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백중기도] 8월 2일 백중 3재 법문 2023-08-02

 

        반갑습니다. 백중 법회에 제가 초대받아서 법문하기는 처음입니다. 

       백중기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얘기이기 때문에, 제가 이제 여러분들에게 얘기해 줄 수 있는 것은 윤회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고요. 그 다음에 이제 윤회를 얘기를 할 때는 반드시 열반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열반은 불사, 죽지 않는다는, 그런 것이거든요. 윤회한다는 것도 죽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다음에 이제 열반을 얻었을 때도 역시 죽지 않는다는 뜻이 있는데 이 두 가지는 극명한 차이가 있어요. ? 하나는 고통스럽다는 거고 하나는 즐겁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 백중 기도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뜻이 있고요. 여러분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졌을 때 신심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인연을 해서 여러분들이 죽지 않는, 생로병사가 없는 열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제 차근차근 한번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죠.

       우선 백중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이제 은혜를 갚는 일이다, 부모님이나 조상에게 은혜를 갚는 일이다. 이 은혜를 갚는다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 여러분들이 자기가 이 부모로부터 태어났다고 한다면은, 어머니 쪽에도 부모가 계시고, 아버지 쪽에도 부모가 계시고, 10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은 이 한 사람이 태어나는 데 있어서 과연 몇 명이 관여를 하고 있을까. 현재 여러분들이 여기에 태어나서 살고 있다면, 10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최소 1억 이상의 조상들의 은덕이 있는 거죠. 일억 명 되는 여러분들의 부모, 그 위에 또 할아버지, 할머니 이래서 태어난 거예요.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럼 여러분들이 당연히 이렇게 기도를 드리는 거는, 돌아가신 분들에게 기도드리는 것은 은혜를 갚는 일이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고요.

 

       그다음에 이제 이렇게 기도를 드리는 것 자체가 선업을 짓는 겁니다. 선업을 짓는 거고, 그다음 복을 쌓는 일이에요.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거는, 핵심적인 것은 뭐가 있을까? 보통 이 백중 기도에서 천도한다는 것은, 우란분재라고 하고 우란분절이라 하기도 하는데, 목련경의 청제부인하고 관련이 있어요. 청제부인이 별로 계율을 잘 안 지키고, 살아있는 생명을 많이 죽였습니다. 음식으로. 진관사는 사찰음식으로서 전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찬탄을 보내고 있는데, 청제부인은 그냥 살아있는 생명체를 너무 많이 죽였어요. 왜 죽였느냐? 맛을 보기 위해서. 그래서 이제 아들이 그걸 알았어요. 그러고는 출가를 해서 이제 어머니가 어디에 계시는가 살펴봤는데, 지옥에 계시거든. 목련존자는 신통이 있으니까 어머니를 구하러 갔어요. 근데 안 돼요. 자기 힘으로. 그래서 부처님께 하소연하니까 해제 날 스님들에게 공양 올리고, 부처님께 법문을 청하라는 거죠. 그래서 이 부처님 법문을 통해서 이제 무간지옥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목련존자 목련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란분절이라 하기도 하고, 우란분재라 하기도 하는데, 바로 백중이에요. 말 얘기하자면은. 이 말은 뭘 얘기하는가 하면은 돌아가신 분들을 구제하는 길이에요, 백중 기도라는 것은.
       그래서 이제 천도재를 지낼 때는 옛날에는 초도라는 말을 썼어요. 초도. 육도에서 벗어난다는 거죠. 벗어날 초, 넘을 초자에 길도 자.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 천상. 이 육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게 바로 천도재예요, 얘기하자면. 그런데 이렇게 지옥에 떨어져 있는 이를 구제하려면 한 번에 벗어날 수가 없어요. 업이라는 것은 한 번에 이렇게 없어지지를 않아요. 그래서 매년 이렇게 재를 지내주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깨달음을 얻어서 열반에 이르게 하는 게 바로 천도재의 뜻이에요. 초도재라 해야 되겠죠, 그렇게 보면은.

 

       그런데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해도 의문이 많이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내생이 있을까, 전생이 있을까? 우리가 이 백중 기도를 한다면은, 윤회를 한다면은, 전생과 금생과 후생이 이렇게 쭉 이어져 있기때문에 여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돼요. 초기 경전에 보면은, 여러분들이 십이연기를 얘기하는 것은 뭔가 하면, 십이연기가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 겁니다. 윤회의 길은 고통스러운 길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거예요. 고통이 너무 가중되고 이러면은 그런 마음을 먹게 되죠. 그런데 제대로 길을 찾아서 이렇게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을 해서 깨달음의 길로 가면 되는데,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이 부지기수 많아요.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그런데 어쨌든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 하는 이 윤회의 길이 고통스럽지만은, 뭘 의미하느냐.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일단 얘기를 해주고 있고, 그 다음에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때 그 열반이 바로 죽지 않는다는 거죠. 불사라고, 번역을 죽지 않는다. 굉장히 중요하죠, 얘기하자면.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슬퍼하잖아요. 그런데 죽은 사람을 보면, 가족이나 또는 친척이나 지인이 죽었을 때 굉장히 슬퍼하지만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은 자기도 죽는다고요. 그렇잖아요. 그러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말하자면.
       그래서 여기 백중기도를 기도만 할 게 아니고 여러분들은 명상도 겸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어쨌든 죽지 않는 이 길에 대한 얘기를 좀 더 심도 있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살고 있는 것은 본유(本有)라 그럽니다. 근본 본자에 있을 유자 쓰는데, 유는 생존이라는 뜻이에요. 죽을 때는 사유(死有)라고 합니다. 죽을 사자에, 있을 유자예요. 그다음에 죽고 난 뒤에 중유(中有)라고 합니다. 가운데 중자에, 있을 유자 또는 중음이라고 하죠. 다시 또 태어나는 것을 생유(生有)라고 합니다. 날 생자에, 있을 유자 씁니다. 그래서 이런 네 단계를 거칩니다. 그래서 살았다가 죽어서 중유의 세계에 있다가 다시 또 태어나는 거죠. 이렇게 반복을 하는 겁니다.

       제가 오래전에 어느 스님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스님이 그 날짜만 되면은 꿈속에서 제사상을 받는 꿈을 늘 꾸는 거죠. 일 년에 딱 한 번씩. 이 스님도 큰 스님인데 이상하다. 꼭 이날 되면 내가 제사상을 받지.” 그리고 어느 날 꿈속에서의 그 절을 알게 됐어요. 근데 그 절에 사는 스님에게 물어본 거죠. “몇 월 며칟날에 큰 재를 지내는 것 같은데, 누구 재를 지내느냐?” 이러니까 아무개 큰 스님의 재를 지내고 있습니다.” 전생에 자기가 그 절의 주지였고 큰 스님이었던 거죠. 그런데 이게 뭘 의미하겠어요? 생을 바꾸어도, 생을 바꾸어도 연결돼 있다는 거죠. 전부 다 연결돼 있기 때문에 설사 돌아가신 분이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동물로 태어나거나, 천상에 태어나거나, 어디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이 기도를 드리면 그대로 연결돼 있는 거죠.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백중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죠. 생명에 대한, 이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생명에 대한 근원에 대한 얘기를 좀 하죠. 그러고는 이제 중음의 세계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거시 세계를 얘기하는 학자는 천문학자들이죠. 미시 세계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양자 역학을 하시는 물리학자들이에요. 이 지구는 45억년 전에 형성이 됐다고 합니다. 이 태양계. 그러면은 우주는 언제부터 시작됐느냐면, 과학자들은, 천문학자들의 이야기는 138억 년 됐다는 거죠. 138억 년 전에 빅뱅이 일어난 거예요. 우주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형성돼 왔다는 겁니다. 이걸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하면은, 밤 하늘의 별들이 끊임없이 멀어져가고 있다. 그래서 우주는 팽창해 가고 있다 하는 것은 최초의 빅뱅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 점에서 폭발해서,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데 여기에서 이제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가 있습니다. “이 우주에는 생일이 있구나.” 우주의 생일이 138억 년이구나. 다들 그렇게 생각을 하죠. 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면은 이분의 이야기는 그런 거죠. 보이저호를 타고, 보이저호에서 찍은 지구를 보면 지구는 파란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근데 그 작은 점, 우주에서 보면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 이 지구에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 그러면 이 지구를 소중하게 여기고, 지지고 볶으면서 살 게 아니고, 서로 협력해서 지구를 잘 보살피면서 살아야 되지 않느냐 하는 식으로, 생명은 귀중하고 기적적인 것이다라는 걸 이 사람은 얘기를 해요.

       그런데 제가 그걸 보다가 조금 화가 났어요. 제가 왜 화가 났느냐 하면은, 생명을 얘기할 때 단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에 한해서 얘기하고 있다, 형태를 가지고 있는 몸을 근거로 해서 생명체를 논하고 있다 하는 겁니다. 천문학자나 물리학자들은 마음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어요, 얘기하자면. 이게 이제 문제죠, 말하자면. 그래서 이제 천문학자들에게 물어보면은 빅뱅 이전에 뭐가 있었느냐 이렇게 물어보면은 말을 못해요. 과학이 우리에게 다 해답을 주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왜 얘길 못 하느냐 하면, 빅뱅이 일어나고 난 다음에 시간과 공간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는데, 빅뱅 이전은 시간을 얘기할 수도 없고 공간을 얘기할 수가 없다. 빅뱅 이전에 시공간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만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사람이 죽고 이러면, 물리학자들은 이 온 우주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원자로 영생한다. 기껏 하는 얘기는 그렇게 밖에 얘기를 못 하는 거죠. 이게 과학자들의 한계예요.

이제 옛날 큰 스님들은 그렇게 얘기를 안 하고 있죠. 그래서 함허득통 선사는 뭐라고 얘기하는가 하면은, 천지가 생기기 이전에 이것이 있었고, 천지가 생기고 난 이후에도, 천지가 소멸하고 난 뒤에도 이것은 늘 존재한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이것은 바뀌지 않는다. 현재 순간 늘 있고 수많이 흘러간다 하더라도 현재 순간에 벗어나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한 물건이라는 이름을 붙인, 어쩔 수 없이 한 물건이라 했을 뿐인데, 이게 바로 마음을 얘기하는 거예요. 이 마음이라는 것은 형태도 없고, 색깔도 없고, 물질이 아니에요. 근데 마음의 특성은 대상이 무엇인지를 아는 성질이 있어요. 일단 물질이 아니니까 생로병사가 없는 겁니다. 죽음이 없는 거, 생멸하지 않는 거예요, 이게. 근데 우리 마음은 늘 대상을 인식하면서 생겼다 사라졌다 반복하잖아요. 그 생멸하지 않는 마음이 있어요. 이게 굉장한 거죠. 생멸을 하지 않는다하면, 생겼다 사라졌다 하지 않는다면은,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넘어섰다는 거예요. 이걸 옛날 스님들이 얘기를 하고 있고, 이게 쭉 내려온 겁니다, 지금까지.

       달마스님하고 혜가 스님이 대화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래, 반연을 다 끊었느냐?” “다 끊었습니다.”“그러면 너 단멸에 떨어지지 않느냐?” 단멸은 끊어질 단자, 멸할 멸자. 다 소멸하고 없지 않느냐. “단멸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명명불매(明明不昧)하고 료료상지(了了常知)합니다.” 밝고 밝아서 어둡지 않고 또록또록하게 항상 아는 앎이 있습니다. 항상 안다는 거죠. 돈오입도요문론에서는 이걸 뭐라고 얘기하는가 하면은, 대상이 있어도 늘 보고 있고, 대상이 없어도 늘 보고 있다. 소리를 늘 듣고 있다, 소리가 없어도 늘 듣고 있다. 이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 거죠. 그래서 금강삼매경에서 뭘 이야기하냐 하면, 의식이 한 번 탁 깨어나면 다시 매하지 않는다. 어두워지지 않는다. 이거는 불생불멸하는 걸 얘기해요. 이건 시간과 공간이 없어요. 시공간 속에 있으면서 이거는 늘 현현해 있는 거죠. 죽지 않는다. 눈을 뜨나 감으나 보는 마음이 바뀌지 않는 걸 얘기하는 겁니다. 피곤해서 눈을 이렇게 감고 있어도, 눈은 떠 있어요. 화가 나서 펄쩍펄쩍 뛰어도 그놈은 늘 그대로 바뀌지 않아. 슬퍼서 엉엉 울어도 이놈은 바뀌지 않는 놈이에요.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넘어선 거죠. 빅뱅 이전부터 있었던 거죠. 이게 생명의 근원이에요. 그래서 거기에 달라이라마 스님은 이렇게 우주의 기원을 이야기를 하고, 생명의 기원을 얘기할 때 마음을 빼놓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우주를 순환론을 얘기하는 성주괴공(成住壞空)으로 얘기합니다. 이루어졌다. 빅뱅이 일어나 이루어졌다가 머물렀다가 파괴되고 사라져. 아무것도 없이 다 사라졌다가 다시 또 한 극점에서, 변곡점에서 빵하고 또 우주 빅뱅이 일어나서 또 이루어졌다가 머물렀다가 파괴되어 없어졌다. 반복한다는 거죠. 달라이라마 스님 말씀은 그런 얘기를 했어요. “빅뱅 이전에도 빅뱅이 있다. 한 번만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그러면 우주는 이렇게 광활하고 큰데, 마음은 작은 것이 아닐까? 혹시 또 그런 생각하실 분 있죠? 대승기신론에서는 그렇게 얘기 안 해요. 등허공계, 허공의 세계와 같이 두루하다. 그래서 마음하고 허공을 이렇게 비교를 해보면, 공통점이 있고 다른 점이 있어요. 허공은 무한하게 크죠. 근데 마음도 허공과 같이 무한히 큰 겁니다. 무한이에요. 마음이 번뇌 때문에, 여러분들의 무지 때문에, 여기에 이 육체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이 생각되는 겁니다. 마음은 큰 겁니다. 그리고 허공은 생멸이 없듯이, 마음 자체가 생멸하지를 않아. 근데 다른 점이 하나 있어. 그게 뭐냐. 허공은 아는 성질이 없어요. 근데 마음은 아는 성질이 있는데, 그래서 진실식지라고 그래요, 대승기신론에서. 내가 이게 어리석어서 잘못 인식을 하든, 바르게 인식하든, 치매가 걸려가지고 대상을 인식을 하든, 술을 마시고 희미하게 인식을 하든 인식해서 아는 것은 진실한 것이다. 그것은 죽지 않는 놈이 돼. 그래서 상지라고 그랬어요. 항상 안다. 근데 허공은 그게 없어요. 그래서 어리석은 자들은 허공이 궁극인 줄 착각을 해가지고 몸 다 때려 부수고 모두 없애서 허공이 되려고 하는 자들이 부지기수만 해. 그래서 능엄경에서 그런 자들을 유상 무식외도(有相 無識外道)고 비판을 해버려, 부처님께서. 물질이 없는 걸 추구하고 있는 외도다 이거예요. 물질이 없는 걸 추구하는 생각이 있는 외도라고. 그런 자들은 가보를 받는다. 어떤 가보? 귀신의 가보를 받는다 이래요. 귀신은 아귀에 속하죠.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얘기하고 있는 거는 죽지 않는 것, 불사, 죽지 않는 거에 대한 얘기에요. 우리 마음의 본성이 열반이라고 그러죠. 니르바나. 열반은 불사라고, 죽지 않는다. 마음의 본성이에요. 그리고 반야라고 하기도 하고, 원각이라 하기도 하고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어요. 지금 현재 이렇게 돌아가신 분들 위해서 기도를 하고 이러지만, 자세하게 생각해보면은, 이 윤회한다는 것은 결국 안 죽는다는 얘기고, 그러면 왜 우리가 고통받을까를 생각하면은 우리는 이런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래서 십이연기에 보면 무명, , , 명색, 육입, , , , , , , 노사잖아요. 그럼 이게 딱 줄이면 어이 됩니까? 무명에 의해서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다는 거죠. 탐욕이 있으면 빨리 늙어요. 그래 보시를 좀 많이 행하고 오래 삽니다. 젊게 살 수 있어요. 화를 내고 이러면은 뼛속까지 병이 들어요. 이게 경전에 나오는 얘기예요.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을 자비심으로 대하고 이러면 병이 없어요. 어리석음은 죽음을 가져다주죠. 어리석음이 무명입니다. 밝음이 없다는 거죠. 근데 이것을 지혜로 바꾸면 안 죽는다는 거죠. 경전은 그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기도를 통해 가지고 죽지 않겠다, 열반을 구하겠다, 내가 열반을 얻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게 중요한 거죠. 이것이 진정한 백중기도의 핵심이 아니겠습니까? 생각을 해보십시오.

       우리가 죽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윤회를 한다고 하는 건 죽지 않는다는 말인데, 결국 우리가 백중 기도하는 것 자체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건 안 죽는다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죠. 죽는다고 죽어서 없어진다, 단멸이라고 그런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죠. 우리 죽으면 끝나는데 왜 기도를 해요.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것을 인연으로 해가지고, 기도를 인연으로 해서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좋잖아요.

       자 그러면은 간단하게 죽어서 다시 태어나 환생하는 과정을 얘기를 해드리죠. 이게 중요하잖아요. 사람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죽는다. 그러면 지수화풍, 제일 먼저 무거운 것부터 해체가 돼요. 흙의 요소, 피부라든지 뼈라든지 이것부터 해체가 돼요. 그러니까 흙의 요소가 물의 요소로 해체되고, 물의 요소는 불의 요소로 해체되고, 불의 요소는 바람의 요소로 해체되고, 바람은 의식 속으로 해체된다. 그래서 몸의 구성요소인 흙, , , 바람이 전부 다 해체되고 결국 의식만 남아 있는 상태거든. 그때는 이 호흡이 끊어진 상태일 거예요. 병원에서 죽으면 호흡이 끊어지면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못하게 해야 돼요. 그때 다시 죽음의 과정을 한 20분 정도 또 거쳐요. 그래서 호흡이 끊어지고 난 다음에 한 30분 정도는 몸에 손대지 말라고 얘기해야 돼요. 아주 중요한 겁니다. 이제 그다음에 흰색 마음이 생기며 확 밝아요. 보통 임사 체험을 한 사람들은, 죽다 살아온 사람이 밝다고 얘기하는 그거예요.

       두 번째 단계는 이 붉은 색 마음이 나오는데, 저녁노을 같이 주변이 아주 붉고 아름다와요, 이제 흰색 마음이 밝게 보일 때는 분노가 사라지고, 저녁 노을 같이 밝게 보일 때는 탐욕이 사라진다고 얘기하죠. 근데 그때 다시 되살아난 사람도 있어요. [달라이라마, 죽음을 이야기하다]는 책을 보다 보면, 그 책을 저술하신 분이 제프리 홉킨스라는 분인데, 그 버지니아인지 어떤 대학 교수예요. 달라이라마 스님과 대담을 해가지고, 전부 그걸 기술해서 책이 나왔는데, 거기에 이분이 그런 거죠. 자기가 이 밝은 빛을 보고 그다음에 이제 붉은색 빛을 보다가 깨어났다는 거죠. 그 다음에 하늘과 땅이 딱 만나는 것처럼 깜깜해진다는 거죠. 깜깜해지면 보통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 명상을 하지 않으면 의식이 기절해버려, 놀래가지고. 3일이나 4일쯤 되면 깨어나는데 그때는 요즘은 삼일장해서 다 화장해버리잖아요. 제사 지낼 때야, 그죠. 그때 막 깨어나서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제 그걸 지나면 그다음에는 새벽 하늘에 이렇게 해가 뜨듯이, 해가 뜨기 전에 새벽에 확 밝듯이 마음이 밝아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것을 뭐라 그러냐면 청명한 빛, 정광명이라고 그래요. 여러분 마음의 본성이 빛입니다. 가장 극미시한 마음의 빛이죠. 그래서 이제 대개 공성에 대한 학습을 하고 수행을 한 사람은 그것을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런 법신을 얻는, 생사에서 완전히 벗어나죠, 얘기하자면.

       그런데 못 깨달으면은 이제 49일 동안 이 중음의 세계 속에 있는 거예요. 그러면 49일 동안 7일마다 한 번씩 태어나고 죽고 반복해요. 여섯 살에서 일곱 살의 몸을 갖고 있어요.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몸이 아니에요. 기운, 그 바람 요소인 기운과 마음에서 형성된 몸을 이루고 있는 거에요. 이것은 이제 일곱 번 죽고 일곱 번 태어나. 그래서 7일마다 한 번씩 재를 올리는 거예요. 여기도 그렇게 하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죠. 그때는 수행자는 보신불의 수행을 한다. 보신 부처님 몸이 기운과 마음으로 이뤄진 몸이거든요. 중음의 몸하고 똑같아요. 기도하실 분은 기도를 하고, 중요한 거는 어떻게 해야 될까? 좋은 어머니를 선택해달라고 불보살에게 기도를 하는 게 좋겠죠. 그래서 49일쯤 되면, 이제 다시 어머니 자궁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근데 이제 성인들은 어떨까? 성인들은 자궁에 들어갈 때도 의식이 깨어 있어요. 그래서 이걸 입태일여(入胎一如)라고 그래요. 그러면 태중이 있으면서도 의식이 깨어 있으면은 태중일여(胎中一如)라 그래요. 그래서 거기에 태자서응본기경이라 하는 경전에 보면 싯다르타 태자가 호명보살이죠. 어머니 자궁에 들어가고, 거기에서 명상을 하거나 또는 신도를 모아놓고 법상에 올라 법문하기도 하고, 자궁 속에서. 마야 부인은 그걸 보고 있고. 이런 게 이제 경전에 나오는 거예요. 태어날 때도 의식이 깨어 있으면 출태일여라 그래요. 그리고는 만일 그런 경지에 간다면은 청담스님은 그것을 영겁일여라고 그래요. 영겁. 이제 영원히 안 이분은 생로병사도 일여하는 상태라는 거죠. 그런데 이런 입태 태중 출태 일여 이런 이야기는 초기 경전이 나와요. 얘기하자면. 그리고 제가 얘기했잖아요. 눈을 뜨나 감으나 보는 마음이 바뀌지 않고, 늘 소리를 듣거나 안 듣거나 이렇게 듣는 마음은 늘 현현해 있다. 안 죽는 놈이다.

 

        달마 스님하고 혜가 스님 이야기를 하다 말았는데, 달마 스님이 아무 소리 안 했어요. 왜냐하면 명명불매 료료상지를 얘기했는데도 확답을 안 하니까 여기 부처님 법인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 말씀해 줄 수 없다. 이렇게. 그러니까 혜가스님이 저 마음이 너무 답답합니다.” 그렇죠? 설명해 줄 수도 없다고 그러죠. 네가 깨달았다 안 깨달았다 인가도 안해주지, 답답하다, 그렇죠? 그러니까 너 그러면 답답한 마음을 가져오너라. 내가 해결해 주겠다.” 이래요. 그러니까 혜가스님이 아무리 답답한 마음을 찾아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이러니까 절을 딱 하는 거야. “니가 뭘 봤기에 니가 나한테 절을 하느냐?” 이렇게 달마 스님이 말하니까 이렇게 얘기해요. “명명불매, 밝고 밝아 어둡지 아니하고, 료료상지, 또록또록하여 죽지않는 항상 아는 앎이 있습니다. ” 그때서야 달마 스님이 인가를 해줍니다. “그래 그것이 부처님부터 내려오는 심체이니라. 잘 간직해라.” 인정을 해주는 거죠. 핵심이 거기에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여러분들도 기도를 열심히 하고, 기도만 하지 말고 명상도 좀 하면, 수행도 하면 좀 좋지 않을까? 이생에 수행 못할 분은 열심히 기도해도 괜찮아요. 기도만 해도 괜찮은데, 그래도 호기심이 있으면 명상을 좀 해봐. 삿된 명상을 하지 말고. 삿된 거 많으니까.
        어쨌든 이제 제가 여러분들이 죽음의 과정이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쭉 했는데, 원래는 여덟 단계로 쭉 가다가 태어날 때는 역순으로 여덟 단계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런 과정이 완전히 종식된 게 열반을 얻는 거예요. 열반을 얻는데, 열반이 이제 여러분 알다시피 료료상지 또록또록 항상 아는 앎 그게 열반이에요. 대열반. 그걸 원각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승가에서는 본래 면목이라고 그러고, 한 물건이라 그러고, 화두라고 그러고, 불성이라고,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어쨌든 과학자들이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해결하지 못하는, 천문학자도 그걸 모르고, 물리학자들도 모르는 이야기, 이것은 오로지 절집에만 있어요, 얘기하자면. 그래서 부처님부터 이게 전승돼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꼭 이거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백중 기도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중생 구제하는데 내가 불사의 경지 이르고, 이뤘다면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죠. 그런 분들 구제해야 되겠잖아요.

       마지막으로 딱 한마디를 하면은, 유마경에 보면, 유마거사가 급고독장자 집에 가요. 그러니 장자의 아들하고 대화를 하면서, 급고독장자의 큰 재가 열리고 있는데, 유마거사가 하는 말이 돌아가신 분에게 올리는 가장 최상의 공양은 법공양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걸 잘 기억을 하고, 제사 지낼 때도 그냥 절만 하지 말고 마지막에 반야심경이라도 한 편 읽어 드리세요. 그게 최상의 공양입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