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신중기도] 4월9일 음력 3월 초하루신중기도 입재 법문 2024-04-09

 

- 義相祖師法性偈(의상조사 법성게) 이야기 -

義相스님의 生沒年代華嚴學風

(의상스님의 생몰연대와 화엄학풍)

 

        안녕하십니까? 갑진년 3월 초하루 진관사 법문입니다.

 

        초하루 법문에 <의상조사 법성게(義相祖師法性偈)> 법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의상조사 법송게 법문. <의상조사 법성게 이야기> 이런 내용이거든요.
        법성게가 뭐냐? 한국불교는 그 주류가 화엄 신앙이에요. 한국불교의 주류가 화엄신앙인데, 화엄신앙의 대중 의례가 첫째는 약찬게(略纂偈), 둘째는 법성게 그렇거든요. 약찬게는 화엄경의 성립 구조, 화엄경이 어떻게 어떻게 성립이 됐다, 품이 몇 품이고, 뭐 이렇게 나오는 보살, 신장, 선지식 이름이 누구 누구다, 이렇게 그 명목, 차례, 구성, 이런 걸 쭉 기술하고 그걸 외우는 게 약찬게 독송이거든요. 법성게는 화엄경에서 뭘 말하고 있느냐, 경전이나 그 품 수, 차례는 전혀 말이 없고요. 화엄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그 본뜻, 그것만 설명하는 게 의상조사 법성게에요.
        그러면 의상조사 법성게라는 게 뭐냐 하면, 신라시대에 의상스님께서 화엄경을 공부를 하시고, 그 법성게를 지으신 거예요. 지었는데, 그것이 다른 내용이 아니라 <화엄경 내용을 그대로 요약해서 요지로 제시하고 계신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래서 화엄경은 법성을 말하고 있는데, 법이라는 것은 만법의 본성, 일체만법의 본성, 자성의 법성인데 그것을 게송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법성게거든요. 그런 내용이고.

 

生沒年代(생몰연대)

湘武德八年生 丱歲出家 至龍朔元年辛酉入唐 就學於智儼

상무덕팔년생 관세출가 지룡삭원년신유입당 취학어지엄

總章元年(668) 儼遷化 咸亨二年(671) 湘來還新羅

총장원년(668) 엄천화 함형이년(671) 상래환신라

長安二年壬寅示滅 年七十八(三國遺事卷三, 前後所將舍利條)

장안이년임인시멸 연칠십팔(삼국유사권삼, 전후소장사찰이조)

의상스님은 眞平王(진평왕)47(625)示生(시생)했다.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 文武王一年(문무왕1)(661,37)

입당하여 智儼祖師(지엄조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668년에 지엄조사가 입적한 뒤 671(47)에 의상스님은 신라로 돌아왔다. 의상스님은 聖德王一年(성덕왕1)(702,78)示滅(시멸)하였다.

 

        법성게는 누가 지었느냐. 의상 스님께서 지으셨는데, 의상 스님이 언제 분인가.

       신라 시대에 진평왕이라고 있는데요. 선덕왕, 그 이전에 진평왕이고, 진흥왕보다는 좀 긴데, 북한산 비봉에 올라가면 비가 있는데요. 이건 진흥왕이 세운 거예요. 진흥왕 다음에 이제 진평왕인데, 그 진평왕 47년에 태어났어요. 그때가 47년에 태어났는데, 서기로는 625. 그래서 횟수로는 금년이 딱 1,400년이에요. 이제 내년 되면 1,400주년인데, 태어난 지가, 그래서 1,400주년을 맞이해서 학술 모임이라든지 기념 모임을 어떻게 준비한다는 소리도 듣고 있거든요. 그래가지고 625년에 태어나서 딱 보니, 이 성 씨가 박씨인지 김씨인지 잘 몰라요. 어느 기록에는 박씨라고 하고, 어느 기록에는 김씨라고 했어요. 박씨, 김씨가 신라의 왕족이거든요. 그건 뭐 크게 알 것도 없고.

        근데 어린 나이에 출가를 했다. 어린 나이라 그러면 쌍머리 따는 나이, 옛날에는 쌍머리로 땄다고 그래요. 그러다가 이제 나이가 들면 총각이라고, 외 머리를 땄고, 총각은 아니고 관세(丱歲)라는 건 쌍머리 관자가 있는데, 쌍머리 땋을 나이, 그러니까 10세에서 15세 이전의 나이를 관세, 쌍머리하고 다니는 나이, 이렇게 설명을 하거든요. 어린 나이에 출가를 했어요. 그래가지고 출가해서 뭘 공부했는지, 어디서 배웠는지 전혀 몰라요. 기록이 전혀 없어, 지금 기록으로는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나이가 37세가 됐어요. 그때가 이제 문무왕 때인데, 문무왕 1, 문무왕이라고 그러면 누구냐 하면, 저기 경주 감포에 가면 수중에 능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 왕이 문무왕이에요. 태종 무열왕의 아들이거든. 그러니까 문무왕 1년에, 37살 나이에, 중국에 들어갔어요. 중국에 왜 갔냐. 화엄경 공부하러 가신 거예요. 그래서 이제 입당(入唐)을 해서, 그 당시 지엄조사(智儼祖師)라고, 화엄종 지엄조사라고 대단한 스승이 계셨는데, 거기에 가서 가르침을 받았어요. 37살에 가서 7년 있었는데, 44살 때쯤, 44살에 이 법성게를 지으셨어요. 근데 그 해에 또 지엄선사가 돌아가시는 해에요. 그래서 지을 때부터 지엄조사의 지도를 받고, 여러 가지 평가를 듣고, 격려를 받고 해서, 이거는 지엄화상의 가르침과 또 의상 스님의 학습 능력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거라, 이루 말할 수 없이 감회가 깊은 그런 저술이거든요.
        지엄화상이 668년에 이제 돌아가시고, 3년 있다가 671년 의상 스님의 나이 마흔일곱에 신라로 돌아오셨어요. 신라로 돌아오셔서 31년을 더 사셨어요. 47에 신라로 돌아오셔서 78살에 입적을 하시거든요.
         이제 오시자마자 역시 여러 곳에 다니면서 화엄경을 가르치시는 일에 열중하셨거든요. 그래서 그 근본 도량이 영주 부석사, 그곳이 의상 스님 화엄 근본도량이고, 그 외에는 화엄 도량이 전국 곳곳에 건설이 돼가지고, 의상 스님 화엄십찰이라고 얘기를 해요. 화엄십찰. 그래서 화엄십찰과 선문구산, 천태육산, 뭐 이렇게 정리를 해서 한국불교사를 기록하는 경우가 있어요. 화엄십찰, 선문구산, 천태종의 천태육산.

 

        지금 생각해 보면 성덕왕 1702년에 78세에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이렇게 오래 살 때가 아니거든요. 50대면 대략 딱 가는데, 엄청나게 오래 산 거예요. 78. 생몰연대는 이렇고요.
        의상스님이 화엄을 공부하시고 화엄으로 화엄삼매에 드시고 그 화엄으로 제자들을 육성하시고 인도하셨는데, 의상스님은 이 화엄 학자로서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분이에요. 왜 독특하냐. 일반 화엄학의 대가가 중국에 세 분이 계신데, 지엄조사, 법장조사, 청량조사 세 분인데, 이분이 다 화엄을 어떻게 공부했느냐면 화엄경에 대한 해석을 해요. 화엄경. 그래서 경소예요. 경소. 그래가지고 오늘날 화엄경에서 뭘 가르쳤나, 이걸 알려면 이 삼소를 보지 않으면 안 돼요. 지엄소, 법장소, 청량소. 이걸 화엄삼소라고 그러는데, 그걸 봐야 되는 이유가 화엄경에 대해서 해석을 하고 화엄경에 대해서 설명을 했기 때문이에요.

 

  華嚴學風(화엄학풍)

의상스님의 著述特性(저술특성)

一乘法界圖 合詩一印 依華嚴經 及十地論 表圓教宗要 總

일승법계도 합시일인 의화엄경 급십지론 표원교종요 총

章元年 七月十五日記”(佛教著述 : 釋經書 宗要書)

장원년 칠월십오일기”(불교저술 : 석경서 종요서)

合詩大旨 大經大教 一乘法界 圓融圓滿

합시대지 대경대교 일승법계 원융원만

無障無礙 自位不動 行業滿成

무장무애 자위부동 행업만성

 

        근데 의상스님은 화엄경 해석은 한 마디도 없어요. 참 희한해요. 그러면 뭘 했냐. 이 지금 우리가 독송하는 의상조사법성게인데, 이거는 의상조사 법성게라고 하는 것은 이건 독송 명칭이고, 저술 명칭은 일승법계도 합시일인(一乘法界圖 合詩一印) 이거예요. 이거 어려운데, 일승법계, 그림 도자, 합할 합자, 시라는 시자, 합시, 한 일자, 도장 인자, 일인. 일승법계도 합시일인. 이것이 이 저술 명칭이에요. 이런 명칭으로서 이제 짓는 이유가 뭐냐. 제일 끝부분에 밝혔는데, 의화음경 급십지론(依華嚴經 及十地論)하여, 화엄경이 있고 화엄경을 해석한 세친보살의 십지론이 있는데, 의상스님은 화엄경과 화엄경 십지론에 의지하고 근거해서, 표원교종요(表圓教宗要), 원교라고 하는 것은 둥글 원자, 가르칠 교자, 원교인데, 화엄경의 가르침을 원교라고 해요. 원교. 원만 무궁한 가르침이다 이 말이에요. 원만하고 끝이 없다. 원교라고 그러는데, 원교에 종요를 표한다. 종요는 종갓집이라는 종자하고 중요하다는 요 자, 종요인데, 그 종은 뿌리를 말하는 거예요. 뿌리. 요는 줄기를 말하는 거예요. 줄기. 그래서 이제 나무를 비유로 말하면 6가지 구분이 있는데, 뿌리, 그걸 뿌리 근자 근, 줄기, 줄기 경자, , 근경, 지엽, 가지 지, 가지, 잎새, 꽃 화, 열매 과자, . 그래서 나무는 근경지엽화과(根莖枝葉華果) 6가지로 구분이 된다. 그런데 종요라고 하면 그 뿌리하고 줄기만 이야기한다 이거예요. 뿌리하고 줄기. 이게 종요예요. 지엽이라든지 이런 거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글을 지을 때 종요서가 있고, 석경서가 있는데, 석경이라는 건 해석할 석자하고 경전이라는 경자, 경전을 처음부터 쭉 해석하는 게 이게 석경사에요. 근데 종요라는 건 경전을 따라서 해석을 안 해요. 경전에서 이야기하는 골수, 골자, 그것만 딱 정리해내는 걸 이걸 종요라고 그래요.
        근데 이 법성게 저술은 화엄경 종요다, 화엄경 해석이 아니다 이거예요. 이렇게 전술한 거는 의상스님밖에 없어요. 다 경전을 해석했어요. 종요를 제시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경전 공부하다 보면, 두 가지 대표적인 거 있는데, 석경서와 종요서 대표적인 게 석경, 경전을 해석한 대표적인 게 화엄경 십지론이고, 종요만 드러낸 대표적인 게 대승기신론이라 그래요. 대승기신론은 여러 경전을 전부 종합해서 그 골수만 드러낸 게 대승기신론이라, 성론, 종론 뭐 이러거든요.
        근데 우리나라에는 이 종요를 좋아해요. 원효성사도 저술한 거 보면 종요라는 제목이 많아요. 한국 사람들은 특이해요. 요점만 챙기지, 나머지는 그냥 싫어해요. 그래서 사람도 말 많은 거 싫어해요. 결론, 핵심만 딱 드러내는 거 좋아하거든요. 제일 인기 없는 남자가 말 많은 남자예요. 말 많은 사람. 그런 사람 인기 하나도 없어요. 연애도 못해요. 만났다 금방 헤어져. 그래서 그 핵심, 요점, 그걸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또 행동으로 탁 할 때 감동을 줘요. 설명이 길면 지루해. 핵심 요점을 파악해서 행동으로 표현할 때, 굉장히 감동을 주는데 의상스님이 바로 그런 분이에요. 저술도 종요로 저술을 했지, 경전 해석으로 저술을 안 했다. 그리고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경전을 설명하지 않으세요. 그럼 뭐냐? 경전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직접 보게 하고, 직접 만지게 하고, 직접 간직하게 하는 건데, 그걸 관법이라 그래요. 화엄경을 보고 니가 스스로 봐라. 이게 관법이거든. 보는 방법. 화엄경에서 뭔가 말할 거 아니에요,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지금 눈으로 보는 거 하고 화엄경에서 말하는 내용하고 거리가 있어, 틀려.

 

        그럼 화엄경에서 말하는 내용을 내가 보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관을 하는 거예요. 딱 보는 거예요. . 그래서 인간의 행위는 생사업이 있고 지혜업이 있는데, 생사, 나고 죽는 행위인데, 이 생사업이라는 건 뭐냐 하면 계속 구하는 거예요. 그래서 소유를 해요. 구하고 소유하고 구하고 소유하고. 구하다 죽어요. 이건 어린애서부터 나이 많아도 똑같아요. 어떤 분은 이야기하기를 자기가 나이가 80인데, 80에도 대중 앞에 나가면 떨린다고 하더라고. 기가 막히더라고. 나이 80에 뭘 구하길래 떨고 있냐. 근데 100살 때도 떨어요. 그냥 더 잘 보이려고 하는 욕심이 있고, 더 잘하려고 하는 욕심이 있어서, 그럼 잘 보이고 잘하려는 건 뭐냐. 좋은 거 구하려고. 이게 생사업이라고 그래요. 구하면 그게 영원한가. 없어져요. 또 구하고. 구하면 없어져요. 또 구하고. 구하다 죽는 거예요. 새는 날다가 죽고, 인간은 구하다 죽어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빈 가슴을 가지고 사는 거예요. 인간이라는 게. 근데 잘해줄 필요 없어요. 잘해주면 그거 받고, 금방 또 다른 걸 달라고 그래요. 근데 이것들은 잘 모르더라고. 내가 이만큼 해주면 좋아하겠지. 천만에. 받을 때만 좋아해요. 받고 나면 다른 거 또 달라고 그래요. 그게 인간이에요. 그러니까 인간 자체가 구하다 죽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럼 어떻게 되냐. 안 주면 원수 되니까 원수가 안 될 만큼만 줘야 돼요. 그리고 스스로 지혜의 업을 닦게 해야 되는 거에요. 생사업은 구하는 업인데, 지혜의 업은 깨우치는 업이에요. ‘인간이라는 게 이런 거로구나.’ 그걸 깨우쳐서 지혜로 만족하고, 지혜로 행복하고, 지혜로 평화로운 그런 훈련이 있어야 돼요. 그래야 그 막 구하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어요. 인간은 능력 있으면 행복할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이 무지막지하게 구하는 감정 조절 못하면 그냥 멸망해요. 감정 조절 못해서 멸망한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대부분. 시어머니한테 대들었다가 평생 혼나고, 이런 거. 이런 거 많아요. 그래서 이 감정 조절 못해서 불행한 경우가 많지, 능력이 부족해서 불행한 경우가 얼마 없어요. 능력은 키우면 돼요. , 근데 우리나라 이 교육이 감정을 조절하는 교육은 별로 없어요. 능력 신장하는 교육이 대부분이에요. 능력 아무리 많으면 뭐해요? 한순간에 감정 조절 못해서 큰 사고 쳐가지고 평생 힘들게 사는데. 이런 얘기는 이제 법성게에 없고요. 공연한 소리 이렇게 해보는 거지.
        그래가지고 이제 한국에 돌아오셨는데, 31년 동안을, 47세에 돌아오셔서 78세까지 이제 사셨단 말이에요. 그래서 계속 이 화엄경 지도를 하는데, 경을 가르친 게 아니라 화엄경에서 말하는 그 내용을 직접 보게 하는 관법을 지도했다. 그래서 의상 스님은 큰 저술이 없어요. 이 법성게 이거예요. 일승법계도 합시일인.

 

        그런데 그 내용이 들어가기 전에 이 법계도 이 법성게가 무엇을 말하는 거냐. 이 화엄경을 대경대교(大經大教)라고 하거든요. 큰 대자, 경이라는 경자, 대경. 큰 경. 크단 말은 온전하게 다 설명하는 경. 또 큰 가르침. 이 대경 대교인데, 대경대교에서는 일승법계(一乘法界)를 말한다. 일승법계. 한 일자, 승용차라고 하는 탈 승자, 일승, 법의 세계. 그럼 일승이라는 게 뭐냐? 일승이라고 하는 거는 오신신상, 내 몸에 내 몸 모양이 있고, 법계신상, 온 우주의 모양이 있어요. 내 몸 모양과 우주 모양이 원융무이하다. 서로 통해서 둘이 없다,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오신신상 법계신상 원융무이. 근데 우리 범부는 내 몸이라는 건 만만하지. 이게 법계 몸이라는 거는 생각이 없어요. 이 우주의 몸이다, 이게. 이게 참 대단하지, 대단해. 너무 대단해서 목 좀 축이고 해야 되는데. 저 소리(핸드폰벨소리)도 법문이에요. 듣고 나면 저 소리와 듣는 내가 원융무이해요. 저 소리와 저 소리는 법계신이고, 듣는 나는 나의 오신상인데 둘이 없다. 이 몸이 나라는 것만 알기 때문에 그렇게 구해요. 이 몸이 온 천지 우주 법계의 몸이다. 이렇게 되면 오신상이 법계신상이 되는 거예요. 한번 만져봐라. 여기 법계 몸 너 잘 있냐, 여기. 법계 몸 너 잘 있냐, 우주 몸 너 잘 있냐, 이 몸은 우주의 몸이다. 이 몸은 온 세계 자연의 몸이다. 그 오신과 법계신이 원융해. 원융이라는 말은 서로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이 우주 속에 내가 들어가고, 또 우주가 나한테 들어오고 그래서 둘이 없어요. 원융무이해요. 그리고 하나도 장애가 없어, 원융무애해요.
        근데 이걸 어찌 알았냐? 화엄 삼매에 들어야 알아요, 이거를. 그게 화엄 삼매고. 화엄 삼매의 이제 기본을 또 해인삼매라고 하는데, 화엄 삼매는 그 원융무이를 공덕으로 무한히 펼쳐가는 게 화엄삼매고, 해인삼매는 원융무이를 물속에 든 달 보듯이 환하게 보는 게 그게 해인삼매예요. 해인이란 말은 바닷속에 그림자다 이 말인데, 그 인자가 그게 그림자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 도장 인잔데, 생각을 멈추고 지혜 바다로 환히 들어가면 내 몸과 온 우주가 똑같이 자기 지혜 광명 안에 다 들어있어요. 그걸 수월도량이라 그래요. 물속에 있는 달과 같은 세계, 도량이라는 건 세계라는 말인데 물속에 달과 같은 세계다. 그래서 이 몸을 느끼는 것도 내 지혜 광명이 있어서 이 몸을 느끼고요. 지혜광명 그 물 속에 이 몸이 들어있는 거예요. 그걸 보는 게 해인삼매거든요. 삼매에 들면 돼요, 이거. 생각으로는 안 돼요. 해인삼매에 딱 들면 이 몸도 지혜광명, 바닷 속에 밝고 밝은 그림자. 허공도 지혜광명, 바닷 속에 밝고 밝은 그림자. 온 우주가 지혜광명의 바닷속에 있다.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 이제 부처님이 깨달아가지고 이걸 가르쳤기 때문에, 깨달은 게 바로 해인삼매거든요. 우리도 삼매에 들면 바로 봐요. 바로. 못 볼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삼매에 안 들지. 말만 듣고 그다음에 안 해요. 왜 안 하냐. 이 생각으로 사는 습관이 너무 깊이 들어서 그래요. 생각으로 구하려고 그러지, 해인삼매로 평화로우려고 안 해요. 지혜로 들어가면 평화가 있는데, 생각으로 구하다 보면 근심 걱정이 있어. 그러니까 이게 구하지 않으면요,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 모든 걱정은 구하는 데서 생겨. 거 희한하데. 희한한 게 뭐냐 요즘 젊은 사람들도 부모한테서 못 벗어나요. 근데 왜 그렇게 못 벗어났냐 그러니까, “부모 거슬리면요, 앞으로 돈 안 줘요.” 이래요. 돈 받으려고 부모 못 떠나. 이 참 기가 막혀요. 지 몸을 지가 살피지, 왜 부모한테 받아서 살라 그래. 이게 받으려고 하면 종 돼요. 노예가 되는 거예요. 안 받으려고 하면 그냥 주인 돼요. 그러니까 구하면 노예 되고, 안 구하면 주인 된다. 그 자식한테 뭐 바라지 말아요. 바라면 자식이 원수 돼요. 자식이 누가 주나, 지 살기 바쁘지. 부모 관심이 없어요. 그건 잘 모르더라고. 가끔 와가지고 뭐 잘 계셨느냐고 좋은 말 다 하니까 그게 자식의 본심인 줄 알아. 그게 속는 거예요. 자식 본심은 따로 있어요. 자식은 근본적으로 먹고 튀는 거예요. 나도 자식 해봤잖아요. 아니 부모한테서 뭐 받아먹을 건 많이 받아먹는데 그거 안 갚고 튀어버려. 그게 자식의 기본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해줄 거 다 해줬으면 그다음에 바라지 말아라. 안 바라면 자식으로부터 자유로워, 바라면 자식에게 끌려가, 끌려가면 노예죠. 이런 말은 또 화엄경에 없어요. 화엄경은 이 글자뿐이거든. 이런 말이 어디 있어.

 

        그래서 일승법계. 화엄경을 보는 나와 화엄경에서 말하는 저 세계가 하나라는 거예요. 이게 일승이에요. 일승법계를 말한다. 그 일승법계가 원융원만(圓融圓滿)이라. 하나의 길이니까 원융하고 원만해. 원융원만이라는 건 뭔가. 작은 것이 큰 것을 다 거둬들이고요. 큰 것이 작은 것을 다 거둬들여서 큰 것이 작은 것 속에 있고, 작은 것이 큰 것 속에 있고, 이것 속에 저것이 있고 저것 속에 이것이 있어서 원융하고 다 무애해요. 그래서 무장무애해요. 장애가 하나도 없어. 대경대교 일승법계 원융원만 무장무애(大經大教 一乘法界 圓融圓滿 無障無礙).
        그래서 어떡하자는 거냐. 각위부동하고, 각자 자기 지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이놈이 여기 딱 있어서 여기서 움직이지 않고, 이거를 다 여기 거둬들이는 도리가 있어요. 또 이것도 이걸 움직이지 않고 이것을 다 거둬들이는 도리가 있어요. 이게 자위부동(自位不動)이라, 각위부동. 자기 지위를 옮겨가지 않고 자위를 부동하고, 행업을 만성(行業滿成)이라, 하는 업은 원만히 다 이룬다. 이게 이제 화엄경의 뜻이고, 법성게의 뜻인데 핵심이 자위부동 행업만성. 자위 부동이라는 건 뭐냐. 이런 거예요. 이 집이 있는데 이 집은 주춧돌, 기둥, 서까래가 다 있어요. 근데 기둥이면 기둥, 주춧돌이면 주춧돌, 서까래 하면 서까래가 그대로 자기 자리에 다 지키고 자기 역할만 하는 거예요. 자기 역할만 하되 전체 집을 다 그것들이 완성시키고 있는 거예요. 기둥이 왔다 갔다 하는 거 아니에요. 기둥은 기둥대로 다 있는데 그게 집이 돼요, 전체가. 서까래는 그냥 서까래만 있는데 그게 다 집이 돼. 이게 자위부동하고 행업만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가 모든 것 속에 있고 모든 것이 하나 속에 있다. 이게 이제 원융원만 무장무애인데, 이러니까 이걸 강의를 하는데 어떤 모임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요. 그래 하나가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야. 그러면 너한테 그걸 증명해 보여라. 그래서 돈을 1원을 딱 가지고 이걸 만 원으로 바꿔달라 이랬어요. 이걸 1원을 내면서 이걸 만 원으로 바꿔달라. 그러니까 그 사람이 뭐라 그랬을까요? 대답을 잘 못했대. 공감이 안 됐대. 근데 이게 화엄경에서 일즉다 다즉일이라고 하는 건요. 하나가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라고 하는 것은, 일원을 가지고 만원으로 바꾸는 게 아니에요. 일원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으면서 그 일원 속에 만원이 다 포함된 거예요. 그거를 어려운 말로 1원은 본수라고 하고, 만원은 만수라고 하는 거예요. 가득할 만자. 본수를 옮기지 않고 만수를 본수에서 다 포함하고 있는 거거든요. 또 만수를 만 원을 옮기지 않고 그 만 원 속에 1원이 다 있는 거예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1원 없는 만 원이 어디 있어요? 1만 원에서 1원 빼면 만 원 안 되거든요. 그런 거예요. 그래서 본수, 만수. 그래서 한 덩어리가 억이라고 할 때도 억은 만수 쓰고 그 일은 본수인데 억에서 1 빼봐요. 그게 얼만가. 99,999,999 그것밖에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만원 속에 일원이 있고 일원 속에 만원이 있어서 제자리를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만원을 이루는 거예요. 이게 이제 행업을 원만하게 이룬다.

        그러면 이것을 수행으로 보면, 행업이 수행인데 지금 이 중생의 몸을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여래의 업을 다 이루는 거예요. 이게 화엄이에요. 이 몸 바꿔서 뭐 하는 게 아니에요? 법화경에는 바꿔서 한다는 말이 있어요. 변성 남자(變成男子)라는 말이 있는데, 용녀가, 용의 딸이 몸을 바꿔서 남자가 돼가지고 성불했다 이런 게 있어요. 근데 화엄경은 변성이 아니여. 그냥 자위를 부동하고, 자기 지위를 움직이지 않고, 행업만성이여, 하는 일을 다 이뤄요. 그래서 이 중생 몸 바꾸지 않고 그대로 성불하는 거예요. 그게 일즉다 다즉일이에요.

 

        근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 이게 저런 게 이해가 잘 안 된다 하는 건 이게 무명 망상이라 그래요. 그게 어리석은 망상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혜 광명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지혜 광명은 삼매에 드는 거예요. 딱 지혜광명에 들어가 보면 이 삼라만상 4대 육신이 참 지혜의 광명 속에 나타난 현상이에요. 이게 화엄삼매거든요. 근데 화엄삼매는 시작도 끝도 없어요. 보통 우리가 참선할 때 입선 출정이 있거든요, 입정 출정이 있는데, 시작할 때 죽비 딱 딱 치고, 정에 들어, 마칠 때 또 딱 딱 치고 마쳐. 이거는 이제 보통 일상 수행이고, 이 화엄삼매는 들어가는 게 없고 나오는 게 없어요. 항상 이 화엄삼매에요. 그리고 전생에 들었다가 금생이 나오고, 금생에 들었다가 내생이 나오고, 동방에서 입정했다가 서방에서 출정하고, 여자 몸으로 입정했다가 남자 몸으로 출정하고, 이런 거예요. 희한해요. 그냥 상식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해인삼매에 딱 들면 이게 뭐 하나도 이상한 게 아니고 그대로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이런 걸 가르치는 게 이게 화엄경이고 그 화엄경을 요약을 해서 제시하는 게 법성게거든요.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그 관법을 이제 가르치는데, 관법은 뭐냐. 이 일승법계 여래십신. 여래간의 법계인데, 법계에는 한두 가지 몸이 아니라 무한한 놈이 다 있다. 이걸 열 십자, 몸 신자 십신이라 고 해요. 하나로 이루어진 법계, 여래에게는 열 가지 몸으로 나타난다. 일승법계 여래십신인데, 일승법계 여래십신을 보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이제 삼매를 닦는 건데 삼매를 어떻게 닦아야 이거 일승법계 여래십신을 바로 볼 수가 있나. 그 말은 이게 내 몸인데 내 몸이 법계 몸이라고 하는 걸 보는 거예요. 법계의 몸을 법신이라고 하거든요. 내 몸을 오신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나 오자 몸 신자, 오신. 이게 내 몸인데, 이 내 몸이 법계 몸이라고 하는 걸 어떻게하면 볼 수 있습니까? 이거예요. 그래서 이 몸이 법신이다. 참 기가 막히네. 보통 일 아니에요. 근데 화엄삼매를 닦으면 이 몸이 법신이라는 걸 바로 눈앞에서 본다. 그건 뭐와 같으냐 하면, 꿈에 큰 바닷물 속에 빠졌어요. 그 바다가 끝이 없어. 근데 이 바다에서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나. 그 망망대해에서 한복판에 빠져가지고 허우적거릴 때 그것도 바닷물에서 나간다는 게 그게 불가능한 거잖아요. 근데 금방 나갈 방법이 있거든요. 어떻게 하면 되지요? 꿈 한 번 딱 깨면 그만이에요. 꿈 딱 깨면 그만이에요. 그게 삼매예요. 삼매라고 하는 건 중생의 망상의 꿈에서 깨는 거다. 그런데 화엄경이 그런 거예요. 일승법계 여래십신을 바로 보게 하는 거다 말이죠.

 

의상스님의 學業指導(학업지도)

相和尙 住大伯山 大蘆房時 爲眞定智通等說 行人欲見十佛

상화상 주대백산 대로방시 위진정지통등설 행인욕견십불

者 應先作眼目 通等問 云何是眼目耶 和尙曰 以華嚴經 爲

자 응선작안목 통등문 운하시안목야 화상왈 이화엄경 위

自眼目 所謂 文文句句 皆是十佛

자안목 소위 문문구구 개시십불

(叢髓錄卷下之二. 韓佛全6, 834)

(총수록권하지이. 한불전6, 834)

 

       그래서 이제 의상 스님이 그랬어요. 하루는 태백산 대로방(大伯山 大蘆房)이라고 하는 데가 있었는데, 큰 대자, 갈대 로자, 대로방에 머물 때 진정 지통(眞定智通), 진정 스님, 지통 스님이 의상 스님 제자, 아주 중요한 제자들이에요, 지통을 위해서 말씀을 하시기를, 행인이 욕견시불자(行人欲見十佛者), 여래십불, 여래십신 일승법계를 보고자 하는 자는 응선작안목(應先作眼目)하라, 응당히 먼저 눈을 갖추어라 이랬어요. 이 몸이 법신임을 볼 때, 또 십불 십신 일승법계를 보려고 하면 먼저 눈을 마련하라. 눈이 있어야 본다. 그러니까 지통 이런 분들이 묻기를 운하시 안목이냐(云何是眼目耶), 어떤 것이 이 십신을 보는 눈이냐. 그렇게 의상 선생님한테 물었죠. 화상왈(和尙曰), 의상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화엄경으로 위안목하라(以華嚴經 爲自眼目), 화엄경으로 눈을 삼아라 이랬어요. 화엄경이 이 몸이 법신임을 보는 눈이다, 화엄경의 눈으로 보면 다 보인다 이거죠. 그래서 이 경문을 본다는 것은 경문을 그냥 해석하고 외우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경의 눈으로 우주 법계를 보는 거예요. 경의 눈으로 보는 거다. 이게 경안이에요. 근래에 와서 경안을 또 바로 해석한 적이 있는데, 본래 경안의 뜻은 경의 눈으로 우주법계 진실성을 보는 거다 그거거든요. 그냥 화엄경에서 가르치는 게 있잖아요. 그 가르침으로 눈을 삼아서 보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이제 뭐냐 하면, 법성게에서는 일미진중에 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하고, 한 조그마한 티끌 속에 시방 세계는 다 포함하고 있다. 그 눈을 가지고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뭐 미진이 세계고, 세계가 미진이고 다 보일 거 아니에요. 무량원겁이 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이요, 일념즉시 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라, 무량아승지겁이 그냥 일찰라다 이 말이죠. 일찰라가 무량아승지겁이다. 그런 삼매에 딱 들어서 무량원급즉일념 삼매에 딱 들면 무량원급이 즉일념이라고 환히 보일 거 아니에요. 그러면 문문구구(文文句句)가 화엄경으로 눈을 삼아서 우주를 보면, 글자 글자 문구 문구가 다 십불세계 일승법계다. 그런 가르침을 주신 거예요.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