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49재] 3월 11일 49재 법문 2022-03-11

금일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華藏刹海 莊嚴法界

화장찰해여 장엄법계여

安樂淨土 極樂世界

안락정토여 극락세계로다

나무아미타불

 

        극락세계 잘 가시라고. 극락세계는 어떤 곳이냐. 화장찰해(華藏刹海), 꽃 화자, 감출 장자, 꽃은 공덕인데요. 수많은 공덕의 꽃이 쌓이고 저장한 세계. 찰은 국토라는 찰자고, 해는 바다 해자, 많은 세계 바다. 그것이 극락세계다. 장엄법계(莊嚴法界), 극락세계는 많은 것으로 꾸며지고 세워진 장엄의 법의 세계다. 극락세계는 안락정토(安樂淨土). 편안하고 즐거움으로만 가득한 정토. 다른 이상한 것이 없고, 헛된 것이 없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 하나도 없는 청정국토, 오직 그것만으로 채워진 청정국토. 거기서 안락정토라고 하는데, 이 안락정토가 극락세계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가십시오, 하는 것이 첫 번째 법문입니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가르침을 주신 분들을 제불제조, 삼세제불, 역대조사, 불조라고 하는데요, 과거현재미래 모든 깨달은 부처님들, 과거현재미래 깨닫고, 부처님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 가르침을 주는 분들을 조사(祖師)라고 그래요. 할아버지 조자, 스승 사자. 조사는 인간의 모습으로 가르침을 주는데요. 부처님은, 원력과 신통으로 가르치는 분들을 부처님이라 하고. 그분들이 깨달은 세계가 뭐냐. 사람이 보는 게 세계가 있고 몸이 있고 생각이 있는데, 이 세계가 항상한 게 아니고 변하고, 몸이 항상한 게 아니고 변하고, 생각이 항상한 게 아니고 변한다. 그래서 무상무신이라. 항상함이 없다. 진실함이 없다. 변하는 세계 가운데 무엇이 없을까. 변하는 몸 속에 무엇이 없을까. 이 변하는 생각 속에 무엇이 없을까. 이걸 의심하고 찾았던 게 삼세제불 역대조사인데, 그럼 뭘 찾았냐. 세계에는 청정법계가 있다. 청정, 잡된 게 없고 변함이 없는 법의 세계. 그게 무상무신한 세계에서 청정법계를 깨달았다 이말이죠. 또 이 몸에는 생로병사 무상신인데, 몸속에는 청정법신이 있다. 그래서 몸에서 청정법신을 깨달았다. 우리 생각에는 생각은 항상 변하는데 그 생각속으로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 보니까 청정 성심이 있더라. 청정한 본성의 마음이 있더라. 그걸 깨달아서 이 변하는 세계에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망상 집착으로는 공포와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변하는 세계에서 청정법계를 깨달아라. 변하는 몸에서 청정법신을 깨달아라. 변하는 생각에서 청정 성심, 본성이라는 성자, 마음 심자. 그럼 보통 생각은 뭐냐. 연심(緣心). 연심은 뭐냐. 인연 연자, 마음 심자, 보는 대로 쫓아가고 듣는 대로 쫓아가고 생각나는 대로 쫓아가고 엉겨 붙고 달려 붙고 매달리고 그 들러붙는다는 연자에요, 그 연자가. 이쪽과 저쪽이 들러붙어서 하나가 됐다. 그게 연자거든요. 이 들러붙는 마음에서 본래 본성 마음, 대단한 거거든요. 청정성심, 청정법신, 청정법계

 

        뭘로 깨달았냐. 역시 마음으로 깨달았다. 마음은 뭐냐. 이 마음이라는 것은 오직 깨달음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데, 비유로 말하면 태허공과 같고 공화사와 같다 그래요. 태허공, 넓은 허공. 방 안에 허공이나 그릇 안의 허공, 그거 실내공 기내공 그런 게 아니라, 태산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허공. 그런 허공을 태허공이라고 그래요. 태허공이라고 하는 것은 자체가 없는 동시에 없는 것도 없어서 이 녀석이 인연 따라서 구름이 올 때는 오로지 구름이 되고, 별이 오면 오로지 별이 되고, 태양이 오면 오로지 태양이 되는데, 태양이 있을 때는 태양밖에 안 보여요. 근데 태허공이 그냥 변함없이 거기 있는 거예요. 사람으로 나타나면 사람밖에 안 보이고 오로지 태허공이 사람들인데 사람 속에 태허공이 있어요. 바다가 되면 이제 바다밖에 안 보이는데 바닷속에 태허공이 있고. 이런 거를 우리 마음은 태허공과 같아서 불변수연(不變隨緣)이다. 아무 변함이 없이 인연 따라서, 바다가 올 때는 바다로 나타나고 별이 올 때는 별로 나타나고 사람이 올 때는 사람으로 나타나서 인연 따라서 천변만화(千變萬化)를 하는데 변함이 없다. 불변수연이다. 그런 마음을 깨달았어요. 그런 마음. 그래서 마음은 태허공과 같다. 밝음이 올 때는 오로지 밝은 것만 보여요. 태허공은 밝은 게 아니에요. 또 어둠이 올 때는 오로지 어둠만 오는데 태허공은 어두운 게 아니에요. 이런 마음은 생각으로는, 생각은 어디에 들러붙는 거기 때문에 들러붙는 생각 가지고는 모르고, 들러붙는 생각을 맑히고 맑혀서 더 이상 맑힐 데가 없는 경지에 들어가는 게 정극인데, 청정이 극치에 이르렀다, 그러면 본래 태허공의 모습이 보인다. 광통이라고 그래요, 빛 광자, 통할 통자.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정극 광통이다. 생각이 극도로 깨끗해지면 보이지 않던 것이 확 보인다. 광통이라. 정극 광통. 이 생각의 세계에서 본래 있던 불변 청정 세계로 가는 것을 바라밀이라고 해요. 바라밀. 가자가자 어서 가자. 시간이 있는 세계에서 시간이 없는 세계로 가는 것을 바라밀이라고 해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는 게 아니고 생각이에요. 그래서 생각이 선정에 들면 몇천 년이 한순간이고 몇 억 년이 한 순간, 무량원급이 즉일념이라, 무량원급이 일찰나다.

 

        그러면 이 마음이라는 것은 공화사(工畵師). 공장이라는 공자, 그림 화자, 스승 사자, 공은 그림을 만드는 사람이다. 화가라는 얘기예요. 그림 그리는 화가. 화가가 온갖 그림을 만들어내는데, 만들어내는 화가의 마음속에는 그림이 없어요. 그런데 그림 하나하나에 화가의 마음이 또 들어있어요.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 저거는 화가의 생각인데 화가의 생각이 종이에다가 색채로 표시해놨다 이거죠. 없는 그림을 그려도 화가의 마음속에는 그림이 있고, 불변수연이에요. 화가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 온갖 작품을 다 만들 수가 있다. 그래서

 

心如工畵師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심여공화사라

畵種種五陰 가지가지 몸을 그려낸다.

화종종오음이라

一切世界中 일체의 세계에서

일체세계중

無法而不造 어느 것도 만들지 못하는 게 없다.

무법이부조라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다. 화종종오음(畵種種五陰)이라, 가지 가지 몸을 만들어낸다. 이 몸이라는 게 마음이 만든 거예요. 체질은 없고, 몸 만드는 마음이 있어요. 체질이 뭐가 있어요. 머리 모양, 몸 모양, 몸무게를 키울까 뺄까, 전부 생각이 결정해서 나타난 결과물이 몸이에요. 어떤 사람은 먹은 것도 없이 살쪘다.’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먹은 것만큼 살찌지, 어떻게 안 먹었는데 살찌냐고. 그런데 왜 그런 말 하느냐. 거짓말은 아니고 먹은 게 하나도 기억에 없어요. 하도 먹고 싶은 생각이 많아서 먹었던 게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짓말은 아니에요. 이게 사실은 아니다. 이 몸이라는 게 전부 마음의 표현이다. 저 사람 뭔 생각을 할지 모른다. 궁금할 거 하나도 없어요. 그 사람 행동하는 게 전부 마음이에요. 행동하는 게. 그래서 화종종오음이라, 몸에 그림을 그려낸다. 일체세계중(一切世界中), 일체세계 가운데, 무법이 부조(無法而不造), 어떤 것도 마음이 그려내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래가지고

 

若人欲求知 누구나

약인욕구지

三世一切佛 삼세의 일체불을 알려고 하면

삼세일체불

應當如是觀 응당 이렇게 관찰하라

응당여시관하라

心造諸如來 마음이 모든 여래를 만들었다고.

심조제여래니라

(60華嚴經10, 夜摩宮偈品)

(60화엄경제10, 야마궁게품)

 

약인욕구지 삼세일체불(若人欲求知 三世一切佛), 어떤 사람이든지 삼세일체불을 알려고 하면, 응당여시관(應當如是觀)하라, 응당 다음과 같이 관찰하라. 심조제여래(心造諸如來)니라, 마음이 모든 여래를 만드나니라. 마음이 범부 중생도 만들고, 마음이 삼세제불도 만들고, 마음이 역대 조사도 만들고, 마음 없는 역대 조사가 없고, 마음 없는 삼세제불이 없고 마음 없는 일체중생이 없죠.

 

諸佛身心

제불신심

身智光明 普照法界 隨緣應化 成就衆生

신지광명 보조법계 수연응화 성취중생

菩薩身心

보살신심

功德身饒益一切 智慧身說法無窮

공덕신요익일절 지혜신설법무궁

金剛身物不能壞 淨法身遠離生死

금강신물불능괴 정법신원리생사

方便身現自在力 菩提身成三菩提

방편신현자재력 보리신성삼보리

 

        그러니까 재주라는 게 별게 아니라 마음을 완전히 밝혀서, 신지광명이 보조법계(身智光明 普照法界), 마음 몸과 지혜광명이 법계를 남김없이 다 비추는 거, 그걸 넓을 보자, 비출 조자, 넓다는 말은 못 비추는 데가 없이 남김없이 다 비춘다 이런 뜻이죠. 신지광명이 보조법계해서 수연응화 성취중생(隨緣應化 成就衆生)이라, 정신 세계가 극치에 올라가면 자기 욕구는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아요. 자기 욕구 없는 경지에 올라가는 게 그게 높은 정신세계에요. 자기 욕구가 남아 있으면 그건 미혹이고 번뇌인데, 왜냐. 욕구를 이어봐야 쓰잘데기가 없어요. 어떤 사람은 맛집 찾아간다고 몇 시간씩 가서 먹는데 그거 변한 걸 봐버리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요. 쓰잘데기 없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평생을 보내고 있다. 이걸 범부 중생이라고 그러고, 삼세지로는 자기가 이루어보고 싶고 구해보고 싶은 게 하나도 없이 그냥 참된 지혜뿐이에요. 그래서 하는 일은 성취중생이라, 중생들을 성취시킨다. 중생들을 다 이루게 하는데 그게 제불의 하는 일이라 이 말이죠. 그러니까 어른이 돼 가지고 자기 불만으로 항상 왔다 갔다 하면 그건 어른 아니에요. 애들이에요 애들. 그러니까 물어봐요, 누가 오면. ‘주민등록의 어른이요, 정신세계의 어른이요.’ 주민등록은 어른이죠, 분명히. 근데 정신세계는 구하는 게 있어서 쫓아다니면 그건 애들이고. 구해봤자 쓸데없다, 이걸 턱 알고 넉넉하게 살면 그건 어른이란 말이에요. 어른이 되면 뭘 시켜도 자꾸 하라고 시키지 말아요. 하라고.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경봉 큰스님이 큰 절에 내려오시면 야야, 책 많이 보지 마라.’ ‘책 많이 보지 마라. 다 쓸데없다.’ ‘왜요?’ ‘책이라는 것은 말인데, 말을 많이 듣고 난 후 생활을 돌아보라. 책 속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책 보지 말고 아예 생활을 넉넉하게 하면 그게 좋은 거다.’ 자비로운 어머니는 공부만 잘 하라고 다그치는 게 아니에요. ‘쉬어라 쉬어라. 병 난다 병 난다.’ 그래야지요. 나한테 열심히 하라고 한 사람이 많은데 그런 사람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기억나도 지금 생각하면 짜증만 나요. ‘공부하지 말고 자.’ 어머니가 그런 말씀 많이 했는데 그게 얼마나 지금도 기분 좋게 기억되는지, ‘책 많이 보지 말고 돌아가면서 해라.’ 그게 어른으로 할 소리예요. 왜냐하면 다그쳐서 이뤄봐야 쓰잘데기가 없어요. 죽을 때 한바탕 꿈으로 사라지는 거예요. 그걸 자기 혼자 고생했으면 됐지, 사랑하는 아들 딸들에게도 고생을 물려주면 부모가 할 짓이 아니에요.

 

        정신세계가 높아지면 좋아하는 게 없기 때문에 성취 중생으로 자기 사업을 삼는다. 중생을 성취 시키는 게 자기 사업이에요. 그리고 보살은 온갖 공덕으로 몸과 마음이 이루어졌어요. 공덕신(功德身), 지혜신(智慧身), 금강신(金剛身)인데, 보살이 보는 몸은 죽는 몸 속에 죽지 않는 몸을 다 살피고 있어요. 사라지는 물건 속에 사라지지 않는 허공이 있듯이. 그래서 이 마음 공부를 하는 사람 중에 어느 정도 깊이 들어가면, 마음이 자기 몸에서 나와서 자기 몸을 바라보는 경지가 있어요. 자기 몸에서 나오는 그런 마음이 나와서 이 몸이 몇 년이나 갈 것이고, 그걸 바라봐요. 그래서 이거 믿고 놀다가 큰일 난다. 몸 믿고 살다가 하루아침에 몸 떠나면 큰일 나는 거예요. 내 마음이 나와서 내 몸을 한 번 봐요. 그게 금강신이에요. 이 몸은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몸이 있다. 이걸 바라보는 게 보살이거든요. 금강신을 가지고 사는 게 보살이고, 정법신(淨法身), 청정한 법에 몸이 있다는 걸 다 터득하는 게 보살이고. 그다음에 방편신, 방편이라는 것을 이루어 나가는 게 방편인데, 삼세제불의 자재한 신통력을 나타내는 게 보살의 방편신이고. 보리신, 보리는 깨닫는 건데, 성보리신, 보리를 이루는 몸이다. 이게 보살의 몸이에요. 보살은 보리를 이루는 외에 생각이 없어요. 중생교화도 보리를 이루는 방편이고. 설법도 보리를 이루는 한 방편이고. 근데 마음은 생사를 계속 반복하는 범부의 마음으로 갈 때는 오로지 범부의 마음뿐이고, 보살의 마음으로 갈 때는 보살의 마음뿐이고, 제불의 마음으로 갈 때는 제불의 마음뿐인데, 그 근본 본래 면목은 제불도 아니고 보살도 아니고 범부도 아니고, 그냥 공적영지(空寂靈知), 찾아보면 없는데, 빌 공자, 고요할 적자, 신령스럽게 한다. 신령 령자. 공적영지 자성청정. 이걸 떡 깨달으니까 도도 도가 아니라 대도다. 소도는 유도하고 대도는 무도다. 작은 도는 도가 있는데 작은 도는 뭐냐. 참선도 하고 기도도 하고 경도 보고. 도가 있어요. 그런데 큰 도는 이게 행주좌와 일상생활이 모두가 해탈경계고 극락세계다. 근데 뭐 도에 들어갔다가, 입도 출도가 없고, 그냥 상도다, 항상 도다. 입도도 아니고 출도도 아니고 항상 도다. 그게 대도인 거예요.

 

        부자도 큰 부자는 재산이 없고, 소부, 작은 부자는 재산이 있다. 재산이 있다는 말은 재산이 얼마 있는지 알고 이걸 더 늘릴까 말까 여러 가지 계획도 많고 이건 작은 부자고. 큰 부자가 되면 자기 재산이 얼마인지 전혀 몰라요. 들어오는지 나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일부러 그걸 관리하려고 해서 관리하는 게 아니라 그냥 훤히 알고 경영이 그냥 일상생활과 똑같이 됐을 때 그걸 대부라고 해요. 바로 옆에 큰 부자가 있었는데, 가을에 추수할 때 새가 와서 그 알곡을 쪼아먹으니까 일하는 농부들이 쫓았어요. 부자가 하는 말이 쫓지 마! 어디에 날아가도 다 우리 땅이야.’ 그게 큰 부자에요. 맨날 돈에 연연하는 건 부자가 아니에요. 늘 가난한 사람이지. 그러니까 대도도 해탈경계 극락세계가 따로 없고, 일상생활이 해탈 경계에요. 경봉큰스님 보면, 다른 사람이 죽비 치고 딱 눈 작게 뜨고 정신집중하는 데요, 이 분은 그런 거 없어요. 입정, 출정이 없어요 그냥. 내가 어릴 때 다른 사람 다 눈 감고 입정하는데 왜 저 양반은 입정을 안 하지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입정을 하고, 눈 뜨고 바쁘면 그거는 소도지, 대도가 아니에요. 눈을 떠도 해탈이요, 눈을 감아도 극락이요, 그게 대도거든요. 이런 게 전부 마음의 불변소연이라, 변함없는 마음을 가지고 인연따라서 큰 도도 되고 작은 도도 되고.

 

        그러면 극락갈 때는 어떠냐. 극락은 장엄법계에요. 온갖 장엄이 많아요. 꽃들도 있고, 법문도 있고, 보배도 있고. 그런데 어떻게 가냐. 공덕으로 가요. 이렇게 극락으로 가시라고 공을 들이는 공덕이 있어요. 극락을 가고자 하는 신심원력, 신심원력과 종종공덕으로 극락세계에 간다. 그게 뭐냐면 삼세제불이 성취중생의 원력이 있어요. 중생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해야 되겠다. 이렇게 원력이 있는데, 그 원력을 오늘의 영가가, 이을 승자, 승불원력(承佛願力), 부처님의 원력을 이어서, 또 승공덕력, 가지가지 공덕의 힘을 이어서, 신심력, 신심으로 인한 그 힘으로 극락세계 가는 거거든요. 그게 극락세계에요. 극락세계 가시라고 일주일 동안 한두 번 말하는 게 아니니까, 아직도 안 믿으면 세상에 나와서 고생 더 하시던가, 아니면 들을 만큼 들었으니까 한 마음으로 딱 믿고, 바로 극락세계 가십시오.

 

금일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面見阿彌陀 直往極樂國

면견아미타하시고 직왕극락국하야

念念住淨土 受用無量樂

염념주정토하야 수용무량락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면견아니타(面見阿彌陀)하시고, 바로 눈앞에서 죽음이 없는 아미타불을 딱 보시고, 직왕극락국(直往極樂國)하야, 바로 아미타불의 인도를 받아서 아미타불 접인보살, 바로 그 옆에서 인도하는 스승이다. 접인보살 아미타불의 인도를 받아서, 직왕극락국, 극락국에 곧 직자, 갈 왕자, 바로 가셔서, 염념주정토(念念住淨土)하야, 생각생각이 청정토에 늘 머물러서, 수용무량락(受用無量樂)이라, 한량없는 즐거움을 수용하소서. 받을 수자, 쓸 용자. 받으소서.

 

        이것으로써 오늘 법문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