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백중기도] 8월 9일 백중4재 법문 2023-08-09

 

        안녕하세요.

       제가 사실 진관사를 세 번째 온 거거든요. 예전에 불교학회 때 한 번 왔었고요. 그다음에 <나랏말싸미> 촬영한다고 왔었는데, 저는 올 때마다 굉장히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이게 비구스님들도 잘 못 하는 거고. 부처님 말씀에 그런 게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얘기인데, <수행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간다.> 보통 모든 향기는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데, 그 사람의 진실한 어떤 에너지야말로 바람을 거슬러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라고 하는 그런 말씀이신데, 초기경전에 나오는 얘기거든요. 잡아함경이나 이런 데 나오는 얘기인데, 이게 원력이라는 게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서울 사람으로 이 동네가 상태가 별로 안 좋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이렇게 보면. 그런데 여기 들어오니까 이 법당 안에 모나미 볼펜이 가득 차 있네. 말귀를 못 알아들어(웃음). 여러분이 모나미 볼펜 같아요, . 이렇게 복장을 갖춰서 저는 처음에 무슨 독립운동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여기가 예전에 백초월 스님 태극기가 발견됐다고 그래서 이게 또 독립운동의 성지인가 이렇게 생각했다니까. 유관순도 아니고 깜짝 놀랐어요.
        이런 작은 절이 사실은 여기가 왕기가 서린 유서 깊은 절이에요. 제가 왕기설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오대산 상원사나 이런 데도 좋아하고. 그리고 여기는 회주스님이 탄허노스님께 가르침을 받으신 어른이시기도 하고. 그리고 여기 또 다 아실 거 아니에요. 여기가 천추태후가 현종을 이렇게 죽이려고 했을 때 진관스님이 구해줘서 결국 절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왕기운이 서려 있는 데는 원래 옛날부터 절이 아니더라도 절로 만들어요. 그게 강화도 행궁 그쪽에 철종 살던 데도 나중에 궁이 됐고. 궁이 되거나 절이 되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운현궁도 그렇게 해서 궁을 만들어 버렸고. 중국 같은 경우는 옹화궁, 북경에 가면 옹화궁이라고 있어요. 거기는 황제가 되고 나서 절로 만든 거예요, 예전에. 그러니까 왕기가 있는 데는 일반인이 살 수가 없어. 그래서 절을 만들거나 궁을 만들거나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유서 깊은 데를 비구니 스님이 불사한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근데 큰 원력으로, 그게 이제 수행의 향기, 원력의 향기예요.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냐면, 제가 90년대생이긴 한데(웃음), 나이 50이 넘어가면서, 제가 저 아는 스님들하고 몇 명하고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이게 우리가 먹고 사는데 더 이상 진력해서는 너무 인생이 추접스럽다. 예전 같으면 갈 나인데, 죽은 뒤의 나이까지도 자꾸 먹고 사는 데 집착한다는 것은 너무 좀 그러니까, 우리도 포교를 하든지 원력적인 삶을 살자. 여기는 이제 다 갔다고 생각하고, 50까지로 다 살았다고 생각하고.” 여러분도 다 가신 나이에요. 제가 그런 얘기하거든요. 신사임당이 마흔일곱에 죽었고, 율곡이 마흔여덟에 죽었어요. 우리 나이로 마흔아홉에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죽는다는 이야기는 평생 다 산 거예요. 그리고 나머지는 보람으로 살아야지, 욕심으로 사는, 그러니까 젊었을 때는 출세도 해야 되고 뭐도 해야 되고 이런 욕심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거를 나이 먹어서까지 계속 유지한다는 거는 너무 슬픈 거예요. 인생이. 그래서 그런 거 말고 삶의 전환점을 마련해서, 뭔가 보람되고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일들을 좀 해보자. 개인적으로는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돈에 종속돼서 나이 먹어서까지 그렇게 산다는 건 제가 보기에는 조금 그런 것 같아요. 너무 슬픈 거지. 그래서 원력적인 삶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한 사람 원력으로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비구스님으로서는 부끄럽습니다. 제가 봉은사 소임도 살아봤지만, 그런 절도 계속 저러고 있는 것도 너무 슬프죠. 그래서 위험한 발언일 수 있는데, 1년 결산이 나오거든요. 그게 뭐 대단하대. 그래서 내가 뭐라고 얘기했냐면 여기에다 주차장 만들어도 이거보다 더 나와요.” 내가 이랬어. “그냥 주차장을 만들어, 주차 타워를 만들어서 1년 돌리면 그거보다 수익이 더 나와.” 이게 뭔가요 싶지요? 그래서 이게 조건이라기보다도, 사람의 원력이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절이 이 진관사가 아닌가 싶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송광사도 되게 좋아하거든요. 송광사. 제가 경부선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송광사에는 못 가는데(웃음), 제가 송광사를 굉장히 좋아해요.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면 고려가 수도가 개성이에요. 개경. 지금 서울보다 더 위쪽이잖아요. 우리 개성공단 할 때 거기잖아요. 거기서 송광사, 순천이 진짜 제일 끝입니다. 거리상으로 봤을 때 북쪽은 그렇게까지 멀지 않잖아. 국경이 고려 국경은 조선 국경보다 더 짧거든요. 그런데 맨 끝에 거의 땅끝까지 최남단까지 간 거예요. 거기서 수행결사 운동을 지눌 스님께서 펼치신 거고, 나중에 한 2~300년이 흐르니까 고려 말이 되면 기록에 그렇게 나옵니다. <동방 제1 도량 송광사> 이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나옹 스님, 혼수 스님, 무학 스님 같은 분들도 다 송광사 주지로 들어가요. 이유가 뭐냐 하면 송광사 주지를 못하면 인정을 못 받아, 그 정도로. 그때 고려에서 제일 큰 절은 흥왕사입니다. 흥왕사. 수도에 있는, 개성에 있는, 요즘으로 말하면 조계사나 봉은사 같은 절이에요. 거리상으로 비교가 안 되는 거리에 있어. 그런데 그걸 원력으로, 큰 스님 원력으로 역전시켜서 바꾼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한 절에 본사가 2개가 있는 데가 금강산의 유점사, 예전에 건봉사 이렇게 있었고, 산 내, 산 외에. 그다음에 조계산에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에 송광사, 선암사가 있습니다. 그게 굉장히 유서가 깊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절이 비구니계의 송광사가 안 되겠나 싶은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게 혼자서는 절대 못 합니다. 그 밑에 스님들이, 어른 스님도 잘 하셔야 되지만, 사실 밑에 스님들이 이거 갈아 넣으면서 가는 거예요. 진짜.

       그래서 아니 그걸 원한 건 아니고, 이러한 원력에 여러분들도 사실 이제 살 만큼 사셨으니까, 보람 있는 삶으로 인생을 잘 회향할 수 있도록.

 

        그리고 저는 그런 얘기해요. 복지관이나 이런 거 다 필요 없다. 왜냐하면 막상 지금 여러분 연세에는 나이 먹으면 복지관에 가고 요양원에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막상 그 나이가 되잖아요. 못 움직입니다. 돈이 있는 분들도 못 움직입니다. 이유가 뭐냐면 두 가지 때문에 그렇거든요. 하나는 내가 갔다가 다시 못 온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갈 수는 있지만, 요양원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어. 죽어야 나온다. 그래서 그게 너무 큰 부담인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좀 젊었을 때는 그게 그렇게 되는 거지. 인생이라는 게 어떻게 되겠어. 그러면 자식이 나를 품고 살 거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 상황이 되면 그게 안 움직여. 발이 안 움직여. 그리고 아무리 시설이 좋은 데로 들어가도 가보면 다 나보다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아. 근데 옆에서 보고 있으면 같은 상태인데, 내 눈에는 내가 제일 상태가 좋아. 그래서 거기에 그런 분들하고 같이 있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분이. 진짜. 그래서 이렇게 발을 못 떼더라고. 말은, 입으로는 건강하실 때는 계속 그렇게 얘기했는데, 막상 그 상황이 되니까 발이 안 떨어져. 마치 소 도살장 끌려가듯이. 그런 모습들이 있어요. 주변에서 보시면, 제가 제 주변에 워낙 이렇게 또 삭은 분들이 많이 계셔서 제가 잘 압니다. 여러분 정도면 지금 꽃띠입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게 저는 종교 단체, 종교 시설이라고. 여기는 이렇게 섞여 있잖아요. 막말로 얘기해서 자녀분들을 여의고 나서, -거의 그게 제가 그런 얘기 하거든요.- 꼭 이혼을 안 했어도 독거노인 같이 살지, 서로 이렇게 밥 먹을 때만 잠깐 보고, 견우와 직녀 모드로다가 바뀌지. 밥 먹고 잠깐 기본적인 회화, 서로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기본적인 회화 몇 마디 하고 별로 대화 없죠. 절간보다 더 조용하다. 핸드폰하고, 핸드폰을 보거나, 테레비를 보거나 안 그러면 개하고 대화를 하거나. 제가 늘상 얘기하는 거 있어요. 나이 먹으면 개 언어를 배워야 된다. 같이 있으면 부부끼리 대화하는 것보다 개랑 말하는 게 더 많아. “어유 밥 먹었어요?” 이러면서 개하고 얘기를 한다니까. 남편하고는 얘기 안 해. 서로 간에. 그래서 개 언어를 못 배우면 굉장히 힘들어집니다.
        근데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세요. 논어에도 그 말이 있어요. 공자에게 장저, 걸익이라는 은자, 그러니까 숨어 있는, 나는 자연인이다같이 사는 사람들이에요. “. 안 될 거를 너는 왜 이렇게 힘들게 해. 어차피 세상은 네가 한다고 해서 안 바뀌어.”라고 얘기했을 때 공자가 뭐라고 얘기하냐면, “안 바뀔 거는 나도 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과 살아야지,” 개랑 살 수는 없잖아 이렇게 얘기합니다. 물론 개랑 살 수는 제가 붙인 겁니다. 근데 사람과 더불어 산다는 게 그게 쉽지 않아요. 연세 드시면 이게 다 흩어지기 쉽거든요. 그래서 이런 가까운데, 제가 월정사에 있는데, 월정사 같은 데서도 그렇게 됐으면 참 좋겠어요. 그런데 산사가 너무 멀어요. 월정사에 한 번 오라고 그러면 사람들이 큰 마음을 먹고 와야 돼. 나도 미안해. 아니 그게 현실이에요.

 

        그래서 이런 가까운 데다가 이런 좋은 도량을 만들고, 그다음에 이런 선진식 스님들을 모시고 같이 갈 수 있는 거는 참 여러분이 복을 받으신 거예요. 그래서 연세 드셔서도 그게 막상 너무 연세 드셔서 오시면 절에서도 찬밥이다마일리지를 잘 적립해서 이게 실버, 골드 그다음에 플레티늄 이렇게 올라가는 거예요. . 그렇게 해야 이게 위치가 안 무너지지. 그래서 그렇게 같이 있으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젊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하는데, 일찍 죽을 자신이 없으면 기도를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자기 자신을 단도리 하지 않으면 그게 너무 슬퍼지는 거예요. 그래서 집안에서 뱅뱅거리고. 진짜 마치 원룸에 사는 강아지 보셨어요? 나는 되게 슬프다고 생각하거든요. 원룸에 사는 강아지, 아니 젊은 애들이 그렇게 키워요. 그러면 직장에 일하러 나가면 하루 종일 소파에서 자빠져 있는 것 밖엔 없어. ‘언제 올란가’, 이러면서 이게 인생인가, 이러면서 이러고 있어요. 그러다가 발자국 소리 나면 딱 일어나서 대기하는 것처럼, ‘아이고 내가 이렇게 먹고 산다.’ 이러면서. 근데 너무 심심할 것 같지 않아? 그래서 개에게도 스마트폰을 지급하라.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드는데, 아니 연세가 드시면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개가 요즘 환경이 좋아져서 몇십 년도 살고 이런 개들도 있어요. 예전 같으면, 저희 어렸을 때 보면 7~8년도 살기 힘들어요, 사실. 마당에서 이렇게 굴러 댕기면 그랬었어요. 근데 지금 막 15년도 살고, 어떤 거는 20년도 살고, 나중에 신선 되는 놈도 있을 거예요. 개신선.

        지금 그런 상황이 됐는데, 비극적인 얘기를 해 드리면,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야 되실 나이가 85세에서부터 거의 100에서 105세까지, 15년에서 20년을 그렇게 가야 돼요. 거동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기도하는 자세를 가지고, 기도가 곧 명상이에요.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들을 계속 해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 이거는 진짜 감옥입니다. 감옥. 그리고 이거는 누구한테 해당되는 게 아니고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얘기예요.

        제가 어렸을 때 공부를 못해 가지고 집안에서 별로 안 좋아했어요. 저를 되게 안 좋아했는데, 우리 형들은 되게 공부를 잘했거든요. 그래서 다 좋은 학교를 나왔어요. 좋은 학교 좋은 과를 나왔는데, 근데 지금은 저희 형들이 다 저를 부러워하죠. 왜냐하면 거기는 정년이 있어. 그러고 나와가지고 놈팽이야. 공부 잘하는 사람이 나오면 재취직도 잘 안 돼요. 이게. 그러니까 현장에서 하시는 분들이 재취업도 되지, 이렇게 펜 굴리던 사람들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잔소리, 유튜브 보면서 악플 달기 이런 거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우리는 정년이 없잖아, 이게. 우리 스님 오래 가신다. 주지 스님만 잘 보여.

        그래서 여러분들이 우리 스님들 잘 모시고, 좋은 도량에서, 왕기가 서린 좋은 도량에서 기도를 열심히 하시면, 여러분들도 인생이 잘 풀리고, 궁지에 몰렸던 왕자가 기사회생을 해서 왕이 됐는데, 그런 기운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겠지, 그걸 이제 빨아야지, 이렇게. 우리 집으로 이렇게 잘 당겨 가시고. 그리고 여기가 또 수륙사였었잖아요, 옛날에. 수륙도량. 그래서 삼화사, 그다음에 오대산 상원사도 수륙 사찰이었었어요. 그래서 이런 수륙도량에서 이런 백중을 맞아서 기도한다는 것도 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얘기 들어보셨어요? 예전에 꼰대 같은 얘기를 하나 하면, 삼종지도라고 거지 같은 말이 있죠, 조선시대 때. 어렸을 때는 아버지 말을 듣고, 젊어서는 남편 말을 듣고, 갈 참이 돼서는 아들 말을 듣는다. 근데 지금은 시절이 바뀌어서 3대 행복이 있죠, 3대 행복이. 그게 어렸을 때는 부모 카드를 쓰고, 젊어서는 남편 카드를 쓰고, 이제 나이 먹어서는 자식 법인 카드가 하나 오면, 이거같이 행복한 게 있겠나 싶어. 게다가 한도도 좀 없고 이러면 더 좋지. 그런 분을 기리는 명절이 우란분절이에요.(웃음) 진짜라니까.

 

        우란분절에 이제 두 가지가 있어요. 이 우란분에 천도하는 게 두 가지 의미가 있어. 하나는 목건련 존자하고 관련된. 인도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에요. 제가 여기 이 절에 와서 우리 주지 스님한테 여기는 그러면 기도 기간에, 백중 기도 기간에 어떤 경전을 하세요?” 그랬더니 부모은중경을 한대요. 그런데 그건 내가 밝힌 거거든. 뭘 밝혔냐면 인도의 효는 전부 여성 중심 효예요. 동아시아의 효는 남성 중심의 효거든요. 그래서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셨다. 그게 남성 중심 구조를 얘기하는 거야. 아버지가 낳긴 뭘 낳았어. 엄마가 낳고 엄마가 길렀지. 아버지가 뭘 낳았어. 그리고 예전에는 형편 좋은 집 그러니까 양반집 아버지는 그냥 뻐꾸기여. 잠깐 왔다가, 뭘 하는 것도 없어. 바람이나 피울 줄 알지 뭘 했겠어. 그게 현실이거든요. 근데 왜 아버지가 날 낳았다라고 얘기하냐면 부계 씨족제, 아버지 성을 따르기 때문에 그래요. 아버지 성을 따르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들 같은 경우가 예전에 제사 같은 거 지내고 할 때, -집에서 아직도 지내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거 할 때 보면 제수는 며느리가 다 하고 며느리는 참석 불가죠. ? 성씨가 다르니까 그게.
        그런데 인도가 굉장히 재미있는 게, 인도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효만 강조하지, 아버지에 대한 효 나오는 데가 없어. 굉장히 재미있어요. 부모은중경도 봐봐. 부모은중경도 보면, 부모은중경 내용이 다 필요가 없습니다. 어버이 은혜, 양주동 박사가 이렇게 작사를 했거든요. 작사를.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어쩌고저쩌고. 그 어버이은혜라는 노래가 부모은중경을 압축해 놓은 거예요. 당신이 감명을 받아서 그걸 추려서 가사를 적었다고. 그런데 그게 원래 이름이 어머니 은혜입니다. 어버이 은혜를 자세히 들어보면 아버지 얘기가 없어요. 부모은중경은 처음부터 어머니 뼈 얘기부터 시작을 해. 동아시아 같으면 그게 아버지 뼈로 나와야 돼. 어머니 뼈부터 시작을 하는 거야. 이것만 그러는 게 아니야. 목건련이 구했던 대상도 어머니입니다. 지장경을 봐도 어머니를 구제하는 거예요. 아사세왕이 빈비사라 아버지를 죽이고, 그때 유폐를 시키거든요. 이렇게 금고, 가둬버리는 거죠. ? 직접 죽이는 게 너무 부담스러운 거야. 약간 눈이 멀어서 구테타를 일으켰어도, 아버지를 죽이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그냥 유폐시키고, 이제 굶겨 죽이는 걸로 내가 밥 넣어들이라는 얘기를 까맣게 잊었네.’ 이제 이렇게 하려고 했던 거지. 죄의식을 조금 벗어나려고. 엎어치나 매치나 아닙니까? 다르지. 좀 다르지. 이렇게 이제 백중 때 같은 때도 이런 거 있잖아요. 제가 말씀드리기 죄송하긴 한데, 너무 좀 아픈 사람을 긁는 것 같아서 죄송하긴 한데, 그게 수자령에, 유산되는 경우도 있고, 예전에 우리나라가 못 살 때, 산아 제한해서 둘 이상 못 낳게 해서 인공적으로 유산하신 분이 있어요. 나 그거 진짜 잘못됐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근데 그냥 유산이 된 거 하고, 유산을 시킨 거 하고 느낌이 다를 수 있죠. 이게 같을 수는 없죠. 여자분들인데도 동의를 안 하네. 나는 다를 것 같은데, 그냥 생각을 해봐도. 그런 거 비슷해요. 그래서 그 부담을 덜려고 유폐를 시켰는데 엄마가 위데희 부인이잖아. 그래서 거기 가서 사식을 넣어주는 거지. 밥을 계속 넣어주는 거지. 경전에는 무슨 몸에다가 붙이고 갔다하는데, 필요 없습니다. 그냥 들고 갔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들고 갔을 거예요. 그러면 경비병이 막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왕비를 어떻게 막어. 못 막아. 못 막아. 그거. 막으면 왕한테 죽는 게 아니고 바로 왕비한테 죽어요. 못 막아. 그래서 그걸 계속 사식을 넣어주니까 아버지가 계속 안 돌아가시니까, 정치적으로 부담이 너무 되는 거지. 쿠데타 일으킨 사람 입장에서는. 그러니까 이제 어머니를 죽이려고 한다고. 그래서 칼을 빼어들려고 하니까, 그게 관무량수경 서품에 나오는 얘기예요. 제가 지어내는 게 아니고. 그랬더니 대신 월광 그때 쿠데타 세력이에요. 쿠데타에 가담한 세력이 칼을 잡으면서 세상에 아버지 죽였다는 말은 많이 있어도 어머니 죽였다는 말은 없다.” 이런 식으로 하면 같이 못 간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러니까 칼을 다시 넣고, 안정을 해요. 그러니까 아버지 죽이는 데는 큰 부담이 없는데, 어머니에 대해서는 이게 굉장한 효전통이 있다니까. 그래서 사리불도 어머니 이름을 딴 거잖아요. 아버지 이름을 딴 게 아니에요. 사리자가 사리가 엄마 이름입니다. 사리불 엄마입니다. 사리불 이름은 우바제사예요. 사리가 엄마 이름이요, 사리의 아들이에요. 부루나미다라니자, 부르나 존자도 그게 엄마 이름 딴 거예요. 누구의 아들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누구의 아들. 그리고 오역죄에 보면 어머니를 죽인 죄가 첫 번째로 나옵니다. 그다음에 아버지를 죽인 거, 순서가 꼭 이렇게 나와요. 한 번도 뒤집어지는 경우가 없어요. 그래서 여성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게 인도 문화의 특징이에요. 인도 문화의 특징. 그래서 부모은중경을 이렇게 읽는다는 것도 그게 여성에 대한 효예요. 그래서 동아시아 전통에서 우란분절이 정착되는 이유가 있는데, 유교의 제사는 전부 남성 중심으로만 내려가게 돼 있어요. 같은 혈족이어야 되고, 밤에 지내니까 11시부터 1시 사이에 지내니까 다른 사람이 참석할 수도 없고, 참석이 불가능합니다. 집안 식구도 성씨가 다르면 참석이 안 되는데, 외부인이 어떻게 참석을 하겠어요. 그래서 우란분재나 이런 거는 제사가 아니에요. 재계예요. 재계. 밖으로 재자입니다. 이게 글자 자체가 달라요. 그리고 여기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할 것 없이 모두가 재주가 될 수 있고, 그다음에 내가 고마웠던 분들 그러니까 꼭 직계가 아니더라도 이모나 고모나 삼촌이나 이런 것도 다 가능하고 친구도 가능하고. 그리고 이제 결정적이었던 거는 자식을 제사 지낼 수 있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자식의 천도를 기원해 줄 수 있었다. 유교에서는 그게 불가능합니다. 어떤 부모도 자식 제사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 그래서 그런 일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제 우란분재 기원과 관련해서는 목건련의 어머니 구하는 거잖아. 그 어머니가 나는 너무너무 부러워요. 이런 인생이 있나. 남편이 좀 일찍 갔는가 봐. 이것도 부럽지 않아요? 여러분 연세가 되면. 너무 공격적인가? 교양인은 대놓고 말할 수 없는데. 그런데 아들이 이제 소년 가장 같이 된 거지, 목건련이. 근데 아들이 수완이 굉장히 좋아요. 그래서 요즘으로 말하면 무역을 하는 거지, 이렇게 외국을 다니면서. 그러면서 어머니에게 법인카드를 줬다. 이거 기가 막히지 않아? 그것도 한도가 없어요. 이거 너무너무 좋지. 생각만 해도 환희심이 나지 않아, 이게. 남편은 일찍 갔지, 아들은 효자에다가 돈을 잘 벌어. 그런데 바빠. 그러면서 법인카드를, 한도 없는 법인카드를 준 거,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데, 그래서 어머니 좋은 일에 쓰세요.” 이랬더니, 어머니가 좋은 일에도 썼을 거예요. 거기 너무 극적으로 기록해서 그래. 좋은 일을 썼겠지. 왜냐하면 한도가 없으면, 나 같아도 좋은 일에도 쓰고, 재미있는 일에도 쓰고, 이러지 않을까. 계속 재밌는 걸로만 달릴 수 있을까. 인간이 그리고 사람이 재미라고 하는 게 노는 데에서 오는 재미도 있지만, 좋은 일을 하면서 오는 재미도 있어요. 그게 보람의 재미라는 거거든. 그런 걸 못 느껴봤으면 인생이 슬픈 겁니다. 진짜 그런 재미도 있어. 그러니까 남을 도와주면서, 안 그러면 위험한 것들을 이렇게 좀 거둬주면서 하는 그 재미도 있다니까. 있어. 그래서 젊었을 때는 몸이 건강하니까 이게 쾌락적인 즐거움, 그러니까 먹고 마시고 즐기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이런 게 재미가 있는 거고, 연세가 드시면 그렇게 따라갈 수가 없어.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좀 보람 있고 고등한 재미 쪽으로 가는 거거든요. 그게 복지라든지 문화적인 거라든지 이런 거예요. 그리고 목건련의 어머니는 제가 보기로는 그렇게 연세가 안 많았어요. 여러분보다 젊었을 겁니다. 이유는 옛날에 일찍 결혼했거든. 그리고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50대가 되기 전에 사람이 갑니다. 제가 그런 얘기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오십견을 몰랐다. 오십견 알기 전에 가죠. 여러분은 90견도 알게 될 겁니다. 구십견이 뭔지 압니다. 나중에 내가 인생이 이런 거구나. 그런데 진짜 수명이 확 늘어난 건 맞아요. 여러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참 이런 생각하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세상이 많이 바뀌지, 이런 생각. 60년대 평균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6명대입니다. 6명대. 지금 이제 올해 연말이 되면 0.6으로 떨어질 거예요. 6명이 10분의 1로 줄어드는 거야. 이게 가능한가? 내가 여기서 살아서 여기로 갔다고 라고 하는 게 하나 있고, 저희 어렸을 때만 해도 환갑이면 동네잔치였고, 그때 어르신이라고 여러분이 불렀던 그 사람들이 알고 보면 50대 후반이었습니다. 어르신 소리를 듣고 있었어. 그때. 근데 여러분들은 지금 저한테 꽃띠 소리를 듣고 있어. 환갑인데 꽃띠에요, 이렇게. 물론 환갑으로 보여요. (웃음)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니까 진짜로 받아들이지 말고. 환갑으로 보이고 고친 거 다 표납니다. 단지 덕담 해드리는 거예요. 덕담. 그래서 갑자기 수명이, 지금은 특별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연세 드신 분이 90 까지 올라가고요. 지금은 70대에 초상 나면 뭔 일이래를 물어보는 시절이에요. 아니 맞잖아요. ‘뭔 일 있었어?’ 이렇게 물어보는 시절이 된 거야. 80대 중반 정도가 그냥 일반 초상, 일반 초상. 그러면 어른 돌아가실 때 됐네. 이제 이 정도 생각하는 나이고, 여러분은 더 갑니다. 더 갑니다. 그리고 스톱 할 수 없어요. 그냥 가는 거예요. 이거는 그냥 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준비를 진짜 단단히 하셔야 돼요. 그래서 예전에 50 못 살았어요. 그래서 목건련 어머니는 즐겁게 사셨다더라. 누구 뭘로? 아들 법인카드로. 여러분도 그런 아들 두고 싶지? 그렇지 않아? 나도 그런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문제는 이제 그러다가 약간 선을 넘었던 거죠. 그게 혹약재연(或躍在淵)이라고, 이런 표현 써도 되는지, 연못에서 물고기가 튀어도 이렇게 튀어야지, 연못 밖으로 너무 세게 튀면 골로 간다는 거예요. 아니 물고기들이 이렇게 튀거든. 강에서도 보면 이렇게 튀고, 계곡에서도 이게 가끔 튀거든. 근데 그게 왜 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튀어. 근데 그게 연못 안쪽에서 튀어야지. 이거 너무 나갔다 이러면 되돌이킬 수가 없는 거야. 그러면 절단이 나는 거지. 그런데 선을 세게 넘었는가 봐. 그래서 돌아가시니까 지옥에 갔다잖아. 그래서 우리 어머니 잘 됐을 건데이러고 목건련이 생각을 해요. 나는 그 경전이, 목련경 우란분경 이런 데 나오는데, 그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해요. 거기 목건련의 어머니 이름이 박제돼 있어. 청제 부인이라고. 이거 인권상 안 되는 겁니다. 청제 부인이 성격이 좋아서 그렇지 헌법소원 같은 걸 내던지 뭔가 윤리위에 제청을 해서 이름을 삭제해야 돼. 요즘 살인범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나오는 세상인데, 아니 자기가 좀 이렇게 재미있게, 흥으로 좀 살았어. 그게 그렇게 큰 죄냐? 흥이 많은 게 죄야? 그런데 신의 한 수가 있었지. 그 청제 부인에게는 마지막으로 큰 보험이 있었던 거예요. 아들이. 그래서 아들이 결국은 자기가 못 빼고, 빼내려고 했으나 안 됐고, 결국 부처님한테 마스터 키를 얻어가요, 그게 부처님 석장이거든요. 부처님 석장은 고리가 12개예요. 12. 1석장에 고리가 12. 육환장이라고 그러잖아. 보통 지장보살은 고리가 6, 부처님 건 12개예요. 그래서 그거 가지고 가서 결국 이제 빼드려.

        자세한 얘기를 해드릴 시간은 없고. 30분만 하라고해서. 진짜 제가 여러 군데를 다녀오면서, 저는 보통 제 어깨에, 혹시 이렇게 자세히 보시면 귀신 앉아 있는 거 보여요? 말 못 해 죽은 귀신이 있어가지고, 이렇게 한 번 틀면 1시간 반은 하고 잠깐 이렇게 쉬는데, 여기는 30, 내가 이렇게 짧게 하라는데는 처음 봤네. 그러면 오지를 말라 하지, 뭐 하러 오라 해가지고 30분 만에.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또 사람들이 그러면 더 해 주세요.” 이래놓고 뒤에 가서 욕한다니까. ‘너 때문에 밥 늦게 먹게 됐다이러면서.

 

        그래서 긴 얘기는 안 할 건데, 확실한 건 보험이 아주 기가 막힌 실비보험을 들어놨다는 거지. 그 실비보험의 이름은 무엇이냐. 아들입니다. 아들. 그래서 이게 무적이에요. 무적. 이게 아이언맨 슈트네. 그냥 막 끄떡없어요. 지옥에 가서 잠깐 굴렀다가 아들이 또 싹 빼주잖아.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들을 튼실하게 놨으면, 이런 데 와서 천도 안 해도 돼. 근데 내가 내 아들을 봤을 때 약간 부실한 것 같은데 이놈이 나에게 법인카드를 안 줬어. 그러면 이런 수륙사찰에 와서 이런 기도를 붙여야 돼. 우리 스님들이 인도자야, 인도자. 좋은 말로 하면 인로왕보살, 나쁜 말로 하면 앞잡이. 하지만 이게 극락으로 가는 앞잡이에요. 가이드. 실제로 부처님이 가이드예요. 그래서 예불문에 삼계 도사라고 하잖아요. 그 도사가 인도할 도자입니다. 우리가 아는 무슨 영환 도사, 무슨 이런 도사 아니고 인도할 도자예요. 우리를. 길 도자에다가 마디 촌자가 하나 더 있는 인도할 도자(導師). 그래서 우리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고 진리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 부처님이에요. 그리고 그런 부처님의, 어떻게 보면 졸들이 우리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우리 스님들 같은 경우는 참 좋은 인도자, 이런 걸 불교적으로 선지식이라고 합니다. 선지식. 그래서 사람이 힘든 일도 있어요. 근데 제가 이렇게 보면 제일 힘든 게 뭐냐면 일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아마 여기 이런 거 불사하고 할 때도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여러분 해보시면 다 똑같을 거예요. 판단이 안 돼서 애매할 때가 있어요. 이걸 이렇게 해야 되나 저렇게 해야 되나. 분명히 지금 요것과 요것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 근데 그 결정을 해야 되는데, 이게 잘 된 결정인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선지식이 있으면 그게 쉬워요. 그냥 따라만 가면 돼요. 그래서 예전에 무슨 말이 있냐면 <스승의 발밑은 시원하다.> 제가 그 말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저도 어쩌다 보니까 이제는 스승들이 대부분 갔어요. 그래서 홀로 받쳐야 되는, 땡볕을 맞아야 되는 슬픈 상황에 봉착해 있어요. 위에 어른들이 이렇게 많이 가시는 바람에. 근데 그게 위에 사람이 이렇게 딱 해서 일머리 있으신 분이 이건 이렇게 하세요 이렇게 하세요. 이렇게 하면 일이 굉장히 쉬워요. 그래서 그런 판단에 명석한 걸 사실은 문수보살이라고 하거든. 그래서 문수보살은 푸른색, 청량, 청량 그다음에 칼로다가 탁탁탁 잘라서 이렇게 매듭을 짓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날도 덥고 힘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장경에 보면 그 얘기가 있잖아요. 돌아가신 분에게 천도한 공덕은 7분의 1이 절로 마일리지가 가는 거고, 마일리지의 7분의 6은 여러분들에게 와서 여러분들의 삶과 사후 세계를 평안하게 해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살아보면 다 필요 없어. 머리 좋고 무슨 뭐 인물 좋고 다 필요 없고 복 있는 놈이 짱입니다. 사람은 자고로 복이 많아야 돼. 복이 많아야. 이재용 회장님이 시험 봐서 됐겠어요. 전 세계에서 돈으로 제일 유명한 분이 누구예요? 만수르. 당신이 벌었어? 눈을 뜨니까 깔려 있네. 이게 복이에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셔요. 복이라는 건 아무리 많아도 이게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아나율 가사 이런 얘기 자꾸 하면 시간 가는데, 아나율 가사 기울 때도 누가 내 가사를 기워서 복을 지을련가하니까 부처님께서 그걸 지어주시는 그런 대목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절에서는 복혜라 그래요. 지혜가 앞이 아닙니다. 언제나 복이 앞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그런 복이 있으면 일을 꾸미지 않아도 일이 돼요. 우리 같은 사람 복이 없으니까 맨날 일만 꾸미는데 뭐가 안 돼요. , 슬픈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나이 먹도록 동네방네 떠돌면서 조계종의 송해 같이 전국을 떠돌면서 살고 있잖아.

        왕양명의 시 얘기 하나 해드릴게요. 시 얘기. 그가 어렸을 때 7살인가 8살 때 썼던 천재적 시예요. 왕양명이라고 하는 사람이 양명학의 시조인데.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달을, 밤에 달을 봤는가 봐. <달은 작고 산은 커 보이는데, 실제로 그거는 내가 여기서 봐서 그런 거고, 하늘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달은 크고 산은 비교도 안 되게 작을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이 이렇게 와서 이렇게 얘기를 해드리면 우리 같은 사람이 참 대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 여기서 상주하시는 스님들, 주지 스님 이하, 회주 스님 이하 상주하시는 스님들이 훨씬 더 대단한 분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가까이 있는 분의 고마움을 알고, 그것에 동참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생각들을 가지시면, 그게 곧 공덕이 되고 여러분들을 안온하게 하는 행복의 지름길이 될 거라는 생각을 믿어 의심하지 않으면서 오늘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