동족에게 가슴에 그냥 상처를 남겨라. 니 소임이다 이러고 넘어가야지, 그걸 갖다 싸울 수는 없다. 내 가슴에 못을 박으면 나는 그대 가슴에 꽃다발을 안긴다. 못을 박기는, 또 누가 대못을 박고. 그런 그 망발을 하고. 그래서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화장하지 않아도 너무나 아름다운, 참 천진난만한 소녀 같은 그런 얼굴이 여러분들 모습에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하는 거예요. 그걸 갖다 유마경에는 화중생연(火中生蓮)이라, 버글버글 끓는 용광로에서 연꽃이 필 것이다 이래요.

       그러면 오늘 여러분들께 소개시켜드릴 것은, 우리는 이 수륙대재의 공양을 올리는데 어떻게 올려야 되냐. 보현행원품 중에서 제9번째 항순중생(恒順衆生)을 여러분들께 소개시켜 드립니다. 오늘 다른 의식이 너무 좋은 게 많은 관계로 이거는 그냥 간식처럼 제 법문을 하고 말겠습니다.

        185페이지 한번 펴보세요. 이게 화엄경의 전체 주제입니다. 화엄경이라든지 우리 인생살이의 전체 주제는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이라.> 이것은 이제 60화엄경 야마천궁게찬품에 나오는 말씀인데, 여러분들 흔히 잘 아는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若人慾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라는 얘기 있죠. 그것이 바로 일체유심조 얘기. 화엄경의 주제는 뭐냐. 이 수륙대재의 주제가 뭐냐. 심불급, 마음과 부처와 중생과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시삼무차별이다. 전부 차별이 없다. 이게 무차별 평등 수륙 대재다. 그럼 누구한테 잘해야 돼요? 부처님한테는 잘할 필요가 없어요. 부처님도 우리한테 고맙게 생각하셔야 돼요. 부처님은 너무나 잘 나셔가지고 중생들을 위한 자비로운 마음이 펼쳐지지만, 우리처럼 악독한 중생들끼리 모여가지고 수륙대재, 이 말법 시대에 법문한다는 거는 기적과 가까운 일이에요. 그렇죠? 21세기의 기적이에요 기적. 그리고 특히나 나같이 말 안 듣는 사람이 삭발하고 가사 입고 부처님을 따라간다는 거는 참 부처님도 고맙게 생각하셔야 돼. 우리가 안 하면 당신은 어쩔 거예요, 혼자서.

         그래서 이 항순중생이라고 하는 품이 있어요. 여기에서 보면 이제까지 여러분들이 기존 상식으로 가지고 계시던 얘기가 정반대로 나옵니다.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구절을 읽겠습니다.

 

항순중생, 항상 중생을 따라서 잘 맞춰줘라.

 

        선남자여, 항상 중생의 뜻에 수순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온 법계 허공계 시방세계의 중생이 여러 가지 차별이 있어서 알에서 나고(卵生) -알에서 나는 사람들은 앞뒤 꽉 막혀 미혹하다 그랬어요. 육조 혜능 스님께서.-, 태에서 나고(胎生) - 태에서 나온 거 탯줄이 연결된 사람 정이 많아 끈끈해. 가벼운 놈은 날아가지고 새가 되고. 새가 됐는데 그 새가 된 놈은 하도 미혹하기 때문에 새대가리라 하잖아요. 새가 돼도 우리가 저 비둘기처럼 그런 새가 돼야지, 닭처럼 되면 안 돼. 닭이 한 번 날을 수 있나요? 절대 날 수 없어요. 일성한안 여장천(一聲寒雁礪長天)이라, 기러기 한 마리 저기 높이 날아가는 거 보면은 사람의 뼛속까지 비워야 날 수 있구나. 이런 자유를 느껴야 돼. 닭은 똥집이 무거워서 타조하고 날지를 못해. 우리 얘기입니다. 한 세상 사람 몸 받아서 살다 습기로 태어난 사람(濕生)은 삿되고, 변화하여 나는 사람(化生) 이거는 주로 하는 직업이 보이스피싱이나 하고 이런대. 그리고 태난습화 또한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을 의지하여 살기도 하고, 허공을 의지하여 살기도 하고, 풀숲(草木)을 의지해서 살기도 하느니라.

        또한 어디 하는지 아십니까? 이게 오늘 주제예요. 또한 여러 가지 종류(生類)와 여러 가지 몸(色身)과 여러 가지 형상(形狀)과 여러 가지 모양(相貌)과 여러 가지 수명(壽量)과 여러 가지 종족(族類)과 여러 가지 이름(名號)과 여러 가지 성질(心性)과 여러 가지 소견(知見)과 여러 가지 욕망(欲樂)과 여러 가지 뜻(意行)과 여러 가지 위의(威儀)와 여러 가지 의복(衣服)과 여러 가지 음식(飮食)으로 여러 가지의 시골 마을(村營聚落)과 도시의 궁전(城邑宮殿)에 사는 이들이니라. 중생의 모양이 각양각색이죠, 각양각색이라.

        내지 천신(天神)과 용()과 팔부신중(八部神衆)과 인비인(人非人) 등과 발이 없는 것(無足)과 두 발 가진 것(二足)과 네 발 가진 것(四足)과 여러 발 가진 것(多足) 또는 몸이 있는 것(有色)과 몸이 없는 것(無色)과 생각이 있는 것(有想)과 생각이 없는 것(無想)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중생들(非有想非無想), 이와 같은 갖가지의 중생 종류가 내가 모두 그들에게 수순하여 갖가지로 섬기고 갖가지로 공양하기를, 누구와 같이?, 부모와 같이 공경하고 스승과 아라한과 내지 부처님이나 다름이 없이 받드는 것이니라.

 

        여기서 부모를 사실은 은전이라 그래요. 복전 중에 세 복전이 있어요. 부처님이나 불법승 삼보나 성인이나 아라한이나 이런 분들은 복전 중에도 경전이라 그래. 공경하면은 나에게 무량한 공덕이 떨어진다고 경전. 그리고 아주 가난하고 인물도 찌찌불하게 못 나고, 가난하든지 병 들든지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이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다 보면 비전이잖아요. 그죠? 그걸 자비를 베풀어준 비전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그 자비를 베풀어주고, 없는 사람을 거둬주고 하다 보면 또 나한테 무량한 공덕이 생길 가능성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비전. 은전은 반드시 갚아야 될 스승이나 부모님의 은혜를 은전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여기 나오는 대목들이 다 오늘 주제 그런 것들이에요. 부모와 같이 공경하고 스승과 아라한 내지는 부처님이나 다름없이 받드는 것이니라. 누구를? 중생을 부처님처럼.

        그래서 우리가 사시마지 예불 올릴 때마다 하는 대목이 있어요. 이 대목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하는 대목. <어제병고 위작양의 어실도자 시기정로 어암야중 위작광명 어빈궁자 영득복장 보살 여시 평등요익 일체중생(於諸病苦 爲作良醫 於失道者 示其正路 於暗夜中 爲作光明 於貧窮者 令得伏藏 菩薩 如是平等饒益 一切衆生)>, 이것이 바로 오늘 수륙대재에 해당하는 무차 법회입니다. 뜻이 어떠냐. 스님들은 매일 하니까 다 훤하게 아시는데, 병든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되어주고,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바른 길을 보여주고, 캄캄한 밤에는 빛이 되어주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묻혀 있는 로또를 안겨준다. 보배를 얻게 하면서 이렇게 보살이 일체 중생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항순 생이고 수륙대재의 무차 법회다 이 말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경전에 이와 같이 정확하게 나와있어요. 화엄경에 주제는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마음이 차별이 없다. 이것이고 그 차별 없는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뭘 해야 되느냐. 실천 공덕으로서는 보현행원을 해야 된다. 보현행원 중에서도 반드시 우리가 실천해야 될 것은 항순중생편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시마지 올릴 때마다 <어제병고 위작양의 어실도자 시기정로 어암야중 위작광명 어빈궁자 영득복장 평등요익 일체중생>이라고 햇중때부터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달달달달달달달달 외는 거야. 여러분들도 이제 다 들었잖아요. 그렇죠. 그럼 그거 한 번 들으면 성불을 하고, 마음을 부처님과 같이 써야 되는데 왜 안 되느냐. 마음은 비록 똑같다고 할지라도 무명 번뇌에 찌들린 업장의 두께에 따라가지고 얇은 사람, 두꺼운 사람이 있어서 쉽게 녹는 사람이 있고, 안 녹는 사람이 있다 이거야. 어떤 사람은 금방 나물 데치듯이 되는 사람이 있지만은, 어떤 놈은 쇳덩거리 같아가지고 용광로에 집어넣어도 겨우 녹는다고. 그런 분들은 저한테 오면 제가 바로 한 3일 만에 정리해 줍니다. 조타 3천 모타 800. 아침에 3천대 두드려 패고, 모타 800, 저녁에 800대 두드려 패라고 조주스님이 그리 말씀하셨거든. 미친 개는 뭐가 약이다? 몽둥이가 약이거든. 전도몽상이 많은 사람은 두들겨 패가지고 고쳐야 돼. 말로 해서 안 돼요. 왜냐하면은 만약 보살이, 거기는 같이 읽겠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이 만약 중생을 수순하게 되면 곧 모든 부처님을 수순하여 공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만약 중생을 존중하여 섬기면 곧 부처님을 존중하여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또 만약 중생을 기쁘게 하면 곧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부처님은 자비하신 마음으로 바탕을 삼으시기 때문이니라. 중생으로 인하여 큰 자비심을 일으키고 자비로 인하여 보리심을 내고 보리심으로 인하여 정각을 이루느니라.

 

        자비심이 있어야 사람이 삼매에 들어갑니다. 최소한 제 경험으로 볼 때는. 자비심이 없는 무자비한 놈은 절대 삼매에 들어갈 수 없어요. 탐진치가 많은 사람들은. 고행해서 삼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거는 빼짝 마른 산매고, 빼짝 마른 삼매 볶은 종자 같다가, 종자 볶으면 싹이 안 나잖아요. 보살 삼매는 자비심으로 간대. 자비심. 그걸 가장 큰 자비가 사자빈신 삼매라고 그렇게 얘기해요. 중생으로 인하여 무엇을 일으킨다, 큰 자비심을 중생이 비전이라고 했잖아요. 그죠? 부처님처럼 모시니까 또 경전이고. 그렇죠? 그렇게 복을 짓는다고. 그래 자비로 인하여 뭐가 나느냐. 보리심을 낸다. 이세간품이라고 하는 화엄경에 이래 나옵니다. 망실 보리심 하면은 보리심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시위마업이니라(忘失菩提心 是為魔業), 그것은 전부 마군의 업이라. 우리가 참선를 하든지 경전 공부를 하든지 수륙대재를 하든지 뭘 일으켜야 된다? 발 보리심 없이 이걸 하면 그거는 마군의 업이다 이 말이야. 이해가세요? 밥을 먹어도 무엇을? 발보리심으로 해야 된다. 이세간품에 분명히 그 10가지 마업 중에 첫 번째가 그거예요. 보리심 빼면은 마업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저는 그거를 세 글자로 만들어 놨어요. 여러분 따라 해보세요. 보빼시. 보리심 빼면 시체다. 간단하죠. 보빼시. 여기 경전에 나와도 전달할 길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저는 강연을 하는 게 아니고, 어디 공연을 하는 편인데, 교수법 중에 제일 좋은 교수법이 뭔가 보니까 학문적으로 나와 있어요. 웃으면서 전달해야 된다. 그런데 여러분들 웃고 농담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농담 속에는 항상 전하는 메시지가 아마 있을 거예요. 그죠? 보빼시. 보리심으로 인하여 뭘 이룬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 발보리심으로 인해.

 

        비유하자면 마치 넓은 모래사장에 서 있는 큰 나무의 뿌리가 물을 만나면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모두 무성한 것 같아서, 나고 죽는 생멸의 광야의 보리수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지금 우리가 생명의 광야에 내몰려 있는 보리수 아닙니까, 우리가 전부, 그렇죠. 오늘 지금 복전 이런 경전 비전 얘기해야 되는데 이전이 나오네. 뻘밭. 중생들이 제일 국회나 이렇게 가면은 이전투구라고 있어요. 이전이 있어요. 이전. 뻘밭 있잖아요. 뻘밭. 뻘밭도 있고, 모래밭도 있고, 황토밭도 있고. 제가 이렇게 오늘 진관사 와서 앞에 이 산에 보니까 소나무가 암전에 살대. 돌밭에 살더라고. 저 소나무는 돌의 뿌리를 박고 살기 때문에 몇 년 가물어도 안 죽겠구나. 부드러운 흙에 사는 거는 물이 없으면 죽겠지만은, 처음에 단단한 바위에 뿌리 박고 사는 나무가 물이 없다고 그 가뭄을 탓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잖아요. 그죠? 여러분들도 어쨌든지 그러니까 해바라기는 햇빛을 받아 피고 달맞이꽃은 달빛을 받아 피지만, 산삼꽃은 그 햇빛 달빛에 안 피거든. 별빛을 모아서 핀다고, 별빛을. 수행자는 그렇거든. 그 아스라한 별빛을 모아서 자기의 꽃을 피우기 때문에 약이 되는 거예요. 시시한 해바라기 정도 가지고 안 된다. 생멸의 탐진치에 따라가는 거, 그 색성향미촉법 따라가는 거 시원찮고, 말초 신경 그거 자꾸 따라가면은 그 업장 안 녹아요. 학도지문 별무기특 지요세척근진하 무량겁래업식종자(學道之門 別無奇特 只要洗滌根塵下 無量劫來業識種子), 도를 닦는 데는 별도로 특별한 방법은 없다. 참선이고 염불이고 방법이 없다.

제가 오늘 왜 신이 나느냐. 회주스님한테 말씀을 듣자하니, 76년도에 자운 노스님께서 이렇게 수륙대재를 크게 이제 번창해서 개설하시고, 그때 자운 노스님하고 죽마고우처럼 양날개처럼 늘 같이 다니던, 그 그림자와, 바늘과 실처럼 늘 따라다니던 분이 우리 노스님이라. 노스님이 여기 와서 70년대 첫 법주를 하셨다는 거야. 첫 법주. 저는 노스님의 흔적도 없는 자취가 남들은 그렇게 보이지만은, 우리 노스님 말씀 아까 들었을 때 혼자서 울 뻔했어요, 지금도 눈물이 막 나잖아요. 저 이렇게 약해요. 마음이. 경전을 읽을 때는 또 감동할 준비를 해야 돼요. 여러분 금강경 보다가 눈물이 많이 나잖아요. 금강경 읽다 우는 중은 한 번도 못 봤다, 수보리만 울어. 수보리만. 수보리만 울지, 아무도 안 울어. 그냥 경전을 읽을 때는 어떻게 감동할 준비를 해야해요. 아까 뭐 빼짝 마른 돌처럼 니가 어쩌나 보자하지 말고. 조금만 더 합시다.

 

일체중생은 뿌리가 되고 부처님과 보살들은 꽃과 열매가 되어 자비의 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의 지혜의 꽃과 열매를 이루느니라.

 

일체 중생은 뿌리다. 이거 줄 열 번 그어야 해요. 우리가 얼핏 생각하면 부처님이 뿌리라 하잖아요. 아니다. 누가 뿌리에요? 일체 중생이 뿌리고, 부처님과 보살들은 그 뿌리에 달려있는 꽃과 열매다. 보살들은 바라밀의 꽃이고 부처님은 두 개의 복과 지혜의 열매다 이 말이야. 자비의 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면은 누가 되느냐.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지혜의 꽃과 열매를 이루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들은 자비의 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면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보리는 중생에게 달렸으니 중생이 없으면 모든 보살이 마침내 가장 훌륭한 정각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보리, 깨달음이라고 하는 거는 어디에 달려 있냐. 중생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대. 아까 처음에 읽었던 건 뭐죠? 악한 중생이라도 나를 깨닫게 해주는 길이 있다. 그래서 미운 사람한테 뭐 준다? 떡 하나 더 준다 왜? 그럼 떡 되어보라고. 그런 심보를 가지면 안 되겠죠. 중생이 없으면 모든 보살이 마침내 가장 훌륭한 정각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조금 시간이 지났어요.

 

       선남자여 그대는 이 이치를 이렇게 알아라. ‘중생에게 마음을 평등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오늘 평등 수륙대재가 이제 이루어지는 거죠. 그래서 우리 조상도 더불어서 천도 되지 않겠나, 내 자신이 우선 좋아지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원만한 자비를 성취하고, 자비심으로 중생을 수순함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함을 성취하는 것이다라고 알아야 할 것이니라.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수순하나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도 내가 중생을 수순하는 마음은 다함이 없느니라. 염념이 계속하여 잠깐도 쉬지 않건만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

 

 

태양이 휴가 가는 거 보셨어요? 없어요. 마지막으로 회향게하고 오늘 법회가 앞으로 7·7 49재 동안 큰 스님들 잘 모시고 회향 잘 되기를 바라고, 여러분들도 이 수륙대재를 통해서 또 부처님의 불제자로서 더욱더 공고한 신신공덕의 원력이 자라나기를 바라겠습니다.
         마지막 회향게(廻向偈) 하면서 오늘 입재 법문을 가늠합니다.

아차보현수승행(我此普賢殊勝行)

무변승복개회향(無邊勝福皆迴向)

보원침익제중생(普願沈溺諸眾生)

속왕무량광불찰(速往無量光佛剎)

 

 

화엄경에서 제일 마지막 게송이 이겁니다.
        그러니까 원래 80권 화엄경의 마지막 두 번째 게송은

찰진심념가수지(剎塵心念可數知)

대해중수가음진(大海中水可飲盡)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

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

이지만은, 40권 화엄경까지 볼 때 입법계품의 제일 마지막 게송이 이 게송이다. 이것이 이제 오늘 수륙대재에 딱 맞는 법문인데,

 

나의 이러한 보현보살의 거룩한 행과 그지없는 행복한 복을 모두 다 내 있는 복을 다 회향해가지고 진정으로 저 삼계고해 헤매는 참 못난, 저 못된 중생들이 아미타불 극락세계에 다 왕생하기를 바라나이다.

 

이래서 오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