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륙재 공덕의 복전(福田)-
반갑습니다. 오늘이 진관사 선망 부모 및 조상 영가 천도와 가정 행복 기원 진관사 국행수륙대재 입재 날입니다. 올해는 또 이제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지 10주년을 맞이해서, 더욱더 회주 스님을 위시해서 주지 스님 이하 사중 스님들께서, 또 신도님들께서 1년 내내 이렇게 수륙대재를 장엄하게 준비하신 것 같습니다.
펼쳐보면은 한 글자도 없지만은,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나,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라.
못난 사람에게 잘 해라.
수륙대재에서 우리 조상을 오늘 어떻게 천도시킬 것인가. 조상은 놔두고라도 나부터 어떻게 천도될건가. 학교 규칙대로 살지 말고 조금 융통성을 발휘해서 살아야 된다. 융통성을 발휘하는데, 여러분들이 기존의 관념을 가지고 살던 것이 아마 정반대가 되지 않을까? 저는 화엄경의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이게 화엄경이 잘못됐나? 제가 잘못됐나? 저는 감히 강의 문자 법사라서 강의만 하고 사는 사람이 돼서 시원치 않은데 항상 이렇게 얘기합니다. 책이 잘못되면 잘못됐지, 내가 잘못되지는 않았다. 사람이 어째 잘못되나, 책은 오자, 탈자 있을 수 있다. 자 한번 읽어봅시다.
못난 사람에게 잘해라.
불자들이여,
보살 마하살이
이와 같이 선근을 닦을 적에
악한 중생에게
악하고 아주 못된 데바닷다같은 중생에게, 데바닷다가 부처님한테 많이 되받아 가지고 데바닷다가 됐잖아. 지옥 가서는 이름을 바꿨죠. 어떻게 바꿨어요? 죄 받았다, 죄받았다로 바꿨죠. 고달프고 악하고 내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달프고 싫은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또한 버릴 생각도 일으키지 아니한다.
설사 세간에 가득한 모든 중생이
은혜를 갚을 줄 모르더라도
아주 쪽제비처럼 여우처럼 얍삽하게 살더라도,
잠깐이라도 나한테 은혜 갚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으며
다만 그 못난 중생들의 한량없는
고통을 멸해주려고 해야 한다.
그리고 또 저기 수륙대재 하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된다는 걸 이제 제가 전해드리는 겁니다. 그죠? 수륙대재. 네가 내 눈에 눈물 내면 네 눈에는 감사의 눈물이 쏟아지게 내가 너에게 잘하겠다. 이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남의 피눈물 이야기는 그거는 생멸법이지. 우리 부처님의 분상에서는 그런 얘기 안 한다고. 법화경에서 부처님께서 부처님이 되실 수밖에 없던 얘기가 있잖아요. 우리는 공공의 적 데바닷다, 부처님을 독살하려고 달려들고, 출가하기 전부터, 출가하고 평생토록 부처님을 고생시키고 애먹였던 데바닷다를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런 소리하지 마라. 내가 전생에 불교를 공부하고자 할 때 신의상좌변삼천(身爲床座遍三千)이라. 그 게송이 거기서 나온 거 아니에요. 내가 데바닷다한테 불법을 얻어 들어가지고 내가 성불을 했다. 데바닷다는 나의 전생에 스승이었다.” 데바닷다를 포용 못하면 부처님이 될 수가 없죠. 다른 종교지만은 유다를 포용 못하면 예수가 될 수 없는 것이라. 우리는 그래서 중생으로 살 수밖에 없는 거에요. 조금만 미우면은 그 사람 전화번호 차단시켜버린다. 그래서 남들이 못된 짓하고 도둑질하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래 니 소임이다. 미사일 많이 쏘라. 이놈아. 동족에게 가슴에 그냥 상처를 남겨라. 니 소임이다 이러고 넘어가야지, 그걸 갖다 싸울 수는 없다. 내 가슴에 못을 박으면 나는 그대 가슴에 꽃다발을 안긴다. 못을 박기는, 또 누가 대못을 박고. 그런 그 망발을 하고. 그래서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화장하지 않아도 너무나 아름다운, 참 천진난만한 소녀 같은 그런 얼굴이 여러분들 모습에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하는 거예요. 그걸 갖다 유마경에는 화중생연(火中生蓮)이라, 버글버글 끓는 용광로에서 연꽃이 필 것이다 이래요.
그러면 오늘 여러분들께 소개시켜드릴 것은, 우리는 이 수륙대재의 공양을 올리는데 어떻게 올려야 되냐. 보현행원품 중에서 제9번째 항순중생(恒順衆生)을 여러분들께 소개시켜 드립니다. 오늘 다른 의식이 너무 좋은 게 많은 관계로 이거는 그냥 간식처럼 제 법문을 하고 말겠습니다.
185페이지 한번 펴보세요. 이게 화엄경의 전체 주제입니다. 화엄경이라든지 우리 인생살이의 전체 주제는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이라.> 이것은 이제 60화엄경 야마천궁게찬품에 나오는 말씀인데, 여러분들 흔히 잘 아는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若人慾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라는 얘기 있죠. 그것이 바로 일체유심조 얘기. 화엄경의 주제는 뭐냐. 이 수륙대재의 주제가 뭐냐. 심불급, 마음과 부처와 중생과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시삼무차별이다. 전부 차별이 없다. 이게 무차별 평등 수륙 대재다. 그럼 누구한테 잘해야 돼요? 부처님한테는 잘할 필요가 없어요. 부처님도 우리한테 고맙게 생각하셔야 돼요. 부처님은 너무나 잘 나셔가지고 중생들을 위한 자비로운 마음이 펼쳐지지만, 우리처럼 악독한 중생들끼리 모여가지고 수륙대재, 이 말법 시대에 법문한다는 거는 기적과 가까운 일이에요. 그렇죠? 21세기의 기적이에요 기적. 그리고 특히나 나같이 말 안 듣는 사람이 삭발하고 가사 입고 부처님을 따라간다는 거는 참 부처님도 고맙게 생각하셔야 돼. 우리가 안 하면 당신은 어쩔 거예요, 혼자서.
그래서 이 항순중생이라고 하는 품이 있어요. 여기에서 보면 이제까지 여러분들이 기존 상식으로 가지고 계시던 얘기가 정반대로 나옵니다.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구절을 읽겠습니다.
항순중생, 항상 중생을 따라서 잘 맞춰줘라.
또한 어디 하는지 아십니까? 이게 오늘 주제예요. 또한 여러 가지 종류(生類)와 여러 가지 몸(色身)과 여러 가지 형상(形狀)과 여러 가지 모양(相貌)과 여러 가지 수명(壽量)과 여러 가지 종족(族類)과 여러 가지 이름(名號)과 여러 가지 성질(心性)과 여러 가지 소견(知見)과 여러 가지 욕망(欲樂)과 여러 가지 뜻(意行)과 여러 가지 위의(威儀)와 여러 가지 의복(衣服)과 여러 가지 음식(飮食)으로 여러 가지의 시골 마을(村營聚落)과 도시의 궁전(城邑宮殿)에 사는 이들이니라. 중생의 모양이 각양각색이죠, 각양각색이라.
내지 천신(天神)과 용(龍)과 팔부신중(八部神衆)과 인비인(人非人) 등과 발이 없는 것(無足)과 두 발 가진 것(二足)과 네 발 가진 것(四足)과 여러 발 가진 것(多足) 또는 몸이 있는 것(有色)과 몸이 없는 것(無色)과 생각이 있는 것(有想)과 생각이 없는 것(無想)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중생들(非有想非無想), 이와 같은 갖가지의 중생 종류가 내가 모두 그들에게 수순하여 갖가지로 섬기고 갖가지로 공양하기를, 누구와 같이?, 부모와 같이 공경하고 스승과 아라한과 내지 부처님이나 다름이 없이 받드는 것이니라.
여기서 부모를 사실은 은전이라 그래요. 복전 중에 세 복전이 있어요. 부처님이나 불법승 삼보나 성인이나 아라한이나 이런 분들은 복전 중에도 경전이라 그래. 공경하면은 나에게 무량한 공덕이 떨어진다고 경전. 그리고 아주 가난하고 인물도 찌찌불하게 못 나고, 가난하든지 병 들든지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이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다 보면 비전이잖아요. 그죠? 그걸 자비를 베풀어준 비전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그 자비를 베풀어주고, 없는 사람을 거둬주고 하다 보면 또 나한테 무량한 공덕이 생길 가능성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비전. 은전은 반드시 갚아야 될 스승이나 부모님의 은혜를 은전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여기 나오는 대목들이 다 오늘 주제 그런 것들이에요. 부모와 같이 공경하고 스승과 아라한 내지는 부처님이나 다름없이 받드는 것이니라. 누구를? 중생을 부처님처럼.
그래서 우리가 사시마지 예불 올릴 때마다 하는 대목이 있어요. 이 대목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하는 대목. <어제병고 위작양의 어실도자 시기정로 어암야중 위작광명 어빈궁자 영득복장 보살 여시 평등요익 일체중생(於諸病苦 爲作良醫 於失道者 示其正路 於暗夜中 爲作光明 於貧窮者 令得伏藏 菩薩 如是平等饒益 一切衆生)>, 이것이 바로 오늘 수륙대재에 해당하는 무차 법회입니다. 뜻이 어떠냐. 스님들은 매일 하니까 다 훤하게 아시는데, 병든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되어주고,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바른 길을 보여주고, 캄캄한 밤에는 빛이 되어주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묻혀 있는 로또를 안겨준다. 보배를 얻게 하면서 이렇게 보살이 일체 중생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항순 생이고 수륙대재의 무차 법회다 이 말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경전에 이와 같이 정확하게 나와있어요. 화엄경에 주제는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마음이 차별이 없다. 이것이고 그 차별 없는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뭘 해야 되느냐. 실천 공덕으로서는 보현행원을 해야 된다. 보현행원 중에서도 반드시 우리가 실천해야 될 것은 항순중생편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시마지 올릴 때마다 <어제병고 위작양의 어실도자 시기정로 어암야중 위작광명 어빈궁자 영득복장 평등요익 일체중생>이라고 햇중때부터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달달달달달달달달 외는 거야. 여러분들도 이제 다 들었잖아요. 그렇죠. 그럼 그거 한 번 들으면 성불을 하고, 마음을 부처님과 같이 써야 되는데 왜 안 되느냐. 마음은 비록 똑같다고 할지라도 무명 번뇌에 찌들린 업장의 두께에 따라가지고 얇은 사람, 두꺼운 사람이 있어서 쉽게 녹는 사람이 있고, 안 녹는 사람이 있다 이거야. 어떤 사람은 금방 나물 데치듯이 되는 사람이 있지만은, 어떤 놈은 쇳덩거리 같아가지고 용광로에 집어넣어도 겨우 녹는다고. 그런 분들은 저한테 오면 제가 바로 한 3일 만에 정리해 줍니다. 조타 3천 모타 800. 아침에 3천대 두드려 패고, 모타 800, 저녁에 800대 두드려 패라고 조주스님이 그리 말씀하셨거든. 미친 개는 뭐가 약이다? 몽둥이가 약이거든. 전도몽상이 많은 사람은 두들겨 패가지고 고쳐야 돼. 말로 해서 안 돼요. 왜냐하면은 만약 보살이, 거기는 같이 읽겠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이 만약 중생을 수순하게 되면 곧 모든 부처님을 수순하여 공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만약 중생을 존중하여 섬기면 곧 부처님을 존중하여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또 만약 중생을 기쁘게 하면 곧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부처님은 자비하신 마음으로 바탕을 삼으시기 때문이니라. 중생으로 인하여 큰 자비심을 일으키고 자비로 인하여 보리심을 내고 보리심으로 인하여 정각을 이루느니라.
자비심이 있어야 사람이 삼매에 들어갑니다. 최소한 제 경험으로 볼 때는. 자비심이 없는 무자비한 놈은 절대 삼매에 들어갈 수 없어요. 탐진치가 많은 사람들은. 고행해서 삼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거는 빼짝 마른 산매고, 빼짝 마른 삼매 볶은 종자 같다가, 종자 볶으면 싹이 안 나잖아요. 보살 삼매는 자비심으로 간대. 자비심. 그걸 가장 큰 자비가 사자빈신 삼매라고 그렇게 얘기해요. 중생으로 인하여 무엇을 일으킨다, 큰 자비심을 중생이 비전이라고 했잖아요. 그죠? 부처님처럼 모시니까 또 경전이고. 그렇죠? 그렇게 복을 짓는다고. 그래 자비로 인하여 뭐가 나느냐. 보리심을 낸다. 이세간품이라고 하는 화엄경에 이래 나옵니다. 망실 보리심 하면은 보리심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시위마업이니라(忘失菩提心 是為魔業), 그것은 전부 마군의 업이라. 우리가 참선를 하든지 경전 공부를 하든지 수륙대재를 하든지 뭘 일으켜야 된다? 발 보리심 없이 이걸 하면 그거는 마군의 업이다 이 말이야. 이해가세요? 밥을 먹어도 무엇을? 발보리심으로 해야 된다. 이세간품에 분명히 그 10가지 마업 중에 첫 번째가 그거예요. 보리심 빼면은 마업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저는 그거를 세 글자로 만들어 놨어요. 여러분 따라 해보세요. 보빼시. 보리심 빼면 시체다. 간단하죠. 보빼시. 여기 경전에 나와도 전달할 길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저는 강연을 하는 게 아니고, 어디 공연을 하는 편인데, 교수법 중에 제일 좋은 교수법이 뭔가 보니까 학문적으로 나와 있어요. 웃으면서 전달해야 된다. 그런데 여러분들 웃고 농담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농담 속에는 항상 전하는 메시지가 아마 있을 거예요. 그죠? 보빼시. 보리심으로 인하여 뭘 이룬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 발보리심으로 인해.
지금 우리가 생명의 광야에 내몰려 있는 보리수 아닙니까, 우리가 전부, 그렇죠. 오늘 지금 복전 이런 경전 비전 얘기해야 되는데 이전이 나오네. 뻘밭. 중생들이 제일 국회나 이렇게 가면은 이전투구라고 있어요. 이전이 있어요. 이전. 뻘밭 있잖아요. 뻘밭. 뻘밭도 있고, 모래밭도 있고, 황토밭도 있고. 제가 이렇게 오늘 진관사 와서 앞에 이 산에 보니까 소나무가 암전에 살대. 돌밭에 살더라고. 저 소나무는 돌의 뿌리를 박고 살기 때문에 몇 년 가물어도 안 죽겠구나. 부드러운 흙에 사는 거는 물이 없으면 죽겠지만은, 처음에 단단한 바위에 뿌리 박고 사는 나무가 물이 없다고 그 가뭄을 탓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잖아요. 그죠? 여러분들도 어쨌든지 그러니까 해바라기는 햇빛을 받아 피고 달맞이꽃은 달빛을 받아 피지만, 산삼꽃은 그 햇빛 달빛에 안 피거든. 별빛을 모아서 핀다고, 별빛을. 수행자는 그렇거든. 그 아스라한 별빛을 모아서 자기의 꽃을 피우기 때문에 약이 되는 거예요. 시시한 해바라기 정도 가지고 안 된다. 생멸의 탐진치에 따라가는 거, 그 색성향미촉법 따라가는 거 시원찮고, 말초 신경 그거 자꾸 따라가면은 그 업장 안 녹아요. 학도지문 별무기특 지요세척근진하 무량겁래업식종자(學道之門 別無奇特 只要洗滌根塵下 無量劫來業識種子)라, 도를 닦는 데는 별도로 특별한 방법은 없다. 참선이고 염불이고 방법이 없다.
제가 오늘 왜 신이 나느냐. 회주스님한테 말씀을 듣자하니, 76년도에 자운 노스님께서 이렇게 수륙대재를 크게 이제 번창해서 개설하시고, 그때 자운 노스님하고 죽마고우처럼 양날개처럼 늘 같이 다니던, 그 그림자와, 바늘과 실처럼 늘 따라다니던 분이 우리 노스님이라. 노스님이 여기 와서 70년대 첫 법주를 하셨다는 거야. 첫 법주. 저는 노스님의 흔적도 없는 자취가 남들은 그렇게 보이지만은, 우리 노스님 말씀 아까 들었을 때 혼자서 울 뻔했어요, 지금도 눈물이 막 나잖아요. 저 이렇게 약해요. 마음이. 경전을 읽을 때는 또 감동할 준비를 해야 돼요. 여러분 금강경 보다가 눈물이 많이 나잖아요. 금강경 읽다 우는 중은 한 번도 못 봤다, 수보리만 울어. 수보리만. 수보리만 울지, 아무도 안 울어. 그냥 경전을 읽을 때는 어떻게 감동할 준비를 해야해요. 아까 뭐 빼짝 마른 돌처럼 ‘니가 어쩌나 보자’ 하지 말고. 조금만 더 합시다.
일체중생은 뿌리가 되고 부처님과 보살들은 꽃과 열매가 되어 자비의 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의 지혜의 꽃과 열매를 이루느니라.
일체 중생은 뿌리다. 이거 줄 열 번 그어야 해요. 우리가 얼핏 생각하면 부처님이 뿌리라 하잖아요. 아니다. 누가 뿌리에요? 일체 중생이 뿌리고, 부처님과 보살들은 그 뿌리에 달려있는 꽃과 열매다. 보살들은 바라밀의 꽃이고 부처님은 두 개의 복과 지혜의 열매다 이 말이야. 자비의 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면은 누가 되느냐.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지혜의 꽃과 열매를 이루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들은 자비의 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면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보리는 중생에게 달렸으니 중생이 없으면 모든 보살이 마침내 가장 훌륭한 정각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보리, 깨달음이라고 하는 거는 어디에 달려 있냐. 중생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대. 아까 처음에 읽었던 건 뭐죠? 악한 중생이라도 나를 깨닫게 해주는 길이 있다. 그래서 미운 사람한테 뭐 준다? 떡 하나 더 준다 왜? 그럼 떡 되어보라고. 그런 심보를 가지면 안 되겠죠. 중생이 없으면 모든 보살이 마침내 가장 훌륭한 정각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조금 시간이 지났어요.
선남자여 그대는 이 이치를 이렇게 알아라. ‘중생에게 마음을 평등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오늘 평등 수륙대재가 이제 이루어지는 거죠. 그래서 우리 조상도 더불어서 천도 되지 않겠나, 내 자신이 우선 좋아지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원만한 자비를 성취하고, 자비심으로 중생을 수순함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함을 성취하는 것이다’라고 알아야 할 것이니라.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수순하나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도 내가 중생을 수순하는 마음은 다함이 없느니라. 염념이 계속하여 잠깐도 쉬지 않건만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
아차보현수승행(我此普賢殊勝行)
무변승복개회향(無邊勝福皆迴向)
보원침익제중생(普願沈溺諸眾生)
속왕무량광불찰(速往無量光佛剎)
찰진심념가수지(剎塵心念可數知)
대해중수가음진(大海中水可飲盡)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
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
이지만은, 40권 화엄경까지 볼 때 입법계품의 제일 마지막 게송이 이 게송이다. 이것이 이제 오늘 수륙대재에 딱 맞는 법문인데,
나의 이러한 보현보살의 거룩한 행과 그지없는 행복한 복을 모두 다 내 있는 복을 다 회향해가지고 진정으로 저 삼계고해 헤매는 참 못난, 저 못된 중생들이 아미타불 극락세계에 다 왕생하기를 바라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