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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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11월 7일 49재 법문
종범스님 2022-11-07
지심제청 지심제수 世身無住 生滅無定세신무주 생멸무정 猶如露電 夢幻泡影유여로전 몽환포영 本身靈明 寂照含空본신영명 적조함공却觀世間 相似昨夢각관세간 상사작몽나무아미타불 오늘 천혼 당령, 천도하는 혼령에, 해당영가를 극락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렇게 진관사에서 대법회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영가께서 극락세계에 가는데 극락세계는 어떻게 가는가. 세신(世身)은, 세상 세자, 몸 신자, 세신은 부모에게서 받고, 세상에서 자랐는데, 부모 떠나고 세상 떠나면 없는 몸이다. 그걸 세상 몸이라고, 세신이라고 하죠. 이 세상 몸이라는 것은 부모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고, 또 세상에 있는 공기, 세상 음식, 세상 의복, 이 세상 물질 떠나서 이 몸은 없다. 그런데 이 세신은 머묾이 없다. 무주(無住)하여, 없을 무, 머물 주, 머묾이 없어서, 생멸이 무정이니, 이 나고 죽는 것이 정해진 게 없다. 생멸이 무정(生滅無定)이라. 태어나서 언제 이 몸을 마칠지, 어떻게 마칠지 전혀 정해진 게 없다. 그래서 이 세상 몸이 나고 죽음이 정해진 거 없는 것이, 마치 비유로 들자면,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고,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猶如露電 夢幻泡影), 이런 말씀인데요. 이슬이라는 건 뭐냐. 이 몸이라는 게 가만히 보면 신여조로(身如朝露)라. 아침 이슬이다. 아침 이슬이 처음 생길 때는 아주 영롱한데, 해가 뜨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게 아침 이슬인데, 인생이라는 게 초로(草露)와 같다.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다. 이제 이렇게 가르치고 있고요. 또 이 세상 몸이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어떻게 빨리 지나가는지 번개와 같다. 한평생이 번개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사람은 다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는데, 과거가 꿈과 같다. 내 개인의 과거는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고, 내 생각 속에만 있는 게 내 과거인데, 나의 과거에 좋았던 일이나 힘들었던 일이 전부 꿈과 같다. 그리고 세상사가 이 세상에서 펼쳐지는 모든 문화라든지 형식이라든지 역사가 다 환과 같다. 환이라고 하는 것은 허깨비를 말하는데 허깨비가 뭐냐. 사람 인형을 만들어서 그 뒤에서 다른 사람이 그 인형을 조종할 때, 뒤에서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는 그 인형을 환이라고 그래요. 허깨비라고. 그래서 이제 성 위에 인형을 올려놓고 그 성 뒤쪽에서 줄을 올렸다 내렸다 해서 그 성 담 위에 있는 인형을 움직이는데 그걸 보고 환이라 그러고, 그 뒤에서 움직이는 대로 움직인다 이거죠. 그러면 이 세상 만물이라는 게 사람들이 다 만드는 대로 만들어지는 거다. 그래서 세상 만물을 환이라고 그래요. 허깨비라고. 정해진 게 없고. 사람들이 만드는 대로 초가집을 만들면 세상 만물에 초가집이 수북하고, 기와집을 만들면 기와집, 고층 빌딩을 만들면 고층 빌딩, 나무를 잘 가꾸면 살림이 울창한데 이걸 전부 베어내 버리면 그냥 민둥산만 보이고, 세상 만물은 전부 인간이 만들어내는 허깨비다, 이렇게 가르치고. 물거품이라는 게 있는데 물거품이라는 건 뭐냐. 인간의 감각이다. 사람은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감각이 견문각지(見聞覺知)라고 가르쳐요. 눈으로 보고 견, 귀로 듣고 문, 코로 입으로 몸으로 느끼고 각 의식으로 알고, 판단하고, 이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그냥 물거품처럼, 이게 영원한 게 아니고 사라져요. 이게 뭔 소리냐면, 태어났을 때 감각하고, 또 아동 시대의 감각하고, 소년 청년 시대의 감각하고, 노년 시대 감각하고, 이 감각이 다 틀려요. 그래서 그전에 전혀 나도 몰랐는데, 칠십이 넘어보니까, 우선 이 보이는 감각이 틀려요. 옛날엔 딱 보면 그냥 확 다 들어왔는데, 요새는 옆에 있는 것도 안 보여요. 눈앞에 가까운 것만 보이고,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못 봐요, 늙으면. 그래서 나이 든 사람은 맨날 없다고 그래요, “야 없다. 없다.” 그런데 젊은 사람이 가면 바로 있거든요. 그게 감각이 틀려서 그래요. 나 그거 옛날에 몰랐어요. 맨날 없는 게 그게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동시에 못 봐요. 그리고 기억도 어릴 때는 기억을 하는데 어제 한 거 기억 못해요. 그래서 이 감각이라는 게 영원한 게 아니고, 이게 물방울처럼 생겼다 사라지는 건데, 그걸 모르면 그게 기억이 허망함을 모르게 된다. 다 틀리는 거예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감각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고 이 몸이 있는데 이 몸을 감각을 일으키는 뿌리라고 그래요. 근, 뿌리 근자. 감각을 일으키는 뿌리라고. 그럼 이 감각을 느끼려면 대상이 있어야 된단 말이죠. 보는 대상, 듣는 대상. 그래서 근이, 대상은 불교에서 경계 경자를 쓰는데, 경계, 근경(根境), 그래서 이 몸과, 몸과 다른 대상 경계에 딱 마주치면, 이걸 촉경(觸境)이라고 하는데, 어려운 말로, 몸이 경계에 접촉한다, 촉경. 그러면 이 몸에서 의식이 발동을 해요. 이걸 발식(發識)이라고 그래요. 촉경하면 발식을 하는 게 이게 근인데, 이 근이 노화된다든지, 근이 기능이 떨어지면, 발식 자체가 둔해요. 눈이 또 뭘 보는 게 그게 촉경인데, 촉경하면 그냥 보는 게 아니라 거기서 의식이 일어나야 돼요. 발식을 해야 보지 발식을 못하고 이 몸이 그냥 시신이 됐다든지 하면 못 보는 거예요. 근데 이 몸이 숨 떨어지기 전에도, 이 몸의 이 뿌리 상태가 쇠약하니까, 보는 감각이나 듣는 감각이나, 그래서 나이 들면 옛날에 맨날 물어요, ‘뭐라고? 뭐라고?’ 그래서 다 싫어해요. 두 번 물으면 다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이게 늙으면 숨지기 전에 이미 감각이 많이 3분의 2 이상이 죽어서 살았다고 할 수가 없어요. 이게 세상의 몸이다. 그리고 그림자라는 게 있는데 노전몽환포(露電 夢幻泡). 포는 물결, 감각을 말하고, 그림자는 의식 자체를 말하는데, 뭐를 사람이라고 하느냐. 첫째는 숨을 쉬어야 사람이고, 그래서 숨 쉬나 이걸 꼭 확인하거든요. 두 번째는 의식이 있어야 사람이에요. 의식이 있나. 사람 알아보나. 이걸 묻는다고. 근데 이 의식이라는 게 전부 세상에서 익힌 걸 의식이라 그래요. 세상 의식. 그래서 이 의식을 불교에서 어떻게 깨달았느냐 하면은 현행(現行)의식, 나타날 현자하고, 행할 행자하고, 현행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밖으로 움직이는 의식인데요, 외현(外現)인데, 이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의식이고, 들을 수 있는 거 의식이고, 행동하는 거 의식이고, 이게 다 현행 의식인데, 보통 사람은 이제 이것만 알아요. 그런데 그 현행 의식이 한 번 경험이 되면 이게 전부 쌓여요. 그냥 없어지는 게 아니고. 이걸 함장식(含藏識)이라 그래요. 포함할 함자, 저장할 장자. 내가 뭘 봤던 건 그냥 그게 사라지는 게 아니고 함장이 돼, 포함해서 저장이 돼요. 들었던 것도 저장이 되고, 이걸 줄여서 장식이라고도 하고, 안다 이 말이죠. 의식이라는 식자 포함해서 저장됐다 이 소리죠. 그리고 이게 어느 순간 되면 다시 나와요. 나오는 건 현행이고, 저장되는 건 장식인데, 그래서 나오는 그 기능을 종자라고 한단 말이죠. 장식은 또 종자식(種子識). 그래서 함장식, 종자식이 딱 속에 있어요. 다 함장 종자가 되는 거예요. “내가 뭐 오늘 진관사에 다녀왔다.” 그러면 이게 다 함장이 되고 그게 종자가 돼서, 진관사라는 말만 들어도 오늘 다녀왔던 게 튀어나와, ‘그랬다. 그래서 진관사는 어떤 거다.’ 다 그 기억하는 대로 행동을 하게 돼요. 그래서 이거를 현행식, 종자식. 이 종자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봐도 몰라요. 내가 이런 걸 보면, 이거는 어릴 때부터 이거는 종이다, 이거는 글씨다, 종자가 딱 만들어져 있거든요. 그래서 이거 보면 ‘아, 이거 종이지, 글씨지’ 딱 알아요. 근데 이걸 전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사람, 이거 내놓으면 이거 몰라요. 근데 이 종자식이 전부 행동하는 데서 생기고, 행동하는 것이 저장돼서 다시 또 현행으로 나오고, 현행이 다시 종자가 되고, 종자가 다시 현행이 되고,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해요. 이걸 세간 몸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 그림자라는 건 뭐냐 하면은, 내가 물에 들어가서 물을 딱 보면 그 물 안에 내 모습이 있는데, 내가 그 물속에 있는 게 아니라, 내 몸이 그 물속에 지금 그림자로 비춰진거다 이 소리잖아요. 거울도 마찬가지고. 그러면 내가 뭘 보든지 자기 종자 의식으로 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보는 건 자기 다 의식의 그림자다 이렇게 가르치는 거예요. 참 중요한 가르침이에요, 이 가르침이. 내가 사람을 봐도 ‘어떤 사람은 어떻다.’라고 속에 다 저장된 종자 의식에 따라서 지금 그 사람을 보고 있기 때문에, 앞에 나타난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속에 저장된 종자대로 본다. 그러니까 이 앞에 있는 사람은 자기 종자 의식의 그림자라는 거죠. 그래서 그림자라고 그러는 거예요. 근데 이제 요즘 심리학이나 다른 정신의학에서는 무의식이라는 말을 써요. 의식과 무의식이 있다. 근데 불교에서는 무의식이라고 안 하고 종자식이라고 그래요. 그게 무의식보다 종자식이 훨씬 더 깊이가 있는 소리예요. 무의식은 자기가 생각하지 못하면서 행동하는 걸 무의식이라고 그러는데,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걸 의식이라 그러고, 여러 사람이 똑같이 자기도 모르게 행동하는 걸 집단 무의식이라고 그러고, 또 개별 개별 행동하는 걸 개별 무의식이라고 그러는데, 불교에서 가르치는 거는 현행식, 종자식. 현재 움직이는 거는 현행식인데, 그 움직이는 바탕이 종자가 저장돼 있어서 그 종자에 의해서 현재 행동을 나타낸다는 거예요. 이게 현행이에요. 그러니까 한평생 산다는 게 전부 생각으로 살고, 몸으로 살고, 이렇게 허깨비로 살고, 번개같이, 살고 꿈같이 살고, 이슬같이 산다. 불교의 이 한 평생 사는 의미를 이렇게 가르치고 있어요. 그러면 그 종자 의식 속에는 뭐가 있나. 그거는 세신이라고 안 하고, 근본 본자, 몸 신자, 본신(本身)이라고 그래요. 본래 몸. 그럼 극락세계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세상에서 없어지는 그 몸으로 가는 게 아니에요. 몸도 생각도 세상 건 세상에서 사라져요. 근데 안 사라지는 게 있는데 그건 본래 몸이다. 본신이 있다. 그래서 이 본신이 뭐냐 하면, 의식이 아니고 성각(性覺)이라는 말을 쓰는데요. 본성이라는 성자, 깨달을 각자. 각은 안다는 말인데, 세상에서 익히고 배워서 아는 게 아니라, 본성이 안다. 그래서 이걸 성각이라고 그러고, 의식은 생각이 안다, 생각 의, 알 식. 그래서 이제 마음이라고 그럴 때 그 본성이라는 본성심이 있고, 세상에서 익혀서 세상대로 아는 의식심이 있다. 이렇게 가르쳐요. 의식은 세상대로 보는 거고, 그 본성이 아는 거는 본래 마음이 아는 거다. 이거 성각. 의식. 극락세계는 성각이 가는 거예요. 의식이 가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그 성각으로 돌아가서 딱 보면, 의식으로 볼 때는 좋고 나쁜 게 있는데, 어떤 게 좋고 어떤 게 나쁘냐. 내 몸에 필요한 건 다 좋아요. 근데 내 몸에 필요치 않은 건 다 나빠요. 순전히 이 세상 몸을 가지고 있을 때는 내 몸을 위해서 살아요. 나이가 드나 똑같아요. 나이 든 사람이라고 나은 거 하나도 없어요. 노인도 보면 순전히 자기 몸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 몸에 필요한 대로 말을 해요. 그러니까 인간을 믿으면 곤란해요. 그럼 누구를 믿어야 되냐. 그 본래 본성의 마음에 가까운 사람 말은 믿어도 돼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아버지 좋은 대로만 하게 돼요. 자식이 원하는 대로 하다 보면 자식 좋은 대로만 하게 돼요. 절대 그러면 안 돼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볼 때는 이 몸에 필요 없는 건 다 원하질 않아요. 그런데 이 본성의 마음으로 보면 다 좋은 거예요. 나쁜 거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이 본성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전부가 극락세계예요. 그래서 의식심에서 성각 본성이 아는 마음으로만 돌아가면 자기 엉덩이를 움직이지도 않고 극락세계에 간다. 그러니까 이게 의식심으로 보면 이게 괴로운 건데, 본성심으로 돌아가면 괴로움이 없어요. 전부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옛날에 석가모니와 그 석가모니 대단한 제자들이 이걸 깨달은 거예요. 본성으로 돌아가면 모든 세계가 다 극락세계다. 의식으로 판단하면 내 몸에 좋은 건 좋다고 하고, 내 몸에 안 좋은 건 나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좋고 나쁜 게 있는 거를 사바세계라고 그러는데요. 사바세계라는 말은 고와 낙이 있다는 소리예요.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다는 소리인데, 극락세계라는 말은 괴로운 거 없다는 소리예요. 지극히 즐겁다. 그러니까 괴로운 건 하나도 없고 즐거운 것만 있다. 그거 왜 그러냐. 이 몸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본래 아는 지혜로 보니까, 하늘을 봐도 하늘이 즐겁기만 하고, 고통이 없고, 땅을 봐도 땅이 즐겁기만 하고 고통이 없어서 무유중고(無有衆苦)하고, 많은 고통은 하나도 없고, 단수제락(但受諸樂)이라, 다만 모든 즐거움만 받는다. 근데 어째서 그러냐. 의식심으로 보면 좋고 나쁜 게 있는데, 성각심으로 보면 나쁜 건 없다. 나쁜 거 없는 걸 극락세계라고 하고, 법계실상(法界實相)이라고 그러는데, 법계는 온 우주인데, 우주의 진실상이다. 법계실상. 그럼 부처님은 거기에 갔어요. 근데 오늘 영가는 그런 업을 많이 못 익혔기 때문에 의식심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러면 의식심으로 돌아가신 분이 성각심으로 머무는 극락세계에 어떻게 갈 수가 있느냐. 그 부처님의 인도를 받아서 간다. 그걸 가피(加被)라고 그래요. 인도 받아서 가는 걸 가피로 간다. 가피라고 하는 건 더할 가, 증가할 가자, 입혀줄 피자. 자기 힘으로는 못 가도 이제 인도를 받으면 간다 이거거든요. 어린아이가 어른 따라가면 가듯이. 그래서 부처님의 가피로서 이 오늘 영가가 극락세계에 가시기를 발원하고 예경하는 것을 재를 올린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고요. 그러면 이런 공덕으로 오늘 영가가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서 극락세계에 가시게 된다. 그러면 세신은 여섯 가지 비유로, 노 이슬, 전 번개, 몽 꿈, 환 껍데기, 포 물거품, 영 그림자, 이렇게 여섯 가지 비유로 세상의 몸을 설명하는데, 그럼 본래 몸은 어떤 거냐. 본신은 영명하다(本身靈明), 신령 령자, 밝을 명자, 신령스럽고 밝다. 신령스럽다는 말은 이 본신은 주소가 없어요. 이래서 어려운 거예요. 이게 산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바다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이 몸을 움직이지만 몸에도 안 머물러요. 몸에도 몸 조사해 보면 그 신령스러운 성각의 마음이 안 보여요. 그래서 옛날 한자를 보면 그 마음 심자를 심장 모양으로 만들었거든요. 옛날 사람들은 이 마음이 심장에 있는 걸로 알았는가 봐요. 그래서 마음 심자를 심장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그 심장 열어봐도 마음 안 보여요. 몸 열어봐도 마음 안 보여요. 그래서 이걸 영명성각(靈明性覺)이라고 그래요. 신령스럽게 밝은 본성의 마음이다. 영명성각은, 적조(寂照)가 적이라는 건 고요할 적잔데, 그림자가 없어요. 모양이 없어요. 그런데 항상 비추어 비출 조자. 적조가 얼마나 오래 많은 곳을 비추냐. 시간도 끝이 없고 공간도 끝이 없어요. 이걸 함공(含空)이라고 그래요. 머금을, 삼킬 함, 허공 공자. 허공을 다 삼켜버려, 끝이 없어요. 그래서 이 본신은 영명하여 적조가 함공(寂照含空)하니, 고요히 비치는 것이 허공을 다 삼켜버리니, 이게 우리 본래 몸이에요. 그래서 그 본래 몸을 떡 깨닫고 각관세간(却觀世間)하니, 다시 세상에서 받은 몸을 이렇게 보니, 본래 몸의 상태에서 세상 몸을 보니, 상사작몽(相似昨夢)이라, 상사라는 건 같다 이 말인데요. 작몽은 어제저녁에 꾼 꿈을 어제 작, 꿈 몽, 작몽이라고 그래요. 어제저녁에 꿈을 꿨는데, 오늘 아침 보면 꿈이 간데 없거든요. ‘다 엊저녁 꿈의 일이야.’ 이런 말이 있어요. 꿈꿀 때는 분명히 확실하게 있었는데, 꿈 깨고 나면 없어. 그래서 한 평생 이 몸 가지고 살 때는 너무 분명하고, 너무 아주 심각했는데, 한 목숨 딱 지고 나면 간 곳이 없어요. 남는 건 본래 마음뿐인데, 그 본래 마음은 아직 못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겨우 찾는다는 것이 또 세상 몸을 다시 찾아요. 이걸 윤회라 그래요. 극락세계에 못 가고 세상 몸을 다시 찾는다. 근데 극락세계에 가게 되면 이제 부처님 나라로 가는 거예요. 이걸 왕생이라 그러거든요. 가서 난다. 극락왕생. 극락왕생을 이제 안 하면 생사 윤회하는 거예요. 죽고 사는 걸 되풀이 하는 거지. 그래가지고 생사윤회냐 극락왕생이냐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생사윤회 극락왕생. 엊저녁에 꿈과 같아서 이게 내 본래 몸으로 세상 몸 보니까 이거 그냥 완전히 한바탕 꿈이었다. 그래서 도 닦는 사람이 이 의식의 마음을, 보고 듣고 하는 이 견문각지의 마음을 잠시 다 처음에는 모으고, 그 다음에는 살피고, 그 다음에는 맑혀서, 이 마음을 맑히는 건 아무것도 안 하면 저절로 맑혀져요. 하면 안 맑혀져요. 마음은 물과 같아서 이 더러워진 물을 맑히는 거는 그냥 가만 놔두면 맑혀져요. 근데 이걸 젓는다든지 막 움직이면 안 맑혀져요. 그래서 우리 혼란한 마음, 어지러운 마음을 맑히는 방법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요. 그럼 마음이 점점 조용해지고 점점 맑아져요. 마음이 어느 정도 맑아지면 잠시 잠시라도 이 세상 몸에서 본래 몸을 보는 때가 있어요. 그거를 뭐라고 하냐면 내가 이 몸을 벗어나 보는 체험을 했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내가 이 몸이 있는데 이 몸에서 잠시 나와 보는 체험을 했다. 이 본래 몸을 경험했다, 이 소리예요. 내가 이 몸을 벗어나 봤다. 진짜냐. 모르죠, 다른 사람은. 근데 그게 사실이에요. 이 몸이 있는 상태로 그냥 본래 몸을 딱 본 거예요. 그리고 본 순간만은 이 세상 몸에서 벗어나 본 거거든요. 그러면 점점 그 생각을 맑히는 노력이 깊어지면 그 본래 몸에 딱 바탕을 두고, 이 세상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어요. 그걸 해탈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살아서 해탈하면 좋고, 그 다음 좋은 건 죽어서 극락 가는 거예요. 그다음 이제는 다시 죽고 사는 대로 되풀이 하는 거고. 그걸 가르치는 게 불교거든요. 그러니까 그걸 믿고 지금 이렇게 49재를 다 지내고 있는 거지요. 衆生廣大無有邊이나 如來一切皆護念이로다중생광대무유변 여래일체개호념 轉正法輪하야靡不至하니 昆盧遮那의境界力이로다 전정법륜 미부지 비로자나 경계력(華嚴經 世界成就品)(화엄경 세계성취품)나무아미타불 그러면 이 신령스럽고 밝은 본성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무장무애(無障無礙)라고 장애가 전혀 없어요. 이게 눈으로 보는 게 아니고 본성으로 보기 때문에 멀고 가까운 게 없어요. 그래서 중생이 광대하다(衆生廣大), 넓고 크다 그러면 끝이 없다는 말이죠. 중생이 많고 많고, 무유변(無有邊), 그 끝이 없으나, 여래가 일체를 개혼념(如來一切皆護念)이라. 그 본성을 깨달은 부처님들은 본성으로 보기 때문에, 일체 중생을, 다 보살필 보호할 호, 생각 념, 다 보호해서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사람 눈으로 생각하면 몇 사람 못해요. 근데 이 본성의 마음으로 살피면, 멀고 가까운 걸 다 살필 수가 있다, 이런 얘기죠. 그래가지고 전정법륜(轉正法輪)의 법륜을 가르치는데, 바른 가르침을 펼쳐서, 바른 가르침이라는 게, 이 의식의 마음은 항상 몸을 의지해서 세상 것만 따라가니까 그거는 생사윤회밖에 안 되고 해탈이 안 된다,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본성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극락세계에도 가고 고통이 없는 세계에서 자유를 느낀다. 이렇게 말하는 게 바른 가르침을 펼치는 거거든요. 바른 가르침을 펼쳐서 미부지(靡不至)하니, 이르지 않는 데가 없다. 구석구석에 다 이르는 게 이 본성으로 보살피는 노력이다, 이거예요. 이거는 비로자나 경계력(昆盧遮那 境界力)이라. 이 본성의 광명을 비로자나라고 하는데 비로자라는 건 대광명이란 소리예요. 대광명이라는 건 그늘 없는 광명, 그늘이 없어요. 또 시종 없는 광명, 처음과 끝이 없는 광명을 대광명이라고 그러는데, 그 대광명을 비로자나라 그래요. 비로자나 경계력이라, 비로자나께서 펼치는 힘이다. 그래가지고 이 깨달은 분이 머무는 세계가 극락세계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머무는 세계가 사바세계요. 사바세계는 괴로움이 있는 게 왜 괴로우냐. 이 몸을 중심으로 생각하니까, 몸에 안 좋으면 괴로운 거예요. 몸에 좋으면 즐거운 거고. 그래서 사바세계는 고락이 있고 극락세계는 고락이 없다. 이래가지고 비로자나 경계력인데, 오늘 영가께서 이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서 극락세계에 가서 왕생하십시오, 이 말씀이거든요. 지심제청 지심제수 西方淨土 極樂世界 壽光無量 極樂世界 서방정토 극락세계 수광무량 극락세계昆盧遮那 佛利淨土 壽光無量 極樂世界 비로자나 불찰정토 수광무량 극락세계華藏剎海 莊嚴淨土 壽光無量 極樂世界화장찰해 장엄정토 수광무량 극락세계 眞如實相 具足淨土 壽光無量 極樂世界에진여실상 구족정토 수광무량 극락세계一念往生하고 一超往生하시어 無盡福樂 無盡受用하십시오일념왕생 일초왕행 무진복락 무진수용 서방정토 극락세계라(西方淨土 極樂世界), 서방은 백방(白方)인데, 동서남북을 할 때 서쪽을 백에다가 비유를 해요. 백방은 본성 세계다, 이 소리예요, 서방은. 본성 세계는 더러운 건 없고 깨끗한 것만 있다. 그래서 서방정토 백방정토 이 말이죠. 본성정토. 그게 본성 정토가 서방정토에요. 극락세계다. 근데 극락세계는 수광무량(壽光無量)이요, 수명과 광명이 한량이 없어요. 무량수 무량광 이러거든요. 그걸 아미타불이라고 그래요. 무량수 무량광. 수명이 무량하고 광명이 무량한 걸 아미타라고 그러는데, 나무란 말은 공경, 기원 공경하고, 그쪽 근원으로 돌아간다. 공경 기원을 나무라고 그래요. 그러면 무량수 무량광의 세계에 공경심으로 돌아간다. 공경심이라는 말은 다른 생각 없는 걸 공경이라고 그러거든요. 잡념이라고 하는 거는 공경이라고 안 하고, 그냥 한 마음으로 일심을 공경이라고 그래요. 어떤 사람이 뭐 하다가 ‘이거 해서 될까?’ 그러면 공경이 아니에요. 그냥 되는 걸로 한 마음으로 하는 걸 그걸 공경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수광무량 극락세계. 비로자나 불찰정토(昆盧遮那 佛利淨土). 이 비로자나불의 찰이라는 건 이 진토 티끌 흙덩어리를 찰이라고 그러는데, 그 비로자나불이 머무는 국토, 진토 세계, 불찰 정토, 거기가 수광 무량 극락 세계다. 또 화장찰해 장엄정토(華藏剎海 莊嚴淨土), 화는 공덕인데 많은 공덕으로 이루어진 그 세계 바다, 바다도 많다는 소리고. 그 불찰의 많은 세계에 온갖 좋은 걸로 꾸며져 있는데, 나쁜 거 하나도 없이 좋은 걸로만 꾸며져 있는데 그걸 장엄이라고 하거든요. 장엄이라는 건 좋은 걸로만 가득하다 이 소리예요. 그래서 그렇게 좋은 걸로만 가득한 정토, 수광이 무량한 극락 세계. 진여실상 구족정토(眞如實相 具足淨土). 참 그대로 본성, 참 그대로 진실상에 온갖 것이 없는 거 없이 좋은 건 다 있다. 그걸 구족이라고 하거든요. 구족, 갖추어졌다. 그 정토 수광무량 극락세계에 오늘 영가께서 일념왕생(一念往生)하시고, 한 생각으로 가서, 한 일자, 생각 념자. 가면 될까 안될까 이 두 생각 갖지 말고, 한 생각으로 왕생, 가서 나시고, 일초왕생(一超往生), 한 번 딱 떼서, 한 걸음에, 한 일자, 뛸 초자, 한 걸음 딱 옮겨서 바로 가서 나셔서, 왕생하셔서, 무진복락(無盡福樂)을, 끝없는 복과 즐거움을 무진수용(無盡受用)하소서, 끝없이 받고 쓰소서. 이런 법문으로 오늘 법문을 다 마쳤습니다. 49재 잘 모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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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 10월25일 음력 10월 신중기도 입재 법문
종범스님 2022-10-25
임인년 10월 초하루 진관사 법문은 축원공덕(祝願功德), 축원공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불교는 인연법인데, 그 인연법을 설명하는 방법이 <하나가 있으면 모든 것이 있고, 한순간이 있으면 영원한 시간이 있다.> 이렇게 가르쳐요. 하나가 있으면 모든 것이 있고 한순간이 있으면 영원한 시간이 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설명하는 신라 시대의 가르침이 있는데, 한 집안에 본인이 하나 딱 있으면, 그 본인의 부모가 있고, 조부모가 있고, 또 본인의 아들이 있고, 손주가 있고, 그래서 이게 오대가 되는데요. 그런데 자기는 현재인데, 자기 아버지는 자기의 과거고, 자기 할아버지는 과거의 과거고, 또 자기 아들은 미래고, 손주는 미래의 미래고. 그런데 이것이 다 한순간에 있다. 내가 있으면 나의 부모도 있고,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고, 나의 아들, 딸도 있고, 나의 손주, 손녀도 있고 다 있는데, 이게 알고 보면 손주, 손녀는 자기의 미래의 미래고, 아들은 미래고, 자기 부모는 과거고, 자기 할아버지는 과거의 과거다. 이게 한순간이다 이 말이죠. 미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순간 한 장소에 다 있다. 그래서 한순간이 있으면 과거, 현재, 미래, 영원한 시간이 있는 거고, 영원한 시간은 한순간에 있다. 이렇게 인연법을 가르쳐요. 그리고 하나가 있으면 모든 것이 있다. 모든 것이 있으면 하나가 있다. 예를 들면 여기 손가락이 하나를 딱 내세우면 이건 하난데, 하나를 더 내세우면 이게 하나가 둘이 돼버려요. 그러니까 둘은 하나가 둘 된 거지, 하나 없는 둘은 없어요. 그럼 이 둘이 하나가 둘이다. 또 둘 속에는 하나가 들어있다. 둘 없는 하나가 없고, 하나 없는 둘이 없다. 이래서 한 티끌 속에 우주가 있고, 온 우주 속에 티끌이 있다, 이렇게 가르치고요. 시작은 바로 결과다. 결과 없는 시작은 없다. 또 결과를 이루고 보면 시작 그 자리에서 이루었다. 시작 없는 결과는 없다. 이렇게 인연법을 공간으로, 시간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마음을 담아서, 미래를 담아서, 결과를 담아서, 축원을 다 하면 그 축원이 바로 성취고, 결과고, 미래다. 그래서 하나가 둘이듯이 오늘이 미래지, 오늘 떠나서는 미래가 없다. 그렇게 가르치는 게 불교의 인연법이에요. 어떤 분들 얘기 들어보면, 아들 키워 결혼시켜서 손주를 봤는데, 이 손주를 친정엄마한테 맡겨놓고 애들은 돈 버는 데만 열심히 하고. 그래서 옆에 사람이 “그러시면 참 복 많이 받으시겠어요.” 그러니까 “복은 받는지 안 받는지 보이지도 않고, 너무 힘드니까 애나 좀 안 봤으면 살 것 같다.” 이러거든요. 근데 애 보는 게 그거 자체가 복 받는 거예요. 현재가 미래인 거예요, 현재가. 현재 없는 미래는 없어요. 또 현재가 과거고. 그러니까 자기 아버지가 바로 과거고, 자기 아들이 미래고. 그래서 이게 시간도 영겁이 영원한 세월이 함께 있고, 공간도 하나 속에서 모든 것이 함께 있기 때문에 ‘복 받는지 안 받는지 알 수도 없다.’ 이거는 잘못된 생각이고, 복 짓는 게 바로 받는 거예요. 이걸 인연법이라 그래요. 짓는 걸 바로 받는 거다. 이렇게 이해를 해라 이 말이죠. 그래서 마음 모아서 축원하면 그 축원이 바로 성취인 거예요. 축원이 성취지, 축원 없는 성취는 없다 이거거든요. 그럼 축원은 불교에서 어떤 격식으로 하느냐. 상단축원, 중단축원, 영단축원, 이런 격식으로 하는데요. 영단은 제사 지내면서 하는 축원이 영단축원인데, 영단은 제사 지내는 단상이에요. 법단. 중단은 화엄 신중 성현을 모신 곳이 중단이고, 상단은 부처님 불보살을 모신 곳이 상단이거든요. 通祝 : 時會合院 大衆通祝(上壇祝願) 통축 : 시회합원 대중통축(상단축원)仰告 十方三世 帝網重重 無盡三寶慈尊 不捨慈悲앙고 시방삼세 제망중중 무진삼보자존 불사자비爲作證明 (許垂朗鑑) 先亡 父母師尊 法界含靈 超生樂邦 위작증명 (허수낭감) 선망 부모사존 법계함령 초생낙방 時會合院大衆所願 圓滿成就 然後願 시회합원대중소원 만원성취 연후원恒沙法界佛子等 同遊華藏莊嚴海 항사법계불자등 동유화장장엄해同入菩提大道場 恒蒙諸佛大光明 동입보리대도량 항몽제불대광명 頓成無上最正覺 廣度法界諸衆生돈성무상최정각 광도법계제중생 究竟圓成薩婆若 摩訶般若波羅蜜구경원성살반야 마하반야바라밀 상단축원은 부처님 법 전체에 대한 축원이에요. 그래서 시작을 앙고(仰告) 이렇게 시작하는데, 앙고라는 건 딴 게 아니고, <말씀을 올립니다>. 고자는 말씀이라는 뜻이고, 앙이라는 건 올린다는 뜻이에요. 말씀을 올립니다. 이 말씀 올리는 게 축원이거든요. 시방삼세 제망중중 무진삼보자존 불사자비(十方三世 帝網重重 無盡三寶慈尊 不捨慈悲) 이렇게 나오는데, 이 <불보살님의 청정법신 지혜광명 자비광명 일체 원력이 티끌티끌 순간순간마다 다 충만하고 원만하고 변만하다.> 이렇게 말하는데, 이 말은 <안 계신 데 없다> 이 말이죠. 충만 원만 변만. 그러니까 그런 부처님을 향해서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내용을 우러러 말씀을 올리면 그게 축원인데, 그렇게 하니까 불보살들께서는 이 축원하는 이 마음을 증명해 주십시오. 딱 헤아려 보시고 그렇게 관찰을 해주십시오. 증명하라 그런 거를 위작(爲作)이라고도 하고, 한문으로, 한다는 위자고 지을 작자고, 그게 할 위자나 지을 작자나 한다 이 소리예요, 다. 한다. 위작이 그럼 해주십시오. 이것도 되고, 또 허수(許垂)라는 말도 쓰는데, 허락할 허, 수직이라고 하는 위에서 밑으로 드리울 수, 그건 옥편에 보면 수자가 베풀 수자예요. 베풀 수자. 허락이라는 건 줄 허자, 그러니까 베풀어 주십시오. 뭐를. 이 기도하는 내용을 밝게 밝게 거울처럼 살펴주십시오. 이제 그렇게 하고, 기가 막힌 게, 축원을 시작할 때 선망 부모 축원부터 시작을 해요. 나 이거 절에 와서 아주 이상하게 생각을 했어요. 산 사람이 제일이지, 왜 조상 축원을 먼저 하냐. 근데 그게 이유가 있어요. 조상이 자손이에요. 그러니까 조상 없는 자손이 없는 거예요. 이게 불교의 문화고, 이게 교설이에요. 조상이 자손이기 때문에 과거가 현재란 말이죠. 그래서 조상 축원을 하고. 부모, 선망 부모, 조상 또 일체 스승들(先亡 父母師尊) 이런 분들을 먼저 축원을 하고, 그다음에 겸급법계(兼及法界) 일체고혼이라고 참 기가 막혀요. 온 법계에 겸해서 온 법계에 미치도록 온갖 영가를 다 축원을 해요. 그래서 유교 문화에 딱 젖은 사람은 이걸 보면 아주 당혹스러워요. 내 부모 제사 지내는데 왜 온 우주 법계 영혼들을 불러들여서 축원하냐. 딱 이렇게 되거든요. 근데 그거는요, 깊은 뜻이 있어요. 심봉사가 눈을 뜰 때 일체 맹인들이 전부 개평으로 공짜로 눈 떴어요. 개평 눈 뜨는 수가 있어요. 그래서 복 받는 사람 옆에는 함께 복 받는 수가 있거든요. 이런 게 있기 때문에, 내가 기도를 잘하면 내 부모, 내 조상은 물론이거니와 일체의 고혼영가가 함께 극락왕생하는 법이 있어요. 이게 동양문화의 아주 핵심이에요. 이게 문학에도 나와요. 그 심청이 공덕으로 심청이 아버지 한 사람만 겨우 눈 뜬 게 아니에요. 그분이 눈을 뜰 때, 그냥 옆에도 뜨고, 저 멀리도 뜨고, 가까이도 뜨고, 전부 자기도 왜 뜨는 줄도 모르게, 그걸 개평 눈 뜬다고 우리 말로, 그냥 옆에서 뜨는 거예요. 그게 불교의 인과법이고, 그게 동양 문화의 아주 근본이에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함께 할수록 좋은 거다 그거죠. 그리고 시회합원대중(時會合院大衆)이, 시회라는 건 지금 법회에, 합원이라는 거는 합할 합자인데, 합할 합자는 모일 회자, 회합이라고도 하는 건데, 모일 회, 합할 합, 회합, 모인단 말이거든요. 법당에, 원은 법당이고, 법당에 모인 일체 대중이 다 함께 업장도 소멸하고, 지혜도 청정하고, 복덕도 구족하고. 이렇게 되고. 연후원(然後願), 그런 다음에, 또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있는데, 그걸 요약해보면, 항사법계불자등(恒沙法界佛子等)이, 항사법계라는 건 저 갠지스강 모래알 같은 숫자의 많은 법계 불자들이 동유화장장엄해(同遊華藏莊嚴海)하고, 화장은 부처님 깨달은 공덕 세계를 화장이라고 그러는데, 거기에 온갖 복덕장엄이 다 있어요. 그런 복덕장엄에 함께 머물고, 놀 유자를 쓰는데 논다는 말은 머문다는 말이에요. 요즘 말로 하면 템플스테이, 템플은 화장장엄이,고 스테이가 동유, 함께 머문다. 요새 화장장엄의 이름은 잘 몰라도 템플스테이 하면 다 알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함께 머무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동입보리대도량(同入菩提大道場)하고, 함께 부처님 도를 이루는 도량에 들어가고, 항몽제불대광명(恒蒙諸佛大光明)하고, 함께 모든 부처님의 광명을 항상 받고, 돈성무상최정각(頓成無上最正覺)하고, 무상최정각을 바로 이루고, 불교는 궁극 목적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데, 요거 그대로 놔두는 이유가 있어요. 이걸 한자로 바꾼다든지 우리 말로 바꾸면 이게 잘못될 염려가 있어서 그대로 놔두는 거거든요. 아뇩다라라는 말은 가장이라는 가장 최자하고 높다는 윗 상자하고, 최상이라는 말이고, 없다는 없을 무자하고 윗 상자하고 무상이라는 말인데, 가장 높고 그 이상 높은 곳이 없고 이런 말이에요. 또 삼먁이라는 말은 바르게 평등하다. 바르게 평등하다는 뭔가. 실개동등(悉皆同等)이라는 말을 쓰는데 경에서는, 다 실자, 다 개자, 동등하다. 이게 이제 불교의 그 보리 평등법인데, 깨달음을 얻고 나면 티끌이나, 하늘이나, 삶이나, 죽음이나, 있는 거나, 없는 거나, 다 평등해요. 못 깨달으면 차별이요. 그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게 이게 평등을 몰라서 그래요. 알고 보면 평생 이룬 게 다 쓰잘데기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룰 때는 그거 몰라요. 행복을 위해서 산다고 그러는데 죽을 때 행복도 부질없어요. 그래서 보이는 거나 안 보이는 거나 다 평등해요. 이걸 정등, 삼먁이라고 그래요. 삼먁. 이 평등을 모르면 못 깨달은 거고, 평등을 알면 깨달은 거예요. 정등, 바르게 평등하고, 또 삼보리는 보리는 깨달음이고, 삼은 바를 정자니까 정각. 그래서 최상무상 정등정각. 이거 얻는 거를 삼세제불은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이러거든요. 뭐 평생 싸우고 이루는 거 부질없어요. 그래서 싸워서 이길 생각하지 말고 깨달을 생각을 해요. 깨달음이 인생의 정답이에요. 그거 뭐 하려고 하는데요. 깨달아라. 왜 깨달아야 되는데요. 다 평등한 세계로 들어간다. 깨닫지 않고서는 평등한 세계에 못 들어가고, 평등한 세계에 못 들어가면 맨날 싸운다. 이거 참 보통 일 아니에요. 그래서 광도법계제중생(廣度法界諸衆生), 법계, 이렇게 맨날 싸우는 중생을 인도해야 된다. 중생 치고 안 싸우면 중생이 아니에요. 중생이 뭐가 중생이냐. 싸우면 중생이고 안 싸우면 중생 아니다. 그러니까 다 싸워요. 모녀지간도 싸우고, 부자지간도 싸우고, 형제 이거 말할 것도 없어요. 엄청나게 싸워요. 그러니까 그래가지고 구경원성살바야(究竟圓成薩婆若), 마지막에는 큰 지혜를 원만히 이루고,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 온갖 지혜로 이런 걸 해결하길 원한다 이거지요. 그다음에 상단축원는 통축(通祝)이라고 그래서, 모두 다 함께 하는 거, 통이라는 건 함께 한다 이 말이거든요. 別祝 : 各其心中 所求所願(中壇祝願) 별축 : 각기심중 소구소원(중단축원)仰告 華嚴會上 諸大賢聖 僉垂憐愍之至情 各放神通之妙力 앙고 화엄회상 제대현성 첨수연민지지정 각방신통지묘력 仰蒙 諸大聖衆 加護之妙力 所伸情願則 앙몽 제대성중 가호지묘력 소신정원즉日日有千祥之慶 時時無百害之災 六根清淨 四大剛健 身無一切病苦일일유천상지경 시시무백해지재 육근청정 사대강건 신무일체병고厄難 心無一切貪戀迷惑 參禪者 疑團獨露 念佛者 三味現前 看經者 액란 심무일체탐연미혹 참선자 의단독로 염불자 삼매현전 간경자慧眼通透 病苦者 即得快差 職務者 隨分成就 三障頓除 五福增嵩 혜안통투 병고자 즉득쾌차 직무자 수분성취 삼장돈제 오복증숭三業皆清淨 奉持諸佛教 和南大聖尊 俱護吉祥 摩訶般若波羅密삼업개청정 봉지제불교 화남대성존 구호길상 마하반야바라밀 그리고 신중단의 중단축원은 별축(別祝)이라고 그래서, 별별, 따로따로 해요. 그럼 별축은 뭐냐. 각기심중 소구소원(各其心中 所求所願)이라. 각자 그 사람 마음속에 소구, 구하는 바, 원하는 바, 소구 소원 이거를 축원하는 게 중단축원이거든요. 여기도 이제 앙고(仰告) 이렇게 나오는데, 누구한테 앙고하냐. 화엄회상 제대현성(華嚴會上 諸大賢聖)께 앙고합니다. 화엄경에 보면 세주묘엄품에, 해탈을 얻은 모든 여러분들이 세상의 주인들인데, 그분들이 각자 깨달음을 얻어가지고 이 세상의 중생들을 위해서 다 신통을 드러내요. 그걸 화엄회상 제대현성이라 그래요. 모든 현인과 성인이다. 그분들은 무슨 일을 하느냐. 첨수연민지지정(僉垂憐愍之至情)하고. 연민의 정이 있어요, 그분들은 세상에. 연민의 지극한 정을 다 베풀어주시는 분이고, 각방신통지묘력(各放神通之妙力)이라. 각각 신통의 묘력을 다 펼치는 분이다. 그래서 이제 누구누구 축원하는데 여기서는 빼고, 그다음에 앙몽 제대성중 가호지묘력(仰蒙 諸大聖衆 加護之妙力)하여, 제대성중에 가호지묘력을, 앙몽이라는 건 잘 받아서, 우러를 앙자, 잘, 몽자, 받아가지고 이루어진 가호지묘력, 가호지묘력을 잘 받아서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소신정원즉(所伸情願則), 소신이라는 거는 펼치는 거, 서술하는 건데 설명하는 거, 그리고 정원이라는 거는 정원 각각이에요. 각각 자기가 원하는 걸 정이라고 그러는데, 각각 원하는 그 정원을 서술해서 말씀을 드리면 이게 바로 깨달음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이분들은요, 세상의 복덕과 지혜를 이루는 거를 원력을 세워서 가호력을 펼치기 때문에 여기서, 각자 원하는 거는 일일유천상지경(日日有千祥之慶)하고, 나날이 천 가지 좋은 복이 있고, 시시무백해지재(時時無百害之災)라, 시간 시간마다 백까지 해로운 재앙은 다 없어지고. 이걸 원해요. 참 욕심도 많지. 육근이 청정(六根清淨)하고 사대가 강건(四大剛健)하고, 육근 사대는 우리 몸인데, 몸이 다 이렇게 청정하고 강건하고, 신무일체병고액란(身無一切病苦厄難)하고, 몸에는 일체 병고와 액란이 다 없어지고. 심무일체탐연미혹(心無一切貪戀迷惑)하고, 마음에는 일체 탐연이라는 건 쓸데없는 거 탐하는 걸 탐연이라고 그래요. 인간은 쓸데없는 거 탐하다가 지옥 가거든요. 그거 없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데, 필요 없는 거 구하다가 지옥 가요. 이거 참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사는데 아무 지장 없는 거, 그걸 자꾸 구해요. 예를 들면 얼굴이 태어난 대로 한 평생 살면 되는데, 내 얼굴은 내 눈에 보이지도 않아. 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얼굴을 고치다가 평생 살다 죽어요. 그래가지고 그 여러 번 고친 얼굴이 화장막에 들어가면, 고친 얼굴이나 안 고친 얼굴이나 한 줌의 잿더미로 변해버리는데 그거를 위해서 그냥 애를 쓰는 게 없나. 참 쓸데없는 이름 하나 얻으려고 평생 고생하는 사람이 없나. 그걸 탐연이라고 그래요. 탐하고 연연한다고. 그걸 미혹이라고 그러거든요. 마음에는 일체탐연미혹이 없어지고. 참선자는 화두 의심이 다 홀로 드러나고(參禪者 疑團獨露), 염불자는 삼매가 그대로 이어지고(念佛者 三味現前), 간경자는 혜안을 얻고(看經者 慧眼通透), 병고자는 바로 낫고(病苦者 即得快差), 직무자는 자기 직무를 수행하고(職務者 隨分成就), 삼장은 돈제하고(三障頓除), 삼장이라는 거는 혹장, 업장, 미장, 미혹한 장애, 업을 짓는 장애, 고통 장애, 이게 혹업고 3장인데, 삼장은 모두 없어지고, 오복은 나날이 불어나고(五福增嵩), 또 삼업은 다 청정하고(三業皆清淨), 신구의 삼업, 봉지제불교(奉持諸佛教),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다 받들어 간직하고, 화남대성존(和南大聖尊)하고, 불법승 삼보께 다 예경을 올리고 귀의하고, 구호길상하고(俱護吉祥), 길상은 좋은 건데, 좋은 거는 다 이렇게 보호해서 이루고,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密), 큰 지혜로 피안 해탈 세계에 도달하기를 원합니다. 이게 이제 중단축원이에요. 이렇게 축원을 하면 반드시 이렇게 된다. 시작은 바로 결과다. 하나가 있으면 반드시 둘이 있다 이거죠. 하나 없는 둘은 없다 이거예요. 向祝 : 種種因緣 迴向祝願 (靈壇祝願) 향축 : 종종인연 회향축원 (영단축원)表白祝願(表白文) 표백축원(표백문)黃梅山下(靈鷲山下)親傳佛祖之心印 臨濟(創建祖師)門中 황매산하(영취산하)친전불조지심인 임제(창건조사)문중永作人天之眼目 不忘本誓 速還娑婆 普利群生之大願 영작인천지안목 불망본서 속환사바 보리군생지대원 그다음에는 영단축원(靈壇祝願)인데, 영단축원은 종종인연(種種因緣)으로 제사를 지냈으면 제사 지낸 그 인연으로 뭔가 바라는 원력이 있어요. ‘오늘 제사 지내면 제사 지낸 그 조상이 어떻게 되기를 바란다.’ 이런 거거든요. 종종인연으로 회향하는 축원이다, 이게 영단축원인데, 영단축원은 큰 스님들에게 하는 축원이 있고, 보통 제사 지낼 때 하는 축원이 있는데, 큰 스님들이 돌아가셨을 때 하는 걸 표할 표자, 표현한다는 표자, 고백할 백자, 표백(表白)이라 그래요. 여기는 <앙고> 이렇게 안 해요. 영단에서는. 앙고는 이 상단하고 중단 불보살단하고 신중단에만 <말씀을 올립니다.> 이렇게 하고, 제사 지내는 영단에서는 표백이라고요. 표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면 그 표백이 뭐냐. 우리 이제 보통식으로 <6조가 황매산 5조 홍인 대사한테 가르침을 받았다.> 이제 이걸 믿는 게 선종이거든요. 그래서 조계종은 선종이 중심이라, 지금까지 한 것이 황매산하에서 친전불조지심인(黃梅山下(靈鷲山下)親傳佛祖之心印)이라고, 황매산에서 친히 부처님 조사의 마음을 전했고, 또 동아시아 선종은 다섯 종파가 있는데, 거기서 이제 임제종이라고 있는데, 그 조계종은 임제종하고 가깝다. 그래서 임제문하에서, 임제문중에서 영작인천지안목(永作人天之眼目)이라, 영원히 인천의 눈이 되기를 원한다. 이렇게 그 큰 스님 돌아가신 분에게 표백을 해요. 그게 영단축원이에요. 그리고 불망본서(不忘本誓)하고, 다 광도중생하는 게 불교의 본원이거든요.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게 불교의 본원이요, 그래서 그걸 본서라고 그래요, 본래 서원이라고. 본래 서원을 잊지 말고 속환사바(速還娑婆)하야, 속히 사바세계에 다시 오셔라. 오시면 저들이 잘해줄 건가. 잘해 줄 만한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냥 오시라고 그래요. 우리는 가만히 있을 테니까 좀 더 잘해달라고. 속환사바하야 보리군생(普利群生)하소서. <여러 중생들을 널리 이롭게 하소서.> 하는 이런 원을 말한다. 보리군생지대원(普利群生之大願) 이렇게 하고요. 罷散祝願(罷散偈) 파산축원(파산게)十方諸佛刹 莊嚴悉圓滿 願垂歸淨土 哀念忍界人 시방제불찰 장엄실원만 원수귀정토 애념인계인 또 제사 지낼 때 있는데 이건 이제 파산게(罷散偈)라고 그러는데, 끝맺을 파자가 있어요. 그리고 흐틀 산 자가 있는데, 이게 다 흐틀 산 자도 일을 마친다는 뜻이고, 끝맺을 파자도 일을 마친다는 파잔데, 제사를 이제 마치면서, 제사를 다 끝내면서 말을 할 때, 이게 파산축원인데, 시방제불찰(十方諸佛刹)의 장엄이 실원만(莊嚴悉圓滿)이니, 시방에 있는 모든 부처님 나라에, 장엄이라는 거는 복덕과 지혜, 여러 가지 광명, 또 수명, 온갖 이런 게 장엄인데, 장엄이 다 원만하고 구족하다. 그러니까 그 장엄된 부처님 나라에 가면, 귀정토(願垂歸淨土)하면, 부처님 그 장엄이 정토인데 장엄정토, 이걸 불찰장엄정토라고 그래요. 불찰장엄정토. 불찰장엄정토에 돌아가시면, 애념인계인(哀念忍界人)하소서. 인계라는 건 사바세계의 중생세계인데, 중생세계의 사람들을 자비롭게, 슬플 애자를 썼는데, 자비롭게 생각을 하소서 이랬어요. 극락세계에 가면 거기서 혼자 살지 말고 극락세계의 모든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자비롭게 생각해 주십시오. 빨리 돌아오라는 소리에요. 아이들이 자기들이 아이 낳고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봐달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 거지. 가서 왜 와. 거기서 가만히 놀지. 왜 다시 와서 또 저들 봐달라고. 그게 제사를 떡 지내고 빨리 다시 와서 우리를 살펴주십시오. 이게 영단축원이거든요. 迴向祝願(迴向偈)회향축원(회향게) 火蕩風搖天地壞 寥寥長在白雲間 화탕풍요천지괴 요요장재백운간一聲揮破金城壁 但向佛前七寶山일성휘파금성벽 단향불전칠보산 그리고 이제 보통 시식하는 축원에도 이제 회향이라고 하고, 회향게(迴向偈)라고 그러는데, 지금도 저기서 밖에서 제사 회향을 지금 하고 계시네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위패를 태우고, 다 이제 마지막 순서를 행할 때, 그때 뭐 심정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걸 말하는 게 여기 이제 회향게인데, 회향축원이죠. 그 회향축원이 어떤 거냐면, 화탕풍요천지괴(火蕩風搖天地壞)라도, 화탕이라는 건 불이 세상을 다 태우고, 풍요라고 하는 건 바람이 세상을 다 날려도, 이 소리에요. 그래서 하늘과 땅이 다 부서져서 없어지더라도, 이 불찰장엄정토 극락세계는, 그 불이 타던 바람이 불든 아무 지장을 받지 않고 요요장재백운간(寥寥長在白雲間)이라, 고요히 고이 참 높은 흰 구름 속에 그대로 있다. 천지가 무너지든, 뭐 몸이 없어지든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 극락세계가 이렇게 완연하고 분명하다, 이렇게 말을 해요. 일성휘파금성벽(一聲揮破金城壁)하나니, 요령 쫙 흔들고 마하반야 한 소리 딱 할 때, 극락세계를 가로막는 금성벽, 그냥 무쇠 쇠덩어리로 쳐놓은 벽이라도 다 염불 한 마디, 이 요령 소리 한 마디에 다 부서진다. 그래서 극락세계로 가는 길에 장애 가림막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단향불전칠보산(但向佛前七寶山)하십시오. 오직 부처님 칠보산, 칠보라고 하는 거는 온갖 좋은 게 가득한 걸 칠보라고 하거든요. 그 부처님 극락정토 칠보산으로 오직 향해 가십시오. 이렇게 하는 게 그 영단 축원 마지막 축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축원을 잘하면 이 축원이 바로 성취다. 그러니까 이렇게 축원하는 게 성취지, 축원하는 거 따로 성취가 있는 게 아니다. 이걸 가르치고 있거든요.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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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10월 10일 49재 법문
종범스님 2022-10-10
금일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觀色如聚沫하고 受如水上泡하고관색여취말 수여수상포想如熱時焰하고 諸行이如芭蕉하고상여열시염 제행 여파초 心識이猶如幻하야 示現種種事로다심식 유여환 시현종종사 如是知諸蘊하야 智者는 無所著이로다여시지제온 지자 무소착 (華嚴經59召,離世間品)(화엄경59소, 이세간품) 나무아미타불 사십구재가 무엇인가. 오늘 영가께서 극락세계에 가시는 일이다. 극락세계를 어찌하여 가는가. 삶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서 극락세계로 간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찰나생사, 일일생사, 연년생사, 찰나 찰나의 삶과 죽음이 있었고, 매일매일 삶과 죽음이 있었고, 해마다 해마다 삶과 죽음이 있었는데, 우리 생각이 삶에만 계속 매달려 있으니까, 죽음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어느 날 숨이 지고, 맥이 떨어지고, 생각이 날아가니까, 호흡과 맥박과 의식이 소멸할 임종에 딱 맞이해서 보니, 인생 일생이라는 게 일장춘몽이더라. 인생 일생이 일장춘몽이다. 최초의 호흡이 열려서 최후의 호흡이 멈출 때까지 그 순간이 일생인데, 평소에는 사는 데만 매달리고 매달리다가,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듯이, 어제 나는 없어지고 오늘 내가 생기고, 또 오늘 나는 내일 가면 없어지고, 내일 내가 생겨서 이렇게 살았는데, 사는 동안에는 하루 있던 몸이 그 다음에는 다른 몸이 됐다는 거를 전혀 의식을 못하다가 마지막으로 숨 지는 순간에 딱 다달아서 일생을 돌아보면, 인생 일생이라는 게 그저 한바탕 꿈이더라 이거예요. 그러면은 인생을 완전히 깨달은 불보살은 이 몸을 어떻게 보는가. 이 몸에는 지수화풍 사대라고 하는, 이 뼈도 있고 혈액도 있고 체온도 있고 호흡도 있는데, 이걸 지수화풍이라고 하는데, 이걸 반야심경에서 색이라고 한다. 그게 깨달은 불보살이 이 몸에 형체를 가만히 보니까 지수화풍으로 돼 있는데, 이게 영원한 무량 억겁의 시간으로 볼 때, 이 한 평생 이 몸이라는 게 색여취말(色如聚沫)이라. 말포가 있고 수포가 있는데, 말이라는 거는 물방울 말자(沫), 물방울 물결, 이 물방울 물결, 말포라는 것은 소낙비가 하늘에서 크게 떨어져서 땅에 탁 부딪히면 그 땅에서 솟아 올라오는 물결, 그걸 말포라고 그래요. 물방울은 물방울인데 땅에 부딪혀서 튀어 올라오는 물방울. 일생이 그와 같다는 거예요. 그냥 탁 튀어 올라가 금방 사라진단 말이지. 근데 이 사는 데에 얽매여 있는 동안에는 그걸 볼 수가 없어요. 일평생 이 몸이 이렇게 영원한 억겁, 영겁의 시간에서 보면, 한 평생이라는 게 물방울 땅에 부딪혀서 탁 튀어 올라오다가 딱 떨어지는 그 순간과 같다. 그거 어떻게 알아요. 그거를. 알 수가 없지. 그리고 수여수상포(受如水上泡)라, 수라고 하는 건 감각인데, 뭐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사람도 보고 그러는데, 이 감각도 몸이 쇠약해지면 못 느껴요. 사람도 잘 못 느끼고, 맛도 못 느끼고, 봐도 보이지도 않고, 눈도 자꾸 이제 희미해져가지고, 그래서 이렇게 허망하게 없어지는 게 감각이다. 그래서 그거는 수상포, 물 위에 있는 물방울을 수포, 수포라고 그래요. 튀어 오르는 거를 말포라고 하고. 그 물 위에 떠 있는 물방울 그것도 금방 사라지거든. 이렇게 감각은 물 위에 있는 물결과 같다. 물 위에 떠 있는 물방울과 같다. 수상포다. 그래서 이걸 수포라고 그러는데, 물 위에 떠 있는 물방울이라고. 상여열시염(想如熱時焰)이라. 또 이제 생각이라는 게 있는데 생각이라는 것도 이게 상은 억여라, 기억이고, 인식인데 나이 들면 기억도 잘 못해요. 나이가 이제 60이 넘고, 칠십이 넘으면 무슨 증상이 일어나느냐 그러면, 오십 전에는 기억을 많이 하는데 오십 후에 느낀 건 잘 기억이 안나요. 그것 참 이상스러워요. 50 넘어서 뭐 많은 일을 겪었는데 그건 기억이 전혀 안 나. 완전히 기억이 안 나면 그걸 치매라고 하는데, 치매라는 건 다른 게 아니고 인식 상실증, 기억 상실증 그거예요. 인간은 기억으로 살고 인식으로 사는데, 눈동자가 있어도 보지 못하면 그게 아주 불편하거든요. 기억을 못 하면 이 시계를 봐도 저게 뭐더라 몰라요. ‘저게 시계였구나’ 기억을 해야, 이걸 알지 그냥 들이대면 모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억상, 기억하고 생각해내는 거 이거는 열시염(熱時焰)이라, 더울 열자, 때 시자, 아주 뜨거울 때. 땅에서 일어나는 열기에 의해서 수증기가 올라가는 걸 아지랭이라고 그러는데, 그 아지랭이와 같다. 그 아지랭이라는 게 그 온도가 약해지면 금방 없어지거든요. 또 제행은 여파초(諸行如芭蕉)라, 이제 여러 가지 행동하고 또 만들어내고 계획하고 하는 행위인데, 그 여러 가지 행위, 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수포 파초와 같다. 이 파초라는 게 알맹이가 없고 껍질 뿐이라, 한 껍질 벗겨내면 다음 껍질이 있고 또 다음 껍질이 있고, 사람은 일상으로 하다 죽는데 이거 하나 하면 할 게 없는 것 같지만 다음에 할 거 또 나와요. 그다음 할 거 또 나와요. 그래서 맨날 하기는 하는데 끝이 없어요. 새는 날다 죽고, 인간은 하다 죽고 끝이 없어요. 그러니까 파초가 껍질을 벗겨도 벗겨도 맨날 껍질이다 이 말이지요. 그렇고 심식(心識)은 이걸 기획도 하고 판단도 하고 결정도 하고, 이게 마음 심자, 인식이라는 식자, 심식인데, 수상행식, 반야심경에 심이라는 게 이게 조합적인 기억하는 것도 심식이고, 생각하는 것도 심식이고, 판단하는 것도 심식이고, 결정하는 것도 심식인데, 이런 심식은 유여환(猶如幻)이라. 환이라는 거는 꼭두각시라고 그러는데, 꼭두각시가 뭐냐. 겉에 모양을 만들어 놓고 모양을 누가 움직이냐 하면 뒤에서 사람이 움직인다. 그래서 겉에서 움직이는 그 모양을 꼭두각시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 심식이라고 하는 것도 꼭두각시와 같아서 과거에 봤던 것만 생각하고, 과거에 했던 것만 판단하고, 기억에 있는 것만 생각하고, 꿈을 꿔도 그 평소에 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게 꿈에 보인다. 그래서 무엇을 봤느냐, 무엇을 들었느냐,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서 생각이 결정돼서, 자기가 하는 거를 뒤에서 꼭두각시 그 형태를 움직이는 사람으로 보고, 이 생각이 일어나는 거를 그 꼭두각시 모양으로 본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이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행동에 따라서 바뀐다. 그래서 업에 따라서 의식이 바뀐다. 이게 이제 불교 교리인데, 의식은 업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말이에요. 의식이라는 게 그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늘 학업에 종사했던 사람은 의식이 학업으로 바뀌고, 농업에 종사하면 의식이 농업으로 바뀌고, 이렇게 자기 업종에 따라서 의식이 바뀐다. 그러니까 이 생각 바꾸는 거 이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음을 계속 맑히는 업을 지으면 생각이 맑히는 업으로 바뀌어요. 마음을 아주 조급한 업을 자꾸 지으면 마음이, 생각이 조급하게 바뀌어버려요. 그래서 이 심식이라고 하는 것은 꼭두각시와 같다. 그래가지고 그 꼭두각시가 시현종종사(示現種種事)라. 가지가지를 생각이 만들어 내요. 생각이 모든 걸 만들어 내고 있는 거예요. 말하는 것도 생각이고, 행동하는 것도 생각이고, 맛보는 것도 생각이고, 꿈꾸는 것도 생각이고, 이게 자기 업으로 형성된 자기 생각이다. 근데 이걸 살아있는 동안에는 꿈에도 몰라요. 내가 말하는 게 내 생각이라고? 아닌 거예요. 진실이 그러해서 내가 그렇게 판단하는 것처럼 아주 그냥 믿어지는 거예요. 내가 말하는 건 진실이지 내 생각이라고는 꿈에도 몰라요. 요즘도 보면, 노인네들이 딱 말하는 거 보면 기도 안 차요 아주. 왜 그러냐면 노인 자기 좋은 쪽으로 항상 말을 해요. 젊은 사람이 다 자기 좋은 쪽으로 행동해주길 바래요. 그 노인 말 듣고 노인 좋은 쪽으로 하다가는 젊은 사람 아주 신세가 막막해져요. 절대 그러면 안 돼요. 젊은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자기 좋은 쪽으로 늘 말하고 행동하고 권장을 해요. 며느리는 며느리 좋은 쪽으로 말하고 그렇게 따라오길 바라고,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좋은 쪽으로 말하고 그렇게 따라오기를 바라고. 이게 생각이 하는 짓이에요. 그래서 시현종종사라, 보일 시, 나타낼 현, 가지가지 이를 보이고 나타내는 거다 이 말이죠. 이렇게 깨달은 사람은 일생을 다 관찰을 하고 있어요. 일생이란 이런 거다. 그러니 여시지제온(如是知諸蘊)하야, 온이라는 게 우리 몸인데, 이게, 지수화풍 사대로 된 육신과 수상행식 생각으로 된 마음을 탁 관찰을 해서 이렇게 말포와 같고, 수포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파초와 같고, 여기 꼭두각시와 같은 줄을 다 관찰을 해서, 지자는 무소착(智者無所著)이라, 지혜 있는 이는 이 몸뚱이와 생각에 집착하는 바가 없다. 그럼 집착만 안 하면 되냐. 그게 아니고 여기에 이제 참 내가 있는데 그걸 반야지혜라고 하는데, 이 생각 속에 바야지혜가 있어요. 그래서 불보살들은 그 생각을 채워서 집착하는 데 삶의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그 생각을 맑혀서 깨달음을 얻는 데 삶의 가치를 두는 게 불보살들이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이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 진실도 있고 헛된 것도 있어서, 진실도 아니고 헛된 것도 아닌 걸로 뒤섞여 있는데, 맑은 물에다가 마른 흙덩어리를 하나 팡 던지면, 흙이 완전히 맑은 물에 녹아가지고 이게 물도 아니고 흙덩어리도 아니고 그냥 혼탁한 정수가 탁수가 됐다. 이게 우리 몸인 거예요. 그 생각 속에 진실이 있는데, 이게 그냥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이게 탁 여기에 물들어 가지고, 흙이 녹아서 물을 오염시켜버리니까 이거는 물도 아니고 흙도 아니고 완전히 그 탁한 물이 돼버렸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해야 되냐.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이 물을 맑히면 돼요. 물을 다 맑히면 그 흙은 아래로 점점 가라앉고 맑은 물이 탁 올라오면 그게 참 내가 되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불보살은 이 사대 수상행식 오온 신상에서 그 맑은 참 나를 깨닫는 데 목적을 두는 거지, 그 허망하게 그지없는 그 몸을 가지고 뭘 하다 죽는 그런 게 아니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어요. 이 법문은 화엄경 이세간품에 있는 법문인데 그럼 불보살은 어떻게 깨달았느냐. 爾時에世尊이 成最正覺하시니 이시 세존 성최정각智入三世하야 悉皆平等하시고 其身이充滿 一切世間하시고 지입삼세 실개평등 기신 충만 일체세간無邊色相의 圓滿光明이 遍周法界하여 等無差別이시였도다 무변색상 원만광명 변주법계 등무차별(華嚴經제1권,世主妙嚴品)(화엄경제1권, 세주묘엄품)나무아미타불 그러면 이 혼탁한 물을 조금 맑히면 이건 초발심 보살이고, 점점 이제 더 맑히면 십지보살이고, 끝까지 맑히면 등각보살인데, 그 등각보살쯤 되면은 그 혼탁한 흙먼지가 하나도 없이 다 맑아진 정도란 말이죠. 그걸 구경각, 최정각(最正覺)이다, 가장 바른 깨달음이다. 구경각이다. 더이상 맑힐 것이 없는 깨달음이다. 또 무상각, 그 위에는 더이상 맑힐 것이 없는 깨달음이다. 이제 흙먼지는 하나도 없고, 그 맑은 물만 깨끗하게 남아 있는 그런 경지란 말이에요. 그게 최정각인데, 이때 세존이 가장 훌륭한 정각을 이루시니, 어떤 경지가 벌어졌나. 수상행식 생각이 지혜가 됐어요. 광대 지혜. 지혜는 반야인데 반야 지혜가 됐다. 그러면 반야 지혜는 어떻게 돼 있나. 지입삼세(智入三世)하사 그 지혜가 삼세에 다 들어가서, 생각은 현재, 과거를 기억을 하는데, 이 지혜는 과거도 보고, 현재도 보고, 미래도 보고, 시간의 제약이 전혀 없다 이거죠. 그리고 그 깨달음을 통해서 얻은 몸이 있는데, 그걸 정각 증득 청정법신이라고 한다. 그 바른 깨달음을 통해서 자기가 체험하고 얻은 그걸 증득이라고 그러는데, 체험을 증명할 증자라고 하고, 득을 새롭게 얻었다. 얻을 득자를 쓰는데, 정각으로 증득한 몸은 색수상행식 오온 몸이 아니고, 청정법신이다. 오온신상에서 청정법신을 얻는 것이 그것이 성불이다 이거예요. 불보살이 할 일은 오온신상에서 청정법신을 증득하는 것이 불보살이 하는 일이다. 근데 그 청정법신이 충만 일체세간(充滿 一切世間)이요, 일체세간에 다 들어 있어요. 이걸 깨달았으니 참 기가 막힌 노릇이고. 내 몸이 어떤 것이냐. 일체 세간에 가득한 게 내 몸이다. 근데 나는 지금 무슨 몸을 가지고 있나. 이 오온신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오온신상은, 참 물방울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파초와 같은 그런 몸을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몸인데, 여기서 생각을 점점 맑히면 온 이 우주 세간에 가득한 몸을 얻는다 그래가지고 무변색상(無邊色相)이, 한량 없는 모양들이, 무변색상의 원만 광명(圓滿光明)이, 원만한 광명이 주변법계(遍周法界)하여, 법계에 두루 해서 등무차별(等無差別)이라, 평등이, 차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이게 부처님이 무상정각을 통해서 청정법신을 얻었고, 또 지혜 광명을 얻었는데, 이 청정법신과 지혜 광명을 딱 얻는 순간에 온 세상이 부처님 나라 청정토가 돼요. 이걸 부처님 나라를 부처님 불자, 사찰이라는 찰자, 불찰이라고 그래요. 찰이라는 게 차트라라고 하는 범어를 음성으로 나타낸 말인데, 불찰. 청정법신과 지혜 광명이 있는 곳에는 일체 세계가 전부 불찰 정토가 된단 말이에요. 부처님 나라는 더러운 건 없어요, 거기에는. 부처님이 되기 전에는 흙도 있고 물도 있고, 바람도 있고, 빗방울도 있고, 그렇게 안 좋은 게 있는데, 일단 청정법신을 얻고, 지혜광명을 얻으면 일체 만물이 불찰정토요, 부처님 나라 청정국토다. 이걸 극락세계라 그래요. 부처님나라 청정정토를. 그러면 부처님은 깨달아서 그걸 얻었는데, 우리 못 깨달은 범부는 스스로 얻을 수가 없으니까 부처님의 힘을 통해서 그리 가는 거예요. 극락왕생이라고 그래요. 정토왕생. 그게 49재예요. 별거 아니에요. 부처님 나라가 있다. 불찰이다. 부처님 나라는 정토다. 나쁜 건 없다. 그래서 그 정토에 간다. 부처님 나라인데 내 멋대로 갈 수가 없다 말이죠. 내 힘대로 갈 수가 없고. 어떻게 가면 되냐. 부처님의 인도를 받으면 되요. 그래서 부처님 나라로 인도하는 부처님을 접인도사 아미타불, 부처님 나라로 영접해서 인도하는 부처님이다. 인로왕존 지장보살, 길을 인도하는 보살이 있는데, 인로왕, 인도할 인, 길 로, 임금 왕, 높을 존, 왕존이라는 건 다 높은 분이다 이 말이에요. 길을 인도하는 높은 분 지장보살. 인로왕존 지장보살. 접인도사 아미타불의 가피력으로. 가피는 뭐냐 하면, 아이가 어른의 어깨 위에 딱 앉는 것, 그게 가피에요. 내 키는 작지만, 어른이 어깨 위에 딱 앉히면, 어른이 볼 수 있는 높이까지 내가 금방 되거든요. 그걸 가피라고 그래요. 그래서 그 불보살의 원력, 원력이라는 건 ‘내가 꼭 일체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해야 되겠다’ 원을 세웠기 때문에, 그 원력을 타고, 자비를 애가 어른의 어깨에 타듯이 올라 타고, 부처님의 자비를 내가 힘입어서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을 극락왕생이라고 한다 이거죠. 원리가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49재라고 하는 것은 우리 범부중생이 본래 부처님 나라 청정정토에 가서 나는 것을 49재를 행하는 일이고. 그것을 천도왕생, 천도라는 것은 인도한다는 말이고, 왕생이라는 것은 극락세계 가서 난다는 말이죠. 천도는 과정을 말하는 거고, 왕생은 결과를 말하는 거예요. 천도를 하면, 추천해서 인도하니까 그쪽에 간다. 뭐 이렇게 되는 거죠. 佛身周遍等法界하야 普應衆生하야 悉現前하나니불신주변등법계 보응중생 실현전種種教門으로常化誘하니 於法에自在하야能開悟로다 종종교문 상화유 어법 자재 능개오(華嚴經2,世主妙嚴品)(화엄경2, 세주묘엄품)나무아미타불 이 법문은 다 화엄경 세주묘엄품 법문인데, 부처님 몸이, 주변에서, 우리는 오온신만 아는데, 정각 증득 청정법신은 온 우주에 가득해서 법계와 똑같다. 풀이 있는 곳에 불신이 있고, 하늘이 있는 곳에 불신이 있고, 땅이 있는 곳에 불신이 이게 등법계라. 같을 등자, 법계. 이 컵이 있으면 컵이 있는 곳에 불신이 있고. 이게 부처님이 깨달은 청정법신이다. 우리 몸이 있는 곳에 불신이 있어요. 그게 청정법신이에요. 그래가지고 보응중생(普應衆生)하야, 실현전(悉現前)이라, 널리 중생에 응해서 다 그 중생 앞에 나타나신다. 이것이 원력과 자비 신통이거든요. 깨달으면 저절로 그렇게 돼요. 거울이 맑아지면 저절로 거울이 모든 것을 다 비추듯이. 종종교문(種種教門)으로, 가지가지 교화하는 문으로, 상화유(常化誘)하니, 항상 교화하고 이끄니, 어법에 자재(於法에自在)하야 능개오(能開悟)라, 법에 다 자유자재해서 중생들을 전부 길를 열어서 인도하신다. 이것도 화엄경 세주묘엄품에 있는 법문이고요. 이러하니 오늘의 영가께서 지심제청 지심제수 一切諸佛刹 莊嚴悉圓滿하니일체제불찰 장엄실원만西方淨土 極樂世界 華藏淨土 極樂世界 서방정토 극락세계 화장정토 극락세계莊嚴淨土 極樂世界 常樂淨土 極樂世界에장엄정토 극락세계 상락정토 극락세계 一念直往 一步往生하야 無盡福樂을 無盡受用하십시오일념직왕 일보왕생 무진복락 무진수용나무아미타불 화엄경 보살문명품이라는 경문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일체제불찰(一切諸佛刹)에, 일체의 모든 부처님 나라에, 장엄이 실원만(莊嚴悉圓滿)이라, 장엄, 온갖 것, 지혜가 가득하고, 복덕이 가득하고, 광명이 가득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거를 장엄이라고 그런다. 장엄이 다 원만하다. 원만이라는 건 모자라는 거 하나 없다 이 말이지요. 일체제불찰 장엄실원만이다. 그러니 그 장엄이 가득한 세계를 서방정토라고 그런다. 서방은 백방인데 오염되지 않은 거, 하얗다, 나쁜 거 하나도 없다. 그걸 서방이라고 그래요. 서방정토 극락세계다. 그 정토는 전부 극락세계인데, 극락이라는 거는 무유중고(無有衆苦)하고 단수 제락(但受諸樂)이라. 여러 가지 괴로움은 없고, 오직 즐거움만 있는 걸 극락이라고 그래요. 극락이라는 거는 괴로운 건 없다. 괴로움 없이 즐거운 거, 그걸 극락이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장엄이 가득하고 원만한 그 불국토를 서방정토 극락세계(西方淨土 極樂世界)라고 하고, 화장정토 극락세계(華藏淨土 極樂世界)라 그런다. 화장이라는 거, 화는 공덕인데, 공덕이 많이 쌓여서 무진장, 무진궁, 무진장이라 끝이 없다. 진궁, 다함이 없다. 다할 진, 다할 궁. 그걸 화장이라고 하거든요. 그게 화장정토 극락세계고. 장엄정토 극락세계(莊嚴淨土 極樂世界), 장엄이 그냥 청정하게 가득한 극락세계. 상락정토 극락세계(常樂淨土 極樂世界), 항상 즐겁다. 항상 즐거운 정토 극락세계에 일념직왕(一念直往)하시고, 한 생각에 바로 가시고, 일보왕생(一步往生)하시어, 한 걸음에 왕생을 하셔서, 가서 태어나셔서, 무진복락(無盡福樂)을, 한량 없는 복덕과 즐거움을, 무진수용(無盡受用)하십시오. 끝없이 끝없이 받으십시오. 이렇게 해서 오늘 49재 법문을 다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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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10월 9일 국행수륙재 회향 유명계 수계 및 법문
성우스님 2022-10-09
오늘은 영가 분들에게 수계를 하는 날입니다. 영가 분에게 수계를 한다고 하면 이해가 잘 안 되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본디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닙니다. 둘일 수가 없구요. 그렇다고 그러면 우리는 육신이 있는 형태로 살아갑니다만, 영가는 육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영가 분들에게 수계를 한다.’ 아마 처음 겪으신 분들은 ‘세상에 그런 일도 있나?’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저는 분명히 영가는 존재하고, 여러분들의 제일 소중한 인연, 업이 지극한 인연, 서로 공덕이 무거운 인연은 틀림없이 이 자리에 오시게 되어있습니다. 진관사 국행수륙무차평등대재가 그냥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눈을 조금만 뜨고 보신다면 틀림없이 영가가 와 계심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영가 분에게 계를 설한다.’ 그 자체는 영가 분에게 공덕을 지어서 영가에게 회향하는 일인 것입니다. 영가 스스로는 혼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공덕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소중한 인연이 공덕을 지어서 영가에게 회향한다고 한다면, 영가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환희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 받아들임이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음덕(蔭德)이라고 표현합니다. 음덕이라는 말은 거기서 나오는 말인데, 그래서 분명히 영가는 오는 진관사 국행수륙무차평등대재에서 유명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연이 없으면, 인연이 무거우면, 그 영가의 업이 무거우면 이 도량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거예요. 저 도량 밖에서 어물쩡거리다가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살아 생전에 선근을 조금 심어놓은 것이 있다 그러면 틀림없이 이 자리에 와서 이 법사 이야기를 잘 들을 겁니다.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들을 겁니다. 횐희롭게 들을 겁니다. 여러 영가분들이 자세히 들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범망경에 말씀하시되 만일 부처님 계를 받으면 국왕과 왕자와 백관, 재상과 비구와 비구니, 십팔범천과 육욕천자와 서민과 황문과 음남음녀와 노비와 팔부귀신과 금강신과 축생과 내지 변화한 사람으로서 다만 법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이는 계를 얻을 수 있으며 모두 이름하여 제일 청정자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부처님의 자비평등으로 널리 삼계 중생을 제도하여 계법을 널리 펴서 육도 중생을 두루 거두어 개도하여 깨달음을 얻지 아니함이 없으며, 반드시 깊은 신심을 갖추어 불법에 거두어 제도하는 것이니, 만일 깊은 신심이 아니면 또한 구제하기 어려우니라. 이 영가 역시 선근이 있어야 되고, 맑은 마음이 있어야 되고, 또 깊은 신심이 있어야 합니다. 신심이란 일체 중생의 본래 갖춘 심성의 근본이며 진상이 고요하며 원융하여 두루 불생불멸을 얻되 범부와 성인이 없으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조금 더 하거나 덜하지도 않느니라. 이제 육도가 쉼 없이 삼계에 오가는 것은 모두 한 생각 망령되게 움직여 참된 밝음을 덮은 탓이니라. 청정한 몸 가운데 업 따라 나타나니, 사랑과 탐욕과 훔치고 버리는 일이 생겨나니 이른바 눈 안에 티끌이 있어서 허공에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으니, 이런 까닭으로 천생만겁에 항상 생사를 오고 가는 것을 어찌 쉬리요. 진실로 어두움을 깨달아 잘 비추면 모든 인연이 일어남이 본래 자성이 없는 것이며, 이른바 방심이니, 만약 광심을 쉬면 쉬는 것이 곧 보리이니라. 광심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일어났다고 없어지고 일어나는 그런 망념, 망상을 말하는 겁니다. 그 광심을 쉬면 곧 보리입니다. 보리란 말은 지혜란 말입니다. 여러 영가분들이여. 본래 갖춘 진실로 밝고 둥글고 맑은 마음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 이 마음이 곧 금강광명보계의 근본이며, 이 근본이 곧 모든 보살의 본원이며 불성 종자이니, 일체 중심의 모두 있는 불성이며, 일체 의식색신이며, 이 정이며, 이 마음이니, 모두 불성의 가운데 들어가 있느니라. 지금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여러 영가분들이 이미 본래 갖춘 이와 같은 불성 종자가 이와 같은 까닭으로 내가 이제 그대의 이와 같은 불성 묘계를 주노니 마땅히 알라. 이 계는 받았어도 받은 것이 없으며, 자성을 일으켜 닦는 까닭으로 받은 것이 없어도 받은 것이며, 오로지 닦는 것은 곧 자성인 까닭으로 이미 법성이 더러움에 물듦이 없음을 알아 계 바라밀을 수순 수행해야 하는 까닭으로 대신하여 계를 받는 것이며, 영가를 대신하여 법명을 말하노라. 내가 이제 향을 사뤄 삼보께 수계를 증명하여 수계를 우러러 청할 것이니라. (대중들은 모두 일어선다.) 향 사루고 꽃을 올려 여러 영가는 일심으로 청합니다.사바교주 본사 석가모니불 과거각화정 자재왕불서방접인 아미타불 당래하생 미륵존불허공계가 다하도록 법계에 두루 하신 부처님들원하건대 본래 서원 어긋나지 않도록 자비광명 두루두루 비추시어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 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 향 사루고 꽃을 올려 여러 영가는 일심으로 청합니다.대소이승 비니율장 오편삼취 해탈목차 십이분경 권실교전탐욕여읜 청정진리 깊고 깊은 가르침에일심으로 귀명정례하옵니다.일심으로 귀명정례하옵니다.일심으로 귀명정례하옵니다. 향 사루고 꽃을 올려 여러 영가는 일심으로 청합니다.유명교주 지장보살 관음보살 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청정해중 보살님과 율장회상 우바리존자 전남산종 여러 율사중흥율조 혜운형공 대화상 유명정계 화상님은원하건대, 본래 서원 어긋나지 않도록 자비광명 두루두루 비추시어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계 받는 일, 증명하여 주옵소서. 향 사루고 꽃을 올려 여러 영가는 일심으로 청합니다.광명회상 여러 천신 대범천왕 제석천왕 천룡팔부 신장님들호계하는 선신들과 금강역사 염라대왕 여러 지옥 대왕들과가람토지 보호하는 모든 여러 신장들은 원하건대본래 서원 어긋나지 않도록 이 계단을 보호하여 주옵소서.이 계단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이 계단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대중 스님들은 모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러러 삼보께 수계를 증명해 달라 청하여 삼보의 자비광명이 영가에게 비추어졌느니라. 영가는 마땅히 지옥 고통이 깊고 두려우니, 위없이 보리심을 발하여 삼보 앞에 간절하게 참회를 하는 참회의 말을 해야 하느니라. 영가가 스스로 진솔해야 할 것이나 영가가 이미 할 수 없으니, 내가 이제 영가의 수계를 대신하는 일을 가르쳐 합당하게 영가가 하는 듯이 하게 할 것이니라. 여러 영가는 비롯 없는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몸으로 지은 죄가 한량 없이 많았으며, 여러 영가는 비롯 없는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입으로 지은 죄가 한량없이 많았으며, 여러 영가는 비롯 없는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뜻으로 지은 죄가 한량없이 많았으니, 그러므로 오늘에야 간절참회 바라오니, 원하건대 삼보님은 자비로 거두소서. 청정광명 놓으시어 유명세계 사루시고, 여러 고통 지옥들이 극락으로 변화하며, 화탕지옥 노탕지역 청량제로 변화하고, 지은 죄업 소멸되어 해탈 얻게 하옵소서. 맹세코 두 번 세 번 악을 짓지 아니하고 착한 일들 닦고 닦아 중생들을 제도하여 윤회 고를 함께 벗어 모두 성불하여지이다. 나무보현왕보살마하살나무보현왕보살마하살나무보현왕보살마하살 여러 영가 분들이여. 이제 삼보 앞에 비롯함이 없는 죄업을 참회하였습니다. 신심은 깨끗하여 더욱 늘어나서 고통의 과보는 멀리 여읠 것입니다. 먼저 마땅히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란 모든 중생이 숨기거나 나타나며 가지고 있는 체성이니, 체성은 하나요, 다르지 아니하며, 하나의 체 가운데 갖추고 있는 불법승 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이라는 것은 깨달음이라는 뜻이니, 이르되 성체를 깨달아 모든 법을 비추며, 없는 것도 아니오, 있는 것도 아니니, 이것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불 보인 것입니다. 법은 가져야 할 규범이란 뜻이니, 이르되 법성이 적멸하여 항사성덕을 모두 갖추어야 이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법보라는 것입니다. 승이라는 것은 화합이라는 뜻이니 이르되 항사묘덕의 승상이 둘이 아니고, 이사가 화합하면 이것이 본래 갖추고 있는 승도인 것입니다. 계라는 것은 해탈이라는 뜻으로, 금강광명보계이니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본원이요, 모든 중생의 불성종자라. 이것이 본래 갖추고 있는 성계라는 것입니다. 여러 영가 분들은 이제부터 믿음을 얻었으니 자기 마음속의 불,법,승,계를 미래의 몸이 다하도록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기에 불괴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체에 진상을 갖추었으나, 닦아 증득하지 아니하면 없는 것이니, 이른바 이 마음으로 부처가 되고, 이 마음이 부처인 것입니다. 마땅히 주지삼보에 귀의하여 청정묘계를 받아 의지하여 수행해야 바야흐로 위 없는 불과를 원만성취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영가 분들이여, 이제 불보살 앞에서 대신 계를 받는 이가 낱낱이 대신 받을 것입니다. (대중 승들은 모두 장계 합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여러 영가는 이제부터 미래의 몸이 다 하도록 부처님께 귀의하겠습니다. 저 여러 영가는 이제부터 미래의 몸이 다 하도록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겠습니다. 저 여러 영가는 이제부터 미래의 몸이 다 하도록스님네께 귀의하겠습니다. 저 여러 영가는 이제부터 미래의 몸이 다 하도록부처님의 계율에 귀의하겠습니다.(대중들은 모두 장계 합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가분들이여 자세히 들으십시오. 이제 영가를 위하여 대승보살의 열 가지 다함이 없는 계를 대신 계를 받는 사람에게 낱낱이 대신 받게 하겠습니다. 이제 계목을 설 할텐데 여러분들이 인연있는 영가의 이름을 생각하시고 대신 대답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첫째. 짐짓 살생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둘째. 짐짓 훔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셋째. 짐짓 사음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넷째. 짐짓 거짓말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다섯째. 짐짓 술을 마시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여섯째. 짐짓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일곱째. 짐짓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 -잘 지키겠습니다.여덟째. 짐짓 간탐부리지 말고 욕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 -잘 지키겠습니다.아홉째. 짐짓 성을 내어 참회를 아니 받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 -잘 지키겠습니다.열째. 짐짓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계이니 영가는 잘 지키겠습니까?-잘 지키겠습니다. 여러 영가분들이여. 영가는 이제 보살묘선계를 이미 받았으니 삼도의 업이 쉬고 육도의 정이 사라져 미도를 초월하여 바로 깨달음에 들어가 뜨거운 번뇌의 고통을 여의고 청량제를 얻으리라. 또 모름지기 신심과 뜻이 견고하여 행운이 물러나지 아니하고 보리가 원만해 지리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되, 중생이 불계를 받으면 곧 제불의 지위에 들고 지위가 같은 큰 깨달음을 이룬다 하셨느니라. (영가를 대신하여 세 번 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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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행수륙재] 10월 2일 국행수륙재 6재 법문
인묵스님 2022-10-02
반갑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진관사 수륙 보존회, 불기 2566년 금년 수륙대재를 봉행하는데, 오늘이 6재입니까? 정성 들여서 이렇게 모시는 모습이 느껴져서 굉장히 좋습니다. 올해가 9년째라고 그러는데, 내년이면 10주년인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올해는 또 특별하게 이렇게 진관사만이 우리 비구니 스님 중심으로 수륙재를 설행합니다. 대장이 어장입니다. 저도 어장인데요. 우리 동희 스님이 저한테는 또 선배시고, 또 소리를 많이 배우셔서 훌륭한 어장감인데, 그동안 못해 드려서 죄송했어요. 회주 계호스님하고 주지 법해스님이 나만 보면 그냥 졸라요. 근데 내가 해주는 건 아니에요. “좀 우리 동희 스님을 어장으로 모셨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하는데 ‘아, 이거 참 도와드려야 되겠다.’ 정말이에요. 그래서 1, 2년이 된 게 아니에요. 만날 때마다 그렇게 해야 된다고. 그래서 마침 총무원장 스님께서 또 협조를 해주시고 여러 의례위원 스님들이 또 동참해 주시고 협력을 해 주셔서 동희스님을 어장으로 추대하면서, 금년에 첫 수륙대재를 봉행하고, 내년에 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의식을 하는 사람으로서도 굉장히 기쁘고, 또 경하해 마지않습니다. 오늘 이렇게 진관사에 동참을 하게 됐는데요. 저는 이렇게 법문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염불을 하는 게 쉬운데 이렇게 올라왔습니다. 이제 몇 가지 말씀을 드리는데요. 수륙재에 관계되는 얘기를 좀 하다 내려갈까 합니다.수륙재는 다 아시다시피, 불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재의식 중에, -여러 가지 재가 많습니다.- 그중에 영가를 위한 천도재 중에서는 규모가 굉장히 큰 재에 속합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일개 사찰이나 어느 단체나 이런 데서 이렇게 설행할 그런 재가 아니고, 국가에서 주관했습니다. 국가에서 주관을 해서, 물량과 모든 준비하는 장엄, 또 향, 다 또 제물 이런 것이 단이 많고. 여러분도 해보셨죠? 거의 1년을 준비해야 됩니다. 그래야 원만하게 할 수 있는데, 규모가 가장 큰 천도재입니다. 삼화사 수륙재는 삼화사가 수륙재를 지낼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날 우리가 동시에 무형문화재로 가입을 했는데요, 등록이 됐는데요. 삼화사 수륙재는 조선 건국을 하면서, 여러분 역사 잘 아시죠, 여말선초라고 해서 이성계, 옛날 그 <용의 눈물>로 아주 유명했던, 태조 이성계하고 인연이 많은 그런 수륙재입니다. 고려가 많이 부패함으로 인해서 조선을 다시 건국하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합니다. 잘 아시죠. 그 태조 이성계 아들이 누구예요. 방원. 태종. 아버지가 조선 건국하는 과정에서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불필요하게 많은 생명들을 희생하고 또 희생을 감수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안 해도 되는데 걸리적거리니까. -이제 저도 이제 속가 연으로는 이가입니다. 이가. 살기는 전주에서 태어나고 살았는데 전주 이가가 아니고 목은 이색의 후손입니다. 한산 이가입니다. 그래서 양반은 양반인데 좀 원한 관계가 있어요.- 태종 그때 이제 방원이가 아버지를 도와준다고 상당히 많은 지식인들을, 당대 선비들을 많이 희생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목은의 희생이고.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 삼은도 죽이고, 많이 죽였어요. 또 제가 회암사에 있었는데요. 나옹 스님이 정치적인 이유로 왕명에 의해서 밀양으로 내려가실 때, ‘이제 내려가면 내가 여기 다시 회암사에 못 오는구나.’ 그래가지고 가시다가 다시 와서 안에 들러서 다시 문을 돌아서 나가셨다고 하는 역사적 기록도 있어요. 그래서 저 여주 이포 나루터, 요즘 신륵사에서 돌아가셨는데 이제 석연치 않은 죽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건국하는 과정에서 안 나가려고 해서 또 충돌이 일어나고, 죽게 되고 그래서 어쨌든 그런 큰 거사가 일어남으로 인해서 많은 희생이 따랐다. 그래서 왕의 입장에서도, 왕실의 입장에서도 이거는 참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다. 얼마 전에 <정도전>인가 뭐 했었잖아요. 드라마 안 보시나요? 거기서도 보면은 아버지 이성계가 태종을 은근히 속으로는 좋아하면서, 되게 또 미워하잖아요. “너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냐”고 막 뭐라고 그러잖아요. 그렇게 해서 부담을 많이 가졌는데, 이거를 어떻게든지 위로를 하고 해소를 해야 되는데, 이제 그것이 뭐냐. 부처님의 가피입니다. 그리고 불교 재 의식을 통해서 그때 많이 희생됐던, 우리 편이든 남의 편이든, 아군이든 적군이든 많이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수륙대재를 아주 성대하게 베풀어서 그런 모든 희생된 영령과 그런 생명들을 천도해줘라. 이렇게 왕이 명을 내려서 시작한 게 수륙대재가 되겠습니다. 그럴 때는 앞에 붙는 게 두 자가 있어요. 뭐냐 국행수륙대재가 되겠습니다. 국가에서 주관해서 행하는 수륙재. 그래서 모든 이 행사에 대한 준비와 물품은 국가에서 다 대는 겁니다. 그리고 스님들도 이렇게 잘하는 스님만 선발하는 게 아니라, 무차대법회니까 전국에 있는 난다 긴다, 잘한다, 나도 좀 한소리 한다하는 이 스님들은 다 모이는 거에요. 그리고 법문 잘하는 스님도 다 모이는 거에요. 그래서 보통은 길게는 한 보름 정도 하지만, 한 일주일 정도 하고, 주야로 일주일을 합니다. 그러면 큰 스님들이 계속 법화경을 중심으로 한 법화회상 법문도 하고, 또 전국에서 모였으니까 큰 어장 스님들이 모여서 저 전라도는 관욕 시련을 잘하니까 그걸 하고, 서울 경기는 뭐를 잘하니까 그걸 시키고, 경상도는 뭘 시키고, 이렇게 해서 다 역할을 줘 가지고, 그게 참 경쟁도 되고 잘해야 되잖아요. 또 어장 스님들은 의식을 안 해요. 저렇게 큰 높은 자리에 모셔서 누가 잘하나 못하나 이게 심사예요. 심사. 그래서 잘하면 칭찬도 하고, 보시도 좀 많이 주고, 승복감도 주고, 장삼감도 주고 그러는데, 잘 못하면 찍혀. 한 번 찍히면 어떻게 되느냐. 그건 이제 두고두고 회자 되는 거에요. 저 사람들 시켰더니 조금 빼먹고 형편 없고 그냥 대충 한다. 그 구역 의식하는 스님들의 명예가 걸리는 거죠. 한 번 찍히면 회복하기가 어려워요. 그렇게 해서 국가에서 주관하는 큰 재를 대략 보면, 한 일주일 정도 한다고 봅니다. 낮에는 영산재도 하고, 밤에는 수륙대재를 하고. 아마 우리 진관사도 그런 옛날 내려오는 전통 의례의 틀을 따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명에 의해서 삼화사가 그렇게 지내게 됐었는데 그동안 맥이 끊겼어요. 조선을 통해서 많이 끊겼던 것을 근대에 와서 이렇게 잘 또 우리가 노력을 해가지고 만들어낸 거죠. 옛날 거를 진관사도 만들어내고, 삼화사도 만들어내고. 왕실하고 굉장히 밀접한 우리 진관사이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어디 멀리 못 가요. 그리고 원찰이에요. 왕실 원찰. 궁중 원찰. 그래서 이제 가까우니까 물량을 보내서, 어떤 큰 의미의 수륙재도 하지만, 또 왕실에 보면 누가 이제 병 나서 죽고, 왕이 죽고, 왕의 권속이 죽고, 그러면은 가까우니까 원찰을 찾습니다. 그냥 49재를 지내도 되는데 그냥 49재는 좀 뭐랄까, 규모가 좀 낮아요. 대중소로 하면 소자야 소자. 근데 수륙재는 천도재 중에서도 대자에 속해요. 아주 최고로 하는 거니까. 아마 왕실에서도 이왕이면 잘 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보통은 수륙재를 해서 천도재를 합니다. 왜 수륙재로 천도재를 하느냐. 특정 영가가 있겠죠. 누가 돌아가셨으니까. 그런데 특정 영가만 하는 것은 의미가 좁아요. 특정 영가만 하기 때문에. 그런데 특정 영가를 천도하는데 거기다가 이제 뭘 더 보태는 거야. 다른 불쌍한 여러 고혼들을 다 불러서, 청해서, 그 사람들도 천도시켜주면 그 고마움이 어디로 가겠어요. 그 고마움이 그 영가한테로 가고, 또 그 수륙재를 설판한 재자들한테 가기 때문에 그냥 49재가 아니고, 진관사 49재는 반드시 수륙 천도재를 했다. 그런 것이 맞나요? 수륙재 중에서 최고, 최고, 최고로 이제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하다 보니까 이제 이게 전통이 돼버립니다. 수륙을 통해서 천도재를 하면 수륙 천도재가 되고, 또 이제 영산재를 통해서 천도재를 할 수가 있어요. 영산재 안에는 천도라는 의미도 내포돼 있지만, 영산은 부처님의 영산회상 법화경을 설한 그 법화회상을 그대로 재 현장에다가 이렇게 옮겨가지고, 거기서 이 부처님께 찬탄하고 공양 올리고 축원하고 이렇게 해서 누구를, 거기가 이제 무슨 영가가 있다면 그 영가를 위해서 부처님께 가장 성대하게 그렇게 공양을 올리고, 찬탄함으로 인해서, 천도재를 지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영산재를 통해서도 천도재를 지낼 수 있는데, 그거는 이미 지정이 됐기 때문에, 우리가 마침 머리를 잘 써가지고, 수륙 천도재로 해서 이렇게 오늘날 전승이 잘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면 뭐냐. 이게 왜 그러면 수륙을 이렇게 잘 해야 되고 이게 꼭 해야만 되는가. 천도재를 꼭 해야만 되는가. 이 천도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제가 이제 의식을 공부하다 보니까 어떤 주지스님들은 이제 영가를 많이 끄집어내가지고, 영가 49일 첫 기도를 매번 49재에 해서, 1천일, 3천일 이렇게 하는 절도 있는데, 이렇게 무주 고혼이 많은 것은 천도 되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그게 살아 생전에 무주고혼이 많으니까 수륙재를 할 거 아니에요. 업을 많이 져서 집착이 많으면 자기 갈 길을 못 놔요. 못 놓으면 못 가는 거야, 그렇죠. 그래서 안 보여서 그렇지, 보이면 참 무주고혼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란분절을 통해서, 또 그런 재를 통해서 많이 하는데, 어쨌든 수륙을 통해서 무주 고혼들을 이렇게 천도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천도를 함과 동시에 수륙재를 했기 때문에, 그 수륙재 의식 안에 그 내용을 살펴보면 소통입니다. 소통. 그래서 그 수륙재를 천지 명양 수륙 성범 이라고 합니다. 천지는 하늘과 땅, 명양은 양과 어두운 데, 또 물과, 육지 또 성현, 범부 이렇게 할 것 없이, 모든 이렇게 상대적인 걸 떠나서, 부처님이든 보살님이든, 불보살님의 가피로 천도를 받는 대상인 영가님이든 할 것 없이 다 모입니다. 차별 없는, 수륙이라고 그래서 꼭 물 밑에 있는 생명과 육지에 있는 생명이 아니라 다, 그날은 성현들이나 범부들이나, 육지 중생이나 수륙 중생이나 또 지옥에 있는 또 어두운 곳에 있는 생명이나 밝은 데 있는 생명이나, 하늘에 있는 생명이나 땅에 있는 생명들을 다 불러서 모인다고 해서무차평등이라고 그러는데, 처음에 다 불러 모십니다. 이렇게 처음에 다 부처님을 괘불이운을 통해서 모시고, 신중님을 신중작법을 통해서 모시고, 또 시련을 통해서 밖에 나가서 영가님들을 다 모셔서, 처음에는 이렇게 다 모셔서, 회우라고 해야 되나, 이렇게 조우, 만남을 갖습니다. 이렇게 무슨 생명, 성인이다 범부다 할 것 없이 일단은 다 모이는 축제의 장입니다. 부처님이든 성현이든 중생이든. 그렇게 해서 의식을 집전하는 모든 출연하는 스님들이 여기서 그동안 배운 기량을 발휘를 해서, 서로 서로 이렇게 각자의 역할을 맡아서 협연합니다. 소리하는 사람은 소리를 담당하고. 소리도 이게 여러 종류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 비구니 스님들이 있는데 짓소리도 있고, 홋소리도 있고, 안채비 소리도 있고, 또 소문도 있고 유치성도 있고, 여러 가지 소리가 있고. 또 이제 소리만 있는 게 아니라 작법도 있고, 소리와 작법을 통해서 각가지 정성을 들여서 서로 환희롭게 협연을 합니다. 서로 호흡을 잘 맞춰서. 이때 잘 해야 돼요. 이때 이제 환희스럽게 잘 해야, -하는 사람도 환희로와야, 내가 소리를 하더라도 내가 감동을 받아야 되잖아요.- 그래야 신중님들도 환희롭고, 부처님도 환희롭고, 영가도 환희롭고. 그래서 다 와가지고 그 의례를 통해서 무주 고혼들이 가지고 있는 집착, 이게 그 착으로 인해서 이걸 못 놓아서 그래요. 49일 되면 불교에서는 천도를 하면 다 간다고 하는데, 이게 49재를 넘겨버리면 못 가요. 기간을 넘기는 수가 있어요. 그래서 자꾸 이렇게 꿈에 나타나려고 그러는 거죠, 고혼들이. 근데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선행도 하고, 이제 악업을 짓기도 하고 하지만, 대개 보면 이렇게 업을 지어서 그걸 못 놓기 때문에, -제자리를 찾아서 가야 되는데,- 49일 지나면, 이 기간을 넘겨버리면은 못 가니까, 많은 고혼, 애혼 그리고 일체의 무주 고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륙재의 대상은 이제 중요한 영가들도 있지만, 그 주인공은 무주 고혼입니다. 무주 고혼. 그리고 제대로 살다가 어느 정도 수명이 다 해서 가면 고분고분하고 또 살아서 좋은 일도 했으니까 이렇게 심판을 받아서 나중에 명부 중에 가서 염라대왕과 함께 심판을 딱 받아서 갈 텐데, 그렇게 안 되면, 횡액으로 죽으면, 사고로 죽으면 내가 그걸 인정을 못해서 못 가는, 그래서 그 불쌍한 영혼들을 이렇게 달래주는 것이 이 수륙의 대상이 됩니다. 마침내는 그렇게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양 올리고 그렇게 환희롭게, 의식을 통해서, 부처님의 원력과 가피을 통해서, 결국에는 왕생 정토하는 것이 수륙의 큰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우리가 그 수륙재를 통해서 여러분들도 수시로 내면을 잘 살피셔서, 좀 들여다 보셔서, 집착, 착을 좀 내려놓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무주 고혼을 천도하는 것도 있지만, 잘못하면 우리도 무주 고혼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죽을 때는 절대 뭘 놓으세요. 놓으시라고. 잘 못 놔. 이걸 꼭 잡아야 되는 거 같아. 근데 업이 많을수록 이걸 못 놔. 지은 업이 악업을 많이 짓거나 업이 과중하면 이게 못 놓으니까 결국에는 이렇게 절차대로 잘 못 가는 거예요. 그래서 49일에서 이탈되면 어떻게 돼요. 그냥 떠도는 나그네의 영혼이 되는 거지요. 근데 나그네 영혼 되는 건 좋은데 불쌍하잖아요. 남의 제사 때 누가 뭘 챙겨주기를 하나. 또 배가 고프대요. 구병 시식을 보면, 밥 때가 돼서, 이제 사시가 돼도 어디 가서 누가 뭘 챙겨주지도 않으니까, 여기 기웃, 저기 기웃. 그리고 이제 절에 제사 지내는 데 가서 이렇게 기웃기웃 하는데 그 얼마나 불쌍해요. 그런 분들이 우리 조상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진관사 수륙재를 봉행하는 진관사 여러 불자님들은, 이 수륙재를 봉행한 공덕만 가지고도 절대로 잘못될 일은 없는데, 그래도 우리가 그것만 믿고 해서는 안 되고, 수륙재를 잘 복원함으로 해서 그 정신을 우리가 배우자. 그 정신은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착을 버리자. 우리가 공부하는 것도 결국에는 다 이렇게 뭘 꽉 쥐려고 하는, 못 놓는 그 착을 놓는 게 그게 공부예요, 사실은. 그래서 10년간 이렇게 잘 하시니까 아마 여러분들은 잘 놓으실 거에요. 살아계실 때 미리 좀 놓는 연습을 하세요. 법정 스님은 그래서 이제 하도 좋은 말이 있어서 내가 좀 적어봤는데요. 이렇게 지나가면 잊어버리니까 책을 읽다가 적어둬요.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런 생각을 해야 나를 좀 들여다봐야 내가 가지고 있는 업이라든가 내가 여러 생 동안 여러 시간을 통해서 쌓았던 업을 되돌아보고, 업이 지중하면, 업이 쌓이면, 안 좋은 업이 쌓이면은, 참회를 통해서 업을 맑히고 업을 맑혀야 나라는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염불을 좀 많이 하세요. 수륙재가 좋은 가장 큰 한 가지는 이걸 통해서 우리가 스님들 간의 화합, 회주스님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 대중들이 화합되고, 또 불자님들은 불자님들 간에 서로 협동심이 또 생기고, 화합심이 생기고, 또 스님과 불자들 간의 유대관계가 형성이 되고, 그래서 하나가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 앞으로도, 더욱더, 10년을 넘어서, 어장스님을 중심으로 해서 전통 수륙의례를 잘 전수하시고, 우리 스님들이 잘 배우셔서 자부심을 가지시고 또 이렇게 잘 전승되리라고 믿습니다. 뒤에서 미력하지만,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열심히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