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49재] 2월 25일 5재 법문 2022-02-25

 

今日 靈駕 至心諦廳 至心諦受

금일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佛身佛智 圓滿具足 解脫涅槃 極樂淨土

불신불지 원반구족 해탈열반 극락정토로다

 

        오늘 법문의 핵심 요지는 불신불지라(佛身佛智), 부처님께서 깨달은 몸, 불신, 부처님께서 얻은 지혜, 불지, 불신불지가 원만구족(圓滿具足)하니, 원만하고 다 갖추어졌으니, 해탈열반(解脫涅槃)이요, 해탈이요, 열반이요, 극락정토(極樂淨土). 지극히 즐겁고 깨끗한 땅으로만 이루어진 정토다. 이것이 오늘 법문의 핵심 요지입니다.

        사언 사구 16, 사언, 네 가지 말로 이루어진 사구가 있는데, 사언 사구해서 보니 16자 뿐입니다.

 

生滅世間 無常虛妄 生老病死 憂悲苦惱

생멸세간 무상허망 생로병사 우비고뇌

 

         부처님이 왜 깨달음을 얻었느냐, 그것은 이 생멸세간(生滅世間), 나고 죽고 나고 죽고, 세는 삼세라는 뜻이고, 간은 공간이라는 뜻인데, 시방삼세세간만사가, 생멸세간이 무상허망(無常虛妄)하다. 무상하다, 항상함이 없고, 허망하다, 그 생멸세간이 무상허망한 것이 뭐냐. 생로병사 우비고뇌(生老病死 憂悲苦惱)더라, 생로병사하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걱정하고 그거더라.

         그래서 이 석가모니라는 분이 이 무상하고 허망하고 생로병사하고 우비고뇌, 이거 말고 뭐가 없을까. 거기서 만족을 못했어요. 이거 말고 뭐 틀림없이 있을 것 같은데, 이거 말고 뭐가 없을까. 이 생로병사 우비고뇌에 전혀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아주 심각하게 가진 거예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인생이 무상하고 허망한 걸 알아야 하거든요. 근데 그걸 탈출구를 찾을 생각도 못하고, 생각을 해봤댔자 찾지도 못하고 그래요. 생로병사 우비고뇌가 인생 진실상이다. 이거는 이제 인도식 사유적인 논리 표현이고, 동아시아나 우리나라에서는 감각적인 직관 표현을 했는데요. 생로병사, 굉장히 사유적인 논리적 표현이에요. 그런데 우린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이 세상에 인기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논리적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인기가 없어요. 직관적으로 감각적으로 한 방씩 표현하는 사람이 인기가 있어요. 감정체계가 그래서 그렇지요.

        그러면 이 생로병사 우비고뇌 무상허망 이런 걸 감각적으로 표현한 말은 인생은 낙화유수다.’ 낙화유수. 인생이라는 게 한평생 살 때는 몰랐는데 죽을 때 가만히 뒤돌아 보면, 낙화유수다. 꽃이 흐르는 물에 떨어지는 것 같다. 낙화라는 건 환하게 피었던 꽃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건 죽은 것 같고. 어디 떨어졌느냐. 흐르는 물에 떨어졌는데, 이 흐르는 물이 떨어진 꽃을 놔두지 않고 흘려보내 버려요. 사람이 임종을 맞이하면 절대 안 놔둬요. 바로 흔적도 없이 변해버려요. 그리고 말로는 영결식을 한다, 장례식을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보내는 거에요, 이거.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으면 가라 이거거든요. 기가 막힌 거예요, 알고 보면. 숨진 사람을 안 놔둬요. 유수가 낙화를 머물러 두지 않는다, 유수무정송낙화(流水無情送落花), 흐르는 물은 무정해서 낙화를 보낸다. 이런 고인의 시간이거든요. 또 인생은 일장춘몽이다. 인생은 한바탕 봄에 꾸는 노곤한 꿈과 같다. 이렇게 인생을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했어요. 인생은 낙화유수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다. 근데 한참 젊을 때는 어림도 없어요. 몰라요. 전혀 몰라요. 임종에 가까워야 그걸 알게 돼요.

        석가모니는 이 낙화유수 일장춘몽 이거 말고 뭐가 없겠나. 그래서 모든 걸 다 버리고 오로지 그쪽으로 매진을 해서 얻어낸 게 있는데 그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깨달은 몸이, 불신이, 태어난 몸이 아니고 깨달은 몸, 불은 인격적으로 표현하면 불인데, 이걸 동사적으로 표현하면 깨달음이에요. 깨닫는다. <깨닫는다>라고 하면 행위를 중심으로 할 때 깨달음이고 그 깨달은 결과를 형용사적으로 표현하면 <> 그래요. 그래서 깨달은 몸이다. 이건 태어난 몸이 아니고, 그걸 불신이라고 하고. 근데 깨달은 몸을 얻고 나니까 생각이 지혜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걸 깨달은 지혜, 불지.

        깨달은 몸으로, 깨달은 지혜로 어디에 도달했느냐. 해탈에 도달을 했다 그래요. 모든 장애에서 벗어났다고 해탈인데, 아무런 장애가 없어요, 해탈은. 그리고 열반은 생사가 아예 없어요. 나고 죽는 게 아예 없어요. 예를 들면 파도가 아무리 일렁여도 물은 항상 그대로다. 그래서 파도의 물과 같은 게 그게 열반이다. 해탈열반. 그다음에 극락세계. 이 태어난 몸을 가지고 살 때는 고락이 반반인데, 고통이 있으면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면 고통이 있고, 이 해탈열반에는 장애가 없으니까, 무상하고 허망함이 없으니까 오직 즐거움뿐이다. 그래서 극락이라고 그런다. 지극히 즐거움의 궁극이다. 정토라는 것은 그 깨달은 지혜로 보면 이 세상에 깨끗하지 않은 건 아무것도 없다. 더러운 건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나쁜 건 없어요. 그 나쁜 게 어디서 나왔느냐. 인간의 어리석은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만든 거예요. 그게 정토에요. 그게 부처님이 얻으신 거에요. 해탈열반 극락정토, 이를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彼岸實相 寂滅寶宮 解脫境界 華藏莊嚴

피안실상이요 적멸보궁이요 해탈경계요 화엄장엄이요

事事究竟 一切歡喜 西方淨土 極樂世界

사사구경이오 일체환희니 서방정토 극락세계로다

나무아미타불

 

        이 극락세계는, 주제가, 주어가 극락세계인데, 극락세계는 피안실상(彼岸實相)이다. 생각으로 보는 세계를 사바세계라고 하고, 지혜로 보는 세계를 극락세계라고 하는데, 극락세계는 지혜로운 피안의 세계다 그거죠. 그리고 극락세계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적멸이라는 말은 생멸이 없다 이게 적멸인데, 고요할 적자, 멸할 멸자, 생멸 적멸, 생멸 없는 보배궁전이다. 생멸은 없는데 좋은 게 많아. 그래서 보배 보자, 집 궁자.

        또 여기는 해탈경계(解脫境界). 아무런 장애가 없는 세계, 그 경계다. 화장장엄이다. 화장이라는 말은 꽃 화자, 감출 장자, 꽃은 공경이라는 말이고, 온갖 공덕이 모인 그런 걸로 장엄되어 있다, 꾸며져 있단 말이죠, 화장장엄.

그리고 사사구경(事事究竟)이다. 이 생각의 세계는 시작이 있고 중간이 있고 마지막이 있고, 이게 생각인데, 이 지혜는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이 없어요. 오직 그거, 그거뿐이에요. 그래서 시작과 종말은 생각이 만들어내는 거예요. 생각이 시작이라고 해서 그게 시작이 아니고 생각이 마지막이라고 그래서 그게 마지막이 절대로 아니에요. 딱 그거 하나뿐이에요. 이거는 그냥 딱 이거지, 이게 뭐 언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언제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사사가 구경이라. 일 사자나 물건 물자나 똑같은 말인데 사는 물이요, 물은 사요, 사물인데, 딱 이게 그냥 구경인 거예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고, 머무는 것도 아니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런 생각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진실되게 생각불급처, 사량불급처(思量不及處), 진실경계다. 이걸 구경이라고 그래요. 구경열반. 구경이라는 건 그 이전도 없고, 그 이후도 없다. 그냥 그게 전체로 진실이다, 이 소리예요. 이게 깨달은 세계에요. 사사가 구경이다. 딱 그게 진실이고 그거 이상없다. 근데 생각이 이거는 뭐고 저거는 뭐고, 이건 태어나는 거고 이거는 죽는 거고, 이걸 전부 다 의식사량이라고 그러는데, 의식은 생각이거든요. 사량은 생각한다는 소리예요. 생각으로 생각하는 거지, 진실 경계는 사사가 구경이다. 물건물건마다 그게 절대적이라는 소리예요. 그래서 큰스님들 법문할 때 이런 막대기 같은 걸 이렇게 보이고요, 또 쿵 쳐서 소리를 내고 이래요. 소리 나는 거 그것뿐이고, 보이는 거 그것뿐인 거예요. 그게 구경인 거예요. 그런데 생각은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고 왜 저러나그 행위를 분석을 하고 평가를 해요. 분석 평가는 전부 생각이 만들어낸 쓸데없는 생각이에요. 분석 평가 이건 의식의 산물이에요. 극락세계가 이러니 가기가 쉽지 않아요. 분석으로 가려고 그러고 평가로 가려고 하면 못가요. 바로 이 진실로 가는 거거든요, 진실로.

       그리고 사사가 구경이요, 일체가 환희(一切歡喜). 즐거움이라는 게 환희인데, 어디에 즐거움이 있고 어디에 즐거움이 없느냐. 모든 것이 다 즐거움이다. 죽으면 죽는 대로 즐겁고, 살면 사는 대로 즐겁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잠을 자면 잠을 자는 대로,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일체가 환희로운 세계.

         피안실상 적멸보궁 해탈경계 화장장엄 사사구경 일체환희 이런데 여기가 서방정토 극락세계다. 서방이라는 건 비유인데, 동아시아에서 동방은 청방이고, 북방은 흑방이고, 남방은 붉을 적, 적방이고, 서방은 백방이라고 그랬어요. 희다고. 청황적백흑. 중방은 황이고, 누르다고. 그래서 이건 비유한 말이에요. 서방은 백방이라. 백이라는 건 뭐냐. 청백이라. 아주 맑고 희어서 다른 잡된 게 하나도 없다, 이 말이죠. 더러운 거 하나도 없는 깨끗한 정토다. 그게 서방정토인데, 그게 극락세계다. 전부 깨달음을 통해서 얻어진 세계다, 이 소리죠. 깨닫지 못하고 사바세계, 의식세계는 무상 허망 생로병사 우비고뇌 그랬는데,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느냐. 인생이 무상하고 허망함을 느끼는 사람만이 깨달음을 얻지, 인생이 무상하고 허망함을 못 느끼면 깨달음은 절대 안 와요. 그리고 뭐가 오냐. 무상하고 허망한 걸 자꾸 연장해서, 무상한 걸 무상하지 않도록만 바라지, 무상 속에 진실이 있는 걸 깨달으려고 안 해요. 그래서 석가모니도 무연중생은 부도중생이라. 인연 없는 중생은 중생계도 못해요. 인연 없는 중생이 뭐냐. 인생의 무상함을 전혀 안 믿고 그 무상만 계속 연장하려고 그래요. 그래서 오래 사세요, 건강하세요’, 그러잖아요. 그게 그 소리에요. ‘건강하십시오그러면 건강할 리가 있어요? 나이 들어서 건강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게 사람들마다 다 오래 살고 건강하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지 사실의 표현은 아니에요. 사실은 나이 들면 아픈 거예요. 그게 사실이고, 바라는 거는 건강하고 싶은 거지. 그런데 석가모니는 건강하고 싶은 마음으로 사는 게 아니라 극락세계를 깨달았다 그 말이에요. 그거 참 희안하지.

         그런 깨달은 내용을 더 말하면 뭐냐.

 

前而無始 後而無終 今而無住 常住法界

전이무시하고 후이무종하고 금이무주이 상주법계로다

覺智光明 普周遍滿 華藏利海 應現自在

각지광명이 보주변만하며 화장찰해에 응현이 자재로다

나무아미타불

 

깨달은 몸이 불신이고, 깨달은 지혜가 불지고, 깨달음을 통해서 얻어진 세계를 불찰이라 그래요. 찰이라는 말은 한자로 번역하면 흙 토자와 같아요. 사찰이라는 찰자가 차트라라는 범어인데 찰이라고 음역을 했어요. 불찰. 꿈을 깼을 때는 막 험한 산악지역이었는데 그걸 딱 깨니까 자기 안방이더라. 그런 거와 같아요. 깨닫기 전에는 전부 이게 나쁜 걸로 가득한 산하대지였는데 깨닫고 나니까 극락정토더라. 그래서 그걸 불찰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리고 그 불신불지를 가지고 불찰에서 마음대로 노니는 걸 그걸 신통이라고 그래요. 신통. 신통은 뭐냐. 불용이다. 깨달은 불의 작용이다. 그 얘기에요. 불신 불지 불찰 불용 그거 가르치는 거예요.

그런데 믿는 사람은 극락세계에 가고, 안 믿으면 못 가. 그러니까 이게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아서 갔지만 그 뒤에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믿고 그 부처님의 인도하는 공덕으로 가거든요. 이런 소리 왜 하나. 안 믿으면 못 간다 겁주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데. 자동차가 아무리 빨라도 안 타면 못 가요. 타야 가요. 그래서 이걸 믿어서 그 가피를 입으면 그게 믿음의 공경인데 어마어마한 가피를 입을 수가 있어요. 어린 애가 저 혼자는 못 가는데 어른 손에 이끌려서 어른에게 업혀서 가면, 어른하고 똑같이 갈 수 있어요. 그게 신심공덕이라는 거예요. 신심공덕. 뒤의 사람들은 신심공덕으로 가는데 부처님은 스스로 깨달아서 이루었다 이 차이죠.

그전에 부산 다닐 때 보면, 부산 파리란 게 있어요. 기차에 올라와 있는데 그 파리가 희안하더라고. 부산 파리가 기차에 들어오면 가는 줄도 모르니까 서울까지 가요. 그게 공덕이에요.

부처님 깨달은 몸은 전이무시(前而無始)하고, 앞에도, 앞 전자, 말 이을 이자, 무시, 시작이 없다. 과거에 시작이 없어요. 후이부종(後而無終)하고, 뒤에도, 미래에도 끝이 없어요. 금이무주(今而無住)하고, 지금도 어디에 머뭄이 없다. 몸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허공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걸 뭐라고 하냐. 상주법계(常住法界). 항상 상, 머물 주, 항상 머무는 법의 세계다. 부처님이 머무는 세계는 상주법계인데, 그 상주법계는 깨달음을 통해서 얻은 몸이다 이거죠. 상주일체 불타야중(常住一切 佛陀耶衆), 상주하시는 일체 부처님, 이런 예불문이 있거든요. 상주. 그래서 이 생멸신에서 상주신을 깨달은 것이 깨달음이다. 그런데 이 상주신은 과거의 시작도 없고 미래의 끝도 없고 현재 머무는 데도 없어 오직 지혜로만 볼 수가 있어요.

        그러면 몸을 딱 깨닫는 순간에 생각이 지혜로 변했는데 그걸 깨달을 각자, 지혜 지자, 각지(覺智)고 하고, 각은 불이니까 불지라고 해요. 각지가 광명(覺智光明)이다. 각지광명. 항상 밝다. 그래서 보주변만(普周遍滿)이다. 널리 두루해서, 넓을 보, 두루할 주, 보주. 변만, 두루할 변, 가득할 만. 화장찰해(華藏利海). 그 각지로 보면 티끌 티끌이 전부 극락세계고 물건 물건이 전부 극락세계에요. 이 깨달은 지혜로 보면 극락세계 아닌 데는 없어요. 그런데 생각으로 보면 전부 좋고 나쁜 게 있어 가지고 안 좋아지고. 그리고 생각을 해보면 지금 좋은 게 또 금방 나빠져. 또 지금 나쁜 게 금방 좋아지고. 도대체가 생각을 믿을 수가 없어요. 젊을 때는 좋아하다가 나이 드니까 싫어하더라고요. 우리 어머니를 보니까 참 희한하더라고요. 젊을 때는 아버지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고, 나이가 드니까 아버지 안 좋은 소리를 솔솔하더라고요. 그래서 과거에 우리 아버지가 젊을 때 뭐 했는지 나이 들어서 어머니 이야기를 통해서 다 알게 되죠. 그래서 느낀 게 있어요. 이거 부부간도 절대 끝까지 믿을 수가 없다. 지금 안 해도 나이 들면 무슨 나쁜 소리 할지도 모르겠고. 지금 남편도 나이 들면 무슨 나쁜 소리 할지도 모르고. 우리 어머니가 절대로 아버지를 그렇게 굉장하게 봤는데 나이가 드니까 안 하던 얘기를 슬슬 해줘요. 그래서 크게 깨달았어요. 사람 생각이라는 게 절대 이게 오래 가는 게 아니구나.

근데 각지는 광명인데 각지는 생각이 아니에요. 왜 생각이 아니냐면 이거 딱 보면 이게 뭔지 알아요. 아는데, 이게 좋다, 나쁘다는 분별은 없어. 알기만 알고 분별이 없다, 이게 지혜예요. 딱 보면 이거 뭐 안경이라는 것도 아는데, 이게 언제 생길까, 언제 없어진다, 이런 분별이 없어요. 이게 지혜와 생각의 차이에요. 생각은 분별을 하는데, 지혜는 보기만 하고 분별은 없다. 그래서 지혜는 아는 것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도 없다, 이렇게 설명을 해요. 아는 거는 이거는 분별 해석인데, 분별이라는 건 구별하는 거에요, 구별해석. 세간 지식이라는 게 전부 해석이에요. 이거는 자기 생각의 산물이지, 진실 실상이 아니에요. 진실 실상으로 딱 보기만 하지, 허망한 해석은 없다. 그걸 지혜라고 그래요. 저 사람 좋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 이거는 해석이에요. 진실실상은 그냥 그 사람 자체일 뿐이에요. 자체일 뿐인데, 내가 그 사람에게 바라는 게 있으면 거기서부터 좋고 나쁜 사람이 생기는 거에요. 바라는 대로 해주면 좋고, 바라는 대로 안 해주면 나쁜 거예요. 그런데 각지는 그렇지 않다. 진실뿐이기 때문에. 아는 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고. 딱 그 광명뿐이다 이거지요. 각지는 광명이다. 시비가 아니다. 옳고 그름이 아니다. 그래서 그게 보주변만이어서 두루하고 가득해요. 화장찰해에요. 좋은 걸로만 가득해요. 응현자재(應現自在)예요. 응현이라는 건 신통인데 신통이라는 건 뭐냐. 보는 데로 다 보이는 거예요, 장애가 없으니까. 어디 갈 게 없고. 한 생각 속에 온 우주가 다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앉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온 우주법계에 다 간다. 구하는 대로 얻는다. 구하는 대로 얻는다는 거는 뭐냐. 이거를 이렇게 좋게 보면 좋은 거에요. 좋지 않게 보면 좋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보는 거지 이 사물에는 좋고 나쁜 것이 정해져 있지 않다. 물에 물이 없다. 죽음에 죽음이 없다. 고통에 고통이 없다. 내가 느낄 뿐이다. 그걸 가르치는 게 불교예요. 한 생각만 딱 달라지면 우주가 다 극락세계에요. 한 생각이 어리석은 번뇌로 딱 뒤덮이면 좋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불교에서 항상 염송하는 게 나무아미타불도 있고, 마하반야바라밀도 있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있고. 이게 전부 그 소리에요. 이게 각지광명인데 깨달은 지혜 광명인데 수명이 없어요. 그래서 그걸 아미타 무량수라고 해요. 그럼 생각은 생겼다 사라졌다 하니까 이 생각이 삶과 죽음이 없는 지혜 광명으로 돌아갔다. 그걸 이제 나무라고 그러는데, 나무라는 건 일심 예경 그 소리에요. 일심으로 한마음으로 예배하고 공경한다. 아미타불께 일심예경한다, 이게 나무아미타불. 그리고 이 사바세계에서 극락세계로 돌아간다. 이 뜻이 마하반야바라밀, 큰 지혜로 저 피안의 세계에 간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 생각에서 가장 높은 깨달음을 얻는다. 이게 불교에서 항상 외우는 거에요. 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똑같은 얘기에요.

        또 신통이라는 건 사무외 딱 들면 여기에 앉아서 온 우주에 가득한 거예요. 석가모니를 생각하면 석가모니불이 눈앞에 떡 나타나고, 아미타불을 생각하면 아미타불이 나타나고, 이런 거에요.

 

佛智廣大同虛空 普遍一切衆生心

불지광대동허공 보변일체중생심

悉了世間諸妄想 不起種種異分別

실료세간제망상 불기종종이분별이로다

(華嚴經80,入法界品)(화엄경제80,입법계품)

나무아미타불

 

        이 법문은 대방광불화엄경이 80권이 있는데, 그 제 80권 중에 마지막에 나오는 부분인데요. 불지광대하여 동허공(佛智廣大同虛空), 불지가, 부처님의 깨달은 지혜가 넓고 큰 것이 허공과 같다. 보변일체중생심(普遍一切衆生心), 두루하게 다 살핀다. 실료세간제망상(悉了世間諸妄想)이라. 이 세간의 생각으로 시작이 아닌 걸 시작이라고 하고, 중간이 아닌 걸 중간이라고 하고, 마지막이 아닌 걸 마지막이라고 하고, 좋은 것도 아닌데 좋은 거라고 하고, 나쁜 것도 아닌데 나쁘다고 하고. 이게 전부 세간제망상인데, 세간의 모든 허망한 생각, 이걸 다 알아요. 모르는 게 없는 거다 이 뜻이에요. 그런데 불기종종이분별(不起種種異分別)이라. 가지가지 다른 분별상, 다른 해석상, 다른 차별하는 생각을 안 일으켜요. 그래서 깨달음을 왜 못 얻느냐 하면, 이 분별 차별 해석하는 마음이 앞을 가려서 못 깨닫거든요. 그래서 인문학을 많이 한 사람은 인문학적인 장애가 생겨서 더 못 깨달아요. 책 쓰고 글 쓰고 해석하고 논문 발표하고 이것이 머리에 꽉 차가지고 본인이 해석하지 않으면 살지 못해요. 그냥 단순하게 소리로만 딱 들으면 극락세계인데, 해석을 하면 좋고 나쁘고, 사바세계다 이거죠. 아주 간단히 그냥 단 몇 초 만에 순간적으로 극락왕생할 수 있는데 본인의 그 생각이 장애가 돼서 못 간다. 그래서 불지를 설명할 때 실료세간제망상이야, 세간의 모든 망상을 다 알지만, 불기종종이분별이라, 가지가지 다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왜 그러냐면 지혜실상으로 딱 보고 지혜실상으로 자재만 하지 거기에 분별해서 스스로 빠지지 않아요. 인간은 다 자기 생각에 빠지거든요. 자기 생각에 빠져서 극락세계를 못 가는 거지, 한 생각을 돌이켜서 지혜실상으로 바로 딱 만나면 극락세계에요.

 

今日 靈駕 至心諦廳 至心諦受

금일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若人欲求知 三世一切佛

약인욕구지 삼세일체불

應當如是觀 心造諸如來

응당여시관 심조제여래

(60華嚴經10, 夜摩宮揭品)(60화엄경제10, 야마궁게품)

 

十方諸佛利 莊嚴悉圓滿

시방제불찰 장엄실원만

念念菩提心 處處安樂國

염념보리심이면 처처안락국이로다

나부아미타불

 

        오늘 법문 마지막 구절인데요. 시방제불찰(十方諸佛利), 시방의 온 부처님의 깨달은 나라가, 장엄실원만(莊嚴悉圓滿)이다. 장엄이 없는 거 없이 다 가득하다.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이면, 생각 생각이 보리심이면, 생각에 빠지지 않고 하나의 지혜로 들어가면 이 말이거든요. 보리심이라는 게. 깨닫는 마음, 깨달은 마음, 지금 깨닫는 마음이 보리심이고 깨달은 마음이 보리심인 거예요. 염념이 보리심이니. 하나의 지혜로 들어가는 마음을 보리심이라고 그런다. 그럼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이라, 보리심을 일으킨 그 자리가 극락세계에요. 어디, 여기서 차표 끊어서 어디 가는 게 아니라. 그래서 처처가 안락국이다. 곳곳이 편안하고 즐거운 국토다.

 

        오늘 법문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