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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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8월 2일 백중기도 2재 법문
덕현스님 2025-08-02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웃음 요가 때문에 이 법문이 너무 즐겁게 돼버렸습니다. 아, 웃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은 그 웃음 요가, 20분 짧은 웃음 요가에 여러분들 얼굴이 더 밝아지신 것만 같습니다. 이 밝은 기운을 아까 우리 스님께서 이야기하셨듯, 이 밝은 기운을 여러분들이 나만 갖고 있을 게 아니라 내 가족들에게 그리고 또 내 부모 조상님들에게 올려드리는 그 밝은 느낌으로, 에너지로 그렇게 웃음 요가 활용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저의 법문 주제는 보은입니다. 보은. 요즘처럼 어떻게 이제 가족 간의 유대관계도 대개 낮아지고, 또 사이도 요즘 들어 또 안 좋아지는 집안도 많아요. 근데 다행히 우리 오늘 진관사 2재에 동참하신 분들은 이 웃음 요가라도 배워서 기분 나쁘면 문 닫고 들어가서 막 웃으면 되니까, 그러면은 뭔가 모르게 용서하는 마음도 생기고, 뭔가 모르게 이게 나의 한 같은 게 풀어질 수 있는 이 방법을 여러분들 오늘 체득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이거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오늘은 백중 2재입니다. 백중 2재로 제가 어떻게 법문을 하게 돼 가지고, 처음에는 은사 스님에게 “제가 무슨 법문을 하냐” 이러니까, “너도 해봐라” 그래서 이 자리에 얼떨결에 오르기는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께서는 제가 하는 이야기에 마음을 좀 담으셔서 이렇게 실천으로 꼭 이어졌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오늘 백중에 대해서 이제 잠깐 살펴볼 텐데, 사실 백중했을 때 여러분들이 지금 독송하시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있죠. 부모은중경이 요즘 시대에는 이게 좀 반발심이 있답니다. 지금 여기에 계시는 분들은 반발심이 없어요. 그런데 10대, 20대는 뭔지 모르게 이게 가족이 약간 핵가족화되기도 하고, 그리고 또 한부모, 한 가족으로 또 바뀌어 가면서 뭔가 아이들이 부모에 대한 한이 이렇게 생기나 봐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원한으로 이어지면서, 이제 부모은중경을 보면서 막 열이 난대요. 근데 왜 이럴까, 우리가. 그래서 제가 이런 이야기에, 이게 그러면 효孝가, 이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나. 여러분들 불교적인 효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저는 이 효에 대해서, 이 ‘효순(孝順)하라’라고 했을 때, 우리나라가 조선시대 때는 유교였죠. 유교였다 보니까 이 효라고 했을 때 대개 부모에게 순종하는 거, 그리고 부모의 제사를 첫째 아들은 당연히 지내드리는 거, 이런 것들을 효라고 이념을 지어서 효순하라라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근데 불교적인 효는요, ‘순종하라, 제사 지내라, 그래야지만 효도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불교적인 효는 어떻게 하면 나의 부모, 지금 나와 가족 간의 관계, 또는 나의 부모, 또는 조상, 또 나의 부모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또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고, 그렇게 해서 거듭거듭 끊임없는 정말 적재되어 있는 그 많은 부모, 스승, 모든 존재들이 결국 아버지, 어머니가 둘이 아니라는 거예요. 모든 이들이 나의 부모였을 수도 있고,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 라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부모은중경에서 여러분들께서 보시듯, ‘나의 모든 이들이, 나의 위에 있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나의 부모였고,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라는 그 생각을 하면, 이게 우리 불교적인 효는 그야말로 고통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거, 나의 부모가 지금 돌아가셔 가지고 어느 지옥에서 고통받을 수도 있고, 어느 축생에 있을 수도 있고, 어느 삼악도(三惡道)에서 머무를 수 있기 때문에, 그분들을 위해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시라고, 그렇게 효행(孝行)하면서 기도 올리는 것이 곧 이게 불교의 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스님, 왜 백중은요, 매번 매년마다 지내야 됩니까? 아니, 작년에도 지냈는데 또 지내야 됩니까? 저 10년 전부터 했는데 이제 정리해도 되지 않습니까?”라는 불자님들의 종종 질문을 받아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게 《목련경(目連經)》이나 《우란분경(盂蘭盆經)》에서 이야기하길, 신통 제일 목련존자(目連尊者)도 자기 부모를 위해서 승보 공양을 올렸지만, 단박에 어머니가 그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고통받던 아귀도를 단박에 버리질 못합니다. 목련존자조차도 그랬어요. 그렇다면 이 신통 제일한 목련존자조차도 아귀도에서 벗어나는데 승보 공양 한 번 가지고 되지 않았다는 거, 부처님 시대 때, 재세시에 그 한 번 가지고도 안 되고, 여러 번에 걸쳐서 아귀도에 올라갔다가 축생도에 올라갔다가, 몇 번의 계와 여러 가지 목숨을 받았다가, 결국에는 천상도로 올라가거든요. 그럼 이런 걸 봤을 때, 우리가 백중 기도를 1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이 몸뚱아리가 건강할 때,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나의 가족들, 이 가족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여러분들이 백중 기도를 올리시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요즘 말로, 또는 이전 예전 말로, 효순 또는 효도라고 이야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효도라는 것은, 불교적인 효도라는 것은 이생에만 부모님에게 맛있는 거 사드리고, 옷 사드리고, 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에게 가드리고 하는 그것은, 《아함경》에 따르길 하품의 효행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을 즐겁게 하는 것은 중품의 효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끔 부처님 전에 올리는 그 공양 공덕으로 회향하는 것은 그야말로 상품의 공덕이라고 합니다. 이런 선상에서 봤을 때, 여러분들이 이렇게 백중 기도를 올리실 때, 이게 나뿐만 아니라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도 얼굴도 기억 못하는 어느 때에 나의 부모였고, 스승이었고, 아들 딸이었던 그런 모든 분들이, 모든 중생이 이고등락하기를, 이렇게 마음을 드시고 백중 기도를 올리시면서 회향을 하면, 여러분들의 그 공덕은 그야말로 무량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네, 그리고 제가 이게 짧은 시간에 여러분들에게 많은 걸 알려드리려니까 좀 마음이 급합니다. 그러나 여유 있게 하겠습니다. 이게 《구사론》에 따르면, 여러분 우리는 영가라고 부르죠. 누구, 김똘똘 영가. 우리 여기에 지금 위패에 모셔진 것도 다 김똘똘 영가 다 모셔져 있는데요, 《구사론》에 따르면 이승도 아니고 저승도 아닌 이들을 가리켜서 중음(中陰)이라고 부릅니다. 또는 중유(中有)라고 부릅니다. 그럼 살아 있는 우리는 뭐냐, 생유(生有)라고 불러요. 그럼 죽었을 때를 사유(死有)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제 막 딱 죽어가지고 1일부터 49일 그 사이를 우리는 중음 또는 중유라고 합니다. 그럼 그 중유 기간을 부처님께서 우란분경에 이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목련존자 어머니, 어머니가 그 무간지옥에 탁 떨어져 가지고, 그 무간지옥에서 고통받는 그 기간이 인간계에서는 49일이나, 그 지옥의 아귀(餓鬼)고통에서는 정말 몇 억 년이 될 수도 있고, 몇 백만 년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그 목련존자의 어머니 청제 부인만 그럴 것이냐는 거죠. 나도 내가 내 알아차림하지 못하고, 내 아들 딸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아니면 내 어머니 아버지에게 좀 언짢은 말을 하거나. 근데 그 언짢은 말로 인해서 부모님이 마음이 너무 아파가지고, 또 이제 안 좋은 마음을 먹거나,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어찌하면 나도 그렇게 지옥의 고통을 받게 하는 살생죄를 지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살생이라는 게 짐승을 죽여서, 또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도 물론 살생, 물질적인 살생이지만, 내 말 한마디로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가족 간에 정말 잘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이 중유 기간 속에 이 청제 부인이 어떻게 합니까? 자기가 살아생전에는 목련존자가 자기 아들이었지만, 이게 이제 살아있을 때 온갖 살생을 저지르고, 그 목련경에 따르면 그 살생과, 그리고 또 자기가 계율도 안 지켜요. 얼마나 많은 남자분들을 막 잡았는지 몰라요. 그러한 모든 과보를 받아서 결국 떨어진 곳이 지옥입니다. 그 지옥의 고통 속에서, 이것도 무슨, 제1 초광대왕 도산지옥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제2 진광대왕 무슨 무슨 거해지옥, 한빙지옥, 온갖 지옥들이 나오죠. 근데 그 지옥 속에서 고통받는 한순간에, 그 고통 한 번 받고 좀 쉬었다가, 또 이제 과보를 받으려고 또 고통받다가, 또 쉬었다가 하는 그런 게 아니라, 고통의 연속이 끊임이 없다는 것을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합니다. 고통에 끝이 없는 거예요. 그 끝이 없는 그 고통을 목련존자 어머니가 그 무간지옥에 들어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아무리 목련존자가 신통력을 딱 얻고도, 자기 삼매력으로 아무리 지옥세계에서 자기 어머니를 찾아봐도, 어머니가 안 보여요. 안 보이죠. 결국에는 부처님 전에 묻죠. 부처님, 어떻게 하면 우리 어머니를 이 아귀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아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딱 알려드립니다. “모든 스님네들이 시방 세계에 있는 모든 스님네들이 열심히 정진하시고, 그 안거가 딱 끝났을 때 자자 일이 있다. 그것이 음력으로 7월 15일인데, 그렇게 수행 공덕을 열심히 하신 스님네들에게 공양을 올려라. 근데 공양을 올리고, ‘나의 부모님이 이 공양 공덕으로 회향되시기를 발원합니다’라고 발원을 하라. 이렇게 하면 너의 부모님이, 너의 어머니가 그 아귀의 고통 속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되는 것이 《목련경》과 《우란분경》입니다. 그렇게 해서 목련존자가 자기 어머니를 위해서 그렇게 공양의 공덕을, 진짜 100가지 음식과 100가지 여러 가지 모든 공양물로 스님들에게 올려요. 그 공덕으로 아귀고에서 벗어나고, 축생도에서 벗어나고, 그렇게 해서 결국 천상도에 올라갑니다. 그걸 근거로, 스님네들조차도 출가해서 부모를 버리고 출가해서 이렇게 수행을 할지언데,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에게 이렇게 이 공양 공덕을 올릴지언데, 하물며 우리들이겠냐.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이 백중을 잘 활용을 하십시오. 이게 나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들에게, 그리고 나의 부모님들에게 잘 회향을 하십시오. 제가 이 중유의 세계 속에서, 이걸 어떻게 49일간, 이거 부모님에 대해서 회향을 잘 하냐. 물론 여러 가지 방법들이 많이 있겠죠. 누구는 나의 부모를 위해서 《금강경》을 지금 이렇게 이제 독송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부모은중경》, 그리고 또 광명진언, 이런 여러 사경들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든 수단과 방편을, 여러분들이 그걸 잘 받아 지녀가지고 이거를 회향을 하되,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내 마음은 지금 콩밭에 가 있어요. 내 조금 전에 싸웠던 이 도반한테 막, 내 저것을 가만히 두지 않으리. 절 집 안에 왔는데도 아직까지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 근데도 뭔가 이거는 써야 되겠어. 사경을 하면서 자기 마음이 내려갑니다. 근데 그 자기의 그 악한 마음이 막 일어날 때, 그걸 막 억누르려고 애를 굳이 쓰지는 마십시오. 자연스럽게 사경을 하다 보면, 그 마음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겁니다. 근데 그런 사라지는 그 마음을 잡고 늘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곧 악업이 됩니다. 악업이 되면, 끊임없이 우리는 윤회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왜 이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축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하냐면, 결국 우리는 부처님처럼 이렇게 해탈하고 깨닫지 못하면, 끊임없는 업력으로 인해서 윤회한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끊임없는 윤회하는 그 과정 속에서, 조금이라도 이 인과 응보를 확 줄여가지고, 그 씨앗이 싹 트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단도리를 잘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우란분경》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아. 이거는 제가 아까 했고) 《중아함경》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중생이 악도에 떨어지기 전에, 지옥을 다스리는 염라대왕이 5명의 천사를 보내어서 그 사람을 꾸짖고 가르친다. 천사, 지혜로운 사람은 일을 보고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하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근데 첫 번째 천사는 부모님이다. 두 번째 천사는 노인, 그리고 세 번째 천사는 병자, 병고에 힘들어 하는 분들, 그리고 네 번째 사람은 죽은 사람, 그리고 다섯 번째는 감옥의 죄수이다’. 이 악도에 떨어지기 전에, 이렇게 정말 내 곁에 있는 이 부모님, 그리고 생로병사할 때 병자분들, 이러한 모든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 이제 공덕을 쌓으라고, 그리고 또 그분들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나의 인과 응보를 짓지 않기를 자꾸 발원하면서 이 공양 공덕을 올리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저 스님, 저는 돈이 없어요” 걱정 없어요. 돈이 없어도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게 있습니다. 웃음으로 화안애어(和顔愛語)로 모든 분들에게 보시할 수 있고요. 자리를 또 양보하기도 하고, 그리고 또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주어서 이렇게 격려를 하기도 하고, 응원을 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들에 꼭 돈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진관사라는 절집에 오셔서, 내가 마음을 다해서 이렇게 공양 공덕을 좀 올리시라. 왜냐하면 이 나만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나와 인연되어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렇게 공양 공덕을 올리고 하는 모든 것들이, 이것이 바로 나를 있게 한, 나를 여기 존재케 한 모든 이들에게 은혜를 갚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마음을 잘 헤아리시면 좋겠어요. 제가 행자 때요, 어떤 스님께서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스님이 저한테, ‘덕현 스님, 이쪽으로 와보라’고. 근데 이제 그 스님께서 그 당시에 선방에 가셨다가 잠깐 산철이 돼서 오셨는데, 그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때도 아마 이런 백중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스님이 자기가 어느 해에, 어느 날만 되면, 누가 이렇게 꿈속에서 자기를 위해서 자꾸 제사를 올려준다는 거예요. 제가 그때 좀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근데 그게 한 번이 아니라, 항상 그 날과 그 시일이 되면 꼭 그렇게 그 꿈을 꾼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날은 자기가 작정을 했대요. 그 꿈속에서도 깨지 않으면서, 내가 그 꿈속에서 누가 나에게 제사를 지내는지 그걸 찾아봐야지. 그래서 어느 해 때 자기가 진짜 똘똘하게 잠을 딱 깨지 않고, 그대로 이제 무의식 중이지만 이렇게 노력을 해서 봤더니, 절 집안에서 누가 자기를 위해서 제사를 지내는 거였는데, 그 절의 이름을 이제 알아보려고 이렇게 보니까, 무슨 무슨 절이었대요. 그래서 이제 그 절을 알고 꿈에서 깼죠. 깨고 난 다음에 진짜 인터넷을 찾아가지고 그 절이 어디 있는지를 찾으신 거예요. 찾아가지고, 근데 요즘에 얼마나 동명 그 절이 많습니까? 그 절을 찾아서, 결국에는 그 절의 어느 어느 해에 제사를 지내는 그 절 리스트를 뽑은 거예요. 근데 진짜 그 절 주지 스님의 제사 일과 자기가 항상 꿈을 꾸는 그 날짜와 동일했다는 겁니다. 저도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긴가민가, 이게 믿어도 되나, 약간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만큼 이생은 이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생이 있고, 윤회되어서 우리는 또 만나고, 이 생에서 정말 너무너무 미웠던 사람이나, 다음 생에도 또 만날 수 있다는 거. 모든 생들은 연결되어 있다는 거.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께서 항상 인과의 도리를 이야기하며 항상 착한 일을 행하라. 그래야 착한 과보를 받는다. 악한 인을 심으면 당연히 악한 과보가 싹 틀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내가 아직 싹 트지 않은 선의 씨앗, 또는 아주 싹틀랑말랑 하는 악의 씨앗들이 아마 있을 겁니다. 이런 것들을 기도하시면서, 또는 이렇게 염불하시면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또 잘 챙기시면 좋겠습니다. 《불설수생경(佛說壽生經)》에 보니까, 사람이 죽어서 망자가 되면 저승에서 49일에 걸쳐 7번의 10번의 시왕의 재판을 받게 된다. 이 저승의 열 시왕은 제가 아까 화청으로 일부러 한 분 한 분 지목을 해서 읽었어요, 오늘은. 기억나십니까? 예. 그 열 시왕이 누구나에게 정말 정말 여러분 공덕을 많이 지은 사람 같은 경우는, 돌아가자마자 중유를 거치기도 전에 바로 화현해서 천상으로도 들어갈 수 있고요. 아니면 재판도 필요 없이 바로 그냥 지옥에 바로 툭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근데 이런 그 지옥에 떨어지는 방법이 뭐냐? 지옥에 떨어지는 방법: 살생하고, 거짓말하고, 이게 나태하고, 의롭지 못하고, 그리고 누군가를 배신하고, 또는 폭력을 행하고. 이렇게 천륜, 나의 부모를 죽이기도 하고, 이런 것들로 인해서 재판을 하는 것이 바로 이제 그쪽이에요. 근데 이 명부시왕이 이게 내 눈에 안 보이니까 남의 일이 아니라, 이게 바로 코 앞에 내 일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이제 이 백중 재가 끝나고 난 다음에, 또 밑에 후원에 내려가서 공양도 하시고, 또 도반 분들과 함께 이렇게 막 이야기도 나누면서, 과일도 드시고, 차도 드시고 하실 텐데, 그러한 모든 과정들 속에서 항상 내 마음의 청정함을 자꾸자꾸 살피십시오. 내가 그 마음속에서 이제 앞에서 도반이랑 같이 밥을 막 먹다가, 이게 이제 비빔밥 먹고 난 다음에 그릇이 있죠. 근데 이 그릇을 이제 도반한테 밀어요. 니가 설거지를 해라. 나는 이 절에 온 지 좀 오래됐다. 이런 거는 원래 초짜가 하는 거다. 미뤄. 그러면 이게 한두 번은 해줘. 근데 여러 번 하다 반복이 되면, 이 사람도 짜증이 납니다, 그죠? “공양이야, 공덕이야, 그것도” 이런 식으로 묵살할 것이 아니라, 그때 그 마음을 잘, 여러분들이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공양을 하고,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밥풀을 좀 남기며, 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설겆이를 하는지. 이 뭔가를 행위를 할 때, 내 마음이 지금 어느 시점에 가 있는지를 여러분들이 잘 관찰하십시오. 그것이 곧 백중 기도에 처음 정말 선행을 하는 실천 방법의 첫 단추입니다. 내가 아무리 지금 부처님 전에 바나나 공양 올리고, 여러 가지 경전, 부모은중경, 금강경 100권 올리고, 여러 가지 보여지는 형상으로는 정말 많은 공양을 올리는 것 같지만, 속은 지금 부글부글 끓어. 이러면 이 공덕이 어디로 가냐? 물거품이 됩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그 선행을 반듯하게 이렇게 자꾸 둘 것을, 항상 스스로 이게 마음에 또 삐뚤어지면 다시 또 세우고, 또 삐뚤어지면 또 다시 세우고. 이렇게 하면서 흔들리면서 갈 수밖에 없어요. 이게 중생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그러면서 오늘처럼 이렇게 오셔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기도도 하시고, 또 후원에서 공양하실 때나, 아니면 무언가를 이렇게 행하실 때, 또 도반을 위해서 신발도 이렇게 가지런하게 놓아주고, 또 뭔가 좀 힘들어하는 처음 오신 신도님들 같은 경우는, 여러분들이 또 안내해서 이쪽으로 오시라고 따뜻하게 또 말씀을 해 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이게 물이 너무 마시고 싶은데 어디 가서 물 마실 줄을 모르는 그런 분들이 있다면 물 마실 수 있는 장소를 안내하기도 하고. 우리 진관사 신도님들은 그렇게 하시면서 내 마음을 보고 공덕을 쌓아서 나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지금 생활 속에 있는 불교예요. 부처님 가르침이 아무리 이렇게 높이 있고, 정말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가지 말들로 다 이렇게 되어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내것으로 하지 않고, 정말 그 인과 도리를 믿지 않으면서, 어리석은 마음으로 자꾸 탐욕과 성냄, 이게 인과응보를 모르는, 인과 도리를 모르는 이런 어리석음에 스스로 이렇게 돌아갈 때, 그때는 업력이 돼요. 그 업력이 되면 또 윤회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 원력의 힘으로, 정말 여러분들께서 백중 2재뿐만 아니라, 마지막 49일까지 잘 회향하시길 발원합니다. 이것이 곧 우리 ‘우란분’하면, 거꾸로 매달려 있다라고 하죠. 우란분이 도현(倒懸)이라는 거고, 도 자가 거꾸로 매달릴 도(倒)예요. 거꾸로 매달려서 지옥의 고통을 받는다는 걸 도현이라 하고, 산스크리트어로는 ‘우란바나’라고 합니다. 근데 우란바나, 그걸 딱 모아놓은 게 우란분경이에요. 그럼 이 우란분경에서 그 도현(倒懸), 거꾸로 매달린 그 중생의 그 고통을 구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거꾸로 된 나의 잘못된 가치관, 이 거꾸로 되어 있는 나의 올바르지 못한 그런 생각들, 이런 것들도 지옥 고통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내가 항상 부처님 경전을 바라보면서, 내 항상 내 마음이 어떻게 지금 이어가는지를 여러분들이 잘 이렇게 헤아려 보시고, 그렇게 해서 백중 기도 끝까지 잘 신심나게 회향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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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7월 26일 백중기도 초재 법문
주지 법해스님 2025-07-26
네, 오늘 윤달입니다. 지금이 윤유월 초이틀입니다. 그런데 윤달에는 많은 공덕을 짓고 부처님 가피가 가득한 달이라서 30일 내내 날마다 좋은 일을 하면은 좋다는 거예요. 그래서 또 그 복을 지으면 그 복이 다른 때 짓는 것보다 10배, 20배 더 공덕의 가피가 온다 해서 윤달에는 선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그런 달에 우리가 또 일부러 백중 기도 기간인데 윤달을 맞이해서 조상님들도 또 우리도 아마 공덕이 가득하리라 믿습니다. 날씨가 더워가지고 이제 어쨌든 여러분들이 함께 이 신심과 원력으로 기도를 해서 기도한 시간이 분명히 여러분들에게 가피가 갈 수 있도록 하려면, 기도는 왜 하나? 불교에서는 왜 기도를 하느냐? 다시 말하면 기도는 팔자를 바꾸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이 더운 폭염에 오셔 가지고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내가 지금 사는 삶보다 내 마음이 더 편안하고 복을 더 많이 받고 더 지혜롭고 더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 그거를 우리는 불교에서 ‘가피’ 이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의 가피다. 기독교적으로 은총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러면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실하게 내가 믿어야 돼요. 윤달이라서 오늘은 백중인데 백중은 거꾸로 매달린 죄인도 천상 세계로 낳는다고 하는 아주 그런 좋은 불교의 명절인데, 나도 얼른 거기 가서 동참을 해서 그 기도를 해야 되겠구나. 이런 마음, 마음이 내가 믿어져야 돼요. 이 더운데 뭐 아이고 그거 다 뭐, 이런 생각을 내는 사람은 항상 삶이 ‘뭐 그거. 뭐 그거’ 이러다가 평생 마치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는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폭염에도 ‘오늘 38도라는데 그래도 가봐야지’ 이런 마음을 내셔서 오늘 여러분들이 다 여기에 오셨어요. 그런데 윤달에는 또 더 이렇게 복이 많다고 그러는데 그 윤달의 어떤 일로 기도를 하느냐 하면은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준 부모님이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평생 고생만 하신 부모님을 위해서 또 공덕을 닦아줄 수 있는 그런 달이에요. 그래서 윤달에는 옛날에는 많은 천도재를 했습니다. 천도재를 하고 감사해하고 또 고마워하고 이런 천도재도 지내고 또 예수재라고 미리 내가 극락 갈 거를 미리 닦아간다 해서 예수재도 하고, 또 수륙재도 하고, 이렇게 백중 기도도 하고, 지장기도도 하고 이렇게도 하고. 그다음에는 또 뭐냐 하면 부모님이 좋은 장소에, 그때 당시에는 눈이 어두워 가지고 좋은 명당에 못 눕혀 드렸다 해서 멸리 그러죠, 멸리. 이장도 윤달에 합니다. 3년에 한 번씩 윤달이 돌아오면은 좀 더 좋은 자리로 모셔드리고 싶어 가지고 이장을 해도 무해무득하다, 그러고 발복한다. 해가 이장하는 것도 많이 하고. 또 그리고 부모님을 위해서 수의를 해드리는 거야. 부모님이 더 오래 사시라고. 그래갖고 옛날에는 저도 기억이 남았는데 60 환갑에 주로 많이 수의를 해드렸죠. 근데 요즘은 칠순 또 너무 젊으셔 가지고. 팔순 이렇게 되는데 그래도 우리가 이제 아무리 수명이 길어졌다 해도 이 생리적 여러 가지 나이는 못 속여요, 그죠? 그냥 겉모습 보기에 건강해 보여도 아무래도 생각하고 결정하고 이런 것들이 주춤거려지고 앞도 뒤도 또 전조 보게 되고 이렇게 되는 게 그게 늙음이에요. 젊어서는 용기도 있고 그냥 용맹하게 나가는 그런 힘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60이 이렇게 되면 사실은 부모님의 60, 근데 보니까 뭐 지금 거의 60선이에요, 오신 분들이, 오늘. 그러니까 내 주변 정리를 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그렇게 부모님의 수의도 해드리고 했지만 내 주변 정리를 하는데, 효자는 부모가 만듭니다, 효자는. 그래서 ‘야, 나 윤달이란다. 너희가 나 수의를 하나 선물로 해줘도 좋아’ 이거 가르쳐야 돼요. 그러면 그 자식이 이렇게 생각 ‘나, 우리 어머니 윤달에 수의를 해드렸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왜? 건강하시라고. 오래 사시라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수의는 이생에서 가장 여법한 옷을 해드리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해가지고는 수의를 딱 올려놓고 한 번씩 거풍하고 이렇게 옛날에 우리 조상님들의 좋은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70이 되면 내 주변 정리를 또 하는 거예요. 옛날 어머니들은 얼마나 현명했느냐 하면 그것도 이제 미리 친정어머니가 그런 교육을 시켜요. 시집을 가서는 어떻게 해라, 남편은 하늘같이 받들어라, 가족은 어떻게 해라, 이런 가정 교육을 다 시켰는데 요즘은 그런 게 아니고 막 무조건 서울대학 보낼라고 학원만 뺑뺑이 돌리더라고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서울대학 간다고 행복한 건 아니에요, 그죠? 그러는데 그런 교육을 현명한 어머니 또 부모님들이 교육을 시킨 사람, 이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그 아이가 분명히 효자가 돼요. 최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효자를 하는 행위는 가장 현명한 행위예요. 효자를 하게끔 해야 돼. 저도 상좌 스님들을 키워보니까 참 훌륭한 부모가 되기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아마 상좌를 안 뒀으면은 그 부모님 마음 몰랐을 거예요. 상좌를 데리고 두고 보니까 썩는 속이 말도 못 해요. 상좌 공개적으로 흉을 보는데 썩는 속이 말도 못 한대, 여러분 그거 참아야 돼, 그죠? 그래서 며칠 전에도 상좌가 속을 썩였어요. 상좌가 속을 썩였는데 제가 완전 폭탄 발언을 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끄응’하고 침을 한 번 삼키면서 삼켰어요. 내뱉으면 안 되니까. 상좌는 죽을 때까지 같이 가야 되거든요. 내 상좌 안 하고 싶다고. 상좌는 좀 안 하고 싶다 해도 안 할 수는 또 있어요. 근데 자식은 안 하고 싶다고 안 해지질 않아.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백중 기도하는 그 근본 목적은 뭐냐? 우리 아들딸을 효자로 만들자. 그러면 내 마음이 넉넉해야 돼요. 내 스스로의 마음이 넉넉하지 않으면 그거 시시끈끈 눈에 걸려가지고 폭탄 발언하게 돼 있어요. 내가 더 그냥 화가 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거를 울컥 내가 삼켜야 되는 그런 용기와 힘이 있어야 되는 그 내공을 갖춰야 그거를 갖출 수 있어요. 그래 그리고 폭탄 발언할 때는 내 마음이 진짜 따뜻할 때 폭탄 발언해야 돼. 안 그러면 감정이 동하면 결국 그 자식은 뻗나 가게 돼 있어요. 그래서 다 불행하게 돼 있다고. 그래서 이 윤달에 여러분들이 이 더운 폭염에 와서 기도하는 것은 다른 때보다 정해진 일은 거꾸로 매달린 죄인도 바로 서서 극락 가는 그런 시기이기 때문에 이게 3천 년을 내려왔어요, 그죠? 이 3천 년 내려오는 좋은 풍속 이런 기간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깔끔하게 하얀 옷을 입고 까만 바지를 입고 이게 함께 옷을 그렇게 정장을 차려입고 오는 것도 예의입니다. 불교는 위의가 불교라 그랬어요. 그 사람 모습이 곧 부처님 모습을 표현했는데 그건 또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들이 기도를 매일, 우리 불교에서는 새벽 기도를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새벽에 예불을 하면 소 한 마리를 얻고, 저녁에 기도를 하면 닭 한 마리를 얻는다. 이 벌써 가치 알겠죠? 가치가. 소 한 마리가 얼마인지 요즘 모르겠어요. 닭 한 마리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복이 쌓인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아침에 여러분들이 천수경을 독송하고, 우리 노보살님들은 그걸 매일 하는 분들 많을 거예요. 매일 그 습관으로. 그 습관은 내가 마음을 먹어서 자꾸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다가 보면은 그걸 안 하면 찝찝해. 그리고 그걸 하니까 어느새 내가 몸에 익혀져 있어요. 그 선한, 그걸 선근이라고 그래요, 선근. 내가 그런 착한 기운이 내 습관으로 익혀지고 내 마음에는 그게 저장이 되더라는 거예요. 저장이 되니까 어떻게 돼요? 내가 바른 판단을 하게 돼요. 바른 행동을 하게 돼요. 그거를 저는 부처님 마음이라 그러고, 그거를 부처님 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잠깐잠깐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부처님은 어디 계세요? 내 마음에 계세요. 부처님은 내 마음에 계시는데, 부처님 마음은 불심무구(佛心無垢), 부처님 마음에는 때가 없어요. 부처님 마음에 때가 없으니까 걸릴 게 없어. 판단하는 게 다 옳은 판단만 해요. 우리 할머니 말씀을 들으면 다 자다가도 떡이 생겨. 이렇게 신뢰를 하게 되는 가족들이. 그래서 기도를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매일 기도를 해야 되는데 아직까지도 제가 못 실천하고 있어요. 그러면 마음의 정원 진관사 신도님들은 매일, 지금 우리 불교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 갖고 너무 뭐가 많아 가지고 뭐를 해야 될 지를 모르는 거야. 이번에는 이거 했다가, 이번에는 지장보살하더만, 조금 있으니까 나무아미타불 해라 그러고, 또 뭐 관세음보살해라 그러고, 이렇게 하니까 헷갈려 하는 거예요. 사실은 다 똑같습니다. 왜냐 엄마, 아내, 딸, 이모, 고모, 한 사람이잖아요, 그죠? 다 똑같은 사람인데 부르는 사람이 다를 뿐이에요. 아내가 될 수도 있고, 딸이 될 수도 있고, 고모가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뭐든지 자기 입에 붙는 부처님을 하면 돼요. 그래도 진관사가 하는 부처님을 부르면 좋겠죠. 그래서 진관사는 나무아미타불로 염불을 하기로 시작했어요. 왜 그러냐면 나무아미타불 딱 하면 지장보살님도 자동으로 비서로 오셔요. 관세음보살님도 비서로 바로 오죠. 모든 부처님들이 오셔요. 특히 극락세계를 관장하기 때문에 내 마음을 어떻게 해요? 깨끗하게 해줘.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우리 회주 스님이 하루에 10만 번, 요즘은 13만 번 하신대요. 지금 회주 스님께서 타의 모범이 되어서 진관사를 극락 정원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나무아미타불을 하루에 13만 번 하는데, 회주 스님 하시는데 우리는 왜 못하겠어요, 그죠? 그래서 우리는 다 같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특히 윤달에는 더해야 되겠죠. 윤달에는 더 많이 하는 거예요. 더 많이 나무아미타불을 여러분들이 하시면 그게 우리 목표가 이제 정해졌죠? 그리고 주지 스님 말씀을 믿어야 돼요, 안 믿어야 돼요? 믿어야 돼요, 믿어야 돼요. 제가 교회 다닐 때 하도 ‘믿습니다’를 많이 해가지고 그러는데 믿어야 돼요. 믿지 않으면 불신 지옥이에요. 그게 불신(不信), 믿지 않는다. 아닐 불자 믿을 신자거든요. 믿지 않으면 지옥이에요. 내가 남편을 믿지 않고 자식을 믿지 않아 보세요. 불안해서 못 살아. 안 그래요? 그러는데 주지 스님이 나무아미타불을 하면 극락이 되고, 내 마음이 맑아지고, 또 내가 지혜로워지고, 내가 염불하면 복이 증장이 돼요. 못 살 수가 없어요. 잘살게 돼 있어요. 그거는 제가 경험했어요. 죽도록 저도 천수다라니를 하다 보니까 어느새 제가 복이 많아지더라고요. 천수다라니를 죽도록. 이제 천수다라니를 죽도록 하는 걸 우리 회주 스님께서 나무아미타불을 13만 번 하시지만, 저는 제가 체득한 거를 천수다라니를 우리 진관사 신도님들이 또 함께. 나무아미타불은 노는 입에 염불하는 거예요. 길 가도 나무아미타불, 발을 걸어도 나무아미타불. 저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냥 걸어도 나무아미타불. 여러분들 설거지해도 나무아미타불. 그러면서 시간 시간 염염이 상속이라 염불은. 염불. 부처님을 염하는 것을, 부처님을 생각하는, 생각할 염자거든요.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을 염염. 생각 생각이, 상속, 이어지게 하는 것이 기도의 가피에요. 그게 수행자예요. 내 삶에 그런 시간이 많이 축적이 되면은 못 살 수가 없어요. 모두 다 잘 살게 돼 있어요. 특히 윤달에 또 백중 기도에 우리 수륙재 기도에 여러분들이 그렇게 함께 하신다면 기도 공덕 가피는 어떻게 오느냐? 첫 번째 현상이 내가 뿌듯해져요. 내 마음이 뿌듯한 순간 모든 번뇌가 구름같이 밀려가고 태양이 솟아오르는 거하고 똑같아요. 그러면 바른 판단을 내가 해. 나는 이번에 오늘 어떻게 해야 되겠다, 이 판단이 바른 판단이 나와요. 그거를 우리는 지혜라 그래요. 바른 판단을 하면 복은 저절로 따라와, 성공을 자연적으로 하게 돼 있어요, 그죠? 그렇게 되기 때문에 여러분들 우리 진관사 마음의 정원 신도님들은 매일 일과로 부처님 마음을 따라 배우고, 부처님 마음을 실천하고, 부처님 마음을 사용하고,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고요. 또 이제 그래서 우리 윤달이 왔으니까 저도 우리 불자님들이 어떻게 하면 더 이렇게 복을 많이 받을까? 업장. 업장은 내가 행복하지 못한 행위를 업이라 그래요. 그걸 악업이라 그러고, 그러는데 악한 잘못된 습관, 그게 내 마음속에 저장이 되어 가지고 계속 그거를 화를 낸다든지, 욕심을 낸다든지, 어리석은 판단을 한다든지, 이렇게 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도 왜 예쁜 얼굴에 꼭 누구를 꼭 쑤셔야지 직성이 풀리는 사람 있잖아요. 그런 사람은 그걸 많이 익혔어. 그러면서 자기가 우쭐하는 거야. 왜냐하면 그게 저장이 많이 돼 가지고. 근데 그거는 그 마음을 이렇게 들여다보는 거, 그게 지혜입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아이고 아차, 내가 또 노는 입에 염불하라 했는데, 염불이 아니고 그 못된 마음을 쓰는구나’라고 보기만 해도 고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나쁜 건지 모르고 죽을 때까지 그 짓 하다가 죽으면 어디 가겠어요? 지옥에 가요. 지옥은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죽어가 가는 지옥이 아니라 살아도 지옥에 살아요. 그 가정이 편하겠어요? 살아서 지옥을 많이 경험하면서 또 저장을 하는 거야. 그러지 말고 우리는 다 마음의 정원, 듣기만 해도 평화롭지 않아요, 그죠? 도량이 요즘 너무 예뻐요. 대웅전 앞에 잔디를 심어 놓으니까 제가 얼마나 뿌듯해 갖고 막 우리 거사님들을 못 살게 굴어요. 빨리 물 줘라, 빨리 물 줘라, 이렇게 하고는 뭐 물을 또 안 먹은 데는 그냥 바짝 말라가 이러면 내 마음이 타들어서 빨리 여기 물을 줘라, 이렇게 하면서 사람들이 오늘 오셔 가지고 어떤 분들이 그러더라고요. 너무 좋대요, 너무 좋다, 너무 좋다, 이런 소리 한 번 들으면요. 제 마음이 뿡뿡뿡 비타민이 뿡뿡뿡 들어와요. 그래, 왜냐하면 저 사람 마음에서 좋다는 에너지가 진관사에 좋은 에너지가, 그 사람에게 뭐예요? 들어갔기 때문에, 제가 들어가는 걸 봤기 때문에 제가 너무 마음이 흐뭇한 거예요. 그러면 일거가 몇 득이 되잖아요, 그죠? 그 사람도 진관사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또 가면은 그게 삶의 에너지가 되고, 그 조직이 또 잘 되고, 이렇게 되는데 그래서 우리는 잘하자, 결론은 잘하자, 이 말이에요. 노는 입에 염불하고, 나무아미타불 많이 하고, 천수다라니 많이 하고, 이렇게 하자, 이 말이에요. 네, 그리고 이제 더 잘하기 위해서 8월 10일 날 저희가 삼귀오계 수계식을 합니다. 삼귀오계라는 것은 삼귀의(三歸依) 세 가지, 우리가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스님들에게 내가 의지하겠다, 온몸으로 의지하겠다, 모든 걸 바치겠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내 팔자를 한번 바꿔보겠다, 이게 삼귀의입니다. 그래서 모든 행사에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이게 불교의 세 가지 보배입니다. 그래서 삼귀계를 서약하는 거, 그래서 삼귀계라 그래요. 오계(五戒)라는 것은 살생하지 않겠습니다, 도둑질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 오계를 받아 가지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실천하겠다라는 서원을 세우는 거거든요. 그래서 계는 서서 받고, 앉아서 금방 계 받아 놓고 금방 욕하는 거 있죠. 그래도 공덕이 된대요. 그래서 계는 많이 받으면 많이 받을수록 좋다, 나쁘다? 그 말이에요. 계는 지난번에 받았는데 또 받나? 많이 받을수록, 우리가 지은 죄는 이만큼인데, 내가 이제 이만큼 극락 가려고 발을 옮겨놨어요. 그러면 자꾸 움직여서 가야 돼, 무조건 가야 돼요, 그 길을 보고. 그러는데 그래서 계를 받는데, 잉태한 애기도 계를 받으면 좋아요. 요즘은 애기를 태명을 많이 지어놓더라고요. 태명 뭐, 여기 사랑이, 저는 태명을 잘 지어주는데 마음이라고 잘 지어줘요. 마음이, 그리고 또 정원이라고 또 지어주고. 마음이 또는 정원이. 내 나름대로 여자애는 제 마음이라고 지어줄 때도 있고, 여자애는 정원으로 지어주고, 남자애는 마음이라고도 지어주고. 그래서 마음아, 너무 잘 왔다. 엄마 배를 만지면서 마음아, 넌 어떻게 그렇게 복이 많니, 지금 벌써 이렇게 엄마랑 같이 진관사에 왔구나, 이러면서 제가 배만 불룩하다 그러면 제가 뛰어가요. 뛰어가 가지고 오라 해 가지고 합장주도 주고. 그래서 이 배 속에 있을 때가 가장 큰 태교가 되니까 어쨌든 마음을 잘 써라 해가지고 그렇게 마음이라고 지어주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분은 요즘은 아주 신식 이름도 많이 짓더라고요. 그래서 태중 아기도 계를 받고, 금방 낳은 아기들도 계를 받고, 그러고 90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를 받고, 손주들까지 다 가족을 여기에 계에 올리도록 여러분들 실천할 거죠? 꼭 하셔야 돼요. 진짜 이건 권선입니다. 제가 선을 권장하는 일이니까 여러분 8월 10일은 아이고 핑계 있으면 안 돼요. 이렇게 좋은데 핑계, 나는 뭐 가족 뭐 어쩌고, 가족 놀러 갔어, 뭐 어쩌고. 그건 바보예요, 그죠? 이게 맨날 오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여러분들 삼귀오계, 그리고 또 그날 자비수참이라는 우리 진관사에서는 잘 안 했던 기도입니다. 저희는 자비도량참법기도를 했는데 자비수참이라는 기도는 오달국사라는 아주 국사께서 그렇게 기도했던, 이제 여러분들이 읽어보면 알아요. 그래서 봉녕사 주지 스님께서 저희에게 공양을 했어요. 진관사 저기 윤달에 뭘 하면 좋을까, 그러니까 스님께서 그걸 추천을 해주는데 제가 내용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아침부터 기도하고 오후에 수계식을 하니까 핑계 대지 말고 꼭 오세요. 네, 그래 가지고 오늘 날씨가 너무 더워 가지고 뭐 해주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아요, 너무 많지만 어떻게 또 뭐 다 가르쳐준다고 하는 건 아니더라고, 그저 잔소리만 되지. 그러니까 오늘 기억할 것은 매일 같이 내가 루틴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겠다. 기도하면 꼭 가피가 있다. 내 마음이 편안하고, 가족의 일이 절로 절로 저절로 이루어지고, 현생에 극락을 닦을 수 있다. 그리고 나무아미타불을 꼭 하자. 그래서 관세음보살했는데 어떡해요? 그러면 관세음보살하면 돼. 나는 나무아미타불은 습관이 안 됐다. 그럼 관세음보살하시면 되는데, 우리가 통일된 거는 나무아미타불. 이 말도 한마디 더 하고 가야 되겠네. 아침에 제가 오늘 일정이 엄청 빡빡해 가지고 있는데 애기들이 일정이 없는데 애들이 왔어요. 그래서 “너희 이렇게 일찍이 어떻게 왔냐?” “네, 주지 스님 극락버거 가져왔어요” 이래요. 그래서 “공덕 쌓고 극락가세요” 그래서 제가 뚱 했어요. 생각도 안 했는데. 극락버거를 가져와가, 애들 입에 ‘공덕 쌓고 극락 가세요’ 법문을 내려줬어요. 아 그래서 내가, “네 불자님, 제가 공덕 쌓겠습니다” 해가지고 제가 시주를 했어요. 시주하고 햄버거, 극락버거를, 마음의 정원 극락버거 맛도 얼마나 있는지 몰라요. 그래가지고 오늘 극락버거를 제가 시주를 받았는데, 아이들 오늘 어린이 여름불교학교를 하는데, 제목이 <수행하고 극락 가고>랍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 진관사는 마음의 정원이죠? 이제 조금 더 진보했어요. 극락정원 진관사입니다, 그죠? 이거는 어린이 법회에서 네이밍을 줬어요. 지네들이 ‘공덕 쌓고 극락 갑시다’라고, 지금 어린이 법회 법우님들이 그렇게 했으니까 우리 다 극락 갑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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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 7월 25일 정초신중기도 입재 법문
종범스님 2025-07-25
주제 : 義相祖師 法性偈 이야기 14 (종장) 의상조사 법성게 이야기 14-- 九世十世互相印 (13) -- 次四句 約世時 示攝法分齊 ---- 구세십세호상즉 (13)-- 차사구 약세시 시섭법분제 -- 안녕하십니까? 을사년(乙巳年) 윤유월 초하루 진관사 법회입니다. 왜 웃으셔요? 오늘 법문은 의상 스님 법성게(法性偈) 30구 게송중에서 몇 번째예요? 열세 번째, 열세 번째.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그 게송에 대한 본문입니다. 10번을 독송을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 구세십세호상즉 구세십세호상즉 구세십세호상즉 구세십세호상즉 구세십세호상즉구세십세호상즉 구세십세호상즉 구세십세호상즉 구세십세호상즉 구세십세호상즉 이 법성게 30구 게송은 부처님의 깨달은 세계예요. 깨달은 세계를 30구로 나타낸 거거든요. 그래서 그중에 세계를 나타내는 게송이 네 구절이고, 시간을 나타내는 게송이 네 구절인데요. 이 우주 세계를 나타내는 게송은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이 네 개 송은 부처님께서 깨달은 세계를 나타낸 게송이에요. 그리고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性). 이 게송은 부처님의 깨달은 세계에서 시간을 나타내는 게송이에요. 깨달은 세계의 시간은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性)이 부처님의 깨달은 세계의 시간이에요. 깨달은 세계의 시간. 그다음에 우주 세계는 일중일체(一中一切) 일즉일체(一卽一切),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이것이 깨달은 세계의 우주거든요. 그런데 이런 게송이 다 화엄경(華嚴經) 안에 있어요. 화엄경 안에 있는데 의상 스님이 화엄경에 있는 내용을 이렇게 법성게 30구 게송으로 표현했거든요. 그러면 범부보살까지는 과거 세 시간, 현재 세 시간, 미래 세 시간, 3세 각별 시간을 살아가고 있어요. 3세가 각각 다르다. 과거 세가 다르고, 현재 세가 다르고, 미래 세가 다르고. 그러면 깨달은 제불의 시간은 9세가 상즉한다. 3세라고 안 하고 9세라고 하거든요. 왜 3세가 9세가 되느냐? 3세마다 각각 또 3세가 있어요. 과거 세도 3세가 있고, 현재 세도 3세가 있고, 미래 세도 3세가 있고, 그래서 9세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 9세가 각별. 각별은 ‘각각 다르다’ 이 말이거든요. 각별한 것이 아니라 상즉한다. 서로, ‘즉’이라는 말은 하나라는 소리예요. 서로 하나다. 9세가 서로 하나다. 그러니까 서로 하나라는 거예요. 그냥 하나가 하나가 아니라. 3세가 서로 서로 다 하나가 된다. 이래서 이걸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라고 그러거든요. 過去一切劫 安置未來今 과거 일체겁을 미래와 현재에 두며 과거일체겁 안치미래금未來現在劫 迴置過去世 미래 현재겁을 과거세에 멀리 둔다.미래현재겁 회치과거세 示現無量刹 燒然及成住 무량찰이 불타고 성주함을 보이나 시현무량찰 소연급성주一切諸世間 悉在一毛孔 일체의 모든 세간 다 일모공에 있다.일체제세간 실재일모공 去來及現在 一切十方佛 과거 미래 현재 일체 시방불이 거래급현재 일체시방불靡不於身中 分明而顯現 몸에서 분명히 나타나지 않음 없다.미불어신중 분명이현현 (華嚴經 제59권. 離世間品 제38) 왜 10세라고 하느냐? 그 9세를 알아차리는 한순간이 있어요. 그래서 9세에다가 9세를 알아차리는 한순간을 더하면 10세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9세죠, 9세. 근데 이걸 부처님 세계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논할 때 화엄경 80권 중에 제59권 이세간품(二世間品)에서는 이런 말씀이 있어요. 과거 일체겁(一切劫)을, 과거에 있었던 오랜 세월을, 또 미래와 현재에 두며, 과거 세월을 미래에 둔다, 현재에 둔다. 이 말은 부처님 세계에서는 현재와 미래는 과거라는 거예요. 둔다는 말은 본다. 과거 일체겁을 미래에서 보고, 현재에서 본다. 현재를 이렇게 보면 구세십세가 서로 하나기 때문에 과거가 다 보이고, 또 과거는 바로 미래인 거예요. 미래가 다 보인다. 그게 호상즉(互相卽)이에요. 서로 서로 함께한다. 또 그다음에 미래, 현재, 과거. 미래와 현재의 세월을 과거 세에서 멀리 본다. 과거 세에 멀리 본다. 미래의 세월이 있고, 현재의 세월이 있는데, 현재를 어디서 보느냐? 과거에서 본다는 거죠. 또 미래를 어디서 보느냐? 과거에서 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과거를 가만히 보면 그게 현재고, 또 미래는 바로 현재의 미래다. 그러니까 과거, 현재, 미래가 다 함께 있는 거지, 상즉(相卽)하는 거지, 각각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거예요. 그래서 범부와 보살까지도 그 시간의 실상에서 살지 못하고 생각에서 살아요, 생각. 그럼 우리가 지금 보고 듣는 것은 보고 듣는 진실상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범부와 보살까지도 다 자기 생각을 보고 살지, 진실을 보고 사는 게 아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깨달음을 통해서 진실에 들어갔기 때문에 진실로 볼 때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하나지, 떨어진 게 아니다. 이걸 상즉이라 그래요. 그리고 무량찰(無量刹)이, 무량찰이라는 말은 한량없는 세계가 불타서 없어지기도 하고, 또 이루어지기도 하고, 머무는 것을 수시로 보이고 있으나, 세계는 생기기도 하고, 머무르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그래요. 이게 세계예요. 그렇게 하나 일체의 모든 세간을 일체의 모든 세간을 다 일모공(一毛孔)에서 본다. 다 한 티끌 속에 있다. 일체의 모든 세간이 다 일모공이라고 그러면 이 털을 하나 뽑아낸 구멍을 일모공이라고 그러거든요. 털 하나 뽑아낸 구멍이 있어요. 그걸 한 모공이라고 그래. 부처님의 깨달은 세계는 이 우주 만복에 한량없이 많은 세계를 어디서 보느냐? 이 털 하나 뽑아낸 그 털구멍에서 본다는 거예요. 그게 깨달음의 세계예요. 멀리 갈 것 없어요. 바로 이거 하나 딱 보면 여기가 온갖 세계가 여기 다 있는 거예요. 그것이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그런 말이거든요. 한 티끌 속에 시방 세계가 다 들어있다, 포함돼 있다, 들어있다. 이게 정각 세계예요. 이걸 삼세제불(三世諸佛) 정각세계, 삼세제불께서 바르게 깨달은 세계다. 또 과거, 미래, 현재 일체시방불(一切十方佛)이 과거 세나 현재 세나 미래 세나 일체 시방에 다 출현하는 부처님이 자기 몸에서, 몸에서 분명히 나타내지 않음이 없다. 온 우주 법계가 다 몸에서 나타나는 걸 봐요. 이 말은 우주 법계가 몸 안에 있는 걸 본다. 그게 구세십세가 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고, 일미진중이 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 이만한 티끌보면 그게 우주 법계 세계 전부예요. 그게 깨달은 세계예요. 근데 범부들은 그 세계의 진실상을 보지 못하고 생겼다, 없어지는 생멸 변화상에만 계속 따라다녀요. 변화상. 진실상을 못 보니까 변화상에만 따라다녀서 안주를 못해요, 편안히 머물지 못해. 그래서 10년을 일을 해도 항상 바빠. 이거 해놓고 또, 또 딴 거 해야지, 이거 해놓고 딴 거 해야지, 요거 해놓고 딴 거 해야지. 그래서 현재에 머물지를 못해요. 늘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이게 범부예요. 끊임없이 가고 있다. 가기만 가요. 머무는 데가 없어요. 이게 아주 못 깨달은 표본인데, 못 깨달은 범부들은 가기만 간다. 머물지 못한다. 공감을 못하실 텐데.. 그러니까 인생사 가만히 보면요. 내년에 뭐가 됐으면 좋겠다, 뭐가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구하기만 구하지, 만족할 줄 몰라요. 구하다 죽어요. 구하다 죽는다고. 나도 나이가 들면 뭐 좋은 게 있는 줄 알았어. 없어요. 그러니까 그날 행복해야지. 내일, 모레, 뭐 10년 후에 행복하다, 이거는 안 되는 거예요. 오늘은 오늘 행복해야 돼요. 그리고 일을 하나 하면 그 하나 하는 것이 그게 일이지, 이 일 해치워 놓고 딴 일 또 한다, 이건 아니에요. 이 하나 일이 전부예요. 그래서 하나의 일을 잘하면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이거 하고 딴 거 하자, 그러면 안 돼요. 그거 해놓고 나면 딴 일이 또 생겨요. 그거 해놓고 나면 딴 일이 또 생겨요. 그래서 요새 살아가는 거 가만히 보면 재미있는 게 있는데, 맛집 찾아 헤매는 거. 맨날 맛집 찾아 헤매기만 하지, 어느 맛집에서 평생 먹고 사는 게 없어요. 그거 이상하다, 그거 참말. 어느 맛집 좋다더라, 그러면 찾아가. 그럼 딴 맛집 좋다더라, 그러면 또 찾아가. 이렇게 헤매기만 해요. 여행 다니는 사람도 그래요. 어디 가고 싶다고 가. 그러면 집에 오기 전에 벌써 딴 데 또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게 변화상에만 쫓아다니고 진실상을 못 봐서 그렇다. 그럼 부처님은 변화상에 머물지 않고 진실상을 깨달아서 삼세제불정각 세계를 이루었는데, 그 정각 세계는 딴 게 아니라 일미진중에 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하고,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다 있고, 구세십세가 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라, 구세십세가 함께 있다, 상즉(相卽)한다, 서로 함께 한다. 즉이라는 건 붙어 있다라는 얘기예요. 붙은 걸 즉이라 그래요. 떨어진 게 아니라. 떨어진 건 각별이고, 붙어 있는 건 상즉이거든요. 그래서 경에서 전부 이렇게 게송으로 둬서 설명을 해요. 그데 신라 시대에는 이런 경을 의상 스님한테 배우면서 그냥 글만 배우는 게 아니라, 제자들이 이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이런 거를 마음으로 탁 보는데, 그걸 수화엄관(修華嚴觀)이라, 화엄관(華嚴觀)을 닦는다. 관은 볼 관(觀)자거든요. 화엄에서 말씀하는 내용을 자기 몸소 보는 행을 닦는다. 이게 화엄관을 닦는다고 그래요. 羅國僧智通 乃相和尙十聖弟子之一也 居大白山彌理嵓穴 修花嚴觀 忽一日 見大猪過穴門 及通依常 禮木刻尊像 盡具誠懺 像語通曰 過穴之猪 是汝過去之身 我即是汝當果之佛也 通聞此語 即悟三世一際之旨 後詣相和尙叔之 和尙知其成器 遂以法界圖 印授之也 (法界圖記叢髓錄卷上之一. 韓佛全6, 782上) 나국승지통 내상화상십성제자지일야 거대백산미리암혈 수화엄관 홀일일 견대저과혈문 급통의상 례목각존상 진구성참 상어통왈 과혈지저 시여과거지신 아즉시여당과지불야 통문차어 즉오삼세일제지지 후예상화상숙지 화상지기성기 수이법계도 인수지야 (법계도기총수록권상지일. 한불전6, 782상) 그러면 이제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이런 게 잘 안 보이니까, 그 화엄을 내가 보려고 보는 수행을 내가 하는 거예요. 이걸 화엄관을 닦는다 그래요. 내가 직접 보려고 화엄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보는 실천을 닦는다, 보는 실천을 한다, 이거죠. 이래가지고 이제 법성게 주석서 중에 의상 스님의 10대 제자 중에 으뜸 가는 지통법사(智通法師)가 있는데, 지혜 지(智) 자, 통할 통(通) 자. 이분이 태백산에서 화엄관을 탁 닦고 있는데, 자기가 머무는 그 도량 앞에 멧돼지가 지나가요. 그 멧돼지가 지나가는 걸 보고 부처님 오신 데 와서 지긋한 마음으로 예불을 올리는데, 그 부처님이 지통법사에게 말을 해요, 말을 해. 뭔 말을 하냐? 기가 막히지. 지금 지나간 멧돼지는 너의 과거생이고, 나는 그 부처님으로 모셔져 있는 불상, 나는 너의 미래생이고, 너는 지금 현재생이다, 이런 말을 해요. 이게 구세상즉(九世相卽)이라고 하는 건데, 3세에는 각각 3세가 있으니까, 과거 세, 또 부처님 미래 세, 나 현재 세. 3세에 각각 3세가 있으니까 9세 아니에요. 9세가 하나로 붙어 있다. 이게 상즉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의상 스님한테 와서 그 말씀을 들으니까, 이 화엄법을 이룰 만한 그릇이 된다, 의상 스님이. 그래서 그 지통법사가 본 내용은 다른 게 아니고, 3세가 1세다. 과거, 현재, 미래 3세가 바로 1세, 3세가 1세다, 한순간이다, 이거지. 그걸 깨달은 이치다, 이거예요. 3세가 1세다. 과거가 현재고, 현재가 현재고, 미래가 현재다. 그래서 의상 스님이 지통에 대해서 큰 그릇이 될 걸 알고, 이 법성게 게송하고, 이 도장으로 된 그림하고를 줬어요. 그런 말씀이 법성게 주석에 나오는데, 이게 범부가 볼 때는 시간 시간이 다르고, 찰나 찰나가 다른데, 삼세제불이 깨달은 세계에서는 무량겁(無量劫)이 일찰나고, 일찰나가 무량겁이다. 그게 깨달은 세계예요. 근데 우리가 100년이 한순간이다, 이걸 깨닫는 때가 있는데. 인생이 덧없다, 이걸 깨닫는 때가 있는데, 그걸 언제 깨닫냐? 젊을 때는 인생이 덧없음을 못 깨닫고, 이제 늙어서 죽을 때 다 돼서 인생이 덧없음을 알아요. 그게 참 이상한 거예요. 인생이 무상하니, 인생이 한 순간이라는 말은 수없이 듣는데, 젊을 때는 그걸 몰라요, 그 뜻을. 이제 머리가 허옇게, 요새는 허연 머리도 없지만 다 염색을 해가지고, 머리가 허애가지고 늘그막해가서, 아, 인생은 무상한 것이고, 인생은 한순간이구나, 그때 알아요, 그때 알아. 근데 석가모니는 진짜 희한한 분이에요. 젊을 때 인생이 무상함을 알았어. 그게 아주 특이한 거예요. 젊을 때 인생 무상을 안 거예요, 젊을 때. 그거 어떻게 알았을까? 참 희한해요. 어떻게 알았냐? 남 죽는 거 보고 그걸 안 거예요. 근데 보통 범부들은 남 죽는 거, 장례식장, 초상집에 맨날 가도, 돌아서면 그만이여. 자기하고는 상관없어. 그런데 이 신달태자가 아주 중요하다는 건, 남 죽는 걸 보고 내 인생을 알았다. 이게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이게 알아지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인생의 한순간이라는 걸 보통 사람은 언제 오나? 딱 임종시에 숨 넘어갈 때, 그때 알아요. 내가 100년을 살았지만, 뒤돌아보니 한순간이구나. 한참 바쁘게 살 때는 그걸 알 수가 없어요. 죽는 순간에 인생은 한순간이다. 그러니까 100년이라는 게 한순간밖에 안 되는 거예요. 달력에 있는 시간은 이건 다, 이거는 자체가 없는 거거든요. 그래요. 그게 참 희한한 일이다. 그래서 이제 의상 스님이 제자들한테 뭐 가르친 방법이 있는데, 증조할아버지가 있고 할아버지 아, 증조할아버지까지는 안 가지. 할아버지가 있고, 아버지가 있고, 자신이 있고, 또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어요. 중간에 이제 내가 딱 있다면,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있고, 또 내가 낳은 자식이 있고, 또 자식이 낳은 손자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럼 여기서 구세십세가 함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걸 가르쳤어요. 할아버지는 과거의 과거라는 거예요. 아버지는 과거고. 아버지는 이제 한 세기 지났으니까 과거잖아요. 그럼 할아버지는 과거의 과거에요. 아들은 미래예요, 나의 미래. 손자는 미래의 미래예요. 나는 현재예요. 이게 할아버지, 아버지, 자신, 또 아들 딸, 손자 손녀가 모이면 5대잖아요. 5대가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거예요. 그러면 할아버지는 과거의 과거인데 한자리에 있고, 아버지는 이제 현재의 과거인데 한자리에 있고, 나는 현재의 현재인데 한자리에 있고, 아들딸은 미래인데 같이 있고, 또 손자 손녀는 미래의 미래인데 같이 있고. 이게 구세십세가 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라.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있는 거야, 지금. 그런데 완전 그럼 한타령이냐? 그거 아니에요. 이제 다음 구절에 나오는 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性)이에요. 함께 있어도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고, 아버지는 아버지고, 나는 나고, 자식은 자식이고, 손자는 손자야. 그런데 호상즉(互相卽)이라, 서로 함께 있기 때문에 같이 있는 거예요. 이걸 이제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삼세제불 깨달은 세계다. 여기는 시간도 없고, 장소도 없고, 삶과 죽음도 없고, 그냥 그 세계인 거예요. 그래서 법성게에서는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요게 부처님의 깨달은 세계를 두 게송으로 딱 표현한 건데요. 법이라는 것은 만법인데, 만법은 변화상이 있고 진실성이 있는데, 일체의 변화 만법의 진실 자성을 법성(法性)이라 그래요. 진실 자성이 뭐냐? 이거를 이렇게 보면, 이게 법인데, 이게 이 모양을 보면 다 다른데, 여기에 뼈를 보면, 이 물건의 뼈, 이 물건의 뼈는 하늘 물건의 뼈나, 이 물건의 뼈나, 땅 물건의 뼈나, 사람 물건의 뼈나, 다름이 없어요. 이걸 원융(圓融)이라고 그래요. 아, 이거 어렵네, 진짜. 하늘의 뼈를 본다, 땅의 뼈를 본다. 이 뼈라는 건 이제 진실성이다, 이 말이죠. 진실성, 하늘의 진실성, 물건의 진실성, 사람의 진실성, 그걸 법성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다음에 뭔 말이 있냐 하면,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이런 말이 있거든요. 다섯 번째, 진성(眞性)이라는 건 뭐냐? 그 법성의 진실성을 말하는 거예요. 법성의 진실성. 그래서 법성진성(法性眞性), 법의 진실성, 또 그 법성의 진실성. 이게 이제 법성진성인데, 이건 원융무이(圓融無二)하다. 원융해서 둘이 없다. 이 원융무이가 법성진성의 아주 핵심인데, 이렇기 때문에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하고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이 나오는 거예요. 원융(圓融)이 뭐냐? 이 손을 딱 쳐보면 이게 다섯인데, 다섯 손가락이 다섯 아니에요. 그런데 이게 다섯이 다 모양이 다르잖아요, 다른데, 다섯이 홀로 다섯이 아니라,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다섯이 안 되고 넷밖에 안 돼요. 여러분, 그거 잘 모르셨죠? 이게 다섯이 될 때는 이쪽 거, 이쪽 거, 이쪽 거, 이쪽 거 다 포함돼서 다섯이에요. 그러니까 이거 하나가 다섯이 되고, 다섯 자체는 이거 하나가 되고, 그래서 하나가 다섯이고, 다섯이 하나다. 이걸 원융이라 그래요. 하나이면서 다섯이고, 다섯이면서 하나다. 뭔 소린지 이상하다. 이거 하나 없으면 넷밖에 안 되잖아요. 하나가 있어야 다섯이잖아요. 그러면 이거 하나만 없으면 뭐 넷이냐? 아니에요. 이거 하나 없어도 안 돼요, 이거 하나 없어도 안 돼요. 이거 하나 없어도, 하나 없어도, 이게 다섯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또 이게 다섯이에요. 이걸 원융이라 그래요. 손가락 하나하나가 하나인데, 이게 다섯이 되는 거예요. 그럼 다섯이 될 때는 어디서부터 새냐? 첫 번째 새는 걸 근본 본 자, 본수(本數)라고 그러거든요, 본수. 제일 마지막에 세어지는 걸 끝 말 자, 말수(末數)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제 엄지손가락으로 세면 이거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 말수가 다섯이고, 본수가 하나란 말이에요. 그러면 이제 새끼손가락에서부터 세면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 본수가 하나고, 말수가 이제 다섯이라고. 그게 이게 세계 문화예요. 어느 곳에 가면 엄지손가락부터 하나로 치고, 어느 곳에 가면 새끼손가락부터 하나로 쳐요. 또 어느 곳에 가면 중간 손가락부터 하나로 치고, 이게 풍속이 다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친정에서는 아주 귀염받았는데, 시집가니까 영 엉망이다. 이게 친정에서는 예를 들면 엄지손가락부터 하나로 쳤는데, 시집오니까 새끼손가락부터 치더라 이거라. 그래서 첫째가 끝이 된 거예요. 이게 세상만사거든요. 근데 이리 치나, 저리 치나, 하나가 다섯이고, 다섯이 하나고. 이걸 원융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뭐 있다가 없어져도 하나도 속상할 것도 없고, 또 없다가 생겨도 하나도 대단할 것도 없고, 그게 해인삼매(海印三昧)예요. 해인삼매라고 하는 것은 물속에 그림자가 비치나 안 비치나 다름이 없다는 거야. 그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이라고 하거든요. 바다라고 하는 건 물이에요. 인(印)이라고 하는 건 그 물속에 비친 그림자예요. 그래서 이 바닷속에 산도 보이고, 별도 보이고, 해와 달도 보이는데, 이 산이 물속에 들어간 일이 없어요. 들어간 일이 없어요. 또 물이 산 위로 올라간 일도 없어요. 그런데 물속에 보면 훤히 보이는 거예요. 이 엄지손가락이 이게 장소를 옮긴 일도 없는데, 이게 그냥 다섯이 된 거예요. 이거 하나인데 다섯이 돼요. 이런 거는 알려야 알 수도 없고, 알릴래야 알릴 수도 없는데, 법성게 법문을 하라니 안 할 수가 없어요, 또. 그러니까 이거 해도 안 되는 일을 하는, 이 법사의 팔자도 좋은 팔자는 아니야. 이거 해도 안 되는 일인데 해야 되거든. 그러니까 이게 참, 어떤 때는 말하면서도, 아, 내 팔자도 좋은 팔자는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든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물속에 뭐가 있는데, 뭐가 물속에 들어간 적도 없고, 물이 그 있는 물건 따라 올라간 적도 없는데, 환히 보인단 말이오. 이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이라고. 제법은 움직인 일이 없어. 본래 고요해요. 그런데 하나하나 변화상, 차별상이 분명하거든. 그걸 제법이라고 그래요. 그걸 깨달은 거예요. 그러니까 뭘 해서 이루는 게 아니라, 더 보면 일체 만상이 훤히 원만하고 구족하다. 이 정각 세계는 원만구족(圓滿具足)이라 이래요. 원만, 다 있어, 모자라는 게 하나도 없어. 이걸 다 있는 걸 원만이라고 그러고, 모자라는 게 하나 없는 걸 구족이라고 그러거든요. 정각세계 원만구족. 정각세계 원만구족, 좋다, 참 좋아요. 法性眞性이 圓融無二하니 諸法不動이라 本來寂滅이여 無生性心의 靈明性覺이 千古長今이오 萬歲常光이로다법성진성이 원융무이하니 제법부동이라 본래적멸이여 무생성심의 영명성각이 천고장금이오 만세상광이로다 그러니까 불만이 많고, 해도 해도 마음이 안 채워지는 거는 못 깨달아서 그런 거고, 깨달은 세계는 원만구족이라 다 갖추어져서 부족한 게 없다. 이걸 말하는 거죠. 그래서 법성진성(法性眞性)이 원융무이(圓融無二)하니, 원융해서 둘이 없으니, 제법은 부동(不動)이라. 제법이 많이 났는데, 동자는 생긴단 말이고요, 났는데 난 것이 없다. 이걸 무생(無生)이라고 그러는데요. 이걸 이제 무생을 깨달은 거예요. 무생이라는 게 뭐냐? 물이 얼음이 됐는데 물뿐이야, 얼음은 없어. 그걸 얼음을 보고 무생이라 그래요. 근데 모양을 보면 물이 아니거든요, 얼음이거든요. 근데 그 물의 본성을 보면 물의 본성이 법성이야. 법성을 보면 물이란 말이죠. 그래서 물이 얼음 된 걸 무생이라 그래요. 난 것이 없다고. 또 난 걸 다른 말로 하면 움직일 동(動)자라고 그래, 부동(不動), 움직인 게 없다. 그 부동이라고도 하고 무생(無生)이라고도 하거든요. 그래서 인생을 초로(草露)로 비유하는데, 풀 끝에 이슬이라고. 초로 인생이라고. 풀 끝에 이슬을 가만히 보면, 이슬이 생겨 있을 때는 분명해요. 근데 점심 때쯤 되면 싹 다 날아갔거든. 그리고 이슬이 생긴 게 생긴 게 없다는 얘기야. 무생이고 부동이라는 얘기예요. 얼음이 생긴 게 없고, 움직인 게 없다. 이걸 알고, 이걸 본 것을 견성(見性)이라 그래요. 모양을 보는 게 아니라 법성을 본다. 이걸 보고 여기에 자족하면 원만구족이 되는 거예요. 모양을 보지 않고 법성을 보면. 견성자재(見性自在), 견성자재하면 부처님이요. 자재라는 말은 뭐냐 하면, 상에 매이지 않는다, 이거지. 얼음에 매이지 않아. 이슬에 매이지 않아. 이슬이 생겼어도 생긴 게 아니고, 이슬이 사라졌어도 사라진 게 아니고, 그걸 견성자재라고 그래요. 그걸 여기서 말하는 거예요. 견성자재, 원만구족. 본래적멸(本來寂滅)이라, 본래 생긴 게 없다. 무생성심(無生性心)이, 이 마음에 생멸 없는 본성의 마음이 있어요. 모양만 쫓아가는 번뇌의 마음이 있고, 근데 우리는 본성의 마음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어. 맨날 모양만 쫓아가는 번뇌의 마음만 알고 있다, 이 말이지. 그래서 그 번뇌를 자세히 분석해서 설명하는 것을 불교 유식(唯識) 법문이라고 그래요. 유식 법문. 그리고 그 본성의 마음을 설명하는 것을 불교의 화엄경 심지(心地) 법문이라고 그래요. 마음 땅. 본성을 설명하는 것은 마음 땅 법문이다. 그래서 심지(心地) 법문, 마음심 땅지지. 그 심은 본성심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무생성심(無生性心) 영명성각(靈明聖覺)이라. 신령스럽게 밝다. 이 신령스럽게 밝다는 얘기는 있는 데가 없어요. 있는 데가 없는데, 또 못하는 일이 없어. 그래서 그걸 신령스럽게 밝다고 그래요. 이걸 찾아보면 신령스럽게 밝은 마음이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몸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몸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있는 데가 없어. 근데 항상 보고, 듣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다 해요. 또 밝다고 그래요. 신령스럽고 밝은 본성의 마음이 있다. 이것은 천고장금(千古長今)이오, 만세상광(萬世常光)이라. 한자로 천고(千古)라는 말이 있는데요. 일천‘천’ 예‘고’. 천고(千古)라는 말은 오랜 세월을 그냥 천고라고 그래요. 천고에, 만고에, 이런 말이 있거든요. 만고도 오랜 세월이고, 천고도 오랜 세월이고, 그냥 한량없는 무량한 세월을 천고라고 하거든요. 천고가 장금(長今)이요, 길이길이 현재뿐이요, 뭐 변해지는 게 없어요. 道身章云 儼師近神十个日前 (668년) 學徒進所問訊 師問大衆曰 經中 一微塵中 含十方世界 與無量劫即一念等 言 汝等作何物看 衆人白云 緣起法 無自性 小不住小 大不住大 短不住短 長不住長 故尒耶 師曰 然之然矣 而猶生 白云 何謂 師曰 莫須多噵只言一故(法界圖記叢髓錄卷上之一.韓佛全6, 783上) 도신장운 엄사근신십개일전 (668년) 학도진소문신 사문대중왈 경중 일미진중 함시방세계 여무량겁 즉일념등 언 여등 작하물간 중인백운 연기법 무자성 소부주소 대부주대 단부주단 장부주장 고이야 사왈 연지연의 이유생 백운 하위 사왈 막수다유 지언일고 (법계도기총수록 권상 제일, 한불전6, 783상) 만세상광(萬世常光)이라, 만 년이 지나가도 항상 빛난다. 이거를 부처님의 정각 세계라고 하거든요. 근데 의상 스님이 서기로 661년에 중국에 가서 671년에 돌아오셨는데, 10년인데, 의상 스님의 스승 지엄 조사가 668년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668년. 그럼 의상 스님이 언제 태어났느냐? 625년에 태어났거든요. 625년에 태어난 분이 668년이 되면 나이가 몇 살이 되나, 한번 계산해 보실래요? 잘 안 돼요 이게. 625년에 태어났는데, 668년이 됐어. 그러면 우리 나이로 44세에, 44세에 이제 이 법성게(法性偈)가 다 완성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나이가 참 무색해요. 이 80이 돼도 잘 모르는 사람도 있고, 44세에 이렇게 화엄경(華嚴經)을 통달해서 이런 법성게를 짓는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1년을 100년으로 살고, 어떤 사람은 100년을 1년으로 살고, 이러니까 나이는 이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의상 스님 보면, 44세에 이런 어마어마한 세계를 이루었는데, 100살이 돼도 그렇지 못한 사람이 허다하잖아요, 참 느끼는 바가 많지. 그래서 668년, 의상 스님 44살 때 지엄 선사가 입적하기 전에, 열흘 전에, 그 제자들이 모여서 지엄 조사한테 가서 여러 가지를 여쭙는데, 지엄 조사가 한 번은 다시 제자들한테 물어요. 이게 이제 법성게 주석서에 그대로 수록된 내용인데, 이제 뭐를 묻느냐 그러면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세계와 한 가는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다 포함됐다는 얘기와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이라고 하는 이런 내용을 그대들은 어떻게 알고 있느냐, 이걸 물었어요. 돌아가시기 열흘 전에.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과 또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이라고 하는 내용을 너희들은 어떻게 보느냐, 이걸 물었거든. 그러니까 여러 제자들이 말씀을 올리되, 법에는 자성이 없어서 작은 것은 작은 것에 머물지 않고, 이거 원융(圓融)하다 이거지. 큰 것은 큰 것에 머물지 않고, 짧은 것은 짧은 것에 머물지 않고, 긴 것은 긴 것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서로 원융하고 상통하기 때문에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요,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그러니까 그 지엄 조사가 하시는 말씀이, 그렇기는 그러하나 아직 생자를 썼는데, 아직 설었다. 밥으로 말하면 선 밥이다, 익은 밥이 아니다, 설었다. 이렇게 다 말씀을 하셨대요. 설었다, 설었어. 생짜다 이거지. 그러니까 이제 제자들이 서럽다라는 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그러니까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말이 필요 없다. 불수다도(不須多道)라. 많은 말이 필요 없다는 거예요. 지엄 스님이니까 많은 말이 필요 없지, 모르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해도 모르는데, 이게 아는 사람은 이렇게 시정이 없어요. 아는 사람은 말이 없어요. 그거 참 미안해요. 지엄 조사는 말 필요 없는 거라, 그건 뭔 말이냐? 불수다도라.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언일고라. 오직 하나를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를 말하기 때문에. 언일, 말씀 언자, 하나 일자. 하나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가 뭐냐 하면, 미진과 시방이 하나고, 또 무량겁과 일찰나가 하나다. 둘이 아니다 이거죠. 그런 말씀이 여기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깨달은 세계는 너무 당연한 거예요. 근데 못 깨달은 세계는 안 보이니까 의심을 할 수밖에 없고, 말이 많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건 그러하고, 오늘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법문은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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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기도] 7월 20일 백중기도 입재 법문
자현스님 2025-07-20
안녕하세요. 여기 여기 조금만 이렇게 조금만 이렇게 땡겨 볼까요? 이렇게 이렇게 조금만. 오늘 지금 안 더우니까 조금만 좌우로 이렇게 밀착을 해 주시고. 최대한 밖에 분들도 들어오실 수 있으면 들어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월정사에서 그런 얘기하는데 우리 자장율사가 개창조인데 자장율사가 후대에 비구 정념 스님이 올 줄을 모르고 터를 작게 잡아서 건물을 지을 데가 없다. 내가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그게 자장율사의 잘못이다. 그런데 여기 오면 우리 진관 스님이 잘못을 하셔가지고 후대에 우리 법해 주지 스님이 오실 줄을 모르고 터를 너무 작은 데를. 그래서 밑으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통도사 같이 앞으로 못 가고 옆으로 이렇게 끼어서 이렇게 내려가고 있잖아요. 그래서 참 이게 대단한 거예요. 사실은 서울에서 이렇게 한다는 게 예전에 자수원 인수원이라는 절이 있었어요, 서울에. 제일 큰 비구니 도량입니다. 한때 자수원 같은 데는 5천 명, 승려만 5천 명이 살았다라고 하는. 아니야. 고려시대 때 이렇게 불교가 잘 나갈 때 아니고 조선시대 때 얘기입니다. 조선시대 때 자수원 인수원이 불교를 대표하는 최고의 사찰 중에 하나였었어요. 비구니 스님 도량으로는 최고 사찰이었고, 그전에는 정업사가 있었고, 정업사가 폐사된 뒤에는 자수원 인수원이 최고절이에요. 원래는 궁궐이었습니다, 거기가. 누가 사는 데냐면, ‘어떻게 그렇게 조선시대 때 비구니스님들이 끝발을 날립니까?’라고 하는데 누가 살았냐면 후궁들이 살았어요. 그러니까 아들을 못 낳은 후궁. 그러니까 아들을 낳으면 왕이 바뀌면 방 빼야 됩니다. 뭔 뜻인지 아시겠죠? 왕이 바뀌면 방을 빼줘야 돼. 근데 방을 뺄래도 갈 데가 없어. 그래서 궁을 지어주고 원래는 자수궁 인수궁 해서 궁을 지어주고 후궁들이 이렇게 거처할 수 있도록 아들을 낳으면 관계가 없어요. 아들 집에 가서 살면 돼요. 참 이게 보통 일 아니다. 그때도 아들 없으면 인생 슬퍼지는 거예요. 근데 방은 뺐는데 민가에 풀을 수가 없는 거예요. 민가에 풀었다가 또 이렇게 다 그게 후궁들이 한 인물 합니다. 걸그룹 미모이기 때문에 후궁이 되는 거거든요. 정부인보다 후궁이 훨씬 예쁩니다. 정부인은 권력 간에 이렇게 연합으로 결정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후궁이 최강입니다. 특히 이렇게 신분이 낮다 이렇게 나오면 신분이 낮은데 후궁이 됐어요. 얼굴로 밀어붙인 겁니다. 아 진짜야 진짜. 그래서 어우 여러분들은 이렇게 제가 얼굴을 뵈니까 다 정부인 모습을 하고 계셔. 어, 이게 올바른 삶을 사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게 또 아들 생기는 건 하늘에 어떻게 보면 인력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까 아들이 없고 후궁으로 이렇게 살다가. 참고로 말씀드리면 실록에 조선왕조실록에 이쁘다라는 한 줄이 나오면 진짜 무지하게 예쁜 겁니다. 딱 한 줄만 나오잖아요? “그냥 이뻐요” 이게 아니고 진짜 이거 전국 완전히 톱을 찍은 겁니다. 그 정도가 되면 이쁘다고 나옵니다. 폐비 윤 씨 장옥정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쁘니까 성깔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거사님들은 그 성깔을 못 받아줘서 그런 선택을 안 하잖아. 너무 힘든 분들도 선택 안 하죠. 그러니까 그런 걸 보고 정부인 될 분들하고 그다음에 예쁜 분들 감당 못하는 분들하고 이렇게 그리고 선남선녀가 만났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 자수원과 인수원의 영광이 재현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후궁들도 거기 살고, 또 누가 있냐면 상궁이 은퇴하면, 상궁이 정년 퇴직하면. 상궁들이 끝발이 무지하게 좋습니다. 여러분 잘 모르셔서 그래요. 상궁들 이렇게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이렇게 나오잖아요. 근데 예나 지금이나 왕이나 그러니까 권력자와 가까운 사람이 끝발이 좋아요. 그 사람들이 말을 한마디씩 툭 던지거든. 그러니까는 “그 사람 어떤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사람 굉장히 괜찮아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 “조금 그렇죠” 이렇게 얘기하는 거하고 천지 차이로 인사가 바뀝니다. 뭔 뜻인지 아시겠죠? 그리고 그게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진짜 그런 거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해요. 그래서 내시 권력도 굉장히 강력하고, 그런데 조선은 내시 권력을 죽여놨기 때문에 도승지 권력이 강해요. 도승지가 비서실장입니다. 그래서 비서실장 권력이 엄청나게 강하고. 남자 중에는 비서실장이 강하고 그다음에 여성분들 중에는 상궁 권력 굉장히 강합니다. 그래서 상궁이 은퇴를 하더라도 다 밑에서 키운 사람이 올라온 거잖아. 그러니까 은퇴 뒤에도 조정을 해요. 그래서 자수원 인수원이 그렇게 큰 절이 됐는데 그게 애석하게도 폐사가 되고 나중에 유지가 잘 못 됐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뜻하지 않게 여기가 지금 비구니 도량으로서 그 자수원 인수원의 영광을 살리는 것 같아. 그런데 진관 스님이 애석하게도 터를 너무 작게. 사람이 이게 좀 좁구만. 좀 너른 데다가 이렇게 잡았으면 쭉쭉쭉 뻗어 나가기 참 좋을 건데, 저 밑에 저런 데 내려가야 되니 시랑 협상해야 되고 얼마나 어렵겠어요. 보통 절터가 넓으면 그냥 뒤로 짓고 옆으로 짓고 앞으로 짓고 자빠져 짓고 이러면 그거 참 편한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닐 거예요. 그리고 건물도 이렇게 보고 있으면 좀 안타깝지. 좀 큰 거 하나를 딱 이렇게 지을 만한 게 있으면. 오늘 제가 사실은 굉장히 걱정을 했어요. 오늘 입재 날이라고 그래서 ‘사람이 많이 오시면 더울 건데’라는 생각을 했고. 그랬더니 어저께 또 비가 오더라고 그래서 ‘비 와서 또 사람 안 오는 거 아닌가?’ 이렇게 이리저리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지금 더운 거에 대비해서 비가 와서 그친 뒤라서 상대적으로 그렇죠? 상대적으로 시원하고 좋은 것 같아요. 그게 다 어떻게 보면 우리 주지스님의 공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 이거를 그다음 해 백중 오기 전에는 뭔가 하나를 크게 지어서 건물이 큰 게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절들이 본사들은 있죠, 큰 건물들이. 월정사도 문수선원 이런 데는 한 800명 때려 넣으니까. 그리고 에어컨 시설 다 되고 실내 공간이니까 조율할 수 있어요. 여기는 지금 이게 공간이 쉽지가 않아. 조율하기가 상당히 쉽지 않아. 그래서 예전에는 이것도 무지하게 크게 지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또 그렇지. 그래서 조금 힘들더라도 퍼뜩 뭔가를 하나. 하천을 옮기든가. 하천으로 옮기든가 뭔가 수를 내야 될 것 같아요. 오늘 현대적 효행 이렇게 효행의 실천 이렇게 했는데 굉장히 어려운 주제입니다. 일부러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불교가 효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그 부분들이 어떻게 보면 우란분절이 효의 명절이잖아요. 효의 명절. 그리고 효라고 하는 단어를 저는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효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그런 부분을 얘기하는 거거든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는 어떻게 해도 별 관계가 없어. 효라고 하는 거는 밑에 사람이 치사랑이지, 치사랑. 밑에 사람의 의무. 그다음에 도덕적인 어떠한 규범. 이런 것과 관련된 게 효예요. 그래서 아랫사람들에게 굉장히 힘듭니다. 그래서 윗사람은 아랫사람들이 잘 이렇게 나아갈 수 있도록 틀을 잡아주고. 그게 유교의 이제 생명관하고 관련이 있는데 유교에서는 불교랑은 달라요. 유교는 생명 자체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내가 만드는 거야. 특히 거기서 이제 핵심 기술은 누가 갖고 있냐면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성을 따르는 거예요. 그걸 부계 씨족제라고 하는 거고요. 아니 그들은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전체를 만들어. 영혼까지도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소유권이 부모에게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하는데, 굉장히 효와 관련해서 잔인한 얘기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건 범죄가 형성이 안 될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순임금 아버지가 고수라고 하는 분인데 그분이 이제 후처를 들였는데 거기서 자식이 생겨요. 대충 스토리 아시겠죠? 뻔한 스토리야. 그래서 전처 자식을 제거하려고 이렇게 요렇게 요렇게 이제 베개밑 송사 작업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결국 순임금을 두 차례나 죽이려고 했었던, 그렇지만 원망하지 않고 따랐다. 그게 도대체 뭐 맞는 얘기인가 싶은 생각이. 그래서 순임금을 대효라고 한다. 큰 효자라고 한다. 아버지가 죽이려고 하면 도망가라는 거예요. 내가 참 이런. 유교적 인식입니다. 유교적 인식. 불교는 그렇지 않아요. 불교는 부모가 만들기는 질료는 만들지만, 재료는 만들지만 혼합하고 있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영혼이라고 하는 정확하게 말하면 업입니다. 업이라고 하는 게 외부에서 들어가는 거고. 그러니까는 쉽게 말하면 핸드폰은 바꾸지만, 요즘 이제 단통법 풀려서 저도 풀릴 때까지 지금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단통법 풀리면 이제 핸드폰들이 막 바뀌기 시작할 거예요. 바꿔도 기계가 바뀔 뿐이지 안에 있는 유심만 넣으면 내 정보가 상속되는 거예요. 업의 상속이라고 하는 게 불교에서 말하는 건 그런 거거든요. 그러니까 질료적인 거는 빌려왔지만 원 소스는 나한테 있는 거지. 하드웨어는 내 거고, 아니 하드웨어는 부모님 거지만 소프트웨어는 내 거야. 그래서 불교는 출가가 가능한 겁니다. 내가 어느 정도 이상 선택을 하면, 그러니까는 충분히 스스로 선택할 위치가 되면, 그러니까 나이라든지 이런 걸로 해서 위치가 되면, 그래서 20살 이상 되면 출가할 수 있게, 20살 이하면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되고, 20살 이상 되면 출가할 수 있게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 인도 문화는 약간 개인주의 쪽으로 갈 수 있는, 그래서 효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요. 유교는 무조건 절대 복종의 효를 강조하는 종교고, 불교 같은 경우는 부모를 생각은 하지만 유교처럼 막 무조건 따라라는 아니에요. 실제로 그것도 있어요. 안 좋은 일을 부모가 시키면 어떻게 할 거냐? 그런 거 있어요. 나쁜 일을 시켜. 그럴 수도 있잖아요. 부모님이라고 다 상태가 좋은 건 아니에요. 상태가 좋은 건 아니에요. 제가 그 얘기하는데, 나중에 입맛 없고 이러면 어머니 손맛이 그립다. 어머니 손맛 별거 없다. 일류 요리사가 하는 게 더 맛있어요. 근데 그거는 향수에 의한 착각이에요, 사실은. 그래서 진짜 먹어보면 어머니가 손맛이 그렇게 좋으면 큰 식당을 하셨겠지. 어머니 손맛 사실은 뭐 별거는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이제 생각을 하는 거지요. 그런 것처럼 부모님이라고 다 올바른 분들만 계시는 건 아니야. 그래서 나쁜 일을 시키면 어떻게 할 거냐? 임금이 나쁜 일을 시키면 부도덕한 일을 하면 어떻게 할 거냐? 임금이 부도덕한 일을 하면 세 번 간하고 버리라고 돼 있어요. 사직하래. 그 말은 맞는 것 같아. 왜냐하면 아니면 아니라고 자꾸 얘기하다가 정 안 돼. 그러면 사직해야 돼. 아니라고 하고 사직을 안 했다가 생명을 사직하는 경우들이 있죠. 그 조광조 그런 분들. 틀린 말은 아닌데 너무 맞는 말도 세게 하면 사람이 피곤해요. 인생 피곤해요. 그래서 그렇게 되시는 분도 있고. 그다음에 그렇지만 부모님한테는 어떻게 하라고 말하냐면 울며 간해도 더 이상 받아주지 않으면 끝까지 따르라는 거예요. 울면서 따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절대 순종입니다. 절대 순종. 그래서 유교가 불교를 비판할 때 언제나 얘기하는 게 ‘부모님으로부터 이탈해서 부모를 봉양하지 않고 출가해서 사는 게 정당하냐?’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지금 현대 사회에서는 사실은 어느 정도 크면 지 팔 뒤흔들면서 가서 사는 게 맞죠. 계속 캥거루 같이 집에서만 계속 살 수도 없잖아. 그래서 저는 그 생각을 하거든요. 어렸을 때 제가 이렇게 시골에 가면 제비집 같은 게 있었어요. 시골에 제비집이 많이 있었어. 지금은 제비도 별로 없었는데 제가 예전에 그런 얘기해 드렸었는데 제가 고등학교 때 서울에서 학교 가다가 나 제비 잡았다니까 제비가 얼마나 많이 날아다니냐면 손을 뻗었는데 잡았어요. 설마 잡히겠나 했는데 잡았습니다. 그 정도로 제비가 많았는데 지금은 제비하고 참새 보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 어렸을 때는 그런 거 진짜 많았는데 강남 가서 그렇게 갔다 오던 제비들이 요즘은 그쪽도 먹고 살기가 힘든가 봐. 가서 못 옵니다. 그래서 그런 제비 집들이 있었고 그 제비집을 어른들이 그 흥부전 영향으로 제비는 또 봐줬어요. 제비는 놔뒀어요. 혹시나 로또가 당첨돼서 대단한 박이 하나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 속에서 제비는 놔뒀던 걸로 제가 기억을 하거든요. 그렇게 놔두면 이렇게 제가 굉장히 또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거든요. 그럼 저는 또 올라가서 그걸 또 봅니다. 얘네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집안은 좀 괜찮은가. 애들이 좀 잘 치워놓고 사나. 이렇게 딱 보고 있으면 새끼 낳고 부화해서 날아가는 과정들을 볼 수 있어요. 이게 하나만 가지면은 제가 잠깐 내려갔다 오는 거기 때문에 못 봤는데, 이게 여러 집이 쫙 붙어 있기 때문에 원룸같이 쫙 붙어 있거든요, 처마 밑에. 그러니까 이 집 저 집 보다 보면 어떤 거는 부화해서 날아가고, 어떤 거는 애들이 크고 있고, 어떤 거는 알 품고 있고 이런 게 보이더라고. 근데 부화해서 날아갈 쯤 되면 결국 밀어냅니다. 부모가 밀어냅니다. 더 이상 먹을 것도 잘 안 주고. 거기서 만약에 더 비대해지면 못 날게 되는 거예요. 그 처녀 비행이라고 하는 게 너무너무 힘들 것 같아. 계속 둥지 안에서 받아만 먹다가 어느 순간에 딱 점프를 해서 날아야 되는 거야. 근데 그 시점이 내가 조금 더 그게 안주가 돼버리면 몸이 비대해서, 날개 대비 몸이 비대해서 못 날게 될 거고, 그러면 발이 부러지는 거예요. 흥부한테 걸리면 그나마 사는데 재수 없게 걸리면 어떻게 하겠어. 그냥 쩔뚝거리다가 가는 거지. 인생 그런 거지 뭐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서 그렇게 그래서 그 시점이 조금 이르게, 내가 승질이 급해가지고 나대다가 조금 이르게 날잖아? 그러면 날개에 힘이 약해서 못 날아요. 그 시점이 무지하게 중요한 것 같아. 그래서 그게 스스로도 생각해야 되고, 부모도 생각해야 될 일이 아닌가 싶어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지금은 그런 게 오히려 맞는 시절이지. 그래서 불교적으로도 저는 이게 타당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늘상 하는 얘기 있어요. 나는 아니 사람들이 스님들이 절이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근데 저는 큰 절이 천국입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관리비 내주고 뭐 이렇게 편하고 세상 살기 좋은 데가 있나? 그냥 공부하면 되고. 그냥 한 바퀴 나다니다가 밥 먹으러 밥 시간에 가서 밥 먹고. 그다음에 커피집 가서 커피 마시고. 아는 얼굴은 공짜고. 얼마나 좋아. 절 나름입니다. 여기는 안 그럴 겁니다. 그래서 제가 얘기하잖아요. 노가다도 십장을 잘 만나야 된다고, 너무 부지런한 십장 만나면요 아침부터 밤까지 뛰어야 돼요. 그래서 그런 큰 절들, 저는 이게 천국이 있으면 이런 데지 뭔 대단한 게 있겠나 싶은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출가하는 게 자유를 찾아서라고 하는. 그리고 제가 성향이 제가 제 특징 중에 하나가 공감 능력 부족이거든요. 다른 사람과 잘 감정 공감을 잘 못해. 그래서 일 중심적이다 보니까 사람과 충돌하는 경우들이 많아. 근데 이런 사람들이 절에 살면 되게 편해요. 물론 절에서도 공감 능력이 좋아야 돼요. 그래서 우리 주지스님 같은 경우가 이렇게 대중을 많이 이끌 수 있는 거고. 저는 사실은 잘 안 돼. 뭘 하면 맨날 이렇게 그냥 바람만 잡고 다니지. 그래서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전국 노래 자랑에 송해처럼 이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너무 슬프지.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 제가 노자를 좋아했는데, 제가 중3 때 노자 책을 거의 다 읽어 다 외우다시피 했었어요. 제가 노자가, 제가 어렸을 때 꽂힌 책이 노자였었어요. 근데 거기 보면 좀 이해가 잘 안 되는 구절이 있어요. 그 ‘약팽소선’이라고 하는 구절인데,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 이렇게 나오는데, 대국을 다스리는 것은,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처럼 하면 된대. 뭔 개똥 같은 소리인가 싶어서. 작은 생선이라는 게 뭐냐면 우리 식으로 말하면 피라미 같은 거. 지금은 그렇게 행동들을 안 하는데 예전에는 작은 것까지 다 잡아먹던 시절들이 있었죠. 그리고 노가리. 그렇게 노가리를 까더니 결국 명태를 전멸시켰잖아. 해류 때문에 안 내려오는 것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어떻게 보면 명태가 국민 생선 같은 거였었거든. 그런데 그게 다 지금 없어졌잖아. 그래서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던 거지. 너무 작은 걸 먹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라고 생각을 못 했고 다 먹으려고 지금은 꿀을 따도 어느 정도는 석청 목청은 놔두고 따고 다 그런 식으로 하는데 예전에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냥 밑바닥까지 싹싹 긁는 거죠. 그래서 그 작은 생선을 삶는 것처럼 그 얘기는 뭐냐 하면 너무 앞뒤를 계속 뒤집고 그다음에 쑤시지 말래. 냅두래. 그렇게 쑤시면 다 터진대. 그래서 먹을 게 없대. 큰 거는 뒤집어도 줘야 되고, 그다음에 이렇게 한 번씩 이렇게 휘저어도 줘야 되는데, 작은 거는 그렇게 하면 그러면 미꾸라지 추어탕 같이 되죠. 다 갈려가지고. 그래서 어느 정도 놔두고 자율권을 줘라라고 하는 게 있어요. 그렇게 자율권을 줘서 서로 서로가 잘 맞으면, 그러니까 제일 좋은 거는 제가 그런 얘기하거든요. 축구나 이런 거 보면 한국 대표팀 예전에,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한국도 그런데 예전에는 단합 이런 거 되게 강조했었거든요. 근데 단합 백날해야 안 됩니다. 뭐가 안 되냐면 잘하는 팀한테 안 돼요. 어느 정도 되는 사람들을 놓으면, 진짜 프로 전문적인 사람들을 놓으면 11명을 다 따로 당겨와도 엄청나게 강합니다. 지 역할을 정확하게 잘하는 거예요. 쓸데없이 단합해가지고 으쌰으쌰만 한다고 그래서 실력이 좋아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실력이 좋아지면 중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할 겁니다. 중국이 단합 이런 거는 전 세계에서 단합 제일 잘하는 국가 북한입니다. 카드 섹션 하는 거 봐봐. 이거 이거 뒤집어가지고 이렇게 딱 공연할 때 이렇게 딱 하는 거 있잖아요. 기계 기계. 그렇게 단합을 잘하는데 그지같이 살죠. 그러니까 단합이 되는 게 아니고, 단합이 문제가 아니고, 자기 맡은 역할을 얼마나 잘하느냐예요. 사실 제가 세미나 같은 것도 많이 하거든요. 근데 세미나 할 때 되게 재미있는 게 있어요. 주제들을 딱 주고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사람만 딱 컨택해서 팀을 짜면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근데 좀 부족한 사람을 넣어주잖아? 계속 신경을 써야 돼. 그러니까 지 일을 지가 딱딱 부품으로서 그 부품 역할만 딱 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 아무 문제가 없어. 그래서 현대 가족 관계는 사실 제가 생각하는 가족 관계는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그걸 뭐라고 얘기하냐면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하는 거거든요. 그 정명론, 이름에 맞춰서. 저는 개인적으로 부처님은 부처님은 공화제주의자입니다. 부처님의 이렇게 일대기를 쭉 읽어보면 부처님은 공화제주의자예요. 그래서 절대 왕정 같은 거에 대해서 비판적이에요. 그리고 나중에 불교의 승단의 리더가 없던 것도 공화제주의의 방식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그렇게 가는데 저는 봉건제주의자예요. 지방자치제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래서 자기 역할을 던져주면 그 사람이 그 역할을 알아서 하면 돼. 그리고 그 역할을 못하면 저는 약간 파내는 식이거든요. 도저히 저 사람하고는 같이 일을 못하겠다 그러면 그냥 제거 쪽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지시해서 만들어 가고 이게 아니고 그냥 그 역할을 전체 권한을 줘. 대부분 그쪽 관련돼서는 권한을 줘. 그리고 안 되면 끝. 어느 정도 시간은 계속 줍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니 발전하는 게 보여. 지금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어요. 근데 그게 이제 정명론이라고 하는 거예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우면, 그러면 누구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해결된다. 그게 저는 사실은 오늘날 효하고 관련해서도 밑에 사람이 막 이렇게 어른을 챙겨드리고 어른이 밑에 사람을 챙기고라고 할 필요가 없고 서로서로 지 팔 잘 흔들면서 행복하게. 이게 최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그런 얘기를 합니다. 몸이 건강하다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몸이 있는 줄을 모르면 건강한 거다. 내 몸이 존재한다는 걸 알면 무언가 불편한 겁니다. 불편한 겁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예요. 가족이 있는 줄 모르면 다 제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가끔 안부 전화나 하면 돼요. 그리고 예전에는 다 집에 있기를 바라고 내 품 안에서 살기를 바라는데 사실은 지금은 그렇지도 않아요. 제 주변에도 ‘고등학생인데 지금 외국 유학 가려고 하는데 그 시험 합격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기도들이 올라와요. 그리고 이번에 ‘지금 애가 미국 가는 시험을 봤는데 뭐 어쩌고저쩌고 뭐 어쩌고저쩌고’ 그거 한 번 떠나기 시작하면 다시 못 옵니다. 다시 되돌아오기 어려운 길이에요. 그리고 만약에 미국에 살잖아? 그러면 니가 갈 거야 내가 올 거야. 처음에는 왔다 갔다 하죠. 돈보다 정이 중하니까. 그런데 나중에 어느 정도 이상 서로 간에 틀들이 잡히면 딱 그거잖아. 이게 손자가 왔을 때 오면 좋고 가면 더 좋고 라고 하는 딱 그런 느낌이거든. 그리고 가족의 특징은 뭐냐 하면 3일 이상 같이 있으면 싸웁니다. 그러면 내 자식 맞습니다. 3일 이상 있는데도 안 싸우면 손님입니다. 그래서 몰라 제가 이번에 사실은 겨울에 인도 가는데 15일 동안 가는데 저거 진짜 싸우면 난리 나거든. 싸우면 난리 나거든. 그래서 친하다고 생각해서 진짜 친한 게 아니다. 그리고 저는 그거 생각을 해요. 익숙한 게 과연 옳은 거냐에 대해서도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주 편한 것보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는 것이 부부 간에도 그렇고 부자 간에도 그렇고 자식 자식하고의 문제들도 그렇고 형제 간에도 그렇고,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서 예의를 갖출 수 있는 게 더 오래 가지 너무 친하고 확 달아오르면 그다음에 이혼한다. 그 이상 서로 너무 만만한 거야. 그래서 그 거리들이 사실은 어느 정도 위치해 있는 거 그게 개인주의예요. 우리나라는 연세 드신 분들은 개인주의하고 이기주의를 구분을 잘 못하세요. 그래서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주의하고 이기주의는 사실은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개인주의는 내가 할 도리를 다 하는 정도고, 내가 이익을 보자는 건 아니고, 이기주의는 오지랖을 떨면서 남의 것까지 막 나서서. 아니 개인주의 저 뭐야 집단주의 그러니까는 그렇게 가는 거예요. 그래서 집단으로부터 약간 거스른다라는 생각이 있는 분들도 있어. 하지만 사실은 지금은 개인주의가 다 안정화돼 있죠. 그래서 집단주의가 만연할 때 여러분들 어렸을 때 기억해 보시면 직장 생활할 때 상사가 아무 때나 다 연락 와서 뭘 시키죠. 근데 지금은 업무 시간 외에는 카톡만 보내도 잘못하면 문제가 되죠. 그래서 자기 일들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이런 관계를 종속적 관계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 일을 잘하려면 어떻게 되냐면 제가 그 얘기 되게 좋아하거든요.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라고 군자는 본의 힘을 쓰고 본무고, 근본적인 데 힘을 쓰고 ‘본립이도생’ 근본이 바로 서야 도가 생한다. 언제나 내 본질은 무엇인가. 내가 의지하고 의존적으로 해서 존재하는 거 말고 그거 말고, 내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갈 수 있고 의지해 갈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부분에 힘쓰는 것이 첫째다 라고 하는 거고. 스스로 모두가 흔들리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끼리 살게 되면 그것이 곧 화목하고 행복한 세상이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신경 써주면서 행복한 거 아닙니까? 야 그거 신경 써주면서 행복할 수도 있지만 신경 받으면서 불편할 수도 있어. 그래서 과도한 신경이 어떻게 보면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요. 물론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 있어서 전체를 다 해줄 수 있으면 모르겠어요. 그러면 고맙지. 그런데 그렇게 되기는 어려워요. 그리고 이 세상에는 꽁돈은 없어. 요즘 말로 하면 공짜 점심은 없다라고 하는 거예요. 다 대가성이 있어요. 그래서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것도 그게 가장 무 대가성이에요.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 게.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이상 많이 이렇게 잘 처리를 해주면 니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희망 사항이 있어요.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애가 나는 연예인 쪽으로 가볼까 아니면 웹툰을 그릴까 그러면 “뭔 헛소리를 하고 있니? 의대를 가야지”라고 하는 게 현실이죠. 그리고 결국은 꺾이게 돼 있어. 그런데 그것이 곧 행복인가에 대해서 그러니까 어느 정도 안정된 지위가 행복인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돼요. 저는 제가 개인적으로는 제가 평생 거의 하기 싫은 일을 잘 안 하고 살아봤거든요. 그래서 제가 힘들게는 사는데 행복 만족도가 높아요. 이거 참 미친 듯이 살지 그리고 행복 만족도를 높이고 남에게 부림을 안 받기 위해서는 내 힘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돼. 싫으면 말든가를 시전할 수 있어야 싫은 일이 안 옵니다. 내가 싫으면 말든가를 시전할 수 있어야 돼. 그래서 그게 절에 살면서 저는 가능했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저는 출가한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을 해요. 제가 만약에 직장생활을 했으면 제대로 했겠나 싶은 생각을 하거든요. 스님이니까 이만큼 봐준다 진짜. 그래서 자기 구현이라고 하는데 배점을 많이 찍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집단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그것이 안 깨지게 화합이라고 하는 부분에 배점을 찍는 분들도 있어요. 연세 드신 여성분들은 전부 화합에 맞추려고 하는 분이라고 보시면 돼요. 왜냐하면 유교적 문화가 그것을 강조했었기 때문에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다음에 전체에 좀 이렇게 잘 맞춰서 튀지 않게 모난돌이 정 맞는다라고 해서 그런 식으로 배워왔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화병이 있는 겁니다. 저는 화병은 없을 겁니다. 제가 남들에게 화병을 주죠. 저는 화병은 없어. 뱃속 편하게 살죠. 그래서 지금은 누군가 희생하는 게 아니고 서로 서로에 맞춰서 도리를 하는 거 그리고 그 도리라고 하는 게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에요. 자신을 구현하는 방식 그리고 그거는 자기 인생의 주기마다 다른 것 같아요. 젊어서 구현할 수 있는 게 있고, 나이 들어서 구현할 수 있고, 그 관점들을 계속 시시각각 바꿔야 돼요. 제일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젊었을 때 좀 잘 나가시던 분이 은퇴하고 나서 쓸데없이 가오잡으려고 하는 거 굉장히 슬픕니다. 왜 주변에 사람만 없어. 그리고 그렇게 되니까 내가 힘 떨어지니까 그런갑다라고 해서 그래도 뭐라도 한번 벌려봐야지 사업했다가 쪼르륵 망하죠. 다 그게 젊었을 때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한 거거든. 그래서 그 시기마다의 특징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젊어서는 젊어서 하는 보람 그다음에 자기 역할이라는 게 있는 거고 그리고 사람들은 다 자기 그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그릇 이상을 탐했을 때는 힘들어요. 인생이 버거워지는 거예요. 컴퓨터도 작동하는 정도의 사양이 있어요. 그 이상을 쓰면 애가 힘들어해요. 그리고 힘들면 스트레스가 되는 거고.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그릇을 찾는 거 그게 사실은 어떻게 보면 현대 불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내 일인데 내가 잘 찾는 거 아닙니까? 대부분 못 찾습니다. 뭐하고 똑같은 거냐 하면 병하고 똑같아. 병은 나에게 있지만 그것은 의사가 알아주는 거예요. 내가 알아서 처리를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래서 중간중간 저는 멍때리기 이런 거 생각보다 좋아하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도 그렇게 살기도 했지만 중간중간 전혀 엉뚱하게 쉴 수 있는 게 있어야 내 좌표를 제대로 봐요. 그리고 우란분절이 효의 명절이니까 우란분절과 관련돼서 얘기를 해드리면 잠깐만 얘기해 드리면 우란분절 경전이 목련경하고 우란분경이라고 하는 경전에서 근거를 해요. 그리고 저는 거기에 나오는 그 청제 부인이라고 하는 부인이 진짜 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난 이렇게 복 있는 사람이 있나. 거의 만수르급의 복입니다. 복 있는 걸 한번 들어봐, 진짜. 남편이 일찍 갔어요. 잘난 아들을 둬서 아들이 돈을 많이 벌어와. 그런데 무역을 하기 때문에 집을 비워야 돼. 그러니까 엄마에게 죄송하니까 법인카드를 무한대 법인카드를 줬어. 남편 없지. 아들 잘 났지. 법인카드 받고 혼자서 다 쓰면 되는 상황이야. 너무 행복하지 않아? 그래서 자유롭게 살았대. 자유 부인처럼. 자유 부인 그거 이상한 거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꾸 잘못 생각하는 게 자유 부인 대단한 뭔가 이상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직접 읽어봐. 정비석의 자유부인 읽어보면 그냥 카베라가에서 춤 두어 번 추고 끝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이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중에 하나가 애마 부인. 말을 좋아해서 애마 부인 아니고요. 그 주인공 여주인공 이름이 애마입니다. 그래서 애마 부인입니다. 저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해.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 그게 약간 그 이상한 악마의 씌인 거예요. 있는 대로 봐. 이름이 애마래서 애마 부인이었던 거야. 그러면 애마가 결혼하면 에마 부인이지. 너무 제목도 참 진짜 이상하게 어그로 끄는 제목 대단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편하게 잘 사셨대. 어머니가 행복하게. 간섭할 사람도 없고, 돈은 진탕 있고. 그래서 행복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셔서, 돌아가셔서 지옥에서 좀 구르고 잠깐 굴렀어요, 잠깐. 잠깐 굴렀다 나왔어. 아들이 빼주잖아, 아들이. 제가 그런 얘기하는데 튼실한 아들을 두지 않았다면 열심히 살아라. 왜? 빼줄 사람이 없다. 빼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여기서 빼줄 수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여기가 수륙재 사찰이기도 하고, 자꾸 수륙재 하면 물에서 하나 어쩌고 물에 빠진 귀신 건져내나 이러는데, 그게 아니고 현재의 모든 막힌 것들을 뚫어내고 그다음에 해원, 전체를 다 원을 원하는 모든 것들이 다 풀리도록 해서 조화를 이루는 게 어떻게 보면 수륙재의 가장 근본적 정신이에요. 그리고 거기에 이제 돌아가신 분들이 이제 천도도 끼어 있는 거고. 왜냐하면 그분들이 좀 안 좋게 맺혀 있으면 그게 힘드니까. 그래서 여기가 수륙재 사찰이기도 하고 그래서 백중 때는 굉장히 맞춤한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런 자식을 안 뒀다면 우리 진관사 스님들한테 의지해서 아들도 그렇게 튼실한 아들도 없는데 아들이 있다고 다 건져주는 거 아니다. 아들이 있다고 다 그 무한정 법인카드를 주는 게 아니에요. 아들이 있는데 내가 집을 팔아서 걔 집을 만들어 줘야 될 상황도 있는 거예요. 아들이라고 다 같은 아들 아닙니다. 그래서 목건련 같은 아들이 있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실은 기도 열심히 해야 돼. 그리고 바르게 살아야 돼. 그리고 그 얘기 있거든요. 함허득통의 현정론 보면 그 당시에 정도전파에서 뭔 얘기를 했냐면 ‘천당이나 지옥이 있는지 어떻게 증명할래’를 실증했어요. 이거 쉽지 않거든. 쉽지 않거든. 그런데 함허 스님은 뭐라고 대답하냐면 그것을 변증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게 지옥이 있다. (천당은 불교 용어입니다) 천당이 있다라고 생각을 가지고 살면 사람이 너무 오버하지 않는대. 너무 위태로운 일을 하지 않는대. 브레이크 없는 삶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게 죽으면 땡 아니여? 그럼 히틀러 같이 갈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총 쏴서 죽으면 되지 뭐, 내가. 혼자 자살하고 결국 끝났잖아요, 그 어른도. 그런 식으로. 그런 식으로 갈 수 있는데, 만약에 또 다른 삶이나 환경들이 존재하고 이어진다면 그러면 사람은 넘어서지 못한다. 그 한계에 브레이크가 걸린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쪽에서만 봐도 효용성은 충분히 있는 거 아니냐. 저도 49재나 천도재나 이런 거 얘기할 때도 똑같은 얘기를 해요. 그분이 돌아가시는지 카톡을 안 보내니까 가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가란 말이야. 그러니까 맨날 말을 안 하니까 우리가 백중 때마다 계속 올리잖아. 말을 하고 가면 이분은 갔으니까 빼고, 이렇게 선택적으로 하면 조금 절약이 될 건데. 옛날에 그거 있다 그래서 가면 말해달라고, 가면 말해달라고 했더니 몇 년 뒤에 왔다나 그 카톡이. 그래서 ‘왜 이렇게 늦게 왔냐’ 이랬더니 ‘가서 잠깐 적응하고 내가 바로 보냈는데 시간대가 다르네. 저쪽의 시간은 굉장히 짧다고 생각했는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이쪽 시간대하고 달라서 내가 너무 늦게 보냈다’ 그래서 SKT가 잘 딛고 사후 세계까지 이렇게 전파가 잘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그래서 갔는지 안 갔는지 진짜 모르니까 계속. 아니, 저한테도 얘기해요. 매년 해야 됩니까? 매년 하니까 가다가 오는 거 아닙니까? 한창 가고 있는데 이쪽에서 스님이 부른대. 그래갖고 자꾸 청혼을 하니까 (혼을 부른다는 뜻이에요) 자꾸 오고 또 가다 보면 또 오고 이거 계속 반복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못 가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그리고 간 사람이 있으면 빼줘야죠. 내가 알아? 내가 아나. 근데 분명한 거는 그렇게 할 때 스스로 어른을 생각하면서 추모하고 기리는 마음 가지고도 충분한 효용은 있다. 그러니까 그것을 100% 증명할 수 있느냐? 그거는 어려워. 제가 49재 얘기할 때도 그렇게 하거든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서 바로 잊을 수 있으면 참 좋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못 봤다. 제가 어른들 이렇게 보면 80 넘어가지고, 90 이렇게 지금 올라가시잖아요. 이렇게 올라가셔서 맨날 싸워요. 맨날 싸우거나 단답형 대화만 하면서 살아. 대화가 없어. 그런데도 돌아가시고 나면 거의 제가 보기에는 한 3년 정도 갔대요.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우울증 비슷하게 해서 시름시름 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이 봤어요. 그러니까 그게 난자리라고 하는 거거든요. 난자리.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저놈의 영감탱이 뭐 하는 것도 없이 밥은 꼬박꼬박 먹어요, 귀찮고로. 하지만 또 다른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람을 보냈을 때 이행 과정 그것이 변화하고 안착되는 과정으로 한 49일 정도 지내면 그것만 가지고도 49재 지내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제가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그래서 감정을 정리하고 그다음에 차마 못 왔던 분들이 계실 수도 있어요. 시간이 급해서 못 오셨던 분들도 조문을 할 수 있고, 그래서 관계를 정리하고. 운동도 마찬가지고 식이요법도 마찬가지예요. 한 50일 정도는 해야 체질이 바뀌기 시작하거든. 그래서 그렇게 기리는 마음. 그리고 이런 백중 때도 이렇게 기리는 마음을 가지는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그게 어떻게 보면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할 때 근본이 바로 서야 도가 생한다 하는데, 그 근본 중에 하나가 어떻게 보면 내 뿌리와 관련된 근본이에요. 그래서 부모님이나 나에게 고마웠던 분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그들의 은혜를 기리고, 그다음에 조금이라도 맑아질 수 있으면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차적으로는 그걸로 충분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그것 때문에 좋은 환경 속으로 움직일 수 있으면 그것은 플러스 알파로 타당한 게 되는 거죠. 그래서 효라고 하는 것들은 지금은 모두 각자가 스스로 어느 정도 이상 할 수 있는 거. 자기 위치를 자기 안에서 잡을 수 있는 거.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그게 있어요. 친친존존(親親尊尊)이라는 말이 있고. 친한 사람과 친하고, 존경할 사람을 존경한다. 그 규격에 맞다라는 거예요, 규격에 맞다라고 하는 거고. 혹약재연(或躍在淵)이라는 말 제가 좋아하거든요. 주역 건괘 구사효에 나오는 얘기인데 혹약재연이라는 말 참 좋아해요. 혹약재연이 ‘나대기는 하지만 분수를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나대지 않고 살면 그게 뭐냐 하면 연못이 있는데 나는 주역 배울 때 그거 되게 재미있었거든요. 주역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비유를 하지. 연못이 있는데 물고기가 위로 튀어 올라온대. 근데 튀어도 언제나 그 연못 속 안에서 떨어질 정도만 하지 너무 세게 튀어서 그 밖에 물 밖으로 나가버리면 인생 끝난다는 거요. 그 한계를 벗어나면 안 돼. 그러니까 선은 밟을 수 있지만 선을 넘으면 안 돼.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인간관계에서도. 부모 자식 간에도 그 선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선은 계속 바뀌어요. 그러니까 부모님이 연세가 많이 드시면 자식 선이 조금 더 앞으로 밀고 나오는 거고, 이 선들이 어렸을 때는 자식이 어렸을 때는 부모의 지배력이 압도적인 거죠. 주는 대로 먹어. 당근 싫은데. 엄마가 몸에 안 좋은 거 주겄냐? 딱 그런 거.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선들이 바뀌어 가잖아요. 그래서 그 선을 잘 체크하고 자신의 위치를 잘 잡는 거 그게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그 혹약재연이 참 기가 막히다고 생각을 했었던 게 뭐냐 하면 물고기가 안 뛰는 물고기가 제일 안전해요. 물 밖으로 나갈 확률이 없지. 인생 재미 더럽게 없게 사는 거다. 그래서 결국 나이 먹으면 추억을 상기하면서 사는 거예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협박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85세 이상이 되면 어디 나다니시기도 힘들고 결국 당신이 경험한 것만 가지고 기억하면서 집 안에서 뱅뱅뱅뱅 돌면서 사는 거예요. 인간 햄스터입니다. 딱 그렇게 사는 거예요. 진짜 무지하게 슬픈 일입니다. 그게 언제냐 하면 짧으면 10년, 길면 15년, 더 길면 20년. 맛있는 게 맛있어지냐? 아니요. 구경하면 재미있느냐? 아니요. 85세 되면 존재 가지고도 힘들어. 그 이상부터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보면. 그리고 감각 기능들이 떨어져서 만족도도 떨어지고 그다음에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 자꾸 소리를 질러. 왜? 귀가 잘 안 들리고, 그리고 괜히 잘 안 들리는데 또 옆에서 자식들이 얘기하고 있으면 궁금해. 그래서 뭐라고 또 끼어들어. 주변에 있습니다. 주변에 보시면 다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세월이 15년, 많게는 20년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많은 경험들 재미있는 것들을 축적해 놔야 그거를 상기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을 하시면, 그렇게 생각을 하시면 물고기는 뛰어야 돼. 그런데 이게 이제 어떻게 보면 튀는 거지. 한 번씩 이렇게 튀는 행동들을 해보는 거야. 그래야 생각할 게 많거든.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하잖아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너무 밋밋하게 우리를 위해서 희생만 하시다 사셔 가지고 아무 기억할 게 없어. 자식들끼리 모였는데 대화를 하면 어머니 얘기가 안 나와. 그것도 어머니의 상도덕이 없는 겁니다. 우리 어머니가 그때 사고 한번 크게 쳐가지고 집안이 뒤집어졌지. 뭐 이런 거 한번 해줘야 자식들도 추억이 샘솟아. 그때 우리 어머니가 곗돈 떼먹고 도망갔잖아. 뭐 이런 거 한 번 해주면. 아니 너무 큰 거 말고 뒤집는 거 말고 전체를 뒤집는 거 말고, 약간 혼란이 있고 다시 커버할 수 있는 정도. 집안을 깨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게 혹약재연이야. 그러면 대화할 것도 있고 사실 자식 키울 때도 그럴걸? 너무 모범적으로 쟤는 진짜 울지도 않았고 어렸을 때는 울지도 않고 커서는 어디 학원 하나 안 보냈는데 공부도 잘하고. 그게 뭔 재미가 있어? 어떤 때는 쥐어박고 등짝도 때리고 싸움도 하고. 아니, 그럼 그게 기억할 때 내가 저 자식을 지금 애가 그렇게 하던 애가 이렇게 잘 성장해 가지고 좋은 자리에 갔어. 그러면 내가 저렇게 키워서 참 뿌듯하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다 알아서 잘해요. 그거 재미없어요. 그리고 걔 입장에서도 나중에 그렇게 너무 밋밋하게 산 애들이 부모에 대한 정이 없어. 그래서 내가 신도들한테도 정 주려고 내가 이렇게 막 지랄을 하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 기억하기 좋은 거예요. 자 끝내라고 눈치를 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눈치가 빠릅니다. 오늘 시식(施食)을 해야 되기 때문에 시식을 해야 되기 때문에. 오늘 지금 백중 입재잖아. 그래서 보통 때는 백중 얘기해 달라고 하는데 현대적 효. 나도 집을 버리고 출가한 사람인데 나한테 효를 얘기하라고 하다니!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추모할 수 있을 때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을 때 기억해 드리는 것만 갖고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거예요. 꼭 없는 날까지 계속 돌아가시는 어른들 생각하고 있고 그런 걸 청승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할 때 딱 하고, 끝나면 딱 즐겁게 살고. 어른도 즐거운 걸 바랄 거고, 그다음에 여러분 자식들에게도 똑같이 하면 되는 거예요. 마치 제비가 제비 집을 떠날 때 그때 부모가 눈치를 쫙 보고 있다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랬어. 그리고 밀어내기 시작해요. 어느 순간에 먹을 거를 줄이고 애를 자꾸 밀어 밖으로. 아니야 관찰해 보신 분은 제 얘기가 맞을 거예요. 그러면 걔가 어찔어찔하다가 한 번 뛰어내려서 날면 그때 경기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하시면서 모두가 행복한, 누가 누구에게 짐이 되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그런 삶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거가 이루어지는 게 어떻게 보면 기도 가피에요. 그래서 끊임없이 기도를 하면서, 기도는 추나요법입니다. 여러분이 자세가 좀 잘못돼서 뼈따구가 잘 안 맞을 때 우리 진관사에 오셔서 뼈를 한번 다다닥 맞추고 시원하게 이렇게 가고. 그러면 평생 그렇게 사느냐? 아니 또 가서 또 뼈따구가 안 맞고. 그러면 또 다다닥 한 번 맞추고. 의료 보험한 거 적용되는 것만큼 쌀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자주 오셔서 올바른 자세, 본립(本立), 근본을 바로 세우는 일들을 하시면 그게 행복의 지름길이 되는 거 아닌가라는 말씀을 드려보면서 이상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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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기도] 6월 25일 정초신중기도 입재 법문
종범스님 2025-06-25
안녕하십니까? 을사년 6월 초하루 진관사 법회에 법성게 중에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 이 구절인데요. 법성게 30구 중에서 제12구, 12번째에 해당합니다. 10번을 먼저 독송을 하고 말씀을 이어가겠습니다. 시작. 일념즉시무량겁 일념즉시무량겁 일념즉시무량겁 일념즉시무량겁 일념즉시무량겁 일념즉시무량겁 일념즉시무량겁 일념즉시무량겁일념즉시무량겁 일념즉시무량겁 일념즉시무량겁이라. 일념은 한 생각이고 일 찰나인데, 한 생각이나 일 찰나가 한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순간. 일 찰나. 한순간이 시간 속에서 제일 짧은 시간이에요. 이게 일념이고 일 찰나예요. 그런데 무량겁은 이 시간으로 계산할 때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고 먼 시간이에요. 이걸 무량겁이라고도 하고 구원겁(久遠劫)이라고 그럽니다. ‘오랠 구’자, ‘멀 원’자. 오래고 먼 세월이다. 근데 화엄경에서는 일 찰나가 무량겁이다. 이렇게 가르쳐요. 일 찰나가 무량겁이다. 이게 뭔 소리냐?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는데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었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었는데, 정각은 바른 깨달음이거든요. 삼먁삼보리. 그걸 정각이라고 그러는데 삼먁삼보리는 바른 깨달음이다. 바른 깨달음이 뭐냐? 상의 상이 없고, 시간에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탈 무상법하고. 무상법(無相法) : 없을 무, 형상 상, 법 법. 상은 일체법인데 일체법에 일체법이 없다. 이것이 통달무상법. 그렇게 번역을 해요. 통달무상법. 무상법을 통달했다. 그럼 뭐가 무상이냐? 첫째로 오온무상. 오온은 우리 몸이거든요. 오온이 무상하다. 형상이 없다. 또 보고 느끼는 십이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십이처가 무상하다. 또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그 속에는 중간에 눈이 경계에 부딪히면 안식이 발동을 하고, 근경(根境)이 상대해 식생기중(識生基中)이라. 이게 그냥 몸이 뭘 만질 때 그냥 촉감이 생기는 게 아니라 이 몸에서 인식이 발동을 해야 촉감을 느껴요. 그래서 이게 기절한 상태라든지 죽어 있는 상태는 축감을 못 느껴요. 그래가지고 우리가 죽었을 때 화장을 해도 시신이 뜨겁다고 안 뛰쳐나오는 거는 몸 모습은 있어도 의식이 발동을 안 해서 뜨거운 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육근, 육경, 육식 이게 18계인데 이게 다 무상법이다. 또 천지만물이 모두 상의 상이 없다. 이걸 깨달은 거예요. 이게 통달 무상법이에요.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가 현상에는 없고 기억 속에 있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 느끼던 과거, 또 지금 느끼는 현재, 앞으로도 느낄 수 있는 미래가 있는데. 거기에 과거에는 또 과거가 있고, 현재에는 또 현재가 있고, 미래에는 또 미래가 있어서 한량없는 과거, 현재, 미래의 기억이 사람의 생각 속에 있고요. 또 세월이 한량없이 펼쳐져서 무량겁이 되는데, 그게 깨달음을 얻어서 정각으로 가만히 보니까 시간에 시간이 없더라. 이걸 깨달은 거예요. 요달무삼세(了達無三世)라. 3세가 없음을 요달했다. 요 자도 그 ‘알 요’ 자고 달자도 ‘통달할 달’ 자인데 딱 깨닫는 순간에 시간에 시간이 없다. 형상의 형상이 없다. 그걸 깨달은 거예요. 그러면 눈에 보이고 몸으로 느끼는 거는 뭐냐? 몸의 감각과 또 스스로 익힌 바에 의해서 어떻게 익혔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생긴다는 거죠. 그러니까 익힌 대로 생각하고, 익힌 대로 듣고, 익힌 대로 보고, 익힌 대로 행동한다. 저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하는 거는 지금까지 그렇게 학습된 바에 의해서 행동하는 거예요. 학습된 바에 의해서 먼저 생각이 형성되고, 그 생각이 행동을 해요. 생각이 없으면 절대로 행동할 수가 없어요. 그럼 생각은 어디서 나오느냐? 지금까지 경험하고, 배우고, 익힌 역사에 의해서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거 우리가 보는 세계 형상이라든지 시간의 길고 짧은 것은 스스로 이 몸의 감각 또 익힌 학습에 의해서 느끼는 거지, 없다. 그리고 없는 건 뭐냐? 이제 이거를 설명하는 게 법성게인데. 법은 만법(萬法), 십법(十法). 십법이 뭐냐 하면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육도에다가 성문, 연각, 보살, 불 이렇게 사성(四聖)을 합해서 십법이라고 그래요. 십법계가 있고, 육도법이 있고, 천지만법이 있는데, 이게 법인데, 그 법의 본성을 들여다보니까 그 십법과 육도 만법이 다 둘이 아니야. 둘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 둘이 아닌 거를 화엄에서는 어떻게 표현하냐면은 ‘무이(無二)’다. ‘없을 무’ 자, ‘두 이’ 자. ‘둘이 없다’ 이렇게 표현하고. 원융하다. 원융이라는 것은 ‘하나가 있으면 다 통한다’ 이거죠. 하나는 하나에 머물지 않고 전체와 통하고. 전체는 전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와 통하고. 그래서 이 법의 근원, 법의 본성은 원융하고, 둘이 없고, 이걸 깨달은 거예요. 그 법에서 법성을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그 법성을 설명하는 게 법성게인데 그럼 법성은 뭐냐? 부처님의 깨달음 세계예요. 깨달음으로 법성을 보았지, 깨닫지 못하면 법성을 못 보거든요. 그러니까 이 법성게라는 것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원융이라고도 하고 또 무이, 둘이 없다고도 하는데, 이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의 세계는 원융과 무이를, 둘이 없는 것을 무애, 없을 무, 걸릴 애, 무애로 나타내요. 그래서 화엄경에는 무애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와요. 걸림이 없다. 무애는 원리만 말하는 게 아니라 인격도 되는 거예요. 무애가 뭐냐? 일 찰나가 무량겁을 그대로 보고, 느끼고, 행동하는 거예요. 부처님은 늘 법성의 깨달음에 의해서 무애의 경지에 계신다. 이렇게 가르치는 게 화엄경이고, 그 화엄경을 30구로 표현한 게 법성게거든요. 무애라는 게 뭐냐? 일 찰나에 있으면서 그대로 무량겁이고 그게 무애예요. 일 찰나가 무량겁의 장애를 받지 않는다, 이거거든. 또 무량겁이면서 일 찰나의 장애를 받지 않고. 그러니까 일념이 무량겁이고 무량겁이 일념이고. 이게 뭐예요? 그럼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십법계, 또 무량겁에 다 통하는 거예요. 이게 무애예요. 그러니까 이 팔 하나 이렇게 늘면 이렇게 아주 간단하잖아요. 이게 십법계 무량겁에 다 통하는 게 이게 무애예요. 그래서 무애를 다른 말로 하면 구경행(究竟行)이다. 반야심경에 구경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구경이라는 말은 ‘그거 밖에는 없다’ 이런 소리여. 그거 말고 또 다른 게 더 있으면 나머지가 있는데, 유여인데 유여. 그거 말고 나머지는 없다 이게 무여거든요. 그러면 이것 말고 다른 것은 없다. 이렇게 표현할 때 그걸 구경이라고 그래. 이것 말고 다른 건 없다. 그러면 손 한번 이렇게 들면 이거 말고 다른 게 없는 거예요. 이게 구경행이고 구경법인 거예요. 숨 한 번 이렇게 쉬면 그것 말고 다른 거 없는 거예요. 그것이 구경행이다. 이 숨 쉬는 거 외에 다른 거 없다. 이것 말고 다른 거 없다. 이게 구경행 구경법이다. 그래서 이제 이런 걸 표현할 때 법성게에서는 원융, 무이, 무애, 구경 이런데, 이거를 일중의 일체요 다중의 일. 하나 가운데 일체고, 많은 것 가운데 하나다. 하나가 일체의 장애를 받지 않는다. 일체가 하나의 장애를 받지 않는다. 이게 전부 원융무애법이거든요. 그다음에 일즉일체다즉일. 하나가 곧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이 곧 하나다. 그러니까 하나가 모든 것의 장애를 받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의 장애를 받지 않는다.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함시방. 가는 티끌이 시방세계의 장애를 받지 않는다. 시방 세계가 가는 티끌에 장애를 받지 않는다. 일체진중역여시. 티끌 티끌마다 다 그렇다. 무량원겁즉일념. 한없이 많은 오랜 세월이 바로 일 찰나고, 일 찰나가 한없이 많은 오랜 세월이다. 이제 그다음 두 구절이 더 있죠. 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 요 8구가 법성원융, 또 법성무이, 또 법성무애, 법성구경 이걸 설명하는 거예요. 법성은 원융이요, 법성은 무이요. 무이를 아까 뭐라 그랬죠? 둘이 없다. 또 법성은 뭐예요? 또 법성은 구경이다. 이게 그런 거거든요. 그래서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부처님이 깨달은 게 법은 각자 자성이 없다. 법무자성이라. 그릇은 그릇의 자성이 없고, 또 허공은 허공의 자성이 없고, 이것은 이것의 자성이 없고, 저것은 저것의 자성이 없는데. 그럼 어떻게 생겼느냐?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 다른 것으로 자성을 삼는다. 이게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흙도 있고, 뭐도 있고, 전부 이 그릇 아닌 걸로 이루어진 거예요. 이게요. 허공도 그래요. 허공 자체가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데는 보이고 걸리는 게 있는데, 그 공간만은 보이고 걸리는 게 없어서, 보이고 걸리는 거 없는 거, 그걸 허공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허공은 보이고 걸리는 것에 의해서 이게 나타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것으로서 자기 자체 본성을 삼는다, 이걸 깨달은 거예요. 초기 불교 연기법(緣起法)을 이렇게 전 우주법계(宇宙法界)로 깨달은 거죠. 그러니까 법성(法性) 체성은 그 법성의 본체 본성은 본무이상(本無二相)이라 본래 두 가지 모양이 없다. 본래 두 가지 모양이 없는 거 이걸 딱 깨닫고 나면, 생로병사(生老病死)도 생로병사 아닌 거와 전혀 두 가지 모양이 없어요. 나고 죽는 것도 나고 죽지 아니하는 거와 전혀 두 가지 모양이 없어. 그러니까 인생 문제가 없는 거예요. 그 인생 문제는 어디서 왔느냐? 둘이 없는 곳에서 둘로 분별하는 생각에 의해서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비유로 말하면, 자기 집 안방에 편안히 누워 있는데, 이거는 법성 무이(無二) 경계란 말이에요, 둘이 없는 세계. 근데 이 잠시 잠이 들어서 꿈을 꾸다 보니까, 온갖 타향살이, 고생살이 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타향살이, 고생살이가 어디서 나왔느냐, 꿈꾸는 데서 나왔다. 본래는 자기 안방이다, 이렇게 설명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온갖 근심 걱정을 하는 것은 자기 생각에서 나온 거지, 법성에 있는 게 아니다, 이거예요. 근데 부처님은 생각에서 생각을 초월해서 법성에 들어가서, 생각으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싹 다 해결했는데, 그게 무애자재(無碍自在)예요. 무애자재. 그 무애자재가 뭐냐? 오면 오는 대로, 이렇게 그거 외에 없어요. 그게 구경법(究竟法)이에요. 하나 외에 많은 게 있는 게 아니라, 하나가 많은 거다. 그러니까 이렇게 움직이면 이거 외에 다른 건 없다, 구경법이다 이게. 숨 한 번 이렇게 들였으면 그거 외에 다른 건 없다, 구경법이다. 걸음을 앞으로 내디디면 내디디는 대로 구경법, 그거 외에 없는 거예요. 뒤로 움직이면 뒤로 움직이는 대로 구경법, 그거 외에 없다. 이렇게 이제 자재하는 거죠. 죽으면 죽는 대로 그게 구경법이다. 그 죽음을 떠나서 다른 게 없다. 근데 이제 죽으면 안 좋은 거다, 다른 걸 다시 시작해야 된다. 나도 절에 들어와서 많이 느낀 말인데, 노인들 보고 “빨리 몸 바꿔라, 몸 바꿔” 이런 말 하더라고요. 그거는 삼생 인과(三生因果)로 얘기하는 건데, 그건 범부(凡夫) 견해거든요. 그것도 사실이에요. 본부(凡夫)가 볼 때는 몸 바꿔서 새 몸 받는 게 사실인데, 부처님의 경계로 보면 몸 받는 게 그게 구경법이요. 또 몸 버리는 게 그게 구경법인데, 일념(一念)이 무량겁(無量劫)이오, 일중(一中)의 일체(一切)라. 좋아요, 좋아, 진짜 좋아요. 일중의 일체라. 박수 한 번 안 쳐요? 부처님은 ‘지금 이 순간이 모든 것이다’ 이거 안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이 모든 것이다, 일중의 일체, 지금 이 순간이 영원이다.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 이거거든요. 그래서 이거는 부처님의 깨달음 세계니까, 생각으로 배우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하는 게 그거예요. 깨달은 지혜로 알 수 있지, 다른 길은 없다. 이게 증지소지비여경이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법문을 들으면 알라고 지금 용어를 쓰지 말고, 첫째 믿어야 돼요. 그리고 계속 정진(精進)해야 돼요. 정진이라는 건 뭐냐? 정진은 사업하고 틀려요. 뭐가 사업이고, 뭐가 정진이냐? 사업은 일을 해서 일의 대가와 이익을 내가 소유하는 게 사업이고요. 정진이라는 건 계속 끊임없이 노력을 해서 그 노력의 경험으로 반야지혜(般若智慧)를 닦아가는 게 그게 정진이에요. 원력(願力)과 공덕(功德)으로 반야 지혜를 닦으면 그걸 정진이라 그러고, 노력해서 노력의 결과를 내가 얻어서 이 몸 죽기 전에 그 결과를 내가 소유하고 내가 소비하면 그건 사업이에요, 오케이? 그러니까 불자는 사업 속에서도 정진하는 게 중요해요. 그건 이 사업의 결과는 아무리 큰 거라도 이 몸이 죽으면 다 날아가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절에 와서 뭘 가르치냐면, 100년 탐물(貪物)은 일조진(一朝塵)이라, 이걸 가르쳐요. 100년 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된다. 그러니까 이 사업의 결과는 이익을 많이 얻어도 끝내 허망하다, 이거거든요. 3일 수심(修心)은 천재보(千載寶)라, 3일 동안 마음 닦는 것은 천년의 보배다, 이걸 가르쳐요. 그래서 이게 천년 보배를 위해서 사업 속에서 노력하면 그걸 정진이라고 하거든요. 이렇게 돼서 무량원겁(無量遠劫)이 즉일념(卽一念)이요, 즉시 또 일념이 즉시 무량겁이라. 그래서 이제 일체제불(一切諸佛)이 달무상법(達無相法)하고. 몸에 몸이 없는 걸 통달해요. 보는 대상에 보는 대상이 없는 걸 통달해요. 이게 상에서 무상을 통달한다. 바다에 바다가 없는 걸 통달해요. 죽음에 죽음이 없는 걸 통달해요. 여기까지만 해도 이게 이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인데, 반야바라밀로 죽음을 딱 보면 죽음이 없어요. 그걸 피안 세계라고 그래요. 그래서 피안 세계라고 하는 거는 현재 생로병사 속에서 생로병사가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걸 피안에 도달한다 이래요. 그게 극락세계예요. 도피안 극락세계. 거기까지만 해도 이제 그게 보살이에요. 또 세월 속에 세월이 없는 걸 알아요. 그게 도피안, 피안에 도달하는 거예요. 그렇게 도달하고 나면 그게 정각인데, 바르게 깨달은 건데, 시간에 시간이 없고, 또 세계에 세계가 없는 걸 다 마음으로 통달해서 몸으로 얻고 나면, 이 깨달음이라는 거는 몸과 마음이 함께 이루어지는 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마음은 도달했는데 몸은 못 도달하고 그거 아니에요. 몸도 도달하고 마음도 도달하는 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예를 들면 내가 죽음이 없는 걸 알긴 알았는데 죽을 때가 다 되니까 죽는 게 무섭고 걱정된다. 그러면 그게 깨달은 거겠어요? 못 깨달은 거겠어요?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거를 헤매요. 내가 깨닫긴 깨달았는데 왜 지금도 걱정되고 근심되냐고. 그건 아직까지 몸이 도달하지 못해서 그래요. 그래서 마음으로 알았으면 몸이 그 세계에 갈 때까지 계속 닦는 게 그게 정진이예요. 마음으로 알았다고 몸 닦는 거 내던지면 그거 안 돼요. 그냥 깨달은 그 마음의 경지에 멈춰 있거나 잘못하면 다른 습관이 더 끼어들어가지고 더 후퇴를 해버려. 그 후퇴하는 걸 나쁜 말로 하면 깨달은 후에 다시 미혹한다 그러는데 다시 미혹은 아니고 알긴 알아. 근데 몸은 몸대로 가. 생각은 생각대로 가고. 그 생각은 해탈인데 몸은 지금 계속 삶과 죽음을 반복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몸이 될 때까지 노력하는 게 그게 정진이다 이거죠. 이 정각 공덕으로 정각을 딱 했으니까 이게 여기서 큰 천지개벽이 일어나는데, 이 희로애락 생로병사, 생사에 헤매고 골몰하던 그 생각이 맞아 맞아 맞아 맞아 맞아 맞아 맞아 맞아 맞아 맞아요. 맞는 거예요. 생로병사 생각이 둥글고 밝은 원명대지(圓明大智)가 돼요. 이 생로병사, 이 희로애락, 근심 걱정의 생각이 둥글고 밝은 큰 지혜가 되는 거예요. 이걸 불지혜라 그래요. 생각이 지혜로 변하는 거예요. 왜 변하냐, 그 깨달은 공덕으로. 정각 공덕으로 대지가 출연이라 대지가 출연한다. 그다음부터는 항상 그 정각 공덕으로 얻은 그 원명대지, 둥글고 밝은 큰 지혜에 머물러 있어요. 그게 부처님이에요. 보살은 이 삶과 죽음 속에서 삶과 죽음이 없는 것을 보는 게 보살인데, 이 부처님은 생사가 없는 지혜에 상주한단 말이에요. 항상 머물죠. 항상 머물러 있어 그냥. 상주(常住). 상주 불지(佛地)하야. 상방광명(常放光明)하니 항상 지혜의 광명을 비추고 있어요. 보살경지만 하더라도 입정을 하면 깊은 마음의 세계에 들어가지만, 출정을 하면, 정에서 나오면 중생이 느끼는 걸 느낀다. 그래서 입정, 출정을 달리 느끼는 게 보살인데 부처님은 입정, 출정이 없어요. 상방광명이 그냥 항상 광명을 비춰. 마음을 잃어버린 때가 있어야지. 찾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게 부처님이 상방광명이라는 게 잃어버린 일도 없고, 찾는 일도 없는 게 상주 불지하야. 항상 불지에 머물러서 상방광명하니 항상 광명을 비추니. 뭐냐, 시명 무애라. 이것이 이름이 무애라 걸림이 없는 거다. 이게 화엄경 부처님 정각 경지 무애 법문이에요. 정각 경지는 무애다. 그럼 무애 그거 얼마나 좋아. 이거 하나 이렇게 들면 이게 구경법이요. 둘 하면 이것도 구경법이에요. 셋 하면 이게 구경법이야. 구경법 아닌 게 없어요. 이걸 7언 30구로 노래한 게 법성게예요. 그러니까 오늘은 일념즉시무량겁 그거 하거든요. 그래서 이거를 화엄경에서 몇 가지 계송을 이제 적어 봤는데, 삼세소유(三世所有) 광대겁(廣大劫)을 불염념중개시현(佛念念中皆示現)이라. 삼세에 있는 바 광대한 겁겁의 세월을 부처님이 생각 생각에 다 나타낸다. 무량한 세월을 한 생각 한 생각에 다 나타내는 거예요. 한 생각이 무량겁이라는 거예요. 또 뭐냐 이게. 피제성괴일체사(彼諸成壞一切事)를 부사의지(不思議智)로 무불요(無不了)라. 그 무량겁 안에 있는 성립도 되고, 파괴도 되고, 없어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는 일체의 모든 일을 부사의지로. 부처님의 이 깨달은 지혜는 생각할 수 없는 지혜인데 왜 생각할 수 없느냐? 찾아보면 무주불지(無住佛智)요, 머무는 데가 없는 부처님의 지혜요. 그런데 이 작용으로 보면 무변불지(無變佛智)요, 끝이 없는 또 부처님의 지혜예요. 그러니까 생각할 수가 없어요. 무주무변이다. 우리 생각도 그렇잖아요. 가만히 보면 없어! 생각이 어디 있는지. 그런데 온갖 생각을 다 해요. 무변이야 그냥, 끝이 없어. 그러니까 이 인생이 나고 죽는 건 허수아비와 같고,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마음은 이 사람과 같다. 사람이 허수아비 만들기도 하고 없애기도 하잖아요. 그게 인생이에요. 그러니까 뭐 온갖 생각을 다하고, 온갖 자랑을 다하고 하지만은 다 일장춘몽이요. 하루 저녁 꿈과 같은 거예요. 젊을 때는 그거 모르죠? 근데 한 70쯤 되면 알게 돼요. 70년 동안 이룬 것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요. 지금까지 숨 쉰 것뿐이야. 너 뭐 했냐, 그래. 너 뭐 했냐? 그러면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지금까지 숨 쉬고 있었다. 그거 딱 맞는 소리예요. 숨은 쉬었잖아요. 그것만 남는 거요. 남는 거 하나도 없어요. 그게 인생이요. 그러니까 그게 한 생각이다. 인생은 한 생각. 한 생각이 맑아지면 자기가 머무는 데가 없이 우주 만상에 가득한데 한 생각이 혼탁해지면 바쁘기만 바쁘고 남는 건 하나도 없는 인생을 살게 돼요. 그다음도 이제 게송이 있는데 어념념중실명요(於念念中 悉明了). 불가사의무량겁(不可思議無量劫). 이 깨달은 부처님에게 지혜인데, 지혜는 생각 생각에 불가사의한 무주원명한 그 대지로 무량겁을 다 본단 말이에요. 보고 와라. 이제 부처님은 지혜라는 게 능견능지를 해요. 능견은 본다 이거고. ‘능할 능’ 자 능지는 안다 이거예요. 보고 알기는 다 아는데 취사선택은 안 해요. 이건 취하고 이건 버리고 이렇게 선택을 안 해. 왜냐하면 취사선택을 해봐야 그건 허망하고 무상해서 자성이 없기 때문에 아무 쓸데가 없어요. 오래 산다고 애만 썼지 죽는 순간에는 지금까지 숨 쉰 것만 남고 남는 게 하나도 없어. 그러면 그 숨 쉬는 줄 아는 그 생각은 있단 말이에요. 그놈이 이제 성불하면 해탈 대지혜로 바뀌는 거예요. 아는 놈이 있어요. 거기에 해답이 있고 그게 열쇠요, 열쇠. 늙는 거 아는 놈, 죽는 거 아는 놈, 무서운 거 아는 놈. 그놈을 딱 돌아보고 그놈을 밝혀내면 그게 모든 것이예요. 그걸 가르치는 게 화엄경이에요. 그래서 불가사의 무량겁을 부처님이 염염 중에서 다 안다. 다 밝게 안다. 보고 알아요. 그런데 이걸 취하고 저걸 버리고, 이 취사선택은 안 해요. 그래가지고 여시요지삼세겁(如是了知三世劫). 이같이 삼세겁을 알아서, 구족안주구경행(具足安住究竟行)이라. 구경행에. 구경행이라는 거는 조그마한 거 떠나서 많은 게 없고, 가는 걸 떠나서 오는 게 없고, 앉는 걸 떠나서 가는 게 없고, 하나하나 티끌티끌이 다 구경법이고 구경행이다. 이걸 알아가지고 거기에 구족안주한다. 모자람이 하나도 없이 편안히 머문다. 이제 이렇게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어요. 우리 지금 머무는 세계하고는 다르죠. 그럼 우리가 우리하고 다른 세계를 왜 말하나? 이 말이라도 듣는 게 이게 참 불가사의한 거예요. 꿈꾸는 사람이 꿈 깬 세계가 있다는 걸 듣기만 해도 그게 엄청난 거예요. 그래서 법문은 듣고 알려고 하지 마라. 믿어라. 원력을 세워라. 정진하라. 믿고 원력을 세우고 정진하면 그 공덕이 쌓여서 깨닫는 거지 듣고 아는 게 아니에요. 생각으로 어떻게 생각 밖의 것을 알아? 이건 깨달음의 세계인데. 이 구족안주구경행이라. 구경행이 딴 거 아니에요. 걸음 한 걸음 이렇게 내디디면 그것밖에 없어요. 그것밖에 없는 걸 구경 행위라고 그랬잖아요. 앉으면 앉는 게 구경 행이고, 서면 서는 게 구경 행이지 그것밖에 없다. 거기에 그냥 모자람이 없이 편안히 머문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어요. 일일진중(一一塵中)에 무량신(無量身)이라. 하나하나 티끌 속에 무량한 몸이 있다. 이게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이런 것처럼. 이렇게 되고 또 거기에 부현무량장엄찰(復現無量莊嚴刹)이라. 그 하나하나 티끌 속에 한량없는 장엄한 세계가 있어요. 많이 꾸며놓은 세계. 장엄찰을 나타내니. 어일념중(於一念中)에 실개견(悉皆見)이라. 한 생각 한 생각 속에서 그 무량신, 무량장엄찰을 다 봐. 그러니까 시무장애정법문(示無障礙正法門)이라. 이것이 장애가 없는 무이법, 둘이 없는 법. 또 무애법, 장애가 없는 법. 또 구경법. 그 구경법의 장엄세계다. 장엄문이다. 이런 거 가르치는 게 화엄경이에요. 그러니까 화엄경은 특별히 부처님 되는 법도 가르치고, 부처님 된 세계도 가르치고. 둘을 다 가르쳐요. 그래서 인과(因果)가 다 원만하다. 이게 화엄경이. 과(果)는 부처님 된 세계고, 또 인(因)은 부처님 되는 길이고요. 그래서 길은 보살행을 말하고, 과는 이제 부처님 깨달은 경지를 말하거든요. 삼세소유일체겁을, 삼세에 있는 바 일체의 세월을. 오일념중에 능실현하니, 한 생각 속에 다 나타내니. 유여하나 무소유하야, 마치 인도에는 그전부터 마술이 아주 심했어요. 마술 뭐 이제 허깨비, 우리나라로 말하면 허수아비 같은 거예요. 허수아비가 크게도 만들고 작게도 만들고. 또 그걸 또 뭐라고 그러더라. 저 성 같은 데서 옛날에 그 사람을 하나 이렇게 만들어 놓고 뒤에서 줄로 조정을 해서 그 만들어진 사람이 움직이도록 하는 거. 그런 걸 환화(幻化)라 그래요. 환은 허수아비고 화는 변화한단 말이거든. 그게 모양은 있는데 알맹이가 없잖아요. 그래서 일체 시간이나 일체 사물에는 모양은 있는데 속 뼈가 없다. 이 물건에 속 뼈가 없다는 거예요. 이거 보이는데 이걸 깨 보면 이 안에 속 뼈가 없어요. 이걸 무상법이라 그래요. 그리고 이게 시간도 어떤 때는 1분도 굉장히 긴데, 이 인생을 돌아보면 80년도 한순간이요. 1분도 길고 80년도 한순간이다. 그 시간이 없는 거예요. ‘인생은 잠깐이다’ 옛날 노인들이 그랬는데 그때는 저렇게 나이 먹어서 뭐 했나 이 생각이 들더라. 물어보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저 나이 먹도록 뭐 했나 그런 생각 들었거든요. 근데 그 죄 받는다고 내가 지금 꼭 그 짝이에요. 이 늙어서 느끼는 인간은 뭐 50년, 60년이 한순간이에요. 이게 노인의 시간 느낌이에요. 근데 바쁠 때는요. 1분도 얼마나 길어요? 그래서 이 시간이라는 거는 정해진 게 없는 거예요. 느끼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이거거든요. 그래서 이게 허깨비와 같고, 그 허깨비의 움직임 것 같다, 이거죠. 시명제불무애법(是名諸佛無礙法)이라. 이것이 이름이 모든 부처님의 무애법, 걸림 없는 법이다. 하나에서 많은 것의 걸림이 없고, 많은 것에서 하나의 걸림이 없다. 일 찰나가 무량겁에 걸림이 없고, 무량겁이 일 찰나에 걸림이 없다. 마치겠습니다.